KBS 한국사전 - 백제를 멸하리라, 김춘추의 지독한 복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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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Опубликовано: 13 фев 2020
  • 백제와 고구려를 멸망시키고 마침내 삼국을 통일한 신라.
    그 중심에는 태종무열왕 김춘추가 있었다.
    한 가지 목표를 향해 평생을 바친 치밀한 외교지략가 김춘추!
    20여년에 걸친 김춘추의 지독한 복수, 드디어... 나당동맹으로 달성한 백제 멸망 김춘추는 백제를 멸하고 신라를 지킨 영웅인가? 아니면 외세를 끌어들인 사대주의자인가?
    - 구전동화‘토끼전’의 기원 - 김춘추의 탈출기!
    구전동화로 잘 알려진 토끼전(별주부전). 이 이야기는 바로 김춘추의 고구려 탈출기에서 비롯되었다. 백제를 치기 위해 고구려에 원병을 요청하러 간 김춘추는 신라 땅의 일부를 주면 군사를 내주겠다는 고구려 왕의 요구를 거부해 옥에 갇히고 만다.
    그때 고구려의 신하인 선도해가 들려주는 얘기를 듣고 꾀를 내어 무사히 빠져나오는데, 바로 이 이야기가 ‘토끼전’이다. 토끼전은 거북에게 속아 용왕에게 죽임을 당할 위험에 빠진 토끼가 간을 육지에 꺼내놓고 왔다고 속여 무사히 탈출했다는 설화로 ‘삼국사기-김유신전’에 기록되어 있다.
    - 수어지교(水魚之交) : 김춘추와 김유신
    우연을 가장한 계책을 써서 자신의 여동생과 김춘추를 결혼시킨 김유신. 김유신과 김춘추는 신라의 신귀족 세력을 형성하며 굳건한 관계를 형성한다. 대야성 전투에서 김춘추의 딸과 사위가 백제군에게 죽임을 당하자, 김유신은 8명의 백제 장군을 포로로 사로잡아 두 명의 유골과 맞교환한다. 또한 김춘추가 목숨을 걸고 고구려 외교길에 떠났을 때, 김유신은 신라에 군사조직 ‘별동대’를 준비해 고구려를 압박하였다.
    고구려 감옥에 갇혀있던 김춘추는 자신의 지혜와 김유신의 군사력 덕분에 무사히 빠져나오게 된다. 실질적인 신라의 군권을 장악한 김유신의 군사력은 훗날 김춘추가 정권을 잡고 개혁을 펼치는 밑거름이 된다. 김춘추와 김유신은 수어지교, 즉 물과 고기의 사귐처럼 서로 뗄 수 없는 관계였던 것이다.
    - 김춘추의 첫 번째 위기 : 대야성 패전
    642년, 백제 의자왕은 신라의 대야성을 공격한다. 신라 장수 죽죽의 장렬한 전사에도 불구하고 신라는 대야성 전투에서 패하고 만다.
    원인은 바로 대야성의 도독이었던 품석이 제대로 싸워보지도 않고 백제에 항복해 부인인 ‘고타소’와 함께 참혹한 죽임을 당한 것이다.
    그런데 이 부부는 바로 김춘추의 사위와 딸이었다!
    두 사람의 죽음은 김춘추에게 큰 정신적 충격을 주었다. 김춘추는 온종일 기둥에 기대어 선 채로 사람이 그 앞을 지나가도 알아보지 못했다고 한다. 그러나 김춘추에게 닥친 더 큰 위기는 바로 사위인 품석의 행동이었다. 화랑도 정신인 임전무퇴를 저버린 사위의 항복으로 인해 대야성 패전의 책임과 비난이 김춘추에게 쏟아진 것이다. 이 위기를 극복할 돌파구를 찾기위해 김춘추는 결단을 내린다.
    - 김춘추의 두 번째 위기 : 목숨을 건 외교길
    정치적 위기의 극복과 국가의 원수인 백제를 멸망시키기 위한 김춘추의 선택은 바로 신라의 또 다른 적국인 고구려에게 원병을 요청하는 것이었다. 당시 고구려는 연개소문이 정변을 일으켜 왕을 죽이고 실권을 장악한 상태로 김춘추의 고구려행은 목숨을 건 위험한 외교활동이었다. 고구려 군사를 빌려 백제를 치려던 김춘추. 그러나 신라땅의 일부를 주면 군사를 내주겠다는 고구려의 입장과 팽팽하게 맞서게 된다.
    결국 김춘추는 고구려 왕의 분노를 사 감옥에 갇히게 되는데...
    고구려의 신하 선도해의 지혜로 무사히 빠져나온 김춘추는 목숨을 잃을 위기를 넘기고도 신라를 위한 외교활동을 멈추지 않았다. 왜(일본)로 건너가 신라와 왜의 동맹을 성사시키려 한 것이다. 그러나 당시 백제의 영향이 강하게 남아있었던 왜를 설득하기는 쉽지 않았다. 잇따른 두 번의 외교 실패. 풍전등화의 신라를 김춘추는 과연 어떻게 구할 것인가!
    - 고도의 외교전략, 김춘추의 나당동맹
    끊임없이 신라를 공격하는 백제. 김춘추는 백제 제압을 위해 대당외교에 나선다. 당나라 군사를 요청하기 위해 위험천만한 당나라를 찾은 것이다. 당시 당나라는 네 차례나 고구려를 공격했으나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 계속된 패전으로 신라와의 연합을 원했던 당나라. 그러나 김춘추는 이런 당나라 사정을 이용해 치밀하고 전략적인 외교 전술을 펼친다. 고도의 심리전으로 당 태종을 설득한 김춘추. 드디어 648년, 신라와 당나라의 ‘나당동맹’이 맺어진다. 이는 당시로서 파격적인 김춘추 외교의 승리였다. 신라로 돌아온 김춘추는 정권을 장악하고 대대적인 개혁을 단행한다. 당나라와의 굳건한 동맹을 바탕으로 한 김춘추의 정치력과 김유신의 군사력은 강력한 신라로 발돋움하는 원동력이었다.
    - 태종무열왕 김춘추, “반드시 백제를 멸하리라”
    654년, 진덕여왕이 죽자 김춘추는 화백회의를 통해 군신들의 추대를 받아 신라 최초의 진골출신 왕으로 즉위한다. 660년. 드디어 태종무열왕 김춘추의 숙원이 풀리는 날이 찾아왔다. 나당연합군이 백제를 공격한 것이다. 백제의 계백 장군이 목숨을 다해 싸웠지만 백제는 멸망하고 만다. 20여 년에 걸친 김춘추의 지독한 복수가 드디어 끝이 난 것이다. 고구려, 왜, 당을 오가며 외교 활동을 펼치고, 신라의 왕으로 등극해 끝내 백제를 멸한 태종무열왕 김춘추. 외세의 힘을 빌려 삼국통일의 기반을 닦은 김춘추에 대해 여러 가지 평가가 엇갈리고 있다.
    그러나 국내외 정치적 상황을 꿰뚫어 보고 치밀한 외교로 돌파한 김춘추는 한 가지 목표를 위해 일생을 바친 탁월한 외교가이자 왕위에 오른 풍운아였다.
    한국사전 15회 - 백제를 멸하리라, 김춘추의 지독한 복수 (2007.9.29. 방송)
    history.kbs.co.kr/

Комментарии • 406

  • @BianJinyan
    @BianJinyan 2 года назад +2

    감사합니다

  • @Han_Jan
    @Han_Jan 7 месяцев назад +1

    나의 조상님에 대해 알게되었네요 감사합니다.

  • @kgs777kr
    @kgs777kr Год назад

    18분 요약, 삼국사기에 기록된 광활한 신라영토 l 金, 淸 나라의 모신
    ruclips.net/video/fjbn6VcsUU8/видео.html

  • @ktnam9265
    @ktnam9265 3 года назад +28

    그냥 한반도에 있었다 뿐이지 고구려 백제 신라가 한뿌리라고 생각했을까? 서로 죽이는 적국 그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제일 약했던 신라가 당나라를 끌어들인건 지극히 현실적인 전술이지 (외세를 끌어들인 불완전한 통일이었다고 평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 @user-rv8tc7qs3o
      @user-rv8tc7qs3o 2 года назад

      NL계열 빡대가리들이 그런거 생각하고 욕하겠습니까 ㅋㅋ

    • @beumkeechoi7585
      @beumkeechoi7585 2 года назад +1

      김춘추로 인해서 국토와 백성을 빼앗기고 지금까지 북쪽 영토를 빼았겼다. 김춘추가 공사 구분을 못한다

    • @user-xg8wb5wb7j
      @user-xg8wb5wb7j Год назад

      한뿌리, 민족 그런 문제 제하고 보더라도 김춘추의 외교는 지 증조부인 진흥왕이나 아들인 문무대왕에 비해 '얼치기' 외교였습니다. 진흥왕은 백제 문제 처리에 있어서는 아쉬움을 보였지만 적어도 고구려와의 외교는 지 증손자에 비해 깔끔하게 처리했지요. 문무대왕은 더욱 말할 것도 없습니다. 고구려를 공격할 때에도 연씨 형제의 싸움이 치열해질 양상이 되고 '어차피' 당나라가 고구려를 공격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까지 파악한 연후에 선수 쳐서 먼저 공세를 제안한 것이니까요. 더구나 아비인 김춘추에 비해 문무대왕은 화합정치를 실시하여 대당항쟁을 성공시킬 수 있었지요. 김춘추가 당나라를 끌어들인 것은 지극히 현실적인 전술이 아니라 '징징대기' 혹은 '얼치기' 외교에 지나지 않습니다. 문무대왕이라면 이야기가 전혀 다르겠지만요.

    • @user-ib1mc6if3u
      @user-ib1mc6if3u Год назад +5

      서로 말이 통해서 같은 민족이라는 생각은 확실히 했었음

    • @seahawk7893
      @seahawk7893 Год назад +4

      @@user-xg8wb5wb7j 얼치기 외교라뇨 신라인 입장에선 최고의 외교관이었음

  • @kgs777kr
    @kgs777kr Год назад

    16분 요약, 충격! 중국땅에도 신라 문무왕릉과 감은사가 존재 !!?
    ruclips.net/video/QrT8bJzyq-o/видео.html

  • @user-ps3ws9mm2n
    @user-ps3ws9mm2n 2 года назад +1

    🙏🏻🙏🏻🙏🏻

  • @user-hz8bj9yu6j
    @user-hz8bj9yu6j 3 года назад +10

    김춘추 김유신 두분다 시대의 영웅이시네 뿌리가같은 왜나 고구려는 같은 편이엿겟지 대단하네 그런 상황에서 삼국통일을 이루엇으니

    • @mcjg5363
      @mcjg5363 3 года назад +3

      김춘추가 혼자 신라 혼자 만으로 이루 었으면 대단한 일이겠지요 하지만 자기 사위 넘이 잘못 해서 성이 함락되 지딸년 죽은거 땜시 백제에 복수 하려고 단지 자기 딸내미 복수 때문에 고구려에 갔다가 오히려 감금 당해서 잡혀 있다가 풀려 나서 당나라 오랑캐 한테 가서 오랑캐들 데려와서 사적인 복수심 때문에 백제 고구려를 멸망 시켜 수많은 사람들 죽게만들고 노예로 끌려 가게 만들고 고구려 땅에 오랑캐들 쌍성 총관부를 설치 하게 만든 넘인데 머가 대단 합니까? 신라 왕족 넘들이 오랑캐 후손 이라 오랑캐를 끌여 들였겠지 김알지 인가 이넘이 신라 오랑캐 왕족 삼국중 근친혼을 젤 많이 한 나라도 신라 글구 고구려가 연개 소문이 죽고 나라가 혼란 해진 그틈에 오랑캐 하고 쳐서 고구려가 망한거지 고구려가 혼란 스럽지만 않았으면 신라 당나라 쨉도 안되지 글구 고구려가 신라 오랑캐들이 왜구 들한테 쩔쩔 맬때 광개토 대왕이 도와줬는데 역시 오랑캐 흉노 후손 들이라 은혜를 원수로 갚았지

    • @user-tb4rd2eo2v
      @user-tb4rd2eo2v 2 года назад +1

      @@mcjg5363 완전 동의해요 신라것들은 지들이 흉노족인거 탄로나니 이제 흉노족 미화시키기 시작했어여. 독재 미화하듯이. 정말 역사적으로 열등감에 사로잡힌 자들이에요. 하...정말 경상도 답없고. 그냥 상종안하는게 제일 나은듯.

    • @user-xg8wb5wb7j
      @user-xg8wb5wb7j Год назад

      유신공이라면 모를까 김춘추가요? 전혀 공감할 수 없습니다. 더구나 삼국통일을 완수하고 화합정치를 실시한 문무대왕은 아예 열외군요. 엄밀히 말해 문무대왕은 아비인 김춘추가 싸지른 X 뒷처리를 혼자 다 하다시피 하고 화합정치를 통해 삼국통일의 정당성을 세울 수 있었지요.

    • @user-vn4gu6wj5j
      @user-vn4gu6wj5j 2 месяца назад

      발해도 망했는데 아마도 백두산 폭발로
      발해가 망했다는 설도
      있던데요~

  • @user-mi7qc1gy8c
    @user-mi7qc1gy8c 4 года назад +12

    김춘추때문에 지금의 한국이 있네요.

    • @user-xg8wb5wb7j
      @user-xg8wb5wb7j Год назад

      하나도 동의할 수 없습니다. 문무대왕과 유신공이라면 모를까요. 사람들이 흔히 하기 쉬운 착각이 문무대왕과 유신공을 그저 김춘추의 부속 인물 정도로 잘못 알고 있다는 점입니다. 『삼국유사』 원전을 살펴보지요.
      그(일관 김춘질)가 (문무대왕의 아들 신문왕에게) 아뢰었다.
      “돌아가신 부왕(문무대왕)께서 지금 바다의 용이 되어 삼한(三韓)을 수호하고 있습니다. 또 김공유신(金公庾信)도 33천의 한 아들로서 지금 인간 세상에 내려와 대신이 되었습니다. 두 성인이 덕을 같이 하여 나라를 지킬 보배를 내어주려 하시니, 만약 폐하께서 해변으로 나가시면 값으로 계산할 수 없는 큰 보배를 반드시 얻게 될 것입니다.”
      『삼국유사(三國遺事)』 권 제2 「제2 기이(紀異第二) / 만파식적(万波息笛)」
      정말로 김춘추가 공덕이 있었다면 '2성'이 아니라 3성이라 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당대 신라인들의 입장에서 성인으로 추대하는 인물들은 문무대왕과 유신공이지 김춘추가 아닙니다. 어쨌거나 김춘추가 김씨 왕조의 중시조 격이니 우대한 것이지 신라인들의 입장에서는 문무대왕과 유신공이 진짜 받들었어야 할 성인인 것이지요.

  • @PELLACO1
    @PELLACO1 4 года назад +13

    김춘추 인물 좋네..

    • @user-kx9ri1di1l
      @user-kx9ri1di1l 2 года назад +4

      김춘추는 원래 미남으로 유명했다죠ㅎㅎㅎ

  • @kchurh0.04
    @kchurh0.04 2 года назад

  • @user-bt6pp9bq5n
    @user-bt6pp9bq5n 3 года назад +4

    복수보단 권토중래를 한거죠

  • @austinlee7414
    @austinlee7414 3 года назад +14

    멸망의 직전에서 매 상황이 극적이었고 엄격한 골품제라는 신분의 한계 속에서 비주류 진골에서 왕이 되기까지, 고구려 백제 왜의 연합의 공동의 적이 된 신라 그걸 극복하기 위해 외세를 끌어들인 어쩌면 우리와 같은 지극히 인간적인 감정을 가진, 그렇다고 비겁하다고 할수도 없는 인물이 김춘추라는 생각이 든다

  • @user-sz4ed9eo8p
    @user-sz4ed9eo8p Год назад +1

    김유신장군

  • @user-so4pf5tc2c
    @user-so4pf5tc2c 3 года назад +8

    신라 제 29대 왕 태종 무열왕 김춘추

    • @user-tu2gp2mb4g
      @user-tu2gp2mb4g 3 года назад

      661년 백제 멸망케한 후 김춘추 최수종 역은 졸 했습니다

  • @user-qs8vd1du3h
    @user-qs8vd1du3h 3 года назад +2

    휴,

  • @user-hz8bj9yu6j
    @user-hz8bj9yu6j 3 года назад +7

    저때 민족 개념만 잇엇어도 지금 우리땅이 열배이상 클텐데 시대적인 상황을 지금의 시각과 해석으론 .무리한 것이지만 여튼 굳이 고구려 백제가 신라를 많이 괴롭힌것은 사실이네 민족개념이 없엇으니 외세를 끌여들엿다는건 민족개념이 잇는 지금의 시각이고

    • @user-vs6uc2my6v
      @user-vs6uc2my6v 2 года назад

      뛰어쓰기ㅋㅋㅋ

    • @vjsuyoung
      @vjsuyoung Год назад +1

      @@user-vs6uc2my6v 뛰는.. ㅋㅋㅋ

    • @user-xg8wb5wb7j
      @user-xg8wb5wb7j Год назад

      민족 개념에 상관 없이 진흥왕이 이른바 '어그로'를 끈 것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그나마도 고구려에 대해서는 진흥왕이 지 증손자인 김춘추에 비한다면 매우 능력 있게 외교를 했지만 백제 문제는 상당히 처리가 부족했지요. 고간인 도도에 대해 엄명을 내려 '생포'하든지 죽이더라도 백제에 정중하게 시신을 인도하는 방식을 취했다면 백제가 신라에 집중 공세를 가하는 일은 없어지거나 있게 되어도 그 빈도가 대폭 줄어들었을 가능성이 높겠지요.

    • @user-kf9sh2gy3y
      @user-kf9sh2gy3y 2 месяца назад

      외교의 신이시네 김춘추 잘했다

    • @user-kf9sh2gy3y
      @user-kf9sh2gy3y 2 месяца назад

      외교의신 김춘추

  • @user-vn6wt3ce2z
    @user-vn6wt3ce2z 3 года назад +12

    진짜 품석이같은놈을 사위로둬서...하진짜개에바다ㅋㅋㅋㅋㅋ큐ㅠㅠ

  • @Kim-ig3qq
    @Kim-ig3qq 3 года назад +5

    만약 연개소문이 김춘추의 제안을 받아들였더라면..??

    • @user-kt8yp5ho2y
      @user-kt8yp5ho2y 3 года назад +4

      신라와 고구려만 남았을듯.

    • @Kim-ig3qq
      @Kim-ig3qq Год назад

      @@user-wl5qc5cz2k 고구려 백제 신라 당나라 모두 서로 외세임.

    • @user-xg8wb5wb7j
      @user-xg8wb5wb7j Год назад

      애초에 김춘추는 지 증조부인 진흥왕과 달리 이해득실을 따져 고구려를 안심 시키거나 이득을 보장해준 외교 자체가 없었습니다. 그저 '요구 조건 들이밀기'가 전부였지요. 이래서는 연개소문 아니라 누구인들 그 제안에 수긍했을까요? 하다 못해 아들인 문무대왕과 비교해도 그 부족함은 명백합니다. 하다 못해 문무대왕은 대당항쟁을 하고 있을 시기인데, 백제 무왕의 양단정책 업그레이드 판인 화전양면정책으로 물러설 때는 물러서고 항쟁할 때는 항쟁하면서 시기를 잘 조절했습니다. 적인 상태에서도 나름대로 당나라에게 이득이 되는 행동도 했던 문무대왕을 본다면 김춘추의 외교라는 것은 '얼치기'의 그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 @Kim-ig3qq
      @Kim-ig3qq Год назад

      @@user-xg8wb5wb7j 그래도 혼밥외교 여행외교 보담 잘했죠?

  • @junhyuk9000
    @junhyuk9000 4 года назад +2

    이후 당나라는 백제 고구려 왕족들로 괴뢰국을 만들고 당현종까지 멸망을인정하지 않음. 그리고 그 후신국들은 거란이나 발해에게 먹힘

  • @user-yl8wv9gv9v
    @user-yl8wv9gv9v 4 года назад +8

    강한놈이 오래가는기 아니고 오래가는놈이 강한기야

  • @minje0ng3
    @minje0ng3 2 года назад

    3:00 - 20:00

  • @walpurgisnachtnight
    @walpurgisnachtnight 4 года назад +21

    현대인의 관점에서나 신라가 외세를 끌어들여 반쪽 통일한 역적국가지 저때 당시에는 고구려,백제,왜 때문에 국가의 존망이 위급한데 그런거 따지게 생겼을까

    • @walpurgisnachtnight
      @walpurgisnachtnight 4 года назад

      @대 신라후예 진흥 매금대왕 증거 공유 좀

    • @user-cj4sh9mu7g
      @user-cj4sh9mu7g 4 года назад +1

      @대 신라후예 진흥 매금대왕 신라도 조공바치고 왜한테 개털린적도 있는 국가아님??

    • @user-hm8op8bv1h
      @user-hm8op8bv1h 3 года назад

      북한에 정통성을 둔 전교조 교육과 지역주의 열등감이 뒤섞여 신라 통수 거리는 사람들을 위해 준비했습니다
      이름 하여 "백제의 뒷통수 열전"
      -------------------------------------------------------------------------------------------------------------------------------------
      백제는 항상 왜의 군사지원을 받음
      광개토대왕비에는 유독 백제를 “ 백잔”이라 비하함
      고구려가 거란의 공격을 받을때 백제는 고구려의 뒷통수를 쳐서 공격함 393, 4, 5년
      백제 아신왕은 왜의 도움을 받아 숙부인 진사왕 뒤통수를 쳐서 죽이고 왕위에 오름 392년
      왕권 교체 구테타도 왜의 도움을 받았다는 말임 ㅋㅋ
      백제 아신왕은 직접 광개토한테 무릎을 꿇고 "앞으로 영원히 노예가 되겠다" 맹세함 396년
      또다시 뒤통수를 계획한 아신왕은 왜의 군사 지원을 받는 조건으로 태자 전지왕을 일본에 볼모로 보냄 397년
      왜와 통교를 끊겠다고 무릎꿇고 서약했으나 또 뒤통수를 치고 왜를 끌여들임 399년
      왜를 끌여들여서 한 짓이 신라를 공격한것임 ㅋㅋ
      이때 또다시 고구려 뒤통수 칠 준비하자 백성들이 신라,왜로 도망가고 백제왕족 유즈키노키미 가 대인구를 이끌고 야마토로 망명 399년
      이때 왜국의 군사지원을 얻으려고 태자도 보내고 아직기,왕인도 보내고 하면서 실질적으로 왜국을 키워줌 (6.25때 일본이 폭풍성장 한것처럼)
      영원히 노예가 되겠다고 무릎 꿇고 맹세했던 백제는 또다시 고구려의 뒤통수를 침
      그것도 왜놈을 끌여들어 고구려를 또 침 404년
      심지어 고구려는 후연과 전쟁을 하고 있었으므로 백제 종특 뒤통수가 제대로 나온거임 404년
      백제 아신왕이 죽자 동생 훈해가 섭정을 했는데 막내동생이 뒤통수를 쳐서 형을 죽이고 왕이 됨 405년
      군사 지원을 받기 위해 왜에 볼모로 갔던 전지가 왜의 도움을 받아 삼촌을 뒤통수 쳐 죽이고 왕이 됨 405년
      또다시 왕권 교체 구테타를 왜의 도음을 받았다는 말임 ㅋㅋㅋ
      이게 수백년에 걸친 사건이 아니라 단 10년 동안 일어난 일이라는 것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 뒤로로 백제의 통수는 이루말할 수 없이 굉장함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정말 배신과 뒤통수의 심볼이 바로 "백제"임
      2탄
      왜놈을 끌여들여 신라의 뒤통수를 쳤던 백제는(비유왕) 고구려에 밀려 수세에 몰리자 염치없이 신라에 화친을 요청함 ㅋㅋㅋㅋ
      그것도 비굴하게 3번이나 조공 갖다바치며 요청함 433년 7월, 434년 2,9월
      그 후 신라는 군사를 보내 백제를 여러번 도와줬지만 백제는 또 신라의 뒤통수를 침 (관산성전투 후술하겠음)
      백제 개로왕은 중국에 비참하게 구걸하면서 고구려 좀 쳐달라고 애걸복걸 함 472년
      ("마땅히 저의 딸을 보내어 후궁에서 청소를 하게 하고, 아울러 자제들을 보내어 마구간에서 말을 먹이게 하겠으며 한 치의 땅이나 한 사람의 필부(匹夫)라도 감히 저의 것이라 생각하지 않겠습니다." )
      위 사실을 알게된 고구려 장수왕은 백제 정벌에 나섬 475년
      성이 함락당하자 개로왕은 뒷구멍으로 도망쳤는데 백제인 배신자 재증걸루, 고이만년의 뒤통수에 참수당함 475년
      이때 먼저 도망간 백제 개로왕 동생 문주는 신라에 구원 요청을 하고 신라는 구원군 1만명을 보냄
      이때 백제 귀족 군사는 신라 지원군 보다 더 늦게 도착하는 뒤통수를 때림 ㅋㅋ
      백제 문주는 수도를 웅진으로 옮기고 비참하게 살아남음
      한국사 역사상 강제로 쫒겨서 수도를 옮긴건 백제가 유일함 ㅋㅋㅋ
      이때 또 골때리는건 한성 함락 이후 백제가 위기 상황을 겪을 때 일부 지방 세력은 사실상 독립하여 자체 국호로 외국에 사신을 보내는 통수까지 침
      한성이 무너진 이후로 백제 왕권은 그야말로 좁밥이 되어 대성팔족의 뒤통수가 시작 됨
      결국 백제 문주왕도 백제 배신자의(좌평 해씨가문) 뒤통수로 죽임당함 477년
      문주왕이 죽자 아들인 심근왕이 왕위에 올랐으나
      심근왕 세력인 진씨 가문과 해씨 가문이 서로 배신하며 뒤통수 쳐서 수천명의 군사가 죽음 ㅋㅋㅋ
      결국 심근왕도 3년만에 의문사로 죽음 (진씨 가문의 뒤통수로 추정함) 479년
      진씨 세력은 다음으로 동성왕을 지들 손으로 뽑음 479년
      왜를 끌여들여 계속 신라의 뒤통수를 쳤던 백제는 염치없이 동성왕때에 또 비굴하게 신라에 사신을 보내 청혼을 요청함 493년
      신라왕은 자신의 여식을 보내지 않고 신하인 이벌찬 비지의 딸을 보냄 ㅋㅋㅋ 493년
      동성왕은 신라 이벌찬 비지의 딸과 결혼 함
      동성왕 또한 어김없이 백제 배신자 백가의 뒤통수에 의해 죽임당함 501년
      백제왕은 대부분이 배신자의 통수 통수 통수에 의해 죽었음 ㅋㅋㅋ
      15대 침류왕, 16대 진사왕, 17대 아신왕, 폐왕 설례, 19대 구이신왕, 20대 비유왕, 22대 문주왕, 23대 삼근왕, 24대 동성왕이 모두 뒤통수로 죽임을 당함
      21대 개로왕은 고구려 뒤통수 치다 백제인 배신자 고이만년에게 참수당하고
      26대 성왕은 신라 뒤통수 치다 참수당함
      이후 27대 위덕왕, 태자 아좌, 28대 혜왕, 29대 법왕도 뒤통수로 추정되는 의문사를 당함
      백제는 정권 교체 자체가 곧 왕의 시해 즉, 뒤통수를 뜻하는거였음
      3탄도 기대하세요^^
      아 참고로 전라도는 백제가 아니예요
      백제 말기까지 백제와 군사충돌이 있었던 변두리 마한입니다
      벡제는 서울,경기,충청권이예요

    • @alaskakim3172
      @alaskakim3172 Год назад

      일종의 지금의 "주한미군"과도 유사한거지.
      일명.빨갱들은 툭하면 미군 철수 주장하잖냐.
      현실이 미군 철수하면 어떤일이 벌어질까? 명분이 뭐 밥 ㅊ ㅓ 먹여주냐 ㅋ
      신라 입장에선 국경 접한 웬쑤 고구려 백제보단 바다 건너 당나라가 더 안전한 존재였으니깐 당연히 협력한거지.

    • @user-xg8wb5wb7j
      @user-xg8wb5wb7j Год назад

      그것도 정도라는 것이 있는 법입니다. 다른 나라 살필 것도 없이 김춘추가 지 증조부인 진흥왕, 아들인 문무대왕과 비교해보아도 외교적 부실함 혹은 '얼치기 외교'가 눈에 띄기 때문이지요. 문무대왕이야 더 말할 나위도 없거니와 진흥왕은 백제 문제 처리에 있어서는 아쉬움이 많았지만 고구려나 대 중국 외교에 있어서는 '세력 균형'이라는 선을 유지했습니다. 무작정 김춘추처럼 징징대며 '원군 파딱 보내줘' 따위와는 굉장한 거리가 있었지요. 김춘추는 문무대왕의 화전양면정책처럼 밀고 당기는 외교술을 발휘한 것이 아니라 당에 저자세 외교로 일관했습니다. 국력 차이를 감안한다 해도 국익을 위한다기 보다는 그저 백제 멸망 만을 위한 근시안적 사고가 한눈에 드러납니다. 연개소문과의 협상 때도 진흥왕처럼 협상술을 발휘한 것이 아니라 '자기 요구 조건 들이밀기'로 일관했지요. 이래서야 연개소문 아니라 누구인들 그 협상에 수긍할까요? 신라라는 나라 자체가 역적 국가라는 말 자체는 부당합니다만 김춘추를 미화시키는 역사관은 매우 위험천만하다 할 것입니다.

  • @user-dn4ec9wx7h
    @user-dn4ec9wx7h Год назад

    주류 성골 아닌가요? 22:55초 말 요 왕위계승 진골이 아니고 성골요

  • @tv.2745
    @tv.2745 4 года назад +3

    ⚔😡백제 말도만코 탈도만코 학자도 만코🤣🤣

  • @user-sc3nj8yj9k
    @user-sc3nj8yj9k 4 года назад +9

    이거 아시나들~
    김유신 모후인 만명부인은 선덕여왕의 아버지인 진평왕의 여동생.고로 김유신과 선덕여왕은 이종사촌지간........
    김춘추의 어머니는 선덕여왕의 여동생.고로 김유신과 김춘추도 사돈지간

    • @user-le7mi4hy3w
      @user-le7mi4hy3w Год назад

      사돈이 아니고 김춘추가 5촌 조카뻘이지 김유신이 김춘추 당숙 ok? 밥팅!

  • @user-wl6tz2fm2m
    @user-wl6tz2fm2m 4 года назад +44

    근데 이건 사위가 잘못한거라 사위를 조져야함

    • @user-yq3sb9ud2m
      @user-yq3sb9ud2m 4 года назад

      응근데삼국이다이렇게했어이게전쟁인거여 장수왕은개로왕모가지댕컹잘라 개골창에던져송사리쏘가리붕어먹이로주고 개로왕모후왕비비첩궁녀들다모셔갔어
      그다음은상상에맡길께 이게어떻게같은민족이여 개족보나라지

    • @user-yq3sb9ud2m
      @user-yq3sb9ud2m 4 года назад

      또그후후백뭐라나 거기견훤이는신라왕자결케하고 왕비따먹었어

    • @user-sp1ls9rw2v
      @user-sp1ls9rw2v 4 года назад +8

      그이전에 554년 관산성전투에서 신라군이 백제 성왕을 죽이고 백제는 신라한테 복수를한거고 김춘추가 또 복수를 한것이지요

    • @user-hm8op8bv1h
      @user-hm8op8bv1h 3 года назад +2

      북한에 정통성을 둔 전교조 교육과 지역주의 열등감이 뒤섞여 신라 통수 거리는 사람들을 위해 준비했습니다
      이름 하여 "백제의 뒷통수 열전"
      -------------------------------------------------------------------------------------------------------------------------------------
      백제는 항상 왜의 군사지원을 받음
      광개토대왕비에는 유독 백제를 “ 백잔”이라 비하함
      고구려가 거란의 공격을 받을때 백제는 고구려의 뒷통수를 쳐서 공격함 393, 4, 5년
      백제 아신왕은 왜의 도움을 받아 숙부인 진사왕 뒤통수를 쳐서 죽이고 왕위에 오름 392년
      왕권 교체 구테타도 왜의 도움을 받았다는 말임 ㅋㅋ
      백제 아신왕은 직접 광개토한테 무릎을 꿇고 "앞으로 영원히 노예가 되겠다" 맹세함 396년
      또다시 뒤통수를 계획한 아신왕은 왜의 군사 지원을 받는 조건으로 태자 전지왕을 일본에 볼모로 보냄 397년
      왜와 통교를 끊겠다고 무릎꿇고 서약했으나 또 뒤통수를 치고 왜를 끌여들임 399년
      왜를 끌여들여서 한 짓이 신라를 공격한것임 ㅋㅋ
      이때 또다시 고구려 뒤통수 칠 준비하자 백성들이 신라,왜로 도망가고 백제왕족 유즈키노키미 가 대인구를 이끌고 야마토로 망명 399년
      이때 왜국의 군사지원을 얻으려고 태자도 보내고 아직기,왕인도 보내고 하면서 실질적으로 왜국을 키워줌 (6.25때 일본이 폭풍성장 한것처럼)
      영원히 노예가 되겠다고 무릎 꿇고 맹세했던 백제는 또다시 고구려의 뒤통수를 침
      그것도 왜놈을 끌여들어 고구려를 또 침 404년
      심지어 고구려는 후연과 전쟁을 하고 있었으므로 백제 종특 뒤통수가 제대로 나온거임 404년
      백제 아신왕이 죽자 동생 훈해가 섭정을 했는데 막내동생이 뒤통수를 쳐서 형을 죽이고 왕이 됨 405년
      군사 지원을 받기 위해 왜에 볼모로 갔던 전지가 왜의 도움을 받아 삼촌을 뒤통수 쳐 죽이고 왕이 됨 405년
      또다시 왕권 교체 구테타를 왜의 도음을 받았다는 말임 ㅋㅋㅋ
      이게 수백년에 걸친 사건이 아니라 단 10년 동안 일어난 일이라는 것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 뒤로로 백제의 통수는 이루말할 수 없이 굉장함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정말 배신과 뒤통수의 심볼이 바로 "백제"임
      2탄
      왜놈을 끌여들여 신라의 뒤통수를 쳤던 백제는(비유왕) 고구려에 밀려 수세에 몰리자 염치없이 신라에 화친을 요청함 ㅋㅋㅋㅋ
      그것도 비굴하게 3번이나 조공 갖다바치며 요청함 433년 7월, 434년 2,9월
      그 후 신라는 군사를 보내 백제를 여러번 도와줬지만 백제는 또 신라의 뒤통수를 침 (관산성전투 후술하겠음)
      백제 개로왕은 중국에 비참하게 구걸하면서 고구려 좀 쳐달라고 애걸복걸 함 472년
      ("마땅히 저의 딸을 보내어 후궁에서 청소를 하게 하고, 아울러 자제들을 보내어 마구간에서 말을 먹이게 하겠으며 한 치의 땅이나 한 사람의 필부(匹夫)라도 감히 저의 것이라 생각하지 않겠습니다." )
      위 사실을 알게된 고구려 장수왕은 백제 정벌에 나섬 475년
      성이 함락당하자 개로왕은 뒷구멍으로 도망쳤는데 백제인 배신자 재증걸루, 고이만년의 뒤통수에 참수당함 475년
      이때 먼저 도망간 백제 개로왕 동생 문주는 신라에 구원 요청을 하고 신라는 구원군 1만명을 보냄
      이때 백제 귀족 군사는 신라 지원군 보다 더 늦게 도착하는 뒤통수를 때림 ㅋㅋ
      백제 문주는 수도를 웅진으로 옮기고 비참하게 살아남음
      한국사 역사상 강제로 쫒겨서 수도를 옮긴건 백제가 유일함 ㅋㅋㅋ
      이때 또 골때리는건 한성 함락 이후 백제가 위기 상황을 겪을 때 일부 지방 세력은 사실상 독립하여 자체 국호로 외국에 사신을 보내는 통수까지 침
      한성이 무너진 이후로 백제 왕권은 그야말로 좁밥이 되어 대성팔족의 뒤통수가 시작 됨
      결국 백제 문주왕도 백제 배신자의(좌평 해씨가문) 뒤통수로 죽임당함 477년
      문주왕이 죽자 아들인 심근왕이 왕위에 올랐으나
      심근왕 세력인 진씨 가문과 해씨 가문이 서로 배신하며 뒤통수 쳐서 수천명의 군사가 죽음 ㅋㅋㅋ
      결국 심근왕도 3년만에 의문사로 죽음 (진씨 가문의 뒤통수로 추정함) 479년
      진씨 세력은 다음으로 동성왕을 지들 손으로 뽑음 479년
      왜를 끌여들여 계속 신라의 뒤통수를 쳤던 백제는 염치없이 동성왕때에 또 비굴하게 신라에 사신을 보내 청혼을 요청함 493년
      신라왕은 자신의 여식을 보내지 않고 신하인 이벌찬 비지의 딸을 보냄 ㅋㅋㅋ 493년
      동성왕은 신라 이벌찬 비지의 딸과 결혼 함
      동성왕 또한 어김없이 백제 배신자 백가의 뒤통수에 의해 죽임당함 501년
      백제왕은 대부분이 배신자의 통수 통수 통수에 의해 죽었음 ㅋㅋㅋ
      15대 침류왕, 16대 진사왕, 17대 아신왕, 폐왕 설례, 19대 구이신왕, 20대 비유왕, 22대 문주왕, 23대 삼근왕, 24대 동성왕이 모두 뒤통수로 죽임을 당함
      21대 개로왕은 고구려 뒤통수 치다 백제인 배신자 고이만년에게 참수당하고
      26대 성왕은 신라 뒤통수 치다 참수당함
      이후 27대 위덕왕, 태자 아좌, 28대 혜왕, 29대 법왕도 뒤통수로 추정되는 의문사를 당함
      백제는 정권 교체 자체가 곧 왕의 시해 즉, 뒤통수를 뜻하는거였음
      3탄도 기대하세요^^
      아 참고로 전라도는 백제가 아니예요
      백제 말기까지 백제와 군사충돌이 있었던 변두리 마한입니다
      벡제는 서울,경기,충청권이예요

    • @user-hd5vq5me9z
      @user-hd5vq5me9z 3 года назад +2

      김춘추는 백제에게 오히려 감사해야 할듯.. 놈팽이 사위를 조졌으니

  • @user-kl7vx7xv4r
    @user-kl7vx7xv4r 3 года назад +1

    아 빠진분 박철호 김병국 박존위 김훈 무왕
    황범식 이내관 이광정 김은부 대꿈 무출연 연로 하셔서
    김하균 김광립 진평왕 최항 사이온지 긴모치
    임병기 김병시 전존걸 한언공 흥수 또 아시는분 알려 주세요?

  • @user-hz8bj9yu6j
    @user-hz8bj9yu6j 3 года назад +20

    신라인들의 타고난 지혜와 용기로 이룩한통일이지 백제가 수없이 신라를 공격하엿음은 결국 멸망ㅇ길로 가는 초석이되엇지

    • @user-tb4rd2eo2v
      @user-tb4rd2eo2v 2 года назад +1

      신라는 절대로 단한번도 통일한적 없음. 식민사학자들에 의해 청천강 이남으로 통일 이루었다고 하는데 절대로 이건 통일이 아님. 당나라에 의해 지배당한 역사적 치욕일 뿐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님.
      엄연히 고조선의 준왕이 익산에 자리잡았고. 부여민족 고구려 백제를 건국하였고, 삼한이 이 적통을 이어 마한 진한 변한이 자리잡았으며, 신라만 북방 경쟁에서 밀린 패잔병 김일제 흉노족들에 의해 도륙된 경상도 지역이 바로 흉노들의 거점이었지만, 부여 고구려 백제 마한 세력은 엄연히 한뿌리에서 나왔으며, 당나라에 의해 고구려 백제가 멸망했지만, 그 뿌리는 아직도 고려 조선을 거쳐 그대로 이어져 왔고. 단지 경상도만 타민족으로 절대 같은 한민족이 아님이 이미 역사적 사실로 드러난 마당에 무슨 한민족 직계조상이 신라라니.
      미친거 아닌가 싶네요.
      강원도 경기도 서울 전라 충청 제주까지 모두 부여 예맥계열의 한민족이지만 경상도지역만 흉노 김일제에 장악당한 타 민족국가이고 절대 한민족이 아니다. 라는 것은 이미 학계 정설이고. 신라의 뿌리가 흉노라는 것은 KBS 역사스페셜에서 이미 방송한 사료가 있습니다. 절대 신라는 한민족이 아닌, 오랑케 북방경쟁에서 밀린 흉노들에 의해 도륙당한 지역이고. 절대 한민족이 아닙니다. 사실은 정확히 해주세요. 신라는 절대 한민족이 아님. 신라만.

    • @user-tb4rd2eo2v
      @user-tb4rd2eo2v 2 года назад +1

      신라는 항상 열등했고 약했음. 고려시대 조선시대에도 경상도는 항상 열등했음. 독재시대에나 쿠테타가 성공해 자신들의 신분세탁하기 바빴지. 경상도는 항상 열등했음.

    • @user-xg8wb5wb7j
      @user-xg8wb5wb7j Год назад

      신라인들이라고 무작정 동일시해서 보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문무대왕과 유신공이라면 모를까 김춘추가 잘한 것은 엄밀히 말해 아들과 처남 잘 만난 것 뿐인데요? 비슷한 유형의 인물로 비교되지만 자기 증조부인 진흥왕에 비해서도 태부족한 인물이 바로 김춘추입니다. 진흥왕의 외교는 김춘추의 얼치기 외교와는 차원을 달리하는 매끄러운 외교였습니다. 백제가 수없이 신라를 공격한 것 그 자체가 멸망으로 가는 초석이 되었다? 이것도 선뜻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애초에 백제 성명왕의 목숨을 빼앗은 쪽은 신라 정확하게는 고간인 도도입니다. 이것은 진흥왕의 보기 드문 실책이지요. 진흥왕과 무관하게 도도의 월권일 수도 있습니다만. 국왕을 잃은 백제 측이 앞으로 어떻게 나올 지는 불을 보듯 뻔한 상황인데요? 더구나 백제의 공세 자체가 백제의 멸망으로 가는 초석이라는 근거가 어디에 있는지? 워낙 유신공이 선방했기 때문에 착각하기 쉽습니다만 백제 왕실 입장에서는 신라가 적당한 힘을 가지고 버텨주는 것이 유리했습니다. 유신공도 사람인데 그 넓은 백제-신라 양국의 국경선을 일일이 다 막는 것도 쉽지 않았고요. 상황 변화는 당나라가 정면공격으로는 고구려를 극복할 수 없었던 전황에서 일어났습니다. 그제서야 당 고종이 노선 전환을 하면서 변화가 일어났던 것이지요.

  • @rawonkay3539
    @rawonkay3539 4 года назад +8

    19:00 3천명을 어떻게 10명으로 떼우냐 ㅋㅋㅋ

  • @pollyxander5213
    @pollyxander5213 2 года назад +2

    Sorry, you don't have this subtitled to English. IMO that is very short-sighted of the Koreans

  • @user-wg2oc8mn3o
    @user-wg2oc8mn3o Год назад +2

    소정방은 김유신 계략으로 살해당했고 당나라는 물러갔으며 당시 꽤 장수로서 유명했던 소정방이 중국역사서에서 사라진다

  • @user-ho7ur2bv5c
    @user-ho7ur2bv5c 4 года назад +9

    반쪽짜리 통일이라는거도 영토상 반쪽짜리지..
    막연하게만 있던 한민족이라는 일체감과 문화적 통일이 이때 이루어짐.
    그전에는 그냥 다른 민족 다른 나라임.(한민족이라는 하나의 단일민족 개념도 신채호 선생 때나 되서 나온 말...그이전에는 그냥 삼한이라는 개념만 있었음.)
    그리고 이러한 영토상의 문제가 고려->조선으로 가면서 한반도 내 한민족이라는 현재의 영토가 완성됨.

  • @user-kl7vx7xv4r
    @user-kl7vx7xv4r 3 года назад +1

    태종 무열왕 기력 쇠하지 않았 다면 과연 나ㆍ당전쟁 참전 해서 당나라 전쟁 직접 선포 했을 까요?

    • @mcjg5363
      @mcjg5363 3 года назад

      역시 신라는 배신의 아이콘 광개토 대왕때 신라 땅에 왜구가 쳐들어 왔는데 그걸 못 막아서 위대한 광개토 대왕이 직접 문어 대가리를 물리쳐 주는 은혜를 베풀었는데 그걸 망각 하고 은혜에 오랑캐들 데리고와 원수로 갚음 나당 전쟁도 지들이 백제 고구려 칠려고 데려와서 도움받곤 물론 당나라가 개 염병 지랄 육갑을 떨었지만 당나라 하고도 싸우고 이용해 먹고 등뒤에서 칼 꼿기 신라에 특기 후세에 유명한 인물이 있지 바로 다까키 마사오 만주 괴뢰국 장교

    • @user-kl7vx7xv4r
      @user-kl7vx7xv4r 3 года назад

      @@mcjg5363 진짜요?

    • @user-xg8wb5wb7j
      @user-xg8wb5wb7j Год назад

      그랬을 가능성은 매우 낮습니다. 김춘추는 당나라에 대해 저자세로 일관했지요. 물러설 때와 나아갈 때를 잘 조절한 인물은 어디까지나 문무대왕이고 신라의 기백을 보여준 인물은 김춘추보다도 나이가 많았던 유신공이었습니다.

    • @user-kl7vx7xv4r
      @user-kl7vx7xv4r Год назад +1

      @@user-xg8wb5wb7j 아 맞오요 끝까지 첨부터 중국에 대해 친근감을 드러냈지요

  • @gyu7250
    @gyu7250 5 месяцев назад

    신라가 먼저 백제왕 죽이고 시신머리을 신라궁예 묻고 신하들이 밟고 지나다녀지..

  • @user-oi7cz7fl2u
    @user-oi7cz7fl2u 3 месяца назад

    신라가 먼저 망했어야 했다. 형제간의 싸움 에 건너 동네 폭력배를 불렀다. 이게 통일이냐. 있는 땅과 자원 인력을 넘겨줘 민족사 회복불능을 만들었다. 후손이 1명이라도 남아있는 한 기억해야 한다.

  • @user-pb7qu9uh8k
    @user-pb7qu9uh8k 3 года назад +8

    신라는 흉노족이다

    • @user-tb4rd2eo2v
      @user-tb4rd2eo2v 2 года назад +1

      ㅇㅇ 맞아요
      강원도 경기도 서울 전라 충청 제주까지 모두 부여 예맥계열의 한민족이지만 경상도지역만 흉노 김일제에 장악당한 타 민족국가이고 절대 한민족이 아니다. 라는 것은 이미 학계 정설이고. 신라의 뿌리가 흉노라는 것은 KBS 역사스페셜에서 이미 방송한 사료가 있습니다. 절대 신라는 한민족이 아닌, 오랑케 북방경쟁에서 밀린 흉노들에 의해 도륙당한 지역이고. 절대 한민족이 아닙니다. 사실은 정확히 해주세요. 신라는 절대 한민족이 아님. 신라만.

  • @user-sz4ed9eo8p
    @user-sz4ed9eo8p Год назад +1

    (김경희)김종경과김종국 의 (원수 임광식임광훈)

  • @byungsin-a-haha
    @byungsin-a-haha 2 года назад +13

    외세를 끌어들였다고 하지만 고구려, 백제와 신라는 근본이 다른 민족이다. 근본이 다른 백제를 멸하는데 타국과 연맹하는것이 무슨 문제인지...

    • @user-tb4rd2eo2v
      @user-tb4rd2eo2v 2 года назад

      ㅇ 신라는 절대로 단한번도 통일한적 없음. 식민사학자들에 의해 청천강 이남으로 통일 이루었다고 하는데 절대로 이건 통일이 아님. 당나라에 의해 지배당한 역사적 치욕일 뿐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님.
      엄연히 고조선의 준왕이 익산에 자리잡았고. 부여민족 고구려 백제를 건국하였고, 삼한이 이 적통을 이어 마한 진한 변한이 자리잡았으며, 신라만 북방 경쟁에서 밀린 패잔병 김일제 흉노족들에 의해 도륙된 경상도 지역이 바로 흉노들의 거점이었지만, 부여 고구려 백제 마한 세력은 엄연히 한뿌리에서 나왔으며, 당나라에 의해 고구려 백제가 멸망했지만, 그 뿌리는 아직도 고려 조선을 거쳐 그대로 이어져 왔고. 단지 경상도만 타민족으로 절대 같은 한민족이 아님이 이미 역사적 사실로 드러난 마당에 무슨 한민족 직계조상이 신라라니.
      미친거 아닌가 싶네요.
      강원도 경기도 서울 전라 충청 제주까지 모두 부여 예맥계열의 한민족이지만 경상도지역만 흉노 김일제에 장악당한 타 민족국가이고 절대 한민족이 아니다. 라는 것은 이미 학계 정설이고. 신라의 뿌리가 흉노라는 것은 KBS 역사스페셜에서 이미 방송한 사료가 있습니다. 절대 신라는 한민족이 아닌, 오랑케 북방경쟁에서 밀린 흉노들에 의해 도륙당한 지역이고. 절대 한민족이 아닙니다. 사실은 정확히 해주세요. 신라는 절대 한민족이 아님. 신라만.

    • @byungsin-a-haha
      @byungsin-a-haha 2 года назад

      @@user-tb4rd2eo2v 1. 예맥에 대해 전혀 모르시네요. 예는 지명이고 맥이 종족이름입니다. '예맥고'라는 책 읽어보시길.
      2. 학계에서 누가 경상도를 제외한 타지역만이
      맥족의 후예라고 하나요? ㅎㅎ 대학원 근처에 한번도 안가보셨나봐요. 혹여 그러한 논문이 있다면 소개부탁 드립니다. ㅋ
      3. 당나라가 고구려를 멸했나요? 당나라 자력으로 고구려를 멸했다는 소설은 본인이 쓰신건가요? ㅎㅎ
      4. 근대에 와서 민족개념이라는게 생긴것이지 고대에는 민족개념이란게 존재하지 않았구요, 민족개념을 차용한다고 해도 서로 다른 민족과 전쟁을 통해 신라가 그들 왕조를 붕괴시킨 것이고 학계 일부에서도 동아시아
      전쟁이라고 명명하는 학자가 있습니다. 즉, 한반도에 존립했던 3개국은 서로 다른 민족이라는 전제를 하고 있죠.

    • @user-gb5jd3us1p
      @user-gb5jd3us1p Год назад

      신라의 야만적인 문화가 백제의 고귀한 문화를 일본으로 내몰았다
      백제인들이 집권했다면 일본과 관계도 좋았고 민도도 지금보단 높았을것이다
      김춘추는 매국노다

  • @user-dq6ui9rq7e
    @user-dq6ui9rq7e 4 года назад +11

    내가 보기엔 이세민이 김춘추 머리 꼭대기에 있었네

    • @user-xg8wb5wb7j
      @user-xg8wb5wb7j Год назад +1

      지극히 당연합니다. 얼치기 외교관 김춘추가 뭘 알고 이세민을 이용했을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춘추는 아들(문무대왕)과 처남(유신공) 잘 둬서 미화된 사례입니다.

  • @drunkenlhs
    @drunkenlhs 4 года назад +11

    마지막엔 당도 전쟁으로 쫓아냈으니 결국엔 승리자지 뭐

  • @ack3145
    @ack3145 4 года назад +20

    아마 여기 댓글 폭발할듯. 전장의 기운이 느껴진다. ㅋㅋㅋ

  • @user-zd5pl3zc7t
    @user-zd5pl3zc7t 4 года назад +7

    신라의 외교술

    • @user-tb4rd2eo2v
      @user-tb4rd2eo2v 2 года назад

      저게 외교술이냐? 그냥 개인적인 사사로운 감정으로 나라를 개작살냈는데 신라의 외교술이래 ㅋㅋㅋㅋ 웃고간다. 멍청한 신라 비주류것들.

  • @user-je1hh8ul7q
    @user-je1hh8ul7q 8 месяцев назад

    대야성은 합천이 아니라, 중국대륙 대하택 좌측 허쩌시 칠중성이다😊

  • @user-wx4yu5dx2n
    @user-wx4yu5dx2n 4 года назад +3

    김춘추연기하신 배우님 이용진 닮은듯

  • @PELLACO1
    @PELLACO1 4 года назад +1

    12:29 마이콜 닮으셨당
    죄송합니다.

  • @fossilfresh8995
    @fossilfresh8995 4 года назад +3

    하긴 '왕좌의 게임'을 보아도 알 수 있지만, 왕족 귀족들 치고 30살 넘게 살려면 뻔뻔스럽고 거짓말 잘 하지 않고는 불가능할듯.

  • @user-lq4rr9ur9p
    @user-lq4rr9ur9p 4 года назад +5

    왜 김춘추의 딸과 사위를 죽게 했을까...?그에 대한 결과는 백제와 고구려의 멸망...당시 신라의 대장군은 누구인가................왜 백제와 고구려가 멸망을 했을 이유는 무엇일까.....가야를 멸했기 때문이다...가야를 멸하지 않았다면, 백제도 고구려도 멸망하지 않았다..

    • @user-kt8yp5ho2y
      @user-kt8yp5ho2y 4 года назад +4

      푸른늑대 가야는 이미 여러 연방제 국가들이 분열을 일으키며 싸우고 백제의 샌드백 으로 국력이 쇠퇴해지자 결국 평화적으로 신라에게 투항함. 만약 가야가 연방국가 가 아닌 통일된 국가 였다면 상황이 달라짐.

    • @hyeonjunkaya4354
      @hyeonjunkaya4354 3 года назад

      @@user-kt8yp5ho2y 연방국가 같은소리하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리구 먼 샌드백 백제지 그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십제에서 백제로 승격된것도 가야덕인데

    • @hyeonjunkaya4354
      @hyeonjunkaya4354 3 года назад

      정획히는 배반같은거져 신라는 가야를 큰어르신으로 모셨는데 구려 십제는 고구려 백제 승격하구 사리분별못해서 박살난거져

  • @seonbi6353
    @seonbi6353 4 года назад +7

    여기에도 위대한 정신승리 위대한 신라! 그런데 신라 경순왕은 고려에 항복한 이유는?

    • @user-kt8yp5ho2y
      @user-kt8yp5ho2y 4 года назад +1

      Seon bi 평화적으로 흡수한거지. ㅉㅉㅉ

  • @user-oi4pb1nw6x
    @user-oi4pb1nw6x 10 месяцев назад

    백제가 통일했다면.. 유적지... 문화재가 익산에..경주처럼 많이 남았으려나....
    익산은 요즘 망해가는 도시...😂

  • @차에코푼스키0099
    @차에코푼스키0099 4 года назад +12

    복수는 성왕을 죽인 신라가 받아야 하지않나 이런생각을 해봅니다

    • @user-hn2ke3cx9z
      @user-hn2ke3cx9z 3 года назад +6

      백제성왕은 신라의 관산성을 치고 신하의 만류에도 아들을 위로차 가다가 신라 노비출신 도도에게 자신의 목을 내어 줍니다. 옥채도 보존 못하는데 여기서 부터 백제는 끝났다고 봅니다.

    • @user-xg8wb5wb7j
      @user-xg8wb5wb7j Год назад

      @@user-hn2ke3cx9z / 일단 도도가 '노비 출신'인지는 지극히 의문입니다. 이 문제와 관련해서, 주보돈 경북대 사학과 명예교수는 『일본서기』에서 고간 도도에 대하여 "좌지촌의 사마노" 운운한 것에 대하여 흥미로운 해석을 내놓은 바 있습니다. 그에 따르면 고간 도도는 비교적 최근에 신라의 영역으로 편입된 변방 지역인 좌지촌에 속하는 지방 유력자이며, 그를 "사마노"라 일컬은 것은 좌지촌의 주민들이 국가에서 사용할 말을 양육하는 국역(國役)을 부담했던 이른바 집단적 예속민에 속하는 계층이기 때문이라는 것이지요. 백제가 여기서부터 끝났는데 백제가 망하기 1년 전까지 신라에 공세를 취하는 것을 어찌 설명해야 하는지? 그것도 유능한 유신공을 상대로요. 백제와 신라의 기초 국력은 진흥왕 때 일시 역전된 적은 있어도 기본적으로 백제 측이 우세했습니다. 신라가 유신공이 있음에도 판세 자체를 뒤집지 못한 근본적인 이유입니다. 이것은 유신공을 제대로 백업해줘야 하는 김춘추 정권에게 책임을 물을 수밖에 없는 일입니다.

    • @baek6468
      @baek6468 5 месяцев назад

      신라가 고구려한테
      멸망당했어야 지금의
      우리나라 땅이 훨씬
      커졌거나 중국으로
      합류당해 하나의 중국이 되었을겁니다

  • @mahanmojarradi7917
    @mahanmojarradi7917 2 года назад +1

    من یک ایرانی ام و عاشق امپراطوری شیلا هستم کاش یه روزی بتونم به کره بیام و آثارات تاریخی شیلا رو ببینم

  • @user-cw5dv6xz4u
    @user-cw5dv6xz4u 4 года назад +7

    또 여기서 유사역사학 나옴

    • @user-cd5vf7fy8d
      @user-cd5vf7fy8d 4 года назад +1

      역시게 더러운 친일베상도 놈이 설치고 있네 ㅋㅋㅋㅋㅋㅋ

  • @user-rw7zf5jr7f
    @user-rw7zf5jr7f 2 года назад +1

    미친 , 고구려가 통일을 해? 중국이 가만 놔두나? 백제 내부가 분열되어 있었다는데 ( 귀족불교 ) 신라는 원효대사가
    민중들 옆에 살면서
    불교를 전파했고
    물론 원효대사는 승복을 벗어던졌지

  • @user-yq8nt5mk7m
    @user-yq8nt5mk7m 4 года назад +2

    아나운서분들 파릇파릇하시네 ㅋㅋ

  • @user-bf6sk9li4t
    @user-bf6sk9li4t 4 года назад +12

    신라의~~삼국통일은 시대의흐름이다
    백제가 얼마나 많은 악행을 저질렸으면
    신라에서 당까지 끌어들어 멸망케했을까

    • @user-xf3ji5ul8d
      @user-xf3ji5ul8d 3 года назад +6

      6세기 신라 진흥왕이 백제 성왕 배신해서 120년 나제동맹 깨진것부터 봐야죠 .
      또 성왕을 죽이기까지 했으니 말 다했죠
      의자왕이 왜 그토록 신라에 이를 갈았겠습니까

    • @user-hn2ke3cx9z
      @user-hn2ke3cx9z 3 года назад +3

      @@user-xf3ji5ul8d 성왕이 자신의 딸을 신라왕에 시집보내고 화회 하자고 해놓고 신라 관산성을 쳤죠 그리고 자신은 신하의 말을 듣지 않고 아들을 위로차 가다가 신라의 노비출신 도도에 자신의 목을 내어주게 됩니다.

    • @user-tb4rd2eo2v
      @user-tb4rd2eo2v 2 года назад +1

      신라는 절대로 단한번도 통일한적 없음. 식민사학자들에 의해 청천강 이남으로 통일 이루었다고 하는데 절대로 이건 통일이 아님. 당나라에 의해 지배당한 역사적 치욕일 뿐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님.
      엄연히 고조선의 준왕이 익산에 자리잡았고. 부여민족 고구려 백제를 건국하였고, 삼한이 이 적통을 이어 마한 진한 변한이 자리잡았으며, 신라만 북방 경쟁에서 밀린 패잔병 김일제 흉노족들에 의해 도륙된 경상도 지역이 바로 흉노들의 거점이었지만, 부여 고구려 백제 마한 세력은 엄연히 한뿌리에서 나왔으며, 당나라에 의해 고구려 백제가 멸망했지만, 그 뿌리는 아직도 고려 조선을 거쳐 그대로 이어져 왔고. 단지 경상도만 타민족으로 절대 같은 한민족이 아님이 이미 역사적 사실로 드러난 마당에 무슨 한민족 직계조상이 신라라니.
      미친거 아닌가 싶네요.
      강원도 경기도 서울 전라 충청 제주까지 모두 부여 예맥계열의 한민족이지만 경상도지역만 흉노 김일제에 장악당한 타 민족국가이고 절대 한민족이 아니다. 라는 것은 이미 학계 정설이고. 신라의 뿌리가 흉노라는 것은 KBS 역사스페셜에서 이미 방송한 사료가 있습니다. 절대 신라는 한민족이 아닌, 오랑케 북방경쟁에서 밀린 흉노들에 의해 도륙당한 지역이고. 절대 한민족이 아닙니다. 사실은 정확히 해주세요. 신라는 절대 한민족이 아님. 신라만.

    • @user-tb4rd2eo2v
      @user-tb4rd2eo2v 2 года назад +4

      익산 출신 무왕 재위기간 40년간 신라 개작살 났었음 이게 팩트 ㅋㅋ

  • @user-kl7vx7xv4r
    @user-kl7vx7xv4r 3 года назад +3

    의자왕 무열왕 못된 예 권력욕으로 적국 태왕 딸 시체 묻고 무열왕 딸의 복수 위해 당나라 손잡고 고구려 백제 차례로 멸망 안그런 가요 역사 덕후 여러분?

  • @user-to7gh2qi3x
    @user-to7gh2qi3x Год назад +2

    외존이든 뭐든 통일을 이루지못했다면
    피터지게 싸우다가
    지리멸렬 했겠지.

    • @user-hq9cq1cq4e
      @user-hq9cq1cq4e Год назад

      맞습니다. 김춘추는 수백년을 이어온 전쟁을 끝낸 영웅인데, 사람들이 그점을 몰라주네요..

    • @user-xg8wb5wb7j
      @user-xg8wb5wb7j Год назад

      @@user-hq9cq1cq4e / 김춘추가 영웅? 소가 웃을 일입니다. 엄밀히 말해 대업을 이룬 인물들은 문무대왕과 유신공인데 그나마 유신공은 인지도가 있지만 문무대왕은 한 일에 비해 너무나도 평가절하된 인물입니다. 엄밀히 말해 김춘추가 대책 없이 싸지른 X 뒷처리 다하고 화합정치를 도모해 신라를 대국체제로 전환시킨 인물이 문무대왕입니다. 사람들이 몰라주는 것은 김춘추의 '얼치기 외교'가 아니라 문무대왕의 화합정치이고 더 나아가 문무대왕이라는 인물 그 자체겠지요. 그저 김춘추에 부속된 인물 정도로 알고 있으니 말입니다.

    • @user-uw8xf1xz2v
      @user-uw8xf1xz2v Год назад

      @@user-hq9cq1cq4e
      픕 전쟁을 끝냈단다...전쟁 끝낸게 아니고
      나라 통째로 먹힐뻔하자 자기가 전쟁일으킬 베짱도 힘도 없으니 수수방관하자 그의 아들인 문무왕이 7년동안 준비하고 군사력 재정비해놓고 기달리던중 아버지가 죽자 바로
      나.당 전쟁일으켜서 친 사건임 ㅡㅡ

  • @youngkim7010
    @youngkim7010 9 месяцев назад

    경상도 와 일본은 같은 민족

  • @user-kf6vu3xl2c
    @user-kf6vu3xl2c 14 дней назад

    김춘추와 김유신.역사의 죄인들.단죄하라

  • @user-uw8xf1xz2v
    @user-uw8xf1xz2v Год назад

    요즘시대적으로 찰떡 표현해 볼께요 ...
    내가 은행에100 만원 빌려서 돈을 갚아야하는데 친구들한테 빌리다가 안빌려주니까 사채업자한테 가서 가족신체장기 담보로300만원 빌린격임!ㅇㅋ?

  • @user-ie9ph3ym6z
    @user-ie9ph3ym6z 4 года назад +19

    지금의 한민족 직계조상은 신라사람임
    백제랑 고구려는 지금의 우리와는 다른 민족이었다는게 정설

    • @user-zk9ob1xp8p
      @user-zk9ob1xp8p 3 года назад +10

      고백이 한민족과 다른 민족이였다는건 어디 학계의 정설임??
      형질인류학으로 보나 문헌으로 보나 유물들로 보나 예맥은 한과 더불어 현대 한민족의 조상이 맞는데요?
      광개토왕 남진 이후 삼국시대 후기로 오면 고백인들이 예맥의 정체성을 잃고 스스로 삼한인이라고 지칭할정도로 예맥한의 동질성이 강화되는데..
      신라의 삼한일통 운운은 이런 인식에서 나온거예요.
      당시 근대민족개념이 없었다고 삼국을 무슨 언어문화풍습도 달랐던 중국왜말갈거란처럼 보는 시각도 잘못된거임

    • @user-tb4rd2eo2v
      @user-tb4rd2eo2v 2 года назад +1

      이사람 미친거 아닌가. 엄연히 고조선의 준왕이 익산에 자리잡았고. 부여민족 고구려 백제를 건국하였고, 삼한이 이 적통을 이어 마한 진한 변한이 자리잡았으며, 신라만 북방 경쟁에서 밀린 패잔병 김일제 흉노족들에 의해 도륙된 경상도 지역이 바로 흉노들의 거점이었지만, 부여 고구려 백제 마한 세력은 엄연히 한뿌리에서 나왔으며, 당나라에 의해 고구려 백제가 멸망했지만, 그 뿌리는 아직도 고려 조선을 거쳐 그대로 이어져 왔고. 단지 경상도만 타민족으로 절대 같은 한민족이 아님이 이미 역사적 사실로 드러난 마당에 무슨 한민족 직계조상이 신라라니.
      미친거 아닌가 싶네요.
      강원도 경기도 서울 전라 충청 제주까지 모두 부여 예맥계열의 한민족이지만 경상도지역만 흉노 김일제에 장악당한 타 민족국가이고 절대 한민족이 아니다. 라는 것은 이미 학계 정설이고. 신라의 뿌리가 흉노라는 것은 KBS 역사스페셜에서 이미 방송한 사료가 있습니다. 절대 신라는 한민족이 아닌, 오랑케 북방경쟁에서 밀린 흉노들에 의해 도륙당한 지역이고. 절대 한민족이 아닙니다. 사실은 정확히 해주세요. 신라는 절대 한민족이 아님. 신라만.

    • @user-uw8xf1xz2v
      @user-uw8xf1xz2v Год назад

      혈통으로 치면은 박씨가 가장 가깝다는건 사실이나 다른 민족이란건 어디서 나온거임?
      같은 언어를 쓰고 방언를 쓰더라도 말을 알아듣고 의사소통을 하고.같은 문화.같은 풍습.같은 반도안에서 함께있는 사람이 한민족 아니면은 옆 섬나라에 살고 말도 안통하는 일본이 한민족임?님 그리고 우리나라가 한민족.한반도 로 칭하는 이유는 알고있음?맨 앞에 한자가...중국에서 말하는 한족이기때문임...자고로 님 말은 그냥 남쪽나라 순수혈통을 지키던건 신라시대뿐이였고 옛날에 성골들과 시조 박씨가문 뿐이라고 이야길 해야지.....님 말을 다르게 인용해보면은 그시절 성골들 빼고 다 중국한족과 혼합혈통이란 소리임?그럼 어떻게
      돼냐?진골 출신으로 가야족과 붙은 무열왕 뒤부터는 일본피가 썪여있다는 소리임?
      본인이 무슨말을 하고 있는지 정신차리고 합시다

    • @user-pk9dx9vs6r
      @user-pk9dx9vs6r Год назад

      개강아지풀 뜯어소리하고 자빠졌네 ㆍ

    • @user-wl6do8ch7j
      @user-wl6do8ch7j Год назад

      개소리.

  • @moyabest3965
    @moyabest3965 4 года назад +2

    나같으면 사신이고 뭐고 썰었다 ㅋㅋ

  • @리버티
    @리버티 4 года назад +24

    김춘추는 현대에 더욱 높게 평가받아야할 인물임. 위정자는 자고로 이렇게 정치를 해야지.. 괜히 대업을 완수한게 아님.. 태종 무열왕 김춘추..

    • @heeheek196
      @heeheek196 4 года назад +7

      동의합니다 보통 김춘추하면 외교, 그것도 외세를 끌어들인 사대주의자라고 부정적인 이미지만 생각하는데 목숨 걸고 적국을 오가는건 아무나 하는게 아니죠 게다가 자기 아들들도 당나라에 보내서 동맹 유지하려고 노력했구요 당시 항해 기술로 바다를 건넌다는 건 엄청 위험한 일인데도(실제로 김춘추는 고구려 수군에 잡혀서 죽을뻔한 적도 있음) 김춘추와 아들들은 마다하지 않았죠 노블레스 오블리주 측면에서 무열왕가는 칭송받아 마땅합니다 결국 당나라에 항복해서 벼슬받고 잘먹고 잘산 연개소문 아들이나 의자왕 자손들하고 비교하면 누가 더 나라를 위해 애썼나 알 수 있어요

    • @PELLACO1
      @PELLACO1 4 года назад +1

      올바른 두 댓글 처음으로 보았다.
      감탄했습니다.

    • @user-hn2ke3cx9z
      @user-hn2ke3cx9z 3 года назад +1

      옳습니다 우리조상들의 장점만 배우면 됩니다 많은 분들이 고구려가 통일 했으면 만주벌판이 우리땅이 됬을 거라는데 북쪽에 발해도 있었지만 망했습니다. 신라가 통일 하지 않았으면 우리는 아마 중국인이 됬을 겁니다.

    • @beumkeechoi7585
      @beumkeechoi7585 2 года назад +3

      통일신라 망해 먹었어요

    • @user-xg8wb5wb7j
      @user-xg8wb5wb7j Год назад

      @@user-hn2ke3cx9z / 신라의 통일이 없었다면 우리가 중국인이 되었을 것이라 단정적으로 말씀하시는 근거가 어디에 있는지? 이는 고구려가 삼국 통일했다면 중국 대륙을 석권했을 것이라 단정하는 것만큼이나 허황된 논지일 것입니다. 조상들의 장점만 배우면 된다는 데는 전적으로 공감합니다만 여기에서의 논의를 보니 배울 대상이 다소 잘못 정해진 듯합니다. 문무대왕이나 유신공이라면 모를까 김춘추가요? 전혀 공감할 수 없습니다. 당장 『삼국유사』 찾아보아도 당시 신라인들이 실질적으로 어느 인물들을 위인으로 생각했는 지가 명확합니다. 원전을 살펴보지요.
      그(신라 일관 김춘질)가 (문무대왕의 맏아들 신문왕에게) 아뢰었다.
      “돌아가신 부왕(문무대왕)께서 지금 바다의 용이 되어 삼한(三韓)을 수호하고 있습니다. 또 김공유신(金公庾信)도 33천의 한 아들로서 지금 인간 세상에 내려와 대신이 되었습니다. 두 성인이 덕을 같이 하여 나라를 지킬 보배를 내어주려 하시니, 만약 폐하께서 해변으로 나가시면 값으로 계산할 수 없는 큰 보배를 반드시 얻게 될 것입니다.”
      『삼국유사(三國遺事)』 권 제2 「제2 기이(紀異第二) 만파식적(万波息笛)」
      만약 신라인들이 김춘추를 정말로 위인으로 생각했다면 왜 3성(세 성인)이 아니라 2성(두 성인)이라 했을까요? 김춘추의 그 잘난 외교라는 것도 지 증조부인 진흥왕이나 아들 문무대왕에 비한다면 지극히 '얼치기 외교'임을 어렵지 않게 파악할 수 있습니다. 아울러 문무대왕 본인이 의도했을 가능성은 적지만 그의 진골 억압 정책 및 화합 정치는 간접적으로 광개토태왕의 '관념적인 삼국 통일'과 매우 맞닿아 있지요. 모름지기 이러한 것이야말로 본받을만한 정치 아닐지요? 김춘추의 허탄한 짓거리가 아니라.

  • @user-po8br9ib4f
    @user-po8br9ib4f 2 года назад +2

    김춘추는 사감을 가지고 정치를한 한반도 1호 인물이다

    • @user-kt8yp5ho2y
      @user-kt8yp5ho2y 2 года назад +2

      이성 보단 감성이 앞선 저능학적 인물이죠

  • @bokhanlee4049
    @bokhanlee4049 4 года назад +5

    개인의 사사로운 욕정 복수심에
    ~ 고조선 부여족 한겨레 쥬신에 역사를 ~ 당나라에 바치고 당나라 식민지 개가 된 김춘추 김유신 ~ 그후 우리의 국운이 쪼그라들어 수천년을 식민 준식민 살고 있다 ~

  • @user-jo6jk8qs5t
    @user-jo6jk8qs5t Год назад +2

    원수를 갚고 나라를 팔아먹다 ㅋ ㅋ ㅋ

  • @Hell_Josenjin
    @Hell_Josenjin 4 года назад +8

    중앙 사이버대학교 과제물 하러 왔습니다

    • @user-hm8op8bv1h
      @user-hm8op8bv1h 3 года назад +1

      북한에 정통성을 둔 전교조 교육과 지역주의 열등감이 뒤섞여 신라 통수 거리는 사람들을 위해 준비했습니다
      이름 하여 "백제의 뒷통수 열전"
      -------------------------------------------------------------------------------------------------------------------------------------
      백제는 항상 왜의 군사지원을 받음
      광개토대왕비에는 유독 백제를 “ 백잔”이라 비하함
      고구려가 거란의 공격을 받을때 백제는 고구려의 뒷통수를 쳐서 공격함 393, 4, 5년
      백제 아신왕은 왜의 도움을 받아 숙부인 진사왕 뒤통수를 쳐서 죽이고 왕위에 오름 392년
      왕권 교체 구테타도 왜의 도움을 받았다는 말임 ㅋㅋ
      백제 아신왕은 직접 광개토한테 무릎을 꿇고 "앞으로 영원히 노예가 되겠다" 맹세함 396년
      또다시 뒤통수를 계획한 아신왕은 왜의 군사 지원을 받는 조건으로 태자 전지왕을 일본에 볼모로 보냄 397년
      왜와 통교를 끊겠다고 무릎꿇고 서약했으나 또 뒤통수를 치고 왜를 끌여들임 399년
      왜를 끌여들여서 한 짓이 신라를 공격한것임 ㅋㅋ
      이때 또다시 고구려 뒤통수 칠 준비하자 백성들이 신라,왜로 도망가고 백제왕족 유즈키노키미 가 대인구를 이끌고 야마토로 망명 399년
      이때 왜국의 군사지원을 얻으려고 태자도 보내고 아직기,왕인도 보내고 하면서 실질적으로 왜국을 키워줌 (6.25때 일본이 폭풍성장 한것처럼)
      영원히 노예가 되겠다고 무릎 꿇고 맹세했던 백제는 또다시 고구려의 뒤통수를 침
      그것도 왜놈을 끌여들어 고구려를 또 침 404년
      심지어 고구려는 후연과 전쟁을 하고 있었으므로 백제 종특 뒤통수가 제대로 나온거임 404년
      백제 아신왕이 죽자 동생 훈해가 섭정을 했는데 막내동생이 뒤통수를 쳐서 형을 죽이고 왕이 됨 405년
      군사 지원을 받기 위해 왜에 볼모로 갔던 전지가 왜의 도움을 받아 삼촌을 뒤통수 쳐 죽이고 왕이 됨 405년
      또다시 왕권 교체 구테타를 왜의 도음을 받았다는 말임 ㅋㅋㅋ
      이게 수백년에 걸친 사건이 아니라 단 10년 동안 일어난 일이라는 것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 뒤로로 백제의 통수는 이루말할 수 없이 굉장함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정말 배신과 뒤통수의 심볼이 바로 "백제"임
      2탄
      왜놈을 끌여들여 신라의 뒤통수를 쳤던 백제는(비유왕) 고구려에 밀려 수세에 몰리자 염치없이 신라에 화친을 요청함 ㅋㅋㅋㅋ
      그것도 비굴하게 3번이나 조공 갖다바치며 요청함 433년 7월, 434년 2,9월
      그 후 신라는 군사를 보내 백제를 여러번 도와줬지만 백제는 또 신라의 뒤통수를 침 (관산성전투 후술하겠음)
      백제 개로왕은 중국에 비참하게 구걸하면서 고구려 좀 쳐달라고 애걸복걸 함 472년
      ("마땅히 저의 딸을 보내어 후궁에서 청소를 하게 하고, 아울러 자제들을 보내어 마구간에서 말을 먹이게 하겠으며 한 치의 땅이나 한 사람의 필부(匹夫)라도 감히 저의 것이라 생각하지 않겠습니다." )
      위 사실을 알게된 고구려 장수왕은 백제 정벌에 나섬 475년
      성이 함락당하자 개로왕은 뒷구멍으로 도망쳤는데 백제인 배신자 재증걸루, 고이만년의 뒤통수에 참수당함 475년
      이때 먼저 도망간 백제 개로왕 동생 문주는 신라에 구원 요청을 하고 신라는 구원군 1만명을 보냄
      이때 백제 귀족 군사는 신라 지원군 보다 더 늦게 도착하는 뒤통수를 때림 ㅋㅋ
      백제 문주는 수도를 웅진으로 옮기고 비참하게 살아남음
      한국사 역사상 강제로 쫒겨서 수도를 옮긴건 백제가 유일함 ㅋㅋㅋ
      이때 또 골때리는건 한성 함락 이후 백제가 위기 상황을 겪을 때 일부 지방 세력은 사실상 독립하여 자체 국호로 외국에 사신을 보내는 통수까지 침
      한성이 무너진 이후로 백제 왕권은 그야말로 좁밥이 되어 대성팔족의 뒤통수가 시작 됨
      결국 백제 문주왕도 백제 배신자의(좌평 해씨가문) 뒤통수로 죽임당함 477년
      문주왕이 죽자 아들인 심근왕이 왕위에 올랐으나
      심근왕 세력인 진씨 가문과 해씨 가문이 서로 배신하며 뒤통수 쳐서 수천명의 군사가 죽음 ㅋㅋㅋ
      결국 심근왕도 3년만에 의문사로 죽음 (진씨 가문의 뒤통수로 추정함) 479년
      진씨 세력은 다음으로 동성왕을 지들 손으로 뽑음 479년
      왜를 끌여들여 계속 신라의 뒤통수를 쳤던 백제는 염치없이 동성왕때에 또 비굴하게 신라에 사신을 보내 청혼을 요청함 493년
      신라왕은 자신의 여식을 보내지 않고 신하인 이벌찬 비지의 딸을 보냄 ㅋㅋㅋ 493년
      동성왕은 신라 이벌찬 비지의 딸과 결혼 함
      동성왕 또한 어김없이 백제 배신자 백가의 뒤통수에 의해 죽임당함 501년
      백제왕은 대부분이 배신자의 통수 통수 통수에 의해 죽었음 ㅋㅋㅋ
      15대 침류왕, 16대 진사왕, 17대 아신왕, 폐왕 설례, 19대 구이신왕, 20대 비유왕, 22대 문주왕, 23대 삼근왕, 24대 동성왕이 모두 뒤통수로 죽임을 당함
      21대 개로왕은 고구려 뒤통수 치다 백제인 배신자 고이만년에게 참수당하고
      26대 성왕은 신라 뒤통수 치다 참수당함
      이후 27대 위덕왕, 태자 아좌, 28대 혜왕, 29대 법왕도 뒤통수로 추정되는 의문사를 당함
      백제는 정권 교체 자체가 곧 왕의 시해 즉, 뒤통수를 뜻하는거였음
      3탄도 기대하세요^^
      아 참고로 전라도는 백제가 아니예요
      백제 말기까지 백제와 군사충돌이 있었던 변두리 마한입니다
      벡제는 서울,경기,충청권이예요

  • @bokhanlee4049
    @bokhanlee4049 4 года назад +1

    경성제국대 서울대 이병도 잔당
    발악 하는구나 이병도 스승이 누구입니까 ㅋㅋ ~

    • @user-dl2cc6sh8l
      @user-dl2cc6sh8l 4 года назад

      ㅋㅋㅋㅋㅋㅋㅋㅋㅋ

    • @user-tp6je6wz9j
      @user-tp6je6wz9j 4 года назад

      네 다음 유사역사학

    • @user-tp6je6wz9j
      @user-tp6je6wz9j 4 года назад +1

      정작 그 이병도부터가 스승이 주장한 학설을 반박하기도 했다는 것이 함정

  • @Fv7X8d8kTKLtJ6WAqTt3Cw
    @Fv7X8d8kTKLtJ6WAqTt3Cw 8 месяцев назад

    전라도 경기도 이북의 말씨에도 상류와 하류층 말이 있듯이 경상도 말에는 상하층 만이 아닌 다양한 언어적 패턴이있다. 한국의 드라마와 영화에서 경상도사람이 왜 경상도역을 맡지 않는지 모르겠다. 나는 배역을 맡은 사람이 경상도의 고상한말씨를 구사해야할때 아는지 모르는지 이를 무시하는거라 매우 불쾌하게 보고있다. 시정되길 바란다.

  • @theon274
    @theon274 4 года назад +9

    능력이 안되면 말아야지
    외세를 끌어들이냐.

    • @리버티
      @리버티 4 года назад +6

      어차피 그당시엔 백제나 고구려도 신라입장에선 외국임

    • @hiiso123
      @hiiso123 4 года назад +1

      고종의 부인 민씨 같네.
      민씨가 청나라며 일본 다 끌려들였으니

    • @user-kt8yp5ho2y
      @user-kt8yp5ho2y 4 года назад +7

      The On ㅇ 말갈족 끌어들인 고구려와 왜구 끌어들인 백제. ㅉㅉㅉ

    • @theon274
      @theon274 4 года назад +3

      삼국이 치고받고 할때는 외세 끌여들였지만
      신라같이 멸망에 이르게 하면서 땅덩어리 떼줄게 도와줘 하고 당나라 속국 되는건 머임 . 군사력이 월등했다면 모를까.
      고구려도 백제왕까지 사로잡고 용서해주고 백제도 마찬가지.
      신라는 너무 비겁함

    • @nature5120
      @nature5120 3 года назад +2

      백제는 한반도 땅에 수차례 왜구를 끌여들여 신라와 고구려를 공격했고
      중국에도 대대로 조공 갖다바치며 고구려 좀 쳐달라고 애걸복걸 했습니다.
      백제 한테도 한말씀 해주시죠^^

  • @yogae.
    @yogae. 4 года назад +3

    자 방구석 역사학자들 썰좀 풀어보쇼

  • @user-nv1lh8ko5v
    @user-nv1lh8ko5v 4 года назад +9

    외세끌어들여 땅덩어리줄인역적중에 상역적임
    김춘추.김유신 지하에서 반성좀 해라

    • @user-dl2cc6sh8l
      @user-dl2cc6sh8l 4 года назад +5

      옳소!

    • @user-hm8op8bv1h
      @user-hm8op8bv1h 3 года назад +2

      북한에 정통성을 둔 전교조 교육과 지역주의 열등감이 뒤섞여 신라 통수 거리는 사람들을 위해 준비했습니다
      이름 하여 "백제의 뒷통수 열전"
      -------------------------------------------------------------------------------------------------------------------------------------
      백제는 항상 왜의 군사지원을 받음
      광개토대왕비에는 유독 백제를 “ 백잔”이라 비하함
      고구려가 거란의 공격을 받을때 백제는 고구려의 뒷통수를 쳐서 공격함 393, 4, 5년
      백제 아신왕은 왜의 도움을 받아 숙부인 진사왕 뒤통수를 쳐서 죽이고 왕위에 오름 392년
      왕권 교체 구테타도 왜의 도움을 받았다는 말임 ㅋㅋ
      백제 아신왕은 직접 광개토한테 무릎을 꿇고 "앞으로 영원히 노예가 되겠다" 맹세함 396년
      또다시 뒤통수를 계획한 아신왕은 왜의 군사 지원을 받는 조건으로 태자 전지왕을 일본에 볼모로 보냄 397년
      왜와 통교를 끊겠다고 무릎꿇고 서약했으나 또 뒤통수를 치고 왜를 끌여들임 399년
      왜를 끌여들여서 한 짓이 신라를 공격한것임 ㅋㅋ
      이때 또다시 고구려 뒤통수 칠 준비하자 백성들이 신라,왜로 도망가고 백제왕족 유즈키노키미 가 대인구를 이끌고 야마토로 망명 399년
      이때 왜국의 군사지원을 얻으려고 태자도 보내고 아직기,왕인도 보내고 하면서 실질적으로 왜국을 키워줌 (6.25때 일본이 폭풍성장 한것처럼)
      영원히 노예가 되겠다고 무릎 꿇고 맹세했던 백제는 또다시 고구려의 뒤통수를 침
      그것도 왜놈을 끌여들어 고구려를 또 침 404년
      심지어 고구려는 후연과 전쟁을 하고 있었으므로 백제 종특 뒤통수가 제대로 나온거임 404년
      백제 아신왕이 죽자 동생 훈해가 섭정을 했는데 막내동생이 뒤통수를 쳐서 형을 죽이고 왕이 됨 405년
      군사 지원을 받기 위해 왜에 볼모로 갔던 전지가 왜의 도움을 받아 삼촌을 뒤통수 쳐 죽이고 왕이 됨 405년
      또다시 왕권 교체 구테타를 왜의 도음을 받았다는 말임 ㅋㅋㅋ
      이게 수백년에 걸친 사건이 아니라 단 10년 동안 일어난 일이라는 것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 뒤로로 백제의 통수는 이루말할 수 없이 굉장함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정말 배신과 뒤통수의 심볼이 바로 "백제"임
      2탄
      왜놈을 끌여들여 신라의 뒤통수를 쳤던 백제는(비유왕) 고구려에 밀려 수세에 몰리자 염치없이 신라에 화친을 요청함 ㅋㅋㅋㅋ
      그것도 비굴하게 3번이나 조공 갖다바치며 요청함 433년 7월, 434년 2,9월
      그 후 신라는 군사를 보내 백제를 여러번 도와줬지만 백제는 또 신라의 뒤통수를 침 (관산성전투 후술하겠음)
      백제 개로왕은 중국에 비참하게 구걸하면서 고구려 좀 쳐달라고 애걸복걸 함 472년
      ("마땅히 저의 딸을 보내어 후궁에서 청소를 하게 하고, 아울러 자제들을 보내어 마구간에서 말을 먹이게 하겠으며 한 치의 땅이나 한 사람의 필부(匹夫)라도 감히 저의 것이라 생각하지 않겠습니다." )
      위 사실을 알게된 고구려 장수왕은 백제 정벌에 나섬 475년
      성이 함락당하자 개로왕은 뒷구멍으로 도망쳤는데 백제인 배신자 재증걸루, 고이만년의 뒤통수에 참수당함 475년
      이때 먼저 도망간 백제 개로왕 동생 문주는 신라에 구원 요청을 하고 신라는 구원군 1만명을 보냄
      이때 백제 귀족 군사는 신라 지원군 보다 더 늦게 도착하는 뒤통수를 때림 ㅋㅋ
      백제 문주는 수도를 웅진으로 옮기고 비참하게 살아남음
      한국사 역사상 강제로 쫒겨서 수도를 옮긴건 백제가 유일함 ㅋㅋㅋ
      이때 또 골때리는건 한성 함락 이후 백제가 위기 상황을 겪을 때 일부 지방 세력은 사실상 독립하여 자체 국호로 외국에 사신을 보내는 통수까지 침
      한성이 무너진 이후로 백제 왕권은 그야말로 좁밥이 되어 대성팔족의 뒤통수가 시작 됨
      결국 백제 문주왕도 백제 배신자의(좌평 해씨가문) 뒤통수로 죽임당함 477년
      문주왕이 죽자 아들인 심근왕이 왕위에 올랐으나
      심근왕 세력인 진씨 가문과 해씨 가문이 서로 배신하며 뒤통수 쳐서 수천명의 군사가 죽음 ㅋㅋㅋ
      결국 심근왕도 3년만에 의문사로 죽음 (진씨 가문의 뒤통수로 추정함) 479년
      진씨 세력은 다음으로 동성왕을 지들 손으로 뽑음 479년
      왜를 끌여들여 계속 신라의 뒤통수를 쳤던 백제는 염치없이 동성왕때에 또 비굴하게 신라에 사신을 보내 청혼을 요청함 493년
      신라왕은 자신의 여식을 보내지 않고 신하인 이벌찬 비지의 딸을 보냄 ㅋㅋㅋ 493년
      동성왕은 신라 이벌찬 비지의 딸과 결혼 함
      동성왕 또한 어김없이 백제 배신자 백가의 뒤통수에 의해 죽임당함 501년
      백제왕은 대부분이 배신자의 통수 통수 통수에 의해 죽었음 ㅋㅋㅋ
      15대 침류왕, 16대 진사왕, 17대 아신왕, 폐왕 설례, 19대 구이신왕, 20대 비유왕, 22대 문주왕, 23대 삼근왕, 24대 동성왕이 모두 뒤통수로 죽임을 당함
      21대 개로왕은 고구려 뒤통수 치다 백제인 배신자 고이만년에게 참수당하고
      26대 성왕은 신라 뒤통수 치다 참수당함
      이후 27대 위덕왕, 태자 아좌, 28대 혜왕, 29대 법왕도 뒤통수로 추정되는 의문사를 당함
      백제는 정권 교체 자체가 곧 왕의 시해 즉, 뒤통수를 뜻하는거였음
      3탄도 기대하세요^^
      아 참고로 전라도는 백제가 아니예요
      백제 말기까지 백제와 군사충돌이 있었던 변두리 마한입니다
      벡제는 서울,경기,충청권이예요

    • @user-tb4rd2eo2v
      @user-tb4rd2eo2v 2 года назад +1

      김춘추 김유신은 무덤 파헤쳐서 다 갈아놔야함. 역사적 배신자들임. 진심 동감해요. 신라는 적국이라고 생각함 배신의기질. 사기의 기질. 강간의 기질이 상당히 쎔.

  • @duoman2912
    @duoman2912 4 года назад +19

    사위놈이 대야성에 주색잡기로 지내다 털린걸 주접떨기는...
    누가보면 치열하게 전쟁중에 뒤지는줄 알겠네...

    • @user-hm8op8bv1h
      @user-hm8op8bv1h 3 года назад

      북한에 정통성을 둔 전교조 교육과 지역주의 열등감이 뒤섞여 신라 통수 거리는 사람들을 위해 준비했습니다
      이름 하여 "백제의 뒷통수 열전"
      -------------------------------------------------------------------------------------------------------------------------------------
      백제는 항상 왜의 군사지원을 받음
      광개토대왕비에는 유독 백제를 “ 백잔”이라 비하함
      고구려가 거란의 공격을 받을때 백제는 고구려의 뒷통수를 쳐서 공격함 393, 4, 5년
      백제 아신왕은 왜의 도움을 받아 숙부인 진사왕 뒤통수를 쳐서 죽이고 왕위에 오름 392년
      왕권 교체 구테타도 왜의 도움을 받았다는 말임 ㅋㅋ
      백제 아신왕은 직접 광개토한테 무릎을 꿇고 "앞으로 영원히 노예가 되겠다" 맹세함 396년
      또다시 뒤통수를 계획한 아신왕은 왜의 군사 지원을 받는 조건으로 태자 전지왕을 일본에 볼모로 보냄 397년
      왜와 통교를 끊겠다고 무릎꿇고 서약했으나 또 뒤통수를 치고 왜를 끌여들임 399년
      왜를 끌여들여서 한 짓이 신라를 공격한것임 ㅋㅋ
      이때 또다시 고구려 뒤통수 칠 준비하자 백성들이 신라,왜로 도망가고 백제왕족 유즈키노키미 가 대인구를 이끌고 야마토로 망명 399년
      이때 왜국의 군사지원을 얻으려고 태자도 보내고 아직기,왕인도 보내고 하면서 실질적으로 왜국을 키워줌 (6.25때 일본이 폭풍성장 한것처럼)
      영원히 노예가 되겠다고 무릎 꿇고 맹세했던 백제는 또다시 고구려의 뒤통수를 침
      그것도 왜놈을 끌여들어 고구려를 또 침 404년
      심지어 고구려는 후연과 전쟁을 하고 있었으므로 백제 종특 뒤통수가 제대로 나온거임 404년
      백제 아신왕이 죽자 동생 훈해가 섭정을 했는데 막내동생이 뒤통수를 쳐서 형을 죽이고 왕이 됨 405년
      군사 지원을 받기 위해 왜에 볼모로 갔던 전지가 왜의 도움을 받아 삼촌을 뒤통수 쳐 죽이고 왕이 됨 405년
      또다시 왕권 교체 구테타를 왜의 도음을 받았다는 말임 ㅋㅋㅋ
      이게 수백년에 걸친 사건이 아니라 단 10년 동안 일어난 일이라는 것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 뒤로로 백제의 통수는 이루말할 수 없이 굉장함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정말 배신과 뒤통수의 심볼이 바로 "백제"임
      2탄
      왜놈을 끌여들여 신라의 뒤통수를 쳤던 백제는(비유왕) 고구려에 밀려 수세에 몰리자 염치없이 신라에 화친을 요청함 ㅋㅋㅋㅋ
      그것도 비굴하게 3번이나 조공 갖다바치며 요청함 433년 7월, 434년 2,9월
      그 후 신라는 군사를 보내 백제를 여러번 도와줬지만 백제는 또 신라의 뒤통수를 침 (관산성전투 후술하겠음)
      백제 개로왕은 중국에 비참하게 구걸하면서 고구려 좀 쳐달라고 애걸복걸 함 472년
      ("마땅히 저의 딸을 보내어 후궁에서 청소를 하게 하고, 아울러 자제들을 보내어 마구간에서 말을 먹이게 하겠으며 한 치의 땅이나 한 사람의 필부(匹夫)라도 감히 저의 것이라 생각하지 않겠습니다." )
      위 사실을 알게된 고구려 장수왕은 백제 정벌에 나섬 475년
      성이 함락당하자 개로왕은 뒷구멍으로 도망쳤는데 백제인 배신자 재증걸루, 고이만년의 뒤통수에 참수당함 475년
      이때 먼저 도망간 백제 개로왕 동생 문주는 신라에 구원 요청을 하고 신라는 구원군 1만명을 보냄
      이때 백제 귀족 군사는 신라 지원군 보다 더 늦게 도착하는 뒤통수를 때림 ㅋㅋ
      백제 문주는 수도를 웅진으로 옮기고 비참하게 살아남음
      한국사 역사상 강제로 쫒겨서 수도를 옮긴건 백제가 유일함 ㅋㅋㅋ
      이때 또 골때리는건 한성 함락 이후 백제가 위기 상황을 겪을 때 일부 지방 세력은 사실상 독립하여 자체 국호로 외국에 사신을 보내는 통수까지 침
      한성이 무너진 이후로 백제 왕권은 그야말로 좁밥이 되어 대성팔족의 뒤통수가 시작 됨
      결국 백제 문주왕도 백제 배신자의(좌평 해씨가문) 뒤통수로 죽임당함 477년
      문주왕이 죽자 아들인 심근왕이 왕위에 올랐으나
      심근왕 세력인 진씨 가문과 해씨 가문이 서로 배신하며 뒤통수 쳐서 수천명의 군사가 죽음 ㅋㅋㅋ
      결국 심근왕도 3년만에 의문사로 죽음 (진씨 가문의 뒤통수로 추정함) 479년
      진씨 세력은 다음으로 동성왕을 지들 손으로 뽑음 479년
      왜를 끌여들여 계속 신라의 뒤통수를 쳤던 백제는 염치없이 동성왕때에 또 비굴하게 신라에 사신을 보내 청혼을 요청함 493년
      신라왕은 자신의 여식을 보내지 않고 신하인 이벌찬 비지의 딸을 보냄 ㅋㅋㅋ 493년
      동성왕은 신라 이벌찬 비지의 딸과 결혼 함
      동성왕 또한 어김없이 백제 배신자 백가의 뒤통수에 의해 죽임당함 501년
      백제왕은 대부분이 배신자의 통수 통수 통수에 의해 죽었음 ㅋㅋㅋ
      15대 침류왕, 16대 진사왕, 17대 아신왕, 폐왕 설례, 19대 구이신왕, 20대 비유왕, 22대 문주왕, 23대 삼근왕, 24대 동성왕이 모두 뒤통수로 죽임을 당함
      21대 개로왕은 고구려 뒤통수 치다 백제인 배신자 고이만년에게 참수당하고
      26대 성왕은 신라 뒤통수 치다 참수당함
      이후 27대 위덕왕, 태자 아좌, 28대 혜왕, 29대 법왕도 뒤통수로 추정되는 의문사를 당함
      백제는 정권 교체 자체가 곧 왕의 시해 즉, 뒤통수를 뜻하는거였음
      3탄도 기대하세요^^
      아 참고로 전라도는 백제가 아니예요
      백제 말기까지 백제와 군사충돌이 있었던 변두리 마한입니다
      벡제는 서울,경기,충청권이예요

    • @user-xg8wb5wb7j
      @user-xg8wb5wb7j Год назад

      @@user-hm8op8bv1h / 이리저리 길게 쓰셨습니다만 간략히 말해 외세도 '종류'가 있습니다. 상호 협상이나 혹은 배후 조정이 가능한 외세냐 그렇지 않느냐의 차이입니다. 백제를 비판하는 것 자체는 납득할 수 있으나 글 쓴 분의 자세를 보면 비판을 빙자한 '긁어 내리기'임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습니다. 백제가 와코쿠(왜국)의 힘을 빌리더라도 그것은 신라-당 연합과는 근본적으로 차이가 있습니다. 백제와 와코쿠 혹은 야마토는 쌍무계약적 관계입니다. 서로가 이득을 주고받는 관계이지요. 근본적으로 판이 뒤집히는 전면전이 아닌 '국지전'을 위한 관계입니다. 반면 당과 신라는 명목 뿐만이 아니라 실제적인 부분에서도 '군신관계'입니다. 신라 측에서 감당하기 어려운 관계라는 것이지요. 여차하면 신라라는 나라 자체에도 막대한 손해가 갈 수 있는 관계라는 말입니다. 같은 신라의 임금들이라도 진흥왕과 문무대왕은 김춘추와는 확연히 달랐지요. 진흥왕은 나라의 이익은 도모했지만 가능한 한 상대국을 필요 이상으로 자극하는 것은 삼갔습니다. 백제 문제에 대해서는 아쉬움이 많지만요. 문무대왕은 더 말할 나위 없습니다. 문무대왕은 아예 '화합정치'를 단행했고 이 덕분에 김춘추와는 다르게 제대로 된 의미의 삼국통일이라는 것이 가능해졌습니다. 왜 신라를 '통수의 나라'라고 현대 한국인들이 비난하냐면 그 지분의 9할이 바로 김춘추에게 있습니다. 김춘추 때문에 애먼 신라라는 나라 자체가 덤터기를 쓰는 것이지요. 그것에 반론을 제기하고 비판하면 그만인데 굳이 백제까지 어떻게든 '통수의 나라 2'로 만들려는 데에는 공감하기 어렵군요.

    • @user-hm8op8bv1h
      @user-hm8op8bv1h Год назад

      @@user-xg8wb5wb7j 백제가 중국에 군신관계로서 비굴하게 아양떨며 고구려 좀 쳐 달라고 굽신거렸던 사실은 일부러 못본척 하는건가보죠?
      백제의 전통적인 외교전략이 중국에 빌붙는거였는데요^^
      신라를 통수의 나라로 부르는건 나제동맹을 신라가 깨버렸다는 잘못된 역사교육 때문인 겁니다
      실제 나제 동맹은 백제가 깨버렸는데 말이죠
      대한민국의 역사교육은 신채호를 시작으로 이병도가 말아먹은 거예요
      말하는거 보니까 지식이 짧은거 같은데 어설프게 아는척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ㅋㅋ

    • @user-hm8op8bv1h
      @user-hm8op8bv1h Год назад

      @@user-xg8wb5wb7j 아 그리고 라도는 백제와 아무 상관 없으니까 제발 백제에 감정이입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

    • @user-xg8wb5wb7j
      @user-xg8wb5wb7j Год назад

      @@user-hm8op8bv1h / 저 수원 출생이라 특정 지역과는 하등 상관 없습니다만? 영사사관으로 만사를 재단한다면 역사를 그릇되이 볼 따름이겠지요

  • @user-sd8rq7ts2f
    @user-sd8rq7ts2f 4 года назад +8

    신라가 먼저 망했으면...대한민국에 영토는 엄청났을수도...

  • @user-vw5kd4or6o
    @user-vw5kd4or6o 4 года назад +4

    진흥매금대왕 없누? 뇌없는소리 하고댕기던데

    • @user-vw5kd4or6o
      @user-vw5kd4or6o 4 года назад

      대 신라후예 진흥 매금대왕 지금이라도 정신병원가서 치료받기바람 부끄러운일이아님

    • @user-vw5kd4or6o
      @user-vw5kd4or6o 4 года назад

      대 신라후예 진흥 매금대왕 니가먼대 대답해놓으라 마라야 정신병원이나가세요;;

  • @user-wn2xp2dr2z
    @user-wn2xp2dr2z 4 года назад +7

    *제목 부터. 역사 왜곡 풍김! ^^

  • @user-sp1ls9rw2v
    @user-sp1ls9rw2v 4 года назад +8

    삼국통일 같은 소리하네 반의반도 안되는 땅덩어리 통일은 뭔통일이라고

    • @user-sp1ls9rw2v
      @user-sp1ls9rw2v 4 года назад

      @대 신라후예 진흥 매금대왕 먼 개소리여 아야 역사 모르면서 닥치시요

    • @PELLACO1
      @PELLACO1 4 года назад

      @@user-sp1ls9rw2v 너두 모르는 주제에ㅋ

    • @user-hm8op8bv1h
      @user-hm8op8bv1h 3 года назад

      북한에 정통성을 둔 전교조 교육과 지역주의 열등감이 뒤섞여 신라 통수 거리는 사람들을 위해 준비했습니다
      이름 하여 "백제의 뒷통수 열전"
      -------------------------------------------------------------------------------------------------------------------------------------
      백제는 항상 왜의 군사지원을 받음
      광개토대왕비에는 유독 백제를 “ 백잔”이라 비하함
      고구려가 거란의 공격을 받을때 백제는 고구려의 뒷통수를 쳐서 공격함 393, 4, 5년
      백제 아신왕은 왜의 도움을 받아 숙부인 진사왕 뒤통수를 쳐서 죽이고 왕위에 오름 392년
      왕권 교체 구테타도 왜의 도움을 받았다는 말임 ㅋㅋ
      백제 아신왕은 직접 광개토한테 무릎을 꿇고 "앞으로 영원히 노예가 되겠다" 맹세함 396년
      또다시 뒤통수를 계획한 아신왕은 왜의 군사 지원을 받는 조건으로 태자 전지왕을 일본에 볼모로 보냄 397년
      왜와 통교를 끊겠다고 무릎꿇고 서약했으나 또 뒤통수를 치고 왜를 끌여들임 399년
      왜를 끌여들여서 한 짓이 신라를 공격한것임 ㅋㅋ
      이때 또다시 고구려 뒤통수 칠 준비하자 백성들이 신라,왜로 도망가고 백제왕족 유즈키노키미 가 대인구를 이끌고 야마토로 망명 399년
      이때 왜국의 군사지원을 얻으려고 태자도 보내고 아직기,왕인도 보내고 하면서 실질적으로 왜국을 키워줌 (6.25때 일본이 폭풍성장 한것처럼)
      영원히 노예가 되겠다고 무릎 꿇고 맹세했던 백제는 또다시 고구려의 뒤통수를 침
      그것도 왜놈을 끌여들어 고구려를 또 침 404년
      심지어 고구려는 후연과 전쟁을 하고 있었으므로 백제 종특 뒤통수가 제대로 나온거임 404년
      백제 아신왕이 죽자 동생 훈해가 섭정을 했는데 막내동생이 뒤통수를 쳐서 형을 죽이고 왕이 됨 405년
      군사 지원을 받기 위해 왜에 볼모로 갔던 전지가 왜의 도움을 받아 삼촌을 뒤통수 쳐 죽이고 왕이 됨 405년
      또다시 왕권 교체 구테타를 왜의 도음을 받았다는 말임 ㅋㅋㅋ
      이게 수백년에 걸친 사건이 아니라 단 10년 동안 일어난 일이라는 것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 뒤로로 백제의 통수는 이루말할 수 없이 굉장함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정말 배신과 뒤통수의 심볼이 바로 "백제"임
      2탄
      왜놈을 끌여들여 신라의 뒤통수를 쳤던 백제는(비유왕) 고구려에 밀려 수세에 몰리자 염치없이 신라에 화친을 요청함 ㅋㅋㅋㅋ
      그것도 비굴하게 3번이나 조공 갖다바치며 요청함 433년 7월, 434년 2,9월
      그 후 신라는 군사를 보내 백제를 여러번 도와줬지만 백제는 또 신라의 뒤통수를 침 (관산성전투 후술하겠음)
      백제 개로왕은 중국에 비참하게 구걸하면서 고구려 좀 쳐달라고 애걸복걸 함 472년
      ("마땅히 저의 딸을 보내어 후궁에서 청소를 하게 하고, 아울러 자제들을 보내어 마구간에서 말을 먹이게 하겠으며 한 치의 땅이나 한 사람의 필부(匹夫)라도 감히 저의 것이라 생각하지 않겠습니다." )
      위 사실을 알게된 고구려 장수왕은 백제 정벌에 나섬 475년
      성이 함락당하자 개로왕은 뒷구멍으로 도망쳤는데 백제인 배신자 재증걸루, 고이만년의 뒤통수에 참수당함 475년
      이때 먼저 도망간 백제 개로왕 동생 문주는 신라에 구원 요청을 하고 신라는 구원군 1만명을 보냄
      이때 백제 귀족 군사는 신라 지원군 보다 더 늦게 도착하는 뒤통수를 때림 ㅋㅋ
      백제 문주는 수도를 웅진으로 옮기고 비참하게 살아남음
      한국사 역사상 강제로 쫒겨서 수도를 옮긴건 백제가 유일함 ㅋㅋㅋ
      이때 또 골때리는건 한성 함락 이후 백제가 위기 상황을 겪을 때 일부 지방 세력은 사실상 독립하여 자체 국호로 외국에 사신을 보내는 통수까지 침
      한성이 무너진 이후로 백제 왕권은 그야말로 좁밥이 되어 대성팔족의 뒤통수가 시작 됨
      결국 백제 문주왕도 백제 배신자의(좌평 해씨가문) 뒤통수로 죽임당함 477년
      문주왕이 죽자 아들인 심근왕이 왕위에 올랐으나
      심근왕 세력인 진씨 가문과 해씨 가문이 서로 배신하며 뒤통수 쳐서 수천명의 군사가 죽음 ㅋㅋㅋ
      결국 심근왕도 3년만에 의문사로 죽음 (진씨 가문의 뒤통수로 추정함) 479년
      진씨 세력은 다음으로 동성왕을 지들 손으로 뽑음 479년
      왜를 끌여들여 계속 신라의 뒤통수를 쳤던 백제는 염치없이 동성왕때에 또 비굴하게 신라에 사신을 보내 청혼을 요청함 493년
      신라왕은 자신의 여식을 보내지 않고 신하인 이벌찬 비지의 딸을 보냄 ㅋㅋㅋ 493년
      동성왕은 신라 이벌찬 비지의 딸과 결혼 함
      동성왕 또한 어김없이 백제 배신자 백가의 뒤통수에 의해 죽임당함 501년
      백제왕은 대부분이 배신자의 통수 통수 통수에 의해 죽었음 ㅋㅋㅋ
      15대 침류왕, 16대 진사왕, 17대 아신왕, 폐왕 설례, 19대 구이신왕, 20대 비유왕, 22대 문주왕, 23대 삼근왕, 24대 동성왕이 모두 뒤통수로 죽임을 당함
      21대 개로왕은 고구려 뒤통수 치다 백제인 배신자 고이만년에게 참수당하고
      26대 성왕은 신라 뒤통수 치다 참수당함
      이후 27대 위덕왕, 태자 아좌, 28대 혜왕, 29대 법왕도 뒤통수로 추정되는 의문사를 당함
      백제는 정권 교체 자체가 곧 왕의 시해 즉, 뒤통수를 뜻하는거였음
      3탄도 기대하세요^^
      아 참고로 전라도는 백제가 아니예요
      백제 말기까지 백제와 군사충돌이 있었던 변두리 마한입니다
      벡제는 서울,경기,충청권이예요

  • @ykkong9656
    @ykkong9656 4 года назад +11

    당나라끌여들여저넓은대륙을중국에다넘겨줘대륙국가에서반도국가로전략시킨신라통일에나는결코찬동할수없다더러운사대주의도이때부터시작된게아닐까?고구려나백제가통일의주역이었다면 아쉽고아쉅다

    • @user-tg4ry9pn1x
      @user-tg4ry9pn1x 4 года назад +1

      그럼 신라가, 고구려 영토가 크니 고구려 니네가 삼국통일 이루세요~ 그러니 우리 신라를 잡수세요~ 하란 소리냐?? ㅋㅋ 이성계의 쿠테타는 인정 하면서 박정희의 쿠테타는 부정하는 괴상한 논리들~!! 흥하면 멸할때가 오는 법으로 이성계에 의한 고려의 멸망은 긍정 하면서 일본에 의한 조선 멸망은 비정상으로 보는 이중잣대~!! 도대체 이런 멍청한 사고력은 누구에게 배운거냐~! ㅋㅋ

    • @user-bo3ju8kd8j
      @user-bo3ju8kd8j 4 года назад +1

      더러운 사대주의는 우리가 물고빠는 세종대왕한테 물어봐라 백제는 망할만 하니까 망한거지 한성 뺏길때 백제원군보다 신라군이 먼저 올 정도로 백제는 무늬만 같은 나라였지 호족들과 이주해온 왕족들이 전혀 동화되지도 않았었지 오죽하면 나라가 망한것도 아닌데 사비성주 예식진이 의자왕 잘 포장해서 같다받혔겠냐?

    • @user-dl2cc6sh8l
      @user-dl2cc6sh8l 4 года назад +2

      @@user-tg4ry9pn1x 이성계 구데타도 욕먹어 마땅하고 다카키 마사오의 구데타도 당연히 욕먹어도 싸다. 이성계의 구데타 인정한적도 없고 다카키 마사오는 스스로 구데타일으킨것도 아니고 양키가 뒤에서 밀어줘 성공한 구데타다. 데프콘 1만 되도 1개소대도 양키 허락없이 움직일 수 없다는 사실을 상기해 보면 답은 나온다.

    • @user-yq3sb9ud2m
      @user-yq3sb9ud2m 4 года назад +1

      근데그렇게고구려빠는빠돌이들은중공끌어들여남북분단만든 거예비하면 당나라이용해민족을만든신라는왜인정안허지

    • @PELLACO1
      @PELLACO1 4 года назад

      @@user-dl2cc6sh8l 한국에서 꺼져 그럼 왜 있냐?
      너 한국사람 맞냐? 죄다 인정하기 싫어하네.
      넌 내가 보니까.
      우리나라를 팔아넘긴 인물한테 존나 칭찬할 새키임.
      매국노한테 찬양할놈임 너는.

  • @yu0900
    @yu0900 3 года назад +14

    지네 할배 진흥왕이
    먼저 백제 성왕 통수치고 모가지 따놓고
    복수 당한거에 복수 ㅇㅈㄹ

    • @nature5120
      @nature5120 3 года назад +4

      통수는 성왕이 친거죠
      역사를 이상하게 알고 있는 사람이 왜이렇게 많지?
      난감하네

    • @yu0900
      @yu0900 3 года назад +9

      @@nature5120진흥왕이 한강 나눠갖기해놓고
      같이 고구려 밀어내선 서울 독차지하자 화난 성왕이 친걸로 아는데요. 성왕이 먼저통수라고요?

    • @nature5120
      @nature5120 3 года назад +4

      @@yu0900 신라가 한강 상류에 있었고 백제는 한강 하류에 있다가
      계속 병력을 계속 주둔시킬 여력이 없었던 백제가 스스로 철군한 겁니다
      만약 신라가 배신해서 백제 주둔지역을 차지하려 했다면 무조건 군사충돌이 있어야 하는데
      그때는 백제와 신라간에 전혀 군사충돌도 없었고
      오히려 백제 성왕은 자신의 딸을 신라 진흥왕에게 보냅니다
      땅 뺏기고 군사충돌까지 있었는데 신라왕에게 자신의 딸을 시집 보냈다? ㅋㅋ
      이건 말도 안되는 소리죠
      그 이후 왜를 끌여들여 신라를 공격한건 오히려 백제죠
      배신을 했으면 백제가 한거지 왜 신라가 한게 되는건가요?

    • @woojin918
      @woojin918 3 года назад +1

      @@nature5120 당시 신라가 고구려랑 잘 지내려하니 고구려가 감탄하며 한강 하류를 신라가 꿀꺽하는거 용인했고 그래서 백제가 한성을 포기했다는 설이 있어요.

    • @user-vj4ro3kq7u
      @user-vj4ro3kq7u 2 года назад +3

      @@nature5120 역사공부는 너나 다시해라 한국사1급이다 나는

  • @pangyapangya
    @pangyapangya 4 года назад +4

    신라어찌고저찌고 단 이상한 사람 등장 할 듯 ㅋㅋ

    • @user-vw5kd4or6o
      @user-vw5kd4or6o 4 года назад

      빵야빵야 정신병자임ㅋㅋㅋㅋㅋㅋㅋ 듣보잡 사이트 자료들고와서 알바하는 알바생임

  • @user-ik3kb1um5y
    @user-ik3kb1um5y 4 года назад +7

    좋게 말해 외교지 실상은 당신하들앞에서 무릎꿇고 울고불고 사정사정한거..
    고구려 넘겨주고 군량미까지 댄다는데 당나라 입장에선 길잃은 소가 제발로 걸어온격으로 마다할 이유가 없지..
    결국 경주까지 계림도독부가 설치되어 한반도가 통째로 당나라에 넘어갈뻔 했으나 천만다행히도 당나라 서쪽 토번(티벳)이 전쟁을 일으켜 당군이 황급히 철수함..

    • @user-ik3kb1um5y
      @user-ik3kb1um5y 3 года назад +1

      @솔티솔트
      뭘 얘기하고자 하는지 의도는 알겠지만
      당은 이미 토번과의 전투에서 서역의 위험성을 뼈저리게 체험했고 그래서 쉽사리 한반도 재침략의 엄두를 내지 못한겁니다.
      당과 신라가 이후 300여년동안 공존이라는 표현도 신라가 당에게 사대의 예를 갖추는 선에서 마무리 된 것이지 어디 신라가 당당한 주권국으로 당과 겨뤘던 건가요?
      사실 곡해는 하지 맙시다.

    • @user-ik3kb1um5y
      @user-ik3kb1um5y 3 года назад +2

      @솔티솔트
      통일신라요? ㅋㅋㅋㅋ
      그냥 백제를 병합한 수준이지 무슨 통일신라입니까? ㅋㅋㅋㅋ
      발해가 딱하니 당나라와 중간에서 쿠션 역할을 해 줬으니 그나마 당으로부터 안전했던 측면은 고려 안합니까?
      그리고 발해도 엄연히 고구려를 계승한 우리 선조들의 역사입니다.
      함부로 통일이라는 단어를 붙이지 않았으면 좋겠군요.
      우리 민족의 활동무대였던 만주대륙을 넘기고 한반도 한쪽 귀퉁이에서 겨우 목숨 부지한게 뭐 대단하다고? ㅋㅋㅋㅋ

    • @user-ik3kb1um5y
      @user-ik3kb1um5y 3 года назад +2

      @솔티솔트
      일부 왕족과 귀족이 투항하면 정통성도 계승하는건가요?
      듣도 보도 못한 신박한 논리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현대적 의미의 국가 구성요건 3가지인 국민, 영토, 주권을 그대로 적용하지 않더라도 댱대에도 국가의 주요소는 백성과 영토지요.
      백성과 영토를 흡수한 발해보다 일부 왕족, 귀족이 제 목숨 부지하자고 투항한걸 무슨 정통성을 이어 받은것마냥 해석하는 님의 관점이 참 독특하네요 ㅋㅋㅋㅋㅋㅋㅋㅋ
      다행히 발해가 있어 만주의 대부분을 수복한 건 사실이지만, 그건 엄연히 발해의 공이고 그나마 요서땅은 물론 요동까지 당에 넘어가 버린건 당대의 역사적 사실 아닌가요?
      이후 발해가 멸망하면서 만주의 모든 영토가 한민족과 거리가 멀어진것도 사실 아닙니까?
      만약 고구려가 삼국을 통일했다면 지금도 만주는 우리의 활동무대였을 가능성이 높은것도 사실이고, 국력이나 문화수준 등 여러가지 면에서 3국중 최열등국가였던 신라가 당나라와 협잡하면서 민족의 명운이 암울해진건 사실 아닌가요?
      오죽하면 신라를 토벌한 왕건 역시 고구려를 계승한다고 했을지 잘 생각해 보세요.
      이미 당대의 사람들도 신라는 결코 자랑스럽지 않은 그저 그런 쩌리국가라는 인식이 깊게 박혀 있었다구 봐여죠.

    • @user-ik3kb1um5y
      @user-ik3kb1um5y 3 года назад

      @솔티솔트
      신라가 고구려마저 흡수했다면서요? ㅋㅋㅋㅋㅋ
      그럼 뭘 흡수했다는거예요? ㅋㅋㅋㅋㅋㅋㅋ
      내가 난독증이면 님은 과대망상같아요 ㅋㅋㅋㅋㅋ
      역시나 신라를 쩌리국가라 표현하니 고구려, 백제까지 끌어 들여 울컥하는걸 보니 답이 없는 사람이군요 ㅋㅋㅋㅋ
      고구려, 백제가 쩌리 신라때문에 붕괴됐나요?
      다시 내 원글을 읽어 보세요.
      이건 뭐 다람쥐 쳇바퀴도 아니고 말귀 막힌 사람과 내가 뭔 짓을 하고 있는건지 참 나 원 ㅋㅋㅋㅋ

    • @user-ik3kb1um5y
      @user-ik3kb1um5y 3 года назад

      @솔티솔트
      무식한건 너님만 하겠습니까? ㅋㅋㅋㅋ
      왕족 귀족 몇명 투항했다고 한 나라를 통째로 흡수했다고 우기는 모지리인데 ㅋㅋㅋㅋㅋㅋㅋㅋㅋ

  • @yunchan843
    @yunchan843 4 года назад +2

    역시 저시키는 dna부터 우리민족이 아니야!

  • @JY-vo9kd
    @JY-vo9kd 4 года назад +5

    무열왕 실망이야. 복수따위라니 옹졸하다. 형편없는 사위 골라준 것도.

  • @gerughigiulio9190
    @gerughigiulio9190 2 года назад +2

    복수하겠다고 당나라를 끝어들이고 그 뒤에 어떻게 대처할지는 하나도 정한게 없었다. 그저 고구려 멸망 직후 당과 티베트 사이에서 전쟁이 벌어진 덕을 봤을 뿐 당이 고구려 칠 때 만큼의 병력으로 신라를 쳤다면 한반도 전체가 당나라에 넘어갔음...

    • @mun4946
      @mun4946 2 года назад +3

      역사에 만약은 없습니다. 그리고 훨씬 강력한 몽골 상대로도 고려는 스스로의 정체성을 잃지는 않았습니다.
      신라도 아예 중국에 의해 흡수,동화되었다고 단정지을 순 없어요.

    • @gerughigiulio9190
      @gerughigiulio9190 2 года назад +2

      @@mun4946 몽골은 고려의 북방, 제주도 정도를 제외하고는 간접지배의 원칙을 세웠던 반면 당은 아예 한반도 전역을 직접 지배하려 했습니다. 더구나 당은 5대 10국 시대까지 2백년 넘게 강성했기에 이 기간 동안 신라가 고유문화를 지키는건 불가능하고 결국 한반도 전역이 중국화 되는 사태가 날 수 있습니다. 심지어 고구려에 했던 것처럼 원활한 지배를 하겠답시고 인구이동을 감행할 수도 있지요.

    • @athanasius1124
      @athanasius1124 2 года назад +7

      덕을 보든 말든 신라가 당나라를 이긴 건 이긴거임^^ 그렇게 당나라가 잘났으면 티베트랑 전쟁 끝난 후에 왜 다시 신라를 침략 안하고 삼국통일 후 200년 가량을 신라랑 공존했을까?
      신라가 나당전쟁에서 당나라에 대해 무시못할 타격을 줬고, 신라가 생각보다 ㅈ밥이 아니니까 당나라도 양면전쟁을 벌이지 못하고 빤스런 한 거 아니겠니?

    • @gerughigiulio9190
      @gerughigiulio9190 2 года назад +1

      @@athanasius1124 발해는 무시? 당은 티베트와의 전쟁 이후 호전광 고종이 죽고 측천무후의 치세가 되면서 대외원정 의욕이 줄어든데다 투르크가 다시 흥기하면서 사방이 적이라 더이상 한반도에 관심을 둘 수가 없었음...

    • @user-hq9cq1cq4e
      @user-hq9cq1cq4e Год назад +1

      물론 이런 생각 당연히 할 수 있는거지만 어디까지나 이런 생각은 " 가정 " 의 단계이지 실제 역사가 아닙니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신라가 당나라를 한반도에서 몰아내고 한국의 주권을 지켜냈으니 오늘날을 살아가는 우리는 그점을 자랑스럽게 여겨도 괜찮지 않을까요?

  • @user-ij1jh1ix4u
    @user-ij1jh1ix4u 4 года назад +8

    그래봐야 당나라 끌어 들여 통일한 신라

    • @user-uh7en2ie9u
      @user-uh7en2ie9u 3 года назад +5

      그럼 백제는 백강전투에서 왜놈 끌여들여 나당이랑 싸웠는데? 지금 시점으로 보면 원조 토착왜구 아님?

    • @nature5120
      @nature5120 3 года назад +1

      @종남은못말려 윗조상이 같은 동족인데 왜 서로 죽이고 전쟁했답니까?

    • @user-hm8op8bv1h
      @user-hm8op8bv1h 3 года назад

      북한에 정통성을 둔 전교조 교육과 지역주의 열등감이 뒤섞여 신라 통수 거리는 사람들을 위해 준비했습니다
      이름 하여 "백제의 뒷통수 열전"
      -------------------------------------------------------------------------------------------------------------------------------------
      백제는 항상 왜의 군사지원을 받음
      광개토대왕비에는 유독 백제를 “ 백잔”이라 비하함
      고구려가 거란의 공격을 받을때 백제는 고구려의 뒷통수를 쳐서 공격함 393, 4, 5년
      백제 아신왕은 왜의 도움을 받아 숙부인 진사왕 뒤통수를 쳐서 죽이고 왕위에 오름 392년
      왕권 교체 구테타도 왜의 도움을 받았다는 말임 ㅋㅋ
      백제 아신왕은 직접 광개토한테 무릎을 꿇고 "앞으로 영원히 노예가 되겠다" 맹세함 396년
      또다시 뒤통수를 계획한 아신왕은 왜의 군사 지원을 받는 조건으로 태자 전지왕을 일본에 볼모로 보냄 397년
      왜와 통교를 끊겠다고 무릎꿇고 서약했으나 또 뒤통수를 치고 왜를 끌여들임 399년
      왜를 끌여들여서 한 짓이 신라를 공격한것임 ㅋㅋ
      이때 또다시 고구려 뒤통수 칠 준비하자 백성들이 신라,왜로 도망가고 백제왕족 유즈키노키미 가 대인구를 이끌고 야마토로 망명 399년
      이때 왜국의 군사지원을 얻으려고 태자도 보내고 아직기,왕인도 보내고 하면서 실질적으로 왜국을 키워줌 (6.25때 일본이 폭풍성장 한것처럼)
      영원히 노예가 되겠다고 무릎 꿇고 맹세했던 백제는 또다시 고구려의 뒤통수를 침
      그것도 왜놈을 끌여들어 고구려를 또 침 404년
      심지어 고구려는 후연과 전쟁을 하고 있었으므로 백제 종특 뒤통수가 제대로 나온거임 404년
      백제 아신왕이 죽자 동생 훈해가 섭정을 했는데 막내동생이 뒤통수를 쳐서 형을 죽이고 왕이 됨 405년
      군사 지원을 받기 위해 왜에 볼모로 갔던 전지가 왜의 도움을 받아 삼촌을 뒤통수 쳐 죽이고 왕이 됨 405년
      또다시 왕권 교체 구테타를 왜의 도음을 받았다는 말임 ㅋㅋㅋ
      이게 수백년에 걸친 사건이 아니라 단 10년 동안 일어난 일이라는 것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 뒤로로 백제의 통수는 이루말할 수 없이 굉장함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정말 배신과 뒤통수의 심볼이 바로 "백제"임
      2탄
      왜놈을 끌여들여 신라의 뒤통수를 쳤던 백제는(비유왕) 고구려에 밀려 수세에 몰리자 염치없이 신라에 화친을 요청함 ㅋㅋㅋㅋ
      그것도 비굴하게 3번이나 조공 갖다바치며 요청함 433년 7월, 434년 2,9월
      그 후 신라는 군사를 보내 백제를 여러번 도와줬지만 백제는 또 신라의 뒤통수를 침 (관산성전투 후술하겠음)
      백제 개로왕은 중국에 비참하게 구걸하면서 고구려 좀 쳐달라고 애걸복걸 함 472년
      ("마땅히 저의 딸을 보내어 후궁에서 청소를 하게 하고, 아울러 자제들을 보내어 마구간에서 말을 먹이게 하겠으며 한 치의 땅이나 한 사람의 필부(匹夫)라도 감히 저의 것이라 생각하지 않겠습니다." )
      위 사실을 알게된 고구려 장수왕은 백제 정벌에 나섬 475년
      성이 함락당하자 개로왕은 뒷구멍으로 도망쳤는데 백제인 배신자 재증걸루, 고이만년의 뒤통수에 참수당함 475년
      이때 먼저 도망간 백제 개로왕 동생 문주는 신라에 구원 요청을 하고 신라는 구원군 1만명을 보냄
      이때 백제 귀족 군사는 신라 지원군 보다 더 늦게 도착하는 뒤통수를 때림 ㅋㅋ
      백제 문주는 수도를 웅진으로 옮기고 비참하게 살아남음
      한국사 역사상 강제로 쫒겨서 수도를 옮긴건 백제가 유일함 ㅋㅋㅋ
      이때 또 골때리는건 한성 함락 이후 백제가 위기 상황을 겪을 때 일부 지방 세력은 사실상 독립하여 자체 국호로 외국에 사신을 보내는 통수까지 침
      한성이 무너진 이후로 백제 왕권은 그야말로 좁밥이 되어 대성팔족의 뒤통수가 시작 됨
      결국 백제 문주왕도 백제 배신자의(좌평 해씨가문) 뒤통수로 죽임당함 477년
      문주왕이 죽자 아들인 심근왕이 왕위에 올랐으나
      심근왕 세력인 진씨 가문과 해씨 가문이 서로 배신하며 뒤통수 쳐서 수천명의 군사가 죽음 ㅋㅋㅋ
      결국 심근왕도 3년만에 의문사로 죽음 (진씨 가문의 뒤통수로 추정함) 479년
      진씨 세력은 다음으로 동성왕을 지들 손으로 뽑음 479년
      왜를 끌여들여 계속 신라의 뒤통수를 쳤던 백제는 염치없이 동성왕때에 또 비굴하게 신라에 사신을 보내 청혼을 요청함 493년
      신라왕은 자신의 여식을 보내지 않고 신하인 이벌찬 비지의 딸을 보냄 ㅋㅋㅋ 493년
      동성왕은 신라 이벌찬 비지의 딸과 결혼 함
      동성왕 또한 어김없이 백제 배신자 백가의 뒤통수에 의해 죽임당함 501년
      백제왕은 대부분이 배신자의 통수 통수 통수에 의해 죽었음 ㅋㅋㅋ
      15대 침류왕, 16대 진사왕, 17대 아신왕, 폐왕 설례, 19대 구이신왕, 20대 비유왕, 22대 문주왕, 23대 삼근왕, 24대 동성왕이 모두 뒤통수로 죽임을 당함
      21대 개로왕은 고구려 뒤통수 치다 백제인 배신자 고이만년에게 참수당하고
      26대 성왕은 신라 뒤통수 치다 참수당함
      이후 27대 위덕왕, 태자 아좌, 28대 혜왕, 29대 법왕도 뒤통수로 추정되는 의문사를 당함
      백제는 정권 교체 자체가 곧 왕의 시해 즉, 뒤통수를 뜻하는거였음
      3탄도 기대하세요^^
      아 참고로 전라도는 백제가 아니예요
      백제 말기까지 백제와 군사충돌이 있었던 변두리 마한입니다
      벡제는 서울,경기,충청권이예요

    • @nature5120
      @nature5120 3 года назад +2

      @종남은못말려 지배층이 부여에서 나온것과 해당 나라의 구성원의 종족이 다른데
      어떻게 고구려 백제의 조상이 같은 동족이라고 말하는거죠?
      부여의 시조인 동명이 북적 흉노라는건 알고 있는건가요?

    • @user-xg8wb5wb7j
      @user-xg8wb5wb7j Год назад

      @@nature5120 / 부여의 시조 동명이 '북적 흉노'라는 증거가 어디에 있는지요? 애초 몽골 고원에 있는 종족이나 민족이 매우 유동적이었던 고대임을 감안하면 그렇게 단정적으로 말하기는 매우 어렵습니다. 더구나 고고학적으로 부여가 탄생한 것으로 보이는 기원전 3세기는 흉노가 유목 제국을 이루기 위해 혹은 중원 세력과의 이런저런 관계로 인해 부여에 손을 뻗을 계제도 아니었습니다. 문헌 사료와 고고학 자료는 파악하시고 자기 주장을 하심이 어떠하신지?

  • @user-kr8yn5me6e
    @user-kr8yn5me6e 4 года назад +7

    신라에는 영웅 애국자 하지만 우리민족에게는 불행.차라리 고구려가 통일을 했으면 우리북쪽땅이 지금보다 더 넓어졌을지도.

    • @user-bo3ju8kd8j
      @user-bo3ju8kd8j 4 года назад +3

      역사에 만약은 없지만 고구려가 통일했으면 우리 중국말 쓰고 있지 않을까 싶은데요 만주족이 한족을 무력으로 지배했어도 결국 한족에 동화돼서 없어졌듯이 한국인의 정체성도 없어졌을지도

    • @user-kt8yp5ho2y
      @user-kt8yp5ho2y 4 года назад +1

      강희종 ㅇ 저때 민족주의 없었음.

    • @user-yq3sb9ud2m
      @user-yq3sb9ud2m 4 года назад +2

      지랄허네대제국진요금몽골청나라도
      중궈에동화돼어민족사라졌는데....

    • @nature5120
      @nature5120 3 года назад +1

      신라와 우리민족이 서로 다릅니까?
      님 조상은 통일신라때 중국에 살았나보죠? ㅋㅋ

    • @user-hn2ke3cx9z
      @user-hn2ke3cx9z 3 года назад +1

      고구려가 통일 했으면 지금의 한반도는 중국땅이 됬을 겁니다. 발해도 망했슴니다.신라의 임전무퇴. 화랑도정신이 그냥 있는게 아닙니다.

  • @dennislee1802
    @dennislee1802 4 года назад +9

    외세의 힘을 빌어 통일한게 자랑인가? 수치스러운 역사다.

    • @PELLACO1
      @PELLACO1 4 года назад +2

      그래서 당나라도 몰아냈잖아.
      그렇게 싫으면 중국으로 가세요.

    • @user-fe8ky5qy1z
      @user-fe8ky5qy1z 3 года назад +2

      힘은빌렸지 하지만 그때 백제 고구려 둘다 개판이었음 ㅋㅋ

    • @nature5120
      @nature5120 3 года назад +1

      외세의 힘을 빌려 나라세운 대한민국은 수치스럽지 않습니까?

    • @user-hm8op8bv1h
      @user-hm8op8bv1h 3 года назад +1

      북한에 정통성을 둔 전교조 교육과 지역주의 열등감이 뒤섞여 신라 통수 거리는 사람들을 위해 준비했습니다
      이름 하여 "백제의 뒷통수 열전"
      -------------------------------------------------------------------------------------------------------------------------------------
      백제는 항상 왜의 군사지원을 받음
      광개토대왕비에는 유독 백제를 “ 백잔”이라 비하함
      고구려가 거란의 공격을 받을때 백제는 고구려의 뒷통수를 쳐서 공격함 393, 4, 5년
      백제 아신왕은 왜의 도움을 받아 숙부인 진사왕 뒤통수를 쳐서 죽이고 왕위에 오름 392년
      왕권 교체 구테타도 왜의 도움을 받았다는 말임 ㅋㅋ
      백제 아신왕은 직접 광개토한테 무릎을 꿇고 "앞으로 영원히 노예가 되겠다" 맹세함 396년
      또다시 뒤통수를 계획한 아신왕은 왜의 군사 지원을 받는 조건으로 태자 전지왕을 일본에 볼모로 보냄 397년
      왜와 통교를 끊겠다고 무릎꿇고 서약했으나 또 뒤통수를 치고 왜를 끌여들임 399년
      왜를 끌여들여서 한 짓이 신라를 공격한것임 ㅋㅋ
      이때 또다시 고구려 뒤통수 칠 준비하자 백성들이 신라,왜로 도망가고 백제왕족 유즈키노키미 가 대인구를 이끌고 야마토로 망명 399년
      이때 왜국의 군사지원을 얻으려고 태자도 보내고 아직기,왕인도 보내고 하면서 실질적으로 왜국을 키워줌 (6.25때 일본이 폭풍성장 한것처럼)
      영원히 노예가 되겠다고 무릎 꿇고 맹세했던 백제는 또다시 고구려의 뒤통수를 침
      그것도 왜놈을 끌여들어 고구려를 또 침 404년
      심지어 고구려는 후연과 전쟁을 하고 있었으므로 백제 종특 뒤통수가 제대로 나온거임 404년
      백제 아신왕이 죽자 동생 훈해가 섭정을 했는데 막내동생이 뒤통수를 쳐서 형을 죽이고 왕이 됨 405년
      군사 지원을 받기 위해 왜에 볼모로 갔던 전지가 왜의 도움을 받아 삼촌을 뒤통수 쳐 죽이고 왕이 됨 405년
      또다시 왕권 교체 구테타를 왜의 도음을 받았다는 말임 ㅋㅋㅋ
      이게 수백년에 걸친 사건이 아니라 단 10년 동안 일어난 일이라는 것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 뒤로로 백제의 통수는 이루말할 수 없이 굉장함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정말 배신과 뒤통수의 심볼이 바로 "백제"임
      2탄
      왜놈을 끌여들여 신라의 뒤통수를 쳤던 백제는(비유왕) 고구려에 밀려 수세에 몰리자 염치없이 신라에 화친을 요청함 ㅋㅋㅋㅋ
      그것도 비굴하게 3번이나 조공 갖다바치며 요청함 433년 7월, 434년 2,9월
      그 후 신라는 군사를 보내 백제를 여러번 도와줬지만 백제는 또 신라의 뒤통수를 침 (관산성전투 후술하겠음)
      백제 개로왕은 중국에 비참하게 구걸하면서 고구려 좀 쳐달라고 애걸복걸 함 472년
      ("마땅히 저의 딸을 보내어 후궁에서 청소를 하게 하고, 아울러 자제들을 보내어 마구간에서 말을 먹이게 하겠으며 한 치의 땅이나 한 사람의 필부(匹夫)라도 감히 저의 것이라 생각하지 않겠습니다." )
      위 사실을 알게된 고구려 장수왕은 백제 정벌에 나섬 475년
      성이 함락당하자 개로왕은 뒷구멍으로 도망쳤는데 백제인 배신자 재증걸루, 고이만년의 뒤통수에 참수당함 475년
      이때 먼저 도망간 백제 개로왕 동생 문주는 신라에 구원 요청을 하고 신라는 구원군 1만명을 보냄
      이때 백제 귀족 군사는 신라 지원군 보다 더 늦게 도착하는 뒤통수를 때림 ㅋㅋ
      백제 문주는 수도를 웅진으로 옮기고 비참하게 살아남음
      한국사 역사상 강제로 쫒겨서 수도를 옮긴건 백제가 유일함 ㅋㅋㅋ
      이때 또 골때리는건 한성 함락 이후 백제가 위기 상황을 겪을 때 일부 지방 세력은 사실상 독립하여 자체 국호로 외국에 사신을 보내는 통수까지 침
      한성이 무너진 이후로 백제 왕권은 그야말로 좁밥이 되어 대성팔족의 뒤통수가 시작 됨
      결국 백제 문주왕도 백제 배신자의(좌평 해씨가문) 뒤통수로 죽임당함 477년
      문주왕이 죽자 아들인 심근왕이 왕위에 올랐으나
      심근왕 세력인 진씨 가문과 해씨 가문이 서로 배신하며 뒤통수 쳐서 수천명의 군사가 죽음 ㅋㅋㅋ
      결국 심근왕도 3년만에 의문사로 죽음 (진씨 가문의 뒤통수로 추정함) 479년
      진씨 세력은 다음으로 동성왕을 지들 손으로 뽑음 479년
      왜를 끌여들여 계속 신라의 뒤통수를 쳤던 백제는 염치없이 동성왕때에 또 비굴하게 신라에 사신을 보내 청혼을 요청함 493년
      신라왕은 자신의 여식을 보내지 않고 신하인 이벌찬 비지의 딸을 보냄 ㅋㅋㅋ 493년
      동성왕은 신라 이벌찬 비지의 딸과 결혼 함
      동성왕 또한 어김없이 백제 배신자 백가의 뒤통수에 의해 죽임당함 501년
      백제왕은 대부분이 배신자의 통수 통수 통수에 의해 죽었음 ㅋㅋㅋ
      15대 침류왕, 16대 진사왕, 17대 아신왕, 폐왕 설례, 19대 구이신왕, 20대 비유왕, 22대 문주왕, 23대 삼근왕, 24대 동성왕이 모두 뒤통수로 죽임을 당함
      21대 개로왕은 고구려 뒤통수 치다 백제인 배신자 고이만년에게 참수당하고
      26대 성왕은 신라 뒤통수 치다 참수당함
      이후 27대 위덕왕, 태자 아좌, 28대 혜왕, 29대 법왕도 뒤통수로 추정되는 의문사를 당함
      백제는 정권 교체 자체가 곧 왕의 시해 즉, 뒤통수를 뜻하는거였음
      3탄도 기대하세요^^
      아 참고로 전라도는 백제가 아니예요
      백제 말기까지 백제와 군사충돌이 있었던 변두리 마한입니다
      벡제는 서울,경기,충청권이예요

    • @user-hn2ke3cx9z
      @user-hn2ke3cx9z 3 года назад +5

      외세라뇨 착각하지 마세요 당시엔 신라 고구려 백제는 서로 다른 국가이자 다른 민족입니다. 그리 따지면 백제는 제일 먼저 왜를 끌어 들여 신라 관산성을 쳤슴니다 신라의 통일로 우리는 하나가 이미 됬습니다 열등감 가지면 안됩니다.

  • @user-tn5ss8vb1e
    @user-tn5ss8vb1e 4 года назад +12

    저때부터 경상도 인간들이 간사했군요
    자기 익익을 위해선 물불 안가리고
    쑤심ㅋㅋㅋ

    • @user-tn5ss8vb1e
      @user-tn5ss8vb1e 4 года назад +1

      @대 신라후예 진흥 매금대왕싸이코ㅋㅋ

    • @user-uh7en2ie9u
      @user-uh7en2ie9u 3 года назад +1

      백제는 동명왕이 부여통수치고 내려와서 나라만들었고, 후에 부흥운동때는 흑수상치랑 장군이 통수만 3번쳐서 나라가 망했는데 이래서 백제 출신들은 통수를 치는게 전통인가요?

    • @user-hm8op8bv1h
      @user-hm8op8bv1h 3 года назад

      북한에 정통성을 둔 전교조 교육과 지역주의 열등감이 뒤섞여 신라 통수 거리는 사람들을 위해 준비했습니다
      이름 하여 "백제의 뒷통수 열전"
      -------------------------------------------------------------------------------------------------------------------------------------
      백제는 항상 왜의 군사지원을 받음
      광개토대왕비에는 유독 백제를 “ 백잔”이라 비하함
      고구려가 거란의 공격을 받을때 백제는 고구려의 뒷통수를 쳐서 공격함 393, 4, 5년
      백제 아신왕은 왜의 도움을 받아 숙부인 진사왕 뒤통수를 쳐서 죽이고 왕위에 오름 392년
      왕권 교체 구테타도 왜의 도움을 받았다는 말임 ㅋㅋ
      백제 아신왕은 직접 광개토한테 무릎을 꿇고 "앞으로 영원히 노예가 되겠다" 맹세함 396년
      또다시 뒤통수를 계획한 아신왕은 왜의 군사 지원을 받는 조건으로 태자 전지왕을 일본에 볼모로 보냄 397년
      왜와 통교를 끊겠다고 무릎꿇고 서약했으나 또 뒤통수를 치고 왜를 끌여들임 399년
      왜를 끌여들여서 한 짓이 신라를 공격한것임 ㅋㅋ
      이때 또다시 고구려 뒤통수 칠 준비하자 백성들이 신라,왜로 도망가고 백제왕족 유즈키노키미 가 대인구를 이끌고 야마토로 망명 399년
      이때 왜국의 군사지원을 얻으려고 태자도 보내고 아직기,왕인도 보내고 하면서 실질적으로 왜국을 키워줌 (6.25때 일본이 폭풍성장 한것처럼)
      영원히 노예가 되겠다고 무릎 꿇고 맹세했던 백제는 또다시 고구려의 뒤통수를 침
      그것도 왜놈을 끌여들어 고구려를 또 침 404년
      심지어 고구려는 후연과 전쟁을 하고 있었으므로 백제 종특 뒤통수가 제대로 나온거임 404년
      백제 아신왕이 죽자 동생 훈해가 섭정을 했는데 막내동생이 뒤통수를 쳐서 형을 죽이고 왕이 됨 405년
      군사 지원을 받기 위해 왜에 볼모로 갔던 전지가 왜의 도움을 받아 삼촌을 뒤통수 쳐 죽이고 왕이 됨 405년
      또다시 왕권 교체 구테타를 왜의 도음을 받았다는 말임 ㅋㅋㅋ
      이게 수백년에 걸친 사건이 아니라 단 10년 동안 일어난 일이라는 것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 뒤로로 백제의 통수는 이루말할 수 없이 굉장함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정말 배신과 뒤통수의 심볼이 바로 "백제"임
      2탄
      왜놈을 끌여들여 신라의 뒤통수를 쳤던 백제는(비유왕) 고구려에 밀려 수세에 몰리자 염치없이 신라에 화친을 요청함 ㅋㅋㅋㅋ
      그것도 비굴하게 3번이나 조공 갖다바치며 요청함 433년 7월, 434년 2,9월
      그 후 신라는 군사를 보내 백제를 여러번 도와줬지만 백제는 또 신라의 뒤통수를 침 (관산성전투 후술하겠음)
      백제 개로왕은 중국에 비참하게 구걸하면서 고구려 좀 쳐달라고 애걸복걸 함 472년
      ("마땅히 저의 딸을 보내어 후궁에서 청소를 하게 하고, 아울러 자제들을 보내어 마구간에서 말을 먹이게 하겠으며 한 치의 땅이나 한 사람의 필부(匹夫)라도 감히 저의 것이라 생각하지 않겠습니다." )
      위 사실을 알게된 고구려 장수왕은 백제 정벌에 나섬 475년
      성이 함락당하자 개로왕은 뒷구멍으로 도망쳤는데 백제인 배신자 재증걸루, 고이만년의 뒤통수에 참수당함 475년
      이때 먼저 도망간 백제 개로왕 동생 문주는 신라에 구원 요청을 하고 신라는 구원군 1만명을 보냄
      이때 백제 귀족 군사는 신라 지원군 보다 더 늦게 도착하는 뒤통수를 때림 ㅋㅋ
      백제 문주는 수도를 웅진으로 옮기고 비참하게 살아남음
      한국사 역사상 강제로 쫒겨서 수도를 옮긴건 백제가 유일함 ㅋㅋㅋ
      이때 또 골때리는건 한성 함락 이후 백제가 위기 상황을 겪을 때 일부 지방 세력은 사실상 독립하여 자체 국호로 외국에 사신을 보내는 통수까지 침
      한성이 무너진 이후로 백제 왕권은 그야말로 좁밥이 되어 대성팔족의 뒤통수가 시작 됨
      결국 백제 문주왕도 백제 배신자의(좌평 해씨가문) 뒤통수로 죽임당함 477년
      문주왕이 죽자 아들인 심근왕이 왕위에 올랐으나
      심근왕 세력인 진씨 가문과 해씨 가문이 서로 배신하며 뒤통수 쳐서 수천명의 군사가 죽음 ㅋㅋㅋ
      결국 심근왕도 3년만에 의문사로 죽음 (진씨 가문의 뒤통수로 추정함) 479년
      진씨 세력은 다음으로 동성왕을 지들 손으로 뽑음 479년
      왜를 끌여들여 계속 신라의 뒤통수를 쳤던 백제는 염치없이 동성왕때에 또 비굴하게 신라에 사신을 보내 청혼을 요청함 493년
      신라왕은 자신의 여식을 보내지 않고 신하인 이벌찬 비지의 딸을 보냄 ㅋㅋㅋ 493년
      동성왕은 신라 이벌찬 비지의 딸과 결혼 함
      동성왕 또한 어김없이 백제 배신자 백가의 뒤통수에 의해 죽임당함 501년
      백제왕은 대부분이 배신자의 통수 통수 통수에 의해 죽었음 ㅋㅋㅋ
      15대 침류왕, 16대 진사왕, 17대 아신왕, 폐왕 설례, 19대 구이신왕, 20대 비유왕, 22대 문주왕, 23대 삼근왕, 24대 동성왕이 모두 뒤통수로 죽임을 당함
      21대 개로왕은 고구려 뒤통수 치다 백제인 배신자 고이만년에게 참수당하고
      26대 성왕은 신라 뒤통수 치다 참수당함
      이후 27대 위덕왕, 태자 아좌, 28대 혜왕, 29대 법왕도 뒤통수로 추정되는 의문사를 당함
      백제는 정권 교체 자체가 곧 왕의 시해 즉, 뒤통수를 뜻하는거였음
      3탄도 기대하세요^^
      아 참고로 전라도는 백제가 아니예요
      백제 말기까지 백제와 군사충돌이 있었던 변두리 마한입니다
      벡제는 서울,경기,충청권이예요

    • @user-tb4rd2eo2v
      @user-tb4rd2eo2v 2 года назад +1

      ㅇㅇ 맞아요 신라는 절대로 단한번도 통일한적 없음. 식민사학자들에 의해 청천강 이남으로 통일 이루었다고 하는데 절대로 이건 통일이 아님. 당나라에 의해 지배당한 역사적 치욕일 뿐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님.
      엄연히 고조선의 준왕이 익산에 자리잡았고. 부여민족 고구려 백제를 건국하였고, 삼한이 이 적통을 이어 마한 진한 변한이 자리잡았으며, 신라만 북방 경쟁에서 밀린 패잔병 김일제 흉노족들에 의해 도륙된 경상도 지역이 바로 흉노들의 거점이었지만, 부여 고구려 백제 마한 세력은 엄연히 한뿌리에서 나왔으며, 당나라에 의해 고구려 백제가 멸망했지만, 그 뿌리는 아직도 고려 조선을 거쳐 그대로 이어져 왔고. 단지 경상도만 타민족으로 절대 같은 한민족이 아님이 이미 역사적 사실로 드러난 마당에 무슨 한민족 직계조상이 신라라니.
      미친거 아닌가 싶네요.
      강원도 경기도 서울 전라 충청 제주까지 모두 부여 예맥계열의 한민족이지만 경상도지역만 흉노 김일제에 장악당한 타 민족국가이고 절대 한민족이 아니다. 라는 것은 이미 학계 정설이고. 신라의 뿌리가 흉노라는 것은 KBS 역사스페셜에서 이미 방송한 사료가 있습니다. 절대 신라는 한민족이 아닌, 오랑케 북방경쟁에서 밀린 흉노들에 의해 도륙당한 지역이고. 절대 한민족이 아닙니다. 사실은 정확히 해주세요. 신라는 절대 한민족이 아님. 신라만.

    • @user-xg8wb5wb7j
      @user-xg8wb5wb7j Год назад

      @@user-uh7en2ie9u / 뭐든지 극단으로 역사를 보는 것은 문제가 있다 봅니다. 그나저나 '백제는 동명왕이 부여통수치고 내려와서 나라만들었고'라는 근거가 어디에 있는지? 엄밀히 말해 부여 동명왕이 아닌 고구려 동명성왕 고추모의 '배신'으로 백제 창업 세력이 남하한 것입니다만? 흑치상지의 경우도 그가 백제를 배신한 것이지 백제가 흑치상지를 배신한 것과는 거리가 있는데요? 흔히 말하는 배신이든 뭐든 하는 것은 3국이 모두 감행한 바가 있습니다만. 이것은 특정 국가만의 이야기가 아닌데요? 다만 민족문제 어쩌고와 상관 없이 김춘추의 '얼치기 외교'는 신라 입장에서 보아도 어처구니 없는 짓이었지요. 당장 지 증조부인 진흥왕이나 하다 못해 아들인 문무대왕에 비해서도 김춘추의 모자람은 변명의 여지가 없습니다. 김춘추가 한 짓이라고는 당나라에 징징대기와 X싸질러대기였지요. 문무대왕과 유신공이 난국을 잘 수습했기 때문에 김춘추는 체면 치레를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 @user-sh7ms9yr6g
    @user-sh7ms9yr6g 4 года назад +11

    김춘추 모사꾼이네
    좋게 보이질않네........
    오랑캐 힘빌려 통일한게 정당한것인지
    통일되고 얼마나 많은 땅을 내주었냐
    내눈에는 어찌 좋게 보이질않네

    • @nature5120
      @nature5120 3 года назад +3

      외세(중국)의 힘을 빌려 나라를 지킨 북한은 왜 비난안하지?
      외세(미국)의 힘을 빌려 나라세운 대한민국은 왜 비난 안하지?
      수차례 한반도 땅에 왜구를 끌여들여 신라와 고구려를 친 백제는 왜 비난 안하지?
      수차례 중국에 조공 갖다바치며 고구려 같이 치자고 구걸한 백제는 왜 비난 안하지?
      통일되고 땅은 누구한테 내준거지?

    • @user-hn2ke3cx9z
      @user-hn2ke3cx9z 3 года назад +1

      @@nature5120 옳습니다.

    • @user-tb4rd2eo2v
      @user-tb4rd2eo2v 2 года назад

      @@nature5120 피해의식 열등감 버려라 경상도 천민것들아.

    • @user-xg8wb5wb7j
      @user-xg8wb5wb7j Год назад

      @@user-hn2ke3cx9z / 이것은 외세 어쩌고의 문제와 상관 없이 김춘추의 '얼치기 외교'가 근본 문제입니다. 당장 지 증조부인 진흥왕이나 아들 문무대왕의 유능함에 비하면 한참을 모자란 외교질이지요. 진흥왕과 문무대왕은 상황에 맞게 이른바 외교에서의 '농도 조절'을 했습니다. 반면 김춘추가 한 짓이라고는 당나라에 징징대기 그리고 X싸지르기에 불과했지요. 이것을 수습하느라 문무대왕과 유신공 특히 문무대왕이 생고생(!)을 하게 된 것은 덤이고요. 백제의 경우 와코쿠(왜국)의 용병을 데리고 온 것을 신라가 당군 끌어온 것과 동일선상에서 논하는 것이 타당한지도 의문이고요. 왜냐하면 김춘추가 한 짓은 '빈대 잡으려고 초가삼간 태운다'의 전형이기 때문입니다. 적어도 백제가 와코쿠 용병 데리고 온 것은 그런 것과는 거리가 멀었지요. 다행히도 유신공의 불퇴전의 의지와 문무대왕의 영명한 '화전양면정책' 때문에 X싸지른 김춘추가 욕 덜 먹고 넘어갔을 따름입니다. 원래 Nature 즉 하이러너의 답변을 님의 답변에 쓸 계획은 전혀 없었습니다만 님이 Nature의 취지에 옳다 하셨으니 거기에 대해서도 일부 반론을 제기했음을 밝히는 바입니다.

  • @youngminpark8002
    @youngminpark8002 11 месяцев назад

    노잼이라는 생각이든다 어쩌라는거지 노잼노잼 알빤가 ㅎㅎㅎ 꺼져꺼져 호호 난 알파 mz한태 안밀리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