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인이 그린 임진왜란1 이순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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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Опубликовано: 14 ноя 2024

Комментарии • 336

  • @망무새-n7w
    @망무새-n7w Год назад +4

    대한민국 사람 대부분은
    인정하면 지는거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짙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인정을 하고 안하고는 한끗 차이다.
    인정 없이 고집만 부린다면
    상대와 척지고 끝이지만
    인정을 하면 상대의 존중과 배움까지 따라온다.
    속시끄러울 일도 없다.
    경우에따라..

  • @김창성-z1c
    @김창성-z1c Год назад +2

    과오를 전혀 찾을수 없는 민족의 위인입니다 신급 입니다

  • @docruelee5714
    @docruelee5714 Год назад +2

    감히 조선에 과분한 성웅이었다..
    그 가치를 오히려 일본이 알아주는구나

  • @klausfeuermann3825
    @klausfeuermann3825 Год назад +1

    9:33 다카기 마사오가 생각나네...

  • @아델리아-v8s
    @아델리아-v8s Год назад

    이나라가 얼마나 한심한지 지도자 얼마나 중요한데 하 이순신도 참 통탄하고 내가 이런 꼴 보자고 내 나라를 위해 열심히 싸웠나 하실겁니다 멍청한 국회의원들아

  • @rose-gd
    @rose-gd Год назад +3

    갈대밭은 강에 있지 싶은데요 전쟁은 다 바다에서 일어났다고 배웠는데요🤔🤔
    일본의 정체가 뭘까요? 자신의 나라를 패하게 한 자를 기리고 있다니🤔🤔

  • @김종길-g2k
    @김종길-g2k 11 месяцев назад +1

    허걱 갈대밭으로 유인하여 궤멸시킨 명랑해전이라니 ㄷㄷㄷㄷ 바다에도 갈대 밭이 있을수 있네

  • @eqirm
    @eqirm 2 года назад +5

    영웅중에 제일영웅 이순신장군. 우리나라가 망하더라도 그의 이름은 역사에 길이 남을것이다.

    • @hiroono1
      @hiroono1 Год назад +1

      일본인은 괴수가 실존하지 않는 것을 이해하고 고질라 영화를 즐길 수 있지만, 한국인은과 픽션과 역사적 사실을 구별할 수 없는 것 같다. 이순신은 23전 23승이 아니다. 3승 20패 정도다. 이순신이 이긴 것은 처음 2개월 정도의 한산도 해전까지이다. 그 후는 모두 패주하고 있는 것이 조선왕조실록이나 난중일기 등에서도 분명하다.

  • @sovereigntylux
    @sovereigntylux 2 года назад +6

    이순신이 만약 일본군 장수였더라면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 @yhanjisu3534
      @yhanjisu3534 2 года назад

      나라면 ㅋㅋ ㅅㅂ...
      쌈질은 안댈것같으니 새 전술(대포) 준비하고
      수군들 교육 빡쎄게 시키고
      온힘을 다해서 막앗는데
      현지 실황이나 전투는 ㅈ도 모르는 놈들이 모함해서(이때 원균시키가 선조한테 장계 올려서,
      이순신은 겁장이고 자신이라면 부산본진 박살낸다고 호언장담함,
      이순신 하옥되고 원균이 수군통제사 됏지만 실상을 알고선 미적대다가 권율한테 곤장쳐맞고
      무대포 출진 > 칠천량에서 개처발림. 이순신이 힘들게 모은 판옥선 100여척 넘게 말아드심.)
      한양으로 끌려가고 고문까지.
      83세 어머니는 자기 죽기전 아들 얼굴 마지막 보겟다고 올라오시다 객사하시고..
      (선조가 다시 수군통제사 맡으라해서 내려가는중에 소식을 들은지라 장례도 못치룸, 잘나신 어명이 우선이라...)
      나같으면 ㅈ같아서...

    • @애벌래-z5l
      @애벌래-z5l 2 года назад +2

      일본에는 이순신 장군보다 더 뛰어난 장수가 있어요. 원균이라고 싸우지도 않고 판옥선 170척 거북선7척을 전멸시킴. 대단한 일본장수임

  • @imshining
    @imshining 2 года назад +9

    일본도 참 대단한 이유가 여기있네... 자신을 패하게 한 적장을 두려워하고 존경하고 계승하고 발전시키고... 이부분 참 멋지네

  • @정두식-f2n
    @정두식-f2n Год назад

    현재 우리나라 화폐 가치로, 100만원권에 올려야 되는 분입니다.

  • @이병정-q2w
    @이병정-q2w 2 года назад +40

    항상 근거가 풍부한 내용 전개가 좋네요
    항상 응원합니다

    • @hiroono1
      @hiroono1 2 года назад

      이들은 이순신을 모델로 한 판타지이며, 일본인이 이것을 진실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일본인은 괴수가 실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고질라 영화를 아주 좋아한다. 그것과 동일하다. 한국인은 현실과 판타지의 구별이 없는 것 같다.
      어쨌든 이순신이 23전 23승이었다는 것은 거짓말이다. 실제로는 3전 20패 정도이다. 거북선이 일본군과 싸웠다고 하는 것도 거짓말이다. 와키자카가 미역을 먹고 이순신을 라이벌이라고 말한 것도 거짓말이다.

  • @성민기억법영어회화
    @성민기억법영어회화 2 года назад +3

    일본측 조선수군의 배를 보면 조선의 서적에 그려진것 유사하게 선수와 선미가 매우높다. 중국의 정크선도 그러하다. 포졸복을 입은 수군은 1명도 안보인다. 현재 한국이 복원시켜 물에 띄은 거북선은 조잡하다.

  • @keymankim2142
    @keymankim2142 2 года назад +26

    오십이 넘은 이나이에 이순신장군에 대해 몰랐던 것 알게 되어 너무 감사합니다.

    • @DSb-vn8qm
      @DSb-vn8qm 2 года назад

      Kbs난중일기 를 바탕으로 제작한 시리즈가 있는데요
      시작편 부터 유투브에 4편정도 있습니다 고뇌하는
      장군에 모습이 적나라 하게나오죠 60이넘은 나이에 1년전에 다시 봤는데요 생각하면 아직도
      가슴이뛰고 할말을 잃게 만듭니다 시대상을 알기위해 충무로 명보극장앞
      생가 주변에도 자주갔습니다
      이순신 장군을 연구하는
      모임이나 단체가 사회 곳곳에
      많습니다 세계적인 해군제독 인데도 충무로 생가 부근에서
      행사가 전혀없고 기념관도
      없는게 아쉽습니다

    • @hiroono1
      @hiroono1 2 года назад

      이들은 이순신을 모델로 한 판타지이며, 일본인이 이것을 진실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일본인은 괴수가 실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고질라 영화를 아주 좋아한다. 그것과 동일하다. 한국인은 현실과 판타지의 구별이 없는 것 같다.
      어쨌든 이순신이 23전 23승이었다는 것은 거짓말이다. 실제로는 3전 20패 정도이다. 거북선이 일본군과 싸웠다고 하는 것도 거짓말이다. 와키자카가 미역을 먹고 이순신을 라이벌이라고 말한 것도 거짓말이다.

    • @hiroono1
      @hiroono1 Год назад

      @kili
      한국인은 거짓말 동영상을 아주 좋아한다.

    • @hiroono1
      @hiroono1 Год назад

      @kili 한국인은 거짓말 동영상을 아주 좋아한다.

    • @hiroono1
      @hiroono1 Год назад

      @kili 한국인은 거짓말 동영상을 아주 좋아한다.

  • @successman7777
    @successman7777 2 года назад +34

    성웅 이순신 ....
    존경 이라는 단어로도 한없이 부족하도다...

    • @삼한
      @삼한 2 года назад +2

      영웅을 넘어 성웅이라고 까지 불리는데 “성웅? 그건 좀 에바 아님?” 이런 의견이 사실상 없음… 진짜 경이롭다

    • @seongkyungpark6900
      @seongkyungpark6900 2 года назад +2

      @@삼한 많습니다 의외로...

  • @데이빗핫셀호프
    @데이빗핫셀호프 2 года назад +2

    이순신 장군님이 일본 왜 의 장수 였다면 정말 핵무기 600개 정도의 재난 일겁니다.

  • @오오-u9x
    @오오-u9x 2 года назад +1

    감사하고 또 감사드립니다

  • @aibada6594
    @aibada6594 2 года назад +4

    이정도면 소개된 일본 고전들이 국수주의라고 단정하기는 곤란한듯 일단은 일본의 관점에서 썼고 - 이순신 장군을 빵에 보내고 명으로 빤스런을 하려고한 자들도 있었으니

  • @colt7057
    @colt7057 2 года назад +2

    구독합니다

  • @hayadoru
    @hayadoru 2 года назад +29

    03:58 당시 일본에서 조선을 '계림'으로 부르고 있는 게 흥미롭네요. 삼국시대 당시 백제와 깊은 관련이 있었던 왜는, 백제 부흥 투쟁 당시 기꺼이 원군을 보내 지원했었으나 결국 패퇴했고 이후 신라(계림)와는 척을 두고 지냈죠. 신라가 망한 이후 고려 왕조가 들어서고 일본으로 여러번 사신을 보냈으나, 일본은 고려를 백제를 망하게 한 계림을 계승한, 계림이나 마찬가지인 놈들이라며 끝끝내 고려가 내민 손을 잡지 않았던 걸로 압니다.
    사용하는 단어 하나만으로도 당시 사람들의 시대관이나 국가관을 엿볼 수 있는 것 같아 흥미롭습니다.

  • @대통운수-c9t
    @대통운수-c9t 2 года назад +3

    이순신장군님은 이제는 신으로추앙받습니다

  • @정재문-l2e
    @정재문-l2e 5 месяцев назад

    조선은 양란을 겪고도 그놈의 숭명사상 때문에 치욕을 겪었죠

  • @이학윤-t3d
    @이학윤-t3d 2 года назад +44

    지도자의 중요성을 극단적으로 알려주는 이순신장군님

    • @DSb-vn8qm
      @DSb-vn8qm 2 года назад +2

      혼신을 다해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처 싸운 장군에게
      어떤말로도 표현하기 힘들죠
      처음부터 전투를 서두르지 않은게 득이됐고 지형지물
      기상조건 모든것을 이용했지요 남해전투에
      핵심전략은 왜군에 보급로를 차단하는 것이였습니다
      장군님이 왜군은 언잰가 반드시 다시 처들어 온다 살려두시 말라고 했죠
      중국도 대만위협등 같은 위험한 존재입니다 장군님이 한시도 여러편 남겨는데요
      백성을 걱정하는 글도있고
      "한산섬 달밝은 밤에"
      이한시도 유명하죠
      중간부분에 "어디선가 일성호가"이부분은 그당시 장군님이 일성호는 피리소리란 뜻인데 어떤 깨닮음에 경지를 표현한듯한 여유로움이 보인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당시
      조선군에 최고 책임자가 장군님보다 3살 많은 같은 동내사람인
      유성룡이 였습니다
      그래서 중국에 해전등 병법과
      인문적인 지식 데이터와 군지휘관의 자세 용맹성등을
      전수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유성룡에 인물사진도
      장수다운 풍모입니다

    • @DSb-vn8qm
      @DSb-vn8qm 2 года назад +4

      글이 너무 길어졌네요
      다른 분들도 자세히 아시는
      좋을것 같아 마져 써봅니다
      물런 이순신은 지도력과
      준비성 그리고 천재성까지
      갖춘 분이 였을 것으로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극진한 충효정신을 보면 A형에 성격과 인물도
      유성룡과 범접한 풍채를
      가졌을 것으로 봅니다

    • @번개구름-b5z
      @번개구름-b5z 2 года назад +4

      대한민국 지도자: 윤석열

    • @DSb-vn8qm
      @DSb-vn8qm 2 года назад +8

      @@번개구름-b5z
      혹시 비교 하는건가요 ?
      윤당선자가 청와대 무서워서 피하는데 그러면 되겠나요

    • @요싴
      @요싴 2 года назад +9

      @@DSb-vn8qm 민주당 보다야

  • @임현준-c2t
    @임현준-c2t 2 года назад +20

    원균은 일본인에게도 가차없이 까이네^^ 을마나 못났으면 적에게도 까이나~~;;;

  • @sung-gyungkim1327
    @sung-gyungkim1327 2 года назад +7

    *이순신 장군에 관한 귀중한 사료 연구입니다.

  • @coinonebest8659
    @coinonebest8659 2 года назад +29

    훌륭한 정치인이 필요한 본보기. 이순신 장군님.

  • @user-csj1976
    @user-csj1976 2 года назад +40

    자기나라 해군을 대패시킨 적장 장군인데 매번 진급도 권력도없이 현장 지휘관으로 선빵 하고있으니 자신들의 입장에서는 왜 저렇게 헌신적이고 열심히 전투에 임할까?
    상상조차 안됐을것이다. 반대로 진정한 충신은 이순신같은 인물이라는것을 자신들의 거울을 통해 느꼈을테지
    이말은 결국 당시 조선의 권력자들은 책상공론만 하는 쓰레기 집단이었다는것이다.

  • @트레이더백
    @트레이더백 Год назад +2

    감사합니다 이순신 장군님

  • @dokpark5547
    @dokpark5547 2 года назад +22

    좋은 자료 감사합니다
    해외에서 사는 우키요에 그림 애호가인데요
    일본 무신 정권의 에도시대 1615 ㅡ1865에
    놀라운 회본 그림책과 우키요에 채색목판화가
    발달하여 역사그림뿐 아니고
    200여년 전 양잠 염전 여관 차밭 낚시 풍속화 여행화가 생생하게 그려져 또다른 역사서 가치가
    있어요.
    우키요에 임진란 부산성 공격, 진주성,여러 전도가
    칼라로 찍어 우동 곱배기 값에 팔았습니다
    뉴질랜드 오클랜드 도서관에만 이 분야 영문판 도서가 50종이죠.

    • @hiroono1
      @hiroono1 2 года назад

      이들은 이순신을 모델로 한 판타지이며, 일본인이 이것을 진실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일본인은 괴수가 실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고질라 영화를 아주 좋아한다. 그것과 동일하다. 한국인은 현실과 판타지의 구별이 없는 것 같다.
      어쨌든 이순신이 23전 23승이었다는 것은 거짓말이다. 실제로는 3전 20패 정도이다. 거북선이 일본군과 싸웠다고 하는 것도 거짓말이다. 와키자카가 미역을 먹고 이순신을 라이벌이라고 말한 것도 거짓말이다.

  • @byoungheeryu5363
    @byoungheeryu5363 2 года назад +7

    무조건 용맹한듯 무모하게 전투에 임하면 다죽는법이고
    지피지기 대응하는 장수가 참장수 인법
    원균은 전자였나보군 이순신은 후자였을거고
    지피지기에 환경을 최대한 활용한 창의성까지

    • @-Y-B-
      @-Y-B- Год назад +1

      원균이 용맹? 은 아니죠.. 살이 쪄서 도망도 제대로 못갔다더군요

  • @microcube3382
    @microcube3382 Год назад +1

    예~전에 해병복무했던 친한 형한테 들은 얘기가 1년에 한번씩 해상자위대 장교들이 충무공 이순신장군 동상앞에서 참배한다고 들었는데 이게 사실인지,,혹시 아시는분 안계신가요??

  • @손명재-q5z
    @손명재-q5z 2 года назад +15

    유튜브에서 이런 좋은 자료를 만날 줄은 .... 잘 보고 가며 머지않아 또 보러 오겠습니다.

    • @hiroono1
      @hiroono1 2 года назад

      이들은 이순신을 모델로 한 판타지이며, 일본인이 이것을 진실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일본인은 괴수가 실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고질라 영화를 아주 좋아한다. 그것과 동일하다. 한국인은 현실과 판타지의 구별이 없는 것 같다.
      어쨌든 이순신이 23전 23승이었다는 것은 거짓말이다. 실제로는 3전 20패 정도이다. 거북선이 일본군과 싸웠다고 하는 것도 거짓말이다. 와키자카가 미역을 먹고 이순신을 라이벌이라고 말한 것도 거짓말이다.

    • @손명재-q5z
      @손명재-q5z 2 года назад

      @@hiroono1 개소리를 정성껏 길게도 적어놨군요.

    • @hiroono1
      @hiroono1 2 года назад

      @@손명재-q5z 예를 들면 이하의 4개의 전투에서 이순신은 심하게 패했다. 한국인은 이들도 이순신이 이겼다고 거짓말을 하고 있다. 우스꽝스럽다.
      부산포해전 1592년 8월29일 이순신 등이 부산에 주둔한 일본군을 공격했지만 이길 수 없었다. 조선왕조실록
      명량해전 1597년 9월 16일 조수의 흐름에 의해 일시적으로 조선이 유리해져 일본군의 크루시마가 죽었지만 저녁이 되어 조수가 바뀌자 조선군은 철수했다. 일본에 쫓긴 이순신은 9월 21일에는 멀리 전라도 북단의 고군산도(군산 앞바다)까지 후퇴했다. 난중 일기, 정한록
      순천해전 1598년 10월 3일 명·조선군은 수륙 양면에서 이순신을 포함한 총공격을 했지만 일본군이 격퇴하고 조선군은 많은 사상자를 냈다. 조선왕조실록에는 삼로의 싸움(제2차 울산성의 싸움, 사천의 싸움, 순천의 싸움)에서 명·조선군은 모든 공격으로 패퇴하여 이에 따라 삼로로 나뉘었다 명·조선군은 녹을 수 있도록 함께 무너져, 인심은 무서워져, 도피의 준비를 했다고 기술되고 있다.
      노량해전 1598년 11월 18일 무혈철퇴의 쌍방 합의를 설치한 후 철퇴하려는 일본군에 대해 명국·조선군이 약속을 깨고 공격을 가했지만 일본이 격퇴하고 이순신은 죽었다.

  • @바람을가르는자-l6f
    @바람을가르는자-l6f 2 года назад +27

    진짜 얼마나 위대하고 잘나셨으면 선조까지 시기를 했을까? 선조는 이순신 장군님을 담을 그릇이 못되었지? 아!!!!슬프다 !!!!!

    • @dannykim6364
      @dannykim6364 2 года назад

      선조는 임진왜란때 아들인 광해의 선행으로 백성들의 광해에대한 추앙이 생기자 그것마저도 시기햇던 몬난인간이죠... 결국은 인조같은 인간이 임금이되어 또 외세침략을 받앗으니까요...

    • @삼한
      @삼한 2 года назад +4

      세종대왕님이 임진왜란 시절 왕이셨다면…
      대왕&성웅

    • @brickbrickbrick3206
      @brickbrickbrick3206 2 года назад

      전라좌수사 낙하산으로 꽂아주고 대신들이 반대했을때 쉴드쳐준게 선조임

    • @TaeJun_Kee
      @TaeJun_Kee Год назад

      ㄹㅇ. 패튼 죽인 아이젠하워 같네요 ㅋㅋ

    • @soominjung-de7jp
      @soominjung-de7jp Год назад +1

      근데 그런 이순신을 파격적으로 등용하고 승진시킨것도 선조임… 참 아이러니함..선조는 아마도 인재보는 눈은 특출났으나, 속이 좁았다고 보는게 맞은듯 싶음..

  • @시크릿미라클
    @시크릿미라클 2 года назад +3

    민족의 성웅 이순신 장군

  • @동해-d7k
    @동해-d7k 2 года назад +10

    감사합니다

    • @이해피-c1v
      @이해피-c1v 2 года назад

      나는 생각만큼 이순신을 존경하지 않는다. 이순신이라는 존재가 일본군 출신인 박정희가 정권을 잡으면서 마땅히 숭상해야 할 영웅만들기의 대상으로 이순신을 택한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1960년대부터 TV 드라마에서 툭하면 이순신 드라마가 나왔고 여러가지 이순신 영화가 나왔으며, 그런 전통은 지금까지 이어져 10년에 한번은 새로운 버젼의 이순신 드라마, 영화가 등장한다. 이 정도 띄워주면 영웅이 아니될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과연 영웅감인가 ? 삼도수군통제사가 되기 전 몇 번의 전투에서 승리했다. 그러나 전투다운 전투는 단 한번 한산도 해전이었다. 한산도해전이 끝나도 조정은 이순신을 승급, 승진시키지 않았다. 임진왜란 발발 후 1년도 안되어 천민 출신이던 한명련이 종 3품에 까지 파격적으로 오르고, 황진이 군졸에서 종 3품으로 오르는 동안 이순신은 승급이 없었다. 삼도수군통제사가 되어도 당분간 종 3품 전라좌수사의 승급이 그대로 유지되다가 마지못해 종 2품으로 올려준 정도이다. 한산도 해전 후 이순신은 통제영을 한산도로 옮긴다. 여러분은 이순신이 한산도 통제영에서 얼마의 기간을 별다른 전투도 없이 지낸 것으로 아는가. 4년에 약간 못 미치는 동안 이순신은 한산도에서 전투다운 전투 한번 없이 독수공방하며 지낸다. 여러분은 전쟁 기간 중의 4년이라는 기간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 2차대전 시 미국과 일본의 태평양 전쟁은 약 3.5년만에 끝난다. 세계 어느 전쟁사를 보아도 4년간 지속되는 전쟁은 예를 찾기 힘들다. 한산도에 본영을 설치할 시 이순신의 목표는 분명했다(그 후에 발생한 일로 유추하는 것이다). 견내량 사수를 통한 일본 수군의 서쪽으로의 전개를 틀어 막는 것이었다. 한산도 옆에는 거제도가 있다. 거제도에서는 바로 앞바다가 부산포이다. 견내량 사수작전은 올바랐는가. 한산도에 통제영을 두고 부산포를 치라는 명령때문에 이순신은 부산포를 친다. 왜적들은 화포의 사거리가 짧았으므로 산정상에다가 화포를 설치하고 쏘아댔다. 고작해야 일자진으로 들어가 부산포에 정박한 왜선 몇 척 박살내고 탈출해 나오는 게 할 수 있는 작전의 전부였다. 부산포를 친 목적은 부산-대마도-일본, 으로 이어지는 보급 루트를 격멸하는 것이었는데 이 목적을 달성할 수 없었다. 이순신은 이후 부산포 군수 거점을 초토화하여 상륙한 왜군에게 보급이 행해지지 못하도록 하는 전투의 기본 대원칙을 무시한 채 견내량 사수만 했다. 4년이라는 한산도 통제영 시절, 이순신은 왜 그렇게도 무기력했던가. 어떤 자료를 찾아보아도 신무기를 개발했다는 자료를 찾을 수 없으며 새로운 함정을 개발했다는 자료를 찾아볼 수 없으며, 새로운 전술을 개발했다는 자료를 찾아볼 수 없다. 이순신이 자기 본연의 임무가 견내량 사수라 보았다면, 조정에서는 부산포를 쳐서 부산포를 통한 보급을 단절시킴으로써 전쟁을 조기에 종결시키기를 원했다. 그런데 이순신은 4년이나 엉덩이 질기게 바닥에 대고 앉아 있었다. 6.25 때 인천상륙작전에 동원된 해병대는 제주도 모슬포 해병대 기지에서 단 2주간 훈련받고 인천상륙작전에 투입되었다. 전시에는 평시보다 시간을 5분의 1로 단축할 수 있다. 이순신이 갖고 있던 4년, 잘만 활용했으면 호남에서 군대를 징발하여 오늘날의 해병대에 해당하는 군대를 2만 내지 3만은 양성할 수 있었을 것이다. 2년간 공들이면 특수부대도 만들 수 있는 기간이다. 전시이기 때문이다. 이들 병력을 수송하면서 동시에 속도가 왜적의 세끼부네보다도 더욱 빠르고 함포사격까지 가능한 함정을 개발할 수 있었을 것이다. 천자총통,지자총통, 현자총통, 황자총통 중, 가장 작은 황자총통보다도 더 작은 총통을 다수 배에 싣고서 해병대들이 상륙한 다음, 포격전을 할 수 있도록 4인 1조로 들고 다닐 수 있는 화포를 개발할 수도 있었다. 난중일기에 보면 이순신은 천자총통, 지자총통이 왜적의 화포대비 사거리가 길고 화력이 좋아 흡족하다, 는 표현이 나온다. 이순신은 왜 화포의 구경을 더욱 키우고 포신 길이를 더 연장한 사거리가 더욱 긴 화포를 개발하지 않았던가. 천자총총은 곡사로 쏘면 800미터 내지 1000미터 날아가고 직사로 쏘면 100미터 날아간다. 1453년(임진왜란 140년전) 오스만투르크는 무게가 600Kg 나 하는 초거대 화포를 개발하고, 콘스탄티노플 점령 작전에 나섰다. 콘스탄티노플은 천년간 함락당한 적이 없는 난공불락의 이중성곽이었다. 거대화포 사격에 이틀만에 콘스탄티노플이 함락당했다. 이순신은 한산도 옆에 있는 왜군의 수중에 있던 거제도를 딱 한번 공격해보고는 더 이상 공격할 생각을 접어버렸다. 이 지점에서 조정과 괴리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조정은 거제도를 점령하고 부산포의 보급기지를 격파하고 나아가서 왜로부터 보급선이 올 때마다 원거리로 나가서 격침시켜 버리기를 원하였다. 조정의 요구는 무리한 것인가 ? 전쟁이 조선 땅에서 장기화되면 누구 손해인가 ? 이순신이 사거리 1.5Km에 달하는 장사정포를 새로 개발하고, 이런 장사정포를 효과적으로 발사 가능한 함정을 새로 개발하고, 오늘날의 해병대에 해당하는 병력을 3만명까지 양성하고, 그들 병력을 고속으로 이동시키며 화포를 발사할 수 있고, 함정에 실린 화포들을 쉽게 육지로 하역할 수 있는 함정을 개발하여, 거제도를 공격했으면 어찌되었을 것인가 ? 거제도를 점령하면 섬이므로 적의 공격에 대비하는 군대를 3000명 정도 상주시키고 나머지는 부산포 등의 공격에 동원하고 나머지는 적의 원해 보급선을 요격하는 임무에 투입했다면, 전황은 어찌되었을 것인가 ? 노량해전에서 조선의 함정은 속도가 느린 판옥선이다. 그러니 애초부터 도주하는 적의 세끼부네 함선들을 추격할 수 없었다. 적의 세끼부네 함정보다 속도가 더 빠른 함포사격이 가능한 함정이 있었다면 조선으로 건너온 적은 과연 살아 돌아갈 수 있었을 것인가 ? 내 지식으로는 이순신은 그다지 칭송받을 인물이 아니다. 이성계의 발끝도 따라가지 못한다. 이성계는 모두 불리한 상태에서 기이로운 전법으로 모두 역전시켰다. 이순신에게는 정공법은 있으되 기책이 없다. 나는 이순신은 존경하지 않는다. 그저 그런 장수이기 때문이다.

    • @SouthKorea-z3w
      @SouthKorea-z3w 2 года назад

      @@이해피-c1v 빨치산 후손이거나 조총련 좌익충이라 그런가? 북조선 몽골 DNA 여진족 이성계 조선이 그립냐? ㅋㅋㅋㅋㅋ

    • @이해피-c1v
      @이해피-c1v Год назад

      @kili 적의 관점에서 보는 것도 때로는 필요하겠지. 그러나, 나는 분노가 끓어올라 적의 일이라면 다 죽이고 다 가르고 싶을 뿐이다.

    • @kili-uv7jn
      @kili-uv7jn 5 месяцев назад +1

      ​@@이해피-c1v
      ruclips.net/video/Yi79ekE_Yp8/видео.html
      ruclips.net/video/adiKbfIqo-k/видео.htmlsi=Tvtx3b-xltOZwkIc

  • @최병택-k9i
    @최병택-k9i 2 года назад +23

    이순신 장군은 어찌보면 조선보다 일본에서 이순신 장군은 제대로 숭상을 받은거 같네요.

    • @dudrak7575
      @dudrak7575 2 года назад +2

      이런 생각을 가지도록 하는 것이 왜의 전략.
      대한국에 이순신 연구가가 참 많답니다.
      저도 배우는 중이고..

    • @yhanjisu3534
      @yhanjisu3534 2 года назад +1

      @@kwanseabchoi 뭐 우리나라에선 세종과 버금가는 영웅이죠.

  • @mwl8339
    @mwl8339 2 года назад +9

    정말 해설자말처럼 많은걸생각하게하는구나 영웅 ~~

  • @역사잼
    @역사잼 2 года назад +1

    갓본의 솔직함이 아름답다
    조센은 늘 정신승리만 하는데

  • @Goldnomad
    @Goldnomad 2 года назад +11

    고맙습니다~~

  • @younghochoi8197
    @younghochoi8197 2 года назад +11

    정작 우리는 이순신 장군에 대해 얼마나 알까 일본인들의 적국 장수의 좋은점을 연구발전시키는 집요함에 찬사를 보내야 하는걸까

  • @peterkang4484
    @peterkang4484 2 года назад +10

    우리의자랑 이순신장군

  • @이용현-z3j
    @이용현-z3j 2 года назад +39

    많은 데이터로 구성한, 영상 문사님 감사드립니다. 🌻

    • @hiroono1
      @hiroono1 2 года назад

      이들은 이순신을 모델로 한 판타지이며, 일본인이 이것을 진실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일본인은 괴수가 실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고질라 영화를 아주 좋아한다. 그것과 동일하다. 한국인은 현실과 판타지의 구별이 없는 것 같다.
      어쨌든 이순신이 23전 23승이었다는 것은 거짓말이다. 실제로는 3전 20패 정도이다. 거북선이 일본군과 싸웠다고 하는 것도 거짓말이다. 와키자카가 미역을 먹고 이순신을 라이벌이라고 말한 것도 거짓말이다.

  • @jkim949
    @jkim949 2 года назад +3

    한국의 여태후도 한신을 두려워해 죽여 그시신을 젓갈로 담궜다.

  • @자유-q4j
    @자유-q4j 2 года назад +6

    이순신은 신이다

  • @willykim500
    @willykim500 2 года назад +10

    일본의 특징이 넘사벽 절대강자앞에서는 비굴할만큼 숙인다는거..

  • @cys5600
    @cys5600 2 года назад +3

    일본 너희가 우리에게 했던짓을 다 조만간 되갑아 줄께 아주 처절하게 그 벌은 중국에게도 똑같이

  • @삶바른
    @삶바른 2 года назад

    2:40 이순신 장군

  • @고소미-n9s
    @고소미-n9s 2 года назад +50

    왜나라 회화 잘 봤습니다. 후손들이 부족하여 못챙겨드린 영웅을 역으로 왜인들이 섬기다니. 올바른 역사 공부를 해야하는 이유 입니다.

  • @travelingboy_
    @travelingboy_ 2 года назад +47

    훌륭한 컨텐츠 감사합니다. 싸~한 여운이 남네요.
    일본을 동경할 필요는 없지만 그 기질은 결코 얕잡아 봐서는 안될 것입니다.

    • @hiroono1
      @hiroono1 2 года назад

      이들은 이순신을 모델로 한 판타지이며, 일본인이 이것을 진실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일본인은 괴수가 실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고질라 영화를 아주 좋아한다. 그것과 동일하다. 한국인은 현실과 판타지의 구별이 없는 것 같다.
      어쨌든 이순신이 23전 23승이었다는 것은 거짓말이다. 실제로는 3전 20패 정도이다. 거북선이 일본군과 싸웠다고 하는 것도 거짓말이다. 와키자카가 미역을 먹고 이순신을 라이벌이라고 말한 것도 거짓말이다.

    • @travelingboy_
      @travelingboy_ 2 года назад +2

      @@hiroono1 주장에는 근거가 있어야 하는 법. 역사적 사료를 제시 바람.

    • @hiroono1
      @hiroono1 2 года назад

      @@travelingboy_ 한국인의 주장에 근거는 없다.
      그러면 이순신이 23전 23승이 아니었던 증거로서 r순신이 패한 4가지 예를 제시한다. 모두 조선 당시 기록에 있는 것이다.
      1. 부산포해전 1592년 8월29일 이순신 등이 부산에 주둔한 일본군을 공격했지만 이길 수 없었다. 조선왕조실록
      2. 명량해전 1597년 9월 16일 조수의 흐름에 의해 일시적으로 조선이 유리해져 일본군의 크루시마가 죽었지만 저녁이 되어 조수가 바뀌자 조선군은 철수했다. 일본에 쫓긴 이순신은 9월 21일에는 멀리 전라도 북단의 고군산도(군산 앞바다)까지 후퇴했다. 난중 일기, 정한록
      3. 순천해전 1598년 10월 3일 명·조선군은 수륙 양면에서 이순신을 포함한 총공격을 했지만 일본군이 격퇴하고 조선군은 많은 사상자를 냈다. 조선왕조실록에는 삼로의 싸움(제2차 울산성의 싸움, 사천의 싸움, 순천의 싸움)에서 명·조선군은 모든 공격으로 패퇴하여 이에 따라 삼로로 나뉘었다 명·조선군은 녹을 수 있도록 함께 무너져, 인심은 무서워져, 도피의 준비를 했다고 기술되고 있다.
      4. 노량해전 1598년 11월 18일 무혈철퇴의 쌍방 합의를 설치한 후 철퇴하려는 일본군에 대해 명국·조선군이 약속을 깨고 공격을 가했지만 일본이 격퇴하고 이순신은 죽었다.

    • @travelingboy_
      @travelingboy_ 2 года назад

      @@hiroono1 은 사쓰마 번을 지배한 시마즈 가문이 작성한 임진왜란 문헌. 일본인의 입장에서 쓰여진 일본인을 위한 기록. 논할 가치가 없다.
      그리고 23전 23승이든, 19승이든 10승이든, 이순신 장군이 조선을 구하고 일본의 침략을 격퇴한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결국 조선을 점령하지 못하고 철수하였다. 이 포인트가 한국인이 이순신 장군을 존경하는 지점이다.
      검성 미야모토 무사시가 " 상대를 불리하게 할 수는 있어도, 상대의 실력을 줄일 수는 없다"고 했었지. 내가 경계하는 일본인의 기질은 사실을 직시하고 부족함 점을 메우며 청출어람하는 것이다. 먼 역사의 일부분조차 불편하게 생각하며 스크레치난 자존심을 핥는 이들이 아니라...

  • @구름산-m6v
    @구름산-m6v 2 года назад +14

    옛날부터 항상 이순신장군님을 존경하며 우러러 봤지만 철천지 웬수인 적에게도 칭송 받는 것을 보니 다시 한번 더 존경심이 더해진다

  • @bskim5780
    @bskim5780 2 года назад +6

    감사합니다.

  • @박피스-p9f
    @박피스-p9f 2 года назад +4

    자신들을 높이고 조선을 비하시키는 분위기에서 조선에 폐배를 정당화 시키기 위해 이순신을 높이는 것 같네요 ㅋ

  • @vivacorea9
    @vivacorea9 2 года назад +2

    거짓말 영웅이 아니니깐 거짓 영웅으로 만들어 준 것이지

  • @sovereigntylux
    @sovereigntylux 2 года назад +6

    03:55 조선을 계림이라 표현한 것을 보면 일본의 당시 인식을 알 만 하다.

    • @이은희-y3x
      @이은희-y3x 2 года назад +1

      계림은 신라...일본입장에선 신라가 백제보다 더 무서운 기억이남아있거나 일본과 백제 동일시하면서 한반도침략을 신라로 쳐들어간다(백제 원수갚는다?)는 인식 이었던듯...

  • @user-heuueujgdm
    @user-heuueujgdm 2 года назад +13

    이순신 장군은 세계 역사가들도 역사상 세계 최고의 장군들 중 하나라고 인정했다고 들었네요

    • @seongkyungpark6900
      @seongkyungpark6900 2 года назад +2

      그거 조작입니다. 어디에도 없어요 그런거.

  • @아름다운제왕
    @아름다운제왕 2 года назад +28

    우리도 배울건배우자 까기만 하지말고~놀랍다 저시대에 적군의 수장을 인정하는거보면~

    • @wasabisweet2228
      @wasabisweet2228 Год назад

      조상들이 오랑캐라고 무시하던 일본한테 탈탈 털렸던 역사는 잊은채 맨날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개소리만 떠들어대는 쓸데없는 자존심만 쎈 냄비 민족에게는 불가능할 것 같아요. 국민성만 보면 미래가 없는 민족임.

    • @user-nf7ej2sh9q
      @user-nf7ej2sh9q Год назад +3

      침략자한테 뭘 배우라는거?

    • @wolfgray1003
      @wolfgray1003 Год назад +7

      ​​@@user-nf7ej2sh9q
      침략자한테는 배울게 없다고?
      진짜?
      진짜로 침략자한테는
      배울게 없다고 생각한다고?

    • @TaeJun_Kee
      @TaeJun_Kee Год назад

      @@user-nf7ej2sh9qㄹㅇ. 님 논리대로 6.25 때 남침한 북한이나, 고조선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많은 한반도의 국가들을 무너뜨린 중원~중공 그 악의 제국은 하나도 배우면 안됨.

    • @user-nf7ej2sh9q
      @user-nf7ej2sh9q Год назад +1

      @@wolfgray1003 세살아기도 임진왜란 터지면 배우는게 있어요 그건 당연한거고.. 맥락을 이해를 하세요 잼민아

  • @아저씨-r6c
    @아저씨-r6c 2 года назад +9

    이 영상을 보는 중에도 눈물만 납니다.

  • @sj2park115
    @sj2park115 2 года назад +26

    일본인들은 적이라도 존경받을 사람을 알아보고 예를 갖추고 평가를 한다. 우리나라에서 적군을 존경하는 글을 쓴다면 무조건 역적이나 매국노로 매장되었울것인데.

    • @네이쳐-w4v
      @네이쳐-w4v 2 года назад +3

      공감합니다

    • @delmont2793
      @delmont2793 2 года назад +10

      일본인들은 매우 분석적이고 객관적이죠.
      적이라 하더라도 그들의 장단점을 분석하고 자신들의 장점으로 활용하는
      그 특성이 그들이 한때 제국주의긴 하지만 강대국의 길을 걸었던 원동력이 아닐까 싶습니다.

    • @이석현-n6q
      @이석현-n6q 2 года назад +1

      이 뭔 ㄱㅐ짖는소리인지 애초에 쟤들이 침략한거지
      히틀러도 유럽반을 먹었는데 존경해주냐?? 말이나 되는 소릴해라

    • @맨헌트-v3l
      @맨헌트-v3l 2 года назад +2

      전국시대 100년을 거치면서
      전투를 일종의 오늘날 스포츠.게임
      정도로 인식하고 있었답니다.
      우리가 스포츠경기에서 비록 상대방이라도
      좋은 기술을 선보이면 감탄하듯이
      그당시 왜구들도 비슷하게
      적이지만 용감하고 무예가 뛰어나면
      칭찬하는 그런게 있었다는군요.
      그런걸 적을 분석 잘하고 장점을잘 취하느니
      하는걸로 굳이 미화할 필요는 없겠죠
      그런건 2차대전 당시 유럽및미국이 잘했죠.
      왜구들이 잘했으면 쳐맞고 패했겠어요 ?
      침략.노략질 본성을 그렇게 미화하지 맙시다.

    • @droopy26
      @droopy26 2 года назад +2

      침략해서 조상님들 고통받게 한 일본놈들을 존경하는게 맞아...? ㅋㅋ 깨어있는 척도 적당히 해야지

  • @yoyo-bn7jy
    @yoyo-bn7jy 2 года назад +5

    중국이 우리의 고대국가 배달국 13대 치우천왕을 도깨비로 그린점과 닮았다고 할수있군요

  • @Alex.NT-1
    @Alex.NT-1 2 года назад +10

    일본 애들은 강약약강이라 잘 해주면 지배하려들고 오히려 짓밟아줘야 존경한다. 수많은 역사가 증명했으니 이들과 교류할 때 반드시 이점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 @Rapido-tz6bn
    @Rapido-tz6bn 2 года назад +1

    영화나 드라마에 나오는건 엔진있는 동력선.
    임진 당시는 무동력선이라 노 저어서 항해.
    명랑대첩 승리는 물때 이용한 이순신 작전.
    한산대첩도 물때 모른 일본이 피해가 많은겨.

  • @korakel6248
    @korakel6248 2 года назад

    일본에게 공이큰 원균에겐 냉정하다니 ㅋㅋ

  • @공감메세지
    @공감메세지 2 года назад +52

    그래 나는 일본이 싫지만 그들의 반면교사는 존경할 만하다..부럽다..

    • @호연-r6o
      @호연-r6o 2 года назад +2

      근데 왜 요즘엔 저럴까?? 태평양 전쟁증에도 실패를 인정하지 않아 패했지

    • @o.laflaf
      @o.laflaf 2 года назад

      달창들이 분노할 소리네요

    • @숯불맨
      @숯불맨 2 года назад

      이순신장군을 신으로 추앙하며 인간인 본인들은 어쩔수없었다고 자위하는것일뿐

    • @공감메세지
      @공감메세지 2 года назад +1

      @@parkeric9056 일단. 왜 반말인지… 그리고 여기서 한자로 쓸 수있냐는 주제와 상관없는 엉뚱헌 질문을 하는지 . 그대는 반면교사의 뜻은 알고있눈가?

    • @공감메세지
      @공감메세지 2 года назад +1

      @@parkeric9056 제가 물어본것에 엉뚱한 답변을 하시면서...지성인이라고 스스로 말하시네요... 그리고 타일른다...어설프게 좀 아는 전형적인 별 볼일 없는 꼰대들의 형테죠.. 이제 대화 걸지 마세요. 그럼 이만!

  • @독튜브-o3k
    @독튜브-o3k 2 года назад +9

    조선에서 마구잡이로 끌고간 활자공들 덕분에 출판 바람이 불었네

    • @이성범-z6g
      @이성범-z6g 2 года назад +4

      지금 왜국 정부가 강조하는, '북조선(평양)의 일본인 납치'가 아니라, 그 일(왜군이 근세조선의 활자공들을 잡아간 일)이야말로 진짜(!) 납치고 범죄죠.

    • @davidjacobs8558
      @davidjacobs8558 2 года назад +1

      @@이성범-z6g 그런데, 북조선은 왜 일본민간인들을 납치했나?
      난 그게 이해가 안감. 일본의 지식인, 전문가, 요인을 납치했으면, 그런가 보다 하지만.
      이건 일본 어중이 떠중이 들을 납치해 간건데, 뭐 일본인을 이용해서 간첩들 교육시려 했다지만, 그건 말도 안되는게,
      만경봉호 월북 사업으로 재일교포들 수만명이 북한에 갔는데, 그중에 일본에서 태어난 사람들 일본말 잘하고, 일본 문화도 잘 아는데, 왜 일본 민간인이 필요한가?

    • @serenitykira
      @serenitykira 2 года назад +1

      @@davidjacobs8558 납치가 있었던 것도 사실 이잖아요
      이유가 궁금하면 납치관계자 한테 물어보셔야지
      이걸 일본정부가 이걸 계속 이용하는 측면도 있죠
      과거에 실제로 그런일이 있었으니
      지금도 계속 걸고 넘어지는거고
      요즘도 실종자 생기면 찾다가 진척 없을 때
      북한에 끌려간거라고 언플도 많이 하잖아요
      실종자 대부분은 시신으로 찾거나 멀쩡히 일본에서 신분세탁 해서 살고 있는걸로 밝혀진 경우도 많았고

    • @유사인류조센진
      @유사인류조센진 2 года назад

      국뽕은 정신병이다

  • @peterkim5406
    @peterkim5406 2 года назад +13

    자신들이 패전한 가장 큰이유인 이순신 장군을 높게 평가하면 자신들의 패전을 정당화할수 있고 그들의 문화가 무장들의 문화여서 그런것 같네요.

    • @란-d7b
      @란-d7b 2 года назад +8

      보통은 해석을 달리해서 적의 전공을 왜곡하거나 축소하거나 자신들의 실책을 변명하는 식으로 흐르기 마련입니다. 적이라면 아무리 뛰어난 인물이라도 평가절하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적을 높힘으로서 자신도 높힌다. 이는 다같이 높이는 것이고 자국의 영웅끼리의 관계에서 이런 사관을 채택합니다.

    • @흑우-y9y
      @흑우-y9y 2 года назад +7

      보는 시각이 참 좁으시군요 그럼 우리처럼 상대를 폄하하고 낮춰서 침략을 당해야 옳은건지.. 상대를 인정하고 그것을 교훈으로 삼는게 남을 깔보고 자신을 추켜세우는것보다 훨씬 나은거 같은데요

    • @에엥-d8k
      @에엥-d8k 2 года назад +3

      오히려 그게더 일차원적이다라는 생각이들어요 저땐 지금우리처럼 체계적으로 교육을 받는시대가 아니라 서로 점령을 위한 무사로 길러지던 시대에서 자란 사람들이 후대에 주는 교훈을 생각해서 이순신을 높혔다? 100프로 정답을 알순없지만 자신들의 무능함을 감추기 위했다 쪽이더 확률이 높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 @Azalea-Love
    @Azalea-Love 2 года назад +1

    비꼬아서 생각해보면 우리 수군은 훌륭했는데 상대가 넘사벽이라서 질수 밖에 없었어. 우리가 못싸운게 아니다. 그런 변명쯤으로.
    서양의 넬슨보다 훌륭한 이순신장군이 동양사람이고 우리도 동양사람이니까 쫄지마.. 그런 느낌... 너무 뱁새눈으로 봤나요..^^;;

    • @todaynextday
      @todaynextday 2 года назад

      그런것도 있지만 당시 일본은 육군과 해군이 다른 나라라고 해도 좋을정도로 대치하던 시절이라서, 일본해군 입장에선 해군이 약하고 육군만 강할때 벌어지는 모습과, 해군이 강하면 육군이 약해도 적을 이겨낸다는 사료가 필요했죠, 마침 그게 같은 아시아의 역사이기도 하니까, 더더욱 해군 홍보 목적, 육군 까내리기로 이순신만한 역사는 더 없으니까요.

  • @중화사대주의반민족이
    @중화사대주의반민족이 2 года назад +8

    화랑세기 필사본 진위논란에 대해서도 영상 만들어 주세요

  • @꿈식-q8t
    @꿈식-q8t 2 года назад +3

    이 순신 장군을 까내리면 저들은 그 보다 못한 인물들과 장군들이 되니 그런것뿐 결코 좋아서 그런건 아닌듯

    • @흑우-y9y
      @흑우-y9y 2 года назад

      소견 참 좁다 그럼 나라망친 민비를 명성황후 이려면서 드라마 만들고 노래만들고 이렇게 역사왜곡 하는게 잘하는거?

  • @s.yjoung5190
    @s.yjoung5190 2 года назад +20

    당시 일본인의대단한점은 자기들을패전시켜섬멸한적장 이순신을 두려워하며배워야야할자로여겨추앙한것이다 조선의지도자들과반대로

    • @이해피-c1v
      @이해피-c1v 2 года назад

      방송에서 설명해줘도 못 알아 먹네요. 메이지유신 후 일본은 군국주의 길을 걷습니다. 육군은 아베가 고향인 야마구찌(당시 명칭으로 죠오슈번) 출신들이 주동적으로 키워나가고 육군 권력도 다 갖습니다. 해군은 메이지 유신을 죠오슈번과 같이 일으킨 사쓰마번(쿠마모또)이 맡는데 정부에서의 지원이 영 마땅치 않습니다. 그들 나름대로 짱구 굴려서 이순신을 불러들이고 이래서 해군 키워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청일전쟁시 해전에서 이기면서 해군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이순신 영웅만들기는 기승을 부립니다. 드디어 러일전쟁까지 해전에서 이기자, 그들은 광기로 미쳐 날뜁니다. 매년, 해군 수뇌부에서 진해의 이순신 현충사를 방문합니다. 태평양전쟁 말기까지. 1870년부터 1940년까지 이순신 영웅 만들기 작업이 계속 띄워지고, 이 당시 일본 육사를 다녔던 박정희는 일본군 수뇌부가 진해 현충사를 정기적으로 방문한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나는 생각만큼 이순신을 존경하지 않는다. 왜? 간단하다. 이순신은 패하지 않는 전쟁을 한 장군이지 이기는 전쟁을 한 장군이 아니다. 나는 패하지 않는 전쟁을 하는 장군을 전혀 좋아하지 않는다. 이순신이라는 존재가 일본군 출신인 박정희가 정권을 잡으면서 마땅히 숭상해야 할 영웅만들기의 대상으로 이순신을 택한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1960년대부터 TV 드라마에서 툭하면 이순신 드라마가 나왔고 여러가지 이순신 영화가 나왔으며, 그런 전통은 지금까지 이어져 10년에 한번은 새로운 버젼의 이순신 드라마, 영화가 등장한다. 이 정도 띄워주면 영웅이 아니될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과연 영웅감인가 ? 삼도수군통제사가 되기 전 몇 번의 전투에서 승리했다. 그러나 전투다운 전투는 단 한번 한산도 해전이었다. 한산도해전이 끝나도 조정은 이순신을 승급, 승진시키지 않았다. 임진왜란 발발 후 1년도 안되어 천민 출신이던 한명련이 종 3품에 까지 파격적으로 오르고, 황진이 군졸에서 종 3품으로 오르는 동안 이순신은 승급이 없었다. 삼도수군통제사가 되어도 당분간 종 3품 전라좌수사의 승급이 그대로 유지되다가 마지못해 종 2품으로 올려준 정도이다. 한산도 해전 후 이순신은 통제영을 한산도로 옮긴다. 여러분은 이순신이 한산도 통제영에서 얼마의 기간을 별다른 전투도 없이 지낸 것으로 아는가. 4년에 약간 못 미치는 동안 이순신은 한산도에서 전투다운 전투 한번 없이 독수공방하며 지낸다. 여러분은 전쟁 기간 중의 4년이라는 기간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 2차대전 시 미국과 일본의 태평양 전쟁은 약 3.5년만에 끝난다. 세계 어느 전쟁사를 보아도 4년간 지속되는 전쟁은 예를 찾기 힘들다. 한산도에 본영을 설치할 시 이순신의 목표는 분명했다(그 후에 발생한 일로 유추하는 것이다). 견내량 사수를 통한 일본 수군의 서쪽으로의 전개를 틀어 막는 것이었다. 한산도 옆에는 거제도가 있다. 거제도에서는 바로 앞바다가 부산포이다. 견내량 사수작전은 올바랐는가. 한산도에 통제영을 두고 부산포를 치라는 명령때문에 이순신은 부산포를 친다. 왜적들은 화포의 사거리가 짧았으므로 산정상에다가 화포를 설치하고 쏘아댔다. 고작해야 일자진으로 들어가 부산포에 정박한 왜선 몇 척 박살내고 탈출해 나오는 게 할 수 있는 작전의 전부였다. 부산포를 친 목적은 부산-대마도-일본, 으로 이어지는 보급 루트를 격멸하는 것이었는데 이 목적을 달성할 수 없었다. 이순신은 이후 부산포 군수 거점을 초토화하여 상륙한 왜군에게 보급이 행해지지 못하도록 하는 전투의 기본 대원칙을 무시한 채 견내량 사수만 했다. 4년이라는 한산도 통제영 시절, 이순신은 왜 그렇게도 무기력했던가. 어떤 자료를 찾아보아도 신무기를 개발했다는 자료를 찾을 수 없으며 새로운 함정을 개발했다는 자료를 찾아볼 수 없으며, 새로운 전술을 개발했다는 자료를 찾아볼 수 없다. 이순신이 자기 본연의 임무가 견내량 사수라 보았다면, 조정에서는 부산포를 쳐서 부산포를 통한 보급을 단절시킴으로써 전쟁을 조기에 종결시키기를 원했다. 그런데 이순신은 4년이나 엉덩이 질기게 바닥에 대고 앉아 있었다. 6.25 때 인천상륙작전에 동원된 해병대는 제주도 모슬포 해병대 기지에서 단 2주간 훈련받고 인천상륙작전에 투입되었다. 전시에는 평시보다 시간을 5분의 1로 단축할 수 있다. 이순신이 갖고 있던 4년, 잘만 활용했으면 호남에서 군대를 징발하여 오늘날의 해병대에 해당하는 군대를 2만 내지 3만은 양성할 수 있었을 것이다. 2년간 공들이면 특수부대도 만들 수 있는 기간이다. 전시이기 때문이다. 이들 병력을 수송하면서 동시에 속도가 왜적의 세끼부네보다도 더욱 빠르고 함포사격까지 가능한 함정을 개발할 수 있었을 것이다. 천자총통,지자총통, 현자총통, 황자총통 중, 가장 작은 황자총통보다도 더 작은 총통을 다수 배에 싣고서 해병대들이 상륙한 다음, 포격전을 할 수 있도록 4인 1조로 들고 다닐 수 있는 화포를 개발할 수도 있었다. 난중일기에 보면 이순신은 천자총통, 지자총통이 왜적의 화포대비 사거리가 길고 화력이 좋아 흡족하다, 는 표현이 나온다. 이순신은 왜 화포의 구경을 더욱 키우고 포신 길이를 더 연장한 사거리가 더욱 긴 화포를 개발하지 않았던가. 천자총총은 곡사로 쏘면 800미터 내지 1000미터 날아가고 직사로 쏘면 100미터 날아간다. 1453년(임진왜란 140년전) 오스만투르크는 무게가 600Kg 나 하는 초거대 화포를 개발하고, 콘스탄티노플 점령 작전에 나섰다. 콘스탄티노플은 천년간 함락당한 적이 없는 난공불락의 이중성곽이었다. 거대화포 사격에 이틀만에 콘스탄티노플이 함락당했다. 이순신은 한산도 옆에 있는 왜군의 수중에 있던 거제도를 딱 한번 공격해보고는 더 이상 공격할 생각을 접어버렸다. 이 지점에서 조정과 괴리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조정은 거제도를 점령하고 부산포의 보급기지를 격파하고 나아가서 왜로부터 보급선이 올 때마다 원거리로 나가서 격침시켜 버리기를 원하였다. 조정의 요구는 무리한 것인가 ? 전쟁이 조선 땅에서 장기화되면 누구 손해인가 ? 이순신이 사거리 1.5Km에 달하는 장사정포를 새로 개발하고, 이런 장사정포를 효과적으로 발사 가능한 함정을 새로 개발하고, 오늘날의 해병대에 해당하는 병력을 3만명까지 양성하고, 그들 병력을 고속으로 이동시키며 화포를 발사할 수 있고, 함정에 실린 화포들을 쉽게 육지로 하역할 수 있는 함정을 개발하여, 거제도를 공격했으면 어찌되었을 것인가 ? 거제도를 점령하면 섬이므로 적의 공격에 대비하는 군대를 3000명 정도 상주시키고 나머지는 부산포 등의 공격에 동원하고 나머지는 적의 원해 보급선을 요격하는 임무에 투입했다면, 전황은 어찌되었을 것인가 ? 노량해전에서 조선의 함정은 속도가 느린 판옥선이다. 그러니 애초부터 도주하는 적의 세끼부네 함선들을 추격할 수 없었다. 적의 세끼부네 함정보다 속도가 더 빠른 함포사격이 가능한 함정이 있었다면 조선으로 건너온 적은 과연 살아 돌아갈 수 있었을 것인가 ? 내 지식으로는 이순신은 그다지 칭송받을 인물이 아니다. 이성계의 발끝도 따라가지 못한다. 이성계는 모두 불리한 상태에서 기이로운 전법으로 모두 역전시켰다. 이순신에게는 정공법은 있으되 기책이 없다. 나는 이순신은 존경하지 않는다. 그저 그런 장수이기 때문이다.

    • @tthanksman
      @tthanksman 2 года назад +3

      @@이해피-c1v 주뎅이만 살아가지고, 이순신한테 왜 잠수함을 못 만들었냐고 해라. 당시는 철이 귀했고, 포탄이 없어서 철기농기구나 솥을 녹여서 포철을 만들었고, 화약은 새똥인 비소로 만들었고, 포철이 다 떨어지면, 끝난겜. 그리고, 이순신 부대가 버틸 수 있었던 것은 단병전에 미치도록 단련된 왜구를 상대로, 조선에는 조선낫이 있었지, 실제 검하고 낫하고 단병전을 하면 낫이 유리하다는 건 일본에서도 이미 알려진 바이고, 당시의 전쟁이 얼마나 잔인했는지를 보여주는 예이고, 쟛도 모르면서 뒤에 숨어서 지가 제갈공명인줄 알지.

    • @serenitykira
      @serenitykira 2 года назад +2

      @@이해피-c1v 어디 역사갤이나 한사람의 견해를 보고 감명 받았나본데?
      이런거 일본넷우익들이 써먹는 수법이잖아
      무슨 어디 사료라고 한 개 보고 주장하는 꼴이 얼마나 위험하고 멍청한건지 알긴 하니?
      책 백 권 읽은 사람보다 딱 한 권 읽은 사람이 무섭다더니
      한중일 역사학자들이 자국에서 이순신에 관한 자료 싹싹 긁어서 책을 낸적이 있거든?
      8년 걸렸다고 하더라
      자료 분석하고 교차검증하고 했겠지?
      기록도 많이 찾아내서 책 권수가 20권이 넘던가 그렇더라
      결론이 뭐냐고?
      이순신이 아시아의 역사를 바꿨다고 평가하더라
      내가 역사학자들, 그것도 세나라 학자들이 내린 결론을 믿어야 할까
      아니면 니가 쓴 복붙냄새나는 글을 믿어야 할까?

    • @이해피-c1v
      @이해피-c1v 2 года назад +1

      @@serenitykira 귀하가 1593년 7월 한산도 수군 본영 설치 후(삼도수군통제사 시절), 1597년 4월 11일 파직당하는 날까지의 3년 9개월간, 아무런 전투없이 견내량만 사수한다는 이순신파인지, 아니면 일본-대마도-부산포로 이어지는 적의 군수보급 차단을 무조건 성공시켜야 한다는 조정파인지, 그것만 명확하게 자신의 견해를 밝혀주면 되는 것임. 전시의 3년 9개월은 무지막지하게 긴 기간임. 왜 임진왜란 시 영의정인 류성룡이 삼도수군통제사에서 파직당하는 것을 막을 수 없었는지도 의견을 주시면 더욱 좋겠음. 위의 3년 9개월간 부산포를 칠 준비를 하나도 안해놓았기에 원균은 부산포로 갔다가 그대로 당한 것임. 일이라는 것은 죽 이어지는 연속선상에 있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함. 내가 이순신이라면 3년9개월간 아무것도 안하고 한산도 수루에 올라 시나 읇는 짓은 하지 않겠음. 귀하도 무조건적인 색깔안경을 벗고 한잔하면서, 곰곰이 나였다면 어떻게 했을 지 고민해보기 바람.

    • @신안앞바다-z5s
      @신안앞바다-z5s 2 года назад +5

      @@이해피-c1v 원균 후손아니면 일베충 둘중에 하나같네 말하는 스타일이 ㅋㅋ

  • @박태일-w9d
    @박태일-w9d 2 года назад +9

    최고의 영웅!

  • @고현민-i2r
    @고현민-i2r 2 года назад +6

    이순신에게 개 털렸으니 당연 패배한 이유를 저리 만들수빼 없겠지.이순신을 신으로 만들어야 하니까...

  • @기분전환-h1n
    @기분전환-h1n 2 года назад +15

    관함식에 일본해군이 욱일기를 달고 참석한다고 하여서 그럼 우리도 이순신장군선의 수자기를 달고 참석하겠다고 하니 일본이 관함식에 불참하였다고 한다. 위대한 이순신 장군님을 존경합니다.

  • @권기종-m8x
    @권기종-m8x 2 года назад +1

    2022년 4월 5일 일본 동쪽
    해상 11.0 지진/쓰나미로 일본, 대만 멸망 & 동중국해 연안 7억명 사망 제주도와 남해안 지진 감지시 신속히 고지대로 대피하세요

  • @liddel382
    @liddel382 2 года назад +6

    일본은 조선침략이 아니라 조선진출이라 가르치고 있지요. 그러니 후대에 계속 같은 잘못을 반복하고 있는거겠지요.

    • @liddel382
      @liddel382 2 года назад +2

      @UC1Bg4earCgjEigAII6AvM8w 푸하하 뭔 소리래요??? 일본이 우리나라 침략한걸 진출이라 이야기한거랑 님이 이야기 하시는 피해입은역사 가르치는거랑 뭔 상관 인가요?? 님이야 말로 말도 쿨 병걸려서 사실과 의견을 혼동 하시는거 아닌지요???
      추가: 글 삭제하고 튀신건가요??

  • @user-rj6yc2ny9t
    @user-rj6yc2ny9t 2 года назад +4

    고증은 둘째 치고 그림이 개간지이기는 하네...

  • @황인창-v1c
    @황인창-v1c 2 года назад +4

    중국풍으로 그렸네요.

  • @8090-h4h
    @8090-h4h 2 года назад

    쓰고이~

  • @쉡-o9t
    @쉡-o9t 2 года назад +3

    원균의3족을 멸하여야 했는데!!!

  • @경호강-u3s
    @경호강-u3s 2 года назад +3

    선조가 더무서운놈 같애
    존경합니다 장군님

  • @나눔배려
    @나눔배려 2 года назад +3

    어쩜 저기 거북선실제모습있지않을까요?
    아직도 실제모습은 모른다고하던데요ㅜㅜ

  • @백고무신
    @백고무신 2 года назад +3

    임진왜란때 조선군은 성안에선 호랑이 벌판에선 순한양 서양인이본 조선군

  • @이성범-z6g
    @이성범-z6g 2 года назад +8

    도요토미의 말은 언제 들어도 분노를 불러일으킵니다.
    그 자는 메이지 유신 이후 정한론자들의 '본보기'가 되었고,
    서기 21세기에 왜국 총리(수상)가 된 스가 요시히데는 그를 본받겠다고 당당하게 떠들었으니,
    저는 그를 '지나간 과거의 유령'으로 여길 수 없어요.
    게다가, 그는 아직까지도 왜국의 대중문화에서 '쇠뿔(예전에는 "영웅"을 일컫는, 순수한 배달말 낱말로도 쓰였습니다)'로 그려지며 사랑받는데, 그런 자를 사랑하는 작자들이 침략을 포기할까요?
    저는 그 때문에라도 우리가 서기 1592년~1598년에 일어난 전쟁을 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 @이해피-c1v
      @이해피-c1v 2 года назад

      나는 생각만큼 이순신을 존경하지 않는다. 이순신이라는 존재가 일본군 출신인 박정희가 정권을 잡으면서 마땅히 숭상해야 할 영웅만들기의 대상으로 이순신을 택한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1960년대부터 TV 드라마에서 툭하면 이순신 드라마가 나왔고 여러가지 이순신 영화가 나왔으며, 그런 전통은 지금까지 이어져 10년에 한번은 새로운 버젼의 이순신 드라마, 영화가 등장한다. 이 정도 띄워주면 영웅이 아니될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과연 영웅감인가 ? 삼도수군통제사가 되기 전 몇 번의 전투에서 승리했다. 그러나 전투다운 전투는 단 한번 한산도 해전이었다. 한산도해전이 끝나도 조정은 이순신을 승급, 승진시키지 않았다. 임진왜란 발발 후 1년도 안되어 천민 출신이던 한명련이 종 3품에 까지 파격적으로 오르고, 황진이 군졸에서 종 3품으로 오르는 동안 이순신은 승급이 없었다. 삼도수군통제사가 되어도 당분간 종 3품 전라좌수사의 승급이 그대로 유지되다가 마지못해 종 2품으로 올려준 정도이다. 한산도 해전 후 이순신은 통제영을 한산도로 옮긴다. 여러분은 이순신이 한산도 통제영에서 얼마의 기간을 별다른 전투도 없이 지낸 것으로 아는가. 4년에 약간 못 미치는 동안 이순신은 한산도에서 전투다운 전투 한번 없이 독수공방하며 지낸다. 여러분은 전쟁 기간 중의 4년이라는 기간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 2차대전 시 미국과 일본의 태평양 전쟁은 약 3.5년만에 끝난다. 세계 어느 전쟁사를 보아도 4년간 지속되는 전쟁은 예를 찾기 힘들다. 한산도에 본영을 설치할 시 이순신의 목표는 분명했다(그 후에 발생한 일로 유추하는 것이다). 견내량 사수를 통한 일본 수군의 서쪽으로의 전개를 틀어 막는 것이었다. 한산도 옆에는 거제도가 있다. 거제도에서는 바로 앞바다가 부산포이다. 견내량 사수작전은 올바랐는가. 한산도에 통제영을 두고 부산포를 치라는 명령때문에 이순신은 부산포를 친다. 왜적들은 화포의 사거리가 짧았으므로 산정상에다가 화포를 설치하고 쏘아댔다. 고작해야 일자진으로 들어가 부산포에 정박한 왜선 몇 척 박살내고 탈출해 나오는 게 할 수 있는 작전의 전부였다. 부산포를 친 목적은 부산-대마도-일본, 으로 이어지는 보급 루트를 격멸하는 것이었는데 이 목적을 달성할 수 없었다. 이순신은 이후 부산포 군수 거점을 초토화하여 상륙한 왜군에게 보급이 행해지지 못하도록 하는 전투의 기본 대원칙을 무시한 채 견내량 사수만 했다. 4년이라는 한산도 통제영 시절, 이순신은 왜 그렇게도 무기력했던가. 어떤 자료를 찾아보아도 신무기를 개발했다는 자료를 찾을 수 없으며 새로운 함정을 개발했다는 자료를 찾아볼 수 없으며, 새로운 전술을 개발했다는 자료를 찾아볼 수 없다. 이순신이 자기 본연의 임무가 견내량 사수라 보았다면, 조정에서는 부산포를 쳐서 부산포를 통한 보급을 단절시킴으로써 전쟁을 조기에 종결시키기를 원했다. 그런데 이순신은 4년이나 엉덩이 질기게 바닥에 대고 앉아 있었다. 6.25 때 인천상륙작전에 동원된 해병대는 제주도 모슬포 해병대 기지에서 단 2주간 훈련받고 인천상륙작전에 투입되었다. 전시에는 평시보다 시간을 5분의 1로 단축할 수 있다. 이순신이 갖고 있던 4년, 잘만 활용했으면 호남에서 군대를 징발하여 오늘날의 해병대에 해당하는 군대를 2만 내지 3만은 양성할 수 있었을 것이다. 2년간 공들이면 특수부대도 만들 수 있는 기간이다. 전시이기 때문이다. 이들 병력을 수송하면서 동시에 속도가 왜적의 세끼부네보다도 더욱 빠르고 함포사격까지 가능한 함정을 개발할 수 있었을 것이다. 천자총통,지자총통, 현자총통, 황자총통 중, 가장 작은 황자총통보다도 더 작은 총통을 다수 배에 싣고서 해병대들이 상륙한 다음, 포격전을 할 수 있도록 4인 1조로 들고 다닐 수 있는 화포를 개발할 수도 있었다. 난중일기에 보면 이순신은 천자총통, 지자총통이 왜적의 화포대비 사거리가 길고 화력이 좋아 흡족하다, 는 표현이 나온다. 이순신은 왜 화포의 구경을 더욱 키우고 포신 길이를 더 연장한 사거리가 더욱 긴 화포를 개발하지 않았던가. 천자총총은 곡사로 쏘면 800미터 내지 1000미터 날아가고 직사로 쏘면 100미터 날아간다. 1453년(임진왜란 140년전) 오스만투르크는 무게가 600Kg 나 하는 초거대 화포를 개발하고, 콘스탄티노플 점령 작전에 나섰다. 콘스탄티노플은 천년간 함락당한 적이 없는 난공불락의 이중성곽이었다. 거대화포 사격에 이틀만에 콘스탄티노플이 함락당했다. 이순신은 한산도 옆에 있는 왜군의 수중에 있던 거제도를 딱 한번 공격해보고는 더 이상 공격할 생각을 접어버렸다. 이 지점에서 조정과 괴리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조정은 거제도를 점령하고 부산포의 보급기지를 격파하고 나아가서 왜로부터 보급선이 올 때마다 원거리로 나가서 격침시켜 버리기를 원하였다. 조정의 요구는 무리한 것인가 ? 전쟁이 조선 땅에서 장기화되면 누구 손해인가 ? 이순신이 사거리 1.5Km에 달하는 장사정포를 새로 개발하고, 이런 장사정포를 효과적으로 발사 가능한 함정을 새로 개발하고, 오늘날의 해병대에 해당하는 병력을 3만명까지 양성하고, 그들 병력을 고속으로 이동시키며 화포를 발사할 수 있고, 함정에 실린 화포들을 쉽게 육지로 하역할 수 있는 함정을 개발하여, 거제도를 공격했으면 어찌되었을 것인가 ? 거제도를 점령하면 섬이므로 적의 공격에 대비하는 군대를 3000명 정도 상주시키고 나머지는 부산포 등의 공격에 동원하고 나머지는 적의 원해 보급선을 요격하는 임무에 투입했다면, 전황은 어찌되었을 것인가 ? 노량해전에서 조선의 함정은 속도가 느린 판옥선이다. 그러니 애초부터 도주하는 적의 세끼부네 함선들을 추격할 수 없었다. 적의 세끼부네 함정보다 속도가 더 빠른 함포사격이 가능한 함정이 있었다면 조선으로 건너온 적은 과연 살아 돌아갈 수 있었을 것인가 ? 내 지식으로는 이순신은 그다지 칭송받을 인물이 아니다. 이성계의 발끝도 따라가지 못한다. 이성계는 모두 불리한 상태에서 기이로운 전법으로 모두 역전시켰다. 이순신에게는 정공법은 있으되 기책이 없다. 나는 이순신은 존경하지 않는다. 그저 그런 장수이기 때문이다.

    • @amytom9223
      @amytom9223 2 года назад

      과거에 얽매여서 무슨 이득이 있습니까?
      일본은 한국 침략해서 얻는 이득도 없고
      한국은 침략당할만큼 약소국이 아닙니다

    • @이성범-z6g
      @이성범-z6g 2 года назад

      @@amytom9223 "과거에 얽매여서 무슨 이득이 있습니까?"라ᆢ그런 말은 저한테 하지 마시고,
      인 이른바 '북조선(평양)의 일본인 납치(?)'를 자꾸 들먹이며 국제사회에 억울함을 호소하는 왜국 정부한테 하세요.
      아니면 7백 수십 년은 넘은 "과거"인 몽골제국의 일본(가마쿠라 막부) 침략을 잊지 않고 만화와 만화영화로 만들어서 널리 알리는 왜국 만화가/왜국 만화영화 제작사한테 하시거나.
      그리고, 어느 역사학자가 말했듯이, "과거를 잊어버린 사람들에게 그 과거는 되풀이"되는 법입니다.
      만약 저를 비롯한 배달민족이 도요토미가 한 짓(전쟁)을 잊어버리면, 그 일은 되풀이되겠지요.
      저는 그 때문에라도 기억하고 또 기억해야겠습니다.

    • @이해피-c1v
      @이해피-c1v 2 года назад

      @@amytom9223 일본의 한국 침략 파괴는 훨씬 더 고단수로 진행되는 중입니다. 귀하같이 외교전략의 기본도 안된 분들이 아무 소리나 질러놓을 곳은 아니라는 생각입니다. 나는 자랑은 아닙니다만, 손자병법을 1000 번 이상 읽었습니다. 온갖 전쟁사를 연구했습니다. 심지어 청일전쟁사를 일본어 원문의 책으로 읽은 적도 있습니다. 일본은 1970년대부터 오늘날까지 한미일 동맹을 만들어내는 것을 국가적 과제로 여기고 끊임없이 실행해 왔습니다. 최근의 일로는 쿼드에 가입시킬려고 안달했었지요. 쿼드에 60만 육군이 생긴다고 노골적으로 일방적 주장까지 하면서요. 쿼드부터 말하겠습니다. 미국, 일본, 인도, 호주의 쿼드에 한국이 들어갈 경우, 북한, 중국등 반대세력과의 전장은 어디입니까. 미국입니까 ? 일본입니까 ? 호주입니까 ? 인도입니까 ? 바로 대만 아니면 한국입니다. 쿼드에 안 들어가면 쿼드 갈등으로 인해 한국에서 전쟁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이게 대한민국이 쿼드에 가입하지 않은 이유입니다. 1970년대부터 일본이 국가과제로 여겨온 한미일 동맹이 만들어지면(한국은 한미동맹, 미일동맹 분리체제 고수) 반대세력과의 충돌지점은 어디입니까. 한국입니다. 한국에서 전쟁이 발생해서 다 파괴되면 일본은 절대 잃을 게 없는 상태입니다. 6.25때 엄청 재미 보았죠. 일본은 그리운 것입니다. 디플레에서 탈피하려고 온갖 짓을 하다가 실패했죠. 아베가 수상으로 재당선되던 때보다 약간 이르게 미국이 금융위기로 양적완화를 엄청 했죠. 이때 일본은, 바로 이것이다, 우리도 대대적으로 양적완화하면 승산이 있겠네, 하는 판단을 하게 됩니다. 양적완화는 미국 허락이 있어야 가능한 조치입니다, 통화를 인위적으로 조작하는 것이므로. 워싱턴 로비를 총동원해서 일본도 양적완화를 할 수 있게 해달라고 미국을 설득했습니다. 성공했습니다. 일본의 양적완화 정책을 실시하려고 하자 한국은 결사반대했습니다. 일본이 들을 한국말이 아니지요. 일본은 간단이 응수했습니다, 국제 회의 석상에서. 너네 한국도 양적완화하라고. 그리고선 아베의 양적완화 정책이 시행됩니다. 몇년이 지나서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그토록 강하다던 엔화, 러시아 전쟁으로 115엔-116엔까지 무너지고 있습니다. 기축통화 자리에서 내려오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제 일본이 일본을 살릴 수 있는 방법은 없습니다. 오로지 인접국가에서 전쟁이 일어나서 일본을 살리는 길밖에 남아 있지 않습니다. 한국입니다. 대만에서 전쟁 발생하면 일본도 아주 피곤합니다. 대만에게 인기 얻으려고 싸질러 놓은 말들, 대만해협 전쟁 시 참전하겠다, 고 해놓았으니까요. 일본 본토도 미사일 세례 받습니다. 1970년대 한잔했다하면 청와대에서 일본군가나 떼창으로 하고, 내가 친일파이면 뭐 어때서 ? 하는 말이나 부하 면전에서 직설적으로 늘어 놓아 부하를 민망하게 하던, 일본 육사를 나와서 일본이 일본의 아들이라고 생각했던 골수 친일파인 박정희, 그도 한미일 동맹은 추진하지 않았습니다. 왜 그럴까요. 그래도 박정희는 군대있을 때 죽 작전계통에 있었기 때문에, 그 함의를 알기 때문이었습니다. 손자병법에, 知戰之地 知戰之日 卽可千里而會戰, 싸울 곳을 알고, 싸울 날을 알면, 천리밖에서도 능히 전쟁을 할 수 있다. 싸울 곳, 싸울 날은 전쟁에서 가장 중요한 개념이고 전략의 기본입니다. 베트남전쟁때 베트남총사령관을 1990년대 미국 언론이 인터뷰했습니다. 어떻게 승리했냐고. 간단히 답했습니다. 三不전략을 구사했다고. 적이 원하는 곳에서 싸우지 않고 내가 원하는 곳에서 싸운다. 적이 원하는 시간에 싸우지 않고 내가 원하는 시간에 싸운다. 적이 원하는 방법으로 싸우지 않고 내가 원하는 방법으로 싸운다. 사실 삼불은 필요 없습니다. 이불이면 됩니다. 곳과 시간이 정해지면 방법은 거의 자동으로 정해지는 것이니까요. 한국, 북한, 미국, 일본, 중국, 러시아, 대만, 동북아는 갈등이 내재되어 오랫동안 터지지 않고 있는 지구상 대표적인 지역입니다. 군사전략, 외교전략 여하에 따라 싸울 곳이 달라집니다. 한미일동맹이 되면, 한반도가 싸울 곳으로 자동으로 세팅되는 효력이 발생합니다. 한미동맹, 미일동맹으로 분리되어 있으면, 싸울 곳에 대한 일본의 입김이 사라져 버립니다. 6.25 휴전협상. 한국은 나갈 예정이었는데 이승만이 전쟁을 계속하겠다고 바득바득 주장해서 협상장에 들어가지 않았고, 대신 UN군과 북한, 중국 3자가 협상했습니다. 한미일동맹이 되면 일본은 전장터에 발을 한발 디밀어 놓고 전쟁이 자꾸 지연되도록 만들 것이며(물밑에서 중국에 돈을 주고라도 전쟁을 더하도록 만들 놈들임에 틀림없음), 휴전협상/종전협상은 한국, 미국, 일본, 중국, 북한, (러시아)가 됩니다. 휴전협상만 방해해도(독도문제, 납치자문제 등 제기) 전쟁 기간은 자동으로 길어지게 됩니다. 휴전협정문에도 이상한 조항을 달아놓아 한국의 발목을 두고두고 잡을 것임. 나는 일본따위는 10개가 쳐들어온다고 해도 두렵지 않으나(일본을 더 초토화할 수 있으므로), 일본 땅은 전쟁의 피해가 안 가고, 한국 땅만 전화에 휩싸이는 상황을 극구 막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일본의 한미일동맹 전략은 현재도 추진중인 전략이므로, 귀하도 반드시 정확하게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전 댓글의 이순신 관련 글은 냉정히 군사적으로 이순신을 평가해 보았을 뿐. 이순신은 승장이 절대 아니며, 다만 패하지 않았을 뿐인 장군이었음. 승리로 이끌 방책을 시도조차 하지 않았던 인물임. 2차대전 중 미군의 별둘 소장이 별 넷 대장에게 강제 전역당함. 왜 내가 전역당해야 합니까 ? 질문. 지휘관이란 충분치 못한 정보 상태에서 이길 수 있는 전략을 내놓아야 한다. 너는 정보가 충분해질 때까지 기다리고 또 기다린다. 그런 장군은 미국에 필요 없다.

    • @요싴
      @요싴 2 года назад

      ㄹㅇ

  • @숲일
    @숲일 2 года назад +1

    왜 이름 뒤에 장군 존칭을 안 붙이나요?

    • @nan960119
      @nan960119 2 года назад +1

      틀니 4주압수

  • @bukkaii4917
    @bukkaii4917 2 года назад +2

    일본은 적장을 객관적으로 평가하는게 참으로 무섭다.
    우리는 간신들이 책임회피와 공로를 훔치려하는데만 몰입하여 충신들과 적장을 까내리는데만 집중 하다보니 결국 왕조가 망해 버렸다.
    그런데 아직도 그런 풍조가 만연하니 안타깝다

    • @이병관-w4m
      @이병관-w4m 2 года назад

      혹시 임진왜란때 일본장수들을 말하는것가요 아무이유없이 적장을 왜 존경함??? 존경받을만한 일을 한적이 없는데 존경받을만한 행동를 해야 존경하지

  • @한바위-y2k
    @한바위-y2k 2 года назад +4

    선조실록은 조선조 만호시절 패배로 나오는데 선조수정 실록은 다르게 나옵니다 임란후 일본은 김시민을 더 영웅으로 보는데 17세기에는 이순신을 더 영웅으로 보입니다 실지로 진주성 1차 싸움은 일본군이 유일한 패배로 봅니다 그래서 보복으로 2차 진주성 싸움을 한겁니다

  • @갓래
    @갓래 2 года назад

    5분 46초 철갑선 아니야?

  • @danielk7224
    @danielk7224 2 года назад +1

    코 뜯어간 이야기도 써 놨는지?

  • @silvertuscani
    @silvertuscani 2 года назад +1

    롤 모델은 대한미국어, 새끼미국어. 한국어로 본보기.
    리더십은 대한미국어, 새끼미국어. 한국어로 통솔력, 지휘력.

  • @갈대-z1l
    @갈대-z1l 2 года назад +3

    일본은 적국의 인물이라도 인정할 것은 인정한다. 우리보다는 감정에 덜 치우치는 사람들이다.

  • @asahn2110
    @asahn2110 Год назад

    머야 역사 스페셜 영상 도용에 ai음성만 쳐 입혔네 ㅋㅋㅋㅋ 사기꾼 아이가?

  • @한량권대표
    @한량권대표 2 года назад

    이순신장군님이 21살 과거에 낙방하고
    방황할때 6개월동안 사귄 여자친구 이름은?

  • @FlowerSan
    @FlowerSan 2 года назад +3

    전쟁에 패배하면 할말이 많다. 그거라도 있어야
    쪽펄리지 않을거라 착각하기에...
    전쟁에 진나라는 진거다.

  • @갓래
    @갓래 2 года назад

    10분 37초...

  • @wtp665
    @wtp665 2 года назад +4

    일본에서 이순신 장군님을 신격화한 것이 식민사관의 일환이라는 말도 있지요. 조선은 진작 망했어야 마땅한 나라인데 1000년에 한번 나올까말까한 영웅 덕분에 운 좋게 살아남은 것이라는 식으로 말이죠. 이순신 장군님은 위대한 인물임에 틀림이 없지만 그를 바라보는 우리의 인식이 이와 같은 식민사관의 영향을 받고 있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보면 좋겠습니다.

    • @삼한
      @삼한 2 года назад +1

      더 효과적인 지배 방법도 많은데 굳이 그런 남 좋은 일을 했을까요?

    • @wtp665
      @wtp665 2 года назад +1

      @@삼한 일본이 왜 조선인들에게 식민사관을 주입시켰는지 알아보시기 바랍니다.

    • @wtp665
      @wtp665 2 года назад +1

      @@ilillililililill578 님이 '사실'이라고 생각하시는 근거가 궁금합니다.
      관군:
      개전 초기에 왜군이 한양 그리고 평양까지 진격할 수 있던 것은 전술의 차이가 큽니다. 조선군은 제승방략 제도로 운영되고 있었고 왜군은 최대한 속전속결로 한양을 점령하고 왕을 생포하는 것이 목표였죠. 조선군이 각지에 집결하기 전에 그냥 휩쓸어 버린겁니다. 스타에서도 빌드에서 밀리면 초기에 답 없는거 아시죠?
      왜군은 평양에서 진격을 멈춥니다. 이순신 장군이 보급로를 끊기도 했지만 사실상 평양이 공세종말점이었습니다. 속전속결로 전쟁을 끝낼 생각을 했기에 보급은 부족했고 무리한 진군을 하느라 병력 손실과 피로도도 상당했죠. 처음부터 무리한 작전이었던 것입니다.
      호남쪽으로 진격한 왜군은 권율 장군에게 막힙니다. 이건 순전히 관군의 공입니다. 조선군이 그렇게 막장이었다면 이 전투도 지고 호남쪽도 싹 털렸어야 합니다. 그런데 아니었죠?
      그 다음에는 어땠을까요? 왜군은 평양에서 후퇴한 이후 경상도 지방으로 후퇴하여 농성 위주로 임하게 되죠. 조선이 그렇게 좁밥이었으면 다시 진격하면 되는거였는데 왜 그랬을까요? 임진왜란 첫 1년 동안에는 조선 관군의 완패였지만 그 외에는 조선군과 일본군의 전투 기록들을 살펴보았을때 승률이 반반 정도입니다.
      의병:
      의병들은 각지에서 일본의 보급로를 끊고 게릴라전으로 전과를 거두었습니다. 일본군은 의병에 대한 대책이 전혀 없었습니다. 그들 상식에는 백성들은 그냥 항복하는 것이 당연했기 때문이죠. 의병으로 인해 일본군들은 육로 보급에 큰 차질을 겪고 사기가 크게 꺾이게 됩니다.
      수군:
      이순신 장군이 뛰어난 지도력을 보여주셨지만 애초에 수군력은 넘사였습니다. 화포로 무장한 판옥선은 동아시아 최강이었습니다. 왜군은? 전근대적인 갑판 육탄전에 의존했죠. 원균이라는 희대의 트롤 덕분에 초기에 밀리고 칠천량 해전이라는 참사를 겪기는 했지만요. 이순신 장군처럼 연전연승은 아니더라도, 평타정도 치는 지휘관만 되었어도 압도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위는 주장이 아닌 역사적인 사실들입니다. 아직도 조선이 이순신 장군 아니었으면 망했을 거라고 생각하시나요?
      저는 님의 주장이 '사실'이 아니라는데 이 정도로 근거를 들었습니다. 님이 조선이 이순신 장군이 아니었으면 망했을 것이라고 생각하시는 근거는 무엇인가요? 아니면 그냥 근거 없는 주장이신가요?

    • @shouting252
      @shouting252 2 года назад +1

      조선은 가장 최근의 나라지만 우리땅에 형성됐던 여러 나라중의 하나일 뿐이고 조선이 약해빠졌다고 해서 이순신 장군의 업적이 없어지는 것도 아니죠 너무 조선만 생각하지 마시길

    • @kimteewassup
      @kimteewassup 2 года назад

      @@ilillililililill578
      무능했으면 진작 망했겠죠 큰 전란이 두번 일어난것 외에는 명 청보다 백성들의 삶은 더 잘 살았습니다.
      나도 이씨조선을 긍정적으로 보지는 않으나 무조건 무능하고 무능한걸로만 표현하는걸 보면 식민사학을 가진분이신지?

  • @youtube郎人
    @youtube郎人 2 года назад

    일본 간단하고 우습게봄 절단난다.
    역사왜곡 꼭 댓가치를것.

    • @kili-uv7jn
      @kili-uv7jn Год назад +1

      ruclips.net/video/E0uxvFoidPM/видео.html
      (난중일기 : 명량해전)
      十六日 甲午 晴 早朝 望軍進告內 賊船無慮
      二百餘隻 鳴梁由入 直向結陣處云 招
      集諸將 申明約束 擧碇出海 則賊船一百
      三十三隻 回擁我船 上船獨入敵船中
      砲丸射矢 發如風雷 諸船觀望不進
      16일 갑오 맑음, 이른 아침 망군이 들어와 알리기를 적선 무려
      200여척이 명량을 거쳐 곧바로 진치고 있는 곳으로 향해 온다고 했다.
      여러 장수들을 불러 거듭 약속을 밝혔다. 닻을 올리고 바다로 나갔다. 곧 적선
      133척이 우리 배를 에워쌌다. 대장선 홀로 적선 속으로 들어가
      포탄과 화살을 바람과 우레처럼 쏘았다. 여러 배들은 바라만 보고 진군하지 않아
      事將不測 船上之人 相顧失色 余柔而論解
      曰 賊雖千隻 莫敵直搏我船 切勿動心 射賊
      盡力 顧見諸船 已退去一馬場許 右水使金億秋
      所騎船 則遠去渺然 欲回船 直泊中軍金應諴
      船 先斬梟示 而我船回頭 則諸船次次
      遠退 賊船漸迫 事勢狼狽 立中軍 令
      下麾與招搖旗 金應諴漸近船 巨濟安衛
      船亦到 余立船舷 親呼安衛曰 汝强欲死
      於軍法耶 再呼 安衛敢死於軍法乎
      退去得生乎 安衛慌忙直入 交鋒之
      際 賊將船及他賊二船 蟻附安衛船
      安衛格卒七八名 投水遊泳 幾不能救 余
      回船直入安衛船 安衛船上之人 殊死亂擊
      余所騎船上軍官之輩 如雨亂射 賊船二隻 無
      遺盡勦 天幸天幸 圍抱敵船三十隻
      일이 장차 어떻게 될지 예측할 수 없었다. 배위의 사람들은 서로 돌아보는데 낯빛을 잃었다. 나는 부드럽게 논리적으로 풀어
      말했다. 적이 비록 천척이라도 감히 우리 배를 바로 잡지는 못할테니 절대 동요하지 말고 힘을 다해 적을 쏘아라.
      돌아 여러 배를 보니 이미 한 마장쯤 물러가 있고 우수사 김억추가
      탄 배는 멀리 가서 묘연했다. 배를 돌려 바로 중군 김응함의
      배에 대고 먼저 목을 베어 효시하려 했다. 그러나 내배가 머리를 돌리니 여러 배는 점점
      더 멀리 후퇴하고 적선은 점차 육박해 세력이 낭패를 당할 지경이었다. 중군의
      영하기와 초요기를 세우니 김응성이 점차 배에 가까이 왔다. 거제 안위의 배도
      역시 왔다. 나는 뱃전에 서서 직접 안위에게 말하기를 네가 반드시 군법에 죽고자 하느냐?
      다시 불렀다. 안위, 감히 군법에 죽고 싶으냐?
      물러나 달아나면 살겠는가? 안위가 황망히 바로 들어갔다. 싸우는 때
      적장의 배와 다른 적선 두 척이 안위선에 개미처럼 달라붙었다.
      안위의 격군 7,8명이 물로 떨어져 헤엄치는데 거의 구할 수 없었다. 나는
      배를 돌려 바로 안위선으로 들어갔다. 안위배 위의 사람들은 죽음을 감수하고 어지러이 치고
      내가 탄 배위의 군관들도 비처럼 난사했다. 적선 두 척을
      남김없이 잡았다. 천행이었다. 천행이었다. 우리를 포위했던 적선 삼심척도
      亦爲撞破 諸賊不能抵當 更不來犯 欲泊
      于同處 則水退不合舶船 移陣于越邊浦
      乘月移泊于 唐笥島 經夜
      역시 쳐서 깨트리니 여러 적들이 저항하지 못하고 다시는 들어와 범하지 못했다.
      이곳에서 머무르려고 했으나 물이 빠져 배대기 적당하지 않아서 건너편 포구로 진을 옮겼다가
      달빛을 타고 당사도로 옮겨서 밤을 지냈다.

    • @kili-uv7jn
      @kili-uv7jn Год назад +1

      ruclips.net/video/Yi79ekE_Yp8/видео.html
      (징비록 : 명량해전)
      統制使李舜臣, 大破倭兵于珍島碧波亭下, 殺其將馬多時. 舜臣至珍島, 收拾兵船, 得十二隻. 全羅海邊人, 乘船避亂者無數, 聞舜臣至, 莫不喜悅. 舜臣分道招呼, 遠近雲集, 使在軍後, 以爲形勢. 賊將馬多時號善水戰, 率其船二百餘艘, 欲犯西海, 相遇於碧波亭下. 舜臣以十二船, 載火砲乘潮至, 順流攻之, 賊大敗走, 馬多時死, 軍聲大振.
      통제사統制使 이순신李舜臣이 진도珍島 벽파정碧波亭 아래에서 적을 크게 격파하고 적장 마다시馬多時(구루지마 미치후사)를 죽였다. 진도에 도착한 이순신은 병선을 수습해 12척을 얻었다. 이때 전라도 연해의 사람들 가운데 배를 타고 피난한 사람들이 무수히 많았는데 이순신이 왔다는 소식을 듣고 기뻐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이순신이 여러 방면으로 부르자 이들이 가깝고 먼 곳에서 구름처럼 모여들었고, 이순신은 그들을 군대 후방에 두어 아군의 형세를 갖추도록 했다.
      적장 마다시는 해전을 잘하기로 이름이 났는데 200여척의 배를 이끌고 서해로 침범하려고 하여 아군과 벽파정 아래에서 전투를 벌이게 되었다. 이순신이 전선 12척에 화포를 싣고 밀물을 타고 이곳에 이르러 순류를 타고 공격하니 적이 크게 패해 달아나고 마다시가 전사하니 군세가 크게 떨치게 되었다.
      (징비록 : 노량해전)
      李舜臣與唐將陳璘, 扼海口以逼之. 行長求援於泗川賊甚安頓吾, 頓吾從水路來援. 舜臣進擊大破之, 焚賊船二百餘艘, 殺獲無算. 追至南海界, 舜臣親犯矢石力戰, 有飛丸中其胸, 出背後. 左右扶入帳中. 舜臣曰 "戰方急. 愼勿言我死" 語訖而絶. 舜臣兄子李莞, 素有膽量, 秘其死, 以舜臣令, 督戰益急, 軍中不知也. 陳璘所乘舟, 爲賊所圍, 莞望見, 揮其兵救之.
      이순신이 명나라 장수 진린과 함께 바다에서 이어지는 어귀를 장악하고 접근하였다. 고니시 유키나가는 사천에 주둔하고 있던 적장 시마즈 요시히로島津義弘에게 구원을 요청하자, 시마즈는 수로水路를 따라 구원왔다. 이순신이 진격해서 시마즈 군을 크게 이기니 적선 200여척이 불에 타고 죽거나 사로잡은 적의 수를 헤아릴 수 없었다. 적을 추격하여 남해南海 경계(노량露梁)에 이르렀는데, 이순신이 친히 시석矢石을 무릅쓰고 힘써 싸우던 도중 적탄이 날아와 가슴에 명중하여 등 뒤를 (관통하여) 나갔다. 좌우에서 그를 부축하여 장막 안으로 옮겼다. 이순신은 "싸움이 한창 급하다. 내가 죽었다는 말을 하지 마라" 하고 이윽고 숨을 거두었다. 이순신의 형의 아들 이완李莞은 본래 담력과 국량이 있었는데, 이순신의 죽음을 비밀로 하고 이순신의 명령이라고 하여 더욱 싸움을 독려하니 군중에서 병사들은 이순신이 전사했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진린이 탄 배가 적에게 포위된 것을 본 이완은 부대를 지휘하여 구원하였다.
      ruclips.net/video/CYIQbQvCOiA/видео.html
      선조실록 27권, 선조 25년 6월 21일 기유(己酉) 4번째기사 1592년 명 만력(萬曆) 20년
      ○時, 東萊旣陷, 賊長驅直進, 所向無前, 大駕旣入西路, 黃海以南, 至于東萊, 惟聞敗報, 絶無他信。 慶尙右水使元均, 與全羅左水使李舜臣, 約會閑山島。 時舜臣以戰船八十艘, 乃於是年五月初六日, 進至玉浦前洋, 有賊船三十餘艘, 四面圍帳, 竪立長竿, 亂懸紅白旗, 餘賊登陸, 焚怯閭家。 賊見舟師, 促櫓出陣, 與我軍相遇於洋中, 我軍焚賊船二十六艘。 約以明日更擧大戰, 聞大駕西幸, 諸將不到, 仍爲相聚痛哭, 乃於初九日, 各還本鎭。 二十九日, 舜臣、元均再會於露梁, 遇賊一船焚之, 俄見海邊一山, 有賊百餘長蛇而陣, 其下有戰船十二艘, 緣崖列泊。 時早潮已退水淺, 大舟不得進。 舜臣曰: "我佯退, 賊必乘船追我, 引出洋中, 巨艦合擊, 蔑不勝矣。" 回船未一里, 賊果乘船追之。 我軍令龜船突進, 先放大小銃筒, 盡燒其船, 餘賊遠望頓足叫呼。 方戰鐵丸中舜臣左肩。 初二日到唐浦, 賊船二十艘, 列泊江岸, 中有一大船, 上設層樓, 外垂紅羅帳, 賊酋着金冠錦衣, 手執金扇, 指揮諸賊。 中衛將權俊, 回船促櫓, 直衝其下, 撞破其船, 仰射賊酋, 應弦而倒。 初四日進至唐浦前洋, 全羅右水使李億祺, 領戰船二十五艘來會, 諸將無不增氣。 初五日出外洋, 聞賊船移泊於固城 唐項浦中洋, 舜臣先遣三船, 往探形勢, 纔出海口, 卽放砲告變。 諸軍一時促櫓, 首尾連亘, 魚貫而進, 至召所江, 賊船二十六艘, 擺列江岸, 中有一大船, 上設三層板閣, 後垂黑綃帳, 前竪靑蓋, 帳內諸賊, 擺列侍立。 諸軍初一交戰, 佯敗而退, 層閣大船, 懸帆先出。 諸軍挾擊, 賊酋中箭而死。 諸軍乘勝縱火, 焚賊船一百餘艘, 斬賊首二百一十餘級, 溺水死者不記其數。 初六日, 追餘賊於外洋, 又焚一船, 初九日, 諸軍罷兵還鎭。 七月初六日, 舜臣與億祺會于露梁, 元均修緝破船七艘, 先來留泊。 聞賊船七十餘艘, 自永登浦, 移泊於見乃梁。 初八日, 舟師至中洋, 賊見我軍盛, 促櫓而歸, 諸軍追至, 則賊船七十餘艘, 列陣於內洋, 地勢狹窄, 且多險嶼, 難以行船。 我軍進退誘引, 賊果悉衆追之, 引出于閑山前洋。 我軍擺列爲鶴翼陣, 揮旗鼓譟, 一時齊進, 連放大小銃筒, 先破賊船三艘, 賊氣挫少却, 諸將軍吏, (勸)〔歡〕 呼踴躍。 乘銳崩之, 箭丸交發, 焚賊船六十三艘, 餘賊四百餘名, 棄船登陸而走。 初十日, 至安骨浦, 賊船四十艘, 列泊洋中。 其中一船, 上建三層大屋, 二船建二層屋, 其餘諸船, 鱗次結陣, 其地狹窄。 我軍再三誘引, 賊懼不敢出, 我軍出入搏戰, 幾盡燒之。 是役也, 三陣所斬二百五十餘級, 溺水死者, 不記其數, 餘賊乘夜而遁。 舜臣等遣其軍官李冲, 馳啓獻級, 行朝上下, 無不踴躍稱慶。
      선조수정실록 26권, 선조 25년
      ○李舜臣大敗倭兵于固城 見乃梁。 是時, 倭賊大發舟師向湖南, 舜臣與李億祺各促所領而進, 遇賊于見乃梁, 賊船蔽海而來。 元均狃於前勝, 直欲衝擊, 舜臣曰: "此處海港隘淺, 不足以用武, 當誘出于大海而擊之。" 均不聽。 舜臣曰: "公不知兵乃如此。" 令諸將佯北, 賊果乘勝追之。 至閑山島前洋, 還軍促戰, 砲焰沸海, 鏖盡賊船七十餘艘, 腥血漲海。 又逆擊援兵于安骨浦敗之, 賊登岸走, 燒其船四十艘。 倭中傳言: "朝鮮 閑山之戰, 倭兵死者九千人。" 云。 事聞, 舜臣賞階正憲, 下書褒美。

  • @Can-zv2ev
    @Can-zv2ev 2 года назад +1

    충신을 잡아먹는 나라...

  • @jay-jay8295
    @jay-jay8295 2 года назад +5

    이ㄹ저전쟁이다..히데요시는 일본 영웅이다..이것은 사실 이다..

  • @지수신-j6l
    @지수신-j6l 2 года назад +6

    마치 삼국지연의 류의 임진전쟁연의같은 느낌의 영웅전기네요.
    조선에서는 잊혀진 인물인 이순신이 일본에서는 소설 속 캐릭터로 되살아났다가,
    명치시대 일본 근대화의 과정에서 '롤모델'로 재조명되었고,
    그것이 한국으로 역수출되어 친일 작가 이광수와 일본장교 출신 박정희에 의해 '국민영웅'이 되었다는 사실은
    재미있는 역사의 아이러니입니다.

    • @davidjacobs8558
      @davidjacobs8558 2 года назад +1

      거짓말을 안하면 박정희를 깔 수가 없냐? 박정희는 만주군 장교였지, 일본군 장교인 적이 없다.

    • @지수신-j6l
      @지수신-j6l 2 года назад

      ​@@davidjacobs8558 언어 능력이 심각하게 모자라는 모양이네.
      대체 누가 박정희를 '깠다'는거야?
      내 댓글에서 박정희에 대한 말은 '일본장교 출신'뿐인데, 그게 왜 '까는'게 될까?
      '일본장교 출신'이라는 단순명백한 사실을 밝힌 말이 비난으로 들린다는 것은, 국뽕 세뇌된 반일 정신병에 골수까지 썩어서 조건반사적으로 발작하는 지경인 중증이라는 뜻이다.
      만주군이나 일본군이나 ㅋㅋ
      만주국이 어떤 나라였는지를 여기서 구구절절이 강의해줘야겠니?
      박정희는 황군 장교가 되고 싶었는데, 조선인의 임관이 허락되는 곳은 일본의 괴뢰 만주군 뿐이어서 만주군에 들어간거다. 교육 과정에서 일본 육사에 편입해
      우수한 성적을 거둔 사실도 있는, 훌륭한 황군장교다.

    • @이해피-c1v
      @이해피-c1v 2 года назад

      방송에서 설명해줘도 못 알아 먹네요. 메이지유신 후 일본은 군국주의 길을 걷습니다. 육군은 아베가 고향인 야마구찌(당시 명칭으로 죠오슈번) 출신들이 주동적으로 키워나가고 육군 권력도 다 갖습니다. 해군은 메이지 유신을 죠오슈번과 같이 일으킨 사쓰마번(쿠마모또)이 맡는데 정부에서의 지원이 영 마땅치 않습니다. 그들 나름대로 짱구 굴려서 이순신을 불러들이고 이래서 해군 키워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청일전쟁시 해전에서 이기면서 해군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이순신 영웅만들기는 기승을 부립니다. 드디어 러일전쟁까지 해전에서 이기자, 그들은 광기로 미쳐 날뜁니다. 매년, 해군 수뇌부에서 진해의 이순신 현충사를 방문합니다. 태평양전쟁 말기까지. 1870년부터 1940년까지 이순신 영웅 만들기 작업이 계속 띄워지고, 이 당시 일본 육사를 다녔던 박정희는 일본군 수뇌부가 진해 현충사를 정기적으로 방문한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나는 생각만큼 이순신을 존경하지 않는다. 왜? 간단하다. 이순신은 패하지 않는 전쟁을 한 장군이지 이기는 전쟁을 한 장군이 아니다. 나는 패하지 않는 전쟁을 하는 장군을 전혀 좋아하지 않는다. 이순신이라는 존재가 일본군 출신인 박정희가 정권을 잡으면서 마땅히 숭상해야 할 영웅만들기의 대상으로 이순신을 택한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1960년대부터 TV 드라마에서 툭하면 이순신 드라마가 나왔고 여러가지 이순신 영화가 나왔으며, 그런 전통은 지금까지 이어져 10년에 한번은 새로운 버젼의 이순신 드라마, 영화가 등장한다. 이 정도 띄워주면 영웅이 아니될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과연 영웅감인가 ? 삼도수군통제사가 되기 전 몇 번의 전투에서 승리했다. 그러나 전투다운 전투는 단 한번 한산도 해전이었다. 한산도해전이 끝나도 조정은 이순신을 승급, 승진시키지 않았다. 임진왜란 발발 후 1년도 안되어 천민 출신이던 한명련이 종 3품에 까지 파격적으로 오르고, 황진이 군졸에서 종 3품으로 오르는 동안 이순신은 승급이 없었다. 삼도수군통제사가 되어도 당분간 종 3품 전라좌수사의 승급이 그대로 유지되다가 마지못해 종 2품으로 올려준 정도이다. 한산도 해전 후 이순신은 통제영을 한산도로 옮긴다. 여러분은 이순신이 한산도 통제영에서 얼마의 기간을 별다른 전투도 없이 지낸 것으로 아는가. 4년에 약간 못 미치는 동안 이순신은 한산도에서 전투다운 전투 한번 없이 독수공방하며 지낸다. 여러분은 전쟁 기간 중의 4년이라는 기간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 2차대전 시 미국과 일본의 태평양 전쟁은 약 3.5년만에 끝난다. 세계 어느 전쟁사를 보아도 4년간 지속되는 전쟁은 예를 찾기 힘들다. 한산도에 본영을 설치할 시 이순신의 목표는 분명했다(그 후에 발생한 일로 유추하는 것이다). 견내량 사수를 통한 일본 수군의 서쪽으로의 전개를 틀어 막는 것이었다. 한산도 옆에는 거제도가 있다. 거제도에서는 바로 앞바다가 부산포이다. 견내량 사수작전은 올바랐는가. 한산도에 통제영을 두고 부산포를 치라는 명령때문에 이순신은 부산포를 친다. 왜적들은 화포의 사거리가 짧았으므로 산정상에다가 화포를 설치하고 쏘아댔다. 고작해야 일자진으로 들어가 부산포에 정박한 왜선 몇 척 박살내고 탈출해 나오는 게 할 수 있는 작전의 전부였다. 부산포를 친 목적은 부산-대마도-일본, 으로 이어지는 보급 루트를 격멸하는 것이었는데 이 목적을 달성할 수 없었다. 이순신은 이후 부산포 군수 거점을 초토화하여 상륙한 왜군에게 보급이 행해지지 못하도록 하는 전투의 기본 대원칙을 무시한 채 견내량 사수만 했다. 4년이라는 한산도 통제영 시절, 이순신은 왜 그렇게도 무기력했던가. 어떤 자료를 찾아보아도 신무기를 개발했다는 자료를 찾을 수 없으며 새로운 함정을 개발했다는 자료를 찾아볼 수 없으며, 새로운 전술을 개발했다는 자료를 찾아볼 수 없다. 이순신이 자기 본연의 임무가 견내량 사수라 보았다면, 조정에서는 부산포를 쳐서 부산포를 통한 보급을 단절시킴으로써 전쟁을 조기에 종결시키기를 원했다. 그런데 이순신은 4년이나 엉덩이 질기게 바닥에 대고 앉아 있었다. 6.25 때 인천상륙작전에 동원된 해병대는 제주도 모슬포 해병대 기지에서 단 2주간 훈련받고 인천상륙작전에 투입되었다. 전시에는 평시보다 시간을 5분의 1로 단축할 수 있다. 이순신이 갖고 있던 4년, 잘만 활용했으면 호남에서 군대를 징발하여 오늘날의 해병대에 해당하는 군대를 2만 내지 3만은 양성할 수 있었을 것이다. 2년간 공들이면 특수부대도 만들 수 있는 기간이다. 전시이기 때문이다. 이들 병력을 수송하면서 동시에 속도가 왜적의 세끼부네보다도 더욱 빠르고 함포사격까지 가능한 함정을 개발할 수 있었을 것이다. 천자총통,지자총통, 현자총통, 황자총통 중, 가장 작은 황자총통보다도 더 작은 총통을 다수 배에 싣고서 해병대들이 상륙한 다음, 포격전을 할 수 있도록 4인 1조로 들고 다닐 수 있는 화포를 개발할 수도 있었다. 난중일기에 보면 이순신은 천자총통, 지자총통이 왜적의 화포대비 사거리가 길고 화력이 좋아 흡족하다, 는 표현이 나온다. 이순신은 왜 화포의 구경을 더욱 키우고 포신 길이를 더 연장한 사거리가 더욱 긴 화포를 개발하지 않았던가. 천자총총은 곡사로 쏘면 800미터 내지 1000미터 날아가고 직사로 쏘면 100미터 날아간다. 1453년(임진왜란 140년전) 오스만투르크는 무게가 600Kg 나 하는 초거대 화포를 개발하고, 콘스탄티노플 점령 작전에 나섰다. 콘스탄티노플은 천년간 함락당한 적이 없는 난공불락의 이중성곽이었다. 거대화포 사격에 이틀만에 콘스탄티노플이 함락당했다. 이순신은 한산도 옆에 있는 왜군의 수중에 있던 거제도를 딱 한번 공격해보고는 더 이상 공격할 생각을 접어버렸다. 이 지점에서 조정과 괴리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조정은 거제도를 점령하고 부산포의 보급기지를 격파하고 나아가서 왜로부터 보급선이 올 때마다 원거리로 나가서 격침시켜 버리기를 원하였다. 조정의 요구는 무리한 것인가 ? 전쟁이 조선 땅에서 장기화되면 누구 손해인가 ? 이순신이 사거리 1.5Km에 달하는 장사정포를 새로 개발하고, 이런 장사정포를 효과적으로 발사 가능한 함정을 새로 개발하고, 오늘날의 해병대에 해당하는 병력을 3만명까지 양성하고, 그들 병력을 고속으로 이동시키며 화포를 발사할 수 있고, 함정에 실린 화포들을 쉽게 육지로 하역할 수 있는 함정을 개발하여, 거제도를 공격했으면 어찌되었을 것인가 ? 거제도를 점령하면 섬이므로 적의 공격에 대비하는 군대를 3000명 정도 상주시키고 나머지는 부산포 등의 공격에 동원하고 나머지는 적의 원해 보급선을 요격하는 임무에 투입했다면, 전황은 어찌되었을 것인가 ? 노량해전에서 조선의 함정은 속도가 느린 판옥선이다. 그러니 애초부터 도주하는 적의 세끼부네 함선들을 추격할 수 없었다. 적의 세끼부네 함정보다 속도가 더 빠른 함포사격이 가능한 함정이 있었다면 조선으로 건너온 적은 과연 살아 돌아갈 수 있었을 것인가 ? 내 지식으로는 이순신은 그다지 칭송받을 인물이 아니다. 이성계의 발끝도 따라가지 못한다. 이성계는 모두 불리한 상태에서 기이로운 전법으로 모두 역전시켰다. 이순신에게는 정공법은 있으되 기책이 없다. 나는 이순신은 존경하지 않는다. 그저 그런 장수이기 때문이다.

    • @davidjacobs8558
      @davidjacobs8558 2 года назад +1

      @@지수신-j6l 만주국이 실제적으로 일본의 속국이던 괴뢰국이던, 대외적으론 자주국 이었고, 황제국 이었다. 만주국 황제는 청나라 마지막 황제 애신각라 푸이 였고. 그는 실제 권력이 있던 없던 대외적으론 황제로 불렸다.
      그래서 박정희가 만주군관학교에 입학하려 혈세로 충성을 맹세한것도 좌빨들은 일본천황이라고 우기지만, 명백히 만주국 황제 푸이 한테 한것이고.
      좌빨 주사파 논리에 의하면, 대한민국도 미국의 괴뢰국 일뿐인데, 그렇다고 한국군 장교가 미군장교가 되냐?
      한국 육사에서 성적이 좋아서 미군 육사에 교환학생으로 가서 연수 받는다고 미군장교가 되냐 말이다.
      좌빨 어거지 주장에 넘어가서 박정희가 황군 장교니, 일본군 장교니 우기는 거짓말에 속아넘어가지.
      그리고, 일본군에 들어가고 싶었다면 일본군 들어가면 됬다. 좌파들이 박정희가 죽였다고 우기는 "장준하 선생" 이란 놈은 일제시대 일본군에 자진 입대한 놈이다. 그래놓고 박정희를 욕한 미췬넘이지.

    • @amytom9223
      @amytom9223 2 года назад

      반도삼국 믿는 분이 여길 오셨네

  • @sung-myunkwon7595
    @sung-myunkwon7595 2 года назад +1

    감히 너희들이

  • @흑우-y9y
    @흑우-y9y 2 года назад +3

    댓글을 보면 역사와 현실을 구분 못하는 사람들이 좀 많네요
    우리는 역사를 통해서 교훈을 얻기 위해서 역사를 배우는데 말입니다
    인물은 인물로 평가해야 하고 역사적인 배경은 그 시대를 기준으로 삼아야 합니다
    광개토대왕이 북벌을 해서 적을 죽이면 영웅이고 다른 나라가 우리를 침략하면
    무조건 악인이 되는 건 아닙니다 모든 기준은 명확해야하고 내편이 착하고
    상대편이 악인이다 이런 논리는 우리에게 절대 도움이 안됩니다
    침략전쟁이 나쁘다는건 당연하지만 그것은 지금시대의 기준인것이고
    역사속에서 침략한 모든 사람이 악인이고
    그 사람이 한 행동또한 나쁜행동이다 라고 단정지어 버리는건 아니라고 봅니다
    우리뿐만 아니라 모든 세계사가 전쟁의 역사이고 우리도 강할때는 남을 공격했습니다
    전쟁은 항상 우리가 약할때 일어났고 그 피해는 우리가 다 받았는데
    왜 역사를 통해 배울려고 하지는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