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의를 들으면서 교수직을 사직하시고, 오롯이 철학자로 역할을 다 하시려는 이유를 조금 알게 되는것 같습니다. 무지해서 업을 쌓게 되기에 그 무지함에서 건너갈 수 있도록 자신의 지혜를 나눠주셔서 감사합니다. 장자 수업에서 말씀해주셨던 KTX 특실에서 만난던 팬처럼 보다는 일상에서 자고나서 이불개기, 양말 뒤집어 빨래통에 넣지 않기, 먼저 반갑게 인사하기 등을 통해 어제의 나와 비교할 수 있는 삶을 살아가면서 개개인의 성숙해지면 그들이 모여 있는 사회가 성숙해지기 원하시는 지식인이자 철학자로써의 모습이 보여집니다. 작은 일상들을 바꾸고 지식을 이야기하는 자이기 보다 지식을 행하는 자가 되고싶은 동기부여를 잘받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동키호테교수님~~ 공감의 씨앗이지요? 하늘과 땅이 사랑한 후 내가 태어나서 씨앗을 퍼뜨려서 공감하는 인연의 씨앗. 니가 있어서 내가 있고 내가 있어서 너가 있고 니가 없응션 내가 없고 내가 없으면 니가 없고 내가 너고 니가 나여? 🌳차유고피유 차멸고피멸. 인간이 인간인 이유가 인간에게 있다. 의자에 앉아계신 동키호테교수님 얘기를 듣고 있는 저 여기있어요! ~^^*
흥미롭습니다. 듣다보니 양자역학과 닮았다라는 느낌을 받네요. 포스트모더니즘적 사고가 정말 막강하군요. 설득력도 굉장하고요. 근데 제 생각은 이렇습니다 교수님. 연합된 것들의 존재 근거가 있지 않을까요? 다양한 계기들이 잠시 얽혀 있는 상태라는것 역시 본질이 있다라는걸 말해주는거 같습니다. 계기라는 단어에 전 방점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계기란 무엇일까요? 교수님이 말씀하셨던 타자가 공을 바라볼 때의 그 경향성이라는 개념 있잖아요? 전 모너니즘적인 사고의 본질 말고요, 자연이 만들어내는 경향성, 계기같은 개념이 본질이라고 바라보고 있습니다. 의자라것의 본질은 모더니즘적 사고로는 앉음이라고 한다면 포스트모더니즘적 사고로는 존재하는 다양한 것들이 어떤 계기로 관계성을 가지고 잠시 머무는 것이라고 한다면 이 두 개념을 경향성이라는 걸로 합칠 수 있지 않을까요? 경향성이라는건 직선이 곡선으로 가려는 현상, 곡선이 직선으로 가려는 현상, 서있고 있으면 앉고 싶고 앉고 있으면 눞고 싶고 하는 경향성이라는게 있잖아요? 인간도 마찬가지로 돈을 벌고 싶고 게으르고 싶고 세상 모든 존재하는것 내면에는 경향성을 가지고 있다라고 봅니다. 인연에 의해 현재 의자라는 형태로 보여지는 것의 존재 근거를 물으신다면 전 있다라고 대답합니다. 존재 그건가 무엇이냐면 앉음이라고 정의내리는게 아니라 자연의 경향성인 위에서 누르는걸 저항하려고 하는 힘이라고 대답하겠습니다. 자연은 중력이 있고 중력의 반대적인 힘이 있잖아요. 이 두가지 힘이 어울리며 세상에 경향성을 만들어냅니다. 이게 본질이라는거죠. 이 경향성이 세상을 만들어내고 흐름을 이끌고 방향을 만들어내는거죠. 그럼 경향성은 어떻게 만들어지는 걸까요? 그러니까 전 이 경향성을 본질이라고 보는겁니다. 세상이 만들어지고 안정에서 불안정으로 가려는 속성과 불안정에서 안정으로 가려는 속성이라는 두 축이 탄생하게 된거죠. 두 속성 모두 방향을 가지게 되면서 하느는 해체하려는 경향성, 다른 하나는 합치려고 하는 경향성이 만들어진 거죠. 본질은 그래서 음악으로 비유하자면 도레미파솔라시라는거죠. 이 7음계가 세상의 모든 음악을 만들어 냈잖아요? 근데 불안정에서 안정으로 가려는 속성과 안정에서 불안정으로 가려는 속성이 어울러지면서 멜로디가 나오게 되는거죠. 그러니까 제가 교수님 말을 잘 이해했는지 확신할 수 없이 떠벌리고 있을 수 있지만 우연적으로 존재하는 것들이 모였잖아요? 근데 자연의 알고리즘에 의해 경향성이 있기 때문에 의자로 탄생하게 된거라는 거죠. 우연적으로 제가 옷가게를 갔다고 치고 그 옷가게에서 옷을 구경하거나 사거나 그냥 나오거나 하는 판단의 근거는 여태껏 내가 살아와서 만들어진 나의 경향성의 결과 아니겠습니까. 경향성에 의해서 과학이 나오고 논리가 나오고 예술이 나오고 문학이 나오고 세상의 모든건 경향성에서부터 시작하는거 아니냐는거죠. 음과 양이 만들어지기 위해선 경향성부터 정의되어야 하는거 아닌가요? 부처나 노자나 장자나 예수나 공자나 소크라테스나.. 자연이 만들어내는 경향성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불교의 실체란 무엇인가요? 실체란 그 존재가 변화지 않으면서 다른 대상을 변화시키는 존재인가요? 아니면 실체란 그 존재가 변화지 않는 것인가요? 불교에서 실체가 없다는 것은 대상과 대상에 대한 생각의 과정이라고 여겨지는 색+식(수상행)인 오온으로 구성되어 있어 늘 변화기 때문인가요? 실체가 없다는 것이 무아로 이어진다면 참나는 어떻게 나타날 수 있는 개념인가요? 참나는 선종 불교에서 시작된 불성이라는 자성이라는 개념인가요? 마지막으로 인도의 유식불교에서 중국의 선종 불교로 넘어올 때 왜? 자성이 불성이라는 개념을 수용하게 된것인가요?
유는 무에 의해서 드러나고, 무는 유에 의해서 드러난다. 의존한다. 본질이란 어떤것이 다른 것이 아닌 바로 그것이게 만드는 성질이다. 존재근거다. 인연은 연합, 관계다. 자성(이것이 이것이게 하는 성질)이 없다. 불교에선 공(논리적 개념)이라 쓰고, 본무자성이라 읽는다. 감사합니다^^
강의를 들으면서 교수직을 사직하시고, 오롯이 철학자로 역할을 다 하시려는 이유를 조금 알게 되는것 같습니다.
무지해서 업을 쌓게 되기에 그 무지함에서 건너갈 수 있도록 자신의 지혜를 나눠주셔서 감사합니다. 장자 수업에서 말씀해주셨던 KTX 특실에서 만난던 팬처럼 보다는 일상에서 자고나서 이불개기, 양말 뒤집어 빨래통에 넣지 않기, 먼저 반갑게 인사하기 등을 통해 어제의 나와 비교할 수 있는 삶을 살아가면서 개개인의 성숙해지면 그들이 모여 있는 사회가 성숙해지기 원하시는 지식인이자 철학자로써의 모습이 보여집니다. 작은 일상들을 바꾸고 지식을 이야기하는 자이기 보다 지식을 행하는 자가 되고싶은 동기부여를 잘받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반야심경 정주행하고 있습니다
매일매일이 기다려집니다
어슴프레하든 앞이 교수님 강의덕에
조금 환해져옵니다^^♡♡♡
건강하시고 2020년에도 경계에 서서 살아가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워메~참말로 새로운 맛이다. 점점 빠져들어가는 요 맛은 뭣이다냐...아침마다 만나는 반야심경 이야기에 푹 빠집니다. 고맙습니다.
너무너무 궁금하고 이해하기 어려웠던 '자성은 본래없다'는 말을 딱 알아듣도록 해주시네요
정말 감사합니다 교수님♡♡♡
1번이닷.ㅎㅎㅎ
인연~관계
어떤 존재든 어떤것의 본질을
본질되게 하는것~~그것이 그것되게
하는것!!
교수님 감사합니다^♡^
재미있게 듣고 있습니다
매일 올려주셔서 더 좋아요~^-^
동키호테교수님~~
공감의 씨앗이지요?
하늘과 땅이 사랑한 후 내가 태어나서
씨앗을 퍼뜨려서 공감하는 인연의 씨앗.
니가 있어서 내가 있고
내가 있어서 너가 있고
니가 없응션 내가 없고
내가 없으면 니가 없고
내가 너고 니가 나여?
🌳차유고피유 차멸고피멸.
인간이 인간인 이유가 인간에게 있다.
의자에 앉아계신 동키호테교수님 얘기를 듣고 있는 저 여기있어요! ~^^*
공한 세상속에서 인간의 인연으로 태어난 우리들도 그저 공한것일진대 과연 어떻게 살아가야하는지요
인간들이 행복할수있도록 고행하신 부처님의 말씀대로 행복하게만 살면되는지요 ㅎㅎ
정말 덕높으신 강의 고맙습니다
지금 잘보고듣고있습니다
앉음은 의자를있게하는 본질.
잠오지않는밤에 잠들기아까운..넘나 좋은 상찰의시간입니다
교수님 감사합니다
스승님 좋은 아침입니다
어제강의에서 공하다는것이 무엇인지 참 궁금했사온데
오늘 강의에서 일단 공하는것은 본무자성이다라고 말씀 해주시어 한단계 생각이 펼쳐지는것 같습니다
고맙습니다
너무 궁금해서 오늘 만사를 뒤로하고 스승님 강의를 들을수있었습니다
참으로 호기심의 열정 뭔가 무언가를 생성할수있는 동력인것같습니다
양자 물리학적이네요
이시대 정신적 방향타를 가진 최진석 교수님 화이팅 유무상생 ㅡ 유와 무는 의존관계다 잠시 얽혀 있는 상태다 포스트 모더니즘 ㅡ이세계 모든것은 등기가 되어있지 않다 이세계는 인연으로 본질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본질은 어떤것을 다른것이 아니라 바로 그것이게 하는것
교수님 잘듣고 있습니다
444딱딱
본질 = 존재 근거
그걸 인정해주는 것이 진짜!
성질을 근거로 존재하면 그 지속성이 더 보장된다👏👏👏👏👏👏👏👏
반대는 가유!!! 모든 인연 , 실상, 윤회 즉 관계는 본무자성! = 공
마양 재밌네요
보이지 않는 에너지가
볼려고 할때 에너지가 동실성으로
두개가 관점을 바꿔도 다 똑같은 에너지다
흥미롭습니다. 듣다보니 양자역학과 닮았다라는 느낌을 받네요. 포스트모더니즘적 사고가 정말 막강하군요. 설득력도 굉장하고요. 근데 제 생각은 이렇습니다 교수님. 연합된 것들의 존재 근거가 있지 않을까요? 다양한 계기들이 잠시 얽혀 있는 상태라는것 역시 본질이 있다라는걸 말해주는거 같습니다. 계기라는 단어에 전 방점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계기란 무엇일까요? 교수님이 말씀하셨던 타자가 공을 바라볼 때의 그 경향성이라는 개념 있잖아요? 전 모너니즘적인 사고의 본질 말고요, 자연이 만들어내는 경향성, 계기같은 개념이 본질이라고 바라보고 있습니다. 의자라것의 본질은 모더니즘적 사고로는 앉음이라고 한다면 포스트모더니즘적 사고로는 존재하는 다양한 것들이 어떤 계기로 관계성을 가지고 잠시 머무는 것이라고 한다면 이 두 개념을 경향성이라는 걸로 합칠 수 있지 않을까요? 경향성이라는건 직선이 곡선으로 가려는 현상, 곡선이 직선으로 가려는 현상, 서있고 있으면 앉고 싶고 앉고 있으면 눞고 싶고 하는 경향성이라는게 있잖아요? 인간도 마찬가지로 돈을 벌고 싶고 게으르고 싶고 세상 모든 존재하는것 내면에는 경향성을 가지고 있다라고 봅니다. 인연에 의해 현재 의자라는 형태로 보여지는 것의 존재 근거를 물으신다면 전 있다라고 대답합니다. 존재 그건가 무엇이냐면 앉음이라고 정의내리는게 아니라 자연의 경향성인 위에서 누르는걸 저항하려고 하는 힘이라고 대답하겠습니다. 자연은 중력이 있고 중력의 반대적인 힘이 있잖아요. 이 두가지 힘이 어울리며 세상에 경향성을 만들어냅니다. 이게 본질이라는거죠.
이 경향성이 세상을 만들어내고 흐름을 이끌고 방향을 만들어내는거죠. 그럼 경향성은 어떻게 만들어지는 걸까요? 그러니까 전 이 경향성을 본질이라고 보는겁니다. 세상이 만들어지고 안정에서 불안정으로 가려는 속성과 불안정에서 안정으로 가려는 속성이라는 두 축이 탄생하게 된거죠. 두 속성 모두 방향을 가지게 되면서 하느는 해체하려는 경향성, 다른 하나는 합치려고 하는 경향성이 만들어진 거죠. 본질은 그래서 음악으로 비유하자면 도레미파솔라시라는거죠. 이 7음계가 세상의 모든 음악을 만들어 냈잖아요? 근데 불안정에서 안정으로 가려는 속성과 안정에서 불안정으로 가려는 속성이 어울러지면서 멜로디가 나오게 되는거죠. 그러니까 제가 교수님 말을 잘 이해했는지 확신할 수 없이 떠벌리고 있을 수 있지만 우연적으로 존재하는 것들이 모였잖아요? 근데 자연의 알고리즘에 의해 경향성이 있기 때문에 의자로 탄생하게 된거라는 거죠. 우연적으로 제가 옷가게를 갔다고 치고 그 옷가게에서 옷을 구경하거나 사거나 그냥 나오거나 하는 판단의 근거는 여태껏 내가 살아와서 만들어진 나의 경향성의 결과 아니겠습니까. 경향성에 의해서 과학이 나오고 논리가 나오고 예술이 나오고 문학이 나오고 세상의 모든건 경향성에서부터 시작하는거 아니냐는거죠. 음과 양이 만들어지기 위해선 경향성부터 정의되어야 하는거 아닌가요? 부처나 노자나 장자나 예수나 공자나 소크라테스나.. 자연이 만들어내는 경향성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불교의 실체란 무엇인가요?
실체란 그 존재가 변화지 않으면서 다른 대상을 변화시키는 존재인가요?
아니면 실체란 그 존재가 변화지 않는 것인가요?
불교에서 실체가 없다는 것은
대상과 대상에 대한 생각의 과정이라고 여겨지는
색+식(수상행)인 오온으로 구성되어 있어
늘 변화기 때문인가요?
실체가 없다는 것이 무아로 이어진다면
참나는 어떻게 나타날 수 있는 개념인가요?
참나는 선종 불교에서 시작된 불성이라는 자성이라는 개념인가요?
마지막으로 인도의 유식불교에서 중국의 선종 불교로 넘어올 때 왜? 자성이 불성이라는 개념을 수용하게 된것인가요?
어려운 불교용어 이해가 잘됩니다. 감사합니다.
유는 무에 의해서 드러나고, 무는 유에 의해서 드러난다. 의존한다. 본질이란 어떤것이 다른 것이 아닌 바로 그것이게 만드는 성질이다. 존재근거다.
인연은 연합, 관계다. 자성(이것이 이것이게 하는 성질)이 없다.
불교에선 공(논리적 개념)이라 쓰고, 본무자성이라 읽는다.
감사합니다^^
선생님 감사합니다
공하는다는것을 알면
인정하면 집착이 없어지고 보이지않는곳으로
나아가게 하는것이다
그럼 원래는 본무자성이지만 거기서 자성을 만들어 온게 인간들이고, 계속 자성을 만들어가야되는게 인간의 역할이라고 이해해도 될까요? 의자 만들듯이요.
실상은 연기법의 의해 가상으로 들어난다
있다는 것은 없다는 것을 근거로 존재한다 는 것이군요
없다는 것은 있다는 것을 근거로 존재 하는것이군요
ㅎㅎ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동양에서 세계를 해설하는 관점은 일관적이다.단지, 표현방식이 다를 뿐~~유무상생(노자-도), 본무자성(불교-공), 일음일양(주역)~~ 이라고 정리 하겠습니다. 또 다른 관점을 배울때 까지.....
새말!새몸짓!!!☆☆☆☆☆
이 세상의 실상 = 본무자성 ( '공' ) 되뇌여 봅니다. 감사합니다_()_
공마저도 공해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