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따지면 정조 입장에서도 나라에서 강제로 결혼시킨거니.... 근데 중전이랑 사이는 별로 나쁘진 않았다고 함 오히려 자신의 최측근이자 왕이 되는데 1등 공신이었던 홍국영이 중전에게 앙심 품고 모함 좀 했다고 바로 영혼까지 털어버린뒤에 유배 보내서 죽여버릴 정도로 중전을 보호하는데 적극적이었고 중전이 나이 30을 넘긴 때에도, 매일매일 중천의 처소에 찾아가 후사를 만드려고 했으며(그 당시 여자 나이 30이면 지금 50대 인식이라고 보면 됨) 중전도 상상임신을 할 정도였던거 보면 나쁜 사이가 아닌건 분명함 굳이 따지자면 의빈 = 최애 중전 = 제일 친한 여사친 정도?? 그리고 정조가 "내가 모든 후궁 중에 가장 사랑하는 자가 의빈이다" 라고 했는데 모든 "여자 중"이 아닌 모든 "후궁 중"에서라고 한것으로 보아 중전의 체면과 위엄은 지켜준거 같음
덕임이 성격도 순하고 착한데다가 어린시절부터 함께 자란 사이라 의빈과 효의왕후의 사이는 좋았다고 해요. 의빈이 사망했을 때 효의왕후가 자매를 잃었다고 매우 슬퍼했다는 기록도 남아있는 걸로 알고 있어요. 저 시대 관념 상 어차피 자기가 후계자를 생산하지 못하면 자기랑 가까운 여자가 세자의 모친이 되는 게 훨씬 낫긴 하죠… 세자의 법적 모친은 명목상 어쨌든 중전이니 미운 여자 애보다는 사이좋은 여자 애 돌보는 게 훨씬 마음 편한 거…
@@김레온-k6f화안옹주 이간질로 초반엔 중전과 사이가 매우 안 좋았다고 하더라고요. (정확히는 정조가 중전을 멀리했겠죠) 둘 사이가 화목하지 못한 것에 왕실 웃전들의 우려가 컸다는 게 기록상으로도 남아 있을 거에요. 시간이 많이 지난 후엔 사이가 나름 좋아지긴 했는데 사랑보다는 존중의 느낌인 것 같더라고요. 의빈도 중간에서 중재를 많이 했던 것 같고.
@@이게뭐냐-f2n 기록상으로 보면 효의왕후 인품 자체는 온화하고 착했음. 한중록 보면, 사도세자 죽은 후 혜경궁이 세손과 옹주들을 데리고 친정으로 떠나면서 세손빈(효의왕후)에게도 너네 친정으로 피접 가있으라고 하는데, 어찌 그럴 수 있겠냐하고 울면서 혜경궁 친정으로 따라갔다고 해요. 또한 의빈(성덕임)과도 자매처럼 잘 지냈다는 일화가 많고, 의빈이 죽을 때도 통곡했다는 걸 보면 타고난 성품이 여리고 착한 편인 걸 알 수 있어요. 그리고 후사가 없는 걸 중전 탓만 할 수 없는 게, 기록에도 나오듯 정조는 여색을 멀리하기로 유명했어요. 그래서 대비전에서마저 걱정이 이만저만한 게 아니었다함. ( 화안옹주의 이간질로 인해 중전을 멀리한 부분도 있지만) 정식 후궁인 원빈은 너무 어려서 죽었고, 화빈은 상상임신만 한 것만 봐도... 그리고 효의왕후의 경우, 조선시대 왕과 왕비의 합방 과정을 생각해보면... 후사가 없는 것도 이해가 감.
성덕임 집안 입장에서는 진짜 웃프네 그냥 중인집안에서 한 순간에 왕의 외척이 됐는데 갑자기 세자가 죽음 근데 딸아이도 죽음 근데 애 품은 의빈이 또 죽음 이 무슨 개억까임 정조도 솔직히 믿기 힘들었을 듯 기억이랑 흔적은 남아있는데 곁에 남은 사람들이 없으니 해피엔딩이 아니라서 아쉽다 문효세자 분명 잘했을 것 같은데 엄마가 착해서
준호 얼굴로 미화돼서 그렇지 실제 정조는 다른 조선 왕들처럼 후덕한 아저씨였을 확률이 높고 정조가 성덕임을 사랑한건 맞지만 성덕임의 마음이 어땠는지는 아무도 모름 왕의 구애를 두번이나 거절한다는건 죽음을 각오할만큼 마음이 없었거나 최소한 평범한 삶을 원했다는 건데 괜히 왕 눈에 들어서 시집 가가지고 같이 사는 내내 임신과 출산만 반복하다가 일찍 죽음. 정조 눈에 들지만 않았어도 천수를 다 누리고 갔을 텐데 안타깝지
정조가 35살 즈음에 모습이 흡사 노인과 같았답니다. 치아는 거의 다 빠졌고 머리는 백발이었고 우리가 현대식으로 생각한 서른이 아닌거죠 ㅠ 청선군주 남편 정재화의 30대 초중반의 초상화를 보면 거의 50대 아니 노인의 모습이죠! 알려진 정조어진은 상상해서 그려낸 어진이라는 사실! 얼굴이 크고 턱이 겹턱이고 코도 납작하고 그랬다니 인물은 그렇지만. 최고의 브레인 왕은 맞죠
덕임이 죽고 사랑하는 이를 다 떠나보내고 울화병에 종기에 급격한 노화에 삶이 그냥 버티는거였어서😢 술담배도 다 떠나보내고 그리울때마다 생각나서 가까이하시게 된것같네요😢 근데 노비개혁 앞두고 돌아가신거 보면 독살이 의심되네요 정순왕후와 탕약 들고 단둘이 독대한 후 돌아가신 것과 정조개혁 다 뒤엎고 정조 승하후 정순왕후 가문이 김귀주를 이조판서 추승 및 복원되고 심환지는 영의정으로 승진하고 심환지 가문의 진찰을보던 심인 이라는 의원을 승진시킨것이 이상하네요
@@라온-x4n 심환지에게 보낸 300여통의 편지가 나온후 독살설은 깨졌어요 정조는 스스로 약을 조제해서 먹었고 열이나서 이불에 눕지도 못하고 찬바닥에 누웠지만 잠도 못잤고 항상 얼음물을 마셨고 피를 한대접씩 뽑았다고 했고요 편지에 병세에 대해서 지속적으로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어요 나는 갑자기 눈곱이 불어나고 머리가 부어 오르며 목과 폐가 메마르다 뱃속의 화기가 올라가기만 하고 내려가지 않는다 약제를 몇첩이나 먹었는지 모른다 통증을 견디기 위해 양귀비를 피웠다 정조의 병세는 회복 불가능이라고 현대의 의사들도 진단했어요 그리고 노비개혁은 정순왕후가 했어요 정조의 정책을 그대로 시행한것입니다 정순왕후는 드라마에서 악마화 되었는데 실제는 정조를 많이 도운사람입니다
뭐 시대상으로 봤을 때 두 번의 거절을 그냥 넘긴 건 대단하긴 한데 옆에 사람 괴롭히는 쪼잔한 방법으로 지 옆에 붙들어 놨는데 애절한지는 모르겠음 물론 후사가 급한 상황에서 어쩔 수 없는 위치에 두 사람이 있었던 것은 맞지만 그리 사랑했다면서 제대로 몸을 추스릴 시간도 안 주고 5년간 임신/유산/출산을 반복한 것만 봐도 진짜 성덕임을 사랑한 게 맞는지 모르겠음 그리 사랑했음 최소한 조금이라도 몸을 보호하고 추스를 시간은 줬어야 하지 않음? 걍 자기 사랑에 자기가 취한 듯
그 시대에 남,여가 유별했는데 아무리 정조가 의학에도 해박했다해도 남자이고 왕인데 여자의 임신에 대해서 제대로 알리가 만무하죠 게다가 정치적으로도 후계자가 절실한 상황이니 빨리 임신을 시키고 아이도 많이 낳아야겠죠 또 많이 사랑하고 좋아했다면 더더욱 그랬을꺼고...안타까울뿐인거죠
그때 왕이 뭘 알겠어요 사랑하니까 그여인이 낳은 아들로 하루속히 후계자를 삼아야겠다는 생각뿐이었겠죠 그시대는 금슬이 좋고 자녀를 많이 낳으면 사랑의 증표로 여깁니다 성덕임 입장에서는 몸도 마음도 병들었는데 계속 들이대는 정조가 마냥 사랑스럽지는 않았을겁니다 정조가 의학공부를 많이했어도 그건 주로 본인몸이 아프고 독살당할까봐 스스로 고치기 위한것이지 여자몸에 대한 공부는 안했겠지요
그 시절에 왕이 몇 십년 동안 첫사랑 간직하면서 기다려준데다가 의빈이 죽고나서는 사랑하는 여자가 영영 사람들 기억 속에서 잊혀질까봐 왕 본인이 손수 기록까지 남겼으니 드라마로까지 회자될 스토리인거죠… 너가 잊혀질까봐 두렵다 라는 말은 실제로 정조가 쓴 글에 나와있는 내용이에요. 저런 찐사랑은 요즘 시대에도 정말 보기 힘들죠…
그래서 굉장히 화제가 된 거에요. 정조가 세손 시절부터 덕임이에게 승은을 내리겠다고 했고, 덕임이는 '세손빈 마마에게 아이가 없는데 어찌 제가..' 라는 핑계로 울며 거절했는데 그게 감히 있을 수 없는 일이어서... 당시엔 왕이 아니라 세손이었다지만 그래도 궁의 위계질서상 있을 수 없는 일이니까요. 근데 정조도 쿨하게 그냥 덕임이 의사를 존중해준 것을 보면 둘 사이가 꽤나친밀했던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어요. (혜경궁 사가 출신이고, 혜경궁이 양딸처럼 예뻐했다니 친분을 쌓고 호감까지 품을 여지가 꽤 있었겠죠)
20년을 기다린 사랑이 5년만에 끝난게 너무 슬프다 ㅠㅠㅠ 문효세자도 죽고 옹주도 죽고 뱃속에 아이도 죽고 덕임과 관련된 모든게 하나도 안 남았어 ㅠㅠ
그러게요
나쁜세력이
정조가 맘 놓고 있을때 치고 들어온듯
성덕임의 입장에서의 일기나 글이 남아있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크흐... 진짜 언제 들어도 기가막힘
진짜 너무 애절하고 슬픈 사랑임.. 조선시대에 왕도 저렇게 가슴아픈 사랑을 했구나를 느낌..ㅜㅜ
진짜 ㄹㅇ이요..
이정도의 순수한 사랑을 한 조선의 왕이 또 있을까 싶다
이름도 바를정 처럼 곧고 해바라기 같은 지조가 있는 임금.....흔치 않는 캐릭터인데 너무 멋진
내 마음속 제일 좋아하는 왕 정조
성덕임이 처음부터 정조를 거절하지 않았다면. . 후사가 그리
늦어지지 않았을거다.
그랬다면. . .정조가 일찍 죽더라도 다음 보위가 준비된 왕이 이어갔을텐데. .
그렇게 말하면 모든게 의빈 탓인 것 같잖아요..
이 러브스토리가 지금 로맨스드라마의 원류임... 본부장과 비서나 직원, 한미한 가문의 똑똑하고 예쁜 여자의 사랑 얘기가 같은 맥락임
자기랑 안 사겨주니까 주변 지인들 괴롭히고 트집잡아서 덕임이 겟한 경우 ㅋㅋ 진짜 실화가 드라마 수준
ㄹㅇㅋㅋㅋㅋ 클래식은 클래식이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아 존웃
설렌다..
@@Me-qt6yd 그게 왜설렘.ㅣ..
집착광공ㄷㄷ
@@수세-w2v 원조 조선 집착광공
아 중전이 제일 불쌍해..ㅠㅠ
저 예쁜 두커플 보면서 정작 본인은 사랑하는사람이 없어.. 걍 저둘이 예쁘게 사랑하는거 구경하는꼴이라니... 본인도 이쁘게 연애하고싶을텐데..ㅠㅠ
그렇게 따지면 정조 입장에서도 나라에서 강제로 결혼시킨거니....
근데 중전이랑 사이는 별로 나쁘진 않았다고 함
오히려 자신의 최측근이자 왕이 되는데 1등 공신이었던 홍국영이 중전에게 앙심 품고 모함 좀 했다고
바로 영혼까지 털어버린뒤에 유배 보내서 죽여버릴 정도로 중전을 보호하는데 적극적이었고
중전이 나이 30을 넘긴 때에도, 매일매일 중천의 처소에 찾아가 후사를 만드려고 했으며(그 당시 여자 나이 30이면 지금 50대 인식이라고 보면 됨)
중전도 상상임신을 할 정도였던거 보면 나쁜 사이가 아닌건 분명함
굳이 따지자면
의빈 = 최애
중전 = 제일 친한 여사친
정도??
그리고 정조가 "내가 모든 후궁 중에 가장 사랑하는 자가 의빈이다" 라고 했는데
모든 "여자 중"이 아닌 모든 "후궁 중"에서라고 한것으로 보아 중전의 체면과 위엄은 지켜준거 같음
덕임이 성격도 순하고 착한데다가 어린시절부터 함께 자란 사이라 의빈과 효의왕후의 사이는 좋았다고 해요. 의빈이 사망했을 때 효의왕후가 자매를 잃었다고 매우 슬퍼했다는 기록도 남아있는 걸로 알고 있어요. 저 시대 관념 상 어차피 자기가 후계자를 생산하지 못하면 자기랑 가까운 여자가 세자의 모친이 되는 게 훨씬 낫긴 하죠… 세자의 법적 모친은 명목상 어쨌든 중전이니 미운 여자 애보다는 사이좋은 여자 애 돌보는 게 훨씬 마음 편한 거…
@@김레온-k6f화안옹주 이간질로 초반엔 중전과 사이가 매우 안 좋았다고 하더라고요. (정확히는 정조가 중전을 멀리했겠죠)
둘 사이가 화목하지 못한 것에 왕실 웃전들의 우려가 컸다는 게 기록상으로도 남아 있을 거에요.
시간이 많이 지난 후엔 사이가 나름 좋아지긴 했는데 사랑보다는 존중의 느낌인 것 같더라고요. 의빈도 중간에서 중재를 많이 했던 것 같고.
중전이 후사가 없는게 문제다.
여자 자체가 따뜻하거나 온화한 성품이 아니었겠지. . . .
@@이게뭐냐-f2n 기록상으로 보면 효의왕후 인품 자체는 온화하고 착했음.
한중록 보면, 사도세자 죽은 후 혜경궁이 세손과 옹주들을 데리고 친정으로 떠나면서 세손빈(효의왕후)에게도 너네 친정으로 피접 가있으라고 하는데, 어찌 그럴 수 있겠냐하고 울면서 혜경궁 친정으로 따라갔다고 해요.
또한 의빈(성덕임)과도 자매처럼 잘 지냈다는 일화가 많고, 의빈이 죽을 때도 통곡했다는 걸 보면 타고난 성품이 여리고 착한 편인 걸 알 수 있어요.
그리고 후사가 없는 걸 중전 탓만 할 수 없는 게, 기록에도 나오듯 정조는 여색을 멀리하기로 유명했어요. 그래서 대비전에서마저 걱정이 이만저만한 게 아니었다함.
( 화안옹주의 이간질로 인해 중전을 멀리한 부분도 있지만)
정식 후궁인 원빈은 너무 어려서 죽었고, 화빈은 상상임신만 한 것만 봐도...
그리고 효의왕후의 경우, 조선시대 왕과 왕비의 합방 과정을 생각해보면... 후사가 없는 것도 이해가 감.
정조...제가 정말 좋아하는 왕들 중 하나입니다 ㅠㅠㅠ 진짜 ㅠㅠ
옷끝동 눈물 광광 흘리면서 본 최애 드라마😢😢😢
성덕임 집안 입장에서는 진짜 웃프네 그냥 중인집안에서 한 순간에 왕의 외척이 됐는데 갑자기 세자가 죽음 근데 딸아이도 죽음 근데 애 품은 의빈이 또 죽음 이 무슨 개억까임 정조도 솔직히 믿기 힘들었을 듯 기억이랑 흔적은 남아있는데 곁에 남은 사람들이 없으니 해피엔딩이 아니라서 아쉽다 문효세자 분명 잘했을 것 같은데 엄마가 착해서
정조도 독살의심 되죠... 너무 불쌍 ㅠㅜ
옛날이라 독살에 취약하다보니 정적이 많으면 위험할 수밖에 없는 거같음..
정조의 사랑이 덕임에게 정말 행복이었을까,, 목숨 걸고 거절할 정도였는데,, 정조가 왕의 지위로 강제로 얻은 사람같음...
저도 이 생각을 안 할 수가 없더라고요
그니까요ㅠㅠ 저정도로 거절한거면 ,,,ㅋㅋ
덕임이 수락을 안한다고 덕임의 하녀를 벌주어서 강제로 수락하게 했으니
강제로 첩이 된것은 맞네요
덕임이 매우 착한거지요 하녀가 벌받는것을 못봐서 첩이 되었으니까요
두번이나 거절했는데도
덕임이 하녀들 벌주어서 강제로 취한거나
다름없음요 사랑아닌 집착이지 저건..
준호 얼굴로 미화돼서 그렇지 실제 정조는 다른 조선 왕들처럼 후덕한 아저씨였을 확률이 높고 정조가 성덕임을 사랑한건 맞지만 성덕임의 마음이 어땠는지는 아무도 모름 왕의 구애를 두번이나 거절한다는건 죽음을 각오할만큼 마음이 없었거나 최소한 평범한 삶을 원했다는 건데 괜히 왕 눈에 들어서 시집 가가지고 같이 사는 내내 임신과 출산만 반복하다가 일찍 죽음. 정조 눈에 들지만 않았어도 천수를 다 누리고 갔을 텐데 안타깝지
근데 어릴때부터 봐온 사실상 소꿉친구 수준이라 ㅋㅋ
그랬을수도 있구요 근데 진짜 소꼽친구나 다름없어서 그만큼 친분관계도 있었기에 덕임이 정조가 나는 죽이지는 않을꺼야라는 믿음도 어느정도 있어서 승은을 거부한거일수도 있어요
진짜 완전 남인 생판 모르는 왕이 승은을 받으라고 하면 거절하면 사형인데 쉽지 않았겠죠
정조 어진보면 잘생김
ㅜ@@Elin-sw3jd
@@정원주-s7d상상어진임 순조가 정조의 얼굴을 떠올리며 그린게 있음
두분의사랑은 너무도가슴아픕니다
이렇게 가슴 떨리고 아픈 로맨스가 조선왕의 진짜 이야기라니❤ 정조…👍
정조가 인품이 참 인자하고 너그럽다~ 덕임 참 많이 여러번 봐줬네 .. 그시대에 왕마음 대로 얼마든지 거절하면 죽일수도 있었을텐데~~ 좋아하는마음이 정말 컸던거 같다♡
모든걸 다 같고 좋았을 그 때, 가장 중 한 사람을 잃었을때 아픔이 얼마나 클까요...
꽃소매 장면들 보니 눈물이 ㅠㅠ
정조 그리고 덕임... 한결같은 정조😊 아들까지...
정조... 머리가 참 좋다용
꺅!!! 정조의 흘깃거리며 보는 눈동자 설레요~ ❤😂
정조의 첫사랑..설레요😊
아......ㅠㅠ
붉은 옷소매 끝동
다시 보러 갑니다ㅠㅠ
성덕임이 진짜 아름다웠나보다 수빈박씨는 정치적혼인이니 찐사랑은 성덕임 의빈성씨뿐
정조가 35살 즈음에 모습이 흡사 노인과 같았답니다. 치아는 거의 다 빠졌고 머리는 백발이었고 우리가 현대식으로 생각한 서른이 아닌거죠 ㅠ 청선군주 남편 정재화의 30대 초중반의 초상화를 보면 거의 50대 아니 노인의 모습이죠! 알려진 정조어진은 상상해서 그려낸 어진이라는 사실! 얼굴이 크고 턱이 겹턱이고 코도 납작하고 그랬다니 인물은 그렇지만. 최고의 브레인 왕은 맞죠
누가 독살하려고 한 거 아니에요??? 저 정도면 진짜...
@@user-of2sm6zm6v 만가지 일을 다 처리하는 왕으로 받는 스트레스,암살위협,부친의 죽음이 남긴 트라우마,정적들 술과 담배로 스트레스를 풀고 했으니 얼마나 건강이 나빠졌겠어요? 거기다 다혈질에~
덕임이 죽고 사랑하는 이를 다 떠나보내고 울화병에 종기에 급격한 노화에 삶이 그냥 버티는거였어서😢 술담배도 다 떠나보내고 그리울때마다 생각나서 가까이하시게 된것같네요😢 근데 노비개혁 앞두고 돌아가신거 보면 독살이 의심되네요 정순왕후와 탕약 들고 단둘이 독대한 후 돌아가신 것과 정조개혁 다 뒤엎고 정조 승하후 정순왕후 가문이 김귀주를 이조판서 추승 및 복원되고 심환지는 영의정으로 승진하고 심환지 가문의 진찰을보던 심인 이라는 의원을 승진시킨것이 이상하네요
@@라온-x4n 심환지에게 보낸 300여통의 편지가 나온후 독살설은 깨졌어요
정조는 스스로 약을 조제해서 먹었고 열이나서 이불에 눕지도 못하고 찬바닥에 누웠지만 잠도 못잤고 항상 얼음물을 마셨고
피를 한대접씩 뽑았다고 했고요
편지에 병세에 대해서 지속적으로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어요
나는 갑자기 눈곱이 불어나고 머리가 부어 오르며 목과 폐가 메마르다
뱃속의 화기가 올라가기만 하고 내려가지 않는다
약제를 몇첩이나 먹었는지 모른다 통증을 견디기 위해 양귀비를 피웠다
정조의 병세는 회복 불가능이라고 현대의 의사들도 진단했어요
그리고 노비개혁은 정순왕후가 했어요 정조의 정책을 그대로 시행한것입니다
정순왕후는 드라마에서 악마화 되었는데 실제는 정조를 많이 도운사람입니다
덕임은 과연 행복했을까...?
정조가 너무 안타까웠어요ㅠㅠ
옷소매붉은끝동 생각나
찐 사랑이다
멋지다
안타깝지만
두번이나 거절한 사람 주변사람들을 괴롭혀서 강제로 취한거나 다름이 없네…
내가 성덕임이었음 정조 싫었을거 같다…
정조 성격도 불성질도 있었다던데..
나라면 피해다녔을 듯
제일 불쌍한 임금!ㅠㅠㅠㅠㅠ
아버지의 업보로 인해 사랑하는 여인과 해로는 못했으나 본인이 쌓은 업으로 남매를 얻어 왕통을 이었다네
김동현 선수 니트가 탐나네요
그 시절에도 그런 거부가 있었군요 대단한 덕임~~
뭐 시대상으로 봤을 때 두 번의 거절을 그냥 넘긴 건 대단하긴 한데 옆에 사람 괴롭히는 쪼잔한 방법으로 지 옆에 붙들어 놨는데 애절한지는 모르겠음
물론 후사가 급한 상황에서 어쩔 수 없는 위치에 두 사람이 있었던 것은 맞지만 그리 사랑했다면서 제대로 몸을 추스릴 시간도 안 주고 5년간 임신/유산/출산을 반복한 것만 봐도 진짜 성덕임을 사랑한 게 맞는지 모르겠음 그리 사랑했음 최소한 조금이라도 몸을 보호하고 추스를 시간은 줬어야 하지 않음? 걍 자기 사랑에 자기가 취한 듯
그건 당시 시대상의 가치관으로 봐야할 부분 같아요. 임신과 출산의 개념이 지금과는 많이 달라서.
정조가 후에 남긴 글을 보면 그 부분(잦은 임신과 출산) 에 대해 후회하긴 하더라고요
원래 남자들은 좀 자기 중심적임. 게다가 왕인데 오죽했겠어요?
아직도 임신이 여자몸에 얼마나 무리가 가는지 얼마나 몸이 약해져서 추스릴시간이 필요한지 알아주지 않는데 조선시대면 더 했겠지요
그 시대에 남,여가 유별했는데 아무리 정조가 의학에도 해박했다해도 남자이고 왕인데 여자의 임신에 대해서 제대로 알리가 만무하죠
게다가 정치적으로도 후계자가 절실한 상황이니 빨리 임신을 시키고 아이도 많이 낳아야겠죠
또 많이 사랑하고 좋아했다면 더더욱 그랬을꺼고...안타까울뿐인거죠
그때 왕이 뭘 알겠어요
사랑하니까 그여인이 낳은 아들로 하루속히 후계자를 삼아야겠다는 생각뿐이었겠죠
그시대는 금슬이 좋고 자녀를 많이 낳으면 사랑의 증표로 여깁니다
성덕임 입장에서는 몸도 마음도 병들었는데 계속 들이대는 정조가 마냥 사랑스럽지는 않았을겁니다
정조가 의학공부를 많이했어도 그건 주로 본인몸이 아프고 독살당할까봐 스스로 고치기 위한것이지
여자몸에 대한 공부는 안했겠지요
정조는 영특해서 나왔다시피 의심쩍은 장인과 그무리들을 경계하고자 덕임을 이용했다는 의견도 있음 후궁 간택도 홍국영 동생을 선택한거보면 왕권강화에 집중함 물론 사랑도 당연히 있었겠지만 정조의 성종을 고려해보면 이게 일리있음
기득권 견제하려면 다른 세력의 딸을 이용했겠죠 정조 입장에서도 그게 훨씬 이득인데 굳이 중인집안 딸한테 목숨걸 이유는 사랑밖에는 없다고 보입니다
@@수세-w2v그럴수도 있지만 또 기득권세력의 딸을 이용하면 또 외척이 득세할꺼잖아요 그러니 외척의 위협이 없는 중인 궁녀가 신분적으로도 딱 맞죠
@@수세-w2v 중인집안이면 외척의 발호가 불가능하니 좋죠
숙종이 장희빈을 중전으로 들인것도 외척경계차원인데
막상 중전으로 올리고보니 장희빈이 욕심도많고 정치적인 인물이라서 멀리하기 시작했죠
정조도 권력집착형이라서 외척을 좋아하지 않았고
그래서 효의왕후나 화빈윤씨를 경계한것도 있어요
뭐야 정조대왕님께 넘하네 힘든 삶에 아내와 자식마져 빼앗간 하늘이 원망스럽다 ㅠㅠ 찐사랑인데 해피엔딩이면 좋았을텐데ᆢ ㅠㅠ
왕의 구애를 거절하는게 가능한가? 거절하면 조선시대 2번거절이 어떻게 가능한거지
드라마제목 아시는분요
영정조 소재 드라마 여러개 있어요
이산. 옷소매 붉은 끝동 두개 외에도...
옷소매 붉은 끝동 보시는걸 추천해요!
최신작이고 너무 잘 만들었더라구요
옷소매에서의 성덕임이 왕의승은을 거절한다는게 그 시대에서 가능한가요? 왕의승은을 거절한다는건 왕명을 어기는건데요
외척세력 홍국영.
그래서 이렇게 두고두고 회자되는 거죠 그만큼 파격적이고 지금 봐도 말도 안되니까
그만큼 정조가 성덕임을 사랑했다는거죠......
그 시절에 왕이 몇 십년 동안 첫사랑 간직하면서 기다려준데다가 의빈이 죽고나서는 사랑하는 여자가 영영 사람들 기억 속에서 잊혀질까봐 왕 본인이 손수 기록까지 남겼으니 드라마로까지 회자될 스토리인거죠… 너가 잊혀질까봐 두렵다 라는 말은 실제로 정조가 쓴 글에 나와있는 내용이에요. 저런 찐사랑은 요즘 시대에도 정말 보기 힘들죠…
그래서 굉장히 화제가 된 거에요.
정조가 세손 시절부터 덕임이에게 승은을 내리겠다고 했고, 덕임이는 '세손빈 마마에게 아이가 없는데 어찌 제가..' 라는 핑계로 울며 거절했는데 그게 감히 있을 수 없는 일이어서... 당시엔 왕이 아니라 세손이었다지만 그래도 궁의 위계질서상 있을 수 없는 일이니까요.
근데 정조도 쿨하게 그냥 덕임이 의사를 존중해준 것을 보면 둘 사이가 꽤나친밀했던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어요. (혜경궁 사가 출신이고, 혜경궁이 양딸처럼 예뻐했다니 친분을 쌓고 호감까지 품을 여지가 꽤 있었겠죠)
정조는 외롭고 불쌍한 왕
뭐야 ㅡㅡ 싫다는 사람 주변사람 괴롭혀서 권력으로 취한거잖아. 거기다 아내가 버젓이 있는데 곁도 안주고 바람핀거잖아 그냥. 성덕임이 행복했을지는 모르겠네.
마음이 좀 놓이니깐 딴짓하는고만
연인 브금
이시원분도나오셧네요
엉? 홍국영이 여깄네ㅋㅋㅋㅋㅋ
요즘도 맘만 먹으면 순애보사랑 가능함
이걸 아름다운 사랑으로 포장한다고?
애틋한 첫사랑?
사랑이 아닌 집착이다.
왕이니까 로맨스로 포장되는거죠..
일반사람이였음 집착이지요…
한의사들은 왜 고칠 수 있는 병이 없나........ 다 죽어.......
무슨 이런 한심한
1:40 오타 있네요 혜경궁 홍씨가 아니라 혜경궁 김씨 입니다
?홍씨 맞지않나요
홍국영이 왜 여깄누 ㄷㄷ
한번은 나이 어려 한번은아니라서. 이준석의 제. 생각이죠
뭐하러 중전이든 남생각해
젊어서 빨리 후궁이되어 아들딸 낳고살지
중전이 독살할까봐 무서웠을지도
성덕,내 이름이랑 같은데
저쪽은 왕의 숭하를 입고.난 다 눍은 후둘
구레한 몸뚱이만 남았다
늙고 후둘구레한 몸이 아니고 열심히 산 흔적들을 가지고 있으신거예요
그런생각하지 마세요.삶의 무게를 이기시고 잘 살아오신거에요❤
성덕임도 늙어요
로맨티스트
언제부터 정조가 대왕으로 불리는지 이해불가...
걍 모든 왕(연산군 광해군 제외) 묘호 끝에 붙는 거 아닌가 태종대왕 세종대왕 정조대왕
@@mohajing-s5j 대왕을 다 떼어야 합니다
대왕으로 불릴만한 사람은 없어요 태종은 이방원이라고 불러야 하고요
벌거벗은 세계사완 달리 누가 선생 아니랄까봐 무슨 애들 가르치듯 넘 초딩수준이여서 유치하고 불편한 얘기는 빼서 안 봄.
걍 초딩들이나 꼭 봐야할 프로.
여기 나오는 얘기들 모르는 사람은 전부 역알못.
두번째 거절할때 눈까리 똑바로 뜨고 따박따박 싸가지없게 말하는건 연기자 욕심같은데 실제 성덕임에대한 매력이 떨어진다
주체적이고 좋기만하구만 니 말투가 매력이 뚝 떨어진다
@@명선김-h8f 좋기는 개씹이좋나 주체사상은 김일성한테 찾고
계급간이 아닌 남녀간의 싸움이라 가능했을듯요
덕임이란 여자도 정말로 피곤한 여자네...ㅉㅉ
결국엔 자존심으로 너무 이것 저것 따지다 아이들까지 모두 사별...신처럼 모셔야할 왕의 청을 거절하는것도 죄다
ㅉㅉ라니.. 참 같은 내용을 들어도 이렇게까지 생각할 수 있구나..
첫번째에 수락했으면 중전한테 독살당했을듯 목숨이 달린건데 무섭지 당연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