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막장에서 일하던중.. 촬영오신거 봤는데..이영상 이였군요.. 이제서야 뒤늦게 보고.. 제 사진이 나온걸봤는데.. 알수없는 이 기분이 드네요.. 일하는 내모습이 이렇구나..하고 보게되네요.. 우리의 막장삶을 잘표현해 줘서 감사 합니다... 하지만 그런 우리삶도 몇개월 남지않았네요.. 전라도 화순을 시작으로,. 이제 2곳 남은 장성과 도계가 문을닫습니다.. 저의 아버지도 광부였습니다.. 목숨걸고 막장에서 피땀흘려 저를 키우셨고.. 저또한 막장에서 피땀흘려 자식을 키우고 있습니다.. 끝이 보이는 이 시점에서 아쉽고 씁쓸한 기분은 감출수가없네요...
황지가 태백으로 된 것은 1981년에 되었다고 하더군요, 그 전까지 황지는 태백시가 아닌 삼척군 황지읍이었습니다. 진짜 태백하면 주 산업이 석탄산업이었지만 탄광이 폐광을 하면서 과거의 영광을 잃었더군요, 실제로 저도 문경 가은을 가보면 이 곳도 태백과 삼척처럼 탄광이 있었지만 1990년대 은성광업소가 문을 닫게 되었으며, 현재 문경 가은을 가보면 과거 탄광이 번성하던 시절이 잊혀져 가는것은 아닌지 싶습니다.
저희 할아버지께서도 오랜시간 광부로 일 하셨고, 지금은 저희 아버지께서 마지막 광부로 현재까지도 일하시고 계십니다. 내년에 우리나라에서 제일 마지막으로 문을 닫는다고 하는데 한편으로는 너무 슬프기도 하고.. 시원섭섭한..기분이 묘하네요... 저희 아버지께서 마지막까지 다치지 않으시고 건강하게 잘 마무리 하셨으면 좋겠습니다. 기회가 된다면 저희 동네에도 마지막 광부 기록을 남겨주시면 감사드리겠습니다...
대단하신 작가님께 이리 말씀 드리긴 죄송하지만 빨리 치과 치료 받으셔야 할것 같습니다. (과거의 제 치아를 보는듯 하기도 합니다) 치과치료 안하시면 다른 몸의 건강상태도 같이 많이 안좋아 집니다. 왠지 건강도 좋아 보이시진 않는것 같아서요 지금 상태가 잇몸이 많이 안좋아서 치아가 계속 내려오는것 같습니다. 잇몸 염증균은 독해서 성인병을 일으키고 고른 영양 섭취에도 방해가 됩니다. 하루 빨리 치료 받으셨음 좋겠습니다. 잊혀져가는 역사를 기록에 남겨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저도 어렸을 때 연탄으로 난방을 하면서 자랐지만 1990년대에 가스와 석유 보일러의 등장으로 연탄을 사용하는 사람들도 많이 줄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광산 노동자분들 덕분에 겨울을 춥지 않게 보내면서 어린시절을 보낸 세대였습니다. 영상의 탄광은 태백이지만 강원도에는 태백외에도 삼척, 정선, 영월에 탄광이 있었으며, 강원도 외에는 충북 탄양, 충남 보령, 전남 화순, 경북 문경 가은에도 탄광이 있었습니다.
영상을 보면서 과거 KBS 주말드라마 였던 젊은이의 양지에서 이원종 선생님께서도 광부셨는데요, 진폐증으로 인해서 약을 드시다가 결국 돌아가셨던 모습이 떠오릅니다. 이원종 선생님외에도 이종원 형님의 아버지도 광부셨으며, 허준호, 박상민 형님도 광부역을 하셨습니다. 탄광이 폐광을 하면서 폐광지역은 과거에 모습이 많이 사려졌고 동시에 석탄을 수송했던 화물열차도 과거에 비해서 많이 줄어들면서 석탄을 수송하던 무개차들의 상당수는 운행도 못하는 상황입니다. 실제로 강원도 지역의 탄광에서 채석한 석탄을 화물열차로 수송하기 위해서 충북선 철도를 단선에서 복선화를 하게 되었지만 탄광이 폐광 되면서 충북선도 화물열차가 감소를 하였고 지금은 그나마 시멘트 수송 화물열차 위주로 운행중입니다. 산업발전에 기여를 해 주신 광산 노동자분들께 감사를 표하고자 합니다.
수년전 탄광 광부들이 석탄캐고 갱도에서 나오는 모습을 찍어보고 싶어서 여러번 도계와 철암을 가갔습니다 광부들의 믿는 미신하고 어부들이 믿는 미신하고 같은것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사진을 못찍게 하여 아쉬웠지요 그후 도계탄광 모 과장되는분이 (후일 최고 책임자 됐다는 소식 들었습니다) 낚시와서 알게돼서 내가 잡은 문어도 주고 하면서 사진을 좀 찍자고하니 선탄부까지 승락해 주었는데 내가 운전을 못하니 갈새가 없어 끝나버렸지요 요즘은 많이 없어졌지만 어부들도 광부들처름 금기하는 미신 여러가지가 있습니다 우연의 일치랄까 맞아떨어지는것이 몇번 있었답니다 박병문 작가님 고생 많으셨습니다 예전에 김제연 탄광 작가님을 2번 만나고 탄광사진은 정말 힘드는구나 했답니다
사실 태백은 1970-80년대에는 지금의 독립된 태백시가 아닌 삼척군 장성읍과 황지읍이었으며, 1981년 태백시로 분리 되면서 지금의 태백시가 된 것이구요, 사실 태백 출신들도 실질적으로는 1981년생 이전분들은 삼척군 출신이라고 보셔도 됩니다. 연극배우 최종원 선생님과 영상의 박병문 작가님의 경우에도 태백이 고향이고 출신이라고 하여도 1981년 이전 출신이시기 때문에 삼척군 출신입니다. 즉 태백이 고향이라고 하여도 삼척도 고향이라고 보셔도 됩니다. 저도 드라마 보조출연을 하던 당시 문경 가은을 가봤는데요, 과거 문경 가은의 경우에도 은성광업소가 번창하던 시절에는 활기찬 곳이었지만 지금은 과거와는 많이 다른게 좀 아쉽더군요.
왠지 짠하다. 저렇게 까지 해야하나? 감동보다 감성팔이의 느낌은 뭔가? 아버지 팔지 말고 아버지의 막장을 내 삶을 감사 해야지...... 막장을 니가 알긴 하냐? 굴진 체탄 운탄 선탄 ....연탄....연탄재 마저 소중한 서탄의 여정. 그러하지만 기록은 소중한 자료로 남으니 귀한 작업 수고하셨네요.
지금은 광부가 아련한 추억처럼 비추이지만. 실재 광부의 삶은 피비린내 나는 전쟁터와 같았습니다. 광부의 가장 무서운 적은 진폐증이었고 매일 매일 지하 수천 미터에서 생사를 가르며 일해야 했지요. 난장 또한 마찬가지였다. 매일 수백톤씩 나오는 폐석을 밖에 버려야 하고 그 일을 사람이 직접 하다가 허리를 다치고 평생 장애를 입고 살아가는 사람도 있지요. 그때 모두들 했던 말..저 탄광이 빨리 문을 닫아야 죽음이 끝이 난다. 막장 인생이 끝이 난다.라고 말했던 적이 있었지요. 60년 동안 수없이 많이 죽어나간 광부들의 삶이었습니다. 일반인들이 모르는 그들의 죽음이 탄광촌에 깃들어 있었지요..이제 그 한이 사라지고 있네요. 자식들에게 믈려준 가난과 질병과 죽음의 늪이 점 점 사라지고 이제 역사속으로 없어지니 다행입니다.
예전에 막장에서 일하던중.. 촬영오신거 봤는데..이영상 이였군요..
이제서야 뒤늦게 보고.. 제 사진이 나온걸봤는데.. 알수없는 이 기분이 드네요..
일하는 내모습이 이렇구나..하고 보게되네요..
우리의 막장삶을 잘표현해 줘서 감사 합니다... 하지만 그런 우리삶도 몇개월 남지않았네요..
전라도 화순을 시작으로,. 이제 2곳 남은 장성과 도계가 문을닫습니다..
저의 아버지도 광부였습니다.. 목숨걸고 막장에서 피땀흘려 저를 키우셨고..
저또한 막장에서 피땀흘려 자식을 키우고
있습니다..
끝이 보이는 이 시점에서 아쉽고 씁쓸한 기분은 감출수가없네요...
네~맞아요. 늘 건강 하시고 행복 하십시요~^^
저희 어버지도 광부셨어요..존경하고 오래오래 사세요...
94세이며 지금은 기력이 많이 떨어져 예전 만큼 못 하셔요.~^^
아버지가 진폐로 산재병원에 계시고 저또한 100명 이상을 관리하는 관리자로 일하는 곳을
그만두고 전부터 꿈이였던 석공에 계장으로 재직중입니다. 선배들과 아버지의 뒤를 잊는 산업역군으로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작가님의 기록은 우리의 삶입니다. 응원합니다.
네 ~ 감사합니다, 탄광프로젝트 7 작업하면서 1세대 산업역군이셨던 모든 아버님들께 감사하다는 마음 늘 갇고 기록 하고 있습니다,
오로지 가족을 위해 자신을 희생한 아버지들, 어머니들께 깊은 감사를 올립니다 그 어두운 곳에 들어가야 했던 막막함을 가늠하기 어렵지만 그 땀과 눈물이 쌓여 오늘 풍요로운 삶이 가능했습니다 고맙습니다
저도 이 작업 하면서 울기도 많이 했습니다, 같이 공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모부님이 태백 광부셨어요. 위암으로 돌아가셨어요. 아버지같은 이모부님이라서
많이 울었어요. 태백에 가면 석탄박물관이 있었어요. 그 힘들게 버신돈으로 옷도 사주시고 비싼 과일도 사주셨던 기억이 나요. 덕분에 추억여행이었어요 감사하고요 건강하세요~~
전국 순회전시 하면서 늦겨던 점은 전시장에서 탄광촌 사셨던 분들이 전시장에 오셔서 사진을 보며 눈물을 훔치는 모습보면 저도모르게 마음이 뭉클하죠, 고맙습니다,
저의 아버지도 어룡광업소 다니시다가 최종적으로 여기 한보광업소로 옮기셨는데 옛 추억이 나네요
지금은 한보광업소 폐광이 되었지만 계속해서 사진 기록작업 하고 있습니다,
아름다운 작품 이네요
네~감사 합니다~^^
현직광부로서 하루가 미래이고 1초가 지나면 과거 되는 오늘날에 어제의 영상을 많이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영상제작 너무 고생 하셨습니다.
여기서 뵙네요. ㅎ
@@sicsama 앗 식사마님 반갑습니다^^
응원해 주시고 공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sicsama
태백에서 한번 뵈으면 합니다, 유트브 잘 보고있습니다,
@@박병문-b9u 반갑습니다. 메일 주세요.
제 정보에 메일주소가 있습니다.
80년도에 저도 태백황지에살았었는데
저희아버지도 탄광에서 근무했었어요 그때가 생각나네요
저도 이 작업을 하면서 그 때 아버지의 모습들이 많이 생각 납니다,
황지가 태백으로 된 것은 1981년에 되었다고 하더군요, 그 전까지 황지는 태백시가 아닌 삼척군 황지읍이었습니다.
진짜 태백하면 주 산업이 석탄산업이었지만 탄광이 폐광을 하면서 과거의 영광을 잃었더군요, 실제로 저도 문경 가은을 가보면 이 곳도 태백과 삼척처럼 탄광이 있었지만 1990년대 은성광업소가 문을 닫게 되었으며, 현재 문경 가은을 가보면 과거 탄광이 번성하던 시절이 잊혀져 가는것은 아닌지 싶습니다.
😂저도눈물이나네요
감사합니다
막장을 오고가야하는 막막함을
막걸리로 위로 하며 사시던 아버지 생각이납니다.가족을위해
선탄부 로 일하셨던 어머님 들이 이미 먼저가셨거나 이제는 자신들의 몸도가누지 못하는 가여운분 들이 되었습니다.
노고에 고개를 숙입니다.
영상을 보게되어서 감사드립니다.
제가 이번 광부프로젝트 7 작업하면서 "선탄부 - 여성광부" 국내 최초 타큐멘터리로 발표하면서 많은 주목받게 되여 부듯 하였습니다. 감사합니다,
87세 울아버지도 광부였어요.
머리부터 안다친데 없고
마지막 50세 눈다쳐 일 못했어요.
광부 아저씨들 참고생 많으셨어요.
저의 아버님도 광차 운전 하시다가 다쳐서 그만 두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아이구~제가 감사 하죠~~^^
저희 할아버지께서도 오랜시간 광부로 일 하셨고, 지금은 저희 아버지께서 마지막 광부로 현재까지도 일하시고 계십니다. 내년에 우리나라에서 제일 마지막으로 문을 닫는다고 하는데 한편으로는 너무 슬프기도 하고.. 시원섭섭한..기분이 묘하네요... 저희 아버지께서 마지막까지 다치지 않으시고 건강하게 잘 마무리 하셨으면 좋겠습니다. 기회가 된다면 저희 동네에도 마지막 광부 기록을 남겨주시면 감사드리겠습니다...
대단하신 작가님께 이리 말씀 드리긴 죄송하지만
빨리 치과 치료 받으셔야 할것 같습니다.
(과거의 제 치아를 보는듯 하기도 합니다)
치과치료 안하시면 다른 몸의 건강상태도
같이 많이 안좋아 집니다.
왠지 건강도 좋아 보이시진 않는것 같아서요
지금 상태가 잇몸이 많이 안좋아서
치아가 계속 내려오는것 같습니다.
잇몸 염증균은 독해서 성인병을 일으키고
고른 영양 섭취에도 방해가 됩니다.
하루 빨리 치료 받으셨음 좋겠습니다.
잊혀져가는 역사를 기록에 남겨주셔서 감사드립니다^^
푸른돌님 걱정해 주셔서 감사 합니다. 이 작업이 너무나 힘든작업이라 스트레스로 이몸이 무너져 버리더 라구요 지금은 잇몸치료 하고 이빨 치료 다 하였습니다,
광부이셨던 여러분들의 노고에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이분들이 있어서 우리가 어릴적
따뜻하게 살수 있었습니다. ^-^
네~ 맞습니다,
저도 어렸을 때 연탄으로 난방을 하면서 자랐지만 1990년대에 가스와 석유 보일러의 등장으로 연탄을 사용하는 사람들도 많이 줄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광산 노동자분들 덕분에 겨울을 춥지 않게 보내면서 어린시절을 보낸 세대였습니다.
영상의 탄광은 태백이지만 강원도에는 태백외에도 삼척, 정선, 영월에 탄광이 있었으며, 강원도 외에는 충북 탄양, 충남 보령, 전남 화순, 경북 문경 가은에도 탄광이 있었습니다.
지금 우리들의 삶의 터전을 철거 한다고 보면 저당시 저분들의 심정을 공감할수가 있다..하..인생..
가슴이 아프다
난 석탄박물관도 못간다
그때 그시절이 생각나서
저도 이 작업 하면서 눈물 많이 흘렀습니다,
고등학교 3년을 보낸 태백. 그때의 추억으로 태백 광산 이런 주제를 유튜브를 통해서 많이 봅니다.
영상을 보면서 과거 KBS 주말드라마 였던 젊은이의 양지에서 이원종 선생님께서도 광부셨는데요, 진폐증으로 인해서 약을 드시다가 결국 돌아가셨던 모습이 떠오릅니다.
이원종 선생님외에도 이종원 형님의 아버지도 광부셨으며, 허준호, 박상민 형님도 광부역을 하셨습니다.
탄광이 폐광을 하면서 폐광지역은 과거에 모습이 많이 사려졌고 동시에 석탄을 수송했던 화물열차도 과거에 비해서 많이 줄어들면서 석탄을 수송하던 무개차들의 상당수는 운행도 못하는 상황입니다.
실제로 강원도 지역의 탄광에서 채석한 석탄을 화물열차로 수송하기 위해서 충북선 철도를 단선에서 복선화를 하게 되었지만 탄광이 폐광 되면서 충북선도 화물열차가 감소를 하였고 지금은 그나마 시멘트 수송 화물열차 위주로 운행중입니다.
산업발전에 기여를 해 주신 광산 노동자분들께 감사를 표하고자 합니다.
작가님 어서 치과가세요 ᆢ
치아가 건강에 영향을 줄것같아요!!!
광부프로젝트7 하면서 작업비, 전시비, 사진집 비용들이 개인 사비로 충당 하다보니 만만치 않네요,
7주제 끝내놓고 할까 생각 하고 있습니다, 고맙습니다~^^
수년전 탄광 광부들이 석탄캐고 갱도에서 나오는 모습을 찍어보고 싶어서
여러번 도계와 철암을 가갔습니다
광부들의 믿는 미신하고 어부들이 믿는 미신하고 같은것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사진을 못찍게 하여 아쉬웠지요
그후 도계탄광 모 과장되는분이 (후일 최고 책임자 됐다는 소식 들었습니다) 낚시와서 알게돼서
내가 잡은 문어도 주고 하면서 사진을 좀 찍자고하니 선탄부까지 승락해 주었는데
내가 운전을 못하니 갈새가 없어 끝나버렸지요
요즘은 많이 없어졌지만 어부들도 광부들처름 금기하는 미신 여러가지가 있습니다
우연의 일치랄까 맞아떨어지는것이 몇번 있었답니다
박병문 작가님 고생 많으셨습니다
예전에 김제연 탄광 작가님을 2번 만나고 탄광사진은 정말 힘드는구나 했답니다
탄광프로젝트 7주제를 이야기 하다보니 섭외. 허락 모든게 힘들었습니다,
힘들어도 사명감으로 열심히 기록 하고있습니다,
멋있네요 저분들덕에 지금의 사회가 있는거죠 지금 세상이 Ai같은걸로 엄청난 속도로 발전하고 더가속회되고 있지만 예전의 모습들과 노력들이 잊혀지지는 않았으면 합니다. 저번에 철암에 갔는데 예쁘고 멋있는곳이었네요 세상이 빠르게 변해도 노력과 추억은 잊혀지지않았으면 합니다.
함백광업소 광부셨던 아버지생각에눈물이나네요..석공함백광업소 자랑스러워하셨는데...마무리를 너무힘들게하셔서 아직도생각하면가슴이저려오네요..아버지 존경하고사랑합니다💞
함백광업소자리는 지금 정선 에콜리안이 있습니다
우리 아버지들의 삶 참으로 힘들었지요
저도 아버지에 대한 늘 존경하고 자랑 스럽습니다. 감사 합니다,
저희 아버지도 태백 광부출신ㅜㅜ이십니다.
어릴땐 몰랐는데, 힘든건 둘째고, 목숨걸고 일하셨습니다.
광부들 존경스럽습니다.
훗날, 안전사고로 사람도 많이 죽고, 대체에너지때문에..
페광이 늘면서.. 가정을 위해 저11살때 타지역으로 이사갔네요.
탄광주변서 어릴때 베어링주어서 쇠구슬치기 많이했었는데 ㅎ
타지역이사가니.. 유리구슬 쓰더라고요.
쇠구슬주니 엄청 신기해했는데..
동굴 입구서 도룡뇽잡고 놀았는데..
그게 지금의 태백 용연동굴입니다.
고향 그리고, 어릴때 추억이 너무나 그립습니다.
추전역 앞이네요
예전에는 시내에서 꽤 멀었는데
지금은 금방입니다
저도 막장들어가면 광부님들 늘 존경하고 대단하다고 느낌니다, 감사 합니다~^^
은광
광부는 몇시간 근무하나요?
누군가는 흔한 마걸리 잔인데
햐
힘들게 벌어 막걸리 한병값에 가족이 생각나 쓸쓸햐 발길을 돌리는 광부의 뒷모습이 가슴아픔니다.
탄광의 상징 ㅡ 사끼야마 (막장탄캐는 노동자) ,어릴때흔하게 봤지요.
막장에서 탄을 께는 노동자를 탄부라고 하고 일본말로는 사끼야마라고 부르지요
너무쓸쓸한영상이예요너무꽉막힌도시^생각만해도우울해저요.
아무래도 부모님 이야기다 보니 그럴수도 있겠죠,
ㅎㅎ `웃으세요~~^^
광부도 퇴근시는 목욕 완료루 사복으로 통근 차로 퇴근 합니다.
절대 검은 얼굴로 퇴근하지 않죠.
7.80년대 태백은 자금의 태백보다 활기찬 도시였답니다.
모두 어려운 세월이었으나 지금이 훨신 암울한 것이 태백의 삶이죠.
사실 태백은 1970-80년대에는 지금의 독립된 태백시가 아닌 삼척군 장성읍과 황지읍이었으며, 1981년 태백시로 분리 되면서 지금의 태백시가 된 것이구요, 사실 태백 출신들도 실질적으로는 1981년생 이전분들은 삼척군 출신이라고 보셔도 됩니다.
연극배우 최종원 선생님과 영상의 박병문 작가님의 경우에도 태백이 고향이고 출신이라고 하여도 1981년 이전 출신이시기 때문에 삼척군 출신입니다.
즉 태백이 고향이라고 하여도 삼척도 고향이라고 보셔도 됩니다.
저도 드라마 보조출연을 하던 당시 문경 가은을 가봤는데요, 과거 문경 가은의 경우에도 은성광업소가 번창하던 시절에는 활기찬 곳이었지만 지금은 과거와는 많이 다른게 좀 아쉽더군요.
이시대에 보기힘든 장인이십니다
감사합니다, 공감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3교대..갑.을.병.반으로 나누어 일하지요 하루 3교대
왠지 짠하다.
저렇게 까지 해야하나?
감동보다 감성팔이의 느낌은 뭔가?
아버지 팔지 말고 아버지의 막장을 내 삶을 감사 해야지......
막장을 니가 알긴 하냐?
굴진 체탄 운탄 선탄 ....연탄....연탄재 마저 소중한 서탄의 여정.
그러하지만 기록은 소중한 자료로 남으니 귀한 작업 수고하셨네요.
아우지탄광....
희망의 막장 이라고 얘기 하여 주십시요. 감사 합니다~^^
지금은 광부가 아련한 추억처럼 비추이지만. 실재 광부의 삶은 피비린내 나는 전쟁터와 같았습니다.
광부의 가장 무서운 적은 진폐증이었고 매일 매일 지하 수천 미터에서 생사를 가르며 일해야 했지요. 난장 또한 마찬가지였다. 매일 수백톤씩 나오는 폐석을 밖에 버려야 하고 그 일을 사람이 직접 하다가 허리를 다치고 평생 장애를 입고 살아가는 사람도 있지요. 그때 모두들 했던 말..저 탄광이 빨리 문을 닫아야 죽음이 끝이 난다. 막장 인생이 끝이 난다.라고 말했던 적이 있었지요. 60년 동안 수없이 많이 죽어나간 광부들의 삶이었습니다. 일반인들이 모르는 그들의 죽음이 탄광촌에 깃들어 있었지요..이제 그 한이 사라지고 있네요. 자식들에게 믈려준 가난과 질병과 죽음의 늪이 점 점 사라지고 이제 역사속으로 없어지니 다행입니다.
38생저도탄광생활이제는진폐인해그러나자녀들는모두출가시켜잘살고있습니다
어르신 건강관리 잘 하셔서 오래오래 사셔아 합니다,
제가 마지막 7번째 주제가 "진폐" 라써 안산에 있는 근로복지공단 안산병원에서 진폐환자 한분을 기록 하고 있습니다,
아련하게 잘 봤습니다....작가님...사진도 좋지만....치과 어서 가세요....안타갑네요...TT
에구~ 고맙습니다, 광부프로젝트 작업 하면서 좀 더 좋은 이야기 만들려고 하다보니 여러가지 스트레스로 인해 잇몸이 내려 안내요.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공감해 주셔서 제가 감사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