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 보고드림] 일본제일검은 누구일까? feat 미야모토 무사시는 얼마나 강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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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Опубликовано: 25 окт 2024

Комментарии • 565

  • @wjddngk
    @wjddngk 3 месяца назад +110

    미야모토 무사시의 가르침.
    1 이길 수 있는 자랑만 싸운다.
    2 이길 수 있는 상황에서만 싸운다.
    3 질 것 같으면 싸우지 않는다.
    4 질 것 같으면 도주 한다.
    5 이길 것 같아도 부상을 입을 것 같으면 피한다.
    승리에 대한 그의 생각이 어떤지 잘 알려주는 대목..

    • @용작두-o9v
      @용작두-o9v 3 месяца назад

      니가 봤냐???

    • @wjddngk
      @wjddngk 3 месяца назад +22

      @@용작두-o9v ㅇㅇ 오륜서 봄

    • @lee-rt4lb
      @lee-rt4lb 3 месяца назад +2

      그건 가르침이지 본인은 저 나열한 것에 해당사항 없습니다

    • @wjddngk
      @wjddngk 3 месяца назад

      @@lee-rt4lb 하긴 김대중도 국민주권과 민주주의를 설파했지만 실제 행동은 자신이 안될 것 같으니 직선제 반대하고 악마 김일성 김정일을 숭배하다가 죽었으니까요

    • @seanpark9970
      @seanpark9970 3 месяца назад +10

      @@lee-rt4lb 자기가 체험한 것을 쓰는거지

  • @njhok5360
    @njhok5360 3 месяца назад +41

    무사시는 소설에 가깝고 주로 카미이즈미 노부츠나나 츠카하라 보쿠덴을 일본의 제일검으로 뽑더군요.
    둘 다 사람을 살상하지 않는 것을 검술의 최고 경지로 여겼다는 점, 전국시대 사람으로 1570년대(노부츠나 77년도 사망, 보쿠덴 71년도 사망) 사망했으며 일본의 일도류 검술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습니다.

    • @다리미-j8t
      @다리미-j8t 3 месяца назад +8

      애초에 무사시는 검술가라고 보긴 좀...ㅋㅋㅋ

    • @JO_dysseus
      @JO_dysseus 3 месяца назад +2

      전 카미이즈미 노부츠나가 가장 영향력이 크다 생각

    • @진이르미-u2t
      @진이르미-u2t 3 месяца назад +9

      무사시와 명승부를 했다던 요시오까 세이쥬로 는 70까지 살았고 무사시를 전혀 모른다 그리고 세이쥬로가 도장을 하긴 했었는데 그냥 동내 검술도장 이였고 사업으로 돈을 벌었다고 무사시는 사기꾼 역사학자들도 모두 인정안한다고 하더군요

    • @javaxerjack
      @javaxerjack 3 месяца назад +1

      당초 무사시의 검을 계승한 류파가 없으니까요.

    • @윤준섭-m9o
      @윤준섭-m9o 3 месяца назад

      ​@@javaxerjack무사시 자체는 허구적인 부분이 많으나 계승 유파는 있음 이천일류가 대표적

  • @다리미-j8t
    @다리미-j8t 3 месяца назад +172

    미야모토 무사시 소설 읽어보면 ㅈㄴ 깨는 부분이 많은데 뭔가 엄청난 검술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 그냥 원래 피지컬 적으로 엄청나게 센 사람임. 어떤 정형된 검술이 있는것도 아니고 그때 그때 임기응변식으로 대충 때우듯 싸우는 스타일. 이도류도 싸우다 보니 그날은 대충 칼 두개 들고 싸웠는데 원체 피지컬이 좋은 사람이라 칼 두개 드는것도 별 문제 없어서임. 사사키 코지로와의 싸움도 사사키 코지로가 긴칼을 쓰니까 배타고 가는중 배의 노를 깎아 그보다 더 긴 목검을 만들어 때려죽임. 이 사람은 검술가라기보다 전술가라고 하는게 맞을듯 싶은데 그가 했던 전술이란것도 엄청나게 야비할 정도라고 할까. 물론 대부분 엄청나게 불리한 상황에서 싸웠기에 딱히 야비하다고 비난하긴 힘듬. 암튼 뭔가 대단한 사람인데 내가 기대한 방향은 아니었던...ㅋㅋㅋ

    • @행성파괴용
      @행성파괴용 3 месяца назад +42

      저도 김용소설 처럼 세세한 전투묘사 그런걸 기대하고 읽었는데 실망했던 ㅋㅋㅋ 그 유명한 도장깨기도 떠돌다가 그지역에서 강하다고 소문난 곳중에 철저히 연구해보고 이길만하다 싶으면 선택해서 덤비지 않았을까 싶습니다.어느 달인에게 도전장 내밀려다가 꽃가지 자른거 그것보고 쫄아서 "레베루가 다르다" 면서 꼬리말고 나간 에피소드도 있고요

    • @다리미-j8t
      @다리미-j8t 3 месяца назад +18

      @@행성파괴용 고수 잘 피해서 오랫동안 생존하는것도 대단하긴 대단한거죠. ㅋㅋㅋ 암튼 이 사람을 검술의 대명사처럼 취급하는건 후대의 미화가 아닌가 싶네요.ㅋㅋㅋ

    • @co-co1234
      @co-co1234 3 месяца назад +12

      일본은 그런것도 실력으로 인정해주는 문화라서 그럼. 꼼수도 실력이다

    • @WATERSHADOW-f5v
      @WATERSHADOW-f5v 3 месяца назад +8

      맞아요 멋있게 강하다기보다는 처절한? 지능적으로 강한 사람 같아요 - 살아 남는 게 진짜 강한 것 같습니다.

    • @니르나이스아르노이디
      @니르나이스아르노이디 3 месяца назад +10

      미야모토 무사시는 중년 이후엔 수없이 많은 다이묘들 앞에서 일본도(=카타나)로 쌀낱알을 벨 정도였는데 비열하느니 야비하느니 하는 멍청한 평이 무슨 가치가 있음?ㅋㅋㅋㅋㅋㅋㅋㅋㅋ

  • @205Brigade
    @205Brigade 3 месяца назад +14

    미야모토 무사시... 최배달, 이소룡과 함께 제 어린 시절의 영웅이었죠 😊
    그런데, 무사시가 주인공이다보니 그렇겠지만, 일본 검술에 대한 이야기가 좀 과장되는 면이 있네요.
    일본이 오랜기간 전국시대였고, 무사가 우대 받는 나라였기에 검술이 발전한 것은 당연하고, 조선 검술보다 뛰어났던 것도 당연한 것이겠지만 ...
    무사들간의 결투가 아닌, 실제 전쟁에서의 전투에서 일본군의 주력무기는 칼이 아니고 창이었어요. 물론 칼도 사용했는데,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일본도 그런 것이 아니고 길이가 창과 다름없는 긴 장도를 사용했음. 이것은 일본에서 제작된 사극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 잘 재현되고 있죠. 임진왜란 때는 여기에 조총까지 더해졌죠.
    따라서 현재 검도에서 사용하는 길이의 일본도를 가지고, 왜군이 조선군을 종횡무진으로 무찌르고 죽였다는 상상을 하면 오류가 있다는 얘기입니다 😅
    물론, 근접 백병전에서 조선군이 상대적으로 밀린 것은 팩트겠죠.
    애초에 조선이 무를 소홀히 하고 문을 중시한 나라였던데다가, 조선군의 전투개념이 근접전을 지양하고 원거리에서 격멸하는 방식이라 칼보다는 활을 훨씬 중요하게 생각했고 실제로 북쪽의 여진족과 백병전에 특화된 왜구들을 토벌하는데 성과를 냈기 때문에 근접전에 대한 준비 자체가 부족했고, 근접전에서도 방패를 사용하였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짧은 칼을 사용했음. 그리고 모든 이유를 떠나서 훈련이 부족했겠죠.
    신립 장군은 당대에 존경받는 맹장이었지만 안타깝게도 지장은 아니었죠. 그는 군시절의 대부분을 북쪽 오랑캐와의 전투로 보냈고, 이 때 평야지대에서 기마궁병을 활용한 기동전술로 많은 성과를 이루었기 때문에 이 전술에 대한 과한 자신감을 가지고 있었고, 정규군인 왜군의 수준을 이전의 왜구 수준으로 깔보았음과 동시에, 집단운용된 조총의 위력에 대해서도 무시하였죠. 한마디로 적의 전술, 훈련수준, 무기의 위력에 대해 무지했던 장수. 😢
    결국 당시 귀하고 귀했던 기병을 다 긁어모아서 탄금대라는 평지에 배수의 진을 치고 적을 기다리는 자살행위와 같은 전술을 사용했다가 몰살 당하는 결과를 가져왔어요.
    용산전투는, 말하기도 부끄러운 수준의 멍청한 조선군 지휘관들이 이끄는 8만 대군이 적을 깔보고 방심하고 있다가, 기습할거라고는 상상도 못할 병력으로, 기습에 적합한 날씨(안개)를 이용하여, 기습적인 시간대(아침식사 준비시간)에 기병과 조총으로 종심 돌격하여 전의를 상실하고 도망케하여 알아서 무너지게한 왜군 장수의 지략과 용맹이 빛난 대표적인 패전이죠.
    10마리의 사자 무리에 쫓기는 수 천, 수 만마리의 누 떼가 밟혀 죽고, 떨어져 죽고, 물려 죽고 뭐 그런 ... 😢

    • @hissum5750
      @hissum5750 3 месяца назад

      배움이 깊으신분 같네요 ㄷㄷ

    • @user-kq4jv9ef1g
      @user-kq4jv9ef1g 2 месяца назад

      와 이순신은 그럼 얼마나 대단했단 말임;; ㄷㄷㄷ

  • @ampir-7998
    @ampir-7998 3 месяца назад +6

    이런 영상 좀 많이 올려주세요! 이 채널 진짜 재밌고 유익하네

  • @min-sookim800
    @min-sookim800 3 месяца назад +14

    조총으로 무장한 일본군이 강했던 것은 당연한 것 입니다.
    검과 도는 엄연히 틀립니다.
    검은 양날이며 베는 기술과 함께 서양식의 찌르는 기술도 써먹야 합니다.
    베는 기술은 고도의 손목 스냅을 잘 주어야 합니다.
    칼이 일직선이라서 각을 잘 잡아야 하죠.
    하지만 날이 한쪽에만 있는 도와 다르게 날이 양쪽에 있어서 검을 양손에 쥐고 한방향으로 휘두른뒤에 일본도 방식으로 손목을 반대로 방향을 꺾어서 다시 휘두를 필요가 없지요. 곧바로 좀더 빨리 공격 가능 합니다.
    날이 한쪽에만 있는 일본도는 날을 한번 휘두른 뒤에 손목을 반대방향으로 완전히 꺾어서 움직여야 해서 시간 싸움에서 밀리죠.
    단! 검은 양날 일직선이라서 도 보다는 베는 기술이 아주 많이 까다롭고 능숙하게 다룰수 있기까지
    많은 수련 시간을 필요로 합니다.
    백제시대때 백제 왕이 일본에 선물한 칠지도는 일본을 무예를 비웃은 것으로 보입니다.
    일본역사에 날이 한쪽에만 있는 도를 다루는 이야기가 많아도 양날로 된 검을 사용했었던 기록은 없습니다.
    우리 선조님들은 일본에게 검술을 전수해주지 않았었습니다.
    그리고, 임진왜란 우리나라가 이긴 전쟁 입니다.
    조총에 맞서서 칼과 활이 이긴 전쟁 입니다.
    안타까운 일은 우리의 전통 활중에서 애기살이라 불리우는 애살 제조법과 남아있는 유물이 없답니다.
    고려시대 무신정권의 철권통치를 경험한 조선시대때 무예를 천시하여서 애살은 소리없이 아주 먼거리를 날아가서 목표물을 맞춘다고 나라법으로 애살 제조 금지 시켰답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 입니다.

    • @ljiIL
      @ljiIL 3 месяца назад

      1.임진왜란은 조총+일본도와 활+포의 대결로보는게 옳습니다.
      2.검을 휘두른 후 그대로 반대날로 공격하면 신체구조상(손바닥이 아니 손가락쪽으로 압력이 가해져서) 놓치기 쉽고 놓치지 않더라도 제대로 벨 수 없습니다.
      검의 장점은 베기 연속이 편한게 아니라 찌르기 사용+손목의 움직임으로 공격루트의 다양성을 확보하기 좋다는 점입니다.
      3.애기살은 지금도 인근 국궁 활터에 가보시면 다루는 사람을 종종 볼 수 있습니다. 나라가 발시방법(통아를 사용한 발시)을 새어나가지 않게 관리했다고는 하나, 이민족들이 흉내내었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현 시점에서 많은 사람들이 애기살을 쓰지않는 이유는 첫째 다루다 실수하면 튀어서 다치기 때문이고, 둘째는 화살의 무게가 가벼워서 활에 충격이 누적되기 때문입니다.

  • @PJstock80
    @PJstock80 3 месяца назад +7

    오륜서 꼭 읽어봐야겠어여 좋은 영상 감사합니다 마지막에 웃었습니다 ㅋㅋ 사무라이 쇼다운 맞져? ㅋㅋ

  • @JHYEOM
    @JHYEOM 3 месяца назад +11

    오 이름은 정말 많이 들은 무사시 이야기라니 ㅎㅎ 정말 잘 보았습니다~

  • @robert707075
    @robert707075 3 месяца назад +3

    어느 일본 역사학자가 무사시와 사사키 코지로는 동시대의 인물이 아니라 만나고
    싶어도 만날 수 없었다고 주장한 글을
    본 적이 있음니다만........

    • @tazmania21
      @tazmania21 Месяц назад

      네~ 맞아요~
      소설 책에 나오는 내용이라
      역사적 사실이라 믿는 듯 하네요

  • @stevenrhee8398
    @stevenrhee8398 3 месяца назад +15

    7,8십년대의 만화가 였던 김민씨가 당시 미야모토 무사시의 이야기를 각색하여
    만화 불나비 시리즈를 그렸지요.

    • @조광래-w1i
      @조광래-w1i 3 месяца назад

      만화가 김민 지금은 돌아가셨겠죠

    • @stevenrhee8398
      @stevenrhee8398 3 месяца назад +2

      @@조광래-w1i
      당시 아주 젊은 나이여서
      아직 생존해 계실겁니다.

    • @아사리판과객
      @아사리판과객 3 месяца назад

      @@stevenrhee8398 경기도 기초의원도 하셨다고 알고 있습니다.
      불나비 만화 보고 싶습니다.
      복간이 되었으면 하네요…..
      …바람속의 불나비, 영광의 불나비…등등

    • @열정보다냉정
      @열정보다냉정 3 месяца назад +2

      ㅋ 기억나요 김민씨 그림체가 어딘가 코믹햐면서도 철학적이였지요.

    • @ymanyman486
      @ymanyman486 3 месяца назад +1

      돌이와 허떨이 삼촌....

  • @dowoonu
    @dowoonu 3 месяца назад +24

    9:25 오륜서 내용으로 봐서는
    확실히 무사시는 달인의 경지에 오른게 맞는듯

    • @유존혁
      @유존혁 3 месяца назад +2

      그건 단언하기 어려운 일입니다

    • @JO_dysseus
      @JO_dysseus 3 месяца назад +1

      오륜서 내용만 보면 그런데 무사시가 허풍을 꽤 쳤다고 평가되는 인물이라 ㅋㅋ…

  • @김상순-n8i
    @김상순-n8i 3 месяца назад +7

    미야모도 무사시 40년전 읽었는데 여기서 등장하네 😂 팩스토리 고맙습니다 사시끼 고지로우 인가 있지않습니까

    • @yallooman
      @yallooman 3 месяца назад +2

      그이야기 하는거잖아요

  • @user-turtlegentleman
    @user-turtlegentleman 3 месяца назад +3

    쏙쏙 내용이 들어오네요~ 👍

  • @javaxerjack
    @javaxerjack 3 месяца назад +6

    무사시는 사무라이라는게 어떤 것이여야 하는가를 정해준 무사도라는 픽션의 창시자죠.
    그리고 무사시 활동 시기는 이미 사무라이 계층이 공무원화 되어가던 시기.

    • @morrischun2596
      @morrischun2596 3 месяца назад +1

      알질 못하면 그냥 답글 안쓰는 게 맞습니다.
      미야모토 무사시 살 던 시절이 사무라이계층이 일본열도의 역사 전면부로 완전히 나오던 시절인데 왜 정반대의 이야기를 합니까.
      임진왜란 때 영남대로를 가로질러 신의주까지 치고올라오는 애들이
      공무원처럼 보입니까?

    • @javaxerjack
      @javaxerjack 3 месяца назад +2

      @@morrischun2596 알질 못하면 답글 안 쓰는게 맞네요.
      내가 말한 공무원화는 세키가하라 전투 이후 더이상 예전 만큼의 사무라이 수효가 없던 시절을 이야기하는겁니다. 이 시기 사무라이들의 위상은 몰락을 거듭해 하급 무사들의 경우 살아남기 위해 아예 상인들의 경호원 업무를 한다던가 노동자가 된다던가 하는 일이 생기기 시작하고 이게 완료된게 사실상 메이지 시대입니다.
      내가 말하는 공무원화는 그 중 일환으로, 그나마 지식 소양이 있는 사무라이 계층이 세금 처리나 하급 관료일을 하기 시작한걸 말하는 겁니다.
      그리고 자주 이야기 되는 길가다 기분 나쁘면 배어버렸다는 이야기도 상당량 과장된 부분이 있는 도시 전설이란베 현대적 의견이고.
      이러한 변화에 대한 입문서로 '사무라이의 넥타이(이정남 지음)'을 추천하니 꼭 읽어 보세요.

    • @javaxerjack
      @javaxerjack 3 месяца назад +2

      @@morrischun2596 아, 그리고 무사시의 출생년도는 1584년도에요.

  • @moaaaang
    @moaaaang 3 месяца назад +10

    일본의 검술이 발달한건 역사상 개연성 있는 주장이지만
    용인전투를 맥락없이 그냥 검술의 차이때문에 진것처럼 주장하고 이순신 장군이 일본 검술 인정하고 거리를 두고 싸워서 이겼다느니 이런 개소리를 하는 용기에 감탄한다.
    자네 전공이 뭔가? 최소한 역사는 아니지? 아니길 바란다..

    • @Claymore-chobo
      @Claymore-chobo 3 месяца назад +1

      일본 검 카타나와 조선의 검 환도의 차이는 환도의 길이가 짧아짐. 그래서 일본과 일대일로 싸우면 거리상 불리함. 근데 조선.한국은 지형이 산악지대가 많고 검술보다는 궁술을 더 선호했고 발달했음. 궁술을 매우 고급기술로 오늘날 스나이퍼 기술과도 비슷한 것임. 팔힘이 매우 쎄야했고 그렇다고 검술도 소홀리 하지는 않았지만 검의 길이가 짧아진거는 휴대성때문임. 활이 주무장이고 검은 부무장이라 허리에 차고 다닐때 걸리적거려 짧아진거라함. 신립장군이 이끄는 조선군이 대부분 활을 쓰는 궁병인데. 기마병이 창을 쓰는 기병이 아니라 활쓰는 기병대라 망함. 또 고려때는 군사력이 막강했던 나라가 조선시대때부터 함부로 사단규모의 군사를 장군들이 이끌게 하지못하게 왕이 축소시켰고 지방에 소규모 군대밖에 없다보니 일본군에게 다 털린거라함. 조선시대 왕들은 반란이 두려워 지방에 귀족들이 군사력을 많이 보유하게 하지 못했던거라 그러함.
      반면 일본 전국시대 거의 100년가까이 서로 죽고 죽이고 지역간 치열하게 싸웠는데 그래서 검술은 최강일수 밖에 없었음. 그래서 조선시대 의병장들이 주로 쓰던 전법이 각개격파. 게릴라전으로 왜군을 물리쳤죠. 일본이 칼들고 덤비면 멀리서 활쏘고 치고 빠지고 일본이 조총쏘면 대포로 박살내는 방식

    • @user-snow-man280
      @user-snow-man280 3 месяца назад

      검술차이때문에진거맞음 부정하지마셈

  • @digituslabs3110
    @digituslabs3110 2 месяца назад

    줏어듣기로는 간류지마에 늦은 미야모토 무사시가
    평정심을 잃은 사사키 코지로를 칼이 아닌 칼집으로 한 방에 죽였다고
    알고있었는데 목검으로 승부를 본 것이었군요
    너무 유익한 영상이었습니다
    일본 신화, 음양사, 닌자, 사무라이, 사카모토 료마 등등 영상 부탁드립니다

  • @Claymore-chobo
    @Claymore-chobo 3 месяца назад +8

    옛날 플스2 게임중에 검호3라는 게임인데 주인공이 일본 전국을 돌아다니며 검술기술을 습득해서 최고가 되는 게임인데 시대상 맞지는 않지만 야규 쥬베이의 집안 이야기. 그리고 신선조 3인방 곤도 아사미. 히지카타 토시로가 조직한 무장 경찰조직인데 막부를 지키는 조폭같은 집단이 나옴. 근데 대장은 곤도 아사미이지만 모든 실권은 히지카타 토시로가 13개의 분대를 통솔지휘함. 근데 가장 최고의 실력자는 최고로 나이가 어린 오키타 소지인데 폐병으로 일찍 죽음. 근데 이게 낭만이라서 블리치나 귀멸의 칼날의 모티브가 됨. 또 미야모토 무사시도 등장하는데 가장 유명한 시나리오 사사키 코지로와 싸우는 장면도 나오는데 영화같음. 또 료마도 나오고 뭔가 뒤죽박죽이지만 검호에 다양한 검객이 시대에 맞지 않지만 몽땅 등장해서 재미있었음. 무사시가 최고의 검객으로 일컷는것은 이소룡처럼 오륜서라는 책을 써서 인거 같고 사실은 무사시보다는 야규 쥬베이가 더 강해보였고 진짜 최강자는 신선조에 나오는 오키타 소지가 최강인거 같다는 생각이 듬. 바람의 검심에도 오키타 소지가 나오지만 매우 강함. 암튼 옛날 게임이지만 검호3가 대단한 점이 어드벤쳐 게임인데 적과 마주치면 대전액션게임이 됨. 검술기술도 다양하고 상당히 많은 검술을 배우는게 특징이고 지역이동하면 그곳 인물과 스토리가 진행하면서 무사시. 쥬베이.오키타 소지랑 싸우는 결투가 됨

    • @mr.h__
      @mr.h__ 3 месяца назад

      검호3 진짜 재밌어서 한동안 완전히 빠져 살았었는데 추억이네ㅋㅋㅋ

    • @Destroyer-ty3zl
      @Destroyer-ty3zl 3 месяца назад

      오키타소지는 신선조내에서 사이토하지메와 같은 실력으로 통했고
      야규쥬베이는 무사시랑 활동시기가 살짝 달랐어요
      야규는 막부 무술사범이였죠
      쇼군직속

    • @yallooman
      @yallooman 3 месяца назад

      나는 지금도 하고있....ㅠㅠ 너무재미있음 영상배경음도 검호3랑비슷한듯

  • @handohyung
    @handohyung 3 месяца назад +4

    훈련된 창병하나를 쓰러뜨리기 위해선 적어도 4명의 검사가 필요했다는 말이 있듯 실전에서 검이나 도는 창을 이기기 힘듭니다.

  • @2345pok
    @2345pok 3 месяца назад +12

    오늘도 잘보고가용

  • @김철끈
    @김철끈 3 месяца назад +13

    무사시 ㅋㅋ 일본내에서도 재조명 하고있는데 소설가의 허풍이 가미되었다고 들었습니다 사사키와의 혈전에도 꼼수가 있었고 혼자가 아닌 떼로 덤볐다는 설도 있었습니다

    • @나만세-b1z
      @나만세-b1z 3 месяца назад

      사사키와 싸운 간류지마의 혈투 자체가 구라라는 설이 더 정설에 가깝게 받아들여 진답니다.
      사시키 코지로란 인물의 존재 자체가 구라라는 쪽이죠.
      이유는 스승이라는 가네마키 지사이가 살아온 시기가 코지로 보다 너무 앞이라, 말이 안된다는 거죠.

  • @김병진-p6p
    @김병진-p6p 3 месяца назад +16

    잘봤어요 너무 좋네요

  • @martinaston9233
    @martinaston9233 3 месяца назад +2

    코지로의 츠바메가에시는 상대방이 첫번째 공격을 막으면 칼과 칼이 부딪쳤을 때 생기는 반동을 이용해서 두번째 공격이 들어가는데 무사시는 이를 알고 반동이 안 생기는 목검or노를 들고 가서 싸움
    무사시가 이도류의 창시자라고 해서 대단한 검술을 사용 했던것 같지만 주력으로 사용 했던 이도류 검술은 큰 칼로 상대방의 공격을 막고 단도로 상대방의 급소를 콕 찌르는 방식 이였다고 함
    그리고 무사시의 오륜서를 보면 검술에 대해서 어느 정도 일가견은 있었던 것 같지만 공식적으로 기록되어 있는 당시 1티어 수준의 검객들과는 대결한적 없다고 함

    • @Warkytocky
      @Warkytocky 3 месяца назад

      제비베기는 반동을 이용해서 두번째 공격을 하는게 아니라 그냥 상단에서 하단으로 횡베기 한 후, 재빠르게 하단에서 상단으로 올려치는 기술임. 지금에야 너무 단순해서 이게 무슨 필살기냐고 느껴지겠지만 그때 당시에는 없었던 기술이었음 게다가 장칼이어서 간격에도 이점이 있었는듯. 무사시의 경우 반동때문에 목검을 이용했다기보다, 코지로의 칼보다 긴 노를 이용하면서 간격을 만든게 주 목표였음. 한대 세게 때리면 때려죽일수 있기때문에ㅇㅇ 근데 이것조차도 영상에서 나왔듯이 제자들 우르르 데려가서 몰매때려 죽였다는 말도 많음 그래서 불쌍한 코지로 넋을 기리고자 간류지마라고 이름을 지었다는 설도 있고 ㅇㅇ..

  • @고담덕-h5v
    @고담덕-h5v 3 месяца назад +2

    오륜서 재미있게 읽었었죠...ㅎ 맞습니다 무사시는 칼싸움도 잘하고 그림도 잘 그렸죠 ㅎ 우리는 백동수가 그나마 비슷한 인물이겠군요... 이 양반도 무예 이외에 그림도 잘 그리고 했었다고 하니...ㅎ

  • @user-byuljeonnam
    @user-byuljeonnam 3 месяца назад +16

    근데, 검객의 나라치고는 이렇다 할 무협지가 그닥 없다는게 신기하다는...

    • @jhshin9413
      @jhshin9413 3 месяца назад +3

      야마다 후타로의 오보로 인법첩-마계전생, 야규인법첩.
      난조 노리오의 스루가 성 어전시합 (시구루이)같은
      소설은 만화로 만들어졌습니다

    • @김규형-b4b
      @김규형-b4b 3 месяца назад +1

      글 쓰는 사람들은 모조리 썰었나 봅니다.

    • @나만세-b1z
      @나만세-b1z 3 месяца назад +3

      일본 무협지 많습니다. 시바따 렌사부로의 네무리 쿄시로도 무협지 입니다.
      대망 시리즈의 미야모토 무사시도 무협지 입니다. 요시카와 에이지가 쓴 소설이죠. 물론 실존인물 무사시를 가지고 구라를 친것이기도 하지만.

    • @나만세-b1z
      @나만세-b1z 3 месяца назад +2

      그밖에 복수물도 있습니다. 제목은 잊어버렸는데, 이와미 쥬타로 라는 오사카 전투에서 전사하는 실존인물을 주인공으로 하는 무협지도 있습니다.
      아라키 마타에몽의 복수를 그린 무협지도 있죠. 일본 무혚지는 거의 복수물이 많습니다.

    • @6sinegohwan336
      @6sinegohwan336 3 месяца назад

      일본도 무협지 많습니다. 일본은 중국의 춘추필법처럼 한 인물의 서사시를 초인적이게 과장하여 기록하는 풍습과 수없이 펼쳐진 내전을 배경으로 수많은 소설들이 써내려가졌습니다. 심지어 여성에 궁인인데, 일본 최초의 소설가로 여겨지는 인물도 있지요.
      이는 한국과 꽤나 대조적인데, 한국은 기본적으로 허무맹랑한 이야기를 피하고 진실만을 추구하는 기조가 오래전부터 내려와 척준경 같이 괴물 같은 업적을 내는 인물들도 간략하게 객관적으로 기록하는 경향이 있는데다, 대체적으로 야망있는 군웅이 자웅을 겨루는 것이 아닌 외적의 침략에 맞선 전쟁을 주로 치륐기에 소설이나 판타지 생산에 더 어려움이 컸습니다. 그래서 한국의 무협지는 주로 중국을 배경으로 해서 나오죠.

  • @쭈니아빠-k6m
    @쭈니아빠-k6m 3 месяца назад +3

    영상에서 언급하신 사사키 코지로가 게임 사무라이 쇼다운에서 나오는 파란색 긴머리에 긴칼을 쓰는 검객을 생각나게 하네요. 그 게임에 핫토리 한조도 나오는데 아마 역사속 실존인물들을 베이스로 만든 게임인가봐요.

    • @다리미-j8t
      @다리미-j8t 3 месяца назад +3

      그걸 오마주해서 만든거 맞음. 그 스테이지도 늦은 시간 바닷가임.

    • @행성파괴용
      @행성파괴용 3 месяца назад +2

      유코가 사사키 코지로를 일부 모티브로 따왔죠 약+강 버튼 혼신을 다해서 내려치는 베기와 스킬에 제비가 나오는...

  • @cabshow1234
    @cabshow1234 3 месяца назад +14

    팩스토리님 뇌피셜 친구 거르셔야겠는데요 ㅋㅋ

  • @6sinegohwan336
    @6sinegohwan336 3 месяца назад +8

    미야모토 무사시ㅋㅋ.. 사무라이 뽕에 잠식된 양키 친구들이 열광하는 인물이죠

  • @plotinus2
    @plotinus2 3 месяца назад +12

    다큐멘터리에서 봤는데, 무사시는 동군이 아니라 서군에 참가했다고 기억합니다;; 기억이 맞다면요;;

  • @-artarmsairsoft158
    @-artarmsairsoft158 3 месяца назад +2

    무사시는 현대 죽도 검도에서 오륜서를 남긴 것 때문에 재발굴된 사람이지
    실제 그 시대 당시 최강자라고 하기에는 객관적으로 의문이라는 견해가 많습니다.
    쉽게 말하면 지금 기준으로 비유하자면 길거리 파이터 최강자일 뿐이지
    프로 파이터는 아니라는 느낌입니다.
    진짜 검술의 달인이면 높은 직위와 많은 땅을 하사받았을테니까요

  • @베이비샤크18호
    @베이비샤크18호 3 месяца назад +4

    미야무토 무사시를 존경해 100대1 겨루기를 하신 인물이 최영의(최배달) 선생님이심!! 최배달 선생님 이야기도 한번 다뤄주세요!! 무협지 보다 재미있는 방학기 선생님의 '바람의 파이터!'

  • @Warkytocky
    @Warkytocky 3 месяца назад +2

    무사시는 걍 2차 창작물의 재미로 봐야되지 내용자체 대부분이 허구일뿐 실제로는 약했다는 말이 많음.
    일례적으로 소설에서는 멸문시킨 요시오카가문도 염색업으로 대대로 잘살음. ㅇㅇ 그리고 그때 당시 칼잽이들의 가장 큰 목표가 영주의 사범대리였는데 이는 녹봉으로 정리가 됨. 즉 그때 당시의 일류검객이면 가장높은 녹봉을 받아야됨. 근데 역사적자료로서는 무사시 녹봉은 형편없었음. 후대에 내려오는 얘기도 무사시가 오륜서에 쓴 내용을 살을 붙이거나 몇 안되는 제자들이 자신들의 유파를 홍보하려고 과대하게 뻥을치거나 한게다임.
    역사적 자료가 있는 츠카하라 보쿠텐이나 야규, 카미이즈미 노부츠나등이 훨씬 설득력있고 최고검객을 얘기할때는 정실임.

  • @life-style7979
    @life-style7979 2 месяца назад

    무사시의 도전정신
    탁월하네요 👏👏👏🍀

  • @세균맨-p8v
    @세균맨-p8v 3 месяца назад +5

    결국 결투를 싸움 그 자체로 보는가 병법의 차이로 보는가에서 승패가 판가름났군요

  • @론-o1j
    @론-o1j 3 месяца назад +4

    임진왜란 당시 조선이 대규모 백병전에 약했던건 일본 무사의 검술이 뛰어나서가 아니라 고려시대 권신이 군권을 잡았던 폐단을 없애기 위해 장졸분리 정책을 시행했고 병농일체 사상에 따라 병사들이 제대로 군사훈련조차 받지 않은 오합지졸이었기 때문입니다.

  • @수집쟁이드라하카
    @수집쟁이드라하카 3 месяца назад +3

    유튜브 주제를 선정해주는 좋은 술친구네요ㅋㅋㅋㅋㅋㅋㅋㅋ
    이쯤되면 술값하고 페이값을 내셔야 할듯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고대경-b6d
    @고대경-b6d 3 месяца назад +11

    일본의 사무라이 라는 것이 미화 된 점이 많죠. 의리가 있지 않아서 자신이 섬기는 주군을 밥 먹듯이 배신하는 경우도 있고 죄 없는 양민을 새로 장만한 칼의 성능을 시험하고 싶다는 이유로 죽이는 경우도 있고 부녀자를 강간하는 일도 있었죠.

    • @hahhwa1720
      @hahhwa1720 3 месяца назад +1

      그렇게 사무라이는 성리학을 받아들였다.

    • @고대경-b6d
      @고대경-b6d 3 месяца назад +3

      @@hahhwa1720 더 정확하게 말하면 사무라이는 퇴계 이황의 성리학, 주리론을 받아들여죠.

  • @tazmania21
    @tazmania21 Месяц назад

    5:10 무사시의 목검은 가벼운 목검이 아니라.. 배젖는 노를 깍아 만든 바다 소금에
    절여진 무거운 목검입니다. 소설에서는 코지로의 장검으로 베여지지 않는 목검으로 코지로의 두개골을 아작내는 것으로 나옵니다.😅

  • @needs_human_right
    @needs_human_right Месяц назад

    미야모토 무사시 바로 그 전세대 - 아버지뻘, 할아버지뻘 - 에 더 큰 족적을 남긴 검객들이 많았던 걸로 알고 있습니다. 아이즈 카미이즈미 노부츠나, 야규 무네요시, 이토 잇토사이(오노 타다아키의 스승), 토다 세이겐, 아이스 무네미츠 등.. 증조할아버지뻘로는 아이스 히사타다 등등..

  • @김명기-i4u
    @김명기-i4u 3 месяца назад +4

    무사시는 평생 글을 몰랐고, 그의 제자가 무사시의 가르침을 책으로 편찬한 것이 오륜서.
    무사시는 검술로 최강이라기 보다 오륜서를 통해서 검술을 검도의 경지에 올렸다해서 높이 평가하는 것.
    아시카가 요시테루가 전국시대 최강의 검성으로 추앙받음.

    • @호밀
      @호밀 3 месяца назад +1

      @@김명기-i4u 요시테루는 쇼군인데..

  • @인도양의제왕나갈플
    @인도양의제왕나갈플 3 месяца назад +20

    책한권 잘 써서 떡상한 허풍쟁이. 김두한과 비슷함. 뭐 황비홍, 곽원갑 한중일이 다 비슷하지

    • @핰핰핰-q2d
      @핰핰핰-q2d 3 месяца назад +1

      두한 형님은 건드는거 아닙니다.
      전국을 돌아 다니며 맞따이 하신 분입니다.

    • @인도양의제왕나갈플
      @인도양의제왕나갈플 3 месяца назад +6

      @@핰핰핰-q2d 그렇게 허풍만 치던놈. 자기손으로 묻어죽였다던 아베조차 일본으로 돌아가 잘살다 늙어죽었음요ㅋㅋ

    • @user-snow-man280
      @user-snow-man280 3 месяца назад +1

      이시대에 근데 무사시말고 전설적인인물은 많음

    • @wine_golf_Lover
      @wine_golf_Lover 3 месяца назад

      @@핰핰핰-q2d 그럴리가? 시라소니라면 몰라도

    • @핰핰핰-q2d
      @핰핰핰-q2d 3 месяца назад

      @@wine_golf_Lover 역사를 배우십시요
      김두환, 시라소니, 조일권 낭만 주먹
      양은이 태촌이 회칼과 빠따시대

  • @Healcanglife
    @Healcanglife 3 месяца назад +14

    조선에도 검신이 있죠 김체건 그의 아들 김광택. 김광택의 제자 백동수..

    • @Ace-ms6ol
      @Ace-ms6ol 3 месяца назад +1

      상대했던 자들의 레벨을 안다면 신으로 뫼실 수 있을까요? 왜검술엔 막을때 상대 목 겨냥하며 막습니다. 막음과 동시에 찌르지요! 우리나라처럼 챙!챙!챙! 이런거 없습니다.

    • @моталадеутгетји
      @моталадеутгетји 3 месяца назад +3

      @@Ace-ms6ol 조선에서도 왜검술의 우수함을 인정하여 열심히 받아들였는데 김체건이 조선에서 왜검술의 일인자였다고 알고 있습니다. 물론 님 말처럼 일본의 검성들이랑 비교했을 때 어떨련지는 모르겠지만요

    • @강감찬고려거란전쟁
      @강감찬고려거란전쟁 3 месяца назад

      @@моталадеутгетји
      임진왜란때 이순신 권율같은 인물의 검술은 상상했습니다.

    • @대머리소년의성공신화
      @대머리소년의성공신화 3 месяца назад +2

      금쪽이 4명 델꼬
      외계인들이랑 일기토 승리한
      무신 고길동
      (서울 고급자가 거주)

    • @LYEH-gf7tj
      @LYEH-gf7tj 3 месяца назад

      선조가 죽일 놈이여 .

  • @h38417509
    @h38417509 3 месяца назад +4

    나래이션이.
    참으로 재밋습니다

  • @Xio-y7q
    @Xio-y7q 3 месяца назад +2

    히라모토 요시스케 도쿄대학 연구원 (당시)이 1972년 펴냈고 지금도 많은 연구자들이 참고하는 논문에 따르면 에도시대 (1603~1867년) 남성의 평균 신장은 157.1cm였다.... 피지컬이 음..

    • @EEcircuits
      @EEcircuits 2 месяца назад

      일본이 제국이던 2차대전 시기에도 일본군 평균 신장이 160 내외였다던데

  • @호주사는괭이교관
    @호주사는괭이교관 3 месяца назад

    일본서 도장깨기의 시초라고 볼수있죠. 전쟁이나 약탈에서의 생존성 투쟁이 아닌 누구의 실력이 위냐의 승부성 투쟁의 시작이라고 봅니다. 우리나라도 무신이나 검성(소드마스터)라 불릴만한 분들이 있기야 했죠. 강이식,유금필,박술희 장군이나 척준경같은 무사도 계셨고. 그런데 전쟁을 통한 생존을 위한 혈투가 아닌 목숨을 걸고 펼치는 실력승부라 좀 다른느낌의 고수들이긴 하죠.

  • @김마르코-k8d
    @김마르코-k8d 3 месяца назад +3

    요시오카랑 싸움도 문제 많음 뭔가 허구랑 진실 사이의 인물 같음 검술보다는 피지컬적인 우위를 앞세워서 강자 행세를 한 거지 검술가로서 강한지는...

  • @jejang4575
    @jejang4575 3 месяца назад

    내가 읽은 바로는 목검이 아니라 배젓는 긴 노였다고 알고 있습니다.바닷물 속에서 세월에 의해 절여져 웬만한 칼은 베어내기 힘들고 철로 된 검보다 길고도 가벼워 훨 낫다고 합니다. 게다가 늦게 나타나 해를 등지고 싸워 사사키가 해빛을 정면에서 받고 싸우는데 비해 해를 등지고 싸워 유리한 조건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 @lootd7041
    @lootd7041 3 месяца назад +2

    어떤 영화인지는 모르겠지만 미야모토 무사시의 무장이 카타나와 두꺼운 목도를 들고 싸우던 장면이 인상깊었네요.

  • @이재규-t7i
    @이재규-t7i 3 месяца назад +3

    ㅋㅋㅋ 어느 일본 역사서에 나온 내용인가요? 헬름협곡에 헬름은 맨손으로 오크를 찢어죽이고 살을 발라 먹음

  • @awesome-mz2lj
    @awesome-mz2lj 3 месяца назад +3

    오늘의 교훈,,,,,,,,,,,,,,, 할 건 다하고 살자......

  • @wolfwind1741
    @wolfwind1741 3 месяца назад +2

    무사시는 거품이라고 봅니다
    과거 전국시대 사무라이들은 창술을 기준으로 무예를 평가했고 검술은 취미활동에 가까웠습니다
    그래서 카미이즈미 노부츠나, 츠카하라 보쿠덴 같은 검성들도 사무라이로써 별 평가를 못받아 미관말직이나 떠돌이 낭인 생활을 했죠
    무사시도 오랜 세월 써주는 다이묘가 없다 만년에 가서야 작은 녹봉직을 겨우 받습니다

  • @피캉3세
    @피캉3세 3 месяца назад +1

    팩스토리님 그거 알아봤는데 유튜브에 음악을 올려도 저작권 허용이 있다고 합니다.
    특히 나루토 같은 오래된 애니 음악은 너무 오래되어서 저작권 허용이 가능할거 같습니다

  • @쿠x용
    @쿠x용 3 месяца назад +1

    이거 만화연재를 중재한 이유가 후에 쓰레기짓만 하고 다녀서 도저히 이야기 전개를 할 수 없었다고 함..

  • @현민-l9j1v
    @현민-l9j1v 3 месяца назад +2

    검술의 실력 유무를 떠나..
    그냥 수단 방법 안가리는
    이기는 싸움을 할줄아는 전략가인거는 분명 맞음

  • @petersong4838
    @petersong4838 3 месяца назад +1

    용인전투에서 조선군은 대부분 농민군 아니었나요? 이이의 10만양병설이 무시되었는데, 용인에 조선군이 5만~8만이 있었을리가 없다고 봅니다.

  • @히로-u1l
    @히로-u1l 2 месяца назад

    무사시 소설은 그때까지 구전되어 오던 무사시에 대한 여러 이야기 전설들을 바탕으로 작가가 조금 창작의 살을 붙인것입니다~~마치 나관중의 삼국지처럼요~~

  • @mr.h__
    @mr.h__ 3 месяца назад

    무사시는 검술 실력도 실력이지만, 남들보다 압도적으로 뛰어난 피지컬의 덕을 크게 보기도 했고, 무엇보다 진짜로 뛰어난건 상황 판단 능력이랑 상대방의 실력을 가늠하는 안목이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음
    그래서 자신이 이길 수 있을 상황에서는 적극적으로 싸워서 승리를 쟁취하고, 이길 수 없는 상황이라면 미련 없이 도망치거나 피하는 길을 택했다나 뭐라나...
    나도 주워들은 소리이니 진위여부는 모름

  • @dkihvvbakhbdjmbc
    @dkihvvbakhbdjmbc Месяц назад +1

    조선 제일검도 알려줍쇼

  • @봉경희-l4c
    @봉경희-l4c 3 месяца назад +1

    게임은 언떤 것을 하시나요? 영상 감사합니다.

    • @우웨하라
      @우웨하라 3 месяца назад +1

      사무라이 쇼다운 같네요 아마

  • @tedkim3066
    @tedkim3066 3 месяца назад +24

    황진, 한명련, 정기룡 장군은 근접전서 왜군을 애들다루듯했다

    • @hiratemiki6067
      @hiratemiki6067 3 месяца назад +4

      황진 장군이 일당백이라고 했음

    • @wannabe2891
      @wannabe2891 3 месяца назад +3

      장군인데 당연히 군은 애들 다루듯 다뤄야지

    • @kokekuka24
      @kokekuka24 3 месяца назад

      그새끼들도 일본군 잡병들이나 썰었지 무사시같은 네임드 만나면 쪽도 못쓰고 오줌 질질 짤듯

    • @felixahn3721
      @felixahn3721 3 месяца назад +4

      키 150см 고블린 정도야 쉽지

    • @KoreaTomHardy
      @KoreaTomHardy 3 месяца назад

      어느무사든 존경합니다

  • @태양의밭관리자사딸라
    @태양의밭관리자사딸라 3 месяца назад +38

    오륜서는 한반도 역사를 바꾸는데도 간접적으로 기여한 게, 미 전 대통령 테오 루즈벨트가 오륜서에 뻑이 가서 책을 주변에 나눠줄 정도였고 이게 결국 일본을 밀어주는 계기도 된 것.

    • @parkjaejung8577
      @parkjaejung8577 3 месяца назад +12

      남탓 할 필요 없고 우리 자신이 세울것이 없었던것에 탓을 해야됨

    • @유존혁
      @유존혁 3 месяца назад +2

      @@parkjaejung8577 웃기고 있네 ㅋㅋㅋ 그래서 내세울 것만 있으면 장땡이야? 실속은 뭣도 없는데

    • @도지-q5o
      @도지-q5o 3 месяца назад +1

      우린 밀어줘도 못받아 먹었지

    • @요루소라_YORUSORA_夜空
      @요루소라_YORUSORA_夜空 3 месяца назад +1

      @@유존혁 실속이 왜없노 게이야...

    • @moaaaang
      @moaaaang 3 месяца назад +3

      @@도지-q5o 왜? 안밀어줘도 이만큼 일어섰는데

  • @zandoongee
    @zandoongee 3 месяца назад

    로버트 그린의 저서에서도 간류지마 대결을 언급하면서, 전투형 마키아벨리가 미야모토 무사시라는 식으로 서술한걸 본기억이 있습니다. 아들이 교보문고 다녀와서 오륜서를 사왔길래, 이걸어떻게 설명해야하나 고민했던 기억에 몇자 적어 봅니다.

  • @jhyhad
    @jhyhad 3 месяца назад +2

    검술이 강해서 최강이 아니라 PR을 잘 해서 최강이 된 미야모토 무사시

  • @gicho8553
    @gicho8553 3 месяца назад

    미야모토 무사시 소설을 읽었던 사람으로서 수정하자면 무사시가 코지로랑 싸우기위해 든 목검은 배의 노를 깎아 만든 것입니다
    즉 사사키 코지로의 장도에 대항하기에는 자기가 평소에 쓰던 짧은 쌍도가 안되는 것을 알고 배를 타고 대결장소로 가며
    고민하다가 임기응변으로 코지로의 칼보다 더긴 노를 보고 칼로 깎아 목검을 만들어 코지로에게 이긴 겁니다

  • @아마란스-o1p
    @아마란스-o1p 3 месяца назад +1

    아무래도 일본의 검술 대결과 실력에 대한 기록들은 과장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일본도는 사실상 그 퀄리티가 쓰레기이기 때문이죠. 일본 자체에서 생산되는 철광석에는 모래와 불순물이 많이 포함된 사철이었습니다. 이 사철을 1kg 제련하면 그중 단단한 것은 겨우 100g정도에 불과할 정도였습니다. 이렇게 일본도의 내구도가 약하다는 것을 알고 있던 사무라이들은 여러 자루의 일본도를 몸에 차고 다녔다고도 합니다. 물론 일본 무사들 간의 검술 대련이 있기는 했습니다. 그러나 이 때는 사실상 칼날끼리 맞대는 것이 아니라 칼등을 서로 맞대거나 혹은 상대의 공격을 흘려버리는 정도였다고 합니다. 물론 현대의 공법으로 만든 일본도는 그 강도가 굉장히 높지만요.

  • @드레곤본-j7i
    @드레곤본-j7i 3 месяца назад +1

    여러분 특히 미야모토 무사시에 일류이천검의 유파는 한국에도 도장이 있습니다.

  • @이한편
    @이한편 3 месяца назад +3

    스페인 꼬챙이 펜싱 칼에 사무라이들 못이긴걸로 아는데요

    • @룩앤
      @룩앤 3 месяца назад

      노사센호라 말씀하시는 거면 그런 역사적 사실 없습니다. 유럽에서 일본 갈 때먄 이미 총대포 시대에요.

    • @user-kq4jv9ef1g
      @user-kq4jv9ef1g 2 месяца назад

      한명한테 죄다 발렸죠 그것도 일본 전역을 통일한 유파가 말이죠....

  • @금나라돌격기병대
    @금나라돌격기병대 2 месяца назад +1

    세계 최강의 검객 1위인 카미이즈미 노부츠나 및 '검호쇼군'의 칭호까지 획득한 아시카가 요시테루는 세계최강검임 ㄷㄷ

  • @yunosekki
    @yunosekki 3 месяца назад

    최근에 FGO 시모사노쿠니 편을 플레이하였는데
    원전이 이러했으니 전개가 더 납득이 가고 예측할만했다 생각되는군요..

  • @aloha1592
    @aloha1592 Месяц назад

    칼싸움 한게 아니라, 총과 칼의 대결이었죠. 단, 전술은 제외하고..

  • @쌍쌍바100원
    @쌍쌍바100원 3 месяца назад

    "그날 컨디션이 승부를 좌우한다."
    "역사는 살아남는 자의 기록이다."
    무사시와 코지로의 일전에서 무사시는 일부로 늦게 나타났는데 코지로는 기다리다 밤을 새웠고, 무사시는 꿀잠자고 옴.
    그리고 무사시와 코지로의 싸움에서
    무사시는 바다를 등지고 싸웠고,
    코지로는 해가 뜨는 바다를 보며 싸웠다.
    강렬한 태양빛을 보며 시야가 차단되고 기다리다 피로가 쌓인 코지로는 무사시의 목검에 피투성이가 되었다.
    어떻게 접근하느냐에 따라 "비겁하다" 혹은, "전략적이다" 할 수 있겠지만
    내 생각은
    전국의 도장깨기를 하며 많은 데이터와 노하우를 잘 쌓은 무사시의 경험을 바탕으로한 일대기라 말할 수 있다.

  • @낳괴자-z7w
    @낳괴자-z7w 3 месяца назад +2

    사무라이는 양아치라는게 학계 정설

  • @jinhocha01
    @jinhocha01 3 месяца назад

    코지로를 공격한 무사시의 목검은 그냥 목검이 아니었습니다.
    그 목검은 배를 젖는 ‘노’를 칼로 깎아서 만든 ‘노목검‘이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코지로의 검보다 긴 ’노목검‘이었습니다.
    그것에 대해서 언급을 해 주셨으면 더 좋았을 것 같습니다.

  • @열음-n5q
    @열음-n5q 3 месяца назад +1

    소설로 읽어 본 무사시 일본인들 특유의 영웅 만들기로 먾이 과장된 검객이라는 느낌이었다

  • @bullred8661
    @bullred8661 2 месяца назад

    한반도 역사상 가장 쌘 사람은 소드마스터 척준경인데 한번 붙어서 누가 이길지 보고 싶네요

    • @wjddngk
      @wjddngk 2 месяца назад

      @@bullred8661 위대한선에서 정리됨

  • @포도송이-l1f
    @포도송이-l1f 3 месяца назад +4

    검술보단 총때문이
    아니였을까😢

  • @AK--ev6gx
    @AK--ev6gx 3 месяца назад +12

    무사시 너무 고평가 팩트는 차갑다.. 한번도 무력으로 벼슬에 올라 당대 최고 검객들인 사람들과 싸워본적없고 최고 검객들이 모이는 에도에서 경쟁도 못해본 인간이다 사사키 코지로와의 싸움도 제자들이 다굴놨다는설 결투에서 무사시가 이겼는데 섬이름이 계속 간도로 불리운점도 미심쩍다.. 당대 최고 검객인 야규무네노리 오노 타다아키를 만난적도 없고 그중 실전으로 따지면 당대 최고로 성공한 검객 무네노리 뿐만아니라 자기 쇼군한테도 실전성으로 우사주고 에도 결투에서 진짜 대가리깨버리고 수많은 전쟁을 치룬 찐개또라이 오노 타다아키 만났으면 진작에 대가리 터져서 뒤졌을 양반인데 너무 빨아줌 ㅋㅋ이게다 무사시제자들이 지네마음대로 설 같다가 붙여서 장사할라고 신격화해서 그런듯 싶다 그리고 무사시의 전매특허인 양검술 싸울때 (니텐이치류)잘안썻음 ㅋㅋ하지만 작가로써 예술가로써는 인정..

  • @블라디미르나보코-z3r
    @블라디미르나보코-z3r 3 месяца назад

    그림 잘그리네

  • @utu-ber
    @utu-ber 3 месяца назад +3

    척준경!

  • @자유인-h2w
    @자유인-h2w 3 месяца назад +4

    판타지일뿐 현실은 난쟁이들 중에 조금 큰놈

  • @세상소식-f1h
    @세상소식-f1h 3 месяца назад +1

    미야모토 무사시 실존인물 인지 아닌지
    의심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더군요~~🤔.

  • @sanghyeoppark4880
    @sanghyeoppark4880 3 месяца назад +1

    컨셉 ㅆㅅㅌㅊ
    구독박고갑니다

  • @6sinegohwan336
    @6sinegohwan336 3 месяца назад

    영상을 보고 문득 궁금증이 들어 미야모토 무사시에 대한 여러 자료들을 접해봤는데, 조사 결과 미야모토 무사시는 실제로는 검술이 뛰어난게 아니라고 합니다. 허구와 과장이 많고 그로 인해 논란도 많다네요. 현대로 따지만 검도 5단도 되지 않는 수준이라 오랫동안 검도를 배운 현대인 실력자와 대련하면 질 가능성이 매우 크답니다. 다만 그는 그 결투 한번에 목숨을 거는 기개와 임기응변 덕에 성공한 것이지요.

  • @德川家康-p7o
    @德川家康-p7o 2 месяца назад

    0:10 핫토리한조는 이가출신이며
    닌자라 하기엔 신분이 사무라이

  • @9han22
    @9han22 3 месяца назад +2

    선추천 후댓글

  • @jinhokim5619
    @jinhokim5619 3 месяца назад

    무사시와 사사끼 지금은 당구 큐로 거듭난건가요?

  • @정철승-m3b
    @정철승-m3b 3 месяца назад +2

    임진왜란의 가장 큰 패인은 무기아니였나요?? 총.

    • @이상현-c3x1h
      @이상현-c3x1h 3 месяца назад

      총조선도 있어다고봄!!!??😅😅😅

  • @이영석-s9x
    @이영석-s9x 3 месяца назад +3

    근데 이 영상 제작하시는 분은 대략 몇학년 몇반이세요?? 참고로 제가 알기로는 무사시는 세키 전투에서는 서군편에서 싸운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 @이글스-t1v
    @이글스-t1v 3 месяца назад +1

    다케조~

  • @Happyhappy_Bird
    @Happyhappy_Bird 3 месяца назад +1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서군 편이었다고 알고 있습니다

  • @tv-gt3dc
    @tv-gt3dc 3 месяца назад

    미야모토 무사시의 검객은 많은 사람들이 알아준 유명한 분인 것 같습니다.

  • @금마초-q4f
    @금마초-q4f 3 месяца назад

    이러한 무사시조차 척준경에게 10합을 못 넘겼다고 하니.. 척준경이 왜 무신으로 평가 받았는지 알 것 같네요.

  • @이코백마
    @이코백마 2 месяца назад

    그럴리 없어요...바키에서 무사시는 엄청난 검사라고 했다고요~~ㅋㅋ

  • @uncut125f
    @uncut125f 3 месяца назад +1

    오륜서 라는 책 보면 자세히 잘 나와있죠
    글쿠 문득 조선제일견 생각남

  • @channelvideo3039
    @channelvideo3039 3 месяца назад

    60명이나 일기토한사람이 갑자기 4명이서 다굴칠 이유가없음 마지막거는 아닌듯 재미있는 영상 감사합니다

  • @9318yong
    @9318yong 3 месяца назад

    임진왜란에서 신립이 진 이유는 조총을 상대로 배수진을 써서 그런걸로 알고있는데 저 예시는 일본의 검술의 강함을 보여주는 예시로 알맞지 않은 거 같습니다.

  • @peterju7863
    @peterju7863 3 месяца назад +3

    츠바메가에시... 하오마루와 다치바나 우쿄의 이야기네..

  • @호밀
    @호밀 3 месяца назад +4

    무사시VS척준경
    과연 누가 이길까..

    • @6sinegohwan336
      @6sinegohwan336 3 месяца назад +7

      내 생각에는 척준경이 이길 것 같음. 무사시는 1대1 결투를 주로, 척준경은 일대다 전투를 주로 치룸. 즉, 체력과 상황에 따른 유연성이 더 뛰어나다 생각됨. 척준경이 보여준 행보와 업적을 보면 그 수준은 초한지의 항우 급이거나 그 이상임.

    • @user-snow-man280
      @user-snow-man280 3 месяца назад

      ​@@6sinegohwan336척준경은 과장된게 많음

    • @6sinegohwan336
      @6sinegohwan336 3 месяца назад

      @@user-snow-man280 과장이라기엔 고려 측 기록이 상당히 밋밋하게 되어있음. 한국은 중국 일본과 다르게 누군가의 업적을 그리 과시하는 경향이 없음. 누가~했다, 딱 이정도로 남아있는게 대부분. 그리고 말년에 궁궐 쳐들어가서 불지르고 이자겸이랑 손을 잡는등, 왕실 측에서 봤을 때는 사실상 역적이었기에 축소되었으면 축소됬지, 과장을 하진 않았을 듯. 그리고 금나라 측에도 척준경에 의한 피해가 기록으로 묘사된 만큼 척준경은 대단한 인물이 맞는 건 확실함.

    • @반박시니말이다틀-v4y
      @반박시니말이다틀-v4y 3 месяца назад +4

      @@user-snow-man280무사시시 더 과장됌 준경이형은 기록이라도 많은데 무사시는 전해내려오는 말이 많을뿐 과장됐다치면 무사시가 더 과장됌

    • @미제드론
      @미제드론 3 месяца назад +2

      @@user-snow-man280 정사 기록은 의외로 과장이 별로 들어가지 않습니다.

  • @이글스-t1v
    @이글스-t1v 3 месяца назад +1

    미야모토 무사시는 세끼가하라 전투에서 서군 패장 병으로돌아옴
    목검만 사용 함 ~거의 1~2초식 만에 끝냄
    고등하교때 김용 영웅문 그리고 미야모토 무사시 책 잼나게 봣었네요

  • @낭낭낭낭하게
    @낭낭낭낭하게 3 месяца назад

    우리나라는 검보다 활을 주력으로 삼아서,
    검은 활을 들고 다니기 편하게 짧았음.
    무기 싸움에서는 리치가 중요한데,
    리치가 상대가 안되니 근접에선 이길 수 없음..

  • @doctorLimKyuSung
    @doctorLimKyuSung 3 месяца назад +1

    저 당시의 일본문화가 사람죽이는게 영웅시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사람을 죽이고 영웅이 되려 하다니 좀 천박한것 같습니다. 그렇게해서 제일검이 되면 뭐하나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