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이 "앞으로 살아가면서 더 심층적이고 많은 선택지를 가지려면 대학을 가는게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하셨는데 오히려 그 매몰비용 때문에 자신과 안맞는 것을 파악하였지만 다른시도를 못하고 계속 붙잡고있다가 후회하는 경우도 많이 보았음. 대학은 선택 시 시간과 비용의 기회비용이 적지않게 소모되고 그리고 본인이 주도적이고 주체적으로 학창시절에 특정학과를 목표설정해도 생각했던 것과 달라서 후회하는 경우도 많음. 요약하자면 취업을 위해서라기보다 자기만족(학벌)을 위해서 n수없이 학창시절에 열심히해서 목표대학에 가는거라면 어느 정도 다들 만족하는 경우는 봤으나 단순히 취업을 목표로하여 n수를 하여 원하는 학교에가더라도 전공과 다른 분야를 준비하는 경우를 많이 봄
문과도 학과가 중요합니다. 경제학이냐 교육학이냐 사회학이냐 다 다르죠.. 진출할 수 있는 분야가... 금감원에 기공과가 취업하는 경우는 수학 전문가가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원래는 수학을 잘하는 경제전문가가 필요한데 한국 경제학과 학부수준에서 수학은 거의 바닥 수준이니까.. 공대나 수학과 출신 가운데 뽑아서 경제 교육좀 시켜서 부려먹는 겁니다. 월가에도 공학박사들 많아요..
일제 시 조선총독부가 친일파를 양성하기 위한 경성제국대학이었다 그런데 해방 후 미군정이 들어서자 미군정 하아지 중장의 학무국장이었던 엔스테드 대위가 친일계와 친미계 대학총장과 밀실 에서 모여 경성제대를 서울대학으로 만드는 모의를 한다. 그래서 서울대학은 친미파를 양성하기 위해 미군정이 세우는 학교가 되었다. 이 당시 국민들은 미군정의 신탁통치를 강력하게 반대하였고 동시에 서울대학의 국립 대학화 반대운동을 전개하였던 것이다. 그래서 국립 서울대학교의 초대 총장은 미군 해리 B 앤스테드 해군대위 였다.당시 임명권은 미군정 장관에게 있었던 만큼 당연한 인사였다. 그러나 서울대의 초대 수장이 미군 장교이었다는 사실은 좋든 싫든 서울대가 한국 사회 에서 차지하는 법인 국립대 로서의 위상에 대한 각양의 해석을 가능케 한다. 초대 앤스테드 총장이 1년 2개월만에 물러난 뒤 최초의 한국인 총장으로 취임한 이춘호 박사는 재임 7개월만에「국대안」반대운동 파동으로 물러나 최단명 총장으로 기록됐다. 국대안 파동은 경성의전 수원농전 등 기존의 대학을 통합, 서울대를 설립하려는 미군정의 추진을 대상 학교들이 반대하고 나서고 서울대 내부 교수진에서도 반대 목소리가 들끓었다. 국민들이 일제 경성제대를 폐교조치 안하고 오히려 미군정이 서울대로 전환 시킨 것에 대한 국대안 반대 여진이 계속돼 동맹 휴업 좌우 사상 논쟁으로 번져갔다. 결론적으로 서울대는 미 군정이 친일파 교육자들가 밀실에서 모여 신탁통치를 찬성하고 기존의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세워진 대학인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나라 국립대 으로서의 정통성을 상실한 까닭에 법인대학으로 변경 되어 겨우 자리 매김한 대학인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편입 합격이 인생에 미치는 영향
ruclips.net/video/IUdf1aRFqOs/видео.html
인터뷰이 "앞으로 살아가면서 더 심층적이고 많은 선택지를 가지려면 대학을 가는게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하셨는데
오히려 그 매몰비용 때문에 자신과 안맞는 것을 파악하였지만
다른시도를 못하고 계속 붙잡고있다가 후회하는 경우도 많이 보았음.
대학은 선택 시 시간과 비용의 기회비용이 적지않게 소모되고
그리고 본인이 주도적이고 주체적으로 학창시절에 특정학과를 목표설정해도 생각했던 것과 달라서 후회하는 경우도 많음.
요약하자면 취업을 위해서라기보다 자기만족(학벌)을 위해서 n수없이 학창시절에 열심히해서 목표대학에 가는거라면 어느 정도 다들 만족하는 경우는 봤으나
단순히 취업을 목표로하여 n수를 하여 원하는 학교에가더라도 전공과 다른 분야를 준비하는 경우를 많이 봄
에헤이~ 성대생이 "수원캠" " 서울캠" 이렇게 쓰면 되겠어? " 명륜, 율전이라고 정확히 지칭해야지!!
문과면 학벌, 이과면 학과
서울이면 문과계열이네요. 문과면 학교가 더 중요하죠. 아는 분이 금감원 취업해서 갔는데 기공과였음. ㅠㅠ
문과도 학과가 중요합니다. 경제학이냐 교육학이냐 사회학이냐 다 다르죠.. 진출할 수 있는 분야가... 금감원에 기공과가 취업하는 경우는 수학 전문가가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원래는 수학을 잘하는 경제전문가가 필요한데 한국 경제학과 학부수준에서 수학은 거의 바닥 수준이니까.. 공대나 수학과 출신 가운데 뽑아서 경제 교육좀 시켜서 부려먹는 겁니다. 월가에도 공학박사들 많아요..
남들 학벌물어볼때 학교물어보지 학과 물어보진 않는다
학과는 졸업하고 취업할때나 필요한거지
남은인생은 졸업 학교가 나를 보여주는거임
무조건 학벌
일제 시 조선총독부가 친일파를 양성하기 위한 경성제국대학이었다
그런데 해방 후 미군정이 들어서자 미군정 하아지 중장의 학무국장이었던 엔스테드 대위가 친일계와 친미계 대학총장과 밀실 에서 모여 경성제대를 서울대학으로 만드는 모의를 한다. 그래서 서울대학은 친미파를 양성하기 위해 미군정이 세우는 학교가 되었다.
이 당시 국민들은 미군정의 신탁통치를 강력하게 반대하였고 동시에 서울대학의 국립 대학화 반대운동을 전개하였던 것이다.
그래서 국립 서울대학교의 초대 총장은 미군 해리 B 앤스테드 해군대위 였다.당시 임명권은 미군정 장관에게 있었던 만큼 당연한 인사였다. 그러나 서울대의 초대 수장이 미군 장교이었다는 사실은 좋든 싫든 서울대가 한국 사회 에서 차지하는 법인 국립대 로서의 위상에 대한 각양의 해석을 가능케 한다.
초대 앤스테드 총장이 1년 2개월만에 물러난 뒤 최초의 한국인 총장으로 취임한 이춘호 박사는 재임 7개월만에「국대안」반대운동 파동으로 물러나 최단명 총장으로 기록됐다.
국대안 파동은 경성의전 수원농전 등 기존의 대학을 통합, 서울대를 설립하려는 미군정의 추진을 대상 학교들이 반대하고 나서고
서울대 내부 교수진에서도
반대 목소리가 들끓었다.
국민들이 일제 경성제대를 폐교조치 안하고 오히려 미군정이 서울대로 전환 시킨 것에 대한 국대안 반대 여진이 계속돼 동맹 휴업 좌우 사상 논쟁으로 번져갔다.
결론적으로 서울대는 미 군정이 친일파 교육자들가 밀실에서 모여 신탁통치를 찬성하고 기존의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세워진 대학인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나라 국립대 으로서의 정통성을 상실한 까닭에 법인대학으로 변경 되어 겨우 자리 매김한 대학인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아 도쿄대가고싶다
먹고살기 위해선 '학과' 가, 체면치레 위해선 '학벌' 이 각각 중요. 따라서, 여자들 '취집' 처럼 학과가 별 쓸모 없으면 학벌이지만, 앞으론 취집이 매우 힘듦.