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춘생(安椿生, 1912년 8월 1일~2011년 1월 26일). 황해도 벽성에서 출생하였고 중화민국의 하얼빈에서 성장했다. 본관은 순흥(順興)이다. 안악 사건을 주도한 안명근이 그의 큰아버지이다. 1936년 만주중앙육군군관학교를 졸업하고 중화민국군 장교로 복무, 중국 육군제3사단 소대장을 역임했다. 뒤에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한국 광복군에 넘어와 한국 광복군 제2지대 구대장에 임명됐다. 해방 후 1947년 이범석의 민족청년단 창단에 참여하였다. 대한민국 국군의 창군에도 참여하여 육군에서 활동하였다. 민족청년단 훈련부장으로 재직 중이던 1948년 12월 25일, 중국군 경력이 인정되어 대한민국 국군의 육군 장교로 채용되었다. 1952년 진해 육군사관학교장을 거쳐 1955년 육군 소장으로 진급하였고, 육군 소장 재직 중 육군대학 9기로 입교하여 1956년 2월 25일 수료하였다. 1956년 7월 26일 육군 제8사단장 직책에 올랐으며 그 후 육군 제6군단장 직무대리, 육군 제2군단장, 육군 제1군단장 직무대리 등을 지낸 그는 1959년 3월 육군중앙고등군법회의 재판장, 1959년 6월 2일 육군 제2관구 사령관, 1959년 10월 육군 인사참모부장이 되고 10월 5일 육군참모총장 송요찬을 수행하여 대만군 총사령관 나열 장군의 초대로 타이완을 다녀왔다. 1960년 7월 7일 국방부 국군 부재자투표지도위원회 위원장을 지내다가 1961년 예편하였다. 1961년 3월 대한중공업 상무이사, 1962년 대한중공업 이사장 서리(理事長 署理), 62년 10월 인천중공업 부사장, 1963년 2월 13일 인천중공업 대표이사 사장과 2월 15일에는 대한중공업 이사장직에 임명되어 겸직하고 1966년 11월 21일 인천중공업 사장에 연임, 67년 2월 15일에 삼선하였다. 1964년 6월 15일 인하공대 재단 관선이사로 파견되었고, 정방물산(正邦物産) 대표이사 사장을 역임했다. 1972년부터는 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 간접 선출된 국회의원으로 선출되어 유신정우회 당적으로 활동하였다. 기타 광복회 회장, 대한노인회 회장, 신민주공화당 전임고문 등을 역임했다. 그는 1963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을 수여받다가 2011년 1월 26일에 100세를 일기로 사망하였다.
독립운동하시던분 역시 이런분이 관장님이지 아 이분 생애가 궁금해서 검색해보니 안중근선생님 조카 시네여? 와 ... 그래 이런분이 해야지
유신정우회 유신 부역자
말씀하시는 거만 들어도 숙연해짐
역사에대한 참교육
✔ 안춘생(安椿生, 1912년 8월 1일~2011년 1월 26일).
황해도 벽성에서 출생하였고 중화민국의 하얼빈에서 성장했다.
본관은 순흥(順興)이다.
안악 사건을 주도한 안명근이 그의 큰아버지이다.
1936년 만주중앙육군군관학교를 졸업하고 중화민국군 장교로 복무, 중국 육군제3사단 소대장을 역임했다.
뒤에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한국 광복군에 넘어와 한국 광복군 제2지대 구대장에 임명됐다.
해방 후 1947년 이범석의 민족청년단 창단에 참여하였다.
대한민국 국군의 창군에도 참여하여 육군에서 활동하였다.
민족청년단 훈련부장으로 재직 중이던 1948년 12월 25일, 중국군 경력이 인정되어 대한민국 국군의 육군 장교로 채용되었다.
1952년 진해 육군사관학교장을 거쳐 1955년 육군 소장으로 진급하였고, 육군 소장 재직 중 육군대학 9기로 입교하여 1956년 2월 25일 수료하였다.
1956년 7월 26일 육군 제8사단장 직책에 올랐으며 그 후 육군 제6군단장 직무대리, 육군 제2군단장, 육군 제1군단장 직무대리 등을 지낸 그는 1959년 3월 육군중앙고등군법회의 재판장, 1959년 6월 2일 육군 제2관구 사령관, 1959년 10월 육군 인사참모부장이 되고 10월 5일 육군참모총장 송요찬을 수행하여 대만군 총사령관 나열 장군의 초대로 타이완을 다녀왔다.
1960년 7월 7일 국방부 국군 부재자투표지도위원회 위원장을 지내다가 1961년 예편하였다.
1961년 3월 대한중공업 상무이사, 1962년 대한중공업 이사장 서리(理事長 署理), 62년 10월 인천중공업 부사장, 1963년 2월 13일 인천중공업 대표이사 사장과 2월 15일에는 대한중공업 이사장직에 임명되어 겸직하고 1966년 11월 21일 인천중공업 사장에 연임, 67년 2월 15일에 삼선하였다.
1964년 6월 15일 인하공대 재단 관선이사로 파견되었고, 정방물산(正邦物産) 대표이사 사장을 역임했다.
1972년부터는 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 간접 선출된 국회의원으로 선출되어 유신정우회 당적으로 활동하였다.
기타 광복회 회장, 대한노인회 회장, 신민주공화당 전임고문 등을 역임했다.
그는 1963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을 수여받다가 2011년 1월 26일에 100세를 일기로 사망하였다.
安椿生不是满洲中央陆军军校毕业的,他是中国国民政府的南京中央陆军军官学校毕业的(第十期 步兵科)。严格来说他是先在中央陆军军官学校洛阳分校的朝鲜人特别班就读,几个月后再转学到南京中央陆军军官学校本部就读。
满洲中央陆军军校在当时的中国国民政府眼中是日本人扶持的满洲国汉奸学校,安椿生不可能在那里就读。
춘생이 형님 100살까지 사심
10:54
그나저나 오늘자(240915)추석특집 사장님 귀는 당나귀 귀 먼저 쭉 보고 나서 요것도 아울러 정주행하고 계신 분 있으시다면 소오온!!(여기서도 마찬가지로 김동건씨 입담 보니깐 후배들한테도 전혀 뒤처지지 않았던데 뭐)
지금 독립기념관장은 뉴라이트 친일...어쩌다 이리 된거지...?
지금 독립기념관장 보면 깝깝하다..어쩌다 나라 꼬라지가 전두환 시절만도ㅜ못한 현실
애니보여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