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월성에 올라가 보면 조금 높은 정도이지 남산처럼 사방을 다 볼수 없다.당장 동쪽으로 낭산뒤로는 볼수없고 북서쪽은 세월따라 세워진 수십기의 왕릉들이 생겨나 능 뒤쪽은 볼수없다. 남쪽은 지근거리에 남산으로 막혀있고 사방을 보려해도 이곳저곳을 옮겨 다녀야 하고 제매정 남쪽의 야산이 있어 남서쪽도 거의 1km내로만 시야가 확보되있다. 그나마 알천너머까지와 서천너머가 시야가 확보되는데 그것도 십리안이다.북동쪽은 알천을 사이로 소금강과 명활산성이 비슷한 거리로 십리 안팍이다. 당시엔 어떨지 모르겠지만 산과 강이 그대로 있으니 해자가 있다 한들 개인적으로 옹성만큼 성으로 제대로 기능할수 있을까 의문이다.
그런 의문은 고대로마의 캐피톨리아노 언덕을 보면 해결됨. 고대 로마가 도시국가가 되기 이전 갓 태동하던 시절부터 일곱 언덕에 각각의 씨족들이 살았는데 도시 국가 수준으로 커진 이후에도 성벽을 하나도 만들지 않았음. 그래서 로마는 중세 유럽과는 달리 성이 없는 도시였음. 각각의 언덕은 매우 낮은 구릉지로 방어에 굉장히 불리하고 멀리까지 시야 확보도 안됨. 그래도 고대로마의 시가지였던 포로 로마노를 둘러싼 7개의 구릉 언덕들은 귀족들과 유력자들이 거주하는 중요 지역이었고 황제가 살던 곳이었음. 로마를 중심으로 하던 서로마가 멸망하기까지 무려 1200년동안 고대로마는 거대한 성이 아닌 채로 유지되었음.
연구원님 공부 잘하고 갑니다
천년고조 경주 영원히 보존하시길~~~
아나운서님이 옛신라의 고운여인 정감을 지니 미인입니다.
*어렸을땐 경주에 성이 남아있지않다는게 너무 아쉬웠는데* 이제라도 복원을 열심히 하고있어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요❤
천년 궁성일수 없어요
경주군 옛 명칭이 월성군이었는데(지금도 월성 원전이란 말에 남아있음) 뜬금없이 왜 월성?
역사적 의미가 있는 명칭이었구나 생각이 드는데 시대의 흐름에 따라 없어진다는게 아쉽네
무슨말하는지ᆢ 마스크 때문에 발음이 울려요
경주내 그곳은 월성일까여?
ruclips.net/video/ScbKUbXWB38/видео.htmlsi=djLVVhyNDbsiVfRi
1빠 잘보고갑니다
연구원이 뭘 알아? ㅋㅋ
토박이 출신도 아니고
억울한 재판 경험자도 아니며
부패한 나라 조차 모를 ㅋㅋ
뭘 연구?
돈 낭비의 나라.
경주는 신라의 수도가 아닙니다..............
고구려 왕궁터가, 백제의, 신라의 궁궐터가 한반도에서 발견된 곳이 한곳이라도 있나???
제발 추정만 하지말고 삼국사부터 다시 읽어보고 찾아보자....
천년 신라라 말하면서 왕궁터 주춧돌 하나 제대로 없는 요상한 나라. 신라.
니들이 주장하는 황룡사지 9층 목탑도 주춧돌이 존재하건만...
연구원님 긴장하셨는지 호흡이 많이 떠있네요ㅎ 마스크 벗고 하시지 설명 잘들었습니다
한성백제도 제대로 복원해줬으면
한성백제 대표적 역사 정치를해석한 대표사례 당시 역사계 좌파들 득세한때
서울을 백제로 겹치려고한거임
월성의 벚나무를 전부 밀어버린 이유는 뭔가요????????
백제76만호 X 삼국 =228만호 백제는 조선의 5배.
고려 성종 =210만호 고려는 조선의 14배.
조선 태종 = 15만호.. 삼국은 조선의 15배. 호구수가 그렇다는 것이고, 땅덩어리는 더 넓었을것.
반월성에 올라가 보면 조금 높은 정도이지 남산처럼 사방을 다 볼수 없다.당장 동쪽으로 낭산뒤로는 볼수없고 북서쪽은 세월따라 세워진 수십기의 왕릉들이 생겨나 능 뒤쪽은 볼수없다. 남쪽은 지근거리에 남산으로 막혀있고 사방을 보려해도 이곳저곳을 옮겨 다녀야 하고 제매정 남쪽의 야산이 있어 남서쪽도 거의 1km내로만 시야가 확보되있다.
그나마 알천너머까지와 서천너머가 시야가 확보되는데 그것도 십리안이다.북동쪽은 알천을 사이로 소금강과 명활산성이 비슷한 거리로 십리 안팍이다.
당시엔 어떨지 모르겠지만 산과 강이 그대로 있으니 해자가 있다 한들 개인적으로 옹성만큼 성으로 제대로 기능할수 있을까 의문이다.
그런 의문은 고대로마의 캐피톨리아노 언덕을 보면 해결됨. 고대 로마가 도시국가가 되기 이전 갓 태동하던 시절부터 일곱 언덕에 각각의 씨족들이 살았는데 도시 국가 수준으로 커진 이후에도 성벽을 하나도 만들지 않았음. 그래서 로마는 중세 유럽과는 달리 성이 없는 도시였음. 각각의 언덕은 매우 낮은 구릉지로 방어에 굉장히 불리하고 멀리까지 시야 확보도 안됨. 그래도 고대로마의 시가지였던 포로 로마노를 둘러싼 7개의 구릉 언덕들은 귀족들과 유력자들이 거주하는 중요 지역이었고 황제가 살던 곳이었음. 로마를 중심으로 하던 서로마가 멸망하기까지 무려 1200년동안 고대로마는 거대한 성이 아닌 채로 유지되었음.
저런 엉성한 해자로 적군을 막는다고 장난하냐
가봤냐? 가봐라
그리고 그시절 그때 이걸만든다는게 대단한거다.
길가다 개똥이 있어 주춤하는순간 넌 죽는거다 그런게 해자다.그런생각 할수 있니? 할수있다면 넌 이미 재벌
현시대랑 비교하고 싶다면 너희집 앞에 저렇게 만들어봐 못하지?
어차피 월성은 방어용 아님ㅋㅋ 명활성이 방어용이지
@@노을-l6j맞음. 조선도 북한산성과 남한산성을 둔것처럼 신라역시 왕궁인 월성을 방어하는 명활산성이 있었음..
와 보니까 좋기는 뭐가 좋냐? 횡하니 발굴 구덩이만 존나 있는데... 아무것도 없다.
발굴중이니까 좋은거지
아직 발굴 중인 곳이라 뭘 세울 수가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