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라보예 지젝]초자아를 넘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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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Опубликовано: 16 янв 2025

Комментарии • 71

  • @skjcast
    @skjcast  3 года назад +46

    지젝의 농담 시리즈에서 가끔씩 발칸식 농담이란 게 나옵니다. 대체로 혹독하고 잔혹한 내용에, 지젝 자신의 비관주의나 인간의 끔찍한 면을 설명할 때 나오는데, 발칸에 가본 적이 없어서 모르겠지만 발칸의 지리적, 역사적 특성 때문에 피를 볼 일이 많았고 공격성을 표출할 하나의 수단으로써 저런 언어 습관도 발전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지젝이 들려주는 버전은 사실 그런 역사적 컨텍스트를 가지고 노는 메타-농담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컨텍스트 또는 맥락이 인간의 행동에 미치는 영향은 상상 이상인 것 같습니다. 잘 알려진 심리학 실험으로 뭐 농구를 하는 장면에서 고릴라가 지나가는데도 주어진 지시에 따라 집중하고 있었던 사람은 발견하지 못했다거나, 자유의지가 없다는 글을 읽은 것만으로 실험집단의 부정행위 비율이 올라갔다거나, 간수와 죄수 역할을 하는 것만으로 가학적 성향과 우울감이 나타났다거나, 권위자의 위험한 명령에 대부분의 사람이 복종했다거나.. 이런 것들은 꽤 잘 알려져 있지만, 저는 최근의 인공지능 연구에서 보다 근본적으로 보이는 내용을 발견했습니다. 이 내용을 가지고 언어학적인 관점에서 컨텍스트와 인간의 행동 문제를 정리해 보려고 합니다.
    장 피아제 등이 시작한 아동의 심리 발달에 대한 연구로 현재까지 밝혀진 바에 따르면, 인간 아동의 학습은 분명한 명제적 지식을 즉시 습득하는 식으로 이뤄지는 게 아닙니다. 광범위하게 뭔가 맥락적 정보들을 받아들입니다. 종교적 서사나 상징적 표상들도 포함해서 세상에 대한 정보들을 축적한다는 말입니다. 아동은 이런 식으로 어떤 상황에 어떻게 행동하는 게 적절한지를 학습하는 것 같습니다. 이런 정보들 중에는 실제 행동에 대한 정보도 있는데, 보통 절차적 지식이라고 합니다. 예를 들어 자전거 타는 법은 말로 정확하게 설명할 수 없습니다. 자전거 타는 법은 몸에 저장된 지식인 겁니다. 걷는 법도 그렇습니다. 아기들에게 걷는 법을 아무리 말로 설명해도 걸을 수 없습니다. 걷는 법은 몸에 저장됩니다. 아동의 학습은 이런 식으로 정보들이 축적되면서 진행되는 걸로 보입니다. 성인이 된 우리가 보기에는 웃기지만, 사실 저런 과정을 이전에 거쳤고 그 처리가 자동화 또는 무의식화되어 더 이상 의식할 필요가 없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명제적으로 사고할 수 있는 추상화 능력 자체는 본래 가지고 태어나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하지만 그 발현은 연령에 따라서 진행되고 약간의 개인차도 있습니다. 피아제는 인지 발달에 놀이와 상호작용이 필수적이라고 주장했는데 이 과정에서 상징적 개념의 조작이 이루어진다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상호작용이 없다면 발달은 물론 발달의 동기조차 생겨나지 않을 것이므로 옳은 관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달리 말하자면 인지 발달에는 타인 또는 타자가 필수적입니다.
    한편 이게 인공지능과 무슨 연관이 있는 걸까요? 인공지능 연구자들은 인공지능이 그 엄청난 계산 능력에도 불구하고 실제 세상에서 걷기도 제대로 하기 힘들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인공지능은 맥락 언어를 사용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걷기를 하기 위해서 필요한 연산은 무지막지해서 현재 인공지능에게도 버거운 수준입니다. 다른 행동은 더 어려운데 매 순간마다 사물의 경계를 새로 파악해야 하는, 사실상 무한에 가까운 연산을 필요로 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사물의 경계가 명확하지 않다는 것을 프레임 문제라고 합니다. 특별한 이상이 없는 한 인간은 프레임 문제 같은 걸 겪지 않습니다. 인간은 컨텍스트를 사용해서 사물을 즉시 파악합니다. 인공지능에게 세상은 무한한 데이터입니다. 인간에게 세상은 생물학적인 프레임을 통해 중요도가 나뉘어 인식되며, 그 인식은 특정한 맥락으로 채워져 있고 그것들이 사물을 규정하고 있어서 판단에 어려움을 겪지 않는 것입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인공지능은 강력한 연산 능력이 있고 아주 엄밀하고 강력한 형식 언어를 사용하지만, 그 때문에 연산에 탁월하지도 않고 느슨한 맥락 언어를 사용하는 인간과 같아질 수는 없는 겁니다. 한편 기나긴 생물학적 진화의 역사를 통해 축적된 인간 신체에 구현된 정보들은 아직까지는 기계로 재현할 수 없는 것으로 보입니다. 또한 타인 또는 타자와 협력이 용이하지 않다는 점도 인공지능에게는 한계로 보입니다. 이러한 점에서 현재 인공지능과 인간의 차이는 생물학적 신체의 여부와, 사용하는 언어에 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런 이유로 인간에게 컨텍스트의 중요성은 엄청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맥락적 지식들이 우리 시야의 보이지 않는 배경을 채우고 있다고 생각해 보세요. 말하자면 나의 몸이라는 하드웨어가 있고 컨텍스트들이 그것들이 나라는 정보 처리 프로그램의 코드를 이루고 있으며 내가 나라고 생각하는 나는 모니터 바탕화면만 보고 있는 겁니다. 고대 인류는 주로 종교적 표상을 사용해 왔으며, 근대 이후 학문이 분화되면서 자연과학, 사회과학, 인문학의 하위 분야들과 같은 여러 영역으로 컨텍스트가 확장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우리가 아직도 종교적 표상을 사용할 수밖에 없는 몇 가지 이유가 있어 보입니다.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의 판단이 과학적 형태의 지식으로는 제공되지 않는다는 점, 우리가 명제적 학습을 하기 위해서는 먼저 상징적 학습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점에서 그렇습니다. 종교적 맥락이 기본적으로 규범적, 당위적 공리의 역할을 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게 다른 형태의 지식이 축적됨으로써 대체될 수 있는 것인지는 모르겠습니다. 기존 데이터가 있고 그 위에 덮어씌워지는 것은 가능해 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종교적 표상이나 서사가 발달에 필수적이고 전체 컨텍스트 속에서 담당하는 고유한 영역이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 컨텍스트의 기능이 바로 지젝이 문제삼는 초자아의 힘입니다. 우리의 판단은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상징과 기호들로 구조화되어 있습니다. 고대에 사제가 최고위 신분이었던 것, 중세에 지배계급들이 형이상학에 몰두한 것, 근대에 푸코가 지식과 권력의 관계를 지적한 것 등은 이 구조의 역사적 변양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 힘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컨텍스트는 인간 자유의 문제와 깊이 연관됩니다. 자유란 다른 가능성입니다. 상징적 구조가 자유를 제한하는 것 같지만, 반대로 이 구조가 없으면 자유를 생각할 수조차 없습니다. 훌륭한 소식은 인간 언어에 창조성이 있다는 것입니다. 언어학의 기본 가정은 인간이 유한한 규칙을 가지고 무한한 문장을 만들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럼 그 창조성은 어디까지일까요? 관점에 따라서 무한의 농도가 달라집니다. 구조주의적 관점에서는 불변의 전체 구조가 있고 그 안에서 만화경을 빙글빙글 돌리듯이 여러 양식들이 만들어지는 것으로 봅니다. 이런 관점에서는 구조 안에서 모두 결정되어 있습니다. 촘스키 같은 경우엔 인간의 언어 생성 능력과 창조성을 더 적극적으로 인정합니다. 기본적인 구조는 있지만 열려 있습니다. 후기구조주의는 아예 언어 생성 능력을 무한으로 봅니다. 포스트모더니즘의 근본적인 특징인 어떤 과잉은 여기에서 옵니다. 지젝이 지적하듯이 무한히 생성하는 것만으로는 컨텍스트를 변화시키기에 충분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우리가 행동하고 소통하는 방식을 비롯해서 실제 사회 구조를 바꿔야 합니다. 지젝은 마르크스주의의 폐쇄적인 목적론 이념을 개방된 최소한의 보편성으로 재설정했는데, 이 점은 매우 인상적으로 실제로 그가 컨텍스트를 바꿔놓고 있는 것 같습니다. 섬세한 비판을 가지고 새로운 보편성의 형식을 창조하는 것은 지젝에게서 배워갈 좋은 점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 @김종오-n5x
      @김종오-n5x 3 года назад +3

      컨텍스트라.. 소통 방식이라 이해하면 되는 건가요? 만약 인간이 인간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사고하고 신체적 특성도 다른 고등생물이었다면 지금 우리가 보고 느끼는 모든 것, 언어 문화 등등이 전혀 다른 맥락으로 보여질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드네요. 그들이 세계를 인식하는 방법이 아예 다르고, 실제로 펼쳐진 것들도 지금 우리가 바라보기에 기괴하고 이상하다고 느낄 수 있지만 작동하는 데에 전혀 문제가 없는.. 그런 세상을 상상해보니 정말 소름끼치면서 경이롭습니다. 인간의 신체적 한계에 대해선, 사람의 손가락이 5개가 아니라 6개 였다면? 아마 우리는 좀 더 다양한 음악적 표현을 귀로 느낄 수 있었겠네요. 그것 뿐일까요? 손을 사용하는 모든 작업에서 지금과 다른 것들을 생산 해냈겠죠? 그렇게 되면 우린 뭘 보고 있었을까요? 별 차이가 없는 걸까요? 하지만 적어도 우리가 느낄 수 없는 어떠한 컨텍스트를 가지고 있으리라는 건 분명하겠네요.
      지식이 없지만 제가 스스로 생각해보고 감히 글도 쓸 수 있게 하도록 이런 지식의 장을 열어주시는 작성자 님이 저에게는 새로운 컨텍스트입니다. ㅎㅎ 항상 유익한 영상 제공에 감사드립니다.

    • @1004-l4r
      @1004-l4r 3 года назад +3

      오줌보 조이며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 @WhishingRaven
      @WhishingRaven 3 года назад +1

      @@김종오-n5x 엄지가 두 개면 한 손으로 신발끈을 묶을 수 있습니다 흐미

    • @black-rf7xo
      @black-rf7xo 3 года назад +2

      마르크스주의의 폐쇄적인 목적론 이념을 개방된 최소한의 보편성으로 재설정한다는게 무슨 말이죠?
      부족한 저로서는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ㅠ

    • @skjcast
      @skjcast  3 года назад +9

      @@black-rf7xo 지젝은 20세기에 마르크스주의가 실패한 이유가 너무 강력한 목적론적 구조에 있다고 봅니다. "우리는 지금 역사발전의 필연적 법칙을 따르고 있으니 다른 문제들은 참아라.." 역사의 객관적 법칙에 합치하고 있다는 교리, 역사의 주체인 인민의 의지를 집행한다는 믿음, 승리를 담보하고 있다는 환상이 무너질 때 체제와 이념 역시 붕괴됩니다.
      지젝은 마르크스주의에서 공동의 것에 관한 문제의식과 계급투쟁을 계승하려고 합니다. 미래를 결코 사전에 알 수 없음을 인정할 때 오히려 거기서 연대투쟁의 가능성이 열린다는 겁니다. 예를 들어 세계화, 정보화, 생명공학, 환경오염 같은 것은 모든 인간이 공유하는 공동의 문제이며 누구나 소외될 위험에 처해 있는 것들입니다. 이러한 문제들에 대해서 연대하면서 공동의 토대가 지켜질 때 더 많은 개인이 자신의 재능을 계발해갈 수 있는 환경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이 지젝이 제출하고 있는 새로운 마르크스주의 이념입니다.

  • @flyingcat7797
    @flyingcat7797 Месяц назад

    와….제 개인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해석인 것 같아요. 예전에 봤던 ‘그 슬라보예 지젝이 욕에 대해서 말하는 영상‘을 다시 보러왔는데, 이런 의미였다니. 그리고 이렇게 제 삶에 의미가 있을 수가요..

  • @나천기
    @나천기 Год назад +1

    지젝의 자유에 대해 설명을 들었는데요. 그러면 무한한 형벌인 바위를 끌고 산을 오르는 그 과정도 자유라고 느낄 수 있겠네요. 극단적인 선택

  • @user-182ajh
    @user-182ajh 3 года назад +2

    진심 철학 너무 재밌다... 미치겠다... 요즘 자주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 @고레난데스까
    @고레난데스까 7 месяцев назад +2

    지젝 옹은 코가 지식주머니인듯... 3초에 한 번 씩 만지시네

  • @marc.4583
    @marc.4583 3 года назад

    정말 주옥같은 영상들 감사합니다... 제가 감히 평가 할 퀄리티가 아니지만 번역이 정말 잘돼있네요

  • @samsungwindfree
    @samsungwindfree 3 года назад +1

    미묘한 부분이라 pc들이 알아차리기 쉽지 않은데 지젝이 지적해주니 좋네요.

  • @다나카홍길동
    @다나카홍길동 3 года назад +5

    아따 최근에 수고 좀 하시네!

  • @백지훈-l8f
    @백지훈-l8f 3 года назад +2

    지젝은 천재가 분명하다

    • @skjcast
      @skjcast  3 года назад +1

      4 dollars and so on

    • @skjcast
      @skjcast  3 года назад +5

      김두한을 보니까 생각나는데 지젝이 한국 사람이었으면 지젝의 틱으로 얼마나 많은 합성 짤들이 생겨났을지 정신이 아득해지는군요

    • @skjcast
      @skjcast  3 года назад +4

      '이런 포스트모던적 과잉은 자본주의에 내재한 증상이다' and so on . .

  • @haruki672
    @haruki672 3 года назад

    항상 감사합니다

  • @wlsrnrl
    @wlsrnrl 3 года назад

    잘 보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 @VK-ju5rn
    @VK-ju5rn 3 года назад

    즉흥적인 존재가 아니다 정말 와닿아요!

  • @HDY-g6q
    @HDY-g6q 2 года назад

    저는 우월감의 표현을 관용으로 대체할 수 있을까요? 라는 지젝님의 말씀에 대신에 우울감의 표현을 관용으로 대체하는 모습이 생각났습니다..

  • @seonkyupark5432
    @seonkyupark5432 2 года назад

    재밌네요~좋은 영상과 의견 감사합니다!
    혹시 유튜브로 올려주시는 영상외에 블로그 활동이나 따로 글을 공유하시는 게 있으신가요?? 철학 심리등에 관하여 정리해두신 글이 있으면 읽어보고 싶어서요~

  • @김종오-n5x
    @김종오-n5x 3 года назад +11

    사람은 그리 '올바른' 존재이지는 않는다. 따라서 사람이 '이상적인 모습'을 보이기 위해선 대가를 필요로 한다. 그 과정에서 어떤 문제가 생기면 장애(편집증 등)를 일으킬 수 있다. 그러한 원인 중 하나는 우리가 개인적인 삶에서조차 역할을 강요받는 사회적인 통념?이 한몫 하는 걸 생각해볼 수 있다.
    타인과 평등한 관계 속에선, 내가 농담을 던지는 것이나 받는 걸 우려하지 않는다. 그 수위가 도덕이나 윤리에 크게 어긋나 있어도 말이다. 정치적으로도 다르지 않다. 오히려 '올바름'과 '이상'이 양 쪽의 갈등을 부추길 뿐이다. 어떤 이든 집단이든 달리 특별하지는 않다. 누구나 괴물의 모습은 어느 정도 가지고 있다. 그렇기에 중요한 것은 서로의 다른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욕을 하든 경멸하든) 태도?다.
    이렇게 이해하면 되는지 화자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이게 맞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저는 가끔 어린 아이들을 유심히 볼 때가 있습니다. 그 친구들은 타인의 모습에 대해 표현하는 거리낌이 없어 보입니다. 물론 싸우기도 합니다. 하지만 방향만 잘 잡아준다면 이내 서로 잘 지냅니다. 가끔 어른들이 길을 멀리 돌아가고 있지는 않나 생각해볼 때가 많습니다. 관계 속에서 진짜 중요한 게 뭔지 잊어버린 느낌이 듭니다.
    누구나 괴물같은 모습은 갖고있다는 말, 정말 인상깊었습니다. 도덕이나 윤리를 따져보던 과거의 저에서 어떠한 강박관념이 있었다는 걸 이제야 인지하고 있습니다. 억압하고 받아들이지 못해서 문제가 여럿 생겼죠(도덕,윤리가 필요없다고 생각이 바뀐게 아닙니다). 화자가 비유하는 것들이 하나하다 다 기억에 남네요. 더러운 것을 교환해야 한다라, 하긴 내가 정말 편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전부 내가 그럴 수 있는 분들이죠. 가족이든 친구든 연인이든. 글쓰는 재주가 없지만 새벽에 한 번 끄적여 봅니다.

  • @gadasd1342
    @gadasd1342 3 года назад +2

    과연 저런날이 올까요
    남녀사이에도 외모에따라 사람사이에도타고난 것에따라 계층,위계질서가 자연적으로 생기고
    타 계층에는 베타적이게 되죠 참어려운 주제네요

  • @wwafwqr
    @wwafwqr 9 месяцев назад

    말콤 X의 X를 라캉의 주체로 설명하다니 정말 탁월합니다!
    뿌리를 잃고, 자신을 대체할 완벽한 기표(성, 이름)를 찾지 못한 주체들의 공동체에 대한 선구자라는 해석도 마찬가지고요.

  • @VK-ju5rn
    @VK-ju5rn 3 года назад

    와 진짜 감사하다..

  • @noahlee1120
    @noahlee1120 3 года назад +2

    ㅋㅋㅋㅋ 지젝이 지젝했다!

  • @나천기
    @나천기 Год назад

    저가 제대로 이해한지를 모르겠습니다. 지젝은 모든 사람에게 언제든지 공부할 수 있고 청소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줘야한다고 말하는겁니까?

  • @나천기
    @나천기 Год назад

    친구를 사귈때 뭔가 농담을 주고받으면서도 하하호호를 하면서 나이스 힘내라 라는 말을 하면 더 깊은 관계가 어렵긴하죠.. 참......이상합니다

  • @ghimsoomin
    @ghimsoomin 3 года назад +1

    Pc에 관한 가장 앞선 생각인것 같아서 스크립트화해 페이스북에 게재하려는데 괜찮을까요

    • @skjcast
      @skjcast  3 года назад

      좀 알아보고 말씀드릴게용

    • @skjcast
      @skjcast  3 года назад +1

      일단 저는 이 영상을 사용해도 괜찮다고 말씀드립니다. 문제가 될 수 있는 부분이 있어서 좀 알아봤습니다.
      BIG THINK라는 인터넷 포럼이 있고, 이 동영상의 유통은 여기서 관리합니다. BIG THINK의 유튜브 정책은 영상을 자유롭게 사용하되, 광고 수익을 자신들이 가져가는 조건을 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이 영상물의 1차적 권리는 BIG THINK가 가지고 있는 겁니다. 찾아보니까 얘네들이 페이스북에도 영상을 올리고 있고, 페이스북의 영상 관리 시스템이나 정책이 어떻게 되는지는 몰라서, 이게 제가 권리가 없는 부분을 이렇다저렇다 해버리면 혹시나 문제가 생겼을 때 곤란해질 수 있어서 말씀드린 거고요.
      찾아보니까 딱히 문제가 될 것 같지는 않습니다. 합법적, 개인적, 비상업적 목적이면 자기들 콘텐츠를 사용해도 괜찮다네요. 특히 스크립트화해서 올리시는 거면(정확히 이게 뭔지는 모르겠지만) 문제될 게 없어 보입니다.

  • @굼벵이-u1v
    @굼벵이-u1v 2 года назад +1

    하지만 그 농담에 의도가 있다면 그것은 상처일 뿐이다.그 농담의 의도는 아무리 친교가 강하다고 생각하더라도 모르니까.

  • @tewn3480
    @tewn3480 3 года назад

    친구들끼리 서로 욕을 하는 의식을 가진다는게 참 재미있네요 ㅋㅋㅋ 하긴 남자들은 욕을트면 빨리 친해지긴 하죠

  • @채권총론
    @채권총론 3 года назад +3

    서울과 부산같은거죠.(어디까지나 이미지를 빌려 말하자면) 부산은 말을 험하게 하고 놀리고 말투도 쎄게하지만 사실은 정말 친밀하고 가깝고 끈끈하고 정있다면 서울은 점잔떨고 예의를 지키더라도 결국 깍쟁이인거죠. 거리를 두고 가까워지려하지 않죠. PC같은 많은 규제들, 심지어 관용이란 생각 마저 우리가 서로 연대하고 사랑하는데 방해가 된다는 훌륭한 통찰입니다. 우리나라 젠더갈등 양상도 비슷하죠. 남녀간 조심해야할게 많아질수록 교류가 적어질 겁니다. 언젠간 연애횟수같은 정량적 지표로 통계적 분석이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 인터넷에 떠도는 농담에도 비슷한 게 있죠. 어느 사람이 국제학교를 갔는데 한 학생이 흑인 학생더러 "빨리빨리 좀 지나가 이 더러운 깜둥이새끼야!"하더라는 겁니다. 그걸 지켜보곤 당황하여 입술까지 떨렸는데 흑인 학생이 "뭐래 병신이 자지도 작은게"라 응수했다죠. 차라리 이게 우리의 지향점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익사회와 공동사회의 구분이 있는 만큼, 이익사회가 공동사회화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은 남네요.

    • @skjcast
      @skjcast  3 года назад +15

      군 복무중에 미군이랑 연합훈련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5~6주 정도 같이 생활하면서 미군 막사에서 자고 미군 식당에서 먹고 미군 훈련장에서 훈련하고 했습니다. 막사랑 샤워장만 따로 쓰고 나머지 활동은 다 같이 했습니다. 그들의 원래 주둔지는 하와이인데 분기별로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훈련을 하고 한국도 거기에 포함된다고 하더군요. 미군 병영문화는 정말 달랐습니다. 자율성이 굉장히 높아서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상급자 앞에서 마음대로 전자담배 피면서 얘기하고 놉니다. 훈련장 규모도 엄청나고 시가지 훈련장 규모가 최소 작은 동 규모는 되는데 콜오브듀티 실사판 체험하러 온 줄 알았습니다. 장비나 설비도 비교가 안 되는 수준입니다. M4는 K2보다 훨씬 가볍고 각종 개인용 커스텀들이 달려있습니다. 사격장은 이동 표적과 자동화 시스템은 기본이고 가장 놀라웠던 게 그들은 탄피를 줍지 않습니다; 사격 훈련도 중앙통제가 없이 사수와 부사수만 들어가서 자율적으로 실시합니다. 스트라이커라는 미군 사격 교관이 있었는데 M4 조준경 사용법과 사격장 시스템을 알려줬습니다. 대략 1~8까지 사로가 있고 100, 200, 250 이런 식으로 거리마다 표적지가 랜덤으로 올라옵니다. 사수는 사격 준비를 하고 부사수가 옆에서 100! 200! 하면서 타겟을 불러줍니다. 이동 표적도 있어서 맞추기 까다롭습니다. 맞추면 옆에서 나이스! 굿 샷! 어썸! 하면서 리액션 쳐주는데 꼭 헬스장 보조 같았습니다. 아무튼 당시 중앙통제 없이 사격훈련이 진행된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우리 군 입장에서는 이게 너무 충격적이었는지 놀란 우리 중대장이 카추사를 보내서 사격 중지하라고 했고 스트라이커가 대체 뭐가 문제냐고 왓더헬 거리던게 생각나네요.
      당시에 하와이 원주민 혈통의 짬이 좀 있는 specialist(대략 한국 병장쯤 됨)랑 좀 친해졌는데, 활발하고 떠들썩한 대부분의 미군 분위기와는 달리 점잖고 너그러운 성격이었습니다. 같이 육공트럭 타고 이동하던 중에 그가 같이 사진을 찍자고 하더군요. 저는 휴대폰이 없다고 했습니다. 그가 왜냐고 물어봤고 저는 음.. 코리안 아미는 아직 보안상 문제로 휴대폰을 지급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그가 자기 휴대폰을 꺼내서 자기 와이프 사진을 보여줬습니다. 자기는 아주 어린 나이에 결혼을 했고 어쩌구.. 군인 신분 때문에 자주 못 보지만 이 일을 해서 일찍 결혼을 할 수 있었다고 하더군요. 저는 코리아에서는 보통 결혼을 그보다 늦게 한다고 했습니다. 그가 왜냐고 물어봤고 저도 뭐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더군요. 잠깐 대답을 머뭇거리는 사이에 맞은편에 앉아있던 금발 빡빡이 백인 애가 이러더군요. "because they have a small dick." 대략 쟤네는 꼬추가 작아서 그렇다는 얘기입니다. 제가 그 표현을 못 알아들을거라 생각했는지, 아니면 대놓고 무시하는 발언인지 모르겠지만 개빡치더군요. 근데 그놈은 완전 전형적인.. 그 백인들 중에 완전히 턱이 사각형이고 얼굴 정면에서 보면 턱 끝에 엉덩이 모양 골이 달려있는 관상이 있습니다. 그 관상에다가 덩치는 우리 소대에서 가장 몸이 좋았던 사람보다 최소 1.5배 이상 컸습니다. 솔직히 당시 제 눈에는 거의 브록 레스너처럼 보였습니다. 육탄전으로 가면 브루털한 레이시즘의 희생자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일단 총도 있고 자존심의 문제로 그놈을 노려봤습니다. 웃긴 게 우리 소대원들은 아무도 그 말을 못 알아들어서 이게 뭔 상황인지도 몰랐습니다. 하와이 친구랑 다른 미군들이 말리고 그놈은 방탄 눌러쓰고 자더군요. 하와이 친구가 대략 설명하기를 이게 소위 그들만의 신고식 방식이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각종 문화권에서 다양한 배경을 가진 다양한 인종들이 오기 때문에 새로운 인원이 오면 먼저 이런 식으로 얼마나 스트레스를 견디는지를 시험해 본다고 하더군요. 일부러 도발을 해서 폭발을 유도하고 자신을 무시하지 못하도록 하는 게 부대의 일부로 편입되는 과정이라는 겁니다. 참 재밌는 얘기였는데 저는 그때 그들의 자유로워 보이는 규율이 어떻게 유지되는 것인지 이해했습니다. 이후로도 우리는 잘 지냈습니다. 서로 담배도 교환하고 물건도 교환하고(미군 T셔츠 사이즈가 너무 커서 다른 선임에게 팔았던 기억이 있네요) 미군 전자담배는 어떻게 된 건지 모르겠는데 일반적인 것보다 연무량이 3~4배가 나오는 게 있더군요. 그걸로 누가 더 연기를 많이 만드는가 내기도 하고.. 농구랑 족구도 하고.. 농구는 그들이 우리를 압도하고 족구는 우리가 훨씬 잘하더군요. 훈련장에 버거킹이 있어서; 저녁마다 햄버거도 먹고 흑인 친구들이랑 야한 얘기도 했는데 웃긴 건 그들은 흑인 여자가 최고라고 주장했습니다. 그 브록 레스너 닮은 엉덩이턱 백인은 뭐하나 봤더니 매일 자기랑 비슷한 애들이랑 몰려다니면서 저녁마다 극한의 웨이트 운동만 하더군요. 그렇게 해서 저는 소위 미국적이라고 하는, 다양성이 짬뽕되어 있는 문화가 무엇인지를 체험했던 것 같습니다.

    • @skjcast
      @skjcast  3 года назад +17

      만약 지금 다시 선택할 기회가 있어서 한국군과 미군 중에 어디로 입대할지 정하라고 하면 저는 즉시 미군에 입대할 것 같습니다ㅋㅋㅋ 분명히 선진 기술과 문화라는 것은 존재합니다. 근데 이미 병역을 다 마친 제게 지금 와서 그런 선택은 의미 없는 얘기고, 제가 이 경험에서 느꼈던 것은 미국의 그 고유한 문화가 어떻게 작동할 수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그들이 세계 최고의 국가인 미국의 시민이고 그들의 활동이 자유 수호와 세계의 질서 유지 및 평화에 기여하고 있다는 환상을 공유할 수 있기 때문에 그 모든 다양성과 자율성을 허용할 수 있는 것입니다. 저는 이거야말로 미국 문화의 본질이자 자유주의 이데올로기의 실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점에서 저는 미국이 이익사회의 극한 형태라고 생각합니다. 앞서 말씀드린 도발을 통해 자신들의 일부가 되기를 유도하는 전략처럼, 그들은 분노조차도 사회적 자원으로 전환시키는 법을 개발해냈습니다. 이건 마치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에서 석대에게 저항하던 주인공이 석대를 인정하고 그의 질서에 편입되는 일정한 대가를 치름으로써 오히려 안도감과 편리를 맛보는 것과 같습니다. 물론 미국은 엄석대보다 훨씬 낫습니다만, 이런 예를 드는 이유는 그 심리 묘사가 너무 탁월하기 때문입니다. 남자들은 이런 경험을 한번쯤은 해 보았을 텐데, 내적 긴장이 터져나와서 객관화되는 순간 오히려 마음이 편안해지며, 질서에 편입된다는 것은 어떤 안도감과 만족감을 줍니다. 이런 점에서 미국의 가치는 현재 다른 어디에서 제공하는 것보다 훌륭하며, 우리가 미국의 가치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은 우리에게 안정감과 편리함을 줍니다. 문제는 이게 중동이라던지 중국, 러시아처럼 미국과 전혀 다른 가치를 가졌거나 대등한 힘을 가진 국가들에게는 먹히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오히려 미국을 적으로 간주하며, 미국도 그들을 적으로 간주합니다. 미국이 패권을 내세우면 내세울수록 이슬람 근본주의, 중국몽, 슬라브 민족주의는 더 힘을 얻습니다. 그리고 국제 무대에 이걸 바로잡아 줄 선생님은 없습니다.
      이데올로기의 좋은 점은 그게 무척 효과적이라는 것이고, 나쁜 점은 그게 적을 필요로 한다는 것입니다. 지젝은 이런 이데올로기의 한계를 넘어설 방법을 고민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제가 지젝에 주목하고 있는 이유는 이데올로기 문제가 한편으로는 현재 우리가 처한 사회 분열과 관련이 있고 또한 중국과 미국 사이에서 교착 상태를 넘어서는 것과 관련이 있기 때문입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코로나 바이러스가 현재로서는 근본적으로 박멸 불가능하고 우리 삶의 일부가 되었듯이, 어떤 이데올로기도 한번 생겨나고 변형되면 이전으로 돌린다는 건 불가능한 것 같습니다. 소위 비가역적 변화가 이데올로기에서도 일어나는 겁니다. 우리는 PC가 주장하는, 언어와 그를 통한 사회 질서가 중립적이지 않고 항상 편견을 내재하고 있다는 점을 인정해야 합니다. 하지만 코로나 팬데믹을 통해 근본적인 위기 상황에서 PC 전략은 무력하다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오히려 위기 상황에서 국가의 제한 및 의료 제도와 같은 사회적 권위가 필수적이라는 것이 증명되었습니다. 이 점에서 우리는 PC에 대해 자체적으로 면역을 길러야 합니다. 그건 한동안 유행처럼 퍼졌고 대부분의 일반적인 사람들은 어찌할 줄 몰랐지만 이제 한계가 밝혀졌습니다. PC들의 사회적 요구는 냅두되 공론장을 그냥 장악하게 두어선 안 됩니다. 그 게임을 거부해야 합니다. 쓸데없는 언어게임은 그만 하고 좌파는 국가가 필요한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는지, 우파는 침체된 경제를 어떻게 회복할 것인지에 집중하는 쪽으로 해서 위기를 헤쳐나갈 실제적인 방안들을 마련해야 할 것 같습니다.

  • @jaguar_roar
    @jaguar_roar 3 года назад +8

    코만지는거 빼고 다 좋다

  • @whdgk85
    @whdgk85 3 года назад +1

    영상을 보다 궁금한 점이 생겨 질문드립니다.
    지젝이 행복 혹은 욕망에 대해서 본인의 욕망이 진정 바라는것인가를 설명할 때 의처증걸린 남편을 예로 들어 설명하잖아요? 욕망은 대상을 두고 너무 가까이도 너무멀리도 떨어지지 않은 채 이상을 만드는 자체에서 이루어진다?
    제가 잘 이해한건지 햇갈리네요.
    그런데 이 영상의 초자아의 만족에 대해 사디즘 마조히즘 레즈비언 커플의 예를 들며 초자아의 욕망이 실현되었기에 나로서 있는 다는 얘기를 들으니 위와 상충되는 느낌을 받아서요 지젝이 말하는 욕망or행복은 충족될 수 없는것 아니였나요?? 머리가 복잡합니다 ㅜㅜ

    • @skjcast
      @skjcast  3 года назад +7

      오호 맞습니다. 욕망의 작동 방식이 정확히 그렇습니다. 사도마조히즘적 레즈비언의 사례는 지젝이 그걸 권장한다기 보다는ㅋㅋㅋ 극단적인 사례를 들어 초자아의 작동 방식을 설명하는 겁니다. 초자아는 담론의 형태를 띤 언어적 구조입니다. 죄책감과 보상을 통해 주체를 길들이고, 이게 사회화 과정입니다. 사도마조히즘 레즈비언 커플이 뭔가 엄청나게 파격적인 욕망을 추구하는 것 같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들은 역할극을 하는 겁니다. 특정 입장을 연기하면서 쾌락과 만족을 얻는 거죠. 사디스트는 그냥 폭력만 행사하는 게 아닙니다. 뭔가 자기만의 다소 뒤틀린 규칙을 설정합니다. 마조히스트 역시 그냥 맞기만 하는 게 아닙니다. 자신이 벌을 받는 조건을 설정하고 거기에 복종합니다. 초자아는 이들이 연극을 펼치는 무대 역할을 합니다. 초자아의 역설적 기능이란, 인간이 사회화되려면 그 구조에 들어가야 하면서 거기에 사용료 또는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는 겁니다. 그 대가는 사도마조히스트의 사례처럼 자기 자신이 될 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사례를 또 꼽자면 국가를 위해 목숨을 바쳐라, 당신이 믿는 신을 위해 폭탄을 메고 적진으로 돌격하라 등이 있습니다. 지젝이 절친들과 만나서 서로 욕을 퍼붓는 의식을 거행함으로써 서로 제대로 된 대화가 가능해진다는 것은, 이 대가를 미리 몽땅 지불함으로써 초자아의 구속에서 벗어나는 전략입니다. 서로의 추악함, 멍청함, 끔찍함 등을 미리 교환해서, 각자의 담론을 비판해도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 지점까지 가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사실 오랜 친구들을 편하게 만날 수 있다는 것은 그들이 나와 유난히 잘 맞아서라기보다는, 내 멍청함과 어리석음을 미리 잘 알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앞서 지젝이 두 사람 간에 다툼이 벌어졌을 때, 뭔가를 못 견뎌서 나오는 폭발이 아니라 사실은 정교한 기술일 수 있다고 얘기합니다. 사람들이 담론의 대리인으로써 싸운다는 겁니다. 그래서 지젝이 계속 자신이 진짜 욕망하는 게 뭔지 끊임없이 질문하라고 하는 겁니다. 내가 원하는 게 뭔지도 모르고 담론이 지시하는 바에 따라 자동 기계처럼 움직이지 말라는 거죠. 욕망이란 항상 타인의 담론으로 얼룩져 있습니다. 초자아가 제공하는 무대 없이는 내 욕망이 펼쳐지는 공간도 없는 겁니다. 지젝에게 있어 자신의 욕망을 추구한다는 것은 여기에 자신의 얼룩을 칠하는 것이고, 담론을 비판한다는 것은 사회적 규칙과 행동의 지침들에 대한 비판을 포함하기에 사회적 실천과 직결되는 겁니다.

    • @whdgk85
      @whdgk85 3 года назад +1

      @@skjcast 정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좋은영상에 상세한 설명까지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 @Qpsoddof-n2x
    @Qpsoddof-n2x 3 года назад

    뭔가 이번영상에서 지젝이 말하는바가 피터슨과 비슷한느낌을 받았는데 잘못 생각한걸까요?

    • @skjcast
      @skjcast  3 года назад +1

      어느 부분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이 영상 소스들은 4~5년 이상 된 거라 직접적으로 연관된 건 아닙니당

    • @Qpsoddof-n2x
      @Qpsoddof-n2x 3 года назад

      @@skjcast 정치적올바름에 관해서 이야기 할때욥; 잘못 생각한걸까요?

    • @skjcast
      @skjcast  3 года назад +7

      @@Qpsoddof-n2x 철학적인 지점입니다. 지젝이 직접적으로 피터슨을 겨냥한다기보다는 칸트 윤리학의 한계를 비판하고 있고 그 비판의 범위에 피터슨도 포함되는 겁니다.
      칸트 윤리학은 개인의 주관에 최고의 중요도를 부여합니다. 정언명령 아시죠? 칸트는 윤리의 담지자가 개인이라고 선포했습니다. 물론 맞습니다. 근데 헤겔은 칸트적인 도덕의 내면성이 갖는 한계를 지적했습니다. 개인의 자유는 개인이 소속된 국가의 힘에 의존한다는 거죠.
      보통 이 지점에서 헤겔을 당시 프로이센 국가주의를 옹호한 학자로 비판합니다. 근데 헤겔주의자를 자처하는 지젝은 오히려 통상적인 헤겔을 정반대로 뒤집어서 국가들의 힘을 견제할 새로운 집단적 이념이 필요하다고 주장합니다. 거기에 옛날 공산주의 이념에서 정신분석학적으로 병적인 측면을 자기 식대로 수정해서 가져온 거죠.
      피터슨이 개인의 심리적 발전에 대한 아주 정교한 논리와 연구들을 제시한 건 맞습니다. 하지만 피터슨도 개인에게 최고의 중요성을 부여한다는 점에서 칸트적이고 헤겔 식의 비판에 포함되게 됩니다. 지젝은 피터슨보다 더 광범위한 컨텍스트를 가지고 놀고 있는 겁니다.

    • @Qpsoddof-n2x
      @Qpsoddof-n2x 3 года назад

      @@skjcast 아 그게 피터슨을 비판하는 게 아니라 그 조던피터슨이 정치적올바름 pc에 관하여 영상들보면 이영상 4분부터 정치적올바름에대해 지젝이 이야기하는부분이 피터슨이 pc현상에 대해말는거와 비슷하다고 생각해서욥

    • @Qpsoddof-n2x
      @Qpsoddof-n2x 3 года назад

      @@skjcast 그러고보니 막상 칸트 전집사놓고 별로 읽지를 못했네요

  • @hkkim7213
    @hkkim7213 3 года назад +4

    궁금합니다. 어떻게 백인이 다른 인종보다 문명적으로 문화적으로, 더 앞서 나갈수 있었는지.
    단순한 환경적인 우연에 의한 것인지, 아니면 정말 인종적인 특성이 존재하며, 그 특성이 깊게 관여되어 현재 서구의 선진을 만든 것인지 궁금합니다.
    저는 사고가 많이 뒤틀려 있어서, 아시안/흑인 은 백인과 그들의 문화에 열등의식에 휩싸여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선진문화라는건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왜 아시아에서 거주하는 백인들은 영어만 사용하는게 당연하며, 그들이 현지언어를 못하는게 당연 할까요.
    왜 미주 거주하는 유색인종은 영어를 못하면, 상위 화이트칼라 직종을 구하는게 불가능할까요.
    저는 그 기저에 문화적 열등감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현재의 일본 혹은 중국정도가 세계 패권국위치를 넘 볼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일본은 현재로선 그런 마음이 거세를 당한모양이고, 많은 대중들의 미움을 받고있는 중국정도가 아시아 최종희망이라고 생각합니다.
    굳이 경쟁해서 패권국이 되어야해? 라고 생각 한다면, 그냥현재 자신의 위치에 평생고정되어 사는것과 같다고 생각됩니다.
    아 물론 중국제도가, 서구적 안경을 쓰고있는 우리의 눈으로 봤을때는 참 병신같고 병적인 제도다 라고 느껴집니다
    저도 물론 서구적인 문화를 훨씬 더 좋아합니다. 확실히 더 좋고 제 현재 가치에 부합하니까요.
    하지만 언제 병신같은 이류인종,문명 취급받는 아시안들의 문화가, 더이상 서구적 사고적틀을 쫒지 않고, 온건히 우리만의 사고를 할 수있으련지요.
    200년후 가가호호 백인가정부 청소부들을 고용하는게 보편화된 사회에서 자란 사람들만이, 어쩌면 온전한 아시안적 사고를 하고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왜 우리는 독립적인 사고를 할수없게 되었을까요?
    왜 우리는 인문학적 철학 사고의 틀을 갖지 못했을까요.
    정말 우연인건지, 열등한건지 연관된 영상이 있다면 정말 즐겁게 보고싶습니다!
    왜 우리는 문명경쟁에서 패배한 것인가요.
    영상 항상 잘 보고있습니다!

    • @skjcast
      @skjcast  3 года назад +17

      두 가지 수준에서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첫째로 지리적 특성입니다. 유명한 제러드 다이아몬드의 를 보면 유럽에서 민주주의, 자유주의 같은 문화가 발생한 것은 소규모 도시국가들의 수많은 전쟁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그 과정에서 여러 사상과 제도들이 뒤섞이고 불필요한 희생을 최소화하는 형식이 발명되었다는 거죠. 반면 중국은 지리적으로 고립되어 있어서 그런 다양성의 생성과 발전이 지연되었다는 겁니다. 또한 어쩌면 당시로서는 중국과 같은 규모의 국가를 통치하기 위해서는 권위주의와 전제주의적 통치가 필수적인 것일 수밖에 없는 것이었는지도 모릅니다. 유럽에서 시작된 그러한 과정의 생산물이 축적되면서 외부로 폭발한 것이 근대라고 할 수 있습니다.
      두 번째는 조금 더 충격적일 수 있는데, 문자의 특성과 관련됩니다. 먼저 소개하자면 옆나라 일본에 가라타니 고진이라는 세계적인 철학자가 있습니다. 서양 사상을 가져다가 고유한 방식으로 재배치하고 세계사를 말하고 일본인의 무의식적 정체성을 해명하는 사람입니다. 그는 자신은 철학자로서 사유하지 일본인으로서 사유하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또한 유명한 마르크스주의자이기도 한데, 여기서 저는 사소한 의문 하나를 제기해봅니다. 슬라보예 지젝이라든지 가라타니 고진이라든지 고정된 정체성을 넘어가려는 사람들이 왜 마르크스주의에 주목하는 걸까요? 사람들이 마르크스주의자가 되어야 한다는 얘기가 아니라, 마르크스주의 사유의 핵심이 보편성의 존재와 기능 및 그 전복에 대한 것인데 이 사고 방식이 기존 패러다임을 넘어서는 데 필수적인 역할을 한다고 말하려는 겁니다.
      아무튼 가라타니 고진 이야기를 한 것은, 그가 이라는 글에서 엄청난 주장을 한 바 있기 때문입니다. 고진은 일본인에게 내면이란 근대의 발명품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무슨 말이냐면 일본은 근대에 이르러 언문일치 제도가 확립되었습니다. 언문일치란 말과 글이 일치하게 되었다는 뜻으로, 한문 대신 구어를 바탕으로 한 표준적인 문장 구조가 수립되었다는 것입니다. 그 이전에는 기록을 위해서는 한문을 사용했는데, 참고로 이것은 한국도 마찬가지입니다. 근대소설가들이 언문일치를 이뤄내면서 현재 사용하는 문체들이 확립된 겁니다. 고진은 구어가 문어를 넘어서면서 내면이란 게 생겨났다고 주장합니다. 이게 무슨 말인지 설명하겠습니다. 한자는 표의문자로, 문자의 형상이 의미와 직접 결합해 있습니다. 알파벳은 표음문자로, 문자의 형상과 의미가 아무런 연관이 없습니다. 알파벳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사용자의 내적인 의미의 공간이 필수적인 것입니다. 제게는 이게 동양과 서양의 사고방식의 차이를 발생시키는 근본적인 지점으로 보입니다. 동양은 전통적으로 내재적인 사고를 합니다. 동양에 뭔가 초월적인 것이 있다면 자연 그 자체입니다. 반면 서양의 사고방식은 항상 초월적인 것을 두고 그로부터 자연적인 것을 판단합니다. 여기서 신이라는 개념이 발생하고 또한 현실과 이상의 필연적인 괴리가 발생합니다.
      이게 발전을 추동하는 것입니다. 위대한 사회학자 막스 베버는 에서 엄격한 청교도 윤리와 내세에 대한 믿음 및 구원에 대한 기대가 자본주의 발전의 핵심 요소라고 분석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초월성이 발생하지 않는 동양의 전통적인 사고 구조에서는 사회체제가 개인들에게 그만한 동기부여를 일으킬 수 없었던 겁니다. 정말 충격적이죠. 정말 사소해 보이는 작은 차이 하나가 장기간에 걸쳐서는 엄청난 변화로 나타나는 겁니다. 동양 전통은 다소 원시적인 문자인 한자가 제공하는 사고 형식 안에 갇혀 있었던 겁니다. 반면 서양 전통은 의미를 낳는 초월성에 대한 광적인 집착으로 신학을 만들어 내고, 자연을 대상화함으로써 과학이란 학문을 낳고 이성의 힘을 점점 인식하게 된 것으로 보입니다.
      한편 저는 여기서 우리에게 주어져 있는 새로운 가능성을 봅니다. 중국은 실제로 산업 혁명 이전까지는 군사는 물론 경제적인 면에서 대부분의 유럽 국가들을 압도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최근 자본주의 경제를 적극적으로 도입하고 중국몽을 국가의 권위를 정당화하는 새로운 이데올로기로 부상시키면서 미국을 열심히 추격하고 있죠. 하지만 가라타니 고진의 문자론에 따르면 중국은 자신을 한자 문화권의 중심으로 설 수 있게 해 준 바로 그 문자 형식 때문에 고질적인 증상인 비개방적이고 권위주의적인 사고를 벗어나기 어려워 보입니다. 반면 한글은 한자를 기반으로 하고 있으면서도 알파벳과 같은 표음문자 형식입니다. 동서양의 문화를 종합해서 보다 고차적으로 지양할 이보다 뛰어난 형식이 있을까요? 국립타이완대학, 도쿄대학, 하버드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고 한국에서 학력으로는 최고, 사실 세계적인 수준에서 비교해도 최고의 학력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는 김용옥 교수는 급변하는 세계사의 패러다임을 가져오는 것이 우리가 생존할 길이라고 역설한 바 있습니다. 이 점에서, 우리는 생각해야 합니다. 독립적인 사고를 할 수 있는 형식을 우리가 스스로 만들어내야 합니다. 도구는 이미 주어져 있습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이러한 사정들을 잘 몰랐을 뿐입니다.

    • @hkkim7213
      @hkkim7213 3 года назад +2

      @@skjcast 소름끼치네요. 동아시아인 전체가 표의문자에 갖혀 상상력을 갖지 못하는 숙명이라니. 어마어마한 통찰인것 같아요. 결국 상상한데로 된다고하는 여러 구루들의 말과 일맥상통하네요.
      중국이 언어를 바꿀가능성이 희박하니 적어도 위의 관점에 서 보면, 초월적인 새로운 무언가를 상상하고 만들 가능성이 굉장히 희박해 보이네요.
      사실 저는 좀 다르게 생각해왔습니다,
      아시아에서 어떤 나라이던, 누군가가 서구패권을 뒤집었으면 했고, 일본을 제외하면 현대개화가 터무니없이 늦게 되어서, 사실 후발주자들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해야, 서구를 넘을수 있다고 봤습니다.
      늦게시작한 다른 수단과 가치관을 갖고 가야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자연현상이 갖는 파동적 필연적인 흐름을 믿습니다. 비개방적,권위주의와 같은 가치들의 의미가 분명히 도움이 되는 시대가 오고있을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뉴미디어 만들어내는 무한히 울려퍼지는 다른 목소리,소음으로 인해, 선진국열차들마저 탈선할 지도 모르겠습니다.
      정말 어마어마한 통찰 및 지식을 공유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시아에서 패권국이 탄생하는 그 날이 온다면, 표의 문자를 갖고있으며, 규모를 갖고있는 일본이 패권을 갖게될까요?
      한국은 정말 대단한 나라이지만, 이 규모를 갖고 위대해 질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역사적으로 한국사이즈의 국가 위대했던적 있을까요?

    • @hkkim7213
      @hkkim7213 3 года назад +2

      @@skjcast 어찌 그렇게 많은 철학책을 술술 읽으셨나요, 정말 도통 이해하기 어렵게 적혀있던데. 대단하십니다.
      한가지 더 갑자기 떠올랐습니다
      서양 철학적 사유방식을, 저희 아시아인들은 대부분 빌려서 사유하지 않습니까? 그런 사유방식들은 서구인들의 언어습관 및 환경에 의해서 필연적으로 만들어진 산물인 것이고요.
      그렇다면, 그들은 첫 단추를 끼운것이고, 저희 아시아인들은 서구가 만든 그 기반위에서 평생을 변주만 할 수있는 것인지오.

    • @skjcast
      @skjcast  3 года назад +7

      @@hkkim7213 한국보다 훨씬 작지만 엄청난 영향력을 갖고 있는 나라가 있는데 현대 이스라엘입니다. 물론 그 영향력은 세계 각지에 퍼져있는 유대인들과 그들의 경제, 사회, 문화적 영향력에 기반하는 거지만요. 그들은 아주 독특한 특성이 있는데 유대인은 혈통에 의해서 규정되는 게 아닙니다. 물론 유대계 핏줄은 존재하지만, 유대인이 되기 위한 조건은 유대교를 믿고 유대인 식으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유대인 식으로 생각한다는 것은 잘 알려진 하브루타 어쩌구 하는 것으로 끊임없이 질문하는 습관입니다. 유대인은 한편으로는 종교적 맹신과 다른 한편으로는 그 집요한 사고방식과 이익에 민감한 현실주의로 특징지어집니다.
      통계 자료를 보면 한국인과 유대인의 평균적인 지능 지수는 큰 차이가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왜 우리는 학문으로 노벨상을 받은 사람이 단 한 명도 없는 반면 유대인들은 휩쓰는 걸까요. 우리는 근대화가 늦었고 식민 지배를 당했지만 유대인들도 만만치 않게 항상 박해받고 차별을 받아왔는데 말입니다. 제 생각에는 그들이 세상을 이해하고 접근하는 방식이 무척 강력한 것입니다. 유대인과 우리 민족은 뭔가 정반대되는 면이 있는데 유대인은 전 세계를 떠돌았지만 고유한 종교와 사상으로 살아남은 반면 우리는 이 땅을 떠나지 않고 고유한 종교나 사상 없이 살아남았습니다. 제가 보기에 그들에게 뭔가 수입해올 만한 면이 있습니다. 물론 우리가 유대인이 되어야 한다는 게 아니라, 터무니없이 엄격하게 종교 계율을 지키면서도 당연한 것에 끊임없이 질문을 하고 뭔가를 창조해내는 면을 배워야 한다는 겁니다. 한국인들은 뭔가 남들이 이루지 않은 새로운 영역으로 나아가기를 주저하는 것 같습니다. 앞으로 시대는 주어진 문제만 해결하는 게 아니라 새로운 문제를 지적하고 학문과 학문, 분야와 분야 사이를 넘나드는 능력이 더 중요해지게 될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한 능력이 우리 민족 특유의 부지런함 및 강인한 생존력과 결합하면 꼭 아시아의 패권까지는 아니더라도 세계 무대에 더 이름을 떨치리라 생각합니다.
      일본이 패권을 잡을지는 모르겠습니다. 재미있는 점은 근대 이전까지 일본은 실제로 아시아에서 문화적으로는 가장 후진국이었다는 겁니다. 물론 장기간 내부적으로 축적한 군사적 힘을 임진왜란을 통해서 크게 표출하기는 했지만 기본적으로 유교의 전래도 늦었고 조선과는 통신사를 통해서 교류하며 문화와 기술을 배워가는 입장이었습니다. 역설적이게도 바로 그 점 때문에, 동아시아 전통의 토양이 단단하지 않았기 때문에 일본이 가장 먼저 근대화의 물결에 앞장서서 나아갈 수 있었던 겁니다. 패러다임이 변하는 시대에는 기존의 강자라고 해서 반드시 유리하다는 법은 없습니다. 이 점에서 저는 우리에게도 많은 기회가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말씀하신 대로 우리가 군사적으로 약소국은 아니긴 하나 위치상으로도 그렇고 국가의 규모에서도 그렇고 힘싸움을 벌이기에 유리한 조건은 아니긴 합니다. 저는 기본적으로는 학문과 예술 분야에 기대를 걸고 있습니다.

    • @skjcast
      @skjcast  3 года назад +8

      @@hkkim7213마오쩌둥이 실제로 중국 공산당과 권력을 장악하면서 한자를 폐지하려 했습니다. 뭐 알파벳을 도입해야 한다, 새로운 문자를 만들어야 한다 이런 논의가 많았는데 결국에는 한자를 계속 사용하면서 간소화 및 통일하는 노선을 택했습니다. 그 이유는 알려진 바로는 마오쩌둥 본인이 서예 매니아였기 때문이라고 하네요. 무언가 한자는 매우 상징적이지 않습니까? 동양 고전에 심취한 사람들은 한자가 주는 무한성의 느낌에 흠뻑 빠져서 헤엄을 치는 사람마냥 말합니다. 중국인 특유의 모이기 좋아하는 중앙집권적 사고방식과 습관은 이런 한자의 특성에서 오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점에서 중국은 앞으로도 중국할 것 같습니다.
      아시아인이 서구가 만든 기반 위에서 영원히 변주만 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은 제가 보기엔 그렇지 않습니다. 물론 완전히 무로부터 창조 같은 것은 인간의 능력이 아니기에 기본적으로 인간의 활동은 변주이지만, 예를 들어서 우리가 쓰고 있는 이 글을 보세요. 누가 만들었습니까? 세종대왕이 당대 음운학과 언어학의 지식들을 모두 섭렵하여 만들지 않았습니까? 이런 식으로 문자든 사상이든 새로운 기반을 창조하는 것이 가능합니다. 옛날에는 왕이 아니면 그만한 지식에 접근하고 새로운 제도 같은 것을 창안하기가 거의 불가능했죠. 오늘날엔 상황이 더 나아보이고, 우리에겐 그런 인물들이 많이 필요해 보입니다.

  • @송송포
    @송송포 3 года назад

    좋은 영상 감사합니다. 좀 뜬금 없지만 저는 아직도 정치적 올바름이 왜 그런 이름으로 불리는지 이해가 안갑니다.

    • @skjcast
      @skjcast  3 года назад +2

      'Political Correctness'가 의미하는 바가 '정치적 올바름'이란 번역어를 갖고는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실제로 다른 번역어가 많이 제안되기도 했는데 딱히 더 나아보이진 않네요.
      'correctness'라는 단어의 의미가 정말 미묘합니다. 뭔가 옳지 않은 것을 옳게 교정한다는 것인데, '올바바름'의 기준이 뭐고 그걸 누가 판단하는 걸까요? 실제로 저 운동으로 여러 관습적인 차별 표현들이 많이 수정돼서 좋은 영향도 있었습니다. 한편 선한 의도와 순수한 형식이 그 사용과 배치에 있어서 얼마든지 끔찍해질 수 있고, 우리가 목격한 PC운동의 병적인 측면은 바로 그런 현상인 것 같습니다.

  • @chaewonlim2964
    @chaewonlim2964 3 года назад +4

    선생님 제발 후원계좌좀 열어주세요 최저임금받고 사는 대부분의 사람 중 한명이지만 커피값이라도 보태드리고싶습니다.

  • @cjscjs3204
    @cjscjs3204 3 года назад +1

    이분 비염은 못고치시나요

  • @양익서-g8j
    @양익서-g8j 8 месяцев назад +1

    사실 상대방이 벽처럼 느껴지는 경험을 했다면 무시와 통제도 한계가 있다는걸 알거임.그래서 독재 통제가 부질없다는 거임.

  • @hba3144
    @hba3144 3 года назад

    다 좋은데 내가 비염이라 그런지 중간에 코 만지시는 게 너무 신경 쓰인다.... 지젝도 비염 있으시려나?

    • @dongwonkim5043
      @dongwonkim5043 3 года назад

      투렛 중후군이셔서 틱이에요

    • @skjcast
      @skjcast  3 года назад +8

      뚜렛 증후군 혹은 틱입니다. 틱의 원인은 도파민의 과다한 분비로 알려져 있습니다. 도파민은 목표 추구 행동을 추동합니다. 이게 지젝의 엄청난 작업량과 언어 능력의 비밀일 수도 있습니다. 지젝의 저 바보같은 코 만지기야말로 지젝의 천재성의 근원인 겁니다. 대상의 결함이 대상을 구성하는 근본 요소라는 지젝 자신의 주장과 너무나도 잘 들어맞죠. 그야말로 지젝스러운 버릇입니다..

  • @JK-ii1nw
    @JK-ii1nw 3 года назад +1

    지젝 마른 거 보소 ㅋㅋ

  • @한희수-l8e
    @한희수-l8e Год назад

    요즘은 특이하기만 하면 대접을 받는 세상이다. 뭐 이러 ㄴ애들 같은 소리를 철학이라고.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