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인은 오늘날 개념이다. 당시 청소년 이상은 다 군역이 있다. 전쟁나면 말할 것도 없이 싸우러 나가야지. 힘없는 억울한 민간인에 들어가 보호받고 싶니. 가족 안지킬거야? 고을 지켜야지. 힘없고 억울한 민간인을 누가 지켜주나. 지금도 형 동생 조카들이 가족과 나라와 자유를 지키고 있잖아. 조선시대에는 양반이 민간인 지켜줘야 하나. 안지켜주면 나쁜놈이고 백성은 피해자인가. 어디서 힘없고 억울한 민간인 백성 타령이 나왔는지 정말 모르겠다.
저쯤되면 '피해보는 힘없는 민간인' '권력욕에 찌들어서 백성들의 목숨만 축내는 귀족' 이딴 프레임은 집어치우는게 좋습니다 시대가 변화하면서 사회가 굉장히 복잡하게 돌아가며 민주적인 요소 역시 공존하고 있는 것이 조선 사회입니다 실제로 청을 가장 배척했던 계층이 일반 서민계층이였고 오히려 관리층이 현실적인 판단을 많이 했죠 또한 임란 직전에도 관리나 왕은 전쟁준비를 하고 싶어도 일반 서민계층의 반대가 극심해서 제대로 못했습니다
오해가 있는게 중립외교는 사실 광해군의 작품은 아닙니다 이미 선조때부터 꾸준히 누르하치의 건주여진과 교류하며 상당량의 정보를 분석해온 바 있습니다 광해군은 그걸 이어받은 것이고 운이 좋았던게 누르하치는 조선에 대해 호의적이기도 했죠 후에 집권한 인조도 알려진것처럼 그걸 뒤엎은게 아니라 꾸준히 이어서 했습니다 오히려 광해군처럼 파병도 안하고 심지어 후금에 대해 칭신(신하를 칭함)도 가능하다는 입장이었죠 이렇게 이어온 분위기는 누르하치가 죽고 홍타지가 집권한 후 급변합니다. 그나마 조선과 명의 관계를 소극적으로나마 인정해줬던 누르하치와는 달리 홍타지는 중립을 포기하고 청을 따르라고 강요를 해온 것입니다 여기에 인조가 엿먹어를 해버렸고 그결과 터진게 병자호란이죠 광해군의 중립외교가 많이 포장이 되는데 실상은 조선의 최정예 1만 군사를 날려버린 뼈아픈 대가를 치룬 것이죠 그리고 광해군은 뼈아팠던게 당시 지지세력이자 집권세력인 북인들이 광해군을 전혀 지원해주지 못했습니다 광해군이 고민하던 사르후 파병을 압박해서 쐐기를 박은것도 북인 집권당들이었죠 서인이나 남인들에 비해 외교에 있어서 북인정권은 전형적인 꼴통 대명사대주의자들이었죠 이로인해 광해군은 북인들을 불신하기 시작했고 이로인한 정권의 균열로인해 인조반정때 허망하게 실각해버렸죠
@@안녕-p9d 당시 명이 약하다는 컨센서스는 별로 없었음. 명이 모든 면에서 앞섰음 문화,정치,경제,군사,외교 모두 앞서는 시대였음. 지금으로 치면 미국과 중국의 갭차이가 딱 맞음. 야만스러운 여진(중화인민공화국)이 우리의 혈맹이자 뛰어난 문명국가인 명(미국)을 이길거라고 누가 생각했겠음. 그러니까 판세를 읽는 정보가 중요한거
설령 중국이 미국을 능가하는 상황이 오더라도 민주주의를 포기하고 공산주의로 쉽게 갈아탈 수 있을까 (민주화 운동, 홍콩, 대만만 봐도). 당시 대명사대는 문명적 가치를 지향하고 지지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당시 조정이 정보에 어두울 거라고 단정하는 것도 오늘날 시각이다. 구한말 국제정세에 어두웠던 것이 동아시아 정세에 그대로 투영되면 곤란하다. 또 그당시는 어디나 누구나 걷거나 말타고 다녔다. 중국이나 여진이나 조선이나 서로를 이해하는 정도는 별반 차이가 없었을 것이다.
근데 광해군은 전란의 상처가 아물지 않았던 시기에 무리하게 창덕궁 중건이후 궁궐공사 (지금은 존재하지않은 인경궁과 자수궁 창건, 이복동생 정원군의 집을 강제로 빼앗아 경희궁 창건 등 무리하게 궁궐공사 추진)를 감행하여 백성들 민생을 파탄시켰던점이 있기 때문에 무작정 광해군을 성군이라 칭하는건 옳지않은것같습니다..
명이 청보다 강하다는 말은 헛소리입니다. 명이 쓰던 화포는 성안에서 다 갖춰놓고 수비할때나 강력했지, 필드에서 붙을때는 아무것도 못했습니다. 청나라 군대가 딱 하나, 산해관을 점령하지 못했다는것 뿐인데 (그 안에 틀어박혀 있을 뿐, 역습은 하지도 못함) 이게 왜 명이 청보다 강하다는 말이 되는지 이해를 못 하겠네요. 결국 우회해서 수도 허무하게 뺏겨버리는데.
금주공방전때 지원군으로 왔던 오양이 야전에서 홍이포로 도르곤에게 큰피해를 준적있었고 영금대전때는 금주성에 지원갔던 만계의 요동기병과 망굴타이의 기병이 맞붙었는데 서로 일방적으로 밀리는건 없었던 전투였고 송산전투때도 도르곤과 지르갈랑이 홍승주가 이끄는 홍군에게 진적이 있으며 기사의변때는 오히려 손승종,조대수등에게 아민이(정묘호란사령관) 수성에 실패하는 모습도 보인적이 있는데 도대체 무엇을 근거로 그리 말씀하시는거죠? 괜찮은 지휘관과 가병이 동원됬을때는 명도 잘싸웠습니다
누구도 역사를 100% 정확히 알 수 없기 때문에 결과론적으로 평가할 수밖에 없죠 과정까지 명쾌하면 뭐 더할 나위 없겠지만 그 당시 상황을 한치의 오차없이 다 나열할 수 있을까요? 설사 알아낸다고 하더라도 진정한 광해군의 속내를 누가 다 알 수 있을까요? 이렇게 과정까지 파고들면 끝도 없고 100% 팩트는 알 수가 없습니다 때문에 그나마 결과론적으로 다가가는 게 그나마 합리적인거죠
@@아스크림-n3m 저기여;; 당시 금나라가 송나라를 어떻게 눌렀는지는 알고 하시는거에요? 물론 악비나 한세충 등이 분전하고 있었기는 했지만 전선 자체에서 밀리는 형국이라 송나라가 사정해서 화의를 맺은 거에요;; 귀주대첩 당시의 요나라와는 차원이 다를 정도로 강했다고요... 여진족시절에 정벌했다가 수만명이 죽었는데 다시 전쟁일으켜서 버틸 수나 있을거라고 생각해요?
전쟁만은 안된다. 이게 정답이죠... 전쟁이 나면 피해를 보는건 결국 힘없는 민간인들이거든요...
@MC정복 ??????????
@MC정복 주제 넘기기 있기 없기
@MC정복 ?
민간인은 오늘날 개념이다. 당시 청소년 이상은 다 군역이 있다. 전쟁나면 말할 것도 없이 싸우러 나가야지. 힘없는 억울한 민간인에 들어가 보호받고 싶니. 가족 안지킬거야? 고을 지켜야지. 힘없고 억울한 민간인을 누가 지켜주나. 지금도 형 동생 조카들이 가족과 나라와 자유를 지키고 있잖아. 조선시대에는 양반이 민간인 지켜줘야 하나. 안지켜주면 나쁜놈이고 백성은 피해자인가. 어디서 힘없고 억울한 민간인 백성 타령이 나왔는지 정말 모르겠다.
저쯤되면 '피해보는 힘없는 민간인' '권력욕에 찌들어서 백성들의 목숨만 축내는 귀족' 이딴 프레임은 집어치우는게 좋습니다 시대가 변화하면서 사회가 굉장히 복잡하게 돌아가며 민주적인 요소 역시 공존하고 있는 것이 조선 사회입니다
실제로 청을 가장 배척했던 계층이 일반 서민계층이였고 오히려 관리층이 현실적인 판단을 많이 했죠 또한 임란 직전에도 관리나 왕은 전쟁준비를 하고 싶어도 일반 서민계층의 반대가 극심해서 제대로 못했습니다
광해군이 지금이라도 재평가되어서 다행 ㅇㅅㅇ
재평가된건아님. 다른해석을 보여주는거지
재평가는 시작한지 거의 100년쯤됫죠
광해군 실상 알고나면 땅을 치고 후회할걸?
@@Min_JK-x5i 왜 땅을 치냐 ㅋㅋ
@@Min_JK-x5i 이미 다 실상 알고있지 않나? 공이 있으면 과도 있는법이고 이때까지 과가 많이 부각되고 공이 가려졌으니 그 공을 조명하고 있을뿐임.
역사는 시대가 변함에 따라 그 해석또한 달라지는것이니 새로운 시각에서의 해석 또한 의미있다고 생각해요
@@Jdoskw-i2s '있는 사실을 다르게 해석하고 이해하는것'과 '있는 사실을 각색하는것'은 다릅니다.
이게 새로운 해석은 왜 왜곡이 아닌가 하는거에 대한 답일거라 생각해요
@@Jdoskw-i2s 뭐, 그렇게 생각하신다는데 그거에 대해 말 덧붙일 생각은 없습니다 생각이 같아도 달라도 그 자체를 존중하는 편이라서요
@@seomelong 근데 분명히 광해군이 중립적이지 못한 행동도 많이 하였고 절대 무시할수준이 아닌데(거의 선전포고까지 했어요 아니 실제로 전쟁했고) 그런 내용은 싸그리 빼고 말하는건 문제가 되는거 같습니다
@@남호양-m5z 그건 문제가 되는거 맞죠
여태경 역사는 고정된게아니야 무식한놈아 그래서 배울 의미가 있는거다
오해가 있는게 중립외교는 사실 광해군의 작품은 아닙니다
이미 선조때부터 꾸준히 누르하치의 건주여진과 교류하며
상당량의 정보를 분석해온 바 있습니다 광해군은 그걸 이어받은 것이고 운이 좋았던게 누르하치는 조선에 대해 호의적이기도 했죠 후에 집권한 인조도 알려진것처럼 그걸 뒤엎은게 아니라 꾸준히 이어서 했습니다 오히려 광해군처럼 파병도 안하고 심지어 후금에 대해 칭신(신하를 칭함)도 가능하다는 입장이었죠 이렇게 이어온 분위기는 누르하치가 죽고 홍타지가 집권한 후 급변합니다. 그나마 조선과 명의 관계를 소극적으로나마 인정해줬던 누르하치와는 달리 홍타지는 중립을 포기하고 청을 따르라고 강요를 해온 것입니다
여기에 인조가 엿먹어를 해버렸고 그결과 터진게 병자호란이죠
광해군의 중립외교가 많이 포장이 되는데 실상은 조선의 최정예 1만 군사를 날려버린 뼈아픈 대가를 치룬 것이죠
그리고 광해군은 뼈아팠던게 당시 지지세력이자 집권세력인 북인들이 광해군을 전혀 지원해주지 못했습니다
광해군이 고민하던 사르후 파병을 압박해서 쐐기를 박은것도 북인 집권당들이었죠
서인이나 남인들에 비해 외교에 있어서 북인정권은 전형적인 꼴통 대명사대주의자들이었죠 이로인해 광해군은 북인들을 불신하기 시작했고 이로인한 정권의 균열로인해 인조반정때 허망하게 실각해버렸죠
야임마. 청군이 두번이나 쳐들어와서 조선땅이 기마병에 짓밟히고 청태종한테 대가리 9번씩 조아리는것보단 차라리 광해군처럼 남의땅으로 원정나가서 1만 병사 잃고오는게 훨씬 더 나아. 비하할걸 비하해라
광해가 폐모살제에 실리외교 노선을 펼치다 정치적으로 반정 빌미 제공했는데, 아무리 폭군기질이 있었어도 이괄의난이나 두번의호란 삼전도굴욕 겪으면서 궁버리고 도망만 다니던 멍청한 인조보다는 더 강단있고 현명해보임.
근데 당시 중신들이 이해가 되는게
이걸 현대로 바꿔 생각한다면 한미 동맹 상황에서 중국이 막강하게 강하다는 이유로 동맹을 함부러 파괴 할 수 있을까? 생각이 듭니다
당시 신하들도 명이 청보다 약하다는 것과 승기가 없다는걸 알고 있었음에도 명만 주구장창 빨아대고 차라리 명과 같이 죽자고도 했음 (병신들) 지금은 우린 중국이 뭔짓을 해도 미국에겐 안되는걸 알고 있고
@@안녕-p9d 당시 명이 약하다는 컨센서스는 별로 없었음. 명이 모든 면에서 앞섰음 문화,정치,경제,군사,외교 모두 앞서는 시대였음. 지금으로 치면 미국과 중국의 갭차이가 딱 맞음. 야만스러운 여진(중화인민공화국)이 우리의 혈맹이자 뛰어난 문명국가인 명(미국)을 이길거라고 누가 생각했겠음. 그러니까 판세를 읽는 정보가 중요한거
@@안녕-p9d 방구석에 쳐박혀 있는 신하들이 퍽이나 명 청 상황 잘도 꿰고 있겠다 ㅋㅋ
@@5kjh-z6x 조선입장에서 이자성이 반란으로 명나라 씹창낼줄 아무도몰랐음 자기나라 반란도 파악못하는데 남의나라 반란을 어찌알고있겠음 ㅋㅋㅋㅋ사실 이렇게 말해도 역사를 미디어로만 배운사람들은 못알아먹음
설령 중국이 미국을 능가하는 상황이 오더라도 민주주의를 포기하고 공산주의로 쉽게 갈아탈 수 있을까 (민주화 운동, 홍콩, 대만만 봐도). 당시 대명사대는 문명적 가치를 지향하고 지지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당시 조정이 정보에 어두울 거라고 단정하는 것도 오늘날 시각이다. 구한말 국제정세에 어두웠던 것이 동아시아 정세에 그대로 투영되면 곤란하다. 또 그당시는 어디나 누구나 걷거나 말타고 다녔다. 중국이나 여진이나 조선이나 서로를 이해하는 정도는 별반 차이가 없었을 것이다.
다른건모르겠고 중립외교에 대동법 칭찬해~
사람들이 역사를 평가할때 가장크게하는 오류가 자신들은 절대적위치라는 사실을 모르기때문임 결과를 알고 역사를 문제집 정답맞추듯 이렇게 했어야지라고 생각하는건 수준낮은생각임
진짜 멋진 말
설쌤 항상 감사합니다♡♡♡
여기 6:30 에 나오는 노래 뭔지 아시는분 ㅠㅠ
약한 국가는 괴롭힘을 당한다. 그런 국가가 전쟁을 피하면 필히 망한다. 몽고도 부족에서 출발해 전세계를 제패했다. 사람을 구할때도 골든타임 놓치고 허둥되는게 제일 멍청한 행동이다.
근데 광해군은 전란의 상처가 아물지 않았던 시기에 무리하게 창덕궁 중건이후 궁궐공사 (지금은 존재하지않은 인경궁과 자수궁 창건, 이복동생 정원군의 집을 강제로 빼앗아 경희궁 창건 등 무리하게 궁궐공사 추진)를 감행하여 백성들 민생을 파탄시켰던점이 있기 때문에 무작정 광해군을 성군이라 칭하는건 옳지않은것같습니다..
신립은 여진을 이기는데, 여진은 왜를 이기고, 신립은 왜 한테 깨지고
거의 스타 밸런스 인가?
새총이 새 사냥엔 효과적이지만...
물고기 사냥엔 쓸모없는 물건이죠~ㅋㅋㅋ
적이 바뀌면 전술,전략도 바뀌어야 하는데...ㅋ
다방면에서 잘하는 사람이 드무니 영웅 이라 하나 봅니다!!
광해군의 궁궐병은????
범죄의 종합 선물세트 이승연이는 왜 아직도 브라운관에 나오는가...뻔뻔함에 치가 떨린다..일반인이었다면 상상도 못할 짓을 고개 빳빳히 들고 다니는거 보면 이여자도 참 대단하다..
분대장김재우가 왜 여기에....?
당연히 중립외교해야지 주제도 모르고 설쳤다가 삼배구고두례 하는거야 세계사에서 유래가 없는 치욕의 역사
고종시대때 친일을 한 행위를 광해군이 했다고 생각하면 신하들도 이해가 감..
명이 청보다 강하다는 말은 헛소리입니다.
명이 쓰던 화포는 성안에서 다 갖춰놓고 수비할때나 강력했지,
필드에서 붙을때는 아무것도 못했습니다.
청나라 군대가 딱 하나, 산해관을 점령하지 못했다는것 뿐인데
(그 안에 틀어박혀 있을 뿐, 역습은 하지도 못함)
이게 왜 명이 청보다 강하다는 말이 되는지 이해를 못 하겠네요.
결국 우회해서 수도 허무하게 뺏겨버리는데.
별로 할말이없는데 이딴논리면 ㅋㅋㅋㅋ명이강하냐 청이강하냐의 문제가아니라 우린 21세기에 살고 청나라가 중국역대 왕조중 가장강하다는 사실을 알지만 조선은 알았냐는거지 조선입장에서 이자성이 반란일으켜서 명나라 멸망시킬뻔한걸 알고나있었겠냐
@@곰곰고고곰 이미 한참전부터 북방 기마민족들에 대한 조사가 다 되고 있었는데 저렇게 클줄 아무도 몰랐다는건 헛소리죠.
명나라가 왜 산해관을 만들었겠슈.
@@Propus-rk9pz저때는 아직 후금이 꼬꼬마 시절이였어요 청이 명보다 강하다는걸 확신하게 되는건 송산전투 이후
금주공방전때 지원군으로 왔던 오양이 야전에서 홍이포로 도르곤에게 큰피해를 준적있었고 영금대전때는 금주성에 지원갔던 만계의 요동기병과 망굴타이의 기병이 맞붙었는데 서로 일방적으로 밀리는건 없었던 전투였고 송산전투때도 도르곤과 지르갈랑이 홍승주가 이끄는 홍군에게 진적이 있으며 기사의변때는 오히려 손승종,조대수등에게 아민이(정묘호란사령관) 수성에 실패하는 모습도 보인적이 있는데 도대체 무엇을 근거로 그리 말씀하시는거죠? 괜찮은 지휘관과 가병이 동원됬을때는 명도 잘싸웠습니다
그 명의 화포로 영원성에서 갈려나간게 누구더라....?
실제 광해군이 중립외교를 펼쳤단건 논란이 많습니다. 사르후에 병사를 파견한것도 광해군이 자행했기 때문이죠
청은 멸망하기 전까지 명을 국력으로 압도한적은 없었습니다. 너무 결과론적으로 광해군과 조선을 평가하는건 자제해야하지 않을까요
원도.청도 국력으론 압도하진 못했지만 전투력에선 압도했음...
@@roselavida1147 원과 청을 동일시하기 힘든게 몽골은 송 군사력을 압도한게 맞지만 청은 명이 망할때까지 산해관을 넘지못했습니다
뭐 청이 명을 넘지 못해도 조선을 침략하는건 충분히 가능했고 인조때 벌어졌던 만큼 신중할 필요가 차고 넘쳤죠
@@pqjbrhdj 맞습니다. 다만 정묘호란이 임진왜란 전후 20년에 발발한 시대상을 감안할 필요가 있습니다
누구도 역사를 100% 정확히 알 수 없기 때문에 결과론적으로 평가할 수밖에 없죠
과정까지 명쾌하면 뭐 더할 나위 없겠지만 그 당시 상황을 한치의 오차없이 다 나열할 수 있을까요? 설사 알아낸다고 하더라도 진정한 광해군의 속내를 누가 다 알 수 있을까요? 이렇게 과정까지 파고들면 끝도 없고 100% 팩트는 알 수가 없습니다
때문에 그나마 결과론적으로 다가가는 게 그나마 합리적인거죠
3일 뒤 시험에 나오는거...
광해군은 재평가란 명목으로 너무 미화된게 팩트. 인조가 암군이라고 광해군이 성군이되는건 아님. 둘다 노답
아빠 반만큼도 정치못함
진짜 쌉ㅇㅈ 그냥 선조의 하위호환임 정치도 ㅈㄴ못하고
안경 고쳐쓰는거 킹받네
광해가 중립외교를 하던말던 ㅈ도 신경안썼음 청은
명나라는 후금을 미리 공격해놓지
ruclips.net/video/9iq7zbkRfo4/видео.html 이걸 보면 더 현실적인 동아시아 상황과 중립외교가 얼마나 허상적인지 알게 됩니다.(학원강사보다 전문적인 박사님이 더 낫지.)
엄준식은 살아있다
이승연이 저기 쳐 앉아있네
중립을 위한 고려에 있는 3가지 한국에 없는 3가지
김부식이야 말로 재평가 받아야 하는거 아닌가 어데 말도 안되는 묘청이 도술을 써서 금을 정벌한다고? 국경에서 바로 개 털리고 인조 꼴났다
ㄴㄴ고려시대는 조선이랑 다르게
군사 국방 제대로 갖춰져있었음
오죽하면 거란 여진 몽골 일본
네개 나라가 쳐들어왔었는데도
멸망 안했겠냐ㅋㅋ
신채호 조선제일대사건 사료보면
그당시 김부식이 아니라 묘청이 옳았다고 저술했는데 괜히 그랬겠냐ㅋㅋ
@@아스크림-n3m 저기여;; 당시 금나라가 송나라를 어떻게 눌렀는지는 알고 하시는거에요? 물론 악비나 한세충 등이 분전하고 있었기는 했지만 전선 자체에서 밀리는 형국이라 송나라가 사정해서 화의를 맺은 거에요;; 귀주대첩 당시의 요나라와는 차원이 다를 정도로 강했다고요... 여진족시절에 정벌했다가 수만명이 죽었는데 다시 전쟁일으켜서 버틸 수나 있을거라고 생각해요?
@@아스크림-n3m 여진은 빼라 ㅋㅋ 걍 깔짝대던 애들이고 걍 국지전 수준 아님? 그리고 여진은 윤관이 키워준거나 다름없으니 뭐 ㅡㅡ
윤석열 보고있나?
낄수있는 사람이 나니예요 ㅎㅎ
여진족 이순신 일등공신 소현세자 광해 모두가 고구려인이 조상이다
명나라에 인정 받아야 왕이 되는 조선 수준.
일본은 전혀 아니였는데. 일본은 중국에 사대 안했음.
그리고도 중국과 싸웠지.
지금도 un 승인국이니 있듯이 전근대 아시아 국제질서죠
그당시 상황을 전혀 이해못하는 사람의 수준과 비슷하네요.
그 당시 명의 왕 책봉은 형식적인 수준이었습니다. 솔직히 현대의 한국과 일본이 미국에게 하는 외교가 당시보다 더 사대관계입니다.^^
정보) 일본은 사대를 하고싶다고 친서를 무지막지하게 보냈음에도 수준낮은 것들이라며 사대 받아주지도않았다
아이 이 오버쟁이 계속 나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