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몰아보기 대조영 발해 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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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Опубликовано: 24 сен 2024
  • #고려 #고리 #대륙고려 #대륙고리 #해상왕국 #발해의 위치

Комментарии • 178

  • @On_horiz
    @On_horiz 6 месяцев назад +58

    어리석은 사람도 부정하기 힘든 구글지도를 통한 명시적인 설명이며,
    지구과학적, 천체물리학적인 증거물들을 모아서 가시적으로 잘 설명한 영상이라 감격할 수 밖에 없습니다.
    마음이야 이런 자료들을 들고 가서 보여주더라도 서울대 졸업자들도 지도이야기 해도 까먹어서 기억 안 난다 이러니 평범한 사람들은 어떨지 모두 예측가능하실겁니다.
    이런 영상이 많아야 지도를 까먹고 문자를 보아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라도 쉬이 이해가능할 것인데, 있으면 좋겠다만 생각하던 영상을 만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macros71
    @macros71 6 месяцев назад +33

    사실임을 넘어 가슴이 웅장해지는 느낌이네요. 우리의 이렇게 거대하고 멋진 역사를 왜 스스로 왜곡하고 없애려하는 저 강단사학자, 그리고 재야사학자들은 목소리를 내고 있는지 정말 이해할 수 없습니다. 진심으로 이런 영상 정리해서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최근 대륙의 우리 역사를 알게되어, 특히나 고리에 대해 궁금한게 많았는데, 너무도 제게는 소중한 자료입니다.

  • @EAST2MABBK
    @EAST2MABBK 3 месяца назад +6

    왕건의 고리때도 관측되고
    주몽의 고구리때도 관측한 노인성이니 대륙의 충주가 맞네요. 대륙 충주의 남쪽은 끝없는 지평선이 보이는 곳이겠네요. 광활한 영토를 가진 우리의 휼륭한 선조들....
    이성계의 조선은 제외....

  • @EAST2MABBK
    @EAST2MABBK 3 месяца назад +5

    자금성이 고려의 서경 맞죠.
    서긍의 고려도경의 지명들을 따라가면 도착지가 자금성이죠.
    또 고려왕은 자색옷을 입는다는 기록이 있죠. 그래서 화하족은 자금성 이라고 부른겁니다.
    "자색옷을 입은 임금이 있는 성"

  • @신웅식-h8f
    @신웅식-h8f 6 месяцев назад +35

    군대 동원 숫자만 봐도.. 식민사관의 고려는 조선보다 영토도 훨씬 작은데 무슨 좁은 땅덩어리 나라에 호족들도 겁나 많고..
    여요전쟁도 그렇고 별무반도 그렇고 수십만을 동원하는게 조선보다 훨씬 수월하던 고려..
    인구수. 영토 모든것이 다 조선보다 광대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인데..
    이래도 식민사관을 추종하는 자들이 진정 사이비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식민사관에 빠진 애들의 웃긴 모순점이 자세하게 설명하면 그 당시에 그게 가능하냐? 이러고
    또 대략적으로 설명하면 뇌피셜이라 그러고. 노답들...
    항상 역사를 자세하고 제대로된 역사를 보여주셔서 감사합니다.

    • @SamuelSmith1221
      @SamuelSmith1221 5 месяцев назад +7

      그러니 식민사관이 얼마나 엉터리인지 알 수있죠.. 조선이 번성할 때도 750만호.. 고려는 2천만호.. 고려가 1억 인구 정도였다는 건데 한반도에선 절대 불가능하죠..

    • @내취저
      @내취저 5 месяцев назад +2

      맞음. 어떻게 별무반이랑 강화에서 오랫동안 버텼는지 조선시대때 그정도 버텼으면 재정 박살났음. 절대불가능...

    • @박종민-e7z
      @박종민-e7z 2 месяца назад

      한반도에 말을 키울데가 없는데 명나라에 말을 몇만필씩 보냈다는 기록이 나오죠.
      이걸 설명하려고 하니 제주도에서 말을 엄청 키우고 한라산 숲을 베어내고 초지를 조성했다느니 ㅎㅎㅎ 여진족에게 말을 사서 명나라에 말을 보냈다느니 하는 소리가 나오죠 ㅎㅎ 명나라가 직접사지 명나라는 병신인가? ㅎㅎㅎ

  • @im991135
    @im991135 4 месяца назад +8

    저는 서경의 위치를 베이징...개경의 위치를 천진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천진을 보면 지금도 남개대학이라는 지명이 남아있고(개경의 남쪽 대학) 빈랑(벽란도)이라는 해안가 지명이 남아있습니다. 지리적으로 개경은 물길을 통해 바다로 연결되는 교통의 요지였고 무역항으로서 조건을 갖추고 있었죠. 서경을 단단히 지키면 수도로서 훌륭한 입지였습니다.

    • @k천사-i4n
      @k천사-i4n 2 месяца назад

      절대공감합니다

  • @인생대학당
    @인생대학당 6 месяцев назад +38

    진짜 역사를 보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 @EAST2MABBK
    @EAST2MABBK 3 месяца назад +4

    서경에 황성을 쌓았다
    서쪽 수도에 황성을 쌓았다
    21년동안 30만명이상 동원
    지금으로 말하면 미국같은 나라가 고려네요.
    대단한 우리선조들입니다.

    • @EAST2MABBK
      @EAST2MABBK 3 месяца назад

      고려는 부국강국

  • @문기강-v2i
    @문기강-v2i 3 месяца назад +5

    발해가 강성할 때 신라는 안남(=베트남) 지경에 치우쳐 있다가 고려에 병합되었다는 기록과 만주의 길림이 신라 땅이라는 기록이 만주원류고에 나옵니다. 이는 베트남 지경까지가 고려 땅이었다는 것이고 신라 땅을 고려가 차지했으니 만주도 고려 땅이었다는 것이니 이 방송의 고려 지도가 이들 기록과 부합합니다.

    • @뿌에엥-i4d
      @뿌에엥-i4d 2 месяца назад +1

      가야가 남방계국가라면 가능한 소리이죠

  • @정도령-h8z
    @정도령-h8z 6 месяцев назад +27

    주몽은 북부여 6세 단군 고무서의 딸 소서노와 결혼하여 사위가 되었으며, 아들 없는 단군 고무서 붕어 후 대통을 이어 즉위하였습니다. 주몽의 생일은 임인년(기원전 79년) 5월 5일이며, 고구려 건국은 계해년(기원전 58년) 10월입니다. 그리고 발해는 원래 바다의 이름으로, 당나라에서 제멋대로 부른 것을 국명으로 삼는 것은 말이 안됩니다. 올바른 나라 이름은 대진(大震)입니다. 고씨가 세운 구려 '고구려 ', 대씨가 세운 진(동방) '대진'

    • @무쵸-g5f
      @무쵸-g5f 2 месяца назад

      우리 교과서부터
      대진이라 표시하세요
      애 중국식으로
      부릅니까

  • @ernieelseungsu
    @ernieelseungsu 6 месяцев назад +22

    남경에서 일어난 홍건적이 한반도의 개경까지 쳐들어왔다는건 지금 생각해보면 진짜 말도 안되는 코미디임 상식적으로 불가능함
    그나저나 이성계는 한번 물리친 홍건적(명나라)을 왜 그렇게 무서워 했을까...

    • @wyntfix
      @wyntfix 6 месяцев назад +1

      무섭기보다는 지겨웠을지도...

    • @hanhan4980
      @hanhan4980 6 месяцев назад

      한국사는 일제와 강단사학자들이 만든 코메디 소설 지금도
      40년동안 세계 최강 몽고군도 못들어 간다는 강화도를 도적들은 점령했다
      강화도 비장 왕동철이 적을 몰살시키다 고려사 원문이미지
      세가 권제39
      날짜 | 1361년 12월 30일 (음)
      강화부(江華府)가 거짓 투항하여 홍건적에게 음식을 대접하면서 비장(裨將) 왕동첨(王同僉)이 매복시켜 두었던 군사로 이들을 몰살시키니 홍건적이 감히 그 땅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였다.

    • @SamuelSmith1221
      @SamuelSmith1221 5 месяцев назад +3

      후기에 100만 대군으로 불렸어요.. 청조 말에 태평천국의 난을 생각하시면 이해가 싶습니다..

    • @내취저
      @내취저 5 месяцев назад +1

      이성계가 이해는됨. 왜냐면 자기 명성은 이미 하늘끝인데 계속 전쟁하라고 요동에 고작 5만가지고 가서 싸우라고 하는데 그것도 탈탈 털어서 나온병력.(당시 원나라때문에 한반도안에서 군사집병을 해야하니.) 나이는 이제 20대가 아니여서 옛날같지도 않고 마음만먹으면 왕위 탈환 가능하니 ㅋㅋㅋㅋ

  • @healtube9786
    @healtube9786 6 месяцев назад +25

    5호16국 시대 같은 사료도 발견 안되는 이상한 시대 때 고구려 고려가 북경일대를 가지고 있었구나

  • @junghokim11
    @junghokim11 6 месяцев назад +33

    자금성도 고구려 고리 고려의것

    • @SamuelSmith1221
      @SamuelSmith1221 5 месяцев назад +7

      맞아요.. 치성이라고 여기 방장님이 밝히셨죠..

    • @PrettyT-rex
      @PrettyT-rex 5 месяцев назад

      자금성이 만들어질 때는 고구려는 존재하지도 않았는데 뭔 헛소리?ㅋㅋㅋㅋㅋㅋ

    • @hoonigooday2235
      @hoonigooday2235 5 месяцев назад +5

      @@PrettyT-rex자금성이 언제만들어졋는데? ㅋㅋㅋ 고구려가 그때도 존재하지 않았다고? 남의 나라와서 글쓰지말고 너네나라가서 놀아

    • @hishot1078
      @hishot1078 5 месяцев назад

      자금성이라는 게 명나라가 북경 먹고 뚝딱 나온 거임. 언제 만들어졌는지도 모름.

    • @PrettyT-rex
      @PrettyT-rex 4 месяца назад +1

      @@hoonigooday2235 자금성은 1420년에 지어졌고 고구려는 668년에 멸망했는데 먼소리임??

  • @EAST2MABBK
    @EAST2MABBK 3 месяца назад +3

    고려사ㅡ우왕때 명나라 주원장이 고려를 정벌하려고 8900척을 보냈다는데 몇명이나 될까요?
    1척에 150명이 탔다고 보면 1백 33만 5천명이나 되네요...100만명이 넘네요.
    3개로 나누어 공격했다고 하니
    육로와 바다로 공격했을 듯 하고
    심양을 직접 공격하기위해 배로는
    대략 44만5천명이 작아진 고려를 공격했다으나 고려는 혼하입구(심양으로 갈수 있는 강하구)에서 막아냈죠.
    거란과 전쟁, 몽골과 전쟁, 명나라와 전쟁 을 막아낸 고려인데 명과의 전쟁도 대첩으로 알려야 한다고 생각됩니다.

  • @여흥윤
    @여흥윤 5 месяцев назад +12

    고맙습니다 대단한 내용입니다 또 댓글을 보면 역사전문가가 이렇게 엄청나니 뱐도사관을 만든 세력이 곧 할복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 @jjyyhh610
    @jjyyhh610 6 месяцев назад +26

    좋은 영상 감사합니다
    이 강의를 어느 탐정 유트버가 싫어 합니다 ㅋ

    • @booksbogo
      @booksbogo 6 месяцев назад +19

      인생경력의 절반이상을 하사관일때 잠깐한 군대경력으로 적는 그 사람? 유사형사놀이? 국뽕을 폄하하여 한국인들을 잘나지 못하게 하는 주변협박하는 어린놈? 누군지 알거같은데요

    • @jjyyhh610
      @jjyyhh610 6 месяцев назад +6

      ​@@booksbogo ㅋㅋ

    • @jjyyhh610
      @jjyyhh610 6 месяцев назад +7

      ​@@booksbogo 아 협박도 한다는 분이 저분이었군요 이야아...

    • @booksbogo
      @booksbogo 6 месяцев назад

      ​​@@jjyyhh610 가족협박. 밤길살해협박. 저런자가 존재합니다. 잊지말고 기억하세요

    • @Dr_Sunshine91
      @Dr_Sunshine91 6 месяцев назад

      아~ 그 등신 탐정?? ㅋㅋㅋ

  • @EAST2MABBK
    @EAST2MABBK 3 месяца назад +4

    한반도 개성이 개경이 아닌것이 확실하네요.
    대륙에 개성이 있군요.

  • @qnfskqlowpz3217
    @qnfskqlowpz3217 5 месяцев назад +12

    고구려가200만이 넘는 군사력을 보유 해다고 합니다....
    (고구려 본토 땅은 중국에 있습니다.)😮😂

  • @뿐이-q1o
    @뿐이-q1o 6 месяцев назад +10

    수고하셨읍니다 감사합니다 👍

    • @Dr_Sunshine91
      @Dr_Sunshine91 6 месяцев назад +1

      "~읍니다" 가 아니고 "~습니다"로 바뀐지가 40년인가 그렇습니다.

  • @davidjeong7675
    @davidjeong7675 6 месяцев назад +20

    조선도 고려역사 지워야 했지
    세종대왕빼고 조선은 솔직히 별로였음

  • @Michelle_daisuki
    @Michelle_daisuki 6 месяцев назад +36

    고구려 건국시기 서기전 37년이 아니라고 한단고기,조선상고사,규원사화 등등... 역사서가 많습니다~~

    • @Dr_Sunshine91
      @Dr_Sunshine91 6 месяцев назад +8

      고구려는 출자 북부여로 해모수의 북부여에서 900년

    • @L_seeon
      @L_seeon 6 месяцев назад +8

      당나라신하가 멸망전 고구려를 언급할때 왕에게 고구려는 900년이라는 간언을 올린것과 광개토태왕비에 주몽으로부터 몇대손이라고 적혀있다던데 그게 삼국사기와는 맞지않음. 그렇다면 고구려에서 쓴 비문이 더 정확하다는거아닌가?

    • @SamuelSmith1221
      @SamuelSmith1221 5 месяцев назад +15

      조선이 역사왜곡하면서 화하족 보다 앞선 역사를 다 짤라버림.. 이거 예전 공부 깊으신 어르신들은 알고있었어요..

    • @somebodyhelpmeno
      @somebodyhelpmeno 5 месяцев назад

      환단고기는 역사서가 아니죠 위서입니다

    • @Michelle_daisuki
      @Michelle_daisuki 5 месяцев назад

      @@somebodyhelpmeno 네~ ㅈㄹ마세요~~ 강단사학자 같은 사람아~~

  • @TV-ldk
    @TV-ldk 15 дней назад +1

    영상 고맙습니다! 응원 합니다!

  • @EAST2MABBK
    @EAST2MABBK 3 месяца назад +1

    경기ㅡ왕실과 왕성을 지키기위해 설치
    방 과 리의 규모가 어떻게 되는지 알수있을까요?
    방은 수도방어 진영일까요?
    리는 수도방어 군인들이 살수 있도록 군인가족 거주지 일까요?

  • @권보-l6z
    @권보-l6z 6 месяцев назад +6

    읍루 위에 '약수'가 있었다고요 ?
    그게 어느 사서에 기록되어있는지요 ?
    부여의 '북쪽에 약수가 있다'라는 기록은 후한서 삼국지 동이전 등에 실려있습니다만...

  • @텐버거-w4l
    @텐버거-w4l 6 месяцев назад +5

    다시 정주행해도 역시 꿀잼!💙

  • @윤덕규-s8h
    @윤덕규-s8h 6 месяцев назад +35

    도대체 이성계의 조선건국에는 우리가 모르는 어떤 비밀이 숨어 있는 걸까요?

    • @리진-s3m
      @리진-s3m 6 месяцев назад +18

      저도 너무 궁금합니다. 한민족 암흑기의 시작. 결국 나라 팔아 먹은 이씨 조선 시작에는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 @강신보-c6y
      @강신보-c6y 6 месяцев назад +1

      조선왕조실록,태종실록33권 태종17년
      2월에....
      울릉도에 물소가 있나요
      한반도에 물소가 있나요 ^^
      태종실록 33권, 태종 17년 2월 5일 임술 3번째기사 1417년 명 영락(永樂) 15년
      안무사 김인우가 우산도에서 돌아와 토산물 등을 바치다
      안무사(按撫使) 김인우(金麟雨)가 우산도(于山島)에서 돌아와 토산물(土産物)인 대죽(大竹)·수우피(水牛皮)·생저(生苧)·면자(綿子)·검박목(檢樸木) 등을 바쳤다. 또 그곳의 거주민 3명을 거느리고 왔는데, 그 섬의 호수[戶]는 15요, 구(口)는 남녀를 합하여 86명이었다. 김인우가 갔다가 돌아올 때에, 두 번이나 태풍(颱風)을 만나서 겨우 살아날 수 있었다고 했다

    • @강신보-c6y
      @강신보-c6y 6 месяцев назад

      태종실록 33권, 태종 17년 2월 5일 임술 3번째기사 1417년 명 영락(永樂) 15년
      안무사 김인우가 우산도에서 돌아와 토산물 등을 바치다
      국역
      원문
      .원본 보기
      안무사(按撫使) 김인우(金麟雨)가 우산도(于山島)에서 돌아와 토산물(土産物)인 대죽(大竹)·수우피(水牛皮)·생저(生苧)·면자(綿子)·검박목(檢樸木) 등을 바쳤다. 또 그곳의 거주민 3명을 거느리고 왔는데, 그 섬의 호수[戶]는 15요, 구(口)는 남녀를 합하여 86명이었다. 김인우가 갔다가 돌아올 때에, 두 번이나 태풍(颱風)을 만나서 겨우 살아날 수 있었다고 했다

    • @강신보-c6y
      @강신보-c6y 6 месяцев назад +19

      태종실록33권 태종17년 2월에...
      안무사 김인우가 우산도에서 돌아와 토산물 등을 바쳤는데...그중에 수우피도 있었고..水牛皮수우피는 물소가죽인데 울릉도에,한반도에 물소가 있었나요 -있나요
      ...이상하죠

    • @우영우-f6f
      @우영우-f6f 6 месяцев назад

      태조이성계는고씨의구려를계승하여구려를세우신거그분께서아프리카까지영토를확장하셨고그분의아들인태종이자영락제이방원황제가대조선지구촌을통일하셨음그들은
      서양사에서도중요한인물로나옴서양사는
      가짜임황제께서는메리카인디아본차이나인
      지금미국땅에계셨음코레시대는1875년진짜일본인영국해적이만든미국에의해멸망당함
      1893년시카고만국박람회진짜주최측은
      corea중국고려가멸망당해서황제의중심국중국만쓰고미국기가숟가락얹어미합중국이된
      한국인들의진짜고향메리카인디아본차이나
      옆대륙은단지코레의일부분일뿐아마일본눔들의지들끄나풀들을동원해서메리카를못찾도록여기저기가짜유물유적지를섞어서교란시켜놓은듯지금도그릐고있음진짜선사유적지는100년임대해서덮어버리고가짜는갑자기발견한듯그런데더중요한건남의조상무덤을파헤쳐유물을훔쳐가고유적지를조작한건
      영국해적이라는걸절대잊어선안됨대조선을
      찢어여러나라로만들어대립하고전쟁하게만든것도그세력임지금미국엔토착백인과해적백인이섞여있음

  • @지천태와엑셀연습
    @지천태와엑셀연습 6 месяцев назад +7

    알타이산이 백두산이고, 조선의 수도는 경성(鏡城), 지금의 후허하우터시입니다.

  • @김도삼-z5g
    @김도삼-z5g 5 месяцев назад +8

    우리의 고대사가 거의 중국땅에 있었다는 이액;기 맞을 것 같슺니다. 자세히 연구하셔서 우리의 고대 역사를 ㅈ[대러 고쳐야 할 것이라고 봅니다. 아무튼 유리의 역사는 거의 작고 힘없고 어리석은 사람들이 모야서 살았닥는 식으로 변개를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런 것들은 거의 모두 일제가 작은 나라로, 어리석은 나라로 만들기 위해 우리의 약사를 완전히 변개했다는 것을 아직도 우리는 원래의 역사로 깆고있지를 못하니 너무나 슬프다고 하지 않을 수가 없을 것이라고 봅니다. 참으로 개탄스럽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천문기상의 기록을 토대로 찾아 보아야 할 것이라고 봅니다. 옳습니다. 우리나라의 고대사는 일제가 우리 한민족을 강점한 후에 우리 한민족을 영원히; 자기들 나라로 만들기 위해 그 민족의 웅장함을 춧소하지 않으면 안되었다고 할 것입니다. 그레서 한반도라는 작은 빈도 안으로 놀아널=ㅎ고 보니 완전히 다른 말로 그런 기록을 다 바꿀수가 없었을 것이라고 봅니다. 우리의 역사의 사실을 다시 복원하는 일을 반드시 이루어야 할 것이라고 봅니다. 우리는 너무나 엄청난 일을 당하고 말았다고 봅니다 일제가 그런 역사적인 서류를 거의 다 바꿔버렸다고 봅니다.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는 모르나, 우리의 역사를 다시 복원하는 일을 해야하지 않을까요? 반드시 다시 찾아야 할 것이라고 봅니다. 그럴려면 중국의 역사서를 기준으로 다시 한자 한자 복원해 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봅니다 과거 태초의 우리 한민족의 발흥의 역사를 살펴보면 우리 한민족은 중국 본토에 있었음이 거의 명백합니다. 고조선과 그 후의 우리의 역사를 다시 찾아야할 것이라고 봅니다. 삼국시대가 중국 본토에 있었다는 것은 사실로 드러나고 있지 않습니까? 거기서 부터 출발을 해서 우리의 역사를 다시 써야 할 것이라고 봅니다. 일제 36년은 우리 나라의 역사를 뿌리채 흔들어 놓아버린 엄청난 문제를 야기 했다고 봅니다 정말 끈질기게 찾지 않으면 우리의 역사를 도저히 다시 복원하기가 어려울 것이라고 봅니다. 그러면 누가 가장 고소해 할까요? 우리 민족의 울장함을 가장 싫어할 나라, 우리 한민족을 그라 길지않은 기간 동안에 우리 한민족의 웅장함을 변개시켜버린 나라는, 유일하게 일제밖에는 없을 것입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들이 물러간 이후 벌써 (2024 --- 1910) = 114 년이나 되어 버렸습니다. 우리의 역사를 올바른 우리의 역사를 다시 찾아야 할 것이라고 봅니다. 모든 인근의 역사책을 다 뒤져서라도 우리의 역사를 바로 세원야 할 것이라고 봅니다, 역사를 잃은 민족은 아마 죽은 역사라고 하였습니다. 맞습니다. 우리 한민적의 역사는 이미 죽어버렸습니다. 그것을 우라가 어떻게든 살려내야 할 것입니다. 중국서적을 뒤작일 수밖에는 없을 것이라고 봅니다. 그리고 인근나라의 역사서를 참고해서라도 우리의 역사를 바로 잡아야 할 것이라고 봅니다. 그것은 오로지 우리 한민족의 역할일 것이라고 봅니다. 이미 모든 것을 다 뒤바꿔놓은 일본인들을 탓해봐야 아무짝애도 씀로없는 일일 것이라고 봅니다. 그들은 얼마나 한이 맺혔으면 우리의 역사를 춧소 왜국시켰을 까요. 한없는 자신들의 영토를 삼기 위한 계략이 아니었을까요? 그런 것을 탓해야 아므짝에도 필여없는 일이고요, 이제는 우리가 다른 역사서들을 참고로 우리의 역사를 올바로 찾아가는 길 웨에[는 아것도 할 수가 없을 것이라고 봅니다. 이미 114년이 흘렀습니다. 이제라도 우리 역사를 바로 새원나가야 할 것이라고 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인근의 국가의 역사서를 참고할 수밖애는 없을 것이라고 봅니다. 반드시 다시 찾아야 할 것이라고 봅니다. (신410403)

    • @k천사-i4n
      @k천사-i4n 2 месяца назад +1

      일제가문제가아니라
      이성계란놈이 고리역사서랑 지도등등 분서갱유사건으로 역사를 왜곡하고 소중화로 들어간겁니다.
      이것을 일제가 악용하여 또다시
      식민지사관을 만든겁니다

    • @뿌에엥-i4d
      @뿌에엥-i4d 2 месяца назад

      다음에는 문단을 나눠주십시오 읽기 더 편해집니다

  • @정인수-q2o
    @정인수-q2o 5 месяцев назад +4

    일목요연하게 잘 정리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가슴이 웅장해 집니다^^

  • @undaunted3202
    @undaunted3202 Месяц назад +2

    정확하게 3면이 바다와 닿아 있군요!

  • @SamuelSmith1221
    @SamuelSmith1221 5 месяцев назад +30

    고구려 고려(고구려 후기) 발해(국호는 고려) 왕건의 고려까지 고려의 역사가 동북아의 중심임.. 그래서 거란(사실 고려라는 뜻)도 몽골(므쿠리: 고리의 원발음)도 고려의 후예를 자청한 것이고.. 거란이나 몽골도 패권을 놓고 다투기는 했어도 같은 게레이트(겨레: 장막안 or 한울타리)임을 부정한 적은 한번도 없었고 금이나 후금(청) 또한 우리와 늘 같은 겨레임을 강조했음.. 오로지 유교탈레반들만 화하의 자발적 노예를 자처했을 뿐이다.. 이는 중동에서 가장 약소국이던 유대인들이 성경을 통해 마치 중동의 주인공인냥 군것과 다름이 없다.. 화하족은 곤륜과 화산이 중심인 빈한하고 변변찮은 종족인데 서역의 문화를 먼저 받아들여 불교 쪽에서 우리에게 영향을 잠시 준거 뿐이고.. 늘 우리 문화권에 있던 노예종족인데 명을 일으킨 주원장이 서역의 배화교(명교:조로아스터교)를 등에 없고 화하족을 결집해서 천하를 통일하고 자신의 모자란 배후를 화하족의 역사왜곡 공정을 통해 동아시아 역사를 다 뜯어 고친 것이고 그것에 적극 동참한 것이 조선왕조였음.. 이제 진실이 송곳처럼 다시 가죽주머니를 뚫고 나오는 중인데.. 책보고님과 여기 방장님이 큰일에 앞장 서시어 너무도 감사합니다..

    • @내취저
      @내취저 5 месяцев назад +1

      그니까 ㅋㅋ 여기저기서 고려의 후예라고 떠들어대는데 고구려땅이 제일 넓었다봄ㅋㅋ

  • @김현석-o7x
    @김현석-o7x 9 дней назад +1

    안녕하세요? 궁금한게 있습니다. 중국나라들은 우리나라들에게 책봉할때 어떤 기준으로 책봉했을까요? 접경지일까요

  • @msrt9860
    @msrt9860 6 месяцев назад +7

    썸네일 대마도도 포함시켜주세요😊

  • @재섭김-h5k
    @재섭김-h5k 8 дней назад +1

    무인시대때 거란군과의 전쟁은 어떻게 풀이할수 있나요? 강화도까지 후퇴한건가요?

  • @테스엉아
    @테스엉아 6 месяцев назад +11

    대마도, 일본 남쪽도 한국땅으로 표시 해주세요,,

  • @yeongheo3600
    @yeongheo3600 6 месяцев назад +3

    대륙에 왕건 무덤이 잇다 하고 고려 왕건과 다르다고 하는데
    고려왕건과 다르다면 무엇 때문에 다른건지 설명을 해줄수 잇을까요? 감사합니다

  • @학림-y8u
    @학림-y8u 4 месяца назад +5

    대고려의 진실된 역사 감사합니다.

  • @강신보-c6y
    @강신보-c6y 6 месяцев назад +8

    고려의 서경은 시안 이고
    고려의 개경은 중악숭산에 위치한다고
    송사고려전 고려도경 등에 나와있습니다 개주 촉막군 이고 개성부
    입니다
    고려의 서경이 북경이다....
    이건 분명히 이닙니다

    • @Dr_Sunshine91
      @Dr_Sunshine91 6 месяцев назад +3

      지명으로 검색해 찍어봐라.
      그럼 인정해 줄께. ㅋㅋ
      난 이미 구글 맵에서 다 고려 지명과 황궁 위치, 각 지명들
      고려사에서 찾아보고 지명들 찾아놨는데???
      고려도경 바닷길 항로와 벽란정과 자금성의 위치 방위각이 딱 맞고 만수산이 북경 근처에 있고 태화문, 주작문, 어화원, 만춘정이 다 자금성에서 검색된다.

    • @강신보-c6y
      @강신보-c6y 6 месяцев назад +1

      ​中岳崧山중악숭산 이라 했잖아..
      굳이 말한다면..登封市등봉시 지역

    • @강신보-c6y
      @강신보-c6y 6 месяцев назад +1

      ​@@Dr_Sunshine91고려(高麗)는 동서의 거리가 2천리이고 남북의 거리는 5백리로서,서북쪽은 거란(契丹)과 접하니 압록강(鴨綠江)을 견고한 요새지로 삼았는데 강의 넓이는 3백보(步)이다. 고려(高麗)의 동쪽은 가는 곳마다 바닷물이 맑아 물밑이 열길 정도 보이며, 동남쪽에서는 명주(明州)가 바라보이는데 물이 모두 푸르다. [고려(高麗)]왕(王)은 개주(開州) 촉막군(蜀莫郡)에서 사는데, 이곳이 곧 개성부(開成府)이다. 큰 산을 등져 궁실(宮室)을 짓고 성벽(城壁)도 쌓으니 그 산을 신숭산(神嵩山)이라고 이름하였다.
      백성들의 거처는 모두 띠집으로서 큰 집이라야 2칸 정도이며, 기와로 이은 집은 겨우 2할 정도이다. 신라(新羅)를 동주(東州) 낙랑부(樂浪府)로 삼아 동경(東京), 백제(百濟)를 금주(金州) 금마군(金馬郡)으로 삼아 남경(南京), 평양(平壤)을 진주(鎭州)로 삼아 서경(西京)이라고 불렀는데 서경(西京)이 제일 번성하였다. 통틀어 모두 3경(京)·4부(府)·8목(牧)에 군(郡)이 118개, 현진(縣鎭)이 3백 9십개, 섬이 3천 7백개이며, 작은 도읍(郡邑)은 간혹 백호(戶) 밖에 안 되었다. 인구는 총 2백 10만명으로서 병사·백성·승려(僧侶) 등이 각각 3분의 1씩을 차지하였다. 기후는 춥고 산이 많으며 토질은 소나무나 잣나무가 [자라기에] 적합하고, 메벼(갱,秔)·기장(서,黍)·삼(마,麻)·보리(맥,麥) 등은 있어도 차조(출,秫)가 없어 멥쌀로 술을 빚었다. 잠사(蠶絲)가 적어 겸(縑) 1필에 값이 은(銀) 열냥이므로 삼베나 모시 베를 많이 입었다.

    • @강신보-c6y
      @강신보-c6y 6 месяцев назад +1

      ​@@Dr_Sunshine91지명은 이전하지만
      지형은 이동을 못해...
      1차 사료부터 무시한 북경이서경 이다
      라는 것은 한반도 고려 나, 심양지역이 서경이다 라는 사람들과 똑같은 거니까...우선 1차 사료를 알고 지명을
      확인하세요 그게 역사를 공부하는 기본적인 자세 입니다

    • @강신보-c6y
      @강신보-c6y 6 месяцев назад

      ​@@Dr_Sunshine91자금성 에다 촛점을
      두는데 ^^
      그러지 말고 「고려사신보네」페이지에 들르세요
      여기서 으르렁 거리지 말고 같이 이야기 해 봅시다 ^^

  • @김현석-o7x
    @김현석-o7x Месяц назад +2

    안녕하세요? 잘보고 있습니다, 고조선부터 연도별로 지도를 만들면 좋을 것 같습니다~

  • @nocentman
    @nocentman 6 месяцев назад +2

    지진하면 북경 인근의 탕산시(唐山市)가 갑이지..
    대대로 거란족이 인산(음산)산맥 인근을 차지하고 있었으니 초기 거란과 고려의 경계는
    상건하(桑乾河)가 영정하(永定河)에 합류되는 하북성 장자커우 시화이라이현(怀来县)이 기준이려나..

  • @happyhan608
    @happyhan608 6 месяцев назад +7

    😘👍

  • @구리의후예
    @구리의후예 3 дня назад +1

    오홋!

  • @빛나리-o5v
    @빛나리-o5v 6 месяцев назад +2

    우리의 역사가 시작되는 묘향산을 정확히 찾아야 역사 지리의 위치가 시작됩니다.....

  • @EAST2MABBK
    @EAST2MABBK 2 месяца назад +2

    천상열차분야지도
    고구리(고구려)의 것이 아닐수도 있겠네요. 고리(고려)의 것을 역성왕조 이씨 조선 이성계가 귀중하고 뛰어난 자료를 고려의 것이라 기록 못하고 고구리의 것이라 꾸민것일수도 있겠네요.
    어차피 빼앗아서 누가 받쳤다고 기록도 못하는 것이니 ...

  • @우영우-f6f
    @우영우-f6f 6 месяцев назад +3

    그한족화하족이라는것도태인대인이라는것도차이니즈맨도모두코레를가르킴지금중공화족들은그냥동남아떠돌이노숙자황인객가인그들의존재는미미했고아무것도아님

  • @hoonigooday2235
    @hoonigooday2235 5 месяцев назад +2

    고구려 백제 신라를 거쳐 고려 이렇게 역사만 따져도 14세길 지나갔고 그 같은 지역에 터전잡고 살았는데 그 지역명이 남아있는게 당연하다 생각하는게 역사학자라면 당연히 생각해야할것 아닌가요? 반도사관에 치우치면 우리나라 역사서에 설명할게 너무 없어요 대륙쪽으로 돌려야 우리나라가 삼국과 통일신라 발해 고려를 유지한 지역명이 당연히 설명될겁니다 아무리 역사를 모르는 사람이라도 그 지역에 지역명을 맘대로 바꾸지 못합니다

  • @달타냥-p3j
    @달타냥-p3j 3 месяца назад +1

    대마도도 고려땅 아닌가요?

  • @captailor
    @captailor 3 месяца назад +1

    임진왜란도 정병이 아니라......
    군역지는 장정이 ( 농민잡병 포함) 40만 일듯.
    솔직히 직업군인이 40만 이상이면, 중국도 먹을수 있는데.

  • @33sosa85
    @33sosa85 3 месяца назад +1

    책보고님꺼 인용하신거 아닌가요?

    • @JK-fi3zl
      @JK-fi3zl Месяц назад

      아이구. 요즘 역사를 연구하는 새로운 인재들이 얼마나 많은데 그런 말을 합니까? 제가 보기엔 증거로 넣으시는 고서의 내용이나 천문학 또는 지리적 계산 등이 책보고가 쓰는 다른 서적을 인용 방식과는 다른데요.

  • @코르카오
    @코르카오 6 месяцев назад +2

    이성계가 치려다 그만 둔 요동 현 요동이 아닐 수 있음 청 때 다른 이름인데 모택동이 요동이라고 이름 바꿈

  • @정재성-c1l
    @정재성-c1l Месяц назад

    척이니 칸이니 하는 것은 현대의 도량형으로 정확히 표현할수가 없습니다.

  • @EAST2MABBK
    @EAST2MABBK 2 месяца назад +1

    아리랑 노래가 언제부터 불러워진 노래일까요?
    고리(고려)때도 아리랑 노래가 있었을까요?
    이성계가 서경,개경을 포기하여 서경, 개경과 요동의 사람들이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임금;이성계)은~ 십리도 못가서 발병난다" 부른 노래가 모든 고리(고려)인들의 마음을 표현하여 조선시대 내내 불리워진것 아닐까요?

    • @JK-fi3zl
      @JK-fi3zl Месяц назад

      향가를 연구하시는 동국대 김영회 교수의 새로운 향가 해독에 의하면 아리랑은 박혁거세의 죽음을 애도하며 지어진 향가랍니다. 원하시면 김영회TV를 방문해서 동영상 몇 개를 감상해 보세요. 이 분의 연구에 따르면 김수로 왕의 구지가도 향가이며, 우리가 잘 아는 찬기파랑가도 그가 정비한 향가 해독법을 적용해 내용의 앞 뒤가 맞고 아름답게 재 해석 되었습니다.

  • @성이름-m5v1v
    @성이름-m5v1v 3 месяца назад +1

    아니 고대에 로마도 그렇고 죄다 해안선 따라서 컸는데 이집트도 그랬고 왜 고려랑 우리나라 고대사만 안된단 생각을 하는거냐 ㅋㅋㅋㅋㅋ
    동이족이 중원에서 동쪽의 민족아닙니까 ㅋㅋㅋㅋㅋㅋㅋ

  • @youseungzo1880
    @youseungzo1880 3 месяца назад

    첨단과학으로 고려를 분석해주니 노벨상 받아야 합니다

  • @신채호-d3o
    @신채호-d3o 6 месяцев назад +3

    북경이 개경이라면 그땅을 잃은 전쟁이나 기록이 왜 남아있지 않나요?

    • @hanhan4980
      @hanhan4980 6 месяцев назад +2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된 상상초월 조선의 진짜 영토 지역의 넓이가 ₩ 만리(萬里)나 됩니다
      302. 성종실록 134권, 성종 12년 10월 17일 무오 1번째기사 / 남원군 양성지가 중국이 개주에 위를 설치한다는 것에 대해 ㅡㅡㅡ우리 나라는 요수(遼水)의 동쪽 장백산(長白山)의 남쪽에 있어서 3면이 바다와 접하고 한쪽만이 육지에 연달아 있으며 지역의 넓이가 ₩ 만리(萬里)나 됩니다
      거란고려국경에 대한ㅡ 한국최초로 안문 압록 압강 이라는 역사적 지리적 과학적 근거를 알려 드리겠습니다
      세종대왕은 고려사 지리 서문에 고려는 우리역사 최대 영토ㅡ고조선ㅡ 고구려보다 큰 고려영토
      ㅡ 고려거란전쟁ㅡㅡ 고려국경 ㅡㅡ 명사 고려사에서 찾았습니다 ㅡ틀리면 의견주시면 고맙겠습나다
      안문(압록) 압강 하공진 국경 근무지ㅡ 통주 강조의 30만 대군 ㅡ흥화진 양규전쟁영웅ㅡ 귀주강감찬
      명사 ㅡ상건하의 하류가 남쪽으로 고려장을 지나다ㅡㅡ 압강 영정하 요수
      상건하(桑乾河)는 노구(盧溝)의 상원(上源)이다.ㅡㅡ 태원(太原)의 천지(天池)에서 발원하여 복류해서ㅡㅡ 삭주(朔州) 마읍(馬邑) 뇌산(雷山)의 남쪽에 이르는데, 금룡지(金龍池)라는 곳에서 솟아나서 넘쳐 흐르니 이것이 상건이다. 동쪽으로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대동(大同)의 고정교(古定橋)로 흐르며 선부(宣府) 보안주(保安州)에 이르러ㅡㅡㅡ 안문(雁門)·응주(應州)·운중(雲中)의 여러 물길이 모두 모인다. 서산(西山)을 가로지르고 완평(宛平)의 경계로 들어온다. 동남쪽으로 간주구(看舟口)에 이르러 둘로 나뉜다. 그 하나는 동쪽으로ㅡㅡㅡ 통주(通州) 고려장(高麗莊)을 거쳐 백하(白河)로 들어간다. 그 하나는 남쪽으로 패주(霸州)로 흘러 역수(易水)와 합류하고 남쪽으로 천진(天津) 정자고(丁字沽)에 이르러 조하(漕河)로 들어가니 노구하(盧溝河)라고도 하고 또는 혼하(渾河)라고도 한다
      참고 지도ㅡ경사기내지리지도에 위쪽 강가운데 상건하 표기됨 ㅡ경사는 서울 수도
      고려사ㅡㅡ 거란주(契丹主)가 분노하여 조서(詔書)를 내리기를, 흥화(興化)·통주(通州)·용주(龍州)·철주(鐵州)·곽주(郭州)·귀주(龜州) 등 6개 성을 빼앗으라고 하였다
      .안문 ㅡㅡ하공잔 국경 근무지ㅡㅡ 압록은 안문에ㅡ 하공진(河拱辰)을 안문(鴈門)에 파견하여 ___압록(鴨綠)에서 구당사(勾當使)가 되도록 하고, 낮에는 나가서 동쪽 강변을 감시하고 밤에는 내성(內城)으로 들어와 머물게 하였습니다
      통주 ㅡㅡ강조의 30만 대군ㅡ병사 30만 명을 통솔하여 ㅡ통주(通州)에 진을 치고 거란(契丹)에 대비하였다
      흥화진 ㅡㅡ양규ㅡㅡ전쟁영웅 신묘 거란주(契丹主)가 직접 보병(步兵)과 기병(騎兵) 40만 명을 거느리고 압록강(鴨綠江)을 건너 흥화진(興化鎭)을 포위하자, 양규(楊規)·이수화(李守和) 등이 굳게 지키며 항복하지 않았다
      영주(靈州)는 현종 21년(1030)에 ㅡ흥화진(興化鎭)을 승격시켜 주(州)로 삼아 방어사(防禦使)를 설치하였다
      정묘 거란(契丹)이 영주성(寧州城)을 공격하였으나, 이기지 못하고 물러갔다
      .
      귀주(구주)ㅡㅡ강감찬 2월 기축 초하루 거란군[丹兵]이 귀주(龜州)를 지나가는데, 강감찬(姜邯贊) 등이 맞아 싸워 크게 무찔러서 살아 돌아간 자가 겨우 수천 명이었다
      세종대왕의 고려사 ㅡ지리 서문 ㅡ우리나라[東國] 지리(地理)의 융성함이 여기서 극치를 이루었다.
      10도는 첫째는 관내(關內), 둘째는 중원(中原), 셋째는 하남(河南), 넷째는 강남(江南), 다섯째는 영남(嶺南), 여섯째는 영동(嶺東), 일곱째는 산남(山南), 여덟째는 해양(海陽), 아홉째는 삭방(朔方), 열 번째는 패서(浿西)이었다. 관할하는 주군(州郡)은 모두 580여
      서북은 당(唐) 이래로 압록(鴨綠)을 한계로 삼았고, 동북은 선춘령(先春嶺)을 경계로 삼았다.
      압록은 안문에ㅡ 하공진(河拱辰)을 안문(鴈門)에 파견하여 _압록(鴨綠)에서 구당사(勾當使)가 되도록 하고,

      이 자료는 학생들에게 역사의 잔실를 알리고자 명사와 고려사를 검색하여 복사해 놓은 것입니다
      복사해서 검색하면 더 자세히 알고 우리는 찬란하고 위대한 코리아 국민이라는 자긍심을 가지세요
      ㅡ역사상 최대강국 몽고와의 전쟁애서 73전55승 이겨습니다 ㅡ출처 나무위키 ㅡ여몽전쟁
      산서지리지도ㅡㅡ평양부 북경 해주 예성 포주 대동 곽주 마읍 삭주 심주(강화현) 등 등 이 지도안에 지명이 있습니다
      ㅡ산서지리지도 복사해서 검색하면 지도 나오고 클릭하면 한글로 지명이 나옵니다
      대명여지도 ㅡㅡㅡ통주와 흥화가 나옵니다
      강동 6주 압강 영정하 동쪽 6주ㅡㅡ교과서는 강남 6 주
      거란이 멸망한 곳이 고려의 북계 압강 ㅡㅡ제왕운기 ㅡㅡ鴨江에 이르렀다가 스스로 패하였구나
      지진 기록 ㅡ검색어 동경 ㅡ 동경과 서경에 동시에 발생한 건물이 무너지고 천둥소리가
      메뚜기(황충) 피해에 대한 고려사 54건 기록 검색어 황충 구글 뉴스 검색어 북경 메뚜기
      선화봉사고려도경 『선화봉사고려도경』 권3 성읍(城邑) 영토[封境] ㅡㅡ대륙고려 북경
      고려위치 ㅡㅡㅡ고려는 남쪽으로는 요해(遼海)로 막히고, ₩₩₩₩₩₩₩ 서쪽으로는 요수(遼水)와 맞닿았으며, 북쪽으로는 옛 거란 지역과 접경하였고, 동쪽으로는 금[大金]과 맞닿아있다.
      육로ㅡ고려는 우리 송(宋) 수도의 동북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연산도(燕山道)에서 육로를 거친 다음
      요수(遼水)를 건너[陸走渡遼] 동쪽으로 고려 국경까지 가는데 모두 3,790리(里)이다
      해로 ㅡ우리 조정에서 사신을 파견할 때는 항상 명주(明州)의 정해(定海)에서 먼바다[絶海]로 길을 잡아
      ㅡㅡㅡ북쪽으로₩₩₩ㅡㅡㅡ 나아갔다. 배를 탈 때는 언제나 하지(夏至) 다음의 남풍(南風)을 탔으니 ₩₩₩₩바람이 순조로우면₩₩₩₩₩₩ 닷새도 안 돼 해안에 도착할 수 있다.
      고려사 ㅡ동남해 안무사가 해적의 투항을 보고하다 ㅡ 고려영토가 홍콩까지
      취안장 就安 이 홍콩이네요 ㅡ 복사해서 구글지도 검색해 보새요
      고려사ㅡ 1128년 10월 01일 (음)
      겨울 10월 임자 초하루 동남해안무사(東南海安撫使) 정응문(鄭應文)이 아뢰기를, “명진현(溟珍縣)·송변현(松邊縣)·아주현(鵝洲縣) 등 세 현의 해적(海賊) 좌성(佐成) 등 820인이 투항하였으므로, 합주(陜州) 삼기현(三岐縣)에 귀후장(歸厚場)과
      취안장(就安場)을, 진주(晉州) 의령현(宜寧縣)에 화순장(和順場)을 설치하여 이들을 살게 하였습니다.”라고 하니 신하들이 하례를 올렸다
      상건하(영정하 융딩허)
      삼국사기 권 제20고구려본기 제8 영양왕(嬰陽王) 수양제가 조서를 반포하고 출정하다
      ․갈석(碣石)註 029․동이(東𦖮)註 030․대방(蔕方)註 031․양평(襄平)註 032 등의 길로 나아가되,註 033 진군을 멈추지 않고 길을 인도하여 ㅡㅡ평양에 모두 집결하라.”라고 하였다. 모두 1,133,800명인데 2,000,000명이라고도 일컬었으며, 군량을 나르는 자는 그 배가 되었다. 남쪽 ㅡ상건수(桑乾水)註 034 가에서는 토지의 신[社]에게 의제[宜]註 035를 지냈고
      삼국사기 권 제20고구려본기 제8 영양왕(嬰陽王) 수의 군대가 압록수 서쪽에 주둔하다

  • @seojinkim1599
    @seojinkim1599 26 дней назад +1

    참성단이걸리네요 다좋은데

    • @Ourhistory2023
      @Ourhistory2023  26 дней назад +1

      그러게요 다시올릴 수 없어서 ㅠㅜ
      감사합니다 💕

  • @youseungzo1880
    @youseungzo1880 3 месяца назад

    몽고 인디언 동이족 몽골반점

  • @정재성-c1l
    @정재성-c1l Месяц назад

    이런 내용을 다룬 유튜뷰영상들을 보면 결론은 조선왕조를 비하하는 내용으로 도식전개들을 합니다. 고려때까지 대륙에 큰 영토였는데 조선왕조가 비굴하게 주원장에게 땅을 내주고 한반도로 축소하였다라는 식의 도식을 전개하는데 그렇다면 이성계가 주원장과 어떤 관계에서 그리했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과정을 언급해야 하는데 전혀 그런 소리는 안하고 막연히 이성계가 주원장과 협상으로 한반도로 축소하였다라고만 하여 이성계를 비판의 대상으로 삼고 있습니다.
    안그래도 요즘 유튜브공해라고 해야말 만큼 이상한 정보를 내세워 사람들을 현혹하는 내용들이 적지않으니 유튜버를 보는 사람들 사리분별이 철저해저야 할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대륙사관운운하고 싶다면 왜 조선왕조까지고 대륙영토보유를 주장안하나요?
    조선왕조까지 대륙영토보유했지만 그만 일제시대때 일본이 만주와 중국대륙동북부를 한반도와 분리시켰고 2차대전종전후 미국이 그 땅을 한국땅으로 안돌리고 장개석에게 주었다 그런식의 도식전개를 할수도 있습니다.

  • @정재성-c1l
    @정재성-c1l Месяц назад

    논리적으로 어폐가 있네요. 30만명이 21년동안 공사했다면 그정도 공사시간이면 한사람이 여러번 공사에 들어와 임할수밖에 없다는 것을 외 간과하시나요?

  • @정재성-c1l
    @정재성-c1l Месяц назад

    고려왕조가 고구려를 계승한 국가인가요? 형식상으로 왕실에서 그리천명했다고 그말이 논리적으로 타당한것은 아닙니다. 엄연히 고려왕조는 신라왕조의 틀을 기반해서 북으로 발해의 일부분을 조금 흡수한 것이 실질적인 실체입니다.

  • @ytk5959
    @ytk5959 6 месяцев назад +5

    주작역사 반미선동꾼 황현필이같은 수준이네

    • @jjyyhh610
      @jjyyhh610 6 месяцев назад +11

      자료나 근거로 우리역사 history 님께 반박해 주세요

    • @GreatJushin
      @GreatJushin 6 месяцев назад +12

      진실을 추구하는 친미보수우파가 선호하는 역사관이며, 축소된 왜곡역사를 진짜라고 믿으며 진정한 진실을 주작이라 착각하는 당신의 "폐쇄적 무지"가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 @우영우-f6f
      @우영우-f6f 6 месяцев назад +6

      여기도홍위병출몰한국인이진짜역사를찾으면중공가짜한족은자기들조상이100년전옆대륙에투입되기전있었던동남아떠돌이황인객가인으로돌아가야하기에

    • @김재현-z6r2e
      @김재현-z6r2e Месяц назад +1

      머리가 비었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