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 칼라니티의 숨결이 바람될 때로 만난 그리운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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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Опубликовано: 22 дек 2024
  • 폴 칼라니티의 '숨결이 바람 될 때'를 읽으며 돌아가신 어머니 생각이 났습니다. 36살에 요절한 미국인 의사의 이야기인데, 8개월된 딸 아이와 사랑하는 아내를 두고 세상을 떠나게 되는 내용이 너무나 감동적이었습니다. 의사라고 보기에는 그 문장이 너무나도 빼어났는데요. 어린 시절 어머님이 추천도서를 읽혔던 덕분이라는군요. 빈약한 학교 제도가 자식들의 앞날을 가로막을까봐 걱정한 어머니는 어딘가에서 입시용 독서 목록을 구해왔다고 합니다. 저자는 어머니의 강요로 열 살 때부터 추천 도서들을 체계적으로 읽어나가면서 무수한 작품들과 작가들을 만났습니다.

    《몽테크리스토 백작》, 에드거 앨런 포, 《로빈슨 크루소》, 《아이반호》, 니콜라이 고골, 《모히칸 족의 최후》, 찰스 디킨스, 마크 트웨인, 제인 오스틴, 《빌리 버드》는 물론이고 나중에는 대학에 간 형이 《군주론》, 《돈키호테》, 《캉디드》, 《아서 왕의 죽음》, 《베오울프》, 《월든》 등의 작품들을 보내주었고 그 중 몇몇 작품은 폴 칼라니티에게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역시 책의 힘이란!!
    폴 칼라니티에게 책은 잘 다듬어진 렌즈처럼 세계를 새로운 시각으로 보여주는 가장 가까운 친구였습니다. 그는 영문학과 생물학 과정 사이에서 진로를 고민하게 되었고 이 모든 학문의 교차점에 있는 의학을 공부하기로 마음 먹습니다.

    이후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과학과 의학의 역사 및 철학 과정을 이수한 뒤 예일 의과 대학원에 진학해 의사의 길을 걷게 됩니다. 그가 병실에서 만나는 환자는 처음에는 단순한 인간 그 이상이었습니다. 하지만 여러 환자의 삶과 죽음을 마주하게 되면서 그도 다른 의사와 마찬가지로 무감각해집니다. 시체를 하나의 사물로 대상화하여, 문자 그대로 장기, 조직, 신경, 근육으로만 바라보게 되는 것이죠.

    결국 시체 해부는 신성 모독이라기보다는 금요일 저녁시간에 술 마시러 가는 것을 방해하는 일이 되어버리고, 이런 깨달음은 점점 저자를 불편하게 만들곤 했죠.
    어쩌다 한 번씩 반성의 순간이 찾아오면 우리는 마음속으로 시체들에게 사과했다.
    죄의식을 느껴서가 아니라 느끼지 못했다는 사실 때문에.
    우리 인간은 엄청난 투쟁과 고통을 딛고 이 세상에 옵니다. 하지만 세상을 떠나는 일도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죠. 나중에 폐암으로 시한부 판정을 받게 되면서 환자를 사무적으로만 바라보았던 자신의 태도를 반성합니다. 죽음을 앞두고 자신이 떠나보낸 수많은 환자들을 떠올리는 장면은 정말 흥미로웠습니다.

    요즘 의대 증원에 대해서 말들이 많습니다. 내부적인 상황을 제가 알길은 없습니다만, 정부가 초반에 의사를 너무 돈 되는 일만하는 이익집단으로 몰아세운 것이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 듭니다. 저자는 《사람은 어떻게 죽음을 맞이하는가》라는 책의 저자 눌랜드의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젊은 시절 수술실에서 심장이 멈춘 환자와 단 둘이 있었던 경험에 관한 내용입니다.

    그는 절박한 심정으로 환자의 흉부를 절개하고 손으로 심장을 눌러 문자 그대로 생명을 꽉꽉 눌러넣으려 애씁니다. 환자는 결국 사망했고, 눌랜드는 피투성이가 된 채로 지도 교수에게 발견되었습니다. 지금은 의대의 방침이 변경되어 학생이 눌랜드처럼 행동하는 일은 상상도 할 수 없습니다. 학생들은 흉부를 절개하는 건 고사하고 환자를 만지는 것도 잘 허용되지 않죠. 하지만 바뀌지 않은 것이 있다면, 심폐 소생에 실패하고 피투성이가 되어서도 끝까지 환자를 살리려는 영웅적인 책임감입니다. 이것야말로 진정한 의사의 모습이 아닐까 싶습니다.

    얼마전 아내의 고모님께서 식사 도중에 기도 막히셨는데, 응급실을 찾지 못해 엠뷸런스에서 돌아가셨다는 소식에 깜짝 놀랐습니다. 뉴스에서 보던 일이 제 주변 사람에게도 일어난다는 것이 당황스럽기도 했고, 의사의 파업이 우리 사회에 미치는 파급력에 대해 걱정도 되었습니다. 의대 증원 문제가 조속히 해결되었으면 합니다.

    어머니가 병원신세를 지실 때는 만나는 의사들 마다 전지전능해보였습니다. 특히 암수술을 하실때는 신과 같은 존재로까지 여겨지기도 했습니다. 어머니를 살려달라고 얼마나 애원을 했는지요. 하지만 저자는 위급한 환자를 둔 의사가 실제로 할 수 있는 일은 얼마 많지 않다는 점을 반성합니다.
    내 역할은 환자나 가족이 죽음이나 질병을 잘 이해하도록 돕는 것이었다.
    메스로 해결될 상황이 아니라면, 외과의사가 선택할 수 있는 도구는 따뜻한 말뿐이다.
    책은 총 2부분으로 나누어져있습니다. 앞 부분은 승승장구하던 의사시절 이야기이고 뒷 부분은 시한부 판정을 받은 뒤 삶에 대한 애착입니다. 병세가 호전되자 저자는 다시 외과의사로 자리를 얻게 됩니다. 여러 차례 수술도 집도합니다. 하지만 암이 퍼지면서 힘에 부치고 이내 좌절을 겪기 시작합니다. 그 과정에서 느끼는 절망감은 어머니를 곁에서 보던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아 서글펐습니다.
    저는 40년의 인생 계획을 짰었어요. 첫 20년은 외과의사이자 과학자로, 마지막 20년은 작가로 살 생각이었죠. 그런데 갑자기 마지막 20년에 들어서게 됬으니, 어떤 계획을 세워야 할지 난감하네요.
    어머니는 중간에 병원을 한 번 옮기셨는데, 그곳에서 암 완치 판정을 받으셨습니다. 하지만 이내 재발하셨고 이후 병원에서 퇴원하지 못하셨죠. 어머니께서는 마지막에 퇴원시켜달라고 병원 싫다고 하셨습니.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에야 완치라는 말이 참으로 우습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정작 의사인 폴 칼라니티도 자신이 완치될 것이라고 생각했다니 사람이란 얼마나 희망적인 존재인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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