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나라와 춘전국시대 국읍의 크기나 추정 인구를 생각해보면 절대 동쪽, 남쪽 대해까지 이르지 못했다고 생각합니다. 제나라가 산동반도를 다 차지하는 건 매우 과장된 중국식 왜곡입니다. 연나라를 발해지나서 요동반도까지 두는 것과 초나라가 남쪽 대해까지 가서 다 차지 했다는 것도 마찬가지. 요즘은 우공구주도 엄청 키워서 지금 한나라 크기와 거의 비슷하게 그려 놓았습니다. 그리니 주나라, 춘추전국시대의 지도를 과장 할 수 밖에 없었던 거죠. 실제로는 춘추전국시대에 할거하던 나라는 낙양 중심으로 다닥다닥 붙어 있었을 거라 봅니다.
@@진짜역사-k6f 전국시대 배경으로 한 책들을 보면 제나라는 방이천리다. 연은 방이천여리다, 초나라는 방이천리다 이런 얘기들이 나오죠. 그런데 소진, 장의의 합종책, 연횡책을 보면 이들 6국은 국경을 맞대고 있었다는 건 분명하고 방향에 따라 위치를 배치해보면 요즘 중국이 주장하는 전국시대 지도보단 훨씬 작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저의 생각과 하은주 시대의 강역이 얼추 비슷한 유튜브 영상이 있어 남깁니다. 이덕일 선생의 영상입니다.(물론 저의 생각과 모든 것이 일치할 순 없습니다.) 참고로 이전에 주고 받았던 내용의 답변을 남기면 노나라 동쪽에 공자가 뗏목을 타고 가고 싶다던 곳은 황해 건너 한반도가 아니라 노나라의 동쪽 산동반도의 동쪽 지역으로 생각합니다 . 저는 "고대"중국 왕조의 주된 역사 인식이 한반도까지 이르렀다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입니다.(물론 일부는 만주와 한반도에 이르렀을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만.) 관련 링크 - ruclips.net/video/GnEEUdWle9k/видео.html 저의 생각엔 많은 병력이 통일신라 이전까지 좁은 황해도 건너기 어려웠을 것이며 특히나 북위나 당의 10만 이상의 병력이 황해(중국의 동해)를 건너 전쟁을 수행하기엔 매우 어려웠을 것이라 생각합니다.(기술적, 군사전략적으로) 심지어 소정방이 건넜다고 사서에서 이르는 시기는 장마와 태풍이 오가는 계절입니다. 큰 배 한 척에 100명이 타도 십만이면 1000척이고 열 번을 번갈아 건너도 150척은 있어야 합니다.(노꾼이 있어야 하니까요. 그럼에도 태풍이 오는 계절엔 건너지 않는다는 것이 저의 상식입니다.) 또한 사서에도 진이 제후국을 통일 후 사수와 회수 지역의 이민족을 흩어버리고 백성으로 삼았다는 내용이 있습니다. 제나라 동쪽에 여전히 이민족(즉 동이)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 땅을 지배했다고 하지 않고 흩어서 백성으로 삶았다는 내용은 국경이 여전히 동쪽의 대해(동해, 발해)에 미치지 못 했을거란 저의 생각을 대변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백제 도읍이 중국 대륙이란 의미인 것 같은데 북위야 기병이라고 했으니 선박으로 불가능합니다. 이건 백제가 요서에 실존했다는 다른 영상에서 설명했습니다. 기록이 명확하게 있으니 말이죠, 그런데 반대로 백제 사비성이 중국에 있었다면 신라는 당시 어떻게 5만 군사로 황해를 건너갔을까요? 왜는 백제를 지원하기위해 어떤 방법으로 황해를 건너 수만 군사를 중국 대륙에 보냈을까요? 그리고 왜는 어떻게 해서 대방에 가서 고구려를 공격할 수 있었을까요? 대방이 어디에 있었다고 생각하는지요? 기록에 당나라 군사가 등주에서 배를타고 바다를 건널때 선박이 너무 많아서 그 길이가 천리나 되었다고 합니다. 백제가 남조로 부터 받은 성양, 광양 태수 등의 기록에서 백제 영토가 중국동부에도 있을 가능성 있습니다. 하지만 백제 사비성이 중국대륙에 있었다고 생각하면 다른 수 많은 기록과 맞지 않습니다. 박창범교수가 천문최적관측지로 중국대륙이라고 주장한 것 이미 다른 천문학자들에의해 엉터리인 것 드러났습니다. 대륙백제니 대륙신라니 하는 것 흥미있는 소재이긴 분명한데 이런 주장은 기록에 의해야합니다. 고대에 귤이 무주에 있었다느니 하면서 중국 남부에 신라에 있었다고 주장을 하기전에 고대 기온이 지금보다 훨씬 높아 한반도 서해안이 많이 잠겼다는 사실도 같이 설명해야합니다. 그런데 이런 것은 말 안하고 오해만 불러 일어키게 하죠. 역사는 기록의 학문입니다. 주류사학계가 욕 먹는 것은 기록을 무시하고 자신들 마음대로 역사를 재단하기 때문입니다. 일이 있어서 이 정도만 하겠습니다.
그놈들때문에 가슴이 답답해요
주나라와 춘전국시대 국읍의 크기나 추정 인구를 생각해보면 절대 동쪽, 남쪽 대해까지 이르지 못했다고 생각합니다. 제나라가 산동반도를 다 차지하는 건 매우 과장된 중국식 왜곡입니다. 연나라를 발해지나서 요동반도까지 두는 것과 초나라가 남쪽 대해까지 가서 다 차지 했다는 것도 마찬가지. 요즘은 우공구주도 엄청 키워서 지금 한나라 크기와 거의 비슷하게 그려 놓았습니다. 그리니 주나라, 춘추전국시대의 지도를 과장 할 수 밖에 없었던 거죠.
실제로는 춘추전국시대에 할거하던 나라는 낙양 중심으로 다닥다닥 붙어 있었을 거라 봅니다.
제나라동남에 노나라가 있었지요, 편의상 노나라를 그리지 않았을 뿐 제나라가 산동반도 모두 차지하지 않았습니다. 주나라가 그렇게 작다는 것은 사료적 근거가 있는지요?
@@진짜역사-k6f 전국시대 배경으로 한 책들을 보면 제나라는 방이천리다. 연은 방이천여리다, 초나라는 방이천리다 이런 얘기들이 나오죠. 그런데 소진, 장의의 합종책, 연횡책을 보면 이들 6국은 국경을 맞대고 있었다는 건 분명하고 방향에 따라 위치를 배치해보면 요즘 중국이 주장하는 전국시대 지도보단 훨씬 작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힘이 모여야 하는 이유
청 금 우리 역사 고로 중국은 한국땅
일본 백제후손 일본 한국땅 끝
선비족때문에 잃었다
산둥반도쪽은 고려까지 항상 한민족영토
저의 생각과 하은주 시대의 강역이 얼추 비슷한 유튜브 영상이 있어 남깁니다. 이덕일 선생의 영상입니다.(물론 저의 생각과 모든 것이 일치할 순 없습니다.)
참고로 이전에 주고 받았던 내용의 답변을 남기면 노나라 동쪽에 공자가 뗏목을 타고 가고 싶다던 곳은 황해 건너 한반도가 아니라 노나라의 동쪽 산동반도의 동쪽 지역으로 생각합니다 . 저는 "고대"중국 왕조의 주된 역사 인식이 한반도까지 이르렀다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입니다.(물론 일부는 만주와 한반도에 이르렀을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만.)
관련 링크 - ruclips.net/video/GnEEUdWle9k/видео.html
저의 생각엔 많은 병력이 통일신라 이전까지 좁은 황해도 건너기 어려웠을 것이며 특히나 북위나 당의 10만 이상의 병력이 황해(중국의 동해)를 건너 전쟁을 수행하기엔 매우 어려웠을 것이라 생각합니다.(기술적, 군사전략적으로) 심지어 소정방이 건넜다고 사서에서 이르는 시기는 장마와 태풍이 오가는 계절입니다. 큰 배 한 척에 100명이 타도 십만이면 1000척이고 열 번을 번갈아 건너도 150척은 있어야 합니다.(노꾼이 있어야 하니까요. 그럼에도 태풍이 오는 계절엔 건너지 않는다는 것이 저의 상식입니다.)
또한 사서에도 진이 제후국을 통일 후 사수와 회수 지역의 이민족을 흩어버리고 백성으로 삼았다는 내용이 있습니다. 제나라 동쪽에 여전히 이민족(즉 동이)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 땅을 지배했다고 하지 않고 흩어서 백성으로 삶았다는 내용은 국경이 여전히 동쪽의 대해(동해, 발해)에 미치지 못 했을거란 저의 생각을 대변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백제 도읍이 중국 대륙이란 의미인 것 같은데 북위야 기병이라고 했으니 선박으로 불가능합니다. 이건 백제가 요서에 실존했다는 다른 영상에서 설명했습니다. 기록이 명확하게 있으니 말이죠, 그런데 반대로 백제 사비성이 중국에 있었다면 신라는 당시 어떻게 5만 군사로
황해를 건너갔을까요? 왜는 백제를 지원하기위해 어떤 방법으로 황해를 건너 수만 군사를 중국 대륙에 보냈을까요? 그리고 왜는 어떻게 해서 대방에 가서 고구려를 공격할 수 있었을까요? 대방이 어디에 있었다고 생각하는지요?
기록에 당나라 군사가 등주에서 배를타고 바다를 건널때 선박이 너무 많아서 그 길이가 천리나 되었다고 합니다. 백제가 남조로 부터 받은 성양, 광양 태수 등의 기록에서 백제 영토가 중국동부에도 있을 가능성 있습니다. 하지만 백제 사비성이 중국대륙에 있었다고 생각하면 다른 수 많은 기록과 맞지 않습니다. 박창범교수가 천문최적관측지로 중국대륙이라고 주장한 것 이미 다른 천문학자들에의해 엉터리인 것 드러났습니다. 대륙백제니 대륙신라니 하는 것 흥미있는 소재이긴 분명한데 이런 주장은 기록에 의해야합니다. 고대에 귤이 무주에 있었다느니 하면서 중국 남부에 신라에 있었다고 주장을 하기전에 고대 기온이 지금보다 훨씬 높아 한반도 서해안이 많이 잠겼다는 사실도 같이 설명해야합니다. 그런데 이런 것은 말 안하고 오해만 불러 일어키게 하죠. 역사는 기록의 학문입니다. 주류사학계가 욕 먹는 것은 기록을 무시하고 자신들 마음대로 역사를 재단하기 때문입니다. 일이 있어서 이 정도만 하겠습니다.
고조선이 먼저 태백산 아래에 도읍했다가 차츰 동쪽으로 이동하여 반도로 밀려 났다. 한나라 때도 중국의 대부분이 조선 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