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트 -> 일제시대 이전에 완공된 최초의 철도 경인선은 주제도 모르고 이상하게 전기나 자동차 이런 신식문물에 꽂혀 있던 고종이 철도의 필요성을 느끼고 건설하려 햇지만 당연히 기술도 없고 돈도 없었음. 그래서 미국인한테 니네가 돈들여 짓고 요금 받아서 메꿔라 하고 부설권을 줫지만 철도 공사가 한두푼 드는게 아님.. 조선땅에 어렵게 완성해도 요금으로 메꿀 자신이 없던 미국인들이 투자를 안함. 그래서 가망없다 느낀 미국인이 그냥 일본에 돈받고 팜
일본 지도자들이 잘 했네. 그러면 우리는 뭐 했나? 일본을 탓하기 전에 먼저 우리 스스로도 좀 반성하자. 다시는 그런 치욕적인 일을 겪지 않도록, 다시는 비극의 역사가 없도록... 하지만 오늘날 한국의 지도자들은 반성하는가? 그리고 국가 미래를 위해 남다른 희생정신을 발휘하는가? 어리석은 민족은 어리석은 역사를 반복할 뿐이다. 조선과 일본의 차이, 그것은 결정적으로 지도자들의 역량 차이였다.
착하지마라🔥 조선시대가 일본보다 잘살았고 문명을 더 빨리 받아들였다. 너도 한국인인척하는 일본인❓ 조선은 1800년대부터 1900년에 이미 병원도 많이 생기고 학교, 교회도 많이 생기면서 한글보급도 되고 근대화에 이미 발돋음 할때였어. 그리고 조선은 1899년에 아시아 최초 전기 노면電車( 서울電車)를 만들어 낸 기술력있던 나라야. 일제강점기때 만들어진것들도 우리가 한거지 일제가 한게 아니야. 일제가 우리를 발전시켜준게 아니고 우리가 일제를 발전시켜준거다. 일본 우익들이 조작해서 퍼트리는 가짜좀 믿지말자. 나라에 충성해라
1863년 12세의 고종이 즉위합니다. 한국은 임금의 세력을 공고히 하는 것이 급했고, 세계는 식민지를 갖는 것이 유행이었습니다. 서구열강은 중국을 나누어 먹습니다. 조선도 강화도에 프랑스가 와서 외이장각도 털고 불질렀습니다. 일본은 엘리트들이 나라를 강하게 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정한론(한국정복)의 필요성을 깨닫고 1865년 16세의 명치천왕을 옹립, 만주와 한 몸인 조선을 작게 하기 위해 요동부터 잘라내고 자기 땅으로 만들기 위해 미국에 알랑거리고, 미국의 배신으로 가쓰라테프트 밀약과 포츠머스 회담의 결과 우리는 일본에 먹힙니다. 우리의 아기 때부터 사망 후까지 신는 그 버선의 코는 말 타기 위한 최대의 명작이었지만 그러나 기차와는 격이 달랐습니다. ㅠ ㅠ .
가장 큰 문제는 철도의 목적을 이런 식으로 설명하는 것임 당시의 일본은 기본 교통 수단이 철도였음 위의 이유 때문에 철도를 만들려고 하기 보다는 기본 교통 수단을 만든다는 생각을 가지도 있었을 것임 일본의 목적이 한국을 일본의 한 부분으로 만드는 것이었을 것이기 때문에 일본의 기본 시스템을 한국으로 가지고 온 것 지금 우리나라가 다른 나라를 식민지로 만들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면 식민지의 돈으로 먼저 고속도로와 철도를 만들지 않을까? 수탈을 생각 할 필요가 없이 일본으로서는 한국에 철도를 만드는 것 자체에 일본 경제에 엄청난 도움을 주는데 안 할 이유가 없음 일본 기업들이 한국의 돈으로 철도를 만드는데 그 자체 만으로도 일본에 엄청난 이득 일본이 철도를 만든 이유는 상당히 많을 텐데 이런 단순한 사람이 나와서 선동성 주장만 하게 하는 것도 참 공영 방송이 이런 짓을 언제까지 할건지
조선에서 나오는 세입으로 부족해서 매년 일본 정부의 보충금이 들어갔습니다. 조선 적자 식민지 "해방된지 벌써 74년인데… 아직도 親日·親美 타령인가" ―조선총독부가 1910년대 토지 조사 사업을 시행한 이유가 조선 농민의 땅을 수탈하기 위한 것이라고 배워왔다. 안 교수를 비롯한 경제사학계, 그리고 ‘반일종족주의’는 현행 국사 교과서가 허위를 가르쳐왔다고 비판한다. “토지 수탈은 전혀 근거 없는 주장이다. 토지 조사 이후 왕실 소유지와 황무지, 산림이 총독부로 귀속된 것은 당연하다. 당시는 총독부가 국가였으니까. 하지만 경남 김해처럼 일제강점기 토지 조사 관계 자료가 그대로 남아 있는 곳을 보면, 민유지가 국유지로 수탈된 것은 단 1건도 없다. 농민들은 땅을 목숨처럼 소중히 여겼고, 총독부도 무리하게 땅을 빼앗으면 식민지 통치의 안정성을 확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총독부가 토지 조사 사업을 한 이유는 효율적인 식민 지배를 위해 세원(稅源) 확보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 결과 근대적 토지소유권제도가 확립됐고, 지세(地稅) 징수가 이뤄졌다. 1910년대 지세율(地稅率)은 토지 가격의 1.3%로 연간 토지생산액의 5% 미만이었다. 대만의 2분의 1, 일본의 5분의 1 수준이다. 식민지 조선의 기본 세원은 지세와 관세(關稅)뿐이었다. 이 때문에 총독부 재정은 만성 적자였다. 그 적자를 메워준 것이 일본 정부 보충금(補充金)이다. 이 보충금은 일제 말기까지 계속됐다.” 이 때문에 총독부 재정은 만성 적자였다. 그 적자를 메워준 것이 일본 정부 보충금(補充金)이다. 이 보충금은 일제 말기까지 계속됐다.” 이 때문에 총독부 재정은 만성 적자였다. 그 적자를 메워준 것이 일본 정부 보충금(補充金)이다. 이 보충금은 일제 말기까지 계속됐다.” 이 때문에 총독부 재정은 만성 적자였다. 그 적자를 메워준 것이 일본 정부 보충금(補充金)이다. 이 보충금은 일제 말기까지 계속됐다.”
조선은 1899년에 아시아 최초로 전기 노면電車(서울電車)를 만든 나라입니다. 일제강점기때 이름은 바뀌지만 . 조선이 일제보다 잘 나갔던 시기입니다. 그리고 일제때 외교권 박탈때문에 근대화가 더 늦어진건 사실입니다. 우리가 일제를 발전시켜준것이지 일제가 우리를 발전시킨것이 아닙니다. 그기술은 우리의 기술이었읍니다. 1900년 조선의 선교사 영상 한번 봐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kyongparis5447 아시아 최초 아닙니다 ㅋㅋㅋㅋㅋ 교토 전차개통 - 1895년 한양 전차개통 - 1899년 일본이 4년 더 빠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교토전차 설계한 일본인들이 경성전차 설계한 겁니다 ㅋㅋㅋㅋㅋㅋ 고종시절 전차 개통, 동양 최초 맞나? "동양에 있어서 전기철도의 남상(濫觴)은 명치 27년(즉 1894년, 정확하게는 1895년이 맞음) 교토(京都)에서 운전된 것이 효시(嚆矢)라 하는데, 당시 콜부란씨는 경성에서 전기철도를 부설하려고 해도 기술자가 없었으므로 교토전철의 설계자였던 미국공학사 남작 마키 헤이이치로(眞木平一郞)씨에게 위촉했고, 마키씨는 역시 미국공학사인 오하타 코우노스케(大圃孝之助)씨와 이시쿠마 노부노유(石외信乃雄)씨 기타 2명을 동반하여 명치 31년(즉 1898년) 10월 경성에 도착하여 마키 남작은 설계에, 오하타 이시쿠마 양씨 기타는 실무를 담당하였는데, 동월 17일 기공하여 서대문, 홍릉(청량리) 간의 단선궤도부설(單線軌道敷設)과 더불어 가선공사(架線工事)에 착수했고 동년 12월 25일에 준공하였으며, 또 한편으로는 동대문 내에 발전소용지를 선정하여 동 12월부터 기초공사를 착수하였으나 때마침 혹한이 있을 때에 공사가 여의치 않았지만 마침내 다량의 목탄을 태워 현동소설(玄冬素雪)의 가운데 공사를 마쳐 75킬로 직류 600볼트 1백마력 기기(汽機) 매킨토시식 보일라 바브코크식 등을 설치하고 전차의 조립 등도 마쳤는데, 이리하여 모든 일이 완료됨에 따라 명치 32년(즉 1899년) 음력 4월 8일의 제일(祭日, 즉 초파일)을 기하여 화려한 개통식을 거행하였다."
철도가 군사목적이였다면, 인구밀집지역으로 안지나갔겠지ㅋㅋㅋㅋㅋㅋ. 선형자체가 인구수송이 주된목적인데 뭔 개소리임?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어차피 그당시 최고의 인프라 자체가 철도라서 안깔수도 없었음ㅋㅋㅋ. 그럼 그때 당시 고속도로까냐? 그리고 일본이 건설안했어도 그당시 프랑스, 러시아. 미국이 건설할 예정이였음ㅇㅇ.
@@조아조아-v8w 아니 뭐 침략하려고 철도 놓은게 다 맞다고 칩시다. 그래서 뭐 어쩌라고? 일본이 조선통치한게 뭐 죽을죄는 아니지 않나? 어차피 한국인들 스스로도 헬조센은 내 세대가 마지막이라며 결혼도 안하고 애도 안낳지 않나 이런 나러에서 후손을 남기는것은 죄라며 껄껄. 자국민 스스로가 멸망을 간절히 소원할 정도의 저질국가라면 이웃나라가 와서 통치하는것도 그리 나쁜일은 아니지.
이것은 일제의 만행이야~~
저것은 일제의 잔재야~~~
모든 것은 일제 탓이야~~~
수상할 정도로 한반도에 진심인 일본인들 ㅋㅋㅋ
팩트 -> 일제시대 이전에 완공된 최초의 철도 경인선은 주제도 모르고 이상하게 전기나 자동차 이런 신식문물에 꽂혀 있던 고종이 철도의 필요성을 느끼고 건설하려 햇지만 당연히 기술도 없고 돈도 없었음.
그래서 미국인한테 니네가 돈들여 짓고 요금 받아서 메꿔라 하고 부설권을 줫지만 철도 공사가 한두푼 드는게 아님..
조선땅에 어렵게 완성해도 요금으로 메꿀 자신이 없던 미국인들이 투자를 안함.
그래서 가망없다 느낀 미국인이 그냥 일본에 돈받고 팜
진짜 지식인이면 사실을 말해야한다. 선전, 선동하는 놈은 그저 사회악이다. 부끄럽다.
일본 지도자들이 잘 했네.
그러면 우리는 뭐 했나?
일본을 탓하기 전에 먼저 우리 스스로도 좀 반성하자.
다시는 그런 치욕적인 일을 겪지 않도록,
다시는 비극의 역사가 없도록...
하지만
오늘날
한국의 지도자들은 반성하는가?
그리고 국가 미래를 위해 남다른 희생정신을 발휘하는가?
어리석은 민족은
어리석은 역사를 반복할 뿐이다.
조선과 일본의 차이, 그것은 결정적으로 지도자들의 역량 차이였다.
착하지마라🔥 조선시대가 일본보다 잘살았고 문명을 더 빨리 받아들였다. 너도 한국인인척하는 일본인❓
조선은 1800년대부터 1900년에 이미 병원도 많이 생기고 학교, 교회도 많이 생기면서 한글보급도 되고 근대화에 이미 발돋음 할때였어. 그리고 조선은 1899년에 아시아 최초 전기 노면電車( 서울電車)를 만들어 낸 기술력있던 나라야. 일제강점기때 만들어진것들도 우리가 한거지 일제가 한게 아니야. 일제가 우리를 발전시켜준게 아니고 우리가 일제를 발전시켜준거다. 일본 우익들이 조작해서 퍼트리는 가짜좀 믿지말자. 나라에 충성해라
1863년 12세의 고종이 즉위합니다. 한국은 임금의 세력을 공고히 하는 것이 급했고, 세계는 식민지를 갖는 것이 유행이었습니다.
서구열강은 중국을 나누어 먹습니다. 조선도 강화도에 프랑스가 와서 외이장각도 털고 불질렀습니다.
일본은 엘리트들이 나라를 강하게 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정한론(한국정복)의 필요성을 깨닫고 1865년 16세의 명치천왕을 옹립,
만주와 한 몸인 조선을 작게 하기 위해 요동부터 잘라내고 자기 땅으로 만들기 위해 미국에 알랑거리고, 미국의 배신으로
가쓰라테프트 밀약과 포츠머스 회담의 결과 우리는 일본에 먹힙니다.
우리의 아기 때부터 사망 후까지 신는 그 버선의 코는 말 타기 위한 최대의 명작이었지만 그러나 기차와는 격이 달랐습니다. ㅠ ㅠ .
근데 미국처럼 흑인은 못이용하게 한다거나 그런 건 없지 않았나. 조선인들도 다 똑같은 요금 내고 타고 다녔잖아???
우리건데
가장 큰 문제는 철도의 목적을 이런 식으로 설명하는 것임
당시의 일본은 기본 교통 수단이 철도였음
위의 이유 때문에 철도를 만들려고 하기 보다는
기본 교통 수단을 만든다는 생각을 가지도 있었을 것임
일본의 목적이 한국을 일본의 한 부분으로 만드는 것이었을
것이기 때문에 일본의 기본 시스템을 한국으로 가지고 온 것
지금 우리나라가 다른 나라를 식민지로 만들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면 식민지의 돈으로 먼저 고속도로와 철도를 만들지 않을까?
수탈을 생각 할 필요가 없이 일본으로서는 한국에 철도를 만드는 것 자체에
일본 경제에 엄청난 도움을 주는데 안 할 이유가 없음
일본 기업들이 한국의 돈으로 철도를 만드는데
그 자체 만으로도 일본에 엄청난 이득
일본이 철도를 만든 이유는 상당히 많을 텐데
이런 단순한 사람이 나와서 선동성 주장만 하게 하는 것도
참 공영 방송이 이런 짓을 언제까지 할건지
조선에서 나오는 세입으로 부족해서 매년 일본 정부의 보충금이 들어갔습니다.
조선 적자 식민지
"해방된지 벌써 74년인데… 아직도 親日·親美 타령인가"
―조선총독부가 1910년대 토지 조사 사업을 시행한 이유가 조선 농민의 땅을 수탈하기 위한 것이라고 배워왔다. 안 교수를 비롯한 경제사학계, 그리고 ‘반일종족주의’는 현행 국사 교과서가 허위를 가르쳐왔다고 비판한다.
“토지 수탈은 전혀 근거 없는 주장이다. 토지 조사 이후 왕실 소유지와 황무지, 산림이 총독부로 귀속된 것은 당연하다. 당시는 총독부가 국가였으니까. 하지만 경남 김해처럼 일제강점기 토지 조사 관계 자료가 그대로 남아 있는 곳을 보면, 민유지가 국유지로 수탈된 것은 단 1건도 없다. 농민들은 땅을 목숨처럼 소중히 여겼고, 총독부도 무리하게 땅을 빼앗으면 식민지 통치의 안정성을 확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총독부가 토지 조사 사업을 한 이유는 효율적인 식민 지배를 위해 세원(稅源) 확보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 결과 근대적 토지소유권제도가 확립됐고, 지세(地稅) 징수가 이뤄졌다. 1910년대 지세율(地稅率)은 토지 가격의 1.3%로 연간 토지생산액의 5% 미만이었다. 대만의 2분의 1, 일본의 5분의 1 수준이다. 식민지 조선의 기본 세원은 지세와 관세(關稅)뿐이었다. 이 때문에 총독부 재정은 만성 적자였다. 그 적자를 메워준 것이 일본 정부 보충금(補充金)이다. 이 보충금은 일제 말기까지 계속됐다.”
이 때문에 총독부 재정은 만성 적자였다. 그 적자를 메워준 것이 일본 정부 보충금(補充金)이다. 이 보충금은 일제 말기까지 계속됐다.”
이 때문에 총독부 재정은 만성 적자였다. 그 적자를 메워준 것이 일본 정부 보충금(補充金)이다. 이 보충금은 일제 말기까지 계속됐다.”
이 때문에 총독부 재정은 만성 적자였다. 그 적자를 메워준 것이 일본 정부 보충금(補充金)이다. 이 보충금은 일제 말기까지 계속됐다.”
조선은 1899년에 아시아 최초로 전기 노면電車(서울電車)를 만든 나라입니다. 일제강점기때 이름은 바뀌지만 . 조선이 일제보다 잘 나갔던 시기입니다. 그리고 일제때 외교권 박탈때문에 근대화가 더 늦어진건 사실입니다. 우리가 일제를 발전시켜준것이지 일제가 우리를 발전시킨것이 아닙니다. 그기술은 우리의 기술이었읍니다. 1900년 조선의 선교사 영상 한번 봐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kyongparis5447 아시아 최초 아닙니다 ㅋㅋㅋㅋㅋ
교토 전차개통 - 1895년
한양 전차개통 - 1899년
일본이 4년 더 빠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교토전차 설계한 일본인들이 경성전차 설계한 겁니다 ㅋㅋㅋㅋㅋㅋ
고종시절 전차 개통, 동양 최초 맞나?
"동양에 있어서 전기철도의 남상(濫觴)은 명치 27년(즉 1894년, 정확하게는 1895년이 맞음) 교토(京都)에서 운전된 것이 효시(嚆矢)라 하는데, 당시 콜부란씨는 경성에서 전기철도를 부설하려고 해도 기술자가 없었으므로 교토전철의 설계자였던 미국공학사 남작 마키 헤이이치로(眞木平一郞)씨에게 위촉했고, 마키씨는 역시 미국공학사인 오하타 코우노스케(大圃孝之助)씨와 이시쿠마 노부노유(石외信乃雄)씨 기타 2명을 동반하여 명치 31년(즉 1898년) 10월 경성에 도착하여 마키 남작은 설계에, 오하타 이시쿠마 양씨 기타는 실무를 담당하였는데,
동월 17일 기공하여 서대문, 홍릉(청량리) 간의 단선궤도부설(單線軌道敷設)과 더불어 가선공사(架線工事)에 착수했고 동년 12월 25일에 준공하였으며, 또 한편으로는 동대문 내에 발전소용지를 선정하여 동 12월부터 기초공사를 착수하였으나 때마침 혹한이 있을 때에 공사가 여의치 않았지만 마침내 다량의 목탄을 태워 현동소설(玄冬素雪)의 가운데 공사를 마쳐 75킬로 직류 600볼트 1백마력 기기(汽機) 매킨토시식 보일라 바브코크식 등을 설치하고 전차의 조립 등도 마쳤는데, 이리하여 모든 일이 완료됨에 따라 명치 32년(즉 1899년) 음력 4월 8일의 제일(祭日, 즉 초파일)을 기하여 화려한 개통식을 거행하였다."
@@kyongparis5447그렇게 발달한 조선이 철도도 없었냐?ㅋㅋ
그저 일본이면 앞뒤를 못가리네
일본 아니면 저런 시설이 가당키나 하냐?
한국인 마인드로 발전이 50-100년은 늦어졌겠지
정작 자기네 나라에서 달리는 기차는 못 달림
조선시대 500년동안 못한거 일본이 몇년만에 해버렸네 부끄러운역사를 지니고도 아직까지 분석과 자아성찰이 없는 그저 선동하고 왜곡하고 있는걸 보자니 같은 민족으로 부끄럽다.있는 그대로 설명하고 되풀이되지않는 역사를 만드는게 맞습니다
철도가 군사목적이였다면, 인구밀집지역으로 안지나갔겠지ㅋㅋㅋㅋㅋㅋ. 선형자체가 인구수송이 주된목적인데 뭔 개소리임?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어차피 그당시 최고의 인프라 자체가 철도라서 안깔수도 없었음ㅋㅋㅋ. 그럼 그때 당시 고속도로까냐? 그리고 일본이 건설안했어도 그당시 프랑스, 러시아. 미국이 건설할 예정이였음ㅇㅇ.
대놓고 그러지 못하니까 그럴듯하게 교통수단 핑계로 놓는다고 했겠지
@@조아조아-v8w
아니 뭐 침략하려고 철도 놓은게 다 맞다고 칩시다. 그래서 뭐 어쩌라고?
일본이 조선통치한게 뭐 죽을죄는 아니지 않나? 어차피 한국인들 스스로도 헬조센은 내 세대가 마지막이라며 결혼도 안하고 애도 안낳지 않나 이런 나러에서 후손을 남기는것은 죄라며 껄껄. 자국민 스스로가 멸망을 간절히 소원할 정도의 저질국가라면 이웃나라가 와서 통치하는것도 그리 나쁜일은 아니지.
그럼 말이나 타고 다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