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경궁이 확실히 지혜롭고 정략적인 사람이었던 것은 분명하네요. 게다가 한중록을 남겨서 실록을 보충하는 많은 사료를 제공한 것도 정말 훌륭한 일이구요. 변덕이 엄청 심하고 엄하던 시아버지에게 정조가 미움을 받지않도록 효장세자의 양자로 입적시킨 것도 대단한 결정이었던 것 같습니다. 더불어 사도세자의 친어머니인 영빈 이씨와 안하무인이었던 화완옹주에 대한 면면도 들을 수 있어서 흥미롭네요.
그래도 혜경궁홍씨가 왕비는 되지 못했어도 비록 남편 사도세자를 못지켰지만 아들 정조이산을 지킨 여걸이다.그래서 영조도 혜경궁홍씨에 대해서 지지를 많이 해준거고 그래도 아버지 홍봉한도 영조에게 사도세자 죽이는거에 대해서 반대하다가 관직을 빼앗기는 수모를 겪었지만 혜경궁홍씨는 결국 시아버지 영조한테 대항할 힘은 없어도 남편 사도세자가 죽은걸 그냥 보기만 했고 아들 정조이산을 지키기로 마음 먹은거지 마침내 혜경궁홍씨는 노론벽파의 수장 김종수를 만나서 금등문서에 대해서 의논하고 결국 노론벽파 김종수가 혜경궁홍씨와 정치적 거래로 인해 아들 정조이산이 영조가 죽은뒤 조선 제22대 왕이 되지 정조가 임금으로써 어머니 혜경궁홍씨를 지키게 된거지 그리고 정조가 사도세자의 능인 경기도 화성으로 갈때도 혜경궁홍씨랑 같이 갔다고 하지 정조가 물론 자객들이 죽이려 하는데 잠도 제대로 못자고 그래도 어머니에 대한 효심은 잘했던 임금이라고 한다.
국사쌤이 혜경궁홍씨에 대해 설명하시다가 울먹하시더니 한많은 인생이었구나. 정치를 위해? 외가 친척들을 여럿 죽이는 정조도, 어머니인 혜경궁홍씨도 일반인 시각으로는 이해불가. (아무일 없다는 듯 아들과는 잘지내니) 내가 살려면 싸이코패스가 되어야 궁에서 목숨부지하는구나. 정신병 안오는게 더 대단. ㅋ
참 볼때마다 슬픈 이야기에요 사도세자 혜경궁 정조 다 너무 불쌍함 영조 도라이 한명 때문에 대체 얼마나 많은 사람이 그통 받앗는지 사랑햇다던 부인 영빈 이씨도 불행하게 죽고 영조만 아니엿음 사도세자도 그냥 무난한 왕이엿을거 같고 혜경궁 정조 행복한 가정이엇을텐데 그리고 혜겅궁 홍씨가 매우 똑똑하면서도 인성도 좋은 사람이엿던거 같고 정조가 어머니를 많이 닮은거 같네요 남편 죽고 나서 시아버지한테 고맙다 하고 시아버지한테 아들 맡기고 화완옹주한테 키우게 해서 정조 를 왕이 되게 한듯 밉다고 멀리하게 햇으면 또라이에 변덕 심한 영조나 화완옹주가 정조도 가만 안둿을거 같네요 정조가 똑똑하기도 하지만 현명한 어머니 때문에 산듯 사도세자는 영조가 망쳣고 태어날때부터 저승전 보내서 경종 궁녀에게 키우게 한게 정상적인 부모인지 게다가 방치에 학대에 잘 자라는게 이상하죠
@@user-vr6mh1zf2z 저기요 자기 친자식 죽인것도 엄청나게 잔인한 거에요 유영철 이나 연산군도 그나마 지자식은 안죽엿는데 그것도 단번에 죽인거도 아니고 서서히 미치게 만들어서 죽인게 잘못이 아니라구요 그거야 말로 진짜 도라이지 저게 양반이라니 참 독특한 정신세계네요
@@뚜루뚜뚜-i9r 진짜 아버지도 못봐줄정도로 놈팽이니까 죽였겠지요.. 어떤왕이 자기자식을 죽인 왕으로 역사에 남고 싶겠나요. 그럼에도 후세에 그런 욕 다 먹을거 감수하고서 죽였다는건 진짜 사도세자가 4이코패스란 얘기지요..아마 역사책은 순화되서 써진거지 실제로는 그것보다 더 미췬사람이였을거라고 봅니다.. 그나마 뒤주에 가둬서 서서히 죽인건 자기자식이고 세자니까 명예롭게 죽인거에요... 사도세자는 어찌보면 편안하게 죽은거에요. 그나마 영조가 숙종 순한맛버전이라 그정도에서 끝났지 숙종이였으면 그냥 댕강 참수시켰을거에요. 진짜 진짜 저건 매너있게 죽인거에요.. 그리고 원래는 세자가 저렇게 죽으면 혜경궁홍씨도 아내로써 사도세자를 내조못한 책임을 물어서 홍씨 일가전체를 멸족을 해야 정상인건데 자기 아들만 죽이고 끝난거 보면 진짜 영조는 거의 미륵불 아닙니까...
홍씨도 안타깝지. 어린 나이에 결혼했는데 못된 시부가 어린 남편을 학대하다 흑화하는걸 곁에서 지켜봤으니 얼마나 무서웠겠어. 뻑하면 홍씨가 자기 집안과 손잡고 남편 잡아먹은 못된 악처소리 나오던데 그 남편은 이미 자기 아들 낳아준 후궁 때려죽이던 놈이었음. 사람을 그냥 죽인 것도 아니고, 그 후궁이 인성이 나쁜 것도 아니었음. 오히려 웃전들을 살뜰히 챙기며 잘 보필하는 궁인출인이었기에 다들 예뻐했었고. 그 남편도 어린 시절부터 줄곧 이어진 시부의 학대에 못견뎌 미쳐버린거라고 하지만 가정폭력범, 폭행치사 살인자 남편이랑 한 지붕 아래서 떠받들고 살라는 말이야 말로 폭력이 아닌가 싶다.
혜경궁과 장인이 노론이라 사도세자 죽엿다는데 잘못 알려진거고 그 반대파들 홍계희 김상로 등 진짜 사도세자 죽이려한 사람들이 누명 씌운거고 실제론 홍봉한이 사도세자 감싸고 다녓다던데 아무리 노론이라도 자기 딸과 사위 외손주가 가 더 중요하고 왕 되면 딸이 왕비가 되는데 말이 안되죠
@@뚜루뚜뚜-i9r사도세자가 광증이심해져 장인에게 편지를보내 도와달라 요청햇는데도 도와주지않았다는 내용과 임오화변당시 홍봉한이 적극적으로 주도해 사도세자의 죽음을 이끌었던 무리라고 나와있는데 사도세자를 감싸고다녔다,음모라는 내용은뭘보고 말씀하시는건가요?? 그리고 사도세자를 정말 아꼇다고 한다면 고변을 보고 받은사람이 홍봉한인데 이걸덮던지 정확하게파악해서 도움을 주던지 해야하는데 영조에게 바로찾아가서 국문해버리잖아요 어떤자료를 보고 그리생각햇는지 궁금하네요
@@Black_squirrel 장인에게 도와달라 햇는데 안도와 준게 아니라 딱히 치료법이 없엇던거 아닌가요 정신병이고 영조가 학대 해서 생긴건데 약으로 치료 불가능한 거니까요 그리고 홍봉한한테 편지를 많이 썻다고 알고 잇는데 친하니까 몰래 약구해 달라 한건데 약은 보내지 않앗나요 효과가 없엇겟지 어디서 안도와줫단 말이 나온건지? 그리고 김상로 홍계희가 사도세자 괴롭히던 사람이엿고 전에 자료 찾아봣는데 지금 기억이 잘 안나네 그리고 홍봉한이 주도한게 아니라 나경언의 고변인가 다른 사람이 밀고햇고 반역죄엿기 때문에 홍봉한도 거기서 쉴드를 포기한거지 주도한게 아니죠 김상로 홍계희가 사도세자랑 세손 보호하는 홍봉한 모함하려고 주도한거처럼 한거죠
숨막히는 왕실 가문의 비애와 가문을 세우기 위한 혜경궁홍씨네 성공사례를 듣는 듯 하고 결국 권력의 쟁탈에서 국가의 에너지가 소비 된 것도 아깝기도 합니다. 왕의 권력뒤에 존재하는 여성의 파워또한 대단한 힘으로 작용하고 이끌어짐이 크므로 나라를 위한 군주는 평정심을 갖어야 하는데 정조는 두루 두루 참군주로서도 아들로서도 큰효도 행한 왕이었군요.
영조와 사도세자 사이의 갈등은 공부에는 관심이 없는 날라리과 아들과 똑똑하고 “왕”인 아버지 사이의 갈등이 극대화된 거라고 보시면 됩니다. 물론 영조도 정말 성격이 이상한 사람이기는 했죠. 하지만 사도세자는 태생이 공부에는 관심이 없는 날라리였습니다. 오늘날에도 아버지가 의사인데 아들은 아무리 공부하라고 잔소리해도 공부에는 관심이 없고 미성년자가 담배나 피고 술이나 먹고 문제만 일으키고 다닌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그 집안이 평화로울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영조는 일개 의사를 넘어 한 국가를 책임 져야 하는 왕이었습니다. 그러니 국가를 생각해서 폭군의 씨앗이 보이는 자는 제거해야 했던 겁니다. 참고로 사도세자와 혜경궁 홍씨 사이의 금슬은 매우 좋았습니다. 정확히는 이 시대에는 남편이 부인의 처소에 들어야만 부부 관계가 이루어진다는 걸 생각해 볼 때 혜경궁 홍씨에 대한 사도세자의 총애는 매우 컸습니다. 혜경궁 홍씨가 10대 중반 이후로 임신과 출산을 반복해요. - 1744년 1735년생 동갑내기 사도세자와 혼인 *정명공주의 후손인 왕가의 후손이자 할아버지 홍현보는 예조판서까지 역임한 명문가이지만 아버지는 과거 급제를 못해 명문가지만 다소 빈한하여 외척이 득세할 우려가 없는, 영조의 입맛에 딱 맞는 세자빈이었음. 1. 의소세손: 1750년생-혜경궁 홍씨 소생 * 만 15세, 이 무렵 합궁&대리 청정 2. 정조: 1752년생-혜경궁 홍씨 소생 3. 청연공주: 1754년생-혜경궁 홍씨 소생 4. 은언군: 1754년생-숙빈 임씨 소생 (영조 분노 시작) 5. 은신군: 1755년생-숙빈 임씨 소생 (영조 분노 폭발) 6. 청선공주: 1756년생-혜경궁 홍씨 소생 7. 청근옹주: 1758년생-경빈 박씨 소생 (영조 분노 대폭발) 8. 은전군: 1759년생-경빈 박씨 소생 (영조 분노 화산 폭발-0-) *1762년 임오화변 발생 이건 인터넷 찌라시일지도 모르지만 2번 유산도 했다네요. 한마디로 무사히 태어난 아이들이 2남 2녀인 것이지, 1749년 합궁한 이후 남편이 사망하는 1762년까지 약 13년간 무려 6번을 임신했다는 계산이 나옵니다. 2년에 1번은 임신했다는 것이니, 임신 기간, 출산 후 바로 부부 관계를 못 갖는 기간까지 감안하면 사도세자가 얼마나 세자빈을 자주 찾았는지를 알 수 있네요. 실제 세종 시절 문종이 세자빈을 찾지 않자 세종이 나서서 잔소리를 했던 것처럼, 영조 그 강한 성격에(;;;) (자기가 정성왕후에게 한 짓은 생각도 않고-0-) 세자가 세자빈을 찾지 않아 적통 세손이 태어나지 않으면 이로 인한 사도세자와 영조의 갈등도 폭발했을 텐데 이로 인해 사도세자가 영조에게 혼났다는 기록은 일절 없죠. 사도세자는 누가 잔소리할 필요도 없이 스스로의 의사로 세자빈을 자주 자주 찾은 거에요. 혜경궁 홍씨 입장에서도, 자신의 아들을 왕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남편이 죄인으로 사사되어서는 안 되기는 했지만 재혼도 못하는 마당에 남편이 시아버지 손에 죽기를 바랐겠습니까? 세자빈인데 강력한 카리스마를 지닌 시아버지와 큰 도움을 바랄 수는 없는 친정, 광기를 보이는 남편 사이에서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은 극히 제한적이었던 것입니다. 결국 그녀의 아들이 왕이 되기는 했지만 친정 집안이 정치 소용돌이에 휘말리고… 크게 행복하다고는 할 수 없는 삶을 살다 갔네요…
정조가 어머니를 닮은점은 학구적인 성격과 두뇌. 그리고 눈물... 기록을 보면 아버지와 연관해 과하게 눈물을 못참는 면이 보이는데 혜경궁홍씨도 아들과 너무 비슷한 성향이 보여요.. 그리고 정조가 말하길 어머니가 잠시도 쉬지않고 뭔가를 읽고 쓰고 했다고 하는데 이또한 정조가 이어받은듯 해요. 사도가 뭔가를 끈기있게 하거나 그런 성격은 아니었으니까요. 혜경궁이 죽고 시호를 지을때 헌경에서 헌(獻)이 바로 총명예지의 뜻을 취했다고 합니다.
가족관계 ●친가(풍산 홍씨) 할아버지 홍현보(1680~1740) 할머니 풍천 임씨(미상) 아버지 영풍부원군 홍봉한(1713~1778) 어머니 한산부부인 이씨(1713~1755) 오빠 홍낙인(미상)-올케언니 여흥 민씨 남동생 홍낙신(미상) 남동생 홍낙임(1741~1801)-올케 임천 조씨 남동생 홍낙륜(미상)-올케 청풍 김씨 여동생 홍씨(1747~?)-제부 이복일 이복 남동생 홍낙좌, 홍낙우, 홍낙동, 홍낙이 ●시가(전주 이씨) 시할아버지 숙종 이순(1661~1720/재위:1674~1720) 시할머니 숙빈 최씨(1670~1718) 시아버지 영조 이금(1694~1776/재위:1724~1776) 시어머니 영빈 이씨(1696~1764) 남편 사도세자(장조) 이선(1735~1762) 아들 의소세손 이정(1750~1752) 아들 정조 이산(1752~1800/재위:1776~1800)-며느리 효의왕후 김씨 딸 청연공주(1754~1821)-사위 광은위 김기성 딸 청선공주(1756~1802)-사위 흥은위 정재화
나는 개인적으로 이렇게 생각 합니다 해경궁 홍씨 뛰어난 친정 때문에 친정 아버지 집권세력의 노론에 영수 그때 그때 그때 가장 가장 불쌍한 사람 누구 바로 소현세자 부인 강빈 ~~~ 해경궁 홍씨 처럼 뛰어난 집권세력의 아버지가 서인 영수 면은 참 불쌍한 소현세자 부인 강빈 그나마 해경궁 홍씨 친정 아버지가 집권세력의 노론에 영수 ~~
어머니에 현명함 얼마 중요한지를 알수 있는 역사 입니다 .. 그어머니에 지혜롭고 큰 사랑에 존경을 표합니다
정조는 사도세자와 혜경궁의 가장 좋은 점들만 닮은 왕이었음
특히 혜경궁은 정조가 모르는 거 물어봤을 때 답을 못해준 게 없을 정도로 굉장히 똑똑했다고 하네요
정조가 왕이 될 수 있었던 건 혜경궁이 처세를 잘하면서 지혜롭게 잘 양육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똑똑했지만 너무나도 한스러운 세상을 어찌 장수하셨는지 마음이 아픕니다ㆍ
혜경궁홍씨의 한많은일생이랑
조선역사 한페이지를 잘보았습니다
혜경궁홍씨가 대단한것은
남편을죽게한 영조를 원망하지않고
오히려 영조의보살핌으로 모자가
잘살수있다고 문안합니다
일반사람들과는달리 쉽지않은
처사입니다
그러나 아들정조를위한것이고 남편은
그렇게갔지만 아들을왕위에
오르게 하기위함도있는것이고
버틸목이란 수단아래...
참으로 영특한 헤경궁홍씨였네요
영상잘보고갑니다
좋아요 916번째 꾹~
혜경궁 홍씨 집안이랑 정순왕후 가죽여는데 아무말 못하죠 ㅋㅋㅋㅋ
사회생활 할때 나를 송두리째 고난에 처하게한 사람이 있었는데 떠나면서 반대로 일을 잘 가르쳐준 은혜에 감사합니다 ㆍ했던 기억이 납니다ㆍ
남편을 죽인 시아버지를 원망하지 않은 것은 남편이 완전 미쳐 살상을 밥먹듯이 하니 시아버지의 어쩔 수 없는 조치를 이해하고도 남았을 것입니다.
이혼도 안되는데 미친 남편을 시아버지가 제거해주면 땡큐죠.
사실은 원망했을수도 있죠. 멀쩡한 남편
을 시아버지가 미친듯이 학대해서 망가
뜨려놨으니 그치만 사도세자가 저지른
것도 커버쳐줄수는 없지만 당시 아들과
가문을 위해서라면 무조건 영조 뜻에 수
긍을 해야만 했죠. 그래야 아들이 왕위
를 이어받을 수 있으니까
대단한 역사의 진실!!
또박또박 너무좋은 역사실화!!
자꾸만 빠져들어 언제 빠져나오나.ㅠ
혜경궁이 확실히 지혜롭고 정략적인 사람이었던 것은 분명하네요. 게다가 한중록을 남겨서
실록을 보충하는 많은 사료를 제공한 것도 정말 훌륭한 일이구요. 변덕이 엄청 심하고 엄하던 시아버지에게
정조가 미움을 받지않도록 효장세자의 양자로 입적시킨 것도 대단한 결정이었던 것 같습니다.
더불어 사도세자의 친어머니인 영빈 이씨와 안하무인이었던 화완옹주에 대한 면면도 들을 수 있어서 흥미롭네요.
효장세자 입적은 영조의 선택입니다
@@유유-p3s1v 혜경궁을 비롯한 몇몇 사람들이 제안해서 그리 결정한걸로 아는데
맺지 못할 연이여 끊지 못할 연이여 🎵 혜경궁홍씨
집안이 노론파 아닌가 남편 뒤주갇히게 한것도 그 집안아닌가
효장세자 양자 입적은 전적으로 영조 뜻으로
한중록에서 혜경궁은 그부분을 언급하며 매우 충격, 속상해 했답니다.
나레이션 깔끔하네. 간결해서 듣기 편합니다.
동감합니다
할아버지 어머니가 다 장수했는데 정조대왕은 50을 못넘겼군요 ~
독살설이 나올 만 합니다
정조대왕이 10년만 더 사셨어도
조선이 운이 다했던 거죠.
@@루비-z4g 조선의 운은 수양이 찬탈하면서 끝났음
진짜 저 시기에는 지금처럼 따로 정신과 전문의가 있던 것도 아니었을텐데.. 저런 일들을
겪고도 대체 어떻게 멘탈을 관리한 것인지.. 평범한 사람이었으면 그냥 스스로 인생에서
로그아웃 했을 것 같은데 말이죠.. 진짜로 대단하신 분이십니다..ㅜㅜ
한여인으로서의 삶이 처절했네요
엄마가 똑똑했구나 .. 역시
사도세자도 똑똑했으니 확실히 자녀가 특출나려면 부계모계가 다 똑똑해야함. 세종대왕만 봐도 그렇고. 최소한 평범이라도 가려면 부계 유전자가 처지면 안되는듯
혜경궁도 똑똑했지만 사도세자도 똑똑했음 사도세자가 무예같은거에 더 흥미를 보여서 그렇지 똑똑하긴 사도세자도 똑똑했음...그런 엄마 아빠 밑에서 태어났는데 정조가 안똑똑한건 말이 안댐..
똑똑하긴 했으나 요즘기준으로 보면 심각한 사이코패스 였지요. 궁인들을 여러명 살해할 정도로...
진짜 대단한 여자였다고 봄
일단 '정조'가 들어가면 클릭부터 하고 보는 나.....옷소매때문에 현망진창입니다.
저도 광팬입니다!!! 이준호 씨 너무 멋있고 이세영 씨 너무 예뻐요.
눈물이 앞을 가립니다.
저리 어려운 세월을 견디고도 성군이 되셨으니 얼마나 지난한 삶을 이겨내섰을지 가늠하기가 어렵습니다.
그저 존경의 마음만 보내드립니다.
대한민국의 백성을 보우해주십시요.
정조대왕은 엄마를 쏙 닮음
(사도세자를 닮아 무예도 뛰어남)
대단한 혜경궁홍씨~~~
81세까지 사셨다니 지금으로 보면 100세를 훨씬 넘겨사신거나 다름없네요 이렇게 많은고통을 겪은 사람이 또있을까 싶을 정도로 힘든 삶임에도 불구하고 정조를 지켜내고 말년에 한중록까지 집필하셨으니 정말 대단하신 분이시죠
ㅈ,
ㅔㅣㅔㅣㅣㅣㅣㅣ9ㅔㅔ
ㅔ
한중록은 혜경궁 홍씨가 자신 집안을 변호하기 위해 글을 쓴것이 아닌가요?
@@sirwonjin9616 그시대의 여인은 집안을 위해서 희생하는 존재였어요
집안을 나몰라라 했어야 했나요
혜경궁은 착한딸이었네요
집안에 여자들 없으면 망하죠
정말 재밌네요
한편의 드라마를 보는것
이상으로~~차분한 톤도
한몫하면서~~귀에 쏙쏙..
수고하셨습나다
죽어서야 왕비의 지위에 오른 그녀 참 힘들고도 어려운 삶을 사신 혜경궁에게 많은 안타까움이 드네요...
ㅂ
조선시대때 절반이상이 양반이 아닌 노비나, 그보다 아주 약간 나은 평민이었죠.
자국민을 노비, 노예 삶은 지구상 유일한 나라 조선. 드라마가 미화시켰지만, 아주 삵기 힘든 나쁜나라였음.
@@장효영-r6k
?
@@Tko_Seven 중공은 원나라, 청나라 노예로 사느라 정신없던 시절이었지
@@손희경-b8f @사랑
정조대왕은 대단한 효자시네요
감사합니다
공부 많이 하고 갑니다
진짜 한많고 사연많은삶이다
와우 제가 원했던 혜경궁 홍씨를 해주시다니 감사합니다 ! 역사패치님 기다리다가 눈 빠질뻔 했사옵니다 ㅎ 잘 보고 갑니당
성덕임 이름 세자만 봐도 눙물이 나요 흐규ㅠㅠㅠㅠㅠㅠ
그래도 혜경궁홍씨가 왕비는 되지 못했어도 비록 남편 사도세자를 못지켰지만 아들 정조이산을 지킨 여걸이다.그래서 영조도 혜경궁홍씨에 대해서 지지를 많이 해준거고 그래도 아버지 홍봉한도 영조에게 사도세자 죽이는거에 대해서 반대하다가 관직을 빼앗기는 수모를 겪었지만 혜경궁홍씨는 결국 시아버지 영조한테 대항할 힘은 없어도 남편 사도세자가 죽은걸 그냥 보기만 했고 아들 정조이산을 지키기로 마음 먹은거지 마침내 혜경궁홍씨는 노론벽파의 수장 김종수를 만나서 금등문서에 대해서 의논하고 결국 노론벽파 김종수가 혜경궁홍씨와 정치적 거래로 인해 아들 정조이산이 영조가 죽은뒤 조선 제22대 왕이 되지 정조가 임금으로써 어머니 혜경궁홍씨를 지키게 된거지 그리고 정조가 사도세자의 능인 경기도 화성으로 갈때도 혜경궁홍씨랑 같이 갔다고 하지 정조가 물론 자객들이 죽이려 하는데 잠도 제대로 못자고 그래도 어머니에 대한 효심은 잘했던 임금이라고 한다.
혜경궁 홍씨 엄청 힘든 인생을 살았던 왕의 어머니.
잘보았습니다옛날예절은너무많아요
영조는 진짜 속도 좁고 자격지심 개쩌는 왕 이였네 ㅡㅡ
현 대통령만도 못한 수준
갖은 세월 온갖 역경 지내며 장수하셨네요.
정조대왕의 문무에 대한 천재성이 문에서는 어머니와 할아버지 영조를 닮고, 무에 대한점은 아버지 사도세자를 닮았나보네요. 정조대왕이 거의 사기캐릭터로 문무에 뛰어났다고 하더라구요
타고난 것도 있겠지만 해가 질 때마다 자객이 찾아와서 잠을 잘 수가 없어서 책을 읽었다고 해요.
@@InmeynJo 그자객을 보낸게 .. 홍씨집안이랑 정순왕후에요 ..ㅋㅋㅋ
@@초보미식가 홍씨집안에서도 자객을 보냈나요.? 당시 세손이 살해당하면 홍씨의 영향력이 축소될텐데 어떤이유 인가요
@@초보미식가 누가 자객을 보냈는지는 밝혀진게 없어요... 홍씨일가와 정순왕후라는건 드라마작가들의 상상력이고...정순왕후는 정조를 죽여봐야 대신 세울 아들도 없는데요...
@@7-033 홍씨가문이 사도세자의 죽음에 정순왕후의 친정과 함께 일조했으니
더보기 란에 혜경궁 홍씨의 며느리 중에 의빈성씨 성덕임 글씨만 봐도 왜이렇게 아련하지..... 여운 제대로다
혜경궁홍씨 똑똑하고사도세자 도 어릴때 엄청똑똑해 영조가 좋아 했다던데 그래서 정조가 똑똑 한거야 역시 사람은 책을 읽어야 하나보다
준호 최고
사진 대부분이 옷 소매 붉은 끝동 이네요ㅎㅎ 완전 재밌죠
지금이나 예전이나
최고의 자리가 가까울수록
그 삶은 녹록지 않구나
양날의 검ㆍ독이든 성배
혜경궁 고생 많으셨습니다
32분동안 시간가는줄 모르고 재밌게 봤습니다! 최근에 옷소매 드라마 봤더니 더 재밌네요 ㅎㅎ
요즘 읽고 있어요. 본인인가 아버지가 정명공주 5대손 인데, 그 가계를 따라가다가 헷갈려 죽을뻔 했어요..ㅎㅎ
죄다 홍씨에 비슷한 이름.. 간단하게 정리하자면, 정명공주의 손자분이신 홍중기의 혈손임.
정명공주집안의 종손의 둘째아들이 혜경궁의 할아버지에요. 다른방계에 비해 혜경궁집안은 종가와 아주 가까운 편이었지요. 홍중기에게 아들은 두명뿐이었으니...
국사쌤이 혜경궁홍씨에 대해 설명하시다가 울먹하시더니 한많은 인생이었구나.
정치를 위해? 외가 친척들을 여럿 죽이는 정조도, 어머니인 혜경궁홍씨도 일반인 시각으로는 이해불가. (아무일 없다는 듯 아들과는 잘지내니)
내가 살려면 싸이코패스가 되어야 궁에서 목숨부지하는구나.
정신병 안오는게 더 대단. ㅋ
참 볼때마다 슬픈 이야기에요 사도세자 혜경궁 정조 다 너무 불쌍함 영조 도라이 한명 때문에 대체 얼마나 많은 사람이 그통 받앗는지 사랑햇다던 부인 영빈 이씨도 불행하게 죽고
영조만 아니엿음 사도세자도 그냥 무난한 왕이엿을거 같고 혜경궁 정조 행복한 가정이엇을텐데
그리고 혜겅궁 홍씨가 매우 똑똑하면서도 인성도 좋은 사람이엿던거 같고 정조가 어머니를 많이 닮은거 같네요
남편 죽고 나서 시아버지한테 고맙다 하고 시아버지한테 아들 맡기고 화완옹주한테 키우게 해서 정조 를 왕이 되게 한듯
밉다고 멀리하게 햇으면
또라이에 변덕 심한 영조나 화완옹주가 정조도 가만 안둿을거 같네요
정조가 똑똑하기도 하지만 현명한 어머니 때문에 산듯
사도세자는 영조가 망쳣고 태어날때부터
저승전 보내서 경종 궁녀에게 키우게 한게 정상적인 부모인지 게다가 방치에 학대에 잘 자라는게 이상하죠
참..영조는 무수리의 아들이라는 핏줄 트라우마가 너무 심했음 그게 아들까지 악영향을 미쳤으니
저정도 한거가지고 도라이라니 ㅋㅋㅋㅋ
태종보면 기절하것네
그래도 영조는 양반임
자기자식을 죽였지 혜경궁홍씨네 집안을 도륙하진 않았잖슴
진짜 그것만으로 혜경궁홍씨는 영조한테 감사하고 살았어야 될 판임
죽는것보다야 스트레스받고 사는게 낫지않겟음
@@user-vr6mh1zf2z 님아 혜경궁홍씨네가 사도세자 죽이는데 엄청난 일조를 햇어요?? 혜경궁은 지 남편 죽을줄 알면서도 모른체 한것이고
@@user-vr6mh1zf2z 저기요 자기 친자식 죽인것도 엄청나게 잔인한 거에요 유영철 이나 연산군도 그나마 지자식은 안죽엿는데 그것도 단번에 죽인거도 아니고 서서히 미치게 만들어서 죽인게 잘못이 아니라구요 그거야 말로 진짜 도라이지 저게 양반이라니 참 독특한 정신세계네요
@@뚜루뚜뚜-i9r 진짜 아버지도 못봐줄정도로 놈팽이니까 죽였겠지요..
어떤왕이 자기자식을 죽인 왕으로 역사에 남고 싶겠나요.
그럼에도 후세에 그런 욕 다 먹을거 감수하고서 죽였다는건 진짜 사도세자가 4이코패스란 얘기지요..아마 역사책은 순화되서 써진거지 실제로는 그것보다 더 미췬사람이였을거라고 봅니다..
그나마 뒤주에 가둬서 서서히 죽인건 자기자식이고 세자니까 명예롭게 죽인거에요...
사도세자는 어찌보면 편안하게 죽은거에요.
그나마 영조가 숙종 순한맛버전이라
그정도에서 끝났지
숙종이였으면 그냥 댕강 참수시켰을거에요.
진짜 진짜 저건 매너있게 죽인거에요..
그리고 원래는 세자가 저렇게 죽으면 혜경궁홍씨도 아내로써 사도세자를 내조못한 책임을 물어서 홍씨 일가전체를 멸족을 해야 정상인건데 자기 아들만 죽이고 끝난거 보면
진짜 영조는 거의 미륵불 아닙니까...
수고하셨습니다
영조는 신분의 자겨지심이
컸던것 같습니다
애비 0점 정치0점 사이코패스점수 100점
홍씨도 안타깝지.
어린 나이에 결혼했는데 못된 시부가 어린 남편을 학대하다 흑화하는걸 곁에서 지켜봤으니 얼마나 무서웠겠어.
뻑하면 홍씨가 자기 집안과 손잡고 남편 잡아먹은 못된 악처소리 나오던데 그 남편은 이미 자기 아들 낳아준 후궁 때려죽이던 놈이었음.
사람을 그냥 죽인 것도 아니고, 그 후궁이 인성이 나쁜 것도 아니었음. 오히려 웃전들을 살뜰히 챙기며 잘 보필하는 궁인출인이었기에 다들 예뻐했었고.
그 남편도 어린 시절부터 줄곧 이어진 시부의 학대에 못견뎌 미쳐버린거라고 하지만 가정폭력범, 폭행치사 살인자 남편이랑 한 지붕 아래서 떠받들고 살라는 말이야 말로 폭력이 아닌가 싶다.
혜경궁과 장인이 노론이라 사도세자 죽엿다는데 잘못 알려진거고 그 반대파들 홍계희 김상로 등 진짜 사도세자 죽이려한 사람들이 누명 씌운거고 실제론 홍봉한이 사도세자 감싸고 다녓다던데
아무리 노론이라도 자기 딸과 사위 외손주가 가 더 중요하고 왕 되면 딸이 왕비가 되는데 말이 안되죠
미친 이가 한 짓이니.. 심신미약이 맞겠지요. 당시엔 따로 치료법이 없었으므로.
@@뚜루뚜뚜-i9r 왕족이나 대통령 한다는 인간들 보고도 핏줄 따짐? 저넘들은 일반인의 상식으로 판단하면 안되요 가문의 안위를 위해선 자식도 부모도 내치는 부류들임
@@뚜루뚜뚜-i9r사도세자가 광증이심해져 장인에게 편지를보내 도와달라 요청햇는데도
도와주지않았다는 내용과 임오화변당시 홍봉한이 적극적으로 주도해 사도세자의 죽음을 이끌었던 무리라고 나와있는데
사도세자를 감싸고다녔다,음모라는 내용은뭘보고 말씀하시는건가요?? 그리고 사도세자를 정말 아꼇다고 한다면 고변을 보고 받은사람이 홍봉한인데
이걸덮던지 정확하게파악해서 도움을 주던지 해야하는데 영조에게 바로찾아가서 국문해버리잖아요 어떤자료를 보고 그리생각햇는지 궁금하네요
@@Black_squirrel 장인에게 도와달라 햇는데 안도와 준게 아니라 딱히 치료법이 없엇던거 아닌가요 정신병이고 영조가 학대 해서 생긴건데 약으로 치료 불가능한 거니까요 그리고 홍봉한한테 편지를 많이 썻다고 알고 잇는데 친하니까 몰래 약구해 달라 한건데 약은 보내지 않앗나요 효과가 없엇겟지 어디서 안도와줫단 말이 나온건지?
그리고 김상로 홍계희가 사도세자 괴롭히던 사람이엿고 전에 자료 찾아봣는데 지금 기억이 잘 안나네
그리고 홍봉한이 주도한게 아니라
나경언의 고변인가 다른 사람이 밀고햇고
반역죄엿기 때문에 홍봉한도 거기서 쉴드를 포기한거지 주도한게 아니죠
김상로 홍계희가 사도세자랑 세손 보호하는 홍봉한 모함하려고 주도한거처럼 한거죠
사도세자와 혜경궁 홍씨의 딸들 청연공주,청선
공주에 대해서 다뤄주세요~~ 비교적 잘 안알
려져 있어서 궁금해요~~~
청연공주와 청선공주는 어려서 죽었기에 잘안알려진겁니다
@@이연-f5b 청연공주는 혜경궁보다 오래 살았습니다
그림이 멋져요
정조가 왜 똑똑했는지 알겠다…엄마 닮아서였구나
자식은 머리는 엄마 닳는거다
Lady Hyegyeong is one of the most iconic women of history, I have so much respect for her (and it's kind of sad that media doesn't lol)
숨막히는 왕실 가문의 비애와 가문을 세우기 위한 혜경궁홍씨네 성공사례를 듣는 듯 하고 결국 권력의 쟁탈에서 국가의 에너지가 소비 된 것도 아깝기도 합니다. 왕의 권력뒤에 존재하는 여성의 파워또한 대단한 힘으로 작용하고 이끌어짐이 크므로 나라를 위한 군주는 평정심을 갖어야 하는데 정조는 두루 두루 참군주로서도 아들로서도 큰효도 행한 왕이었군요.
아무리 생각해도 사도세자 안타깝다
사랑을 받고 원래대로 총명함을 그대로 지녔다하고
영조 다음에 보위를 이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조선의 운명이 바뀌었을까
아니오. 역사에는 가정이 없습니다.
100명죽인사람이 왕되는거죠 ㅎ
학대받았다고 100명죽이나요?ㅋ
다음에 숙빈 최씨도 부탁드려도 될까요? 유명한데 없더라구요
옷소매붉은끝동이나 비밀의 문 보며 궁금했는데 잘보겠습니다 ~
.
아들이 엄마 머리 닮는다는 말이 사실인 거 같기도 하고
다음은 연산군의 부인인 폐비 신씨 부탁드려도 되나요??
대하드라마 (한중록) 🈸️
정조 (즉위) ~ 효의왕후
영조 (이금) ~ 정성왕후 계비 ~ 최석주
사도세자 (이선) ~ 혜경궁 홍씨
체제공 ~ 홍국영 ~ 정후겸 ~ 화완옹주
화평옹주 ~ 김일성 ~ 김일성 ~ 이인좌
영조와 사도세자 사이의 갈등은 공부에는 관심이 없는 날라리과 아들과 똑똑하고 “왕”인 아버지 사이의 갈등이 극대화된 거라고 보시면 됩니다. 물론 영조도 정말 성격이 이상한 사람이기는 했죠. 하지만 사도세자는 태생이 공부에는 관심이 없는 날라리였습니다. 오늘날에도 아버지가 의사인데 아들은 아무리 공부하라고 잔소리해도 공부에는 관심이 없고 미성년자가 담배나 피고 술이나 먹고 문제만 일으키고 다닌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그 집안이 평화로울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영조는 일개 의사를 넘어 한 국가를 책임 져야 하는 왕이었습니다. 그러니 국가를 생각해서 폭군의 씨앗이 보이는 자는 제거해야 했던 겁니다.
참고로 사도세자와 혜경궁 홍씨 사이의 금슬은 매우 좋았습니다. 정확히는 이 시대에는 남편이 부인의 처소에 들어야만 부부 관계가 이루어진다는 걸 생각해 볼 때 혜경궁 홍씨에 대한 사도세자의 총애는 매우 컸습니다. 혜경궁 홍씨가 10대 중반 이후로 임신과 출산을 반복해요.
- 1744년 1735년생 동갑내기 사도세자와 혼인
*정명공주의 후손인 왕가의 후손이자 할아버지 홍현보는 예조판서까지 역임한 명문가이지만 아버지는 과거 급제를 못해 명문가지만 다소 빈한하여 외척이 득세할 우려가 없는, 영조의 입맛에 딱 맞는 세자빈이었음.
1. 의소세손: 1750년생-혜경궁 홍씨 소생
* 만 15세, 이 무렵 합궁&대리 청정
2. 정조: 1752년생-혜경궁 홍씨 소생
3. 청연공주: 1754년생-혜경궁 홍씨 소생
4. 은언군: 1754년생-숙빈 임씨 소생 (영조 분노 시작)
5. 은신군: 1755년생-숙빈 임씨 소생 (영조 분노 폭발)
6. 청선공주: 1756년생-혜경궁 홍씨 소생
7. 청근옹주: 1758년생-경빈 박씨 소생 (영조 분노 대폭발)
8. 은전군: 1759년생-경빈 박씨 소생 (영조 분노 화산 폭발-0-)
*1762년 임오화변 발생
이건 인터넷 찌라시일지도 모르지만 2번 유산도 했다네요. 한마디로 무사히 태어난 아이들이 2남 2녀인 것이지, 1749년 합궁한 이후 남편이 사망하는 1762년까지 약 13년간 무려 6번을 임신했다는 계산이 나옵니다. 2년에 1번은 임신했다는 것이니, 임신 기간, 출산 후 바로 부부 관계를 못 갖는 기간까지 감안하면 사도세자가 얼마나 세자빈을 자주 찾았는지를 알 수 있네요.
실제 세종 시절 문종이 세자빈을 찾지 않자 세종이 나서서 잔소리를 했던 것처럼, 영조 그 강한 성격에(;;;) (자기가 정성왕후에게 한 짓은 생각도 않고-0-) 세자가 세자빈을 찾지 않아 적통 세손이 태어나지 않으면 이로 인한 사도세자와 영조의 갈등도 폭발했을 텐데 이로 인해 사도세자가 영조에게 혼났다는 기록은 일절 없죠. 사도세자는 누가 잔소리할 필요도 없이 스스로의 의사로 세자빈을 자주 자주 찾은 거에요.
혜경궁 홍씨 입장에서도, 자신의 아들을 왕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남편이 죄인으로 사사되어서는 안 되기는 했지만 재혼도 못하는 마당에 남편이 시아버지 손에 죽기를 바랐겠습니까? 세자빈인데 강력한 카리스마를 지닌 시아버지와 큰 도움을 바랄 수는 없는 친정, 광기를 보이는 남편 사이에서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은 극히 제한적이었던 것입니다.
결국 그녀의 아들이 왕이 되기는 했지만 친정 집안이 정치 소용돌이에 휘말리고… 크게 행복하다고는 할 수 없는 삶을 살다 갔네요…
감사합니다. ㅁㅁ
엄마가 똑똑하니 아들도 지금으로 치면 아이큐가 높았던듯 ~
옷소매 붉은 끝동 전 시대가 궁금하다면 영화 '사도'와 드라마 '비밀의 문'을 보면 됨 그리고 그 전 영조가 궁금하다면 드라마 '해치'를 보면 됨 드리고 그 전 숙종이 궁금하다면 드라마 '동이' '장옥정, 사랑에 살다'를 보면 됨
숙종은 대박을 봐야지
정조가 혜경궁홍씨처럼,영조처럼 좀 오래 살아주지....그러면 우리나라 역사가 확 바뀌었을 텐데..
한일합방도 안되고
극동아시아에서 중심이 되는 큰나라가 되었을지도...
애통하다
조선은 근본적인 시스템을 갈아엎지않는한 한일합방과 지도에서 지워지는 운명을 피하기는 어려웠습니다..그나마 36년간 이었던것도 미국과 이를 움직인 이승만의 외교의 공이었습니다.
@@이연-f5b 라고 ㅇㅂ와 뉴라이또가 세뇌합니다 ㅋ
합방 아니고 병탄이 맞습니다.
한중록을 보면 범상치않은 여인네였음을~~
정조 화성능행차도.... 8자 32첩 초대형 병풍.. 우리나라 전통군악대를 만들수 있던 역사적 자료....
영조자신의 컴플렉스가 곧 정신이상까지 간것같네요 백성을위한 임금일지 모르나
가족에겐 냉대와 차별을 했으니 안타깝죠
인현왕후 원경왕후 소혜왕후도 해주세요~
최고
아비가 자식을 못살게 굴었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도세자가 정신줄을 붙들고 있었어야 했지만... 여하튼 사도세자, 혜경궁,정조 모두 불쌍타...
박은빈언니 존경합니다 은빈이언니
영조가 사도세자에게 병 치료한다며 의료사고로 위장한 독살을 시켰더라면 정조대왕의 평생 한은 별로 없이 더 성군이 되며 업적을 더 많이 쌓았을 것이다.
정조가 어머니를 닮은점은 학구적인 성격과 두뇌. 그리고 눈물... 기록을 보면 아버지와 연관해 과하게 눈물을 못참는 면이 보이는데 혜경궁홍씨도 아들과 너무 비슷한 성향이 보여요.. 그리고 정조가 말하길 어머니가 잠시도 쉬지않고 뭔가를 읽고 쓰고 했다고 하는데 이또한 정조가 이어받은듯 해요. 사도가 뭔가를 끈기있게 하거나 그런 성격은 아니었으니까요. 혜경궁이 죽고 시호를 지을때 헌경에서 헌(獻)이 바로 총명예지의 뜻을 취했다고 합니다.
정조가 10년만 더
살으셧다면
조선은 부정부패
힘없는 나라가
안되엇을텐데..
글쎄. 나라꼴이 지금도 이럴 진데 무슨..
가족관계
●친가(풍산 홍씨)
할아버지 홍현보(1680~1740)
할머니 풍천 임씨(미상)
아버지 영풍부원군 홍봉한(1713~1778)
어머니 한산부부인 이씨(1713~1755)
오빠 홍낙인(미상)-올케언니 여흥 민씨
남동생 홍낙신(미상)
남동생 홍낙임(1741~1801)-올케 임천 조씨
남동생 홍낙륜(미상)-올케 청풍 김씨
여동생 홍씨(1747~?)-제부 이복일
이복 남동생 홍낙좌, 홍낙우, 홍낙동, 홍낙이
●시가(전주 이씨)
시할아버지 숙종 이순(1661~1720/재위:1674~1720)
시할머니 숙빈 최씨(1670~1718)
시아버지 영조 이금(1694~1776/재위:1724~1776)
시어머니 영빈 이씨(1696~1764)
남편 사도세자(장조) 이선(1735~1762)
아들 의소세손 이정(1750~1752)
아들 정조 이산(1752~1800/재위:1776~1800)-며느리 효의왕후 김씨
딸 청연공주(1754~1821)-사위 광은위 김기성
딸 청선공주(1756~1802)-사위 흥은위 정재화
영조가 미리 정순 왕후의 경주 김씨 세력을 좀 쳐내고 갔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저도 풍산이에요
최근 방영된 드라마 옷소매 붉은 끝동의 장면과 인물들이 떠오르네요.
엄마가 천재였네…
사악한 기운이 서려있는 위치에 사도세자를 보냈으니 그 기운이 들었을수있네요
썸넬 은빈언니 이뿌다😍
참 참하고 예쁘죠~ 한데 생각만큼은 못 뜬 듯요...
똑똑하지 못했으면 사도세자 죽을때 아들까지 다 죽었을것..
자막엔35년이라하고 읽을땐38년이라하던데 어느게 맞나요?????😮😮
브금이 뭔가요?
인간의 수명은 하늘이 정하는거라지만
10년의 수명만 아들 정조에게
옮겨갔더라면ᆢ
노론인 친정 가문을 위해서 남편을 버린 비정의 여인.
그러나, 아들인 정조는 버리지 못함.
정조를 제거할려는 노론 세력에게 강력 반발.
그리고, 한중록은 손자인 순조에게 보여 자신의 가문을 복권시킬 목적 으로 쓴 기록입니다.
오타ㅡ씻은듯이 나았다로 바꿔주세요
예전에 역사 프로그램에서 사도세자가 홍씨에게 바둑판을 던져서 피가 철철났다는 이야기를 듣고 나같아도 사도세자를 가만히 안뒀을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광증으로 자기가 사랑하는 빙애까지 죽였으니 그 잔인함이 얼마나 심했을지 짐작이간다
한중록에서 눈알이 빠지는줄 알았다고 기록해 놓았어요.
근데 그 광증이나 폭력성도 아버지인 영조에대한 울분이 쌓이고 쌓여서 그런 것
사도세자가 죽인사람이 100명이넘어요
왕이됐으면 큰일났을인물
@@박지영-t8w 실록엔 없는내용이고 한중록에만 있는내용임. 에휴. 이러니 드라마에 넘어간 아줌마들이 장희빈 욕을 그렇게 해대지
@@박지영-t8w근데 이렇게까지
사건 커진건 빼도박도 못한 명백한 영조
잘못이라는 거
사대비극 보다 더한 한국사.....어느 이야기꾼이 만들까.....
I have to disagree with you at times 9:50, Prince Sado Regency wasn't the longest regency, queen Munjeong Regency lasted over 2 decades
문정왕후는 왕의 어머니로서의 섭정인거고 사도세자는 왕위계승자로서의 섭정인 겁니다 문정왕후는 여자인 대비의 섭정이므로 수렴청정인거고 사도세자는 왕세자의 섭정이므로 대리청정입니다
역사가 그리 흘러간 후에 정정한들 뭐한다는...
상처만 남는 결말
이걸 누가 바란건데
무모한 조상들
영조가 환갑까지만 살고 죽었어도
사도가 저리 삐틀어지지는 않았을텐데
片子故事不错,可惜总是换人,如果是同一个人试试,肯定更好。我爱故事
혜경궁이 당시에 아들로 태어나 그냥 벼슬을 지냈으면 이런 풍파는 겪지않았을것 같음..
당장 조선시대 세종대왕의 업적 그것도 보여 주세요
둘다 10살에...너무 어리다 그리고 영조는 저놈에 변덕
혜경궁 홍씨는 지혜로웠는데 김씨는 왜 그리 미련곰탱이 같을까요?
아들머리는 엄마 닮는듯
..슬픈 가문의 역사 왜 옷소매 붉은 끝동 사진이아니라 직접적 표현이 아닌 MBC이산으로 했나요?
영조와 정조 수명이 바뀌었어야 함
영조 소재로 정신과분야 의사분들 할말 많을듯......내보기엔 싸패...
나르시시스트였던 듯합니다 인격장애 유형들 중 하나입니다
훌륭한 군주는 하늘의 뜻인데 독살을 했다함은 천벌을 받을일을 한거네요.
사도세자가 성격이 느긋하니 성격이 좋았을 것 같네요
알면 알수록 영조는 진짜 노답이네
나는 개인적으로 이렇게 생각 합니다 해경궁 홍씨 뛰어난 친정 때문에 친정 아버지 집권세력의 노론에 영수 그때 그때 그때 가장 가장 불쌍한 사람 누구 바로 소현세자 부인 강빈 ~~~ 해경궁 홍씨 처럼 뛰어난 집권세력의 아버지가 서인 영수 면은 참 불쌍한 소현세자 부인 강빈 그나마 해경궁 홍씨 친정 아버지가 집권세력의 노론에 영수 ~~
성균관을 참배한다는 표현이 적절한가요?
집안이 개판이구먼 그 고모나 그 할배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