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일본군이 궁을 점령한게 아니라 조선왕이 성난 민초들로부터 우리 좀 지켜달라고 불러드린 거다 그리고 동학지도부는 신형총으로 무장한 일본군을 상대로 승산이 없다는 걸 알았지만 총알이 피해 간다는 부적을 나누어 주며 저 말도 안되는 싸움에 민초들 몰아세웠고 일방적인 학살극이 벌어졌다
19세기말 조선 역사는 흥선대원군과 고종-민비 부부 간의 권력투쟁을 모르면 정확히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임오군란, 갑신정변, 동학농민운동 모두 대원군이 권력을 되찾아오기 위한 노력과 관련이 있어요. 그런데 그때마다 고종과 민비가 청나라 군대의 힘에 의존해서 문제를 해결하려 했고, 그러다가 결국 동학을 진압하기 위해 청과 일본 군대가 모두 조선에 들어오는 사태가 발생한거죠. 그러고서 청일전쟁이 터지고 일본이 청을 꺾음. 이제 청의 힘을 빌릴 수 없게 되자 고종과 민비는 러시아의 힘을 빌리기 시작합니다. 그러자 러시아를 견제하려는 영국이 일본을 밀어주기 시작하고, 결국 러일전쟁에서 일본이 이기면서 일제 식민통치가 확정되죠. 우리는 동학농민운동을 보면 ‘권력을 되찾기 위해 반란을 사주한 대원군’과 ‘권력을 지키기 위해 외국군대 힘에 의지한 고종 부부’의 무능부터 떠올려야 합니다. 그게 역사의 교훈입니다.
역사를 모르고 이상한 포인트로 구독만 구걸하네. 민주당이랑 똑같노
한국은사랑하지만 선동은 반대하기에 싫어요 드림.
당시 일본군이 궁을 점령한게 아니라 조선왕이 성난 민초들로부터 우리 좀 지켜달라고 불러드린 거다 그리고 동학지도부는 신형총으로 무장한 일본군을 상대로 승산이 없다는 걸 알았지만 총알이 피해 간다는 부적을 나누어 주며 저 말도 안되는 싸움에 민초들 몰아세웠고 일방적인 학살극이 벌어졌다
불러들인
동학농민운동은 애초에 일본을 몰아내기 위함이 아니라 조선왕조와 기득권 세력에 반발해 시작했던 난의 한종류입니다. 일본군의 개입이 있었다는 이유 하나로 항일운동으로 해석하는식의 왜곡은 무리가 있어요
그냥 아무렇게나 마구 마구 해석하죠. 우금치 전투에 조선관군이 더 많았는데...관군은 싹 빼고 일본군만 있었던것 처럼... 의도가.불손하다.
역사왜곡하네
조선왕조가 동학군을 죽인건데 뭔 개소리야
갑자기 동학농민군을? 또 시작된 선동질
뭔 선동이요..ㅋㅋ 영상의 어느 구절에서 선동을 하고 있나용
반일선동~~민씨는 작금의 더불어공산당
일본군은 작금의 북중러
한미일동맹으로 북중러 더불어공산동맹 죠지자
고종이 청군을 불러드리는 바람에 청과 일본의.탠진 조약에 의해 일본이 청군이 들어오기전에 미리 경복궁을 점령해버린 그리고 조선의 관군을 대신해서 토벌한 ... 결과적으로 청일전쟁이 벌어지는 ... 디테일허게 드르가면 동학민란은 흥선대원군의 계략도 있는 ...
Tmi 동학농민운동이 항일운동이라고 포장하지만 안중근의사는 이 운동을 진압했다
전교조교육의 결말
일본관련되면 무조건 욕해야됨
당시 동학군을 진압했던 일본군은 500~600여명에 불과했음
정작 저 게틀링 건을 쏜 건, 후방에 있던 소수의 일본군 병사가 아니라, 진압군의 대다수가 조선 조정에서 보낸 자국민 관군 병사였다는 걸 나중에 알았을때의 그 허탈감은 참...
이딴식으로 듣고 싶고, 보고 싶은 것만 가져오니 일본놈들이 하는 왜곡질이랑 뭐가 다른지
천주교는 그 후로 수녀ᆢ라는 직함을 주고 무료 노동형을 명령 했고 ᆢ
우금치전투의 주력은 관군이었고, 기관포, 야포등도 모두 조선관군의 것이었다. 적어도 역사적 사실에 대해 정확히 알아야 할 때도 됐다.
미화하거나 왜곡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가르치는 것. 그것이 압울한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는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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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가 변했다.이런 무분별한 반일 컨텐츠에 사람들은 더이상 현혹되지 않는다.반성해라
19세기말 조선 역사는 흥선대원군과 고종-민비 부부 간의 권력투쟁을 모르면 정확히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임오군란, 갑신정변, 동학농민운동 모두 대원군이 권력을 되찾아오기 위한 노력과 관련이 있어요. 그런데 그때마다 고종과 민비가 청나라 군대의 힘에 의존해서 문제를 해결하려 했고, 그러다가 결국 동학을 진압하기 위해 청과 일본 군대가 모두 조선에 들어오는 사태가 발생한거죠. 그러고서 청일전쟁이 터지고 일본이 청을 꺾음. 이제 청의 힘을 빌릴 수 없게 되자 고종과 민비는 러시아의 힘을 빌리기 시작합니다. 그러자 러시아를 견제하려는 영국이 일본을 밀어주기 시작하고, 결국 러일전쟁에서 일본이 이기면서 일제 식민통치가 확정되죠. 우리는 동학농민운동을 보면 ‘권력을 되찾기 위해 반란을 사주한 대원군’과 ‘권력을 지키기 위해 외국군대 힘에 의지한 고종 부부’의 무능부터 떠올려야 합니다. 그게 역사의 교훈입니다.
조선관군이 더 많았는데..왜 관군은 숨기나요?
폭등 그 자체에 열 받을만한 역사..
선동질보소ㅋㅋㅋ
똥오줌 구분 못하는 동한난.., 쯔쯔쯔. 왜저리도 못났나....
흥선대원군 일병 구하기 하다가 동학군 몰살 동학군은 일반 양민들 약탈 학살 한심한역사
반대누르고가요❤
도대체 단 백만 모여도 조직을 위해 머리를 써야지 분기탱천으로 기관총을 상대해서 떼죽음을 ...
폭동이야
뭐지 이게
아이고 이놈아 컨텐츠가 없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