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산더가 섭정왕으로 처음 칼을 잡았던 나이가 16세. 정복전쟁이 끝난 시기가 대략 26세로 추정되는데 그 연령대가 본문에 나온 나아르 입니다. 당시 시대적으로 어른이기 이전의 젊은이들은 어린이로 분류되지만 오늘날의 기준과는 다르다고 할 수 있습니다. 곰두마리. 새끼를 가진 암콤은 위험합니다. 그러나 두마리가 순식간에 청년 42명을 죽인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엘리사를 둘러싸고 몰려있던 이들중에 미처 피하지 못하고 죽은 이들이 42명이라고 추측하는 것이 합리적인 추론이라 하겠습니다. 50명이 한사람을 둘러싸도 두려운 일이지만 100명이상이라면 상당히 위협적인 일이었을 것입니다. 단지 놀렸다기 보다 집단으로 대적했다고 해석될 수 있습니다.
회개와 애통의 의미로 머리를 미는 경우가 있다면 그 모습을 조롱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현대에도 믿지 않는 분들은 감격하며, 회개하며, 기뻐하며 하는 찬양과 기도들을 보며 조롱하기도 하니까요. 그렇다면 '대머리야 올라가라'는 '그렇게 슬프면 너도 엘리야 따라 죽든지'정도로도 생각해 볼 수도 있지 않을까요? 이런 경우에는 단순히 하나님의 사람을 모독했다기보다 하나님을 향한 모습과 생사에 대한 조롱으로 인한 결과라고 볼 수도 있을 것 같고요. 그럼에도 42명은 왜그런지 모르겠네요.
성경의 단어를 히브리어 원문에 비추어 '사실은 그 뜻이 아니다' 라는 유형의 설교나 말씀이 매우 많습니다. 저도 그러한 설교 말씀에 상당 부분 동의합니다. 그러나 문제는 그런 말씀들이 많은데 그렇다면 성경 해석이 잘못된 것이 아닐까요? '아이들'이라고 쓰고서 '사실은 아이들이 아니다'라고 한다면 차라리 한글로 번역할 때 '청년들'과 같은 식으로 번역했어야 옳다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나라에 신학 박사, 석사 학위 이상 목사가 수만명인데, 아직도 제대로 성경을 번역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왜 자꾸 영어판 성경을 참고할지? 왜 직접 번역을 시도하지 않을지? 어색하고 해괴한 우리말 번역은 왜 방치하는지? 왜 번역오류 시비가 끊이지 않는지? 성경은 완벽하며 고칠 것이 없다고 하는데, 왜 자꾸 개정판이 나오는지? 개정판이 나와도 논란은 끊이지 않는지?
@@ABC-kx5gy현재 '새한글 성경'이라는 새로운 번역본을 만들고 있습니다. 원래는 이미 나왔어야 했는데, 다시 수정 중이라고 하네요. 당연히 원어로 번역하고요. 번역이 완벽할 수 없는 건, 당연히 언어가 일치하지 않기 때문이죠. 히브리어, 아람어, 헬라어가 우리말과 1대1로 대응하지 않으니까요. 같은 단어여도 여러가지 뜻으로 쓰이고, 번역자의 해석에 따라 뜻이 달라지는 부분도 많습니다. 또한 원본 자체가 없기 때문에, 어떤 사본을 참고하느냐에 따라 번역이 달라지는 경우도 있어요.
모르는 건 모르는대로 놔둬야 합니다. 10가지 재앙에서 죄없이 죽은 애굽의 첫째 아이들에 대한 공정함은요?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회개의 기회를 얻지 못한 것은요? 모두 고대의 인권 감수성에는 문제가 없으나 현대의 인권감수성에서 걸리는 부분들이죠. 이거, 어차피 해결 안됩니다. 설명하려는 것이 오히려 구차합니다.
@@trueself1752 애굽의 장자들이라는 개개인의 관점 보다는 악을 대표하는 애굽(의 왕 바로)의 관점에서 볼 수 있지는 않을까요? 물론 하나님께서는 이방인들도 구원하시지만 이스라엘을 신실하게 출애굽 시키는 상황에서 애굽은 (하나님의 백성을 죽이려 하는) 악의 축으로 이해되지 않나 생각해 봅니다.
당시 시대적 상황에서 보면 아합 이후 그의 아들들 역시 참혹한 길을 계속 걸어가고 있었고 영적인 상황에서 아합과 이세벨에 의해 위협을 당했던 엘리야처럼 엘리사 역시 무시 당하는 상황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실제적인 상황을 통해ㅓ 보여 주려고 하는 영적인 이스라엘의 상황과 곧 그들에게 닥칠 파괴적인 상황까지 예언적인 의미도 함께 포함되어져 있다고 봅니다. 엘리사의 영적인 권위에 대한 강조도 있겠지만 이런 일들을 통해서 닥치게 될 예후를 통해서 일어나는 처참한 진멸 더 나아가 앗수르에 의한 진멸까지.. 그들이 그렇게 진멸 당하는 이유의 중심에는 하나님께서 보내신 자에 대한 멸시와 거부가 있었음을 보여주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42명의 청년이 죽었다는 말은, 비극적이고 참혹한 사실이긴 하지만 엘리야에서 엘리사로 하나님의 역사가 이어져 나가려던 찰나에 청년들이 나서서 엘리사와 하나님을 조롱하고, 이스라엘을 회복하려는 그 모든 시도를 비방하고 경멸하며, 바알을 숭배하는게 만연하는 시대에 머물게 하려고 했다는 걸 볼 때, 하나님의 심판이 그들에게 즉각적으로 임했단 부분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신약 성경에서도 이해되지 않지만, 하나님께 드린 것을 일부 떼먹은 아나니아와 삽비라도 즉각적인 심판을 받죠. 그런 일이 오늘 날에는 일어나지 않지만, 당시 초대교회 가운데 일어났던 이유는 그것이 하나님의 첫걸음 가운데 일어난 일이기 때문이라 봅니다. 하나님의 일하심의 방향성을 뒤흔들어 놓을 수 있는 행동인거죠. 마찬가지로 엘리사를 통해 벧엘과 이스라엘에게 이루실 회복의 첫걸음 가운데, 그 처음부터 기를 쓰고 반대하며 하나님께 대적하는 자들인 청년들을 즉각적 심판으로 죽이심으로써 오히려 앞으로 하나님이 이루실 회복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부각시킨다 생각합니다.
요한계시록 11장 1 또 내게 지팡이 같은 갈대를 주며 말하기를 일어나서 하나님의 성전과 제단과 그 안에서 경배하는 자들을 측량하되 2 성전 바깥 마당은 측량하지 말고 그냥 두라 이것은 이방인에게 주었은즉 그들이 거룩한 성을 마흔두 달 동안 짓밟으리라 3 내가 나의 두 증인에게 권세를 주리니 그들이 굵은 베 옷을 입고 천이백육십 일을 예언하리라 4 그들은 이 땅의 주 앞에 서 있는 두 감람나무와 두 촛대니 5 만일 누구든지 그들을 해하고자 하면 그들의 입에서 불이 나와서 그들의 원수를 삼켜 버릴 것이요 누구든지 그들을 해하고자 하면 반드시 그와 같이 죽임을 당하리라 저는 이구절과 상관이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먼저올라간 엘리야와 남아있는 엘리사 올라간자와 남아있는자들 남아있는자들을 조롱하는 세상 -> 42명 ->42달-> 3년반동안 조롱당함 짓밟힘당함 2마리 암곰 -> 두 증인->두 감람나무(참감람나무, 돌감람나무), 두 촛대(두 교회, 서머나교회, 빌라델비아교회) 요한계시록 13장 9 누구든지 귀가 있거든 들을지어다 10 사로잡힐 자는 사로잡혀 갈 것이요 칼에 죽을 자는 마땅히 칼에 죽을 것이니 성도들의 인내와 믿음이 여기 있느니라 먼저 (하늘로)사로잡혀간자와 칼에 죽을 순교자 마지막때에 끝까지 깨어있어 인내와 믿음으로 주님만 의지하는 성전되시길 축복합니다.
마 22:14. 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입은 자는 적으니라 모든 인류가 다 구원의 대상이 될 수 없을지도 모른다고 본다면 그리 놀라울 일이 아니리라 생각됩니다 구약에서 이방인들은 하나님과 아예 상관이 없는 자이며 이는 하나님께서 그들과 교제할 방법이 거의 없고 그들을 모른다고 말하심과 같습니다 영원한 생명은 오로지 하나님께로부터 비롯됨이니 하나님과 상관이 없는 자가 어떤 권리를 주장할 수 있겠습니까? 의인과 악인에게 동일하게 햇빛과 비를 주시는 하나님의 긍휼은 당연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당연히 그렇게 하시겠지 생각하는 우리의 선입관이 진리를 가리게 되는 줄로 믿습니다
요즘의 목회자 과거의 선지자들과 비슷한 대우를 거절 겸손이면 좋은데 그게 아니라 구약의 선지자, 신약의 사도들과 같은 능력을 갖고 있지도 갖으려는 방법도 이로 인한 노력자체도 교단의 시스템 적으로 막혀 버렸기 때문 주님께 기름부음 받은 종을 멸시하고 천대하면 어떻게 되는지 보여주는 간단한 구절이 위의 이유 때문에 구구절절 길어짐
이 사건은 엘리야와 엘리사가 같이 있다가 엘리야만 승천한 직후에 일어난 사건입니다. 성경 말씀도 열왕기하 2장 같는 장의 내용이구요. 엘리야의 승천은 마지막 때의 휴거 사건에 대한 예표입니다. 그리고 엘리사는 엘리야가 휴거되었음을 전하는 사역자들을 말합니다. 아이들이 엘리사를 라고 놀린것은 엘리야가 휴거되었다는 사실을 전하는 분들을 향해 하며 비아냥거리고 조롱하는 자들이 있을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이런 자들은 영적인 어린아이라는 의미이고 42명은 42달 즉 7년 환란 중 후 3년반 동안 그들은 두 짐승(두마리의 암곰, 적그리스도와 거짓 선지자)에 의해 죽임을 당하게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엘리사의 미로 2 엘리사에게 엘리야가 조건을 건 것은 나는 책임을 지지 않겠다는 의미와 같습니다. 나는 모르겠고 하나님이 알아서 하시리라! 라는 뜻. 그러면 어째서 그런 말을 했을까? 1. 학생아! 내가 하나님의 감동으로 이 가시밭길을 걸었는데, 넌 머하러 따블이나 가려고 하느냐? 라는 책망의 의미와 2. 너는 그것을 감당할 그릇이 안되는데 어쩌자고! 라는 뜻도 있겠습니다. 엘리사의 입장은! 1. 엘리야 선생의 감동으로도 이 나라가 바로 서지 못했는데, 내가 따블을 받아서 이스라엘을 굳건히 세워야지! 2. 영적 탐심에서 기인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병들어 죽은 것을 봐서!) 어쨌든 엘리야의 말대로 엘리야의 승천을 목도했고, 겉옷으로 요단강을 치니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그런데! 엘리사가 선생의 겉옷으로 요단강을 치면서 머라고 했죠? "엘리야의 하나님이여 어디 계시나이까!" 이 말이 무슨 의미죠? 3편으로
제 생각에는 엘리사를 하나님이 보내신 선지자로 인정하기 보다는 엘리사의 외적모습이었던 대머리를 놀리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엘리야가 하늘로 올라 간 것에 기인하여 올라가라 하는 것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래서 두 가지를 종합해보았을 때 "우리는 네(엘리사)가 하나님의 선지자로 온 것에 관심없고 그냥 엘리야처럼 하늘로 꺼져라" 하고 말하는 것은 아닐까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경고를 무시한 이들에게 징벌을 내리신 것 아닐까요? 영상에서도 언급하셨지만 어린아이들이라 나오지만 결코 적은 나이가 아니었기에 징벌하신 것이라 생각합니다. 혹은 그들의 부모에게 경고하신 것일 수도 있고요
엘리사의 미로 1 참으로 긴 시간 숙고했었는데요. 제가 얻은 것을 써보겠습니다. 일단 엘리야와 그 제자 엘리사의 차이를 살필 필요가 있지 싶어요. 엘리야는 (또!) 라는 말을 했던 것으로 봐서 형제가 재앙으로 죽었고 모친은 과부였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명령으로 시냇가에서 긴 시간을 고독과 사투를 벌였지요. 반대로 엘리사는 12겨리 소를 운영하는 금수저 출신? 살아온 과정이 다르죠! 엘리야 입장에서 후임의 엘리사가 그렇게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엘리야가 엘리사를 떼놓고자 자꾸 남으라 하고, 엘리사는 어떠한 덕담이나 인수인계도 없이 떠나려하는 선생을 붙잡았다고 봐야겠죠! 결국 요단강을 건너서 엘리야가 묻지요. 원하는 것은? 따블이요! 어려운 것을 구하는 도다. 여기에서 엘리야는 그냥 하나님께 말만 하면 되는 것을 어째서 어렵다 말하고 조건을 걸었을까? 엘리사의 갑절 요청은 장자권으로 설명되지 않습니다. 장자권은 아버지의 소가 8마리 라고 치면 아들이 셋인 경우 장자에게 4마리를 주는 것이 장자권이지, 엘리사의 갑절요구는 16마리를 달라는 의미라서 전혀 해당이 안됩니다. 2편으로!
개인적인 의견은 우선 엘리사의 첫 사역 시작이며 하나님이 북이스라엘을 어떻게 하실거신가에 초점을 맞춰보면 좋을 듯 싶네요. 물때문에 유산을 하는 여리고 성읍의 물을 개선시키시며 그들의 회복을 말씀하시며 베델의 우상숭배에 심판하신다는 회복과 심판의 메세지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꼭 그렇게까지 해야 했을까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그 청년들의 영적 상태를 통해 그 나라의 영적상태를 지적하시며 삼판하시겠다는 하나님의 의지로 보여집니다.
구약에는 잔인한 내용이 많은데, 오늘은 곰의 어린이 살해 이야기를 알게 되었네요. 왜 야훼는 말리지 않았을까? 아니면 일부러 시킨 것인가? 방조한 것인가 궁금하네요. 성경은 과연 완전할까요? 읽어도 뜻을 모르고 다양하게 해석할 수 있다면 완전한 책일까요? 이런 구절이 하도 많으니 계속 교파가 갈라지고 끊임없이 이단?이 생기죠. 최악의 사례가, 구약 이사야서 해석을 두고, 유대인은 예수와 신약을 인정하지 않고, 기독교는 인정하죠. 둘 중 하나는 틀린 거고. 성경의 내용 중 애매하고 뜻을 모르는 구절은 상당히 많죠. 신약에서 부자가 천국가는 비유에서, 낙타가 바늘구멍 통과한다는 얘기도 그렇고. 그건 낙타가 아니고 밧줄이 아닐지. 잘 모를 땐 그냥 모른다고 하세요.
구약의 하나님은 살벌하죠. 그러다가 신약에서는 갑자기 사랑, 믿음, 용서를 강조하죠. 성경에 1획 1점도 보태지 마라. 성경은 완벽하다고 하면서 굳이 신약에서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말하는 걸 보면, 구약이 맞나요? 신약이 맞는 건가요? 성경은 참 이해가 안 됩니다.
곰 두마리가 수십명의 사람들을 해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이로 미루어 보건데 엘리사를 둘러싼 사람들은 매우 많았고 이들은 최초로 우상이 세워진 자신들의 도시를 바울 때의 에베소 사람들과 같이 자랑스러워 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이 엘리사를 향한 태도는 매우 적대적이었고 모세 때와 같은 사건은(돌로 치는)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습니다. 이때의 장면을 우리가 보았다면 이 무도한 사람들로부터(사실 폭도들에 가까운) 하나님의 선지지를 지키는 것은 매우 급박한 하나님의 개입을 필요로 했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특히 이방인들도 아닌 이스라엘 사람들이(엘리사를 통해 일하시는 하나님의 일들에 대해 들었을 것이 분명한) 그럼에도 불구하고 적극적으로 반대하고 중단시키려 했다는 점은 그 당시가 얼마나 암물했는지를 알려 줍니다.
1.반대는 할 수 있어도 모욕은 안된다. 모욕은 논점과는 상관없는 오로지 해할 목적의 표현이다. 엘리사가 누구인지 알면서도 그러했다면 죽어 마땅하다. 마치 악어의 아가리에 팔을 들이밀고도 나는 괘찮을 것이다라고 말하는 격 아닌가! 무슨 오만인가! 2.저주는 하지 말자. 이 구절을 오로지 암곰을 내려 아이들을 찢어죽인 하나님에만 맞추면 결국아이들의 잘못 만을 파고든다. 하지만 엘리사는 어떠한가? 하나님이 암곰을 보내 아이들을 찢어죽엿다고 해도 엘리사의 처사에 대해 옳다고 하시리라 생각하는가 말이다. '맹세를 하지말되 아주 하지말라.'라고 성경은 말한다. 되어지먄 되돌릴 수 없고, 안되어지면 하나님이 모욕 받는다. 입다는 승리 후 귀환 하던 중 자기를 위해 나오는 가장 첫번째 것을 희생제물로 드리겠다 맹세한다. 설마 자기 딸일줄 몰랐을 것이다. 그럼 남종이나 여종이나 아니면 아내가 가장 먼저 뛰어나왔다면 어쩔것인가? 그들의 목숨은 가축목숨인가? 입다의 맹세는 그릇됨 맹세의 표본과도 같은 것이다. 그리고 입다는 자기 딸을 직접 번제물로 드렸다고 한다. 당시에는 이미 성막이 있었으며 여호와의 사제들이 있었고 이들이 모세오경의 명령에 따라 규율대로 제사를 주관 했다. 하지만 딸을 올린 장작더미위에 불을 붙인것은 입다 이다. 모든 여호와의 제사장들이 인신공양을 거부했던 것이다. 그렇게 입다는 딸을 위해 어떤 간구도 하지 않은채 '약속대로' 딸을 불태워 죽였다. 비정하다는 말로는 무마할수 없는 석연치 않은 처사였던 것이다. 엘리사가 저주를 내렸을 때 저주대로 참사가 일어났다. 엘리사가 자기말의 무게와 그것을 행하시는 여호와의 권능을 잠시라도 생각했다면 그랫을까 싶다.
개인적인 해석은 부모가 선지자나 제사장을 하나님이 택했다고 생각했다면 아이들에게 저런 반응은 나올 수 없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활동지역이 북이스라엘이고 평소의 어른의 언행이나 인식이 아이들에게 당연히 영향을 미쳤을 것이고 당시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사람들에 대한 태도에 대한 하나님의 징계이자 경고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어떤 왕이 사신을 보냈는데 상대가 그를 능욕하고 무시하는 대도 가만히 있을 왕이 있을까요? 이것은 자신의 얼굴에 침을 뱉는것이라 생각합니다 하물며 하나님을 대적하는 우리 인간은 어떻겠습니까? 우리가 매우 착각하는 것이 하나있는데 우리는 하나님의 원수이고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죄와 사망에서 구원받는 것이 맞지만 정확히는 하나님의 진노로 부터의 구원입니다 그분이 우리 모두를 벌하신다 해도 우리는 할 말이없습니다 그분은 모든 것의 주인이십니다 당신이 물건이나 짐승이 있는데 그것이 싫거나 나에게 불편함을주어서 버린다할지라도 누가 당신에게 따질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다행이 우리 주인께서 얼마나 우리를 아껴주시는 자비로운 분인게 또한 얼마나 감사한지요 저는 그분의 긍휼을 입을 어떤 자격도 없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참 주인 되십니까? 아니면 아직도 내가 내 인생의 주인입니까?
촛점 1.작은아이들 동네에서 늘 모여 노는 놈팽이 젊은이 2.올라가라 엘리야가 회리바람 을 타고 하늘로 올 라 간것을 사기라고 생각하고--너도 올 라 가라고 놀렸기 때문.하나님을 조롱 한것. 3.사건의 배경 선지생 50명이 그 지역을 3일동안 수 색(동네가 시끄러 웠겠죠) 하늘로 올라간 것을 믿지 않는 비웃는 행위에(하나님 모독 죄) 대한 심판.
지혜를 보탭니다! 가나안 땅에서 여리고는 유일하게 하나님의 저주에 의해 무너진 성입니다. 그래서 그곳에서는 아무것도취하지 말라고 하셨지요.그곳을 복원하지도 말라고 하셨지요.복원하는 자의 아들들이 죽을 것이라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저주는 이토록 영원하고 무서운 것입니다. 그런데 저주받은 여리고성에 사는 사람들이 엘리사에게 저주로 인해 그 땅에서 솟아나오는 쓴물을 단물로 바꾸어달라고 간청하자 엘리사는 하나님의 뜻에 반하여 간청을 들어주게 됩니다.흠없는 어린아이 42명은 여리고성의 저주를 제거하는 대속의 피인 것입니다. 사람이 선악과를 먹은 저주는 예수님께서 대속하셨습니다. 피흘림이 없은즉 죄사함도 없습니다. 말씀이 꿀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엘리사는 선지자가 되고 싶어서 평생을 그렇게 소원했었죠...결국 소원을 성취했습니다. 사탄은 당신의 소원이 성취되자 마자 그것을 망쳐놓길 원해요. 사탄은 엘리사가 인간의 힘으로 애들을 패주길 원했을 겁니다. 아마도 엘리사가 아주 오래전에 어린 애들과 관계가 좋지 않았을 수도 있어요. 과거에 나쁜 죄가 있거나 연루된 경우, 사탄은 그것을 여러분이 성공하고 새 사람이 되어도 그것을 가져와서 다시 사용합니다.
현대의 기준으로 이상하게 해석하는 것 같네요. 고대의 대머리관념은 현대와 다릅니다. 고대에는 대머리라고 놀리지 않습니다. 거란족의 곤발(髡髮)과 만주족의 변발(辮髮), 일본의 촌마게(丁髷)처럼 대머리 자체가 특정 민족이나 문화의 정체성을 나타냅니다. 메소포타미아의 수메르인들은 대머리로 생활했습니다. 그러나 수메르인을 몰아내고 메소포타미아를 장악한 셈계민족들은 긴머리와 긴수염을 그들의 정체성으로 생각하고, 지금도 중동지방에서는 긴머리와 긴수염을 고수하고 있지요. 실제 만주족이 명나라를 정벌하고 대대적으로 변발령을 내립니다. 그런데 한족들은 변발을 거부하고, 그 댓가로 엄청난 한족들이 만주족에게 학살당합니다. 단순히 머리모양 하나로 중국대륙은 피바다가 됩니다. 그리고 구한말 한국에서 의병이 일어난 근본이유는 "을미사변"보다는 "단발령"에 있다고 합니다. 엘리사의 대머리사건은 현대의 관점처럼 단순한 희롱이 아니라 세르비아인이 보스니아인과 코소보인을 학살한 것처럼, 르완다에서 후투족이 투치족을 학살한 것처럼 과격한 문화충돌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장발을 고수하는 공동체가 변발을 고수하는 공동체를 공격했다가 처절한 복수 혹은 학살을 당한 것 같습니다. 더구나 학살한 당사자가 엘리사 계열의 사람이라, 자신들의 악행을 곰의 소행으로 포장한 것 같습니다. 보스니아인과 세르비아인은 같은 세르보-크로아티아어를 쓰는, 방언차이 밖에 나지 않는 같은 유고슬라비아인이었지만, 한국인의 시각으론 단순한 종교의 차이가 대량학살을 불러일으킨 것이죠. 더구나 학살당한 보스니아인들은 비교적 자유롭고 세속적인 이슬람을 믿었지만 정교회를 믿는 세르비아인들에겐 학살의 대상이 된 것입니다. 특히 셈계민족들은 훗날 이슬람을 믿어 순화된 아랍인으로 거듭나기전까지는 상당히 배타적인 민족이라고 생각됩니다. 아시리아와 신바빌로니아의 이민족에 대한 대우를 보면, 분명 과격한 문화충돌일 가능성이 짙습니다.
성경말씀은 우리들에게 무엇인가 영적 교훈을 주기위해 역사적 이야기로, 예언적 풍자로, 시로, 기도로, 노래 가사를 통해 비유로 상징으로 기록해 주셨습니다. 거기에서 영적 교훈을 찾으면 됩니다. 엘리사는 예언적 말씀으로서의 예수님을 상징하기에, 엘리사의 머리카락은 예수님의 가장 외적인 문자 수준의 예언적 말씀을 상징합니다. 원래 머리카락은 그 사람의 사랑과 지혜가 외적으로 드러나는 것을 상징합니다. 그래서 나실인인 그 머리카락을 신성시하여 칼을 대지 않았던거구요. 특히 주님의 머리카락은 흰양털(white wool)과 흰눈(white snow)처럼 보이는데(다니엘7:9/계시록1:14), 이 성경 구절에서의 주님은 인자(Son of man)은 말씀으로서의 주님을 표현할 때 사용하는 단어이므로, 흰양털과 흰눈은 하나님 말씀의 가장 외적인 문자적 수준이 어떠함을 상징적으로 표현하고 있는데, 흰양털은 양에서 나오므로 하나님의 선하심과 거기에서 나오는 사랑을 상징하고, 흰눈은 물에서 나오기에 하나님의 진실하심과 그기에서 나오는 믿음을 상징합니다. 이 두 속성은 떨어질 수 없으며 항상 하나로 존재합니다. 그러나 그 중요성은 선함이 먼저이고, 진실함이 둘째가 됩니다. 그러기에 여기서는 양털이 먼저 언급되고, 눈이 나중에 언급된 이유입니다. 그러나 사람이 거듭나는 과정은 믿음이 먼저 생성되고 성품이 변화되는 선은 나중에 형성되므로, 니고데모에게 사람이 거듭나는 순서는 먼저는 물이요 어어서 성령이라고 하였습니다. 성령은 머리카락에 있어서는 흰양털에 해당되겠지요. 개인적으로 저는 한의사로서 음양이론을 통해 성경말씀을 이해하기도 합니다. 예들들어, 흰양털은 음에, 흰눈은 양에 해당한다고 느낍니다. 음은 내적 속성이며, 양은 외적 속성인데, 선하심은 하나님의 내적 속성이며, 진실하심은 하나님의 외적 속성이기 때문입니다. 다시 열왕기하2장에서 작은 아이들이라 함은 영적으로 미성숙한 사람들을 상징하는데, 여기까지는 좋습니다. 누구나 다 이 과정을 통과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과정의 사람들에게, 곧 영적 초보 단계의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 이러한 행동을 조심하라고 경고해 주십니다. 아이들이 엘리사의 머리를 보고 대머리야 대머리야라고 조롱하였다 함은, 영적으로 미성숙한 사람이 성경 말씀을 읽고, 이해가 되지 않을 경우, 그 속에 어떤 깊은 영적인 교훈이 있을까 묵상하지 않고, 그 내용을 깎아 내리고 무가치한 것으로 폄하해 버리는 것을 말합니다. 나중에는 이 말씀에는 영적인 뜻이 없다, 넌센스다, 나중에는 성경 말씀을 그냥 그대로 믿자... 문자 그대로.... 하나님은 사람들을 사랑하시기는 하지만, 화가 나시면, 화내시고, 벌주시고, 심하면 죽이기도 하시고, 고문하고 저주하고 때론 자기가 계획하시고 행하셨던 것을 후회하시기도 한다.... 는 성경 말씀을 복잡하게 생각할 필요없이 그냥 문자 그대로 하나님께서 그러기도 하신다고 그냥 믿자.... 이런 지경까지 이르면 그 사람은 곰에게 물려 죽는 지경까지 이른 것입니다. 곰이란 우리나라 속담에서도 미련한 사람을 "이 미련한 곰아"라고 하지 않습니까? 계시록13장의 곰은 말씀을 읽지만 이해하지 못해서 결국 왜곡되게 해석해 버리는 사람을 상징합니다. 사자와 표범은 말씀을 자신의 악한 기질을 방어하는 수단으로 해석하여 공격적으로 교회를 파괴하는 사람들이라면, 곰은 두 짐승보다는 공격적이지 않지만 그래도 문자 수준의 말씀 이해에서 안주하고, 더 깊이 알려고 하지 않는 사람들을 상징합니다. 참고로, 곰이 2마리인것과 어린 아이들이 42명인 것도 다 영적 교훈을 담고 있습니다. 지금도 2, 42, 뭐 특별한 뜻이 있겠어? 그냥 두마리, 마흔 두명이었겠지... 하진 않겠죠? 그렇게 할때 우리가 바로 대머리야 대머리야 하고 조롱하는 자들이 되고 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어리석어서 하나님에 대한것도 자신의 판단으로 해석하려고 합니다! 여기서 작은 아이라 함은 아이 중에도 작은,작다라는 뜻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작은 아이라함은 큰 아이도 있다는것입니다! 왜 찢었을까? 성경에 더 이상 다른 해석이 없으니, 엘리사가 놀림받고 화가나서 저주하게 되고 당시 능력이 충만했던 엘리사를 통해 얼마든지 생겼을 일이라 보여집니다! 엘리사는 죽은 아이도 살려낼 만큼 엘리야보다 더 큰 능력이 있었지요!..작은아이들을 암콤으로 찢은것은 잔인한것은 맞겠지요..ㅎ
엘리사 미로 3 엘리야의 하나님이여 어디 계시나이까? 라며 요단강을 친 것은 어쩌면 모세가 므리바 바위를 내려친 마음일 수도 있지만, 지금 선생 엘리야가 회오리에 휩쓸려 죽었는데 하나님 당신이 참말로 살아있습니까? 살아있다면 입증하시오! 라는 의미로 봐야 되겠습니다. 불말과 불병거가 부지불식 간에 벌어진 일이라서 그 광경을 목격한 모든 사람이 자연재해로 인식했고, 엘리사조차도 자연재해로 인식했던 것. 사람을 들어올릴 정도의 회오리라면 옆의 엘리사, 요단강 물까지 휩쓸 정도의 광풍 정도는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엘리사도 겉옷도 요단강 물도 멀쩡! 이것은 하나님의 이적임을 입증하는 것이겠지요. 여기부터가 42명의 시발점입니다. 그리고 42명이 죽은 것이 아니고 찢긴 것입니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아 성경을 신학으로 보라 하더냐 그것을 사람의 계명이라 하는 것이다 다른 말로 조문으로 죽인다 함이다 고후3:6 조문은 사람을 죽이는 것이다 조문은; 성경을 문자대로 내가 읽고 성령의 계시 없이 사람의 이해 지식 문화 상식등을 동원하여 이해 한다고 생각한 교훈을 말하며 이렇게 가르침 받으면 사람을 살리는게 아니라 죽인다 함이며 이것이 적그리스도라 함이다 성령을 받으라 했고 성령이 오시면 예수께서 가르치신 말씀을 생각나게 하신다 함은 계시로 성경을 깨닫게 하신다 함이며 성령은 다른 말로 계시의 영이라 하심 그럼으로 성령이 오시지 않으면 계시가 없고 그런 이를 소경이라 하는 것임
에브라임사람들이 말을 조심해야 할것인데 엘리사에게까지 함부로 말하는 아이들이 어른들로부터 배워서 저주가 임한듯합니다 즉 사사기에서 입다의 길르앗 사람에 의해서 강나루터에서 4만 2천명이 죽었지요 이유는 십볼렛 발음을 잘못해서죠 에브라임족속의 교만때문이지요...여기서 다 댓글로 쓰기에 뷰족합니다 오늘날 교회생활에 적용하면 좋겠읍니다
엘리사는 벧엘로 올라가는 중이었고, 아이들은 올라가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엘리사의 입장에서는 벧엘로 올라가고 있는데 작은 아이들이 거기로 올라가라고 하는 상황인 것입니다. 그런데 다른 이가 아니라 어린 아이들입니다. 성경에서 어린이는 아직 영적으로 성숙하지 못한 상태에 있는 자를 말합니다. 엘리사는 대머리로 나오는데, 머리털은 인간적인 생각을 말합니다. 왜냐하면 생각은 머리에서 나오는데, 마치 머리에서 머리털이 나오는 것처럼 생각도 머리에서 나옵니다. 그래서 온갖 잡다한 인간적인 생각이나 교리가 많은 사람을 머리숱이 많다고 표현합니다. 그런데 대머리라고 함은 그런 인간적인 생각이 없는 상태입니다. 성경에는 백발이라는 단어가 나오는데, 이것은 처음엔 검은 머리털이었다가 인생을 살면서 점점 자기 생각이 없어진 상태를 말합니다. 그러니까 백발이나 대머리는 비슷한 의미입니다. 그것은 세상에서 가지고 있던 선과 악을 구별하는 생각을 없애고 세상에 대한 미련을 버렸다는 뜻이며, 이것이 바로 안식한다는 의미입니다. 회개할 때 머리에 티끌이나 재를 뿌리거나 머리털을 뽑는다고 하는데 이것 역시 자기의 생각을 버렸다는 뜻입니다. 성경에는 올라간다거나 내려간다는 단어가 나옵니다. 이것은 영적으로 성숙하거나 하락하는 의미입니다. 공중 나는 새라는 표현도 있습니다. 이것은 땅에 발을 붙이지 않은 상태 즉 인간적인 가치관에서 벗어나서 안식에 이르렀다는 뜻입니다. 구원에 이른 사람은 최종적으로 하늘로 올라가는데, 이것은 구원의 완성을 의미합니다. 엘리사는 대머리인 상태, 즉 백발과 마찬가지인 상태가 되어 자기 생각을 비우고 엘녹, 엘리야, 예수처럼 올라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직 영적으로 미숙한 상태의 무리들이 엘리사의 그런 모습 일부(뒷모습)만 보고 자기들은 이미 올라간 상태인데 자기들이 보니 엘리사도 그런 상태에 도달하고 있는 것처럼 보여 너도 우리처럼 올라와라 올라와라고 비꼬듯이 말한 것입니다. 그들은 사십 두 명이었는데. 노예생활 사백 년, 모세의 사십 세, 광야 사십 년, 예수의 광야 시험기간인 사십 일처럼 사십은 충분한 상태를 의미하고 둘은 구원의 길을 가는 두 사람을 의미합니다. 그러니까 사십 둘이라고 해서 숫자가 사십 두 명이라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의 영적 상태를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영적 수준이 훨씬 높은 엘리사가 보기엔 그들은 어린 아이의 수준에 불과합니다. 그런 그들이 조금 안다고 비꼬듯이 우리처럼 너도 올라가라고 하고 있으니 가관인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그들을 친 것인데, 이 말은 그들을 가르쳐서 그들의 교만한 마음을 찢었다는 것입니다. 그들 중 사십 두 명의 마음을 찢었는데, 몇 명이냐가 아니라 영적으로 어린 상태의 사람 중 마음에 가책을 받아 회개한 사람의 영적 상태를 말합니다. 성경에는 (겉)옷을 찢었다는 말이 나오는데, 옷, 베, 그물은 가로세로로 정교하게 짠 것입니다. 베드로가 예수를 만나기 전에 찢어진 그물 즉, 자기만의 생각과 교리에 문제가 있어서 고치다가 예수를 만난 후 예수가 던지라고 한 하나님의 완전한 말씀인 그물을 던져서 많은 사람을 구했습니다. 옷 또한 인간적인 생각과 교리를 말합니다. 그래서 회개할 때는 옷을 찢는데, 사실은 내 마음을 찢는다는 뜻입니다. 그들을 찢어 죽였다는 것이 바로 이렇게 그들의 교만한 마음을 찢어서 교만한 마음을 죽여 회개하게 했다는 것입니다. 이 설명을 이해하거나 받아들일 사람은 아마 없을 겁니다. 기존 기독교의 설명과는 완전히 다르기 때문입니다. 이단과도 다를 겁니다. 그러나 성경을 문자적으로 해석하지 않고 상징과 비유로 해석하려고 애쓰는 사람이 있다면, 무언가 영감을 받을 것입니다.
뭔가 너무 많은 말로 해깔리게 하네요. 엘리사는 대머리였고...그걸 놀린 아이들은 작은 아이= 어린아이 였고, 엘리사는 자신의 화를 참지 못했다는게 성경에 직접 나타나는 거라고 봅니다. 합리적인 이유와 어떤 뜻을 찾아 내는 것이 신학이라면 정말 안타깝다는 생각이 듭니다. 엘리사와 엘리야는 다른 사람이고 다른 성정을 가졌습니다. 엘리사는 그만큼 하나님의 영을 사랑과 인내라는 성품으로 받아 들이지 않았다는 걸 볼 수 있습니다. 지금도 많은 목사들이 하나님의 이름으로 불심판을 이야기하고...또 북한이나 다른 적(동성애자들)에게 저주하는 거 보면 엘리사가 떠오를 때가 많습니다.
제가 젊은 날에 기도원을 갔었는데요 기도원 원장님이 어떤 목사님 흉을 보시더라고요 제가 그래서 그 목사님 잘 아는데 그런 분이 아닙니다라고 말했지만 그분은 계속 흉을 봤어요 그리고 일주일 뒤에 병원에 입원한 걸 보았습니다 암에 걸린 거예요 저는 그때 깨달았어요 목사도 다 같은 목사가 아니고 주의 종도 다 같은 주의 종이 아닙니다 영권 있는 사람을 함부로 말하거나 흉 봐서는 절대로 안 됩니다
이 내용은 간단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대신 전하는 선지자의 권위에 도전함은 하나님께 도전한 것입니다~~ 대머리라 놀린 것은 하나님이 귀하게 만든 창조물을 희롱해서는 안됩니다~~ 절대로 차별이나 희롱의 말은 안됩니다~~ 나이가 어리더라도 자신의 말과 행동에 책임을 져야 합니다~~ 촉법소년도 강력한 처벌이 필요합니다~~
탈모인들을 조롱하지 말라는 하나님의 간접적 계시가 아닐런지요?
탈모인으로서 좀 위로가 되네요
벙어리로 만들 수도 있고 죽이지 않고 벌 할 수 있는 수많은 방법이 있는데 구태여 암곰으로 벌한거 보면 저들이 망령되이 선지자라면 곰으로 자기들 잡아보라고 도발했을 가능성이 있지않을까요
아이코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 이거 외엔 가능한 해석이 없겠네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windmi12120 탈모인의 울분... 그것은 도대체..."곰은 사람을 찢어" 라는 말을 이미 구약시대에 실현을 시킬 정도였다니.. ㅋㅋㅋㅋㅋㅋㅋㅋ
알렉산더가 섭정왕으로 처음 칼을 잡았던 나이가 16세. 정복전쟁이 끝난 시기가 대략 26세로 추정되는데 그 연령대가 본문에 나온 나아르 입니다. 당시 시대적으로 어른이기 이전의 젊은이들은 어린이로 분류되지만 오늘날의 기준과는 다르다고 할 수 있습니다.
곰두마리.
새끼를 가진 암콤은 위험합니다. 그러나 두마리가 순식간에 청년 42명을 죽인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엘리사를 둘러싸고 몰려있던 이들중에 미처 피하지 못하고 죽은 이들이 42명이라고 추측하는 것이 합리적인 추론이라 하겠습니다.
50명이 한사람을 둘러싸도 두려운 일이지만 100명이상이라면 상당히 위협적인 일이었을 것입니다.
단지 놀렸다기 보다 집단으로 대적했다고 해석될 수 있습니다.
오 이거 설득력 있는데요? 요즘 중,고딩들 한테 둘러 쌓여도 무서운데 확실히 죽임당할 수 있는 상황이었네요
보면 "올라가라"라는 표현도 네 스승 엘리야를 따라 가라라는 표현이다보니, 단순하게 놀리는게 아니라 실제로 범죄현장이 될수도 있는 장면일지도 모르겠네요.
600년전 조선 경국대전에서 제시하는 결혼 나이가 남자기준 15세임
위에 제가 소견을 적어놨으니 참고하시면 좋겠습니다.
암콤 x
암곰 o
회개와 애통의 의미로 머리를 미는 경우가 있다면 그 모습을 조롱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현대에도 믿지 않는 분들은 감격하며, 회개하며, 기뻐하며 하는 찬양과 기도들을 보며 조롱하기도 하니까요.
그렇다면 '대머리야 올라가라'는 '그렇게 슬프면 너도 엘리야 따라 죽든지'정도로도 생각해 볼 수도 있지 않을까요?
이런 경우에는 단순히 하나님의 사람을 모독했다기보다 하나님을 향한 모습과 생사에 대한 조롱으로 인한 결과라고 볼 수도 있을 것 같고요.
그럼에도 42명은 왜그런지 모르겠네요.
저는 벧엘성에 대한 심판이라고 봤습니다. 아이들이 저렇게 단체로 나와 엘리사를 공격했다는 것은 단지 아이들의 문제가 아니라 그 부모와 공동체에 흐르는 의식의 문제였을테니까요.
"곰은 사람을 찢어!" 를 이미 구약에서 실현했었구나..
성경의 단어를 히브리어 원문에 비추어 '사실은 그 뜻이 아니다' 라는 유형의 설교나 말씀이 매우 많습니다. 저도 그러한 설교 말씀에 상당 부분 동의합니다. 그러나 문제는 그런 말씀들이 많은데 그렇다면 성경 해석이 잘못된 것이 아닐까요? '아이들'이라고 쓰고서 '사실은 아이들이 아니다'라고 한다면 차라리 한글로 번역할 때 '청년들'과 같은 식으로 번역했어야 옳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번역에 대해서 말해야겠죠 ㅎㅎ 잘못된 번역은 반역이다 라는 말이 생각나네요
우리 성경은 주로 중국..일본 성경을 재 번역한 것이어서 오류가 많습니다..한국에도 제대로 공부한 원어학자들이 많아서 제대로 된 번역본을 발행할 수 있지만 대한성서공회가 판권을 가지고 있어서 불가능하다는 소리를 들은적이 있습니다.
우리나라에 신학 박사, 석사 학위 이상 목사가 수만명인데, 아직도 제대로 성경을 번역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왜 자꾸 영어판 성경을 참고할지? 왜 직접 번역을 시도하지 않을지?
어색하고 해괴한 우리말 번역은 왜 방치하는지? 왜 번역오류 시비가 끊이지 않는지? 성경은 완벽하며 고칠 것이 없다고 하는데, 왜 자꾸 개정판이 나오는지? 개정판이 나와도 논란은 끊이지
않는지?
@@ABC-kx5gy현재 '새한글 성경'이라는 새로운 번역본을 만들고 있습니다. 원래는 이미 나왔어야 했는데, 다시 수정 중이라고 하네요. 당연히 원어로 번역하고요.
번역이 완벽할 수 없는 건, 당연히 언어가 일치하지 않기 때문이죠. 히브리어, 아람어, 헬라어가 우리말과 1대1로 대응하지 않으니까요. 같은 단어여도 여러가지 뜻으로 쓰이고, 번역자의 해석에 따라 뜻이 달라지는 부분도 많습니다.
또한 원본 자체가 없기 때문에, 어떤 사본을 참고하느냐에 따라 번역이 달라지는 경우도 있어요.
@@자유-q8m판권을 가지고 있다는게 무슨말이죠? 번역본은 저작권이 있지만 새로운 번역본을 만드는건 저작권 문제가 없는데요? 저작권과 다른건가요?
구약 성서에서는 비슷한 예들이 가끔 나옵니다. 그것은 재난을 당한 것인데 마침 그 직전에 엘리사를 조롱한 사건이 있었기 때문에 그와 연관하여 이야기가 기록된 것이라 보아야 합니다. 어떤 사람이 심각한 죄를 지었다고 하나님께서 즉석에서 벌을 내리지는 않습니다.
열왕기하 4장 34절에 대한 내용은 어떻게 봐야하나요??
감사합니다😂
어릴때 이 본문 보고 대체 뭐지..??
영상의 내용과 비슷하게 정리한 어떤 설교를 듣고 나서야 그제서야..
마지막은... 알려주세요?
모르는 건 모르는대로 놔둬야 합니다. 10가지 재앙에서 죄없이 죽은 애굽의 첫째 아이들에 대한 공정함은요?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회개의 기회를 얻지 못한 것은요? 모두 고대의 인권 감수성에는 문제가 없으나 현대의 인권감수성에서 걸리는 부분들이죠. 이거, 어차피 해결 안됩니다. 설명하려는 것이 오히려 구차합니다.
선생님. 이 표현은 어떨까요? "악의 세력에 대하여서는 하나님의 즉결 심판권이 있다."
모르는 것을 안다고 말하는 사람이 너무 많은 세상임
@@GiwoonPark 여전히 설명 안됩니다. 애굽의 장자을은 바로의 잘못과 무관하니까요
@@trueself1752 애굽의 장자들이라는 개개인의 관점 보다는 악을 대표하는 애굽(의 왕 바로)의 관점에서 볼 수 있지는 않을까요? 물론 하나님께서는 이방인들도 구원하시지만 이스라엘을 신실하게 출애굽 시키는 상황에서 애굽은 (하나님의 백성을 죽이려 하는) 악의 축으로 이해되지 않나 생각해 봅니다.
@@trueself1752 공정은 어떤 공정을 얘기하시는거죠??
당시 시대적 상황에서 보면 아합 이후 그의 아들들 역시 참혹한 길을 계속 걸어가고 있었고 영적인 상황에서 아합과 이세벨에 의해 위협을 당했던 엘리야처럼 엘리사 역시 무시 당하는 상황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실제적인 상황을 통해ㅓ 보여 주려고 하는 영적인 이스라엘의 상황과 곧 그들에게 닥칠 파괴적인 상황까지 예언적인 의미도 함께 포함되어져 있다고 봅니다. 엘리사의 영적인 권위에 대한 강조도 있겠지만 이런 일들을 통해서 닥치게 될 예후를 통해서 일어나는 처참한 진멸 더 나아가 앗수르에 의한 진멸까지.. 그들이 그렇게 진멸 당하는 이유의 중심에는 하나님께서 보내신 자에 대한 멸시와 거부가 있었음을 보여주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42명의 청년이 죽었다는 말은, 비극적이고 참혹한 사실이긴 하지만
엘리야에서 엘리사로 하나님의 역사가 이어져 나가려던 찰나에
청년들이 나서서 엘리사와 하나님을 조롱하고,
이스라엘을 회복하려는 그 모든 시도를 비방하고 경멸하며,
바알을 숭배하는게 만연하는 시대에 머물게 하려고 했다는 걸 볼 때,
하나님의 심판이 그들에게 즉각적으로 임했단 부분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신약 성경에서도 이해되지 않지만,
하나님께 드린 것을 일부 떼먹은
아나니아와 삽비라도 즉각적인 심판을 받죠.
그런 일이 오늘 날에는 일어나지 않지만,
당시 초대교회 가운데 일어났던 이유는
그것이 하나님의 첫걸음 가운데 일어난 일이기 때문이라 봅니다.
하나님의 일하심의 방향성을 뒤흔들어 놓을 수 있는 행동인거죠.
마찬가지로 엘리사를 통해 벧엘과 이스라엘에게 이루실
회복의 첫걸음 가운데, 그 처음부터 기를 쓰고 반대하며
하나님께 대적하는 자들인 청년들을 즉각적 심판으로 죽이심으로써
오히려 앞으로 하나님이 이루실 회복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부각시킨다 생각합니다.
올라가라는 의미는 1234 모두 해당되지 않을까요? 엘리야를 모욕함과 동시에 엘리사 네가 뭘 할 수 있겠느냐 엘리야처럼 꺼저라. 이런 모욕과 무시를 표현한 것.
설령 애들이라고 한들 나이땜에 자동으로 심판이 면제된다는 것은 아니겠지요
ㅁㅝㄹ 말 하자는가야? 더 헷갈리게 하는구먼, 그냥 이해 안 된다고 해여
평소 궁금해서 찾아봤는데 비슷한 결론들이시더라구요... 단순히 대머리를 놀리는게 아니라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을 모욕하는 벌언이라고...그래도 이해는 잘 안되는 어려운 본문인거 같습니다
항상 생각할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말씀도 듣고 생각해보니 엘리사의 사역초기에 그를 엘리야의 후계자로 인정하기를 거부했던 벧엘의 젊은 생도들이 저주를 받은 것 아닐까 생각이듭니다.
ㅋㅋㅋㅋ 100만 대머리인들이여 환호하라!!
하나님께서는 대머리를 이처럼 사랑하사.
암콤을 보내주셨으니
이는 대머리인을 조롱하지않고 옹호하시기 위함이라.
볼드복음 3장 16절 말씀입니다.
요한계시록 11장
1 또 내게 지팡이 같은 갈대를 주며 말하기를 일어나서 하나님의 성전과 제단과 그 안에서 경배하는 자들을 측량하되
2 성전 바깥 마당은 측량하지 말고 그냥 두라 이것은 이방인에게 주었은즉 그들이 거룩한 성을 마흔두 달 동안 짓밟으리라
3 내가 나의 두 증인에게 권세를 주리니 그들이 굵은 베 옷을 입고 천이백육십 일을 예언하리라
4 그들은 이 땅의 주 앞에 서 있는 두 감람나무와 두 촛대니
5 만일 누구든지 그들을 해하고자 하면 그들의 입에서 불이 나와서 그들의 원수를 삼켜 버릴 것이요 누구든지 그들을 해하고자 하면 반드시 그와 같이 죽임을 당하리라
저는 이구절과 상관이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먼저올라간 엘리야와 남아있는 엘리사
올라간자와 남아있는자들
남아있는자들을 조롱하는 세상 -> 42명 ->42달-> 3년반동안 조롱당함 짓밟힘당함
2마리 암곰 -> 두 증인->두 감람나무(참감람나무, 돌감람나무), 두 촛대(두 교회, 서머나교회, 빌라델비아교회)
요한계시록 13장
9 누구든지 귀가 있거든 들을지어다
10 사로잡힐 자는 사로잡혀 갈 것이요 칼에 죽을 자는 마땅히 칼에 죽을 것이니 성도들의 인내와 믿음이 여기 있느니라
먼저 (하늘로)사로잡혀간자와 칼에 죽을 순교자
마지막때에 끝까지 깨어있어 인내와 믿음으로 주님만 의지하는 성전되시길 축복합니다.
마 22:14.
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입은 자는 적으니라
모든 인류가 다 구원의 대상이 될 수 없을지도 모른다고 본다면
그리 놀라울 일이 아니리라 생각됩니다
구약에서 이방인들은 하나님과 아예 상관이 없는 자이며
이는 하나님께서 그들과 교제할 방법이 거의 없고 그들을 모른다고 말하심과
같습니다
영원한 생명은 오로지 하나님께로부터 비롯됨이니
하나님과 상관이 없는 자가 어떤 권리를 주장할 수 있겠습니까?
의인과 악인에게 동일하게 햇빛과 비를 주시는 하나님의 긍휼은
당연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당연히 그렇게 하시겠지 생각하는 우리의 선입관이
진리를 가리게 되는 줄로 믿습니다
야훼가 우주 만물과 사람을 만들었다고 해 놓고, 굳이 인간 중에서 유대인만을 택하고, 그 중에서도 불신하거나 의심하거나 타 신을 믿으면 죽이고, 타 민족도 진멸하고.
종교는 정답이 없는 듯.
요즘의 목회자 과거의 선지자들과 비슷한 대우를 거절
겸손이면 좋은데 그게 아니라 구약의 선지자, 신약의 사도들과 같은 능력을 갖고 있지도 갖으려는 방법도 이로 인한 노력자체도 교단의 시스템 적으로 막혀 버렸기 때문
주님께 기름부음 받은 종을 멸시하고 천대하면 어떻게 되는지 보여주는 간단한 구절이 위의 이유 때문에 구구절절 길어짐
구약은 신약의 예시적인 글이 많이 있습니다.
실제적인 예화라고도 볼 수 있지요.
하나님의 사람들을 모독하거나 ㅡ놀리거나 해하거나
하는 나쁜 짓을 하면
하나님께서 심판 즉 벌을 내리신다는 뜻입니다.
실제로 경험을 많이 해 봐야 그 뜻을 잘 이해 할 수 있습니다 .
이 사건은 엘리야와 엘리사가 같이 있다가 엘리야만 승천한 직후에 일어난 사건입니다. 성경 말씀도 열왕기하 2장 같는 장의 내용이구요. 엘리야의 승천은 마지막 때의 휴거 사건에 대한 예표입니다. 그리고 엘리사는 엘리야가 휴거되었음을 전하는 사역자들을 말합니다. 아이들이 엘리사를 라고 놀린것은 엘리야가 휴거되었다는 사실을 전하는 분들을 향해 하며 비아냥거리고 조롱하는 자들이 있을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이런 자들은 영적인 어린아이라는 의미이고 42명은 42달 즉 7년 환란 중 후 3년반 동안 그들은 두 짐승(두마리의 암곰, 적그리스도와 거짓 선지자)에 의해 죽임을 당하게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엘리사의 미로 2
엘리사에게 엘리야가 조건을 건 것은 나는 책임을 지지 않겠다는 의미와 같습니다.
나는 모르겠고 하나님이 알아서 하시리라! 라는 뜻.
그러면 어째서 그런 말을 했을까?
1. 학생아! 내가 하나님의 감동으로 이 가시밭길을 걸었는데,
넌 머하러 따블이나 가려고 하느냐? 라는 책망의 의미와
2. 너는 그것을 감당할 그릇이 안되는데 어쩌자고!
라는 뜻도 있겠습니다.
엘리사의 입장은!
1. 엘리야 선생의 감동으로도 이 나라가 바로 서지 못했는데,
내가 따블을 받아서 이스라엘을 굳건히 세워야지!
2. 영적 탐심에서 기인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병들어 죽은 것을 봐서!)
어쨌든 엘리야의 말대로 엘리야의 승천을 목도했고,
겉옷으로 요단강을 치니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그런데!
엘리사가 선생의 겉옷으로 요단강을 치면서 머라고 했죠?
"엘리야의 하나님이여 어디 계시나이까!"
이 말이 무슨 의미죠?
3편으로
제 생각에는 엘리사를 하나님이 보내신 선지자로 인정하기 보다는 엘리사의 외적모습이었던 대머리를 놀리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엘리야가 하늘로 올라 간 것에 기인하여 올라가라 하는 것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래서 두 가지를 종합해보았을 때 "우리는 네(엘리사)가 하나님의 선지자로 온 것에 관심없고 그냥 엘리야처럼 하늘로 꺼져라" 하고 말하는 것은 아닐까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경고를 무시한 이들에게 징벌을 내리신 것 아닐까요? 영상에서도 언급하셨지만 어린아이들이라 나오지만 결코 적은 나이가 아니었기에 징벌하신 것이라 생각합니다. 혹은 그들의 부모에게 경고하신 것일 수도 있고요
엘리사의 미로 1
참으로 긴 시간 숙고했었는데요. 제가 얻은 것을 써보겠습니다.
일단 엘리야와 그 제자 엘리사의 차이를 살필 필요가 있지 싶어요.
엘리야는 (또!) 라는 말을 했던 것으로 봐서 형제가 재앙으로 죽었고 모친은 과부였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명령으로 시냇가에서 긴 시간을 고독과 사투를 벌였지요.
반대로 엘리사는 12겨리 소를 운영하는 금수저 출신?
살아온 과정이 다르죠!
엘리야 입장에서 후임의 엘리사가 그렇게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엘리야가 엘리사를 떼놓고자 자꾸 남으라 하고,
엘리사는 어떠한 덕담이나 인수인계도 없이 떠나려하는 선생을 붙잡았다고 봐야겠죠!
결국 요단강을 건너서 엘리야가 묻지요.
원하는 것은?
따블이요!
어려운 것을 구하는 도다.
여기에서 엘리야는 그냥 하나님께 말만 하면 되는 것을 어째서 어렵다 말하고 조건을 걸었을까?
엘리사의 갑절 요청은 장자권으로 설명되지 않습니다.
장자권은 아버지의 소가 8마리 라고 치면 아들이 셋인 경우 장자에게 4마리를 주는 것이 장자권이지,
엘리사의 갑절요구는 16마리를 달라는 의미라서 전혀 해당이 안됩니다.
2편으로!
개인적인 의견은 우선 엘리사의 첫 사역 시작이며 하나님이 북이스라엘을 어떻게 하실거신가에 초점을 맞춰보면 좋을 듯 싶네요.
물때문에 유산을 하는 여리고 성읍의 물을 개선시키시며 그들의 회복을 말씀하시며 베델의 우상숭배에 심판하신다는 회복과 심판의 메세지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꼭 그렇게까지 해야 했을까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그 청년들의 영적 상태를 통해 그 나라의 영적상태를 지적하시며 삼판하시겠다는 하나님의 의지로 보여집니다.
구약에는 잔인한 내용이 많은데, 오늘은 곰의 어린이 살해 이야기를 알게 되었네요. 왜 야훼는 말리지 않았을까? 아니면 일부러 시킨 것인가? 방조한 것인가 궁금하네요.
성경은 과연 완전할까요? 읽어도 뜻을 모르고 다양하게 해석할 수 있다면 완전한 책일까요? 이런 구절이 하도 많으니 계속 교파가 갈라지고 끊임없이 이단?이 생기죠.
최악의 사례가, 구약 이사야서 해석을 두고, 유대인은 예수와 신약을 인정하지 않고, 기독교는 인정하죠. 둘 중 하나는 틀린 거고.
성경의 내용 중 애매하고 뜻을 모르는 구절은 상당히 많죠. 신약에서 부자가 천국가는 비유에서, 낙타가 바늘구멍 통과한다는 얘기도 그렇고. 그건 낙타가 아니고 밧줄이 아닐지.
잘 모를 땐 그냥 모른다고 하세요.
좀 무섭긴 하네요 역시. 인간은 때로는 하나의 npc에 불과해 보일때가 있어요. 두려운 부분이죠.
구약의 하나님은 살벌하죠. 그러다가 신약에서는 갑자기 사랑, 믿음, 용서를 강조하죠. 성경에 1획 1점도 보태지 마라. 성경은 완벽하다고 하면서 굳이 신약에서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말하는 걸 보면, 구약이 맞나요? 신약이 맞는 건가요? 성경은 참 이해가 안 됩니다.
@@ABC-kx5gy구약의 하나님이 신약의 하나님입니다.
그러니 너는 당장에 가서 아말렉을 치고 그 재산을 사정 보지 말고 모조리 없애라. 남자와 여자, 아이와 젖먹이, 소떼와 양떼, 낙타와 나귀 할 것 없이 모조리 죽여야 한다.'"
(사무엘상 15:1-3, 공동번역성서)
이런 문장도 있는데 뭐...
곰 두마리가 수십명의 사람들을 해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이로 미루어 보건데 엘리사를 둘러싼 사람들은 매우 많았고 이들은 최초로 우상이 세워진 자신들의 도시를 바울 때의 에베소 사람들과 같이 자랑스러워 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이 엘리사를 향한 태도는 매우 적대적이었고 모세 때와 같은 사건은(돌로 치는)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습니다. 이때의 장면을 우리가 보았다면 이 무도한 사람들로부터(사실 폭도들에 가까운) 하나님의 선지지를 지키는 것은 매우 급박한 하나님의 개입을 필요로 했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특히 이방인들도 아닌 이스라엘 사람들이(엘리사를 통해 일하시는 하나님의 일들에 대해 들었을 것이 분명한) 그럼에도 불구하고 적극적으로 반대하고 중단시키려 했다는 점은 그 당시가 얼마나 암물했는지를 알려 줍니다.
동의합니다. 동족상잔의 역사는 선지자들 시대 훨씬 이전 이미 사사 시대부터(베냐민 지파를 멸족시키려 했던..) 아니 더 거슬러 올라가 가인과 아벨부터 시작 되었던 것 같습니다. 구약 성경을 묵상하다 보면 내가 남 욕할 처지가 아니구나 절실히 느낍니다.
문단을 나눠 글을 작성하시면 읽기 좋을 것 같습니다.
구약에는 "태양을 정지시켰다"는 얘기도 쓰여 있을 정도인데요 뭐.
사람의 생각에 의해 하나님의 행위가 인정되니 안되니 하는 것은 하나님을 사람 수준으로 끌어 내리는 행위입니다. 성경을 잘 모르겠으면 그대로 두면 됩니다.
옛말에 탈모인이 한을 품으면 곰이 사람을 찢어 죽인다 라는 말이 있지요
1.반대는 할 수 있어도 모욕은 안된다.
모욕은 논점과는 상관없는 오로지 해할 목적의 표현이다. 엘리사가 누구인지 알면서도
그러했다면 죽어 마땅하다.
마치 악어의 아가리에 팔을 들이밀고도 나는 괘찮을 것이다라고 말하는 격 아닌가!
무슨 오만인가!
2.저주는 하지 말자.
이 구절을 오로지 암곰을 내려 아이들을 찢어죽인 하나님에만 맞추면 결국아이들의
잘못 만을 파고든다. 하지만 엘리사는 어떠한가? 하나님이 암곰을 보내 아이들을
찢어죽엿다고 해도 엘리사의 처사에 대해 옳다고 하시리라 생각하는가 말이다.
'맹세를 하지말되 아주 하지말라.'라고 성경은 말한다.
되어지먄 되돌릴 수 없고, 안되어지면 하나님이 모욕 받는다.
입다는 승리 후 귀환 하던 중 자기를 위해 나오는 가장 첫번째 것을 희생제물로 드리겠다
맹세한다. 설마 자기 딸일줄 몰랐을 것이다. 그럼 남종이나 여종이나 아니면 아내가 가장
먼저 뛰어나왔다면 어쩔것인가? 그들의 목숨은 가축목숨인가?
입다의 맹세는 그릇됨 맹세의 표본과도 같은 것이다.
그리고 입다는 자기 딸을 직접 번제물로 드렸다고 한다. 당시에는 이미 성막이 있었으며 여호와의 사제들이 있었고 이들이 모세오경의 명령에 따라 규율대로 제사를 주관 했다.
하지만 딸을 올린 장작더미위에 불을 붙인것은 입다 이다.
모든 여호와의 제사장들이 인신공양을 거부했던 것이다. 그렇게 입다는 딸을 위해 어떤 간구도 하지 않은채 '약속대로' 딸을 불태워 죽였다. 비정하다는 말로는 무마할수 없는 석연치 않은
처사였던 것이다.
엘리사가 저주를 내렸을 때 저주대로 참사가 일어났다. 엘리사가 자기말의 무게와 그것을
행하시는 여호와의 권능을 잠시라도 생각했다면 그랫을까 싶다.
그럴만했으니 그렇겠죠... 어린노무 자식들이마랴
찢었더라는 말이 죽였더라는 말은 아니지 않나요? 상처가 나서 몹시 괴롭다는 뜻이 아닌지?
개인적인 해석은 부모가 선지자나 제사장을 하나님이 택했다고 생각했다면 아이들에게 저런 반응은 나올 수 없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활동지역이 북이스라엘이고 평소의 어른의 언행이나 인식이 아이들에게 당연히 영향을 미쳤을 것이고 당시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사람들에 대한 태도에 대한 하나님의 징계이자 경고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금송아지 숭배자들이 하나님의 선지자를 조롱하자 하나님이 진노하신 사건
소수에 대한 다수의 횡포에 철퇴를 놓으시는 하나님.
청소년 범죄에 대한 미온적 처벌의 현 세태를 되돌아보게 하는 본문.
어떤 왕이 사신을 보냈는데 상대가 그를 능욕하고 무시하는 대도 가만히 있을 왕이 있을까요? 이것은 자신의 얼굴에 침을 뱉는것이라 생각합니다
하물며 하나님을 대적하는 우리 인간은 어떻겠습니까?
우리가 매우 착각하는 것이 하나있는데 우리는 하나님의 원수이고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죄와 사망에서 구원받는 것이 맞지만
정확히는 하나님의 진노로 부터의 구원입니다
그분이 우리 모두를 벌하신다 해도 우리는 할 말이없습니다 그분은 모든 것의 주인이십니다
당신이 물건이나 짐승이 있는데 그것이 싫거나 나에게 불편함을주어서 버린다할지라도 누가 당신에게 따질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다행이 우리 주인께서 얼마나 우리를 아껴주시는 자비로운 분인게 또한 얼마나 감사한지요
저는 그분의 긍휼을 입을 어떤 자격도 없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참 주인 되십니까?
아니면 아직도 내가 내 인생의 주인입니까?
맨 윗 단락이 가장 와닿는 해석이네요 ㅎㅎ
촛점
1.작은아이들
동네에서 늘 모여
노는 놈팽이 젊은이
2.올라가라
엘리야가 회리바람
을 타고 하늘로 올
라 간것을 사기라고
생각하고--너도 올
라 가라고 놀렸기
때문.하나님을 조롱
한것.
3.사건의 배경
선지생 50명이 그
지역을 3일동안 수
색(동네가 시끄러
웠겠죠)
하늘로 올라간 것을 믿지 않는 비웃는 행위에(하나님 모독
죄) 대한 심판.
지혜를 보탭니다! 가나안 땅에서 여리고는 유일하게 하나님의 저주에 의해 무너진 성입니다. 그래서 그곳에서는 아무것도취하지 말라고 하셨지요.그곳을 복원하지도 말라고 하셨지요.복원하는 자의 아들들이 죽을 것이라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저주는 이토록 영원하고 무서운 것입니다. 그런데 저주받은 여리고성에 사는 사람들이 엘리사에게 저주로 인해 그 땅에서 솟아나오는 쓴물을 단물로 바꾸어달라고 간청하자 엘리사는 하나님의 뜻에 반하여 간청을 들어주게 됩니다.흠없는 어린아이 42명은 여리고성의 저주를 제거하는 대속의 피인 것입니다. 사람이 선악과를 먹은 저주는 예수님께서 대속하셨습니다. 피흘림이 없은즉 죄사함도 없습니다. 말씀이 꿀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엘리사는 선지자가 되고 싶어서 평생을 그렇게 소원했었죠...결국 소원을 성취했습니다. 사탄은 당신의 소원이 성취되자 마자 그것을 망쳐놓길 원해요. 사탄은 엘리사가 인간의 힘으로 애들을 패주길 원했을 겁니다. 아마도 엘리사가 아주 오래전에 어린 애들과 관계가 좋지 않았을 수도 있어요. 과거에 나쁜 죄가 있거나 연루된 경우, 사탄은 그것을 여러분이 성공하고 새 사람이 되어도 그것을 가져와서 다시 사용합니다.
흥미로운 해석이네요. 참고하겠습니다.
성경에 의하면 세상 만물은 누가 만들었나요? 사탄은 누가 만들었나요? 천사가 배반했다고요? 전지전능한 하나님이 그걸 몰랐다구요? 말세 때 싸그리 심판한다구요? 그럼 말세는 언제인가요?
하나님만 아신다구요? ..................... 종교는 답이 없습니다.
현대의 기준으로 이상하게 해석하는 것 같네요. 고대의 대머리관념은 현대와 다릅니다. 고대에는 대머리라고 놀리지 않습니다. 거란족의 곤발(髡髮)과 만주족의 변발(辮髮), 일본의 촌마게(丁髷)처럼 대머리 자체가 특정 민족이나 문화의 정체성을 나타냅니다. 메소포타미아의 수메르인들은 대머리로 생활했습니다. 그러나 수메르인을 몰아내고 메소포타미아를 장악한 셈계민족들은 긴머리와 긴수염을 그들의 정체성으로 생각하고, 지금도 중동지방에서는 긴머리와 긴수염을 고수하고 있지요.
실제 만주족이 명나라를 정벌하고 대대적으로 변발령을 내립니다. 그런데 한족들은 변발을 거부하고, 그 댓가로 엄청난 한족들이 만주족에게 학살당합니다. 단순히 머리모양 하나로 중국대륙은 피바다가 됩니다. 그리고 구한말 한국에서 의병이 일어난 근본이유는 "을미사변"보다는 "단발령"에 있다고 합니다. 엘리사의 대머리사건은 현대의 관점처럼 단순한 희롱이 아니라 세르비아인이 보스니아인과 코소보인을 학살한 것처럼, 르완다에서 후투족이 투치족을 학살한 것처럼 과격한 문화충돌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장발을 고수하는 공동체가 변발을 고수하는 공동체를 공격했다가 처절한 복수 혹은 학살을 당한 것 같습니다. 더구나 학살한 당사자가 엘리사 계열의 사람이라, 자신들의 악행을 곰의 소행으로 포장한 것 같습니다. 보스니아인과 세르비아인은 같은 세르보-크로아티아어를 쓰는, 방언차이 밖에 나지 않는 같은 유고슬라비아인이었지만, 한국인의 시각으론 단순한 종교의 차이가 대량학살을 불러일으킨 것이죠. 더구나 학살당한 보스니아인들은 비교적 자유롭고 세속적인 이슬람을 믿었지만 정교회를 믿는 세르비아인들에겐 학살의 대상이 된 것입니다. 특히 셈계민족들은 훗날 이슬람을 믿어 순화된 아랍인으로 거듭나기전까지는 상당히 배타적인 민족이라고 생각됩니다. 아시리아와 신바빌로니아의 이민족에 대한 대우를 보면, 분명 과격한 문화충돌일 가능성이 짙습니다.
해석을 포기하는 이유는 세속의 입맛에 영합하는 인본주의적 해석을 하려고 하기 때문.
그것이 바로 자유주의 신학의 한계. Period.
대머리 의미 1,3번은 근거 설명이 좀 부족하고 논리가 좀 부족한 것 같습니다.
그건 휴거를 조롱하지 말라는 하나님 의 뜻입니다
엘리야의 승천후
대머리인 엘리사에게 너도 휴거되어봐라 고 놀린죠
대머리여 올라가라 올라가라고 놀린것 즉 휴거를 놀리는것에 대한 하나님의 엄중하신 교훈이죠
성경말씀은 우리들에게 무엇인가 영적 교훈을 주기위해 역사적 이야기로, 예언적 풍자로, 시로, 기도로, 노래 가사를 통해 비유로 상징으로 기록해 주셨습니다. 거기에서 영적 교훈을 찾으면 됩니다. 엘리사는 예언적 말씀으로서의 예수님을 상징하기에, 엘리사의 머리카락은 예수님의 가장 외적인 문자 수준의 예언적 말씀을 상징합니다. 원래 머리카락은 그 사람의 사랑과 지혜가 외적으로 드러나는 것을 상징합니다. 그래서 나실인인 그 머리카락을 신성시하여 칼을 대지 않았던거구요. 특히 주님의 머리카락은 흰양털(white wool)과 흰눈(white snow)처럼 보이는데(다니엘7:9/계시록1:14), 이 성경 구절에서의 주님은 인자(Son of man)은 말씀으로서의 주님을 표현할 때 사용하는 단어이므로, 흰양털과 흰눈은 하나님 말씀의 가장 외적인 문자적 수준이 어떠함을 상징적으로 표현하고 있는데, 흰양털은 양에서 나오므로 하나님의 선하심과 거기에서 나오는 사랑을 상징하고, 흰눈은 물에서 나오기에 하나님의 진실하심과 그기에서 나오는 믿음을 상징합니다. 이 두 속성은 떨어질 수 없으며 항상 하나로 존재합니다. 그러나 그 중요성은 선함이 먼저이고, 진실함이 둘째가 됩니다. 그러기에 여기서는 양털이 먼저 언급되고, 눈이 나중에 언급된 이유입니다. 그러나 사람이 거듭나는 과정은 믿음이 먼저 생성되고 성품이 변화되는 선은 나중에 형성되므로, 니고데모에게 사람이 거듭나는 순서는 먼저는 물이요 어어서 성령이라고 하였습니다. 성령은 머리카락에 있어서는 흰양털에 해당되겠지요. 개인적으로 저는 한의사로서 음양이론을 통해 성경말씀을 이해하기도 합니다. 예들들어, 흰양털은 음에, 흰눈은 양에 해당한다고 느낍니다. 음은 내적 속성이며, 양은 외적 속성인데, 선하심은 하나님의 내적 속성이며, 진실하심은 하나님의 외적 속성이기 때문입니다. 다시 열왕기하2장에서 작은 아이들이라 함은 영적으로 미성숙한 사람들을 상징하는데, 여기까지는 좋습니다. 누구나 다 이 과정을 통과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과정의 사람들에게, 곧 영적 초보 단계의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 이러한 행동을 조심하라고 경고해 주십니다. 아이들이 엘리사의 머리를 보고 대머리야 대머리야라고 조롱하였다 함은, 영적으로 미성숙한 사람이 성경 말씀을 읽고, 이해가 되지 않을 경우, 그 속에 어떤 깊은 영적인 교훈이 있을까 묵상하지 않고, 그 내용을 깎아 내리고 무가치한 것으로 폄하해 버리는 것을 말합니다. 나중에는 이 말씀에는 영적인 뜻이 없다, 넌센스다, 나중에는 성경 말씀을 그냥 그대로 믿자... 문자 그대로.... 하나님은 사람들을 사랑하시기는 하지만, 화가 나시면, 화내시고, 벌주시고, 심하면 죽이기도 하시고, 고문하고 저주하고 때론 자기가 계획하시고 행하셨던 것을 후회하시기도 한다.... 는 성경 말씀을 복잡하게 생각할 필요없이 그냥 문자 그대로 하나님께서 그러기도 하신다고 그냥 믿자.... 이런 지경까지 이르면 그 사람은 곰에게 물려 죽는 지경까지 이른 것입니다. 곰이란 우리나라 속담에서도 미련한 사람을 "이 미련한 곰아"라고 하지 않습니까? 계시록13장의 곰은 말씀을 읽지만 이해하지 못해서 결국 왜곡되게 해석해 버리는 사람을 상징합니다. 사자와 표범은 말씀을 자신의 악한 기질을 방어하는 수단으로 해석하여 공격적으로 교회를 파괴하는 사람들이라면, 곰은 두 짐승보다는 공격적이지 않지만 그래도 문자 수준의 말씀 이해에서 안주하고, 더 깊이 알려고 하지 않는 사람들을 상징합니다. 참고로, 곰이 2마리인것과 어린 아이들이 42명인 것도 다 영적 교훈을 담고 있습니다. 지금도 2, 42, 뭐 특별한 뜻이 있겠어? 그냥 두마리, 마흔 두명이었겠지... 하진 않겠죠? 그렇게 할때 우리가 바로 대머리야 대머리야 하고 조롱하는 자들이 되고 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런건 아무 도움도 안되는데 괜한것에 애쓴다,,성걍에 연구할게 얼마나 많은데,,가지가지한다,,
사람들은 어리석어서 하나님에 대한것도 자신의 판단으로 해석하려고 합니다! 여기서
작은 아이라 함은 아이 중에도 작은,작다라는 뜻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작은 아이라함은 큰 아이도
있다는것입니다! 왜 찢었을까? 성경에 더 이상 다른 해석이 없으니, 엘리사가 놀림받고 화가나서 저주하게 되고
당시 능력이 충만했던 엘리사를 통해 얼마든지 생겼을 일이라 보여집니다! 엘리사는 죽은 아이도 살려낼 만큼
엘리야보다 더 큰 능력이 있었지요!..작은아이들을 암콤으로 찢은것은 잔인한것은 맞겠지요..ㅎ
이건 난해본문 아닌데요? 주석서에 다 나와있습니다. 주석학자들 중 엘리사가 잘못했다고 한 사람은 없습니다. 엘리사는 "그리심산에서 저주를 선포하라"라는 말씀을 근거로 저주한 것이고 이는 선지자의 권위를 세우기 위한 일로 옳은 일입니다. 이게 왜 난해본문임?
엘리사 미로 3
엘리야의 하나님이여 어디 계시나이까?
라며 요단강을 친 것은 어쩌면 모세가 므리바 바위를 내려친 마음일 수도 있지만,
지금 선생 엘리야가 회오리에 휩쓸려 죽었는데
하나님 당신이 참말로 살아있습니까?
살아있다면 입증하시오! 라는 의미로 봐야 되겠습니다.
불말과 불병거가 부지불식 간에 벌어진 일이라서
그 광경을 목격한 모든 사람이 자연재해로 인식했고, 엘리사조차도 자연재해로 인식했던 것.
사람을 들어올릴 정도의 회오리라면 옆의 엘리사, 요단강 물까지 휩쓸 정도의 광풍 정도는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엘리사도 겉옷도 요단강 물도 멀쩡!
이것은 하나님의 이적임을 입증하는 것이겠지요.
여기부터가 42명의 시발점입니다.
그리고 42명이 죽은 것이 아니고 찢긴 것입니다.
죽은 것이 아니고 찢겨서 살해당한 것이죠. 글쓴이의 의도가 보이는 거죠. 그냥 죽일수도 있는데 찢어 죽였다. 잔인하고 폭력적이고 공포를 주려는 의도겠죠. 구약에는 이런 대목이 많이 나오죠.
@@ABC-kx5gy 죽였으면 죽었다 라고 정확히 기록합니다. 그 밤에 앗수르 군사185,000을 시체로 만들었더라!
@@ABC-kx5gy 성경은 죽은 경우 정확히 기록합니다.
앗수르 군사 185,000명의 목숨을 취하셨다.
사자에게 찢긴 유다의 선지자를 시체!
하나님께서 죽였을 때에는 정확히 죽였다! 라고 기록하셨어요.
말을 빙빙 돌려서 기록하게는 안하신 것으로 판단합니다.
당시의 샤먼들이 만든 샤먼들을 숭배하라는 이야기로 일종의 협박임.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아
성경을 신학으로 보라 하더냐
그것을 사람의 계명이라 하는 것이다 다른 말로 조문으로 죽인다 함이다 고후3:6
조문은 사람을 죽이는 것이다
조문은; 성경을 문자대로 내가 읽고 성령의 계시 없이 사람의 이해 지식 문화 상식등을 동원하여 이해 한다고 생각한 교훈을 말하며
이렇게 가르침 받으면 사람을 살리는게 아니라 죽인다 함이며 이것이 적그리스도라 함이다
성령을 받으라 했고
성령이 오시면 예수께서 가르치신 말씀을 생각나게 하신다 함은
계시로 성경을 깨닫게 하신다 함이며
성령은 다른 말로 계시의 영이라 하심
그럼으로 성령이 오시지 않으면 계시가 없고 그런 이를 소경이라 하는 것임
그런데 선택받은 민족 유대인-유대교는 왜 성령을 인정하지 않죠? 왜 신약과 예수를 인정하지 않죠? 진리가 2개 일 수는 없고 누가 잘못된 건가요?
그럼 성경은 뭐 사람의 이해 지식 문화 상식이 없이 썼습니까 ㅋㅋㅋ
작성자의 이해, 당시 시대상 반영해서 쓴거지
이게 왜 기괴한 사건이지?
사람의 눈과 기준과 법으로 보니까
대머리인 선지자를 모욕했다고, "대머리야 꺼져라 꺼져라"했다고
곰(암곰) 2마리를 풀어 42명의 어린 청년들은 찢어 죽이시는...
역시 공포의 야훼.
에브라임사람들이 말을 조심해야 할것인데
엘리사에게까지 함부로 말하는 아이들이 어른들로부터 배워서 저주가 임한듯합니다
즉 사사기에서 입다의 길르앗 사람에 의해서 강나루터에서 4만 2천명이 죽었지요 이유는 십볼렛 발음을 잘못해서죠
에브라임족속의 교만때문이지요...여기서 다 댓글로 쓰기에 뷰족합니다
오늘날 교회생활에 적용하면 좋겠읍니다
허구 같다. 두마리가 어떻게 40명을 죽이나. 도망가고도 남았다. 성경을 액면 그대로 사실이라고 믿으면 곤란하다. 과장도 심하고.
두마리가 40명을 죽이나?? 곰과 싸우다 죽을 수도 있다. 도망안가고
신화에 뭐 그리 깊은 의미를 찾나
원문을 잘 알아야 합니다. 죽였다는 뜻이 없어요.공부 정확히 하고 가르쳐야.난해 구절 아닙니다.
찢으면 죽는 거 아닌가요? 옛날에 바로 119로 병원에 갔겠어요?
@@ABC-kx5gy 뭐 고대인간이 500년 살았다는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찢는정도야 집에가서 빨간약 바르면 나았다고 하겠죠 뭐
@@ABC-kx5gy 우리말로 번역하면 찰과상 입니다.
잡소리에
성경연구?
엘리사는 벧엘로 올라가는 중이었고, 아이들은 올라가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엘리사의 입장에서는 벧엘로 올라가고 있는데 작은 아이들이 거기로 올라가라고 하는 상황인 것입니다. 그런데 다른 이가 아니라 어린 아이들입니다. 성경에서 어린이는 아직 영적으로 성숙하지 못한 상태에 있는 자를 말합니다.
엘리사는 대머리로 나오는데, 머리털은 인간적인 생각을 말합니다. 왜냐하면 생각은 머리에서 나오는데, 마치 머리에서 머리털이 나오는 것처럼 생각도 머리에서 나옵니다. 그래서 온갖 잡다한 인간적인 생각이나 교리가 많은 사람을 머리숱이 많다고 표현합니다. 그런데 대머리라고 함은 그런 인간적인 생각이 없는 상태입니다.
성경에는 백발이라는 단어가 나오는데, 이것은 처음엔 검은 머리털이었다가 인생을 살면서 점점 자기 생각이 없어진 상태를 말합니다. 그러니까 백발이나 대머리는 비슷한 의미입니다. 그것은 세상에서 가지고 있던 선과 악을 구별하는 생각을 없애고 세상에 대한 미련을 버렸다는 뜻이며, 이것이 바로 안식한다는 의미입니다. 회개할 때 머리에 티끌이나 재를 뿌리거나 머리털을 뽑는다고 하는데 이것 역시 자기의 생각을 버렸다는 뜻입니다.
성경에는 올라간다거나 내려간다는 단어가 나옵니다. 이것은 영적으로 성숙하거나 하락하는 의미입니다. 공중 나는 새라는 표현도 있습니다. 이것은 땅에 발을 붙이지 않은 상태 즉 인간적인 가치관에서 벗어나서 안식에 이르렀다는 뜻입니다. 구원에 이른 사람은 최종적으로 하늘로 올라가는데, 이것은 구원의 완성을 의미합니다.
엘리사는 대머리인 상태, 즉 백발과 마찬가지인 상태가 되어 자기 생각을 비우고 엘녹, 엘리야, 예수처럼 올라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직 영적으로 미숙한 상태의 무리들이 엘리사의 그런 모습 일부(뒷모습)만 보고 자기들은 이미 올라간 상태인데 자기들이 보니 엘리사도 그런 상태에 도달하고 있는 것처럼 보여 너도 우리처럼 올라와라 올라와라고 비꼬듯이 말한 것입니다.
그들은 사십 두 명이었는데. 노예생활 사백 년, 모세의 사십 세, 광야 사십 년, 예수의 광야 시험기간인 사십 일처럼 사십은 충분한 상태를 의미하고 둘은 구원의 길을 가는 두 사람을 의미합니다. 그러니까 사십 둘이라고 해서 숫자가 사십 두 명이라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의 영적 상태를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영적 수준이 훨씬 높은 엘리사가 보기엔 그들은 어린 아이의 수준에 불과합니다. 그런 그들이 조금 안다고 비꼬듯이 우리처럼 너도 올라가라고 하고 있으니 가관인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그들을 친 것인데, 이 말은 그들을 가르쳐서 그들의 교만한 마음을 찢었다는 것입니다. 그들 중 사십 두 명의 마음을 찢었는데, 몇 명이냐가 아니라 영적으로 어린 상태의 사람 중 마음에 가책을 받아 회개한 사람의 영적 상태를 말합니다.
성경에는 (겉)옷을 찢었다는 말이 나오는데, 옷, 베, 그물은 가로세로로 정교하게 짠 것입니다. 베드로가 예수를 만나기 전에 찢어진 그물 즉, 자기만의 생각과 교리에 문제가 있어서 고치다가 예수를 만난 후 예수가 던지라고 한 하나님의 완전한 말씀인 그물을 던져서 많은 사람을 구했습니다. 옷 또한 인간적인 생각과 교리를 말합니다. 그래서 회개할 때는 옷을 찢는데, 사실은 내 마음을 찢는다는 뜻입니다. 그들을 찢어 죽였다는 것이 바로 이렇게 그들의 교만한 마음을 찢어서 교만한 마음을 죽여 회개하게 했다는 것입니다.
이 설명을 이해하거나 받아들일 사람은 아마 없을 겁니다. 기존 기독교의 설명과는 완전히 다르기 때문입니다. 이단과도 다를 겁니다. 그러나 성경을 문자적으로 해석하지 않고 상징과 비유로 해석하려고 애쓰는 사람이 있다면, 무언가 영감을 받을 것입니다.
신천지 멍청한 성구 파자풀이식 성경 해석
야훼가 잔인하다는걸 알려주는 구절이죠.
뭔가 너무 많은 말로 해깔리게 하네요. 엘리사는 대머리였고...그걸 놀린 아이들은 작은 아이= 어린아이 였고, 엘리사는 자신의 화를 참지 못했다는게 성경에 직접 나타나는 거라고 봅니다.
합리적인 이유와 어떤 뜻을 찾아 내는 것이 신학이라면 정말 안타깝다는 생각이 듭니다. 엘리사와 엘리야는 다른 사람이고 다른 성정을 가졌습니다. 엘리사는 그만큼 하나님의 영을 사랑과 인내라는 성품으로 받아 들이지 않았다는 걸 볼 수 있습니다. 지금도 많은 목사들이 하나님의 이름으로 불심판을 이야기하고...또 북한이나 다른 적(동성애자들)에게 저주하는 거 보면 엘리사가 떠오를 때가 많습니다.
제가 젊은 날에 기도원을 갔었는데요 기도원 원장님이 어떤 목사님 흉을 보시더라고요 제가 그래서 그 목사님 잘 아는데 그런 분이 아닙니다라고 말했지만 그분은 계속 흉을 봤어요 그리고 일주일 뒤에 병원에 입원한 걸 보았습니다 암에 걸린 거예요 저는 그때 깨달았어요 목사도 다 같은 목사가 아니고 주의 종도 다 같은 주의 종이 아닙니다 영권 있는 사람을 함부로 말하거나 흉 봐서는 절대로 안 됩니다
영권이 있다는 걸 누가, 어떻게 검증하죠?
그거는 신이 아니라 그냥 목사를 섬기는 거 아님?
영적의미가 잇는 부분같습니다 대환란기때 후삼년반에 주의날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심판을 말씀하고잇는것같습니다 42 명은 42달,적그리스도를 따르는 이스라엘(어린이) , 성경곳곳에서 이스라엘을 위한 마지막때 말씀이 숨겨져 잇습니다
;;; 너무 비약적이네요
성경은 전체를 봐야 합니다. 침소붕대 좀 그만하세요.
당신이 히브리어 할 줄 모르면 그냥 입 다무시죠?
소년들은 어린 아이들이 아니에요....충분히 자기 인생을 책임지는 나이에요..오버하지 마세요
너님이나 오버하지 마시고
옳은 말을 부드럽게 합시다.
구약 박사한테 오버하지말라고하고있네 ㅋㅋ
그래서 곰에게 찢겨도 당연하다는 건가요?
@@ABC-kx5gy 성경을 봐도 이해가 안 되죠?
42명인 이유. .
아브라함부터 예수님까지 42대
출애굽 후 정착한 곳 42곳...
하나님의 약속의 성취를 나타내는 게 아닐까합니다.
앗 너무 비약적 해석 같네요 ㅎㅎ
게마트라아를 쓴다면 이 또한 적법한 근거가 있어야 하겠죠. 고민하고 연구해볼만한 주장인듯요.
수비학(숫자에는 신비와 비밀이 있다고 믿는 학파) 스타일의 해석은 싫습니다. 예륻들어 7이 완전수다, 행운이다, 하나님의 숫자다, 666은 사탄의 숫자다, ,,,,,,,,,,,,,,,,,,,,,
이 내용은 간단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대신 전하는 선지자의 권위에 도전함은 하나님께 도전한 것입니다~~
대머리라 놀린 것은 하나님이 귀하게 만든 창조물을 희롱해서는 안됩니다~~ 절대로 차별이나 희롱의 말은 안됩니다~~
나이가 어리더라도 자신의 말과 행동에 책임을 져야 합니다~~ 촉법소년도 강력한 처벌이 필요합니다~~
오늘의 구약공부 이유투버가 신천지 이거나 아니면 천주교쪽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든다
구약은 맘몬을 추종했던 유대인이 만든 유대인을 위한 신화이니... 믿는 자의 믿음 대로 야훼는 살인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