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리히 프롬의 사랑의 기술, 에리히 프롬, 정성호 역, 범우, 2015] “사랑은 하나의 기술인가? 사랑이 기술이라면 사랑에는 지식과 노력이 요구된다. 아니면 사랑은 어쩌다가 우연히 경험하게 되는, 즉 운만 좋으면 ‘빠져 들게’ 되는 즐거운 감정인가?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의심할 여지 없이 사랑을 즐거운 감정이라고 생각하고 있지만, 이 작은 책은 사랑은 기술이라는 가정에 바탕을 두고있다. 그렇다고 해서 그 많은 사람들이 사랑을 그다지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다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들은 사랑을 갈구하고 있다. 사람들은 행복한 사랑 이야기나 불행한 사랑 이야기를 스크린 위에 펼쳐놓는 수많은 영화를 구경하고, 사랑을 노래한 수백 가지의 시시한 노래를 듣는다. 그렇지만 사랑에 대해서 배워야 할 것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이러한 특별한 태도는 몇 가지 전제에 기초를 두고 있는데, 이 전제들은 단독으로 혹은 서로 결합해서 그 태도를 뒷받침하고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랑의 문제를 ‘사랑하는’, 즉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의 문제로 보기보다는 ‘사랑받는’ 문제로 보고있다. 따라서 그들에게 중요한 문제는 어떻게 하면 사랑받을 수 있는가이다… “
[에리히 프롬의 사랑의 기술, 에리히 프롬, 정성호 역, 범우, 2015]
“사랑은 하나의 기술인가? 사랑이 기술이라면 사랑에는 지식과 노력이 요구된다.
아니면 사랑은 어쩌다가 우연히 경험하게 되는, 즉 운만 좋으면 ‘빠져 들게’ 되는 즐거운 감정인가?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의심할 여지 없이 사랑을 즐거운 감정이라고 생각하고 있지만, 이 작은 책은 사랑은 기술이라는 가정에 바탕을 두고있다.
그렇다고 해서 그 많은 사람들이 사랑을 그다지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다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들은 사랑을 갈구하고 있다. 사람들은 행복한 사랑 이야기나 불행한 사랑 이야기를 스크린 위에 펼쳐놓는 수많은 영화를 구경하고, 사랑을 노래한 수백 가지의 시시한 노래를 듣는다. 그렇지만 사랑에 대해서 배워야 할 것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이러한 특별한 태도는 몇 가지 전제에 기초를 두고 있는데, 이 전제들은 단독으로 혹은 서로 결합해서 그 태도를 뒷받침하고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랑의 문제를 ‘사랑하는’,
즉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의 문제로 보기보다는 ‘사랑받는’ 문제로 보고있다.
따라서 그들에게 중요한 문제는 어떻게 하면 사랑받을 수 있는가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