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원이 13년만에 계모에게 복수한 역대급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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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Опубликовано: 22 янв 2025

Комментарии • 87

  • @Badagaees
    @Badagaees 19 дней назад +660

    아들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싶어서 뒤통수를 친것은 신덕왕후였다
    먼저 칼을 뽑지 않았으면 죽은 사람은 이방원이었겠지

    • @고양이-q9b
      @고양이-q9b 18 дней назад +34

      맞는 말임
      이미 정도전이 사병개혁하고 왕자들은 정치 참여 못하가 막고 다 진행중이었음
      물론 명나라의 요동정벌이 큰변수긴 하지만
      이성계의 능력과 이성계의 수명을 생각하면
      조선은 멸망까지는 안갔을 것이며
      이성계가 집권하면 여진족도 조선편을 들었을 것임으로 어덯게 될지는 상상이 안됨

    • @c91sy85
      @c91sy85 10 дней назад

      ​@@고양이-q9b 요동정벌은 현실성 없었어서 했으면 조선 진즉에 망했어요 애초에 이성계가 고려시절 내건 4불가론에 대한 해법도 없이 사병 뺏으려는 핑계로 밀어붙인거라 실현가능성도 적었고

    • @솔이-e8c
      @솔이-e8c 9 дней назад +7

      신덕왕후가 뒷통수를 쳤다고 볼 순없어요.
      이성계가 왕이되는데 신덕왕후의 공이 컸고, 드라마에선 안보여주지만 사실상 그 집안의 힘이 가장 크게 작용했어요.
      그리고 첫번째 부인은 왕이 되기전에 이미 죽었었고,
      당연히 신덕왕후가 왕후가 된거고,
      왕과 왕후의 정식 아들인 방건이나 방석이 세자가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어요.
      이미 이성계는 60가까운 나이였고, 당시 나이 차이가 많이나는 왕후의 안위를 생각할때, 왕후 소생에게 세자를 물려주는게 합당하다고 판단한겁니다.

    • @블루블랙딸기
      @블루블랙딸기 9 дней назад +1

      @@솔이-e8c 그판단이 미스되어 그렇게죽었던거지 장성한 왕자들이 한둘이 아닌데 허수아비 병풍들로 서있을줄 알았다는 소리아닌가?
      그소리를 신덕왕후 편에서서 아주 미화하고 앉아있는 꼴밖에 안돰 더구나 이방원은 똑똑하고 야망이큰 아이라는걸'
      신덕왕후가 누구보다 더잘알고있었으면서 어린 방석을 내세운건 앞을 내다보지못한 어리석은 선택은 맞음
      제아무리 영리한 사람도 ~~결국은 지배아퍼 낳은 아들을 왕에 올리고싶어하는 극성적인 어미에 불가하다는 소리임 멀알고 시불이셔야지
      이방원이 손놓고 예예 10살 꼬마에게 머리 조아리며 왕에 오르게 냅둘 성정이 아니라는건 그집 가노도 알수있는 일이였음
      역사는 되풀이 된다했음 선조 같은 경우도 비슷하지만 중간에 김개시라는 악녀가껴서 망쳤지 애초에 인목대비 역시 그나이에 자식을 공주에 이어 기어이
      아들을 낳았고 그아들을 왕위에 올리려했으나 선조가 죽게되어 배경이없어지자 어쩔수없이 광해에 넘긴것만 봐도~~
      신덕왕후 행실이 현명치 못한건 자명한 일임 물론 인목대비가 광해를 올렸지만 아까말한대로 중간에 김개시 농간으로 아들까지 잃게되엇으나 알다싶이
      다시 권력을 찬탈 당할까봐 걱정이되어 그리한것이니~~~결국은~~왕후에 판단에따라 달라지는건 맞음
      광해 경우는 본인이 본처가아닌 후궁소생이라는 컴플렉스와 대신들이 인목대비 편에 선 사람도 많았기에 위태로웠지만
      신덕왕후 경우는 본인만 포기하면 이성계가 살아있고 이방원에 다른동복 형제들이 견제하기위해서라도 방석을 감싸고 돌것이고 그러면 죽지않고는 살았을것임
      신덕왕후 선택이 방석을 죽음으로 몰고간건 맞음

    • @silverlion196
      @silverlion196 8 дней назад

      ⁠@@솔이-e8c정확히는 첫째 부인이라 할게 아니라 함흥에 있는 한씨가 정부인이고, 개경에서 강씨를 만나 중혼을 했기에 첩, 두 집 살림이죠.
      힘흥에 한씨라는 정실부인이 있음에도 늙은 나이에 정치적 욕망으로 강씨와 불법적인 중혼을 한겁니다. 물론 시대상으로 보면 향처, 경처라하면서 이해가 되는 부분도 있으나 자식들 입장에선 이게 이해가 되는 부분이었을까요?
      물론 한씨는 조선 건국 전에 사망했고, 이성계의 입지를 다져준 인물은 경처인 강씨였으므로 왕비되는 수순은 당연했으나 그 이후 세자 책봉과 관련해서는 문제 소지가 충분히 있을만 했죠.

  • @레나-k9l
    @레나-k9l 9 дней назад +140

    이성계가 왕이 됐을때 제일 큰 아들들이 20-38살 장성해서 자식까지 본 나이였는데 이제 10여세 된 아들 태자로 만들려고 했으니 욕심이 과하긴 했지

  • @JamesLeezz
    @JamesLeezz 13 дней назад +302

    1차 왕자의 난은 조선을 개국하느라 피보면서 개고생한 본인을 포함한 형제들을 놔두고 어린 막내를 세자로 세웠던게 제일 컸을듯

  • @mjm8656
    @mjm8656 10 дней назад +214

    신덕왕후의 욕심이 과했지 장성한 이성계 아들들이 있었는데도 기여코 자기 친아들을 세자 자리에 올렸으니 사단이 난거죠

    • @buckston201
      @buckston201 7 дней назад +2

      신덕왕후 보다도 이성계의 욕심이 아닐까 싶은게 당시 이방원은 명석한 머리와 결단력은 물론이고 인재들을 끌어 모을수 있는 정치력까지 갖추고 있던 인물인데다 결정적으로 왕이 되고자 하는 야망을 숨기지 않다 보니 정몽주를 죽인 시점에서 이성계는 이방원을 더 이상 자신의 아들이 아닌 정적으로 본것이 아닐까 싶음 그러다 보니 이성계 입장에서는 그나마 자신이 왕으로 있으면서 자신의 왕좌에 도전 할 만한 깜냥이 안되는 이방석을 왕세자로 내세우면서 왕권 강화를 노린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듬 물론 여기에는 이방석을 이용해 뒤에서 자신의 권력을 키우려 했던 신덕왕후 강씨와 곡산강씨 가문의 욕심도 한몫 했지만서도...

    • @곱게말하는사람
      @곱게말하는사람 6 дней назад +7

      @@buckston201 신권정치하려던 정도전의 영향도 컸죠, 정도전 이방원은 신념상 서로 양립할수가 없음.

    • @Tyrael-d2t
      @Tyrael-d2t 3 дня назад

      다 친아들인데..

    • @나신태
      @나신태 2 дня назад +1

      참 권력이란..
      다 거네. 목숨까지 다 걸어.
      비트코인이냐?
      천당 아니면 지옥?

  • @꽃님이네-q7z
    @꽃님이네-q7z 11 дней назад +101

    뭐든 욕심이 과하면 화를 부른다

  • @아회재백야-r5n
    @아회재백야-r5n 3 дня назад +12

    이방원만의 문제가 아니었지
    방석이 세자로 책봉한 뜻은
    상위 형제들을 언젠간 전부 처리하겠다는 통보였슴
    정도전과의 짬짜미가 그 확실한 증거였고
    방원이 형제들이 신덕에게 정말 친어머니처럼 잘 대했슴
    그러다 뒤통수를...

  • @미래성공
    @미래성공 11 дней назад +89

    새 엄마(여기서 맞는 표현은 아닌듯 하나)의 아들을 세자로 들인것도 열받았겠지만 친 엄마가 새엄마로 인해 속상했던거 다 알았을텐데 그래서 더 증오 했을텐데 본인은 후궁이 18명.

    • @경흠-g4t
      @경흠-g4t 7 дней назад +8

      못된것은 빨리습득

    • @곱게말하는사람
      @곱게말하는사람 6 дней назад +6

      @@경흠-g4t 세종도 후궁은 엄청남. 저 집안 내력임

    • @집-z3l
      @집-z3l 4 дня назад +1

      고려사회에서 지방호족은 현지처 경처 둘 두는게 보편적이었음. 심지어 1930년대생도 서울유학시 있었다 함

    • @jw1174
      @jw1174 3 дня назад

      엄밀히 새엄마가 아니라 당시는 처를 두명 두는일이 흔한일임. 둘 사이도 나쁘지 않고 신뢰하는 사이였음 이성계를 왕 만드는것까지 근데 첫번째 부인에게 장성한 아들이 있고 그 아들들이 개고생해서 만든 왕실인데. 그때 젖이나 빨고 있던 애를 왕만들어서 본인이 권력을 잡으려 하니 이방원입장에서 열받는게 당연

  • @승희한-v9d
    @승희한-v9d 13 дней назад +180

    이성계가 둘째아들한테 세자자리를 주었으면 순리였건만 신덕왕후와 이성계의 욕심과 패착인거죠

    • @해롱이이이
      @해롱이이이 11 дней назад +6

      대신 세종이 태어난거야 안그럼 한글이 있어겠나

    • @howisthelife-ie1dx
      @howisthelife-ie1dx 9 дней назад +3

      ​@@해롱이이이윗댓글이 뭐라했다고 딴지야ㅋㅋㅋㅋ

    • @대니-r8y
      @대니-r8y 2 дня назад

      @@해롱이이이 1차 왕자의 난 (1398) 전에 이미 세종(1397)은 태어났어

  • @햇살-b1v
    @햇살-b1v 18 дней назад +287

    신덕왕후가 못됐었지. 장성한 전처소생이 있었거늘!!!

    • @윤기현-z1m
      @윤기현-z1m 17 дней назад +18

      근데 신덕왕후 욕할것도 없죠 자기 아들이 왕이 안되면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데 어떤 엄마가 아들을 왕으로 안 내세우겟나요

    • @ASMR-ov1qp
      @ASMR-ov1qp 16 дней назад +48

      ​@@윤기현-z1m욕심 없었으면 죽이기까지야 했을까요?

    • @윤기현-z1m
      @윤기현-z1m 16 дней назад

      @@ASMR-ov1qp ??? 뭔소리인지

    • @슬잎-f7y
      @슬잎-f7y 16 дней назад +49

      @@윤기현-z1m원래 이방원이랑 강씨는 잘 지냈어요 방석을 세자로 올리기 전까진

    • @이쁜이-o3g
      @이쁜이-o3g 13 дней назад +36

      신덕왕후가 잘못이죠 계모짓. 한거지

  • @workerkim173
    @workerkim173 День назад +4

    이성계가 자초한 업보임

  • @낫든할아범-l3s
    @낫든할아범-l3s 18 дней назад +151

    감히 적장자가 있거늘 첩 따위가 !

    • @KIM-padma
      @KIM-padma 12 дней назад +14

      첩은 아님. 저 당시에는 경처, 향처가 따로 있었고 신덕왕후는 경처였음.

  • @yop626
    @yop626 17 дней назад +152

    장성한 아들이 많은데 욕심이 과하니 죽임을 당하지 조용히 살았어야지

  • @얍삐-p8c
    @얍삐-p8c 7 дней назад +6

    근데 순리대로 갔음 인조반정 처럼 못할거면 하질 말던가 이방원은 애초에 그릇이 다른 사람 왕이 될만한 왕이였고 조선왕조 명군이됬기에 태종이라는 묘호을 받았고 그의 아드님 마저 조선왕조 태평성대를 이룬 세종대왕이 나오신거 무인정사는 정당했다

  • @제리-t2m
    @제리-t2m 12 дней назад +59

    신덕이 먼저 잘못했지
    원통하긴 뭐가 원통 ㅋ
    장성한 아들들이
    개국공신인 아들들을
    내몰라라 하고는
    배은망덕이지

  • @박성범-s1y
    @박성범-s1y 19 дней назад +58

    짧은 대통령이아닌 왕의 자리였으니...
    본인이 칼뽑지 않으면 죽을거같아서 그랬나 ? 세종대왕님도 워커홀릭에 신하 대하는거 보면 .. 이방원 피가 필요하긴했음...

  • @폭발의_도끼
    @폭발의_도끼 11 дней назад +15

    그 다라가 천계청 다리중 하나입니다

  • @안성진-y3t
    @안성진-y3t 7 дней назад +8

    이방원이 가만 있었으면 신덕왕후 세력과 정도전에게 죽었을껄?

  • @바오밥-n9s
    @바오밥-n9s 8 дней назад +12

    신덕왕후는 알았을것이다 자기 아들이 왕이 안되면 이방원이 다 죽일거라는걸.. 교통정리 못한 이성계가 더 문제라 생각함

  • @석-b5m
    @석-b5m 16 дней назад +19

    저 시대 40은 오래 산거야

  • @김민지-w6j1r
    @김민지-w6j1r 18 дней назад +15

    억울한 눈물의 한이 풀렸네요

  • @박순애-i5f
    @박순애-i5f 6 дней назад +1

    서열을 배제한 선왕의
    판단 미스가 이방원을
    미치게한거다 권력무섭

  • @jsm9252
    @jsm9252 4 дня назад

    신덕왕후는 200여년뒤인 1680년 숙종에 의해 신원회복되어 후궁에서 다시 왕후로 추존되고 묘 또한 능으로 원상복구되었다고 합니다

  • @황곰탱이-v8h
    @황곰탱이-v8h 4 дня назад +3

    정도전 신덕왕후의
    욕심의 댓가?

  • @될냥
    @될냥 14 дней назад +7

    조선이라는 나라를 만드는데 신덕왕후집안의 공도 크지 않나? 당연히 욕심이 생기겠는데, 이방원이 첫째도 아니고 넷째인가 그랬던거 같은데, 결국 형들 제치고 왕이 되고 싶은 맘이 더 컸던거지..

  • @로버트레드포드-p6y
    @로버트레드포드-p6y 13 дней назад +10

    구독에 가려져 자막이 안보이는
    그래서 누르고 싶지 않다

    • @hand-cream
      @hand-cream 11 дней назад +1

      엥 어디에 가려짐...? 진짜 저는 하나도 안가려져서요;

    • @hand-cream
      @hand-cream 3 дня назад

      @@we4448 이게 설정이 어떻게 되는건지는 모르겠어요 ㅠㅠㅠㅠ 휴대폰 크기 차이일수도 있을까요...? 화면이 크다거나 뭐 이런.... 저는 처음부터 그냥 안가려져있어서 어떻게 하는건지는 모르겠어요 ㅠㅠㅠㅠ

    • @we4448
      @we4448 3 дня назад

      @@hand-cream 설정은 없다? 감사합니당

  • @Daria-ii5wd
    @Daria-ii5wd 19 часов назад

    그리고 서얼들은 관직에 얼씬도 못하도록 하기도 했죠

  • @두리어두침침
    @두리어두침침 12 дней назад +2

    아들보다는 며느리가 더 세보이니 실망했겠지. 태조가 노망 아니라면

  • @sunstar8137
    @sunstar8137 12 дней назад +2

    신덕왕후비릉 성북구 정릉

  • @sdb7308
    @sdb7308 9 дней назад +1

    그러던 자신도 후궁을 수도없이 만든건 참 아이러니합니다

  • @요반페미
    @요반페미 17 часов назад

    폐비까지시켰어야지 제대로 복수지

  • @batuu2601
    @batuu2601 19 дней назад +9

    신덕왕후가 이방원의 후견인으로
    대과에 급제하게 해주고?
    이방원이 성공하는데 큰 덕을 베품

  • @윤진영-b2h
    @윤진영-b2h 8 дней назад

    광통교 가 청계천에 있습니다

  • @관조바르기
    @관조바르기 9 дней назад +1

    위험하다!

  • @CherryGhosts-l6p
    @CherryGhosts-l6p 4 дня назад

    그래놓고 지 본처한텐 어떻게 했드라~~내로남불 이방원

  • @정민홍-n7i
    @정민홍-n7i 10 дней назад

    신덕왕후와정도전이 벌받을짓을한거지

  • @류혜선-p7q
    @류혜선-p7q 13 дней назад +2

    서로 신뢰관계에 있엏다는 근거는 뭐지?

  • @블루블랙딸기
    @블루블랙딸기 10 дней назад +5

    이래서 계비는 계비일뿐임 아무리 이뻐하면뭐함?
    결국은 자기배아퍼 낳은 자식이 왕이되길 바라는게
    여자들맘이겠지만 어쨋든 욕심이 과한 맞는듯

  • @링맘
    @링맘 14 дней назад +21

    과욕이 부른 엄청난 복수극...
    이방원에게 처음부터 세자자리를
    주었더라면 이런 비극이 있었을까
    한치앞을 못보는 욕심 때문에
    신덕왕후 스스로 무덤을 파고
    죽어서도 용서받지 못한
    누를 범한 것이다
    지금 윤건희도 마찬가지다
    다 내려놓고 하야하는 것만이
    더 큰 죄 짓지 않고
    속죄하며 살길임을 알찌어다

    • @우기엔수기
      @우기엔수기 11 дней назад

      그 입 다물라!
      천하에 발칙한 것 같으니라구!!!😡

  • @아두은인
    @아두은인 10 дней назад

    둘째ㅈ부인을
    첩이라고 하나요
    몰라서 물어보는ㅈ것임

    • @집-z3l
      @집-z3l 4 дня назад

      그 당시 첩은 잘못된 표현. 둘째부인과 첫째부인은 동등한 지위임

  • @김성진-y3i9k
    @김성진-y3i9k 14 дней назад

    이방원.............뒷통수

  • @-tour22
    @-tour22 2 дня назад

    욕심이 화를 부른다...

  • @onetime_go
    @onetime_go 12 дней назад +3

    신덕왕후 잘못한거 없어요. 워낙 정실 현 왕비의 자식이 세자가 되는거예요

  • @shanestory3879
    @shanestory3879 6 дней назад +1

    신덕왕후가 일찍 죽지 않았다면..

  • @user-sf2vd6vv8v
    @user-sf2vd6vv8v 16 дней назад +6

    이그 이성계 바부야

  • @아라이-b2t
    @아라이-b2t 19 дней назад +5

    킬방원 싸페

  • @kjst0017
    @kjst0017 19 дней назад +8

    계모도 부모인데, 아버지가 가장 사랑한 정실 부인 인데 후궁 으로 강등하고 무덤의 석물을 건축 자재로 썼으니 효를 근본으로 하는 유교 국 조선 국왕으로는 자질이 의심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