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지시대] 메이지 초기, 사기를 쳐 다이묘가 된 사무라이의 황당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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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Опубликовано: 11 янв 2025

Комментарии • 57

  • @Bloodraven31006
    @Bloodraven31006 Месяц назад +2

    감사히 들었습니다 😊

  • @seokhohong4181
    @seokhohong4181 4 месяца назад +12

    와... 이런 이야기를 어디서 들을 수 있을지요 ㅎㅎㅎ 오늘도 감사합니다

  • @paul-qc9rw
    @paul-qc9rw 4 месяца назад +11

    잘봤습니다.간크게 사기친 오오사와나 그걸 확인 안하고 바로 인정 때린 신정부나...진짜 혼란스러워야만 성공 가능한 사기극이었네요.ㅋㅋ

  • @모닝커피_XD
    @모닝커피_XD 4 месяца назад +10

    항상 유익한 영상 감사합니다^^ 전문가님께서 그 동안 쌓아온 지식을 기반으로 흥미롭고 쉽게 설명을 해주시니 넘 좋네요~♥♥

  • @khkim4270
    @khkim4270 4 месяца назад +6

    어디서도 들을 수 없는
    사무라이 로망스에서만 들을 수 있는 이야기
    오늘도 재미있었습니다.^^

  • @greatakd
    @greatakd 4 месяца назад +7

    잘보고있습니다 ❤❤❤

  • @forthevoljin
    @forthevoljin 4 месяца назад +6

    오늘 영상 진짜 재미있네요 ㅋㅋㅋ 하마마츠에 가게된다면 꼭 기억하겠습니다. 오오사와 ㅎㅎㅎ

  • @김경수-h1c
    @김경수-h1c 4 месяца назад +10

    이걸 영특하다고 해야할지 간악하다고 해야할지 ㅋㅋ 항상 재미있게 보고있습니다!

    • @samurairomance
      @samurairomance  4 месяца назад +1

      실 이익은 별로 없었으니, 다이묘 소리 듣고 싶었던거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 @구공탄-j3e
    @구공탄-j3e 4 месяца назад +9

    저정도 사기면 크게 벌을 줫을거 같은데 가볍게 지나갓네요?
    혼란한 시기라 그런가 그럼 더 엄벌을 햇을거 같은데 희한하네요.

    • @samurairomance
      @samurairomance  4 месяца назад +6

      사기꾼 다이묘가 신문사 운영에, 구의원 정치까지.... 당시 일본인과는 다른 유전자를 가진 사람이었나 봅니다. 후손들은 어디가서 말도 잘 못꺼낼 듯...

  • @lietz4671
    @lietz4671 4 месяца назад +5

    격변기, 혼란기의 역사는 수많은 인물들이 등장하고 몰락하고 그래서 후세 사람들이 보기에 흥미롭습니다.
    허위 보고를 통해서 다이묘가 된 사람이 있다니, 참 황당하고 재미있네요... ㅎㅎㅎ

  • @잡상다운족
    @잡상다운족 4 месяца назад +1

    감사합니다. 언제나 잘보고 있어요😊

    • @samurairomance
      @samurairomance  4 месяца назад +1

      댓글 잘 안쓰시는 분이 써 주셨네요. 소중한 후원 감사드립니다.

  • @리온티즈
    @리온티즈 4 месяца назад +2

    작가님~ 유투브내용 너무 재미있어서 궁금하고 몰랐던 사실들을 너무나 재미있게 시청하고 있습니다~^^ 항상 좋은영상 감사합니다~^^ 어제 아이와 교보문고가서 책도 구입했습니다~>_< ㅋ(건대, 잠실교보엔 없어서 광화문 교보가서 구입했어요~>_< 딱 한권 남아서 기쁜마음에 사왔습니다~) 앞으로도 재미있는 영상 부탁드립니다~ 😊

    • @samurairomance
      @samurairomance  4 месяца назад +2

      감사합니다. 인기가 없는 책이라서 교보에도 특정 매장에만 1권 정도씩 비치해 두고 있더라고요.
      작가인지, 유튜버인지, 엔지니어인지, 일본사 전문가인지, 구멍가게 자영업자인지... 저도 제 아이덴터티를 모르겠습니다.
      평생을 이렇게 살고 있네요. 늦가을 쯤 신간이 나올 예정입니다. 첫 책의 경험을 살려 품질을 높이려고 생각 중입니다.
      아는 만큼 보이는 일본 시대극.. 정도가 가제인데, 황혼의 사무라이, 숨겨진 검 오니노츠메, 무사의 체통.. 이 세 편의 영화 속에서 흔히 지나치는 장면 속 숨겨져 있는 기호 요소를 발견하고 그 역사, 문화적 배경을 탐구하는 책입니다.
      일본 역사 배워서 어디에 써먹냐.... 라는 대중적 의문 속에서 실용서로써의 일본사 공부가 접근성이 더 쉽고 흥미를 끌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지명과, 인명을 제외한 일본어는 사용하지 않는다는 관점으로 전문 용어는 최대한 각주로 내리는 형태를 취하고도 있고요. 전문 용어가 난무해서는 안된다... 무조건 쉬워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녹여보고 있습니다.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공유하는 파트너로서, 한국과 일본이 운명공동체 임을 간접적으로, 아주 느리지만 깊이 있게 느낄 수 있는 이러한 작업을 계속 하고 싶습니다.

  • @이종혁-c7r2i
    @이종혁-c7r2i 4 месяца назад +4

    이야르ㅡ
    따끈따끈 영상
    타다이마 산죠~~*

  • @206fa5
    @206fa5 4 месяца назад +4

    남자라면 한번 운을 걸어볼 만한 로망이네요...!

  • @dominion8998
    @dominion8998 4 месяца назад +2

    4:29 막부의 몰락과 보신전쟁에서 패배의 이유가 참 궁금했는데 도쿠가와 가문 내부의 다툼이 참 컸던거 같습니다. 좌막과 토막이 대립하고 있던 오와리번에서 조정에선 가로를 포함한 좌막파 숙청을 명하고 요시카츠가 그에 따른 아오마츠바 사건도 결정적이었지 않나 싶습니다. 가짜다이묘사건은 켜라위키에서 봤었는데 다시봐도 웃기네요 ㅋㅋㅋㅋㅋ

    • @samurairomance
      @samurairomance  4 месяца назад +3

      역시... 누군가는 이 이야기를 알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음. 요시노부가 야반도주 하고 하타모토들애게 영지로 돌아가 조정의 명령을 기다리라는 명령을 내립니다. 여기에서 다 틀어지기 시작하죠. 합법적으로 에도를 벗어나 영지로 돌아간 하타모토들은 교토로 몰려가 조정에 영지보전을 요청하며 도쿠가와와 손절에 들어갑니다. 이렇게 신 정부 측으로 붙었던 조기 귀순자들은 주로 서쪽에 가까운, 즉 에도로부터 먼 곳에 영지를 가지고 있던 하타모토에서 시작되고, 아오마츠바 사건 이후 요시카츠가 토카이도 인근의 하타모토를 설득해 신 정부에 가담시키면서... 힘 쓸 수 있는 막부 직속 가신은 조기 이탈하고, 친 막부파 번이 신 정부에 대항하다가 큰 피해를 입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벌어진 겁니다.
      하타모토 8만기..라더니... 그냥 숙어적 표현에 불과했던거 아닌가.

    • @hyoobee
      @hyoobee 4 месяца назад +2

      @@samurairomance 제가 최근 가마쿠라 막부의 성립과 멸망 관련한 스크립트를 보는데 거기 나오는 말이 있더군요.
      "이기는 쪽에 호응하는 건 옛부터 무사의 관습이었다".. 이 문장이 너무 신선하게 다가왔습니다.
      저 문장을 보고 느낀 바, 일본사의 무사가 아니더라도 그 옛날부터 세상의 이치가 아닐까 싶은 말이더라구요.
      사기 맹상군 편에도 비슷한 말이 있습니다. 맹상군이 다시 권력을 잡자 떠난 빈객들이 다시 구름처럼 몰려들었는데,
      맹상군이 화를 내며 이들을 물리려고 하니 참모가 맹상군에게 말하길 빈객을 물리지 말고 다시 받아들이라고 하지요.
      그러면서 해준 말이, 사람이 시장에 낮에 모이고 밤에 흩어지는 건 밤의 시장을 미워해서 그런 게 아니라고 했지요.
      이렇듯 본래 사람은 다 자신의 이득을 좇아 살게 되어 있습니다.
      말씀하신 상황은 일본사에서 계속 되풀이 되어왔던 장면입니다.
      권력의 전환기에는 너도나도 눈치를 보며 자신의 밥그릇을 보전 받으려고 그랬습니다.
      이건 사실상 기출문제가 나와 있는 경우라 봐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가마쿠라 막부의 초기에 承久의 난과 이를 진압한 北條씨가 執權이 된 과정, 이후의 건무의 신정이 실패한 이유,
      무로마치 막부가 성립한 경위까지 완전 데칼코마니 마냥 똑같아요... 이래서 역사는 되풀이된다고 하나 봅니다.
      이기는 쪽에 붙는 건 무가의 관습. 비단 과거 일본 무사들만의 사고방식이 아니라 이 세상의 이치가 아닐까..

    • @에엒따-s3c
      @에엒따-s3c 4 месяца назад +3

      ​@@samurairomance8만기는 하타모토 고케닌과 그들의 가신등 막부 직속으로 동원 가능한 총 병력이었나 봅니다..하타모토들도 본인의 군역뿐만 아니라 봉록에 따라 병력동원을 해야 하니

    • @samurairomance
      @samurairomance  4 месяца назад +3

      하타모토 고케닌 다 합쳐도 2만 겨우 넘을 겁니다. 말씀하신대로 각 가문마다 동원 가능한 봉공인... 즉, 야리모치, 하사미모치, 우마노 구치토리, 조리 토리 등 다 합치면 우짜우짜 8만 정도 되지 않았을까 라고 추정한다고 합니다.

  • @이종훈-j4q
    @이종훈-j4q 4 месяца назад +3

    저 집안은 시조가 그 유명한 藤原道長의 자손에서 시작한다는군요. 무가이지만 귀족의 후손이기 때문에 조정과의 관계에 관여하는 집안이었나 봅니다. 지역으로 따지면 遠江国니까 역시 오케하자마 이후 이미가와에서 도쿠가와로 전향한, 나름 초기 멤버로 조정 교섭용... 막부에서는 나름 유서깊은 가문이었을 거로 보입니다.
    실제 이 집안이 이에야스의 장군서임식을 담당하죠. 고가의 시초에 해당하는 집안이라네요.

    • @samurairomance
      @samurairomance  4 месяца назад +2

      조정과 사이에서 각종 의례나 예식에 관련된 업무를 담당하는 역직을 고가(高家, 코오케)라고 합니다. 말씀하신대로 전통의 명문가가 에도시대 고가 역할을 수행했죠. 이마가와, 오다, 다케다, 우에스기, 아리마, 오오토모, 키라(쥬신구라의 키라 코오즈케노스케) 등등, 전국시대 냄새가 강하게 나는 이 명문가들이 모두 오오사와 가문과 동일한 업무를 수행하는 고가(高家)에 속합니다.

  • @9c2z1w8
    @9c2z1w8 4 месяца назад +2

    일본인의 만화적 상상력이라고 할까 만화작가했으면 꽤 성공했을 자질이네요. 공상, 주작, 극한의 오버, 뇌절. 분수를 알고 그에 맞게 살아가는 일본인 중에서도 하도 억눌려서인지 가끔 저런 변태형이 나오네요.

  • @kunufelix
    @kunufelix 4 месяца назад +3

    재미있는 사건 잘 보았습니다. 다만 화족이 된 구 다이묘들에게 직접 지급하던 수당은 말씀하신대로 곧 사라지지만 신정부에서 발행한 채권을 은행에 예치하게 해서 이자 수입을 얻도록했다고 알고 있습니다. 시부사와 에이지가 이러한 채권이 산업에 투자될 수 있도록 주식회사와 은행을 설립해서 경제 발전에 기여했고요. 국부천대 후 대만 국민당 정부도 토지개혁 때 이걸 참조해서 지주에게 채권을 지급하고 이것을 주식회사에 투자하도록 했다고 합니다. 메이지 정부가 시늉도 하지 못한 토지개혁은 맥아더가 해주고.

    • @samurairomance
      @samurairomance  4 месяца назад +3

      말씀하신 내용이 맞습니다. 다만, 강제적이었고, 5년 거치에 봉록 환산액으로 책정된 채권 액면가의 5~10% 이자 지불, 30년에 걸쳐 공채 액면가만 상환해 주는데, 매년 상환 대상자는 정부에서 알아서 선정.... 다이묘 출신은 수입의 10%만 인정해서 채권 발행했지만, 워낙 자산이 많다 보니, 다이묘 출신은 부자로 성장... 많은 비율을 차지한 사족들은 변변한 직업을 갖지 못한 상태로 5년 거치 기간 동안 이자로 연명(당시 최저 임금의 1/3 수준).... 인플레이션 반영은 안되기 때문에 오르는 물가 대비 점점 가치가 떨어지기도 하고... 채권 판매가 가능했기에 대부분 가난한 사족들은 먹고 살기 위해 싼 값에 채권 매매...다이묘 등 화족 계열이.이 공채를 매입해 또 다시 부를 축적... 이 결과 신푸렌의 난, 아키츠키의 난 마지막으로 세이난 전쟁까지... 이게 맞는지는 모르겠지만, 가난한 불평 사족은 반란을 일으켜서 알아서 일망타진당해서 사라지고... 본격적인 근대시대가 가동되죠...일본은 무가사회라 그런지 무조건 불평 계층은 무력으로 일어나서 진압당해 소멸되는 것 같습니다. 빠른 개혁의 원동력이었을 수도...
      이야기를 쓰다보니, 오오사와의 경우 구라 친게 안걸렸다면, 어느 정도 두둑한 자산의 다이묘 환산 공채를 챙겼겠네요. 사족으로 신분이 떨어졌으니 생활이 어려웠을 것 같으면서도... 저 사기꾼 감각이라면 이미 자산을 빼돌렸지 않을까 생각이 들기도 하고요.

    • @kunufelix
      @kunufelix 4 месяца назад +2

      @@samurairomance차라리 지조 개정 때 머리를 써서 지주가 됐다면 GHQ 때까지 잘 살았을텐데요.

  • @에르브
    @에르브 4 месяца назад +2

    진짜~새로운사건을 알았네요 그래도 사기라도 아예 근거없는것도 아닌것같아서 귀여운편이네요^^ 그래도 일본이 명예를 중요시여기고 다이묘위상을 알수있는 영상이네요

  • @hyoobee
    @hyoobee 4 месяца назад +7

    이찌방야리~

    • @samurairomance
      @samurairomance  4 месяца назад +3

      이치방야리 하트 드립니다.

    • @이종혁-c7r2i
      @이종혁-c7r2i 4 месяца назад +2

      이런...댓글이 대댓글로만 달리네요 ㅠ
      즐겁게 봅니다

  • @진형욱-g8t
    @진형욱-g8t 4 месяца назад +2

    호수 모습을 보니 진짜로 매립하려 한다면 못할 것도 없었을 듯 한데... 역시 공사 규모가 감당이 안됐나 보네요.

    • @samurairomance
      @samurairomance  4 месяца назад +2

      애당초 매립할 생각 자체가 없었을 겁니다. 5,000석 하타모토가 감당할 수 있는 비용은 아니었을테니까요.

    • @Bloodraven31006
      @Bloodraven31006 2 месяца назад +1

      도박 삼아 시도했더라면...​@@samurairomance

  • @후아유-w9o
    @후아유-w9o 4 месяца назад +2

    도쿠가와짱

  • @myish1052
    @myish1052 4 месяца назад +2

    일본판 봉이김선달 이네요

  • @tony-xd4bl
    @tony-xd4bl 4 месяца назад +5

    "활당한"이 아니고 "황당한" 이겠죠?
    제목 오타 수정 부탁.....

    • @samurairomance
      @samurairomance  4 месяца назад +5

      감사합니다. 수정했습니다 !

    • @tony-xd4bl
      @tony-xd4bl 4 месяца назад +3

      @@samurairomance 😄

  • @smlaelwa8914
    @smlaelwa8914 4 месяца назад +2

    일본 어느 지자체인지는 모르겠는데
    그 지자체장의 가문이 전부터 대대로 내려오던 다이묘인지 하타모토인지 그런 가문이였다네요
    그런일이 실제로 있나요?
    다이묘 가문이 민주투표로 바뀐 이후에도 또 그 지역에서 시장에 당선된다니

    • @samurairomance
      @samurairomance  4 месяца назад +2

      다른건 잘 모르겠고, 90년대 일본 총리를 지낸 호소카와 모리히로라는 분이 계시죠. 쿠마모토현 지사 출신이죠. 구마모토현은 호소카와 가문 다이묘의 영지였고요.

    • @에르브
      @에르브 4 месяца назад +3

      일본총리들은 계룡남이 없다시피합니다. 가문도 좋고 부자들도 많은편이고~

    • @paulkwon5340
      @paulkwon5340 4 месяца назад +1

      ​@@에르브다나카 가쿠에이

    • @hyoobee
      @hyoobee 4 месяца назад +3

      노무현이나 풍신수길이 괜히 신화가 된 게 아닙니다. 어느 사회나 개룡남 보기는 하늘의 별따기에요.

    • @에르브
      @에르브 4 месяца назад +2

      @@hyoobee 박정희 노태우 이명박 김대중 전두환대통령은 계룡남출신임 근데~일본 아베뿐만 아니라 카츠라타로 나카소네야스히로도 부잣집이고 심지어 귀족가문출신들도 있음

  • @늑대와향신료-n9v
    @늑대와향신료-n9v 4 месяца назад +1

    40번째입니다!@ㅎㅎ

  • @sfk1031
    @sfk1031 4 месяца назад

    특혜가 있었으니 가능했지.
    아무리 막부가 망했어도 저런 상황이면 활복하라고 난리났을땐데

    • @samurairomance
      @samurairomance  4 месяца назад +2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새로운 시대에 새로운 법이 정비되는 과정에서, 판례에 없는 사기 사건이 생기다 보니, 생각보다 약한 형으로 확정되었을 수 있죠.
      영상 만들 땐 미처 생각을 못했는데... 곰곰히 따지고 보면 다이묘가 되었다 해서 특별히 뭔가를 더 착복할 수는 없는 구조였습니다. 이미 영지를 소유한 하타모토였고, 매립지에서 생산되는 상상 속 쌀은 존재하지 않는거니, 수입도 다이묘 때나 하타모토일 때나 똑같은거죠.
      참근교대도 사라진 시기였고 귀족이 될 것이라는 예측이 가능한 시기도 아니었고요. 질록처분으로 다이묘에게 채권 우선순위가 높게 책정될 것이라는건 더더군다나 예측 불가한 상황이죠.
      더 자세히 따져봐야겠지만, 오오사와 모토스미는 금전적 이득을 특별히 본게 없을 것 같은... 오히려 군역이 늘어나 손해를 볼 수도 았겠고요. 군역이야 에도시대 이야기이니, 해당사항이 없었을 것 같기도 하고요.
      별도 AS 영상으로 만들어 봐야겠네요.
      어디가서 다이묘라는 소리 듣는 재미 빼고 특별한 이익이 있었을까 싶습니다. 그래서 솜방망이 처분이 내려진게 아닐까...

  • @아나사스타샤
    @아나사스타샤 4 месяца назад +1

    감사합니다.

  • @tv.2745
    @tv.2745 4 месяца назад +2

    감사합니다.

  • @김정훈-y2d2y
    @김정훈-y2d2y 2 месяца назад +1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