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변란사] 임진왜란 중에 벌어진 본격 반란사건, 송유진의 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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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Опубликовано: 18 дек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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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변란사
임진왜란 중에 벌어진 본격 반란사건
송유진(宋儒眞)의 난
임진왜란 중에 크고 작은 반란사건이 여러 차례 발생했는데, 그 가운데 선조 27년 송유진(宋儒眞)의 난과, 동왕 29년에 일어난 이몽학(李夢鶴)의 난이 가장 두드러집니다.
왜란 초기 산발적인 소요는 신분해방을 위해 일어났다고는 해도 불만을 느껴온 지배층에 대한 우발적인 사건이었으며 비조직적인 행동이었습니다.
또 이런 행위는 통치권이 미치지 못하는 적의 세력권 안에 있었던 사건이었고 직접 왕정의 전복을 겨냥한 반기는 아니었으나 송유진·이몽학의 난은 그 규모나 조직 면에서 양상이 판이했습니다.
이 두 반란은 왜군이 화의를 조건으로 이미 남쪽으로 철수해 통치권이 미치는 충청도지역이 중심이었고, 주모자들도 현왕권을 타도하고 새 나라를 수립해 백성을 도탄에서 구제하겠다는 슬로건을 내걸었습니다.
이런 점에서 임란초 감사나 수령들의 수탈이나 혹사에 불만을 품었던 민중이나, 왜군과 제대로 싸워보지도 않고 바라만 보다 흩어지는 간신들을 증오한 농민들의 이반과는 성격적으로 큰 차이가 있습니다.
송유진의 난의 전개
송유진의 난은 송유진이 당초 선조 27년 정월 보름에 일당을 이끌고 거사하기로 한 것이 사전에 누설되어 실패로 돌아갔지만, 충청도 일대에 국한된 것이 아니고 다른 지역에 동조세력을 갖고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반란이 발각되기 전에 송유진 일당은 1진이 청계산에, 1진은 춘천에, 또 다른 1진은 전라도 안에 있다고 했는데 증명되지는 않았지만 지방관들의 보고내용을 보면 전혀 근거 없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반란세력들이 서로 연계되기 전에 발각되었기 때문에 자세한 것은 알 수 없습니다.
송유진은 서울 건천동에 사는 역관 송택종의 서얼로 태어나 천안, 직산 등을 왕래하며 지냈는데 학식이 뛰어났으나 신분적 한계를 갖고 있던 그는 천안 일대에서 지인들이 많았고 지역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을 했습니다.
그러던 중 임진왜란으로 나라가 어지럽고 한양이 수복된 지 얼마 안 되어 부근의 수비도 소홀한 것을 알고 불만세력을 규합하여 스스로 의병대장이라 칭하며, 역모를 꾀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