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님의 강의를 즐겨듣고 있습니다. 정의에 대한 해답은 딱히 정의내리기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굳이 고른다면 각 사람의 삶의 배경이 다 다르기 때문에 서로 대화하며 서로를 이해해가려는 과정속에 정의라는 것이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 과정속에 소외계층이 생기지 않는다면 모든 사람을 만족 시킬순 없더라도 대부분이 인정할수 있는 결과를 얻을수 있고 그 과정 자체가 정의롭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다 읽고 나서도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의문이 계속 남는 책이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노직의 입장에 가까운 편이긴 하지만 제 결론은 절대적인 정의는 없다 입니다. 어찌보면 정의 그 자체보다 그것을 찾아가는 과정이 더 중요할 수 있다고 생각해 봅니다. 교수님 덕분에 어려운 책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고딩때 한번 읽어보긴 했는데, 몇몇 부분이 너무 어려워서 이해하기 어려웠던 책이었는데 이렇게 정리해주시니 감사합니다. 책을 읽었을때 다른 건 다 그렇다쳐도 샌델 교수가 한국 사회의 공동체주의를 지지하는 게 꽤 의아했어요. 그때 또 마침 학창시절이어서 사실 한국이 공동체주의라기보단 전체주의적인 문화에 가깝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거든요. 멀리서보면 좋아보일 수도 있지 않을까 싶기도 했고요. 우리도 미국을 보면서 부러워하는 것들, 특히 자유에 대해서 부러워하곤 하지만, 막상 그 곳에 가면 자유주의 이면에 자유를 오히려 위협하는 요소들이 많다는 걸 알게된다고들 하잖아요. 결국 이 책은 샌델의 주장까지도 모두 정의라는게 얼마나 모호한 것인지 알려주는 것 같네요.
전체주의는 아니고 집단주의에 가깝다고 봅니다...개인과집단 평등과자유 이모든게 혼합된 사회인데 어떤걸 더중시하는 순간 모든게 깨지는것이죠...언급하셨지만 미국이 자유를 중시하지만 결국 평등이 깨지면 그자유 조차도 위협받게 되니까요...정의란것도 보이지않는 관념이기 때문에 그기준과 원칙이 개개인이 다르니 모호할수 밖에요...모호함 그자체를 인정해야죠..다만 모호하지만 정의 자유 평등 이러한 관념들을 믿어야 사회가 지탱될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군 도서관에 책이 있어 빌려 읽다가 계속 딴생각이 들어와 몇장 안넘기고 반납했는데 이렇게 잘 설명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정의란 시대적 환경에 따라 계속적으로 변화하는거 같습니다. 우리가 살다보면 과거에는 맞았고 지금은 틀린 사회적 현상이 많이 있듯이 정의도 과거의 정의와 현재의 정의의 개념이 다른거 같아요. 도덕적 가치에 우선을 두는것이 정의라면 이 또한 소수의 희생이 나올것이고 그들의 이견을 잘 받아들여 그들을 설득시킨다. 이게 제가 생각하는 그나마 가장 정의로운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정의가 답이 없기에 정치꾼들이 먹고 사는게 아닐까요.
교수님 정의에 대한 사조를 간략히 강의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의 짧은 견해로는 “정의”란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정답은 없고 동시대를 살아가는 개인/집단의 수요에 맞춰서 걸맞는 공급들이 생겨나고 만들어진다고 생각합니다. 지금까지 이를 그나마 잘 작동하게 만든 민주주의가 다수 국가에서 살아남은 이유이겠죠.
@@eunghyunkim962 주식투자 안할거면 모르겠지만 투자 계속할거라면 주식으로 10만원에서 30억으로 만든 [주식의정석] 이 채널의 영상들을 꼭 보셔야 할거에요 (영상들이 짧아서 보는데 무리없음) 주식투자를 어떻게 해야만 하는지 그야말로 주식의정석을 보여주고있더군요. 아마 은둔고수로 추정이되는데요 광고 아니니 오해없으시길..
절대적으로 보였던 뉴턴 역학도 예외가 발견되고, 유클리드 기하학 역시 예외상황이 발생하지만. 이들은 현재에도 대부분의 상황에 유효합니다. 기존의 만들어진 '정의'는 대부분 '다수'의 상황에 합리적 대안을 제시하지만 어떤 것도 그 예외를 막을 수는 없으므로 예외적 상황에 합리적 대안을 찾을 수 있는 성숙한 공동체를 목표로 해야한다. 라고 받아들였어요. 제 개인적인 생각이 강하게 반영된 것이기도 합니다.
강의 정말 정말 감사합니다. 저책을 도서관에서 두번이나 정독했는데 쉽게 정의를 내리지 못하는 중이었어요. 물론 아직도 그렇지만, 이렇게 설명해주시니 뭔가 그림이 잡히네요. 정말 정의란 무엇일까요. 많은 이들이 더 생각하고 고민했으면 좋겠어요. 꿈처럼 완벽한 합의에 이르는 유토피아를 상상해봅니다.
제가 정의란 무엇인가 책을 읽어보고 가장 합리적이라고 생각한 정의론은 롤스의 정의론 이었습니다. 이유는 (현실적으로 어렵겠지만) 우리 모두가 무지의 장막을 가정하고 합의를 이룰수있다면 10장공동체주의에서 말하는 공동선에 대한 공동체의 합의를 이룰수있다고 보기때문입니다. 최근 벌어지는 갈등도 결국은 자신의 처지에 가장 이익되는 주장만 하기때문인데 능력[부모로부터물려받은부/선천적재능과성실성 등을 모두 포함]이 있는 자는 능력주의를 주장할것이고, 지금의 처지에 좌절하는 이는 분배에 더 관심을 가질것입니다. 그러므로 무지의 장막을 설정하여 객관적으로 사회적합의를 한다면 지금보이는 사회적갈등을 해소할수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박사님께서 통찰하신 구체적 방법론이 없어 그또한 전체주의로 흐를수있지만 적절한 권력분립을 가능케하는 민주주의를 최악으로 흐르는것을 막을수있을것입니다. 자라나는 세대에 이념보다는 이러한 다양한 정의론을 알려주고 무지의장막을 자신에게 입히고 토론을 통해 합의를 이끌어내는 교육과정이 절실해보입니다. 좋은 강의 감사합니다.
항상 결론보다는 생각을 이끌어내시는 강의가 너무 좋습니다. 정의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은 정말 어렵네요. 역사적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또는 지배하는 사람이나 사상에 따라그때그때 달랐던 것처럼 어찌보면 인간(집단)의 본능에 가깝게 작동하지 않았나 생각해 봅니다. 그리고 그 맥락안에서 우리 인류가 이리저리 허둥지둥 누군가를 누군가의 생각을 쫓아다니지 않았나 싶습니다. 정리하면 모든 인간(집단)을 충족시켜주는 그 어떤 사상이나 기제는 없다고 보여집니다. 다만 이래야한다는 도덕적 원칙이 존재할 뿐이겠지요. 모든것은 항상 개인과 공동체의 끊임없는 싸움일 것이고 시대정신과 밀접한 연관이 있을수밖에 없으며, 그 연장선상에서 승리하는 그것이 정답이 아닐런지 싶습니다. -생각정리 감사합니다.^^
박사님의 청렴에 대한 강의를 본 적이 있습니다. 정의 또한 청렴과 연관되어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기에 관계가 관계를 맺는 사회가 있어야 존재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샌들 교수님의 사회적 정의야 말로 다른 어떤 사람의 정의보다 더 마음에 와 닿는 것 같습니다. 저는 4번 샌델의 공동체 주의가 가장 정의롭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지식 또는 지혜가 필요하고, 이를 위해서 공부를 많이 해야 할 것 같습니다. 박사님의 많은 지도 계속 부탁드립니다.
오래전에 읽었던 책이었는데 (물론 구매해놓고 2~3년 동안은 장식으로만..) 내용이 자세히 기억나진 않습니다. 다만. 정의란 무엇인가. 를 정의 할 수 없다. 라는 것이 제 결론이었던 것이 기억이 나네요. JUSTICE cannot DEFINE 한글로 같은 '정의' 라는 글자라 참 흥미롭다. 라는 생각을 했었던 기억이 나네요. 17분 정도의 짧은 시간에 유익한 강의 녹여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오늘도 좋은 영상 감사드립니다~ 저는 여전히 롤스의 정의론이 우리 사회가 추구해야할 정의에 더 부합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무슨 정의가 옳냐 묻기 전에 정의 자체가 무엇인지의 논의도 필요하겠지만, (사회정책을 결정할 때 배경으로 두어야하는 원칙정도로 생각합니다)직관을 믿고 이야기하자면 제 선택은 롤스의 정의론입니다. 무지의 장막이란 설정 자체가 이미 공동체의 합의를 전제한다는 가장 현실적이고 합리적인 원칙이라고 생각합니다!(물론 댓글을 쓰면서도 여러 갈등이 속에서 울렁거리지만, 인생한방이란 생각을 거르고선 여전히 마땅한 원칙임을 부정할 수 없네요!) 정의란 무엇인가를 읽은지 벌써 9년이 지났네요.. 가물가물한 내용 다시 깔끔하게 정리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정의란 정답이 이거입니다👍 라는 내용의 책이 아니라 시대에 따라 세대에 따라 지역에따라 시기에 따라 정의란 변해왓다. 계속해서 토론하고 그 의견을 비판하고 토론하고 서로 이해하고 나아가야할 문제라는 말을 끝임 없이 던지면서 풀어나가는 책같아요. 모든 이가 인정하는 정의가 없다 에서 출발해서 그것을 찾아가는 과정도 중요시해야 사회가 국가가 건강해 진다는 말을 하는데... 과연 대한민국은 그러한지 의문입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삶의 편의성은 높아지는데 반대로 사회와 국가의 건전한 상식과 정의는 중도를 통한 균형을 이루기보다는 극단적으로 치닫는 모습으로 갈등을 빚는 상황이 점점 심각해지고 있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누구나 정의를 이해하고 정의로움을 최고의 가치로 삼는 세상이 되어 소외받는 사람이 줄어들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오늘도 많이 배워갑니다. 고맙습니다!
샌델 교수가 예전에 연대에서 강의했던 게 생각나네요. 샌델 교수는 정의란 사회가 합의해나가는 것이라는 메시지를 던졌는데, 강연에 참여했던 사람들은 진짜 정의가 무엇인지를 물어서 샌델교수가 강연 내내 '이 상황은 뭐지(내 책을 읽고 왔나)' 하는 느낌으로 강연을 하셨었죠. 적어도 아직까지 대한민국 사람들의 정의관은 바뀌지 않은 것 같습니다.
사실 영미권 중심의 논의라서 한국에 잘 안와닿는 부분이 있어요. 미국에서야 첨예한 사상적 전통들과 대결하면서 쓴 책이겠지만요. 한국에서 정의 얘기를 하려면 불교, 유교, 노장, 헤겔 이야기도 다루고 반대한다면 반대논거를 제시를 해줘야하는데 전혀 없죠. 그리고 요즘 미국에서 그리고 한국에서도 여러모로 이슈인 리버럴 정치 담론도 안나오고.. 기독교 얘기도 적극적으로 안다루고.. 여러모로 너무 영미권 전통 주장들 위주입니다. 미국 내의 여러 입장들을 다 다룬다고 보기도 어려울 정도이니, 한국의 문제의식을 해결해주기는 어렵겠죠. 당시에 여러모로 정의에 대한 갈망이 한국사람들에게 있었던 것이라 인기를 끈 것일텐데요. 아무래도 참조는 해도 한국은 한국 스스로가 새로운 길을 찾아가야 할 겁니다.
@@HissingGeotrauma 마지막부분에 말씀하신 내용이 샌델 교수가 말하는 지점과 일맥상통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절대적인 정의가 있다고 생각하고 실제로 진리와같은 정의의 존재에 대한 강한 믿음을 가지고 있지만, 인류 역사에서 보자면 다양한 정의관이 존재하고, 같은 사람들이 모여사는 사회에서도 정의관이 변해왔다는 것이 샌델 교수의 주된 주장입니다. 정의란 무엇인가가 강력한 임팩트가 있었던 것은 말씀하신 철학자나 철학사조의 정의관을 가능한 많이 소개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단순화하는 전략을 택함으로써 대중들에게 메시지를 전달하는 데 성공했다는 점입니다. 모든 사람이 정의가 무엇인지 알기 위해서 동서양철학사를 전부 공부할 필요는 없으니까요 ^^
저와 같은 느낌을 받으셨군요. 정의란 단어 하나로 책을 쓴 이유가 있죠. 그만큼 간단하게 치부할 수 없는 아주 복잡한 해석을 지니는 의미라는걸 알 수 있습니다 강연을 들어봐도 책과 일맥상통하는 느낌을 받을 수 있구요. 사전적 의미가 아닌 현실에서 어떻게 적용해야 하는지를 끊임없이 말씀합니다. 저도 대한민국의 정의관은 대한민국의 산업이 발전한 만큼 발전하지 못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도 이제 어릴적부터 철학, 정치, 경제를 공부해야한다고 생각해요. 이런 공부들이 모여서 정의관을 형성한다고 봅니다. 아직은 멀었죠.
늘 재미있게 보는 철학자로서 한 마디 보태보자면, 결국 어느 하나의 입장에 서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의견과 신념을 가지고 있는 다원적 사회에서 그들 간의 대화의 규칙에 동의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핵심이라 생각합니다. 롤즈는 그에 대해 개인의 윤리적 신념을 배제하고 대화에 참여할 것을, 또한 이를 통해 이른바 'overlapping consensus'에 이를 수 있다고 보았는데 사실 우리는 나와 신념이나 의견이 다른 사람들과 토론하는 문화가 부족합니다. 동의 가능한 대화의 규칙을 통한 최소한의 합의가 더욱 의미있게 다가오는 시절입니다.
별말씀을 다하십니다. 늘 좋은 강의 감사합니다. 우리나라에서 ‘정의란 무엇인가’가 열광적인 인기를 얻은 것은 서구와 다르게 공동체주의적 감성을 이미 가지고 있는데다가 보편적인 교육수준이 높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다만 개인의 자율성이 어느 정도 보장된다면 공동체주의의 입장에 서는 것이 괜찮아 보이는데 아직은 자율성(autonomy)을 바탕으로 한 사회를 예상하기는 시기상조 같습니다. 제도는 민주주와 같은 보편적 가치를 받아들였지만 의식수준과 제도의 괴리는 아직 존재하니까요. 서구에서는 개인의 자율성이 중요한 주제인데 우리도 이에 대한 논의가 더 이루어진다면 이미 가지고 있는 공동체중심적 문화와 조화를 이룰 것으로 봅니다. 대화의 규칙은 개인의 자율성 위에서 보편적 가치를 수용할 수 있는 기본적인 원칙이니까요. 다만 치열한 경쟁중심적 능력주의문화는 언젠가는 브레이크가 분명히 필요해보입니다. 앞으로도 훌륭한 강의와 소통 부탁드립니다. 박사님 같은 분의 역할이 중요한 시기 같아요. 건강하시고요.
와, 이거 대학생 때 맹장 수술때문에 입원했을 때 읽은 책인데 여기서 보니 반갑네요. 읽고 나서 엄청 충격적이서 요즘에도 누군가 인문/철학 관련 책을 추천해달라고 하면 가장 먼저 추천하고 싶은 책입니다. 읽으면서 마이클 샌델 교수님은 21세기의 소크라테스가 아닌가 싶을 정도로 산파술? 질문을 통해 진리라고 믿고 있던 것들에 의문을 품게 하고, 자신만의 새로운 진리에 도달하게 하는 책의 서술방식이 상당히 흥미로웠습니다. 달콤한 정답을 제시하기 보다는 정답은 없고, 어떤 선택에든 씁쓸한 뒷맛이 따른다는 교훈도 담겨 있었구요. 개인마다 다른 정의(justice)의 정의(definition)를 스스로 생각하게 한다는 점에서 상당히 유익한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정의란 무엇인지 아직도 잘 모르겠지만 저는 존 롤스의 '무지의 베일'의 상태에서 사회의 룰을 정하는 게 합리적이진 않지만 정의로운 것이라는 생각을 했었는데, 또 동시에 '타인의 자유를 해하지 않는 모든 자유를 행하라'라는 황금률도 상당히 좋아하는 격언인데, 이게 양립할 수 있는지는 잘 모르겠네요. 정의에 대한 정의가 다른 개인들이 끊임없이 합의에 도달하려는 노력...이 정답이겠지만 이건 지나치게 이상주의적인 것 같네요. 샌델 교수님의 새 책 '공정하다는 착각'은 아직 읽어보진 않았지만 읽은 사람들의 평 중에 '그럼 돌려돌려 돌림판으로 결정하자고?' 라는 평이 있던데 공정하다는 착각도 읽어보고 싶네요.
마지막에 나온 질문에 대한 답변을 위에서 적긴 했는데, 기본적인 사회의 약속은 무지의 베일에서 정한 규칙를 따라, 그리고 실제의 삶은 '타인의 자유를 해하지 않는 모든 자유를 행하는 삶'이 정의라고 생각하는데 이 둘이 양립하는 건 어려운 것이겠죠? 누군가 말했다는 '나는 당신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만일 당신이 그 의견 때문에 박해를 받는다면 나는 당신의 말할 자유를 위해 끝까지 싸울 것입니다'의 자세를 사회 구성원들 모두가 가지고 있는 사회가 진정 정의로운 사회가 아닐까 싶네요🤔
정의란? 절대적인 가치 기준이 아니라 상대적인 가치 기준이라는 것이 핵심 아닐까요? 시대와 상황에 따라 정의의 기준은 달라질 수 있고 그러한 가장 합리적인 정의를 찾아내는 과정이 공동체주의가 아닐까 합니다. 공리주의와의 가장 큰 차이는 공동체의 성향과 합의에 따라 정의의 기준이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일 것 같습니다. 정/반/합의 변증법적인 관점으로 보면 진보와 보수는 항상 돌고 도는 톱니바퀴일 뿐입니다. 어제의 보수가 오늘의 진보가 될 수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항상 미래를 향해 발전적인 방향으로 뻗어나가야 한다는 점입니다.
코로나 사태를 겪으면서 백신도 격리도, 심지어 마스크조차 거부하는 모습을 보고 저건 아닌데? 라는 생각을 한 사람들이 많을 거고 반대로 강제적인 봉쇄나 검증 안 된 백신접종에 대해서 거부감을 가진 사람들도 많을 것임. 정의라는 것은 결국 절대적인 정답이 있는 것이 아니라, 전체주의부터-자유지상주의 사이에서 가능한 한 높은 사회적 협의를 향해서 가는 과정 그 자체. 예를 들면 과학적 관점에서 필요한 조치들이 있다 했을 때, 전문가들의 과학적 설명을 이해할만한 교육수준을 갖춰주는 것, 예외적인 부작용에 대한 충분한 대책과 보상의 약속 그럼에도 남는 의심의 해소를 위한 설득, 특정 신념이나 의심에 강하게 사로잡힐 가능성을 최대한 줄여줘서 이렇게 해서 강요가 없이도, 많은 사람들이 동의할 수 있는 더 좋은 지점을 찾아갈 수 있게 하는 것. 그럼에도 다른 생각을 고집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이 타인에게 해가 되지 않는 한은 존중하는.
샌델의 공동체 주의가 제가 생각하는 정의에 가장 가까운거 같아요. 결국 보수전 진보건, 자유건 평등이건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함께 논의를 통해 해결하는 것이 가장 정의 원칙에 부합된다고 생각하거든요..^^ 오늘도 좋은 영상 잘 봤습니다~ 책장에 잠자는 책들을 다시 한번 꺼내 읽게 하는 영상들이네요..ㅎㅎ
몇년 전 똑같은 질문을 친구들에게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모두들 공리주의의 선택을 너무 당연히 주장해서 놀랐었어요. 저는 당연히 '사고가 나도록' 할 거라 생각했었으므로 - '사고'와 '인위적 조작에 의한 살인'이라 생각해서. 사고는 일어날 수 있지만, 어느 누구도 영문도 모른채, 그렇게 누군가를 위해 대신 죽어질 수는 없다고 생각해요. 누군가가 나의 목숨을 그렇게 판단한다면 넘 억울할 것 같더군요. 그렇다고 제가 로버트노직'의 철학에 동의하는 것도 아닌 것 같습니다만..
안녕하세요 교수님 영상 재밌게 보았습니다! 정의란 무엇인가를 읽고 항상 센델 교수가 제시한 쟁점들에 대해서 고민하면서 쟁점들에 대해서 제 생각과 학자들의 생각을 비교해 보고는 했는데요, 제 생각에는 롤즈의 정의론이 가장 정의로운 정의의 기준이라고 생각합니다. 공리주의는 생명의 가치에 대해서 무차별합니다. 인간이든 인간이 아니든, 그것이 고유하게 정체성을 가지고 자아 실현이 가능하든 아니든 그저 사회 전체 효용이 증가되는가에만 관심을 두고 있습니다. 따라서 인간으로 태어난다면 당연히 가져야 할 여러 권리들을 부정할 수밖에 없는 결과를 낳게 됩니다. 공리주의가 인간의 기본권을 지지한다면 그것은 그 본질을 지지하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그것이 ‘사회의 총 효용’을 증가 시키기 때문인데, 제 입장에서는 인간의 존엄을 훼손하는 행위라고 생각합니다. 자유지상주의는 개인의 운에 따른 요소를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습니다. 자유지상주의는 정부가 치안 및 법 적용 등의 기본적인 역할 외에는 개인에게 개입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이는 우리 사회에 기득권층이 저소득층을 대상으로 ‘노오력’이 부족하다고 냉소하는 것과 동일하다고 생각합니다. 부유한 집안에 태어난 아이는 공부하는 내내 먹고 살 걱정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 심지어는 갑비싼 사교육을 받을 수도 있죠. 그래서 더 나은 성적을 얻을 수 있고 이를 토대로 좋은 학벌을 획득하여 더 좋은 직업을 얻고 이를 자신의 자식에게 물려줍니다. 가난한 아이는 학교를 다니는 와중에도 자신의 생계를 걱정해야 합니다. 분명 부유한 집 아이와 비교할 수 없게 불리한 조건에서 시작하죠. 애초에 출발선 자체가 다르게 그어진 것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자유지상주의는 출발선이 애초에 다르고, 그 출발선 차이가 더 심화되고 있는 현 상황에서 그저 가난한 아이에게 ‘네가 노력이 부족해서 그래’ 라는, 다소 폭력적인(?) 메시지를 던지며 방관하는 방관자에 불과하다고 봅니다. 센델 교수의 공동체주의는 (그의 책들에서 드러나듯이) 롤즈가 주장하는 ‘무지의 장막’은 현실성이 없다 말하며 ‘미덕’을 위한 사회적 논의 및 합의의 중요성을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도대체 ‘미덕’의 실체가 무엇인지 저는 알 수가 없다고 봅니다. 미덕이란 사회 전체가 추구해야 할 가치이므로 이것에 대한 정확한 실체를 규정하려는 시도는 반드시 있어야 한다고 보는데, 사실 사회적으로 논의하여 미덕을 결정해 나간다는 것은 상당히 모호하고 실체 없는 이야기입니다. 특히 공동체에서 합의를 거쳐나가야 한다는 주장은 오히려 공동체 내의 비대칭적 권력에 의한 기득권의 일방적인 의사결정이 현대 사회에서 일반적인 상황에서 약자들을 보호하는 논리들이 자칫하면 부재할 수 있다는 취약점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제가 생각하는 가장 정의에 가까운 것은 롤즈의 정의론입니다. 앞서 언급했듯이 우리 사회는 현재 ‘운’ 이 너무 크게 작용하고 있습니다. 자신이 얼마나 땀 흘려 노력했는지와는 관계없이 애초에 정해진 출발선 만으로 인생 자체가 정해져 버리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출발선을 우리는 어느 정도 복지로 보정해 줄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그럼에도 이것이 왜 필요한지에 대한 정당화와, 어떤 조건에 의해 성립해야 하는지에 대한 이론적 기반이 상당히 부족했다고 봅니다. 이러한 복지 체계를 ‘무지의 장막’을 도입해 정당화함으로서, 다소 모호해 보이던 복지를 실체화하여 구체적인 실천 수단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저는 롤스의 자유주의가 가장 우리 사회의 정의를 규정하는데 적합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덕분에 어려운 책 잘 이해했어요. 감사합니다. 질문의 답은 마이클 샌델 교수의 정의라 생각합니다. 정의라는 것은 결국 사회적 합의에 의해 결정이 되지 않으면 누군가에는 정의가 아닌 불의가 될 거에요. 중요한 건 사안 자체의 공명정대함 보다는 사안을 들여다보는 사람들의 가치판단이 아닐까요. 그 가치판단을 명확한 기준으로 내리지 않아야 정의라 주장할 것에 불의라 반발하는 사람들이 적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합의가 필요하구요. 시청 잘 했습니다. 감사합니다.
@@전진우-w4n 일처다부제나 일부다처제를 애시당초 불의로 규정하고 말씀하시는거 같은데.. 센델교수는 그래서 사회적 합의를 통해 정의를 유지하자고 얘기하는거 같다고 생각됩니다. 질서를 정의라고 생각하면 그리 주장할 수 도 있는 것이겠지요. 불변의 절대선을 정의로 기준삼고 주장하는건 아닌 것 같습니다.
'사회적 합의' 말은 좋지만.. 현실을 보면 사회적 합의라는 명목하에서 이루어지는 것은 특정 집단이 내새우는 주장에 그저 뒤따라 무지성 찬성하는 사람들이 있죠. 샌델이 말하는 진정한 합의가 이런 것은 아닐 것이라면, 현실에서 진정한 사회적 합의라는 것이 가능한지 부터 생각해봐야할 것 같네요. 겉으로 보기엔 맞는말 같아 보이지만, 뜬구름 같은 말일 수 있습니다.
정치인을 심판하는 국민의 의식이 높아져야겠죠... 그들이 제시하는 방향이 갈등을 조장하는것인지 발전하기 위한것인지.. 그것은 국민의 의식이 높아지는것 밖에는 의미가 없을것 같네요... 정의란 자유도 평등도 아닌 가치라는 말에 백번 공감합니다...가치란 누군가를 감동시키는일 아닐까요? 소수의 부를 다수에게 나누어 주어야 할때는 단순히 배분의 요율을 정하기 보다는 그들을 설득하는 과정이 충분히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어찌되었든 그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부를 가진자는 그것이 운이 좋았을 뿐이라고 생각해야 되지 않을까요? 서로가 서로에게 한발 물러서는 마음이 있어야 사회는 정의로워지는것 같습니다..
박사님 좋은 콘텐츠 잘 봤습니다 덕분에 자유주의와 개인주의에관해 제가 잘못 알고 있던 부분을 바로 잡을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박사님께서 제시하셨던 카테고리중에선 롤스의 정의론이 가장 제 생각과 가까운 정의관이었던거 같네요 결국 같이 살아가기 위해선 그정도 합의는 필요하다고 생각이 드네요 그 4가지 외에서 제가 생각하는 정의를 설명해 보자면 샌델 교수님의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책에서 던지는 여러 질문들 그 질문에 답할때 느끼는 불편함 그 자체가 정의에 가장 가까운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결국 사람의 한 번 형성된 사고 구조는 잘 바뀌지 않고 그 틀 안에서 중요한 결정을 하게 되는데 그 결정을 할 때마다 그 불편한 마음을 느끼는게 참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 불편한 마음을 느껴야 한 결정을 내릴 때 그 반대편을 생각하게 될것이고 그렇다면 극단주의로 가는 사고와 결정들을 막아주어서 인간 사회가 유지 될 수 있는게 아닌가 싶습니다 요즘 한국 사회의 극단화 되어가는 정치갈등 남녀갈등 세대갈등 등등에 꼭 필요한 마음인것 같습니다 어쩌면 유교의 인과 의 불교의 자비와도 일맥상통하는 이야기인것같네요
어려운 책을 쉽게 설명해주셔서, 오래전 읽었던 책 내용이 다시 생각났습니다. 제가 가장 정의롭다고 생각하는 정의는 공동선을 언급한 센델의 공동체주의입니다. 책에 나오는 내용처럼 정의로운 사회는 단순히 공리를 극대화하거나 선택의 자유를 확보하는 것만으로는 이룰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좋은 삶의 의미를 함께 고민하며 다양한 문화를 수용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늘 유익한 영상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주 단순함 ㆍ개인이 지혜로써 판단을 하고 ㆍ개인이 맡은 소임, 역할을 다하는 게 정의 연극공연을 하는데 배우들, 음향,조명, 무대장치, 연출,조연출, 보조진행자, 등 각자가 역할을 다하면 공연은 잘 끝난다 연극공연 구성원들은 역할을 다 하는 게 정의이고 관객은 좋은 공연을 보고 축하해주는 게 정의이고 연극공연은 잘 끝났기에 정의를 성취했다 나라와 개인도 이런 관계다 나라라는 공연이 성취되기 위해서 각 개인이 맡은 소임, 역할을 다할 때 국가의 정의, 개인의 정의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저는 참 샌델식 정의가 마음에 드는 게 정답을 주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오히려 너가 찾은 정답은 뭐냐고 계속 되묻기만 하죠. 우리가 지나고 나면 그 일의 이유나 원인을 잘 알았다고 생각하기 쉽잖아요. 그리고 그때의 경험으로 미래를 예측할 수 있다고 믿어요. 그러고 나면 그게 바로 정의고 정답이라고 생각하게 돼요. 하지만 조금, 혹은 많이 지나고 나면 그게 답이 되지 못하는 상황이 와요. 정답이 틀려서 그럴 수도 있죠. 정답은 맞는데 우연히 안 들어맞는 상황도 찾아와요. 심지어는 이 정답이 너무 흔해지면서 사람들의 생각이 바뀌고, 사람들의 생각이 바뀌어서 새로운 문제가 나타나고, 새로운 문제가 나타나서 정답이 바뀌기도 해요. 마치 깨진 유리창 효과가 너무 유명해져서 실험으로 재현하기 어려운 것처럼요. 실험인 줄 알게 되는 순간, 동참해주는 사람과 동참해주지 않는 사람만 남잖아요. 이런 변화는 우리 삶에 적용되는 순간부터 나타나는거 같아요. 심지어 과학도, 과학적 원리는 안 바뀐다지만, 그 원리로 할 수 있는 건 계속 바뀌잖아요. 물리적 환경만이 아니라, 인류가 가진 지성의 축적과 망각이 계속해서 정답을 바꾼다고 봐요. 이처럼 정의에 대한 논의도 정답이 되는 정의를 계속 바꿔나갈 거에요. 샌델이 발견한 정의는 그런 것 같아요. 무한한 변화 속에도 정의에 대해서 불변하는 게 있다면 공동체의 합의일 거다. 공동체, 집단지성이 변화무쌍하기에 ‘정의의 사도’라는 모습도 변화할 수 있지만, 공동체가 믿는 것이 곧 정의가 될거다. 우리가 할 일은 그저 더 많은 우연, 더 많고도 다양한 정답 속에서 사회에 새로운 정의를 탄생시킬 뿐이다. 저는 문화를 그 집단의 믿음, 그 집단의 문제해결방식이라고 생각해요. 그렇기 때문에 문화는 그 자체로 정의에 가장 가까운 것이 될 거에요. 국가차원을 떠난 그 다양한 문화, 삶의 양식, 그름이 아닌 다름. 그 자체가 그 사회의 정의라고 생각해요. 물론 그 안에 정의를 선도하려는 이가 있죠. 자연스레 리더가 생기고, 지위가 아니라 능력으로서 리더십이란 것도 생기고, 자칫하면 전체주의가 찾아올 수도 있죠. 그때 필요한 건 역시나 다시, 그게 옳지 않다면 왜 옳지 않을까. 그때가 되면 나는 어떻게 해야할까. 우리가 무엇을 해야만 그것을 막을 수 있을까. 그 미래가 찾아온 순간 그 시점에 맞춰서 고민을 했던 이들의 목소리가 필요할 뿐, 언제나 옳은 정답이 필요한게 아닌 것 같아요. 그들의 리더십과 목소리가 정의에 대한 대토론회를 열 뿐인거죠. 불변하는 정의는 그저 그 토론회를 열지 못하게 막는 장애물이 될 거에요. 우리가 문제를 인식하는 순간에 움직이지 못하는 장애물이요. 우리 공동체가 박살나고 그전의 정의가 추구하던 가치들이 아예 박살 날 때까지 그저 옳을 거라고 믿고 기다리는 사람들을 기른다고 봐요. 세월호처럼요. 미래에도 항상 자리를 지켜줄 정의란 없다. 정의는 우리가 만들어가는 거다. 저는 그런 정의가 좋아요. 그래서 아마 가장 비슷한, 어쩌면 빠져버렸을 지도 모를 샌델의 정의가 가장 마음에 들어요.
제가 나름 다독하는 사람이고 제법 난이도 있는 전문서적도 읽고 즐기는 사람인데요.... 진짜 님이 쓴 이 긴 장문 지금 다 읽었는데 무슨말인지 이해를 도무지 못하겠네요ㅎㅎ 맨 윗줄 두줄 이후부터 맨 마지막줄 한문장까지... 대체 어떤 정신을 가지고 있으시길래 글로 쓰니까 이렇게 표현이 되어 나오는건지 걱정이 됩니다....
그 시대가 가지는 문제점에 대해서 고민하고 해결방법을 찾는 과정과 노력이 그 시대의 정의가 아닐까 합니다. 두 개 혹은 3 개 이상의 사회적 무게 추에 따라 변화되는 상황을 조율해 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2차 대전이나, 냉전시대, 매카시즘 등과 그 과정이 생략되고 어느 한 시점을 향해 맹목적으로 나아가는 상황은 정의가 실종되어 가는 과정이구요. 즉, 공리주의와 자유주의 등의 이데올로기적 단어에 뜻에 함몰되지 않고 사회적 문제에 대한 고민과 해결과정 그 행위 자체가 정의라고 생각합니다. 항상 잘 보고 응원하고 있습니다. 김지윤 박사님 화이팅!!
예전에 읽은 책이어서 다 기억나지는 않지만, 책에서 소개했던 trolley problem 등의 사례를 소개해주시니 그 때 느꼈던 기억들이 떠오르네요. 저는 저자가 책에서 이런 도덕적 딜레마가 존재하는 사례를 들면서 앞선 철학자들이 제시하는 정의관의 스탠스에 대해서도 알게되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영상에서도 강조하는 가치에 대한 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세계사나 한국사 등의 역사를 배운 것은 정의란 것은 실행하는 주체가 감당할 수 있는 부도덕적인 행위의 수위를 지정하여 허용하는 것이라고 느꼈습니다. 사람이 정의라는 이름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을 해쳤습니까. 정의의 깃발을 내건 사람들은 더욱 잔인했고, 주저함이 없었습니다. 제가 우려하는 사회는 정의에 정답이 있는 사회입니다. Trolley problem에 대해서 이야기하자면 정해진 정답이 있어서 스위치를 당기던, 당기지 않던 간에 어느 누구도 어떤 고민 없이 그것을 실행할 수 있는 사회죠. 정의가 뚜렷한 사회. 그래서 저는 "당신이 스위치를 당기던, 당기지 않든 간에 그 행위의 결정을 누구가 제시하는 정답이 아니라 더 좋은 결과(가치)를 얻기 위해 행위자가 고민하는 행위가 정의인게 아닌가?" 라고 생각합니다. 애매한 정의죠. 그래서 가치를 이야기한 것도 가치라는 것이 개인에 따라 고유하며, 상황이나 조건에 의해 달라지는 것이기에 얘기한 게 아닐까 싶어요. 따라서 합의된 결정 자체가 중요한게 아니라 합의하는 과정이 중요하다라고 생각합니다. 합의하는 과정도 지정하지 않음에 대해서 지적하셨는데 아마 일반적으로 얘기할 때는 그런 부분을 에둘러 표현하는 게 최선이 아닐까 싶습니다. 합의하는 과정을 지정하는 것도 일종의 가치 선택이 될 수 밖에 없으니까요.
정의란 무엇인가? ☞ 함부로 정의할 수 없는 것. 20년 전 멋모르고 읽었을 때는 칸트의 '정언명령' 밖에 기억나지 않았고 불혹의 나이가 되어 다시 읽어보니 감회가 새롭습니다. 정의는 끊임없이 인간을 생각하게 하며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주춧돌이 아닐까요? 감히 생각해 봅니다.
@@김기학-x4s 저도 정의감 만땅이었던 20대를 보냈어요. 항상 부당하고 부조리 한 것을 보면 분노 하는게 맞다고 여기며 나만의 도덕률의 갑옷을 입고 타인을, 세상을 재단하며 살았는데 이제 46살이라는 나이가 되서 보니 내가 올바르다는 착각을 하고 살았구나 하는걸 깨닫게 되더라구요. 많이 내려놓고 보니 이리 편한걸... 사실 우리가 부당하고 불합리 하다고 정의 하거나 판단하는 상황이나 사람들은 따지고 보면 큰 그림에서 문맥적 선택을 한 것일뿐인 경우가 많더라구요.
정의라고 말하는 순간 정의가 아닌것들이 배제되기에 저는 정의라는것이 문제들에 원인이 되는건 아닌지 의문을 갖습니다. 애초에 정의라는것은 인간들이 편하게 살기위해 만든 일반화과정이라고 생각하고 이건 폭력이 될수도 있다라고 생각합니다. 불편하더라도 개인의 다양성을 인정하고 남에게 피해주지않는 개인과 성숙한 공동체가 되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합니다.
대학때 한학기 수업으로 다뤘을 정도로 참 생각해볼게 많은 책이죠 이렇게 간추려 설명해주시니 잊었던 기억들도 살아나고 좋네요 저는 대학때도 그렇고 회사원이 된 지금도 롤스의 자유주의에 마음이 가네요 기회의 균등을 위한 차별 그 차별을 통한 실질적 평등 그리고 무지의 장막 무지의 장막을 그 예시와 함께 처음 들었을때 굉장히 공감하고 감명 받았던 기억이 나네요 물론 롤스도 완벽한 것이 아니라 정부의 지나친 개입이나 포퓰리즘식 복지는 바라지 않지만 기회의 균등이 무너지고 있는 현 우리나라 상태에서 볼때 롤스의 자유주의가 지금까지도 가장 마음이 갑니다
(여전히) 저는 공리주의가 가장 정의롭다고 생각합니다. 대학생 시절에 읽은 책인데 감회가 새롭습니다. 경제학도로서 당시엔 경제학의 근간이 되는 공리주의에 손을 들어줄 수밖에 없었죠. 하지만 시간이 흘러 생각이 전보다는 더 깊어지고, 사회에 나와 여러 갈등을 겪으면서 생각의 부침이 있었음에도 다시 한번 공리주의를 지지하고 싶습니다. 샌델 교수의 공동체주의는 실상 공리주의의 다른 이름에 불과하다고 생각합니다. 공리주의에서 측정하지 못하고 내놓은 행복의 총량이라는 개념이, 샌델 교수가 말하는 가치의 합의라는 개념과 다르지 않다고 봅니다. 이 책이 제시하는 문제, 철로에 관해서도 결국 다섯 명보다는 한 명을 희생시켜야 한다는 결론에 다다르게 됩니다. 그 한 사람의 가치가 얼마나 뛰어난지를 부연하고, 한 개인의 자유와 가치를 제아무리 드높인들 결국 반대쪽에는 그러한 개인 다섯 명이 있기 때문입니다. 자유주의 개념에 입각해서 그 한 명을 아무리 지키려 해도, 오히려 지키려 하면 할수록 나머지 다섯 사람이 도드라지는 결론을 얻게 됩니다. 이것으로 자유주의가 가진 한계를 우리는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습니다. 제라미 벤담이 살았던 시기는 사회가 아직 불평등한 시기였지요. 그러나 오랜 시간이 흘러 사회가 어떻게하면 더 평등해질 수 있을까?를 고민하게 된 지금, 마이클 샌델 교수가 등장해 제라미 벤담의 주장을 재구성한 것입니다. 사회적 규모의 가치 판단이 필요하다, 즉 행복의 총량을 도출할 방법론이 필요하다 라는 주장이지요. 마이클 샌델 교수는 '공정하다는 착각'을 통해서 저에게 대단히 충격을 준 말을 소개해줬습니다. 어떤 사람은 3루수에서 태어난 줄도 모른 채 살아간다는 것이요. 능력주의에 대한 강한 비판입니다. 이것은 제라미 벤담의 주장과 대단히 유사한 괘를 가지고 있습니다. 소수자의 특권을 나누려 한 벤담의 현대적 버전일 것입니다. 하지만 여기서 끝내면 속이 답답합니다! 정의란 무엇인가를 처음 읽었을 때도 그랬지만, 그래서 뭐 어쩌라고? 속 시원한 답을 해주질 않거든요. 그러니 조금만 더 나아가 보겠습니다. 저는 '비슷한 가치를 공유하는 집단'이 새롭게 다가올 우리 사회(세계)의 새로운 정치적 묶음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개개인의 자유와 평등, 배분은 그 집단 안에서, 그 집단의 논리에 근거해 해결될 것이고, 정치적인 대립과 해소는집단 대 집단의 논쟁으로 결론지어져야 합니다. 저는 이러한 (사회 정치적) 파편화가 이미 진행 중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동안 극단으로 밀어붙여 온 다원주의 실험이 실패로 판명났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새로운 철학사조인 구조주의에 따라 '개인'이라는 주체는 논의의 대상에서 멀어져가고, 같은 사상을 공유하는 집단이 새로운 시대의 주역으로 등장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때가 되면 각 집단은 각자의 고유한, 그리고 근본적으로 다른 논리로 무장한 채 서로 충돌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와중에도 '행복의 총량'이라는 개념만큼은 모든 집단에서 지금과 크게 다를 바 없이 통용되며 자유, 평등, 분배, 개인, 공동체라는 굵직한 논쟁들에 기준을 제시하리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오랜 세월이 흘렀음에도 저 자신이 아직도 공리주의자로 남아 있었음을 깨닿게 되었네요. 늘 감사하고, 다음 영상도 기대하겠습니다!
이것이 공리주의에 입각한 답변인지 아닌지 저로서는 알 수 없사오나, 저는 다섯 명을 향해서 가는 기차를 한 명인 쪽으로 돌리는 것이 정의롭다고 생각합니다. 위에서 다섯 사람이 죽더라도 한 사람이 죽게 할 권리가 없다고 말씀하셨는데, 저는 거꾸로 누구에게도 다섯 사람이 죽게 내버려둘 권리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전에 김지윤님과 함께 읽었던 '악의 평범성'의 주요 주제이기도 합니다. 아우슈비츠로 가는 열차를 관리하는 나치 직원이 자신은 그저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이라고 변명했다지요. 저는 이것이 트롤의 문제와 근본적으로 동일하다고 봅니다. 아우슈비츠로 가는 열차를 멈추지 않으면 열차에 탄 많은 유대인들(다섯 명)은 아우슈비츠에서 죽게 될 것입니다. 반대로 열차를 멈춘다면 관리자인 본인과 가족이(한 명) 나치 정부로부터 위협을 받게 되겠지요. 트롤의 문제에서 기차를 돌리지 않는 것이 정의롭다면, 이 나치 직원 또한 정의로운 선택을 한 것일 겁니다. 무고한 자신과 자신의 가족들이 죽게 할 권리가 본인에게는 없었으니까요. 하지만 우리는 그를 처지를 이해할지언정 비난합니다. 왜 그럴까요? 다섯 사람이 죽게 내버려뒀기 때문입니다. 공리주의의 원칙을 정면으로 깨뜨렸기 때문입니다. 본인의 손에 달린 문제에 대해 책임지거나 고민하기를 회피했기 때문입니다. 시인 윤동주는 독립운동과 관련해서 실제로 아무런 행동을 하지 않았지만, 그 문제에 대해 늘상 자아비판하고 괴로워했지요. 선택하지 않을 권리에 대해서 저는 아는 바가 없습니다. 다만 지극히 자유주의적인 입장에서만 나올 수 있는 선택이라고 생각합니다. 본인은 세상의 모든 문제에 대해서, 설령 본인의 눈앞에서 일어난다 할지라도 책임지거나 행동하지 않을 권리가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니까요. 그런 개인들이 모인 사회는, 저는 사회가 아니라고 봅니다. 남에게 단순히 피해를 주지 않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쓰다 보니 조금 감정이 실렸네요. 죄송합니다. 이것이 공리주의에 입각한 대답이 맞는지 학식이 부족한 저로서는 불분명하나, 저는 위와 같이 생각합니다.
5명과 1명이면 생각이 간단해지지만 5명과 3명... 5명과 4명이 되면 생각이 간단해지지 않습니다... 다수를 목적에 두기 시작하면 이 역시 전체주의로 흐를 가능성도 있구요... 물론 한두줄의 문장으로 정의란 단어가 규정지어질만큼 간단한게 아니기에 이에 대한 해답은 각자의 가슴속에서 존재하는거라 생각합니다만 너무 문제를 단순하게 보는것 역시 조심해야할 문제가 아닌가 싶습니다...
@@이보라-f8r 숫자를 조금 키워보면 어떨까요? 1:100 이라면... 극단적으로 1:나머지 인류 멸망이라면? 여기에 답을 하기 어려우시다면 이보라님이 생각하시는 정의는 수치에 따라 변화하는 것인지요? 그렇다면 기준이 되는 수치는 얼마인가요? 반대로 한명의 생존을 위해 다른 이들(이보라님과 가족 친구분들 포함)은 죽는게 자연스럽다라고 한다면 이를 수용할 수 있는지 궁금합니다.
좋은 동영상 잘 시청하고 있고, 정말 좋은 정보들을 얻어가고있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교수님의 마지막 질문에 제 답변은 롤스의 자유주의가 가장 정의롭다고 생각하고있습니다. 우선 한 예시로 저는 현재 고등학생이고, 곧 수능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수능 같은 경우에는 자신의 노력과 재능을 통해 성적을 좋게 받을 수록 그에 따른 대가로 좋은 대학교에 갈 수 있다라는 기회를 얻게 됩니다. 하지만 여기서 과연 수능이 우리의 노력을 제대로 반영했을까하는 의문이 생깁니다. 수능을 치르는데 노력도 들어가지만 함부로 얻을 수 없는 재능이라는 선천적인 요소가 들어가면서 수험생끼리 격차가 생기게 됩니다. 그러면 좋은 재능을 갖지 못하는 학생은 재능을 갖을 수 있는 운이 없다라는 이유로 차별을 받게 되는거죠. 앞선 예와 같이 우리 사회에서도 우리가 제어할 수 있는 사회적 요소들은 극히 드물다고 생각합니다. 그럼으로써 롤스의 정의론에서 나오는 원초적 입장이라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현실성이 조금 떨어지지만, 만약 무지의베일과 같은 것을 우리가 실천 할 수 있다면 가장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마지막 질문에 대한 답변] 안녕하세요 박사님, 항상 좋은 영상을 만들어주셔서 잘 보고 있습니다. 저는 '공리주의'가 제가 생각하는 정의에 가장 부합하는 것 같습니다. 저는 무기를 만드는 군수산업에 종사하고 있고, 냉혹한 국제사회 속에서 '대한민국의 행복'을 최우선으로 두고 있습니다. 저는 세계 각국의 위협으로부터 우리나라의 핵심이익을 지켜내기 위해선 공동체에 속해있는 개인의 자유를 충분히 제한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대표적으로 징병제를 들 수 있겠네요) 자유주의에 대한 내용에서 '테러리스트에게 고문을 해도 되는것인가?' 라는 사례가 있었는데, 저는 명백한 국가의 적에게선 얼마든지 (알려지지 않게) 고문을 할 수 있으며, 전쟁이 일어난다면 불가피하게 특정 다수의 희생을 강요할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자유지상주의에 대한 설명에서는 '합법적인 선에서 자유는 보장되어야 한다' 라는 언급이 있었는데요, 기득권 세력은 법과 규칙마저 바꿀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들에게 무제한적 자유를 쥐어줘선 안될 것 같습니다. 마지막 공동체주의에서 공공선에 대한 공동체 내의 숙고와 토론이 필요하다는 것에 적극 공감합니다만, 국내 여론형성 과정에서 타국의 개입 가능성 (예 : 중국의 호주 정치권 로비)을 고려한다면 지나치게 이상적인 이야기가 아닌가 생각이 듭니다. 물론 이런 생각을 하기 위해서는 자신에게도 엄격한 잣대를 들이밀어야 하겠지요. 공동체를 위해서 제 자신의 자유가 제한되야 한다면... 저는 기꺼이 그 짐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
역사가 말해주고 증명합니다 그 정의라는 이름으로 유대인이 학살되었으며 정의라는 이름으로 다른나라들을 침공했고 그결과는 어떻게 되는지 아는데 이상과 현실은 엄연히 다르다는 말을 해주고 싶네요 그 피해자라는 유대인도 저기들만의 정의를 내세워서 팔레스타인과의 관계를 보면 과연 정의가 무엇인지 의심스러울 정도입니다
자유지상주의 관련 언급하신 부분에서, 기득권 세력은 법과 규칙마저 바꿀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무제한적 자유를 주어선 안된다고 하셨는데요. 여기서 자유는 개인으로서의 자유이고, 우리가 사는 세상은 법치주의 국가입니다. 일반 개인으로서 정치적 자유 & 경제적 자유와, 정치인으로서 법에 의해 제한을 받는 것은 다른 영역입니다.
가장 정의로워야 하는 법도 시대가 변함에 따라 수정되고, 추가되는 것만 보아도 정의란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사회의 변화에 맞춰 유동적으로 움직이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 샌델 교수의 공동체주의에 많이 공감하고, 정의라는 것이 정의로운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교육이 참 중요하겠구나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의미있는 생각을 하게 만들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정말 오래 전에 읽고 거의 잊고 있었는데, 다시금 읽으니 마음에 새겨둘 부분들이 많네요. 영상도 잘 보았습니다. 늘 감사합니다!!
공동체냐 개인이냐, 평등이냐 자유이냐, 진보냐 보수냐 이렇게 어느 한 쪽만 고르기에는 세상도 구성원들도 너무 다채로워졌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합의된 올바른 가치를 기준으로 선택하는 샌델의 공동체주의 가장 합리적일 것 입니다. 이번 주 정치외교학 전공 수업에서 Don't Look Up이라는 영화를 감상했습니다. 이 영화에서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대사 중에 "혜성이 떨어지는 것이 우리에게 이로운가 이롭지 않은 가에 대한 기본적인 합의도 이루어지지 않은 채로 어떻게 대화를 합니까!!" 하면서 소리치는 대사가 있었습니다. 사람은 많고, 의견을 표출할 매체도 많고, 정치는 부패했고, 언론은 그들을 선동했습니다. 결국 혜성이 떨어져 인류가 멸망하게 됩니다. 이 영화를 보면서 합의되지 않은 사회가 가장 무섭다고 생각했습니다. 시민들에게 기본적인 정의에 대한 합의가 없으면 정치가 부패하기도 더욱 쉬웠습니다. 벤담, 칸트, 롤스, 노직의 철학적 사상이 다른 것도 결국엔 시대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의견이 많고, 양극화로 대립하고 있는 지금의 사회에는 합의가 가장 필요합니다. 합의된 단단한 가치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공동체주의가 현재 사회에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이번 주 과제가 Don't Look Up에 대한 에세이를 쓰는 것인데, 생각을 정리하는데 도움이 많이 됐습니다!😊 다음 책도 너무 기대됩니다~~
요약 잘 봤습니다. 말씀하시는 지식도 지식이지만 자막과 중간중간에 나오는 정보(인서트컷)까지 상당히 완성도가 높은 콘텐츠네요. 편집을 전문으로 하는 PD님이 있으실 것 같은데요. 어떻게 고용을 하신건가요?(아, 저는 1인미디어에 대해 석사논문을 쓰고있는 대학원생이라 이런 질문을 드리는것입니다.) 17:25 또 제가 생각하는 '정의'는 칸트의 '정언명령'이 저의 생각과 가장 가깝다고 봅니다. 그 이유는 모든 인간은 좌우 혹은 국성원의 수, 또 인종이나 민족, 계층을 벗어나서 각 개인이 스스로 최선을 다해서 정의로워져야 한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제가 생각하는 ‘정의란 무엇인가’는 말그대로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의미인거 같습니다. 아직 제대로 정의 내려진 것도 없고 사람마다 생각하는 것도 다르고 시대마다 추구하는 가치관도 다른데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르겠습니다. 모든 사상가들이 저마다 얘기를 하곤 하지만 모든 상황에 들어맞는 것은 없다고 보여지네요. 그래서 누군가의 사상이 더 정의롭다라고도 생각이 들지 않고요. 그냥 끊임없이 나에게 질문은 던져보고 해답을 찾고 그것마저도 나중에 번복되는 과정이 될 것 같습니다. 박사님!!! 책 같이 읽어요 다시 해주셔서 정말로 감사합니다. 재밌게 보고있습니다 ㅎㅎ👍
정의는 고립된 개인에게는 필요한 개념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즉 정의라는 개념을 말 하는 순간부터 개인이라는 관념을 포함한 모든 관계라고 생각합니다. 그 관계들이 변하면 정의는 필요에 의해 끝없이 변화할듯 하네요. 좌우를 말하는 자들 중에 정의롭고 인간미 넘치는 사람을 본적이 없네요.
잘 만드신 영상 잘 봤습니다. 정의란, 각자의 입장에서 환경과 살아온 배경에 따라 카멜레온의 피부색 처럼 변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이기적인 유전자의 논리로는 우리 유전자의 종족보존의 본능으로 생각하고 계속적으로 진화하는 개념일 수도 있겠습니다만, 정의란 딱히 무엇이다라고 할 수 없는 것이 우리 호모사피엔스의 한계이지 않을까요? 다만 정의란 무엇인가? 하고 계속 고민하면서 우리 호모사피엔스는 나날이 성숙하겠지요.
공동체주의를 지지합니다. 인류의 생존과 진보의 근원이기도 합니다. 그의 공동체주의란 인간을 수단이 아닌 목적으로 두는 것입니다. 다수의 이익이 아니라 소수도 배제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공리주의와 다릅니다. 저자는 소수까지 배려하는 공동선을 강조합니다. 아마도 자본주의 폐해로 소외 받는 미국 사회 단면 때문일것입니다. 정치가 도덕에 적극 개입하는것조차 주장하는 점에서 위험해 보이기도 합니다. 그래서인지 “도덕이란 무엇인가” 책에서는 개인의 자유와 도덕의 균형을 말함으로 충돌을 피합니다. 2010년에 “정의한 무엇인가” 읽느라 곤혹스러웠던 기억이 나네요.. 읽은 후에는 뿌듯함이..
안녕하세요~~교수님이 TV에 강연 나온다고 할때마다 ㅋㅋ월드컵 기다리는 심정으로 기다리는 팬 1인입니다. 계속 책 리뷰 및 여러 영상을 보면서 배울 수 있어 참 감사합니다. 지금까지 여러 책 리뷰영상을 보면서 저의 머릿 속 생각으로 질문을 답했지만, 마이클센델 교수님의 책은 지나칠 수 없어서 부족하지만 댓글을 남기려 합니다. 남겨주신 질문의 답은, 서로 배려하는 사회, 배려가 특권이 되는 사회가 되는 것이 정의에 가장 가깝지 않나 싶습니다. 대학 때 읽어본 '정의란 무엇인가' 어렵게 정독 함으로써, 느낀 점은 저도 교수님과 같이 '어떻게? ' '공동체 안에서 최적의 선을 이루는 것인가?' 이였습니다. 그래서 더 읽어 본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 '공정하다는 착각'(나중에 읽었지만) 에서도 뚜렷한 구체적인 방법은 없었다라고 생각했습니다.(개인에게 던져진 숙제??같은 느낌) 하지만, 센델 교수님이 여러번 강조하는 것은 지금의 개인은 혼자 네트웍을 이루면서 살 수 없는 구조이며, 여기서 도덕적 윤리, 가치는 절대로 제외하고 논할 수 없다는 점입니다. 그렇다면 저는 공동체의 선을 내 자신만의 의견으로 제시하는 것이 아닌(이기주의와 다르게 더 선한 생각으로 벗어나 '나'가 아닌 '당신'의 생각(배려?)으로 출발), 타인을 위하고, 배려하고, 그것을 사회에서 특권으로 인정해주는 사회 분위기와 양보하는 가치를 우선하는 사회라면, 교수님께서 말씀하셨던 진보, 보수를 뛰어 넘고, 갈등을 최소화 할 수 있는 방법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러기 위해선,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정부애서 지식보단 지혜를 가르치는 교육과 개인의 도덕적 가치를 자립하는 바탕으로, 타인을 배려하는 교육으로 시작한다면 정의로운 사회로 가까이 갈 수 있지 않나 싶습니다. 부족한 능력으로 제 의견을 제시해 보았습니다. 물론 뜬구름 잡는? 혹은 이루어질 수 없는 유토피아를 말하는 것 같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정의', '정의로운 사회' 이 자체가 유토피아라고 생각합니다. 교수님 덕분에 다시 책을 읽고, 대학교때 생각지 못했던 견해들이 나이들어서 색다르게 보였습니다. 감사합니다.
정의란 그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공동체와 개인 간의 끊임없는 의견 차이를 합의하는 방식의 변화라고 생각됩니다.
정의=사회질서를 유지하는 이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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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의 반대는 공산주의가아니고 독재주의인걸 애써외면한는 교육환경도 사회악이라 할수있지요.
교수님의 강의를 즐겨듣고 있습니다. 정의에 대한 해답은 딱히 정의내리기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굳이 고른다면 각 사람의 삶의 배경이 다 다르기 때문에 서로 대화하며 서로를 이해해가려는 과정속에 정의라는 것이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 과정속에 소외계층이 생기지 않는다면 모든 사람을 만족 시킬순 없더라도 대부분이 인정할수 있는 결과를 얻을수 있고 그 과정 자체가 정의롭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정의가 있다는 착각"
이 말 말고는 생각나는게 없네요..
다 읽고 나서도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의문이 계속 남는 책이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노직의 입장에 가까운 편이긴 하지만 제 결론은 절대적인 정의는 없다 입니다. 어찌보면 정의 그 자체보다 그것을 찾아가는 과정이 더 중요할 수 있다고 생각해 봅니다.
교수님 덕분에 어려운 책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공정하다는 착각을 읽어 봤습니다. 책을 읽어 볼수록, 어떤 규칙도 당연하다고 여겨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사람은 누구도 개인만으로는 살 수 없습니다. 공존을 위해서는 연대의 힘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안전 수칙은 지키세요.
편협하시군요
롤스의 정의론에 한표 입니다
특히 "무지의베일" 이라는 사고 실험은, 실현 가능하지는 않지만
사회적 합의를 하는데 가장 현실적이며, 구체적인, 그리고 누구도 반박하기 어려운 합리적인 방법론으로 보입니다
강의 감사합니다
회전근개 빨리 쾌유하시길 바랍니다
고딩때 한번 읽어보긴 했는데, 몇몇 부분이 너무 어려워서 이해하기 어려웠던 책이었는데 이렇게 정리해주시니 감사합니다. 책을 읽었을때 다른 건 다 그렇다쳐도 샌델 교수가 한국 사회의 공동체주의를 지지하는 게 꽤 의아했어요. 그때 또 마침 학창시절이어서 사실 한국이 공동체주의라기보단 전체주의적인 문화에 가깝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거든요. 멀리서보면 좋아보일 수도 있지 않을까 싶기도 했고요. 우리도 미국을 보면서 부러워하는 것들, 특히 자유에 대해서 부러워하곤 하지만, 막상 그 곳에 가면 자유주의 이면에 자유를 오히려 위협하는 요소들이 많다는 걸 알게된다고들 하잖아요. 결국 이 책은 샌델의 주장까지도 모두 정의라는게 얼마나 모호한 것인지 알려주는 것 같네요.
전체주의는 아니고 집단주의에 가깝다고 봅니다...개인과집단 평등과자유 이모든게 혼합된 사회인데 어떤걸 더중시하는 순간 모든게 깨지는것이죠...언급하셨지만 미국이 자유를 중시하지만 결국 평등이 깨지면 그자유 조차도 위협받게 되니까요...정의란것도 보이지않는 관념이기 때문에 그기준과 원칙이 개개인이 다르니 모호할수 밖에요...모호함 그자체를 인정해야죠..다만 모호하지만 정의 자유 평등 이러한 관념들을 믿어야 사회가 지탱될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같이 책읽기 기획 진짜 너무너무 좋아요 계속~쭉 해주세요 ㅠ
읽다가 읽다가 덮어버린 책인데 제 두꺼운 귓구멍에 쏙쏙 박히게 얘기해 주시니 좋습니다 ^^
군 도서관에 책이 있어 빌려 읽다가 계속 딴생각이 들어와 몇장 안넘기고 반납했는데 이렇게 잘 설명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정의란 시대적 환경에 따라 계속적으로 변화하는거 같습니다.
우리가 살다보면 과거에는 맞았고 지금은 틀린 사회적 현상이 많이 있듯이 정의도 과거의 정의와 현재의 정의의 개념이 다른거 같아요.
도덕적 가치에 우선을 두는것이 정의라면 이 또한 소수의 희생이 나올것이고 그들의 이견을 잘 받아들여 그들을 설득시킨다. 이게 제가 생각하는
그나마 가장 정의로운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정의가 답이 없기에 정치꾼들이 먹고 사는게 아닐까요.
책을 3번정도 읽었는뎨.
재미가 있고.
다양한시각을 갖게했어요
교수님 정의에 대한 사조를 간략히 강의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의 짧은 견해로는 “정의”란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정답은 없고 동시대를 살아가는 개인/집단의 수요에 맞춰서 걸맞는 공급들이 생겨나고 만들어진다고 생각합니다. 지금까지 이를 그나마 잘 작동하게 만든 민주주의가 다수 국가에서 살아남은 이유이겠죠.
❤
장
ㅊ
@@eunghyunkim962 주식투자 안할거면 모르겠지만 투자 계속할거라면
주식으로 10만원에서 30억으로 만든 [주식의정석] 이 채널의 영상들을 꼭 보셔야 할거에요 (영상들이 짧아서 보는데 무리없음)
주식투자를 어떻게 해야만 하는지 그야말로 주식의정석을 보여주고있더군요.
아마 은둔고수로 추정이되는데요 광고 아니니 오해없으시길..
천천히 말씀해주세요
핵심 키워드로 이해시켜 주시니,
귀에 속,속 정리가 되네요~!
절대적으로 보였던 뉴턴 역학도 예외가 발견되고, 유클리드 기하학 역시 예외상황이 발생하지만.
이들은 현재에도 대부분의 상황에 유효합니다.
기존의 만들어진 '정의'는 대부분 '다수'의 상황에 합리적 대안을 제시하지만
어떤 것도 그 예외를 막을 수는 없으므로 예외적 상황에 합리적 대안을 찾을 수 있는 성숙한 공동체를 목표로 해야한다.
라고 받아들였어요.
제 개인적인 생각이 강하게 반영된 것이기도 합니다.
강의 정말 정말 감사합니다. 저책을 도서관에서 두번이나 정독했는데 쉽게 정의를 내리지 못하는 중이었어요. 물론 아직도 그렇지만, 이렇게 설명해주시니 뭔가 그림이 잡히네요. 정말 정의란 무엇일까요. 많은 이들이 더 생각하고 고민했으면 좋겠어요. 꿈처럼 완벽한 합의에 이르는 유토피아를 상상해봅니다.
제가 정의란 무엇인가 책을 읽어보고 가장 합리적이라고 생각한 정의론은 롤스의 정의론 이었습니다. 이유는 (현실적으로 어렵겠지만) 우리 모두가 무지의 장막을 가정하고 합의를 이룰수있다면 10장공동체주의에서 말하는 공동선에 대한 공동체의 합의를 이룰수있다고 보기때문입니다. 최근 벌어지는 갈등도 결국은 자신의 처지에 가장 이익되는 주장만 하기때문인데 능력[부모로부터물려받은부/선천적재능과성실성 등을 모두 포함]이 있는 자는 능력주의를 주장할것이고, 지금의 처지에 좌절하는 이는 분배에 더 관심을 가질것입니다. 그러므로 무지의 장막을 설정하여 객관적으로 사회적합의를 한다면 지금보이는 사회적갈등을 해소할수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박사님께서 통찰하신 구체적 방법론이 없어 그또한 전체주의로 흐를수있지만 적절한 권력분립을 가능케하는 민주주의를 최악으로 흐르는것을 막을수있을것입니다. 자라나는 세대에 이념보다는 이러한 다양한 정의론을 알려주고 무지의장막을 자신에게 입히고 토론을 통해 합의를 이끌어내는 교육과정이 절실해보입니다. 좋은 강의 감사합니다.
무지의 장막. 유럽 사민주의의 이론적 근거라고 책에서 봤습니다. 능력과 배경을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태어날 사회를 택할 수 있다면 그것은 복지국가가 아니겠는가.
각자 자신의 이익만 주장할 것이라는 전제 자체가 우파시각적인 것임 ㅋ
@@Hyuchan1002근거는?
샌델 스승입니다
@@garam_e309보수에 기본 전제가 모든사람은 합리적인 사고방식을 가졌다가 전제사항입니다.
따라서 자신의 이익에 부합하는 최선에 선택을 하는 것이 우파적 시선입니다.
항상 결론보다는 생각을 이끌어내시는 강의가 너무 좋습니다. 정의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은 정말 어렵네요. 역사적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또는 지배하는 사람이나 사상에 따라그때그때 달랐던 것처럼 어찌보면 인간(집단)의 본능에 가깝게 작동하지 않았나 생각해 봅니다. 그리고 그 맥락안에서 우리 인류가 이리저리 허둥지둥 누군가를 누군가의 생각을 쫓아다니지 않았나 싶습니다. 정리하면 모든 인간(집단)을 충족시켜주는 그 어떤 사상이나 기제는 없다고 보여집니다. 다만 이래야한다는 도덕적 원칙이 존재할 뿐이겠지요. 모든것은 항상 개인과 공동체의 끊임없는 싸움일 것이고 시대정신과 밀접한 연관이 있을수밖에 없으며, 그 연장선상에서 승리하는 그것이 정답이 아닐런지 싶습니다. -생각정리 감사합니다.^^
"안녕히 계세요 교수님..."을 선언하며 책꽂이에 꽂아둔 빛바랜 표지의 Justice를 다시 끄집어내어 "그나마" 이해하도록 설명해주셔서 감사해요 ㅎㅎ 언제 다 읽었샌델..ㅠㅠ
더불어당이 정의가 아닌이유는 정책결정을 할때 여러가지 의견을 청취하지 않고~ 토론도 하지 않은다는 점이죠~ 토론은 커녕 중국공산당과 악마푸틴의 지령대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박사님의 청렴에 대한 강의를 본 적이 있습니다. 정의 또한 청렴과 연관되어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기에 관계가 관계를 맺는 사회가 있어야 존재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샌들 교수님의 사회적 정의야 말로 다른 어떤 사람의 정의보다 더 마음에 와 닿는 것 같습니다. 저는 4번 샌델의 공동체 주의가 가장 정의롭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지식 또는 지혜가 필요하고, 이를 위해서 공부를 많이 해야 할 것 같습니다. 박사님의 많은 지도 계속 부탁드립니다.
역질문 ㅋㅋㅋㅋㅋ 저도 샌델 교수님의 주장이 명확하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비슷하게 느끼신 것 같아요. 철학 전공이 아니시지만 생각하는 것을 사랑하시니 충분히 좋은 영상이었던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늘 책이 궁금해지는 요약을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도서관에 가면 꼭 읽어보고 싶어요.
박사님 방송에서 잘 보고 있습니다. 항상 박사님은 생각을 말과 글로 너무나도 잘 하시는데요~~ 잘 못하는사람들을 위해서 견해를 듣고 싶어지네요 부럽습니다.ㅠㅠ
아 ㅋㅋㅋ 언제 라이브에서 한 번 이야기해보죠. 저 원래 무지 눌변이었습니다. 지금도 자신 없어요 ㅎㅎㅎ
오래전 읽은 기억은 아득하고 정의에 대한 각자의 생각은 다를 수 있슴에 방점을 두고 십네요. 타인의 생각이 틀림이 아닌 다름에 토론하고 타협하는 열려있는 자세가 미덕인 공동체시대에 살기를 소망합니다
영상 뜬지 1분만에 눌렀어요!! ㅋㅋㅋ 기념으로 선댓 후 감상 하겠습니다! 오늘도 멋진 컨턴츠 만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박사님☺️
오래전에 읽었던 책이었는데
(물론 구매해놓고 2~3년 동안은 장식으로만..)
내용이 자세히 기억나진 않습니다.
다만.
정의란 무엇인가. 를 정의 할 수 없다.
라는 것이 제 결론이었던 것이 기억이 나네요.
JUSTICE cannot DEFINE
한글로
같은 '정의' 라는 글자라 참 흥미롭다.
라는 생각을 했었던 기억이 나네요.
17분 정도의 짧은 시간에
유익한 강의 녹여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보면 볼수록 생각하고 고민하게 되는데요..
생각하게 만들어 주셔서 고맙습니다.
오늘도 좋은 영상 감사드립니다~
저는 여전히 롤스의 정의론이 우리 사회가 추구해야할 정의에 더 부합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무슨 정의가 옳냐 묻기 전에 정의 자체가 무엇인지의 논의도 필요하겠지만, (사회정책을 결정할 때 배경으로 두어야하는 원칙정도로 생각합니다)직관을 믿고 이야기하자면 제 선택은 롤스의 정의론입니다. 무지의 장막이란 설정 자체가 이미 공동체의 합의를 전제한다는 가장 현실적이고 합리적인 원칙이라고 생각합니다!(물론 댓글을 쓰면서도 여러 갈등이 속에서 울렁거리지만, 인생한방이란 생각을 거르고선 여전히 마땅한 원칙임을 부정할 수 없네요!) 정의란 무엇인가를 읽은지 벌써 9년이 지났네요.. 가물가물한 내용 다시 깔끔하게 정리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정의란 정답이 이거입니다👍 라는 내용의 책이 아니라 시대에 따라 세대에 따라 지역에따라 시기에 따라 정의란 변해왓다. 계속해서 토론하고 그 의견을 비판하고 토론하고 서로 이해하고 나아가야할 문제라는 말을 끝임 없이 던지면서 풀어나가는 책같아요. 모든 이가 인정하는 정의가 없다 에서 출발해서 그것을 찾아가는 과정도 중요시해야 사회가 국가가 건강해 진다는 말을 하는데... 과연 대한민국은 그러한지 의문입니다🤔
10:29 10:29
😊😊😊
김 지윤 박사님, 좋은 강의 정말 감사드립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삶의 편의성은 높아지는데 반대로 사회와 국가의 건전한 상식과 정의는 중도를 통한 균형을 이루기보다는 극단적으로 치닫는 모습으로 갈등을 빚는 상황이 점점 심각해지고 있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누구나 정의를 이해하고 정의로움을 최고의 가치로 삼는 세상이 되어 소외받는 사람이 줄어들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오늘도 많이 배워갑니다. 고맙습니다!
방금 설민석선생님의 정의란 무엇인가 책 강의 듣고 왔습니다ㆍ
저도 4번을 읽었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책 분야가 인문학 서양철학이라서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책도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읽어 보려고 했는데
이렇게 핵심정리를 유익하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가 좋아하는 책 분야라서 더 재밌게 시청한 것 같네요
더불어당이 정의가 아닌이유는 정책결정을 할때 여러가지 의견을 청취하지 않고~ 토론도 하지 않은다는 점이죠~ 토론은 커녕 중국공산당과 악마푸틴의 지령대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우리가 올바른 가치에 합의하는것이다 인상깊네요....
정말 읽어도 읽어도 어려우면서도 생각이 많은 책... 정의란...
몇번째 복습 중인데 볼때마다 다른 쪽으로 생각이 뻗어나가네요. 정의란.... 그것이 어떤 것이다라고 한마디로 규정하는 순간 정의가 아닌 것이 되어 버리는 것 같습니다.
그냥 하루하루 열심히 살아야겠습니다.
헉 필독도서지만 아직 안 읽었는데.... 박사 님 덕분에 아는 척이라도 할 수 있겠네요...😉
매일매일 박사님 지식에 감동하며 행복하게 듣고 있습니다.^^
샌델 교수가 예전에 연대에서 강의했던 게 생각나네요. 샌델 교수는 정의란 사회가 합의해나가는 것이라는 메시지를 던졌는데, 강연에 참여했던 사람들은 진짜 정의가 무엇인지를 물어서 샌델교수가 강연 내내 '이 상황은 뭐지(내 책을 읽고 왔나)' 하는 느낌으로 강연을 하셨었죠.
적어도 아직까지 대한민국 사람들의 정의관은 바뀌지 않은 것 같습니다.
사실 영미권 중심의 논의라서 한국에 잘 안와닿는 부분이 있어요. 미국에서야 첨예한 사상적 전통들과 대결하면서 쓴 책이겠지만요. 한국에서 정의 얘기를 하려면 불교, 유교, 노장, 헤겔 이야기도 다루고 반대한다면 반대논거를 제시를 해줘야하는데 전혀 없죠. 그리고 요즘 미국에서 그리고 한국에서도 여러모로 이슈인 리버럴 정치 담론도 안나오고.. 기독교 얘기도 적극적으로 안다루고.. 여러모로 너무 영미권 전통 주장들 위주입니다. 미국 내의 여러 입장들을 다 다룬다고 보기도 어려울 정도이니, 한국의 문제의식을 해결해주기는 어렵겠죠. 당시에 여러모로 정의에 대한 갈망이 한국사람들에게 있었던 것이라 인기를 끈 것일텐데요. 아무래도 참조는 해도 한국은 한국 스스로가 새로운 길을 찾아가야 할 겁니다.
@@HissingGeotrauma 마지막부분에 말씀하신 내용이 샌델 교수가 말하는 지점과 일맥상통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절대적인 정의가 있다고 생각하고 실제로 진리와같은 정의의 존재에 대한 강한 믿음을 가지고 있지만, 인류 역사에서 보자면 다양한 정의관이 존재하고, 같은 사람들이 모여사는 사회에서도 정의관이 변해왔다는 것이 샌델 교수의 주된 주장입니다.
정의란 무엇인가가 강력한 임팩트가 있었던 것은 말씀하신 철학자나 철학사조의 정의관을 가능한 많이 소개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단순화하는 전략을 택함으로써 대중들에게 메시지를 전달하는 데 성공했다는 점입니다. 모든 사람이 정의가 무엇인지 알기 위해서 동서양철학사를 전부 공부할 필요는 없으니까요 ^^
@@HissingGeotrauma 우리 한국인들은 말이야 협의 타협 조율 이런건 비굴한거고 말이여 니가 악마고 내가 정의고 넌 틀렸고 난 맞고 그걸 원한단 말여 으잉? 기면 기다 아님 아니다 그걸 말해달란 말여 으이? 그래서 정의가 뭐여 딱떨러지게말을 해보랑께 교수양반 이런 느낌으로다가 으이
@@란-d7b 그 때 당시 현장분위기를 너무 명확하게 이야기해주셔서 현웃이 터졌습니다 ㅎㅎㅎ😸
저와 같은 느낌을 받으셨군요. 정의란 단어 하나로 책을 쓴 이유가 있죠. 그만큼 간단하게 치부할 수 없는 아주 복잡한 해석을 지니는 의미라는걸 알 수 있습니다 강연을 들어봐도 책과 일맥상통하는 느낌을 받을 수 있구요. 사전적 의미가 아닌 현실에서 어떻게 적용해야 하는지를 끊임없이 말씀합니다. 저도 대한민국의 정의관은 대한민국의 산업이 발전한 만큼 발전하지 못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도 이제 어릴적부터 철학, 정치, 경제를 공부해야한다고 생각해요. 이런 공부들이 모여서 정의관을 형성한다고 봅니다. 아직은 멀었죠.
편집자 선생님 너무너무너무 감사합니다
♥️♥️♥️
작가님도 유튜브 해주셔서 감사드려요
철학책 나오니 반갑네요! 일반인이 읽기 쉬운 철학책 중에 저스티스 말고도 버틀란드 러셀의 철학의 문제들도 재밌습니다!!
늘 재미있게 보는 철학자로서 한 마디 보태보자면, 결국 어느 하나의 입장에 서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의견과 신념을 가지고 있는 다원적 사회에서 그들 간의 대화의 규칙에 동의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핵심이라 생각합니다. 롤즈는 그에 대해 개인의 윤리적 신념을 배제하고 대화에 참여할 것을, 또한 이를 통해 이른바 'overlapping consensus'에 이를 수 있다고 보았는데 사실 우리는 나와 신념이나 의견이 다른 사람들과 토론하는 문화가 부족합니다. 동의 가능한 대화의 규칙을 통한 최소한의 합의가 더욱 의미있게 다가오는 시절입니다.
철학자시라니... 갑자기 죄송해지네요. 부족한 부분이 많을텐데, 무지해서 그렇다고 생각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별말씀을 다하십니다. 늘 좋은 강의 감사합니다. 우리나라에서 ‘정의란 무엇인가’가 열광적인 인기를 얻은 것은 서구와 다르게 공동체주의적 감성을 이미 가지고 있는데다가 보편적인 교육수준이 높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다만 개인의 자율성이 어느 정도 보장된다면 공동체주의의 입장에 서는 것이 괜찮아 보이는데 아직은 자율성(autonomy)을 바탕으로 한 사회를 예상하기는 시기상조 같습니다. 제도는 민주주와 같은 보편적 가치를 받아들였지만 의식수준과 제도의 괴리는 아직 존재하니까요. 서구에서는 개인의 자율성이 중요한 주제인데 우리도 이에 대한 논의가 더 이루어진다면 이미 가지고 있는 공동체중심적 문화와 조화를 이룰 것으로 봅니다. 대화의 규칙은 개인의 자율성 위에서 보편적 가치를 수용할 수 있는 기본적인 원칙이니까요. 다만 치열한 경쟁중심적 능력주의문화는 언젠가는 브레이크가 분명히 필요해보입니다. 앞으로도 훌륭한 강의와 소통 부탁드립니다. 박사님 같은 분의 역할이 중요한 시기 같아요. 건강하시고요.
와, 이거 대학생 때 맹장 수술때문에 입원했을 때 읽은 책인데 여기서 보니 반갑네요. 읽고 나서 엄청 충격적이서 요즘에도 누군가 인문/철학 관련 책을 추천해달라고 하면 가장 먼저 추천하고 싶은 책입니다. 읽으면서 마이클 샌델 교수님은 21세기의 소크라테스가 아닌가 싶을 정도로 산파술? 질문을 통해 진리라고 믿고 있던 것들에 의문을 품게 하고, 자신만의 새로운 진리에 도달하게 하는 책의 서술방식이 상당히 흥미로웠습니다. 달콤한 정답을 제시하기 보다는 정답은 없고, 어떤 선택에든 씁쓸한 뒷맛이 따른다는 교훈도 담겨 있었구요. 개인마다 다른 정의(justice)의 정의(definition)를 스스로 생각하게 한다는 점에서 상당히 유익한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정의란 무엇인지 아직도 잘 모르겠지만 저는 존 롤스의 '무지의 베일'의 상태에서 사회의 룰을 정하는 게 합리적이진 않지만 정의로운 것이라는 생각을 했었는데, 또 동시에 '타인의 자유를 해하지 않는 모든 자유를 행하라'라는 황금률도 상당히 좋아하는 격언인데, 이게 양립할 수 있는지는 잘 모르겠네요. 정의에 대한 정의가 다른 개인들이 끊임없이 합의에 도달하려는 노력...이 정답이겠지만 이건 지나치게 이상주의적인 것 같네요.
샌델 교수님의 새 책 '공정하다는 착각'은 아직 읽어보진 않았지만 읽은 사람들의 평 중에 '그럼 돌려돌려 돌림판으로 결정하자고?' 라는 평이 있던데 공정하다는 착각도 읽어보고 싶네요.
마지막에 나온 질문에 대한 답변을 위에서 적긴 했는데, 기본적인 사회의 약속은 무지의 베일에서 정한 규칙를 따라, 그리고 실제의 삶은 '타인의 자유를 해하지 않는 모든 자유를 행하는 삶'이 정의라고 생각하는데 이 둘이 양립하는 건 어려운 것이겠죠? 누군가 말했다는 '나는 당신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만일 당신이 그 의견 때문에 박해를 받는다면 나는 당신의 말할 자유를 위해 끝까지 싸울 것입니다'의 자세를 사회 구성원들 모두가 가지고 있는 사회가 진정 정의로운 사회가 아닐까 싶네요🤔
정의란 사회공동체 제도권 안에서만 작동하는 것이다.
다수가 있기 때문에 소수가 있는 것이다.
도덕은 언제나 강한 힘을 요구한다.
직접민주주의 체제 대전환이 필요 할듯
지윤박사님, 정의란 무엇인가도 읽어보고싶지만은 혹시 박사님이 읽으셨던 책중에 사랑, 추리 등등.. 지식을 쌓기보단 마음이나 감정들이 더 움직였던 책도 있으시다면 어떤게 있었을지 궁금합니다🙂
다음에 같이 읽을 위대한 개츠비,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같은 책들이 있어요~^^
@@Kjy_Play 돈키호테는 아직 못 읽어서 궁금합니당! 개츠비는 저도 참 좋아합니다😍 (개츠비 진짜 디카프리오같이 생겼음 좋겠다 하면서.... 읽었쯥니다ㅋㅋ) 다음에 같이 읽을 책이라니 너무 기대됩니다🙂 ❤️💛
아주 본질적이거니 절대적인 정의를 제외하고 인간 공동체의 정의는 사회가 진화해 가는 과정에서 함께 진화 또는 변화하지 않을까요? 그런의미에서 공동체주의가 가장 현실적인 정의가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간단하지요.
4가지 패턴의 권역을 나누어주어서
살아보면 좋겠지요.
어떤
타 권역을 이동하고 싶다면
그것에 대한 합당부분의
책임(가치 옮김에 대한)을 부여하구요.
정의란? 절대적인 가치 기준이 아니라 상대적인 가치 기준이라는 것이 핵심 아닐까요?
시대와 상황에 따라 정의의 기준은 달라질 수 있고 그러한 가장 합리적인 정의를 찾아내는 과정이 공동체주의가 아닐까 합니다.
공리주의와의 가장 큰 차이는 공동체의 성향과 합의에 따라 정의의 기준이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일 것 같습니다.
정/반/합의 변증법적인 관점으로 보면 진보와 보수는 항상 돌고 도는 톱니바퀴일 뿐입니다.
어제의 보수가 오늘의 진보가 될 수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항상 미래를 향해 발전적인 방향으로 뻗어나가야 한다는 점입니다.
코로나 사태를 겪으면서
백신도 격리도, 심지어 마스크조차 거부하는 모습을 보고 저건 아닌데? 라는 생각을 한 사람들이 많을 거고
반대로 강제적인 봉쇄나 검증 안 된 백신접종에 대해서 거부감을 가진 사람들도 많을 것임.
정의라는 것은 결국 절대적인 정답이 있는 것이 아니라, 전체주의부터-자유지상주의 사이에서
가능한 한 높은 사회적 협의를 향해서 가는 과정 그 자체.
예를 들면 과학적 관점에서 필요한 조치들이 있다 했을 때,
전문가들의 과학적 설명을 이해할만한 교육수준을 갖춰주는 것,
예외적인 부작용에 대한 충분한 대책과 보상의 약속
그럼에도 남는 의심의 해소를 위한 설득,
특정 신념이나 의심에 강하게 사로잡힐 가능성을 최대한 줄여줘서
이렇게 해서 강요가 없이도, 많은 사람들이 동의할 수 있는 더 좋은 지점을 찾아갈 수 있게 하는 것.
그럼에도 다른 생각을 고집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이 타인에게 해가 되지 않는 한은 존중하는.
글을 정말 잘 쓰시네요.
이 책 소장용? 으로 갖고 있었는데... 읽어봐야겠어요... ㅎ
샌델의 공동체 주의가 제가 생각하는 정의에 가장 가까운거 같아요. 결국 보수전 진보건, 자유건 평등이건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함께 논의를 통해 해결하는 것이 가장 정의 원칙에 부합된다고 생각하거든요..^^ 오늘도 좋은 영상 잘 봤습니다~ 책장에 잠자는 책들을 다시 한번 꺼내 읽게 하는 영상들이네요..ㅎㅎ
몇년 전 똑같은 질문을 친구들에게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모두들 공리주의의 선택을 너무 당연히 주장해서 놀랐었어요. 저는 당연히 '사고가 나도록' 할 거라 생각했었으므로 - '사고'와 '인위적 조작에 의한 살인'이라 생각해서.
사고는 일어날 수 있지만,
어느 누구도 영문도 모른채, 그렇게 누군가를 위해 대신 죽어질 수는 없다고 생각해요. 누군가가 나의 목숨을 그렇게 판단한다면 넘 억울할 것 같더군요. 그렇다고 제가 로버트노직'의 철학에 동의하는 것도 아닌 것 같습니다만..
이런 주제 참 좋아하는데요...
저의 의견이 뭔지는 저도 모르겠어요.
이번 강의 감사합니다
안녕하세요 교수님 영상 재밌게 보았습니다!
정의란 무엇인가를 읽고 항상 센델 교수가 제시한 쟁점들에 대해서 고민하면서 쟁점들에 대해서 제 생각과 학자들의 생각을 비교해 보고는 했는데요, 제 생각에는 롤즈의 정의론이 가장 정의로운 정의의 기준이라고 생각합니다.
공리주의는 생명의 가치에 대해서 무차별합니다. 인간이든 인간이 아니든, 그것이 고유하게 정체성을 가지고 자아 실현이 가능하든 아니든 그저 사회 전체 효용이 증가되는가에만 관심을 두고 있습니다. 따라서 인간으로 태어난다면 당연히 가져야 할 여러 권리들을 부정할 수밖에 없는 결과를 낳게 됩니다. 공리주의가 인간의 기본권을 지지한다면 그것은 그 본질을 지지하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그것이 ‘사회의 총 효용’을 증가 시키기 때문인데, 제 입장에서는 인간의 존엄을 훼손하는 행위라고 생각합니다.
자유지상주의는 개인의 운에 따른 요소를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습니다. 자유지상주의는 정부가 치안 및 법 적용 등의 기본적인 역할 외에는 개인에게 개입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이는 우리 사회에 기득권층이 저소득층을 대상으로 ‘노오력’이 부족하다고 냉소하는 것과 동일하다고 생각합니다. 부유한 집안에 태어난 아이는 공부하는 내내 먹고 살 걱정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 심지어는 갑비싼 사교육을 받을 수도 있죠. 그래서 더 나은 성적을 얻을 수 있고 이를 토대로 좋은 학벌을 획득하여 더 좋은 직업을 얻고 이를 자신의 자식에게 물려줍니다. 가난한 아이는 학교를 다니는 와중에도 자신의 생계를 걱정해야 합니다. 분명 부유한 집 아이와 비교할 수 없게 불리한 조건에서 시작하죠. 애초에 출발선 자체가 다르게 그어진 것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자유지상주의는 출발선이 애초에 다르고, 그 출발선 차이가 더 심화되고 있는 현 상황에서 그저 가난한 아이에게 ‘네가 노력이 부족해서 그래’ 라는, 다소 폭력적인(?) 메시지를 던지며 방관하는 방관자에 불과하다고 봅니다.
센델 교수의 공동체주의는 (그의 책들에서 드러나듯이) 롤즈가 주장하는 ‘무지의 장막’은 현실성이 없다 말하며 ‘미덕’을 위한 사회적 논의 및 합의의 중요성을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도대체 ‘미덕’의 실체가 무엇인지 저는 알 수가 없다고 봅니다. 미덕이란 사회 전체가 추구해야 할 가치이므로 이것에 대한 정확한 실체를 규정하려는 시도는 반드시 있어야 한다고 보는데, 사실 사회적으로 논의하여 미덕을 결정해 나간다는 것은 상당히 모호하고 실체 없는 이야기입니다. 특히 공동체에서 합의를 거쳐나가야 한다는 주장은 오히려 공동체 내의 비대칭적 권력에 의한 기득권의 일방적인 의사결정이 현대 사회에서 일반적인 상황에서 약자들을 보호하는 논리들이 자칫하면 부재할 수 있다는 취약점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제가 생각하는 가장 정의에 가까운 것은 롤즈의 정의론입니다. 앞서 언급했듯이 우리 사회는 현재 ‘운’ 이 너무 크게 작용하고 있습니다. 자신이 얼마나 땀 흘려 노력했는지와는 관계없이 애초에 정해진 출발선 만으로 인생 자체가 정해져 버리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출발선을 우리는 어느 정도 복지로 보정해 줄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그럼에도 이것이 왜 필요한지에 대한 정당화와, 어떤 조건에 의해 성립해야 하는지에 대한 이론적 기반이 상당히 부족했다고 봅니다. 이러한 복지 체계를 ‘무지의 장막’을 도입해 정당화함으로서, 다소 모호해 보이던 복지를 실체화하여 구체적인 실천 수단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저는 롤스의 자유주의가 가장 우리 사회의 정의를 규정하는데 적합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예측가능한 정책이 오래 유지 되었어면 해요 정의든 경제든ㆍㆍ
정말 저랑 똑같이 생각하시는 분을 처음 봤고, 그래서 너무 반가운 동시에, 정리되지 않은 제 생각들을 이렇게 정리까지 해주신 느낌이라 너무 감사하네요.
이 책 읽고 고민 많이 했었죠. 기부 입학, 용병제, 공리주의.. 답이 없는 질물에 답을 계속 토론해 나가는 게 흥미 롭기도 하고 괴롭기도 하고요^^ 박사님 이야기로 다시 들어서 좋아요^^
덕분에 어려운 책 잘 이해했어요. 감사합니다.
질문의 답은 마이클 샌델 교수의 정의라 생각합니다.
정의라는 것은 결국 사회적 합의에 의해 결정이 되지 않으면 누군가에는 정의가 아닌 불의가 될 거에요.
중요한 건 사안 자체의 공명정대함 보다는 사안을 들여다보는 사람들의 가치판단이 아닐까요.
그 가치판단을 명확한 기준으로 내리지 않아야 정의라 주장할 것에 불의라 반발하는 사람들이 적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합의가 필요하구요.
시청 잘 했습니다. 감사합니다.
@@전진우-w4n 일처다부제나 일부다처제를 애시당초 불의로 규정하고 말씀하시는거 같은데.. 센델교수는 그래서 사회적 합의를 통해 정의를 유지하자고 얘기하는거 같다고 생각됩니다. 질서를 정의라고 생각하면 그리 주장할 수 도 있는 것이겠지요. 불변의 절대선을 정의로 기준삼고 주장하는건 아닌 것 같습니다.
'사회적 합의' 말은 좋지만.. 현실을 보면 사회적 합의라는 명목하에서 이루어지는 것은 특정 집단이 내새우는 주장에 그저 뒤따라 무지성 찬성하는 사람들이 있죠. 샌델이 말하는 진정한 합의가 이런 것은 아닐 것이라면, 현실에서 진정한 사회적 합의라는 것이 가능한지 부터 생각해봐야할 것 같네요. 겉으로 보기엔 맞는말 같아 보이지만, 뜬구름 같은 말일 수 있습니다.
사회적 합의를 어떻게 만들죠?
몇 몇 지식인들이 토론해서 결론지으면 그게 사회적 합의인가요?
무엇이든 정답이라 외치는 자가 가장 불의스런 자입니다. 서로 주고 받으면서 앞으로 가는게 건강하죠.
정치인을 심판하는 국민의 의식이 높아져야겠죠... 그들이 제시하는 방향이 갈등을 조장하는것인지 발전하기 위한것인지.. 그것은 국민의 의식이 높아지는것 밖에는 의미가 없을것 같네요... 정의란 자유도 평등도 아닌 가치라는 말에 백번 공감합니다...가치란 누군가를 감동시키는일 아닐까요? 소수의 부를 다수에게 나누어 주어야 할때는 단순히 배분의 요율을 정하기 보다는 그들을 설득하는 과정이 충분히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어찌되었든 그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부를 가진자는 그것이 운이 좋았을 뿐이라고 생각해야 되지 않을까요? 서로가 서로에게 한발 물러서는 마음이 있어야 사회는 정의로워지는것 같습니다..
👍 이상적이네요😊
박사님 좋은 콘텐츠 잘 봤습니다 덕분에 자유주의와 개인주의에관해 제가 잘못 알고 있던 부분을 바로 잡을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박사님께서 제시하셨던 카테고리중에선 롤스의 정의론이 가장 제 생각과 가까운 정의관이었던거 같네요 결국 같이 살아가기 위해선 그정도 합의는 필요하다고 생각이 드네요 그 4가지 외에서 제가 생각하는 정의를 설명해 보자면 샌델 교수님의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책에서 던지는 여러 질문들 그 질문에 답할때 느끼는 불편함 그 자체가 정의에 가장 가까운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결국 사람의 한 번 형성된 사고 구조는 잘 바뀌지 않고 그 틀 안에서 중요한 결정을 하게 되는데 그 결정을 할 때마다 그 불편한 마음을 느끼는게 참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 불편한 마음을 느껴야 한 결정을 내릴 때 그 반대편을 생각하게 될것이고 그렇다면 극단주의로 가는 사고와 결정들을 막아주어서 인간 사회가 유지 될 수 있는게 아닌가 싶습니다 요즘 한국 사회의 극단화 되어가는 정치갈등 남녀갈등 세대갈등 등등에 꼭 필요한 마음인것 같습니다 어쩌면 유교의 인과 의 불교의 자비와도 일맥상통하는 이야기인것같네요
4가지 질문중 제가 읽었거나 이해 되는 책은 없습니다. 하지만 선생님의 강의 속에서 스치는 지식으로 듣는것이 그저 행복하네요. 저는 선택하라면 선생님의 중용적인 설명이 그저 감사할 따름입니다. 고로 제 선택은 5번째 김지윤의 지식play로 하겠습니다
어려운 책을 쉽게 설명해주셔서, 오래전 읽었던 책 내용이 다시 생각났습니다. 제가 가장 정의롭다고 생각하는 정의는 공동선을 언급한 센델의 공동체주의입니다. 책에 나오는 내용처럼 정의로운 사회는 단순히 공리를 극대화하거나 선택의 자유를 확보하는 것만으로는 이룰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좋은 삶의 의미를 함께 고민하며 다양한 문화를 수용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늘 유익한 영상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주 단순함
ㆍ개인이 지혜로써 판단을
하고
ㆍ개인이 맡은 소임, 역할을
다하는 게 정의
연극공연을 하는데
배우들, 음향,조명, 무대장치,
연출,조연출, 보조진행자, 등
각자가 역할을 다하면 공연은
잘 끝난다
연극공연 구성원들은 역할을
다 하는 게 정의이고
관객은 좋은 공연을 보고 축하해주는 게 정의이고
연극공연은 잘 끝났기에
정의를 성취했다
나라와 개인도 이런 관계다
나라라는 공연이 성취되기
위해서
각 개인이 맡은 소임, 역할을
다할 때
국가의 정의, 개인의 정의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박사님! 항상 좋은 영상 감사합니다. 미국 총기 규제 관련 법안 hr8 영상도 올려주실 수 있을까요? 너무 궁금한데 박사님 의견 및 관련 내용을 자세히 알고 싶어서 글 남겨봅니다!
호기심 가득한 듯한 썸넬표정 졸커탱탱🥰🤩
저는 참 샌델식 정의가 마음에 드는 게 정답을 주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오히려 너가 찾은 정답은 뭐냐고 계속 되묻기만 하죠.
우리가 지나고 나면 그 일의 이유나 원인을 잘 알았다고 생각하기 쉽잖아요. 그리고 그때의 경험으로 미래를 예측할 수 있다고 믿어요. 그러고 나면 그게 바로 정의고 정답이라고 생각하게 돼요.
하지만 조금, 혹은 많이 지나고 나면 그게 답이 되지 못하는 상황이 와요. 정답이 틀려서 그럴 수도 있죠. 정답은 맞는데 우연히 안 들어맞는 상황도 찾아와요. 심지어는 이 정답이 너무 흔해지면서 사람들의 생각이 바뀌고, 사람들의 생각이 바뀌어서 새로운 문제가 나타나고, 새로운 문제가 나타나서 정답이 바뀌기도 해요. 마치 깨진 유리창 효과가 너무 유명해져서 실험으로 재현하기 어려운 것처럼요. 실험인 줄 알게 되는 순간, 동참해주는 사람과 동참해주지 않는 사람만 남잖아요.
이런 변화는 우리 삶에 적용되는 순간부터 나타나는거 같아요. 심지어 과학도, 과학적 원리는 안 바뀐다지만, 그 원리로 할 수 있는 건 계속 바뀌잖아요. 물리적 환경만이 아니라, 인류가 가진 지성의 축적과 망각이 계속해서 정답을 바꾼다고 봐요. 이처럼 정의에 대한 논의도 정답이 되는 정의를 계속 바꿔나갈 거에요.
샌델이 발견한 정의는 그런 것 같아요. 무한한 변화 속에도 정의에 대해서 불변하는 게 있다면 공동체의 합의일 거다. 공동체, 집단지성이 변화무쌍하기에 ‘정의의 사도’라는 모습도 변화할 수 있지만, 공동체가 믿는 것이 곧 정의가 될거다. 우리가 할 일은 그저 더 많은 우연, 더 많고도 다양한 정답 속에서 사회에 새로운 정의를 탄생시킬 뿐이다.
저는 문화를 그 집단의 믿음, 그 집단의 문제해결방식이라고 생각해요. 그렇기 때문에 문화는 그 자체로 정의에 가장 가까운 것이 될 거에요. 국가차원을 떠난 그 다양한 문화, 삶의 양식, 그름이 아닌 다름. 그 자체가 그 사회의 정의라고 생각해요.
물론 그 안에 정의를 선도하려는 이가 있죠. 자연스레 리더가 생기고, 지위가 아니라 능력으로서 리더십이란 것도 생기고, 자칫하면 전체주의가 찾아올 수도 있죠.
그때 필요한 건 역시나 다시, 그게 옳지 않다면 왜 옳지 않을까. 그때가 되면 나는 어떻게 해야할까. 우리가 무엇을 해야만 그것을 막을 수 있을까. 그 미래가 찾아온 순간 그 시점에 맞춰서 고민을 했던 이들의 목소리가 필요할 뿐, 언제나 옳은 정답이 필요한게 아닌 것 같아요. 그들의 리더십과 목소리가 정의에 대한 대토론회를 열 뿐인거죠. 불변하는 정의는 그저 그 토론회를 열지 못하게 막는 장애물이 될 거에요. 우리가 문제를 인식하는 순간에 움직이지 못하는 장애물이요. 우리 공동체가 박살나고 그전의 정의가 추구하던 가치들이 아예 박살 날 때까지 그저 옳을 거라고 믿고 기다리는 사람들을 기른다고 봐요. 세월호처럼요.
미래에도 항상 자리를 지켜줄 정의란 없다. 정의는 우리가 만들어가는 거다. 저는 그런 정의가 좋아요. 그래서 아마 가장 비슷한, 어쩌면 빠져버렸을 지도 모를 샌델의 정의가 가장 마음에 들어요.
제가 나름 다독하는 사람이고 제법 난이도 있는 전문서적도 읽고 즐기는 사람인데요.... 진짜 님이 쓴 이 긴 장문 지금 다 읽었는데 무슨말인지 이해를 도무지 못하겠네요ㅎㅎ 맨 윗줄 두줄 이후부터 맨 마지막줄 한문장까지... 대체 어떤 정신을 가지고 있으시길래 글로 쓰니까 이렇게 표현이 되어 나오는건지 걱정이 됩니다....
이분 말씀은 제가 이해하기론 정의는 공동체 합의 과정이고, 그 결과는 시대를 반영한다. 다만 전체주의에 빠지는걸 늘 경계해야한다. 단순한데요...
그 시대가 가지는 문제점에 대해서 고민하고 해결방법을 찾는 과정과 노력이 그 시대의 정의가 아닐까 합니다. 두 개 혹은 3 개 이상의 사회적 무게 추에 따라 변화되는 상황을 조율해 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2차 대전이나, 냉전시대, 매카시즘 등과 그 과정이 생략되고 어느 한 시점을 향해 맹목적으로 나아가는 상황은 정의가 실종되어 가는 과정이구요. 즉, 공리주의와 자유주의 등의 이데올로기적 단어에 뜻에 함몰되지 않고 사회적 문제에 대한 고민과 해결과정 그 행위 자체가 정의라고 생각합니다. 항상 잘 보고 응원하고 있습니다. 김지윤 박사님 화이팅!!
이번 영상은 역대급이네요
단순히 좌 우 이념대립이라고 생각할게 아니라, 그 안의 우리들의 생각을 잘 쪼개보고 정립해봐야하는 과정을 다시 겪어볼 타이밍인것 같아요. 공리주의든 자유주의든 한쪽으로 쏠리는건 무서운 결과를 초래할거라는건 자명한 사실이니까
좋을 공유 감사합니다. 정의는 합의 인 것 같습니다. 정의는 만들어 진다. 어디로 구분해야 할지는 고민 .. 공리주의
과학적인 판단과 주장을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춰주고
타인의 권리와 자신의 권리를 동등하게 존중하며
특정 이념과 신념에만 사로잡히지 않도록
다양한 의견 사이에서 사안별로 스스로 판단하는 법을 가르쳐주는 것이
정의를 지향할 수 있는 성숙한 공동체
지윤씨 목소리너무 듣기좋네요~^^성우하셔도 될듯ㅋ
예전에 읽은 책이어서 다 기억나지는 않지만, 책에서 소개했던 trolley problem 등의 사례를 소개해주시니 그 때 느꼈던 기억들이 떠오르네요.
저는 저자가 책에서 이런 도덕적 딜레마가 존재하는 사례를 들면서 앞선 철학자들이 제시하는 정의관의 스탠스에 대해서도 알게되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영상에서도 강조하는 가치에 대한 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세계사나 한국사 등의 역사를 배운 것은 정의란 것은 실행하는 주체가 감당할 수 있는 부도덕적인 행위의 수위를 지정하여 허용하는 것이라고 느꼈습니다. 사람이 정의라는 이름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을 해쳤습니까. 정의의 깃발을 내건 사람들은 더욱 잔인했고, 주저함이 없었습니다. 제가 우려하는 사회는 정의에 정답이 있는 사회입니다. Trolley problem에 대해서 이야기하자면 정해진 정답이 있어서 스위치를 당기던, 당기지 않던 간에 어느 누구도 어떤 고민 없이 그것을 실행할 수 있는 사회죠. 정의가 뚜렷한 사회.
그래서 저는 "당신이 스위치를 당기던, 당기지 않든 간에 그 행위의 결정을 누구가 제시하는 정답이 아니라 더 좋은 결과(가치)를 얻기 위해 행위자가 고민하는 행위가 정의인게 아닌가?" 라고 생각합니다. 애매한 정의죠. 그래서 가치를 이야기한 것도 가치라는 것이 개인에 따라 고유하며, 상황이나 조건에 의해 달라지는 것이기에 얘기한 게 아닐까 싶어요. 따라서 합의된 결정 자체가 중요한게 아니라 합의하는 과정이 중요하다라고 생각합니다. 합의하는 과정도 지정하지 않음에 대해서 지적하셨는데 아마 일반적으로 얘기할 때는 그런 부분을 에둘러 표현하는 게 최선이 아닐까 싶습니다. 합의하는 과정을 지정하는 것도 일종의 가치 선택이 될 수 밖에 없으니까요.
정의란 무엇인가?
☞ 함부로 정의할 수 없는 것.
20년 전 멋모르고 읽었을 때는 칸트의 '정언명령' 밖에 기억나지 않았고 불혹의 나이가 되어 다시 읽어보니 감회가 새롭습니다.
정의는 끊임없이 인간을 생각하게 하며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주춧돌이 아닐까요? 감히 생각해 봅니다.
인간답다 라는 정의가 나라별 지역별 문화별 다르다는게 문제
@@Bangtang_Aje 슬프지만 인정해야하는 현실이 안타깝습니다. 아울러 좋은 덧글 감사합니다.
@@김기학-x4s 저도 정의감 만땅이었던 20대를 보냈어요. 항상 부당하고 부조리 한 것을 보면 분노 하는게 맞다고 여기며 나만의 도덕률의 갑옷을 입고 타인을, 세상을 재단하며 살았는데 이제 46살이라는 나이가 되서 보니 내가 올바르다는 착각을 하고 살았구나 하는걸 깨닫게 되더라구요. 많이 내려놓고 보니 이리 편한걸... 사실 우리가 부당하고 불합리 하다고 정의 하거나 판단하는 상황이나 사람들은 따지고 보면 큰 그림에서 문맥적 선택을 한 것일뿐인 경우가 많더라구요.
@@Bangtang_Aje 말씀에서 삶의 깊이가 묻어나오시네요 많이 배워갑니다
@@coalissome 아이고 감사요 그냥 항상 배우는 중생입니다 ㅋ
정의라고 말하는 순간 정의가 아닌것들이 배제되기에 저는 정의라는것이 문제들에 원인이 되는건 아닌지 의문을 갖습니다. 애초에 정의라는것은 인간들이 편하게 살기위해 만든 일반화과정이라고 생각하고 이건 폭력이 될수도 있다라고 생각합니다. 불편하더라도 개인의 다양성을 인정하고 남에게 피해주지않는 개인과 성숙한 공동체가 되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합니다.
대학때 한학기 수업으로 다뤘을 정도로 참 생각해볼게 많은 책이죠 이렇게 간추려 설명해주시니 잊었던 기억들도 살아나고 좋네요
저는 대학때도 그렇고 회사원이 된 지금도 롤스의 자유주의에 마음이 가네요
기회의 균등을 위한 차별 그 차별을 통한 실질적 평등 그리고 무지의 장막
무지의 장막을 그 예시와 함께 처음 들었을때 굉장히 공감하고 감명 받았던 기억이 나네요
물론 롤스도 완벽한 것이 아니라 정부의 지나친 개입이나 포퓰리즘식 복지는 바라지 않지만 기회의 균등이 무너지고 있는 현 우리나라 상태에서 볼때 롤스의 자유주의가 지금까지도 가장 마음이 갑니다
저도 롤스 정의론이 잴 마음이 가네요
롤스의 정의론은 많은 사람들에게 납득할 수있는 기준을 제시한 이론이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정의에 대해서 얼마나 많은 고민을 했는지가느껴집니다 ㅎㅎ
존경합니다
그리고 놀랍니다
다시 읽어봐야겠습니다
(여전히) 저는 공리주의가 가장 정의롭다고 생각합니다.
대학생 시절에 읽은 책인데 감회가 새롭습니다. 경제학도로서 당시엔 경제학의 근간이 되는 공리주의에 손을 들어줄 수밖에 없었죠. 하지만 시간이 흘러 생각이 전보다는 더 깊어지고, 사회에 나와 여러 갈등을 겪으면서 생각의 부침이 있었음에도 다시 한번 공리주의를 지지하고 싶습니다.
샌델 교수의 공동체주의는 실상 공리주의의 다른 이름에 불과하다고 생각합니다. 공리주의에서 측정하지 못하고 내놓은 행복의 총량이라는 개념이, 샌델 교수가 말하는 가치의 합의라는 개념과 다르지 않다고 봅니다.
이 책이 제시하는 문제, 철로에 관해서도 결국 다섯 명보다는 한 명을 희생시켜야 한다는 결론에 다다르게 됩니다. 그 한 사람의 가치가 얼마나 뛰어난지를 부연하고, 한 개인의 자유와 가치를 제아무리 드높인들 결국 반대쪽에는 그러한 개인 다섯 명이 있기 때문입니다. 자유주의 개념에 입각해서 그 한 명을 아무리 지키려 해도, 오히려 지키려 하면 할수록 나머지 다섯 사람이 도드라지는 결론을 얻게 됩니다. 이것으로 자유주의가 가진 한계를 우리는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습니다.
제라미 벤담이 살았던 시기는 사회가 아직 불평등한 시기였지요. 그러나 오랜 시간이 흘러 사회가 어떻게하면 더 평등해질 수 있을까?를 고민하게 된 지금, 마이클 샌델 교수가 등장해 제라미 벤담의 주장을 재구성한 것입니다.
사회적 규모의 가치 판단이 필요하다, 즉 행복의 총량을 도출할 방법론이 필요하다 라는 주장이지요.
마이클 샌델 교수는 '공정하다는 착각'을 통해서 저에게 대단히 충격을 준 말을 소개해줬습니다. 어떤 사람은 3루수에서 태어난 줄도 모른 채 살아간다는 것이요. 능력주의에 대한 강한 비판입니다.
이것은 제라미 벤담의 주장과 대단히 유사한 괘를 가지고 있습니다. 소수자의 특권을 나누려 한 벤담의 현대적 버전일 것입니다.
하지만 여기서 끝내면 속이 답답합니다!
정의란 무엇인가를 처음 읽었을 때도 그랬지만, 그래서 뭐 어쩌라고? 속 시원한 답을 해주질 않거든요. 그러니 조금만 더 나아가 보겠습니다.
저는 '비슷한 가치를 공유하는 집단'이 새롭게 다가올 우리 사회(세계)의 새로운 정치적 묶음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개개인의 자유와 평등, 배분은 그 집단 안에서, 그 집단의 논리에 근거해 해결될 것이고, 정치적인 대립과 해소는집단 대 집단의 논쟁으로 결론지어져야 합니다.
저는 이러한 (사회 정치적) 파편화가 이미 진행 중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동안 극단으로 밀어붙여 온 다원주의 실험이 실패로 판명났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새로운 철학사조인 구조주의에 따라 '개인'이라는 주체는 논의의 대상에서 멀어져가고, 같은 사상을 공유하는 집단이 새로운 시대의 주역으로 등장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때가 되면 각 집단은 각자의 고유한, 그리고 근본적으로 다른 논리로 무장한 채 서로 충돌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와중에도 '행복의 총량'이라는 개념만큼은 모든 집단에서 지금과 크게 다를 바 없이 통용되며 자유, 평등, 분배, 개인, 공동체라는 굵직한 논쟁들에 기준을 제시하리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오랜 세월이 흘렀음에도 저 자신이 아직도 공리주의자로 남아 있었음을 깨닿게 되었네요. 늘 감사하고, 다음 영상도 기대하겠습니다!
철로 문제는 철로를 그대로 나둬야한다가 맞다고 봅니다. 5명이 죽게되더라도 다른 한 사람을 죽일 권리는 없죠
이것이 공리주의에 입각한 답변인지 아닌지 저로서는 알 수 없사오나, 저는 다섯 명을 향해서 가는 기차를 한 명인 쪽으로 돌리는 것이 정의롭다고 생각합니다.
위에서 다섯 사람이 죽더라도 한 사람이 죽게 할 권리가 없다고 말씀하셨는데, 저는 거꾸로 누구에게도 다섯 사람이 죽게 내버려둘 권리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전에 김지윤님과 함께 읽었던 '악의 평범성'의 주요 주제이기도 합니다.
아우슈비츠로 가는 열차를 관리하는 나치 직원이 자신은 그저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이라고 변명했다지요.
저는 이것이 트롤의 문제와 근본적으로 동일하다고 봅니다.
아우슈비츠로 가는 열차를 멈추지 않으면 열차에 탄 많은 유대인들(다섯 명)은 아우슈비츠에서 죽게 될 것입니다. 반대로 열차를 멈춘다면 관리자인 본인과 가족이(한 명) 나치 정부로부터 위협을 받게 되겠지요.
트롤의 문제에서 기차를 돌리지 않는 것이 정의롭다면, 이 나치 직원 또한 정의로운 선택을 한 것일 겁니다. 무고한 자신과 자신의 가족들이 죽게 할 권리가 본인에게는 없었으니까요.
하지만 우리는 그를 처지를 이해할지언정 비난합니다. 왜 그럴까요?
다섯 사람이 죽게 내버려뒀기 때문입니다. 공리주의의 원칙을 정면으로 깨뜨렸기 때문입니다. 본인의 손에 달린 문제에 대해 책임지거나 고민하기를 회피했기 때문입니다. 시인 윤동주는 독립운동과 관련해서 실제로 아무런 행동을 하지 않았지만, 그 문제에 대해 늘상 자아비판하고 괴로워했지요.
선택하지 않을 권리에 대해서 저는 아는 바가 없습니다. 다만 지극히 자유주의적인 입장에서만 나올 수 있는 선택이라고 생각합니다. 본인은 세상의 모든 문제에 대해서, 설령 본인의 눈앞에서 일어난다 할지라도 책임지거나 행동하지 않을 권리가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니까요.
그런 개인들이 모인 사회는, 저는 사회가 아니라고 봅니다. 남에게 단순히 피해를 주지 않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쓰다 보니 조금 감정이 실렸네요. 죄송합니다. 이것이 공리주의에 입각한 대답이 맞는지 학식이 부족한 저로서는 불분명하나, 저는 위와 같이 생각합니다.
중간에 어떤 질문(공리주의자 입장에서 기차를 돌리는 행위가 정의롭다고 생각하느냐?)을 한 분이 계셨어서 굳이 답변을 달았는데, 질문을 지우고 가셨군요... 자유주의자 답습니다. 길게 쓴 글을 지우기 아까워서 (머쓱하지만) 그냥 남겨두겠습니다.
5명과 1명이면 생각이 간단해지지만 5명과 3명... 5명과 4명이 되면 생각이 간단해지지 않습니다...
다수를 목적에 두기 시작하면 이 역시 전체주의로 흐를 가능성도 있구요...
물론 한두줄의 문장으로 정의란 단어가 규정지어질만큼 간단한게 아니기에 이에 대한 해답은 각자의 가슴속에서 존재하는거라 생각합니다만
너무 문제를 단순하게 보는것 역시 조심해야할 문제가 아닌가 싶습니다...
@@이보라-f8r 숫자를 조금 키워보면 어떨까요? 1:100 이라면... 극단적으로 1:나머지 인류 멸망이라면? 여기에 답을 하기 어려우시다면 이보라님이 생각하시는 정의는 수치에 따라 변화하는 것인지요? 그렇다면 기준이 되는 수치는 얼마인가요? 반대로 한명의 생존을 위해 다른 이들(이보라님과 가족 친구분들 포함)은 죽는게 자연스럽다라고 한다면 이를 수용할 수 있는지 궁금합니다.
책 읽어주는 박사누나. 오늘도 딕션 최고
좋은 동영상 잘 시청하고 있고, 정말 좋은 정보들을 얻어가고있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교수님의 마지막 질문에 제 답변은 롤스의 자유주의가 가장 정의롭다고 생각하고있습니다. 우선 한 예시로 저는 현재 고등학생이고, 곧 수능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수능 같은 경우에는 자신의 노력과 재능을 통해 성적을 좋게 받을 수록 그에 따른 대가로 좋은 대학교에 갈 수 있다라는 기회를 얻게 됩니다. 하지만 여기서 과연 수능이 우리의 노력을 제대로 반영했을까하는 의문이 생깁니다. 수능을 치르는데 노력도 들어가지만 함부로 얻을 수 없는 재능이라는 선천적인 요소가 들어가면서 수험생끼리 격차가 생기게 됩니다. 그러면 좋은 재능을 갖지 못하는 학생은 재능을 갖을 수 있는 운이 없다라는 이유로 차별을 받게 되는거죠. 앞선 예와 같이 우리 사회에서도 우리가 제어할 수 있는 사회적 요소들은 극히 드물다고 생각합니다. 그럼으로써 롤스의 정의론에서 나오는 원초적 입장이라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현실성이 조금 떨어지지만, 만약 무지의베일과 같은 것을 우리가 실천 할 수 있다면 가장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센델의 공리주의
"정의로운 사회는 공리를 극대화하거나 선택의 자유를 확보하는 것만으로는 이룰수 없다
정의로운 사회를 이룰려면 좋은 삶의 의미를 함께 고민하고 그 과정에서 생길수 있는 이견을 기꺼이 수용해야 한다"
[마지막 질문에 대한 답변]
안녕하세요 박사님, 항상 좋은 영상을 만들어주셔서 잘 보고 있습니다. 저는 '공리주의'가 제가 생각하는 정의에 가장 부합하는 것 같습니다.
저는 무기를 만드는 군수산업에 종사하고 있고, 냉혹한 국제사회 속에서 '대한민국의 행복'을 최우선으로 두고 있습니다.
저는 세계 각국의 위협으로부터 우리나라의 핵심이익을 지켜내기 위해선 공동체에 속해있는 개인의 자유를 충분히 제한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대표적으로 징병제를 들 수 있겠네요)
자유주의에 대한 내용에서 '테러리스트에게 고문을 해도 되는것인가?' 라는 사례가 있었는데, 저는 명백한 국가의 적에게선 얼마든지 (알려지지 않게) 고문을 할 수 있으며, 전쟁이 일어난다면 불가피하게 특정 다수의 희생을 강요할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자유지상주의에 대한 설명에서는 '합법적인 선에서 자유는 보장되어야 한다' 라는 언급이 있었는데요, 기득권 세력은 법과 규칙마저 바꿀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들에게 무제한적 자유를 쥐어줘선 안될 것 같습니다.
마지막 공동체주의에서 공공선에 대한 공동체 내의 숙고와 토론이 필요하다는 것에 적극 공감합니다만, 국내 여론형성 과정에서 타국의 개입 가능성 (예 : 중국의 호주 정치권 로비)을 고려한다면 지나치게 이상적인 이야기가 아닌가 생각이 듭니다.
물론 이런 생각을 하기 위해서는 자신에게도 엄격한 잣대를 들이밀어야 하겠지요. 공동체를 위해서 제 자신의 자유가 제한되야 한다면... 저는 기꺼이 그 짐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
감탄하고갑니다!!
참고로 나치독일은 독일인의 레벤스라움을 확보해야된다는 명분아래 주변국들을 침공함.
님의 정의관이 무척 심경에 거슬립니다. 파시스트적 정의관 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파시스트 적인 정의관이
그리 우리와 멀리 있지않습니다.
역사가 말해주고 증명합니다 그 정의라는 이름으로 유대인이 학살되었으며 정의라는 이름으로 다른나라들을 침공했고 그결과는 어떻게 되는지 아는데 이상과 현실은 엄연히 다르다는 말을 해주고 싶네요
그 피해자라는 유대인도 저기들만의 정의를 내세워서 팔레스타인과의 관계를 보면 과연 정의가 무엇인지 의심스러울 정도입니다
자유지상주의 관련 언급하신 부분에서, 기득권 세력은 법과 규칙마저 바꿀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무제한적 자유를 주어선 안된다고 하셨는데요. 여기서 자유는 개인으로서의 자유이고, 우리가 사는 세상은 법치주의 국가입니다. 일반 개인으로서 정치적 자유 & 경제적 자유와, 정치인으로서 법에 의해 제한을 받는 것은 다른 영역입니다.
정의란 무엇인가 책을 읽기 전에는 '정의'라는 단어의 뜻이 옳은것 이라고만 생각을 했는데요. 정의란 무엇인가 책을 읽으니깐 '정의'의 의미가 조금 어렵게 느껴지기도 하네요. 정의롭게 살기 힘든세상 이지만, 정의롭게 살도록 노력해야 겠어요.
이 책을 읽지 '못한' 1인 여기도 있습니다.^^;
교수님 설명 덕분에 다시 한 번 읽기에 도전할 마음이 드네요. 어렵게 느껴지는 소재들을 이해하기 쉽게.풀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가장 정의로워야 하는 법도 시대가 변함에 따라 수정되고, 추가되는 것만 보아도 정의란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사회의 변화에 맞춰 유동적으로 움직이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 샌델 교수의 공동체주의에 많이 공감하고, 정의라는 것이 정의로운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교육이 참 중요하겠구나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의미있는 생각을 하게 만들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정말 오래 전에 읽고 거의 잊고 있었는데, 다시금 읽으니 마음에 새겨둘 부분들이 많네요. 영상도 잘 보았습니다. 늘 감사합니다!!
공동체냐 개인이냐, 평등이냐 자유이냐, 진보냐 보수냐
이렇게 어느 한 쪽만 고르기에는 세상도 구성원들도 너무 다채로워졌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합의된 올바른 가치를 기준으로 선택하는 샌델의 공동체주의 가장 합리적일 것 입니다.
이번 주 정치외교학 전공 수업에서 Don't Look Up이라는 영화를 감상했습니다.
이 영화에서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대사 중에 "혜성이 떨어지는 것이 우리에게 이로운가 이롭지 않은 가에 대한 기본적인 합의도 이루어지지 않은 채로 어떻게 대화를 합니까!!" 하면서 소리치는 대사가 있었습니다.
사람은 많고, 의견을 표출할 매체도 많고, 정치는 부패했고, 언론은 그들을 선동했습니다. 결국 혜성이 떨어져 인류가 멸망하게 됩니다.
이 영화를 보면서 합의되지 않은 사회가 가장 무섭다고 생각했습니다.
시민들에게 기본적인 정의에 대한 합의가 없으면 정치가 부패하기도 더욱 쉬웠습니다.
벤담, 칸트, 롤스, 노직의 철학적 사상이 다른 것도 결국엔 시대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의견이 많고, 양극화로 대립하고 있는 지금의 사회에는 합의가 가장 필요합니다.
합의된 단단한 가치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공동체주의가 현재 사회에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이번 주 과제가 Don't Look Up에 대한 에세이를 쓰는 것인데, 생각을 정리하는데 도움이 많이 됐습니다!😊 다음 책도 너무 기대됩니다~~
합의가 중요한건 동의하나 그 영화의 예는 아닌것 같네요. 영화에선 무지한 대중을 향한 조소로 들렸는데 결국 정의도 다수의 합의보다는 수와 상관없는 진리가 정의가 아닌가하네요. 뇌피셜임.
이념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
요약 잘 봤습니다. 말씀하시는 지식도 지식이지만 자막과 중간중간에 나오는 정보(인서트컷)까지 상당히 완성도가 높은 콘텐츠네요. 편집을 전문으로 하는 PD님이 있으실 것 같은데요. 어떻게 고용을 하신건가요?(아, 저는 1인미디어에 대해 석사논문을 쓰고있는 대학원생이라 이런 질문을 드리는것입니다.)
17:25 또 제가 생각하는 '정의'는 칸트의 '정언명령'이 저의 생각과 가장 가깝다고 봅니다. 그 이유는 모든 인간은 좌우 혹은 국성원의 수, 또 인종이나 민족, 계층을 벗어나서 각 개인이 스스로 최선을 다해서 정의로워져야 한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국민들의 행복지수가 더좋은사회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공동체주의를 선호하는 북유럽국가들이 행복지수가높은게 이유겠지요
행복지수는 부탄이 1위죠.
제가 생각하는 ‘정의란 무엇인가’는 말그대로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의미인거 같습니다. 아직 제대로 정의 내려진 것도 없고 사람마다 생각하는 것도 다르고 시대마다 추구하는 가치관도 다른데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르겠습니다. 모든 사상가들이 저마다 얘기를 하곤 하지만 모든 상황에 들어맞는 것은 없다고 보여지네요.
그래서 누군가의 사상이 더 정의롭다라고도 생각이 들지 않고요. 그냥 끊임없이 나에게 질문은 던져보고 해답을 찾고 그것마저도 나중에 번복되는 과정이 될 것 같습니다.
박사님!!!
책 같이 읽어요 다시 해주셔서 정말로 감사합니다.
재밌게 보고있습니다 ㅎㅎ👍
우와 요즘 지식축적이 절실했었는데 잘보고 가겠습니다 박사님 감사합니다
정의는 고립된 개인에게는 필요한 개념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즉 정의라는 개념을 말 하는 순간부터 개인이라는 관념을 포함한 모든 관계라고 생각합니다.
그 관계들이 변하면 정의는 필요에 의해 끝없이 변화할듯 하네요.
좌우를 말하는 자들 중에 정의롭고 인간미 넘치는 사람을 본적이 없네요.
읽다 포기한책 교수님의 강의 기다리며 다시 읽고 있었습니다
"책 같이 읽어요" 정말 좋습니다.
다음책도 기대하며
잘 듣겠습니다 고맙습니닷
감사합니다. ^♡*
와~오늘 딱 완독했는데
:정의실현은 참 어렵다~
어떤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던 모두를 만족시킬 수 없다 ~
생각은 많지만 글로 표현하는게 어렵네요^^
교수님 덕분에 지금 지리의 힘 2 도 읽고 있습니다
교수님의 질문에 저의 답은 롤스 입니다
오옷. 감상을 써주세요!!^^
다른 동물과 구분되는 인류의 양심 회복에 실낱같은 희망을 기대해 볼 밖에요 ᆢ개인이나 집단이기를 극복하고, 정의ㆍ불의 구분조차 필요없는 평화로운 지구인으로 살아가는 날이 오기를 기도합니다.
잘 만드신 영상 잘 봤습니다. 정의란, 각자의 입장에서 환경과 살아온 배경에 따라 카멜레온의 피부색 처럼 변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이기적인 유전자의 논리로는 우리 유전자의 종족보존의 본능으로 생각하고 계속적으로 진화하는 개념일 수도 있겠습니다만, 정의란 딱히 무엇이다라고 할 수 없는 것이 우리 호모사피엔스의 한계이지 않을까요? 다만 정의란 무엇인가? 하고 계속 고민하면서 우리 호모사피엔스는 나날이 성숙하겠지요.
올해 발견한 나의 가장 유익한 채널❤
감사합니다~^^
뛰어나고 탁월한 강의 고맙습니다.^^
정치와 철학의 정수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공동체주의 입니다 누구도 혼자살수는 없죠 내가 이룬 성공도 결국엔 남의 도움없이는 이룰수 없는것이었다는걸 인지하고 서로 돕는것만이 정의를 이룬다 생각해요
공동체주의를 지지합니다.
인류의 생존과 진보의 근원이기도 합니다.
그의 공동체주의란 인간을 수단이 아닌 목적으로 두는 것입니다.
다수의 이익이 아니라 소수도 배제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공리주의와 다릅니다.
저자는 소수까지 배려하는 공동선을 강조합니다.
아마도 자본주의 폐해로 소외 받는 미국 사회 단면 때문일것입니다.
정치가 도덕에 적극 개입하는것조차 주장하는 점에서 위험해 보이기도 합니다.
그래서인지 “도덕이란 무엇인가” 책에서는
개인의 자유와 도덕의 균형을 말함으로 충돌을 피합니다.
2010년에 “정의한 무엇인가” 읽느라 곤혹스러웠던 기억이 나네요..
읽은 후에는 뿌듯함이..
오눌도 잘 들었습니다. 다음에는 언제든 후쿠야마의 "역사의 종말"에 대해서도 해설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교수님이 TV에 강연 나온다고 할때마다 ㅋㅋ월드컵 기다리는 심정으로 기다리는 팬 1인입니다.
계속 책 리뷰 및 여러 영상을 보면서 배울 수 있어 참 감사합니다.
지금까지 여러 책 리뷰영상을 보면서 저의 머릿 속 생각으로 질문을 답했지만,
마이클센델 교수님의 책은 지나칠 수 없어서 부족하지만 댓글을 남기려 합니다.
남겨주신 질문의 답은,
서로 배려하는 사회, 배려가 특권이 되는 사회가 되는 것이 정의에 가장 가깝지 않나 싶습니다.
대학 때 읽어본 '정의란 무엇인가' 어렵게 정독 함으로써, 느낀 점은 저도 교수님과 같이 '어떻게? ' '공동체 안에서 최적의 선을 이루는 것인가?' 이였습니다.
그래서 더 읽어 본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 '공정하다는 착각'(나중에 읽었지만) 에서도 뚜렷한 구체적인 방법은 없었다라고 생각했습니다.(개인에게 던져진 숙제??같은 느낌)
하지만, 센델 교수님이 여러번 강조하는 것은 지금의 개인은 혼자 네트웍을 이루면서 살 수 없는 구조이며, 여기서 도덕적 윤리, 가치는 절대로 제외하고 논할 수 없다는 점입니다.
그렇다면 저는 공동체의 선을 내 자신만의 의견으로 제시하는 것이 아닌(이기주의와 다르게 더 선한 생각으로 벗어나 '나'가 아닌 '당신'의 생각(배려?)으로 출발),
타인을 위하고, 배려하고, 그것을 사회에서 특권으로 인정해주는 사회 분위기와 양보하는 가치를 우선하는 사회라면,
교수님께서 말씀하셨던 진보, 보수를 뛰어 넘고, 갈등을 최소화 할 수 있는 방법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러기 위해선,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정부애서 지식보단 지혜를 가르치는 교육과 개인의 도덕적 가치를 자립하는 바탕으로, 타인을 배려하는 교육으로 시작한다면
정의로운 사회로 가까이 갈 수 있지 않나 싶습니다.
부족한 능력으로 제 의견을 제시해 보았습니다. 물론 뜬구름 잡는? 혹은 이루어질 수 없는 유토피아를 말하는 것 같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정의', '정의로운 사회' 이 자체가
유토피아라고 생각합니다.
교수님 덕분에 다시 책을 읽고, 대학교때 생각지 못했던 견해들이 나이들어서 색다르게 보였습니다.
감사합니다.
저의란 무엇인가?....세상일 복잡하게 돌아가고 움직이는것 같아도...자세히 보면 이익에 따라 움직이더군요...
아직까지의 정의는 조직단위에서는 (국가나, 단체 등) 공리주의가 최선일듯 합니다. 물론 개인에게서의 정의란 또 다른 영역처럼 보입니다. 누군가 도덕적인 사람이라도 조직의 대표자로써는 도덕적이지 않을 수 있다는 말이 있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