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건 좀 아님. 만약 슈룹보고 그게 진짜 조선 중전과 후궁 사이고, 적자와 서자 사이라고 생각하면 무지성러되는 거. 후궁들은 자기가 낳은 자식들도 왕의 자식이니 상전 취급 해야 할 정도로 지위가 낮은 반면 중전 파워는 넘사벽. 그런가 하면 중전 소생과 후궁 소생들 차이도 넘사벽. 후궁 소생이 대통 이으려면 양자로라도 중전 자식으로 들어가야 했음. 만약 조선시대 중전 후궁, 적자, 서자가 서로 대놓고 질투하고 경쟁했다고 생각하면 그건 군대에서 장교랑 병장이 서로 이겨먹겠다고 다투는 꼬라지를 상상하는 것과 다름없음.
왕의 삶은 공부하다 보면 진짜 지옥임. 물론 항상 배부르게 지냈지만 눈 뜨고 다시 잠 드는 그 순간까지 맨날 공부만 해야했음.. 물론.. 몇 명은 폭군으로 막 나갔지만 대부분은 맨날 학문 공부가 인생에 전부임.. 그걸 평생 죽을 때 까지…. 아마 과식 보다는 스트레스가 짧은 수명에 원인이였을 것임..
수라상 차림의 기본 이념은 '조선 팔도'에서 올라온 음식을 담는다는 것으로, 이는 왕이 식사중에도 나라를 살핀다는 의미 역시 담고 있다. 무슨 말인가 하면 각 지역의 특산물인 진상품으로, 그것도 재료가 겹치지 않도록 반찬을 만들었는데, 해당 반찬이 양이 줄거나 빠지거나 바뀜으로 해당 특산물이 나는 지역에 뭔가 문제(대표적으로 흉년)가 발생함을 왕에게 알리고 또한 살핀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즉 찬의 가짓 수가 준달지 극단적으로는 죽이나 미음이 올라와도 이상할 것이 없는 것이 수라상이다. + 수라상은 대부분 남성요리사들이 조리했다고 한다. 대령숙수라고 불렸으며, 허영만 원작의 식객을 통해 대중들에게 널리 알려졌다. 궁녀들은 숙수의 조리보조 역할을 수행했다고 한다. 궁녀들이 수라를 지었다 알려진건 드라마 장금이의 영향이 컸는데, 실제론 그렇지 않았다. 세종실록에 따르면 ”대전 노비(궁에 드나든 일꾼) 중 남자 376명, 여자 12명“이라 기록되어있다고 한다. 그리고 중종실록에 등장하는 의녀 대장금이란 인물은 실존했지만, 중종을 직접 진료하는 여의사였지, 수라를 담당했다는 기록은 없었다. 하지만 궁녀가 수라를 담당했던 경우도 있었다. 바로 일제강점기, 대령숙수들이 일본 고위층 관계자들의 전문 요리사로 끌려가거나 대신 궁에서 나와 일반 음식점을 차려 궁에 대령숙수가 남아있지 않게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해방 이후 궁중음식을 전파한게 대부분 궁녀 출신이기에 이런 오해는 더 깊어졌다. 원래 궁녀들은 숙수들이 퇴근한 야간에 중국 사신 같은 귀빈이 궁에 도착하는 등 급히 식사가 필요할 때나, 왕실 어른들의 간식 정도만을 만들었다한다. + 여담으로 대장금은 ”큰길금이“라고 불렸으리라 추측하고 있다. 당시에는 신분이 낮은 사람들의 이름에 붙는 長은 대부분 '길'로 읽혔다.(벼슬한 사람 일부도 포함) 그리고 이름 앞에 붙는 접두어 大, 小는 큰, 작은으로 읽었다. 드라마에선 총애를 받아 大長今이라 불렸다지만, 아마 동명이인 중에 키가 크거나 나이가 많은 장금에게 大를 붙였다고 추측하고있다. 아무리 실력있다지만 위대한 유학자에게도 붙이지 않는 大자를 붙여가며 칭송했을 가능성이 낮다는 것이다.
나라에 큰 흉년이 들거나 자연재해, 전쟁 등으로 나라 살림이 어려울 때는 임금이 자발적으로 수라상의 반찬 가짓수를 줄이는 감선(減膳), 혹은 고기를 올리지 않는 철선(撤膳)을 했다. 극단적일 때는 말 그대로 죽 한 그릇만 올리기도 했다. 이는 신하들에게도 암묵적인 압박이었다. 이 말은 '나라가 어려워 나도 이렇게 먹는데 너희들은 호화로운 밥이 넘어가냐?'라는 뜻이기 때문이다. 임금이 아예 수라 자체를 거부하면? 그 때는 궁궐과 조정 전체가 발칵 뒤집힐 정도의 대형 사고. 그래서 조선 임금의 단식은 일종의 파업이자 시위이기도 했다. 비단 임금 뿐 아니라 임금의 어머니인 대비, 할머니인 대왕대비도 아들이나 손자에게 시위할게 있으면 곡기를 끊고 버틴다. 다른 왕족도 마찬가지.
임진왜란때 평양성 전투였나 척후들이 식량상태 보고한거 보고 일주일인가 보름이면 다 떨어진다 생각하고 대비했는데 한참 버텨서 당황했다함 나중에 입성해서 밥그릇 보니 일본군 밥그릇 보고 '이놈들이 보급 어렵다고 간장종지에 밥을 먹는구나'했는데 정작 일본군들은 그냥 평시처럼 식사중이었단게 함정
저렇게 먹어대고 운동은 그냥 궁내를 조금 걷거나 요기갔다가 조기로 가는정도... 그리고 밤이면 적게는 서너명에서 많게는 열명이 넘는 정비와 후궁들과 열심히 하루에 두세번 궁극의 아이만들기 행위도 하고... 대부분 왕들은 그러하여 30대에 비만에 당뇨와 혈압이 있었으며 건강이 극도로 쇄약해져서 결국 50을 넘긴 왕들이 그리 많지 않았고 심지어 위생관념이나 의술이 현재에 비해 비교불가의 상태라 쉽게 병에걸리고 끙끙앓다가 가신분들이 많음... 일설에 의하면 우리가 존경하는 세종대왕께서는 어려서 부터 고기를 매우 좋아하셔서 매끼마다 고기반찬이 없으면 짜증과 화를 내셨다 하며 여성편렵도 심하여 밤 잠자리가 대단하셨다함... 세종께서 승하하기전 탕약과 처방 그리고 어의들의 진료와 그 기록들을 살펴보면 결국 세종께서는 오늘날의 고도비만과 비 위생적인 성관계로 인한 매독에 걸려서 돌아가셨다는 설이 있음...
영화 광해에서 광해 : "조내관, 임금은 매 끼니 이렇게 배불리 먹소?" 내관 : "전하가 남기신 어식으로 수라간 궁녀들이 요기를 하옵니다." 광해 : "그럼 나 때문에 며칠동안 아무것도 못 먹었단 말이오?" 내관 : "아마도..." 광해 : "어쩐지 이것들이 날 귀신보듯이 하더라니.." 하는 부분이 생각나네요ㅋㅋ
근데 차린것만 거창하고 실제로 저거 다 먹는게 아니라 일부분만 먹고 나머지는 궁녀나 이런 시중드는 사람들이 먹음. 그리고 조선왕들의 사망원인중 젤 많은것은 등창 이라고함. 일종의 종기 이런건데 갠적으로 추측하기로는 당뇨나 성인병관련한 합병증이거나 스트레스로 인한 암 아니면 면역력저하로 인한 질환들이 복합된거로 보임.
직무가 과해서가 아니라 무직이라도 저리 과식하면 수명이 짧은게 정상 흔한 말로 밥그릇수 채우면 하직하는게 맞음 차도 연식 오래되더라도 적산거리 짧으면 더 타듯 신체도 마찬가지이다 수명 중요도로 치자면 소화계 > 호흡계 > 심혈관계 이는 차량으로 치자면 엔진및 연료계 > 흡기및 배기 > 전장계 와 같다고 할수 있다
그냥 평생을 고3으로 사는 것임. 사이사이에 취미 생활로 한글 맹그신 세종대왕은 인간이 아님.
고기없으면 수라상 무르셨다든데ㅋㅋㅋㅋㅋ
@@좋아고기 한글을 만들었는데 고기 좀 좋아하면 어때 ㅋㅋㅋㅋㅋㅋ
@@좋아고기"상남자 특 밥상에 고기 없으면 안먹음" 을 실천하셨네...
@@blankets_loverㅋㅋㅋㅋㅋㅋㅋㅋㅋㄹㅇㅋㅋㅋㅋㅋ
@@12momoth부민고소금지법은 조선초기 지역유지들이 백성 내세워서 지방관들이 뭐 한다 할때마다 고소러시하던거 막으려던 의도가 컸음
조선시대 왕들 일과표 보면 일찍 안 죽는게 더 이상함
거기다가 일하는 곳이 정치판이다 보니까 스트레스가 엄청났을거임
신하들 : 죽여주시옵소서!!!!(니까짓게 우릴 죽여?)
실제 : (너를) 죽여줄것이옵니다!!
일과표는 일과표에 불과
왕마음대로
@@j4j-l2u 그게 연산군이다 이자식아
태정태세문단세.
(단종.) 🤔
광개토대왕 아들 (장수왕)
장수왕 아들 (조다.) 🤔
아따 헬스햇으면 근성장 오지겟네
밤 11시 취침전에 읽은 상소문이...
단명의 원인. 스트레스!
아 혈압!😮
처먹다 인생저물었네,
일부러 저렇게 일과를 만든거에요. 잠자리에 들면서도 백성을 생각하라고 ㅋㅋ
아…코파고 있었는뎅
대비마마가 불러 핀잔 스트레스, 대신이 자꾸 아니된다고 스트레스, 왕손 낳아라 스트레스, 세자 책봉 스트레스, 오랑캐가 쳐들어와 스트레스, 독살당할까 스트레스...
취침전에 상소문을 읽었으면 자는 동안에도 계속 걱정하면서 잤겠네. 잠도 편히 못잤겠다.
그래서 수면시간이 거의 4시간 정도죠
상소문 읽다가 피곤하면 자고 아침에 문안인사 드리고 조식 후 남은 상소문 읽는 경우도 허다했다고 하죠
전국에서 올라오는 상소다 보니 그 양이..
드라마나 영화에서는 많이 줄여서 나온거라고 보는게 맞을겁니다
지금으로 치면 자기전에 민원읽기인데 생각만해도 끔찍하다 ㅋㅋㅋㅋㅋㅋㅋ
@@breadgoblin9499 상소문이 이거이거 힘들어요 이런식이면 모르는데 이걸 또 휘황찬란한 글솜씨로 보내니 보고서를 보는 느낌인거죠 ㅋㅋ
@@체크메이트-u5j그래서 스트레스풀려고 술좀 마시면 기생한테조차 상소올라와서 욕먹음
@@체크메이트-u5j듣기로는 명 태조가 쓸데없이 길게 쓴 상소문 읽다가 중간에 화나서 신하를 패셨다고.....
정신노동에는 엄청난 에너지가 소비됩니다.
정신노동은 고된노동인데 왜 사무직들은 배가나왔을까요
@@초코음료수지방간
@@초코음료수 나이들면 지방세포가 복부로 올라오는 경향이 있습니다 고차원적인 정보 처리는 에너지를 많이 요구하는거 또한 맞구요
ㄹㅇ 공부나 독서 등 정신활동 하고나면 배 엄청 고픔. 뇌가 쓰는 에너지원이 탄수화물이라고 함.
니가 노비를 안해봐서 그래 ㅋㅋ
왕 되기전 세자시절 왕이 되는 교육도 빡셌슴(경연서연 제도). 본처에 여러명의 후궁들 관리까지..배다른 자식들끼리는 또 싸움 오지고..단명 할 수 밖에 없는 삶..
그건 좀 아님. 만약 슈룹보고 그게 진짜 조선 중전과 후궁 사이고, 적자와 서자 사이라고 생각하면 무지성러되는 거.
후궁들은 자기가 낳은 자식들도 왕의 자식이니 상전 취급 해야 할 정도로 지위가 낮은 반면 중전 파워는 넘사벽. 그런가 하면 중전 소생과 후궁 소생들 차이도 넘사벽. 후궁 소생이 대통 이으려면 양자로라도 중전 자식으로 들어가야 했음.
만약 조선시대 중전 후궁, 적자, 서자가 서로 대놓고 질투하고 경쟁했다고 생각하면 그건 군대에서 장교랑 병장이 서로 이겨먹겠다고 다투는 꼬라지를 상상하는 것과 다름없음.
오스만제국 술탄과 비슷했음.
일과도 존나 살인적인 수준인데 그 와중에 후계생산도 해야하고 무예도 갈고닦아야함. 그냥 육체랑 정신이 실시간으로 갈려나가는게 당연한 수준
문무도 다 겸비해야 함
@@hjc5721 본문에 적힌게 그 말임
반란도 일어나고 옆나라 눈치 보면서 정치도 해야함
ㄹㅇㅡㅡ
군림보 일상인데? 오래살자나
내가 봤을때 식사 시간이 왕의 휴식 시간임 ㅋ 밥먹으면서 스트레스 풀면서 푹쉬는거지
그건 또 아님ㅋㅋㅋ 독살때문에 밥도 맘데로 못먹음
@@황지유-h6r 맘대로
+또 저거 남겨야된다고 영화에선 그런든대ㅠㅠ
@@리유-l1u 영화는 영화일 뿐 안남겨도 됩니다 근데 남기면 궁녀들이 먹는건 맞음(배고파서가 아니라 귀해서 그냥 먹고보는거)
@@황지유-h6r어차피 다 먹지도 못해도 자연스럽게 많이 남겨질듯
왕의 삶은 공부하다 보면 진짜 지옥임.
물론 항상 배부르게 지냈지만 눈 뜨고 다시 잠 드는 그 순간까지 맨날 공부만 해야했음.. 물론.. 몇 명은 폭군으로 막 나갔지만 대부분은 맨날 학문 공부가 인생에 전부임..
그걸 평생 죽을 때 까지….
아마 과식 보다는 스트레스가 짧은 수명에 원인이였을 것임..
조선만 유독 심했죠.. 다른 나라는 그 정도는 아녔음.. 괜히 유교탈레반 국가가 아니죠..
스페인인들이 하루에 6끼먹는거하고 비슷했음. 지금도 스페인인들은 하루에 6끼먹음; 스페인인들은 먹은만큼 노동해야됐음;
조선시대 국왕도 마찬가지로 먹은만큼 업무를 봐야됐음;; 물론 조선시대 백성들도 먹은만큼 빡쌔게 노동을 해야됐고..
수라상 차림의 기본 이념은 '조선 팔도'에서 올라온 음식을 담는다는 것으로, 이는 왕이 식사중에도 나라를 살핀다는 의미 역시 담고 있다.
무슨 말인가 하면 각 지역의 특산물인 진상품으로, 그것도 재료가 겹치지 않도록 반찬을 만들었는데, 해당 반찬이 양이 줄거나 빠지거나 바뀜으로 해당 특산물이 나는 지역에 뭔가 문제(대표적으로 흉년)가 발생함을 왕에게 알리고 또한 살핀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즉 찬의 가짓 수가 준달지 극단적으로는 죽이나 미음이 올라와도 이상할 것이 없는 것이 수라상이다.
+ 수라상은 대부분 남성요리사들이 조리했다고 한다. 대령숙수라고 불렸으며, 허영만 원작의 식객을 통해 대중들에게 널리 알려졌다.
궁녀들은 숙수의 조리보조 역할을 수행했다고 한다. 궁녀들이 수라를 지었다 알려진건 드라마 장금이의 영향이 컸는데, 실제론 그렇지 않았다.
세종실록에 따르면 ”대전 노비(궁에 드나든 일꾼) 중 남자 376명, 여자 12명“이라 기록되어있다고 한다. 그리고 중종실록에 등장하는 의녀 대장금이란 인물은 실존했지만, 중종을 직접 진료하는 여의사였지, 수라를 담당했다는 기록은 없었다.
하지만 궁녀가 수라를 담당했던 경우도 있었다. 바로 일제강점기, 대령숙수들이 일본 고위층 관계자들의 전문 요리사로 끌려가거나 대신 궁에서 나와 일반 음식점을 차려 궁에 대령숙수가 남아있지 않게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해방 이후 궁중음식을 전파한게 대부분 궁녀 출신이기에 이런 오해는 더 깊어졌다.
원래 궁녀들은 숙수들이 퇴근한 야간에 중국 사신 같은 귀빈이 궁에 도착하는 등 급히 식사가 필요할 때나, 왕실 어른들의 간식 정도만을 만들었다한다.
+ 여담으로 대장금은 ”큰길금이“라고 불렸으리라 추측하고 있다. 당시에는 신분이 낮은 사람들의 이름에 붙는 長은 대부분 '길'로 읽혔다.(벼슬한 사람 일부도 포함) 그리고 이름 앞에 붙는 접두어 大, 小는 큰, 작은으로 읽었다. 드라마에선 총애를 받아 大長今이라 불렸다지만, 아마 동명이인 중에 키가 크거나 나이가 많은 장금에게 大를 붙였다고 추측하고있다. 아무리 실력있다지만 위대한 유학자에게도 붙이지 않는 大자를 붙여가며 칭송했을 가능성이 낮다는 것이다.
나라에 큰 흉년이 들거나 자연재해, 전쟁 등으로 나라 살림이 어려울 때는 임금이 자발적으로 수라상의 반찬 가짓수를 줄이는 감선(減膳), 혹은 고기를 올리지 않는 철선(撤膳)을 했다. 극단적일 때는 말 그대로 죽 한 그릇만 올리기도 했다. 이는 신하들에게도 암묵적인 압박이었다. 이 말은 '나라가 어려워 나도 이렇게 먹는데 너희들은 호화로운 밥이 넘어가냐?'라는 뜻이기 때문이다. 임금이 아예 수라 자체를 거부하면? 그 때는 궁궐과 조정 전체가 발칵 뒤집힐 정도의 대형 사고. 그래서 조선 임금의 단식은 일종의 파업이자 시위이기도 했다. 비단 임금 뿐 아니라 임금의 어머니인 대비, 할머니인 대왕대비도 아들이나 손자에게 시위할게 있으면 곡기를 끊고 버틴다. 다른 왕족도 마찬가지.
이 댓은 진짜 유익한 설명이라 고정을 해야 할 것 같은데?
@@청천을-y5gㄹㅇㅋㅋㅋ
개똥같은소리네
간만에 도움되는댓글. 잘읽고갑니다.
새벽에 어른들 문안인사도 해야함...
왕인데도 어르신들에게 인사를 하나요?..
@@_Hong_Si_ 왕도 엄마나 아빠한테는 문안을 했던걸로 기억해요. 중종 엄마가 그렇게 극성이었다고 들었는데..
왕 아빠는 보통 전대에 죽었으므로 왕 엄마, 돌아가신 왕의 아빠와 조상님들에 대한 종묘제례 곡식의 신에게 제사하는 사직
그래도 왕 하고싶지? 제 조카죽이고 왕 한놈도 있지 형제들도 죽이고 제 아비도 독살하고 자식도 뒤주에 가둬죽이고...왕이란 자리가 참 매력적인가봄
@@w.h7780ㅋㅋ 짧고 굵게 살다가 가겠다는 의지
조선 왕들중 영조 임금은 진짜 대단한 사람임 본인의 아버지나 형에 비해 전통성이 미흡하다보니 더욱 완벽해야했고 그 엄청난 일정들을 다 소화해내며 무려 50년넘게 재위하심..
영조는 식사를 5첩에서 3첩으로 줄여 하루 세끼를 식사할정도로 소식을 했다고 합니다. 흰쌀밥 대신 잡곡밥과 고추장을 주로 즐겨먹었으며, 일과가 있는 도중에도 식사를 했다고 합니다
장기 권력욕심에 아들 사도세자도 죽였지요
조선의 역사를 보면 애초의 왕의 자리는 앵간한 멘탈과 정신력 부지런함이 아니면 버틸 수 있는 자리가 아님
그러나 영조는...
근데이시바 왜군대는 빼먹은겨? 왕이저렇게 처먹으니 백성이쫄쫄굶어
조선 뿐만 아니라 걍 전근대 시절의 왕의 자리는 진짜 초인이 아니면 버틸 수 없었죠. 특히 유럽은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보여야 하니, 왕이 직접 군사들 이끌고 전쟁까지 나갔을 정도.
@@퍼니셔-k7o영조는 개 소식했음
내가 해보니까 힘들긴 하더군.
하루 업무량이 어마어마 해서 새벽부터 업무 시작해서 매일 야근을 했다고 합니다
거기에 책도 읽고 경연도 준비해야 됨. 밤에 파김치됐는데 왕비 희빈 후궁들이랑 관계해서 후손 남겨야 됨. 번아웃 오것다. 나엿으면 1년만에 그냥 붕어할듯
폭식에 수면부족 스트레스 이러고도 과로사
안하는게 비정상임
와.....난 왕 안할란다
ㅈ도 생산성없는 일만 한거네
@@Nisssssss1 현장이 생산하지만 그 현장 생산을 지시하는데가 본사인건데 뭔 생산성 없다 이러냐 ㅋㅋㅋ
진짜 세종대왕님은 대단
고기반찬을즐겨하셧다고..
세종은 그나마 낫지
태종이 정적제거를 다시켜줬는데
매일 아니되옵니다를 듣고사는 왕 ㅜㅜ
아니ㅡㅡㅡㅡㅡ되옵니다
아니아니 하아니되오~~
이게 원본 베댓이네 ㅋㅋ
하는말마다 빽도당하면 개빡치겠노ㅋㅋㅋㅋ
코딩할때 뭐만하면 에러나는 느낌인가ㅋㅋ
북한은 아니되옵니다도 못하는데 김정은은 왕보다 더 쇠퇴했네
저기는 생사가 왔다갔다 하는데라....스트레스가 장난아닐듯
고종은 낮까지 잤잖아요
새벽6시부터 먹으려면 수면부족되기 쉽고..
안 움직이고...
스트레스 많이 받고..
많이 먹고...
단명의 조건은 다 갖춤😂😂
굶어죽는 것보다는 낫지.
도쿠가와는 77세인가 죽었는데 일단 다이쇼이지만 원래부터 무사집안 출신이기에 군주이자 무사였고 실제로 전투에서 직접 말을 타고 나가 참전을 했음. 먹는 양 자체도 적은데 검술 연습도 오지게 많이해서 군살이 배기지 않았고 성격도 느긋해서 스트레스 관리도 잘 했을거임
저렇게 많이 먹는데 운동량은 거의 없어서 웬만한 왕들은 당뇨에 고혈압으로 죽었다네요...
많이 안먹어요 저중에 3분에 2는 남기고 수라간 나인들이 남은거 먹음
당뇨로 사망한건 몇건안되고 대부분 독살 폐렴 전염병 성병 등임.
내림상이라 남은 음식들은 다 수랏간 직원들 한테 가는거에요
배고프면 좀 먹고....먹기 싫으면 몇 숟갈 거들거 치우고
형식적인 거임
선조는 도망치고댕기느라 오래살았던 이유가있었군 ㅋ
@@winstonchoi4463맞다 왕이 손안댄 음싣들은 궁녀나 내시들이 해치웠다고했음
아.. 그래서 사극 드라마 보면 왕이 직접 나서서 변장하고 백성들 생활 관찰겸 출장 나가는걸 좋아한것 같기도...
그거 거의 숙종만 했음.. 장희빈 몰래 만나려고.. 영조도 가끔 헸지만.. 나중에 어사들 시켰음..
전생에 내가 왕을 마다했던 게 아침 잠이 많아서였지 ~
나도 아침잠이 많지만 그래도 참고 왕의 직무를 수행했다.후궁들과의 뜨거운 밤을 위해서.아~그 뜨거웠던 나날들.
왕 말고도 저때 모든국민들이 밥을 엄청 많이 먹음
전쟁때 고립된 적에 군량미를 보고 "3일이면 다 먹을 양이군" 했는데 일주일이 지나도 밥을 먹고있다고 놀람
옛날 흑백사진 밥그릇 보면 어마어마함ㅋㅋㅋㅋ
의
동양인몸으로 그지근성이 심해서 탄수화물 과다로 당뇨를 달고사는 한국인
임진왜란때 평양성 전투였나 척후들이 식량상태 보고한거 보고 일주일인가 보름이면 다 떨어진다 생각하고 대비했는데 한참 버텨서 당황했다함
나중에 입성해서 밥그릇 보니 일본군 밥그릇 보고 '이놈들이 보급 어렵다고 간장종지에 밥을 먹는구나'했는데 정작 일본군들은 그냥 평시처럼 식사중이었단게 함정
음... 니들 시골가서 하루만 일해봐. 그많은 기계와 기술가지고도 존나 힘든데 저때 일반인들이 얼마나 많이 먹어야 됐겠냐.
아마 왕들도 궁내에서 존나게 돌아다녀서 지금 현대인 운동량보다 더 많이 움직였을수도 있음
@@georgestokes4728 다른 나라 사람들은 하루종일 누워만 있었음? 옛날 사람들 힘들게 산 건 어느 나라나 마찬가진데 무슨.. 그냥 식탐이 존나 많았을 뿐이지 계속 과식하다보니 양이 계속 늘어나는 거고
왕이라는 이유로 뛰지도못하게하고 운동도 못했음 ㅋㅋ거기다가 스트레스 해소가 필요한 여가시간같은것도 없어서 일찍이 죽을수밖에..
세조의 취미가 사냥.
궁녀들이 취미임 ㅎㅎ
이 유튜버는 자기가 시나리오 써 논거 읽으면서 마치 첨 듣는다는듯이 놀래며 멘트치는게 젤 어이엏음
할머니댁가면 2시간마다 고봉밥에 간식 풀코스로 나오는 무한루트같넼ㅋㅋㅋㅋ
겁나 살쪘는데 울강아지 뭐이리 삐쩍말랐냐고 계속 가져다주시는 울할머니의 사랑때문에 조선시대 왕체험도 하고 완전 럭키비키자나~❤
😂❤긔엽네비키비키럽키
어렸을 때 집에서 키우던 강아지 잘먹여서 토실토실하게 살을 찌우더니 어느날 밥상에 못보던 고기가 올라오더라.갑자기 그 생각이 나네.
영화 광해로 잘못된 지식 가지고 계신분들 많은데 임금이 남긴걸로 끼니 떼우는거 아닙니다.
궁녀들은 궁이 아닌 외부에서 따로 차린 밥을 먹었고, 왕이 남긴 음식을 먹은 것은 끼니를 채우기 위해서가 아닌 귀한 음식을 먹을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기에 먹었던 것이고, 이에 대해서도 문제를 삼지 않았기에 가능햇음.
@@Mountin-Gorila 오 고건 몰랐넹
잘못알고 계심 왕이 남긴 음식(지저분하게 먹는게 아니라 기미하고 상 위에 남긴 음식) 은
왕족도 먹었음 고종때 이야기를 한 가수이자 왕족출신 이석씨도 말 함 왕이 남긴 음식이라며 후궁과 왕족자식들이 음식을 먹음
+사대의 예가 중요해서 명에게 조아린게 아니라
만력제가 임진왜란시 겁나게 후원해 준 것에 대한 의리를 져버리면 안된다고 한 것이다.
오 몰랐습니다
변소몇번가나. 휴지는 뭘로~?소변은.어디서? 화장실은 어떻게 생겼을까요~~
저걸 다 드시는게 아니라 적당히 먹고 남겨서 궁녀들이 요기한다 들었던것 같아요😮
왕의 남자 봤노?
광해 아니고?
그리고 궁녀들도 맛있게 드셨지
@@자네가해보게궁녀들 역할이 왕한테 먹히는거니까 뭐...
@@한세민-w9b 팩트로 세종대왕 자녀가 18남 4녀였음 ㅋㅋㅋ
아침밥 7시에 먹고 한시간반 운전해서 출근하면 10시쯤 배고파짐. 먹고나서 머리든 몸이든 써야하니 소화가 금방되더라고요.
살좀빼
나도 6끼는 먹는다.왕이나 나나 먹는 건 별 차이가 없군.왕이 먹는 걸 나는 못먹지만 왕도 내가 먹는 햄버거, 피자를 먹어나 봤겠나 ?.라면 한번 못먹어 봤겠지 ?.생각해 보면 왕도 불쌍해.라면 한번 못먹어 본 인생.
저때는 재미난게 별로 없어서 먹는것으로
스트레스 풀고 해결하는 시대였음
그렇다, 조선시대왕이란 진정한 블랙기업 직원이엿다.
이엿다
이었다
회장
김정은도 진정한 블랙기업 회장님으로서 신나게 쳐먹고 있지.
그 시절은 어느 나라를 가도 왕이라는 자리가 헬보직 그 자체, 유럽의 경우는 아에 왕이 직접 전쟁터에 나가서 병사랑 장교들 지휘하고, 냉병기 시절에는 아에 무기 들고 전투에 뛰어들어서 왕이 전쟁터에서 전사하기도 했었죠.
운동선수들처럼 하루를 4분할 해서 잠자는 시간빼고 훈련하는 느낌이네
왕들은 운동선수가아님ㅋㅋㅋ저러다 D진다고ㅋㅋㅋㅋ
교훈: 잠을 많이 자야 영원한 잠을 늦출수 있다.
세종대왕님 께서는 고기 반찬이 없으면 식사를 안 하셨다고 함…
그렇다 보니 태종 이방원이 승하하기 전에 자기 상을 치룰 동안에도 세종대왕 식사에는 꼭 고기를 올리라고 명했다 함..
그건 3년상하면 식사가 제한되니까 아들 걱정에 3년상에 힘 쏟지말고 국정에 힘쓰라 한말임
그리하여 세종대왕 님을 위해 치킨이 개발 되어 자주 드셨어요 ㅋㅋㅋㅋ
세종대왕님은 몰래 운동을 하신 게 맞다
세종대왕님이 꽤 덩치가 있던걸로 아는데~
과한 탄수량에다 지방까지 간이 많이 상했을 걸로 예상.. 온갖 염증에 시달리셨을 듯
전 요즘 이것저것 보면서 공부하다 보니 점점 저탄고지에 간헐적 단식이 건강식 끝판왕이란 예상에 근접해감
왕이 그많은 밥상을 혼자 다먹지는 않고 항상 남은 음식들은 무수리들이 잔반처리겸 끼니를 때운다고 역사 해설가분이 말한적있었음
반찬만 내림상이라고 귀한 재료로 만든 음식을 남겨주는거고 밥은 따로 해먹었다고함
무수리는 아니고 왕이 먹는 모든 음식을 먼저 맛보는 기미상궁들이 있었음. 그래서 남은 음식을 기미상궁들이 먹었음. 기미상궁들은 왕이 남긴 음식 외에는 먹지 않음. 그래서 음식에서 이상이 있는건지 확인하기 위해서임
저렇게 먹어대고 운동은 그냥 궁내를 조금 걷거나 요기갔다가 조기로 가는정도... 그리고 밤이면 적게는 서너명에서 많게는 열명이 넘는 정비와 후궁들과 열심히 하루에 두세번 궁극의 아이만들기 행위도 하고... 대부분 왕들은 그러하여 30대에 비만에 당뇨와 혈압이 있었으며 건강이 극도로 쇄약해져서 결국 50을 넘긴 왕들이 그리 많지 않았고 심지어 위생관념이나 의술이 현재에 비해 비교불가의 상태라 쉽게 병에걸리고 끙끙앓다가 가신분들이 많음... 일설에 의하면 우리가 존경하는 세종대왕께서는 어려서 부터 고기를 매우 좋아하셔서 매끼마다 고기반찬이 없으면 짜증과 화를 내셨다 하며 여성편렵도 심하여 밤 잠자리가 대단하셨다함... 세종께서 승하하기전 탕약과 처방 그리고 어의들의 진료와 그 기록들을 살펴보면 결국 세종께서는 오늘날의 고도비만과 비 위생적인 성관계로 인한 매독에 걸려서 돌아가셨다는 설이 있음...
잘 먹는걸로 수명이 짧아지지는 않고, 과로랑 후계생산때문에 수명이 짧아지는거.
후계는 적통을 낳는 왕비의 몸상태에 맞춘 일정이 정해져있어서 적자가 안나와서 후궁한테까지 손벌릴 상황이 아니라면 그정도까진 아님
잘 먹는것도 너무 부드럽고 고급 스러운것만 먹는것도 수명에 안좋죠.
때로는 거친 음식도 먹고.
즉, 골고루 적당히 먹어야 함.
많이 먹는것도 수명 짧아짐. 원래 소식하고 먹는양 적어야 오래삼
과식이 가장 해롭다.
과로랑 과색이 그 다음으로 해롭다.
결국 가장 해로운 거 다 하고 살았네.
이성계 조선의 왕들중
가장 장수한 영조는 평소 식사량이
매우 적었다고...
비만과 성인병이 왜 생기는건데 ㅋㅋ 존나 처먹어서잖아
괜히 왕 하는게 아니네 ㄷㄷ 프라이버시가 없는 수준이구만...
ㄹㅇㅋㅋ 해피타임도 제대로못보내니ㅋㅋㅋ
ㅋㅋㅋㅋ 배가 아파도 변 볼것들 가져다 주면서
앞에서 기다리는 정도이니..
왕비랑 밤일할때도 옆에서 참견했다던데
아무니 왕 하는거... 라는 표현이 맞는거 같은데
즈언하 거기선 ♡♡하셔야
난 전생에 왕이었었나보다.. 저 시간마다 배가고프긴해
기미상궁이나 내시였겠지.아니면 궁에서 키우는 강아지였거나.잔반처리.우리 집 강아지도 밥때만 되면 배가 고파 안절부절 못하지.
@haun-dz4og ^^
@@haun-dz4og 남 잘 되는꼴을 못보는 요즘 사람들
왕의 일과가 아무리 빡셌다해도 저렇게 먹었다간 건강에 이상이 안생기는게 더 말이 안될것 같은데...
기계도 전류너무많이흘리면 D진단예가가잇자너ㅋㅋㅋ
그래서 일은 존나 많은데 그 일들이 육체 노동이 아니라 정신 노동이라 저 많은 식사량을 커버를 못해줘서 조선시대 왕들은 항상 과로에 온갖 성인병들은 다 달고 다녔던걸로 들었어요
어차피다안먹어도됨
남겨도되고 남긴거 신하가먹음
옛날부터 늦게 자고 일찍일어나는게 일상이었구나...
그래서 우리나라가
학생은 일찍 출석해서 0교시 듣고(현재는 아니라지만...나때는...ㅜㅠ)
회사원은 일찍 출근하고 야근하는거구나...
권력만즐기고 책임은 지지않으며 짧고굵게 왕의 자리를 즐기고가신 연산군 그는 도대체....
저 중 남은것을 신하에게 나눠주었다 하는걸 생각하면 임금의 한끼식사량이 그렇게 많지는 않을것 같은데
그냥 자주 조금씩 먹었다고 생각하면 수명이랑은 상관이 없지 않을까?
먹으면 먹을수록 수명은 짧아짐요
@@전미영-m7v 개소리좀하지마
@@전미영-m7v 안먹으면 안먹을 수록 수명이 길어지나 ?.한달 굶으면 불로장생 하겠네 ?.
영화 광해에서
광해 : "조내관, 임금은 매 끼니 이렇게 배불리 먹소?"
내관 : "전하가 남기신 어식으로 수라간 궁녀들이 요기를 하옵니다."
광해 : "그럼 나 때문에 며칠동안 아무것도 못 먹었단 말이오?"
내관 : "아마도..."
광해 : "어쩐지 이것들이 날 귀신보듯이 하더라니.."
하는 부분이 생각나네요ㅋㅋ
앜ㅋㅋㅋㅋ그거알지ㅋㅋㅋ배고파도 배불리못먹는 압력ㅋㅋㅋ
그거 너무 뻥이였음. 임금이 먹는상으로 끼니해결하지않는다고함 따로하지
@@ssoza아예 없던건 아니고 퇴선이라고 시식코너 비슷하게는 운영했었쥬..
장수한 왕 영조는 일2회 식사 했다고 합니다. 신하들에게 갈굼당하는 시간인 경연도 결석할 때가 많았고(원래 1일3회) 카리스마가 있어서 신하들을 잘 다루었다고
왕의 밥상은 왕만 먹는게 아니라고 일부러 조금만 먹었다고 왕이 남겨야 먹었다고.. 어디서봤는데..
영화 광해욤
@@tmdwo153 아 그런가봐요ㅎㅎㅎㅎ
왕이 해야 하는것
수질관리,군사,교육,감시,감독,행정,복지,금융정책,외교,의료,복리후생,인사
후계자 생산.
정사돌보느라 스트레스 받으며 운동도 못하는데 중전에 수많은 후궁들까지..오래살수 있을까?
아우~ 하루 일과표 어질어질하네
ㄹㅇ그르게ㅋㅋㅋ나같아도화병나겟다ㅋㅋ
악기바리 아니냐고ㅋㅋ
무적 해병왕
ㅋㅋㅋㅋㅋ
다먹을 필요 없음 ㅋㅋ
기본은 저런데 본인이 거르고프면 거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잠도 적게 자는데 씨도 뿌려야하고.. 혹시 낮잠은 잘 수가 없었나요..?
만드는 상궁들이 빡세것다 새벽에타임에 만들어서 6시에 나갈라명
일하는 사람들이야 교대근무했지만 왕은 교대 근무가 안되죠 ㅎㅎ
남자들. 여자가 안만들었대요
@@Fbbaa27 당연하지.왕이 먹는 음식을 어찌 천한 계집들이 만들었겠나 ?.그 당시 궁중에서 일하는 왕의 요리사,즉 대령숙수들은 모두 남자들이었다.여자들은 서빙이나 맡았지.
전국에서 진상품이 올라오다보니 다먹지는 못하고 음식이 부족하거나 이상하면 해당지역 문제있는거 확인하려는데 의미가 큼ㅇㅇ
반찬 종류도 겁나게 많고 안겹침ㅋㅋ
그래서 흉년들면 수라상도 줄어드는거임
왕의 밥상에 중국산은 안올랐겠지 ?.
내가 볼땐 신하들과의 끝없는 파워게임과 언제 독살 당할지 모른다는 극심한 스트레스가 원인일듯.
이래서 세종대왕님이 종합병원이라고 불리는구나..
내몸도항상종합병원이디ㅠ.ㅜ
고기...
그 양반은 자기 아버지 죽었을때도
고기 쳐먹던 양반이라
고기없음 밥 안먹는 양반
@@레세우스아버지 돌아가셨을땐 안먹지 않음?
@@레세우스 왕실어른의 장례 때는 안먹었음
먹고 남기면 다른 궁인들이 먹었죠~
스트레스 많이 받아서
밤일을 너무 열심히해서
주는대로 다 먹어서
ㅋㅋㅋㅋㅋ
-음식은 상관 없습니다-
-오히려 적게 여러번 먹는게 제일 좋은 식습관이라는 말도 있고-
-왕은 밥을 남기더라도 잔반 처리반이 따로 있는 만큼 남기는 경우도 많아서 음식이 건강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 경우는 극히 적습니다-
적게여러번먹는게 건강에 엄청안좋다고 의사가 말함 당뇨에 최악이라고
@@usunglee7845 그러네요~
좀 찾아보니깐 원래는 저렇게 알려졌다가 다른 실험으로 밝혀졌었네요~
@@usunglee7845 잘못 된 정보를 써서 죄송합니다
군림보님은 매일 저렇게 드시잔아요 뭘 놀라요 ㅋㅋㅋㅋㅋ
나는 8끼를 먹는다.
한 둘 괴롭히는 게 아니고, 업무가 과중하고, 너무 잘 먹는데, 잘 안 움직여서...추가한다면 만족시켜야 할 여자가 한 둘이 아니라서...인간에게 주어진 에너지는 한정되어있다
왕의 일과 난이도가 현대기준으로도 헬난이도 수준이라 그럴만해
인생하드모드?ㅋ
후계생산도 나라일이라 하루에 4.5번은 성행위를했다고합니다 이게가장큰 이유일듯요
어우 주에 3번 정도면 적당할 거 같은데 하루에 그 정도면 죽어나겠다
나도 걱정인데.발동걸리면 하루 7번 정도는 하는데.
빡센 일과 사이에서 힐링되야할 식사시간마저 독이 들었는지 안들었는지 노심초사하며 드셨을테고...
많이 남겼을 겁니다..
임금: 사자
궁녀: 하이에나(?)
왕을 모시는 시녀와 내시가 그 남을 음식을 먹죠^^
@@김연남-y5h ㄴㄴ 따로차림 왜곡 ㄴ
남으면 먹긴 했겠지 그래도 먹을거 귀하던 시절인데
땅이 척박해서 먹을거 귀한 나라에서 남은 음식 절대 못 버리지
돼장은 역시 왕이었구나!
아녀 밥 때문에 수명이 짧은게 아니란 말여~다른 걸 먹어서
참고로 영조..82세까지 살았음;;
영조는 소식하고 간단하게 먹음.
영조는 특이할정도로 오래살아서 영조라고 지은거지 일찍 죽은 왕이 훨 많긴함
영조 거의 비건임
다른왕들 10살때부터 스트레스 받으면서 트레이닝 받다가 즉위해서 대신들에 치이던거랑 비교할때 영조는 30가까이 되어서 즉위함
물론 치세를 펼칠정도면 공부도 세자들 못지않게 했겠지만 압박속에서 했느냐 자신이 원해서 했느냐가 가지는 스트레스의 차이 이것도 장수의 비결중 하나였을거임
영조 소식하고
하루 세끼로 줄였다고함.
왕을 돼지로 아네. 왕이 먹은후 시중들도 먹어야하니 저렇게라도 해야 아랫사람들도 배를 채우지..
이건 영화로 역사를 배웠네ㅋㅋㅋ
@@보름달-v9u 유감스럽게도 난 영화(사극포함)를 거의 안본다.
요즘 애들은 문해력만 문제가 아니라 독해력도 문제..책 좀 읽어라.
왕이 먹은 후 남은걸로 요깃거리 삼기도 했지만 기본적으로 궁녀들도 밥은 다 먹고 살았음. 왕이 먹고 내려준 음식은 특별식 정도? 왕이 음식 안남긴다고 배를 못채우거나 그런건 아니었음
뭘로 역사를 배운지 모르겠는데 왕이 먹은후 시중들이 먹는 물림상은 먹을게 없는경우 굶는게아니고 다른음식을 먹었다
시중이 몇명인데 아무리 임금 수라라도 그걸 다 어떻게먹임?
실제로 조선시대 국왕은 수면 시간이 별로 안되고 잠도 거의 못잠.. 수면 부족임. 게다가 조선시대 국왕은 정치 업무를 하고, 국정도 배워야됐고, 게다가 보고서들도 전부다 자신이 직접 봐야됐음.
실제로 스페인인들은 하루에 6끼를 먹는데 조선시대 국왕과 비슷한 이유였음.
현재 왕은..... 해외여행, 술, 접대 한다고 엄청난 에너지를 쏟으시지.
어휴... 이런 댓글 다는 사람이 있다니..
저세상 먼저 가시는게 어때요?
ㅉㅉ@@Lhlh12347
@@Lhlh12347 대깨굥?
저걸 다 먹진 않음 ㅋㅎㅋㅎ
저걸다먹을수잇는건 나밖에읎는디?ㅋ
상 내림을 해야하니 그렇죠 ㅎㅎ
웃지만 아침부터 저녘까지 풀로 머리써야되는 직업..
저거 다먹지 않았어요
남은 밥을 아랫사람들이 나눠먹는 식이였음
그때 거기 계셨었나봐요
그랳겟지ㅋㅋ다먹으면 푸드파이트킹이됫겟지ㅋㅋㅋ
식이였음
식이었음
맞음 안 남기면 아랫사람들 굶음
@@handsomeprince2031
그랳겟지 그랬겠지
됫겟지 됐겠지
영화 광해만 봐도 아는데 임금이 먹다 남은 것으로 많은 궁녀들이 끼니를 해결하는지.... 그냥 과도한 업무에 스트레스가 많아 단명했다는 설이 가장 유력한 살.
나두그리생각함ㅡㅡ 진짜 블랙기업이구만?
먹을복을 타고나는게 왕과 같습니다. 🙏..😅
각종 스트레스로 인해
ㅜㅠ
소식으로 하루 6번이 더 건강함!!
1.과로한 정무로 인한 스트레스
2.좋다는거 디립다 챙기고 밥많이 먹고
3.첩질 너무많이해서 정력빨리고
4.통풍안되는 비단옷 의관 갖춰 생활하다 피부병 생김.
일어나자마자 밥먹는게 아니라 그전에 새벽 4시쯤 일어나서 몸단장 하고 왕실 어르신들 문안 인사 다님. 그리고 6시에 조식하고 또 공부하다가 아침먹고 경연 나감. 걍 매일이 고3임
전하~~ 통촉하옵소서 서터레쓰가 서터레쓰가😂😂
저기서 남은 것들을 수랏간 사람들이 나눠 먹기에 그렇게 많이는 먹지 않고 조금씩 여러번 먹는 걸로 알고 있어요
봤냐 ?.봤어 ?.
저러고 끝고 아니지..일 끝나면 후세를 보기 위해 순서 정해서 여기저기 다니셔야 하고;;; 진짜 오래 사는게 기적이지..
왕비들 기본이 3~4 명씩 밤일도 힘들것같습니다
왕비는 하나,후궁이 여럿.
아니 뭐 에피타이저 3인분에 소화도 다 안하고 아침 5인분, 점심 2인분, 저녁 7인분, 그러고 또 야식을 드셔? 와 부럽다
저땐 살찌는것 자체가 좋은 의미니까 다이어트 할필요도 없었을텐데
쉴 시간이 없으니 수명이 짧지, 중간에 낮잠 시간이라도 있으면 좋지
6시에 조식을 한다면
기상시간은 몇시일까?
누군가의 개빡셈이 왕들에게는 한낱 게으름정도 였다라니
운동은 아예담쌓고살지
수명의첩그늘지,스트레스받지
수없이 먹어되야지
명이 짧을수밖에요ㅎ
저거 다 먹지안코 조금먹고 남은걸로 궁녀?들이 먹습니다 한마디로 조금씩 자주먹는거죠
밥을 많이 먹는것도 있지만 저 밥은 혼자서 다 먹는게 아닙니다
밥을 남기면 그 남긴 밥을 다른사람들(밥하는 사람? 뭐라하는지 기억이..) 이 먹는걸로 알고있어요
늦게자고 일찍일어나고 후사를 위해 후궁들과 이걸로 인한 단명입니다 면역력약화로 골로가는거
해 뜨고 지는게 하루 일과 기준이라 현대기준보다는 3시간 일찍 시작해서 3시간 일찍끝남
왕도 빡센데 저거 만드는 사람들도 쉬는 시간 없이 계속 만들어야겠는데 ㄷㄷ
그리고 저걸 혼자먹는게 아니고 돌림상을 해야하니 적게 자주먹는다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초딩땐 저도 왕처럼 먹은듯 싶네요😂
아침 거를땐 간식포함 4끼는 먹었는데..ㅋㅋ
그 시대는 폰도없고 티비도 없고,친구를 만나서 카페를 간다거나 이런 시대가 아니기 때문에 결국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서 먹는걸로에만 재미와 진심이었던것 같음…
왜 식욕 성욕 둘다 중요하잖음 3대욕구
근데 차린것만 거창하고 실제로 저거 다 먹는게 아니라 일부분만 먹고 나머지는 궁녀나 이런 시중드는 사람들이 먹음. 그리고 조선왕들의 사망원인중 젤 많은것은 등창 이라고함. 일종의 종기 이런건데 갠적으로 추측하기로는 당뇨나 성인병관련한 합병증이거나 스트레스로 인한 암 아니면 면역력저하로 인한 질환들이 복합된거로 보임.
저거 다 먹는게 아니라
종류당 1-2접씩 먹고 남은건 궁녀들이 먹었습니다
청나라의 경우는 종류당 1접으로 제한을 두기도 했다네요
과로+스트레스+과식으로 오래 살 수가 없는 구조ㅋㅋㅋㅋ
총량불변의 법칙.
직무가 과해서가 아니라
무직이라도 저리 과식하면 수명이 짧은게 정상
흔한 말로 밥그릇수 채우면 하직하는게 맞음
차도 연식 오래되더라도 적산거리 짧으면 더 타듯
신체도 마찬가지이다
수명 중요도로 치자면 소화계 > 호흡계 > 심혈관계
이는 차량으로 치자면 엔진및 연료계 > 흡기및 배기 > 전장계 와 같다고 할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