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인들(목회자들 포함) 스스로 자신이 인간인 것과, 인간의 사고, 이성, 이해가 편견, 오해, 무지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다는 사실을 인지/인정하고, 스스로 조심하기를 바라 마지 않았습니다만, 제 바람과는 정 반대의 상황을 압도적으로 많이 보게 됐습니다. 말씀을 제멋대로 잘못 해석하고, 자기 주장을 강화하기 위해 함부로 오용하면서도 그것을 감히 영적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을 보노라면 가슴이 답답하고, 그들에게 그것이 잘못된 것이라고 말해줘야 할 지, 말아야 할 지, 말한다고 듣기는 할 지, 내가 그럴 자격은 있을지, 정말 고통스럽습니다. 정말 과장 없이, 그런 것들을 얘기해서 받아들인 적이, 아니 생각해 보겠다고 말이라도 한 적이,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힐 정도였을 겁니다. 제 시야와 식견이 좁아서 많은 선한 것을 보지 못한 것이 그 이유라면, 부끄러워 하면서라도 차라리 기쁘겠습니다. 스스로 낙심하지 않도록 기도할 뿐입니다. 이 상황도 결국 주님의 뜻이 이루어져 가는 과정일 뿐입니다. 기록된 그대로입니다. 아멘. 만약 내가 궁극적인 은혜를 입었다면 그 날에는 오늘의 고통이 기억조차 나지 않을 것입니다.
#1 1. 행위 심판 네가 어렸을 때를 기억지 아니하고 이 모든 일로 나를 격노케 하였은즉 내가 네 행위대로 네 머리에 보응하리니 네가 이 음란과 네 모든 가증한 일을 다시는 행하지 아니하리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에스겔16:43) 또 내가 사망으로 그의 자녀를 죽이리니 모든 교회가 나는 사람의 뜻과 마음을 살피는 자인줄 알찌라 내가 너희 각 사람의 행위대로 갚아 주리라(요•계2:23) 그가 준 그대로 그에게 주고 그의 행위대로 갑절을 갚아주고 그의 섞은 잔에도 갑절이나 섞어 그에게 주라(요•계18:6) 바다가 그 가운데서 죽은 자들을 내어주고 또 사망과 음부도 그 가운데서 죽은 자들을 내어주매 각 사람이 자기의 행위대로 심판을 받고 사망과 음부도 불못에 던지우니 이것은 둘째 사망 곧 불못이라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지우더라(요•계20:13~15)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따라 내가 지혜로운 건축자와 같이 터를 닦아 두매 다른이가 그 위에 세우나 그러나 각각 어떻게 그 위에 세우기를 조심할찌니라 이 닦아 둔것 외에 능히 다른 터를 닦아 둘 자가 없으니 이 터는 곧 예수 그리스도라 만일 누구든지 금이나 은이나 보석이나 나무나 풀이나 짚으로 이 터 위에 세우면 각각 공력이 나타날 터인데 그 날이 공력을 밝히리니 이는 불로 나타내고 그 불이 각 사람의 공력이 어떠한 것을 시험할 것임이니라 만일 누구든지 그 위에 세운 공력이 그대로 있으면 상을 받고 누구든지 공력이 불타면 해를 받으리니 그러나 자기는 구원을 얻되 불 가운데서 얻은 것 같으리라(고린도전서3:10~15)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히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주초를 반석 위에 놓은 연고요 나의 이 말을 듣고 행치 아니하는 자는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히매 무너져 그 무너짐이 심하니라(마태7:21~27) =>창조주 하나님의 심판의 근거는 의의 말씀이며 심판의 대상은 사람의 행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의 죄와 불의의 온갖 악행들을 사유하사 멸망에 이르지 않게 하시기 원하셔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시고 그 흠 없는 대속 제물이신 어린 양의 피로 죄인들의 죄를 사유하사 하나님의 생명에 참예케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이 믿음 또는 불신에 있지 아니하고 행위나 행실에 있음을 우리는 주목해야만 합니다. 이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믿음은 반드시 그 올바르고 진실한 믿음에 합당한 또는 그 믿음으로 말미암은 선하고 의로운 순종과 충성의 행실로 증명이 되어야 함을 성경이 분명하게 암시하고 있습니다. 창조주 하나님의 궁극적인 뜻은 사람들의 착하고 올바른 행실, 행위, 행함 또는 공력과 일함에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믿음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행실과 일들을 하나님의 뜻대로 올바르고 정확하게 행하고 이룰 수 있도록 만드는 근원이요 기초석이요 반석이요 샘 솟는 에너지요 굳건한 척추요 중심 뼈대입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자들은 결코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선을 온전히 행할 수 없으며 또한 그 온갖 죄악들을 해결할 수도 없고 죽기까지 죄의 종노릇하며 범죄하기를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죄 가운데 태어나 죄 중에 살다가 죄로 삶을 마치게 되는 것입니다. 삶 전체가 하나님 앞에 죄로 얼룩지고 더럽혀진 행악 뿐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노라 하는 성도들은 어떠합니까? 믿음으로 이미 구원 받았다 주장하는 자들의 행실이 그 믿음에 따르는가 따르지 않는가는 매우 중요한 문제가 됩니다. 창조주 하나님의 심판이 불신자들과 마찬가지로 그들의 행위와 행실과 그 열매들에 있기 때문입니다. 아멘! 그렇다면 결국 궁극적인 하나님의 심판은 그 행위들을 있게 하는 사람들 마음 중심의 진실하고 충직한 믿음 또는 의심과 불신과 모독과 훼방과 대적의 불의하고 악한 마음을 대상으로 하신다는 사실로 귀결됩니다. 아멘! 그러므로 오직 의인은 믿음과 그 믿음으로 말미암은 착한 행실과 그 아름답고 먹기에도 좋은 선한 열매들로 의롭다 하심을 받아 구원 곧 영생에 참예케 됨입니다. 아멘!❤~
다른교회사람인데 창조론에 대한 언급은 없고 유신진화론에 대한 가능성을 넌지시 던지고 성경은 실증적이고 문자적으로 해석하면 안된다고 이야기 하시네요. 문학적요소로 해석해야할것, 시대적 배경속에서 우주나 하나님의 뜻에 대한 인식에의 해석, 문자그대로 해석할것, 역사적이고 실증적인 요소의것, 묵시적 인요소, 예언적 성취에 대한 것에 해석의 범주에 대한것들은 논란의 여지가 있을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부활에 대해서는 믿는다고 하시고 아담과 하와에 대한 이야기에서는 문자그대로 받아들이면 안된다는 식으로 이야기하시네요. 현대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 마르크스에 대한 언급 사회적인 요소들에 대한 언급들을 많이 하시다보니 정치적이다 라는 성도들의 몇몇 목소리를 듣게 되는것 같습니다. 다니엘의 시대적 배경속에서 왕을 신으로 떠받도록하는 법이 통과되었을때 다니엘이 거절하다가 죽음의 위기에 빠질 수 있었던 경험이 있다는 면에서는 정치,사회,역사,문화,성경의 요소가 이분법적으로 나누어지지 않는다 생각하는 바이지만 예수님이 아닌 인간인 목사는 본인의 생각과 의견에 기울어질 수 있는 충분한 존재라는 생각을 가집니다. 저는 성경을 최우선적인 근거로 삼고 시대를 분별하기위해 여러 다양한 수단과 방법들은 부차적으로 활용할수 있다고 봅니다. 현대 한국교회가 차별금지법이 통과될 위기가 생기게 된것은 정작 대다수에게 벌어지는 음행의 문제들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별거 아니다 라고 치부하고 목사 간사 장로 집사 권사된 사람들은 그런 분위기에 본인들도 빠지고 더 나아가 침묵하는 상황에서 단계적으로 차별금지법의 위기까지 오게된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한편 진화론의 문제라함은 인간의 유전자 전달을 최우선적 원리로 주장하고 있는것인데 그 근본이론에 따라 하나님은 없고 인간의 본능만이 전부라며 무분별한 성관계의 문제를 이끌어갈 수 있게 만들고 그 외 우생학과 적자생존의 원리에 이르러 제국주의 이념에 경도되게 만들 수 있습니다. 그래서 유신진화론은 그런 진화론에 근거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변형시키고 왜곡하는 결과를 만들수 있다는 것입니다. 한국 교회 목사님들도 100퍼센트 자신이 하나님의 말씀만 선포한다 이야기할 수 없고 자신이 틀릴수도 있는 인간적 존재임을 자각하여야한다고 봅니다. 베뢰아사람들이 말씀이 들어왔을때 이것이 맞는지 상고해보았듯 질문이나 반론이 하나님을 대적하는것인지 그 의미를 깊게 숙고해보는것인지 의문을 제기하는것인지에 따라 차이가 있는것인데 의문을제기하거나 말씀에 동의하지않으면 사탄취급 혹은 사탄에게 이용 당하는자 취급당하니 없는 반발심도 더 생기게 된다는것이죠. 목사님 말씀 처럼 한국 교회에 만연해 있는 이런 분위기는 고쳐져야할 부분이 많다고 봅니다.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다라는 말은 성경에 없는 말입니다. 물과 성령으로 나다라는 말이 성경에 있는 말입니다. '거듭'을 함부로 넣으면 안됩니다. 요한복음 3:5 5.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성경 해석의 첫 단계는 text 해석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이 본문해서 한 말에 집중해야 합니다. 간혹 물로 태어나는 것을 물 세례와 연결시키는 오류를 범하기도 하지만 예수님의 말씀을 그렇게 연결하면 오류에 빠집니다. 예수님이 직접화법으로 하신 말씀을 순수하게 그리고 논리적으로 이해하고 그 후에 신학적인 해석을 붙여야 합니다. 우리 한글 성경은 이 부분에서 조금 오해를 낳을 수 있는 번역이 있습니다. 영어 성경과 비교해서 논리적으로 정밀하게 읽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1. 거듭나라고 말했다. 2. 니고데모가 거듭난다는 의미를 모르니까 구체적으로 물로 나고 성령으로 나야 한다고 말했다. 3. 이것을 더 잘 설명하시려고 육체->육체, 성령->성령이라고 말했다. 먼저 예수님이 한 말을 그대로 분석해야 합니다. 그리고 여기서 논리적 흐름과 지칭하는 것을 연결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거듭나야 한다고 말했고 이 말을 잘 이해 못 하니까 더 잘 설명해 주었습니다. 즉 두 번 태어나야 하는데 1차 탄생은 물로 태어나는 것으로 2차 탄생은 성령으로 태어나는 것입니다. 그럼 물로 태어난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요? 여기서 물은 어머니 배속의 자궁의 물 즉 양수를 의미합니다. 그러니까 사람의 자연적인 생물학적 탄생을 말합니다. 그리고 성령으로 태어난다는 것은 예수 믿고 구원 받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그 다음 줄에 또 더 자세히 설명해 주십니다. 물로 태어나는 것은 육(어머니)에서 육(나)이 나는 것인데 그래봤자 육일뿐이다. 성령으로 나는 것은 성령을 통해서 영이 태어나는 것이다. 이 둘의 탄생이 있어야 비로서 하나님 나라에 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bosungind "물이 양수"라는게 뇌피셜입니다. Someone 은 이미 양수를 통해서 태어난 사람입니다. 물로 태어나다의 시제는 현재형입니다 님 말대로면 과거시제를 쓰셨어야 합니다. (이미 양수로부터 태어난) "누군가"가 물로 태어나지 않으면 / 여기서 물을 양수로 해석하면 넌센스가 됩니다 애당초 전제가 양수를 통해서 태어나지 않으면 누군가가 될 수 없습니다 "이미 양수로 나온 너희가 양수로 나오지 않는다면 천국에 갈 수 없다?" 말이 넌센스죠 그리고 예수님은 자신이 말씀하신 5절의 나다를 거듭나다로 받으셨습니다 그런고로 예수님이 5절에서 언급하신 나다는 거듭나다라는 의미가 맞습니다 이미 태어난 사람(someone)에게 또 태어나지 않으면 이라고 말씀하고 계시기 때문에 예수님이 언급한 태어나다의 의미는 거듭나다라는 의미가 맞습니다. [Jn 3:5, NASB] Jesus answered, "Truly, truly, I say to you, unless someone is born of water and the Spirit, he cannot enter the kingdom of God. [Jn 3:7, NASB] Do not be amazed that I said to you, 'You must be born again.'
성경에는 " 동의어 병행법 " 이 흔하게 나옵니다. 표현을 다르게 하되 중복 말하여 같은 내용을 강조하는 표현 방식입니다. " 물과 성령 " 은 같은 의미에 대한 중복 표현입니다. 물과 성령이라는 두 가지 요소가 아니라 같은 의미에 대한 중복 표현입니다. 에베소서만 보더라도 " 예수님께서 자신을 주신 것은 교회를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기 위함 " 이라고 합니다. 물로 씻는 것과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는 것은 같은 것입니다. 디도서에는 " 우리를 구원하시되 성령을 풍성히 부어주셔서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 " 이라고 교훈합니다. 성령을 부어주셔서 거듭남의 씻음을 주신 것으로 사도 바울이 교훈합니다. 복음서만 보더라도 예수님께서 열 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그리스도께서 가르치신 말씀으로 제자들이 깨끗함을 입었다고 합니다. 이것만 보더라도 거듭남은 그리스도의 말씀과 성령 세례로 씻음을 받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복음을 듣고 처음 믿었을 때 이뤄진 일입니다. 복음을 듣고 믿음으로 성령을 받으니까요.
외람되지만, 제 판단에는 정목사님의 해석이 정확한 듯 보입니다. 요한복음 3:5의 내용만 보면 '나다'라는 어휘만을 사용하셨지만, 3:3-7의 내용을 통으로 보면, 그것이 '거듭나다'를 의미하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원어로 보아도, '3절'에 나오는 'γεννηθη(태어나다) ανωθεν(위로부터/다시)'와, '7절'에 나오는 'γεννηθηναι(태어나다) ανωθεν(위로부터/다시)'를 보아도, '5절'에 기록된 이 'γεννηθη(태어나다)'는 거듭남에 대해 달리 표현하시는 것임을 유추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4절'에 니고데모도 분명히 '사람이 태어났는데 어떻게 다시 태어날 수 있는가' 여쭙지 않습니까? 이것은 어떤 비약도 없는 텍스트 분석이라고 생각합니다. 제 생각이 잘못됐다면 누구든지 바르게 가르쳐 주십시오. 대신 명확한 근거를 통해 말씀하셔야 저도 받아들일 수 있을 것입니다.
@@tjservant저와는 해석이 다르시지만 좋습니다. 정 목사님의 해석도 상당히 일리가 있다고 봅니다. 외람되지만, 제가 다른 한 가지(영문법)에 대해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라고 하셨는데요. 말씀을 드리기 전에, 일단 현재형이 아니라 '현재시제'라고 하는 것이 더 정확한 용어입니다. 영어에서 현재시제를 언제 사용하는 지를 정확히 모르시는 것 같습니다. (한국어 현재시제와 같은 듯 달라서 영문법을 명확히 숙지하지 않은 학생들이 어려워 하는 시제입니다.) 영어의 현재시제는 '현재의 상태', '진리', '일반적인 사실'을 나타낼 때 사용하는 시제입니다. (☆영어의 현재시제는 '현재의 동작'을 나타내는 시제가 아닙니다. 이점이 한국의 현재시제와 가장 다른 점입니다.) 이 경우에 는 특정한 과거사건을 이야기하는 말씀이 아닙니다. '진리' 또는 '일반적인 사실' 용법으로서 사용되었습니다. 즉, 과거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러하고, 미래에도 그러할 사건을 이야기하는 것으로 이때는 반드시 현재시제를 사용해야 합니다. 특정 사건이 아닌 데 과거시제를 사용할래야 할 수 없습니다. (두께가 좀 되는 고등 영문법 현재시제 용법을 보시면 자세히 나와있습니다.)
@@bosungind 님이 "양수는 물" 이라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선입견을 가지고 성경을 보시려니, 현재 시제에 대해서 현재를 현재로 보지 아니하고 시제를 무시하고 단순히 진리를 설명. 이라고 말하고 계시다고 생각은 안하십니까? 1. 님이 문법을 제시했는데, 예수님과 니고데보는 영어가 아니라 원어로 대화했습니다. 니고데모가 예수님의 말을 이해 못한 것은 문법상 문제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2. 상황적으로 예수님이 니고데모에게 요3:10 예수께서 그에게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의 선생으로서 이러한 것들을 알지 못하느냐 라고 지적하셨는데요 해당 구절의 "이스라엘의 선생으로서" 는 문법상 몰이해를 지적하는 것이 아니라, 구약성경에 대한 몰이해를 지적하시는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따라서 이 해석은 구약 성경에서 답을 찾아야 합니다. 3. 모국어로써 영어로 쓰고 있는 세계적인 요한복음 신학자들도 해당 구절의 물을 양수로 보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들이 영어를 몰라서 양수라고 해석하지 않지는 않을 것입니다. 4. 정경적 해석을 더하면 물과 성령과 구원은 매우 밀접한 관련이 있고, 따라서 해당 구절의 물은 양수가 아닙니다. 마가복음 16:16 믿고 를 받는 사람은 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 사도행전 2:38 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의 선물을 받으리니 베드로전서3:20-21 20 그들은 전에 노아의 날 방주를 준비할 동안 하나님이 오래 참고 기다리실 때에 복종하지 아니하던 자들이라 방주에서 로 말미암아 을 얻은 자가 몇 명뿐이니 겨우 여덟 명이라 21 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너희를 하는 표니 곧 라 이는 육체의 더러운 것을 제하여 버림이 아니요 하나님을 향한 선한 양심의 간구니라 저는 아래 구절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마가복음 1:10 곧 에서 올라오실새 하늘이 갈라짐과 이 비둘기 같이 자기에게 내려오심을 보시더니 5. 님이 현재형은 진리를 서술할 때에도 쓴다고 말씀하셨는데, 예수님은 의미 없는 말씀을 나열하시지 않으며, 사도들도 의미없는 말을 적지 않습니다. "양수와 성령으로 태어나지 않으면 천국에 갈 수 없다." 라는 말은 해석이 되지도 않고 자연스럽지도 않은 억지 주장입니다. 결론으로 님의 주장은 "물은 양수" 라는 님의 선입견이 낳은 잘못된 해석입니다. 도대체 물이 양수라는 개념은 어디서 받으셨을까요? 성경을 여기저기 많이 읽어보면 물이 양수를 의미한다고 볼 수가 없는데요.
교인들(목회자들 포함) 스스로 자신이 인간인 것과, 인간의 사고, 이성, 이해가 편견, 오해, 무지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다는 사실을 인지/인정하고, 스스로 조심하기를 바라 마지 않았습니다만, 제 바람과는 정 반대의 상황을 압도적으로 많이 보게 됐습니다.
말씀을 제멋대로 잘못 해석하고, 자기 주장을 강화하기 위해 함부로 오용하면서도 그것을 감히 영적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을 보노라면 가슴이 답답하고, 그들에게 그것이 잘못된 것이라고 말해줘야 할 지, 말아야 할 지, 말한다고 듣기는 할 지, 내가 그럴 자격은 있을지, 정말 고통스럽습니다. 정말 과장 없이, 그런 것들을 얘기해서 받아들인 적이, 아니 생각해 보겠다고 말이라도 한 적이,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힐 정도였을 겁니다.
제 시야와 식견이 좁아서 많은 선한 것을 보지 못한 것이 그 이유라면, 부끄러워 하면서라도 차라리 기쁘겠습니다.
스스로 낙심하지 않도록 기도할 뿐입니다.
이 상황도 결국 주님의 뜻이 이루어져 가는 과정일 뿐입니다. 기록된 그대로입니다. 아멘.
만약 내가 궁극적인 은혜를 입었다면 그 날에는 오늘의 고통이 기억조차 나지 않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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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행위 심판
네가 어렸을 때를 기억지 아니하고 이 모든 일로 나를 격노케 하였은즉 내가 네 행위대로 네 머리에 보응하리니 네가 이 음란과 네 모든 가증한 일을 다시는 행하지 아니하리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에스겔16:43)
또 내가 사망으로 그의 자녀를 죽이리니 모든 교회가 나는 사람의 뜻과 마음을 살피는 자인줄 알찌라 내가 너희 각 사람의 행위대로 갚아 주리라(요•계2:23)
그가 준 그대로 그에게 주고 그의 행위대로 갑절을 갚아주고 그의 섞은 잔에도 갑절이나 섞어 그에게 주라(요•계18:6)
바다가 그 가운데서 죽은 자들을 내어주고 또 사망과 음부도 그 가운데서 죽은 자들을 내어주매 각 사람이 자기의 행위대로 심판을 받고 사망과 음부도 불못에 던지우니 이것은 둘째 사망 곧 불못이라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지우더라(요•계20:13~15)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따라 내가 지혜로운 건축자와 같이 터를 닦아 두매 다른이가 그 위에 세우나 그러나 각각 어떻게 그 위에 세우기를 조심할찌니라 이 닦아 둔것 외에 능히 다른 터를 닦아 둘 자가 없으니 이 터는 곧 예수 그리스도라 만일 누구든지 금이나 은이나 보석이나 나무나 풀이나 짚으로 이 터 위에 세우면 각각 공력이 나타날 터인데 그 날이 공력을 밝히리니 이는 불로 나타내고 그 불이 각 사람의 공력이 어떠한 것을 시험할 것임이니라 만일 누구든지 그 위에 세운 공력이 그대로 있으면 상을 받고 누구든지 공력이 불타면 해를 받으리니 그러나 자기는 구원을 얻되 불 가운데서 얻은 것 같으리라(고린도전서3:10~15)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히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주초를 반석 위에 놓은 연고요 나의 이 말을 듣고 행치 아니하는 자는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히매 무너져 그 무너짐이 심하니라(마태7:21~27)
=>창조주 하나님의 심판의 근거는 의의 말씀이며 심판의 대상은 사람의 행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의 죄와 불의의 온갖 악행들을 사유하사 멸망에 이르지 않게 하시기 원하셔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시고 그 흠 없는 대속 제물이신 어린 양의 피로 죄인들의 죄를 사유하사 하나님의 생명에 참예케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이 믿음 또는 불신에 있지 아니하고 행위나 행실에 있음을 우리는 주목해야만 합니다. 이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믿음은 반드시 그 올바르고 진실한 믿음에 합당한 또는 그 믿음으로 말미암은 선하고 의로운 순종과 충성의 행실로 증명이 되어야 함을 성경이 분명하게 암시하고 있습니다. 창조주 하나님의 궁극적인 뜻은 사람들의 착하고 올바른 행실, 행위, 행함 또는 공력과 일함에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믿음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행실과 일들을 하나님의 뜻대로 올바르고 정확하게 행하고 이룰 수 있도록 만드는 근원이요 기초석이요 반석이요 샘 솟는 에너지요 굳건한 척추요 중심 뼈대입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자들은 결코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선을 온전히 행할 수 없으며 또한 그 온갖 죄악들을 해결할 수도 없고 죽기까지 죄의 종노릇하며 범죄하기를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죄 가운데 태어나 죄 중에 살다가 죄로 삶을 마치게 되는 것입니다. 삶 전체가 하나님 앞에 죄로 얼룩지고 더럽혀진 행악 뿐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노라 하는 성도들은 어떠합니까? 믿음으로 이미 구원 받았다 주장하는 자들의 행실이 그 믿음에 따르는가 따르지 않는가는 매우 중요한 문제가 됩니다. 창조주 하나님의 심판이 불신자들과 마찬가지로 그들의 행위와 행실과 그 열매들에 있기 때문입니다. 아멘! 그렇다면 결국 궁극적인 하나님의 심판은 그 행위들을 있게 하는 사람들 마음 중심의 진실하고 충직한 믿음 또는 의심과 불신과 모독과 훼방과 대적의 불의하고 악한 마음을 대상으로 하신다는 사실로 귀결됩니다. 아멘! 그러므로 오직 의인은 믿음과 그 믿음으로 말미암은 착한 행실과 그 아름답고 먹기에도 좋은 선한 열매들로 의롭다 하심을 받아 구원 곧 영생에 참예케 됨입니다. 아멘!❤~
성경 연구 많이 하셨네요.
다른교회사람인데 창조론에 대한 언급은 없고 유신진화론에 대한 가능성을 넌지시 던지고 성경은 실증적이고 문자적으로 해석하면 안된다고 이야기 하시네요.
문학적요소로 해석해야할것, 시대적 배경속에서 우주나 하나님의 뜻에 대한 인식에의 해석, 문자그대로 해석할것, 역사적이고 실증적인 요소의것, 묵시적 인요소, 예언적 성취에 대한 것에 해석의 범주에 대한것들은 논란의 여지가 있을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부활에 대해서는 믿는다고 하시고 아담과 하와에 대한 이야기에서는 문자그대로 받아들이면 안된다는 식으로 이야기하시네요.
현대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 마르크스에 대한 언급 사회적인 요소들에 대한 언급들을 많이 하시다보니 정치적이다 라는 성도들의 몇몇 목소리를 듣게 되는것 같습니다.
다니엘의 시대적 배경속에서 왕을 신으로 떠받도록하는 법이 통과되었을때 다니엘이 거절하다가 죽음의 위기에 빠질 수 있었던 경험이 있다는 면에서는 정치,사회,역사,문화,성경의 요소가 이분법적으로 나누어지지 않는다 생각하는 바이지만 예수님이 아닌 인간인 목사는 본인의 생각과 의견에 기울어질 수 있는 충분한 존재라는 생각을 가집니다.
저는 성경을 최우선적인 근거로 삼고 시대를 분별하기위해 여러 다양한 수단과 방법들은 부차적으로 활용할수 있다고 봅니다.
현대 한국교회가 차별금지법이 통과될 위기가 생기게 된것은 정작 대다수에게 벌어지는 음행의 문제들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별거 아니다 라고 치부하고 목사 간사 장로 집사 권사된 사람들은 그런 분위기에 본인들도 빠지고 더 나아가 침묵하는 상황에서 단계적으로 차별금지법의 위기까지 오게된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한편 진화론의 문제라함은 인간의 유전자 전달을 최우선적 원리로 주장하고 있는것인데 그 근본이론에 따라 하나님은 없고 인간의 본능만이 전부라며 무분별한 성관계의 문제를 이끌어갈 수 있게 만들고 그 외 우생학과 적자생존의 원리에 이르러 제국주의 이념에 경도되게 만들 수 있습니다.
그래서 유신진화론은 그런 진화론에 근거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변형시키고 왜곡하는 결과를 만들수 있다는 것입니다.
한국 교회 목사님들도 100퍼센트 자신이 하나님의 말씀만 선포한다 이야기할 수 없고 자신이 틀릴수도 있는 인간적 존재임을 자각하여야한다고 봅니다.
베뢰아사람들이 말씀이 들어왔을때 이것이 맞는지 상고해보았듯 질문이나 반론이 하나님을 대적하는것인지 그 의미를 깊게 숙고해보는것인지 의문을 제기하는것인지에 따라 차이가 있는것인데 의문을제기하거나 말씀에 동의하지않으면 사탄취급 혹은 사탄에게 이용 당하는자 취급당하니 없는 반발심도 더 생기게 된다는것이죠.
목사님 말씀 처럼 한국 교회에 만연해 있는 이런 분위기는 고쳐져야할 부분이 많다고 봅니다.
정택주 목사님이 유신진화론에 대한 가능성을 넌지시 던지셨다는건가요 아님 다른 목회자들이 그렇다는건가요?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다라는 말은 성경에 없는 말입니다.
물과 성령으로 나다라는 말이 성경에 있는 말입니다.
'거듭'을 함부로 넣으면 안됩니다.
요한복음 3:5
5.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성경 해석의 첫 단계는 text 해석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이 본문해서 한 말에 집중해야 합니다.
간혹 물로 태어나는 것을 물 세례와 연결시키는 오류를 범하기도 하지만 예수님의 말씀을 그렇게 연결하면 오류에 빠집니다. 예수님이 직접화법으로 하신 말씀을 순수하게 그리고 논리적으로 이해하고 그 후에 신학적인 해석을 붙여야 합니다.
우리 한글 성경은 이 부분에서 조금 오해를 낳을 수 있는 번역이 있습니다. 영어 성경과 비교해서 논리적으로 정밀하게 읽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1. 거듭나라고 말했다.
2. 니고데모가 거듭난다는 의미를 모르니까 구체적으로 물로 나고 성령으로 나야 한다고 말했다.
3. 이것을 더 잘 설명하시려고 육체->육체, 성령->성령이라고 말했다.
먼저 예수님이 한 말을 그대로 분석해야 합니다. 그리고 여기서 논리적 흐름과 지칭하는 것을 연결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거듭나야 한다고 말했고 이 말을 잘 이해 못 하니까 더 잘 설명해 주었습니다. 즉 두 번 태어나야 하는데 1차 탄생은 물로 태어나는 것으로 2차 탄생은 성령으로 태어나는 것입니다.
그럼 물로 태어난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요? 여기서 물은 어머니 배속의 자궁의 물 즉 양수를 의미합니다. 그러니까 사람의 자연적인 생물학적 탄생을 말합니다. 그리고 성령으로 태어난다는 것은 예수 믿고 구원 받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그 다음 줄에 또 더 자세히 설명해 주십니다. 물로 태어나는 것은 육(어머니)에서 육(나)이 나는 것인데 그래봤자 육일뿐이다. 성령으로 나는 것은 성령을 통해서 영이 태어나는 것이다. 이 둘의 탄생이 있어야 비로서 하나님 나라에 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bosungind "물이 양수"라는게 뇌피셜입니다.
Someone 은 이미 양수를 통해서 태어난 사람입니다.
물로 태어나다의 시제는 현재형입니다 님 말대로면 과거시제를 쓰셨어야 합니다.
(이미 양수로부터 태어난) "누군가"가 물로 태어나지 않으면 /
여기서 물을 양수로 해석하면 넌센스가 됩니다
애당초 전제가 양수를 통해서 태어나지 않으면 누군가가 될 수 없습니다
"이미 양수로 나온 너희가 양수로 나오지 않는다면 천국에 갈 수 없다?"
말이 넌센스죠
그리고 예수님은 자신이 말씀하신 5절의 나다를 거듭나다로 받으셨습니다
그런고로 예수님이 5절에서 언급하신 나다는 거듭나다라는 의미가 맞습니다
이미 태어난 사람(someone)에게 또 태어나지 않으면 이라고 말씀하고 계시기 때문에 예수님이 언급한 태어나다의 의미는 거듭나다라는 의미가 맞습니다.
[Jn 3:5, NASB] Jesus answered, "Truly, truly, I say to you, unless someone is born of water and the Spirit, he cannot enter the kingdom of God.
[Jn 3:7, NASB] Do not be amazed that I said to you, 'You must be born again.'
성경에는 " 동의어 병행법 " 이 흔하게 나옵니다. 표현을 다르게 하되 중복 말하여 같은 내용을 강조하는 표현 방식입니다.
" 물과 성령 " 은 같은 의미에 대한 중복 표현입니다. 물과 성령이라는 두 가지 요소가 아니라 같은 의미에 대한 중복 표현입니다.
에베소서만 보더라도
" 예수님께서 자신을 주신 것은 교회를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기 위함 "
이라고 합니다. 물로 씻는 것과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는 것은 같은 것입니다.
디도서에는
" 우리를 구원하시되 성령을 풍성히 부어주셔서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 "
이라고 교훈합니다. 성령을 부어주셔서 거듭남의 씻음을 주신 것으로 사도 바울이 교훈합니다.
복음서만 보더라도 예수님께서 열 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그리스도께서 가르치신 말씀으로 제자들이 깨끗함을 입었다고 합니다.
이것만 보더라도 거듭남은
그리스도의 말씀과 성령 세례로 씻음을 받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복음을 듣고 처음 믿었을 때 이뤄진 일입니다. 복음을 듣고 믿음으로 성령을 받으니까요.
외람되지만, 제 판단에는 정목사님의 해석이 정확한 듯 보입니다.
요한복음 3:5의 내용만 보면 '나다'라는 어휘만을 사용하셨지만, 3:3-7의 내용을 통으로 보면, 그것이 '거듭나다'를 의미하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원어로 보아도, '3절'에 나오는 'γεννηθη(태어나다) ανωθεν(위로부터/다시)'와,
'7절'에 나오는 'γεννηθηναι(태어나다) ανωθεν(위로부터/다시)'를 보아도,
'5절'에 기록된 이 'γεννηθη(태어나다)'는 거듭남에 대해 달리 표현하시는 것임을 유추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4절'에 니고데모도 분명히 '사람이 태어났는데 어떻게 다시 태어날 수 있는가' 여쭙지 않습니까?
이것은 어떤 비약도 없는 텍스트 분석이라고 생각합니다.
제 생각이 잘못됐다면 누구든지 바르게 가르쳐 주십시오. 대신 명확한 근거를 통해 말씀하셔야 저도 받아들일 수 있을 것입니다.
@@tjservant저와는 해석이 다르시지만 좋습니다.
정 목사님의 해석도 상당히 일리가 있다고 봅니다.
외람되지만, 제가 다른 한 가지(영문법)에 대해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라고 하셨는데요.
말씀을 드리기 전에, 일단 현재형이 아니라 '현재시제'라고 하는 것이 더 정확한 용어입니다.
영어에서 현재시제를 언제 사용하는 지를 정확히 모르시는 것 같습니다.
(한국어 현재시제와 같은 듯 달라서 영문법을 명확히 숙지하지 않은 학생들이 어려워 하는 시제입니다.)
영어의 현재시제는 '현재의 상태', '진리', '일반적인 사실'을 나타낼 때 사용하는 시제입니다.
(☆영어의 현재시제는 '현재의 동작'을 나타내는 시제가 아닙니다. 이점이 한국의 현재시제와 가장 다른 점입니다.)
이 경우에 는 특정한 과거사건을 이야기하는 말씀이 아닙니다. '진리' 또는 '일반적인 사실' 용법으로서 사용되었습니다. 즉, 과거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러하고, 미래에도 그러할 사건을 이야기하는 것으로 이때는 반드시 현재시제를 사용해야 합니다.
특정 사건이 아닌 데 과거시제를 사용할래야 할 수 없습니다.
(두께가 좀 되는 고등 영문법 현재시제 용법을 보시면 자세히 나와있습니다.)
@@bosungind 님이 "양수는 물" 이라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선입견을 가지고 성경을 보시려니,
현재 시제에 대해서 현재를 현재로 보지 아니하고 시제를 무시하고 단순히 진리를 설명. 이라고 말하고 계시다고 생각은 안하십니까?
1. 님이 문법을 제시했는데, 예수님과 니고데보는 영어가 아니라 원어로 대화했습니다. 니고데모가 예수님의 말을 이해 못한 것은 문법상 문제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2. 상황적으로 예수님이 니고데모에게 요3:10 예수께서 그에게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의 선생으로서 이러한 것들을 알지 못하느냐 라고 지적하셨는데요
해당 구절의 "이스라엘의 선생으로서" 는 문법상 몰이해를 지적하는 것이 아니라, 구약성경에 대한 몰이해를 지적하시는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따라서 이 해석은 구약 성경에서 답을 찾아야 합니다.
3. 모국어로써 영어로 쓰고 있는 세계적인 요한복음 신학자들도 해당 구절의 물을 양수로 보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들이 영어를 몰라서 양수라고 해석하지 않지는 않을 것입니다.
4. 정경적 해석을 더하면 물과 성령과 구원은 매우 밀접한 관련이 있고, 따라서 해당 구절의 물은 양수가 아닙니다.
마가복음 16:16 믿고 를 받는 사람은 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
사도행전 2:38 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의 선물을 받으리니
베드로전서3:20-21
20 그들은 전에 노아의 날 방주를 준비할 동안 하나님이 오래 참고 기다리실 때에 복종하지 아니하던 자들이라 방주에서 로 말미암아 을 얻은 자가 몇 명뿐이니 겨우 여덟 명이라
21 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너희를 하는 표니 곧 라 이는 육체의 더러운 것을 제하여 버림이 아니요 하나님을 향한 선한 양심의 간구니라
저는 아래 구절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마가복음 1:10 곧 에서 올라오실새 하늘이 갈라짐과 이 비둘기 같이 자기에게 내려오심을 보시더니
5. 님이 현재형은 진리를 서술할 때에도 쓴다고 말씀하셨는데, 예수님은 의미 없는 말씀을 나열하시지 않으며, 사도들도 의미없는 말을 적지 않습니다.
"양수와 성령으로 태어나지 않으면 천국에 갈 수 없다." 라는 말은 해석이 되지도 않고 자연스럽지도 않은 억지 주장입니다.
결론으로 님의 주장은 "물은 양수" 라는 님의 선입견이 낳은 잘못된 해석입니다.
도대체 물이 양수라는 개념은 어디서 받으셨을까요? 성경을 여기저기 많이 읽어보면 물이 양수를 의미한다고 볼 수가 없는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