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산스님의 벽암록】 제63칙 남전참묘

Поделиться
HTML-код
  • Опубликовано: 4 фев 2025
  • 제63칙 남전참묘(南泉斬猫)
    동당과 서당을 일도양단함은
    금강보검으로 진흙덩어리를 베는 것과 같네.
    누가 고양이를 죽였는가?
    남전이라고 해서는 안 되리라.
    【본칙】
    하루는 남전스님(의 회상)에서 동당과 서당의 스님들이 고양이를 놓고 다투었다.
    남전스님이 보다가 마침내 (고양이를) 들어 올리며 말했다.
    “말을 하면 베지 않겠다.”
    대중은 대답이 없었다.
    남전스님은 고양이를 베어 두 동강을 내버렸다.
    내용을 보겠습니다.
    [조당집]에 의하면, 이 다툼의 시초는 남전스님 회상의 제1수좌가 고양이를 길렀는데, 옆 자리에 앉은 스님(제2수좌)이 고양이 다리를 상하게 한 것에서 촉발되었습니다. 이들은 크게 다투었습니다. 그리하여 마침내 선원 전체의 논쟁으로 번졌습니다.
    하루는 남전스님(의 회상)에서 동당과 서당의 스님들이 고양이를 놓고 다투었다.
    무엇을 다투었을까요? 이들은 부처의 말과 조사의 구절을 모조리 동원해서 시비를 밝히고자 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논쟁은 더욱더 치열해져갔습니다. 그렇지만 좀처럼 그 끝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마침내 한 스님이 이것을 남전스님에게 가서 알렸습니다.
    여기에 대해 원오스님은 말하기를, ‘오늘만 다툰 것이 아니다. 한 바탕 줄줄 새는구나’라고 하였습니다.
    ‘오늘만 다툰 것이 아니다’라고 한 것은 예나지금이나 이 일을 해결하지 못한 채 두 부류로 나누어 여전히 다투고 있다는 것입니다. ‘한 바탕 줄줄 새는구나’라고 한 것은 끝내 정령을 희롱하는 처지를 면하지 못하였다는 것입니다. 정령(精靈)을 희롱하는 처지라는 것은 범부와 외도, 그리고 삼승의 견해를 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하루는 육조께서 대중에게 법문하였습니다.
    “위로는 하늘을 버티고
    아래로는 땅을 지탱하고
    밝기는 해와 같고
    검기는 칠흙과 같은데,
    움직이는 가운데 항상 존재하지만
    움직이는 가운데에서 그것을 찾을 수 없다.
    그대들은 이것을 무엇이라 이름붙이겠는가?”
    바로 그때 신회사미가 나서며 말했다.
    “그것은 바로 모든 부처님의 근본이며 저의 불성입니다.”
    이에 육조께서는 큰 소리로 꾸중하며 말했습니다.
    “나는 한 물건이라 해도 맞지 않다고 여기는데,
    그대는 어찌 근원이다 불성이다 하는가?
    그대가 나중에 몇몇을 이끄는 스승이 된다고 할지라도
    알음알이로 따지는 지해종사(知解宗師) 밖에 되지 못하리라.
    그대를 때리지 않는다면 후대인의 비웃음을 면치 못하리라.”
    그리고는 세 차례 후려쳤다.
    오늘날에도 이 알음알이를 크게 꺼리고 경책합니다. 그리고 신회사미가 망상분별로 그저 글자를 생각해보고서 불성이라고 말했다고 여깁니다. 그러나 그것은 신회사미를 지나치게 폄하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만약 그렇게만 안다면 저 들어가는 문 자체를 막아버리는 꼴이 될 것입니다. 그저 경전의 글자나 따지며 신회사미가 불성이라고 이해했다고 여긴다면 그것은 산 입구에 들어서기도 전에 이미 길을 잘못 들어선 것입니다. 그래서는 저 신회사미조차도 제대로 보지 못할 것입니다. 이것을 이해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수행의 기본토대조차도 모르는 꼴이기 때문입니다.
    육조께서 세 차례 후려친 것은 곧 여기에 크게 세 가지 허물이 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그 허물들을 앞으로 차례로 고쳐가라는 경책도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세 가지 관문을 두는 것입니다.
    예컨대 첫 번째 문을 뚫지 못해서는 저 이승의 경계에 떨어지고 마왕의 권속을 면치 못하는 것과 같습니다. 두 번째 세 번째 관문을 차례로 뚫고 지나가야 비로소 육조의 뜻을 얻는다는 것입니다.
    육조께서는 지금 신회사미가 부처를 보는 것이 마치 어둠속에서 희미한 물건을 보는 것과 같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속단은 금물이라고 경책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그것을 붙들고서 계속 간다면 훗날 알음알이를 일삼는 지혜종사가 될 거라고 크게 꾸짖은 것입니다. 그것은 오늘날만 보아도 매우 분명합니다. 모두가 그런 처지를 면치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신회사미가 본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분명하게 알 수 있어야 합니다. 그저 글자나 지식 어쩌구하면서 알음알이 운운해서는 애초에 번지수가 다른 것입니다. 오늘날 허다한 수행자들이 자리를 틀고 있지만, 저 신회사미가 이해하는 바를 뛰어넘는 자가 과연 몇이나 될 것인지를 되돌아보아야 합니다.
    ‘움직이는 가운데’라고 한 것은 곧 ‘어묵동정 행주좌와 견문각지 가운데'에서 항상 작용을 하고 있지만, 그 작용하는 본체는 가려내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남전스님이 보다가 마침내 (고양이를) 들어 올리며 말했다.
    “말을 하면 베지 않겠다.”
    ‘마침내 고양이를 들어올렸다’는 것은 곧 고양이로 시작하였으니 고양이로 끝내겠다는 것입니다. 남전스님은 지금 모두를 절박한 상황으로 몰고 가고 있습니다. 이것은 곧 각자가 고수하는 그 자리에서는 끝내 이 일을 밝히지 못한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저 옛 사람은 바른 법령을 시행하여 모든 논쟁을 일소하고서 이 일을 드러내고자 한 것입니다.
    여기에 대해 원오스님은 말하기를, ‘정진의견(情塵意見)으로는 토벌하지 못한다’라고 하였습니다. 정진의견(情塵意見) 운운한 것은 곧 정령을 희롱하는 것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남전스님은 말했습니다.
    “말을 하면 베지 않겠다.”
    이는 곧 이 일을 드러내보라는 것입니다. 저 본래면목을 드러내 보라는 것입니다. 그대가 만약 현성공안을 말할 수 있다면 인정해주겠다는 것입니다.
    대중은 대답이 없었다.
    오래도록 수행을 했어도 묻기만 하면 이처럼 검은 칠통과 같아서야 어찌 엉터리 선객이라는 소리를 면할 수 있을 것인가?
    남전스님은 고양이를 베어 두 동강을 내버렸다.
    혹 어떤 자는 이것이 곧 남전스님의 뜻이라고 말할지도 모릅니다. 애초에 모조리 쓸어버려서 한 물건도 두지 말았어야 했다고 목소리를 높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잘 살펴야 합니다. 잘못하다가는 집밖으로 내버리는 목욕물에 아이까지 딸려갈 수도 있는 일입니다. 남전스님에게는 흑과 백, 용과 뱀을 분명하게 가려내는 눈이 있었기에 능히 이럴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것은 저 고양이를 베는 것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여기에 대해 원오스님은 말하기를, ‘통쾌하고 통쾌하다. 만약 (남전스님이) 이와 같이 하지 않았다면, 모조리 진흙덩어리를 가지고 노는 자였으리라. 도적이 지나간 뒤에 활을 당겨서는 이미 두 번째이다. 아직 일으키기도 전에 후려쳤어야 했다’라고 하였습니다.
    어찌 고양이를 베어서 통쾌했을 것인가? 그가 벤 것은 저 세 개의 관문을 뚫지 못하고 알음알이에 천착한 자인 것입니다. ‘모조리 진흙덩어리를 가지고 노는 자였으리라’라고 한 것은 곧 저 외도의 해탈, 삼승의 열반이 곧 모조리 진흙덩어리라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줄곧 이것을 가지고 논 것입니다. 이것을 공부라고 여긴 것입니다.
    여기에 대해 원오스님은 다시 말하였습니다.
    “도적이 지나간 뒤에 활을 당겨서는 이미 두 번째이다. 아직 일으키기도 전에 후려쳤어야 했다.”
    조짐이 생긴 이후를 후려친다는 것은 마치 검둥이가 흙덩이를 쫓는 것과 같다는 것입니다. ‘아직 일으키기도 전에 후려쳤어야 했다’라고 한 것은 곧 아직 조짐이 생기기 이전의 자리라도 이 일을 밝히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조주스님은 일찍이 ‘부처가 있는 곳에 머물지 말고 부처가 없는 곳을 급히 지나가라’고 한 것입니다.
    설두스님은 노래하였습니다.
    【송】
    양당의 모든 두선화(杜禪和)들이여!
    연기와 티끌을 움직였어도 어쩌지 못했구나.
    다행히 남전이 능히 법령을 들어
    한 칼로 두 동강 내어 치우침을 도맡았다.
    하나하나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양당의 모든 두선화(杜禪和)들이여
    ‘양당의 모든 두선화들이여’라고 한 것은 동당서당의 선객들이 엉터리라는 것입니다. 설두스님은 탁자를 두드리며 판결문을 읽어갔습니다. 그러기에 원오스님은 말하기를, ‘법령에 의해 판결을 마쳤다’라고 한 것입니다.
    연기와 티끌을 움직였어도 어쩌지 못했구나.
    ‘연기와 티끌을 움직였어도 어쩌지 못했구나’라고 한 것은 곧 저 양당의 스님들이 법의 전쟁을 벌이며 시비를 밝히려고 했지만 결국 남전스님이 고양이를 벨 수밖에 없었다는 것입니다.
    다행히 남전이 능히 법령을 들어,
    ‘다행히 남전이 능히 법령을 들어’라고 한 것은 곧 천외천, 하늘 밖의 하늘 사람이 따로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가 높이 금강왕 보검을 들어 일도양단했다는 것입니다. 이 보검 아래에서 모두가 멸문지화(滅門之禍)를 면치 못했다는 것입니다.
    한 칼로 두 동강 내어 치우침을 도맡았다.
    ‘치우침을 도맡았다’라고 한 것은 저 동당서당의 치우친 견해를 모조리 부수었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온대지에 시체가 즐비하다는 것입니다.
    참고로 장경각번역의 [벽암록]에서는 ‘단칼에 두 동강 내어 한 쪽(偏頗: 두동강 내는 쪽)을 택했네’라고 번역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저 시체들 사이로 유유히 걸어오는 자가 있었습니다.
    _취산 합장
    -------------------------------------------------------------------------------
    취산스님과 가깝게 지내기: 카카오톡 ID: taoindra
    -------------------------------------------------------------------------------
    ※한 번 들으면 자신이 보이고 열 번 들으면 글이 보인다!

Комментарии • 1

  • @iaanwatford211
    @iaanwatford211 Год назад

    불쌍해라!
    저 고양이
    누가 뭐라해도
    남전은 나뿐 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