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 이런 유튜버가 있지?!!! 경이로운 정리입니다. 그리고 감동있는 깨달음을 주는 리뷰입니다 그 방대한 내용을.. 호머 같은 리뷰입니다. 기원전 신들의 갈등의 모습이 우리 삶, 우리 현대인의 모습과 또옥 같네요. 유럽 어떤 대학신입생들에게 일리아스와 오딧세이 책을 선물로 준다던데 이제사 이해가 됩니다. 다시 필독해야 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1만 명 돌파에 대한 축하와 격려 고맙고요. 고전과 신화에 관해 백지상태라면서도 제 영상을 계속 봐주신다고 하니 그저 고마울 따름입니다. 신화는 꽤나 복잡한 것 같기도 하지만, 하나둘씩 알고 나면 더 이상은 확장되지 않는, 나름대로 경계가 있는 영역이기도 하니까 너무 지레 겁 먹을 필요는 없을 듯해요.^^
하늘 아래 새로운 건 없는 법이라고 늘 생각합니다. 알고 보면 제 영상에서 다루는 거의 대부분의 내용들은 이미 오래 전부터 세상에 다 나와 있는 것이고, 제가 전하는 내용들 대부분은 기실 알고 보면 수많은 전문가들(작가들, 교수들, 해당분야 전문 유튜버들 등등)이 이미 세상에 다 내놓은 것들이기도 하지요. 그런데도 제가 이미 널리 알려진 작품들에 대해 굳이 새로운 영상을 만들어내는 이유는 딱 하나, 저만의 독창적인 스타일로 '이야기를 전달해 보려는 욕망' 때문입니다. 제가 전달하는 스토리 전달 방식이 전혀 독창적이지 않다면 굳이 새로운 누더기 영상을 하나 덧보탤 까닭도 없을 테고요. 가 되었든, 이 되었든, 가 되었든, 가 되었든, 가 되었든, 이미 수많은 책 소개 서평과 책 내용에 대한 기나긴 강의 영상과 수십 만 구독자와 수십 만 조회수를 자랑하는 영상들이 널려 있는 까닭에, 저로서는 그들과 경쟁할 것이 아니라, 그것들과는 확실하게 차별되는 저만의 독창적인 영상을 꾸준히 모색해 보고, 시도해 보고 창작해볼 작정입니다. 늘 애정어린 관심 보여주셔서 고맙습니다.^^ * * * "호머(Homer), 초서(Chaucer), 그리고 세익스피어(Shakespeare) 시대로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그 전달 매체가 무엇이건 간에 중요한 것은 스토리와 그 스토리를 전달하는 기술이었다." - 마이크 아이스너
채정훈 님의 말씀을 들으니 문득 누군가가 저한테 유튜브를 시작해 보라고 권유하던 때가 생각납니다. 그 때 몇몇 책소개 영상들을 보고 나서 완전히 기가 죽어 '전 그런 거 못해요'라는 말을 반복했었는데, 하나둘씩 졸작이나마 자꾸 만들다 보니, 도저히 엄두가 나지 않을 것 같은 까지 손을 뻗치게 되었네요. 매번 올리는 영상마다 좋게 봐주셔서 늘 큰 힘이 됩니다.^^
호메로스의 한 권만 하더라도 워낙에 대작이니까요.^^ 그래도 초고 원고에 비해 영상 분량을 많이 줄이고 또 줄였답니다. 영상을 만들면서 찾아본 수많은 그림들, 조각작품들, 도자기 그림들도 영상에 담아내지 못한 게 훨씬 더 많은 듯하고요.^^ 어쨌든 호메로스의 작품 『일리아스』를 둘러싸고 있는 온갖 '부수적인 이야기들'까지도 두루 포함시키려고 욕심을 부리다 보니, 영상이 탄탄하게 압축된 느낌은 조금 덜하지만, 이것저것 하고 싶었던 얘기들은 제법 담아낸 듯합니다.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에 등장하는 온갖 신들과 유명한 장수들까지도 한 장에 최대한으로 담아봤고, 각각의 인물들이 누구와 맞붙어 싸웠는지도 '화살표'를 이용해서 다 담아낼려고 시도해 봤고요.^^ 이라는 그림 하나에도 수많은 인물들이 교묘하게 담겨 있는데, 그들이 누구누구인지도 밝혀내느라 식겁을 했고요. 그 그림 속엔 셰익스피어, 단테, 괴테도 있고, 모차르트, 미켈란젤로도 있고, 헤시오도스, 아이스퀼로스, 소포클레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알렉산드로스 대왕, 베르길리우스 등등 '인류를 빛낸' 온갖 인물들이 빼곡히 모여 있거든요.(그 그림에 담긴 인물들을 하나하나 찾아내 '이름표'를 달아주는 작업만 하더라도 꽤나 시간을 소비했답니다.) 아무쪼록 설 연휴를 즐겁게 보낼 수 있는 영상이기를 바래봅니다. 이 영상을 만드는 데 쓰인 참고자료를 덧붙여 봅니다. 호메로스, 『일리아스』, 『오뒷세이아』 아이스퀼로스, 비극전집(「아가멤논」 3부작, 「테바이를 공격한 일곱 장수」) 소포클레스, 비극전집(「오이디푸스 왕」, 「안티고네」, 「아이아스」, 「엘렉트라」, 「필록테테스」) 에우리피데스, 비극전집(「트로이아의 여인들」, 「헤카베」, 「안드로마케」, 「오레스테스」, 「엘렉트라」, 「헤라클레스」)플라톤, 『국가』, 『향연』 아리스토텔레스, 『시학』 베르길리우스, 『아이네이스』 오비디우스, 『변신 이야기』 몽테뉴, 『수상록』 헨리 데이빗 소로우, 『월든』 이윤기,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신화』 강대진, 『그리스 로마 서사시』 알베르토 망겔, 『일리아스와 오뒷세이아 이펙트』 영화 『트로이』(2004)
헬레네는 전쟁이 끝나고 나서 남편인 메넬라오스한테 죽임을 당할 줄 알았는데, 한순간에 용서를 받고 왕궁으로 무사복귀한다지요. 물론 다른 이야기로는 헬레네가 아예 트로이아 땅으로 간 적도 없고, 아프리카 땅 이집트에 머물었다는 얘기도 있고요.(헤로도토스의 『역사』 ) 그 중 한 대목만 옮겨보면 이렇답니다. 내가 헬레네에 관해 묻자 사제들은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다. 알렉산드로스는 스파르테에서 헬레네를 납치하여 고국으로 항해하던 중 아이가이온 해에서 폭풍을 만나 아이귑토스 앞바다로 표류하게 되었는데, 계속해서 바람이 불자 결국 아이귑토스의, 지금은 카노보스 하구라고 불리는 곳에 있는 물고기 염장(鹽藏) 업소들에 상륙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곳 바닷가에는 헤라클레스의 신전이 있었는데 지금도 남아 있다. 어느 집 노예든 그곳으로 피신하여 자신을 신에게 바친다는 표시로 몸에 신성한 낙인이 찍히게 되면 아무도 그에게 손댈 수 없게 되어 있다. 이러한 관습은 옛날부터 지금까지 존속되고 있다. 그런데 알렉산드로스의 몇몇 하인들이 이 신전에 그런 법이 있음을 알게 되자 그의 곁을 떠나 신의 탄원자들로서 신전 안에 눌러앉았다. 그들은 알렉산드로스에게 해코지하려고 그를 고발하며 헬레네에 관한 이야기와 그가 메넬라오스에게 저지른 부당 행위를 남김없이 일러바쳤다. 그들은 사제들뿐 아니라 네일로스 강의 이 하구의 간수인 토니스란 자에게도 그를 고발했다. - 헤로도토스, 『역사』제Ⅱ권 113장
그들의 고변을 들은 토니스는 즉시 멤피스에 있는 프로테우스에게 다음과 같은 전갈을 보냈다. "한 이방인이 이곳에 도착했는데, 그자는 테우크로스의 자손으로 헬라스에서 불경한 짓을 저질렀나이다. 그자는 자신을 환대해준 주인의 아내를 유혹하여 그녀와 함께 막대한 제물을 싣고 도망가던 중 바람에 떠밀려 전하의 나라로 표류하였였나이다. 저희는 그자가 벌 받지 않고 배를 타고 떠나게 해야 하나이까, 아니면 그자가 갖고 가던 것을 빼앗아야 하나이까?" 이 전갈에 대해 프로테우스는 다음과 같은 회신을 보냈다. "자신을 환대해준 주인에게 불경한 짓을 했다는 그자가 누구이건, 그자가 무슨 말을 하는지 듣고 싶으니 그대들은 그자를 붙잡아 내 앞에 데려오도록 하라!" - 헤로도토스, 『역사』제Ⅱ권 114장 이 말을 듣자 토니스는 알렉산드로스를 체포하고 그의 함선들을 억류했다. 그리고 헬레네와 재물들과 탄원자들과 함께 알렉산드로스를 멤피스로 데리고 갔다. 그들이 모두 대령하자 프로테우스가 엘렉산드로스에게 그가 누구며 어디서 배를 타고 왔는지 물었다. 그러자 알렉산드로스가 선조들의 이름을 열거하고 고향 이름을 말하고 어디서 배를 타고 오는 길인지도 말했다. 프로테우스가 그에게 어디서 헬레네를 손에 넣었는지 물었다. 알렉산드로스가 더듬대며 사실을 말하지 않자, 탄원자가 된 하인들이 그의 말을 반박하며 그가 저지른 불의한 짓의 자초지종을 남김없이 이야기했다. 이윽고 프로테우스는 다음과 같은 판결을 내렸다. "만약 내가 바람에 떠밀려 내 나라로 표류해 온 어떤 이방인도 죽이지 않는 것을 내 의무로 여기지 않는다면, 나는 저 헬라스인을 위해 그대를 응징했을 것이오. 악당이여, 그대는 그에게 환대를 받고도 그에게 가장 불경한 짓을 저질렀소. 그대는 그의 아내를 유혹했고, 그것도 성에 차지 않아 정열의 날개를 타고 그대와 함께 도망치도록 그녀를 꼬드겼소. 그리고 그것도 모자라 이리로 오기 전에 그대는 그대를 환대한 주인의 집을 약탈했소. 하지만 나는 어떤 일이 있어도 이방인을 죽이지 않을 것이오. 그러나 나는 이 여인과 재물은 그대가 가져가도록 허락하지 않고, 그대를 환대한 그 헬라스인이 와서 가져갈 때까지 맡아둘 것이오. 그대와 그대의 일행에게 이르노니, 3일 안으로 배를 타고 내 나라를 떠나 다른 나라로 가도록 하시오. 그렇지 않으면 나는 그대들을 적으로 취급할 것이오." - 헤로도토스, 『역사』제Ⅱ권 115장 사제들에 따르면, 헬레네는 그렇게 해서 프로테우스의 궁전에 오게 되었다고 한다. 호메로스도 이 이야기를 알고 있었으리라 나는 생각한다. 그러나 이 이야기는 그가 채택한 다른 이야기만큼 그의 서사시에 적합하지 않아 의도적으로 생략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는 이 이야기도 알고 있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는 『일리아스』에서 알렉산드로스가 헬레네를 데려가다가 표류하여 포이니케의 시돈에 갔었다고 알렉산드로스의 방랑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고, 다른 데서 자신이 한 말을 철회하지 않았다. 호메로스는 '디오메데스의 무훈'에서 엘렉산드로스의 방랑에 관해 언급하고 있는데, 그 시행은 다음과 같다. 그곳에는 시돈의 여인들이 온갖 솜씨를 다 부려 만든 옷들이 간직되어 있었으니, 이 여인들은 신과 같은 알렉산드로스가 고귀한 가문에서 태어난 헬레네를 데리고 오던 길에 넓은 바다를 항해하면서 시돈에서 손수 데려왔던 것이다. 이 시행들을 보면 호메로스가 엘렉산드로스의 방랑에 관해 알고 있었음이 분명하다. 쉬리아는 아이귑토스의 이웃 나라고, 시돈 시를 건설한 포이니케인들은 쉬리아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 헤로도토스, 『역사』제Ⅱ권 116장 이 시행들과 이 구절은 『퀴프리아』118 가 호메로스가 아닌 다른 시인의 작품이라는 가장 유력한 증거다. 『퀴프리아』의 시인은 순풍이 불고 바다가 잔잔하여 알렉산드로스가 헬레네를 데리고 스파르테를 떠난 지 3일째 되던 날 일리온에 도착했다고 말하고 있다. 반면, 호메로스는 『일리아스』에서 알렉산드로스가 헬레네를 데리고 표류했다고 말하고 있다. 호메로스와 『퀴프리아』에 관해서는 이쯤 해두자. 118 『퀴프리아』(Kypria)는 단편 밖에 남아 있지 않은 이른바 '서사시권 서사시'들의 하나로 '파리스의 심판'에서부터 그리스군의 트로이아 도착까지를 그리고 있다. - 헤로도토스, 『역사』제Ⅱ권 117장 내가 사제들에게 일리온에서 있었던 일에 관해 헬라스인들이 말하는 것이 과연 사실인지 아닌지 묻자, 그들은 메넬라오스에게 직접 물어 알게 되었다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헬레네가 납치된 뒤 헬라스인들의 대군이 메넬라오스를 돕기 위해 테우크로스의 나라로 가서 그곳에 상륙한 다음 진지를 구축했다고 한다. 그러고 나서 그들은 일리온으로 사절단을 보냈는데, 메넬라오스도 그들과 함께 갔다고 한다. 사절단은 성내에 들어오자 헬레네와, 알렉산드로스가 훔쳐 간 재물들을 돌려주고 범죄행위에 대해 보상할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테우크로스 자손들은 맹세를 하든 않든 후일에도 똑같은 대답을 되풀이하는데, 자기들은 헬레네도 문제의 재물들도 갖고 있지 않으며 그것들은 모두 아이귑토스에 있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아이귑토스 왕 프로테우스가 갖고 있는 것들에 대해 자기들이 보상한다는 것은 부당하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그러자 헬라스인들은 자기들이 우롱당하고 있다고 믿고는 포위 공격 끝에 결국 도시를 함락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도시를 함락해도 헬레네는 보이지 않고 종전과 같은 말을 듣게 되자, 헬라스인들은 처음 들은 말을 믿게 되었고 메넬라오스를 프로테우스에게 보냈다고 한다. - 헤로도토스, 『역사』제Ⅱ권 118장 아이귑토스에 도착한 메넬라오스는 네일로스 강을 거슬러 멤피스까지 올라가 사건의 전말을 사실대로 말하고는 큰 환대를 받았고, 무탈한 헬레네와 자신의 재물들을 모두 돌려받았다. 그러나 메넬라오스는 그렇게 환대받았음에도 아이귑토스인들에게 몹쓸 짓을 하고 말았다. 그는 출항하고 싶었지만 역풍이 계속 불어 발이 묶이자 몹쓸 짓을 생각해내어, 그곳 주민들의 아이 두 명을 붙잡아 제물로 바쳤던 것이다. 그의 비행이 탄로 나 아이귑토스인들이 분개하여 추격해 오자 그는 함선들을 이끌고 곧장 리뷔에로 도망쳤다. 그러나 그가 거기서 어디로 갔는지 아이귑토스인들도 내게 말해줄 수 없었다. 사제들에 따르면, 그들은 이런 일들의 일부는 탐문해서 알게 되었지만, 그들의 나라에서 일어난 일들은 확실히 알고 하는 말이라고 했다. - 헤로도토스, 『역사』제Ⅱ권 119장 이상이 아이귑토스의 사제들이 내게 들려준 이야기다. 나는 헬레네에 관해 그들이 한 말에도 동의하는데,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다. 헬레네가 일리온에 있었다면 알렉산드로스가 동의하든 말든 헬라스인들에게 반환되었을 것이다. 프리아모스도 그의 다른 친척들도 알렉산드로스가 헬레네와 동침할 수 있게 해주기 위해 자기 몸과 자식들과 도시를 위험에 빠뜨리려 할 만큼 어리석지 않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그들도 그러고 싶었겠지만 수많은 트로이아인들이 헬라스인들과 싸우다 전사하고, (우리가 서사시를 믿어야 한다면) 프리아모스 자신의 아들들도 교전 때마나 두세 명씩 죽게 된다면, 생각건대 프리아모스는 설사 그 자신이 헬레네와 동거한다 해도 다가오는 재앙을 피하기 위해 헬레네를 아카이오이족에게 내주었을 것이다. 게다가 알렉산드로스는 왕위 계승자가 아닌 만큼 노왕 프리아모스를 대신해 전권을 휘두를 처지도 아니었다. 그의 형님으로, 그보다 더 남자다운 헥토르가 프리아모스의 사후 왕위를 계승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헥토르는 자신과 모든 트로이아인들에게 안겨준 엄청난 불행 때문에라도 말썽꾸러기 아우를 비호해주려 하지 않았을 것이다. 천만에. 트로이아인들에게는 내줄 헬레네가 없었던 것이고, 사실을 말해도 헬라스인들은 그들의 말을 믿지 않았던 것이다. 내 의견을 말해도 된다면, 신께서 트로이아를 쑥대밭을 만드신 것은 그렇게 하심으로써 큰 악행에는 엄한 신벌(神罰)이 따르기 마련이라는 것을 인간들에게 명명백백히 보여주시기 위함이었다. 그것이 내 생각이고, 내가 여기서 말하는 것도 그것이다. - 헤로도토스, 『역사』제Ⅱ권 120장
근데 일리아스가 왜 그토록 칭송되는지 구체적인 이유가 궁금합니다. 다른 사이트에서 호머의 작품은 그리스 신화의 근원이 되었다, 앞으로의 그리스 문학에 심대한 영향을 끼첬다는둥 퉁치는 얘기만 하는데, 구체적인 언급을 찾기가 어렵습니다. 다른 그리스 문학이 호머의 작품에 비해 어디가 떨어지는지도 아예 언급이 없구요. 유튜버님은 일리아스가 다른 그리스 작품들과 어떤 차별점이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제가 1부와 2부로 나눠서 만든 영상으로도 이해하기 힘드셨다면 저로서도 참 난감하긴 합니다. 호메로스가 최초이자 마지막 시인이라는 칭송을 듣는 이유를 (몽테뉴의 설명이든 아리스토텔레스의 설명이든) 저 나름대로는 근거가 뚜렷하게 최대한으로 설명해 드렸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다 헛수고였다는 생각까지 들게 만드시니까요. 저로서는 을 이 영상을 벗어나서라도 오래도록 설명해 드릴 자신이 있지만, 현실적으로 그런 방법을 동원할 순 없으니, 그나마 제 생각을 뒷받침한다고 여겨지는 언급들을 조금 덧보태는 수준으로 답변을 대신코자 합니다. 부디 찬찬히 읽어봐주시길 바랄 뿐이네요. * * * 호메로스의 두 걸작 서사시인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는 흔히 최초의 문학으로 간주된다. 이 두 작품은 모든 유럽 문학의 '근원이자 원천'이며, 새로운 사상의 대로로 향하는 '대문'이다. 합쳐서 2만 8천 행에 이르는 두 서사시는 그 전과 후의 수백 년 기간을 통틀어 '이 놀라운 업적에 필적할 만한 작품은 전혀 없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호메로스의 재능은 그리스에서 아주 초기부터 인정을 받았다. 아테네인들은 마치 오늘날 경건한 그리스도교도가 성서를 대하듯이, 무슬림이 코란을 대하듯이 그의 작품을 대했다. 소크라테스도 자신의 목숨이 걸린 재판에서 『일리아스』의 구절을 인용했다.(190∼191쪽) - 피터 왓슨, 『생각의 역사 Ⅰ』 * * * 그러나 우리는 호메로스가 이야기하려고 했던 것 가운데 가장 중대하고 가장 훌륭한 것, 즉 전쟁이나 원정이나 국가의 통치나 인간의 교육에 대해서는 물어서 알 권리를 갖고 있네. (228쪽) - 플라톤, 『국가』 * * * 일리아스와 오뒷세이아 생각건대, 그는 같은 이유에서 그의 재능이 절정에 달했을 때 쓴 『일리아스』는 작품 전체를 극적인 행동과 투쟁으로 가득 채운 반면, 『오뒷세이아』는 대부분이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것은 노년기의 특징이오. 따라서 사람들은 『오뒷세이아』에서의 호메로스를 크기는 그대로지만 힘이 없는 지는 해에 비유할 수 있을 것이오. 『오뒷세이아』에서는 그는 이미 『일리아스』의 노래들에서와 같은 긴장을 유지하지 못하니, 그곳에는 결코 범용으로 떨어지지 않는 숭고도 곤두박질치며 쏟아지는 격정도, 다재다능함도, 현실성도, 일상생활에서 끌어온 풍부한 심상도 없기 때문이오. 그것은 마치 오케아노스가 자신 속으로 도로 흘러들어 자신의 경계 안에 조용히 머무는 것과도 같소. (295쪽) - 롱기누스, 『숭고에 관하여』 따라서 우리도 숭고한 표현과 고매한 사상을 요구하는 구절을 쓸 때는, 호메로스는 이것을 어떻게 표현했을까, 플라톤이나 데모스테네스나 또는 역사에서 투퀴디데스는 이것을 어떻게 숭고하게 만들었을까 하고 마음속으로 그려보는 것이 좋소. 왜냐하면 경쟁심은 이 위대한 분들을 우리 눈앞에 데려다줄 것이고, 그러면 그 분들이 우리의 생각들을 우리가 정해놓은 수준으로 끌어올려줄 것이기 때문이오. 나아가 호메로스나 데모스테네스가 여기 있었다면 나의 이 구절을 어떻게 만들었을까, 또는 나의 이 구절이 그들에게 어떤 인상을 주었을까 하고 자문해본다면 그것은 더욱더 그러할 것이오. 우리가 그러한 배심원들과 청중이 우리가 하는 말을 듣고 있다고 가정한다면, 그리고 그러한 영웅적인 심사원들과 증인들에게 우리의 작품을 꼼꼼히 살펴보도록 맡긴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그야말로 큰 경쟁이 될 것이기 때문이오. 그리고 그대가 "내가 이렇게 쓰면 후세 사람들이 모두 어떻게 받아들일까?" 하고 덧붙인다면 그것은 더 고무적일 것이오. 누군가가 자신의 생애와 시대보다 오래 지속될 것을 말하기를 두려워한다면 그의 마음속 구상들은 필연적으로 불완전하고 발육이 부전하여 유산되고 말 것이며, 후세의 명성의 날을 위하여 결코 완전하게 태어나지 못할 것이오. (310∼311쪽) - 롱기누스, 『숭고에 관하여』
(이어지는 댓글입니다...) …… 그러나 소박한 것, 즉 가상의 아름다움에 저처럼 아름답게 얽혀 있는 상태는 얼마나 성취하기 힘든 것인가! 그렇기 때문에 개별적인 꿈의 예술가가 민족과 자연의 꿈의 능력과 맺는 관계와 마찬가지로 한 개인으로서 저 아폴론적 민족 문화와 관계를 맺는 호메로스는 얼마나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숭고한가! 호메로스의 "소박성"은 오로지 아폴론적 환영에 대한 완전한 승리로 파악되어야만 한다. - 니체, 『음악의 정신으로부터의 비극의 탄생』, 3장 우리는 현대적 재능이라는 특이한 약점으로 말미암아 미적 근원 현상을 너무 복잡하고 추상적으로 생각하는 경향을 갖게 되었다. 은유는 진정한 시인에게는 수사학적 형상이 아니라 그의 눈앞에서 어떤 개념을 대신하여 실제로 움직이고 있는 대표적 형상이다. 인물은 진정한 예술가에게는 주워 모은 개개의 특질들로부터 합성한 전체 같은 것이 아니고, 그의 눈앞에서 끈질기게 살아가는 인격이다. 이 인물이 지속적으로 계속 살아가고 계속 활동한다는 점에서만 화가가 그린 동일한 환영과 구별된다. 호메로스는 어떻게 모든 시인들보다 훨씬 더 구체적으로 묘사할 수 있었을까? 그가 그만큼 더 많이 관조했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는 나쁜 시인이기 때문에 시에 관해 그토록 추상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이다. 근본적으로 미적 현상은 단순하다. 단지 지속적으로 살아 있는 유희를 바라보고 항상 정령의 무리들에 둘러싸여 살 수 있는 능력을 가져보라. 그러면 시인이 될 것이다. 단지 스스로 변신하여 다른 사람의 몸과 영혼으로 말하려는 충동을 느껴보라. 그러면 극작가가 될 것이다. - 니체, 『음악의 정신으로부터의 비극의 탄생』, 8장 * * * 호메로스와 셰익스피어의 경우 예를 들어 우리는 다시 호메로스를 : 어떤 고귀한 문화를 가지고 있는 인간들이 (호메로스의 광막한 정신을 비난했던 생 테브르몽Saint-Evremond 같은 17세기 프랑스인들이나, 그 세기 마지막 인물인 볼테르조차도) 쉽게 소화할 수 없었으며 ㅡ 거의 즐길 수조차 없었던 호메로스를 우리가 맛볼 수 있다는 것은 아마 우리의 가장 행복한 우월성일 것이다. 그들 미각의 매우 단호한 긍정과 부정, 쉽게 일으키는 그들의 구토, 온갖 이질적인 것에 대해 머뭇거리는 신중함, 활발한 호기심이 가지고 있는 몰취미 자체에 대한 그들의 경계심, 그리고 일반적으로 어떤 새로운 탐욕이나 자기 것에 대한 불만, 또는 이질적인 것에 대한 경탄을 스스로 인정하는 고상하고 자족적인 모든 문화가 가지고 있는 저 나쁜 의지 : 이 모든 것 때문에 그들은 자신의 소유가 아니거나 노획물이 될 수 없는 것이면, 세상에서 가장 좋은 것이라 해도 호의를 보이지 않는다. ㅡ 그리고 이와 같은 인간들에게는 바로 역사적 감각이나 거기에 굴종하는 천민적 호기심보다 더 이해하기 어려운 감각은 없을 것이다. 셰익스피어에 대해서도 경우가 다르지 않다. 이 놀라운 스페인식과 무어식, 색슨적인 취미의 종합을 보았다면, 아이스킬로스와 친교가 있던 고대 아테네 사람들이라면 반쯤 죽도록 웃거나 화를 냈을 것이다 : 그러나 우리는 ㅡ 바로 이러한 거친 다채로움을, 가장 섬세한 것과 조야한 것, 예술적인 것의 혼합을 은밀히 신뢰하고 진심으로 받아들인다. 우리는 우리를 위해 비축된 예술의 정수로 셰익스피어를 즐기며, 이때 그의 예술과 취미가 살아 있는 영국 천민의 불쾌한 수증기가 근처에 감돈다 해도 거의 그 영향을 받지 않는다. 그것은 마치 우리가 나폴리의 키아야 천민 지역의 하수구 냄새가 공기 중에 떠다닌다 해도, 모든 감각을 동원하여 매혹된 채 즐거이 우리의 길을 걷는 것과 마찬가지다. - 니체, 『선악의 저편』, 우리의 덕, 제224절
(이어지는 댓글입니다.) 사실 나는 자기 권위로 많은 신들을 세상에 내놓고 사람들을 믿게 한 그가, 자신이 신의 지위에 오르지 못한 것을 자주 이상하게 여겨 왔다. 앞을 보지 못하며 궁핍한 몸으로 학문이 아직 규칙과 확실한 관찰로 사물들을 기록해 놓기도 전에, 그는 이런 일을 모두 알고 있어서, 다음에 정치를 세우고 전쟁을 지휘하고, 어느 학파에 속하건 종교나 철학에 관한 것을 쓰고, 기술을 다루는 일에 간섭하는 자들을 누구나 다 그를 모든 사물들에 관한 지식의 지극히 완벽한 스승과 같이 보며, 그의 작품을 모든 종류의 능력을 기르는 기초 터전 같이 이용했다. 그는 무엇이 명예롭고 수치스러우며 유용하고 그렇지 않은가를 크리시포스와 크란토르보다도 더 능란하게 더 완전하게 말한다. (호라티우스) 그리고 다른 자가 말하는 것처럼- 마치 무궁무진한 샘처럼 피에리아(詩神들의 고향)의 물에 시인들은 입술을 축이러 온다. (오비디우스) 또 다른 자는 말하기를- 헬리콘(보이오티아 접경의 산, 중턱에 시신(詩神)들의 제전이 있었다) 시신들의 길동무들을 더하라. 그 가운데 단 한 사람 호메로스만이 별무리의 높이에 오른다. (루크레티우스) 그리고 또 하나는 말하기를- 그의 풍부한 원천에서 후세의 시인들은 그들 시가에 물을 길었고 단 한 사람의 재보로 부유해져서 감히 수많은 작은 하류로 물을 끌어대는 큰 강이다. (마닐리우스) - 몽테뉴, 『몽테뉴 수상록』,
머 이런 유튜버가 있지?!!!
경이로운 정리입니다.
그리고 감동있는 깨달음을 주는 리뷰입니다
그 방대한 내용을..
호머
같은 리뷰입니다.
기원전 신들의 갈등의 모습이
우리 삶, 우리 현대인의 모습과 또옥 같네요.
유럽
어떤 대학신입생들에게 일리아스와 오딧세이 책을 선물로 준다던데 이제사 이해가 됩니다.
다시 필독해야 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에 대한 복잡하고 어려운 이야기를 이토록 깊이 공감해주시니 너무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
와! 만명 돌파 축하도 못드렸네요! 축하드립니다! ㅋㅋㅋ 고전과 신화에 관해 백지 상태라서 그냥 계속 보고 있습니다. 뭔가 정리가 되면 말씀드리겠습니다. ㅋ
1만 명 돌파에 대한 축하와 격려 고맙고요. 고전과 신화에 관해 백지상태라면서도 제 영상을 계속 봐주신다고 하니 그저 고마울 따름입니다. 신화는 꽤나 복잡한 것 같기도 하지만, 하나둘씩 알고 나면 더 이상은 확장되지 않는, 나름대로 경계가 있는 영역이기도 하니까 너무 지레 겁 먹을 필요는 없을 듯해요.^^
@@ojcojjㅎㅎㅎ 고전이나
문학으로 밥먹고 사는 사람보다 지식이나 완성도가 높다고 생각합니다. 프로를 이기는 아마추어. 그렇기때문에 놀라워서 봅니다. (주제넘은 평가 죄송합니다.)
하늘 아래 새로운 건 없는 법이라고 늘 생각합니다. 알고 보면 제 영상에서 다루는 거의 대부분의 내용들은 이미 오래 전부터 세상에 다 나와 있는 것이고, 제가 전하는 내용들 대부분은 기실 알고 보면 수많은 전문가들(작가들, 교수들, 해당분야 전문 유튜버들 등등)이 이미 세상에 다 내놓은 것들이기도 하지요. 그런데도 제가 이미 널리 알려진 작품들에 대해 굳이 새로운 영상을 만들어내는 이유는 딱 하나, 저만의 독창적인 스타일로 '이야기를 전달해 보려는 욕망' 때문입니다. 제가 전달하는 스토리 전달 방식이 전혀 독창적이지 않다면 굳이 새로운 누더기 영상을 하나 덧보탤 까닭도 없을 테고요. 가 되었든, 이 되었든, 가 되었든, 가 되었든, 가 되었든, 이미 수많은 책 소개 서평과 책 내용에 대한 기나긴 강의 영상과 수십 만 구독자와 수십 만 조회수를 자랑하는 영상들이 널려 있는 까닭에, 저로서는 그들과 경쟁할 것이 아니라, 그것들과는 확실하게 차별되는 저만의 독창적인 영상을 꾸준히 모색해 보고, 시도해 보고 창작해볼 작정입니다. 늘 애정어린 관심 보여주셔서 고맙습니다.^^
* * *
"호머(Homer), 초서(Chaucer), 그리고 세익스피어(Shakespeare) 시대로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그 전달 매체가 무엇이건 간에 중요한 것은 스토리와 그 스토리를 전달하는 기술이었다."
- 마이크 아이스너
@@ojcojj 섹시스타
역시나 이번에도 기대 이상의 작품을 리뷰해 주시네요. 읽고 또 읽어도 늘 또 읽어지고 싶어지는 작품인데 이렇게 깊이있는 내용을 만들어 주십니다. 감사합니다
채정훈 님의 말씀을 들으니 문득 누군가가 저한테 유튜브를 시작해 보라고 권유하던 때가 생각납니다. 그 때 몇몇 책소개 영상들을 보고 나서 완전히 기가 죽어 '전 그런 거 못해요'라는 말을 반복했었는데, 하나둘씩 졸작이나마 자꾸 만들다 보니, 도저히 엄두가 나지 않을 것 같은 까지 손을 뻗치게 되었네요. 매번 올리는 영상마다 좋게 봐주셔서 늘 큰 힘이 됩니다.^^
연휴기간, 일용할 양식 및 자세한 가이드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리뷰 자체가 엄청난 대작이네요.
호메로스의 한 권만 하더라도 워낙에 대작이니까요.^^
그래도 초고 원고에 비해 영상 분량을 많이 줄이고 또 줄였답니다. 영상을 만들면서 찾아본 수많은 그림들, 조각작품들, 도자기 그림들도 영상에 담아내지 못한 게 훨씬 더 많은 듯하고요.^^ 어쨌든 호메로스의 작품 『일리아스』를 둘러싸고 있는 온갖 '부수적인 이야기들'까지도 두루 포함시키려고 욕심을 부리다 보니, 영상이 탄탄하게 압축된 느낌은 조금 덜하지만, 이것저것 하고 싶었던 얘기들은 제법 담아낸 듯합니다.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에 등장하는 온갖 신들과 유명한 장수들까지도 한 장에 최대한으로 담아봤고, 각각의 인물들이 누구와 맞붙어 싸웠는지도 '화살표'를 이용해서 다 담아낼려고 시도해 봤고요.^^ 이라는 그림 하나에도 수많은 인물들이 교묘하게 담겨 있는데, 그들이 누구누구인지도 밝혀내느라 식겁을 했고요. 그 그림 속엔 셰익스피어, 단테, 괴테도 있고, 모차르트, 미켈란젤로도 있고, 헤시오도스, 아이스퀼로스, 소포클레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알렉산드로스 대왕, 베르길리우스 등등 '인류를 빛낸' 온갖 인물들이 빼곡히 모여 있거든요.(그 그림에 담긴 인물들을 하나하나 찾아내 '이름표'를 달아주는 작업만 하더라도 꽤나 시간을 소비했답니다.)
아무쪼록 설 연휴를 즐겁게 보낼 수 있는 영상이기를 바래봅니다.
이 영상을 만드는 데 쓰인 참고자료를 덧붙여 봅니다.
호메로스, 『일리아스』, 『오뒷세이아』
아이스퀼로스, 비극전집(「아가멤논」 3부작, 「테바이를 공격한 일곱 장수」)
소포클레스, 비극전집(「오이디푸스 왕」, 「안티고네」, 「아이아스」, 「엘렉트라」, 「필록테테스」)
에우리피데스, 비극전집(「트로이아의 여인들」, 「헤카베」, 「안드로마케」, 「오레스테스」, 「엘렉트라」, 「헤라클레스」)플라톤, 『국가』, 『향연』
아리스토텔레스, 『시학』
베르길리우스, 『아이네이스』
오비디우스, 『변신 이야기』
몽테뉴, 『수상록』
헨리 데이빗 소로우, 『월든』
이윤기,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신화』
강대진, 『그리스 로마 서사시』
알베르토 망겔, 『일리아스와 오뒷세이아 이펙트』
영화 『트로이』(2004)
@@ojcojj
나열 된 책 이름만 봐도 눈이 빙글빙글 돕니다.
전 만들어 주신 영상으로 편안하게 잘 보았습니다.
감사합니다.
2편을 먼저 봤는데, 1편이 있었네요.
로마의 시조가 되는 아이네아스의 이름도
보이고,
아킬레우스 아기를 물에 담구는 그림도
보이네요.
유부녀 헬레네가 트로이까지
따라가는 바람에.....라고 전 헬레네..떼치...
하고 있었습니다.ㅎ
헬레네는 전쟁이 끝나고 나서 남편인 메넬라오스한테 죽임을 당할 줄 알았는데, 한순간에 용서를 받고 왕궁으로 무사복귀한다지요. 물론 다른 이야기로는 헬레네가 아예 트로이아 땅으로 간 적도 없고, 아프리카 땅 이집트에 머물었다는 얘기도 있고요.(헤로도토스의 『역사』 ) 그 중 한 대목만 옮겨보면 이렇답니다.
내가 헬레네에 관해 묻자 사제들은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다. 알렉산드로스는 스파르테에서 헬레네를 납치하여 고국으로 항해하던 중 아이가이온 해에서 폭풍을 만나 아이귑토스 앞바다로 표류하게 되었는데, 계속해서 바람이 불자 결국 아이귑토스의, 지금은 카노보스 하구라고 불리는 곳에 있는 물고기 염장(鹽藏) 업소들에 상륙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곳 바닷가에는 헤라클레스의 신전이 있었는데 지금도 남아 있다. 어느 집 노예든 그곳으로 피신하여 자신을 신에게 바친다는 표시로 몸에 신성한 낙인이 찍히게 되면 아무도 그에게 손댈 수 없게 되어 있다. 이러한 관습은 옛날부터 지금까지 존속되고 있다. 그런데 알렉산드로스의 몇몇 하인들이 이 신전에 그런 법이 있음을 알게 되자 그의 곁을 떠나 신의 탄원자들로서 신전 안에 눌러앉았다. 그들은 알렉산드로스에게 해코지하려고 그를 고발하며 헬레네에 관한 이야기와 그가 메넬라오스에게 저지른 부당 행위를 남김없이 일러바쳤다. 그들은 사제들뿐 아니라 네일로스 강의 이 하구의 간수인 토니스란 자에게도 그를 고발했다.
- 헤로도토스, 『역사』제Ⅱ권 113장
그들의 고변을 들은 토니스는 즉시 멤피스에 있는 프로테우스에게 다음과 같은 전갈을 보냈다. "한 이방인이 이곳에 도착했는데, 그자는 테우크로스의 자손으로 헬라스에서 불경한 짓을 저질렀나이다. 그자는 자신을 환대해준 주인의 아내를 유혹하여 그녀와 함께 막대한 제물을 싣고 도망가던 중 바람에 떠밀려 전하의 나라로 표류하였였나이다. 저희는 그자가 벌 받지 않고 배를 타고 떠나게 해야 하나이까, 아니면 그자가 갖고 가던 것을 빼앗아야 하나이까?" 이 전갈에 대해 프로테우스는 다음과 같은 회신을 보냈다. "자신을 환대해준 주인에게 불경한 짓을 했다는 그자가 누구이건, 그자가 무슨 말을 하는지 듣고 싶으니 그대들은 그자를 붙잡아 내 앞에 데려오도록 하라!"
- 헤로도토스, 『역사』제Ⅱ권 114장
이 말을 듣자 토니스는 알렉산드로스를 체포하고 그의 함선들을 억류했다. 그리고 헬레네와 재물들과 탄원자들과 함께 알렉산드로스를 멤피스로 데리고 갔다. 그들이 모두 대령하자 프로테우스가 엘렉산드로스에게 그가 누구며 어디서 배를 타고 왔는지 물었다. 그러자 알렉산드로스가 선조들의 이름을 열거하고 고향 이름을 말하고 어디서 배를 타고 오는 길인지도 말했다. 프로테우스가 그에게 어디서 헬레네를 손에 넣었는지 물었다. 알렉산드로스가 더듬대며 사실을 말하지 않자, 탄원자가 된 하인들이 그의 말을 반박하며 그가 저지른 불의한 짓의 자초지종을 남김없이 이야기했다. 이윽고 프로테우스는 다음과 같은 판결을 내렸다. "만약 내가 바람에 떠밀려 내 나라로 표류해 온 어떤 이방인도 죽이지 않는 것을 내 의무로 여기지 않는다면, 나는 저 헬라스인을 위해 그대를 응징했을 것이오. 악당이여, 그대는 그에게 환대를 받고도 그에게 가장 불경한 짓을 저질렀소. 그대는 그의 아내를 유혹했고, 그것도 성에 차지 않아 정열의 날개를 타고 그대와 함께 도망치도록 그녀를 꼬드겼소. 그리고 그것도 모자라 이리로 오기 전에 그대는 그대를 환대한 주인의 집을 약탈했소. 하지만 나는 어떤 일이 있어도 이방인을 죽이지 않을 것이오. 그러나 나는 이 여인과 재물은 그대가 가져가도록 허락하지 않고, 그대를 환대한 그 헬라스인이 와서 가져갈 때까지 맡아둘 것이오. 그대와 그대의 일행에게 이르노니, 3일 안으로 배를 타고 내 나라를 떠나 다른 나라로 가도록 하시오. 그렇지 않으면 나는 그대들을 적으로 취급할 것이오."
- 헤로도토스, 『역사』제Ⅱ권 115장
사제들에 따르면, 헬레네는 그렇게 해서 프로테우스의 궁전에 오게 되었다고 한다. 호메로스도 이 이야기를 알고 있었으리라 나는 생각한다. 그러나 이 이야기는 그가 채택한 다른 이야기만큼 그의 서사시에 적합하지 않아 의도적으로 생략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는 이 이야기도 알고 있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는 『일리아스』에서 알렉산드로스가 헬레네를 데려가다가 표류하여 포이니케의 시돈에 갔었다고 알렉산드로스의 방랑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고, 다른 데서 자신이 한 말을 철회하지 않았다. 호메로스는 '디오메데스의 무훈'에서 엘렉산드로스의 방랑에 관해 언급하고 있는데, 그 시행은 다음과 같다.
그곳에는 시돈의 여인들이 온갖 솜씨를 다 부려 만든 옷들이
간직되어 있었으니, 이 여인들은 신과 같은 알렉산드로스가
고귀한 가문에서 태어난 헬레네를 데리고 오던 길에
넓은 바다를 항해하면서 시돈에서 손수 데려왔던 것이다.
이 시행들을 보면 호메로스가 엘렉산드로스의 방랑에 관해 알고 있었음이 분명하다. 쉬리아는 아이귑토스의 이웃 나라고, 시돈 시를 건설한 포이니케인들은 쉬리아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 헤로도토스, 『역사』제Ⅱ권 116장
이 시행들과 이 구절은 『퀴프리아』118 가 호메로스가 아닌 다른 시인의 작품이라는 가장 유력한 증거다. 『퀴프리아』의 시인은 순풍이 불고 바다가 잔잔하여 알렉산드로스가 헬레네를 데리고 스파르테를 떠난 지 3일째 되던 날 일리온에 도착했다고 말하고 있다. 반면, 호메로스는 『일리아스』에서 알렉산드로스가 헬레네를 데리고 표류했다고 말하고 있다. 호메로스와 『퀴프리아』에 관해서는 이쯤 해두자.
118 『퀴프리아』(Kypria)는 단편 밖에 남아 있지 않은 이른바 '서사시권 서사시'들의 하나로 '파리스의 심판'에서부터 그리스군의 트로이아 도착까지를 그리고 있다.
- 헤로도토스, 『역사』제Ⅱ권 117장
내가 사제들에게 일리온에서 있었던 일에 관해 헬라스인들이 말하는 것이 과연 사실인지 아닌지 묻자, 그들은 메넬라오스에게 직접 물어 알게 되었다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헬레네가 납치된 뒤 헬라스인들의 대군이 메넬라오스를 돕기 위해 테우크로스의 나라로 가서 그곳에 상륙한 다음 진지를 구축했다고 한다. 그러고 나서 그들은 일리온으로 사절단을 보냈는데, 메넬라오스도 그들과 함께 갔다고 한다. 사절단은 성내에 들어오자 헬레네와, 알렉산드로스가 훔쳐 간 재물들을 돌려주고 범죄행위에 대해 보상할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테우크로스 자손들은 맹세를 하든 않든 후일에도 똑같은 대답을 되풀이하는데, 자기들은 헬레네도 문제의 재물들도 갖고 있지 않으며 그것들은 모두 아이귑토스에 있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아이귑토스 왕 프로테우스가 갖고 있는 것들에 대해 자기들이 보상한다는 것은 부당하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그러자 헬라스인들은 자기들이 우롱당하고 있다고 믿고는 포위 공격 끝에 결국 도시를 함락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도시를 함락해도 헬레네는 보이지 않고 종전과 같은 말을 듣게 되자, 헬라스인들은 처음 들은 말을 믿게 되었고 메넬라오스를 프로테우스에게 보냈다고 한다.
- 헤로도토스, 『역사』제Ⅱ권 118장
아이귑토스에 도착한 메넬라오스는 네일로스 강을 거슬러 멤피스까지 올라가 사건의 전말을 사실대로 말하고는 큰 환대를 받았고, 무탈한 헬레네와 자신의 재물들을 모두 돌려받았다. 그러나 메넬라오스는 그렇게 환대받았음에도 아이귑토스인들에게 몹쓸 짓을 하고 말았다. 그는 출항하고 싶었지만 역풍이 계속 불어 발이 묶이자 몹쓸 짓을 생각해내어, 그곳 주민들의 아이 두 명을 붙잡아 제물로 바쳤던 것이다. 그의 비행이 탄로 나 아이귑토스인들이 분개하여 추격해 오자 그는 함선들을 이끌고 곧장 리뷔에로 도망쳤다. 그러나 그가 거기서 어디로 갔는지 아이귑토스인들도 내게 말해줄 수 없었다. 사제들에 따르면, 그들은 이런 일들의 일부는 탐문해서 알게 되었지만, 그들의 나라에서 일어난 일들은 확실히 알고 하는 말이라고 했다.
- 헤로도토스, 『역사』제Ⅱ권 119장
이상이 아이귑토스의 사제들이 내게 들려준 이야기다. 나는 헬레네에 관해 그들이 한 말에도 동의하는데,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다. 헬레네가 일리온에 있었다면 알렉산드로스가 동의하든 말든 헬라스인들에게 반환되었을 것이다. 프리아모스도 그의 다른 친척들도 알렉산드로스가 헬레네와 동침할 수 있게 해주기 위해 자기 몸과 자식들과 도시를 위험에 빠뜨리려 할 만큼 어리석지 않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그들도 그러고 싶었겠지만 수많은 트로이아인들이 헬라스인들과 싸우다 전사하고, (우리가 서사시를 믿어야 한다면) 프리아모스 자신의 아들들도 교전 때마나 두세 명씩 죽게 된다면, 생각건대 프리아모스는 설사 그 자신이 헬레네와 동거한다 해도 다가오는 재앙을 피하기 위해 헬레네를 아카이오이족에게 내주었을 것이다. 게다가 알렉산드로스는 왕위 계승자가 아닌 만큼 노왕 프리아모스를 대신해 전권을 휘두를 처지도 아니었다. 그의 형님으로, 그보다 더 남자다운 헥토르가 프리아모스의 사후 왕위를 계승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헥토르는 자신과 모든 트로이아인들에게 안겨준 엄청난 불행 때문에라도 말썽꾸러기 아우를 비호해주려 하지 않았을 것이다. 천만에. 트로이아인들에게는 내줄 헬레네가 없었던 것이고, 사실을 말해도 헬라스인들은 그들의 말을 믿지 않았던 것이다. 내 의견을 말해도 된다면, 신께서 트로이아를 쑥대밭을 만드신 것은 그렇게 하심으로써 큰 악행에는 엄한 신벌(神罰)이 따르기 마련이라는 것을 인간들에게 명명백백히 보여주시기 위함이었다. 그것이 내 생각이고, 내가 여기서 말하는 것도 그것이다.
- 헤로도토스, 『역사』제Ⅱ권 120장
@@ojcojj
예쁜 여자는 불륜을 저지르고
그 탓에
10년의 트로이 전쟁으로 많은 사람들이
죽었는데도
남편이 봐 주네요.ㅎ
예쁘면 다야.......싶습니다.^^
@@ojcojj 대단히 감사합니다.
@@ojcojj
엄청 긴 친절한 댓글,,좀 퍼 갑니다.
혼자만 보는 저의 밴드에 두고 한번 더 읽어봐야겠습니다.
♡♡♡
근데 일리아스가 왜 그토록 칭송되는지 구체적인 이유가 궁금합니다. 다른 사이트에서 호머의 작품은 그리스 신화의 근원이 되었다, 앞으로의 그리스 문학에 심대한 영향을 끼첬다는둥 퉁치는 얘기만 하는데, 구체적인 언급을 찾기가 어렵습니다. 다른 그리스 문학이 호머의 작품에 비해 어디가 떨어지는지도 아예 언급이 없구요.
유튜버님은 일리아스가 다른 그리스 작품들과 어떤 차별점이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제가 1부와 2부로 나눠서 만든 영상으로도 이해하기 힘드셨다면 저로서도 참 난감하긴 합니다. 호메로스가 최초이자 마지막 시인이라는 칭송을 듣는 이유를 (몽테뉴의 설명이든 아리스토텔레스의 설명이든) 저 나름대로는 근거가 뚜렷하게 최대한으로 설명해 드렸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다 헛수고였다는 생각까지 들게 만드시니까요.
저로서는 을 이 영상을 벗어나서라도 오래도록 설명해 드릴 자신이 있지만, 현실적으로 그런 방법을 동원할 순 없으니, 그나마 제 생각을 뒷받침한다고 여겨지는 언급들을 조금 덧보태는 수준으로 답변을 대신코자 합니다. 부디 찬찬히 읽어봐주시길 바랄 뿐이네요.
* * *
호메로스의 두 걸작 서사시인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는 흔히 최초의 문학으로 간주된다. 이 두 작품은 모든 유럽 문학의 '근원이자 원천'이며, 새로운 사상의 대로로 향하는 '대문'이다. 합쳐서 2만 8천 행에 이르는 두 서사시는 그 전과 후의 수백 년 기간을 통틀어 '이 놀라운 업적에 필적할 만한 작품은 전혀 없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호메로스의 재능은 그리스에서 아주 초기부터 인정을 받았다. 아테네인들은 마치 오늘날 경건한 그리스도교도가 성서를 대하듯이, 무슬림이 코란을 대하듯이 그의 작품을 대했다. 소크라테스도 자신의 목숨이 걸린 재판에서 『일리아스』의 구절을 인용했다.(190∼191쪽)
- 피터 왓슨, 『생각의 역사 Ⅰ』
* * *
그러나 우리는 호메로스가 이야기하려고 했던 것 가운데 가장 중대하고 가장 훌륭한 것, 즉 전쟁이나 원정이나 국가의 통치나 인간의 교육에 대해서는 물어서 알 권리를 갖고 있네. (228쪽)
- 플라톤, 『국가』
* * *
일리아스와 오뒷세이아
생각건대, 그는 같은 이유에서 그의 재능이 절정에 달했을 때 쓴 『일리아스』는 작품 전체를 극적인 행동과 투쟁으로 가득 채운 반면, 『오뒷세이아』는 대부분이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것은 노년기의 특징이오. 따라서 사람들은 『오뒷세이아』에서의 호메로스를 크기는 그대로지만 힘이 없는 지는 해에 비유할 수 있을 것이오. 『오뒷세이아』에서는 그는 이미 『일리아스』의 노래들에서와 같은 긴장을 유지하지 못하니, 그곳에는 결코 범용으로 떨어지지 않는 숭고도 곤두박질치며 쏟아지는 격정도, 다재다능함도, 현실성도, 일상생활에서 끌어온 풍부한 심상도 없기 때문이오. 그것은 마치 오케아노스가 자신 속으로 도로 흘러들어 자신의 경계 안에 조용히 머무는 것과도 같소. (295쪽)
- 롱기누스, 『숭고에 관하여』
따라서 우리도 숭고한 표현과 고매한 사상을 요구하는 구절을 쓸 때는, 호메로스는 이것을 어떻게 표현했을까, 플라톤이나 데모스테네스나 또는 역사에서 투퀴디데스는 이것을 어떻게 숭고하게 만들었을까 하고 마음속으로 그려보는 것이 좋소. 왜냐하면 경쟁심은 이 위대한 분들을 우리 눈앞에 데려다줄 것이고, 그러면 그 분들이 우리의 생각들을 우리가 정해놓은 수준으로 끌어올려줄 것이기 때문이오. 나아가 호메로스나 데모스테네스가 여기 있었다면 나의 이 구절을 어떻게 만들었을까, 또는 나의 이 구절이 그들에게 어떤 인상을 주었을까 하고 자문해본다면 그것은 더욱더 그러할 것이오. 우리가 그러한 배심원들과 청중이 우리가 하는 말을 듣고 있다고 가정한다면, 그리고 그러한 영웅적인 심사원들과 증인들에게 우리의 작품을 꼼꼼히 살펴보도록 맡긴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그야말로 큰 경쟁이 될 것이기 때문이오. 그리고 그대가 "내가 이렇게 쓰면 후세 사람들이 모두 어떻게 받아들일까?" 하고 덧붙인다면 그것은 더 고무적일 것이오. 누군가가 자신의 생애와 시대보다 오래 지속될 것을 말하기를 두려워한다면 그의 마음속 구상들은 필연적으로 불완전하고 발육이 부전하여 유산되고 말 것이며, 후세의 명성의 날을 위하여 결코 완전하게 태어나지 못할 것이오. (310∼311쪽)
- 롱기누스, 『숭고에 관하여』
(이어지는 댓글입니다...)
…… 그러나 소박한 것, 즉 가상의 아름다움에 저처럼 아름답게 얽혀 있는 상태는 얼마나 성취하기 힘든 것인가! 그렇기 때문에 개별적인 꿈의 예술가가 민족과 자연의 꿈의 능력과 맺는 관계와 마찬가지로 한 개인으로서 저 아폴론적 민족 문화와 관계를 맺는 호메로스는 얼마나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숭고한가! 호메로스의 "소박성"은 오로지 아폴론적 환영에 대한 완전한 승리로 파악되어야만 한다.
- 니체, 『음악의 정신으로부터의 비극의 탄생』, 3장
우리는 현대적 재능이라는 특이한 약점으로 말미암아 미적 근원 현상을 너무 복잡하고 추상적으로 생각하는 경향을 갖게 되었다. 은유는 진정한 시인에게는 수사학적 형상이 아니라 그의 눈앞에서 어떤 개념을 대신하여 실제로 움직이고 있는 대표적 형상이다. 인물은 진정한 예술가에게는 주워 모은 개개의 특질들로부터 합성한 전체 같은 것이 아니고, 그의 눈앞에서 끈질기게 살아가는 인격이다. 이 인물이 지속적으로 계속 살아가고 계속 활동한다는 점에서만 화가가 그린 동일한 환영과 구별된다. 호메로스는 어떻게 모든 시인들보다 훨씬 더 구체적으로 묘사할 수 있었을까? 그가 그만큼 더 많이 관조했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는 나쁜 시인이기 때문에 시에 관해 그토록 추상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이다. 근본적으로 미적 현상은 단순하다. 단지 지속적으로 살아 있는 유희를 바라보고 항상 정령의 무리들에 둘러싸여 살 수 있는 능력을 가져보라. 그러면 시인이 될 것이다. 단지 스스로 변신하여 다른 사람의 몸과 영혼으로 말하려는 충동을 느껴보라. 그러면 극작가가 될 것이다.
- 니체, 『음악의 정신으로부터의 비극의 탄생』, 8장
* * *
호메로스와 셰익스피어의 경우
예를 들어 우리는 다시 호메로스를 : 어떤 고귀한 문화를 가지고 있는 인간들이 (호메로스의 광막한 정신을 비난했던 생 테브르몽Saint-Evremond 같은 17세기 프랑스인들이나, 그 세기 마지막 인물인 볼테르조차도) 쉽게 소화할 수 없었으며 ㅡ 거의 즐길 수조차 없었던 호메로스를 우리가 맛볼 수 있다는 것은 아마 우리의 가장 행복한 우월성일 것이다. 그들 미각의 매우 단호한 긍정과 부정, 쉽게 일으키는 그들의 구토, 온갖 이질적인 것에 대해 머뭇거리는 신중함, 활발한 호기심이 가지고 있는 몰취미 자체에 대한 그들의 경계심, 그리고 일반적으로 어떤 새로운 탐욕이나 자기 것에 대한 불만, 또는 이질적인 것에 대한 경탄을 스스로 인정하는 고상하고 자족적인 모든 문화가 가지고 있는 저 나쁜 의지 : 이 모든 것 때문에 그들은 자신의 소유가 아니거나 노획물이 될 수 없는 것이면, 세상에서 가장 좋은 것이라 해도 호의를 보이지 않는다. ㅡ 그리고 이와 같은 인간들에게는 바로 역사적 감각이나 거기에 굴종하는 천민적 호기심보다 더 이해하기 어려운 감각은 없을 것이다. 셰익스피어에 대해서도 경우가 다르지 않다. 이 놀라운 스페인식과 무어식, 색슨적인 취미의 종합을 보았다면, 아이스킬로스와 친교가 있던 고대 아테네 사람들이라면 반쯤 죽도록 웃거나 화를 냈을 것이다 : 그러나 우리는 ㅡ 바로 이러한 거친 다채로움을, 가장 섬세한 것과 조야한 것, 예술적인 것의 혼합을 은밀히 신뢰하고 진심으로 받아들인다. 우리는 우리를 위해 비축된 예술의 정수로 셰익스피어를 즐기며, 이때 그의 예술과 취미가 살아 있는 영국 천민의 불쾌한 수증기가 근처에 감돈다 해도 거의 그 영향을 받지 않는다. 그것은 마치 우리가 나폴리의 키아야 천민 지역의 하수구 냄새가 공기 중에 떠다닌다 해도, 모든 감각을 동원하여 매혹된 채 즐거이 우리의 길을 걷는 것과 마찬가지다.
- 니체, 『선악의 저편』, 우리의 덕, 제224절
(이어지는 댓글입니다.)
사실 나는 자기 권위로 많은 신들을 세상에 내놓고 사람들을 믿게 한 그가, 자신이 신의 지위에 오르지 못한 것을 자주 이상하게 여겨 왔다. 앞을 보지 못하며 궁핍한 몸으로 학문이 아직 규칙과 확실한 관찰로 사물들을 기록해 놓기도 전에, 그는 이런 일을 모두 알고 있어서, 다음에 정치를 세우고 전쟁을 지휘하고, 어느 학파에 속하건 종교나 철학에 관한 것을 쓰고, 기술을 다루는 일에 간섭하는 자들을 누구나 다 그를 모든 사물들에 관한 지식의 지극히 완벽한 스승과 같이 보며, 그의 작품을 모든 종류의 능력을 기르는 기초 터전 같이 이용했다.
그는 무엇이 명예롭고 수치스러우며
유용하고 그렇지 않은가를
크리시포스와 크란토르보다도 더 능란하게
더 완전하게 말한다. (호라티우스)
그리고 다른 자가 말하는 것처럼-
마치 무궁무진한 샘처럼
피에리아(詩神들의 고향)의 물에
시인들은 입술을 축이러 온다. (오비디우스)
또 다른 자는 말하기를-
헬리콘(보이오티아 접경의 산, 중턱에 시신(詩神)들의 제전이 있었다) 시신들의 길동무들을 더하라.
그 가운데 단 한 사람 호메로스만이
별무리의 높이에 오른다. (루크레티우스)
그리고 또 하나는 말하기를-
그의 풍부한 원천에서 후세의 시인들은 그들 시가에 물을 길었고
단 한 사람의 재보로 부유해져서
감히 수많은 작은 하류로
물을 끌어대는 큰 강이다. (마닐리우스)
- 몽테뉴, 『몽테뉴 수상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