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3대 동계전투 장진호 전투. 이 전투는 대한민국의 운명까지 바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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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Опубликовано: 20 дек 2024
- #장진호전투#인해전술#흥남철수
인천상륙작전으로 한반도 통일을 눈앞에 둔 국군과 미군.
그러나 1950년 10월 말, 중공군의 개입으로 가슴아픈 후퇴를 하게 되는데...
상부의 압박에 의해 함경도로 진격했던
미군 최정예 부대인 해병 1사단도 장진호에서
6배가 더 많은 중공군에게 완전 포위가 되었고 전멸 위기에 빠지게 됩니다.
그러자 모든 장비를 버리고 항공기로 탈출하라는 미군 지휘부의 명령.
그러나 미 해병 1사단장 스미스 소장은
어떤한 장비도 단 하나의 병력도 포기할 수 없다! 며
싸우면서 후퇴하겠다고 보고하게 되는데...
한편 중공군은 미 해병 1사단을 완전히 전멸시켜
미군의 전의를 꺾기로 하고 미 해병 1사단을 잡는데 올인을 하게 됩니다.
과연 미 해병 1사단의 운명은? 그리고 대한민국의 운명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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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의 자존심 미 해병 1사단, 단 한번도 패전이 없었던 바로 그 부대.
그러나 장진호에서 6배가 더 많은 중공군에게 완전 포위가 됩니다.
그리고 그 해병 1사단만 노리는 중공군 수뇌부. 이것이 바로 장진호 전투였습니다.
이 전투에 얽힌 비하인드 스토리와 한반도 운명을 바꿀 정도로 컸던 장진호 전투의 파급력에 대해 다루는 컨텐츠입니다.
최고의 퀄리티를 보장하며 여러분의 많은 성원 부탁드립니다!
해병1사단장은 대장으로 가는 길입니다..
당신 주장이면 그당시 중공군은 소총만 겨우 갖추고 때거리 인해전술 밖에 없었는데 병력과 장비가 월등히 앞선 미군이 패했다 그러면 그당시 미군들은 전부 백수건달 이었단 말인가 , 참말로 골 때리네 ,,,
포위가 완벽해서 중국이 그냥 항복하라고 방송 했답니다
중공애들 이랑 추종세력들 많네
니가하면 킹이다
장진호전투에서 산화하신
영령님들에게 감사의 말씀
을 올립니다...
정말 가슴이 먹먹한 영상입니다. 잘보고 갑니다. 6.25때 그 먼 타국까지와서 피 흘리고 돌아가신 모든 미군.유엔군 분들께 고개숙여 감사의 인사를 올립니다.
좋은 말씀 감사드립니다.
미 해병 1사단의 투혼. 단 1개의 사단으로
무려 10개의 중공군 사단의 포위를 뚫고 나온 전투가 장진호 전투입니다.
미해병일사단 어마어마 하군요
정말 몰입해 봤습니다
감사합니다
대한 독립도 미국이 일본을 이겼기 때문에 가능했었죠. 그리고 6 25 전쟁때도 미군의 엄청난 희생이 없었다면, 자유 민주 주의 대한민국은 지구상에 없을것입니다. 미국에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현재의 풍요로운 대한 민국에 살면서 우리는 역사상 가장 불평등했었던 한미상호 방위 조약을 명심하고서 미국 본토를 대한민국을 지키듯이 생각하고 지켜야 할것입니다.
미국이 대한민국의 영원한 혈맹인 이유를 잘 보여주는 전투죠
^꾸뻑^
제 지금 까지 본 한국 전쟁 관련 체널 중 최고 입니다.
감사드립니다. 장진호전투는 비록 미군이 물러난 전투이긴 했지만 그 내막을 살펴본다면,
미 해병 1사단을 맹추격하면서 엄청난 피해를 입은 중공군 9병단이 이후 공세에 참여하지 못했던 것 자체가 전쟁의 판 자체를 흔들었습니다. 이 숨겨진 사실은 사실 중국도 내심 안타까운 기억일 것입니다.
감사 ~~
제너럴스라는 책을 보면 장진호에서 미 육군과 미 해병대의 극과 극의 전과는 결국 지휘관들의 전투경험 유무에 좌우된다는 점을 극명하게 보여줬습니다. 당시 미 육군의.지휘관들은 2차대전 당시 참모요원으로만 복무하다 전투지휘를 맡게 되어서 중공군의 공격에 연신 당황하다 부대가 전멸했는데 미 해병대의 경우 한국전 당시 대대장들은 2차대전 당시 중대장, 연대장들은 2차대전 당시 대대장, 사단장들은 2차대전 당시 연대장 경험있는 인원들이 자리를 맡게 만들어서 장진호 전투에서 해병대는 신중하게 당황하지 않고 다른 방향의 진격을 잘 할 수 있었다고 하지요...
@@user-zw2cu5og5e 장진호 전선에 투입된 육군 지휘관들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청천강, 함흥 라인에서 겨울이 지나기 까지 방어했으면 다른 결과가 나왔을 수도..맥아더가 중공군 능력을 과소평가한 결과 무리하게 압록강, 두만강까지 밀고 올라가 약점을 노출시킨 거..역사는 만약이란게 없지만 아쉬움이 남습니다..
여기서 기억해야할 것, 서울재수복후, 삼팔선 부근에서 고지전이 한창일 때, 이 막강한 미해병1사단이 북괴군최정예 12사단이 사수하는 도솔산고지를 뺐지 못해 결국 지쳐서 한국 해병대한테 넘기고 철수했는데, 한국해병대가 미해병1사단이 포기한 도솔산 고지를 보름만에 정복, 한국해병대>>>> 미해병1사단 구도 형성함
만물상자님의 말씀이 맞습니다.맥아더랑 알몬드는 어리석었죠!!스미스 소장은 이때 미 해병 1사단 병사들에게 이런 명언을 남겼죠 우리는 후퇴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방면으로 공격하는 것이다!!힘내라!!제군들!!
6.25때 미군 참전 연인원 180만. 사망 3만7천+실종1천... 은혜를 갚을 수 없음
전투교리에 모범적인 스미스 소장이야 말로 진정한 모범 군인이다., 워커장군은 성과에만 눈이 돌아있었지.
영상이 계속 올라오는 알림이 개인적으로 만족으로 보기 좋았고, 그렇지만 한동안 안 보고 있었는데.
오늘 꿈에서 내가 이 채널 영상 보는 장면이 나왔어요. 롬멜과 탱크가 있는 이미지를 클릭했더니 꿈에서 내용은 안 나와요 ㅋㅋㅋ
영상을 보며 참 전쟁 일어나면 사상자도 많고, 계속 포로 쐈다니 자연파괴도 많이 됐겠네요. 다시 회복되겠지만..
우리는 당시 이승만 박사도 모르는 정보를 알고 있다니!! ㅋㅋ
감사드립니다. 오랜만에 뵙는군요. 이 영상에 나온 사실을 사실로 밝혀진 내용입니다. 한국의 대통령도 모르는 사이에 미군을 뺄려고 했던 것은 그만큼 중공군에게 질려버린 탓이 크겠죠. 1950년 크리스마스 전에 모두 고향으로 갈 줄 알았던 상황이었는데 지독하게 달려드는 중공군에게 당했던 미군의 충격이 얼마나 컸는지 알 수 있습니다.
고맙습니다
장진호 동편은 미육군 7사단의 연대 전투단이 맡았는데 중공군과의 전투로 전멸하다시피하고 거기에 배속된 수백여명의 카투사 병사들도 전사했습니다. 가끔 미국이 인계하는 국군 유해들도 거기에 있었던 카투사 병사들입니다.
정말 6.25 전쟁사는 들을수록 나라가 소중해지네요. 이런 6.25 전쟁사를 육사 커리큘럼에서 선택과목으로 바꾼 놈들이 간첩이 아니면 누가 간첩일까요
오늘 스트리밍을 봤는데 장진호 전투가 더는 중공군의 남한으로의 진격을 막았다는건 주지의 사실이고 흥남에서 철수하기까지 미해군이 함포사격으로 중공군을 저지했다는 것을 오늘 알았습니다!!만일 중공군 9병단도 같이 내려왔으면 남한도 없었겠죠!!오늘 스트리밍 감사합니다!!
핵심을 잘 보셨습니다. 흥남철수는 대부분 아실 것입니다. 그런데 불과 1.5킬로미터 밖에 중공군이 쳐들어오고 있었던 사실은 처음 아셨을 것입니다. 흥남철수관련 영상이나 영화를 보면 피난민이 엄청 급하게 배를 타는데요. 이유가 있었던 겁니다. 중공군이 불과 1.5킬로 밖에서 이를 갈고 오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너무나 드라마틱하게도 함포불벼락으로 중공군을 막아내는 사이에 항구를 날려버리고 탈출한 겁니다! 저는 여러분들이 보다 와닿도록 이 부분을 나는 전설이다 라는 영화에서 좀비 개들이 햇빛때문에 못 내려오는 장면으로 이해를 도왔습니다.
@@만물상자TV전쟁의신 중공군 9병단의 진짜 목적은 10군단을 장진호에서 전멸시키는게 목적인데 9병단장 쑹쓰룬이 9병단의 사상자가 늘어나니 특히 미해병 1사단의 완전 섬멸로 바꾼 바람에 결국 미해병 1사단이 흥남으로 손실이 얼마없이 철수하게 된 것입니다.그에 비해서 장진호 동쪽의 미육군 7사단 31연대 전투단과 32연대 1대대는 거의 전멸을 면치 못했고요!사실 10군단을 잡다 놓아준 것은 사실 중공군 9병단장 쑹쑤룬의 책임이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사실 미해병 1사단장 올리버 스미스의 적전돌파가 아니었으면 장진호에서의 미해병대는 미육군 7사단 31연대 전투단과 32연대 1대대와 마찬가지로 전멸을 면치 못했을 것입니다!!
@@황야의개마무사 이 컨텐츠에서 거의 모든 팩트를 다 담았습니다. 모든 것에 이유가 있듯이 미 해병 1사단이 무사히 포위망을 뚫었던 것도 이유가 있었죠. 바로 스미스 소장은 장진호로 진격하면서 곳곳에 보급 집적소를 만들어놓으면서 진격했던 것이 비밀이었습니다. 그 다음으로는 미군의 항공력이겠죠. 중공군이 다리를 다 끊어놨어도 미 해병 1사단은 항공기로 자재를 공수받아 다리를 고치면서 후퇴를 했습니다.
중공군 9병단이 3차대공세 참가하지 못했다는
의미가 어떤 의미였는지 이 영상보고 첨 알았습니다. 이런 부분은 아마 이분야 컨텐츠에서는 독보적일겁니다.
아슬아슬했네요...대한민국.
미해병1사단..기억하겠습니다.
선생님의 소중하고 정성스런 영상 잘 시청했습니다.감사합니다.
감사드립니다.
미 해병 1사단은 미군의 최정예부대였습니다.
중공군도 미 해병 1사단을 잡기 위해 무진 애를 씁니다만 결국 전멸시키는데도 실패했고 도리어 중공군이 엄청난 피해를 당하게 됩니다.
전사에는 이런 기록이 있습니다. 미 해병대 사령관이 장진호에 고립된 미 해병 1사단 이야기를 듣고 "난 그들이 참 불쌍하네.."라며 혀를 찼습니다.
곁에 있던 사람들은 미 해병 1사단이 불쌍하다는 줄 알았으나 "해병이 아니라 그들을 공격하는 중공군이 불쌍하네." 라고 했다고 합니다.
이길때는 누구나 잘 싸운다. 패했을때 진짜 그 군대의 전투력을 알 수 있는것이지
포위섬멸 위기에 놓인 부대가 포위망을 뚫으면서 이동한다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라고 합니다. 미 해병대는 그것을 해냈는데 아무래도 그것은 제공권 장악을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만물상자TV전쟁의신 맞는 말씀입니다.
적보다 높은 곳을 장악하는 군대는 절대로 전쟁에서 패배하지 않는다......
고대 시절부터 지금까지 내려오는 전쟁의 유일한 진리니까 말입니다.....
미군참전용사 대단합니다.
미 해병대 짱, 미 육군 졸
우크라이나 전쟁에서도 검증된 바 이지만, 보급선을 넘어서는 진격은 언제나 적의 급습을 부른다는 것을 다시한번 깨닫게 해주는 영상이네요.
미 해병을 잡겠다고 나선 호전적인 중공군의 송시륜의 군단급 병력이 장진호의 겨울동계전투에서 엄청난 비전투 손실을 입어서, 이듬해 벌어진 중공군의 춘계공세에 참가하지 못했죠. 송시륜의 군단급 병력은 이듬해 4월까지 부상자 처리와 재정비를 하여야 할 정도로 피해를 입었습니다. 비록 미군은 전투에서는 졌지만, 전략적으로는 상당히 유리하게 끌었던 것이 장진호 전투입니다. 중공군은 장진호와 청천강 전투에서 미군을 밀어내고는 미군이 별거 아니다라는 착각에 빠져서 미군과 한국군을 바다로 쓸어넣으라는 모택동의 성화에 어거지로 사실 준비가 부족한 상황에서 춘계공세를 개시하죠. 사실 군단급의 대병을 투입하고도 미국의 해병대 사단을 격멸하지 못했던건데 이 교훈에서 배운게 없던 중공군은 이후에 벌어진 서부전선의 춘계공세에도 역시 비슷하게 숫자로만 닥돌하면 된다라는 생각으로 대규모 화력전을 전개하는 미군을 향하여 닥돌하는 우를 범하였고 와중에 모택동의 아들도 죽게 되면서 모택동은 비로서 현실자각을 하고 전선을 고착화하고 휴전협상에 임하게 됩니다.
공산화 막은 공
미군 70%
한국군 15%
유엔군 12%
지형, 날씨 3%
미해군의 타이칸데로가 이지스 순양함의 함 중 USS Chosin 이 있습니다. 초신은 장진의 일본어 입니다. 일본으로 부터 받은 굴욕, 중국과 북한으로 부터 받은 굴욕 모두 잊으면 안되겠습니다.
그간 알고있던 흥남철수는 패배의 역사가 아니라 오히려 승리의 역사였구나. 차분한 후퇴 공격 작전으로 미 병력및 장비손실을 최소화 하여 중공군 25,000전사 미군전사및 실종900 미 10군단 전멸기회 막은효과
미 육군은 사망자 파악도 되지않을 정도로 싹 갈려 나갔습니다.
4900명 실종으로 처리되었죠...
소식없는 4900이 ...
미 육군 이야기는 없는이유?
대부분 해병만 살아 돌아왔습니다.
미 본토에서 치뤄지는 장진호 행사에서 미 육군을 찾기힘든 이유죠.
3배 많았던 중공군도 그 후 한국전쟁에선 큰 등장이 없었으니 진정한 승리자는 동장군 입니다.
개마고원의 동장군...
배움은 죽기 직전에야 멈춘다
나름 역사덕후지만 새로운사실을 가르켜주셔서 감사합니다
중공군 9병단의 손실이 그후에어 떤 결과가 있었을지 설명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응원의 말씀 감사드립니다. 더 많은 응원부탁드립니다.
미군 그 중에서도 해병대가 악착같이 버티며 중공군에게 손실을 입히면서 후퇴했던 것은 한국의 운명에까지 영향을 미쳤던 것입니다.
중공군은 장진호 전투에서 승리하고도 서울 이남까지 내려왔거든요.
저 때 재미있는 전쟁 야사가 있습니다.
저 당시 장진호 전투에 참전한 해병 1사단이 박격포탄이 부족해서 탄약보급을 해 달라고 상부에 요청했는데
박격포탄을 보내달라고 평문으로 보냈다가는
당장 중공군이 포탄 탄약이 바닥났다는 것을 눈치챌까봐
해병대만이 쓰는 박격포탄을 뜻하는 은어인 롤리팝을 보내달라고 요청을 합니다.
그런데 연락을 받은 상부 보급부대가 육군이라서
해병대가 롤리팝을 보내달라고 무전을 보내니까
진짜 롤리팝을 공중보급을 해 줍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해병대가 황당하기도 하고 화도 났었는데
나중에는 그 롤리팝이 해병대에게 큰 도움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 이유가
저 당시 장진호 지역이 영하 20도 정도급으로 추워서
해병대가 보유하고 있던 전투식량이 다 얼어서 먹을 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롤리팝이 초콜릿 사탕이라서
롤리팝을 까 먹으면 그나마 추위에서도 버틸 수가 있었고
거기에 저 엄청난 추위 덕택에
미군의 연료통이나 물통 같은 것에 구멍이 나도
롤리팝을 녹여서 임시로 땜질을 해서 쓸 수도 있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런지는 몰라도
지금도 미 해병 1사단 전우회가 열리는 곳에는
항상 롤리팝이 있다고.......
몰랐던 일화네요. 감사드립니다~
아 서프라이즈에 나왔던 이야기가 이 때 일이군요!! 감사합니다 ㅋㅋㅋ 사탕과 초콜릿 보급.. 참치캔이 얼어서 안 따지고 먹을 수 없는데. 초콜릿은 녹여 먹을 수 있으니! 신의 은총이네요 ㅎㅎㅎ
투씨롤 이라고 하죠
@@강주희-y5q 맞습니다.
그런데 그 초콜릿 사탕이 저 때의 해병대원들에게 진짜 큰 도움이 되었다는 것은 진짜.....
전쟁의 아이러니 그 자체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우라나라 한민족은 중공은 영원한 주적이다 언젠가는 복수를 해야된다 그럴려면 우리 나라가 더 부강해지고 첨단무기를 만들어야된다
전쟁 얘기 너무 좋아 천상 난 군인이야
미해병대만 잘 싸운게 아니고, 한국해병대도 잘 싸웠습니다. 해병대가 타군 무시한다고 하는데요.. 그게 다 육이오때 시작된거라고 합니다. 해병대가 죽어라 진지를 지켜내면, 좌우 옆동네 지키던 육군은 적의 공세에 포기하고 똥빠지게 후퇴하니..해병대는 좌우가 노출되어 적에게 포위되기 일수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해병대는 육군만 보면 이가 갈리게 된것입니다.
잘싸운게, 지금 이꼬라지냐
얻은게 뭐야
@@아차산-z8h 지금이 뭐 어때서? 뭐가 문제인데?
서로 잘 싸운 것이다. 서로 얻은 것이 있다.
6.25전쟁시 북위 39도선이북은 소련이 제공권을 확보한 지역으로 미군공군이 힘을 별로 쓰지 못해 미군이 운산이나 장진호에서 중공군에 많이 밀려 큰 손실을 보았던 지역입니다.
미군이나 한국군 유엔군도 공중우세를 확보하지 못한곳에서 싸우니 겁에 질려 허겁지겁 남쪽으로 퇴각하고 도망쳤습니다.
당시에는 미국과 소련이 둘다 3차대전으로 확대되는걸 꺼리여서 39도선이북 소련공군의 제공권에 대해서 함구하고있었고 중공군도 제공권이 보장된 39도선이북에서는 마음놓고 인해전술을 썼습니다.
39도선이남에는 소련군의 전투기가 하늘에 없었기에 미공군의 역할이 컸습니다.미군도 39도선이남에서는 큰 피해를 안보았구요.
이후에 한반도에 전쟁이 난다고해도 미군과 한국군은 39도선이북에는 진격이 거의 불가능할것입니다.
중국이나 러시아 둘다 39도선이북 자기집앞마당에 미군의 전투기나 탱크가 있는걸 용납하지 않을겁니다.
냉정히 말해서...1950년 11월-12월 전역은... 빈약한 화력의 30만 중공군이 압도적인 화력을 갖춘 미군과... 그 휘하 국군 등을 상대로 눈부신 승리를 거둔 것이리고 봅니다. 이 모든 실패의
원인은 맥아더가 큰 전술적 실패를 범했기 때문이고....그 자신의 실패를 호도하기 위해 만주지역에 대대적인 폭격을 주장했으며...
영상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이 컨텐츠에서 맥아더의 실수를 아주 쉽게 정리했습니다. 중공군은 역시 역사적으로 한반도 침략을 자주하다보니 북한 지형까지 훤히 꿰뚫고 있었습니다. 5:18 를 보시면 중공군은 미군이 청천강과 원산라인을 넘어오기를 기다리고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왜냐고요? 거길 넘어오면 방어해야 할 방어전면이 2배 이상 넓어지거든요. 더구나 맥아더는 부대까지 따로 나눠놨습니다. 제가 중공군 펑더화이라도 쳤을 겁니다. 정 가운데 즉 빈 공간을 말입니다. 맥아더가 북한 지형조사만 제대로 했어도 청천강-원산 라인에 방어선을 깔아놓고 북진했을 것입니다. 미 해병 1사단 스미스 소장이 왜 무사히 탈출한지 아십니까? 북진이 늦다고 갈굼당하면서도 곳곳에 보급기지를 만들면서 북진을 했습니다. 그래서 뚫고 나온 것입니다. 공군력만 있다고 되는게 아니었습니다.
도솔산.전투.해병대.군가에도나온다...승리의산..아아.해병대..나가.나온곳..감개무량.선배님들덕에잘살고.잍음메.😊
만물상자TV님은 연령대가 궁금합니다ㅋ
이런멋진영상만들기 쉽지 않은데 정말 대단하십니다.🎉🎉🎉
감사합니다.
12:50 부분이 개인적으로도 시청자 여러분에게
팍팍 꽂힐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중공군을 막기 위해 불벼락으로 벽을 친 셈인데
미 해군, 공군까지 모두 동원하고 나서야
간신히 흥남항에서 철수할 수 있었다는 의미입니다.
미군 역사상 이 정도 화력을 동원하고도
승리가 아닌 간신히 후퇴만 가능했던것은 아마 처음일 것입니다.
미국의 사령관들과 한국의 사령관들을 비교하는 마음만 아프고 속상하네요. 군인은 사령관의 용기와 군인 정신 그리고 국가와 부하를 사랑하고 국민을 지키려는 정신에 따라 목숨을 져버릴 수 도 있고 도망갈 수 도 있다고 생각 합니다.
선생님은 그냥 관심 있어서 찾아 보시는 건가요? 아니면 직업이 군인이거나 전공이 전쟁사 연구 하시는 건가요??
누구라고는 말을 못하지만 왠만한 자칭 군사 전문가들 보다도 ㄱㅊ은 퀄리티의 영상이네요 ^^
네. 과찬이십니다. 영상을 다 보셨다면 아시겠지만 자막만 해도 A4 10장 분량입니다. 원래 전쟁역사에 대해 관심이 무척 많았습니다. 보유한 서적도 다 그 분야 관련 책이구요, 특히 2차대전 관련해서는 정말 많은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이번 장진호 전투와 미 해병 1사단 이야기는 역사적 사실로 밝혀진 내용입니다. 중공군은 미 해병 1사단만은 정말로 잡고 싶었습니다. 미군 지휘부도 얼마나 조마조마했으면 항공기까지 보내 병력만이라도 구할려고 했겠습니까? 그러나 역시 해병대답게 모두가 걸어서 멋지게 탈출했습니다. 그런데 흥남항 바로 뒤까지 중공군이 쫒아온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더군요. 흥남철수 당시 왜 그렇게 피난민들이 쫒기듯이 배에 올라탔는지 알 수 있는 부분입니다. 그 사실이 너무나 긴박했던 순간이기에 나는 전설이다 라는 영화 장면까지 인용하여 여러분께 확 와닿도록 설명드렸습니다.
@@만물상자TV전쟁의신 나중에 진짜 2차대전과 한국전에 대한 심도깊은 대화를 나누고 싶을 정도로
진짜 대단하신 군사학 지식을 지니신 분 같아서 진심으로 존경스럽습니다.
설익은 지식이 아닌 심도깊은 지식과 대화를 나누는 것은 군사학 연구가 취미인 저로서는
진짜 대화가 통하는 그런 분과의 교류야말로
순수한 즐거움을 나눌 수 있다고 생각이 되어서.......
@@daewookkim4795 감사드립니다. 사실 매주 1회 올리는 컨텐츠가 이미 준비가 다 되었습니다. 그런데 노딱을 맞아서 못올렸어요. 내일 어짜피 풀리겠죠. 이제까지 항상 그랬으니까요.
어느 채널에서도 다루지 않았던 진주만 공습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다룰 예정입니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진주만 공습의 총 사령관 격인 야마모토 이소로쿠와 롬멜, 만슈타인의 공통점에 대한 컨텐츠입니다. 최고의 컨텐츠라고 자부합니다.
함흥에서 피난하신 우리할머니 ㅠㅠ 그 삶이 상상도 안됩니다 ㅠㅠ
주님 감사합니다 ~ 🎉
눈물이 납니다 !
감사드립니다.
서울을 두번째로 뺏긴 1.4후퇴 이후에도
우리가 잘 몰라서 그렇지 중공군은 줄곧 서울을 노렸습니다.
중공군의 공세는 그만큼 두렵기도 했고 집요하기 그지 없었던 것입니다.
때문에 한국이 위기에 처한 것은 낙동강 방어전 당시 뿐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가장 큰 위기는 1951년 1월 초였습니다.
그때 미국은 정말로 한국을 포기하려고 했습니다. 그 위기를 막은 전투가 있었으니 그 전투가 바로 지평리 전투였습니다.
UN군이 처응으로 중공군을 막아내고 이겼던 전투가 바로 그 전투였습니다.
ruclips.net/video/tvU6IlUfELA/видео.html (한국의 운명을 바꾼 지평리 전투)
나무 관세음보살...!
일설에 의하면 625전황과 유엔군 이동에 대한 보고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 정기적으로 보고 하였는데,
소련은 안보리 상임이사국 이였기에 이 전황 정보를 중공에 넘겼고 중공군이 1사단 진격에 대비했다는 설 이죠.
이런 류의 콘텐츠를 심층분석하는 것도 반면교사 이지만
우리가 6.25때 통일의 순간에 놓친 실수를 분석해 주시면 더욱더 감솨함다
아니죠. 미군이 전술핵을쓸 찬스를 놓쳤죠. 차라리 미군이 확실히 박살났더라면, 전술핵을 사용안할수가 없었죠.
스미스 아재.. 존멋 장군
미 해병대의 스미스 장군이 가졌던 고집과 끈질김, 그리고 그의 감투정신이 한국의 미래를 의도치 않게 결정짓게 됩니다.
이 영상을 끝까지 보신분은 그게 어떤 것이었는지 아시게 될 것입니다.
스미스 할버지 개존멋 이네
역사 잘 모르는 저도, 커다란 겨울전쟁으로 핀란드쏘련의 겨울전쟁, 스탈린그라드전투, 벌지전투 3개 나 알고 있습니다, 장진호 전투가 3대겨울전쟁에 들어가기는 힘들어 보여요😢 이 세 전투는 수십만명이 죽은 전투입니다
채널에서 틀린 이야긴 하지 않습니다.
장진호 전투는 세계사에서 인정한 세계 3대 동계전투입니다.
모든 언론, 모든 사료, 대부분의 역사학자가 그렇게 말합니다.
www.inews24.com/view/1282329
장진호 전투가 벌어진 장진호의 기온은 유럽의 벨기에와는 차원이 다릅니다.
이 당시 영하 40도까지 내려갔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만물상자TV전쟁의신 겨울전쟁, 스탈린그라드전투, 벌지전투는 수십만명이 죽은 전투입니다, 장진호전투는 그렇게 안됩니다. 링크한 기사를 보니 기자도 모르고 쓴 얘기 같네요, 다른 두 개의 전투가 뭔지에 대한 언급도 전혀없고
청천강~원산 라인 이정도가 한계인것 같아서 안타깝네요
만약 통일에 앞선 아주 걱정되는 라인입니다 중국이 만주,동북 코앞에 미국과 한국 세력을 절대 좌시하지 않을듯 우려됩니다 제일 좋은건 중국 망하면
간단히 해결되는데 쉽지 않네요 ~~
2024, 3, 6, 08:50
잘 보고 있습니다
맥아더장군 말을 투르먼이 들었어야 했는데 원폭 2방이 답이 었는데
미국 만세 우리 우방
고토리의 별 얘기도 있죠
끊어진 다리를 복구할 자재를
비행기로 실어 날아야 하는 상황에서
기상이 열악해서 비행기가 못뜨고
해병들이 고토리에서 모여있는데
그 날 밤 하늘이 맑아 지고 별이 뜨면서
다음 날 날이 개어 비행기로 자재 수송이 가능했죠
중공군이 참 악랄했던 것 같습니다. 미 해병 1사단을 타겟으로 해서 예상 후퇴로 다리까지 끊고 쫒아왔으니 말입니다. 다리를 고쳐가며 탈출했던 미군의 감투정신 또한 대단했습니다.
@@만물상자TV전쟁의신 스미스장군은
장진호로 진격하면서
밀려 내려가던 북한군이 다리를 폭파시키지 않고
미군이 다리를 통해 진격을 하게끔 내버려둔걸
이상하게 생각했습니다..포위작전일 수도 있겠다고
그래서 더욱 사단대형을 갖추었다고 하더군요
장진호 전투만 보면 승리자는....동장군....인류역사상 최악의 겨울전투....비전투손실이 보급이 그나마 좋은
미군이 비전투 전사가 어마무시한데 중공군은 답없슴.... 한 병단이 궤멸 직전까지....
10군단 공병이 황초령 수력 발전소 교량을 복구해 안전하게 철수 할수 있었죠^^
이순신장군님처럼 언제나 늘.... 사전 정찰과 첩보를
했다면... 다른 이유가.... 고귀하게 순국하신 국군과 미UN군께
감사와 깊은 애도를 표합니다. 단 결!!
이 컨텐츠를 다 보셨다면 아셨겠지만 당시 중공군의 추격은 정말로 집요했습니다.
12:10에 나오는 부분이 바로 그 부분입니다.
중공군은 탈출하는 미군의 뒤를 추격하여 흥남항까지 몰려왔고 아마 중공군이 흥남항까지 들어왔다면 대학살이 벌어졌을 것입니다.
미군은 압도적 숫자의 중공군을 해군의 함포사격으로 저지하며 시간을 버는 사이 피난민과 미군은 무사히 탈출하게 됩니다.
당연히 중공군 끝까지 추격할거라 예상했고 그나마,,, 만일을 위해 대비하신 스미스장군님 이 기적을 만드셨습니다 !!
단결!!
미 해병 1사단장 스미스 소장!
아무리 위에서 갈궈도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여 비행장과 야전병원을 만들면서 천천히 북진했던 그의 준비성!
바로 그것 때문에 미 해병 1사단이 살았고 대한민국이 살 수 있었습니다.
중공군 9병단은 미 해병 1사단을 추격하다가 완전히 녹아났고 이후 중공군 공세에 참여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나폴레옹도 모스크바 추위때문에
패전을 했었죠..몽골제국은 강화도를
건너가지못해 20여년을 고려를 넘지
못했구요..자연과의 전쟁은 할수없음
이 채널이 싫으시면 나가주세요~이들의 희생이 없었으면 우린 북녁의 그에게 노예로 사는겁니다.
이 컨텐츠는 싫고 좋고 문제가 아니라 역사적 사실입니다.
본 채널은 역사적 사실만 다룰 뿐입니다.
미 해병대가 얼마나 강력한 적수인지는 중공군도 잘 알았습니다.
그래서 당시 중국 언론에서도 미 해병대를 잡을 것인가? 말 것인가가 초미의 관심사였습니다.
이거 영화로 만들어 우리 후손에게 알리세요
이 컨텐츠와 연결되는 컨텐츠가 있는데요.
많은 사람들이 모르고 있습니다.
ruclips.net/video/jnKD01X1r1Y/видео.html (중공군만 만나면 도망쳤다고? 6.25 전쟁 국군의 굴욕, 국군 흑역사의 진실.)
이 컨텐츠를 보시면 장진호 이후의 상황을 아실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중공군 9병단까지 내려왔다면 한국은 그 때 망했을 것입니다.
네가 만들든가ㅋㅋ
@@이준희-f8k그러게... 님 같은 자식 만든 에미, 에비가 잘못이지ㅋㅋ
장진호 중국영화에 잘 나와있어요.
흥남하에서 살육이 있었다면
차이너는 지도에서 지워졌습니다.
미국은 철수
중국은 나라를 살린 딜이
흥남철수 입니다
저는 한국전쟁 당시 우리 국군의 지휘부와 일선 장교들, 병사들의 사명감과 싸우려는 의지를 의심하지 않습니다. 그조차 없었다면 딱 베트남전 당시 남베트남 꼴이 됐겠지요. 그러나 우리는 그리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면 뭐가 문제여서 국군은 미군에게 무시당했고 또 그래도 할 말이 없었을까요. 그건 경험부족이라고 봅니다. 광복 이후 편성된 국군에서 사단급 이상 군사조직의 조직화, 운영, 작전을 펼칠 수 있도록 교육받거나 경험이 있던 사람이 누가 있었을까요? 제가 아는 한 단 1명도 없었습니다. 소련 군사고문단에게서 군사조직의 조직화, 부대운영, 작전수립과 실행에 대해서 교육받고 군단급 직전을 훈련한 북한군에게 그래서 밀린 거라고 생각합니다. 즉. 북한군은 진짜 전쟁을 준비했지만 국군은 준비가 전혀 되있지 않았습니다. 그 상황에서 누가 싸워 이길 수 있었겠습니까. 장군이건 장교건 병사건 자신이 처한 상황에서 뭘 어떻게 해야할지 감도 못잡을 수 밖에 없는데요. 체계적으로 싸우는 조직과 뭐가 뭔지도 모르고 주먹구구로 싸우는 조직의 싸움이라니. 결과는 안봐도 뻔하죠. 그래서 미군의 역할은 클 수밖에 없었습니다.
말씀하신 것과 관련된 좋은 컨텐츠가 있습니다.
ruclips.net/video/eOQ7DdI4UJY/видео.html (국군은 사실 억울했다)
회원 전용컨텐츠입니다. 광고 없이 시청 가능합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국군에겐 억울한 점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것은 낙동강 방어전 이후 훈련도 제대로 받지 않고 엄청난 숫자가 징집되었다는 점.
북진을 할 때는 이것은 큰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만 중공군 참전 이후 큰 문제가 됩니다.
중공군 참전은 국군에게도 크나큰 시련이었습니다.
소피니언 디데아 채널에서 2년전 이 드라마틱한 사실은 다루었었지요~ 여기도 괜찮고 거기도 괜찮고 다 괜찮네요~
중공군 9병단이 영상의 요지 인거 같아요
그들이 대공세에 투입됐다면 상황이 많이 달라졌을듯하네요
미군도 철수를 잘 해서 병력유지에 성공해서
37도 선에서 저지가능했다고 봅니다
전쟁은 조그만 변수에 많이 좌우되는거 같습니다
저렇게 흥남에서 무사히 철수한 이후에도 국군과 미군은 계속해서 후퇴를 하는데요. 다시 서울을 빼앗기고 37도선까지 후퇴를 합니다. 거의 평택 삼척라인까지 밀린것이죠. 그런데 결국 중공군의 한계가 거기까지였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당시 미국에서는 중공군이 금강까지 넘어온다면 한국을 포기하기로 내부에서 논의를 끝낸 상황이었습니다. 미 해병 1사단을 잡느라 큰 피해를 입고 쉬고 있던 9병단이 함께 공격을 했다면 금강까지 왔을 거라는 것이 쉽게 추측이 가능합니다.
@@만물상자TV전쟁의신 맥아더라인까지 진격하고 거기서 좀더 신중하게 미군 배치를 했어도 중공군 대공세를 조금 저지함과 동시에 전선유지했을거라는 시각도 있던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제 생각에는 중공군이 이미 참전한이상
별 다를건없다고 봅니다만
@@77헌병대장 05:18 부분에 이미 질문하신 것에 대한 답이 이해하기 쉽도록 나오죠. 청천강-원산 라인에서 막았어야 했습니다. 맥아더 입장에선 북진을 빨리 마무리 짓고 크리스마스 전에 전쟁을 끝내려고 북으로 달렸던 것인데 문제는 청천강-원산 라인을 지나면 갑자기 방어전면이 확 넓어집니다. 방어가 어려웠죠. 중공군은 영악하게도 미군이 청천강을 넘자마자 공격을 해오게 됩니다. 더구나 미군은 군대를 양쪽으로 나눠서 진격했기에 중공군의 공격에 더 취약했습니다.
이 영상과 직접 관련은 없지만...미군은 ...마음만 먹었다면... 1950년 6월 이후로 다시 중공군과 북한군을 압록강선으로 밀어버릴 수 있었죠..그렇게 하지 않은 것은.. 그 선에서
전쟁이 종결될 지를 보장할 수 없었기 때문에..
맥아더는 핵폭탄을 중공에 쏘려고 했을까? (ruclips.net/video/YMBWYm1C_Cw/видео.html) 란 영상을 보셨는지요? 중공군에 대해서 미국이 어떤 액션을 취하려고 했는지 나와 있습니다.
이때 알몬드소장이었던걸로 알고 있습니다 미해병1사단장 스미스소장과 계급만 동급
특히 덕동고개 전투가 혈전중에 혈전이라는데
이 컨텐츠와 함께 볼만한 컨텐츠가 있습니다.
ruclips.net/video/SFtm1PhaHDI/видео.html (미국의 전쟁영웅은 왜 국군병사 2명을 총살시켰을까? feat.장진호 전투)
그나마 미 해병대는 준비가 되어 있었기에 포위를 뚫고 살아나왔지만
반대편에 있던 미 육군 7사단은 말 그대로 전멸을 당했습니다.
동양의 손자병법 그리고 과거의 서양의 병법서는 출발부터 다른거 같던데 동서양 많은 전술에 관한 책들이 있지만 환경적 지리적 상태에 따라 다르기때문에 결과 가지고 평가하기 어렵다
베트남참전해서 미국이 밀어줘 지금의 한국이다. 참전없었으면 아프리카..
❤❤❤❤
전쟁의 확전은 소련의 참전을 의미함 미국이 중공과 소련을 상대로 만주로 가기에는 커다란 이익이 없음 만주로 가면 쏘련도 불라디보스톡이 위험하기에 참전안할 수가 없을거고
해군공군 없었으면ᆢ
11:45 ruclips.net/p/PLoB3gj5gCeL_MsxZvhuUrFO--CvuoyE_h 장진호 전투. 보시면 참고 많이 될 듯 합니다.
입장이 바뀐 것 같은데요.
그 영상이 만물상자TV (전쟁의 신) 채널의 이 컨텐츠를 참고해야 할 것 같습니다.
본 컨텐츠에서는 미 해병 1사단이 장진호 전투에서 비록 후퇴했지만 미 해병대의 후퇴작전이
이후 중공군의 3차공세에까지 영향을 줬음을 분석하고 있으며
구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그 어떤 채널보다도 고증에 맞는 참고영상과 지도, PT를 통해 매우 자세히 설명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만물상자TV전쟁의신 답변 감사합니다. 링크 오류였습니다. 장진호전투 총 24회 시리즈의 프롤로그였습니다. 관심있는 시청자 분들께 참고로 올렸습니다.
부모님께서 미국에서 사업을 하셔서 전 미국에 태어나서 한국인 뿌리를 잊으면 안된다고 하여 중고등학교를 한국에서 나왔습니다. 한국에서 생활하면서 놀랍고 무서운점은 학교에서 몇 몇 선생님들의 알게 모르게 학생들에게 사상교육을 불어 넣는거였습니다. 실제로 미국이 주적이라 하셨던 선생님들도 있었고 제가 미국에서 왔다고 하니 온 갖 수업중 핀잔과 태클을 걸는데 너무 주눅들고 눈치보면서 학교 생활을 한적이 있습니다...😢
미군이 주적이라니요
좌빨선생이었네요.
전교조는 문제가 많죠
일본때문에 분단됐으니 일본의 기만술이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을 당했군요. 아직도 한국에서의 이념전쟁은 끝이 나질 않은 것 같습니다.
대단하신 부모님에 대단하신 자제분이네요. 부카니스탄 추종하던 전교조 마피아넘들에 넘 신경쓰지 마세요 이데올로기를 무기로 지 실속(돈과 자리)이나 챙기는 양의 탈을 쓴 늑대무리이니까요 어디 계시던 올바른 한국을 지키는걸 도와 주세요
12:50 크… 비유가
나는 전설이다의 좀비 개에 비유할 수 있을 정도로
중공군은 흥남항을 덮치려고 인해전술로 내려오던 중이었고
그것을 막은 것은 미 공군과 미 해군의 철의 벽이었습니다.
아마 제공권과 제해권이 없었다면 절대 탈출을 못했을 것입니다.
동부전선으로 투입된 중공군 17개사단중 12개사단이 전투불가상태로 망가졌다고 들었는데 이때문에 서부 동부 양 쪽진군하려는 중공군의 의도가 막혀버림 이래서 미 해병 1사단의 공로가 가장 큰 것임
타 유투버님에 애기를 들어보니 기존 2차세계대전 미국 1사단이 아니라, 모두 전역 또는 이동되고 대부분 신입이 이루어진 1사단이라고 해서 우리가 알고있던 예전에 1사단이 아니라고 했는데 맞나요?
미 해병 1사단은 당시 무적이라고 불리던 미국을 대표하던 부대였습니다.
말씀하신대로 잘 싸우는 정예부대는 이유가 있습니다. 미 해병 1사단은 인천상륙작전을 승리로 이끈 부대입니다.
그들은 2차대전에 참전했던 베테랑 예비군들까지 소집하여 만들어진 부대였습니다.
물론 신병도 있었습니다만 다른부대보다 2차대전에 참전한 예비역들이 많았습니다.
스미스 소장이 중공군 9병단을 성공적인 후퇴작전으로 궤멸시켰으므로 이후 작전에서 4개월간 빠지게 되므로 미 군 수뇌부의 한국전 포기 전략이 성립근거를 가지지 못하게 막은 효과
무슨영화죠?
어떤 영화를 말하는 것인지?
이 컨텐츠 제목과 같은 것을 말하는 것 같습니다.
영화처럼 감동적이란 뜻이겠죠
흥남철수시 아직도 남은 피난민이 10만정도 남아 있었더는군요
결국 북한 그쪽지역은 다 빈집이 었다는것
온 10만, 못온 십만
당시 보고서엔 결코 중공군이 많은건 아니었다고 합니다
중공군이 소수의 연합군 부대를
인해전술로 각개격파하여 공포 분위기를 조성
이때당시에un군과미군이 한국을2번씩이나 포기하려고했죠
당시 맥아더는 중공군이 그렇게 많이 쳐내려 올 것이란것은 예상 못했던 것 같습니다.
그후 인디언 태형까지 당하면서 자라보고 놀란가슴 중공군보고 놀라는 셈이 되었습니다.
@@만물상자TV전쟁의신 예상했다면 이겼을것같아요
@테스트 맥아더가 청천강.원산에 방어선을안친이유는 목표가 승리이기때문에 안친것같내요 물론 중공군을 과소평가해서 그런것고있겠지만
만약 장진호에소 다 전멸했더라면 한국에서 철수했을까요? 미군은?
미국은 한국을 포기했을 겁니다. 중공군이 미 해병 1사단을 잡으려 한 이유는 미국 내 사기를 떨어뜨리기 위해서였습니다. 미 해병을 잡으려다가 9병단이 아예 주저앉아버렸는데 미해병이 전멸당했다면 9병단도 피해가 당연 적었을 것이고 미군의 사기는 바닥을 기었을 겁니다. 그리고 3차대공세때 중공군은 9병단이 없어도 37도선까지 내려왔는데 이들이 합류했다면 어찌되었겠습니까? 당시 중공에게 하도 질려버린 미국은 중공군이 금강을 넘어오면 한국를 아예 버리고 떠날 생각이었습니다.
북한은 여자남자 군복무 10년 넘게함 새벽별 보기 운동이라고 새벽에 일어나 강제노역하고 새벽별 보고 집에 오고 강냉이 배급받으며
미군이 실제론 이겼네 중공군 8병단이 와해될정도로 망가졌은니
영상 말미에 결론을 내렸듯이 해병 1사단이 저렇게 버티면서 중공군에게 막대한 타격을 가했던 것이 결국엔 한반도 공산화를 막았다라는 것은 근래에 사실로 밝혀졌습니다. 중공군이 수원 이남까지 내려왔을 때 (1.4 후퇴) 사실 미군은 이승만도 모르게 큰 결정을 내립니다. 그것은 바로 중공군이 금강 선을 넘게 되면 그냥 한국을 포기하려고 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중공군은 국군과 미군의 처절한 방어전과 보급문제로 인해 내려오던 탄력을 잃어버려 금강선을 넘지 못하게 됩니다. 바로 이 때 미 해병 1사단에게 완전 녹아났던 중공군 9병단이 합류했다면 아마도 금강선을 넘지 않았을까하는 합리적 추측을 하게 되는 겁니다.
알몬드 바보 알몬드 바보
알몬드 바보 알몬드 바보
지휘관이 무능력하면 이런 사태가 벌어진다는. ...
해병1사단장 스미스 장군에게 감사와 존경...
같이 고생한 영국 코만도 한국인 카튜샤 한국경찰 기관총 부대에 고개숙여 감사를....
함께 함흥철수 못한 장진호 주변 피난민의 처참함에 눈물을....
한국에 멀티 한것임 ㅡㅡ
마국은 혈맹임에 트림없다.
우리가 베트남 파병은 돈벌러 갔고 미국의 용병이였을 뿐이다.
그래도... 피를 대신 흘려준건 맞죠 연합군중에 한국군이 잘싸웠던것도 맞고요
특히 알보병전술이나 희생이 큰작전 미군대신 투입된적도 많아요
미국과우리는 피를 대신 흘려준 혈맹임
이거 무슨영화에요? 잼서보이는데
본 채널은 전쟁 역사를 고증에 맞게 다루는 채널입니다.
이 컨텐츠의 제목과 같은 장진호 전투입니다.
미 해병 1사단, 북괴적진에서 ,,,
분전아닌 병력대비수론,,,
승리지만 종합적 판세 땜에. .
순국하신 미UN연합군님들께
애도와 경의를 표합니다. 단결!!
근데 국군중 해병대는 미해병대가 점령못한 고지를 점령할 만큼 전투력이 굉장했는데..해병대 도솔산 전투는 언제 다뤄주실른지요?
국군은 그나마 북한군과는 잘 싸운 편입니다.
그러나 중공군에겐 여러차례 패배를 겪은 것이 사실입니다.
국군이 점점 강력해지기 시작한 것은 1951년 5월 이후부터인데
이때부터는 패배의 횟수가 줄어들었고 승리의 횟수가 높아졌습니다.
그렇게 된 이유는 밴 플리트 장군의 공이 큽니다.
그러나 안타까운 것은 1951년 7월부터 휴전협상이 시작되었고
미국정부는 전쟁을 휴전으로 끝낼 계획이었다는 점.
그래서 그때부터 이전보다 드라마틱한 점이 없고
전선변화도 없는 고지전이 반복됩니다.
도솔산 전투도 바로 그 고지전이 벌어지기 시작한 1951년 6월에 일어난 전투입니다.
그런데 이런 류의 전투는 단독주제로 컨텐츠화하기엔
극적인 요소가 없습니다.
때문에 본 주제가 아닌 고지전을 주제로 한 컨텐츠에서 조금씩 다뤄야 할 주제입니다.
김성은이 지휘하는 국군 해병대의 활약을 언급한 컨텐츠가 있습니다.
ruclips.net/video/6eI65PeobIo/видео.html
(북한군 최강의 부대, 방호산의 6사단이 전라도에 머물렀던 이유.)
작전을 뉴스에 쁘리핑을 해버렸으니 ^^
크리스마스 공세를 언론에 발표하긴 했지만
세세한 작전 내용까지 언론에 이야기하진 않았습니다.
그런데 말씀하신 것 이상으로 공산측은 다 알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언론발표보다도 더 치명적이었는데요.
바로 미국의 동맹국인 영국 쪽에 엄청난 소련 스파이가 있었다는 점입니다.
맥아더의 북진계획이 모두 중공군 측으로 넘어갔음이 전후 확인되었습니다.
ruclips.net/video/hYHYz4M3oz0/видео.html (북진통일은 왜 실패했을까?)
과다카달. 전투에서 일본군을 도륙한부대~●
함흥에 철수 안하고 교도부를 만들었어도. . . .
함흥에 교두보를 만들지 못한 이유는
이미 원산항까지 중공군이 내려왔기 때문입니다.
중공군은 주로 산을 타고 내려왔는습니다.
미 해병 1사단이 장진호에서 싸우고 있을 때
이미 원산항까지 중공군에게 넘어간 상태였습니다.
ruclips.net/video/vcPXmaz40G8/видео.html
(피난민을 모두 태워라! 흥남철수작전은 미군이 미리 준비했던 작전이었다.)
위 컨텐츠에서 그 상황을 다뤘습니다.
당시 북한지역 동부전선에는 미군과 한국군 합쳐 4, 5개 사단이 있었고 미해병 1사단을 제외하고는 큰 피해를 입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이들이 비록 중공군에게 포위되더라도 막강한 미 해군과 공군의 지원하에 함흥, 흥남 일대에서 방어진지를 구축하고 버텼으면 한국전 결과가 달라졌을지도 모르죠. 서부전선에서 파죽지세로 남진하는 중공군의 뒷통수를 노릴수도 있죠. 실제 10군단장 알몬드 등 미군과 유엔군의 일부에서 흥남에서 철수하지 말고 버티자는 의견을 제시했습니다.
@@sjl8315매우 중요한 말씀이신데요.
평양을 왜 그렇게 내준건가?
아니 평양은 평지인데 평지야말로 미군의 독무대인데 왜??? 이런 의견이 당시에도 무척 많았습니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서부전선이었습니다. 완전히 뚫린 것입니다.
장진호 전투는 그나마 잘 싸운것이고
서부전선 청천강 전투에서 미 2사단이 해체 수준의 피해를 당합니다.
아군이 그냥 남쪽으로 내달린 것은 바로 이 때문입니다.
채널에서는 청천강 전투를 1~2부로 나눠 다뤘고 조회수도 높습니다.
꼭 시청해보시길 바랍니다.
ruclips.net/video/fMeGnCXu1A0/видео.html (청천강 전투 1부)
ruclips.net/video/hAVO0KzVsVs/видео.html (청천강 전투 2부)
북진 한계선까지만 갔어야함.
맥아더 장군님 감사해요
맥아더의 방심 때문에 포위 섬멸 당할 뻔한걸 간신히 철수에 성공한 전투가 장진호임 ㄷ
딱 인천 상륙까지만 잘했지.. 이후엔 헛발질 차라리 벤 플리트가 진정한 은인임
혼자만 살겠다고 헬기를 타고 도주한 ~~~😂😂😂
장진호전투와 흥남철수는 사실 중국이 2000년까지 50년간이나 중국인들에게 거의 말하지 않았던 전투입니다.
중국의 입장에서는 미군에 크게 승리한 전투인데 왜 50년동안 입다물고 있었을가요?
북한도 이 전투에 대해 별로 언급이 없고 미국도 오래동안 장진호전투와 흥남철수에 대해 입다물고 있었습니다.
장진호전투와 흥남철수는 6.25전쟁의 기타 모든 전투보다 한가지 특이한 점이 있는데 그것은 대규모 피난민과 함께 철수한 유일한 전투입니다.
미군은 장진호전투에서 처음에는 포위되여 큰 병력손실을 보았지만 그후 100키로이상 철수하는 길에서는 병력을 거의 잃지 않았습니다.
그 원인은 바로 그 "피난민"들때문입니다.
사실 미군은 "피난민"을 구조해서 같이 철수한것이 아니라 북한의 민간인들을 마구잡이로 잡아서 억지로 "피난민"을 만들고는 이들을 인질방패로 삼아 앞에서 막는 중공군의 총탄을 물리치고 뒤를 쫒아오는 중공군의 총탄을 막았던것입니다.
(생각해보면 누구나 상식적으로 인츰 알수있습니다:어느나라 피난민들이 전쟁터에 그것도 말도 안 통하는 처음 보는 미군과 중공군사이에 끼여들어 총탄을 맞으며 피난할리가 있어요?)
당연히 인질방패로 끌려다니던 북한의 "피난민"들은 중공군의 총탄에 맞아 사망한 사람도 꽤 많이 있어 중국은 오래동안 이 사실을 숨겨왔고 미군도 이런 비인도적인 사실을 말할리 없으며 북한도 자기들의 이런 치부를 들어낼수 없었습ㄴ다.
인질방패로 되였던 이들 피난민들이 없었다면 미군은 그 깊은 100키로이상의 험난한 산길을 전혀 빠져나갈수 없어 전멸할것은 불보다 뻔한 일이였습니다.
이 무슨 개소리?
장진호 전투 중공군 작전에 말려 미1사단 죽다 살아난거지 승리가 아니다
미 해병 1사단의 애초 목표는 한국 위주의 통일완료였습니다.
그러나 결국은 후퇴하고 맙니다.
하지만 미군 측에서 승리라고 했던 이유도 이해는 됩니다.
미 해병 1사단은 단 1개의 사단으로 무려 10개 사단을 격파하며 후퇴했습니다.
세계 전사에서 이것은 전례가 없는 일입니다.
당연히 위대한 승리지
전술적 승리 전략적 패배
중공인들의 정신승리 오지네.. 그래서 6배나 많은 2개군단의 병력 가지고도 1개 대대도 섬멸 못하고 그 1개 대대에게 괴멸적인 피해만 입고 재정비하는데 4달이나 걸렸어요?? 팽덕회가 머저리인건지??
@@이정수이정수-d9o글쎄요.. 중국 내에서나 명장 칭호를 받았을뿐 저건 명장 소리 둗던 팽적회의 명백한 실책이라고 볼수 있겠네요... 그 많은 병력을 갈아넣고도 미 해병대를 격파 못한건... 솔직히 그 군사교리에 젬병인 김일성에게 맞겨놨어도 그 병력가지고 포위를 못했겠습니까? 그정도 병력을 가지고 있다면 전술 개념이 정말 미약한 장수라도 미육군과 해병대에 그정도 피해는 줬을겁니다.. 이건 영상의 설명에서도 나왔듯이 빨리 전쟁을 끝내고 싶어했던 맥아더의 실책이 빚어낸
결과이지 팽덕회가 명장이여서가 아니였습니다. 정말 팽덕회가 명장이였다면 자신의 병력이 어떤 상황인지 인지하고 미해병대를 막고 후퇴만 시키면 되는거였습니다. 미해병대만 잡겠다고 그런 무모한 희생을 강요한건 맥아더 장군이 범한 실책과 별반 다를바 없다고 봅니다. 맥아더 장군이야 그 어렵다던 인천상륙작전을 별 피해 없이 성공시킨 전적으로 명장 소리를 들을 충분한 이유라도 있지만 팽덕회는 그 병력을 무의미 하게 갈아넣는 바람에 오히려 한반도 공산화를 이루지 못하는 요인중 하나가 되는 실책만 범했으며 이렇다 할 업적이 뭐가 있을지 의심스럽군요.. 그저 엄청난 물량을 쏟아붙고도 상대편 병력을 궤멸시키지 못한 그런 장수라는 평이 더 어울리듯 합니다... 적어도 명장 소리를 들을려면 저 악조건 속에서도 부대를 보존하며 후퇴시킨 미 해병대의 지휘자 정도는 되야 명장소리 듣기에 부족함이 없겠죠.. 이 전투가 전투에서는 이겼을지 몰라도 전략적으로는 진거나 다름 없다는 말이 괜히 생긴건 아니지 않습니까..
g랄땐스 하네
솔직히 이걸 중공의 승리로 봐야 할지.
그 압도적인 순간에 그토록 많은 피해를 입었고 생각보다 미군에게 큰피해를 입혔다고 보기는 좀
뭐 전술적인 승리 전략적인 패배라고 봐야 할지.
용문산 장진호 전투에서 거의 완벽하게 중공군을 몰아넣고 인디안태형을 통해 별 피해없이 작살낸 6사단을 보면 .
물론 그 만큼 미군이 강력했기 때문이긴 하겠지만요.
아무래도 공중지원 같은걸 기대 못했으니.
니아들.들이이전투.참가해도.한가한소리나오겟나.그추운날씨에.싸워준.우방장병들.에감사하고.명복빕니다.😊
미군만 추운것 알고. 중국군 추위몰라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