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중형 경비 초계정에서 예고없이 발포된 85mm포 기습 발사를 시발점으로 북한과의 교전이 시작되었다. 그와 동시에 사격대응명령을 내린 윤영하 소령(당시 대위)은 초탄 명중 이후 4분 후인 37mm 포탄이 함교에 명중해 아비규환이 된 찰나 저격수의 총탄에 등을 피격당해 몸을 떨다가 눈을 감고 일자로 누운 채 전사하였다. 이후 이희완 부장(당시 중위)이 의식이 없는 그를 대신하여 지휘권을 행사했다. 조타장 한상국 상사(당시 중사(진)) 역시 조타실 피격으로 전사하고 기타 승조원들이 중상을 입었으며 이어진 사격으로 인해 엔진이 정지되고 전력 공급 기기가 파괴되어 357정은 전투 불능 상태에 빠졌다. 엔진이 정지하여 전력이 끊긴 상황에서 부장 이희완 중위가 왼쪽 다리엔 고사총 탄두 관통상, 오른쪽 다리는 37mm 2연장 고사포탄에 부상당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진두지휘를 감행하였으며 20mm 시 발칸포가 전기 계통이 나간 상황에서도 비상 전력을 가동하고 공기 유압 펌프나 스위치 등으로 어떻게든 포를 조작하여 수동으로 발사했다. 전투 시작 12분 후, 22mm 발칸포 담당 병기사 황도현 중사(당시 하사)는 적의 집중사격 속에서 두부에 37mm 포탄을 직격으로 맞고 말았다. 그는 포격으로 인해 두부의 1/3이 함몰되어 없어진 상태였으며, 방아쇠를 잡고 안은 채 전사했다. 21mm 발칸포 담당 병기사 조천형 상사(당시 중사(진))는 등산곶 684호정 함교 뒷편 포좌의 ZPU-4 14.5mm 4연장 고사총과 포대 37mm 2연장 기관포 등의 집중 사격으로 인해 발생한 포탑 내부 화재로 인해 온몸에 심각한 화상을 입었으며, 유독가스로 인해 질식사했다.그리고 조천형 상사 역시 황도현 중사처럼 방아쇠를 잡고 안고 있었다. M60 기관총을 맡고 있던 내연부사관 서후원 중사(당시 하사)도 교전 중에 684호에 승조한 저격수에게 왼쪽 흉부를 관통 당해 그 자리에서 쓰러지며 전사하고 말았다. 갑판에서 소병기 사격을 담당하던 승조원들과 기관실, 통신실에 있던 승조원들 다수가 벽을 관통한 총포탄과 7호 발사관 등의 파편에 의해 부상을 입었다. 그 와중에 의무병 박동혁 수당시 상병)은 5군데나 총상과 파편상을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승조원들의 구호를 위해 분투했다. 그러나 자신의 눈앞에서 서후원 중사가 684호에 승조한 함상 저격수에게 왼쪽 가슴 심장 부분에 7.62mm 총탄 한 발, 오른팔에 파편을 맞고 전사하는 모습을 보자 분노하여 M60 기관총을 부여잡고 난사하다가 적의 집중적인 소병기 사격에 재기불능 상태가 되었고, 또 이를 보다 못해 극까지 참은 분노가 터져버린 권기형 상병은 자신의 왼손이 고사총과 파편에 부서져 왼쪽 손가락을 못 쓰는 상태로 서후원 중사가 전사한 거치대 앞에 뛰쳐나가 서후원 중사와 박동혁 수병이 쏘던 M60 기관총을 부여잡고 오직 오른손으로만 남은 잔탄을 그대로 등산곶 684호에 전탄 발사했다. 그 뿐만이 아니라 41포 병기장 황창규 중사가 사격을 마치고 나온 41포에 들어가 684호에 발사하려던 것을 황창규 중사가 그러다 죽는다며 함내로 끌고 들어갔다고 한다.최초 보고는 4명 전사 19명 부상, 실종 1명 무사고 4명이었다. 하지만 실종된 한상국 상사가 SSU 대원들에 의해 바다 속에 가라앉은 357호의 조타실에서 발견되었고 의무병 박동혁 수병이 후유증으로 사망하면서 6명 전사, 18명 부상으로 최종 집계되었으며 참수리 357정이 대파당한 것 때문에 전투후 침수 과다로 최종 격침당했다. 아군 함정들은 북측 함정이 퇴각하는 것을 레이더로 확인한 후 확전을 방지하기 위해 퇴각하였지만 참수리 357정은 기지로 돌아갈 수 없었다. 이미 ZIS-S-53 85mm 전차포 5발, V-11-M 계열 2연장 37mm 함포19발, ZPU-4 234발 도합 모두 258발과 88식 보총, 73식 대대기관총, 7호 발사관, 78식 저격보총, 31식 60mm 박격포를 포함한 각종 중화기 공격을 받고 격벽에 구멍이 뚫려 침몰하고 있었다. 357, 358정의 장병들은 358정의 해수 펌프까지 동원해 가면서 승조원 중 상당수가 부상당한 상황에서조차 배수작업을 했다. 배가 급격하게 우현으로 기울자 253 편대 소속 328정까지 가세해 357정 우현에 계류시켜 중심을 잡고 328정이 예인을 시도해 보았으나 이미 너무 피해가 컸기 때문에 침몰을 막을 수는 없었다. 결국 6월 29일 정오 참수리 357정은 바다 속으로 가라앉았으며 41일이 지난 8월 9일 바닷속에 잠겨있던 참수리 357호를 인양했으며 실종된 한상국 중사의 시신도 수습되었다
북한 중형 경비 초계정에서 예고없이 발포된 85mm포 기습 발사를 시발점으로 북한과의 교전이 시작되었다. 그와 동시에 사격대응명령을 내린 윤영하 소령(당시 대위)은 초탄 명중 이후 4분 후인 37mm 포탄이 함교에 명중해 아비규환이 된 찰나 저격수의 총탄에 등을 피격당해 몸을 떨다가 눈을 감고 일자로 누운 채 전사하였다. 이후 이희완 부장(당시 중위)이 의식이 없는 그를 대신하여 지휘권을 행사했다.
조타장 한상국 상사(당시 중사(진)) 역시 조타실 피격으로 전사하고 기타 승조원들이 중상을 입었으며 이어진 사격으로 인해 엔진이 정지되고 전력 공급 기기가 파괴되어 357정은 전투 불능 상태에 빠졌다.
엔진이 정지하여 전력이 끊긴 상황에서 부장 이희완 중위가 왼쪽 다리엔 고사총 탄두 관통상, 오른쪽 다리는 37mm 2연장 고사포탄에 부상당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진두지휘를 감행하였으며 20mm 시 발칸포가 전기 계통이 나간 상황에서도 비상 전력을 가동하고 공기 유압 펌프나 스위치 등으로 어떻게든 포를 조작하여 수동으로 발사했다.
전투 시작 12분 후, 22mm 발칸포 담당 병기사 황도현 중사(당시 하사)는 적의 집중사격 속에서 두부에 37mm 포탄을 직격으로 맞고 말았다. 그는 포격으로 인해 두부의 1/3이 함몰되어 없어진 상태였으며, 방아쇠를 잡고 안은 채 전사했다.
21mm 발칸포 담당 병기사 조천형 상사(당시 중사(진))는 등산곶 684호정 함교 뒷편 포좌의 ZPU-4 14.5mm 4연장 고사총과 포대 37mm 2연장 기관포 등의 집중 사격으로 인해 발생한 포탑 내부 화재로 인해 온몸에 심각한 화상을 입었으며, 유독가스로 인해 질식사했다.그리고 조천형 상사 역시 황도현 중사처럼 방아쇠를 잡고 안고 있었다.
M60 기관총을 맡고 있던 내연부사관 서후원 중사(당시 하사)도 교전 중에 684호에 승조한 저격수에게 왼쪽 흉부를 관통 당해 그 자리에서 쓰러지며 전사하고 말았다.
갑판에서 소병기 사격을 담당하던 승조원들과 기관실, 통신실에 있던 승조원들 다수가 벽을 관통한 총포탄과 7호 발사관 등의 파편에 의해 부상을 입었다. 그 와중에 의무병 박동혁 수당시 상병)은 5군데나 총상과 파편상을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승조원들의 구호를 위해 분투했다. 그러나 자신의 눈앞에서 서후원 중사가 684호에 승조한 함상 저격수에게 왼쪽 가슴 심장 부분에 7.62mm 총탄 한 발, 오른팔에 파편을 맞고 전사하는 모습을 보자 분노하여 M60 기관총을 부여잡고 난사하다가 적의 집중적인 소병기 사격에 재기불능 상태가 되었고, 또 이를 보다 못해 극까지 참은 분노가 터져버린 권기형 상병은 자신의 왼손이 고사총과 파편에 부서져 왼쪽 손가락을 못 쓰는 상태로 서후원 중사가 전사한 거치대 앞에 뛰쳐나가 서후원 중사와 박동혁 수병이 쏘던 M60 기관총을 부여잡고 오직 오른손으로만 남은 잔탄을 그대로 등산곶 684호에 전탄 발사했다. 그 뿐만이 아니라 41포 병기장 황창규 중사가 사격을 마치고 나온 41포에 들어가 684호에 발사하려던 것을 황창규 중사가 그러다 죽는다며 함내로 끌고 들어갔다고 한다.최초 보고는 4명 전사 19명 부상, 실종 1명 무사고 4명이었다.
하지만 실종된 한상국 상사가 SSU 대원들에 의해 바다 속에 가라앉은 357호의 조타실에서 발견되었고 의무병 박동혁 수병이 후유증으로 사망하면서 6명 전사, 18명 부상으로 최종 집계되었으며 참수리 357정이 대파당한 것 때문에 전투후 침수 과다로 최종 격침당했다.
아군 함정들은 북측 함정이 퇴각하는 것을 레이더로 확인한 후 확전을 방지하기 위해 퇴각하였지만 참수리 357정은 기지로 돌아갈 수 없었다. 이미 ZIS-S-53 85mm 전차포 5발, V-11-M 계열 2연장 37mm 함포19발, ZPU-4 234발 도합 모두 258발과 88식 보총, 73식 대대기관총, 7호 발사관, 78식 저격보총, 31식 60mm 박격포를 포함한 각종 중화기 공격을 받고 격벽에 구멍이 뚫려 침몰하고 있었다. 357, 358정의 장병들은 358정의 해수 펌프까지 동원해 가면서 승조원 중 상당수가 부상당한 상황에서조차 배수작업을 했다. 배가 급격하게 우현으로 기울자 253 편대 소속 328정까지 가세해 357정 우현에 계류시켜 중심을 잡고 328정이 예인을 시도해 보았으나 이미 너무 피해가 컸기 때문에 침몰을 막을 수는 없었다. 결국 6월 29일 정오 참수리 357정은 바다 속으로 가라앉았으며 41일이 지난 8월 9일 바닷속에 잠겨있던 참수리 357호를 인양했으며 실종된 한상국 중사의 시신도 수습되었다
6분던ㅎㄷㄷ
연평해전 남친이랑 같이보러갔는데 영화관에서 자꾸 자기군대얘기하길래 팝콘으로입막고 영화봄
그…..연평해전 사건 을 영하 까지….근데 너무 마음 이아프네ㅠㅠㅠㅠ😢😢😢😢 무언가에 희생을 해주신분 감사합니다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댓가 : 1계급 특진
성수대교 붕괴사고 해주세요
혹시 일본 비행기 123편 사고 할수있어요?
Aㅏ................
저때 어린 애들 불쌍하다 진짜
하..아니지 그때면 나보다 거의 5~6살 연상이었으니 형아들이지.
357보면 모를수없지...ㅜㅜ
근데 우리가 지금 싸우면 끝까지 밀고 갈수 있지
그냥배? 그때 거기에 있어으면 그런말 못나온다
이야...16분전?!
미룬이 사태햐주세요 짭이 못따라하개
앞으론 조금만 간추려서 설명해주시길 ㅠㅠ
사건이 너무 알고싶은데 귀차니즘 때메 못읽음
나영이 사건요
8분전ㅎㄷ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