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모습은 그 당시를 정말 많이 순화해서 보여준겁니다. 내 친구 아버님. 친척 삼촌. 친척 작은 아버지. 주변 사람 세명 이상이 하늘로 가셨던 때라 정말 기억이 또렸했던 그때입니다. 죽는 사람 정말 많았습니다 저때. 그리고 그때가 겨울이어서 정말 많이 추웠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때를 버틴 우리 부모님 자랑스럽고 대단하다 생각합니다.
전 91년생인데 응사는 정말 많이 순화했죠. 그 때 초등학교 들어간게 98년도인데 친구들 사이에 부모님 이혼은 정말 많았고 둘중 한분이 ㅈㅅ하는 경우도 종종 들렸고, 길거리 가게마다 셔터에 온통 테이프로 X쳐놓고, 대낮에도 A4용지와 박스들이 찬바람에 휘날리는 정말 싸늘하고 무서운 날들이었죠. 저희 어머니도 아버지와 사내 결혼하셨다가 둘 중 한명은 구조조정해야한다기에 어머니가 퇴사하셨고, 수많은 일을 하시며 저와 동생을 키웠습니다. 이혼 안하시고 무사히 이 시대까지 살아주신 부모님이 감사할 뿐이죠. 이젠 스스로 밥벌어먹고 사는 지금도 참으로 지옥같지만, 그렇다고 IMF만 했을까 하는 싶은 생각도 종종 듭니다 …
저때 중학생이였는데 정말 힘들고 어려운 사람들 많있는데 우리 부모님은 사업을 하셨는데 그래도 질 버티셨던거 같네요 저보고 같은반에 밥못먹는친구 있으면 같이 먹으라고 반찬밥을 항상 더 주셨고 그때 같이 먹던 친구들이 같은 고등학교가서 지금도 보는 친구들 입니다 제가 힘들때 돈빌려주면서 달라는 소리 안한다 대신 오디가서 역락 안하거나 도망치지는 마라 라고 그친구들이 그때 하나같이 말했던게 그때 니밥 아니였으면 너무 슬프고 서러웠을 거라고 말하던 친구들 부모님의 그 배려에 제가 오히려 복을 받은거 같아 항상 고맙고 감사하네요 지금은 저 포함 다들 잘 살고 있어서 다행이지만 또 그런 시절에 오는것 같아서 한편으로는 마음이 불편한것도 있는 요즘이네요
요즘 애들이 저 때의 무서움을 알까... 화기애애하던 동네가 어느순간부터 싸움하는 소리가 들리고.. 아침에 양복입고 나가던 아빠엄마들이 갑자기 츄리닝 입고 새벽부터 나가시고.. 수학여행도 다 취소되고... 갖고싶은 거 하고 싶은거 많았던 질풍노도의 학생들이 갑자기 아무것도 못하고... 통학 차비 아끼려고 자전거 타거나 걸어다니고.. 진짜 저 때는..뭐든 해보겠다, 하고싶다는 말 하는 것조차 눈치를 보고 하거나 그 마음을 접어야 했던..근데 나라 돌아가는 꼴 보면 자꾸 저 때를 그리워 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은 거 같다..돈 있는 사람들은 저 때가 황금기였으니..
@@icpolice84 일본 단기차관만 없었다면 IMF 까지 가지 않았을텐데 마지막 총알은 일본이 단기차관 관례적으로 연장 시켜주던것 몽땅 빼가버린 것이죠. 정부 고위직이 일본가서 제발 단기 차관 연장 시켜 돌라고 했는데 일본 수상은 만나 주지도 않고 일본 관리들은 단호하게 NO.. 결국은 IMF 로 .. 그뒤 오랫동안 일본 단기 차관 꼭 필요하지 않으면 막았는데 이명박 다시 완전 개방해서 불안했음 또 다시 IMF 된다면 일본 단기 차관이 뇌관 될 것 같네요. 일본도 실수한 것이 그때 IMF 가지 않도록 마지막 순간에 도와 주었다면 일제시대 만행 많이 희석되고 협력하는 사이 되었을텐데. 우리나라 IMF 되고 나서 많은 이권을 일본이 미국과 같이 가져 갔습니다만 우리나라 그 전까지 도저히 해결하지 못했는 이자도 못내는 좀비기업을 2달 만에 싹 다 없애 버리고 국민들과 기업들 이빨 꽉 깨물고 살아남기 위해 혁신에 혁신을 거듭해서 세계 시장에서 일본 압도해 버렸습니다. 일본이 우리나라 살짝 도와 주기만 했어도 이웃나라와 좋은 관계. 경제적으로 건전하게 서로 발전. 협력 할 수 있는 순간을 날려 버렸습니다
근데 체감상 1~2년만 살짝 그랬지. 그리고 사실 공무원이나 기타 안정직업, 혹은 다른 안정수익 있는 사람들은 그렇게 체감 못했기도.. 그리고 그런집안 아이들도.. 왜냐면 솔직히 그때가 그립긴 하거든요. 그때도 우리나라 엄청 잘살아서 망했다 망했다 했어도... 솔직히 굶어죽는 사람은 못들어봤어요. 그때도 무료급식이나.. 오히려 그 땐 교회같은곳에서 일요일마다 밥 같이 먹는 분위기였고. 요새처럼 외부인 경계 안하고, 진짜 도움주고 나누려는 마음이 지금보다... 그 벽이 낮았어요. 경계하고 그런 게 없이.. 나누는것도 의심없이, 조금 더 쉬웠달까. 옆집에서 밥먹고 엄마 기다린다.. 이게 쉬운 시절이란 게.. 체감. IMF 였대도 저때 이웃애가 밥먹는다고 겨우 한끼로 눈치보고 입하나 걱정 그런시대는 아니었다는 말을 하는거임. 지금처럼 해외여행 못하고ㅡ 이런 느낌이 저 땐 백화점 옷 못입고 외식 못하네! 이 정도...? 진짜 가정의 생계가 위협받아서 뿔뿔이 흩어진 가족들도 있긴 했지만.. 반 40명~45명중에 전학와서 고아원 산다고 알려진애만 딱 1명이었음. 걔 말고는.. 내 기억이 맞다면 전학 간 애도, 전학온 애도 없었고. 다른반에도 누가 전학왔다면 소문 쫙 났을텐데. 걔 말고는 부모님이 이혼했대도 그냥 숨기고 학교다니는 애들이 많았으려나...? 근데 그때만해도 진짜 이혼하면 큰일인거라 숨기고 그랬던 건 맞지만, 또 애들이라 친구들한테는 얘기해서. 많았다면 그 중 한두명이라도 소문 안 날 수가 없었을텐데. 거의..진짜 거의 없었음. 아니 사실 한명도 못봤음. 내가 몰라서 그런걸로치면, 숨겨서 몰랐던거라면 그 숨긴 애들 수가 엄청 적었기에 가능했단 건데.. 우리동네가 그닥 잘사는 동네도 아니었고. 그냥 평범하게.. 달동네 시장장사꾼집안부터 일반회사원, 공무원, 사업가.. 집안 아이들이 다 같이 섞여있는 그런 학교였는데. 솔직히 못 산다면 못 사는 그런 동네였는데... 원래 못살아서 타격이 없던건지.. 근데 뉴스에선 매일 자살뉴스, 다큐에선 고아원에 아이들이 버려진다.. 자극적으로 매일. 어쩌면 내 기억은 TV 에서 어느정도 조작된건지도.. 란 생각이 드네요. 직접적으로 본 적이 별로 없어.. TV에선 Hot랑ses , 젝키, 핑클등등이 노래하고 춤추고 있었고.. 이른 아침에 잠에서 깨어~ 아줌마들의 NO.1 김종환.. 상받고. 쿵짝쿵짝. 교회에서는 성탄절 행사와 선물이... 팬덤애들은 그때도ㅋ 응7 나온것처럼 머리채잡고 싸우고 있었고.. 부모님 용돈받아서. 나라망했다해도 그게, 진짜 가정이 망하지 않은 이상 체감하기 힘들었다는 말을 하는겁니다...ㅎ ㅠ
저 당시엔 전세계가 빚을 빌려 사업하는게 당연한거였고, 한국도 빚듀 자산이며 빚 빌리는걸 실력으로 봐줬음 시작은 미국이 달러가치 확보를 위해 미국과 거래하는 기업과 은행들에게 강제로 부채비율을 일정 이하로 맞추라 명령. 그당시 세계최대규모였던 일본은행들은 부채비율 낮추려 해외로 발려줬던 돈을 싹 끌어가버림 문제는 그당시 한국 대부분의 기업과 은행들은 일본에서 단기, 초단기 빚 위주로 빌렸다는거. 일본은행의 제로금리 공짜돈을 빌려와 한국에 풀며 신나게 땅짚고 해엄치던 상황에서 갑자기 일본은행 돈 갚아라 해버리니...기업이든 은행이든 대부분 배째라며 드러누워버림 그상태에서 국제투기세력들이 동남아를 타켓으로 공격했다가 한국까지 끌려들어간 케이스. 한국 기업들아나 정부가 너무 안이했던 결과. 최소한도 그딴거 없이 풀로 빚을 써다가 한방에 골로 간거 동남아와 달리 절대 장사를 못해서 부도가 난게 아니라 아시아의 5룡이라며 장사 잘 하다가 일시적으로 돈(달러)가 부족해서 일어난 일 그때까진 한국은 그런 현금흐름관리에 관심도 없었고 하지도 않았었다는거
고등학교때인데 점심시간에 도시락 못 싸오는 친구들이 많이 있었다 애들이 다 한입만 했었다 식당에서 밥 사먹으면 4~5명이 붙어서 한입만했었다... 진짜 물로 배 채우는 애들도 있었고 부모가 직장에서 짤리고 빚이 많아졌다는 사실에 애들까지도 빚쟁이 처럼 살았었다... 정말 힘들었다
IMF 사태가 우리나라에만 국한된게 아니었지요. 그때 97년 대학생때 인턴으로 캐나다에서 금융계에서 일했습니다. 태국 부채사태가 악화된게 4월이었습니다. 그때 저희 팀 매니져가 이제 다음은 말레이고 그후는 한국이다 하며 미리 포지션을 준비하더군요. 저는 초짜라 아무것도 모르고 그냥 시키는 일 했는데 바로 부채를 몰게지 담보로 하는상품으로 전환시키는 일을 했습니다. 한국 사태가 터지고 곧바로 치러 들어가더군요. 이렇게 미리 일이 터질것을 안 사람들 많습니다...돈들 많이들 벌었지요.
@@LooxJJ 국내에서는 정부가 경제 튼튼하다고 거짓말 해서 몰랐는데 외국에서는 몇 달 전 부터 알고 준비했군요. 새로운 사실 알게 되었네요. 동남아 무너지니 김영삼 정부 동남아 지원 한다고 한 기사도 봤습니다. 정부 고위 부처도 우리나라 경제위기 알았을텐데 무슨 배짱으로 5억 달러 지원을..기가 막힙니다. 말레이시아는 모르토륨 선언해서 벗어났지요. 식량자급자족. 석유 등 광산물 풍부하니까 배째라고 버티니까 외국 금융기관들이 화를 내면서 말레이시아는 앞으로 절대 투자 안한다고 두고 보자고 했지만 경제 호전되니 말레이시아에 다시 돈 싸들고 들어가는 외국 금융계들..ㅋㅋㅋㅋㅋ 러시아도 옛날 모르토륨 선언 해서 경제 위기 벗어난 적이 있지요. 우리나라는 석유와 식량 자급자족 안되니 이 비장의 카드를 쓸 수도 없었고...
저 94학번...고딩때 그 잘나가던 친구집...부산에서 도급순위 ㅣ위 였던...ㅣ위가 망해버린 정도였으니.. 그 친구집 놀러가면 드라마에서나 보던 그런옷을 입은 어머니가 과일 주시고... 그 친구가 산중턱 월세방으로 이사가고, 아버지 술병 때문에 매일 저녁 소주 두병씩 사서 집에 가고... 정말 힘겹던 시절 생각나네요...
버스에서 들려오는 뉴스는 절망적인 게 대부분이었고, 어떤 회사에서 구인을 하면 그걸 라디오 뉴스 프로그램에서 알려줄 정도로 살벌했던 시절.. 당시 난 소기업에 다니고 있었는데, 국내 고객사 하나가 1억 부도를 내고 해외 거래처 결제를 못해주는 힘든 상황이었지만 , 다른 쪽 일들이 잘 풀려 보너스는 없어졌지만 적은 월급이나만 한 번도 밀리지 않았고, 주말에 하던 과외에서도 수입이 있어서 다른 사람들에 비해서 잘 보냈던 것 같다.
대학교때 남자는 군대 도망이라도 갈려고 지원하니 그것도 너무 밀려서 기다려야 했고 알바자리는 없고 도시락싸서 다니고 한집 건너 실업자 나오고 공무원으로 슬 분위기가 쏠리고 다음해에 군가산점까지 없애고 나라가 엄청힘든시절 지금은 40중반이넘었고 한번씩 부하직원들에게 이야기 해주면 꼰대 부터 믿기힘들다는 표정들 참 힘들었음
@@user-jg9ds4ob3c 그니까. 한국 이미 2아웃임. 일제 때 나라 팔아먹은 것들이 더 잘 살고, 금 모아서 나라 살렸어도 결국 정치인이랑 기업만 배부르고 반지하에서 물에 빠져 죽는 사람이 나와도 대처하지 않는 나라가 됨. 이 상황에서 위기오면 과연 국민들이 희생해서 나라 살리려고 할까? 나만 해도 안 할 거 같음.
@@user-jg9ds4ob3c금모으기는 애초에 외한위기 자체가 가계에 있지 않은데 일방적인 희생강요로 만들어진 모금이지. 그래도 그때는 그냥 냈음. 왜?이렇게 하면 더 나아질거라 믿었으니까 ㅋㅋ 결과는 모두가 알다싶이 비정규직 정규직 구분 확대, 사회 신뢰지수 감소, 남녀갈등, 부동산 폭등, 저출산, 피해의식 지수 1위, 자살율 1위, 청년 우울증, 초고령화, 법률의 관료제에 의한 폐습, 당파싸움, 언론통제, 이념갈등, 무조건적인 반일반중반미, 결혼률 감소+이혼률 증가, 사상최초 집단자살국가(자연소멸국가) ㅋㅋ 스노우볼은 이미 굴러갔고 막기에는 너무 커졌음. 해결할 수 있다는 낙관적인 믿음으로 점철된 머리 꽃밭들은 이제 도태된다
저때부터 계속 힘들다 힘들다 했다 99년 실업계 고3이였는데 그때 거의 취업이 안들어와서 내가 일자리 구해서 나갔다 그때부터 계속 계속 경제가 어럽다 어렵다 그랬다 사회 초년생 부터 지금까지 어렵다 한다 그세월도 조금 있으면 횟수로 25째 듣는다 사실 나는 어려운거를 느끼지를 못하겠다 도대체 경기 좋을때 는 어때낄래.
정부가 돌아오는 외화부채를 확실히 대비한게 아니라, 부채연장이 자동으로 될 것이라 생각한 안이한 재경부와 부동산투기에 열올리던 대기업, 외환위기가 오니, 제일 먼저 돈을 회수한 일본,성공한 투기자본들... 다른나라에 알토란 같던 많은 것을 넘긴 기업들 억울했지. 많은 종자들이 일본으로 넘어갔지.
97년 겨울. imf로 건설사 협력업체였던 부친 회사가 휴지조각으로 전락한 약속 어음 때문에 우리집도 거지됨. 수능 끝나고 얼마 뒤 빚쟁이들이 아침부터 몰려오더니 돈 내놓으라 난리고 아비규환의 집을.뒤로하고 학교를 가야했음. 그나마 있던 집을 팔고 빚잔치 후 쓰러져가는 빌라로 이사갔고 모친은 인근 식당 설거지 부친은 막노동을 나갔음. 나도 합격했던 은행 창구직 취소되고 전문대로 진학했는데 학비는 어떻게 마련은 했지만 생활비가 없어서 점심은 굶었음 친구 아버지는 비관해 ㅈㅅ하고 얼마 뒤 친구도 ㅈㅅ함. 어느 집은 일가족 전체가 사라지거나 원양어선 타겠다머 떠나기도함. 97년 11월은 imf 시작이었지만 98년은 수많은 사람들이 길바닥으로 한강다리로 산으로 생을 놔버린 시기임. 그래서 현 40대 이상은 국짐을 절대 지지 못하는거임. 얘들이 당시 집권여당이었고 정부였는데 imf 터지기 직전까지 언론을 동원해 안전하다 쉴드치면서 눈과 귀를 막아버림. 그리고 이 시기에 검은머리 외국인들이 최대 호황을 누렸음.
@@dsafwesf ㅎㅎ 보수 지지하는 사람들에게 물어보길. 김영삼을 진보라 생각하냐고. 그리고 김영삼은 민주당에서 배출 된 대통령이 아님. 삼당 합당으로 배출 된 보수의 대통령임. 그래서 보수에서 유일하게 우리 대통령이라 거론할 수 있는 사람이 김영삼임. 그 이전 이후 대통령 그 누구하나 국짐에 사진이 걸려있는거 봤음? 모두 범죄자이거나 군부독재로 독재를 했던 사람들이라 사진을 못 걸어두는거임. 그나마 유일하게 내세우는게 김영삼인데 imf를 불러 일으킨 사람이라 그마저도 쉽지 않음.
@@fk6078 1달러 2000원 까지 올라가서 수입 원자재 비싸지 않으면 수출기업 엄청 돈 번 시기였습니다. 수출기업 다니시던 아버지는 행운아 였습니다. 그런 회사는 많이 없었죠. 보통 대다수 국민들은 나라 경제 망하니 먹는 것도 줄이고 해서 농촌 어촌 다 힘들어지고 대다수가 비참해 졌습니다.
@@땜쟁이-r5f 마지막 줄임표가 좀... 여러가지 해석 가능하게 만드네요 한나라당 김영삼이 갱제 갱제 거리다 만들었는데 그때 김영삼에게 불안해 하는 사람들 있어서 대통렁 후보때 구호 중 ''경제는 잘하는 사람에게 맡기겠다'' 고 거짓말을 했지요. 아들 헌철이와 함께 자기 멋대로 경제 주무르다가 나라 망함
저렇게 힘든시기였으나 나랏님들은 다이너스티를 새로 뽑아 타고 다녓지... 우리집은 크게 타격 없었지만 친구들은 하나같이 힘들었고 울상이고 한명은 연락도 안되고 집에 가보니 문열려있고 개난장판이였음... 내친구는 잘못한거 없는데... 왜 저리 힘든걸 8살 밖에 안된 아이가 경험하고 받아드려야한건지 모르겟음 잘못은 DJ YS +나랏님+기업이 한거지 내친구가 한거 아니잖아...
저 모습은 그 당시를 정말 많이 순화해서 보여준겁니다. 내 친구 아버님. 친척 삼촌. 친척 작은 아버지. 주변 사람 세명 이상이 하늘로 가셨던 때라 정말 기억이 또렸했던 그때입니다. 죽는 사람 정말 많았습니다 저때. 그리고 그때가 겨울이어서 정말 많이 추웠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때를 버틴 우리 부모님 자랑스럽고 대단하다 생각합니다.
그때 살아 남은 사람들도 인사이드에 다시 들어가지 못하고.
가정파탄 파산으로 힘들게 겨우 겨우 살아가다가 더이상 견딜 수 없는 50대...요즘은 자살률 가장 높습니다.
전 91년생인데 응사는 정말 많이 순화했죠. 그 때 초등학교 들어간게 98년도인데 친구들 사이에 부모님 이혼은 정말 많았고 둘중 한분이 ㅈㅅ하는 경우도 종종 들렸고, 길거리 가게마다 셔터에 온통 테이프로 X쳐놓고, 대낮에도 A4용지와 박스들이 찬바람에 휘날리는 정말 싸늘하고 무서운 날들이었죠. 저희 어머니도 아버지와 사내 결혼하셨다가 둘 중 한명은 구조조정해야한다기에 어머니가 퇴사하셨고, 수많은 일을 하시며 저와 동생을 키웠습니다. 이혼 안하시고 무사히 이 시대까지 살아주신 부모님이 감사할 뿐이죠. 이젠 스스로 밥벌어먹고 사는 지금도 참으로 지옥같지만, 그렇다고 IMF만 했을까 하는 싶은 생각도 종종 듭니다 …
저희 아버지는 정말 운이좋았던것같습니다... IMF 터지기 직전에 취직에 성공해서 하지만 월급체불이 무려 6개월동안 지속되어서 주변 친척들로부토 돈도 많이 빌리고 그랬었죠... 정말 힘들었습니다..
이 시절을 견디고 견뎌 나를 키워주신 부모님이 너무 대단함....한몸 건사하기도 힘든 시절이었는데..ㅜ ㅜ
이 댓글에 눈물이나ㅠㅠ
진짜.....
@@오타쿠덕구 해드리고 있지 넌
@@오타쿠덕구 혼자서 힘들었겠네 화이팅
ㅠㅠ 나 주식 처음 말아먹은게 고려증권
친구가 그 회사라 알아서 사라 했더니 고려증권
금융회사는 절대 망하지 않는다 하더만 확 망해서리 ...
고려증권이 망했구나.. 그래 이상하게 안보이더라... 유명했는데.. 그나저나 어쩌다가 고려증권을 사서 왜 그랬어
친구말이 아얘 틀린건 아님.. 은행은 왠만해서는 절대 안무너짐 돈으로 돈을만들고 신뢰로 돈을 가져오는 애들이니까.. 근데 이런애들이 무너진다는말은 돈을 만들어줄사람, 돈을 맡겨주는 사람들이 이미 전부 무너졌다는 뜻임..
@@마스터-k3n아니 형님 30년 다되가는 일인데요 ㅋㅋ
@@마스터-k3n신박하다
백년이 넘어가도 ... 망한건 맘 아프다 @@jhpakr8742
저때 중학생이였는데 정말 힘들고 어려운 사람들 많있는데 우리 부모님은 사업을 하셨는데 그래도 질 버티셨던거 같네요 저보고 같은반에 밥못먹는친구 있으면 같이 먹으라고 반찬밥을 항상 더 주셨고 그때 같이 먹던 친구들이 같은 고등학교가서 지금도 보는 친구들 입니다 제가 힘들때 돈빌려주면서 달라는 소리 안한다 대신 오디가서 역락 안하거나 도망치지는 마라 라고 그친구들이 그때 하나같이 말했던게 그때 니밥 아니였으면 너무 슬프고 서러웠을 거라고 말하던 친구들 부모님의 그 배려에 제가 오히려 복을 받은거 같아 항상 고맙고 감사하네요 지금은 저 포함 다들 잘 살고 있어서 다행이지만 또 그런 시절에 오는것 같아서 한편으로는 마음이 불편한것도 있는 요즘이네요
부모님도 멋지시고 그 은혜를 잊지 않은 친구분들도 멋지시고 그걸 감사하게 생각하는 글쓴이도 멋지십니다
저는 그당시 태어났습니다
저 먹여살린다고 젖 동냥까지 했다더라고요~
아버지는 막노동 에 노가다판 전전하시고
지금은 대기업 정년퇴직 앞두고 계신 가장입니다
역사는 반복되더라구요
일본이 그.역사에 반드시 선행했고.
멋진 부모님과 친구를 두셨네요.
근데 98년이면.. 급식 할 때 아니었나요...?
초등학교만 급식 완공이었던 건가.. ? 아님 서울만? 우리나라 도시락 세대가 언제까진지 잘 모르겠네요. 지역마다 편차가.. 거의 10년까지도 나는가..봅니다..
저희부모님도 잘피하셨어요 지금은 20년뒤에야 망했지만 그때 피해안한게 더 고마웠던 마음이 크내요 저때 엄마도 한참 아빠 일터나가고 안와서 대리러올 시기였는데 😮
저때 취업취소 된 대졸자들 정말 많았고
구조조정된 회사원들, 우리 아버지들은 양복입고 북한산국립공원 앞에 정말 많았는데
지금 더 힘들어져가는거 같다
가장들 자살도 많았고. 출근한다하고 공원에서
시간개기던 넥타이들 많았죠.
물론 가족이 해체된 집도 많았어요. 이혼
한스밴드 , [오락실] ㅠ 흑
지금생긴게 계약직이나 비정규직제도 너무 차별화가 심화되긴했음😢
기업과 정부의 잘못을 국민이 책임진 사건
8,90년대생들은 알텐데, 학교에서는 IMF가 국민들의 과소비(해외여행, 외제 사치품 구매 등 예시로 든걸로 기억)로 경제가 어려워져 그런거라고 가르쳤습니다. 교과서에도 그리 나와있었구요. 황당한 일이죠.
국민의 합이 기업이고 나라라는 사실을 절대로 깨닫지 못하는 한국인들… 항상 누군가에게 책임져달라고만 함
@@user-yb1iw9tm7m ㅋㅋㅋ가정에서 암만 사치를 해도 기업에서 해먹은것보다 더 먹을깤ㅋㅋㅋ
그거를 이제는 국민들의 과소비 드립치면서 국민들 탓으로 돌리고 있음ㅋㅋㅋㅋㅋ
국가와 기업의 과오를 국민들이 금붙이를 팔아 해결했는데도 정작 돌아오는 건 손가락질ㅠ
나 태어나자마자 IMF터져서 아빠는 서울에서 혼자일하고 엄마는 시골 아주작은집에서 혼자 날 키우셨는데 집주인할머니가 이시기에 태어난 아기가불쌍하다고 애기가 좀 클때까진 돈안받겠다고 하셨다던데.....참 감사한분이셨음 다행이었지만 엄마아빠 너무 외롭고힘들었다구 ㅠ
97년 8월입사 ...
97년 10월 ...ㅠㅠ
끈질기게 버틴 회사에서 27년차 입니다
그때 그 힘든시기 이겨내신 모든분들 응원합니다 ....
선배님이시네
전 대학 나왔는데 고졸 임금 으로 1년 버티고 이직했고 지금22년차군요
97년 11월 입사
현제까지 한 직장 다니고 있습니다.
돌아보면 참 많은 일들이 있었네요
지옥같은 시간이었는데, 어떻게 넘어갔습니다.
다들 고생 많았습니다.
이 시절 학교다니며 시간 보낸 2030세대들이 우리 세대에게 꿀빨았다고 입놀리던데, 진짜 어지간히 징징거린다는 생각 밖에 안들었습니다.
@@나만세-b1z 통계적으로 지금이 IMF보다 더 최악인데 지랄을 해요 아주 ㅋㅋ 영포티들은 위로는 노친네 아래로는 MZ라고 지랄밖에 할 줄 모르노
이래놓고 그리스는 봐줬지 유럽에겐 관대하고 아시아에겐 잔인한 ㅋㅋ
아시아를 잡기 위한 수작 이었던거지요..
사실 한국은 봐줄수 없었던게 한국 대기업들은 재벌경영이라 답이 없었음, 그에 반해 그리스의 대기업들은 재벌이 소유는 했어도 전문 경영인을 두고 운영했다는게 결정적이였죠.... 에초에 한국은 국가와 대기업들의 삽질이 원인이였으니까요
나중에 지들도 인정하긴 했음 우리가 가혹했다고
인정만 하면 뭐하나...
그리스는 ECB가 책임졌지 그리고 같은 통화 사용하는 곳이니 재수없으면 유로존 붕괴되고. 그에 비해 당시 한국은 그저 가성비 딸리기 시작한 글로벌 제조공장정도
그말도 맞긴한데 그리스는 유로로 묶여있어서 그리스가 망하면 그뒤에 오는 나비효과가 너무 크다고 생각해서 주위나라에서 막았음
참말로 추운 겨울이였지... 아버지들 모두 어깨에 힘이 없어보이던 시절.😢
요즘 애들이 저 때의 무서움을 알까... 화기애애하던 동네가 어느순간부터 싸움하는 소리가 들리고.. 아침에 양복입고 나가던 아빠엄마들이 갑자기 츄리닝 입고 새벽부터 나가시고.. 수학여행도 다 취소되고... 갖고싶은 거 하고 싶은거 많았던 질풍노도의 학생들이 갑자기 아무것도 못하고... 통학 차비 아끼려고 자전거 타거나 걸어다니고.. 진짜 저 때는..뭐든 해보겠다, 하고싶다는 말 하는 것조차 눈치를 보고 하거나 그 마음을 접어야 했던..근데 나라 돌아가는 꼴 보면 자꾸 저 때를 그리워 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은 거 같다..돈 있는 사람들은 저 때가 황금기였으니..
@@icpolice84
신문에서 봤는데
''이대로'' 건배사 하는 놈들 있어서 식당 아주머니 억장이 막혔다는 기사가..
그때는 토지. 아파트. 공장 헐값에 엄청 나왔지요
소수의 부자들은 다수의 보통 사람들 피눈물 흘리는 자금 마구 처묵처묵 하던 시절.
@@icpolice84
일본 단기차관만 없었다면 IMF 까지 가지 않았을텐데
마지막 총알은 일본이 단기차관 관례적으로 연장 시켜주던것 몽땅 빼가버린 것이죠.
정부 고위직이 일본가서 제발 단기 차관 연장 시켜 돌라고 했는데
일본 수상은 만나 주지도 않고
일본 관리들은 단호하게 NO..
결국은 IMF 로 ..
그뒤 오랫동안 일본 단기 차관 꼭 필요하지 않으면 막았는데 이명박 다시 완전 개방해서 불안했음
또 다시 IMF 된다면 일본 단기 차관이 뇌관 될 것 같네요.
일본도 실수한 것이
그때 IMF 가지 않도록 마지막 순간에 도와 주었다면 일제시대 만행 많이 희석되고 협력하는 사이 되었을텐데.
우리나라 IMF 되고 나서 많은 이권을 일본이 미국과 같이 가져 갔습니다만
우리나라 그 전까지 도저히 해결하지 못했는 이자도 못내는 좀비기업을 2달 만에 싹 다 없애 버리고
국민들과 기업들 이빨 꽉 깨물고 살아남기 위해 혁신에 혁신을 거듭해서 세계 시장에서 일본 압도해 버렸습니다.
일본이 우리나라 살짝 도와 주기만 했어도 이웃나라와 좋은 관계.
경제적으로 건전하게 서로 발전. 협력 할 수 있는 순간을 날려 버렸습니다
근데 체감상 1~2년만 살짝 그랬지. 그리고 사실 공무원이나 기타 안정직업, 혹은 다른 안정수익 있는 사람들은 그렇게 체감 못했기도.. 그리고 그런집안 아이들도..
왜냐면 솔직히 그때가 그립긴 하거든요.
그때도 우리나라 엄청 잘살아서 망했다 망했다 했어도...
솔직히 굶어죽는 사람은 못들어봤어요.
그때도 무료급식이나.. 오히려 그 땐 교회같은곳에서 일요일마다 밥 같이 먹는 분위기였고.
요새처럼 외부인 경계 안하고, 진짜 도움주고 나누려는 마음이 지금보다... 그 벽이 낮았어요.
경계하고 그런 게 없이..
나누는것도 의심없이, 조금 더 쉬웠달까.
옆집에서 밥먹고 엄마 기다린다.. 이게 쉬운 시절이란 게.. 체감.
IMF 였대도 저때 이웃애가 밥먹는다고 겨우 한끼로 눈치보고 입하나 걱정 그런시대는 아니었다는 말을 하는거임.
지금처럼 해외여행 못하고ㅡ 이런 느낌이 저 땐 백화점 옷 못입고 외식 못하네! 이 정도...?
진짜 가정의 생계가 위협받아서 뿔뿔이 흩어진 가족들도 있긴 했지만.. 반 40명~45명중에 전학와서 고아원 산다고 알려진애만 딱 1명이었음.
걔 말고는.. 내 기억이 맞다면 전학 간 애도, 전학온 애도 없었고. 다른반에도 누가 전학왔다면 소문 쫙 났을텐데.
걔 말고는 부모님이 이혼했대도 그냥 숨기고 학교다니는 애들이 많았으려나...? 근데 그때만해도 진짜 이혼하면 큰일인거라 숨기고 그랬던 건 맞지만, 또 애들이라 친구들한테는 얘기해서. 많았다면 그 중 한두명이라도 소문 안 날 수가 없었을텐데.
거의..진짜 거의 없었음. 아니 사실 한명도 못봤음. 내가 몰라서 그런걸로치면, 숨겨서 몰랐던거라면 그 숨긴 애들 수가 엄청 적었기에 가능했단 건데..
우리동네가 그닥 잘사는 동네도 아니었고. 그냥 평범하게.. 달동네 시장장사꾼집안부터 일반회사원, 공무원, 사업가.. 집안 아이들이 다 같이 섞여있는 그런 학교였는데.
솔직히 못 산다면 못 사는 그런 동네였는데...
원래 못살아서 타격이 없던건지..
근데 뉴스에선 매일 자살뉴스, 다큐에선 고아원에 아이들이 버려진다.. 자극적으로 매일.
어쩌면 내 기억은 TV 에서 어느정도 조작된건지도.. 란 생각이 드네요.
직접적으로 본 적이 별로 없어..
TV에선 Hot랑ses , 젝키, 핑클등등이 노래하고 춤추고 있었고..
이른 아침에 잠에서 깨어~ 아줌마들의 NO.1 김종환.. 상받고.
쿵짝쿵짝.
교회에서는 성탄절 행사와 선물이...
팬덤애들은 그때도ㅋ 응7 나온것처럼 머리채잡고 싸우고 있었고.. 부모님 용돈받아서.
나라망했다해도 그게, 진짜 가정이 망하지 않은 이상 체감하기 힘들었다는 말을 하는겁니다...ㅎ ㅠ
기업의 방만한 경영과 정부의 안일한대처의 콜라보로 터진 금융위기를 국민들이 낭비벽이 심해서 그랬다고 떠넘긴놈들ㅋㅋㅋㅋ
국회와 언론 국민의 금융과 국제수지에 대한 무식이 합작한 작품
ys
피지배층 마인드 ㅋㅋ
저 당시엔 전세계가 빚을 빌려 사업하는게 당연한거였고, 한국도 빚듀 자산이며 빚 빌리는걸 실력으로 봐줬음
시작은 미국이 달러가치 확보를 위해 미국과 거래하는 기업과 은행들에게 강제로 부채비율을 일정 이하로 맞추라 명령. 그당시 세계최대규모였던 일본은행들은 부채비율 낮추려 해외로 발려줬던 돈을 싹 끌어가버림
문제는 그당시 한국 대부분의 기업과 은행들은 일본에서 단기, 초단기 빚 위주로 빌렸다는거. 일본은행의 제로금리 공짜돈을 빌려와 한국에 풀며 신나게 땅짚고 해엄치던 상황에서 갑자기 일본은행 돈 갚아라 해버리니...기업이든 은행이든 대부분 배째라며 드러누워버림
그상태에서 국제투기세력들이 동남아를 타켓으로 공격했다가 한국까지 끌려들어간 케이스.
한국 기업들아나 정부가 너무 안이했던 결과. 최소한도 그딴거 없이 풀로 빚을 써다가 한방에 골로 간거
동남아와 달리 절대 장사를 못해서 부도가 난게 아니라 아시아의 5룡이라며 장사 잘 하다가 일시적으로 돈(달러)가 부족해서 일어난 일
그때까진 한국은 그런 현금흐름관리에 관심도 없었고 하지도 않았었다는거
내년이나 내후년에 다시 오지 않을까
하는꼴 보니...
그쉬끼보다 기레기들 더 답답
건국절은 님히럴
구조조정....울 아빠는 구조조정이 없는 회사였지만 이시절은 힘들었다. 월급이 엄청 작았기에. 그리고 그 힘든 시절에 새옷 새신발 깔끔하게 입혀 키워주신 부모님이 감사하다♥
고등학교때인데 점심시간에 도시락 못 싸오는 친구들이 많이 있었다 애들이 다 한입만 했었다 식당에서 밥 사먹으면 4~5명이 붙어서 한입만했었다...
진짜 물로 배 채우는 애들도 있었고 부모가 직장에서 짤리고 빚이 많아졌다는 사실에 애들까지도 빚쟁이 처럼 살았었다... 정말 힘들었다
제가80년생인데...그런적이없었는데????? 어디사셨길래???? 친구아부지가 망하긴했음 ..근데 도시락을 못싸오는정도까지는아니었음
70년생인데...집이 더럽게 가난해도 학교 도시락밥은 먹고살았는데..반찬이 거의 김치라서 .. 쩝..
나도 80년생인데 그런애들 없었음 그정도까진 아님 ㅋㅋㅋ
@@동네노는히야 집이 전북 군산인데 군산에 있는 공단 거의 망해서 진짜 힘들었음...
@@박진우-r5q8g거긴 전라민국이자나 양심도 없는 인간들이 사는 전라민국
요새는 터져도이제 금모으기 운동같은거 없다 ㅋㅋ 걍 떠나면 그만 이럴듯
맞지 금모으기 운동때는 다들 배운것도 없고 능지가 딸려서 그러면 되는구나 하고 곧이곧대로 쳐 믿고 뒷돈 감질나게 발라먹은것도 모르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때 매일자살자나왔음..노숙자도 이때부터 확 늘어났고 양복입은사람들은 회사가아닌 공원에 모여서 시간을 보내기시작했고😢
휴직계 써놓고 자원한군입대 전역후 모든게 리셋된 IMF. 23나이에 어찌되든버티고살아보자고50까지왔다 기억하기도싫었던시절 월급70으로 버텨냈던 ㅠㅠ
나 73년생이다
@@마스터-k3n 형이시내76 입니다
안녕하세요 저희 아빠와 동갑이시네요 존경합니다 모든 어른들 부모들@@마스터-k3n
IMF 사태가 우리나라에만 국한된게 아니었지요. 그때 97년 대학생때 인턴으로 캐나다에서 금융계에서 일했습니다. 태국 부채사태가 악화된게 4월이었습니다. 그때 저희 팀 매니져가 이제 다음은 말레이고 그후는 한국이다 하며 미리 포지션을 준비하더군요. 저는 초짜라 아무것도 모르고 그냥 시키는 일 했는데 바로 부채를 몰게지 담보로 하는상품으로 전환시키는 일을 했습니다. 한국 사태가 터지고 곧바로 치러 들어가더군요. 이렇게 미리 일이 터질것을 안 사람들 많습니다...돈들 많이들 벌었지요.
@@LooxJJ
국내에서는 정부가 경제 튼튼하다고 거짓말 해서 몰랐는데 외국에서는 몇 달 전 부터 알고 준비했군요.
새로운 사실 알게 되었네요.
동남아 무너지니 김영삼 정부 동남아 지원 한다고 한 기사도 봤습니다.
정부 고위 부처도 우리나라 경제위기 알았을텐데
무슨 배짱으로 5억 달러 지원을..기가 막힙니다.
말레이시아는 모르토륨 선언해서 벗어났지요.
식량자급자족. 석유 등 광산물 풍부하니까 배째라고 버티니까
외국 금융기관들이 화를 내면서 말레이시아는 앞으로 절대 투자 안한다고 두고 보자고 했지만
경제 호전되니 말레이시아에 다시 돈 싸들고 들어가는 외국 금융계들..ㅋㅋㅋㅋㅋ
러시아도 옛날 모르토륨 선언 해서 경제 위기 벗어난 적이 있지요.
우리나라는 석유와 식량 자급자족 안되니 이 비장의 카드를 쓸 수도 없었고...
97년 동서증권이 부도 나면서 계열사였던
극동건설도 최종 부도 처리되고 극동건설이 보유했던 건물에 임대 했던 우리 상가는 경매에 들어가게 되었었어요.그땐 정말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죠.
중학생이었는데도 동서증권 부도는 기억이 나요. 나쁜 일도 좋은 일도 도니노처럼 일어나네요.
나라는 누가 망기트리고 책임과 피해는 국민이 짊어지는 사례! 저 상황이 또 눈 앞에 다가왔다는게 현실.
이분은 imf를 격고도 imf 대해서 전혀 모름.
왜 발생 했는지 원인이 무엇인지.
책임과 피해는 당사자들이 제일 크게 받음.
그 여파가 당연히 일반인들에게 가는 것이지.
왜냐? 그 피해자가 바로 보통 사람들의 직장이고 원청 거래처니까.
응답하라 시리즈는 시간이지나도 그때 향수를 잘살린 드라마
난 저때 마침 군대 입대 하고 터진 상황이라 남들보다 쉽게 저 시기를 보낸것이 운이 좋았던.. 시기지
저때 입대 할려고 지원자도 많던 시절..
저어려운시절이겨내며 이렇게 키워준부모님께 감사하며 살아가야겠습니다 ...ㅠㅠ
졸업과 동시에 실업자..취업하는자, 군입대자들이
최고 효자인 시대였다..
내가 97년도에 졸업해서 사회에 나왔다. 나도 내가 이리 꼬일줄이야..
01학번입니다.
웃기게도 취업시장은 저 때가 훨씬 상황이 좋았습니다.
학생 때도 과외로 건당 40만원씩 받았고요.
그래도 가족이 있어 버텼다고 혼자였으면 진작에 한강다리 갔을거라던 사장님이 셍각나네... 당장 등록금을 마련못해 군대 신청했더니 그마저도 1년씨구대기해야됬던..
저 94학번...고딩때 그 잘나가던 친구집...부산에서 도급순위 ㅣ위 였던...ㅣ위가 망해버린 정도였으니..
그 친구집 놀러가면 드라마에서나 보던 그런옷을 입은 어머니가 과일 주시고...
그 친구가 산중턱 월세방으로 이사가고, 아버지 술병 때문에 매일 저녁 소주 두병씩 사서 집에 가고...
정말 힘겹던 시절 생각나네요...
94학번...참. 수능 첫 세대에 유일무이 두번 보고. IMF도 터지고, 군대 방위도 사라지고, 공익도 생기기 전이고.
버스에서 들려오는 뉴스는 절망적인 게 대부분이었고, 어떤 회사에서 구인을 하면 그걸 라디오 뉴스 프로그램에서 알려줄 정도로 살벌했던 시절..
당시 난 소기업에 다니고 있었는데, 국내 고객사 하나가 1억 부도를 내고 해외 거래처 결제를 못해주는 힘든 상황이었지만 , 다른 쪽 일들이 잘 풀려 보너스는 없어졌지만 적은 월급이나만 한 번도 밀리지 않았고, 주말에 하던 과외에서도 수입이 있어서 다른 사람들에 비해서 잘 보냈던 것 같다.
저때 진짜… 매일매일 9시뉴스 시쟉하자마자 첫보도가 00 부도, 00 최종부도.. 이랬었는데… 찢어지게 힘들었던 시절…
사람들의 머릿속에 죽어도 의대 라는 인식이 꽂히게된 사건
대학교 들어가자마자 IMF터져서 바로 해병대 자원입대하고.26개월 뒤 전역해서도 학자금이 없어서,돈 벌면서 공부하느라 정신이 없었는데.
그 와중에 술은 또 오지게 먹었고.ㅋㅋㅋㅋ
진짜 힘든 시간들이었지만,살 만해진 지금 돌아보니 또 다른 느낌의 추억이네.
정말 힘든 시기였다. 내 친구의 아버지는 자살을 했고, 친구는 말도 못할 정도로 숨을 헐떡이며 울었다. 그 시절을 떠올리면 모든게 차갑고 회색 같은 느낌이다.
저희 아버지는 주식의 주자만 얘기만 해도 슬퍼하십니다 ㅠㅠ
이때 이겨내신 부모님들 감사합니다.
학생때 IMF시절을 지내왔는데, 지금은 IMF시절보다 더 힘들다고 다들 한마디씩 하는 슬픈 현실이네요..
한전에서는 전기세 석달이 밀렸어도 전기를 끊지 않았습니다. 혹시나 얼어죽을수 있다고.
넉달밀려서 전기세 내면서 물어봤더니 겨울철에는 전기세 밀려도 전기끊지 않는다고.
옆자리 친구가 어느날부터 학교도 안나오기 시작했지....진짜 암울했던 시기야
다들 자신이 겪었던 때가 가장 힘들었다고는 하지만 주변사람이 돌아가신거는 저 때가 처음임....
이때 초등학교 입학전이라 기억은 얼마 없지만
언제 구조조정 될지 모른다며 아끼고 살아야된다고 해서 외식 금지, 반찬도 확 줄이고 간소하게 먹고, 생일상도 간소화 등등 했던 기억이 있음
IMF때 집 쫄딱 망하고 전가족 사글세방으로 야반도주해서 살때 아빠는 직장못구하고 노가다일마저 없어서 1년동안 국화빵장사로 4식구 먹여살리셨음 맨날 집바퀴벌레 잡는게 내 임무였음
진짜 국가부도의 날이었어요. 저때가 정말
힘들었고 겨울바람도 굉장히 매서웠어요.
뉴스만 틀면 어디가 무너졌다 부도 났다
실직자 증가한다는 뉴스만 나오던 시절이었죠.
곧 다시 올 대한민국 상황이네요.. 잘준비합시다. 가계부채가 역대 최대임 돌이킬수없음😂
회사에서 형님들 누님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IMF와 코로나와 코로나 후 2번의 힘이든 시기가 있었고 현재 진행중이라고 함
저때 아버지 군인 이셨어서 최소한 우리집은 똑같이 살았음 근데 학교 가니까 반 애들 중 좀 산다는 애들 6명정도 학교 안나오더라
계급이?
@@Sjkij 당시
소령
오히려IMF터지고 공무원은 봉급상승 성과상여가 생김 당시imf직후 9급들중에 똑똑한 사람이 많았음 회사잘리고 공시도전
생각나네 저때...
저사건 이후로 해고가 자유로운 계약직과 정규직의 이중구조가 본격화되었죠..
@@착한성이름 극과극을 ..
슬픈 기억
저때 97년 수능치고 98년에 고등학교 졸업이었는데 졸업여행도 취소됐고 여고졸업반은 메이크업 강사들이 초대되곤했는데 다 취소됐었다. 😢 이후에 병원에 취업했는데 모진 태움에도 이악물며 견뎠다. 그런시절도 있었다
이때 옷들도 타인에게 물려줘서 입고 서로 도와가며 살고 그랬죠..돈없어서 학교 점심도 못 먹는 애들 많았구요.
이적의 거짓말 거짓말 거짓말이란 노래가 imf인 저때 놀이동산에 데려가서 애를 버려두고 돌아오겠단 엄마의 거짓말을 토대로 만들어졌다죠
갈곳이 없었다.
대학교때 남자는 군대 도망이라도 갈려고 지원하니 그것도 너무 밀려서 기다려야 했고 알바자리는 없고 도시락싸서 다니고 한집 건너 실업자 나오고 공무원으로 슬 분위기가 쏠리고 다음해에 군가산점까지 없애고 나라가 엄청힘든시절 지금은 40중반이넘었고 한번씩 부하직원들에게 이야기 해주면 꼰대 부터 믿기힘들다는 표정들 참 힘들었음
고등학교때 임프 터졌지. 우리 아빠도 퇴직하고 그나마 하청쪽으로 일자리 줘서 엄청난 시련은 아니었지만 나름 대기업이었는데 하루아침에 실직함. 그땐 어려서 그런갑다 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ㄷㄷ
조금있음 저때보다 더 가혹한 시절이 다가오고 있다 이제 시작이다 다들 힘내시길
저때는 그래도 다같이힘든때라 몇번구면이면 외상도주던시절이였어요 진짜 더한게온다는말에공감합니다
ㄹㅇ 저때는 국민들이 금모으기라도 했지
지금은 금모으기 해봤자 서민들은 팍팍한 삶에서 헤어나가지 못할거라는걸 알아서..
과연 금모으기 또 한다고 쳐도 사람들이 나라 살리겠다고 갖다줄까 싶다
@@user-jg9ds4ob3c금모으기는 실질적으로 나라 살리는데 도움 안됐습니다
헐 값 수준에 금 매입해서 해외로 비싸게 팔아서 결국 부자들 배불리기밖에 안됐어요
@@user-jg9ds4ob3c 그니까. 한국 이미 2아웃임. 일제 때 나라 팔아먹은 것들이 더 잘 살고, 금 모아서 나라 살렸어도 결국 정치인이랑 기업만 배부르고 반지하에서 물에 빠져 죽는 사람이 나와도 대처하지 않는 나라가 됨. 이 상황에서 위기오면 과연 국민들이 희생해서 나라 살리려고 할까? 나만 해도 안 할 거 같음.
@@user-jg9ds4ob3c금모으기는 애초에 외한위기 자체가 가계에 있지 않은데 일방적인 희생강요로 만들어진 모금이지. 그래도 그때는 그냥 냈음. 왜?이렇게 하면 더 나아질거라 믿었으니까 ㅋㅋ 결과는 모두가 알다싶이 비정규직 정규직 구분 확대, 사회 신뢰지수 감소, 남녀갈등, 부동산 폭등, 저출산, 피해의식 지수 1위, 자살율 1위, 청년 우울증, 초고령화, 법률의 관료제에 의한 폐습, 당파싸움, 언론통제, 이념갈등, 무조건적인 반일반중반미, 결혼률 감소+이혼률 증가, 사상최초 집단자살국가(자연소멸국가) ㅋㅋ 스노우볼은 이미 굴러갔고 막기에는 너무 커졌음. 해결할 수 있다는 낙관적인 믿음으로 점철된 머리 꽃밭들은 이제 도태된다
저때부터 계속 힘들다 힘들다
했다 99년 실업계 고3이였는데
그때 거의 취업이 안들어와서
내가 일자리 구해서 나갔다
그때부터 계속 계속 경제가 어럽다
어렵다 그랬다 사회 초년생 부터
지금까지 어렵다 한다 그세월도
조금 있으면 횟수로 25째 듣는다
사실 나는 어려운거를 느끼지를
못하겠다 도대체 경기 좋을때
는 어때낄래.
정부가 돌아오는 외화부채를 확실히 대비한게 아니라, 부채연장이 자동으로 될 것이라 생각한 안이한 재경부와 부동산투기에 열올리던 대기업, 외환위기가 오니, 제일 먼저 돈을 회수한 일본,성공한 투기자본들... 다른나라에 알토란 같던 많은 것을 넘긴 기업들 억울했지. 많은 종자들이 일본으로 넘어갔지.
울회사는 그때 30프로 구조조정
그런데 그당시 회사 잘나갈때라 빚도 없었는데 남들 따라 함
밖은 지옥이었음
96학번..넉넉하지도 모자르지도 않은 시절을 보냈다
아버님이 교사..
이때부터 공무원 인기가 하늘을 찔렀지
고려증권
배구 참 잘했는데
고려증권 레전드 장윤창
자 우리 김대중 대통령 DJ께서 대한민국을 구해내신거 절대로다가 잊으면 안됩니다.
대한민국의 세계적으로 역사적으로다가 큰 별입니다
정말 슬픈건 저때 돈있는 사람들은 최대 호황기였음 이시기가 계속됬으면 좋겠다는 사람들이 수두룩했고 서울 룸싸롱 자리가 없을 정도였음 지금도 저 위층은 춤을추는 시기임
여러분 지금이 IMF보다 더 상황이 좋지 못합니다 단지 그때는 언론이 설레발 치던거고 지금은 그냥 입 닫은 거고, 얼마전 코로나 팬더믹은 대광황급 전세계적 직접 피해였음.
지금이 IMF 때보다 더 상황이 좋지 못하다는건 어떤 지표를 갖고 말씀하시는걸까요?
대기업 줄도산 하던 시절과 비교는 좀 안맞는것 같네요..
이래서 주가조작범은 사형시켜야된다
무주택자들이 원하는건 저런 세상
주가조작범이 국가최고 권력자가된 현실
누구? 리짜이밍?@@자정수-w2u
저 때 아주대 간 사람들이 인생 완전 조졌음 ㅋㅋㅋ 대우 입사노리고 스카이 안가고 아주대 들어간 사람들 있었거든 진짜 인생 개조짐
그때부터 아주 간다고 했나요?
아주대병원도 안간다던데 아주 가 버린다고.
그 시대의 아들딸들이 커서 리볼빙에 손을 많이댄다는게 이해가 안간다...
아직도 기억나네요. 어머니랑 우유배달하고 공장에서 소일거리 받아와서 일했는데....
ㅠㅠ 힘들게 이겨내셧네요
그당시 초중고등학교 학생들은 지옥었습니다.
돈때문에 이사가고, 술먹고, 싸우고, 아주 개판인 상황에서 아무말도 못하고 매일 불안속에서 생활해야 됬습니다.
97년 겨울. imf로 건설사 협력업체였던 부친 회사가 휴지조각으로 전락한 약속 어음 때문에 우리집도 거지됨.
수능 끝나고 얼마 뒤 빚쟁이들이 아침부터 몰려오더니 돈 내놓으라 난리고 아비규환의 집을.뒤로하고 학교를 가야했음.
그나마 있던 집을 팔고 빚잔치 후 쓰러져가는 빌라로 이사갔고 모친은 인근 식당 설거지 부친은 막노동을 나갔음.
나도 합격했던 은행 창구직 취소되고 전문대로 진학했는데 학비는 어떻게 마련은 했지만 생활비가 없어서 점심은 굶었음
친구 아버지는 비관해 ㅈㅅ하고 얼마 뒤 친구도 ㅈㅅ함. 어느 집은 일가족 전체가 사라지거나 원양어선 타겠다머 떠나기도함.
97년 11월은 imf 시작이었지만 98년은 수많은 사람들이 길바닥으로 한강다리로 산으로 생을 놔버린 시기임.
그래서 현 40대 이상은 국짐을 절대 지지 못하는거임. 얘들이 당시 집권여당이었고 정부였는데 imf 터지기 직전까지 언론을 동원해 안전하다 쉴드치면서 눈과 귀를 막아버림.
그리고 이 시기에 검은머리 외국인들이 최대 호황을 누렸음.
떙삼이는 우파보다 좌파아니었음?
@@dsafwesf ㅎㅎ 보수 지지하는 사람들에게 물어보길. 김영삼을 진보라 생각하냐고. 그리고 김영삼은 민주당에서 배출 된 대통령이 아님. 삼당 합당으로 배출 된 보수의 대통령임.
그래서 보수에서 유일하게 우리 대통령이라 거론할 수 있는 사람이 김영삼임. 그 이전 이후 대통령 그 누구하나 국짐에 사진이 걸려있는거 봤음? 모두 범죄자이거나 군부독재로 독재를 했던 사람들이라 사진을 못 걸어두는거임.
그나마 유일하게 내세우는게 김영삼인데 imf를 불러 일으킨 사람이라 그마저도 쉽지 않음.
@@dsafwesf땡삼이는 보수성향임 민주화운동은 했디만
@@dsafwesf땡삼리도 좌파였으면 지금 이미 북한핵맞고 다 뒤져있을거임
그래서 전국민 금 삥뜯은 펭귄놈처럼 어느 무릎이 아픈지도 모르는 자가 좋다는거야??
97년 2월 입사. 98년에 일부 동기들 사직 처리. 27년째 한 회사 다니고 있습니다.
아버지 건설업 그 때 부도. 그 후로 풍비박산. 그 후유증은 지금도 여전하나, 지금 두 분 살아계시고 건강하신 것민으로도 감사히 여긴다.
웬만히 큰회사 아니면 싹다 망해서 일자리가 없으니 신입 월급 50만원만 줘도 서로 들어가겠다고 줄 서던 시절이었지. 그때는 주당 5일씩 야근해도 회사에선 뻑하면 월급 감축 하고 재수 없으면 회사 부도나서 몇달치 월급 한푼도 못받던 시절
우리 아부지 아이롱사인데, IMF때 바빠서 야근 맨 날 했습니다. 우리나라만 그렇지 외국 수출 옷은 무지 잘 팔렸나봐요..
@@fk6078
1달러 2000원 까지 올라가서
수입 원자재 비싸지 않으면 수출기업 엄청 돈 번 시기였습니다.
수출기업 다니시던 아버지는 행운아 였습니다.
그런 회사는 많이 없었죠.
보통 대다수 국민들은 나라 경제 망하니 먹는 것도 줄이고 해서 농촌 어촌 다 힘들어지고 대다수가 비참해 졌습니다.
그렇게 당하고도 또 ㅋㅋ
그 당시 많은 사람들이 힘들었지
일 할수 있는 곳이 없어서 돈을 못버니...
이후 집값폭등,전세금폭등 또다시 힘들어짐
집 읽고 외양간 고친다
이후 생각좀 하고 살자가 내 마음속에 저절로 자리 잡았다
민주주의를 외치던 그들...
뭔가 삔또가 좀 이상한데?
@@땜쟁이-r5f
마지막 줄임표가 좀...
여러가지 해석 가능하게 만드네요
한나라당 김영삼이 갱제 갱제 거리다 만들었는데
그때 김영삼에게 불안해 하는 사람들 있어서
대통렁 후보때 구호 중
''경제는 잘하는 사람에게 맡기겠다'' 고 거짓말을 했지요.
아들 헌철이와 함께 자기 멋대로 경제 주무르다가 나라 망함
저 당시28살이었던가 한참 열심히 일할때였는데 정말어떻게 버티었는지 지금생각해도 끔찍한 날들이었다
너무힘들어 삶까지포기하고 싶었으니...
저때 군대 자동 연기 자동 면재 된사람도 있을정도임
차라리 취직을 못하면 군대나 가자 했지만 군대도 못갈정도의 나라가 군인들 먹여 살릴 돈이 없던 시절
95년 군대서 나오고 그시절....슬프다 저때는 정말 .. 근데 그시절보다 지슴이 더힘드네. 머지 ㅠㅠ
그땐 막 돌 지나서 잘 몰랐는데 아버지 월급이 감봉되어서 ㄹㅇ 힘들었다고 들었음
계속 예견한 수준이 아니라 얘기를 ㅈㄴ했는데 끝까지 안믿은 5050 .... 조만간 큰거 함 더올듯 이제 금모으기 운동?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무도 안내는 수준이 아니라 사람이 읍닼ㅋㅋ ㅋㅋㅋ
코로나 이후 imf때보다 더 심한거 깉은데
아닌가 코로나로 흥한쪽도 있으니
여튼 코로나 이후로 사람들 패턴이 완전 바뀜
곧 한번더 크게 올꺼같은 불안감이 든다
이땐 몰랐지 20년 후의 한국이 IMF시절보다 더 큰 지옥이 될 지..
김영삼 대단한 사람이죠.. 부끄러운 줄 모르는
김영삼이문제가아니라 싷한폭탄을 자기손으로 터트린거죠 그당시 일본이 우리나라 채궎회수하자 서양서도 채권회숳하며
지금도 부끄러운줄 모르던데 환생했나
모르고 한번은 견뎠는데....
이번엔 어찌될지...
진짜 진짜 냉정히 말해서, 코로나보다 규모도 난이도도 낮았음.
단지 우리가 이전까지 국제표준보다 훨씬 방만한 경영을 해왔고, 첫번째로 겪은 위기라서 다들 죽어나간것임.
97년도 대학 입학해 신나게 놀다가 그 해 겨울,이 오기 전 가을부터 없어지는 동기들이 생겼다.
IMF 보다 지금이 더 살아가기 힘들다
그때는 금이 그나마 싸니깐 집집이 모아 놓은거
밑천으로 버틸수 있었지만 지금은 금값이 하늘 높이다 지금이라도 똑바로 정신들 안차린다면 거지꼴은 시간문제
저희아부지는 저때 더많이벌었다고했음
해외로 나가는 짐 타카로 우든박스(나무수출용박스)짜는거하셨는데 좀 사는사람들은 다 해외로 나갔다고..
이때 정말 많은 사람들이 나락으로 떨어졌고 하루아침에 가정이 해체되고 노숙자가 되고 죽음을 선택한 사람도 많았음.
그런 기억이 생생한데 이때가 살기 좋았고 돈도 많이 벌었다고 IMF 한번 더 왔으면 좋겠다고 진심으로 말하는 악마도 봤음.
세상은 진짜 지옥임.
@@Y-pg5be
세상이 지옥인 것이 아니라
그런 소수의 염치없는 벌레들이 지옥의 악마라 생각합시다.
공기업과 공무원들은 꿈결같은 철밥통으로 보냈던 시기였죠. 단점은 업체 부도로인해 자재조달이 마비되어 설비유지하는데 어려움이 있었던.
당시 유행하던 한그밴드노래 : 시험을 망쳤어 집에가기싫었어….게임방 대머리아저씨가 아빠….실업자되어 도시락 싸들고 게임방 전전했던 아빠에관한 노래
97년 9월 전역
바로 복학 안하고 등록금 벌려고
공장 가자마자 imf터지고
입사 한달만에 짤림
복학하기 전까지 노가다도 일이 없어
새벽에 떡집 알바 뛰고 낮에는 냉면공장서 일하다가
냉면공장 야밤도주 하는 바람에 월급도 못받고ㅠㅠ
참 어려운 시대였다
내가 95학번 imf때 졸업반 면접까지 끝나고 합격통지서 받고 출근날 기다리는데 합격취소 통지가 날라왔지 한강에 번호표받고 자살하던 시절
다시금 다가오는 시즌2
미국의 대규모 헤지펀드 공격에 외환 보유고 적은 아시아 국가 금융권이 도미노로 무너진 사건.
IMF 때 진짜 부모님들 많이 힘드셨었지
집집마다 금모으기운동에 집에 돌반지하고 부모님들 예물 다 갖다 팔고 난 그당시 초등6학년때라 감흥없었고ㅠ
저렇게 힘든시기였으나 나랏님들은 다이너스티를 새로 뽑아 타고 다녓지...
우리집은 크게 타격 없었지만
친구들은 하나같이 힘들었고 울상이고 한명은 연락도 안되고
집에 가보니 문열려있고 개난장판이였음...
내친구는 잘못한거 없는데...
왜 저리 힘든걸 8살 밖에 안된 아이가 경험하고 받아드려야한건지 모르겟음 잘못은 DJ YS +나랏님+기업이 한거지 내친구가 한거 아니잖아...
97년 군대시절
뭘까고싶어서 문민정권 김영삼 마지막해
97 년 10월 20일 논산입대. 훈련소에서 퇴소식날 부모 친지 면회하니까 바깥세상 난리났다고.. IMF 터졌다고..
imf때 지방이라 그나마여긴 호황이였더랬죠 군대입대할때 엄천밀려서 입대했다는 ...
1998년 1월 군전역 하고
취업할 곳이없었다.
군부대 우유가 안나왔음
6.25전쟁 이후로 군부대에 첫음으로 우유가 안나왔다고 들었음
IMF다시 안 온다는 사람. 잘 봐둬라. 이미 미국에서는 우리나라 위험경고했다.
고아라 이쁘다
지금이 딱 이런 시기인데 아무도 위기를 못느끼네
달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