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나라 입장에서 수나라를 대패 시킨 역사를 굳이 없앨 이유는 없죠. 네차례 고수 전쟁을 통한 패배 때문에 수나라가 멸망 테크 탄거고 이세민이 권력을 잡는데 큰 도움이 됐으니까요. 아마도 을지문덕은 당시 왕당파의 주축이 되는 대대로(최고 관직이자 왕과 동급)였지만 30년 후 연태조(연개소문 아버지)나 연개소문이 집권하면서 을(지) 씨 가문은 숙청당했을 확률이 매우 높아요
멍청아 당나라 리씨는 원래 수나라나 같은 선비족이고 흉노족 선비족 모두 애초에 고구려 5부족중 하나였어 후한서애도 기록이 있다 당나라 선비족은 수나라랑 같은 선비족이니 당연히 신라와 뭉쳐서 고구려 역사를 지우고 조작한거다 고건무가 을지문덕 후손들 학살한 쿠테타 내용도 다 지우고
을지문덕은 모든 북방 유목민을 통일한 대칸 출신으로 진기스칸에 버금가는 인물임 문덕이 이름이 아니고 모든 유목부족 통일한 대칸에 대한 명칭이고 한자로 음차한 것임 투륵 막토의 막토 묵특, 모돈, 문트. 다 같은 말임 을지의 지도 고귀한 신분에 붙이는 씨의 존칭임 을지문덕 ===을씨 대칸 ==을씨 카한
@@kevindevaojoo8882 근거가 없는 이야기 입니다. 일단 북방 유목민이라고 볼 수 있는 흉노, 몽골, 거란 등에서 최고 지도자를 부르는 단어는 칸, 가한, 간, 한 - 이정도 인데, 한문으로는 干, 혹은 可汗, 汗 이렇게 표기하고 이건 신라에서도 마립간麻立干 등에서 사용합니다. 묵특, 모돈, 문트 등은 흉노의 대영웅인 묵돌선우를 뜻하는 몽골어 혹은 거란어 등을 말하는데, 묵돌은 이름이고 선우單于가 직위입니다. 을지문덕의 문덕이 만약 이런 호칭이었다면 을지OO 칸, 을지가한, 을지한, 을지선우 등으로 쓰여져야 맞는 표현이 됩니다. 고구려어와 신라어, 백제어는 삼국시대에도 서로 언어가 비슷하고 통했던 기록이 뚜렷하므로 을지문덕이 그런 뜻일 가능성이 매우 낮습니다.
@@ONE2LOVE3 구 신 으로 나누기에도 애매한게 연 씨 가문 자체는 네차례 고수 전쟁으로 피폐해진 고구려에 큰 자금 줄이 되는 은광사업으로 재계에 진입한 연개소문의 조부부터 시작한 신흥 가문이 맞지만 협력한 가문은 당시 고구려 초 부터 주축이 되었던 동부(상부)라 추측됩니다. 연개소문이 대대로로 삼은 고정의가 동부 출신일 가능성이 높거든요. 오히려 영류왕의 아버지인 평강왕 부터 평강공주와 온달 스캔들이 발생할만큼 동부를 배제하고 왕권을 강화하려한 움직임이 있었고 아들들인 영양왕 영류왕 역시 같은 스탠스를 취했을 가능성을 본다면 상당히 복합적인 정치 대립 체계였으리라 봐요. 그래서 예로부터 동부였던 을(지) 씨의 숙청 주모자는 오히려 왕당파이지 않냐라는 주장도 있지만 이것도 말이 안되는게 결과적으로 승리자는 연개소문이라는 점을 봤을 때 모순이 발생하죠. 아마 을(지) 가문은 중간에 스탠스를 변경해서 평강왕 편에 붙었거나 애시당초 반동부 파였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을지문덕에 관한 영상에 대해서는 다른 역사 채널에서 다루어서 본 적이 있습니다. 세계 전쟁사에서 손에 꼽을만한 업적을 이루었는데도 기록이 전무하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 다는 것에 저도 동감합니다. 아마도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그 기록을 지웠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세계 역사이래 최고의 대승으로 이것보다 더 대승의 역사에 없어요 하지만 한반도 사람이 아니라서 역사에 없어요 조선시대 부터 영토는 한반도였으니.. 몽골사람으로 지금도 몽골에는 올지모던이런 이름이 있어요 바보온달 대무신왕(테무진) 다 한반도 사람아니에요 몽골,바이칼 쪽 사람이죠.
당시 수나라 군대는 100만대군이 아니라 130만대군인 것으로 기억하는데요. 물론 제가 잘못 알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이 병력이 어느 정도 큰 것인가 다들 감을 못 잡는 듯한데요. 세계 전쟁사에서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기 전까지, 이 고구려-수의 전쟁이 가장 큰 규모의 전쟁이었던 것입니다. 그 전쟁에서 100만대군은 요동의 주력을 묶어 놓는 일을 했었고, 30만 별동대는 수도인 평양을 치러 들어갔다가 전멸한 것이죠. 이러한 일이 생기자 주력이던 100만대군이 그대로 철수하면서 전쟁이 끝났습니다. 저는 을지문덕도 대단하지만 이러한 전쟁을 총지휘했던 영양왕의 전략과 사전 외교가 더 대단하다고 봅니다. 당시의 고구려의 지략과 외교적 역량을 살펴보면 현재 한국의 외교가 얼마나 졸렬한지 비교가 될 정도입니다. 한편, 이러한 자랑스러운 역사가 이웃나라 일본이나 중국에서 있었더라면, 그들은 지금도 전세계에 이러한 일을 홍보하고 당시의 영웅들을 신격화하는 작업을 하고 있을 겁니다. 아마도 일본에서 이런 일이 있었다면 을지문덕 신사만 전국에 수십개가 만들어졌겠죠. 제가 하고 싶은 말은, 한국인들은 신화에 가까운 업적을 남긴 영웅들의 대접에 지나치게 쿨하다는 점입니다. 좋은 점도 있겠지만, 개인적으론 그런 한국인들이 불만스럽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정말로 좋은 영상인 것 같습니다.
마찬가지로 같은 시대에 활약했던 유명인인 온달도 본인에 대한 명확한 기록이 남지 않았음. 파벌 때문에 반란까지 일어날 레벨로 고착화된 귀족계층으로 이름 높은 당대 고구려 사회에서 이례적인 일임. 때문에 고구려의 내실 다지기 시기였던 평원왕 시절 대거 등용되었던 신흥 귀족 층이 아닐까란 이야기가 있음.
세계 역사이래 최고의 대상으로 이것보다 더 대상은 역사에 없어요 하지만 한반도 사람이 아니라서 역사에 없어요 조선시대 부터 영토는 한반도였으니.. 몽골사람으로 지금도 몽골에는 올지모던이런 이름이 있어요 바보온달 대무신왕(테무진) 다 한반도 사람아니에요 몽골,바이칼 쪽 사람이죠.
고구려가 워낙 기록이 없어서 그럴지도 그 유명한 장수왕도 기록이 고작 몇줄에다 재위후 30년이 지나서야 기록이 등장하는데 왕도 이런 시국에 을지문덕이 신라와 적대적은 아니였지만 신라 입장에선 마지막엔 적국이였던 장수에 대해 자세히 쓸일은 없었겠죠. 우리나라가 도요토미 히데요시 정권을 무너뜨리고 조선과 다시 좋은 관계를 시작한 도쿠가와 이에야스에 대해 관심이 없는것처럼
@@seank8050 을지문덕이 한반도 사람이 아니고 몽골계라서 역사책에 안나옵니다 조선시대부터 우린 한반도로 영토가 엄청나게 축소되었고 이씨조선은 대놓고 고대사 왜곡 역사 왜곡 역사책가지고 있으면 다 수거 하고 폐기처분 가지고있으면 사형 까지 시켰으니까요 우리가 대충이름들어본 사람 대다수는 한반도 사람아니에요 조선시대부터는 영토가 한반도니까 한반도사람이구요
걍 신흥세력이라서 그렇다는 말이 있음. 왕이 친위 세력으로 의도적으로 키워줬지만 결국 본인이나 그 다음 대 즈음에서 명성이 끝났다는 이야기임. 고구려에선 귀족 계층이 너무 굳어있다보니 의외로 명망높은 귀족이 아니라면 관직명만 기록되는 경우가 많음. 오히려 같은 시기 비슷한 케이스로 등용된 온달이 이름을 남긴 게 이례적일 정도임. 이것도 왕의 사위라서 가능했음. 비슷한 예로 고당전쟁 당시 안시성 전투의 주역인 안시성 성주 역시 본인의 이름은 기록이 없음. 삼국사기에서조차 이름을 알 수 없어 애석하다는 작가 피셜이 있을 정도니... 우리가 알고 있는 이름인 '양만춘'은 정사가 아닌 당태종 일대기 소설인 '당서지전통속연의'에서 등장한 이름임.
세계 역사이래 최고의 대승으로 이것보다 더 대글의 역사에 없어요 하지만 한반도 사람이 아니라서 역사에 없어요 조선시대 부터 영토는 한반도였으니.. 몽골사람으로 지금도 몽골에는 올지모던이런 이름이 있어요 바보온달 대무신왕(테무진) 다 한반도 사람아니에요 몽골,바이칼 쪽 사람이죠.
을지문덕 뿐만 아니라 삼국시대 기록이 삼국유사 외에는 거의 없어 중국이나 일본사료를 봐야한다는 점이 참 아쉬워요. 게다가 고려시대에도 몽골의 살리타 군대와 처인성에서 싸운 김윤후 장군,,, 이 김윤후 장국에 대해 누구인지 어디 출신인지 등 알려진 정보가 거의 없으니 국가 기록 관리가 진짜 중요하다는 것을 느낌니다.
조선 초 고려에 관련된 자료를 삭제 할때 , 고려는 고구려의 후신을 자처 하였으니 고구려에 대한 자료도 같이 삭제 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합니다. 그 역사 삭제의 주역이 세종이라는게 아이러니 ... 역사기간에 비하여 사료가 많이 부족 한 것이 이씨 왕조의 조직적인 역사 삭제 때문 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전에 역사서를 기반으로한 유튜브 영상에서 본 것 같은데 살수대첩이후 전쟁승리에 크게 기여했던 강이식 장군과 을지문덕 장군이 후퇴하는 수나라를 쫓아 중국본토 정벌을 강력히 주장했었죠. 지금의 고구려의 힘으로 충분히 가능하다면서요. 하지만 영양왕의 완강한 반대와 철수명령으로 수나라 본토정벌에는 시도도 못하고 끝이나죠. 이후 을지문덕에 대한 기록은 생사는 고사하고 어떠한 내용도 찾아볼 수 없습니다. 비록 큰공을 세웠지만 전쟁이후 반대세력에 의해 축출되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봅니다.
좋은 영상 감사합니다,,현대의 지역적이나 국가적 역사관으로 천년전의 역사를 이해 하려고 하면 많은 오류가 있지 않을까 합니다,,지금의 한국이라는 작은 지역의 국가나 민족적 정체성이 정해진 입장에서는 더욱 그럴거 같습니다,,한민족이라는 것보다 동이족이라는 포괄적인 시각에서 보아야 그당시 지명이나 인명의 이름을 이해하는데,,수월하지 않나 싶습니다,,예를들어 살수대첩의 살수가 어디인가입니다,,김정민 박사님의 강의를 인용하면 김박사님의 주장에 의하면 살수의 살은 투르크어의 사르,,사르는 누렇다는 말이라네요,,또 수는 강을 뜻한다네요,,즉 살수는 한자로 표기하면 누런강이 되는 황하일 가능성이 크다네요,,또 황하강 정도는 되어야 30만 정도의 대군을 수장 시킬수 있지요,,한반도에는 그정도 되는 강이 없지요,,또 을지문덕 장군의 을지는 지금의 몽골 사람들이 많이 쓰는 올지 성씨이고,,문덕은 흉노족 왕들 이름에서 많이 쓰이는 모돈,,즉 올지모돈을 한자로 기록하다 보니 을지문덕이라 기록이 된거 아닌가 하네요!,,아마 제대로 고구려,백제,신라의 역사를 이해 하려면 몽골어나 투르크어 그밖의 중앙 아시아의 언어를 어느 정도는 알아야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그리고 민족사관 보다는 지배 계급의 역사인 왕조사관으로 보아야 되지 않을까 싶네요,,
저는 중국인 출신이고 총지휘관이 아니라 일개 성을 지키는 장수이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당시 울지씨들은 수문제의 왕위를 반대하다 숙청당했고 수문제가 이미 을지문덕을 알고 발견하면 잡아두라 했던 점이 딱 맞아 떨어집니다. 또한 당시뿐 아니라 그 이후로도 고구려의 전술이래봐야 우회기동전술 정도가 다 인데 뜬금없이 수공을 시도 한 점. 중국은 삼국지에서도 화공 수공이 자주 나오죠. 총지휘관이 아니라 일개 장수 였을거라는건 고구려의 상황을 보면 총지휘관일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고구려는 부족연합체이고 대부족들은 제외하고는 고위직에 오르는 자체가 불가능합니다. 심지어 그 대부족끼리도 파벌싸움이 심했고 침략을 막기 위해 각부족에서 차출한 병력을 맡겼어도 전쟁후 병력을 돌려주지 않을까봐 그 장수를 음해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병력을 맡겨도 대부분 노예병이지 훈련받거나 장비를 갖춘 정규군을 잘내주지 않음) 그런 상황에서 출신도 불분명한 사람이 총지휘관일수는 없다고 봅니다. 고구려의 역사서가 1개도 남아있지 않아서 중국의 기록과 삼국사기에 의존하고 있는데 중국측에선 일개장수에게 정예대군(당시 장수들은 황제가 되기전부터 따라온 친위세력임)이 대패를 했으니 쪽팔려서 기록에 총지휘관으로 격상시켰을겁니다. 전쟁 직후 을지문덕의 기록이 없는것도 위 가설대로면 맞아떨어집니다. 고구려측에선 당연히 대부족들의 견제를 받았을거고 중국측에선 반역자집안인데다가 대패를 안겨준 기록은 아예 없애고 싶었을 겁니다. 중국은 타민족에게 패배한 기록은 아예 없애거나 왜곡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아마 삼국지 좀 아는분들은 관구검이 소규모보병으로 고구려 정예기병을 박살낸적이있다는걸 아실겁니다. 사실은 기록을 꼼꼼이 뒤져보면 반대로 대패하고 돌아왔을 확률이 높습니다. 정말 그런일이 있었으면 고구려의 복종 서신이나 고구려에게 관직을 내리는등의 행위가 있었어야했고 (당시 다른 이민족 정벌후 항상 그래왔음) 전리품도 어마어마했을것이며 고구려말의 노획과 중갑기병의 발달등이 있어야했지만 없습니다, 고구려에선 오히려 잔치를 했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이처럼 중국은 패배를 인정하지 않고 왜곡하거나 삭제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을지문덕의 기록도 일부러 삭제했을 확률이 높습니다.
아 심지어 우리나라는 일제때 위인들에 대한기록도 많이 삭제 당하거나 왜곡 됐고 광복 이후로도 역사학계는 현재까지도 친일파들이 꽉 잡고 있어서 어떻게든 위업을 깍아내리거나 거짓이라고 많이 하고 있죠. 아마 을지문덕도 100년도 안돼서 그저 신화취급 받을겁니다. 그저 고구려의 정신을 고취시키기 위해 지어낸 이야기다 식으로 말이죠. 우리는 일제시대에 역사를 보존해준분들께 감사해야합니다. 우리역사를 왜곡하려는 세력이 중국 일본 심지어 국내에 친일세력까지 만연한데도 그분들이 명확한 자료를 남겨준 덕분에 우리나라 우리민족으로 남아있는겁니다. 그분들이 아니었으면 우리는 매일 중국이나 일본천왕을 향해 절하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비록 지금도 독도내주고 7광구 내주고 일제 만행덮어주고 폐방사능자재 가져다 아스팔트로 만들어서 국내에 깔고 후쿠시마산 맥주만 들여오고 일본자본으로 굴러가는 모기업이 식품류를 꽉 잡고 있고 해서 사실상 속국과 다름 없긴 합니다만 앞으로라도 역사를 바르게 탐구하고 후손에게 제대로 된 정보를 전달해주어야 할겁니다. 저들에 의해 사라지도 가상취급 받지 않도록요. 그래야 우리나라가 한나라로서 바로 유지 될 수 있습니다.
선비족 출신의 이민자 울지문덕… 위태로운 국가를 위해 자신의 계책을 실현하여 전쟁을 이끌어보고자 하지만 귀족들은 그의 출신때문에 그런 그의 계책을 무조건적으로 반대한다. 우여곡절 끝에 결국 살수에서 실현된 그의 계책… 훗날 역사에는 그에게 존귀한 존칭 두 자를 붙여 을지문덕이라 기록된다.
세계 역사이래 최고의 대승으로 이것보다 더 대승의 역사에 없어요 하지만 한반도 사람이 아니라서 역사에 없어요 조선시대 부터 영토는 한반도였으니.. 몽골사람으로 지금도 몽골에는 올지모던이런 이름이 있어요 바보온달 대무신왕(테무진) 다 한반도 사람아니에요 몽골,바이칼 쪽 사람이죠.
참고할 만한 역사서가 삼국사기 삼국유사 밖에 없는게 정말 아쉬움. 고구려 백제는 망국이었고, 그 기록은 적국에 의해 파괴되고 말소되었기에 우리가 알 수 있는건 제한적임. 삼국사기도 저자 김부식이 경주 김씨인 관계로 신라 위주로 집필된것도 그렇고....아쉬울 뿐이네 정말.
연개소문 원래 성씨가 을씨야 즉 원래 을지문덕 후손이야 그래서 자기 할아버지 원수를 갚기위해 고건무 세력을 처참하게 도륙한거야 고건무가 쿠테타하면서 자기 라이벌인 을지문덕 장군 가문을 학살했다 그때 도망쳐 살아남는데 연개소문과 일부야 그래서 처음엔 천씨로 바꿔 살다가 다시 연씨로 바꿔서 고건무 세력 의심을 피한거다 그리고 대조영 형제도 Oguz khan 후손인데 Oguz khan의 증조부가 고구려 카한인 “”을지 설 각간 “”이다 이 을지 설 각간은 을씨 대칸. 이란 뜻으며 을지문덕 장군이라는 가능성 99%다 아니면 그 아버지거나 혹은 그 아들 이 을지 설 각간 의 쌍둥이 아들이 타타르 칸과 모골칸이다 고구려 모든 유목부족을 통틀어 모골족이라 했고 신라계는 이걸 말갈족이라 불렀다 말고을 부족 ==모골족 ==유목부족 즉 을지문덕 혹은 을지문덕 아들이 모든 유목부족 대칸이란 의미 타타르칸은 타타르족 시조인데 이사람이 “””연(개)아달라 이며 한자로는 “”연(개)자유 ====연개소문 할아버지 여기서도 연개소문이 원래 을씨 즉 을지문덕 후손이란게 증명되는거다 이 을지문덕의 증손자로 추정되는 oguz Khan의 후손들이 서쪽으로 이동해 모든 투르크왕조를 세우게 된다 호라즘 (코라즘) 제국부터 셀주크 투르크, 이집트 맘룩 왕조 , 오스만 투르크 왕조까지 모든 투르크 왕조는 바로 서쪽으로 이주한 을지문덕 장군 후손들이 세운 것이다 자 그럼 니가 역사조작 주체인 영미프 유대자본 세력이라고 생각해보자 자고로 과거 역사란 봉건왕조 왕족의 역사다 일반 개돼지들 Story가 아니다 고구려 을지문덕 장군 가문의 역사를 남겨두면 어찌 되겠나??? 1700년대 말 이후 한반도로 코리안들 토끼몰이해서 반도사로 축소조작해 세뇌시켜 왔는데 을지문덕 가문 역사가 공개되는순간 고구려 역사가 중앙아시아와 중동까지 타타르족이 지배한 우크라이나 남부까지 확대되는 것이다 현재 영미프를 사냥개로 세계를 지배해온 유대자본 세력이 이걸 용납하겠나??? 공산주의 만들어 시베리아 고구려 후손과 러시아인 7000만명을 학살하고 유러시아 고구려 후손들 역사를 제거해온게 바로 영미프 유대자본 세력이다 따라서 너희 반도에 갇힌 코리안들은 을지문덕 장군 후손들의 위대한 역사는 절대 알아서는 안되는 것이다 구글검색 “””징기스칸 고구려 발해 후손
(오늘의 교훈) 1. 살수가 어디였는지는 알 수 없다. 0:32 2. 을지문덕의 성과 이름이 무엇인지 알 수 없다. 4:26 - a) 성: 을, 이름: 지, 관직: 문덕 (을파소의 후손 주장) - b) 성: 을지, 이름: 문덕 (선비족 비숫한 성씨 존재) - c) 성: 문, 이름: 덕, 관직 또는 호: 을지 (예시: 도올 김용옥) - d) 성: 을, 이름: 지문덕 - e) 성: 을지문, 이름: 덕 - f) 지어낸 이름
을지문덕 장군의 기록이 남아있지 않은 건에 대해선 몇가지 추론을 할 수 있는데 첫번째는 고구려 내에서 기록 말살형을 당했기 때문이라는 추측, 다른 추측으로는 삼국사기 편찬 당시 그 이전의 기록에서 을지문덕의 자료가 상당수 유실되었기 때문이라는 것, 또한 고구려에 대한 사료는 유적과 유물이 본토였던 만주에 있기 때문에 그 기록을 한국에서 다루기 어려우므로 아직 발견되지 않았을 가능성이 있으며 고구려는 거의 모든 시대가 극히 격렬한 전쟁의 역사이고 내부적으로도 혼란했던 탓에, 기록을 편찬하기에 적합한 상황이 아니었으므로 단지 자국에서 전공 이외의 기록을 남길 여유가 없었을 경우도 있다. 을지문덕 장군이 고구려 내에서 기록 말살형을 당했을 거라는 추측은 그의 전공에 비해 유독 그에 대한 무용담과 서사가 없다는 데 있어 이것이 의도적인 은폐일 것이라는 의심에서 기인하며 왕권의 위협을 느낀 왕과 권력자들이 감당할 수 없는 전공을 세운 을지문덕을 조선의 선조가 충무공을 비롯한 영웅들에게 했던 것처럼 누명을 씌워 축출해버리고 존재 자체를 지워버렸거나 을지문덕이 진짜 역모를 꾀했고 이를 저지하였으나 그의 추종자들과 민심까지 막을 방법은 없었기에 을지문덕에 대한 모든것을 숨기고 쉬쉬했을 것이라는 추측이다. 대외적으로 널리 알려진 활약상에 대해서는 어찌할 수 없으나 이렇게 될 경우 국내에서는 그를 기억하는 세대가 지나기 전까지 침묵하고 관련 기록이나 의혹을 국가에서 철저히 배제했다고 하면 그의 기록이 유난히 적은 부분을 설명할 수 있다. -- 그의 기록이 단순히 유실되었을 뿐이라는 것은 추측이 아니라 실제로 삼국사기 집필 당시 이미 고구려가 남긴 기록 대부분이 유실되어있었기에 엄연한 사실이다. 고구려는 전쟁과 내부적인 갈등으로 혼란스러운 역사를 걸어왔고, 결국 멸망했기 때문에 전화에 휩쓸리며 을지문덕에 대한 내용을 포함한 기록이 훼손되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흐름. 그러나 이 경우 남는 의문은 한국 역사상 손꼽히는 대승을 거둔 역사 위인에 대한 출신이나 다른 무용담들이 어째서 구전이나 전설등으로 널리 퍼지지 않았냐는 것이다. --- 을지문덕 장군 기록에 대한 미발견은 자국의 역사를 자랑스러워하는 중국이 의도적으로 숨기고 있을 가능성을 포함한다. 남의 나라의 위인, 그것도 자신들에게 역사상 손꼽히는 대패를 안겨준 위인이 조명을 받는 것은 하나의 중국을 제창하는 그들에게 있어 뼈아픈 타격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 네번째 추측은 가장 말이 안되지만 원래 고대사의 기록이란 건 대개 세세한 기록을 남길 생각 자체를 안하거나 왜곡이나 변형이 많은 것이 특징이다. 제대로 된 자료를 남길 여력은 없으나 민간에 떠도는 구전담은 잔존하였기에 삼국사기에서는 을지문덕의 구전을 추려 만들었을 것으로 보인다는 것.
대신은 단순히 신하 또는 높은 관직이 아니라 대대로로 보기도 합니다. 지금으로 치면 수상, 또는 부족제임을 감안하면 국회의장 수준이라고 봐야죠 그리고 고구려는 대규모 전쟁 시 왕 또는 그에 준하는 권한을 가진 인물이 총 사령관을 하는 경우가 많죠. 그래서 수나라 양제가 영양왕 또는 을지문덕을 보면 잡으라고 한겁니다. 대대로급 자리는 단순히 개인의 실력, 역량만으로 가능한 자리가 아니라는 점을 생각하면, 선비족, 외국인, 신진세력이니 하는 설은 어불성설이고 동부의 유력가문인 을가일 가능성이 높다고 봅니다. 그럼 왜 을지문덕에 대한 기록이 없냐? 수나라와의 전쟁 이후 고구려는 흐름을 보고 생각해봐야합니다 또다른 전쟁영웅 영류왕(고건무)가 왕위에 오르며, 당에 화친하는 방향으로 흐릅니다. 이후 당나라의 내정간섭 끝에 전쟁의 분위기가 강해지는 가운데 동부의 연개소문이 영류왕을 시해합니다. 1. 주전파인 을지문덕과 화친파인 영류왕이 갈등했을 가능성 두 전쟁 영웅간의 의견차이로 지속적인 갈등을 겪었는데 영류왕이 정쟁에서 이기며, 을지문덕 및 을가를 무너트린 후 영류왕은 기록말살형에 가깝게 을지문덕 및 을가의 기록을 지웠을 수 있습니다. 만약 둘이 싸웠다면 충분히 영류왕 입장에서는 전쟁영웅으로서의 을지문덕을 지우고 싶었을 겁니다. 거기다 영류왕을 시해하고 정권을 잡을 연개소문 역시 동부의 유력가문 경쟁상대인 을가의 기록을 굳이 복원할 필요성을 못느끼면서 그대로 묻혀버리고 사려졌으나 전쟁영웅 을지문덕의 이야기만 구전으로 이어졌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2. 영류왕과 을지문덕 모두 화친파로 돌아서, 주전파인 연개소문이 지워버렸을 가능성 동부의 대대로 자리는 왕이 지목하는 것이 아닌 동부의 유력가문이 차지하는 방식입니다. 유력가문간의 경쟁은 단순히 지지세력의 포집이 아닌 실제 무력다툼도 발생했고 이경우 왕가는 궁성을 잡그고 관여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연개소문이 동부를 차지하는 과정에 동부 내 경쟁상대였을 수도 있는 을가를 제거했을 수 있습니다. 이후 주전파인 자신의 입지를 강화하고, 영류왕 시해를 정당화 하기위해 역시 화친파로 돌아선 을가를 멸문시키고 전쟁영웅 을지문덕 이야기만 남겨 당과의 전쟁 프로파간다로 이용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즉, 전쟁영웅 을지문덕과 을가와의 관계성을 지우고 외적의 침입에 대항한 영웅으로만 남기면 지금처럼 을지문덕이라는 인물만 남고 생몰년도, 출신 모두 기록이 없어 질 수도 있는 겁니다.
삼국사기 삼국유사는 신라 중심의 기록이었기 때문에 고구려사는 축소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살수대첩의 위치도 현재 정확히 어느 강이었는지, 후대에 수공이었다고 해석할 만한 곳이 그 당시에 있었는지도 확실치 않습니다. 고구려 기록이 많이 남아있지 않은 이유는 역시 당나라에의해 망하면서 기록이 대거 소실되었기 때문일 겁니다. 안타까운 역사의 손실이죠.
@@문희원-r6x 시기질투로 뒤끝작렬하는 것은 외국이 더 함. 멀리 갈 것도 없이 중국의 케이스만 봐도 알 수 있는데, '공'이나 '형평성'을 따지는 것이 아니라 '왕이 싫다고 하시는데요?' 가 더 우선임. 거긴 9족을 '슥삭'하는 것도 심심찮게 발견됨. 반대로 우리나라는 생각과는 다르게 역적 자손도 우려먹는 우려먹기의 진수임. 대표적으로 정도전만 봐도 본인은 대역죄인이지만 후손들은 대대로 고관대직을 누렸음. 당장 정도전의 큰아들인 정진만 봐도 알 수 있는데, 무인정사 때 혼자 지방에 내려갔다가 살아남은 케이스로, 이 양반을 다시 등용한 양반이 정도전을 슥삭했던 태종임. 심지어 세종 대에는 형조판서까지 역임함. 증손인 정문형까지 가면 대표적인 훈구파 네임드임. 그리고 거북선 등의 무기에 대한 기록이 부실한 건 그냥 나사 하나 빠진 듯이 병기 쪽 기록이 부실했던 조선시대 기록 특징임. 이 대표적인 예가 바로 거북선임. 거북선은 놀랍게도 1872년, 즉 흥선대원군 집권시기까지 남아있었는데, 고종이 흥선대원군 치워버리고 친정할 즈음이 되면 '야, 우리나라 거북선 국뽕 끝판왕 아니냐? 그런데 거북선 도면 어디다 뒀냐? 난 몰?루' 같은 기록이 등장함. 물론 통제사 영감께서 만들었던 시기와는 200년넘게 시일이 흘렀으니 딴판이었겠지만 어쨌든 20년 안팎의 짧은 시기 동안 거북선이란 전함의 관련 기술 자체가 사라졌음. 이건 미국이 2차 대전 끝나자마자 16인치 함포 생산 기술 까먹어 버리는 수준의 속도로 잊어버렸다는 이야기임. 돌려 말하면 증기선 돌아다닐 시기에 거북선 수준의 구형함의 건조 기술이 사장되는 것은 당연하다는 이야기이기도 함. 이런 걸 보면 단순한 질투 때문에 도면이나 기술이 사라진 것은 아님. 단지 후손들이 복원하려니까 난감한 케이스인 것 뿐임. ...그런데 거북선을 흥선대원군 시기까지 우려먹었다고? 오우야. 이런걸 보면 한반도 종특은 아무래도 질투가 아니라 우려먹기가 아닐까.
신라가 당과 협잡해서 고구려를 멸한 다음... 고구려의 영웅 을지문덕에 대한 기록을 다 없애버린 거겠죠. 이런 영웅들이 한 둘이 아닐 듯 합니다. 안시성 성주도 그렇고... 또 일본으로 건너가서 야마토를 세운 백제 유민들에 대한 기록도 그렇고... 또 고려 때 거란 2차전을 막은 양규의 기록도 그렇고... 하물며 거란과의 전쟁에서 승리를 답습해서 여진정벌에 벌렸다가 실패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냥아치 척춘경이라는 놈에 대한 기록도 빼곡하지요. 아마도 몽골 눈치를 보면서, 몽골과 혈통이 같은 거란과의 전투에서 이름을 날린 영웅들은 도외시하고, 반면 여진족을 정복한 몽골과 고려의 여진정벌은 동일시하면서 척춘경 영웅만들기를 시전했을 수도... 여하튼 씁쓸....
기묘한밤님 항상 잘 보고 있습니다. 새해에는 항상 좋은 날 되시고 앞으로도 양질의 영상 기대하겠습니다.
영상을 이정도 퀄리티로 만든다는게 쉬운것이 아닙니다.
격려의 댓글은 감사하나 비난은 하지 맙시다.
비난을 왜 해요?
비난을 누가 함..?
왜 해요 비난을?
의외로 비난 많음
비난 글을 봤으니 쓰는거겠지
을지문덕 장군은 우리나라 역사상 최고의 장군님 중의 하나 이십니다 항상 존경합니다
'최고 중 하나'란 말은 영어식 표현이라 되도록 사용을 자제해야 합니다. 최고는 오직 하나이니까요.
@@au79ag47 나만 이해한됨?
@@au79ag47
각 시대별로 최고의 장군이었다는것 아닌가
고구려때는 을지문덕
조선때는 이순신
@@XX-rn8uc
고구려 을지문덕 양만춘
신라 김유신
백제 계백
고려 척준경
조선 이순신
👆 👆 수 위,, 지 리 기로 유명!!!
최신근황 ㄹㅇ
👆 👆 삭 제 되기전 스 피 드하게 👆 보 .예 .노 .지 👆 검색 ㄱ ㄱ
어떤설에 의하면 나당 연합군이 평양성을 점령했을때 당나라가 자신들의 수치를 감추기 위해 고구려의 역사서를 불사르고 흔적을 지우려고 했는데 이때 을지문덕의 기록이 담긴 역사서가 소실되었을것으로 추정하는데 개인적으로 이게 맞는것 같습니다.
당나라 입장에서 수나라를 대패 시킨 역사를 굳이 없앨 이유는 없죠.
네차례 고수 전쟁을 통한 패배 때문에 수나라가 멸망 테크 탄거고 이세민이 권력을 잡는데 큰 도움이 됐으니까요.
아마도 을지문덕은 당시 왕당파의 주축이 되는 대대로(최고 관직이자 왕과 동급)였지만 30년 후 연태조(연개소문 아버지)나 연개소문이 집권하면서 을(지) 씨 가문은 숙청당했을 확률이 매우 높아요
멍청아
당나라 리씨는 원래 수나라나 같은
선비족이고
흉노족 선비족 모두
애초에 고구려 5부족중 하나였어
후한서애도 기록이 있다
당나라 선비족은 수나라랑 같은
선비족이니 당연히 신라와 뭉쳐서
고구려 역사를 지우고 조작한거다
고건무가 을지문덕 후손들 학살한
쿠테타 내용도 다 지우고
신라는 방관했을거고
이순신 장군만 봐도 엄청난 업적을 세우셨니만 정치에 휘둘리셔서 당시 나라로부터 제대로 대접받지 못했는데 그보다 더 오래전에도 그런 정치 파벌싸움은 존재했겠지요. 혹시 그래서 장군에 대한 기록이 사라진게 아닌가란 생각도 듭니다.
삼국사기, 삼국유사 이전의 고대 한반도의 역사서가 죽기 전에 기적처럼 온전하게 발견되기를 기다리는 1인..
미국 대학 지하에 우리 역사서 수만권 있음
미국 세인트루이스 와싱톤 대학
1개만 동양 고서적 수만권 보유하고
있으나 거의 공개 안함
@@kevindevaojoo8882 미국어디대학?
새해복 많이 받아요 뭔가 새해에 잘 어울리는 주제네요
중국 사서 등에 따르면 수나라 황제가 "혹시라도 고구려의 임금이나 을지문덕을 마주치면 반드시 사로잡으라" 라고 우중문과 우중술에게 명을 내렸다고 하는데, 이정도면 을지문덕의 위상은 당시 고구려의 왕이었던 영양왕과 동급이었다는 뜻이 됨.
을지문덕은 모든 북방 유목민을 통일한
대칸 출신으로 진기스칸에 버금가는
인물임
문덕이 이름이 아니고 모든 유목부족 통일한 대칸에 대한 명칭이고
한자로 음차한 것임
투륵 막토의 막토
묵특, 모돈, 문트. 다 같은 말임
을지의 지도 고귀한 신분에 붙이는
씨의 존칭임
을지문덕 ===을씨 대칸 ==을씨 카한
@@kevindevaojoo8882 근거가 없는 이야기 입니다. 일단 북방 유목민이라고 볼 수 있는 흉노, 몽골, 거란 등에서 최고 지도자를 부르는 단어는 칸, 가한, 간, 한 - 이정도 인데, 한문으로는 干, 혹은 可汗, 汗 이렇게 표기하고 이건 신라에서도 마립간麻立干 등에서 사용합니다. 묵특, 모돈, 문트 등은 흉노의 대영웅인 묵돌선우를 뜻하는 몽골어 혹은 거란어 등을 말하는데, 묵돌은 이름이고 선우單于가 직위입니다. 을지문덕의 문덕이 만약 이런 호칭이었다면 을지OO 칸, 을지가한, 을지한, 을지선우 등으로 쓰여져야 맞는 표현이 됩니다. 고구려어와 신라어, 백제어는 삼국시대에도 서로 언어가 비슷하고 통했던 기록이 뚜렷하므로 을지문덕이 그런 뜻일 가능성이 매우 낮습니다.
일각에서는 을지문덕 가문이 훗날 고구려 내 정쟁에 휘말려 멸문을 당하는 과정에서
그 관련 기록까지 말끔히 삭제되어 버린 것이 아닌가 하는 추측도 있습니다.
말끔히 삭제됐어도 살수대첩에 관한 기록은 남아있으니 아이러니죠
맞습니다 을씨성 을파소의 부가 연개소문의 연나부와 적대적이라, 멸문되면서 사라졌다는 설도 있습니다. 을은 구 귀족 연는 신 귀족
이게 사실 주류 학설이죠.
이민족 성씨니 뭐 이딴 환빠들이나 지껄이는 헛소리 나도는거 보면 참 안타까움 ㅋㅋㅋ
@@ONE2LOVE3 구 신 으로 나누기에도 애매한게 연 씨 가문 자체는 네차례 고수 전쟁으로 피폐해진 고구려에 큰 자금 줄이 되는 은광사업으로 재계에 진입한 연개소문의 조부부터 시작한 신흥 가문이 맞지만 협력한 가문은 당시 고구려 초 부터 주축이 되었던 동부(상부)라 추측됩니다.
연개소문이 대대로로 삼은 고정의가 동부 출신일 가능성이 높거든요.
오히려 영류왕의 아버지인 평강왕 부터 평강공주와 온달 스캔들이 발생할만큼 동부를 배제하고 왕권을 강화하려한 움직임이 있었고 아들들인 영양왕 영류왕 역시 같은 스탠스를 취했을 가능성을 본다면 상당히 복합적인 정치 대립 체계였으리라 봐요.
그래서 예로부터 동부였던 을(지) 씨의 숙청 주모자는 오히려 왕당파이지 않냐라는 주장도 있지만 이것도 말이 안되는게 결과적으로 승리자는 연개소문이라는 점을 봤을 때 모순이 발생하죠.
아마 을(지) 가문은 중간에 스탠스를 변경해서 평강왕 편에 붙었거나 애시당초 반동부 파였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개우지-v1x 좋은 말씀 잘 듣고 갑니다.
항상 잘보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새로운 기묘한이야기 잘부탁드립니다.
새해복 많이 받으세요
을지문덕에 관한 영상에 대해서는 다른 역사 채널에서 다루어서 본 적이 있습니다.
세계 전쟁사에서 손에 꼽을만한 업적을 이루었는데도
기록이 전무하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 다는 것에 저도 동감합니다.
아마도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그 기록을 지웠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세계 역사이래 최고의 대승으로
이것보다 더 대승의 역사에 없어요
하지만 한반도 사람이 아니라서
역사에 없어요
조선시대 부터 영토는 한반도였으니..
몽골사람으로 지금도
몽골에는 올지모던이런 이름이 있어요
바보온달 대무신왕(테무진) 다 한반도 사람아니에요
몽골,바이칼 쪽 사람이죠.
연개소문의 아들들이 지웠을거 같은데..흠
고구려는 자기들끼리 완력질하다가 망한게 팩트
의도적으로 만들어진 인물일수도 있는데요...
@@L류자키 당시 고구려 정황을 보면 연개소문은 을지문덕을 추종하고 존경했을 가능성이 훨씬 높음.
성실함에 감사합니다.
당시 수나라 군대는 100만대군이 아니라 130만대군인 것으로 기억하는데요. 물론 제가 잘못 알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이 병력이 어느 정도 큰 것인가 다들 감을 못 잡는 듯한데요. 세계 전쟁사에서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기 전까지, 이 고구려-수의 전쟁이 가장 큰 규모의 전쟁이었던 것입니다. 그 전쟁에서 100만대군은 요동의 주력을 묶어 놓는 일을 했었고, 30만 별동대는 수도인 평양을 치러 들어갔다가 전멸한 것이죠. 이러한 일이 생기자 주력이던 100만대군이 그대로 철수하면서 전쟁이 끝났습니다. 저는 을지문덕도 대단하지만 이러한 전쟁을 총지휘했던 영양왕의 전략과 사전 외교가 더 대단하다고 봅니다. 당시의 고구려의 지략과 외교적 역량을 살펴보면 현재 한국의 외교가 얼마나 졸렬한지 비교가 될 정도입니다.
한편, 이러한 자랑스러운 역사가 이웃나라 일본이나 중국에서 있었더라면, 그들은 지금도 전세계에 이러한 일을 홍보하고 당시의 영웅들을 신격화하는 작업을 하고 있을 겁니다. 아마도 일본에서 이런 일이 있었다면 을지문덕 신사만 전국에 수십개가 만들어졌겠죠. 제가 하고 싶은 말은, 한국인들은 신화에 가까운 업적을 남긴 영웅들의 대접에 지나치게 쿨하다는 점입니다. 좋은 점도 있겠지만, 개인적으론 그런 한국인들이 불만스럽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정말로 좋은 영상인 것 같습니다.
일단 고구려 영토 자체가 대부분 북한이라 유적이나 문헌이 없는게 클듯
잡꾼병신새끼들도 같이 따라왔다
병력은 반도 안되지만 잡종 인력 포함
항상 재밋게 보고있습니다.
새해복 많이 받으시고 항상 건강 챙기시길 바라겠습니다
🐾🔔미니 앞치마 보🐾러 ㄱㄱ!!💦
감사합니다.
새해 신정부터 영상을 올려주는 기묘형! 고맙습니다!
새해부터 민족의 영웅을 주제로 다루어주셨네요^^ 그 누가 뭐라하든 우리 민족의 영웅임에는 틀림없습니다.
한무제의 침략군을 물리친 동명왕 고두막한은 역사에서 잊혀진 인물입니다. 고주몽(고추모)은 동명왕이 아닙니다.ㅡ
@@KIM330M 좌파들이 계속 집권하면 한국은 중공에 종속되고 북한에 흡수될게 확실함.ㅡ
이게 정답이죠.
을지문덕뿐만 아니라 당태종을 막아낸 안시성주 수나라의 100만대군을 막아낸 요동성주도 기록이 전무해서 이름조차 제대로 알수없죠 이런걸 보면 참 통탄스럽습니다
100만자체가 너무 큰숫자라 거짓말 아닐까요
수나라 역사서에 그 숫자가 다 적혀 있습니다 다만 100만이 다 전투부대는 아니고 30만이 전투부대 나머지가 보급부대라고 보면 됩니다
@@one-th8oc 친중파 주사파의 역사조작일듯 중화사상으로 인한 조선시대때부터
강이식 양만춘 아닌가요
@@dklee544 그 명칭도 중국의 소설책에 나오는거라 신빙성이 떨어진대요.
가슴이 웅장해진다
을지문덕 장군님 굉장하다
6:32 당태종은 수나라 이후 아닌가요?? 왜 당태종 이야기에 을지문덕이 나오는지 궁금합니다 알려주실분...
을지문덕 더불어 안시성 성주인 양만춘의 기록도 거의 남아있지 않은것으로 알고있습니다.
최소 양만춘은 아닙니다 그에 관련된 부분은 청화수라는 유투버님 계시니 한번 보시는 걸 추천합니다 그것만 해도 분량을 1시간 뽑으시더라구요;;
너가 한번 찾아봐 구럼
양만춘이라는 이름도 확실한게 아니라던데
양만춘이 아니고 양춘만이라던데?
@@mortytownloco1230
노잼
영상 항상 잘보고 있습니다 건강하시고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한때 엄청 유명했는데...💋🎈수✦‿✦위 지리네🎈
기묘님 오늘 새벽에 산에 다녀왔다는 ㅠ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감기다나으셨군용 잘보고있습니당
진짜 고구려영상 너무좋아요!
진짜 기이한 인물.. 신분사회였던 고대국가에서 군대를 이끌 최고 지휘관이 출신성분, 생몰연월 등의 기록이 전혀 없다는게 이상하지.. 연개소문의 정변이 끝나고나,, 나당이 고구려를 멸망시키고 나중에 지워진건지는 알수 없지만
마찬가지로 같은 시대에 활약했던 유명인인 온달도 본인에 대한 명확한 기록이 남지 않았음.
파벌 때문에 반란까지 일어날 레벨로 고착화된 귀족계층으로 이름 높은 당대 고구려 사회에서 이례적인 일임.
때문에 고구려의 내실 다지기 시기였던 평원왕 시절 대거 등용되었던 신흥 귀족 층이 아닐까란 이야기가 있음.
세계 역사이래 최고의 대상으로
이것보다 더 대상은 역사에 없어요
하지만 한반도 사람이 아니라서
역사에 없어요
조선시대 부터 영토는 한반도였으니..
몽골사람으로 지금도
몽골에는 올지모던이런 이름이 있어요
바보온달 대무신왕(테무진) 다 한반도 사람아니에요
몽골,바이칼 쪽 사람이죠.
고구려가 워낙 기록이 없어서 그럴지도 그 유명한 장수왕도 기록이 고작 몇줄에다 재위후 30년이 지나서야 기록이 등장하는데 왕도 이런 시국에 을지문덕이 신라와 적대적은 아니였지만 신라 입장에선 마지막엔 적국이였던 장수에 대해 자세히 쓸일은 없었겠죠. 우리나라가 도요토미 히데요시 정권을 무너뜨리고 조선과 다시 좋은 관계를 시작한 도쿠가와 이에야스에 대해 관심이 없는것처럼
@@seank8050 을지문덕이 한반도 사람이 아니고
몽골계라서 역사책에 안나옵니다
조선시대부터 우린 한반도로 영토가 엄청나게 축소되었고
이씨조선은 대놓고 고대사 왜곡 역사 왜곡
역사책가지고 있으면 다 수거 하고 폐기처분 가지고있으면
사형 까지 시켰으니까요
우리가 대충이름들어본 사람 대다수는
한반도 사람아니에요
조선시대부터는 영토가 한반도니까
한반도사람이구요
@@j3459 환빠가 또...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고구려 기록이 너무 없어져서 참 안타깝습니다
안시성 성주도 중국기록 밖에 없고...
저도 평소에 정말 미스테리하게 생각하던
을지문덕 장군이네요.
세월이 지나면서 어떤이유, 또는 어떤집단의 의도적인 목적인지 모르겠으나
현재 을지문덕장군에 대해서 알 수 없어서 굉장히 안타깝습니다.
걍 신흥세력이라서 그렇다는 말이 있음.
왕이 친위 세력으로 의도적으로 키워줬지만 결국 본인이나 그 다음 대 즈음에서 명성이 끝났다는 이야기임.
고구려에선 귀족 계층이 너무 굳어있다보니 의외로 명망높은 귀족이 아니라면 관직명만 기록되는 경우가 많음.
오히려 같은 시기 비슷한 케이스로 등용된 온달이 이름을 남긴 게 이례적일 정도임. 이것도 왕의 사위라서 가능했음.
비슷한 예로 고당전쟁 당시 안시성 전투의 주역인 안시성 성주 역시 본인의 이름은 기록이 없음.
삼국사기에서조차 이름을 알 수 없어 애석하다는 작가 피셜이 있을 정도니...
우리가 알고 있는 이름인 '양만춘'은 정사가 아닌 당태종 일대기 소설인 '당서지전통속연의'에서 등장한 이름임.
세계 역사이래 최고의 대승으로
이것보다 더 대글의 역사에 없어요
하지만 한반도 사람이 아니라서
역사에 없어요
조선시대 부터 영토는 한반도였으니..
몽골사람으로 지금도
몽골에는 올지모던이런 이름이 있어요
바보온달 대무신왕(테무진) 다 한반도 사람아니에요
몽골,바이칼 쪽 사람이죠.
@@j3459 지금까지 댓글들 봤는데 치료 좀 받으셔야할듯요….. 망상이 심하세요
@@jeongheo5479 망상일리가요
신세계라면 공부좀해보세여 많이 해야할듯요
@@j3459 진심으로 어그로 끄는거 아니시면 치료 받으세요ㅠㅠ
실제 이름이 무엇이건 우리가 을지문덕이라고 알고있는 장수님께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구국의 영웅이십니다
역사는 승자의 기록인거라 저런 큰 공을 세웠으면 기록이 남아야 정상이지만, 사료가 적거나 없다면 유추하건데 정적인 유력가문(세력)끼리 권좌를 두고 정쟁하다가 진쪽을 이긴쪽에서 싹지워버린거 아닌이상에야 남아있어야하는데 없는거보면..
승자인 고구려를 없앤 신라가 냅두지 않은 것.
@@seyeul-b6p 신라보다는 당나라에 의해서 기록이 유실되었을 가능성이 더 크죠. 신라보다는 당나라가 고구려의 대부분의 땅을 차지했으니깐요.
만주를 상실하여 선조들의 역사를 이렇게 밖에 접할 수 없다는게 너무 한 스러울 뿐입니다
고구려가 멸망하면서 보유중이던 많은 기록물들이 소실됐다는데, 그게 고구려 영웅들에 대한 기록이 많이 부족한 이유라 생각합니다. 반면 삼국을 통일한 신라의 경우 인물들에 대한 기록이 비교적 자세히 남아있죠
전쟁의 승자인 신라세력이
모두 지운거죠
한국도 신라계가 지배층이라
삼국사기같은 조작사서를 기반으로
가짜역사를 세뇌시켜 온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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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조선삼한역사학회
구글검색
“”” 대조선삼한역사학회 Band
계묘년에도 계묘한밤 부탁드립니다 새해복 많이 받으세요
신라가 고구려땅 대부분을 차지하지 못했기 때문에 고구려 관련 사료들도 많이 얻지 못한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을지문덕 뿐만 아니라 삼국시대 기록이 삼국유사 외에는 거의 없어 중국이나 일본사료를 봐야한다는 점이 참 아쉬워요.
게다가 고려시대에도 몽골의 살리타 군대와 처인성에서 싸운 김윤후 장군,,, 이 김윤후 장국에 대해 누구인지 어디 출신인지 등 알려진 정보가 거의 없으니 국가 기록 관리가 진짜 중요하다는 것을 느낌니다.
조선 초 고려에 관련된 자료를 삭제 할때 , 고려는 고구려의 후신을 자처 하였으니 고구려에 대한 자료도 같이 삭제 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합니다. 그 역사 삭제의 주역이 세종이라는게 아이러니 ... 역사기간에 비하여 사료가 많이 부족 한 것이 이씨 왕조의 조직적인 역사 삭제 때문 이라고 생각합니다.
조선 때 대대적인 서적 수거령이 있었죠. 민족사적으로 참 안타까운 일입니다.
한국판 소규모 문화대혁명(기록대혁명)
한국사 시험이 엄청나게 어려워져도 좋으니 제발 한국 고대사 자료들이 좀 많이 남았으면 하는데....안타깝....
잘볼께요^^
그러게. 하다못해 중국의 정사에서도 그 이름이 나오고 수십만의 병사를 잃었고 패했다고 적었는데 정작 고대 우리 기록에선 그 사람의 이름마저도 본명이 아닐수도 있고 기록마저도 정확한게 아니다? 참 신기하고도 안타까운 일이지.
신라가 고구려를 멸했으니
전쟁의 승자가 모두 지운것임
당나라와 신라 김씨는
같은 흉노족 후손으로 친척들임
6:30 "당태종"으로 시작하는데 6:38 "수나라" ??
생몰년이 확실하진 않지만 당나라가 쳐들어 왔을땐 을지문덕 장군은 이미 돌아가신걸로 아는데
이분은 진짜 대단하십니다 이런자료는 어떻게 구하시는지
지금의 기술력으로도 댐을건설하는건
수년 또는 십수년이 걸리고
또 적이 지나갈시간을 초단위까지 알아야
하고 물흐르는속도 등등 모든것을 슈퍼컴퓨터수준으로 계산해야됨
과장이 너무심하게됫음
전사자 30만 명 시신수습은 어떻게 했는 지 의문이네요 상상만으로도 끔찍하군요
뭐죠 최신 영상이네 하고 클릭했더니 어제 올라온 (아직 못본)영상이 또 있어요????
기묘한 밤 채널 운영자님 및 관련 스텝 여러분 2023년 새해 건강하고 행복한 한 해 되시길 바랍니다!
쉬엄쉬엄 하셔요 그러다 병나서 쓰러지실까 겁납니다 ㅜ
당시 수나라의 대군을 물리친 건 요즘으로 치자면 미국의 군대를 격파한 것과 비슷한 건데 이런 명장에 대한 기록이 없는게 너무 아쉬워요 ㅠㅠㅠ
웅장브금 정보점여
이 나라는 수많은 영웅들의 힘으로 이어진 정말 자랑스러운 국가이다
감사합니다
문덕!!
모두가 알고있는 위인이지만 많은 미스테리에 쌓여있는분이죠
4:43 대신은 일본서기에도 동 시대 사람인 연개소문을 얘기할 때 쓰였으니, 대대로? 관직을 지칭하는 말일 가능성이 있지요..
아무래도 허구 인물은 아니고..대 업적을 이루었으나 정치싸움의 희생양이 되어 기록이 소실된 건 아닌가 싶네요
이렇게 훌륭한 전쟁의 역사를 우리가 잘모르는것은 미스테리가 아니라 우리의 근거지가 축소되어서 한반도로 작아지면서 우리들의 큰역사까지 잃어버린것때문이다.
한반도로 축소된것도 모잘라서 두갈래로 나뉘기까지 했으니까
한가지 이유가 더 있는데 전쟁후 그의 명성을 두려워 한 왕이 죽였거나 그와 비슷한 이유로 그의 행적 지우기를 국가적으로 했다면 충분히 있을수 있는 인이 아닌가.
@@오피셜히게단디즘 그럼 이순신 공은 왕과 그들이 왜 그랬을까?
김유신의 기록이 상세했던건 신라가 삼국을 통일했고, 김부식 역시 경주 김씨인만큼 삼국사기가 신라 위주의 역사서였기 때문이라고 볼수도 있을듯요. 그냥 백제/고구려 쪽 역사서 한권만 더 발견되면 얼마나 좋을까...
매일매일 올리는 정체없는 미스테리유튜브
예전에 역사서를 기반으로한 유튜브 영상에서 본 것 같은데 살수대첩이후 전쟁승리에 크게 기여했던 강이식 장군과 을지문덕 장군이 후퇴하는 수나라를 쫓아 중국본토 정벌을 강력히 주장했었죠. 지금의 고구려의 힘으로 충분히 가능하다면서요. 하지만 영양왕의 완강한 반대와 철수명령으로 수나라 본토정벌에는 시도도 못하고 끝이나죠. 이후 을지문덕에 대한 기록은 생사는 고사하고 어떠한 내용도 찾아볼 수 없습니다. 비록 큰공을 세웠지만 전쟁이후 반대세력에 의해 축출되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봅니다.
미스테리 인물인걸 알지만 알고봐도 재밌네요
목소리,톤...
예술입니다.
근데, 왜 그 강대국에서 이 반도의 국가를 제대로 정복을 못했을까요? 도대체 우리 국가의 민족성은 대체불가일까요? 항상 좋은 영상에 감사합니다^^
고구려의 수많은 전쟁영웅들 중 한명인 을지문덕 장군이다.
좋은 영상 감사합니다,,현대의 지역적이나 국가적 역사관으로 천년전의 역사를 이해 하려고 하면 많은 오류가 있지 않을까 합니다,,지금의 한국이라는 작은 지역의 국가나 민족적 정체성이 정해진 입장에서는 더욱 그럴거 같습니다,,한민족이라는 것보다 동이족이라는 포괄적인 시각에서 보아야 그당시 지명이나 인명의 이름을 이해하는데,,수월하지 않나 싶습니다,,예를들어 살수대첩의 살수가 어디인가입니다,,김정민 박사님의 강의를 인용하면 김박사님의 주장에 의하면 살수의 살은 투르크어의 사르,,사르는 누렇다는 말이라네요,,또 수는 강을 뜻한다네요,,즉 살수는 한자로 표기하면 누런강이 되는 황하일 가능성이 크다네요,,또 황하강 정도는 되어야 30만 정도의 대군을 수장 시킬수 있지요,,한반도에는 그정도 되는 강이 없지요,,또 을지문덕 장군의 을지는 지금의 몽골 사람들이 많이 쓰는 올지 성씨이고,,문덕은 흉노족 왕들 이름에서 많이 쓰이는 모돈,,즉 올지모돈을 한자로 기록하다 보니 을지문덕이라 기록이 된거 아닌가 하네요!,,아마 제대로 고구려,백제,신라의 역사를 이해 하려면 몽골어나 투르크어 그밖의 중앙 아시아의 언어를 어느 정도는 알아야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그리고 민족사관 보다는 지배 계급의 역사인 왕조사관으로 보아야 되지 않을까 싶네요,,
저는 중국인 출신이고 총지휘관이 아니라 일개 성을 지키는 장수이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당시 울지씨들은 수문제의 왕위를 반대하다 숙청당했고 수문제가 이미 을지문덕을 알고 발견하면 잡아두라 했던 점이 딱 맞아 떨어집니다. 또한 당시뿐 아니라 그 이후로도 고구려의 전술이래봐야 우회기동전술 정도가 다 인데 뜬금없이 수공을 시도 한 점. 중국은 삼국지에서도 화공 수공이 자주 나오죠. 총지휘관이 아니라 일개 장수 였을거라는건 고구려의 상황을 보면 총지휘관일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고구려는 부족연합체이고 대부족들은 제외하고는 고위직에 오르는 자체가 불가능합니다. 심지어 그 대부족끼리도 파벌싸움이 심했고 침략을 막기 위해 각부족에서 차출한 병력을 맡겼어도 전쟁후 병력을 돌려주지 않을까봐 그 장수를 음해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병력을 맡겨도 대부분 노예병이지 훈련받거나 장비를 갖춘 정규군을 잘내주지 않음) 그런 상황에서 출신도 불분명한 사람이 총지휘관일수는 없다고 봅니다. 고구려의 역사서가 1개도 남아있지 않아서 중국의 기록과 삼국사기에 의존하고 있는데 중국측에선 일개장수에게 정예대군(당시 장수들은 황제가 되기전부터 따라온 친위세력임)이 대패를 했으니 쪽팔려서 기록에 총지휘관으로 격상시켰을겁니다. 전쟁 직후 을지문덕의 기록이 없는것도 위 가설대로면 맞아떨어집니다. 고구려측에선 당연히 대부족들의 견제를 받았을거고 중국측에선 반역자집안인데다가 대패를 안겨준 기록은 아예 없애고 싶었을 겁니다. 중국은 타민족에게 패배한 기록은 아예 없애거나 왜곡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아마 삼국지 좀 아는분들은 관구검이 소규모보병으로 고구려 정예기병을 박살낸적이있다는걸 아실겁니다. 사실은 기록을 꼼꼼이 뒤져보면 반대로 대패하고 돌아왔을 확률이 높습니다. 정말 그런일이 있었으면 고구려의 복종 서신이나 고구려에게 관직을 내리는등의 행위가 있었어야했고 (당시 다른 이민족 정벌후 항상 그래왔음) 전리품도 어마어마했을것이며 고구려말의 노획과 중갑기병의 발달등이 있어야했지만 없습니다, 고구려에선 오히려 잔치를 했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이처럼 중국은 패배를 인정하지 않고 왜곡하거나 삭제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을지문덕의 기록도 일부러 삭제했을 확률이 높습니다.
아 심지어 우리나라는 일제때 위인들에 대한기록도 많이 삭제 당하거나 왜곡 됐고 광복 이후로도 역사학계는 현재까지도 친일파들이 꽉 잡고 있어서 어떻게든 위업을 깍아내리거나 거짓이라고 많이 하고 있죠. 아마 을지문덕도 100년도 안돼서 그저 신화취급 받을겁니다. 그저 고구려의 정신을 고취시키기 위해 지어낸 이야기다 식으로 말이죠. 우리는 일제시대에 역사를 보존해준분들께 감사해야합니다. 우리역사를 왜곡하려는 세력이 중국 일본 심지어 국내에 친일세력까지 만연한데도 그분들이 명확한 자료를 남겨준 덕분에 우리나라 우리민족으로 남아있는겁니다. 그분들이 아니었으면 우리는 매일 중국이나 일본천왕을 향해 절하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비록 지금도 독도내주고 7광구 내주고 일제 만행덮어주고 폐방사능자재 가져다 아스팔트로 만들어서 국내에 깔고 후쿠시마산 맥주만 들여오고 일본자본으로 굴러가는 모기업이 식품류를 꽉 잡고 있고 해서 사실상 속국과 다름 없긴 합니다만 앞으로라도 역사를 바르게 탐구하고 후손에게 제대로 된 정보를 전달해주어야 할겁니다. 저들에 의해 사라지도 가상취급 받지 않도록요. 그래야 우리나라가 한나라로서 바로 유지 될 수 있습니다.
@@parkinho8443선조가 자기 한 몸 아끼지 않고 항일투쟁하며 지켜냈지만, 현재는 친중 친북으로 나라를 어지럽히고 갈라치기가 극에 달했습니다. 내부분열을 조장해 국민들을 선동하고 조종하는 상황에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수양제가 우문술에 을지문덕을 잡으라 명령한점
을지문덕의 거짓항복을 믿고 받아들이고 보내준 점
을지문덕의 거짓 패퇴에 흥분해 앞뒤 가릴것없이 추격전 벌인점 등을 볼때
을지문덕은 이미 그 당시 매우 유명한 명장었을 것입니다.
선비족 출신의 이민자 울지문덕… 위태로운 국가를 위해 자신의 계책을 실현하여 전쟁을 이끌어보고자 하지만 귀족들은 그의 출신때문에 그런 그의 계책을 무조건적으로 반대한다. 우여곡절 끝에 결국 살수에서 실현된 그의 계책… 훗날 역사에는 그에게 존귀한 존칭 두 자를 붙여 을지문덕이라 기록된다.
세계 역사이래 최고의 대승으로
이것보다 더 대승의 역사에 없어요
하지만 한반도 사람이 아니라서
역사에 없어요
조선시대 부터 영토는 한반도였으니..
몽골사람으로 지금도
몽골에는 올지모던이런 이름이 있어요
바보온달 대무신왕(테무진) 다 한반도 사람아니에요
몽골,바이칼 쪽 사람이죠.
당연히 삼국을 통일시킨 신라 위주로 글을 남기고
고구려나 백제에관한 책들은 거의 불태워 버렸을거다
결국 중국기록에는 있고 한국기록은 거의 없는건가
참고할 만한 역사서가 삼국사기 삼국유사 밖에 없는게 정말 아쉬움. 고구려 백제는 망국이었고, 그 기록은 적국에 의해 파괴되고 말소되었기에 우리가 알 수 있는건 제한적임. 삼국사기도 저자 김부식이 경주 김씨인 관계로 신라 위주로 집필된것도 그렇고....아쉬울 뿐이네 정말.
을지문덕장군님 감사합니다
와 이번화 개인적으로 역대급으로 좋은거같네요 살수대첩과 을지문덕 장군에 대해선 익히 들어 알고있었다만 을지문덕 장군이 이렇게 미스테리한 인물인진 전혀 몰랐어요
크라수스의 로마군을 궤멸시킨 파르티아의 영웅 수레나스를 생각하면 될듯 그도 전쟁영웅이 되고 왕의 심기 거슬려서 한순간에 최후를 맞이했음 을지문덕이나 그의 가문도 영류왕 시기 혹은 연개소문의 정변에 쓸려나간듯 연개소문쪽이 더 유력함 연개소문이 날린 귀족만 180명
연개소문 원래 성씨가 을씨야
즉 원래 을지문덕 후손이야
그래서 자기 할아버지 원수를 갚기위해
고건무 세력을 처참하게 도륙한거야
고건무가 쿠테타하면서 자기 라이벌인
을지문덕 장군 가문을 학살했다
그때 도망쳐 살아남는데 연개소문과
일부야
그래서 처음엔 천씨로 바꿔 살다가
다시 연씨로 바꿔서 고건무 세력 의심을 피한거다
그리고 대조영 형제도 Oguz khan 후손인데 Oguz khan의
증조부가 고구려 카한인
“”을지 설 각간 “”이다
이 을지 설 각간은
을씨 대칸. 이란 뜻으며
을지문덕 장군이라는 가능성 99%다
아니면 그 아버지거나
혹은 그 아들
이 을지 설 각간 의
쌍둥이 아들이 타타르 칸과
모골칸이다
고구려 모든 유목부족을
통틀어 모골족이라 했고
신라계는 이걸 말갈족이라 불렀다
말고을 부족 ==모골족 ==유목부족
즉 을지문덕 혹은 을지문덕 아들이
모든 유목부족 대칸이란 의미
타타르칸은 타타르족 시조인데
이사람이 “””연(개)아달라 이며
한자로는 “”연(개)자유
====연개소문 할아버지
여기서도 연개소문이 원래
을씨 즉 을지문덕 후손이란게
증명되는거다
이 을지문덕의 증손자로 추정되는
oguz Khan의 후손들이
서쪽으로 이동해 모든 투르크왕조를
세우게 된다
호라즘 (코라즘) 제국부터
셀주크 투르크,
이집트 맘룩 왕조 ,
오스만 투르크 왕조까지
모든 투르크 왕조는 바로
서쪽으로 이주한 을지문덕 장군
후손들이 세운 것이다
자 그럼 니가 역사조작 주체인
영미프 유대자본 세력이라고 생각해보자
자고로 과거 역사란 봉건왕조 왕족의
역사다
일반 개돼지들 Story가 아니다
고구려 을지문덕 장군 가문의 역사를
남겨두면 어찌 되겠나???
1700년대 말 이후 한반도로 코리안들
토끼몰이해서 반도사로 축소조작해
세뇌시켜 왔는데
을지문덕 가문 역사가 공개되는순간
고구려 역사가 중앙아시아와
중동까지 타타르족이 지배한
우크라이나 남부까지 확대되는
것이다
현재 영미프를 사냥개로 세계를 지배해온 유대자본 세력이
이걸 용납하겠나???
공산주의 만들어 시베리아 고구려 후손과 러시아인 7000만명을 학살하고 유러시아 고구려 후손들
역사를 제거해온게 바로 영미프
유대자본 세력이다
따라서
너희 반도에 갇힌 코리안들은
을지문덕 장군 후손들의 위대한
역사는 절대 알아서는
안되는 것이다
구글검색
“””징기스칸 고구려 발해 후손
안시성 전투도 영화로 나왔으니 살수대첩도 영화로 나오길 기대합니다!
저도 진짜 그러길 바라요...근데 을지문덕에 대한 자료가 워낙 없다보니까 아마 이야기를 만들어야 할 수 도 ㅠㅠ 저는 이야기 만드는 건 상관 안하는데 갑옷 고증만 잘했으면 좋겠어요. 영화 안시성에 나온 갑옷은 걍 리니지 느낌..
안시성처럼 만들거면 안만드는게 나을듯…
고구려가 멸망하지만 않았어도 이게 미스테리가 될 일은 없었을텐데 그저 아쉬움
추가로 고수 전쟁 당시 왕은 영양왕이고 그 아버지는 평양왕(평강왕)이고 그 여동생은 평강공주요(본명 아님 평강왕의 공주라 평강공주임) 매제는 온달이었죠
살수는 한반도가 아닌 중원에 있다고 보고 해설하셔야 되겠죠.
ㅎㅎ
생제르맹 백작에 대해서도 다루어주세요 다른데서는 봤지만 기묘한밤에서도 생제르맹 백작 이야기 듣고 싶어요
🌷💋혼자 빠 는 소리 장난아님ㅋㅋㅋㅋ💋
을지문덕은 못참지❤
(오늘의 교훈)
1. 살수가 어디였는지는 알 수 없다. 0:32
2. 을지문덕의 성과 이름이 무엇인지 알 수 없다. 4:26
- a) 성: 을, 이름: 지, 관직: 문덕 (을파소의 후손 주장)
- b) 성: 을지, 이름: 문덕 (선비족 비숫한 성씨 존재)
- c) 성: 문, 이름: 덕, 관직 또는 호: 을지 (예시: 도올 김용옥)
- d) 성: 을, 이름: 지문덕
- e) 성: 을지문, 이름: 덕
- f) 지어낸 이름
을지문덕이 이름이 아니죠?
정사 야사 50:50
당장 근 한국사도 의문투성인데 😂
답은 없고 믿음만이 있을 뿐이네요
우린 역사를 이용해서 득을 봐야합니다
선조들도 그걸 원하지 않을까요
중국조심
혹시 제가 겪었던 이야기인데 과거를 본 적 있는 이야기 인데 혹시 궁금하시거나 알고 싶으시면 댓글에 이메일 주소 알려주시면 연락 드리겠습니다!
최고의 장수중 한분이시죠!!!
아.,.저때부터 전략전의 dna가 있었네…. 겜 그냥 잘하는게 아니였어 ㅋㅋㅋㅋ
고구려 스스로의 기록이 나라가 망하면서 사라져서 그렇습니다.
올지모돈 썰좀 전문가님들이 풀어주세요
살수대첩의 내용을 설명해 줘야지 제일 흥미로운 부분만 쏙 빼고 영상을 만들어놨네.
을지문덕 장군의 기록이 남아있지 않은
건에 대해선 몇가지 추론을 할 수 있는데
첫번째는 고구려 내에서 기록 말살형을
당했기 때문이라는 추측,
다른 추측으로는 삼국사기 편찬 당시
그 이전의 기록에서 을지문덕의 자료가
상당수 유실되었기 때문이라는 것,
또한 고구려에 대한 사료는 유적과 유물이
본토였던 만주에 있기 때문에 그 기록을
한국에서 다루기 어려우므로 아직 발견되지
않았을 가능성이 있으며
고구려는 거의 모든 시대가 극히 격렬한 전쟁의 역사이고 내부적으로도 혼란했던
탓에, 기록을 편찬하기에 적합한 상황이
아니었으므로 단지 자국에서 전공 이외의
기록을 남길 여유가 없었을 경우도 있다.
을지문덕 장군이 고구려 내에서 기록
말살형을 당했을 거라는 추측은 그의
전공에 비해 유독 그에 대한 무용담과
서사가 없다는 데 있어 이것이 의도적인
은폐일 것이라는 의심에서 기인하며
왕권의 위협을 느낀 왕과 권력자들이 감당할
수 없는 전공을 세운 을지문덕을 조선의
선조가 충무공을 비롯한 영웅들에게 했던
것처럼 누명을 씌워 축출해버리고
존재 자체를 지워버렸거나
을지문덕이 진짜 역모를 꾀했고 이를
저지하였으나 그의 추종자들과 민심까지
막을 방법은 없었기에 을지문덕에 대한
모든것을 숨기고 쉬쉬했을 것이라는
추측이다.
대외적으로 널리 알려진 활약상에 대해서는
어찌할 수 없으나 이렇게 될 경우 국내에서는
그를 기억하는 세대가 지나기 전까지
침묵하고
관련 기록이나 의혹을 국가에서 철저히
배제했다고 하면 그의 기록이 유난히
적은 부분을 설명할 수 있다.
--
그의 기록이 단순히 유실되었을 뿐이라는
것은 추측이 아니라 실제로 삼국사기
집필 당시 이미 고구려가 남긴 기록
대부분이 유실되어있었기에 엄연한
사실이다.
고구려는 전쟁과 내부적인 갈등으로
혼란스러운 역사를 걸어왔고, 결국
멸망했기 때문에 전화에 휩쓸리며
을지문덕에 대한 내용을 포함한
기록이 훼손되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흐름.
그러나 이 경우 남는 의문은 한국 역사상
손꼽히는 대승을 거둔 역사 위인에 대한
출신이나 다른 무용담들이 어째서 구전이나
전설등으로 널리 퍼지지 않았냐는 것이다.
---
을지문덕 장군 기록에 대한 미발견은
자국의 역사를 자랑스러워하는 중국이
의도적으로 숨기고 있을 가능성을 포함한다.
남의 나라의 위인, 그것도 자신들에게
역사상 손꼽히는 대패를 안겨준 위인이
조명을 받는 것은 하나의 중국을 제창하는
그들에게 있어 뼈아픈 타격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
네번째 추측은 가장 말이 안되지만
원래 고대사의 기록이란 건
대개 세세한 기록을 남길 생각 자체를
안하거나 왜곡이나 변형이 많은 것이
특징이다.
제대로 된 자료를 남길 여력은 없으나
민간에 떠도는 구전담은 잔존하였기에
삼국사기에서는 을지문덕의 구전을
추려 만들었을 것으로 보인다는 것.
아쉽네여 우리고대역사에 기록만 남아 있어다면......
대신은 단순히 신하 또는 높은 관직이 아니라 대대로로 보기도 합니다.
지금으로 치면 수상, 또는 부족제임을 감안하면 국회의장 수준이라고 봐야죠
그리고 고구려는 대규모 전쟁 시 왕 또는 그에 준하는 권한을 가진 인물이 총 사령관을 하는 경우가 많죠.
그래서 수나라 양제가 영양왕 또는 을지문덕을 보면 잡으라고 한겁니다.
대대로급 자리는 단순히 개인의 실력, 역량만으로 가능한 자리가 아니라는 점을 생각하면, 선비족, 외국인, 신진세력이니 하는 설은 어불성설이고 동부의 유력가문인 을가일 가능성이 높다고 봅니다.
그럼 왜 을지문덕에 대한 기록이 없냐?
수나라와의 전쟁 이후 고구려는 흐름을 보고 생각해봐야합니다 또다른 전쟁영웅 영류왕(고건무)가 왕위에 오르며, 당에 화친하는 방향으로 흐릅니다.
이후 당나라의 내정간섭 끝에 전쟁의 분위기가 강해지는 가운데 동부의 연개소문이 영류왕을 시해합니다.
1. 주전파인 을지문덕과 화친파인 영류왕이 갈등했을 가능성
두 전쟁 영웅간의 의견차이로 지속적인 갈등을 겪었는데 영류왕이 정쟁에서 이기며, 을지문덕 및 을가를 무너트린 후 영류왕은 기록말살형에 가깝게 을지문덕 및 을가의 기록을 지웠을 수 있습니다. 만약 둘이 싸웠다면 충분히 영류왕 입장에서는 전쟁영웅으로서의 을지문덕을 지우고 싶었을 겁니다.
거기다 영류왕을 시해하고 정권을 잡을 연개소문 역시 동부의 유력가문 경쟁상대인 을가의 기록을 굳이 복원할 필요성을 못느끼면서 그대로 묻혀버리고 사려졌으나 전쟁영웅 을지문덕의 이야기만 구전으로 이어졌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2. 영류왕과 을지문덕 모두 화친파로 돌아서, 주전파인 연개소문이 지워버렸을 가능성
동부의 대대로 자리는 왕이 지목하는 것이 아닌 동부의 유력가문이 차지하는 방식입니다. 유력가문간의 경쟁은 단순히 지지세력의 포집이 아닌 실제 무력다툼도 발생했고
이경우 왕가는 궁성을 잡그고 관여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연개소문이 동부를 차지하는 과정에 동부 내 경쟁상대였을 수도 있는 을가를 제거했을 수 있습니다. 이후 주전파인 자신의 입지를 강화하고, 영류왕 시해를 정당화 하기위해 역시 화친파로 돌아선 을가를 멸문시키고 전쟁영웅 을지문덕 이야기만 남겨 당과의 전쟁 프로파간다로 이용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즉, 전쟁영웅 을지문덕과 을가와의 관계성을 지우고 외적의 침입에 대항한 영웅으로만 남기면 지금처럼 을지문덕이라는 인물만 남고 생몰년도, 출신 모두 기록이 없어 질 수도 있는 겁니다.
혹시 기묘님이랑 동향사람 아닐까요?
6:30 당태종은 한참 뒤의 사람인데요...안시성 양만춘...연개소문...
안시성주도 그렇고 고구려는 기록이 너무 없음.
새해 첫날 기묘한 모험
삼국사기 삼국유사는 신라 중심의 기록이었기 때문에 고구려사는 축소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살수대첩의 위치도 현재 정확히 어느 강이었는지, 후대에 수공이었다고 해석할 만한 곳이 그 당시에 있었는지도 확실치 않습니다. 고구려 기록이 많이 남아있지 않은 이유는 역시 당나라에의해 망하면서 기록이 대거 소실되었기 때문일 겁니다. 안타까운 역사의 손실이죠.
갸꿀잼
업적이 너무나 대단하다보니 시기와 모함을 받고 기록말살에 쳐해졌을 수도 있다 생각하네요 그럼에도 그 업적이 너무 위대해서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온 내용만 남은걸지도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한반도의 왕들은 영웅들을 시기질투를 잘 해서 ㅠㅠ 이순신 장군의 업적중에 하나인 거북선의 도면조차 제대로 없다는걸 보면...
@@문희원-r6x 시기질투로 뒤끝작렬하는 것은 외국이 더 함.
멀리 갈 것도 없이 중국의 케이스만 봐도 알 수 있는데,
'공'이나 '형평성'을 따지는 것이 아니라
'왕이 싫다고 하시는데요?' 가 더 우선임.
거긴 9족을 '슥삭'하는 것도 심심찮게 발견됨.
반대로 우리나라는 생각과는 다르게 역적 자손도 우려먹는 우려먹기의 진수임.
대표적으로 정도전만 봐도 본인은 대역죄인이지만
후손들은 대대로 고관대직을 누렸음.
당장 정도전의 큰아들인 정진만 봐도 알 수 있는데,
무인정사 때 혼자 지방에 내려갔다가 살아남은 케이스로,
이 양반을 다시 등용한 양반이 정도전을 슥삭했던 태종임.
심지어 세종 대에는 형조판서까지 역임함.
증손인 정문형까지 가면 대표적인 훈구파 네임드임.
그리고 거북선 등의 무기에 대한 기록이 부실한 건
그냥 나사 하나 빠진 듯이 병기 쪽 기록이 부실했던 조선시대 기록 특징임.
이 대표적인 예가 바로 거북선임.
거북선은 놀랍게도 1872년, 즉 흥선대원군 집권시기까지 남아있었는데,
고종이 흥선대원군 치워버리고 친정할 즈음이 되면
'야, 우리나라 거북선 국뽕 끝판왕 아니냐?
그런데 거북선 도면 어디다 뒀냐? 난 몰?루' 같은 기록이 등장함.
물론 통제사 영감께서 만들었던 시기와는
200년넘게 시일이 흘렀으니 딴판이었겠지만 어쨌든
20년 안팎의 짧은 시기 동안 거북선이란 전함의 관련 기술 자체가 사라졌음.
이건 미국이 2차 대전 끝나자마자 16인치 함포 생산 기술 까먹어 버리는 수준의 속도로 잊어버렸다는 이야기임.
돌려 말하면 증기선 돌아다닐 시기에 거북선 수준의 구형함의 건조 기술이 사장되는 것은 당연하다는 이야기이기도 함.
이런 걸 보면 단순한 질투 때문에 도면이나 기술이 사라진 것은 아님.
단지 후손들이 복원하려니까 난감한 케이스인 것 뿐임.
...그런데 거북선을 흥선대원군 시기까지 우려먹었다고? 오우야.
이런걸 보면 한반도 종특은 아무래도 질투가 아니라 우려먹기가 아닐까.
저도 그렇게 생각 합니다
거북선은 이순신 이전에도 있었다 에휴 ㅉㅉ
@@개와늑대의시간-u9c 그 이전에도 있는걸 몰라서 그럽니까? 그건 그건데도 그것도 없는데다 이순신 장군이 같이 만들었다는 기록도 없다는걸 얘기하는데 거기서 무슨 쯧쯧이 나옵니까?
선비족 설이 가장 그럴듯한듯. 그게 아니고서야 사료가 저렇게 없기가 힘든거같음. 근데 또 귀화 선비족인데 저위치까지 갔다는건 선비족에서도 꽤나 높은 지위의 사람이었거나 뭔가 있었을거같은데..
을지문덕뿐만 아니라
기묘한 밤님도 불가사의한 존재인듯..
어제에 이어 오늘도..
Ai
너무 대단한 사람이라 누군가 부러움에 자료를 지워버린듯
고구려 역사 자체가 고대국가기도 했고
북한, 만주쪽에 있어서
사료가 많이 없지 않나
뭐 비교적 잘 알려져있는 장수왕도
즉위하고 몇십년이 공백이더만
기록 소실 이지 뭐.. 그동안 얼마나 많은 전쟁이 있었고 일제강점기도 겪었으니 소실 되었다 봐야지
신라가 당과 협잡해서 고구려를 멸한 다음... 고구려의 영웅 을지문덕에 대한 기록을 다 없애버린 거겠죠.
이런 영웅들이 한 둘이 아닐 듯 합니다. 안시성 성주도 그렇고... 또 일본으로 건너가서 야마토를 세운 백제 유민들에 대한 기록도 그렇고... 또 고려 때 거란 2차전을 막은 양규의 기록도 그렇고... 하물며 거란과의 전쟁에서 승리를 답습해서 여진정벌에 벌렸다가 실패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냥아치 척춘경이라는 놈에 대한 기록도 빼곡하지요. 아마도 몽골 눈치를 보면서, 몽골과 혈통이 같은 거란과의 전투에서 이름을 날린 영웅들은 도외시하고, 반면 여진족을 정복한 몽골과 고려의 여진정벌은 동일시하면서 척춘경 영웅만들기를 시전했을 수도... 여하튼 씁쓸....
을지문덕만큼 큰공을 세운 고건무장군
영류왕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