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가 망했지. 왕씨보다 명분이 있지도않고, 저당시 고려가 그렇게 백성들에게 신망을 잃은것도 아님 금에대한 사대 또한 그거 사대하면 어때서? 역사를 조금이라도 안다면 금이 먼저 망하고, 몽골이 들어서고, 나중에는 원종이 후계자 싸움에 제대로 배팅해서 불개토풍까지 받아 내잖아. 묘청이 이겼으면 내전으로 맛이간 고려에 누가 기어들어와도 기어들어 오겠지.
우리나라 역사상... 지방에서의 반란이 성공한 예는 거의 없음.... (그나마 후백제, 후고구려 정도가 성공 예시일까요...) 그외는 거의 100% 실패 반란의 성공 사례는 있지만 그건 바로 수도에서 왕궁을 접수하고 왕을 확보한 경우인 것이고... 지방에서 깔짝되는 반란은 결국 시간이 지나면 다 진압될수밖에 없음
서경천도에 성공을 해도 여진의 금나라를 정벌하는 것은 고려와 금나라의 국력, 군사력 차이로 보면 불가능하죠. 여진의 금이 고려를 침략할 경우에 고려가 이를 막아내는 것은 가능해도 금나라 정벌은 현실성이 없죠. 한족의 송나라가 양자강 이남으로 쫓겨난 상황, 금나라의 여진기병을 고려군 보병이 당해낼 수가 없죠.
대몽 항쟁은 초기를 빼고 왕실과 무신정권을 비롯한 핵심 귀족들이 강화도로 도망간 뒤에는 사실상 항쟁이라고 보기도 어렵습니다 그냥 방치하는 수준이었죠 그 피해는 고스란히 힘없는 백성들이 봤구요 황룡사 9층목탑이 불탔을 때도 몽골정예병도아닌 한족을 포함한 어중이 떠중이 도둑집단에 가까운 5000명 정도의 병력을 방치해서 그들이 경주까지 가서 불태운 것으로 알려져 있구요 학교에서 배우는 삼별초의 항쟁이란것도 고려 민초들의 지지를 얻지 못해서 실패한거구요 민심을 얻지 못한 이유는 삼별초 세력이 해안가를 침략해 자국민인 고려백성들을 약탈하면서 무수한 백성들을 죽였죠 삼별초 자체가 고려를 위한 세력이 아니라 마지막까지 최씨로 대표되는 무신 정권에 충성한 집단입니다.
어디에서 찾아보니....신채호가 묘청의 자주성을 높이 평가한 게 아니고 준비와 계획없이 일을 저지른 사람으로 평가했다던데...아닌가요. 그 역사저널에 고려전문 교수님 나오셔서 말씀하시는 걸 봤거든요. 묘청이 광망한 행동으로 준비되지 못한채로 난을 일으켰다 실패해서 자주적인 사고를 가진 사람(윤언이)을 잃어서 너무 안타깝다고...이로 인해 사대주의가 되고 망국의 비운을 맞았다...라고 말씀하셨거든요.
저것보단 일천년래 제1대사건은 오히려 원간섭기임 1. 고려까지 자체적으로 쓰던(폐하,태자등) 용어 강등 2. 원나라 교초의 파산으로 상업쇠퇴 & 상업천시 풍조 확산 3. 만주, 한반도에 본격적으로 중국계 국가의 영향력 & 중국화 심화 4. 해상교역 쇠퇴 육상교역만 살아남음 5. 원나라에 세게 데이면서 한반도 왕조가 중국에 겁먹고 군사적인 반항을 포기하게되고 굽히게됨 6. 성리학의 전파 솔직히 조선이후 꼬라박은건 저것보단 원간섭기 영향이 더큼
근데 의외로보면 한족국가가 만주점유한 시기보다 우리나라가 만주점유한 시기가 더 김.. 한족국가가 만주점유한시기는 다합쳐도 1000년이 안됨.. 그리고 중국이 만주를 오래점유한것처럼 보이는 이유는 거란, 여진, 선비등등 북방의 여러 이민족국가들이 만주를 많이 점유했어서.. 그리 보이는거지.. 걔네들은 한족과는 유전학적으로 계통이 아예 다른 민족임 한족과는 ㅇㅇ 걍 지금 중국에 흡수되고 독립적인 나라를 못세워서 그렇지.. 현재도 엄연히 독립된 나라를 세웠어야할 다른 민족임.. 위구르 티베트같은 ㅇㅇ
김부식이 보수이고 신라파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김부식이 삼국사기에서 고구려 역사를 쓸 때 기록에도 없었던 이세민이 주필산에 모여있던 군사를 보고 두려워했다. 이부분을 굳이 중국 유명 소설책에 있던 내용을 빼왔어 기록이 썼고 그러면서 하는 왈 " 실제로 이세민이 고구려 군을 보고 두려워했을건데 자신들(중국)이 부끄러워서 일부로 뺐으니 내가(김부식) 여기에 쓴다. " 라고 하였고 이뿐만 아니라 친고구려적 역사를 삼국사기에 많이 넣었답니다. 또 묘청의 난 이후 고려 과거제로 통해 서경 사람 중심으로 많이 중앙정부에 들어오게 한 것도 있습니다. 정부가 교수님들이 너무 역사를 단편적으로 가르쳐 중요한 점을 알려주지 않아 문제지요.
2:41 영상에서 묘청 등 1년동안 저항하였다고 하지만 정작 1년동안 저항한건 조광이었습니다. 사실 묘청의난은 조광의난이라고 불러도되는게 조광은 무려 1년 2개월동안이나 김부식의 군대를 막았습니다. 심지어 지도자가 없는 상황이고 대위국 황제도 공석인 상황이었죠. 묘청은 살해된 상태...그런데 1년 2개월을 막은거면...
묘청도 지가 주류가 아니니까 그따위 주장한거지 뭔.. 갖다 붙이기는 묘청 말대로 해서 금나라 침략 당하던 공격을 하던 지깟게 뭔 수로 이김? 당장에 관군한테도 1년만에 진 주제에 차라리 동학군이 일본군 방해만 아니였으면 청나라를 패배시키고 만주를 점령했을거란 얘기가 더 현실성 있겠네
항상 고퀄리티 영상 감사합니다.
단지 서경으로 천도한 것만으로 당시 초강대국이었던 금나라가 고려에 굴복하고 천하 36개국이 항복해올 것이라는 허망한 주장을 한걸 통해 묘청이 사이비 땡중이라는걸 알 수 있습니다.
ㅋㅋ 금나라 크기만해도 누가봐도 이길 수 없는데 믿는 애들이 신기함
서경이 프랑스 파리에 있다 이거죠
이해하기쉬워욥❤❤❤
원사 금사 기록을 보면
고려의 영토는 동서 2천리. 남북 1천5백로 나옵니다. 영상은 틀렸습니다.
기득권싸움이지 이게 묘청이 됬다고 신채호 선생님말처럼 달라지지는 않았을거 같음
묘청은 단순히 반금나라 정서를 이용하여 정치적 이익을 챙기려 했을뿐이 아닐까 싶네요
아무래도 당시 시대가 일제강점기 시대였다 보니, 주장의 현실성보다는 금국과 사대관계를 맺는 것을 거부하고 칭제건원을 주장하는 묘청의 자주적 정신을 높게 평가한 것 같습니다..
댓글 읽어보니 진짜 묘청의 주장대로 서경천도했으면 조선의 역사와 현재 대한민국의 어떠한 영향이 되는지 궁금하군요
만약 수도를 서경으로 천도했으면 무슨일이 생겼을까요
👍👍👍👍👍
묘청은 무신인가요 , 문벌귀족인가요?
승려입니다.
허경영 급
승려
잘보고갑니다
만약 묘청이 승리했다면 어떨지 궁금함
더 꼬였을거임. 왜냐면 묘청은 사기꾼임.
아마 금나라의 심기를 건드려서 진짜 금나라에 먹혔을지도. 저런 무식한 소리하는 사람이 높은 자리에 오르면 무서운거임.
나라가 망했지.
왕씨보다 명분이 있지도않고, 저당시 고려가 그렇게 백성들에게 신망을 잃은것도 아님
금에대한 사대 또한 그거 사대하면 어때서?
역사를 조금이라도 안다면 금이 먼저 망하고, 몽골이 들어서고, 나중에는 원종이 후계자 싸움에 제대로 배팅해서
불개토풍까지 받아 내잖아. 묘청이 이겼으면 내전으로 맛이간 고려에 누가 기어들어와도 기어들어 오겠지.
고려판 삼전도 굴욕 당했을듯
김부식한테도 털린 주제에
무슨 금나라를 정복해...
우리나라 역사상... 지방에서의 반란이 성공한 예는 거의 없음.... (그나마 후백제, 후고구려 정도가 성공 예시일까요...) 그외는 거의 100% 실패
반란의 성공 사례는 있지만 그건 바로 수도에서 왕궁을 접수하고 왕을 확보한 경우인 것이고...
지방에서 깔짝되는 반란은 결국 시간이 지나면 다 진압될수밖에 없음
장보고
위화도 회군?
대표적인 이긴 반란이 박정희, 전두환의 난.
@@내공냠냠-p3d 위화도는 성격이 좀 다르지 않음?
고려도 사실 신라 입장에서는 지방 반란이긴하지
묘청이 제정신이 아니었구나. 어줍잖게 금한테 시비걸다가 역점령 당하고 이어진 몽골의 정복으로 아예 국체가 소멸되었을수도.
서경천도에 성공을 해도 여진의 금나라를 정벌하는 것은 고려와 금나라의 국력, 군사력 차이로 보면 불가능하죠. 여진의 금이 고려를 침략할 경우에 고려가 이를 막아내는 것은 가능해도 금나라 정벌은 현실성이 없죠. 한족의 송나라가 양자강 이남으로 쫓겨난 상황, 금나라의 여진기병을 고려군 보병이 당해낼 수가 없죠.
또 여기도 와서 도배하네 ㅡㅡ
무신정권과 대몽항쟁 편은 언제 나오지?
대몽 항쟁은 초기를 빼고 왕실과 무신정권을 비롯한 핵심 귀족들이 강화도로 도망간 뒤에는 사실상
항쟁이라고 보기도 어렵습니다 그냥 방치하는 수준이었죠 그 피해는 고스란히 힘없는 백성들이 봤구요
황룡사 9층목탑이 불탔을 때도 몽골정예병도아닌 한족을 포함한 어중이 떠중이 도둑집단에 가까운
5000명 정도의 병력을 방치해서 그들이 경주까지 가서 불태운 것으로 알려져 있구요
학교에서 배우는 삼별초의 항쟁이란것도 고려 민초들의 지지를 얻지 못해서 실패한거구요
민심을 얻지 못한 이유는 삼별초 세력이 해안가를 침략해 자국민인 고려백성들을 약탈하면서
무수한 백성들을 죽였죠 삼별초 자체가 고려를 위한 세력이 아니라 마지막까지 최씨로 대표되는
무신 정권에 충성한 집단입니다.
책보고님 영상 보고 오시는게...
걘 거르세요 조회수 빨아먹으려고 역사 가지고 장난쳐서 어그로 끄는 놈입니다.
어디에서 찾아보니....신채호가 묘청의 자주성을 높이 평가한 게 아니고 준비와 계획없이 일을 저지른 사람으로 평가했다던데...아닌가요. 그 역사저널에 고려전문 교수님 나오셔서 말씀하시는 걸 봤거든요. 묘청이 광망한 행동으로 준비되지 못한채로 난을 일으켰다 실패해서 자주적인 사고를 가진 사람(윤언이)을 잃어서 너무 안타깝다고...이로 인해 사대주의가 되고 망국의 비운을 맞았다...라고 말씀하셨거든요.
1:07
님들 아셔야할게 풍수지리는 걍 하는 소리고
북을 정벌 하기 위해서 행정기관과 군대를 모두 북쪽으로 옮겨야지. 만주로 진출 하기에 용이 하다는 주장입니다.
묘청이 개혁?ㅋ
그냥 서경세력이 자기들이 기득권 차지하려고 벌인 싸움일뿐
독도는 누구 땅? 야파아안
고구려계열 성씨가 많이 없는이유는 저런 평양성에서 반란실패로 거의 몰살되어서 없는듯
저것보단 일천년래 제1대사건은 오히려 원간섭기임
1. 고려까지 자체적으로 쓰던(폐하,태자등) 용어 강등
2. 원나라 교초의 파산으로 상업쇠퇴 & 상업천시 풍조 확산
3. 만주, 한반도에 본격적으로 중국계 국가의 영향력 & 중국화 심화
4. 해상교역 쇠퇴 육상교역만 살아남음
5. 원나라에 세게 데이면서 한반도 왕조가 중국에 겁먹고 군사적인 반항을 포기하게되고 굽히게됨
6. 성리학의 전파
솔직히 조선이후 꼬라박은건 저것보단 원간섭기 영향이 더큼
중국화는 원간섭기 이전부터 있어 왔고, 성리학의 전파를 부정적으로 보는 건 지극히 근대적인 시각이죠.
해상교역 쇠퇴한 이유는 산동 지역 통치를 못하고 심양왕으로 쫓겨나서임
신채호..ㅎㅎ
고려영토는 압록강 이북까지입니다
통이 작으심 통 크게 나일강 까지 봐야징 ㅎ
아 만주는 가지고 있었어야
민족 역사 지킬수 있었는데.
사실 중국 동북공정 싸움에서
한국 사실상 지고 있음.
한국 역사 영토를 중국이 가지고 있으니. .
근데 의외로보면 한족국가가 만주점유한 시기보다 우리나라가 만주점유한 시기가 더 김.. 한족국가가 만주점유한시기는 다합쳐도 1000년이 안됨.. 그리고 중국이 만주를 오래점유한것처럼 보이는 이유는 거란, 여진, 선비등등 북방의 여러 이민족국가들이 만주를 많이 점유했어서.. 그리 보이는거지.. 걔네들은 한족과는 유전학적으로 계통이 아예 다른 민족임 한족과는 ㅇㅇ 걍 지금 중국에 흡수되고 독립적인 나라를 못세워서 그렇지.. 현재도 엄연히 독립된 나라를 세웠어야할 다른 민족임.. 위구르 티베트같은 ㅇㅇ
중국 이색기들이 진짜 모순인게 지들 역사얘기할때.. 자기민족 한족의 우월성 강조할때는 여진 거란등 북방 여러민족들 다른 민족, 오랑캐취급하면서 자기 실리추구할때는 하나의 중국 쌉소리를 함 ㅋㅋ
漢族의 1/3은 동이족임. 동븍3성 조선족만 소수민족으로 분류된것은 현재 중국 건국당시 만주국 이었기때문, 중국동부에 살던 동이족은 이미 이전에 漢族으로 편입. 같은민족인데 중국본토 에서는 漢族, 동북3성 에서는 조선족, 한반도 에서는 韓族으로 불림.
요동반도는 화약고 같은 곳이어서 좀 그렇긴 한데 장춘/삼강평원은 솔직히 많이 아쉽긴 합니다. 살기에 많이 춥고 드센 소수민족들이 많았겠지만 그래도 한번 영토화 시도좀 했었으면 ㅋㅋ
만주가지고 있으면 허구한날 중국 통일왕조한테 쳐맞았겠죠 중국한테 동화 안된것도 한반도에만 있었기 때문이라 생각
묘청이 개소리같은 게....무슨 금나라가 농경민족화된 고려에 복속하겠나. 그리고 풍수지리 그리 좋으면 북한이 저럴 리가...
강조의반란이 가장 크고 병크인듯
역시 부처야 이상한말 함ㅋㅋㅋㅋㅋ
묘청이 이겼다면 묘청은 국내용이고 만약그러한
고려가 금하고 붙었으면 한국은 지금 중국의 일부성에 편입 되었을것이다 . ,
여기서 서경은 LA를 뜻하고, 개경은 적봉(홍산)을 의미한다.
고려는 전세계를 통치했다.
바 보
묘청 성공했으면 우리나라 박살날뻔
서경은 북한 평양이 아니고 하북성 북경입니다. 고려사에 나오는 낙타가 한반도에는 없거든요. 서경 만부교에서 낙타를 굶겨죽였다는 기록처럼 낙타는 실크로드가 끝나는 서경 등지에서 볼 수 있었는데 조선 건국 이후 하북성을 포기했기 때문에 역사서에 낙타가 사라진 것입니다.
묘청 뭔가 러시아의 라스푸틴같다
좌 건진, 우 천공
닉값..ㅋㅋ
으휴 이 늙은 40대 좌파버얼레들은 언제 사라질까?
좌 중국, 우 북한
김부식이 보수이고 신라파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김부식이 삼국사기에서 고구려 역사를 쓸 때 기록에도 없었던 이세민이 주필산에 모여있던 군사를 보고 두려워했다. 이부분을 굳이 중국 유명 소설책에 있던 내용을 빼왔어 기록이 썼고 그러면서 하는 왈 " 실제로 이세민이 고구려 군을 보고 두려워했을건데 자신들(중국)이 부끄러워서 일부로 뺐으니 내가(김부식) 여기에 쓴다. " 라고 하였고 이뿐만 아니라 친고구려적 역사를 삼국사기에 많이 넣었답니다.
또 묘청의 난 이후 고려 과거제로 통해 서경 사람 중심으로 많이 중앙정부에 들어오게 한 것도 있습니다.
정부가 교수님들이 너무 역사를 단편적으로 가르쳐 중요한 점을 알려주지 않아 문제지요.
원래 김부식같은 조작날조 정치인들이 고구려 유민계열 국민을 개돼지취급을 하니 후환이 두려워서 친고구려 기록도 남긴거겠죠. 전체적으로 보세요. 고구려는 물론이거니와 백제는 아예 부여뿌리까지 드르륵하고 삭제한거 너무 많습니다.
2:41
영상에서 묘청 등 1년동안 저항하였다고 하지만 정작 1년동안 저항한건 조광이었습니다.
사실 묘청의난은 조광의난이라고 불러도되는게 조광은 무려 1년 2개월동안이나 김부식의 군대를 막았습니다. 심지어 지도자가 없는 상황이고 대위국 황제도 공석인 상황이었죠. 묘청은 살해된 상태...그런데 1년 2개월을 막은거면...
묘청도 지가 주류가 아니니까 그따위 주장한거지 뭔.. 갖다 붙이기는
묘청 말대로 해서 금나라 침략 당하던 공격을 하던 지깟게 뭔 수로 이김? 당장에 관군한테도 1년만에 진 주제에
차라리 동학군이 일본군 방해만 아니였으면 청나라를 패배시키고 만주를 점령했을거란 얘기가 더 현실성 있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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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만 생각해보면 개경과 서경의 위치가 너무 가깝다는게 보인다 진짜 개경 서경의 위치가 아닌거지
묘청이랑 청와대 이전한 누구랑 다를게 뭐임 ㅡㅡ 역사는 반복되네
ㅋㅋㅋㅋㅋ 누가보면 수도 변경 한 줄 알겠네 ㅋㅋㅋ. 그렇게 따지면 세종시를 행정수도로 만들겠다고 하던 분도 묘청 같은 건가 ㅋㅋㅋ
@@migora6494 그럼 멀쩡한 청와대옮기는게 맞음? 서울 미친듯이 큰데 거기 계속 밀집되게 두는건 맞음?
으이그 쯔쯧.
이후 고려 및 조선까지 사대주의가 뿌리를 내리게 된 아주 중요한 기점.
묘청은 사기꾼이었는데 뭔 사대주의가 뿌리를 내려? 그냥 신채호 개인의 역사 관점이구만. 조선이 들어서면서 국가 기본 사상으로 사대주의를 채택하면서 그렇게 된거지.
@@토미베스트 딱히 고려라고 해서 사대를 안한것도 아님 ㅋㅋㅋ
@@토미베스트 으따 고려가 금나라 밑에서 설설 긴건 사대도 아니쟈. 안 그랴?
@@workers4233 안했으면 먹혀서 지금의 한국은 없을듯
김부식은 진짜 만악의 근원인듯
그 신채호의 역사관이 더 문제임
현실주의자를 보고 만악의 근원이라니
이씨 조선 최악...
고려도 좋은 나라도 아님
고려도 여진정벌 실패한 후로 탈탈탈탈 털리기만 하는데 뭘~
고려 최대 반란은 숙신여진 용병이 반란을 일으켜 고려를 멸망시킨것입니다. 숙신여진의 씨를 멸족하여 고려의 전통을 살려야 합니다
에휴
고려 최대의 반란은 무신반란. 무신반란으로 왕건이 건국한 고려는 의종에서 막을내림. 이후는 도적떼 무신세력과 친원세력의 왕을 볼모로한 아귀다툼. 우리 역사상 최악의 암흑기.
뭐 여진도 크게 보면 한민족의 일파가 아닌가요?
고려의 전통을 원한다면 같은 자주적인 병영국가인 북한으로 가세요 ^^
여진족이라기보다 그냥 이성계는 몽골 용병에 가깝던데 역사보면
아니 개경에서 서경 거리가 얼마가 된다고 저걸 천도한다고 난을 일으키냐..뭔 개소리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