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생각 나네요....대학때 학교 정문 앞에 **정밀 이라는 가공업체가 있었죠. 다른 아르바이트 보다는 단가가 좋고 학교 앞이라 서로 알바하려 난리였죠. 대학이 80년대 공고 출신만 뽑던 학교라....정밀가공기능사 자격증 소유학생들이 대다수......절삭가공업체 사장이 머리를 잘쓴 거죠. 정식 직원 뽑지 않고 알바만 **공대 학생들만 알바로 써도 머리 좋지, 가공 잘 하지.... 특정 공고출신들 한테 알바 넘어가면 다른 학교 도문들 한테 넘기지 않으려 끼리끼리 시간 빠짖지 않고 알바로 빈틈없이 메워 나갔죠.....좋은 알바 자리 지키기, 빼앗기가 정말 어려워서 **대학생들 사이엔 유명했죠.....ㅎㅎㅎㅎㅎㅎㅎㅎ 3학년때 기계가공실습땐 정국기능경진대회 금메달 리스트 아니면 공작기계 잡을 수도 없엇다는 선만, 밀링, 다듭질 메달리스트 들이 같은과 학생수 만큼 마치 양산 라인 돌리듯 제출할 과제물 세명이 제작 했었죠.....나머지 학생들은 공작실 밖에서 족구하고 담배 피고,커피 마시고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1970년대까지는 공업고등학교, 상업고등학교는 일반계에 비해 특별히 그 질이 떨어지지 않았고 도리어 산업화로 인해 사회에 필요한 전문 인재를 키워낸다는 인식이 많아 중학교때 성적이 좋은 학생들이 많이 진학을 했다. 특히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취업이 가능했기 때문에, 공부는 잘 했지만 가정 형편이 어려워서 한시라도 빨리 번듯한 직장에 취업해서 가족의 생계를 꾸려야 하는 사람들이 택하는 경우가 많았으며, 공기업 및 공무원 시험에 응시하여 경찰공무원, 행정공무원으로 활동하는 사람도 있었다. 1980년대 초반까지도 그랬는데 그러다 1980년대 중후반쯤부터 졸업 정원제나 분교 열풍으로 인해 대학 정원이 많아지면서 대졸 기회가 더 생기면서 학교 교육이 점차 대학 입시에 초점이 맞춰지게 되었다. 그리고 대한민국의 국민 소득이 높아진 것도 있고 교육을 시켜야 할 자식들의 수가 줄어 대학까지 보낼 만한 여유가 되는 가정들이 늘어난 탓도 있다. 아무래도 대학을 가려면 일반계를 가야하기 때문에 형편이 되고 웬만큼 머리가 되면 빨리 고등학교를 졸업해서 돈 벌어오라고 실업계 가기를 강요할 필요 없이 일반계를 보내는 게 당연했다. 더군다나 1990년대 들어서 힘든 일을 기피하는 사회적 풍조가 만연해진것도 실업계 고등학교의 몰락에 결정타를 날려버렸다.
79년 반에서 2등 서울공고 4등 용산공고 덕수상고 7~8등 철도공고 10~15등 경기공고 성동공고 한양공고 선린상고 경기상고 영등포공고 등등등 수준이였고 실업계 공고 상고 제일 하위권 학교 떨어져도 인문계 주간을 붙었고 당시 경기공고(노원구소재) 는 졸업생중 서울대 한양대공대등 우수한 대학에 입학도 많았습니다. 서울공고는 70년대 서울대학교만 20명 이상씩 보냈습니다. 7~80년대는 공고 상고 나와도 바로 4년제 문과계열과 제수하면 서울의 문과 4년제는 준명문대 이상 갈 정도로 우수한 학생들이 실업계를 가던 시절입니다. 가난해서 상고를 가도 직장다니며 결국 야간 대학을 다니며 대학을 졸업했고 경기대 서경대(국제대) 단국대등이 야간 대학 운영했구요 문재인정부 경제부총리분도 상고나와 국제대야간 졸업 후 서을대 외국유학등을 거쳐 아주대총장까지 했습니다. 실업계 나와 대학 졸업한 제로서는 옛날 생각하니 감회가 새롭네요. 우리 부모님 새대는 가난 했지만 결코 공부 하기를 포기하지않고 열심히 살았습니다. 힘들어도 절대 .포기하지 마십시요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어릴적 친구가 수산대 기관학과 나와서 원양어선에 취업 11달 만에 육지 밟고, 면장 찢어 버리고 철도청에 취업 용산정비창에 다녔었죠.... 나름 대졸이라 그래도 했는데....기관실에서 나이든 아재들 스패너도 머리 후려 치는게 업이 더라는....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
발전과 무궁한 나래를 기원합니다. 화이팅! @@ 충남최대 졸업생 4000명의 천안공고 졸업자~
80년대 공업 고등학교 실습 영상!
옛날 생각 나네요....대학때 학교 정문 앞에 **정밀 이라는 가공업체가 있었죠.
다른 아르바이트 보다는 단가가 좋고 학교 앞이라 서로 알바하려 난리였죠.
대학이 80년대 공고 출신만 뽑던 학교라....정밀가공기능사 자격증 소유학생들이
대다수......절삭가공업체 사장이 머리를 잘쓴 거죠.
정식 직원 뽑지 않고 알바만 **공대 학생들만 알바로 써도 머리 좋지, 가공 잘 하지....
특정 공고출신들 한테 알바 넘어가면 다른 학교 도문들 한테 넘기지 않으려 끼리끼리
시간 빠짖지 않고 알바로 빈틈없이 메워 나갔죠.....좋은 알바 자리 지키기, 빼앗기가 정말
어려워서 **대학생들 사이엔 유명했죠.....ㅎㅎㅎㅎㅎㅎㅎㅎ
3학년때 기계가공실습땐 정국기능경진대회 금메달 리스트 아니면 공작기계 잡을 수도 없엇다는
선만, 밀링, 다듭질 메달리스트 들이 같은과 학생수 만큼 마치 양산 라인 돌리듯
제출할 과제물 세명이 제작 했었죠.....나머지 학생들은 공작실 밖에서 족구하고 담배 피고,커피 마시고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매점
90년 3학년 여름방학때 실습 나가서, 아저씨들이 " 야 노기스 가져와 "... 제가 " 저 노기스가 뭐에요 ? " 묻던 때도 생각나구요 ^^
선반과였는데, 다듬질 하던 동기들 밀링기계와서 치수 줄이려고 몰래몰래 오던 생각이 나네요 ^^
그때조립반래들 함들어서 외관을 밀링처주면...
ㅋㅋㅋ 다들 그랬구만. 우리만 그런게 아녔어 ^^
70~80년대 공고는 중학교 성적이 좋아야 길수 있었음
1970년대까지는 공업고등학교, 상업고등학교는 일반계에 비해 특별히 그 질이 떨어지지 않았고 도리어 산업화로 인해 사회에 필요한 전문 인재를 키워낸다는 인식이 많아 중학교때 성적이 좋은 학생들이 많이 진학을 했다. 특히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취업이 가능했기 때문에, 공부는 잘 했지만 가정 형편이 어려워서 한시라도 빨리 번듯한 직장에 취업해서 가족의 생계를 꾸려야 하는 사람들이 택하는 경우가 많았으며, 공기업 및 공무원 시험에 응시하여 경찰공무원, 행정공무원으로 활동하는 사람도 있었다.
1980년대 초반까지도 그랬는데 그러다 1980년대 중후반쯤부터 졸업 정원제나 분교 열풍으로 인해 대학 정원이 많아지면서 대졸 기회가 더 생기면서 학교 교육이 점차 대학 입시에 초점이 맞춰지게 되었다. 그리고 대한민국의 국민 소득이 높아진 것도 있고 교육을 시켜야 할 자식들의 수가 줄어 대학까지 보낼 만한 여유가 되는 가정들이 늘어난 탓도 있다. 아무래도 대학을 가려면 일반계를 가야하기 때문에 형편이 되고 웬만큼 머리가 되면 빨리 고등학교를 졸업해서 돈 벌어오라고 실업계 가기를 강요할 필요 없이 일반계를 보내는 게 당연했다. 더군다나 1990년대 들어서 힘든 일을 기피하는 사회적 풍조가 만연해진것도 실업계 고등학교의 몰락에 결정타를 날려버렸다.
부산전자공고 출신입니다만
각 지역마다 밀어준 공고가 있지요 박정희 대통령시절때요 그런 학교는.정말 공부는 잘했지만 가정형편때문에.일찍이 사회 진출하는 분들이 많이 계셨죠
물론 밀어주지 않는 공고라도 그곳에서 열심히해서 성공하신분도 계시니깐요
@@최형빈-l8r 안녕하십니까 선배님!! 저는 지금 현재 부산 전자공고다니고있습니다
90년대 중반까지도 그랬음.
79년 반에서 2등 서울공고 4등 용산공고 덕수상고 7~8등 철도공고 10~15등 경기공고 성동공고 한양공고 선린상고 경기상고 영등포공고 등등등 수준이였고 실업계 공고 상고 제일 하위권 학교 떨어져도 인문계 주간을 붙었고 당시 경기공고(노원구소재) 는 졸업생중 서울대 한양대공대등 우수한 대학에 입학도 많았습니다.
서울공고는 70년대 서울대학교만 20명 이상씩 보냈습니다. 7~80년대는 공고 상고 나와도 바로 4년제 문과계열과 제수하면 서울의 문과 4년제는 준명문대 이상 갈 정도로 우수한 학생들이 실업계를 가던 시절입니다. 가난해서 상고를 가도 직장다니며 결국 야간 대학을 다니며 대학을 졸업했고 경기대 서경대(국제대) 단국대등이 야간 대학 운영했구요
문재인정부 경제부총리분도 상고나와 국제대야간 졸업 후 서을대 외국유학등을 거쳐 아주대총장까지 했습니다. 실업계 나와 대학 졸업한 제로서는 옛날 생각하니 감회가 새롭네요.
우리 부모님 새대는 가난 했지만 결코 공부 하기를 포기하지않고 열심히 살았습니다. 힘들어도 절대 .포기하지 마십시요
79년 당시 청량기계공고죠 후에 하계동으로 이사 하면서 경기기계공고로 변경되었죠 79년 당시 서울 .용산.성동.청량.북공고 톱5였고. 상업고는 경기.덕수.선린 이 상위권 으로 기억합니다
자랑스러운 서울공업고등학교!
동일계 진학시 가산점 덕택에 갔얼을테고,
영어 수학 후달리고 졸업 정원제 때문에 중도 포기한 학생들 많았죠 공고 출신들.....
선반 밀링 계측 야슬이 제도.....
저땐 안정장치도 뭐고 다없네 ㄷㄷ
지금은 공장장 이상되어있을꺼야
마음이 참ㅎㅎㅎ 저가 80년대 공고 나왔는데.
반갑습니다. 전공이...?
기계@@어울림-m1t
great work
아 이거 이동영상보니까 생각나네 옛날 대방동 돈보스꼬 라는 직입훈련소에서 기계조립 밀링배운거...머시닝인가 맞나모르겠네..이것도 배웠는대..ㅎㅎㅎ
저러고 현장 실습 나가면 공구로 맞아가며 일배웠던 시절임.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어릴적 친구가 수산대 기관학과 나와서 원양어선에 취업 11달 만에 육지 밟고,
면장 찢어 버리고 철도청에 취업 용산정비창에 다녔었죠....
나름 대졸이라 그래도 했는데....기관실에서 나이든 아재들 스패너도 머리 후려 치는게
업이 더라는....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보안경 쓴 사람이 아무도 없네 ㄷㄷ 기술 배우는 것도 중요한데 safety first가 우선이 되야할듯 합니다. 요즘엔 저렇게 하지 않겠죠?
요새는 다 착용합니다
현재 공고 다니고있는데 착용안합니다
공고 졸업자입니다. 다 착용하고 실습힙니다.추가로컴퓨터응용선반 취득자로써 안쓰고하면 실격됩니다
눈에 칩다튀어서 실명되요
촬영한다고 보안경안씌우고 바로앞에 쳐다보게했네요 눈에들어가면 실명인데 ㅠ
91년도 공고 정밀기계과 3학년2학기 현장실습 나갔을때 자격증많이 따서 자신감충만 그자신감은 1주일도 안되서 추락
실제로 공작실습을 해본적이 있었는데, 선반과 밀링은 어렵지 않은데 다듬질은 진짜 팔빠집니다. 그리고 제도실습에선 도면지에다가 하다가 나중에 CAD를 하게 되었습니다.
김일성 으로 봤습니다 ㅋㅋ
줄질 잘못하면 ㅋㅋㅋㅋ 진짜 힘들어요..ㄷㄷ
그래서 가공할때 최대한 신경써서 해야되더라구요
@@Skyblue_cake 숙달 안되면 가공면 배 나오고 평면이 안되죠. ㅎㅎㅎ
@@dolgum826 ㅋㅋㅋㅋ맞져
야스리질 보니까 눈물이 주르륵...ㅠㅠ 관악산의 왕독수리!!! 조립 조립 승리 야!
팩트:용접 온도는 섭시 4000도~15000도 이다
80년대 태백기계공업고등학교의 모습
태백기계공고 다녔던 분들 수도권이나 대구,부산,제주에 있음
조국 근대화의 기수 마크가 있길래 기계공고겠구나 했는데 역시나네요. 저도 기계공고 출신 입니다.
산업에 필요한 인재를 공교육 차원에서부터 길러내자는 취지의 특성화고교는 ‘메달리스트’ 양성에 집중한다.
국제기능올림픽대회에서 메달을 딸 수 있는 교육에 학교가 집중하고 있다.
지역관계없이 대학처럼 특성화고등학교를 타지에서도 다닐수있게 전면허용해야한다. 지금봐라 오로지 한군데만 지원이 가능하니까 질이 떨어지지.
선반, 밀링, 다듬질, 제도 ㅎㅎㅎ
어깨에 조국 근대화의 기수 마크가 있는 걸 보니 기계공고네요.
썸넬 매직아이 보는줄
0:13 아 중심 안맞는거 킹받내...연동척인가?
편심가공 아닌가요??? 진원도 안 맞는 것이 아니라 ㅎㅎㅎㅎㅎㅎㅎㅎㅎ
어찌 요즘공고보다 범용선반 범용밀링 장비가 더 좋아보이네요 ㅋㅋ
저같은경우에는 작년에 고등학교졸업했는데 학교에서 가장오래된기계중에 범용밀링머신은 86년식인데 작동도 잘되고 신기했던기억이있네요 ㅡTMI댓글...ㅡ
전설의 태기공ㅋㅋ
용접실,주물실은없네^~^
전에 다니는 회사 저리하는데 ㅋㅋ
공고 기술은 태백공고 알아줌
이태백이 밝은달아 에서 태백 인가요?
@@kimjinhyun97 문과세요?
조국근대화의기수
크~~~~분필칠하고 줄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