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트빌리시 나리칼라 요새와 메테히(메테키)교회 (무료.설명참고) Narikala Fortress and Metekhi Church in Tbilis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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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Опубликовано: 10 сен 2024
  • 트빌리시 한달살기 중
    임시 휴업중인 곳을 갔다가
    뜻밖의 에피소드가 있었습니다.
    ※ 나리칼라 요새
    4세기에 페르시아인에 의해 처음 건설되었다고 합니다. 당시 요새는 트빌리시를 방어하기 위한 중요한 전략적 요충지였고, 7세기에는 아랍인들이 요새를 점령한 후 확장, 보강하였다고 합니다.
    11세기
    조지아의 바그라티드(Bagratid) 왕조가 요새를 점령한 후,
    요새는 계속해서 보강 되었고,
    12세기에는 조지아의 황금기를 맞이하여 중요한 역할을 했는데
    이 시기에 요새 내부에 교회를 지었습니다.
    13세기에는 몽골 제국의 침입으로 요새가 부분적으로 파괴되어
    이후 조지아인들에 의해 다시
    복구되었습니다.
    16세기와 17세기 동안 페르시아인과 오스만 제국의 침입을 겪으면서
    요새는 전투의 중심지가 되었으며,
    1827년에는 대규모 지진으로 많은 부분이 파괴되었고, 이후 조지아가 러시아 제국의 일부가 되면서 요새는 점차 그 중요성을 잃었다고 합니다.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초반까지는 방치되어 역사적 기념물로 남아 있었답니다.
    (2024년 7월 폐쇄 중)
    ※ 메테히(메테키) 교회
    이 교회는 5세기에 조지아 왕 바흐탕 고르가살리(Vakhtang Gorgasali)에 의해 처음 건축되었습니다. 바흐탕 고르가살리는 트빌리시의 창시자로, 그는 트빌리시를 조지아의 중요한 도시로 만들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인 왕이라고 합니다. 말을 탄 그의 동상은 그의 업적을 기리기 위한 것이라고 합니다.
    현재의 메테히 교회 건물은 13세기에 조지아의 왕 데메트레 2세(Demetre II) 통치 기간중 재건축 되었습니다.
    이 시기의 건축 양식은 전통적인 교회 건축 양식을 하고 있습니다.
    메테히 교회는 여러 역사적 사건들과 밀접하게 연관되며, 조지아의 왕들과 가족들이 기도하고 예배를 드리는 중요한 장소였습니다. 그리고 조지아의 독립과 민족적 정체성을 상징하는 장소로 여겨집니다.
    교회는 여러 차례 파괴되면서 재건축되었는데, 이는 조지아의 역동적인 역사를 반영합니다.
    소련 시대에는 메테히 교회가 감옥으로 사용, 이 기간 동안 교회의 많은 부분이 손상되었지만, 조지아가 독립 한 후 복원되어 다시 예배 장소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한식당은 1인 약 2만원이고
    평화의 다리 근처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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