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학교 다니는 민병무 라는 학생이 이노래를 만들었지 같은 학교 다니는 방희준이 노랫말 쓰고 그런데 젊은 나이에 국내 호텔 화재 사고로 민병무와 방희준이 함께 세상을 떠나지.동생인 민병호는 형의 노래를 고히 간직 했지 그후 세월이 흘러 7년후 쯤 민병무의 동생 민병호가 이 노래를 들고 친구들과 대학가요제에 출전 하지 서울대 트리오로 이른 나이에 사고사한 형의 노래를 기억 하고 있다가 형이 다니던 서울대학교에 입학해 형의 못다 이룬 꿈을 동생 민병호가 대학가요제에 출전해 형 대신 부른 슬픈 노래 젊은연인들 형과 동생이 모두 엘리트 서울대 공대 저때 동생 민병호의 마음이 어땠을까 그래서 더 슬픈 노래 젊은연인들
눈물이 나요 이 노래를 부르며 저도 중고등학교 대학까지... 저는 대학가요제가 처음 시작한 77년에 국민학교 4학년이었지요 그 해 11/30 수출의 날 100억불 수출을 자축하던 흑백뉴스와 연말 가까이에 지성인들의 잔치였던 대학가요제를 처음 보며 저의 미래를 꿈꾸었습니다 사연 있는 저 노래를 부르는 동생분과 다른 분들은 뭘 하실까요 지금쯤이면 환갑을 훌쩍 넘긴 나이신데 앞서가는 지성인이며 음악을 사랑하던 멋스러움을 여전히 잘 간직하고 계시길 소망해봅니다 모처럼 여기서 지나간 영상과 함께 제 유년-청소년시절의 추억까지 떠올리며 잔잔히 머물다 갑니다 고맙습니다
25년전 고등학교 시절에 우연히 접하고 난 뒤 참 아끼고 좋아한 노래입니다. 다이어리에 가사를 써두고 다시, 다시, 곱씹고 불렀던 기억... 선배님들과 같은 학교에서 지낼 수 있었다는 것이 무한한 영광이며, 이 노래를 여전히 뿌듯이 부를 수 있어 너무 행복합니다. 고맙습니다.
요즘은, 이런 비숫한, 아주 조금 그 근처에 어느 정도 가까운 노래 조차 단 한 곡 도 없네요.. 친구에게, 연인에게, 부모님께, 선생님께, 편지 쓰던 시절이었죠…. 스마트폰 없던 시절…. 기다리던 낭만이 있었고 인내를 배울 수 있는 그런 시절이었죠…. 그 시절을 살았다는 것에 감사함을 느낍니다… 하지만 우리 아이들이 그런 시절이 아닌, 편지 쓰지 않아도 되는, 시절에 살고 있는 사실이 왠지 씁쓸합니다.. 1977 년도… 국민학교 3학년… 평생 그렇게 엄마가 해주는 밥 먹는 열 살짜리로 남아 있을 것 것 같았는데 그때는…. 내 나이도 어느덧 50이 넘고… 영원히 곁에 계실 것 같았던 부모님도 돌아가시고 세월이 참 빠릅니다 눈을 감으면 바로 그 시절 속에 있는데…..
This song was created in 1971 by two young Seoul national university students' friends. The two were killed in a fire accident at a large hotel in Seoul on Christmas Day, Dec. 25, 1971. (Two students participated in a charity concert, and received a hotel stay ticket instead of an appearance fee.) The younger brother found the score while organizing his older brother's belongings at home after the accident, and he practiced the song with his friends and released his last song on air in 1977. That stage is this video..
서울대학교 다니는 민병무 라는 학생이 이노래를 만들었지 같은 학교 다니는 방희준이 노랫말 쓰고
그런데 젊은 나이에 국내 호텔 화재 사고로 민병무와 방희준이 함께 세상을 떠나지.동생인 민병호는 형의 노래를 고히 간직 했지
그후 세월이 흘러 7년후 쯤 민병무의 동생 민병호가 이 노래를 들고 친구들과 대학가요제에 출전 하지
서울대 트리오로
이른 나이에 사고사한 형의 노래를 기억 하고 있다가 형이 다니던 서울대학교에 입학해 형의 못다 이룬 꿈을 동생 민병호가 대학가요제에 출전해 형 대신 부른 슬픈 노래 젊은연인들
형과 동생이 모두 엘리트 서울대 공대
저때 동생 민병호의 마음이 어땠을까 그래서 더 슬픈 노래
젊은연인들
꼬꼬무에 나왔습니다 이런 사연을 알고계셨다니 대단하십니다
아~
그랬군요!
안타깝고 슬프네요!
중2때 1회 대학가요제를 했었는데 노래가 너무 좋아서 노래 시키면 친구들과 선생님 앞에서 자주 불렀던 노래에요.
이런 사연이 있는 노래인지는 이제야 알았습니다.
오늘 처음 알았네요. 가슴뭉클
방희준작사민병무작곡 고인이된 두분은 효제국민학교를 1965년졸업한
동창생입니다. 두분다 경기중고를 나와 서울공대에 재학중이던 수재였습니다.
1971년에 훜스라는 듀엣그룹을 결성하여 활동중에 대연각호텔화재를 당했습니다. 병무와는 같은반이 된적이 없지만 희준이와는 4학년때 같은반이어서 집에도
놀러가곤 했는데 이미 바이오린연주를 하고 음악적재능의 편린들이 번뜩이는 소년이었지요. 뮤지컬영화 오클라호마를 본후에 내앞에서 감격에겨워 오클라호마노래를 부르던 희준이의 모습이 어제일 처럼 생생하네요. 저기 멀리서 우리의 낙원이 손짓하며 우리를 부르네 라고 노랫말처럼 너무나도 젊은나이에 가버린 친구들 그 어린시절 연지동 효제동 연건동 충신동 낙산 양삿골이 그립습니다.
梁在哲 결국 이 곡도 참가자 창작곡은 아니고 이미 1971년에 있던 곡이네요.
그 추억을 유튜브가 기록으로 남겼으니 그 얼마나 가슴 뛰는 일입니까.. 마냥 부럽습니다 ㅠ
아 ! 대연각화재 ...
가슴아픈 영상이기도 하네요 ..정말 명곡
시대는 달라도 제가 참 좋아하는 곡이예요
내가 좋아했던 음악을 만든 분이 대연각 희생자셨구나ㅠㅠ 초등학교때 가슴 졸이며 티브이를 보던 기억...형제가 서울대공대라...수재집안 이었네요
꼬꼬무 보고 노래 들으러 오신분~? 좋은 노래 참 좋아요 그리고 오래지났지만 대연각화재 고인분들의 명복을 빕니다
저도 꼬꼬무 보고왔습니다ㅎ
근데 사연이 너무 안타깝네요ㅜㅜ
앞으로 다시는 이런 사고가 없길 바라며, 고인분들 명복을 빕니다
방송 보고 눈물 났어요..
'젊은 연인들' 들으니 더 그러네요.
'안전수칙은 피로 쓰인다'
저도 꼬꼬무 보고 왔어요ㅠㅠ
가슴이 아프네요.
저도 꼬꼬무 보고 왔어유~~
90년생인데~ 아빠랑 맨날 기타치고 듀엣하며 부르던 노래... 지금은 돌아가셨지만
항상 생각나는 노랩니다 아버지~
하늘에서는 아프지마세요
ㅜㅜ
저 시절 대학때는 짙은 낭만과 지성이 넘쳐보여 멋지네요
저 시절 대학생은 아무나 돼는게 아녔죠. 중산층 이상에 지성인들. 지금은 뭐 거의 의무교육이나 마찬가지라 누구나 한번은 돼는 거고. 지성하곤 거리가 먼 학생들 부지기수.
저시절 대학생들은 지금 또래들보다 훨씬 진중해 보이고 지성인 다운 모습입니다...
군대3년 빡시게하고 복학....
맞습니다. 지금 또래들에게 아쉬운
부분입니다.
부모님이 결혼하시면서 36년전 하객들 앞에서 사랑을 다짐하면서 부르셨고, 그 후 제가 결혼을 하면서 축가로 동생이 편곡해준 이 곡을 선물 받았어요. 새로운 길을 시작하는 커플을 위한 최고의 곡인 거 같아요…! 좋은 곡 정말 감사합니다
목소리에서부터 진중함과 의젓함이 느껴진다
요즘엔 절대 느낄 수가 없는 감성...
요즘 대학생들과는 사뭇 다른 느낌
이게 대학가요제 란다ㅡ라고 알리는 대표곡
동상을 받았지만 전설로 남은 명곡. 그런데 세 분 모두 정말 훈남들이시네...
요즘나오는 소음수준의 음악과는
음악적 완성도 자체가 다름.
정도껏 합시다!!
음악을 감명깊게 들으신 건 알겠지만 요즘 노래들을 은근슬쩍 디스하는 태도는 당신이 그 만큼 못배워쳐먹었다는 걸 증명하는거나 다름없습니다~!!
음악을 쳐들으실 거면 곱게 쳐들으시고 쳐오바하지는 맙시다 십새야~~!!^^
문화에 시대적 우열이란 없겠지만, 확실히 70년대 대중음악은 너무 저평가 되어 있고, 지금보다 훨씬 높은 수준이었던것 같다. 대학생들이 이런 노래를 만들어 불렀으니, 그 문화적 잠재성은 세계적인 수준이었을 것이다.
이때는 낭만이 살아있는 시절이였는데.. 순수했던 그때가 그립네요
제가 이당시 대학시절인데 ᆢ이제 70이 됫습니다 ㆍ
맞습니다..😅
@@황화연-h8l대학가요제때 방송시간이 저녁때였던것같아요.어린것이그프로를 참 좋아했어요.
형을먼저보네고 어떻게지냈을까요.....
대학가요제 품격을 높여주는 곡
서정적인 가사와 멜로디
언제들어도 좋습니다.
이때의 노래들을 들으면 당시의 암울한 시대상과 청춘의 낭만이라는 모순된 상황이 겹쳐지며 뭔가 복잡한 기분에 빠진다.
무엇 보다도 병무 동생분과 친구분들의 가슴을 울리는 화음과 연주를 통해
이 노래가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들 모두의 마음속에 살아 숨쉬고 있음에
감사드립니다.
젊은연인들이 이 분들이 부른거구나...너무나 서정적이고 기품있고...대학가요제에 딱 맞는 그룹이네...
제 결혼식때 피로연에서 친구들이 축가로 불러주었던 그리운 노래입니다~
이때는 지잡대 라는 대학아닌 대학도 없던 시절,,,어렵게들 들어간,,
@user-dd4du9lj4d 전 결혼식때 불렀어요
개인적으로 대학생의 감수성과 지성. 대학가요제의 내음새가 물씬 풍기는 참가곡 중 최고라 생각합니다.고등학교 시절이나 대학가에서 항상 기본적인 레파토리로 선곡되고 불리워지는 명곡.....나어떡해/젊은연인들/밀려오는 파도소리에/탈춤/내가/참새와 허수아비 등.................제목은 너무 길어서 끊겼는데...."젊은연인들"
가장 대학가요제다운 아름다운 하모니의 노래....
눈물 날 정도로 멋지고 서정적인 노래네요.
클래식 기타 소리와 함께 가사말이 가슴에 스며듭니다.
게다가 세분의 화음이 참 잘 어우러져 좋습니다.
지금 시대와는 분위기가 전혀 다른 명곡입니다.
눈물이 나요 이 노래를 부르며 저도 중고등학교 대학까지... 저는 대학가요제가 처음 시작한 77년에 국민학교 4학년이었지요
그 해 11/30 수출의 날 100억불 수출을 자축하던 흑백뉴스와 연말 가까이에 지성인들의 잔치였던 대학가요제를 처음 보며 저의 미래를 꿈꾸었습니다
사연 있는 저 노래를 부르는 동생분과 다른 분들은 뭘 하실까요
지금쯤이면 환갑을 훌쩍 넘긴 나이신데 앞서가는 지성인이며 음악을 사랑하던 멋스러움을 여전히 잘 간직하고 계시길 소망해봅니다
모처럼 여기서 지나간 영상과 함께 제 유년-청소년시절의 추억까지 떠올리며 잔잔히 머물다 갑니다
고맙습니다
학교운동장 에. 커다랗게 써있던. 수출 100억불..아직 저도. 기억이 생생합니다
지금까지 대학가요제의 노래중 단연 최고의 곡이라고 생각함ㅡ기품있고 고급스럽고 클례식컬한ㅡ게다가 가요제 출신들 거의 가수로 나서 그길로 살이간사람도 많은데 이들은 그런 인기에 영합하지않고 끝까지 드러내지않고 남은게 전설이다ㅡ
80년도 이시대의 노래들은
가슴을 울립니다
꼬꼬무 보고왔어여ㅠ슬퍼요 왜 하필 수많은 날짜중에 그날 ㅜㅜㅜ
고등학교 1학년때 대학가요제 1회를 본 기억이 납니다. 근데 , 벌써 나이 60이 넘었습니다. 세월 참 빠릅니다. ㅠㅠ " 나 어떻게 " " 젊은 여인들 " " 그떄 그사람 " " 연 " 주옥같은 노래들이 대학가요제 , 강변가요제에서 많이 탄생했죠.
해야 연극이 끝나고 난뒤 그대에게 ..그후에도 연이어진 엄청난 명곡들
영상으로 모습들 보고 들으니 정말 감동입니다 그러니까 작곡의 민병두님이 화재로 돌아가시고 동생분과 친구들께서 노래를 부르신거군요 정말 몰랐네요 영상을 살려주신 mbc가 참 고맙네요 어쨌던 감동입니다
대학가요제 정말 수준 높고 좋은 곡과 가수 많이 배출했어요 다시 이런 대회 볼 수 없을까요~?...
저 대학 1학년때 나온 곡으로 당시 집사람과 연애하면서 두 손을 꼭 잡고 노래 하던 기억에 울컥합니다... 지금들으니 또 다른 감동이네요~~^^
저는 79년 생인데 저 6 학년때 담임쌤이 알려준 노래입니다. 기타치면서 알려 주셨는데 가끔 생각나는 노래였어요. 오늘 꼬꼬무 보고 찾아봤어요. 그시절 많은 노래 알려 주셨는데 선생님이 생각나네요.
젊은 연인들~~~❤❤❤❤❤❤
그 당시에 부르고 또 부르고..... 지금도 또 따라 부르게 되는 명곡 중의 명곡~~❤❤❤
노래 좋고 목소리 좋으시고. 평생 이런 좋은 노래 만들고 부른 추억 있는 이 분들, 부럽습니다.
국민학교 4학년때 1회 대학가요제를 우연히 직관하고 저노래를 들은기억이..처음듣는 어린생각에도 굉장히 아름다운노래라고 느꼈던 기억이..지금도 가끔씩 들으며 추억소환....
수백번인지 수천번인지는 몰라도 들어보고 불러봐도 너무 좋습니다. 사랑과 우정이 그려집니다.
평생 부르고 듣던노래를 이제서야 실황을 보게되네요
정말 귀하고 소중한 영상입니다
인물들도 좋네요
곡도 노래도 참 우아하고 고급지게 아름답고 명곡이네요.
눈물나게 아름다워요
제가 너무도 좋아하는 노래, 이렇게 영상으로 보게되네요. 77년 대학 가요제. 제가 기억하는 최고의 노래~~30여년이 지난 지금도 늘 듣고 추억합니다. 풋풋 했던 젊은 시절로 시간여행 떠납니다.
초딩 4학년 때인데
이 형님들 땜에
대학 가서 기타 배웠습니다.
그리고 이 노래 불렀습니다!
오리지널곡 들으니 반갑네요!
난 .. 그저 눈물이 난다. 내 또래의 사람들 이젠 노인으로 변하다니
제1회 대회였군요. 첫해부터 이런 명곡이 ... ^^
대학가요제 곡들중 가장 오랫동안 좋아했던 노래입니다!
그냥 ...아름답다....
이렇게 오랜 시간이 지나도 빛이 바래지 않는 노래
그래서 명곡이라하죠~
꼬꼬무보고 들어보고있음
눈물나네요
정말 가슴이 시려오는 노래입니다...
꼬꼬무 보고 들으니 너무 슬프네요
저분들 뒤에 대학교수에 건축공학 박사에 건축사무소 운영에 다 잘나가셨음. 엘리트들임..
엘리트 들은 다 자기 갈길로 가시네요~ 꿈의대화 부르신 듀엣분들도 그렇고~
@@신경희-f1t 아무래도
당시 최고의서울대생들은 진로가 누구보다도 명확했죠 ^^서울대출신 의 가수들도 많이있긴하지만 이때당시만 해도 자기전공찿아서
진로를정해가는게
엘리트들의필연이였을듯 합니다 ...최고의엘리트들!농대센드폐블즈도 다들 전공찿아서 그들의삶을 사셨다고하네요
내게는 대학가요제를 통틀어 대상곡. 풋풋한 대학생 감성... 뛰어난 기타 연주... 잘 어우러진 화음... 아직도 분위기에 맞으면 부르는 노래.
평생 내 젊은 시절을 떠오르게 만드는 곡이었다. 그래서 듣고 있으면 가슴이 아리다.
고맙습니다. 추억을 아름답게 만들어주셔서 ^^
지금 22년도에 들어도 너무나 좋고 명곡입니다
목소리가 너무 좋으시다 세분 다
이런게 낭만적인 젊음의 노래지♡♡♡
안경 쓰신 분이 대연각 희생자 민병무씨(작곡)
동생입니다. 노래 부르면서 웃을 수가 없었죠.
작사자 방희준씨와 함께 대연각 참사 때 희생.
이걸 기타로 쳐보려고 무지 많이 들어보고 서툰 연주로 따라하던 시절이 있었읍니다
오랜만에 원곡을 들어보니 역시 주옥같은 곡입니다
이수만님 너무 야위어 배고파보여요ㅋ 정말 때묻지않고 순수했던 시절 젊은이들~~
촬영도 롱샷.클로스샷, 사이드. 기타 클로스샷 참 적절히 잘 찍었던 레전드 영상이네요... 특히 거의 흑백에서 컬러 클로스샷으로 넘어가는 부분이 압권
꼬꼬무....노래 정말좋아합니다 슬퍼요ㅠ
고교시절 통기타 처음 배울때 이 노래를 참 많이 연습하고 불렀는데 아직까지 내 최고의 애창곡 이다.
고교시절 이노래 정말 좋아했는데
45년만에 다시 이 장면 봅니다
세월이 쏜살같네요
" 나 어떡해"도 좋지만, 내 마음의 대상은 "젊은 연인들"...
(다른 관점에서) 멀리서 롱샷으로 앞을 여유롭게 둔 방송카몌라 위크가 대단하다 ㆍ대상의 멋진 노래에 못지않게 카메라 또한 청춘기 젊은 희망을 멋지게 표현했다ㆍ
화마에 사그러간 두청년들의 슬픔이울려서 심금을울리는 명곡!
요즘 남편이 통기타를 배워서 7080노래를 접하게 되었어요
그중에서도 유독 이 노래에 매료되었네요😍
티비에서 대연각화재 때문에 돌아가신 작곡가님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들으며 슬픈 마음 안고 과거의 시간속으로 찾아왔습니다. '젊은 연인들'과 '바위섬'은 그 색깔은 다르지만 역사의 뒤안길에서 찬란히 빛나고 있었네요. 처절하게 꽃으로 승화한 노래들로!
노래도 잘 부르셨었네. 서프라이스에서 보고 진짜 안타까웠는데 ㅠㅠ 이렇게 들려주셔서 정말 감사한 일 ㅠㅠ
곡이 넘좋다.
이노래를 후에 접하고 외국번안곡인줄 알았었던, 문화사대주의에 빠져있던 스스로를 반성합니다.
기교 없이 가슴으로 부르는게 듣기좋다
저도초등하교 그땐국민학교라고했죠.나이를좀 먹었네요.대학가요제~ 좋아했던
사람이예요.
사고라고만 했던것같은데....이런사고인줄은 몰랐네요.참 슬퍼지네요.해맑은두분모습........
괜히 들었어 갑자기 뭉클 해지네.
옛날에 통기타 좀 쳐본 사람중에 이곡 연주 안해본 사람은 없으리라
25년전 고등학교 시절에 우연히 접하고 난 뒤 참 아끼고 좋아한 노래입니다. 다이어리에 가사를 써두고 다시, 다시, 곱씹고 불렀던 기억...
선배님들과 같은 학교에서 지낼 수 있었다는 것이 무한한 영광이며, 이 노래를 여전히 뿌듯이 부를 수 있어 너무 행복합니다. 고맙습니다.
목소리 너무 좋네요.
찌릿찌릿~전율이
정말이지 멋진 분들 이네요~~
나 2살때 영상인데 보고있으니
너무 아름답습니다
가삿말이 너무 서정적이고 이쁘고 눈물나도록 아름다운 곡입니다,,화재가 참 안타까운 인재를,,
옛날 생각 솔솔난다. 예비역 형들 따라다니며 풀밭에서 기타 치고 노래도 부르고, 막걸리에 시국 얘기하며 밤 새던 그날이...
가사가 울려주는 내용이 너무 철학적 의미가 물씬 풍기며 생각해 보게하는 가사.음정입니다!아련한 기억,추억도 함께...
정말 아름답고 서정적인곡이다. 누군가의 결혼식에서 축가로 불린다면 신랑,신부와 하객들 모두 큰 감동받을듯.
아련한 기억속 노래 이때 나는 무얼 생각했을까
난 79학번! 즐겨불렀던 곡...
이 밤에 오리지널 찾아 감동으로 듣습니다. 사회자의 13인치는 되어 보이는 나팔바지ㅋ~
저의 대학가요제 최애곡 입니다
아름다운 곡 입니다~~
아~~
그립다 그시절이~
서정시.대중가요 가사도 이 쯤은 되야.
귀한 자료 정말 감사드립니다
완성도가 가장 높네요 제가 보기에…
젊은 연인들, 내가, 밀려오는 파도 소리에 대학가요제 3대장
어떤 영화에서 이정재가 부르는 이 노래 너무 구슬프고 우울한 느낌이었다
가사는 아름답고 희망적이지만 왠지 가슴 시린 슬픔이 느껴지는 곡이다
정말 좋아하는 곡 입니다.
젊은여인들이이분들이
부른거나...너무나
시정적이고
기품있고..대학가요제에딱맞는그릅이네
제가 젤 좋아 하는 노래입니다
불후의 명곡~~
이곡 탄생 비화가 있는걸로 알고 있어요.
약혼을 한 연인이
크리스마스 이브날 대연각에 머물다가
화마에 휩쓸려 사망하였는데
동생분이 그 곡을 들고 대학가요제에 출전 했다고 알고 있어요.
슬픈 사연이 있는 곡이지만 너무 아름답네요~
원래 작사곡자였던 서울공대생 1학년(71학번) 민병무 군과 방희준 군께서 불의의 사고로 모두 사망하시고 민병무 군 동생되시는 분(병호)과 동기되시는 분들께서 발표한 걸로 알고있습니다.
나 태어나기전 노래인데 가사가 너무좋다. 요즘 노래는 가사내용도 전부 똑같아서 듣는맛이 안난다. 두분은 안타깝게 대연각호텔 화재사건으로 운명을 달리하셨지. 고인들의 명복을빕니다
대연각화재는 72년인가 그런데...?
형이 만든 곡이고 대연각 화재로 돌아가시고 동생이 형을 기리며 부른 곡이래요.
온난화란 말이 없던 시절이네...국민학교 4학년 그 시절이 생각 나는구나
지금 50대 후반이지만, 이 노래를 들으니 내 20대가 생각이 나 마음이 아립니다. 그 당시의 사람들, 사랑, 젊음...
'이 세상 모든 것 내게서 멀어져가도 언제까지나 너만은 내게 남으리~'
교회에서 야휴회때 이노래 불러봤어요 최고 멜로디 입니다
좋으다. 자기전 듣는곡
...컬러화면도 잠시..
어렵게 나온 귀한 곡인데 대상 못 받은 게 안타깝네요.
요즘은, 이런 비숫한, 아주 조금 그 근처에 어느 정도 가까운 노래 조차 단 한 곡 도 없네요..
친구에게, 연인에게, 부모님께, 선생님께, 편지 쓰던 시절이었죠…. 스마트폰 없던 시절…. 기다리던 낭만이 있었고 인내를 배울 수 있는 그런 시절이었죠…. 그 시절을 살았다는 것에 감사함을 느낍니다… 하지만 우리 아이들이 그런 시절이 아닌, 편지 쓰지 않아도 되는, 시절에 살고 있는 사실이 왠지 씁쓸합니다..
1977 년도… 국민학교 3학년… 평생 그렇게 엄마가 해주는 밥 먹는 열 살짜리로 남아 있을 것 것 같았는데 그때는….
내 나이도 어느덧 50이 넘고… 영원히 곁에 계실 것 같았던 부모님도 돌아가시고 세월이 참 빠릅니다 눈을 감으면 바로 그 시절 속에 있는데…..
What a warm song and warm voices! Everytime I listen to this song I end up cry 😢 . I don't get bored of listen to it , it's just so perfect .
This song was created in 1971 by two young Seoul national university students' friends. The two were killed in a fire accident at a large hotel in Seoul on Christmas Day, Dec. 25, 1971. (Two students participated in a charity concert, and received a hotel stay ticket instead of an appearance fee.) The younger brother found the score while organizing his older brother's belongings at home after the accident, and he practiced the song with his friends and released his last song on air in 1977. That stage is this video..
45년전 귀한 영상이네요 명곡중에
명곡 이당시 군복무
중이라 보지못한 영상
저의 최애곡입니다
A very very beautiful masterpiec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