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어강독】 243/499_ 향당편08장.“제철이 아닌 것은 먹지 아니하였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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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Опубликовано: 15 ноя 2024

Комментарии •

  • @서재송-c7o
    @서재송-c7o 3 месяца назад

    감사합니다 😍

  • @정병권-o4c
    @정병권-o4c 7 месяцев назад

    선생님의 모습을 다시 뵙게 되어 너무 좋습니다.
    동영상 제작에 도움 주시는 분께도 감사드립니다.
    마지막 장까지 공부할 수 있으면 감사하겠습니다.

  • @아미로미
    @아미로미 8 месяцев назад

    기다렸습니다!!! 감사합니다~~❤

  • @수불석폰
    @수불석폰 8 месяцев назад

    안녕하세요? 많이 많이 기다렸습니다.천자문 강독은 안올리시나요? 기다리고 있어요 ^^~~

  • @waldglanz5740
    @waldglanz5740 8 месяцев назад +1

    ◈밥은 정제한 쌀로 지은 것을 좋아 하였으며, 회(脍)는 가늘게 썬 것을 좋아 하였다. 쉬어 상한 밥, 상한 생선, 상한 고기는 먹지 않았다. 빛깔이 나쁘거나, 냄새가 고약하면 먹지 않았다. 알맞게 익히지 아니한 것도 먹지 않았고, 제철에 나는 것이 아니면 먹지 않았다. 바르게 썰지 않은 것이나 간과 양념이 맞지 않은 것은 먹지 않았다. 고기가 많더라도 밥보다 많이 먹지는 않았다. 주량에는 한계가 없었으나 취할만큼 난음(亂飮)하지 않았다. 저자에서 사온 술과 고기포는 먹지 않았다. 끼니마다 항상 생강을 먹었으나 과식하지는 않았다. 종묘에서 내린 제육(祭肉)은 그날을 넘기지 않고 다 먹었다. 제사에 쓴 고기는 삼일을 넘기지 않았으나, 삼일이 지나면 먹지 않았다. 식사할 때나 잠자리에 들 때는 말하지 아니하였다. 비록 거친 밥과 나물을 먹더라도 반드시 곡신(穀神)에 제를 올렸으며, 그 제(祭)는 언제나 제계(齊戒)하듯 경건하였다.
    食不厭精,膾不厭細。食饐而餲,魚餒而肉敗,不食。色惡,不食。臭惡,不食。失飪,不食。不時,不食。割不正,不食。不得其醬,不食。肉雖多,不使勝食氣。惟酒無量,不及亂。沽酒市脯不食。不撤薑食。不多食。祭於公,不宿肉。祭肉不出三日。出三日,不食之矣。食不語,寢不言。雖疏食菜羹,瓜祭,必齊如也。 鄉黨:8
    【註解】
    이 장은 공자의 식생활과 식취미를 기술했다. 당대 사람들의 육회 및 생선회의 식관습, 온실재배로 제철 아닌 식재료도 섭취했다는 점, 식사 중 무언(無言)의 관습이 유래되었다는 점, 등 이 장을 읽노라면 2,500년전이라는 세월 차이가 무색해 질 만큼 동시대를 보고있는 듯 하다. 특히 고대 중국의 상류계층이 향유하던 의식주 등의 문화생활이 상당 수준에 달했다는 점은 대부분 동의하지만, 이토록 구체적으로 상술한 것으로 보아 이는 제례를 올리기 전 제계(齊戒)시의 특별한 주의사항일 것이라고 주장하는 정현(鄭玄)․하안(何晏)의 설과, 단지 공자의 평소 식생활 기록이라 보는 주자(朱子)의 주석이 있다.
    정(精)은 정제된 백미를 말하며 육회든 어회든 잘게 썬 것을 즐겼다. 애(饐)는 밥이 덥고 습하여 상한 것이고, 애(餲)는 맛이 변한 것이니 쉬어서 상한 밥을 말한다. 생선이 상한 것은 뇌(餒)라 하고 육고기가 썩은 것은 패(敗)라 한다. 실임(失飪)은 설익거나 덜 삶겨진 것이니 이것들 모두 피했다.
    「不時不食」에 대해서는 의견이 갈린다. 끼니 이외의 간식은 안했다는 설과 제철 음식이 아니면 먹지 않았다는 설이다. 한서 순리전(漢書 循吏傳)의 소신신조(召信臣條)에 의하면 이미 전한(前漢) 시대에 온실재배한 야채를 먹었다는 기록을 근거로, 여기서는 제철 식재료를 가리킨다고 읽었다. 중국은 고대로부터 동물의 여러 부속부위를 섭취하여 왔는데 각 부위별로 절개하는 법이 따로 있었다. 그 방식에 따라 자르지 않은 고기는 먹지 않았다는 뜻이다. 이슬람의 할랄과 비슷한 풍속이다. 고기가 아무리 많아도 곡식의 섭취를 넘지 않았다는 말은 곡식의 기운과 고기의 기운이 서로 和해야 양생(養生)에 좋기 때문에 고기의 기운으로 곡식을 누르지 않았다는 의미다.
    불철갱식(不撤薑食)에 대해서도 說이 구구하다. 생강은 신명(神明)을 통하게 하고 더러움을 씻어주므로 끼니마다 먹는다는 설과, 본 장을 정결한 제계(齊戒)시의 식사법이라고 읽는 古註에서는 본래 자극성 음식은 피해야 하지만, 생강만큼은 특별히 허용하여 먹는다고 본다. 또 정현(鄭玄)은 전혀 다른 재미난 해석을 내놓는다. 생강을 잘게 썰어 소고기와 섞어 훈제한 소시지라는 것이다.「不多食」도 일반적 식사의 과식을 안하다는 견해와, 생강을 빼놓지 않고 먹더라도 지나치지 않았다고 읽는 견해가 있다.
    제어공(祭於公)은 군주의 조상제례를 신하가 거들고 제사가 끝나면 소, 양, 돼지 등의 제물(祭物)을 신하에게 분배하였는데, 이것을 얻어오면 그날 안으로 나누어 먹었다는 것이다. 자기집 제사에 썼던 제육(祭肉)은 3일 안에 다 먹어치우고, 식사할 때나 잠자리에 들 때에는 말을 하지 않는다고 하였다. 2,500년이 지난 오늘날 식사 중 무언(無言)의 관습이 바로 논어의 이 구절에서 나왔다. 개인적으로 식사자리는 먹는 것 그 이상의 의미가 담겨있다고 보고, 다양한 소통의 ‘문화’로 고양시켜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아마 당대인의 기준에서는 말에 기운을 빼앗기지 말고 감사한 마음으로 맛있게 먹는데 집중하라는 뜻이었을 것이다.
    맨 마지막 종구(終句)「雖疏食菜羹,瓜祭,必齊如也」에 대해서도 說이 갈린다. 채소국과 외(瓜)라도 제사지낸다고 하는 설과 과(瓜)를 필(必)字로 읽어 비록 거친 밥과 나물국을 먹더라도 반드시 제를 올리되, 제계하듯 경건히 한다고 읽는 설이 있다. 주자도 후자의 해석을 취한다. 여기서 말하는 제(祭)는 특수한 의미를 지닌다. 음식을 먹을 때 조금씩 그릇 밖으로 덜어놓고, 그 옛날 처음으로 음식이라는 이름으로 사람으로 하여금 먹게 해준 창안자에게 감사와 경의를 표하는 것이 제(祭)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