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eong-eun 70년대 맞아요! 80년대는 훨씬 더 발전했죠! 1988년도에 서울 올림픽을 치뤘잖아요! IOC세계 올림픽 위원회가 인프라없이 그 큰 행사를 승인할리없죠! 이런 영상 CG로 만들면 한국에선 유투버 못해먹어요! 인터넷만 쳐도 다 자료 화면이 있으니 가짜는 만들수가 없는거죠..
어렸을땐 몰랐는데 지금 보니 저때 청춘을 바쳐서 열심히 일해주신 그래서 지금의 대한민국을 만들어주신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 세대 들에게 너무 감사 드립니다. 당신들이 있기에 지금의 경제대국 10위 반도체강국 자동차강국 문화강국 대한민국이 됐습니다. 잊지않겠습니다 ^^♡
지금 75세 73세된 울 큰언니 작은언니 양장점에서 옷 맞춰입고 미장원에서 고데하고 유행하던 사각모양 시크한 핸드백 들고 맞춤구두 신고 활보하던 모습 막내동생인 어린 내 눈에 얼마나 이뻐 보였었는지.. 지금 생각해보면 원단도 고급지고 전체적으로 더 멋재이들이었음 지금은 무릎수술..ㅠ 세월이 무정하더라^^
그당시 미군부대에서 흘러 나오는 최신 패션 매거진 같은거 보고 양장점에서 똑같이 만들었죠. 68년이면 아직 티비가 보급되기 전이니, 최신 미국 헐리우드 영화 같은데서도 영감을 받고. 티비가 보급된후엔 AFKN 미군방송에 나오는 최신 드라마, 영화에서 보고 배운거고. 그러니 좀 있는 사람들의 패선은 별로 구미 국가의 최신유행에 뒤쳐지지 않았죠.
2:32 멀리 불에 탄 대연각호텔이 보이는 것을 보니 1968년이 아닙니다. 대연각호텔이 1971년 12월 25일에 일어났으니 빨라야 1972년입니다. 4:25 1970년에 서울의 전차운행이 마지막이었는데, 동대문에 전차가 다니는 걸 보면 1970년 이전 시절입니다. 6:45 1971년에 착공해서 1974년 8월 15일에 개통한 서울 지하철 1호선 공사 현장사무실이 멀리 보이네요. 시간에 따른 것이 아니라 이리저리 모은 사진들입니다.
'72년 미국으로 나깄다가 '80 년대 초 김포공항으로 귀국하는데 아직도 인상 깊은 장면은 사람들의 얼굴이 모두 너무 굳어있어 과장 들어 말씀 드리면 얼굴에 표정들이 없어 집사람과 이야기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나라 경제 사정 좋아지니 차츰 바뀌 는것을 해마나 귀국하면서 느끼었습니다. 생존해 계신 부모님 뵈러 매해 2번 한국 방문 하는데 갈때마다 발전 하는것이 보이고 사람들도 차츰 자신감에 차있음을 보는데 국내계신 본인들은 정반대로 생각 합니다. 언제 부터 인지 (? '90년도 중반)얼굴 표정도 많이 밝아졌습니다.
솔직하게 저 시대는 어떤 느낌인지 모르겠지만 정말 30년은 돌아가고싶다 그때는 이웃끼리 웃으면서 이야기하고 음식하나 더주고 챙겨주고 그때가 행복했는데 지금은 그것이 없어 시대가 좋아지고 발전하면 뭐해 그사이 벽이 있고 어둡고 무서운 그림자가 있는데 난 그때 그시절이 정말 그립다
From being one of the poorest country in the world after Korean War to the most innovative country in the world right now. All credit goes to Korean People and their hardwork. 화이팅!
My American military father remained in South Korea until 1961.Eight years after he fought in the Korean War from 1950-53.And the armistice was brokered in 1953.Here is what his assessment was of the Korean People and its leadership at the time.The leadership made it clear that its Government, its People and its Business sector must be equal partners in the rebuilding of a New South Korea. That there must not be any class or political divisions to hinder the rebuilding process. The leadership made it clear that the People of South Korea were the Nation's greatest resource. Therefore there must be the trust,confidence and necessary investment needed by those with the greatest resources to help those fellow Koreans with the least.My father noted that the South Korean government made it their mission to search for the best and brightest minds amongst the poorest of the Koreans They made it clear to their people that the process may take two generations to achieve the necessary results. But they must be patient and stay the course.He said the Koreans understood what needed to be done and took the cue from their leadership to garner up the will and the determination. One thing a Korean would always say is My Nation loves me.No individual is greater than the sum of its parts.But the individual is a very important part of a very long equation. My father predicted in the mid 1960s that the South Koreans would someday compete with the Japanese, Chinese and the US on the world stage.The Chinese?I asked at the time. Yep,China and India, he said.Their populations are growing. They cannot remain in the shadows forever. What about us Papa?What about the United States?.He thought for a few seconds. Well sad to say we will be on the decline, he said. Why?I asked incredulously. Simple.We are a nation that doesn't believe in all its people. That many are not worth the time and investment. That many are therefore expendable because recruiting the best minds from abroad through immigration is seen as the cheapest economic option.Our political and racial divisions are too deep.It is not sustainable. The Koreans and Japanese and someday the Chinese understand something that we may never understand. What is that papa?Papa? People are a Nation's greatest resource, he said.He said these words in 1966.
@@frederickgriffith7004 Honestly, until I left my country, Korea in 1990 I didn't believe our country could achieve such remarkable development, particularly we can compete Japan. In fact in some area, for instance electronic industry Korea is doing now better than Japan. We appreciate your father's contribution to our country's development when our country was in need of help from military defense but also economic developments. Our people will not forget Americans help during very difficult time during Korean War and even after. In 1968, I was junior at university and also attending ROTC. Afterward I served Korean Army as infantry officer, actually I was commissioned as interpret officer between Korean Army and US Army. Thanks again for your very positive comment on our country. I am now 76 years old living in Canada.
소생이 서울토박이라서 1968년의 모든 풍경이 눈물이 시리도록 정답고 그립습니다. 그때 내나이 22살이었고 1월21일에는 북괴무장공비 31명이 내려와 서울은 전쟁공포의 도가니앴죠. 2월초에 무장공비가 완전소탕되자 소생은 의분(?)을 느껴 그달 2월26일에 해병대에 지원입대 했고 결국은 월남전까지 다녀오고 국가유공자가 됐습니다. 그당시엔 국민들 모두가 잘살아보자고 뭉쳐있었는데~ 근데 요즘 쓰레기급 정치인들이 나라를 개판으로 만들어가고 있어 분통이 터집니다. 이젠 76세 노인이되어 힘이 없네요. 젊은이들이여 내가 이룩한 대한민국을 자랑스런 나라가 되도록 구해주소서~
그 나이가 되도록 아직도 정치의 요체를 깨닫지 못하셨군요... 당신이 뭉쳤다는 것은 말하자면 전체주의의 일종으로 수많은 하층민들은 그 아래에서 가난과 정의롭지 못한 세력에 시달렸습니다.. 아무리 요즘 정치인들이 썩었기로서니 1968년 당시의 정치인들보다는 더 깨끗할 겁니다... 죽기 전에는 정신 차리고 세상을 제대로 좀 이해하고 가셔요 ^^
서울 한복판 이자나요. 한국인들은 근본적으로 미적 감각이 뛰어나고 세련된 민족 입니다. 60년넘게 한국인으로 살아오면서 제가 느끼고 경험한 사실입니다. 나 자신도 그렇고요. 그리고 60년대 70년대 가난했던 시절에도 한국 사회에는 언제나 유행과 패션이 선도하고 있었어요. 50년대 제 언니들 고등학교 시절 사진 보면 그때도 깨끗하고 단정하고 세련되었어요. 한국인은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민족성을 갖고있어요. 후지고 싼티 나는거 , 저품질 못봐주죠. 그런 민족성도 발전과 번영에 한몫 했다고 봅니다.
@@rlaaudtjq 1. 인간은 희망을 먹고 사는 동물이라 했지요. 지금 희망이 있다고 생각하나요? 그래서 삶의 의욕이 솟아납니까? 2. 과거는 그저 좋은 추억이라고요? 5년 전 과거는 생각만 해도 소름... 3. 지금의 부가 로또가 당첨되어 생긴것은 아니지요. 고속도로의 건설, 자동차 산업, 요즘 잘 나가는 조선산업등등 당시에 인프라가 이미 구축되었지요. 인정할건 인정해야지요. 미얀마 같은때는 보리고개로 대표되는 그 직전의 이야기고 그 어려운 보리고개를 없애버린 때가 바로 그 때 부터지요. 4. 군사독재라 하는데 모든 언론을 장악하고 검찰과 법원을 좌지우지하고 국회를 장악하여 법안을 맘대로 만들고 고치는 지금보다 더 독재였나요? 당시는 5000만이 잘살려고 3만을 억압했지만 지금은 소수의 자기편만 잘먹으려고 대다수를 억압하고 있다고 생각 않습니까?
0:41 서울 시청앞 광장이 보이네요... 지금 Plaza Hotel 자리에 있던 식당 덕수장/6층 한국화약 본사건물 ( ROTC 제대하고 4층에서 근무, 물론 no elevator!), 북창동 골목의 유명했던 가화다방, 중국집들( 주로 수교자=물만두, 야끼 만두, 호떡), 등등 기억이 새롭습니다. 지금은 멀리 타향 미국에서... 80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저희 아버지도 살아계셨으면 75세 이신데 같은 시대를 같은 공간에서 계셨을거라 생각하니 뭔가 뭉클하고 ...저희 아버지도 연대 화공과 rotc 제대 하셨거든요..댓글 보다가 갑자기 아빠같기도 하고 아빠 생각도 나고 해서 글 남겼어요.. 미국에 계시니 한국이 더욱 더 그리울거 같아요 항상 건강하세요
참, 서울의 발전이라는게 빠르다고 느껴지는게 나 어렸을때인 70년대 초중반때와 60년대 후반이 겨우 몇년 차이임에도 많이 달라보인다는 겁니다. 한강 중지도 유원지같은 몇몇 비슷한 장소등도 있지만 서울역이나 종로등의 근방만해도 60년대와 70년대가 상당히 달라졌네요. 제가 1977년 대우빌딩(현 서울 스퀘어)이 막 들어섰을때 서울역앞에서 기차를 기다리면서 찍었던 사진에서의 사람들의 옷차림과 겨우 몇년전 60년대 후반의 옷차림과 차량등이 벌써 상당히 다르네요.
동네 언니 따라 갔더니 그곳엔 군인이 있었고 그언니가 누룽지 를 군인하테 주더라구요 우리들은 꼬꼬마 였구 푸른 초원 과 나무들이 듬성 듬성 있었던거 같아요 잠시후 그언니와 군인이 서로 포개져서 엎치락 뒤치락하며 입술은 붙어 있는거 같았어요 웃은 입은채고요 우리들은 싸우는줄 알고 언니 하고 소리지르고 풀을 뜯어 군인 한테 던진 생각이 납니다ㅡ
귀한 영상 사진 자료 감사합니다. 일부 70 년도 사진이 있다하나 그게 무슨 중요한 것은 아니지요. 아래 댓글을 읽어보다보니 Frederick 이린 미국인이 쓴 댓글에 그의 아버님이 미군으로 6.25 참전후 61 년도 까지 한국에서 근무했는데 그의 아버님이 이미 그당시 언젠가 한국이 일본 중국과 나란히 경쟁할 것이라고 예견했다합니다. 놀라운 통찰력입니다. 겨우 5.16 이 나던 해인데.. 저도 수출한국에 동참한 세대이긴한데 90 년도 초 까지만햐도 중국의 부상을 예견못했고 우리나라가 일본을 따라잡을 줄은 예상 못했습니다. 68 년에 저는 대학교 3 학년때이고 ROTC 3 학년 훈련을 받던 인생의 가장 낭만전인 시기였지요.. 좋은 추억을 회상할수있는 영상을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Thanks for posting precious photos.
이사진 끝부분 7:00 에서 명동의 청자다방이 보이네요! ... 저다방 정말로 유명했읍니다! 종로에 " 희다방! " "명동의 청자다방!" ... 젊은이들 남녀가 만날때 꼭 약속하는 장소였읍니다! ... 그리고 당시 대학교 당시 좀 멋을 알았다고 명동으로 잘~다니던 사람들이 가던곳이 바로 광교 옜조흥은행 골목에 있던 "로방!"다방이 있었고! 명동 중심부에 나중에 생긴 "몽셸통통!" 사보이 호텔앞에 "준!"커피숖도 당시 젊은이들의 명동의 만남의 장소였읍니다!
군대 입영할 때.. 저 영등포역 에서 친구들이 모여 환송식을 해 주었는데.. 역사 입구에.. 중학교 동창 녀석 여러명이 반바지 입고 여행 베낭메고 앉아 있었고..ㅠㅠ 딱 6개월만에 첫 휴가 받아서.. 영등포 역사 앞으로 기차가 막 들어 올때.. 나도 모르게 눈물이 주~르~륵.. 주~르~륵 흘러 내렸던 기억이 납니다.
전쟁으로 폐허에서 불과 15년 후라니...정말 급속도로 발전 했네요. 지금 70-90대 어르신분들이 열심히 사신 덕인것 같아요. 감사합니다.
60년대 아니거 80년대야
다 CG로 ㄱ,린거야
@@Jeong-eun
70년대 맞아요! 80년대는 훨씬 더 발전했죠! 1988년도에 서울 올림픽을 치뤘잖아요! IOC세계 올림픽 위원회가 인프라없이 그 큰 행사를 승인할리없죠! 이런 영상 CG로 만들면 한국에선 유투버 못해먹어요! 인터넷만 쳐도 다 자료 화면이 있으니 가짜는 만들수가 없는거죠..
어렸을땐 몰랐는데
지금 보니 저때 청춘을 바쳐서 열심히 일해주신 그래서 지금의 대한민국을 만들어주신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 세대 들에게 너무 감사 드립니다.
당신들이 있기에 지금의 경제대국 10위
반도체강국 자동차강국 문화강국 대한민국이 됐습니다.
잊지않겠습니다 ^^♡
6:21 6.25 끝나고 겨우 15년 밖에 안 지났던 시점에 도대체 어떻게 이렇게 순식간에 변할 수 있었는지가 너무도 신기함. 모두 다 박살나서 무너지고 잿더미하고 폐허 밖에 안 남았던 곳에 그렇게 짧은 시간 안에...
다 박살은 아니었을걸
그러게요.. 🧐
예리하시네여 👍
열심히들 재건한 결과죠, 미국을 비롯한 외국의 도움도 적지 않았고
저때의 건강한 청년들이 지금은 모두 8 90대 어르신들이겠네요. 이미 유명을 달리하신분들도 많을거고 인생참 무상합니다. 우리들도 언젠가는 다음세대들에게 이렇게 똑같이 기억되겠죠.....지금 바쁘게 건강하게 살아가는 우리모두 화아팅하자구요.
청년들이 70대지 어떻게 80 90대인가요??? 산수가 영..... 울 엄마 저때 33세 나 0세.
@@TheJinJang 대충 그렇다는 이야기지 굳이 따지실 이유가..저때 저희 아빠 22살 대학생 시절이었는데 지금 살아계시면 75세 이시겠네요 .. 저 당시 33살 이시면 지금 86세 이셔야 맞는데요
@@TheJinJang 글고 건강한 청년들을 30-40대라 생각하셨을수도 있는데 산수가 영... 은 좀~
10대를 청춘이라 부르기도 하니 60대도 있음.
@@TheJinJang 나저때 12살 오학년, 우리 엄빠34세, 나지금66, 울엄빠 88
윗분 계산 지대로하셨습니다 👍🤗
과거로 돌아가 저 거리를 한번 걸어보고 싶다. 한국 전쟁 일어나고 불과 20년 후인데 생각 외로 활기차고 깨끗하네.
더 자세히보면 16년도 안된 상황
1966년도에 빨간구두 아가씨가 유행했고 아침등교길에는 새벽종이 울렸네 가 각 가게마다 울려퍼지던 시절이죠 저때부터 활기차고 국민들이 열심히 일하기 시작한듯해요 ㅡ
@@yhlee0808 마자요 저도 일찍일어나 학교가전에 동네 이장님이 새벽종이 울려네 노래 틀어주시고 동네 학생들학교가지전에 잘사는동네만들기 위해 열심히 쓸고 닫고하 면서 학교다니 기역이 새롬새롬 하네요~~
15 년 후!!
식량난은 없었다고함
6:34 세상에.. 142번 신촌교통, 버스 안내양의 밝은 미소를 보시라. 비록 버스는 낡았고, 삶의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지만 안내 아가씨의 밝은 표정에서 그녀의 희망과 미래를 엿볼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지금은 손주, 손녀를 거느린 할머니가 되셨겠네요. 감사합니다.
당시는 저렇게 안내양이 2명 씩 있었죠.
탕탕~ 오라잇, 탕! 스톱.
사회 기강이 잡혀있었고,, 강력하고 유능한 리더십으로 국민을 이끌던.... 해서 믿을 수 있었던~!.
ㅎㅎ..상도동에서 아마..수색까지인가..왕복했던 버스였죠..참 많이도 탔던 기억이 납니다^^
60년도 영상이든
70년도 영상이든
귀한 영상 볼 수 있어서 감사합니다.
내 고향 영등포 그립네요 ㅠㅠ
고향이신가요 ? 저는 학교를 항상 영등포를 지나 다녔지요
그후에는 영등포 나이트도 갔었고요
오히려 낙후된 모습에 묘했던적이
서울토박이분은 처음 만나뵙네요. 다들 지방 객지에서 올라온 분들이 많으셔서 영등포가 고향이라니 신선합니다
저두영등포가 고향입니다
지금은 60대지만 몇년전가보니
공원자리도 제가다녔던
영중국민학교도 아직있더군요
눈물나오게 반가왔어요
그시절...참아련히그립네요
68년 내나이 26세 지금 80세 ㅎ ㅎ 세월 참 빨리 지나갔군 참 살기 힘들었던 지난 세월 그래도 그땐 인심도 좋았고 예의도 바른 시절이었지요
건강하세요
저때 사진 보면 젊은 아가씨들이 이제 할머니 젊고 예쁜 얼굴도 있던데 할머니가 되었다니. 타이머신
아무리 60년대라고 해도 서울의 도심지역은 사람들도 세련되고 멋있네요.
저 남대문은 지금의 남대문보다 더 고풍스럽고 우아해 보입니다.
지금의 숭례문은 방화로 다시 복권되어 예전의 그 멋과 맛이 없는게 아쉽네요ㅜㅜ
그때 부산은 아주멋쟁이의 도시였습니다 서울와 보니 서울은 생각보다 약간 촌스러웠지만 바쁘게 사는듯했고 그래도 지적이고 고상한 멋이 있었고 바람이 안불어 얼굴피부도 고왔습니다 지금와서 봐도 서울사람은 사치하지않고 검소하며 열심히 사는 대한민국의 국민성 그대로 입니다.
@@자유시간-w9o 그때의 서울은 농촌에서
살기 힘든 분들이 서울살이 하면서
그리 니끼어을 검니다
서울 살이도 농촌살이도 힘들어던
국민들이조
북권
내가 기억하는 70년대와 크게 다르지 않네. 실제 70년대 사진도 섞여 있는 것 같고. 추억 돋는다.
배경음악이 좋아요 주의 친절한 팔에 안기세 ㅡ경음악 매미소리도 좋아요
I love these old pictures of Seoul!
지금은 돌아가셨지만 엄마의 20대때가 저랬구나.....왜 눈물나고 이럼ㅠㅠ
지금 75세 73세된 울 큰언니 작은언니
양장점에서 옷 맞춰입고 미장원에서 고데하고 유행하던 사각모양 시크한 핸드백 들고 맞춤구두 신고 활보하던 모습 막내동생인 어린 내 눈에 얼마나 이뻐 보였었는지..
지금 생각해보면 원단도 고급지고 전체적으로 더 멋재이들이었음
지금은 무릎수술..ㅠ
세월이 무정하더라^^
세월을 이길수 있는것은
세월뿐인것을
저당시 패션이 그렇게 촌시렵지 않네요
ㅈㄴ촌스러운데
한국인은 먹는 것과 입는 것에는 늘 진심..
지금 북한보는 느낌이남.
그당시 미군부대에서 흘러 나오는 최신 패션 매거진 같은거 보고 양장점에서 똑같이 만들었죠.
68년이면 아직 티비가 보급되기 전이니, 최신 미국 헐리우드 영화 같은데서도 영감을 받고.
티비가 보급된후엔 AFKN 미군방송에 나오는 최신 드라마, 영화에서 보고 배운거고.
그러니 좀 있는 사람들의 패선은 별로 구미 국가의 최신유행에 뒤쳐지지 않았죠.
대학 입학한 1968년
그때 여름
서울역에서 기차타구
시외로 다니던때
그시절이 많이 그립네요
그럼 지금 70대 중반이세요?
저는 그해 68 년도에
대학 3 학년때입니다.
세월이 너무 빨리 지나갔네요..
마음은 아직 청춘인데
70 대 중반이라니...
1968년 3년2개월 만기 군전역후 신났었던 시절 예비군 창설맴버로ㅡ.지금은 70대 후반 디지털이 좀 불편한 아나로그 세대가 되버림.
옛날 여자 친구와 이름이 같아서
놀랬는데 그 친구는 70 년에 입학해서 74 젼에 졸업했으니..
곧 땅속갈일만 남아 인생이 무상..
어린 시절 추억이 나네. 그때로 돌아가고 싶어지네.
귀한영상입니다.옛영등포역.파고다공원.너무반갑네요.추억묻은사진.감사합니다
자료 공유 고맙습니다. 생각 보다 지금과 크게 다르지는 않네요.
물론 변한 것도 있지만 변하지 않은 많은 것들이 보입니다
2:32 멀리 불에 탄 대연각호텔이 보이는 것을 보니 1968년이 아닙니다.
대연각호텔이 1971년 12월 25일에 일어났으니 빨라야 1972년입니다.
4:25 1970년에 서울의 전차운행이 마지막이었는데, 동대문에 전차가 다니는 걸 보면 1970년 이전 시절입니다.
6:45 1971년에 착공해서 1974년 8월 15일에 개통한 서울 지하철 1호선 공사 현장사무실이 멀리 보이네요.
시간에 따른 것이 아니라 이리저리 모은 사진들입니다.
서울 지하철 개통이 겨우 74년이었군요. 부산 1호선이 86년이니 그래도 서울보다 엄청나게 늦은건 아니었네
희망있는 표정이 너무 좋다 63빌딩 생기고 한강 다리 생기고 아파트 생기고 항상 발전 해 가는데 표정이 밝을수밖에
63빌딩이 준공한 건 거의 1980년 쯤일걸요.
아마 31빌딩과 혼동하셨을 듯
63빌딩은 85년에 완공되었고 3.1빌딩이 1968년에 착공되어 1970년에 완공되었죠.
ㅋㅋ 예전에 협립양산, 우산이 최고 고급 브렌드. 첫 월급 받아서 엄마 사드렸더니 진짜 좋아하셨는데~
지금도 협립이 유명하긴 해요 ㅎㅎㅎㅎㅎㅎ 백화점 가면 다양하지만 그래도 협립이 입에 붙네요^^
@@수수꽃다리-p9b 그런가요? 관심이 없었는데 반갑네요.
맞아요 협립양산 ㅎㅎㅎ
협립우산은 70년대에 TV 광고도 했었습니다
저런 사진들속에서 어머니나 아버지모습을 본다면 너무 좋을꺼 같다
이미 이야기 주신 1970년대 사진 이외에도 몇몇 1970년대 사진들이 더 있습니다.
2:50 : 지프차 등장하는 거리풍경은 1974년 이후 1970년대 중반 모습...
6:30 : 신촌교통 142번 시내버스 나오는 부분은 1973년 여름...
옛추억을잘더듬어보았네요..좋은영사에감사~~~
0:28. 이 장면이 생생합니다. 밤이되면 네온사인이 번쩍번쩍해서 방학때 시골친척집 갔다가 개학전날 서울역에 밤에 내리면 "역시 서울이구나!" 하고 기뻤는데 그 사진을 보여주시니 고맙습니다!! 아이디알미싱 저 네온사인으로 한글을 배웠답니다. ㅎㅎㅎ
'60~'70년대, 째지게 가난한 시절이었음에도 오가는 사람들의 표정이 대체로 밝고 좋네요.
그 시절은 희망이 있었죠.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그러게 요즘보다 훨씬좋네요
더불어 민주당이 없을때니까
한따까리하고 나오는중인가보네
'72년 미국으로 나깄다가 '80 년대 초 김포공항으로 귀국하는데 아직도 인상 깊은 장면은 사람들의 얼굴이 모두 너무 굳어있어 과장 들어 말씀 드리면 얼굴에 표정들이 없어 집사람과 이야기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나라 경제 사정 좋아지니 차츰 바뀌 는것을 해마나 귀국하면서 느끼었습니다.
생존해 계신 부모님 뵈러 매해 2번 한국 방문 하는데 갈때마다 발전 하는것이 보이고 사람들도 차츰 자신감에 차있음을 보는데 국내계신 본인들은 정반대로 생각 합니다. 언제 부터 인지 (? '90년도 중반)얼굴 표정도 많이 밝아졌습니다.
솔직하게 저 시대는 어떤 느낌인지 모르겠지만
정말 30년은 돌아가고싶다
그때는 이웃끼리 웃으면서 이야기하고
음식하나 더주고 챙겨주고
그때가 행복했는데
지금은 그것이 없어
시대가 좋아지고 발전하면 뭐해
그사이 벽이 있고 어둡고 무서운 그림자가 있는데
난 그때 그시절이 정말 그립다
그런 이웃과의 정은 이제 힘들고 동물키워서 정주고 사셈
시골이나 소도시는 좀 가능
님이 이웃간에 정만보고 느끼셔서 그러지 미디어가 덜발달되서 아마 저떄 범죄가 더심할껄요 치안도 안좋고..
@@ffinera990 시골인심이 더 야박하다는걸 아세요 도시사람들은 바삐움직이다보니 이웃끼리 모여 남 험담할여가없지만 시골사람들은 모였다하면 남 험담하기바쁘고 인심? 자기네들 먹다남긴음식 가져와 인심쓰는척 62년생을 살면서 시골사람들 지긋지긋합니다
매미 울음소리와물소리는 그때감성이다묻어있는듯
From being one of the poorest country in the world after Korean War to the most innovative country in the world right now. All credit goes to Korean People and their hardwork. 화이팅!
My American military father remained in South Korea until 1961.Eight years after he fought in the Korean War from 1950-53.And the armistice was brokered in 1953.Here is what his assessment was of the Korean People and its leadership at the time.The leadership made it clear that its Government, its People and its Business sector must be equal partners in the rebuilding of a New South Korea. That there must not be any class or political divisions to hinder the rebuilding process. The leadership made it clear that the People of South Korea were the Nation's greatest resource. Therefore there must be the trust,confidence and necessary investment needed by those with the greatest resources to help those fellow Koreans with the least.My father noted that the South Korean government made it their mission to search for the best and brightest minds amongst the poorest of the Koreans They made it clear to their people that the process may take two generations to achieve the necessary results. But they must be patient and stay the course.He said the Koreans understood what needed to be done and took the cue from their leadership to garner up the will and the determination. One thing a Korean would always say is My Nation loves me.No individual is greater than the sum of its parts.But the individual is a very important part of a very long equation. My father predicted in the mid 1960s that the South Koreans would someday compete with the Japanese, Chinese and the US on the world stage.The Chinese?I asked at the time. Yep,China and India, he said.Their populations are growing. They cannot remain in the shadows forever. What about us Papa?What about the United States?.He thought for a few seconds. Well sad to say we will be on the decline, he said. Why?I asked incredulously. Simple.We are a nation that doesn't believe in all its people. That many are not worth the time and investment. That many are therefore expendable because recruiting the best minds from abroad through immigration is seen as the cheapest economic option.Our political and racial divisions are too deep.It is not sustainable. The Koreans and Japanese and someday the Chinese understand something that we may never understand. What is that papa?Papa? People are a Nation's greatest resource, he said.He said these words in 1966.
@@frederickgriffith7004
Honestly, until I left my country, Korea in 1990 I didn't believe our country could achieve such remarkable development, particularly we can compete Japan. In fact in some area, for instance electronic industry Korea is doing now better than Japan.
We appreciate your father's contribution to our country's development when our country was in need of help from military defense but also economic developments.
Our people will not forget Americans help during very difficult time during Korean War and even after.
In 1968, I was junior at university and also attending ROTC. Afterward I served Korean Army as infantry officer, actually I was commissioned as interpret officer
between Korean Army and US Army.
Thanks again for your very positive comment on our country.
I am now 76 years old living in Canada.
💖아름다운삶🤗즐거운인생👍목심누리입니다 1968년대의 서울거리 영상을보면서....젊다기보다 어렸던 제모습이 함께 파노라마 지고 있었네요...그렇게 세월따라 오늘의 노년된 제가 어려지기도 했답니다 감사합니다 고운날 되세요......ㅎ
소생이 서울토박이라서 1968년의 모든 풍경이 눈물이 시리도록 정답고 그립습니다.
그때 내나이 22살이었고 1월21일에는 북괴무장공비 31명이 내려와 서울은 전쟁공포의 도가니앴죠.
2월초에 무장공비가 완전소탕되자 소생은 의분(?)을 느껴 그달 2월26일에 해병대에 지원입대 했고
결국은 월남전까지 다녀오고 국가유공자가 됐습니다. 그당시엔 국민들 모두가 잘살아보자고 뭉쳐있었는데~
근데 요즘 쓰레기급 정치인들이 나라를 개판으로 만들어가고 있어 분통이 터집니다.
이젠 76세 노인이되어 힘이 없네요. 젊은이들이여 내가 이룩한 대한민국을 자랑스런 나라가 되도록 구해주소서~
아마도 47년생, 돼지띠가 아니신가 싶습니다.
고생 많이 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그 나이가 되도록 아직도 정치의 요체를 깨닫지 못하셨군요...
당신이 뭉쳤다는 것은 말하자면 전체주의의 일종으로 수많은 하층민들은 그 아래에서 가난과 정의롭지 못한 세력에 시달렸습니다..
아무리 요즘 정치인들이 썩었기로서니 1968년 당시의 정치인들보다는 더 깨끗할 겁니다...
죽기 전에는 정신 차리고 세상을 제대로 좀 이해하고 가셔요 ^^
68년이면 제가 트럼펫들고 제 키보다 큰 알토색스폰메고 미군 클럽다니면서 연주하며 쨈바른 빵과 우유얻어마시고 살았던 때내요.팁으로 몇 센트씩받고.3,4살때내요. 용산도 가고 평택도 가고.오래됐지만 기억이 약간씩 남니다.
@@mirr660 저분들의 근신과 근면과 성실 없었음 이런 경제적 자리도 못올라왔음 죽기전에 제대로 세상과 인생 선배님들의 노고에 진정성을 깨닫고 죽기를 바란다! 정치는 시대에 맞게 정책으로 변하는거다,
고생하셨습니다 감사드립니다 저희 아버님 1사단 11기 십니다 지금은 소천 하셨습니다 필승!
50년도 더 지난 사진인데..큰 이질감이 없네요....이런 자료 너무 좋네요... 그 당시의 아련한 냄새가 나는거 같아..너무 좋습니다. 저때 저분들은 어떻게 지낼까요....
어렸을때 서울역앞에 아이디얼 미싱 드레스 미싱 네온사인을 보었던 기억이 또렸합니다🥴💬💭
전쟁후15 년만에 이렇게 변하다니 대단하다.
유럽이 동남아식민지약탈수탈 할때 우리는죽어라죽노동을한댓가지 ㅋㅋㅋㅋㅋ ㅠ 서양놈들조심해야한다는 옛어른들말이맞네ㅜ이제는동남아떠돌이를조심해야하나 ㅋㅋㅋ아휴 남의나라에관심끄고니네나라가서사시든가 별그지같은피라미들 짜중남
박정희 때문이지
박 갓카님이 계시기었에 후손들이
잘살고 있습니다!
단점이라면 일을 너무 많이 해부려서요 ㅋㅋㅋ
@@텐투 ㅜ
@@러블리-o3g 흠 쇄국적인 사고는 안좋음.
68년이면 고3때인데 컬러사진인것보니 아마 선교사님께서 찍으신 듯!
옛생각에 추억에 젖어드네요
여기서 님 연세 가 나오시네요 ^^
전쟁둥이시네요.
우리 어머니 60년대 초에도 컬러 찍으셨어요. 시골이나 소도시에 사신 듯요 ㅎ (당시에는 서울과 지방 차이가 컸다고 들었습니다)
저때 칼라사진 있었습니다.
제 사진 정리중인데.....
@@김영진-w6i
우리가 발전된 것이 아니고 문명품은 거의 일제였죠.
카메라는 다 일제
필름은 일제나 미제...
그리곤 식품등은 미군부대서 나온 미제 껌부터 커피 초코렛 버터등등.
공장이 없으니 우리가 만드는게 아니고 도로도 없으니 도,농 격차가 클 수 밖에요....
잘봤습니다. 60년대 후반이지만 뭔가 역동성이 느껴 집니다.
1:30 여자분은 요즘분이라고 생각해도 믿을정도로 세련되셨네요
그때는 다 양장점에서 맞추어서 입을때라 핏이예쁘죠
@@mijao2951 명동송옥양장점 저희엄마단골이었죠 ^^
그러나 지금쯤 70대 할 머니
2:17 도 요즘사람같음
@@mijao2951 양잠점에서 미국, 유럽, 일본 최신 패션 매거진들 미군부대에서 흘러나온거 에서 사진보고 똑같이 만들었죠.
3:10 종로2가 사거리에서 광화문쪽으로 오른쪽에, 유도를 배우러 갔었던 "YMCA"건물이 변한게 하나도 없이 그때나 지금이나 똑같이 서있네요. 갑자기 왜 눈물이,,,,,
좋은영상 고맙네요 저때 미니스커트 입고 충무로1가 직장다니던때가 엊그제 같은데 지금 칠십이 넘었네요 종로 명동 소공동 남산 서울역등..그립네요 그시절 가난하지만 정이있고 마음들은 너그러웠는데~ 물질적으로 풍족하지만 요즈음은 좀.....
태어나기 전에 서울 사진보니 감회가 새롭습니다.
저 서울역 뻐스정류장에서 친구와 혜여지지 못하고 책가방들고 무슨 이야기가 그리 많았던 열여덜살이였던
내가 먼 외국에 나와산지
33년 내나이 덧없이 71가 되여있네요.
그때가 그립네요....
그때의 친구가 그립네요.
뻐스x 버스o 열여덜x 열여덟o
@@몽키궁댕이 어르신한테 뭐가 그리 불편합니까 일흔이 넘으셨는데 잘 모르실수도 있지요
@@몽키궁댕이 꼭 한글 모르는 것들이 지적질이네 ... 이 사회 악 .
@@몽키궁댕이 본인 아빠도 그렇게 가르칠듯
@@몽키궁댕이 혜여, 되여에 산 지~ 띄어쓰기까지 지적 못 한다면 지적질 금지! 어르신 추억 감성에 똥물 튑니다.
옛날 서울 모습들 보니 신기하네요 나름의 멋이 느껴지는듯
우리엄마 뱃속에 제가 있었죠 혹시 우리동네가 어디인지 보이지도 않지만 계속 보게되네요 젊었던 엄마 보고싶어요
68년인데도 뭔가 생각보다 훨씬 괜찮아 보이네요 사람들 풍채들도 좋고
서울 한복판 이자나요. 한국인들은 근본적으로 미적 감각이 뛰어나고 세련된 민족 입니다. 60년넘게 한국인으로 살아오면서 제가 느끼고 경험한 사실입니다. 나 자신도 그렇고요. 그리고 60년대 70년대 가난했던 시절에도 한국 사회에는 언제나 유행과 패션이 선도하고 있었어요. 50년대 제 언니들 고등학교 시절 사진 보면 그때도 깨끗하고 단정하고 세련되었어요. 한국인은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민족성을 갖고있어요. 후지고 싼티 나는거 , 저품질 못봐주죠.
그런 민족성도 발전과 번영에 한몫 했다고 봅니다.
본인스스로 미적감각이 뛰어나다.. 웃고갑니다..^^
@@rheedele7198 그냥 웃거나 말거나 댓글은 달지 말지
@@cysvpa 글게요 ㅎㅎ
@@sandylee4528언니분들이 50년대 고등학교 시절을 보내셨으면 저희 할머니 뻘이신데 이렇게 미디어에서 잘 말하시는 거 보면 정말 대단하시네요 이런 분도 계셨구나라는 걸 처음 느끼고 갑니다
모두 열심했지요. 하루하루 생활이 좋아지는게 피부로 느낄 수 있을 때였으니 모두 희망차 있었고 하면 된다는 시대. 그런 시대를 한창때의 나이에 주역으로 살아온 세대들은 진정 행복한 세대였다고 자부합니다. 그 나라에서 놀던 때가 그립습니다.
과거는 그저 좋은 추억만 남는다는 말이 맞겠죠. 국민들은 군사 독재하에서 지금의 미얀마처런 찢어지게들 가난하게 살았을텐데
@@rlaaudtjq 1. 인간은 희망을 먹고 사는 동물이라 했지요. 지금 희망이 있다고 생각하나요? 그래서 삶의 의욕이 솟아납니까? 2. 과거는 그저 좋은 추억이라고요? 5년 전 과거는 생각만 해도 소름... 3. 지금의 부가 로또가 당첨되어 생긴것은 아니지요. 고속도로의 건설, 자동차 산업, 요즘 잘 나가는 조선산업등등 당시에 인프라가 이미 구축되었지요. 인정할건 인정해야지요. 미얀마 같은때는 보리고개로 대표되는 그 직전의 이야기고 그 어려운 보리고개를 없애버린 때가 바로 그 때 부터지요. 4. 군사독재라 하는데 모든 언론을 장악하고 검찰과 법원을 좌지우지하고 국회를 장악하여 법안을 맘대로 만들고 고치는 지금보다 더 독재였나요? 당시는 5000만이 잘살려고 3만을 억압했지만 지금은 소수의 자기편만 잘먹으려고 대다수를 억압하고 있다고 생각 않습니까?
@@rlaaudtjq 이렇게 잘살게 만들은 군사 독재라면 영원히 군사 독재의 그늘밑에서 놀고 싶다
@@자유시간-w9o 군사 정권이 발전에
걸림돌이라고 문민 정부였다면 벌전은
더 빨러쓸것이다 님의 군사 정권이
그리으면 미얀마로 가서 보면 일겠지
어떤가
@@rlaaudtjq 지금의 미얀마처럼 뭐? 그 찢어지게 가난한 군사독재의 희생자들이 지금 중산층 부유층이 되서 1인당 소득이 3만불을 훌쩍 넘었는데? 느그들 더불어민주당보다는 박정희 전두환 군사독재가 훨 낫다
저는 이제 고등학생이지만 세상에 있지도 않았던 이때가 왜 그립고 눈물이 날까요?
정말로? 뭘 알아야 그립거나 말거나 할텐데 눈물까지 난다고? 너 정상 아닌 것같다.
주접이네
지금 고삐리면 부모님도 저때 안계셨겠구만 ㅋㅋㅋㅋ 지금 급식들한테 68년도면 할머니 할아버지뻘 아닌가 ㅋㅋ주접도 진짜 ㅋㅋㅋ
저 시대 엎혀다니던 아기가 지천명의 나이가 되었네요. 부모님 등에 엎혔다가 손에 걸렸다가 하며 청량리역에 기차타러 가던 생각이 납니다.
미리내 ............기억이라면 최소6세 이상일텐데...그 어머님이 업고 다닐려면 대단한 체력이셨을듯...
70년대 사진이 있어서요. 대연각호텔화재 사건년도 출생이예요. 기어다니던 때부터 기억이 있어서... ^^;;;
대연각 빌딍이 1971년 12월25일에 에 화재가 났었고 몇년간을 그대로 방치하였으니 이 영상에는 1972년도 이후의 사진도 들어있음!
대연각화재때 종로가회동살아서 아버지랑걸어가서 구경하고온기억 ㅜㅜ그때가 10살이였네요
친구집에서 모여서들 "all night" 하고 뉴스본후에 근처에 가서 현장를 보았죠.
옛날 정겹고 멋지고 활기차네요~
0:41 서울 시청앞 광장이 보이네요... 지금 Plaza Hotel 자리에 있던 식당 덕수장/6층 한국화약 본사건물 ( ROTC 제대하고 4층에서 근무, 물론 no elevator!), 북창동 골목의 유명했던 가화다방, 중국집들( 주로 수교자=물만두, 야끼 만두, 호떡), 등등 기억이 새롭습니다. 지금은 멀리 타향 미국에서... 80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저희 아버지도 살아계셨으면 75세 이신데 같은 시대를 같은 공간에서 계셨을거라 생각하니 뭔가 뭉클하고 ...저희 아버지도 연대 화공과 rotc 제대 하셨거든요..댓글 보다가 갑자기 아빠같기도 하고 아빠 생각도 나고 해서 글 남겼어요.. 미국에 계시니 한국이 더욱 더 그리울거 같아요 항상 건강하세요
@@jhlee888 감사합니다. 매년 서울에 가서 형제, 친구들 만나보는 것이 낙이었는데, 2년전 10월 이후론 못가고 있네요. 하루 빨리 풀리기를 고대합니다.
@@TheGene1225 저도 하루빨리 한국 땅을 다시 밟으시길 ~~ 코로나 썩 물러가랏!!!^^ 기도할께요 🙏🏻
@@jhlee888 감사 감사합니다!
"가화다방" 들으니 반갑네요~^^
귀한영상
감사합니다.
초등시절인데
옛날이왜그리워질까요
영상 속에서, 어린 학생들보다 윗 사람들은 전쟁을 겪었던 사람들이었다는 게 새삼 신기하게 느껴짐..
남산타워는 1975년 준공인데 1970년대 사진 같으네요
1968년에는 남산에 아무것도 없었을걸요. 있었어도 어린이회관 정도
68년도에 남산에 송전탑이 있었어요 라디오 전파 보내는탑이요 74년에는 세번째 확장 시키며 남산타워로 만든 겁니다
지금은 저 회관이 현대적으로 바뀌었지만 저때는 어린이 회관이었대요 피아노 위로 걸어다니면 연주할수있는 피아노? 도 있었다 하는데....
1968년도 아님. 뒤에 대연각호텔화재가1971년12월25일밤 일어남.
그뒤 70년대ㅡ말까지 탄건물상태였음. 68년도에 택시 버스 저렇게 없었음. 서울태생으로 중심지에 살아서 기억함.
어떤사진은 72년 이후 사진도 섞여 있는듯 ^^: 그흘린 대연각호텔보니 72년으로 추정 71년 12월에 불에탔으니 ...
예전 시대를 보면 지금 시대를 이해도 해보고 앞으로 어떤시대가 예상될지도 그려지네요ㅎ
어려웠지만 이웃과 정을 나누며 살던 그때가 생각나네요.
그당시에는 정말 앞만보고 열심히 살았습니다.
옛날을 기억시켜 주어 감사합니다.
음악이 넘 좋아요~
기독교 찬양이네요
찬송가 입니다
아빠품에 안겨가던 아기는 지금 50대 중, 후반이 되어 있겠네요~~ 아련한 사진들 감사합니다^^
참, 서울의 발전이라는게 빠르다고 느껴지는게 나 어렸을때인 70년대 초중반때와 60년대 후반이 겨우 몇년 차이임에도 많이 달라보인다는 겁니다. 한강 중지도 유원지같은 몇몇 비슷한 장소등도 있지만 서울역이나 종로등의 근방만해도 60년대와 70년대가 상당히 달라졌네요. 제가 1977년 대우빌딩(현 서울 스퀘어)이 막 들어섰을때 서울역앞에서 기차를 기다리면서 찍었던 사진에서의 사람들의 옷차림과 겨우 몇년전 60년대 후반의 옷차림과 차량등이 벌써 상당히 다르네요.
이 사진 70년대라네요
매미소리가 너무 선명해서 내 집밖에서 나는줄 착각ㅋ
동네 언니 따라 갔더니 그곳엔 군인이 있었고
그언니가 누룽지 를 군인하테 주더라구요
우리들은 꼬꼬마 였구 푸른 초원 과
나무들이 듬성 듬성 있었던거 같아요
잠시후 그언니와 군인이 서로 포개져서
엎치락 뒤치락하며 입술은 붙어 있는거 같았어요 웃은 입은채고요
우리들은 싸우는줄 알고 언니 하고
소리지르고 풀을 뜯어 군인 한테 던진
생각이 납니다ㅡ
People dressed much more classier in the 60’s than in the 80’s in Seoul! Something about that period just oozes with style and fashion.
천진난만하게 엄마 아빠 품에서 아무 걱정없던 어린 시절이었네요. 지금은 모두 이세상 떠나시고 추억과 사진만 남아있네요. 주어진 인생시계 열심히 살아야겠죠.
잘봤습니다. 그때 퇴계로 2가에서 직장생활을 한 사람으로서 이영상 보는 내내 새로생긴 애인 만나기전 처럼
가슴이 막 쿵당쿵당 뛰내요. 감사합니다.
와 좋다.. 87년생이지만 저런 감성.. 저 시대의 낭만이 느껴진다 한번 돌아가서 느껴보고 싶네
아 초등학교때 서울 대공원 놀려가서 엄마 잊어버려 울고있을때 생각 나네요~~^^
3살때네요
귀한 영상 감사드려요
여기 화면에 나오는 인물들 중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지구상에서 소리도 없이 사라져 버렸을까...? 나 또한 언젠가 이런 사진속의 인물들처럼 어느 누군가에게 찍혀 또 스처지나가겠지...ㅠㅠ
서울 사랑해!🥰🥰🥰🥰🥰
From Serbia! Hanguk i love youuuuuuuuuuuuuuuuuu!
We love you too! ㅎㅎㅎㅎㅎ
참 조용하니 존네요 향수가 풍깁니다
옛시절 생각나요 어느덧 세월 흘러
70십 넣머 그러씁니다
저 청춘들이 이제 80~90대 노인분이 되셨네요 ㅜ.ㅜ
이미 대부분 고인이 되셧겟죠
청춘이라하면 10대 후반~30대까지?? 그럼 70대 초~80대 90대면 저때 37~8이 젤어릴때인데
정겹다. 그립다. 가슴 한쪽이 찡~~ 하다. 내가 태어나기 3년전인데도 어디서 많이 본듯한 모습이다.
68년도면 내나이 17살 때구먼 참 세월 빠르네요 감회가 새롭네
제가 태어난 해 여름 이네요.
저때로 갈수있다면 4살때 돌아가신 아버지얼굴을 보고싶네요.
귀한 영상 사진 자료 감사합니다.
일부 70 년도 사진이 있다하나
그게 무슨 중요한 것은 아니지요.
아래 댓글을 읽어보다보니
Frederick 이린 미국인이 쓴 댓글에
그의 아버님이 미군으로 6.25 참전후
61 년도 까지 한국에서 근무했는데
그의 아버님이 이미 그당시 언젠가 한국이 일본 중국과 나란히 경쟁할 것이라고 예견했다합니다.
놀라운 통찰력입니다.
겨우 5.16 이 나던 해인데..
저도 수출한국에 동참한 세대이긴한데
90 년도 초 까지만햐도 중국의 부상을 예견못했고 우리나라가 일본을 따라잡을 줄은 예상 못했습니다.
68 년에 저는 대학교 3 학년때이고
ROTC 3 학년 훈련을 받던 인생의
가장 낭만전인 시기였지요..
좋은 추억을 회상할수있는 영상을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Thanks for posting precious photos.
대학 초년 시절인데....
정말 지금보다 훨씬 정감이가는 돌아가고싶은 시절이다!
내가 초등 2학년때인데 종로,명동의 모습은 생각 나네요. 명동 조선 호텔 뒤에 경양식집에서 돈까스 처음으로 접했던 기억이 생생 하네요.
와 우리 할머니 젊었을 때 참 예쁘셨네요. 😁
이사진 끝부분 7:00 에서 명동의 청자다방이 보이네요! ... 저다방 정말로 유명했읍니다! 종로에 " 희다방! " "명동의 청자다방!" ... 젊은이들 남녀가 만날때 꼭 약속하는 장소였읍니다! ... 그리고 당시 대학교 당시 좀 멋을 알았다고 명동으로 잘~다니던 사람들이 가던곳이 바로 광교 옜조흥은행 골목에 있던 "로방!"다방이 있었고! 명동 중심부에 나중에 생긴 "몽셸통통!" 사보이 호텔앞에 "준!"커피숖도 당시 젊은이들의 명동의 만남의 장소였읍니다!
그중에서도 명동 청자다방이 최고였죠
시청앞 메이어 다방
그때 마신 커피의진한 향이 지금도 그립네요
@@user-hx6md3yu8j 초우도있었지요.
@gh . KIM 도배좀 그만해라
듣기좋은소리도 한두번이지
초등학교 시절인데 감회가 새롭네요.
대연각화재가 1971년인데 그 이후의 사진도 있네요
귀한자료네요
서울의 옛날모습들 잘 봤습니다
아름다운 시절 정말 좋았지 60년초반 태생인 나는 저시절을 기억한다
1968년도는 농경지가 한해가들어 농촌인구가 도시로 이농이 최고 였던 때 입니다.
각 노농 현장에 뛰어 들어 힘들게 살아가고 그래도 타향에서 다 나름 성공해 가정을 꾸리고 산업 엮꾼으로 나라에 기둥 엮할을 했었지요.
옛 추억을 불러오는 좋은 사진들입니다. 그런데 일부는 1968년의 사진이 아닌 것 같네요... 특히 남산타워, 남산외인아파트는 68년 후에 건설된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러게요. 불타버린 대연각 빌딩도 보이더군요.
귀한영상 감사합니다~~~
추억이 새록새록하네요^^
태어나보지 않은 시절의 서울거리에 대한 막연한 그리움이 있어, 고전영화를 꽤 보곤 하는데, 이 시절로 한 번 가보고 싶어요.
지금보단 확실히 좋왔어요, 빈부의 차도 별로 없고, 삶의 힘이 있었죠. 종북좌파 민노총 전교조 것들이 없거나 힘이 약하니
정부나 회사가 계획한것은 무조건 실천해내니 활기찿고 나라는 조용했죠.
군대 입영할 때.. 저 영등포역 에서 친구들이 모여 환송식을 해 주었는데..
역사 입구에.. 중학교 동창 녀석 여러명이 반바지 입고 여행 베낭메고 앉아 있었고..ㅠㅠ
딱 6개월만에 첫 휴가 받아서.. 영등포 역사 앞으로 기차가 막 들어 올때..
나도 모르게 눈물이 주~르~륵.. 주~르~륵 흘러 내렸던 기억이 납니다.
사람들의 표정이 밝아 보여서 좋다.이래서 자유가 좋은거다.지금 북한 거리의 사진과 비교해도 자유대한민국 50년전이 더 좋다.
모든게 북한과 비교냐? 못난인간!
그 때는 북한이 더 잘 살았단다.
@@villagecat5539 완존 대깨문이네!!
빨갱이 지옥으로 보내줘?
@@justicetruth7538
팩트를 말하는데 뭔빨갱이 ? ㅋㅋ
아무리 봐도 68년 사진은 극소수인데... 68년이면 전쟁이 끝나고 15년 후고, 경제개발 계획을 막 시작할 때입니다. 대부분의 사진들은 70년대 중반 정도로 보이네요.
전차 다니는거 보면 그때가 맞는거 같은데....
부금 알수있을까요? ^^ 매번 듯지만 추억을 되살리는 음악 같네요..
그리고 축구유튜브를 운영하고있는데..
혹여 축구쪽의 사진이나 추억사진 있을까요?...
시민들이 축구하는 모습이나 축구화신고있는 장면 등등
ㅠㅠ
살아본 적도 없는 시대인데 그리운 건 뭐죠. 패션 촌스러운 건 90년대가 최강인듯. 70년데 패션은 이쁨
배경음악 멋져요~^^
나의 부모님도 저때는 꿈과 희망이 넘치시던 청춘이셨겠구나.......
님의 말에 갑자기 부모님 생각나 눈물이 납니다
부모님 보고싶네요~~♡♡♡
1968년도 이때 참 살기 어려 웠어요 생각 하기도 싫습니다 하루 밥세끼 먹기도 어려 웠어요
@Khan Ali 아니죠~ 60년대말에 겨우 가난에서 벗어놨죠. 바로 전까지는 당시 신문사회면 단골기사가 연탄가스 중독사와 먹을게없어 쓰레기통에서 복어알 줏어 끓여먹고 일가족 식중독 얘기가 ... 물론 박통과 국민의 노력으로 벗어났죠
@@kyongjinpark1502 저 67년생인데요 고등학교 대구서 다녔는데 친구 두명이 연탄가스로 죽었어요 ㅠㅠㅠㅠㅠㅠㅠ
어디가요? 우린 어려도 안그랬는데.소년동아 소년중앙인가 번개에 전기나감 번개에 비쳐본 기억.엄마가 트랜스돌림 금방 들어왔지만. 연탄가스뉴스는 겨울엔 있었죠.그것도 71년 보일러.가스들어왔는데. 지금도 기억나는 방의 네모난 보일러 물빼던거.
@Khan Ali 아버지 58년생 이신데 어릴적 미군이 지원해주는 밀가루 먹고 크셨다고 합니다
솔직히 지금도 어려운 사람들은 고기 반찬 자주는 못먹고 살 듯 한데.. 저 때 매일 고기반찬을......
아 그리운 학창시절
고삼때 이야기네요
출생 4년전~영등포역,지역 기타~~ 본인
국민학교 시절과 비슷하게 보이네요.
나아가 먹을수로 지난온 추억이 왜 그리울까요~~?
영상 너무나 감사드립니다!
미혼남 72년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