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 CG기술을 마음껏 쓰며 1억3천만달러의 제작비를 들인 리들리 스콧판 나폴레옹보다 53년전에 인해전술로 생고생해서 찍은 제작비 3천만달러의 워털루가 전쟁영화로서 훨씬 스펙터클하고 뛰어납니다. 기병돌격 장면 하나만 봐도 DVD 값은 합니다. (리들리 스콧판에선 총사령관 나폴레옹이 직접 기병돌격을 2번이나 합니다. ㅋㅋㅋ 고증따위 개나 줬음) 제가 감독인데 53년전 영화보다 못했다는 소리 들었다면 죽고 싶겠지만 리들리 스콧은 그냥 나폴레옹 비하하고 싶어서 찍었으니 별로 신경 안 쓰겠지 싶네요.
진짜 나폴레옹이 기병돌격을 하는 부분에서는 저도 빵 터졌습니다. 원래 나폴레옹은 포병장교 출신이지 기마장교 출신이 아니니까요. 그리고 기마는 그냥 말 타고 칼을 휘두를 줄 안다고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 부분을 잘 보여주는 영화가 영화 경기병대의 돌격인데 거기서는 말을 타기 위해서 진짜 엄청 훈련을 많이 받아야된다는 것을 제대로 보여주니까 말입니다. 진짜로 허벅지 살이 문들어져서 피가 나올 정도로 타고 내리고 하는 훈련을 반복해야 하니까 말입니다.
이 워털루 영화가 본국인 프랑스가 아닌 적국이었던 러시아에서 제작된 영화 였었다는것이 의외 더군요 그러고 보니 러시아의 문학거장 톨스토이가 집필한 전쟁과 평화 말인데 이게 나폴레옹이 러시아에 원정 왔다가 어떻게 개고생을 하게 되었는지를 알수있는 작품 입디다. 이 전쟁과 평화도 영화 드라마로도 제작 되었는데 고려거란전쟁 임진왜란 이랑 비슷한 상황이었다는것이 세삼스럽더군요
(1) 구 소련(USSR)의 배우이자 명감독 (아들 도 유명감독)가 소련판 "전쟁과 평화"에 이어 그 막대한 물량(주로 병사역 엑스트라)를 과시..... (2) 나폴레옹의 키는 165(?)로 알려졌는데,....는 후덕한 177...당시 나이대가 말씀하신대로 비슷하죠....."워터프론트"와 "밤의 열기속으로"의 성격파 배우였는데, 이 작품이랑 다음해 "석양의 갱들"에서 깜놀변신. (3) 구글링하면, 국내개봉이 1974년인데, ABBA가 동명 타이틀로 유러비전 왕좌에 오름.....마찬가지로 Falco의 "Rock me Amadeus>가 히트칠때......의 "아마데우스"가 국내개봉했는데요,....워털루도 그렇고, 영화테마와는 무관하고, 당시는 외화수입 단가를 감당못해 3~4년 뒤에 극장개봉하는 바람에 생긴 해프닝이죠.
프로이센군을 막는다고 그루시 원수한테 3~4만이나 때줘버린게 나폴레옹의 최대 실수같아요 처음 프로이센군을 이겼을때 기병을 보내서 더 큰 타격을 주던가 한두개 여단이 아쉬울판에 갑자기 병력은 1/3이을 나눠버려서 나중에 근위대까지 전투에 투입해서 무너지니 저꼴이 난거죠. 워털루전투 당시 나폴레옹이 제정신은 아니였던거같음.
그루시가 블뤼허를 추격 성공해서 궤멸시켰다면 워털루는 나폴레옹이 뭔 일을 당해도 무조건 승리할 수밖에 없는 전투였습니다. 그래서 블뤼허를 끝장낼 수 있는 확실한 병력인 3만 이상을 떼어서 그루시 손에 쥐어준거고요...그루시가 융통성있게 추격이 좀 길어진다 싶으면 복귀했어야 하는데 하루종일 프로이센이랑 숨바꼭질해서 패인이 되고 말았죠... 애초에 복귀하지 않아도 된다고 못박았던건 나폴레옹이니까 제정신 아니었던건 맞는듯..다부 같은 유능한 원수도 파리에 남겨두고 오고...책임은 나폴레옹에게 있죠.
@rebornlee9602 그루쉬도 나폴레옹도 어쩔 수 없었습니다. 나폴레옹 입장에선 배신한 전적이 있어도 그나마 덜한 배신을 한 쓸만한 장군이기에 투입했고 그루쉬 입장에선 과거 배신한 전적이 있기에 개인적인 판단을 했다가 전후 숙청될 가능성이 높아 마음대로 회군을 못합니다. 그리고 블뤼허가 부대를 여러개 쪼개 계속 축차투입 한 것이 그루쉬가 빠르게 판단을 못하게 만든 원인입니다. 전술적으로 봤을때 각개격파되기에 축차추입은 악수중에 악수인 경우가 많은데 이는 커다란 모험입니다. 그렇기에 그루쉬가 설마 블뤼허가 패배해서 사기가 떨어진 군대를 재집결후 쪼개서 축차투입할거라 생각을 못한거죠. 영화에서도 묘사되듯 라에상트 농장을 프랑스군이 점령하고 나폴레옹이 전투에서 이겼다 판단하게 만든것도 블뤼허가 그루쉬를 속이기 위해 군대를 쪼개서 축차투입한 것이 원인이고요.
나폴레옹은 워털루가 자신에게 유리한 곳이라고 오판한다 웰링턴이 프랑스 군 전체를 내려다 볼 수 있는 고지대에 자리 잡고 3개 농장을 요새화 한 것을 봤음에도 나폴레옹이 워털루가 프랑스군에게 우세하다고 생각한 이유는 영국 군의 후방이 숲이었기 때문 (7:08) 훈련이 잘된 정규군은 패퇴한 뒤 특정 장소에 모여 재편성(Regroup) 하고 다시 싸우러 돌아오는데 시야와 속도가 크게 제한 되는 숲에선 재편성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대로 소멸됨) 하지만 웰링턴은 옛날 1814년에 비엔나로 가는 도중 워털루 지역을 지나면서 "여기서 싸우면 무조건 이기겠는데?" 라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웰링턴은 워털루를 지나면서 워털루의 숲이 다른 숲과는 다르게 덤불이 없어서 기병의 추격 걱정 없이 재편성을 쉽게 할 수 있고 언덕 위에 서면 내가 병력이 얼마나 있는지 숨길 수 있고 언덕에서 적절한 거리만큼 떨어진 튼튼하고 넓은 농장 3개가 적의 공격 병력을 차단할 것이고 여기다가 언덕 뒤에 수풀이 짙어서 보병을 매복시키기 쉬울 것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이런 워털루의 사기적인 지형에도 불구하고 국가주의(Nationalism)으로 무장한 프랑스의 근위대들은 훈련 시간이 영국군에 비해 훨씬 적었음에도 불구하고 영국군 요새를 부수고 언덕으로 전진한다 웰링턴도 이때 자신이 진 줄 알고 퇴각을 준비했고, 나폴레옹은 자기가 이긴 줄 알고 승전보를 파리로 보내라고 지시한다 그러나 앞서 말한 것처럼 언덕 수풀에는 영국의 척후병(=산개해서 싸우는 저격수)들이 숨어있었고 이들의 순차적 일제 사격에 걸어오던 프랑스 근위대가 20~30%가 한순간에 쓰러져버린다 게다가 추적을 위해 3만 명이나 보냈는데 블뤼허는 멀쩡히 프랑스 군의 측후방에서 나타났고 프랑스 추격군은 프로이센 유인 부대를 쫄랑쫄랑 따라다니다가 결국 전투에 참여하지 못한다
프랑스의 어느 유명한 작가가 쓴 나폴레옹이라는 소설을 읽은 적이 있었는데, 나폴레옹이 끝에 실패한 이유는 제대로 된 2인자가 없었던 게 가장 큰 이유가 아닐까 하더군요. 내정, 외교, 전쟁까지 모든 것 하나 그의 손에서 기초 부터 마무리까지 했었다고 합니다. 너무도 위대한 천재였기에 2인자가 생길 수 없었는지 키울 생각이 없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리 천재적인 인간이라도 혼자로서의 한계는 존재 한다고 생각합니다. (역사를 바꾸고 지속시킨 많은 영웅들 중에 제대로 된 2인자가 없었던 적은 없었다고 생각을 합니다.) 위에 소설은 워낙 방대한 양에 처음에는 자세한 역사책 인 줄 알았더랬죠. 영화에는 나오지 않았지만 나폴레옹이 비밀 경찰 수장으로 일을 시켰던 인물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뛰어난 인물이지만 능력을 다하지 않는 거 같은...왠지, 다른 국가에 한 다리 걸친 것 아닌 가 하는 끝없는 의심을 하게 만든 인물...그로 인해 해외 원정을 나갈 때 마다 쿠테타를 걱정 하던 여러 대목들이 그 어느 내용보다 새로워 충격 이었습니다. 전쟁 영화 매니아로서 몇 년에 한 번 적당한 취기가 오르면 저 위대한 스케일이 그리워 다시 보게 되는 영화... 수 많은 명작 중에 하나 임이 틀림없습니다!
독재자는 2인자를 항상 견재해야 하니........ 그것은 역사상으로도 증명된 사실입니다. 실제로도 2인자가 권력자에게 합법적으로 권력을 이양받은 경우는 전두환 노태우 경우와 북한의 김씨왕조 말고는 없다고 하니까 말입니다. 상관에 대한 절대적인 충성심과 의리가 없으면 절대로 그런 식의 권력이양은 어느나라든 불가능합니다.
15:21 중세에서 근대로 넘어간다는 표현은 좀 그런것 같습니다. 대개 중세와 근대의 경계는 종교개혁과 르네상스로 보는지라....사실 시민혁명과 산업혁명을 경계로 근대를 전근대와 후기 근대로 나눌수는 있겠죠 근대이후에도 봉건제의 유습이 진하게 남아 있어서 시민혁명이 일어난 것이니....항상 느끼지만 설명과 편집 너무나 명료하고 재미있었습니다😊
@@pkitop2528 절대왕정 이래 사회의 실무를 부르지와가 잡고있는 시대를 근대라고 정의 한다면 차라리 "중세에서 근대로 넘어가는 길목에서"보다는 "봉건의 잔재를 완전히 털어내는 길목에서"라는 표현이 더 적절 할것 같습니다. 그게 나폴레옹이라는 인물의 실제 의의이기도 하고..... 프랑스 혁명의 마무리인 나폴레옹 시대의 의미는 사회적 실무 뿐 아니라 경제력에서 나오는 계급적 권위까지 봉건 귀족으로 부터 부르지와로 이양되는 포인트에서 찾을수 있으니까요
몇몇 서양사학자들은 르네상스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보고 있죠. 자크 르 고프같은 아날학파 역사학자들은 중세사회로부터 산업혁명에 이르기까지 장기간의 '대중세'라는 기간 하에 있었고 그 안에서 특별한 역사적 단절 없이 연속적으로 이어졌다고 보고 있습니다. 실상 유럽사회에서 중세가 끝나고 단절이 이루어지게 된게 산업혁명을 통해 경제구조가 변화했기 때문이라고 보네염. 사실, 중세의 끝을 언제로 보는지는 학자마다 다르고 씨네모리님이 말한 중세와 근대의 경계를 나폴레옹시기라고 보는 것도 전혀 근거가 없진 않다는 말을 쓰고 싶네요.
제가 가장 좋아하는 전쟁영화 리뷰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만 조금 설명 덧 붙이고 싶은 부분이 몇 개 있어요. ?t=77 나폴레옹이 항복을 하지 않은건 러시아에서의 패전 이후 생겨난 새로운 전략적 목표인 마르몽의 스페인군단 합류를 앞두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마르몽 원수가 정치적 판단을 하고 연합군에 항복해버리죠. ?t=404 3분의 1이나 투입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프로이센과의 전투에서 승리하기는 했지만 블뤼허라는 변수 때문이죠. 과거 프로이센과의 전투만 생각했던 나폴레옹의 바람과 다르게 블뤼허는 전투 후 수습을 잘했고 프로이센군이 무질서하게 패주하지 않고 질서있게 재집결하는 바람에 계획과 다른 상황이 펼쳐져서 그렇습니다.
11:19 당시 영국 기병은 후퇴 안하고 닥돌하기로 유명했다고 하죠. 웰링턴은 영국기병대를 전력으로 계산하지도 않았다고(…) 13:29 정작 제1목표였던 우그몽은 전투 마지막까지 버텼고, 누군가 웰링턴에게 워털루전투에서 가장 큰 공을 세운 병사가 누구냐고 물어보니 우그몽의 문이 열려서 함락당할 위기에서 문을 닫은 병사를 꼽았죠.
나폴레옹이 전투 중 1시 정도에 전장에서 후방으로 실려가는 기록이 있는데, 이는 나폴레옹의 고혈압 및 위장병(1814년에 약먹고 뒤지려다 실패해서 생긴 합병증) 크리 맞아서 컨디션이 안 좋아서 패배에 일조했다는 역사학자들의 의견도 분분하죠. 뭐, 사실은 우측 후방에서 밀고 들어온 프러시아군의 돌격이 덕을 했지만. (개인적으로, 이 영화에서 '프랑스군이 La Victoire Est a nous' 빵빵대면서 전진하는 장면은 러시아에서 만든 톨스토이 소설 기반 영화보다 더 드라마틱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저 영화에서 유일하게 군복이 아닌 양복을 입고 우산까지 쓴 사람은 예비대 격으로 참전한 제5사단의 지휘관인 토마스 픽톤 장군인데 왜 군복차림이 아니냐면 나폴레옹이 하도 급하게 진격하니까 군복 등 자신의 개인 물품을 챙기지 못해서 결국 파티에 참석했을 때 입고 있던 연미복 차림으로 급하게 전쟁터에 뛰어들어서라고.......
이미 20여년간 많은 전투 속에서 유능한 휘하 원수들을 많이 잃었고 엘바 섬에서 복귀한 뒤에 살아남은 애들 중에서 기병 관련으로는 조아킴 뮈라가 나폴레옹 휘하 원수 중에서 정말 기병을 끝내주게 잘 다루기로 명성이 높았지만 얘는 한창 러시아 원정 이후 나폴레옹이 털리고 있을때 제대로 배신 때려버린 전적이 있어서 나중에 본인이 다시 나폴레옹 밑에서 싸우고싶다고 했지만 나폴레옹이 안받아줌
이번 영상을 통해 처음으로 알게 된 건데 어떻게 루이 18세가 황제자리에 있을 수 있던건지 설명해 주실 재야의 고수분들께 묻습니다. 프랑스 시민혁명으로 루이 16세가 죽었는데, 나폴레옹이야 쿠테타를 통해서 그 자리를 차지했다 쳐도 어떻게 왕실이 다시 복구 될 수 있었나요? 프랑스 시민혁명 이후 권력유지를 위해서 막 갖다 죽여버려서 시민혁명에 대한 반발심 때문인가요??
@@erich3376러시아 원정과 독일 전역에서 연이어 패퇴하고 수도 파리가 대불원정군에 의해 함락당했기 때문에 나폴레옹이건 프랑스 시민들이건 아무 힘도 쓸 수 없었습니다. 오히려 일부 프랑스 유력 인사들과 심지어 나폴레옹 휘하의 장군들마저 나폴레옹의 퇴위를 종용하고 그의 아들인 로마왕(나폴레옹 2세)의 승계권을 막는 동시에 부르봉 왕정 복고를 꾀했습니다. 오히려 부르봉 왕정 복고는 외부가 아닌 프랑스 원로원에 의해 이뤄졌습니다.
와... 중간중간 인물들 실제 초상화부터 전술 분석까지... 이건 밀덕이나 역사덕후 아니면 만들 수 없는 퀄리티... 씨네모리님 .. 당신은 대체... 이 영상 재생목록에 추가..!
최신 CG기술을 마음껏 쓰며 1억3천만달러의 제작비를 들인 리들리 스콧판 나폴레옹보다
53년전에 인해전술로 생고생해서 찍은 제작비 3천만달러의 워털루가
전쟁영화로서 훨씬 스펙터클하고 뛰어납니다. 기병돌격 장면 하나만 봐도 DVD 값은 합니다.
(리들리 스콧판에선 총사령관 나폴레옹이 직접 기병돌격을 2번이나 합니다. ㅋㅋㅋ 고증따위 개나 줬음)
제가 감독인데 53년전 영화보다 못했다는 소리 들었다면 죽고 싶겠지만
리들리 스콧은 그냥 나폴레옹 비하하고 싶어서 찍었으니 별로 신경 안 쓰겠지 싶네요.
영국놈이 찍은 나폴레옹 영화... 바로 걸렀습니다
80 넘게 먹어서 그런가 더 이상 예전에 그 리들리 스콧이 아님...
에일리언 프리퀄로 개판칠때부터 알아봤어야했는데...
맞습니다 영국놈이 망쳣죠 노장감독 그만찍어야함
@@qqq-hf6uiㅋㅋㅋㅋ
진짜 나폴레옹이 기병돌격을 하는 부분에서는
저도 빵 터졌습니다.
원래 나폴레옹은 포병장교 출신이지 기마장교 출신이 아니니까요.
그리고 기마는 그냥 말 타고 칼을 휘두를 줄 안다고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 부분을 잘 보여주는 영화가
영화 경기병대의 돌격인데
거기서는 말을 타기 위해서 진짜 엄청 훈련을 많이 받아야된다는 것을 제대로 보여주니까 말입니다.
진짜로 허벅지 살이 문들어져서 피가 나올 정도로 타고 내리고 하는 훈련을 반복해야 하니까 말입니다.
사정없이 녹아내리는 주식계좌
ㅋㅋㅋ
격하게 공감되서 미춰버리겠어요 ❤❤
도대체 저 수많은 병사들의 옷과 소품들을 어떻게 관리했고 실제 전쟁처럼 일사분란하게 엑스트라분들이 움직일수 있었을까요...
극한직업 다큐에서 사극영화 찍는분들의 고초를 보면서, 이 당시에는 기술력도 발전하지 않았을시기인데 정말 놀랍다는 말이 나올수 밖에 없습니다...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 극장판은 실제 군인이 출연했다고 하죠.
유렵 합작 영화인데 병사들은 소련 군인들이 맡았다고 합니다. 감독의 전작 전쟁과평화에서 쌓인 인맥과 노하우로 만든 영화죠. 소련이 영화산업은 진심이었던…
@@shuri125 사실 제 인건비 치르면서 영화로 돈 벌자고 저 지랄 하면 답 없을 것 같은데 소련에서 전쟁과 평화는 그렇다치고, 워털루에는 왜 군인들은 동원해줬는지 의문인... 외화벌이 했나?
@@성이름-w1m9v영국과의 국교수립때문임!...정치적 이유!
@@성이름-w1m9v저 당시 소련이 국내외적으로 어려워서 어떻게든 돌파를 위해서였습니다.
날씨가 춥습니다... 좋은 영상도 항상 감사하지만 독감 조심하시길 바랍니다.
오늘도 아침식사하면서 좋은 영상 감상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물상 완전정복. 추억돋네요. 항상 잘 보고 있습니다.
항상 고맙습니다 ❤❤
15:25 ㅋㅋㅋ 시대를 풍미한 인물에, 시대를 풍미한 영화.. 그리고 시대를 풍미한 센스쟁이 유튜버
TMI:
15:32 나폴레옹의 이각 모자는 지금 한국에 있죠~ㅎ
CG 없던 시절에 이 정도 규모의 전쟁영화 만들려면 정말로 전쟁을 해야했다는 말이 절로 나오는 영화군요.
이 영화를 미국 영국 구소련 이탈리아가 동반 제작했기에 이정도 물량동원이 가능했죠.
특히 세르게이 본다르추크 감독이 이영화 제작 몇년전 대규모 인원(실제 군대)를 투입해 전쟁과평화 라는 영화를 찍은 경험이 있었기에 더 맛깔나는 대규모씬이 가능했습니다
소련에서 나폴레옹 하고의 전투 영화화가 실제로 기네스에 등재됨... 최다인원 등장으로...
@@미르미르-y4g 그건 전쟁과 평화
같은 본다르추크 감독 작품이지만 기네스는 전쟁과 평화(75만명)입니다. 워털루는 15000명 동원으로 규모면에선 더 작습니다.
이영화 몇번 봤는데 자막이 그리 좋지 못해서 이해 안가는 부분도 있었는데 말끔히 설명해주시네요
2023년의 나폴레옹 영화보다 훨씬 잘 만들어진 영화라 생각합니다.
저게 기억에 미소공동제작이라 소련이 군 60만에 말까지 지원해준걸로 아는데 지금봐도 명작이네요
엑스트라는 다 합쳐서 소련군 2만명 정도가 찬조출연한 건 맞는데, 60만명이 동원 되었던 건 이거 전에 만들었던 전쟁과 평화
프랑스가 참여안한 프랑스 역사 영화 ㅋㅋㅋㅋㅋㅋㅋ
@@김규태-s9e 오 감사합니다
2023년 리들리스콧 영국감독이 망가트려버림 ㅋㅋ
@@its_high_noon 홍철없는 홍철팀 ㅋㅋㅋㅋ ㅋㅋㅋㅋ
승리는 우리의 것- 프랑스 군가가 울려퍼지며 근위대가 전진하는 장면이 참 백미죠
La victoire est a nous!
그랑다르메 개멋짐 ㅋㅋ
그랑드 아르메. 대육군
프랑스 근위대가 진격하는 소리만으로도 적들이 후퇴했자는 역사적사실이 있습니다
@@김미란-r5j 근위사단 고참병으로
구성된 최정예보병
스케일도 대단하지만 역사 고증도 대단했던 영화, 워털루에서 나폴레옹이 어이 없이 패한 이유가 순차적으로 납득된 영화였죠.
심지어 중간에 영국군 기병나올때 말들이 거의다 회색마(백마)인데 실제로도 스코틀랜드산 회색마를 탄 부대였다는 것
@@TemeraireRenown그래서 연대 이름이 스콧츠그레이였던 거군요
@@ekm9904 ㅇㅇ
예전이 훨신 정직하게잘찍었던듯 우리나라 사극도 그렇지만 요샌 역사 멋대로 각색함
@@TemeraireRenown 그 슬로우로 연출된 장면 우리나라 제약인가? CF에도 삽입된 명장면이죠~~ 하지만 프랑스 대육군의 창기병대한테 아작!!
리뷰 잘봤습니다.
역사적 사실을 추가하는건 너무 좋네요.😊😊
이 워털루 영화가 본국인 프랑스가 아닌 적국이었던 러시아에서 제작된 영화 였었다는것이 의외 더군요
그러고 보니 러시아의 문학거장
톨스토이가 집필한 전쟁과 평화 말인데 이게 나폴레옹이 러시아에 원정 왔다가 어떻게 개고생을
하게 되었는지를 알수있는 작품 입디다.
이 전쟁과 평화도 영화 드라마로도
제작 되었는데 고려거란전쟁 임진왜란 이랑 비슷한 상황이었다는것이 세삼스럽더군요
사실 나폴레옹 전쟁은
소련으로서도 뭐라고 하지 못하는 부분이고 (제1차 대조국전쟁)
거기에 진짜 물량공세가 뭔지를 영화로라도 보여주겠다는
소련의 자존심까지 겹쳤을테니........
언제 다루시나 했더니 드디어 다루시네요...리들리 스콧 때문에 더러워진 눈, 이걸로 정화하고 갑니다
이번에 나온건 최악인가요?
@@세자리오-f6o 보지 마세요...
나폴레옹이 엘바 섬을 탈출한 것도 나폴레옹 실각 이후 연합국 간 협상이 마음대로 안되니까 판엎으려고 일부러 탈출시킨 거라죠... 역시 역사 문제의 반 이상은 '이 나라'가......
역시나 혐성국, 해적국 클라쓰
깨알같은 주식계좌 에서... 빵터짐과 함께 눙물이... ~@@~
(1) 구 소련(USSR)의 배우이자 명감독 (아들 도 유명감독)가 소련판 "전쟁과 평화"에 이어 그 막대한 물량(주로 병사역 엑스트라)를 과시.....
(2) 나폴레옹의 키는 165(?)로 알려졌는데,....는 후덕한 177...당시 나이대가 말씀하신대로 비슷하죠....."워터프론트"와 "밤의 열기속으로"의 성격파 배우였는데,
이 작품이랑 다음해 "석양의 갱들"에서 깜놀변신. (3) 구글링하면, 국내개봉이 1974년인데, ABBA가 동명 타이틀로 유러비전 왕좌에 오름.....마찬가지로 Falco의 "Rock me Amadeus>가
히트칠때......의 "아마데우스"가 국내개봉했는데요,....워털루도 그렇고, 영화테마와는 무관하고, 당시는 외화수입 단가를 감당못해 3~4년 뒤에 극장개봉하는 바람에 생긴 해프닝이죠.
프로이센군을 막는다고 그루시 원수한테 3~4만이나 때줘버린게 나폴레옹의 최대 실수같아요 처음 프로이센군을 이겼을때 기병을 보내서 더 큰 타격을 주던가 한두개 여단이 아쉬울판에 갑자기 병력은 1/3이을 나눠버려서 나중에 근위대까지 전투에 투입해서 무너지니 저꼴이 난거죠. 워털루전투 당시 나폴레옹이 제정신은 아니였던거같음.
그루시가 블뤼허를 추격 성공해서 궤멸시켰다면 워털루는 나폴레옹이 뭔 일을 당해도 무조건 승리할 수밖에 없는 전투였습니다. 그래서 블뤼허를 끝장낼 수 있는 확실한 병력인 3만 이상을 떼어서 그루시 손에 쥐어준거고요...그루시가 융통성있게 추격이 좀 길어진다 싶으면 복귀했어야 하는데 하루종일 프로이센이랑 숨바꼭질해서 패인이 되고 말았죠... 애초에 복귀하지 않아도 된다고 못박았던건 나폴레옹이니까 제정신 아니었던건 맞는듯..다부 같은 유능한 원수도 파리에 남겨두고 오고...책임은 나폴레옹에게 있죠.
@@rebornlee9602 다부를 파리에 남긴 건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습니다. 나폴레옹이 파리를 비운 틈에 반대파가 쿠데타를 일으킬 수도 있으니, 가장 믿을만한 부하를 파리에 남겨둔 건 정석대로 한 겁니다.
그래도 군신은 군신임
@rebornlee9602 그루쉬도 나폴레옹도 어쩔 수 없었습니다.
나폴레옹 입장에선 배신한 전적이 있어도 그나마 덜한 배신을 한 쓸만한 장군이기에 투입했고
그루쉬 입장에선 과거 배신한 전적이 있기에 개인적인 판단을 했다가 전후 숙청될 가능성이 높아 마음대로 회군을 못합니다.
그리고 블뤼허가 부대를 여러개 쪼개 계속 축차투입 한 것이 그루쉬가 빠르게 판단을 못하게 만든 원인입니다.
전술적으로 봤을때 각개격파되기에 축차추입은 악수중에 악수인 경우가 많은데 이는 커다란 모험입니다.
그렇기에 그루쉬가 설마 블뤼허가 패배해서 사기가 떨어진 군대를 재집결후 쪼개서 축차투입할거라 생각을 못한거죠.
영화에서도 묘사되듯 라에상트 농장을 프랑스군이 점령하고 나폴레옹이 전투에서 이겼다 판단하게 만든것도 블뤼허가 그루쉬를 속이기 위해 군대를 쪼개서 축차투입한 것이 원인이고요.
@@rebornlee9602그루쉬 찾아서 복귀시키라고 술트에게 명령했는데, 술트가 전령 딸랑 하나 보냈음.
베르티에였다면 10명은 넘게 보냈을거라고 나중에 탄식함. 베르티에는 워털루 전투 2주전에 의문사했음.
1:05 이 부분 약간 히틀러의 몰락 명장면이 생각나네요 ㅎㅎ
오 저도 딱 그 생각 들었는데
히틀러가 만약 이겼다면 진짜 네플레옹급으로 역사에 남을뻔 했다는 말이 생각나네요
나폴레옹의 유배를 보면 나폴레옹이 두려웠던거죠.
세인트 헬레나섬은 가장 가까운 대륙이 앙공라로 2800km나 떨어졌으니까요!
구독자수 9.99만명 ㄷㄷㄷㄷㄷㄷㄷ 실버버튼 미리 축하드려요
와-오! 무비도치에서 리뷰보고 최근 프랑스혁명 시리즈 리뷰해서 올리실까 생각했는되 진짜로 올리셨군요!
이게 소련감독에 소련엑스트라가 대거 참여했죠. 프로이센 사령관 배우가 소련 스타입니다. 아마 흑백시절 소련 2대전물 보신분이면 아실듯. 실지로 감독의 페르소나구요
영상에 빠졌는데 방진에서 뛰쳐나가는 영국병사도 잘 나가던 소련배우죠. 모종의 일로 망명하지만요
세인트헬레나 시절 나폴레옹을 다룬 영화 리뷰도 나중에 부탁드립니다.
이 대작을 드디어 리뷰하셨군요
최근개봉한 나폴레옹보다 더 명작이네
비교하는 게 미안한 수준으로 워털루가 훨씬 훌륭합니다.
내가 꿈꿔왔던 나폴레옹 영화가 바로 이런거였는데....
모리님~ 10만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 근데 다음영상은 얼마나 대단한걸 준비하시는걸까요? 기다려집니다~ 😂😂😂
사운드 오브 뮤직의 대령님이 전역 전에 이 전투에 장군으로 참여하셨었군요.
나폴레옹은 워털루가 자신에게 유리한 곳이라고 오판한다
웰링턴이 프랑스 군 전체를 내려다 볼 수 있는 고지대에 자리 잡고 3개 농장을 요새화 한 것을 봤음에도
나폴레옹이 워털루가 프랑스군에게 우세하다고 생각한 이유는
영국 군의 후방이 숲이었기 때문 (7:08)
훈련이 잘된 정규군은 패퇴한 뒤 특정 장소에 모여 재편성(Regroup) 하고 다시 싸우러 돌아오는데
시야와 속도가 크게 제한 되는 숲에선 재편성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대로 소멸됨)
하지만 웰링턴은 옛날 1814년에 비엔나로 가는 도중 워털루 지역을 지나면서
"여기서 싸우면 무조건 이기겠는데?" 라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웰링턴은 워털루를 지나면서
워털루의 숲이 다른 숲과는 다르게 덤불이 없어서 기병의 추격 걱정 없이 재편성을 쉽게 할 수 있고
언덕 위에 서면 내가 병력이 얼마나 있는지 숨길 수 있고
언덕에서 적절한 거리만큼 떨어진 튼튼하고 넓은 농장 3개가 적의 공격 병력을 차단할 것이고
여기다가 언덕 뒤에 수풀이 짙어서 보병을 매복시키기 쉬울 것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이런 워털루의 사기적인 지형에도 불구하고 국가주의(Nationalism)으로 무장한 프랑스의 근위대들은
훈련 시간이 영국군에 비해 훨씬 적었음에도 불구하고 영국군 요새를 부수고 언덕으로 전진한다
웰링턴도 이때 자신이 진 줄 알고 퇴각을 준비했고, 나폴레옹은 자기가 이긴 줄 알고 승전보를 파리로 보내라고 지시한다
그러나 앞서 말한 것처럼 언덕 수풀에는 영국의 척후병(=산개해서 싸우는 저격수)들이 숨어있었고
이들의 순차적 일제 사격에 걸어오던 프랑스 근위대가 20~30%가 한순간에 쓰러져버린다
게다가 추적을 위해 3만 명이나 보냈는데 블뤼허는 멀쩡히 프랑스 군의 측후방에서 나타났고
프랑스 추격군은 프로이센 유인 부대를 쫄랑쫄랑 따라다니다가 결국 전투에 참여하지 못한다
일요일이 멈췄다....
오늘 씨네모리 옹.. 역대급 최고 재밌게 봤음. 맛깔난 리뷰 감사
4:20 그렇죠...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2024년 새해는 실버버튼으로
시작하겠네요 미리 경하 드립니다
그동안의 노력이 조금씩 결실을
맺으니 기쁩니다
이 영화는 비록 흥행은 망했지만 앞으로는 만들 수 없는 수 만명의 엑스트라로 연출한 전투장면만으로도 길이 남을 영화
5:47 웰링턴공작 그… 사운드오브뮤직의 남편 맞나요?
맞습니다. 크리스토퍼 플러머. 2021년에 돌아가셨죠.
주식계좌에 빵 터짐 개 공감~
중2 물상 완전정복 ㅋㅋ 간만에 웃었네 굿잡😅😅😅😅😅
이래서 정치든 사업이든 건강부터 챙겨야 한다는 교훈
와~ 영화소개해주면서 전술분석까지 해줘
진짜 농장주가 불쌍해지네요
씨네모리님 즐거운 크리스마스 되세요.
구독자 10만명 돌파를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ㅎㅎ
🎉10만 미리 축하드려요😊 메리 클스마스 앤 해피뉴이어~~
와 이게 진짜 스팩타클함이지 지금은 CG없으면 이런거 못찍는다
드디어 올라왔네요 워털루
프랑스의 어느 유명한 작가가 쓴 나폴레옹이라는 소설을 읽은 적이 있었는데, 나폴레옹이 끝에 실패한 이유는
제대로 된 2인자가 없었던 게 가장 큰 이유가 아닐까 하더군요.
내정, 외교, 전쟁까지 모든 것 하나 그의 손에서 기초 부터 마무리까지 했었다고 합니다. 너무도 위대한 천재였기에 2인자가 생길 수 없었는지
키울 생각이 없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리 천재적인 인간이라도 혼자로서의 한계는 존재 한다고 생각합니다.
(역사를 바꾸고 지속시킨 많은 영웅들 중에 제대로 된 2인자가 없었던 적은 없었다고 생각을 합니다.)
위에 소설은 워낙 방대한 양에 처음에는 자세한 역사책 인 줄 알았더랬죠. 영화에는 나오지 않았지만 나폴레옹이 비밀 경찰 수장으로 일을
시켰던 인물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뛰어난 인물이지만 능력을 다하지 않는 거 같은...왠지, 다른 국가에 한 다리 걸친 것 아닌 가 하는 끝없는
의심을 하게 만든 인물...그로 인해 해외 원정을 나갈 때 마다 쿠테타를 걱정 하던 여러 대목들이 그 어느 내용보다 새로워 충격 이었습니다.
전쟁 영화 매니아로서 몇 년에 한 번 적당한 취기가 오르면 저 위대한 스케일이 그리워 다시 보게 되는 영화... 수 많은 명작 중에 하나 임이
틀림없습니다!
독재자는 2인자를 항상 견재해야 하니........
그것은 역사상으로도 증명된 사실입니다.
실제로도
2인자가 권력자에게 합법적으로 권력을 이양받은 경우는
전두환 노태우 경우와
북한의 김씨왕조 말고는 없다고 하니까 말입니다.
상관에 대한 절대적인 충성심과 의리가 없으면
절대로 그런 식의 권력이양은
어느나라든 불가능합니다.
전쟁과 평화 리뷰도 부탁드립니다
대작 리뷔 너무 좋다. 앞으로도 기대합니다.
15:21 중세에서 근대로 넘어간다는 표현은 좀 그런것 같습니다. 대개 중세와 근대의 경계는 종교개혁과 르네상스로 보는지라....사실 시민혁명과 산업혁명을 경계로 근대를 전근대와 후기 근대로 나눌수는 있겠죠 근대이후에도 봉건제의 유습이 진하게 남아 있어서 시민혁명이 일어난 것이니....항상 느끼지만 설명과 편집 너무나 명료하고 재미있었습니다😊
확실한건 그간 중세 봉건제와의 경계가 뚜렷하지 않던 근세를 끝내버리고 근대라는 역사의 한 장은 열어낸거죠
개인의 능력으로 인류사를 완전히 뒤바꿔버린 마지막 인물이라고 볼수있을듯
@@pkitop2528 절대왕정 이래 사회의 실무를 부르지와가 잡고있는 시대를 근대라고 정의 한다면 차라리 "중세에서 근대로 넘어가는 길목에서"보다는 "봉건의 잔재를 완전히 털어내는 길목에서"라는 표현이 더 적절 할것 같습니다. 그게 나폴레옹이라는 인물의 실제 의의이기도 하고..... 프랑스 혁명의 마무리인 나폴레옹 시대의 의미는 사회적 실무 뿐 아니라 경제력에서 나오는 계급적 권위까지 봉건 귀족으로 부터 부르지와로 이양되는 포인트에서 찾을수 있으니까요
몇몇 서양사학자들은 르네상스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보고 있죠. 자크 르 고프같은 아날학파 역사학자들은 중세사회로부터 산업혁명에 이르기까지 장기간의 '대중세'라는 기간 하에 있었고 그 안에서 특별한 역사적 단절 없이 연속적으로 이어졌다고 보고 있습니다. 실상 유럽사회에서 중세가 끝나고 단절이 이루어지게 된게 산업혁명을 통해 경제구조가 변화했기 때문이라고 보네염. 사실, 중세의 끝을 언제로 보는지는 학자마다 다르고 씨네모리님이 말한 중세와 근대의 경계를 나폴레옹시기라고 보는 것도 전혀 근거가 없진 않다는 말을 쓰고 싶네요.
제가 가장 좋아하는 전쟁영화 리뷰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만 조금 설명 덧 붙이고 싶은 부분이 몇 개 있어요.
?t=77 나폴레옹이 항복을 하지 않은건 러시아에서의 패전 이후 생겨난 새로운 전략적 목표인 마르몽의 스페인군단 합류를 앞두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마르몽 원수가 정치적 판단을 하고 연합군에 항복해버리죠.
?t=404 3분의 1이나 투입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프로이센과의 전투에서 승리하기는 했지만 블뤼허라는 변수 때문이죠. 과거 프로이센과의 전투만 생각했던 나폴레옹의 바람과 다르게 블뤼허는 전투 후 수습을 잘했고 프로이센군이 무질서하게 패주하지 않고 질서있게 재집결하는 바람에 계획과 다른 상황이 펼쳐져서 그렇습니다.
나폴레옹이 모양이 많이 빠졌네요 전쟁 전투가 리더의 판단이 중요하다는 걸로 봐야하나? 그래도 이 영화 그 시대에 스케일 크게 잘 구현해놨네요 흥미진진하게 잘 봤어요 ㅎ
실제 당시 고증에 가까움... 병 앓고 아편 처방 받아 정신도 몽롱몽롱한 상태에서 옛 부하들도 많이 불참한 상태에서 전투 지휘를 맡았으니...
@@HDunicorns 옛 부하 중에서 "통역" 담당이 불참했던게 가장 뼈아픈 일이었다고 하죠.
@@HDunicorns솔직히 그런 몸둥아리 이끌고 예전만큼의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온갖 악재가 곂쳤는데도 블뤼허의 프로이센군이 오기 전까지 영국군을 털어버리고 있던 나폴레옹이 진짜 미친놈이긴함.....
@@pkitop2528폼은 일시적이지만 클래스는 영원하다 + 다굴엔 장사없다를 동시에 보여준 사람이죠
사회생활 만렙이라는 짤방의 그 영화군요 😂😂😂
15:23 와 추억돋네 ㅋㅋㅋㅋㅋ 물상 완전정복 😂
이 명작의 리뷰
감사합니다
세기의 전투
세기의 영화.
영화를 찍으랬더니 전쟁을 찍었네
와 샹동감있는 말솜씨 좋아요
멋진 영상 감사히 잘봤어영!
근데 프랑스가 이시기 대단한게 나폴레옹 밀렸는데도 불구 하고 여러번 이겨 냅니다.
다만 더는 물량 러쉬하는 반프랑스 동맹군을 막을 수도 없었고
프랑스 시민들도 징집을 피하기 위해 난리 ㅜ.
웰링턴 공작 폰 트랩 대령님이시네😊😊
선 좋아요 후감상 항상 재밌게 보고 있습나다~
진짜 사람 갈아 넣어서 만든 미친영화
저 수많은 인원들 입혀야 하고 먹여야 하고 제식훈련 시켜야하고 진짜 대단하다
5:20 오늘 나폴레옹의 맛을 보면 26일 아침에나 깨어날텐데ㅎㅎㅎ
캡틴큐에 이은 나폴레옹~!
나폴레옹은 새대가리인데 운이 여러번 좋아서일뿐🎉
국력이 딸려도 본인이 천재면 어느정도 커버가 된단걸 보여준 마지막 인물이자 동시에 국력이 안되면 결국 망한단걸 보여준 사람
저당시프랑스국력 넘사였는데 뭔솔
@@yttst7110 그 프랑스 국력 전유럽 넘어섰음? 뭐랑 비교해서 넘사라는거?
그래도 한방 붙을정도는 있었던거같은데.
1차대전처럼 총동원령을 내려서 싸우는정도가 아니라 10만단위로 싸우는거라.. 국력이 일정수준이상이기만 하면 대회전으로 싸울정도는 되는거아니겠음? 러시아마냥 개쓰레기면 모를까..
@@박민균-d1m저당시 프랑스가 도대체 유럽의 어느국가한테 국력에서 밀림?
프랑스가 혼자 너무 날뛰니까 나머지 국가가 연합해서 겨우 이긴건데 ㅋㅋㅋㅋㅋ
@@박민균-d1m당시 프랑스를 이길만한 나라가 없는데..??
11:19 당시 영국 기병은 후퇴 안하고 닥돌하기로 유명했다고 하죠. 웰링턴은 영국기병대를 전력으로 계산하지도 않았다고(…)
13:29 정작 제1목표였던 우그몽은 전투 마지막까지 버텼고, 누군가 웰링턴에게 워털루전투에서 가장 큰 공을 세운 병사가 누구냐고 물어보니 우그몽의 문이 열려서 함락당할 위기에서 문을 닫은 병사를 꼽았죠.
11:19 40년뒤에 예고편
그 이후로 기마계열 나락행
이전투는
독일의 쿠르스크 전투이죠
졌지만
이겼어도 생명줄을조금 늘리는정도였을거라는게
중론이죠 오스트리아 스왜덴 러시아 대군이
대기중이고 나폴레옹은
이미 영혼까지 갈아넣은상태였으니
영상 해설
짱~~
잘 봤습니다. 감사해요🧸🧦🎉☃🍰🦌🎀🎁🎅🧣🎄
'워털루' 영상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놀랍습니다!
후고몽, 라 예 상트 먹고 다 이긴 전투를...블뤼허 한 방에... 아무래도 아우스터리츠 전투 시절... 전성기 만큼의 세밀하고 동시 다발적이며 복합적인 전술 운용이 힘들었던 것 같네요...그나저나.. 이 영화를 도대체 몇 번을 봤는지.. ^^;;
Où est Grouchy???
아마 알만한 분들은 다 아시겠지만, 웰링턴 공작역의 배우는 " 사운드 어브 뮤직 "의 폰 트랩 대령역을 맡았던 크리스토퍼 플러머입니다. 아직 살아 계실 줄 알았는데 2021년에 타계하셨군요. ㅠㅠ 정말 잘생기고 멋지고 특유의 영국식 발음이 멋져보이던 배우였습니다.
나폴레옹 법전 만들고 프랑스 혁명을 유럽에 전파한것만으로도 이미 위인임
CG 없이 찍었다는게 믿어 지지 않아
나폴레옹이 전투 중 1시 정도에 전장에서 후방으로 실려가는 기록이 있는데, 이는 나폴레옹의 고혈압 및 위장병(1814년에 약먹고 뒤지려다 실패해서 생긴 합병증) 크리 맞아서 컨디션이 안 좋아서 패배에 일조했다는 역사학자들의 의견도 분분하죠. 뭐, 사실은 우측 후방에서 밀고 들어온 프러시아군의 돌격이 덕을 했지만. (개인적으로, 이 영화에서 '프랑스군이 La Victoire Est a nous' 빵빵대면서 전진하는 장면은 러시아에서 만든 톨스토이 소설 기반 영화보다 더 드라마틱한 것 같습니다.)
웰링턴 공작은 사운드 오브 뮤직의 폰트랩 대령으로 유명한 크리스토퍼 플러머가 맡았죠. 나이브스 아웃을 유작으로 돌아가신 명배우
13:18 주식 떡상 가즈아아아아 ㅠㅠ
그런데 저 영화에서 유일하게 군복이 아닌 양복을 입고 우산까지 쓴 사람은
예비대 격으로 참전한 제5사단의 지휘관인 토마스 픽톤 장군인데
왜 군복차림이 아니냐면
나폴레옹이 하도 급하게 진격하니까
군복 등 자신의 개인 물품을 챙기지 못해서
결국 파티에 참석했을 때 입고 있던 연미복 차림으로 급하게 전쟁터에 뛰어들어서라고.......
일요일은 씨네모리 늘 기다리고 있습니다ㅋ
줄루전쟁 영화도 있는데 그거는 리뷰 안 하실려나?
씨네모리님 혹시 금문의 변(禁門の変)에 대해 다룬 일본영화나 드라마가 있으면 리뷰해주세요.
15:25 이야아...이게 얼마만이냐...내가 쓰던..."십년간" 이었나...생각나네...
내가 나폴레옹이면 진짜 갑갑했겠다. 휘하 장군들이 예전같은 퍼포먼스를 보여주질 않네. 추격도 느려, 판단도 미스야 나폴레옹 혈압 올라 죽었겠다
이미 20여년간 많은 전투 속에서 유능한 휘하 원수들을 많이 잃었고
엘바 섬에서 복귀한 뒤에 살아남은 애들 중에서 기병 관련으로는 조아킴 뮈라가 나폴레옹 휘하 원수 중에서 정말 기병을 끝내주게 잘 다루기로 명성이 높았지만 얘는 한창 러시아 원정 이후 나폴레옹이 털리고 있을때 제대로 배신 때려버린 전적이 있어서 나중에 본인이 다시 나폴레옹 밑에서 싸우고싶다고 했지만 나폴레옹이 안받아줌
다 자기가 뽑은 인선이라서 자기탓이죠. 참모라고는 해본 적 없는 순수한 야전지휘관 술트를 참모장이 기용한 것 같이 능력있는 인물을 능력을 제대로 써먹지 못하는 곳에 배치했으니 저러고 있는 거…
형님 오늘 영상 없나요??
(수정) 3일 전에 공지 올리셨었네용 ㅋㅋㅋ 올해 고생 많으셨습니다. 덕분에 일요일 아침이 행복했어요 ㅎㅎ 2024년에도 잘 부탁드립니다 ㅎㅎㅎ
이렇게 좋은 채널이 구독자가 10만이 안되다니 말도 안 되용.
이번 영상을 통해 처음으로 알게 된 건데 어떻게 루이 18세가 황제자리에 있을 수 있던건지 설명해 주실 재야의 고수분들께 묻습니다.
프랑스 시민혁명으로 루이 16세가 죽었는데, 나폴레옹이야 쿠테타를 통해서 그 자리를 차지했다 쳐도 어떻게 왕실이 다시 복구 될 수 있었나요?
프랑스 시민혁명 이후 권력유지를 위해서 막 갖다 죽여버려서 시민혁명에 대한 반발심 때문인가요??
간단하게 바지사장이라고 생각하시면되요
대프랑스 동맹이 맺어질때부터 유럽 강대국끼리 미리 약속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걸 막기 위해 나폴레옹은 루이 16세의 아들을 납치해서 살해하기도 했지만 부르봉 왕조의 부활은 막을 수 없었죠.
@Kuaumidess @user-oq9lb6qh3j 아 바지사장이었군요. 그런데 유럽 강대국끼리 약속한 바지사장이라 하더라도 혁명정부라고 해야하나? 그쪽에서 순수히 받아들었나요?? 단 한번의 시위도 없이??
@@erich3376러시아 원정과 독일 전역에서 연이어 패퇴하고 수도 파리가 대불원정군에 의해 함락당했기 때문에 나폴레옹이건 프랑스 시민들이건 아무 힘도 쓸 수 없었습니다. 오히려 일부 프랑스 유력 인사들과 심지어 나폴레옹 휘하의 장군들마저 나폴레옹의 퇴위를 종용하고 그의 아들인 로마왕(나폴레옹 2세)의 승계권을 막는 동시에 부르봉 왕정 복고를 꾀했습니다. 오히려 부르봉 왕정 복고는 외부가 아닌 프랑스 원로원에 의해 이뤄졌습니다.
@@erich3376전투에 져서 패배했는데 조약대로 이행해야죠.
트롤과 트롤이 난무한 전장에서 더 큰 건 나폴레옹의 트롤들......
3분의 1은 그렇다고 쳐도 나폴레옹의 지시만 받던 개가 독단전행으로 기병을 날려 먹어서 ㅋㅋㅋㅋㅋ
13:18 울지마....
줄루전쟁 영화도 있는데 그건 리뷰 안 하실려나?
네이장군 등장부분에서 마샬=원수라는 그뜻 아닌가요??
정확히 본명은 미셸 네Michel Ney 입니다. 영상에선 아마 이 부분을 헷갈리거나 혼동한듯 하네요
취하면 이틀 뒤에 깬다는 바로 그 술!
걍 전쟁을 한 번 더 했다고 생각되는 수준의 스케일...ㅎㄷㄷ
이거 리뷰보고 나폴레옹 스콧형님꺼보다 빡쳤던 기억이 나네요 워털루가 최고입니다
세르게이 본다르추크감독이 만든영화인데 당시 소련군 12,000 명 ,카자크기병 2,000명을 동원했다.
먼나라이웃나라에서 첨본게 프랑스편이었지요.
여기서 보면 독일이 프로이센으로 불리던시기가 있는데 프러시안이라고 표기되기도 했습니다.
프러시아와 프로이센 어느게 맞나요? 어디서는 프로이센 어디서는 프러시아로 불리던데
프러시아는 영어식 표기, 프로이센은 독일식 표기인데, 둘 다 맞지만 독일이 본고장이라서 프로이센이라 부르는 게 맞다고 봅니다.
교과서나 다른책에서는 거의다 프로이센이라 할겁니다.먼나라이웃나라는 약간 고증오류가 있어서.
잘봤습니다 씨네모리님 다만 이번편의 백미장면 중 하나인 라베도예와 나폴레옹의 씬이 없는게 아쉽네요ㅠㅠ
"무비도치"의 "워털루"를 보세요.
대작입니다. CG가 판치는 요즘 세상에서도 결코 따라하기 힘든..배우들 연기며 전쟁씬은 정말 일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