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9월 7일에 방문한 곳입니다. 신혼집에 이 근처였는데 근처에 있는 산성이라 호기심에 갔던 기억이납니다. 입구간판에 김영희 강남 동태찜 간판이 함께 있어 이전했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했었지요^^ 다산 정약용도 이곳은 위례성으로 비정하고 온조와 비류의 이야기가 전설로 내려와서 호기심이 가득했었습니다. 2020년에 하남문화재단 축제운영팀이 저의 블로그 글에 포스팅도 해줬구요~
백제의 초기수도는 송파가 거의 확정이라고 봐도 되겠네요. 하남은 백제주민들이 살던 거주지가 되고요. 지금은 재개발들이 한창되고 있는 듯 합니다. 송파와 하남은 현대와 과거가 공존하는 아름다운 도시가 되길 바랄뿐이네요. 재개발과 유물 유적발견은 결코 쉽지 않은 관계일텐데 말이예요. 영상 감사합니다.
요즘 산성에 방문해서 성의 방어력을 따져보는게 취미인데, 한달전에 다녀온 산성이 나오니 좋네요. 이왕 산성에 가시는거 '캐슬어택' 처럼 산성의 군사적인 용도로서의 장단점에 대한 해설을 별도로 하시는건 어떠하신가요? 유투브에 그런 컨텐츠는 거의 없어서 개인적으로 아쉬웠었습니다. 사적돌님이 올리신 산성들 최대한 답사해보려고 합니다. 정양산성하고 명활성은 다녀왔네요. 좋은 정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제 생각엔 끝없이 계속되는 한강범람을 감당못해서 풍납,몽촌에 모여살던 주민들이 춘궁동쪽으로 거주지를 옮긴게 아닌가 싶습니다 백제는 수도권이니까 끝없이 치수를 했을텐데 신라나 고구려 입장에서는 단지 최전방에 어느정도 사람만 많은곳이기에 반복되는 범람에 포기하고 뒤로 좀 물려서 이주한게 아닌가 싶습니다 시가지는 재건되지 못하고 소규모 마을이나 군사유적만 나오는거보면 위에이유던 다른이유던 주민들이 흩어진것은 맞는듯합니다 그리고 춘궁동이 광주고읍이라는 이야기를 들은거 같네요
저는 개인적으로 춘궁동쪽 객산과 쥐봉의 토루도 그렇고 이쪽에 먼저 백제세력이 방어에 유리한 지형을 선택해서 자릴 잡은 후에 세력이 성장하고 나서 송파구에 도성을 만든것 같습니다. 백제 초기 말갈의 침입 기사가 자주 보이는데 이성산성과 객산과 남으로는 남한산성 북쪽사면으로 둘러싸인 이곳은 북쪽으로도 한강으로 막혀있어서 세력이 미약한 시절에도 지켜냈던것 같습니다.
오 흥미로운 추정이네요 본래 백제가 고구려에서 나와 북쪽에서 남쪽으로 남하 해왔음을 생각해보면 한강 이북 지역에 먼저 자리잡았을 가능성이 더 높기도 한 것 같아 보입니다 그러다 지금 송파구 일대의 백제 유적까지 확장 되었고 거기에서도 계속 위치가 여러 사정으로 인해 조금씩 조금씩 이동했으리라 생각합니다
와우 오늘은 백제의 기원전 역사까지 거슬러 다녀 왔습니다. 찬란하고 강성했던 백제의 역사가 하남시 주변에 잠들어 있음이 어떤 아쉬움과 허전함을 줍니다. 그래도 여러 곳에 존재하는 유적들을 통해서 어떻게 미래를 준비할 것인지에 대한 답이 어느 정도 그려집니다. 오늘도 감사합니다. 🧧🧧🧧🎁👍
위례성의 정확한 위치는 정확하지 않은데 보통은 서울이라고 인정하는 것이 기록에 의하면 비류와 온조가 소서노와 도착해서 지역을 둘러보는데 바다가 가까운 지역인 미추홀 지역이 보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또 다른기록에 의하면 소서노가 죽었을때 기이한 일이 일어났는데 이때 소서노가 자객들을 이끌고 온조를 죽이려고 위례성에 잠입했다고 했는데 이때 사망한걸로 보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비류하고 같이 살았던걸로 보여지는데 기록을 다 합쳐보면 미추홀과 멀지 않았고 산에 올라가면 미추홀이 보였던 지역 이라고 했으니 서울이라고 다들 확신하게 된거지요
저는 고향이 백제 부흥군 마지막 지역(전북)이 고향이고 하남에서 살다가 지금은 근처에서 전원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백제의 처음과 마지막에 관심이 많은 사람입니다 연구를 위해서 일본어와 일본 역사를 공부했습니다 백제를 깊이 알려면 일본도 잘 알아야 합니다 먼저 기록에 의하면 근초고왕이 371년 고구려 고국원왕을 전사시킨 대승을 거둔 후 한산으로 수도를 옮겼다라고 하는데 풍납토성에서 바로 옆에 있는 몽촌토성으로 옮겼다는 것은 말이 안되는 것 같습니다 신라 정방형구획을 가끔 언급하시는 것 같은 데 백제인이 일본에 세운 초기 나라현 아스까시를 보면 정방형 구획으로 신라만의 전유물은 아닌 것 같습니다 참고로 이성산성 안에 각진 돌기단을 보면 8각은 사방팔방 즉 지신 9각은 구천 즉 천신을 나타내는데 이와 똑같은 것이 백제인이 세운 일본 구마모토현 기꾸지성에도 있습니다 이성산과 같은 명칭이 나라현 지역에도 있습니다 동영상에 나오는 숭산도 고대국어는 받침이 없었기에 스라고 불리다 어느 순간 발음이 손으로 불리다가 나중에는 객산으로 불리어졌을 것이라고 백제 전문역사가이신 김영덕교수님이 설명하시더군요 제가 직접 가봤는데 해자위치나 삼국사기에 언급 된 백제 수도 위치 즉 동쪽에 높은 산이 있다(검단산)를 볼 때 객산앞이 수도 일 수도 있겠다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사적돌 예전에 인천에 살때~ 계양산이 라는곳을 자주 올랐내요. 근처에서는 가장 높다는 군부대가 있던곳이라 그런지 졸졸 시내에 가재도 살았던 그곳에 성벽같은 잔해가 무수 하더군요~ 골프장 짓는다는 소리를 듣고 어이가 없었는데 마침 반대 당이 시민운동 해서 무마 했지요... 지 생각으로는 골프장 사업자가 반대당에는 던을 찔러주지 않았나봅니다요...^^ 건강 합시다요. 그래야 ~ 전국을 다보는 호사를 누리죠~~~^^
역사학(문헌사료)과 고고학(유적,유물)을 아우르는 최고의 문화유산 전문 채널 입니다..애청하고 있습니다.응원합니다
좋은말씀 감사드립니다😌😄
친절한 설명 고맙습니다
곧 8만이네요. 덕분에 저도 같이 성장하고 있습니다. 사적돌이 100만 유튜버가 되는 그날을!!!
고퀄리티 영상 항상 감사드립니다.
오 100만 돌파할수 있도록 전국방방곡곡 열심히 다니겠습니다😄
2011년 9월 7일에 방문한 곳입니다. 신혼집에 이 근처였는데 근처에 있는 산성이라 호기심에 갔던 기억이납니다. 입구간판에 김영희 강남 동태찜 간판이 함께 있어 이전했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했었지요^^ 다산 정약용도 이곳은 위례성으로 비정하고 온조와 비류의 이야기가 전설로 내려와서 호기심이 가득했었습니다. 2020년에 하남문화재단 축제운영팀이 저의 블로그 글에 포스팅도 해줬구요~
오 하남의 문화유산 밀집도는 특기할만큼 밀도가 높지요, 설화나 구전도 그렇고, 결코 평범한곳은 아닌듯합니다😌
영상 보자마자 바로 구독했습니다. 내용이 아주 알차고 좋네요.
오 구독감사드립니다😄
드디어 하남지역에 다녀오셨군요 ~~ 좋아요부터 누르고 시청시작하겠습니다.
워낙 이견이 많고 또 강경하신 분들이 많아 조금 염려되기도합니다😄;
@@사적돌 그렇죠. 이성산성 관련 토론회 자료만 봐도 이성산성에 대한 다양한 의견을 가진 분들을 볼 수 있더군요. 이성산성에 대한 발굴과 연구가 좀 더 진행되어야 할 것 같기도 합니다. ;;;;
목소리가 매우 좋으십니다.♡
오 맘에 드신다니 다행입니다😄
선생님과 직접 답사한번 가보고싶네요 항상 감사합니다
10만즈음부터 분기별로 오지답사를 계획하고 있습니다. 일반적인 답사는 하시는분들이 많으니 저희는 아주 힘든곳!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와 이성산성 기말고사 끝나고 가려고 했는데 딱 나오네요. 예습하는 느낌으로 잘 시청하고 갑니다.
오 좋은성적 거두시길바랍니다😄
백제의 초기수도는 송파가 거의 확정이라고 봐도 되겠네요. 하남은 백제주민들이 살던 거주지가 되고요. 지금은 재개발들이 한창되고 있는 듯 합니다. 송파와 하남은 현대와 과거가 공존하는 아름다운 도시가 되길 바랄뿐이네요. 재개발과 유물 유적발견은 결코 쉽지 않은 관계일텐데 말이예요. 영상 감사합니다.
하남은 문화유산에대한 관심이 깊은 지자체이니 잘 정비해 주리라 기대합니다😄
이성산성 이정표를 본 적이 있었는데
하찮게 볼 유적이 아니군요
늘 잘 배우고 삽니다 ^^
백제 도읍이 아니더라도 몇몇 주목할만한 점들을 가지고 있지요😮
와~~~~삼국쟁탈의 주요 전투지 이성산성을 정말 흥미진진 잘 편집하셨습니다.................감동입니다......................다음편은 한강 건너 북편의 홍련봉 보루를 부탁드릴려 해요!!! 사적돌님 ^^
오 홍련봉 저도 기대됩니다😄 언제나 감사드립니다😌
가까운 이성산성을 자세히 답사해 주셔서 많은 공부가 되었습니다.
근처에 정말 바쁜 헬기부대가 있어서 드론 촬영이 쉽지 않았을 텐데 고생하셨습니다!
👍👍
오 부대가 있었군요😮 안그래도 허가받고 주말에 비행했지요,
좋은 영상 자료 감사합니다.
오 시청 감사드립니다😌
요즘 산성에 방문해서 성의 방어력을 따져보는게 취미인데, 한달전에 다녀온 산성이 나오니 좋네요.
이왕 산성에 가시는거 '캐슬어택' 처럼 산성의 군사적인 용도로서의 장단점에 대한 해설을 별도로 하시는건 어떠하신가요?
유투브에 그런 컨텐츠는 거의 없어서 개인적으로 아쉬웠었습니다.
사적돌님이 올리신 산성들 최대한 답사해보려고 합니다. 정양산성하고 명활성은 다녀왔네요. 좋은 정보 주셔서 감사합니다.
오 성곽의 기능과 지형적 요건에 대해서
전투용 성곽인 경우 좀더 비중을 두고있습니다,
아울러 더욱 오지의 성곽 많이 가져오겠습니다😄
열정이 대단하시네요.경비도 많이들텐데.풍낲토성이 경복궁이었다고 감히 장담함.가락동방이동춘궁동석촌동 하남미사리등은 서울 지역구.몽촌토성은 창경궁.석촌동 그 큰고분 이거 근초고왕능임 그 칠지도 주인공.상상의나래를 펴봤😅습니다
적자입니다😄;; 답사객 여러분들의 후원이 없으면 유지도 어렵지요😁
@@사적돌 후원계좌알려줘요.소액이나마 보급합니다
@@풍경-d8u 말씀만으로도 감사드립니다😌😄
신라의 다각형 제사터들이 참 흥미로운데, 언제 자세히 다뤄주실 수 있으면 감사하겠습니다.
추후 기회가 닿으면 종합편을 만들어보겠습니다😌
저도 이런 여행 했으면 좋겠네요 ㅋ
오 내일 날 좋을것 같습니다, 가까운곳부터 들려보심이 어떠할까요😄
@@사적돌 넵
아.. 그리고 경주 월성 성벽 위를 걷다보면 다듬어진듯한 돌들이 무너져서 약간 파묻힌체로 계속 있던데, 토성위에 돌이 있으니 궁금하더라구요. 찾아봐도 안나오구요. 혹시 토성위에 엄폐용도로 돌벽이 있었나 싶은데 혹시 아시나요? 물어볼때가 없어서 여쭤봅니다.
오 월성은 돌로도 쌓았습니다. 남쪽의 남천변만 자연지형을 다듬은 것이고 동북서벽은 돌도 쌓았습니다😌
@@사적돌 답변 너무 감사드립니다.
자주 들르는 곳입니다 하사창동의 천왕사 사역이 잘 정리되어 고달사지처럼 되었으면 하는 바램이 있습니다
수도권 대표 사찰터가 될수 있겠지요😄 부디 잘 정비되었음합니다😌
제 생각엔 끝없이 계속되는 한강범람을 감당못해서 풍납,몽촌에 모여살던 주민들이 춘궁동쪽으로 거주지를 옮긴게 아닌가 싶습니다 백제는 수도권이니까 끝없이 치수를 했을텐데 신라나 고구려 입장에서는 단지 최전방에 어느정도 사람만 많은곳이기에 반복되는 범람에 포기하고 뒤로 좀 물려서 이주한게 아닌가 싶습니다 시가지는 재건되지 못하고 소규모 마을이나 군사유적만 나오는거보면 위에이유던 다른이유던 주민들이 흩어진것은 맞는듯합니다 그리고 춘궁동이 광주고읍이라는 이야기를 들은거 같네요
후대의 유적은 춘궁동에서 많이 나오고 있지요😌
저는 개인적으로 춘궁동쪽 객산과 쥐봉의 토루도 그렇고 이쪽에 먼저 백제세력이 방어에 유리한 지형을 선택해서 자릴 잡은 후에 세력이 성장하고 나서 송파구에 도성을 만든것 같습니다. 백제 초기 말갈의 침입 기사가 자주 보이는데 이성산성과 객산과 남으로는 남한산성 북쪽사면으로 둘러싸인 이곳은 북쪽으로도 한강으로 막혀있어서 세력이 미약한 시절에도 지켜냈던것 같습니다.
오 흥미로운 추정이네요 본래 백제가 고구려에서 나와 북쪽에서 남쪽으로 남하 해왔음을 생각해보면 한강 이북 지역에 먼저 자리잡았을 가능성이 더 높기도 한 것 같아 보입니다 그러다 지금 송파구 일대의 백제 유적까지 확장 되었고 거기에서도 계속 위치가 여러 사정으로 인해 조금씩 조금씩 이동했으리라 생각합니다
역사 여행사를 만들면 참 좋을듯해요
오 그래볼까요?😄
🎉 감사합니다. 하남에 살았던 사람으로서 아직도 발굴될곳이 많다고 느껴지긴했습니다. 역설적으로 교산신도시 착공되면 더 많은 조사가 이뤄질것 같습니다.😅 송파강남의 전처를 밟지 않고 조화된모습으로 개발이 이뤄졌으면 좋겠습니다.
재개발 정도의 대규모 사업이 아니면 도심지 발굴에 들어갈 재원을 마련하기 어렵다는 한계가 있지요, 제도가 정비되어 중요유물 출토시 보존과 보상이 원활하게 이어질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개로왕의 무덤이 2곳이있죠 하나는 아차산성근처 그리고 웅진도읍 이후 문주왕이 만든 개로왕의 가묘 송산리 맨 위에 있죠
어려운 숙제네요🤔
와우
오늘은 백제의 기원전 역사까지
거슬러 다녀 왔습니다.
찬란하고 강성했던 백제의 역사가 하남시 주변에 잠들어 있음이 어떤 아쉬움과 허전함을 줍니다.
그래도 여러 곳에 존재하는 유적들을 통해서 어떻게 미래를 준비할 것인지에 대한 답이 어느 정도 그려집니다.
오늘도 감사합니다.
🧧🧧🧧🎁👍
백제역사는 아쉬움의 연속인듯합니다😌 시청 감사드립니다😄
오랜만에 이성산성을 보니 추억에 잠기네요. 신라산성인게 재밌죠.
오 사연이 있는곳이시군요😌
당시에 제대로 된 제방 배수 시설이 없고 기후도 현재와 별반 다르지 않아 홍수 피해가 심했을텐데, 백제는 강변 저지대에 수도를 둔 것도 저에겐 미스터리입니다. 현재에도 가끔씩 홍수 피해를 입는데.. 어떻게 매년 있는 홍수 피해를 막았을까요?
그래서 더 대단한듯 합니다. 1500년 넘은 판축토성이 남아있을수 있다는것이 경이롭네요😮
지금 문득 한국형 인디아나 존스라는 말이 떠올랐는데 어떤가요?
고고학자께 어울리는 이름이네요😄
지금도 개로왕이 472년에 북위에 보낸 국서는 참 명문입니다
여러의미에서 역사에 획을그었지요😌
@@사적돌 지금도 개로왕의 북위국서는 대단했죠 그 국서덕에 장수왕이 백제침공이 빨라진것일수동ㅅ
요즘 역사 유튜브마다 나타나서 대륙 백제라느니 대륙 신라라느니 고려는 중국에 있었다느니 댓글 다는 인간들 때문에 엄청 짜증났는데 여기는 그런 인간이 없어서 너무 좋네요
여기도 계십니다😄; 마음편히 둘러보세요😌
사실 하북위례성은 정약용의 아방강역고에서 처음 언급되죠
북한산 근처로 봤지요😮
한성, 한수 그리고 한산은 원래 백제의 역사무대였죠.
삼국사기가 한주를 고구려의 옛 영토로 우겨넣은 것은 왕씨고려의 고려계승론을 뒷받침하기 위한 것으로 보입니다.
발해를 발해말갈이라 칭한 것도 고려계승국이 두 개가 되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었을 겁니다.
큰 줄기가 필요했던 김부식의 방편이었나봅니다😌
위례성의 정확한 위치는 정확하지 않은데 보통은 서울이라고 인정하는 것이 기록에 의하면 비류와 온조가 소서노와 도착해서 지역을 둘러보는데 바다가 가까운 지역인 미추홀 지역이 보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또 다른기록에 의하면 소서노가 죽었을때 기이한 일이 일어났는데 이때 소서노가 자객들을 이끌고 온조를 죽이려고 위례성에 잠입했다고 했는데 이때 사망한걸로 보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비류하고 같이 살았던걸로 보여지는데 기록을 다 합쳐보면 미추홀과 멀지 않았고 산에 올라가면 미추홀이 보였던 지역 이라고 했으니 서울이라고 다들 확신하게 된거지요
오 자세한 말씀 감사드립니다😌
한강 에 韓자 안쓰고 한나라(漢)한자 쓰는게 신기해요 . 그것도 삼국시대 부터
나라이름으로 쓰기전부터 강의 이름으로 쓰였다고 들었네요, 그래서 가져온것이 아닐까 싶지요, 우리말로 크다라는 뜻도 있으니..🤔
전 이성산성설과 춘궁동 설은 안믿습니다 몽촌 풍납이 제일 유력하죠.
춘궁동설은 현재로서 발굴결과와 시대, 인근 유물산포지 모두 하남위례성을 설명하지 못하지요, 양적으로도 풍납이 워낙 압도해버리니 설사 백제 유물이 이성산성에서 어느정도 나온다 해도 뒤집기 어렵겠어요🤔
@@사적돌 이성산성은 6세기이전을 넘지못하고있죠
처가집 아파트 자리가 삼성토성이라니...그 아파트 재건축 준비중인데...흔적조차 사라지겠네요..
재건축 전에 조사하고 진행할겁니다. 뭔가 많이 나올듯싶네요😄;
@@사적돌 청담삼익이라고 이미 공사중이라...딱히 뭐가 나왔다는 소식이 없는데 오늘 저녁식사을 처가식구랑 하는데 물어봐야겠네요
저는 고향이 백제 부흥군 마지막 지역(전북)이 고향이고 하남에서 살다가 지금은 근처에서 전원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백제의 처음과 마지막에 관심이 많은 사람입니다
연구를 위해서 일본어와 일본 역사를 공부했습니다 백제를 깊이 알려면 일본도 잘 알아야
합니다 먼저 기록에 의하면 근초고왕이 371년 고구려 고국원왕을 전사시킨 대승을 거둔 후 한산으로 수도를 옮겼다라고 하는데 풍납토성에서 바로 옆에 있는 몽촌토성으로 옮겼다는 것은 말이 안되는 것 같습니다 신라 정방형구획을 가끔 언급하시는 것 같은 데 백제인이
일본에 세운 초기 나라현 아스까시를 보면 정방형 구획으로 신라만의 전유물은 아닌 것 같습니다 참고로 이성산성 안에 각진 돌기단을 보면 8각은 사방팔방 즉 지신 9각은 구천 즉
천신을 나타내는데 이와 똑같은 것이 백제인이 세운 일본 구마모토현 기꾸지성에도 있습니다 이성산과 같은 명칭이 나라현 지역에도 있습니다 동영상에 나오는 숭산도 고대국어는 받침이 없었기에 스라고 불리다 어느 순간 발음이 손으로 불리다가 나중에는 객산으로
불리어졌을 것이라고 백제 전문역사가이신 김영덕교수님이 설명하시더군요 제가 직접
가봤는데 해자위치나 삼국사기에 언급 된 백제 수도 위치 즉 동쪽에 높은 산이 있다(검단산)를 볼 때 객산앞이 수도 일 수도 있겠다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오 덧글 감사드립니다😌
지방정부는 이상한 건물 만들지말고 경치 좋은 유적지를 잘 정비해서 관광지로 개발했으면 좋겠네요..
지방자치단체가 할수 있는 거의 유일한 미래먹거리라고 보지요🤔
이병도가 풍납토성을 사성이라 한게 너무 아쉽습니다.. 삼성동토성이 사성
세기의 오류지요... 평지에 그렇게 엄청난 공력을 투입해 성을쌓았다는것은 상당히 중요한 성이다 라는 의미였는데😞 이미 개발이 되어버려서 되돌리는데 너무 많은 재화와 이해관계가 들어가고 있네요 정작 삼성동토성은 헐려버리고🤔
@@사적돌 1965년 서울대 고고미술 1회를 이끌던 고 김원룡 교수조차 풍납토성을 발굴했음애도 너무 쉽게 이병도 사성설을 지지한.. 그게 두고두고 김원룡 교수의 발목을
선생님 낙랑군은 평양일까요 요동 일까요 고견이듣고싶습니다
발굴된 유물 유구는 평양에서 많이 나왔지요😌
책보고 유튜버를 대표하는 삼국, 고려 대륙설도 잘 설명 영상도 만드심 좋겠음
시청 감사드립니다😌
잘
보존 하는것은
바라지도 않음~
뭉개버리지만 않는다면...
뭉개는 경우가 너무 흔하게 있어왔지요😞
@@사적돌
예전에 인천에 살때~
계양산이 라는곳을 자주 올랐내요.
근처에서는 가장 높다는
군부대가 있던곳이라 그런지
졸졸 시내에 가재도 살았던
그곳에 성벽같은
잔해가 무수 하더군요~
골프장 짓는다는 소리를 듣고
어이가 없었는데
마침 반대 당이 시민운동 해서
무마 했지요...
지 생각으로는
골프장 사업자가
반대당에는 던을 찔러주지 않았나봅니다요...^^
건강 합시다요.
그래야 ~
전국을 다보는 호사를 누리죠~~~^^
@@윤씨형님 오 선생님께서도 건강하세요😄
이성산성은 신라성입니다 6세기이후로 나타나고 춘궁동일대는 호족 왕규의 기반으로 보입니다
저도 신라성이라고 봅니다. 다각형건물지에서 이미..🤔
많은 증거가 풍납토성과 몽촌토성이 한성 백제 수도였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지만 아차산에 올라 송파구의 두 성을 바라보면 아직도 왜 저렇게 뻔히 보이는 지역들일까 하는 의심이 살짝 들기는 합니다.
정착 당시에 주변에 우호적인 다른 세력들이 더 있지 않았나 생각도 듭니다. 풍납토성정도의 공력이면 그냥 축성할수 있는 수준이 아니지요🤔
호족 왕규의 기반이 춘궁동, 하사창동으로 보이죠
이성산성의 폐성시기가 조금 빨라지는듯한데 관계가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사적돌 왕규의난 이후로 이성산성과 춘궁동이 버려진듯 싶습니다
하북위례성의 위치는 강북구 삼양동, 뚝섬, 성동구 일대로 보죠
육계토성이 주목을 좀 받았는데 연대가 안맞지요, 외려 풍납토성 연대가 내려가고 있어서🤔
@@사적돌 풍납토성은 기원전까지 내려가는결과가있죠
하남위례성, 한성은 현 풍납토성이 맞다고봅니다
지금 시점에서는 아닌것이 더 힘들게 되었지요😄
북성이 풍납 남성이 몽촌
생각보다 백제 국력이 강했을수 있겠지요😮
원삼국은 대체 뭐여? ㅋ ㅉㅉ
원삼국시대라해서 삼국시대 이전 특정시기를 통칭합니다😮
encykorea.aks.ac.kr/Article/E0040703
어이구야...
다 신라네 ㅋㅋ
한강에 백제는 없어 ㅋㅋ
한간에 백제가 있으면 안되는거야
역사스페셜에 나오는 다각형 건물좀 잘 알아보세요
시청 감사드립니다😌
하남위례,송파위례는 짜바리고 진짜 위례는 서울강북구 미아 일대인데 ㅠ 십제의 첫 수도
하북위례성이 강북이 확실해진다면 그것나름대로 문제네요, 찾을수가 없...😞
@@사적돌 아파트 밑에 깔려 있지 않을까요? 아마 알고도 묻어 버렸을텐데 20세기 시민의식이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