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어렸을때 저희도 밥 먹다 돌을 씹기도 했습니다만, 그 이후 너무도 당연히 돌 없는 밥 먹는게 너무 당연하게 생각했는데.. 북한에서는 여자분들이 그렇게 어려운 과정을 거쳐야 하는걸 오늘 처음 알았습니다. 지금도 북한 여자분들과 가족들 돌 때문에 스트레스 받을거 생각하면 짠합니다. 하루빨리 그런 스트레스에서 벗어나기를 고대합니다.
안녕하세요. 미자언니 반가와요. 언니의 가슴아픈 이야기 평양만사에서 모두 시청했어요. 구독자 일만명 빨리 달성하시길 응원합니다. 따님이 미인이시네여. 울나라도 한때 쌀에서 돌이나왔지요. 내가 탈북민의 영상을 거의다 시청하는데, 어느 분이 말씀하시기를, 북한에서는 정미소에서 쌀을 훔치고 훔친만큼 돌을 넣는다고 하더군요. 구독, 좋아요 꾹꾹 누르고 자주 놀러올께요. 새해 복많이 받으시고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ㅋㅋㅋ 미자님 안녕하세요 미자님 때문에 잠깐 쓴웃음이 나네요 어릴적에 우리 어머님 생각이 납니다 우리도 그랬어요 아버지가 밥에 돌이 나오면 어머님께 소리를 지르고 그냥 하던 식사를 그만두고 방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셨던 기억이 납니다 ㅋㅋㅋ 감사합니다 오늘은 크리스마스 이브 입니다 하나님의 은총이 함께 하시길 바랍니다
70년대까지 규격봉투에 담긴것이 없이 가마,말,돼 등으로 쌀집에서 장사하였지만 쌀및잡곡 속에 돌이나오면 쌀집 망함 서로 경쟁적으로 돌고르는 기계 구입하여 장사하여 70년대후반부터는 대부분 가정에서 조리(복조리만넘처남))가 없어지고 80년대부터는 수퍼에서 규격봉투에 담겨 대량판매를 하기에 지금도 돌에 치아가 상하면 변상(치료비포함위자료)
유미카에서 이미자님 이야기를너무 재미 있게 보고, '이미자'하고 찾아 보니, 이미자 가수님 노래와 이미자의 어제와 오늘이 나오더군요. 60여년전 할머니가 해 주시던 밥에 성격이 좀 까다로운 저희 형 밥에만 돌이 들어갔고, 돌을 씹고, 까르르 웃던 어린 시절이 생각 납니다. 한국도 어렵던 1960년대, 할머니가 연탄불에 양은 냄비에서 보글보글 끓여 주시던. 배틀한 밥냄새가 그립습니다. 효녀 따님, 가족 모두 건강하시거, 행복하시기를 빕니다!!!!! 구독과좋아요는 물론, 알림도 누르고 카나다 토론토에서 즐감합니다.!!!!!
제 기억을 더듬어보면 중학교 다니던 시절 즉 70년대 중반에도 조리를 써서 돌을 골라내며 밥을 해주셨던것 같아요 언제부터 돌이 없어졌는지 잊고 살다가 미자님 영상을 보면서 옛생각에 웃음이 납니다. 그 당시엔 통일벼가 생산량이 많다고 밥맛은 조금 떨어져도 그걸 전국적으로 보급했고 그래도 모자라서 보리나 잡곡을 섞어서 먹게 했어요. 점심 시간에 도시락을 열어서 잡곡이 섞였는지 선생님이 검사까지 했었습니다. 그랬던 통일벼가 지금은 아프리카. 중동에서 쌀 보급을 위한 인기 품종이 되어있다고 합니다.
박정희대통령께서 국민들 굶주리지 않게 농업 연구소에 다수확 품종개발을 지시하니 당시 선진국 필리핀의 미작 연구소서 개발한 IR 667 품종을 국내에 가져와 개발한 것이 통일벼인데 수확은 기존의 두배이나 맛이 없고 기름지지 않아 계속 개량하여 오느날은 맛도 좋고 수확도 많은 것이 되었읍니다.
미자 여사님 말씀 들으니 공감이 가서 웃음이 납니다. 제가 지금 80를 넘었는데 결혼전 밥을 하면 그때도 한국에도 석발기가 없어서 밥을 지을때 돌을 일었읍니다. 밥을 지으면 꼭 아버지나 손님이 오시면 손님밥에 꼭 돌이 들어가서 민망했던 때가 많았읍니다. 석발기를 발명하면 다 해결될것을 북한은 모든것이 후진국 대책이 안서는 나라 공산독재 국가 나라라고 할수없는 인권탄압 노예국가 입니다. 속히 자유민주로 북한이 통일되어 비참한 인민이 해방되기를 기원합니다.
90년대에도 있었어요. 사람들이 기억을 잘 못합니다. 자기가 직접 접하지 않고 엄마든 누가 해준거만 먹고 쓰고 했으니까. 이게 좀 멀정한 나라구나 생각하며 살게된지는 20년 정도 된거죠. 그전까진 정말 개판이었습니다. 30년전까지는 국민수준이 거의 뭐 지금 중국인들 수준이었죠.
저도 어릴때 (35년전쯤)엄마가 쌀조리로 돌 고르시던 생각나고요. 돌 그 하나가 꼭 아빠 밥에만 들어가서 엄마랑 티격태격 하시던 생각나는데요.아빠가 화내시기전에 엄마가 먼저 선수치셔서 버럭대셨던기억나요. 밥 차려준걸 감사하게 생각하고 먹으라고 하시면서요.그 소리 듣고 아빠도 조용히 다음밥을 뜨셨던 기억 납니다 ㅋㅋ 주는대로 먹어야죠.
그것은 바로 공산독재국가와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사회의 차이점이에요~~~
ㅎㅎㅎ~~~빨리 통일되어야지요~~~
아직도 복조리가 논두렁에 심은 소량의 콩이나 잡곡들을 위해서는 필요합니다.
스스로 저항해야죠
남한도 엄청난 희생과 저항운동을 했습니다
그것이 대한민국의 정미소의 기술이 발달되었 다는 것입니다.
남한 애서 조리와 쌀 함박 없어 진 게 대충 30년이 된 거 같네요, 도정방법이(정미기계에 석발기: 돌 골라내는 장치가 있음) 발전되어서 그리된것 같아요~~
1978년도에 밥먹다 돌 씹던 생각이 납니다~~!
엄마하고 딸래미하고 붕어빵 이네요... 평생 화목하게 잘 사세요.
안녕하세요 한국도 옛날에 쌀에 돌있었서요.지금은정미소에 석발기가 돌불순물 다걸러줍니다.그래서 돌이없습니다.
한국에도 1970 년 까지는 밥에 돌이 있었습니다. 재미있게 잘 보았습니다.
북한 이주민들은 우리 국민입니다. 중국인인 조선족과는 비교할수 없죠.
기계화가 되어서 바닦에 두지않고 그자리에서 짚과 알곡을 분리되어 버리기 때문에 돌이 들어 갈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도 30년전만해도 밥을하려면 쌀을일어서 돌을골라내고해도 밥을 먹다가 돌을씹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어느날부터 쌀을 이는 바가지가 없어 졌더라고요.
한민족이어서 너무좋아요🎉
고생 많이 하셨습니다.
잘못된 사상 때문이라 생각됩니다.
부모님과 형제를
대한민국으로 모셔오신
지혜로운 그 따님이시군요.
한국도 예전에는 쌀 함박을 사용해서
돌을 이렀습니다.
정치가 잘못된걸 알고만 있으면
뭐래 남쪽에 자유가 그냥 얻어진게 아님니다
목숨으로 이루어 지고 목숨으로
지킴니다
남한에 와서 충격묵은것이 어디한두까지게소. ㅋㅋ
응원합니다 소래가면 아드님 한번봐야지요
평양만사에서 너무재밌게들어서 미자씨네가족 내가다아는사람 인것같은느낌 입니다
20대통령허경영 후보가 답이다 💯🚫🚫🚫찍어 배부른 가정을 이루자
한국도 예전엔 돌이 많아서 다 그렇게 쌀을 일어서 돌을 골라 냈었어요. 우리 엄마는 돌이 없어진 지금도 쌀을 예전처럼 씻고 계시니까 ㅎㅎ 습관이란 게 참 무섭구나 라는 생각이 드네요.
한국도 그전엔 그랬답니다~~~
Have a beautiful Christmas
💞💗💕💘💟
네. 저도, 어렷을때, 쌀조리게를, 사용했어요.
암조록! 남은인생 행복하시기바래요!💕
남한쌀에 돌이없는것은 컴바인으로 수확하기때문입니다. 컴바인에서는 벼가 세워진채로 수확하기 때문에 아예 돌이 들어갈 틈이 없습니다.
정미소에서 석발기란 기계로 이물질 다 걸러요
저.어릴때 조리 사용했서요
아버지는음식을잘씹어드시는모양입니다
조리로 일어서 밥해먹었었는데^^
30년이 지난 지금도 밥을 이른다면 잘 할수 있을거에요^^
한국도 80년대까지는
돌이 있었습니다
말씀처럼 우리도 꼭
아버지만 돌씹으셨어요 ㅎㅎ
이쁜딸도 말을 잘하네요~~^^
은정씨
정말 잘하셨어요.오빠만이 아니라 부모님 모시고 온 것 정말 너무너무 잘하셨어요.
이제 이땅에서 마음껏 자유를 누리며 행복하게 사시길 기도드립니다
감사합니다
과거 남조선에서는 쌀함박이 "쌀조리개"였는데... 쌀조리개를 가지고 쌀만을 건져내는 식으로 돌을 골랐습니다. 그런데 조리개 가지고 아무리 쌀을 잘 골라도 돌이 씹혀요.
여기서는 도정 후 돌 고르는 공정을 거칩니다. 이때 돌이 완전히 제거됩니다.
말씀을 정말 재미있게 하시네요. 앞으로도 행복하시길 바랍니다.
조리로 쌀을 이고 계신 어머님 모습,
돌을 씹고 괴로워 하던 그 모습까지, 생생하게 기억이 소환 되었습니다. 돌 하나를 해결하지 못한 북한과 비교할 이야기는 아니겠지만, 아주 오래전 우리 모습을 보는것 같아 정겹기 까지 합니다^^
미자 어머님이 우리 어머님 같습니다ㅎㅎ
벼베어서 말리고 낡락 말리는 과정에 돌이 많이 들어가요
거기다 한국은 도정과정에
석발기라하여
비중을 이용해 돌을 골라냅니다
옛날엔 마당에서 타작해서
돌이 많았어요 우리도 보릿고개 지내면서, 아들 하나라서 쌀을 한 가운데 보리밥 위에 언으면 끓으면서 돌이 맨 위 가운데로갑니다. 혼자만 쌀 밥 맛나게 해서 먹다가 꼭 씹어요 그러면 밥상 분위기가 상당히 함들죠
쌀함박이 쌀함지박같군요.. 재미있게 잘들었습니다. 건강조심하고요 진정성있는 유투브 해주셔서 잘보고 있습니다. 엄지척...
이미자님 대한민국도 6~70년대는 쌀에 돌이 있어 일궈서 밥을 했지요
80년대 기계화가 되면서 부터 돌이 없어 졌어요
요즘은 그것도 자동화가 되어 쌀에 돌이 들어 갈 수가 없답니다
재밌는 말씀 잘 듣고 갑니다. 건강하세요
미자씨 안녕하세요 ^^
영상 아주 좋았습니다.
북한에 살던 얘기가 제일 좋아요.
이를 안닦아도 이가 안상하지만 돌 씹으면 이가 금방 상합니다.
영상 올려 주셔서 고맙습니다.
이쁜여성 미자씨 사랑해요
메리크리스마스 👋
행복하세요 ♥️ ♥️ ♥️
아주 어렸을때 저희도 밥 먹다 돌을 씹기도 했습니다만,
그 이후 너무도 당연히 돌 없는 밥 먹는게 너무 당연하게 생각했는데..
북한에서는 여자분들이 그렇게 어려운 과정을 거쳐야 하는걸
오늘 처음 알았습니다.
지금도 북한 여자분들과 가족들 돌 때문에 스트레스 받을거 생각하면
짠합니다. 하루빨리 그런 스트레스에서 벗어나기를 고대합니다.
오모나..반갑습니다..이미자님!! 해피 뉴 이어!!🎈🎈🌈🌈🍵🍵🙏🙏
이 미자씨 팬이자 구독자 입니다
탈북자중에 은정씨가 제일 지혜로우신것 같아요
탈북해서 2개월만에
오빠를 탈북시키고 1년만에 부모님을 탈북시킨것 정말 최고로 잘하셨고
축복 받으신겁니다 가족모두 건강하시고 복많이 받으세요
항상 감사히 잘보고있습니다.
행복하세요 건강하세요 👍
잼나게 잘 봤내요 올해도 복 많이 받으시고 즐거운 일만 가득하시길 바랄게요
어릴 적 얘기를 듣는 것 같습니다.그 때 저희들과 어쩜 그리 똑같습니까?
그래서 남과 북이 그 만큼 차이가 난다는 뜻.
자유를 택한 대한민국
공산당을 선택한 북한
70여 년 만에 하늘과 땅 차이죠.
대한민국의 60년대에는그렀게 돌이 있었죠 .
하루 한번이라도
밥 차려주는것만 해도
감지덕지 입니다.
ㅎ ㅎ
ㅎㅎㅎ 강아지 인형 너무 귀엽네요 ㅋㅋㅋ
ㅎㅎㅎ
감사합니다
조리.. 예전 70년대까지 부엌 필수품이었죠. 그후 복조리라는 이름으로 명절때 선물로 주던 모습. 지금은 복조리마저 잊혀지네요.
우리도 어렸을때 밥속에 하얀돌이 한두개씩 나왔는데 ᆢㅋ 꼭 나만돌 씹어서 이빨이 아작났었는데 ᆢㅋ
따님이 훌륭하십니다
어~~~???
막 봤는데요.
미자언니 넘 변했다.
ㅋㅋㅋㅋㅋ
먹여주고 입혀주고
교육까지 시킨다며~^^
여튼
늦게나마 행복을 누리는
모습
넘 좋네요.
넘
차이나는 문화~!
이젠 적응이 되죠~^^
늘
행복하세요~~~!!
돌~~~!!!^^
항상 응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옛날에 딱 울아버지 얘기하고
똑 같아서 재밌게 봤습니다
대한민국 쌀에도 에전에는 돌이 있었습니다. 이미자 선생님, 교수님 뒷담화를 하시니 너무 재미있습니다. 따님은 어머니 닮아서 너무 고우시고요.
ㅎㅎㅎ
감사합니다
타작을 마당에서 돌이 들어가요! 옛날에 보리 밥 먹을 때, 아들 만 쌀밥 먹이다 보니, 쌀밥 먹는 아들이 돌을 씹어서 혼났죠
나 어릴때 국민학교저학년때
온식구가 삥둘러 앉아 쌀을
쫙 펴서 돌 고루던 시절 생각나네여 지금은 쌀 한번만 먼지 있을까봐 딱1번만 대충씻고
전기밥솥에 밥합니다 돌씹던 기억이 50년전 지금까지 단한번도 돌 못씹어 봤네여
잘봤읍니다 감사합니다
벼수확할때 콤바인으로 하는데
벼가 베어져서 땅에떨어지기전에 탈곡해서
마대에 담기기때문에 그렀습니다 또 벼를 정미소에
가져가면 정미소안에 바닥에 돌이
없고 깨끗하게 시멘트 포장이 되어있어서
그러고 정미소기계가 성능이
좋고 도정율이 높기때문입니다
안녕하세요. 미자언니 반가와요. 언니의 가슴아픈 이야기 평양만사에서 모두 시청했어요. 구독자 일만명 빨리 달성하시길 응원합니다. 따님이 미인이시네여. 울나라도 한때 쌀에서 돌이나왔지요. 내가 탈북민의 영상을 거의다 시청하는데, 어느 분이 말씀하시기를, 북한에서는 정미소에서 쌀을 훔치고 훔친만큼 돌을 넣는다고 하더군요. 구독, 좋아요 꾹꾹 누르고 자주 놀러올께요. 새해 복많이 받으시고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와하!!!~~~~~
감사합니다
화이팅하세요
미자님 유튜브 TV 개국 축하함니다 무궁한 발전을 기원함니다 자주올께요
감사합니다
따님과행복하게사시는 모습 최고!♡ 메리 크리스마스!
자식에게 좋은 걸 먹어야지 아니면 최소한 같이 썩어 먹던지, 참 이상한 사회 조선시대 애기를 잘 들었습니다.
예전에 수확을 할때는 마당에다가 도리깨로 두드려서 탈곡을하다보니 마당에 있는돌이 들어갈수 밖에 없었지만 지금은 콤바인으로 작업을하니 쌀이 땅에 닿을일이 없으니 돌이 들어갈수가 없는것이지요.
미국에 살면서도 항상 응원하고 있습니다 힘내세요 화이팅...
먼곳에서도 저의 어설픈 영상까지 시청해주신다니 감개무량합니다
새해 복 마니 받으세요
남한도 그전에는 꼭 밥를 일러서 했어요.
지금은 기술이 좋아져서 쌀에서 돌를 고르는 기계가 좋아져서 그런겁니다.
이미자님 처음 들어옵니다
다른 채널에서는 많이 뵈었고요.
번창하길 바라고 행복하세요~~
ㅎㅎ
감사합니다
건강 잘 챙기세요
ㅋㅋㅋ 미자님 안녕하세요 미자님 때문에 잠깐 쓴웃음이 나네요 어릴적에 우리 어머님 생각이 납니다 우리도 그랬어요 아버지가 밥에 돌이 나오면 어머님께 소리를 지르고 그냥 하던 식사를 그만두고 방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셨던 기억이 납니다 ㅋㅋㅋ 감사합니다 오늘은 크리스마스 이브 입니다 하나님의 은총이 함께 하시길 바랍니다
70년대까지 규격봉투에 담긴것이 없이 가마,말,돼 등으로 쌀집에서 장사하였지만 쌀및잡곡 속에 돌이나오면 쌀집 망함 서로 경쟁적으로 돌고르는 기계 구입하여 장사하여 70년대후반부터는 대부분 가정에서 조리(복조리만넘처남))가 없어지고 80년대부터는 수퍼에서 규격봉투에 담겨 대량판매를 하기에 지금도 돌에 치아가 상하면 변상(치료비포함위자료)
내가아는.복조리가.예전에쌀씻을떄.돌을걸러내는.도구였구나.이제알았어요.
콤바인이라는 벼베는 시계가 있는데요. 땅에서 5-10cm 정도위에서 벼를 잘라서 바로 탈곡이 되어서
나오기 때문에 돌이 없습니다.
미자씨가 딸과 함께 나오니까 분위가 전혀 달라요~ ㅎㅎ
요즘은 쌀도 씻어서 나오더라구요 ㅋㅋ물만부어서 익혀서 먹으면됨 ㅋㅋ
은정씨
엄마가 말씀 다하실때까지 기다려주는 착한 딸이네요
저도아주어릴때 시골집에서 돌을씹에 치아가파절된적도 있는데,,옛날옛적이 많이 그립네요^^
모녀의 도란도란 이야기보따리 잘 들었습니다~♡
아드님도영상도 보고싶네요
넘 단란한가정 보기좋아요🎉🎉 😊
선임님~~~
댓글 감사드립니다
유미카님에서 벱고 입담에 매료되어 찾아오게되었어요 유틉 번창하시고 손주 사연 까페 이야기도 많이 들려주세요
감사합니다
여기는 정미소에서 돌을 골라내면서 방아찧어서 나오니까 돌이없어요.
어유또봐요미자씨❤❤❤❤❤❤❤❤
유미카에서 이미자님 이야기를너무 재미 있게 보고, '이미자'하고 찾아 보니, 이미자 가수님 노래와 이미자의 어제와 오늘이 나오더군요. 60여년전 할머니가 해 주시던 밥에 성격이 좀 까다로운 저희 형 밥에만 돌이 들어갔고, 돌을 씹고, 까르르 웃던 어린 시절이 생각 납니다. 한국도 어렵던 1960년대, 할머니가 연탄불에 양은 냄비에서 보글보글 끓여 주시던. 배틀한 밥냄새가 그립습니다. 효녀 따님, 가족 모두 건강하시거, 행복하시기를 빕니다!!!!! 구독과좋아요는 물론, 알림도 누르고 카나다 토론토에서 즐감합니다.!!!!!
와!!!~~~~~~
감사합니다
@@이미자의어제와오늘 여기는정미소 마다 석발기가 있어 다골라 줍니다.
오랜만에 댓글 남기고 갑니다. 영상 감사합니다. ❤❄⛄
조리, 쌀바가지,탈곡기,키,정미소.......
옛날의 추억.....😙
정미소에서 벼를찧을때 석발기라는 기계가있어서 돌을 자동으로 완전히골라냅니다 그래서 정미소에서 나오는쌀은 돌이하나도없는겁니다 농사짖는시골사람들만 알수있어요
ㅋㅋ 미자 아짐시 지가 생각컨대. 한70년초쯤
쌀씻을때. 쌀함박. 요기는
조래카는것. 가지고 쌀을
쌀랑쌀랑. 씻어. 밥하는거
봤씀니다요 ㅋㅋ
근끼네. 요기70년 초중때
그때 그시절이. 북한에는2000년 시대에도. 그랬다니.
마음이 아프네요
효녀. 은정따님에게. 납치되어. 잘오셨습니다
항상. 가족모두가 건강 하시고. 행복한시간만
하늘땅. 만큼 누리세요
남한도30 여년전엔 돌이 나왔어요
제 기억을 더듬어보면
중학교 다니던 시절 즉 70년대 중반에도 조리를 써서 돌을 골라내며 밥을 해주셨던것 같아요
언제부터 돌이 없어졌는지 잊고 살다가
미자님 영상을 보면서 옛생각에
웃음이 납니다.
그 당시엔 통일벼가 생산량이 많다고
밥맛은 조금 떨어져도 그걸 전국적으로 보급했고 그래도 모자라서 보리나 잡곡을 섞어서 먹게 했어요.
점심 시간에 도시락을 열어서
잡곡이 섞였는지 선생님이 검사까지 했었습니다.
그랬던 통일벼가 지금은 아프리카. 중동에서 쌀 보급을 위한 인기 품종이
되어있다고 합니다.
박정희대통령께서 국민들 굶주리지 않게 농업 연구소에 다수확 품종개발을 지시하니 당시 선진국 필리핀의 미작 연구소서 개발한 IR 667 품종을 국내에 가져와 개발한 것이 통일벼인데 수확은 기존의 두배이나 맛이 없고 기름지지 않아 계속 개량하여 오느날은 맛도 좋고 수확도 많은 것이 되었읍니다.
엄마가 젊었어 딸이 잘하는가봐 즐겁고행복하며 예쁘진다는데 행복하셔요👨👩👧 쌀를이를때 제일뒤에 넣는것이 돌이제일많아 그래서 돌이 밥솥제일위에 있게되 아빠존경한다고 제일먼저 그릇에 퍼담기때문 아빠밥이 돌 제일많아 육 칠십년대 남자인 나도 쌀씻어 많이 해봤어요 우리도그랬어요 함박이 복조리 🙆♂️😉성질까칠해서 씹는것아니요
80년대 후반 컴바인 추수, 농업 과확화 와 정미소 현대화 등이 이뤄지며 없어졌어요 곡식에 돌이 생기는건 추수해 말릴때 마당에 원시적으로 말리면서 들어가요
눈이 온다고 하네요
메리 크리스마스 ☆☆☆☆☆
온가족 모두 즐겁게 보내세요 ^^
Have a beautiful Christmas
💞💗💕💘💟
@@tv-xp3ps님 ㅡ 네 고맙습니다 ^^
자유시장경제를 하면 ㅡ 북한동포도 잘살게 돱니다 ㅡ
김길선의 평양만사에서
보다가 이제야 독자 유튜브 님이 되셨네요
축하드려요
따님이 참 아름다우시네요 ㅋ 어머니를 닮았나봐요 ㅋ
아이고 감사합니다
우리어릴때도꼭손님이나성격더러운사람한테는돌이들어갔어요~~지금은다추억이되었네요~~
미자 여사님 말씀 들으니 공감이 가서 웃음이 납니다.
제가 지금 80를 넘었는데 결혼전 밥을
하면 그때도 한국에도 석발기가 없어서
밥을 지을때 돌을 일었읍니다.
밥을 지으면 꼭 아버지나 손님이 오시면 손님밥에 꼭 돌이 들어가서 민망했던 때가 많았읍니다.
석발기를 발명하면 다 해결될것을 북한은 모든것이 후진국 대책이 안서는
나라 공산독재 국가 나라라고 할수없는
인권탄압 노예국가 입니다.
속히 자유민주로 북한이 통일되어 비참한 인민이 해방되기를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어느집이든 아버지 입에서 우두둑 돌씹는 소리가 나는 날은 공포의 도가니 ㅋㅋ
이미자님의 정겹고 구수한 사투리를 듣고 싶은데 좀 아쉽습니다ㅎㅎ
제가 어린시절인 80년대에는 있었어요.. ㅎㅎ 남쪽에서도 쌀 씻을때 돌골라 내고 쌀벌레도 많았지만.. 지금은 사라진지 오래됐죠.. 쌀통,장독에 보관해서 먹을땐 쌀함박 쌀조리개로 돌골라냈어요.. 쌀벌레도 많아구요
90년대에도 있었어요. 사람들이 기억을 잘 못합니다.
자기가 직접 접하지 않고 엄마든 누가 해준거만 먹고 쓰고 했으니까.
이게 좀 멀정한 나라구나 생각하며 살게된지는 20년 정도 된거죠.
그전까진 정말 개판이었습니다. 30년전까지는 국민수준이 거의 뭐 지금 중국인들 수준이었죠.
@@judgejung488 90년대 2000년대초까지 있는거 맞아요
북한은 낫으로베고 한국에는 콤바인 기계에 하니까 벼가 땅에 바닥에 닿지 않으면 돌이 있을수가 없고 낫으로 바닥에 붙으면 돌이 당연히 있습니다
저도 어릴때 (35년전쯤)엄마가 쌀조리로 돌 고르시던 생각나고요. 돌 그 하나가 꼭 아빠 밥에만 들어가서 엄마랑 티격태격 하시던 생각나는데요.아빠가 화내시기전에 엄마가 먼저 선수치셔서 버럭대셨던기억나요. 밥 차려준걸 감사하게 생각하고 먹으라고 하시면서요.그 소리 듣고 아빠도 조용히 다음밥을 뜨셨던 기억 납니다 ㅋㅋ 주는대로 먹어야죠.
북한이 못사는 이유는 공장의 책임자들이 더 좋은 물건을 만들고
생산성을 올리지 않아도 되기 때문입니다.
경쟁없이 국가에서 시키는 것만 해도 잘먹고 잘살수 있고
쓸데없이 운영을 잘해서 돈을 잘 버는 자들은
모함에 걸려 죽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남한에도 30년 전만 해도 쌀함박이나 조리가 있었음
쌀함박이 뭔지모르다가 설명듣고 알았네 ㅎㅎ
조리라고 해여
80년대까지 우리도 조리 사용했어요
이미자님께서 오랫만에 오셨읍니다 여기도 사시기는 만만치 않으시죠? 그래도 낙심하지 마시고 한번 살아보십시다
이 미자씨 화이팅! 유튜브 하시네요 무한한 발전을 기원합니다 건강하게 행복하게 사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