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rry111 강씨의시조는 염제신농이십니다 중시조가 강이식 장군 이십니다 그리고 귀화 하신게 아님 원래 고구려인이였음 뭐 다 말할려면 너무길어생략 을지문덕(乙支文德)에 의하면 강이식장군은 고구려 서해변점선현(西海邊?蟬縣 : 현(現) 평안남도(平安南道) 용강군(龍岡郡) 귀성면(貴城面))이 고향(故鄕)이고, 부친은 강철상(姜哲尙)으로 이 어른은 고구려 양원왕(陽原王 : 서기 545년-558년)때 상서원(尙書院)에서 시랑(侍郞) 벼슬을 하고 있었다. 바로 그 때 돌궐(突厥) 나라에서 수나라의 사주(使嗾)를 받고 고구려에 침입(侵入)하므로 공이 자원(自願)하여 군인으로 출정(出征), 공(功)을 세운 분이이라고 금석문(金石文)에 의거(依據) 고증하였다. 현재 이 설이 다수설이라 하겠다.
정치 권력에서는 밀렸지만 상징성은 있죠 서울 을지로는 중국 화교들이 우글거려서 화교 세력의 기운을 꺽는다는 의미로 이승만 대통령이 을지로라고 이름을 지었죠 그리고 을지 프리덤 가디언 한미연합 훈련도 했었죠 그래서 미군들이 생각보다 을지문덕 장군에 대해서 안다고 하네요 이순신 제독은 니미츠 제독과 맥아더 원수도 잘 알았고 미해군 사관학교에서 배우고 있어서(? 지금은 아닐수도 있고) 미군도 을지문덕, 이순신은 꽤 알고 있다네요
역사가들은 다시 공부해야 한다.. 강은 세계어디를 가나 생명수이다... 살수 라는 강이 어디에도 없다는것을... 그럼 을지문덕 장군이 활동할때의 언어는 어떻게 사용하였나 언어에대한 연구가도 필요하다 샤르 라고 한것이다. 샤르는 투르크어 이며 돌궐어라고 한다. 샤르의 뜻은 노랗다.누렇다. 달다 라는 뜻을 가지고잇다.. 그럼 누런강물이 일년내내 그런 강물 이 어디에있나 찾아보면 바로 황하 강이다... 그곳은 홍수가 오거나 비가오면 항상 모래가쓸려 섬이되엇다가 강폭이 수시로 넓어지거나 좁아진다 그런특수성의 지형을 골라 을지문덕은 전쟁에 임한것.... 후세에 사가들이 샤르 를 한자로 음일빌려 기록한것이 살수이다.. 한국사가들은 살수가 오늘날 한반도의 청진강이라고 우기고있다.
무지한것은 참을수가 있다. 그렇게 오랜시간이 흘러도 여기에 대해 연구를 하지않는 현 사가들을 성토하고싶어진다.. 역사연구란 그시대의 상황에서 일어난 모든것을 아는것이 역사이다..언어.건축물. 미술품 공예품등등 총망라하는 어려운 것인데 단순히 책몇권읽고 연구성과를 발표하는 학문이 아니다. 여러파트들이 모여서 연구하는것이 역사이다.
니들은 그냥 경상도가 맘에 안드는거지? 드넓은 북쪽땅 다빼앗긴건 발해잘못인데 신라가 왜나오지... 신라는 그저 백제 고구려 압박속에서 살기위해 당나라랑 잠깐 손잡은거고 그럼 역으로 백제 고구려가 얼마나 병신같았으면 인구고 물자고 제일 열악하고 땅도 척박한 신라한테 처발렸냐
중국 초나라 [범려]는 초王의 숙원을 이루어주고 권력을 속성을 알고 고생은 같이해도 권력은 나누지 않은 권력의 속성을 미리알고 일부 재산과 노비를 데리고 초왕의 손길이 미치지 않는곳으로 떠나서 가는곳마다 부를 쌓아 널리 이롭게 하고 또다른 곳으로 떠나서 역사에 기록을 남기지 않는. 행적으로 바람과함께 사라졌다.
수나라를 이기기는 했으나 고구려의 청야작전으로 고구려도 재정적 문제가 있어 연속적인 전투가 힘들다는 영양왕의 판단이 있을 수도 있을듯. 게다가 공격은 수비보다 더 많은 병력이 필요하고 군인들은 전쟁이 있어야 더 출세 할 수 있으니... 뭐 여러가지 이유가 있어서 그런게 아닐까?
하나 더, 중원 공격이 왜 어려운가 하면요. 청나라가 있죠? 청나라는 중원공격을 성공했어요. 그런데 이게 쉬운일이 아니었습니다. 마지막 관문이 산해관입니다. 여긴 이자성이 지키고 있었어요. 이자성은 대표적인 명나라의 반역자죠? 우선 청나라가 산해관 앞까지 온건 수십년 전이었습니다. 누르하치는 첨 공격했다가 패퇴했습니다. 그리고 전략을 바꾸죠. 내부에서 붕괴되기를... 청나라나 고구려나 비슷한점이 있습니다. 바로 소수 라는거죠. 명나라나 수나라에 비하면 인구가 졸라게 작아요. 당연히 부대 규모도 졸라게 작습니다. 만약에 고구려가 중원을 도모할 것이면 고구려군도 산해관에서 수십년을 기다릴 수 있어야 했어요. 그런데 고구려는 그럴 수 있는 나라가 아닙니다. 청나라는 만주족이에요. 단일 민족이죠. 고구려는 만주족, 거란족 부여족 국가 입니다. 여기에서 부여족은 굉장히 적습니다.70% 이상이 거란족이고, 20% 이상이 만주족이에요. 겨우 10%만이 부여족입니다. 고구려는 이들 3 민족의 연맹체에요. 서로 다른 이익을 추구하기 때문에 이들이 연맹이 된겁니다. 산해관 앞에서 진을 치려면 최소 거란족의 협조가 필요합니다. 그런데 거란족의 협조를 요구하려면 거란족의 엄청난 이득이 필요해요. 그걸 고구려가 해줄 가능성이 무척낮은거구요. 그래서 산해관 앞에서 못버티기 때문에 수나라 정벌은 그냥 불가능한거에요. 청나라는 내외에서 계속해서 이간질 했습니다. 결국 그 이간질에 성공해서 영락제는 이자성을 부릅니다. 이순신과 같은 스토리죠. 원균이 뭐라고 했죠? 왜 적이 지나다니는데 공격하지 않느냐.. 이게 이순신 죄목이에요. 이자성도 그래요. 왜 누르하치가 눈앞에 있는데 공격해서 전공을 세우지 않느냐.. 여기서 이자성이 무너집니다. 가면 죽는걸 아니까요. 그는 안가고 문을 열어줍니다. 그리고 같이 영락제를 잡으러가요.
한반도의 수많은 명장들이 주군을 잘못 만나 중원 공략이란 원대한 야망을 접어야 했다. 고건무는 당시에 이렇게 주장했을 것이다. 우리가 이겼지만, 우린 대륙을 정벌할 힘이 부족하다고. 그리고, 백성들을 더 이상 고생 시키지 말자고. 말은 맞다. 하지만, 우리 침략 받은 것을 되값아 주는 공격이라도 했어야 했다. 대륙, 중원 정복이 아니여도. 😢
연개소문이 스트레쓰로 급사하고 아들셋이 권력을 나누기로 함 첫 아들이 고구려 변방을 시찰하고 돌아오는데 둘째와 세째가 평양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막아버림(즉, 배신을 함) 이에 빡친 첫째아들이 당나라 군사들에게 아예 문을 열어버려서 당군은 피도 흘리지 않고 평양으로 진격한 후 고구려군을 격파시킴 당태종 이세민도 쩔쩔매던 고구려가 하루 아침에 몰락한 사건임
어이쿠...과거의 전쟁이 스타크는 아닙니다. 수비에서는 그래도 소군이 대군을 이기는 경우는 있어도...반대로 공격시 소군이 방어하는 대군을 이기는 경우는 거의 없다보면 됩니다. 유리한게 하나도 없거든요... 그러니까...소수는 뺏을 려고 하는거 보다 수비를 탄탄히 하여~국제정세에 기회가 올때...탁월한 협상력으로 연합국이 되는게 현명합니다. 저 당시에는 수명도 짧아 인구 불리기가 쉽지 않습니다. 무조건 연합국가 이루고~인재를 귀하게 여기고 투항하는자나 귀화자를 잘 대우해줘서 많은 귀화자 만드는것도 좋은 방법이죠. 그럴려면 농경기술과 축산기술도 중요하죠.
이런걸 탁상 공론이라고 하는거에요. 이이의 10만 양병설도 탁상 공론이죠. 말로는 뭘 못해요? 이이의 10만 양병설은 결국엔 농민들이에요. 농민들이 징집되어 훈련을 해야 한단 말입니다. 전국에서 10만명이요. 이들을 먹일 쌀은 어디서 나고 이들이 농사지어 만들 쌀은 누가 생산합니까? 그래서 탁상 공론인겁니다. 신채호 선생님은 제가 존경해마지 않는 역사 소설가죠. 을지문덕이 진짜로 중원을 정복하자고 했다면 노망이 난겁니다. 일단 인구빨이 장난이 아닙니다. 최소 10배에서 20배 이상 차이가 나요. 그리고 고구려가 이긴 원인에는 기나긴 원정길도 있어요. 보통 중국에서 군사를 일으키는 시점이 7월 정도에요. 왜냐하면 모내기는 하고 가야죠. 씨는 뿌리고 가야 수확을 하죠. 7월에 와서 9월쯤에 요동반도에 도착합니다. 그리고 쌈 몇번하면 10월입니다. 돌아가야 해요. 안그럼 얼어 죽습니다. 이것 때문에 중국 병사들은 조급증이 생겨요. 아 이번전투에서 이겨서 평양을 점령해야 따뜻할때 돌아가는데... 하는 생각인거죠. 그래서 을지문덕에게 대패 했습니다. 물론 을지문덕의 전략도 뛰어났죠. 어떤 전략이었죠? 마을을 비우고 곡식을 태우고.. 상대는 어마어마한 거리를 종단한 부대에요. 곡식이 사라지면 사라질수록 더 조급해집니다. 그래서 결국 깨진거죠. 을지문덕은 수나라 병사들을 평양 앞까지 데려옵니다. 그만큼 시간을 끌었다는 거고. 정말로 낼모레면 돌아가야 하는 상황을 만든거에요. 그래서 한번의 전투로 깨지고 바로 도망가는 상황이 된겁니다. 이건 우리가 중원을 공격할때도 같아요. 7월에 병사를 일으켜 수나라 수도에 도착하면 아마 9월일겁니다. 얼른 싸워서 이겨야 정복에 성공하죠. 거의 불가능한 싸움입니다. 당나라도 그래서 깨졌어요. 당나라가 결국 고구려를 무너뜨린 결정적인 이유는 김유신의 군량미 입니다. 김유신을 떠받드는 분들이 꽤 되는데.. 김유신의 업적이 뭐가 있어요? 없습니다. 장군으로서 이룩한 업적이 없어요. 관창 보내서 이긴거? 그거 애초에 10대 1의 싸움이었습니다. 10대 1로 싸워서 이긴게 업적입니까? 12척과 330척의 싸움까지도 안바랍니다. 1:1 로 싸워서 이겼어도 명장입니다. 근데 10:1로 싸워서 그것도 간신히 이긴거에요. 이걸 명장이라고 하면 중국의 인해전술 장군도 명장이겠네. 암튼 고구려 멸망시기에 당나라군은 뒤에서 오는 원군이 있기 때문에 조급증이 없었어요. 그래서 이긴겁니다.
고구려가 중국(수, 당) 원정을 한다는 거는 어불성설이지요. 나도 중국 진짜 싫어하지만, 그렇다고 국뽕은 절대 지지할 수 없어요. 원정 전쟁은 적어도 원정군의 전력이 3배 이상이 되어야 하는데, 게다가 거의 1000키로 이상을 원정해서 중국을 정복하는 거는 불가하지요. 거대국가 페르시아가 그리스의 작은 도시국가를 정복하다가 개털린 것도 다 원정군의 디스어드벤테이지때문이었지요.
역사학자들 이상한소리 하지말고 찾아라 없는 인물도 만들어 내는데 분명히 있는 장군이 없어졌다 함은 어디서 어떻게 왜 사라져야 했는지 찾아서 그자리에 동상으로 라도 역사를 만들어 들어야 될 인물이다 사람이 살았던 흔적이 사라진다 함은 역사가 잘못된거 어디서 어떻게 왜 역사가 이러냐
역사는 승리자의 기록
편집
을지문덕이 총사령관이 아니고
그때당시 강이식 장군이 수나라와 싸워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하여 강이식장군이 총사령관이였고 그밑에 을지문덕이 있었음
정확히 알고 계신분이 있네
강이식장군 병마도원수 입니다 을지문덕은 그밑에장군입니다 총사령관은 강이식장군이니다
참고로 강이식 장군은 중국 수양제때 왕위찬탈로 인해 그때 우리나라로 귀화한 장수임다.
강이식장군이 지금 강씨의 시조이고 그때
병마원수가 맞슴다.
@@cerry111 강씨의시조는 염제신농이십니다 중시조가 강이식 장군 이십니다
그리고 귀화 하신게 아님 원래 고구려인이였음
뭐 다 말할려면 너무길어생략
을지문덕(乙支文德)에 의하면 강이식장군은 고구려 서해변점선현(西海邊?蟬縣 : 현(現) 평안남도(平安南道) 용강군(龍岡郡) 귀성면(貴城面))이 고향(故鄕)이고, 부친은 강철상(姜哲尙)으로 이 어른은 고구려 양원왕(陽原王 : 서기 545년-558년)때 상서원(尙書院)에서 시랑(侍郞) 벼슬을 하고 있었다. 바로 그 때 돌궐(突厥) 나라에서 수나라의 사주(使嗾)를 받고 고구려에 침입(侵入)하므로 공이 자원(自願)하여 군인으로 출정(出征), 공(功)을 세운 분이이라고 금석문(金石文)에 의거(依據) 고증하였다. 현재 이 설이 다수설이라 하겠다.
옳으신 말씀.
일제의 역사 지우기로인해 한국의 역사는 오류와 편리로인한 해석들로 아직도 역사를 바로세우지못하고있다
을지문덕 장군은 사라진 것이 아니고
계례의 수호신이 되어 민족 정기를 지키고
계십니다.
감성적 소리 ㄴㄴ
ㅋㅋ 개쌉소리
저도 그렇게 믿고 싶습니다.
저항정신은 우리 몸속에 dna가 되어 아직 살아있으니 아주 틀린말이 아니라고 봅니다
정치 권력에서는 밀렸지만
상징성은 있죠
서울 을지로는 중국 화교들이 우글거려서 화교 세력의 기운을 꺽는다는 의미로 이승만 대통령이 을지로라고 이름을 지었죠
그리고 을지 프리덤 가디언 한미연합 훈련도 했었죠 그래서 미군들이 생각보다 을지문덕 장군에 대해서 안다고 하네요
이순신 제독은 니미츠 제독과 맥아더 원수도 잘 알았고 미해군 사관학교에서 배우고 있어서(? 지금은 아닐수도 있고)
미군도 을지문덕, 이순신은 꽤 알고 있다네요
정배같은 소리하네
역사가들은 다시 공부해야 한다.. 강은 세계어디를 가나 생명수이다... 살수 라는 강이 어디에도 없다는것을... 그럼 을지문덕 장군이 활동할때의 언어는 어떻게 사용하였나 언어에대한 연구가도 필요하다 샤르 라고 한것이다. 샤르는 투르크어 이며 돌궐어라고 한다. 샤르의 뜻은 노랗다.누렇다. 달다 라는 뜻을 가지고잇다.. 그럼 누런강물이 일년내내 그런 강물 이 어디에있나 찾아보면 바로 황하 강이다... 그곳은 홍수가 오거나 비가오면 항상 모래가쓸려 섬이되엇다가 강폭이 수시로 넓어지거나 좁아진다 그런특수성의 지형을 골라 을지문덕은 전쟁에 임한것.... 후세에 사가들이 샤르 를 한자로 음일빌려 기록한것이 살수이다.. 한국사가들은 살수가 오늘날 한반도의 청진강이라고 우기고있다.
무지한것은 참을수가 있다. 그렇게 오랜시간이 흘러도 여기에 대해 연구를 하지않는 현 사가들을 성토하고싶어진다.. 역사연구란 그시대의 상황에서 일어난 모든것을 아는것이 역사이다..언어.건축물. 미술품 공예품등등 총망라하는 어려운 것인데 단순히 책몇권읽고 연구성과를 발표하는 학문이 아니다. 여러파트들이 모여서 연구하는것이 역사이다.
ㄱㅅㄹ 그만쳐라 그때의 황하는 이렇게 누렇지 않았다 흐리지 않았다 맑은 물이였다
@@pimsenz9382황하가 왜 누를 황인데 ㅋㅋ
@@pimsenz9382 ㅎ 천산에서 흘러내리는 물이 대홍수 이후로 계속 흐르고 있다..
@@nirvana2084 샤르 가 돌궐어로 노랗다. 누르다 라는 뜻
을지 문덕= 올지 묵돌...
을지> 올지...올지 = 알지...큰사람 황금처럼 빛나는 자
문덕> 묵돌...
그래 고건무가 연개소문한테 지참하게 죽었지요.
연개소문이 영류왕을 죽인것도 아마 을지문덕과 과년된어떤 사건의 연장선일 수도 있겠네!
영류왕은 고구려왕중 가장 저자세로 나온 당나라 속국인듯한 행동에 빡친게 크죠
예로 봉역도라고하는 고구려의 지도를 바치질 않나 고수전쟁의 기념비인 경탑을 허물지를 않나 찬리장성 축조를 멈추게 하는등.. 제가 봐도 병신같은 행동에 빡치는데 암튼 이 계기가 컸죠
@@추깨비완전 문재인이네요
적장에게 usb를 넘겨즈고 초소도 셀프 제거하고
@@추깨비윤짜장은 더한거 같은데
@@user-btkoho중국에 손바닥 비벼가며 쒜쒜거리는 생쥐한마리도 있던데..
@@user-btkoho좃같은 소리는 집구석 가서 하시구요~~
육군 보병 제12사단이 을지부대 입니다. 을지문덕의 정신을 계승하고 있습니다 사라지지않았어요
@@yaro6438 을지부대 강유ㅈ대위 구속
@@yaro6438 을지부대 강유ㆍ대위 구속
@@yaro6438 을지부대
살수는 황하임..산시성 태행산맥 문덕진이 있음..살수는 투르크언어로 노랑다뜻.을지성을 쓰는 사람은 몽골가면 많응.과거 몽골은 모쿠리라불렀음.
모쿠리는 고구리. 고리의 별칭. 보쿠리. 뵈클리. 모굴. 무굴. 모골. 뒤에 몽골
몽골가면 을지성을 쓰는 사람들이 있음니다
을지 발음보다 올지라고 발음하는것 같아요. 온달장군도 온다르라고 발음하는것 같이요~
을지문덕은 몽골민족
에바임 걍 우연이지
역사서에 댐을 만들었다는 이야기는 없다고 합니다. 수공으로 적을 물리쳤다는 이야기도 없다고합니다.. 워낙 대승을 하다보니 수공을 하지 않았을까 추측만 할 뿐이라고 합니다.
삼국사기에 나와있습니다
@@kitchendesigner9542조선사 편수회를 거쳐 남은 것이 세종실록과 산국사기. 산국유사이니 ..
신라가 당나라와 합작해서 고구려를 멸망시켰기에, 신라는 을지문덕을 영웅으로 만들수 없었겠지.
삼국통일이 아니었다.고구려 땅은 전부 내 주고 지금 남한 정도의 땅을 차지하고는 삼국통일이라 칭함.백제와 고구려와 힘을 합해 중국 땅을 뺏어왔어야. 발해 땅도 다 내주고. 우리의 역사는 땅을 점점 잃어가는 역사. 지금은 독도까지 위태위태.
신라를 욕하고 싶네요.
쥐색기같은 신라가 통일했다는게 역사의 비극.
고구려가 통일했으면 대한민국의 역사가 많이 바뀌었을텐데,,
백제도 컷어 부속국가가 일본땅이니
니들은 그냥 경상도가 맘에 안드는거지? 드넓은 북쪽땅 다빼앗긴건 발해잘못인데 신라가 왜나오지... 신라는 그저 백제 고구려 압박속에서 살기위해 당나라랑 잠깐 손잡은거고 그럼 역으로 백제 고구려가 얼마나 병신같았으면 인구고 물자고 제일 열악하고 땅도 척박한 신라한테 처발렸냐
우리는 고건무보다 을지문덕을 더 알고 있다!
그것이 후세의 영웅설이다.
😊😊😊😊😊😊
살수ㅡ 누런물ㅡ황하
이세민의 몽룡보탑이 산동반도 아래 상해 위에 있다. 고구려군이 이세민을 추격할때 이세민은 몽룡보탑아래 숨어 겨우 목숨을 건졌다.이후 이세민은 몽룡보탑을 세워 기렸다.
정확히 알고계시네요...한반도가 아닌...중국 대륙에서 찾아야지요
그럼 황하에 댐을 쌓았다고? 그 당시 그 큰 강에 짧은 기간에 댐 쌓는 기술도 우리는 위대한 배달의 민족이니까 당연 있었을테고. 국뽕 오지네.
을지문덕이 접수했다면 고구려는 망하지 않았을것 같네
왕보다 ~
더 존경받고 ~
더 유명해졌으니까 ~😅
몽골 성씨중 을지씨 있는데..꼭 고구려 사람이었을까요?
제갈량의 촉과 또같네. 북벌을 못하면 나중엔 촉이 없어질거라던.,
고구려가 중원을 없앴어야 했네.. 안 없애서 고구려가 없어졋네. 중원이든 신라든 아님 둘중 하나라도 없앴어야 했어
이 내용이 삼국지의 적벽대전과 비슷함 적벽대전에서 오나라가 승리했을때 여몽은 위나라를 쳐들어가자 라고했지만 손권은 서촉이 두려워 수성만을 했음
어느 시대든 두개의 태양은 존재할수 없음
중국 초나라 [범려]는 초王의 숙원을
이루어주고 권력을 속성을 알고
고생은 같이해도 권력은 나누지 않은
권력의 속성을 미리알고 일부 재산과
노비를 데리고 초왕의 손길이 미치지
않는곳으로 떠나서 가는곳마다 부를
쌓아 널리 이롭게 하고 또다른 곳으로
떠나서 역사에 기록을 남기지 않는.
행적으로 바람과함께 사라졌다.
범려가 초왕의 숙원을 이루었다니요?
다시 확인하세요.
@@jeonggok5232 월나라 입니다.
고구려 총사령관은 을지문덕이 아니라 강이식장군입니다.
살수가 어딘지 모른다는게 함정
대한민국이 딱 지금의 현상이 역사속에서도 있었던 일이었내오ㅡ
을지문덕은 몽고춘신이거나 여진족일 가능서미크다 그중에서 몽골에서는 올지라는성이 실제많다함 즉지배계층이 아니었단인물
영류왕 고검무가 을지문덕을 질투한 것이 조선의 임진왜란시 인조가 이순신장군을 두려워한 것과 같은 이치.
인조가 아니고 선조
선조!
인조는 청나라에
ㅋㅋ 코미디하러 왔냐!가까운 조선의 역사도 모르는기 무슨 삼국시대를 논하고 자빠졌노 ㅉㅉ
수나라 대군
30만명이
강뚝을 허물었을때
시작~하고 일제히
죽기위하여 물에
뛰어들었다
그리고 살려고 하려는 의지가 없었다
또한 그 어마어마한 물을
뚝을 단기간에 만들었다는
우리선조의
토목기술 어마어마
합니다 ㅋㅋㅋ
다시 조사해봐야 하는 역사라
생각됌...
수나라를 이기기는 했으나 고구려의 청야작전으로 고구려도 재정적 문제가 있어 연속적인 전투가 힘들다는 영양왕의 판단이 있을 수도 있을듯. 게다가 공격은 수비보다 더 많은 병력이 필요하고 군인들은 전쟁이 있어야 더 출세 할 수 있으니... 뭐 여러가지 이유가 있어서 그런게 아닐까?
이순신 을지문덕 왕에게 미움을 받는 자 목숨 받쳐봐야 소용없다는 얘기지.
고구려의 주무대는 베이징 근처죠..평양성위치가 베이징 근처니까...
여러설이 있으나 을지문덕은 선비족 같음, 수양제는 우문선비족이었고 우문술도 그래서 참전한 것 같다.
하나 더, 중원 공격이 왜 어려운가 하면요. 청나라가 있죠? 청나라는 중원공격을 성공했어요.
그런데 이게 쉬운일이 아니었습니다.
마지막 관문이 산해관입니다. 여긴 이자성이 지키고 있었어요. 이자성은 대표적인 명나라의 반역자죠? 우선 청나라가 산해관 앞까지 온건 수십년 전이었습니다. 누르하치는 첨 공격했다가 패퇴했습니다. 그리고 전략을 바꾸죠. 내부에서 붕괴되기를...
청나라나 고구려나 비슷한점이 있습니다. 바로 소수 라는거죠. 명나라나 수나라에 비하면 인구가 졸라게 작아요. 당연히 부대 규모도 졸라게 작습니다.
만약에 고구려가 중원을 도모할 것이면 고구려군도 산해관에서 수십년을 기다릴 수 있어야 했어요. 그런데 고구려는 그럴 수 있는 나라가 아닙니다.
청나라는 만주족이에요. 단일 민족이죠.
고구려는 만주족, 거란족 부여족 국가 입니다. 여기에서 부여족은 굉장히 적습니다.70% 이상이 거란족이고, 20% 이상이 만주족이에요. 겨우 10%만이 부여족입니다. 고구려는 이들 3 민족의 연맹체에요. 서로 다른 이익을 추구하기 때문에 이들이 연맹이 된겁니다. 산해관 앞에서 진을 치려면 최소 거란족의 협조가 필요합니다. 그런데 거란족의 협조를 요구하려면 거란족의 엄청난 이득이 필요해요. 그걸 고구려가 해줄 가능성이 무척낮은거구요. 그래서 산해관 앞에서 못버티기 때문에 수나라 정벌은 그냥 불가능한거에요.
청나라는 내외에서 계속해서 이간질 했습니다. 결국 그 이간질에 성공해서 영락제는 이자성을 부릅니다.
이순신과 같은 스토리죠.
원균이 뭐라고 했죠? 왜 적이 지나다니는데 공격하지 않느냐.. 이게 이순신 죄목이에요.
이자성도 그래요. 왜 누르하치가 눈앞에 있는데 공격해서 전공을 세우지 않느냐..
여기서 이자성이 무너집니다. 가면 죽는걸 아니까요.
그는 안가고 문을 열어줍니다. 그리고 같이 영락제를 잡으러가요.
그는 블루 드레곤 이였음 .....
ㅋㅋㅋ 울나라 고대사 나라 역사 팔아먹은 이성계이다....
을지문덕 장군은 서울의 을지로 로 이땅의 국민들에게 각인되고있읍니다
ㅠㅠ
조선 500년 동안 고려를 포함한 고대역사에 대한 기록 없애는 분서갱유가 있었다고 봐야지...
레전드 을지문덕
한반도의 수많은 명장들이 주군을 잘못 만나 중원 공략이란 원대한 야망을 접어야 했다.
고건무는 당시에 이렇게 주장했을 것이다. 우리가 이겼지만, 우린 대륙을 정벌할 힘이 부족하다고. 그리고, 백성들을 더 이상 고생 시키지 말자고. 말은 맞다. 하지만,
우리 침략 받은 것을 되값아 주는 공격이라도 했어야 했다. 대륙, 중원 정복이 아니여도. 😢
맞는말씀
맞는말씀
그럼 고건무가 을지문덕을 숙청했다는 얘긴가?
그리고 그의 행적을 모두지우고 살수대첩은 너무큰 공이기 때문에 역사에 남은거?...음
을지문덕은 몽고계인물이죠
하긴 고구려 자체가 부여의 일파였으니 몽고이름을 가진 자들이 많았을겁니다
살수대첩을 억지로 비좁은 청천강에 때려 맞추려하니 역사에서 사라질수 밖에 없죠.
살수대첩의 장소는 황하강입니다. 살수=살색물=>황하강 입니다
보병 제12사단 을지부대 ❤
간첩잡는 부대지요
거기 여군대위는 범죄자 감빵 가있지
이순신 처럼 정치적으로 제거 당했다
지금이나 옛날이나 그놈에 정쟁때문에..
쯥...삼국통일 후 북진 했어야...😢
을지문덕, 고건무, 연개소문 이런 천하를 호령하는 맹장들이 고구려의 지도자였으니 당시 고구려가 얼마나 강력한 나라였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강력했던 국가가 어떻게 하루아침에 멸망했는지 궁금합니다. 역사에 가려진 사실을 좀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연개소문이 스트레쓰로 급사하고 아들셋이 권력을 나누기로 함 첫 아들이 고구려 변방을 시찰하고 돌아오는데 둘째와 세째가 평양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막아버림(즉, 배신을 함) 이에 빡친 첫째아들이 당나라 군사들에게 아예 문을 열어버려서 당군은 피도 흘리지 않고 평양으로 진격한 후 고구려군을 격파시킴
당태종 이세민도 쩔쩔매던 고구려가 하루 아침에 몰락한 사건임
정치꾼들이 득세를하면
나라는 망하게된다.이것이
힘의 원리다.
을지문덕은 이름부터가 몽고나 말갈쪽이라 그런게; 아닐까요?
소가죽으로 댐을 만들어 적을 수몰시켰다라구여? ㅋㅋ
누가 그런 소리를
을지문덕 장군의 손을 들어줬다면
수나라가 대한민국이 되었을텐데
너무 아쉽네요ᆢ
멍청이때문에 고려도 결국 망하는
원인이 되었군요
을지문덕 장군의 전기를 다시 봐야겠어요
어이쿠...과거의 전쟁이 스타크는 아닙니다. 수비에서는 그래도 소군이 대군을 이기는 경우는 있어도...반대로 공격시 소군이 방어하는 대군을 이기는 경우는 거의 없다보면 됩니다. 유리한게 하나도 없거든요...
그러니까...소수는 뺏을 려고 하는거 보다 수비를 탄탄히 하여~국제정세에 기회가 올때...탁월한 협상력으로 연합국이 되는게 현명합니다. 저 당시에는 수명도 짧아 인구 불리기가 쉽지 않습니다. 무조건 연합국가 이루고~인재를 귀하게 여기고 투항하는자나 귀화자를 잘 대우해줘서 많은 귀화자 만드는것도 좋은 방법이죠. 그럴려면 농경기술과 축산기술도 중요하죠.
미스테리임
고구려 총사령관은 강이식 장군
을지문덕은 이름이 아닌 직책이였다??
믿을수없는 역사네
살수 ᆢ 수나라를 살하다 ᆢ 수나라를 죽이다 ᆢ 즉 살수.
큰강을 가로 막는 기술은 지금도 수년이 걸려야 하는 대 토목 공사입니다. 그 예가 4대강 보죠. 1.400년전에 강을 가로 질러 흐르는 물을 막는단건 좀 더군다나 단 몇달만에 사실은 지금도 절대 불가능하단거
수공을 했다는 기록은 없다고 합니다.. 일방적인 대승을 거두었기 때문에 수공이 아닐까 하는 생각으로 만들어낸 이야기라고 합니다.
선비족 이란 말이 있어요
선비족엔 을지 라는 성이 만았답니다
올지모돈
이런걸 탁상 공론이라고 하는거에요.
이이의 10만 양병설도 탁상 공론이죠.
말로는 뭘 못해요?
이이의 10만 양병설은 결국엔 농민들이에요. 농민들이 징집되어 훈련을 해야 한단 말입니다. 전국에서 10만명이요. 이들을 먹일 쌀은 어디서 나고 이들이 농사지어 만들 쌀은 누가 생산합니까? 그래서 탁상 공론인겁니다.
신채호 선생님은 제가 존경해마지 않는 역사 소설가죠. 을지문덕이 진짜로 중원을 정복하자고 했다면 노망이 난겁니다.
일단 인구빨이 장난이 아닙니다. 최소 10배에서 20배 이상 차이가 나요. 그리고 고구려가 이긴 원인에는 기나긴 원정길도 있어요. 보통 중국에서 군사를 일으키는 시점이 7월 정도에요. 왜냐하면 모내기는 하고 가야죠. 씨는 뿌리고 가야 수확을 하죠. 7월에 와서 9월쯤에 요동반도에 도착합니다. 그리고 쌈 몇번하면 10월입니다. 돌아가야 해요. 안그럼 얼어 죽습니다.
이것 때문에 중국 병사들은 조급증이 생겨요. 아 이번전투에서 이겨서 평양을 점령해야 따뜻할때 돌아가는데... 하는 생각인거죠. 그래서 을지문덕에게 대패 했습니다. 물론 을지문덕의 전략도 뛰어났죠. 어떤 전략이었죠? 마을을 비우고 곡식을 태우고.. 상대는 어마어마한 거리를 종단한 부대에요. 곡식이 사라지면 사라질수록 더 조급해집니다. 그래서 결국 깨진거죠. 을지문덕은 수나라 병사들을 평양 앞까지 데려옵니다. 그만큼 시간을 끌었다는 거고. 정말로 낼모레면 돌아가야 하는 상황을 만든거에요. 그래서 한번의 전투로 깨지고 바로 도망가는 상황이 된겁니다.
이건 우리가 중원을 공격할때도 같아요. 7월에 병사를 일으켜 수나라 수도에 도착하면 아마 9월일겁니다. 얼른 싸워서 이겨야 정복에 성공하죠.
거의 불가능한 싸움입니다.
당나라도 그래서 깨졌어요.
당나라가 결국 고구려를 무너뜨린 결정적인 이유는 김유신의 군량미 입니다.
김유신을 떠받드는 분들이 꽤 되는데..
김유신의 업적이 뭐가 있어요? 없습니다.
장군으로서 이룩한 업적이 없어요.
관창 보내서 이긴거? 그거 애초에 10대 1의 싸움이었습니다. 10대 1로 싸워서 이긴게 업적입니까?
12척과 330척의 싸움까지도 안바랍니다.
1:1 로 싸워서 이겼어도 명장입니다. 근데 10:1로 싸워서 그것도 간신히 이긴거에요. 이걸 명장이라고 하면 중국의 인해전술 장군도 명장이겠네.
암튼 고구려 멸망시기에 당나라군은 뒤에서 오는 원군이 있기 때문에 조급증이 없었어요. 그래서 이긴겁니다.
이이는 십만양병설을 주장한 적이 없음~~
@@이우현-r1w맞아요. 10만 양병설은 후대의 이이 학파나 제자들이 어거지로 만든 얘기지요.
고구려가 중국(수, 당) 원정을 한다는 거는 어불성설이지요.
나도 중국 진짜 싫어하지만, 그렇다고 국뽕은 절대 지지할 수 없어요. 원정 전쟁은 적어도 원정군의 전력이 3배 이상이 되어야 하는데, 게다가 거의 1000키로 이상을 원정해서 중국을 정복하는 거는 불가하지요. 거대국가 페르시아가 그리스의 작은 도시국가를 정복하다가 개털린 것도 다 원정군의 디스어드벤테이지때문이었지요.
@@kulleelee2584
님 말도 맞아요 농사는 누가지으며 식량은 어디서 충당할까 하는거요. 근데요 지금도 그러지만(특히 우리나라)가진자들은 지들만 배부르면돼고 백성들은 나라를 지키다 아니 지들을 지키다 죽는걸 당연시했어요
이이가 십만양변설을 아무 대책없이 했을까요 제가알기론 벼슬이치및양반들에게 어느정도 충당하자였어요
당근 매국노들은 그걸싫어해요 그들의 이기심 때문에 나라가7년간 유린당하고 백성들만(일부 충신들)목숨걸고 싸웠지 매국노들은 쓰레기임금 지킨다고 같이 도망갔지요
그때 10만의 군사를 양성했으면 임진왜란이 없었지 않았을까요?그러면 그 수없는희생 학살이 없었을거구요 문화제등등 헤아릴수없게 많이..
제 짧은 의견이네요
에휴
이 덜떨어진게
10만이 진짜 10만.이것냐
일본.애들이 수상하니까
방비를 좀더 강력하게 하자는
이야기였지
그리고 10만 양병설은
이후 사후에.붙여진거다
모자란인간아
당연한 이야기 인데 전쟁이 끝나면 공을세운 장군은 정권의 부담일수 밖에 없음. 쿠데타 세력이 될수도 있고
성이 을지고 이름이 문덕이가?
최후의 승리자는 당나라여서
조선상고사를 읽었단 사람이 평양을 평안도로 특정하는가?
고구려의 기록을 다 중국이 비공개상태라..
고구려가 남진정책을 주장하는 것은 고구려가 베이징 위쪽에 있어서 가능한 일이다ㅡ
만주에 있었다고 그림을 그려서 가르치는 사람들은 모두 뻥이다ㅡ
을지문덕 후에 숙청당함
그 뒤로 계속 쪼그라들었으니
을지씨 찾아와라. 흑치씨도
을지씨인지 을씨 인지 모르지만 고구려에 을씨인 재상들이 왜캐 많은지
한국조선땅은
그런지리적인것이
없어요 거기까지
우리땅인데그곳을
아나요모르면
너무뛰우지말아요
우두머리가 바보면 나라가 망함
지금 우리나라 정부를 보면됨
ㅎ😅ㄷ😅ㄹ😅ㅇ
고건무는 연 개소문에게 개죽음됨.
을지로를생각합니다
고구려는 황제국. 7~900년 역사왕조.
수나라?
겨우30년.
풋😂
결국 정사가 아니네
내 고추 빌려갔는데 돈을 안냄
전쟁 끝나서 숙청 당했겠지 일명 토사구팽 예나 지금이나 똑같다....
그때도 드런정귄이 우린 그런나란가?드넌
을지문에서 덕이 빠져나가서
을지는 ㅁ몽골이름이야...온달도...그러니 고향으로 돌아갔고,,,외지인이라 고구려가 기록ㅇ
서 뺏지
고건무, 이성계
큰 인물은 아니지!!
저놈의 정치 싸움에 결국 나라가 망했군요…
을지로입구 을지로3가 을지로4가
남진정책을 마냥 하면 백제 신라가 연합해서 강력한 고구려라 해도 점령이 쉽지 않았을듯
어쩌면 방법은 단하나 일본을 백제가 이닌 고구려 꼬봉으로 만들어 신라부터 멸망시키고 이후 백제를 쳤다면 가능했을지도
"책보고" 검색 ㄱㄱ
이순신도 임진왜란 이기고 왜 도망갔을까
살해당했을 가능성
을지문덕 은 실존 인물일까?
한국인 이었을까?
성: 을지
이름은: 문덕
이런 이름을 가진 한국인 있나요 ?
역사가 문자로 정식 기록되기 전의 역사는 반정도는 개뻥 임
역사학자들 이상한소리 하지말고 찾아라
없는 인물도 만들어 내는데 분명히 있는
장군이 없어졌다 함은 어디서 어떻게
왜 사라져야 했는지 찾아서 그자리에
동상으로 라도 역사를 만들어 들어야
될 인물이다 사람이 살았던 흔적이
사라진다 함은 역사가 잘못된거
어디서 어떻게 왜 역사가 이러냐
토사구팽 당한거지
개인에이야기하기말고 역사적이야기만해요
연개소문 : 올테면오라~ 먼저 오는 놈들부터 개박살 내주갓으!!!!
일본으로 건너가 왕이 되었다는 학설이 있습니다. 그 당시 일본 넘어 가는건 우리가 생각하는만큼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한,일간의 연표를 보면 확인 가능 하다 합니다. 뇌피셜 아닙니다
조선시대에 지어낸소설이니깐 ㅋㅋㅋ
살수는하북성 ㅡㅡ사르수ㅡㅡㅡ몽골어나거란어를공부하면현제 하북성 호토히으. 북촉강ㅡㅡ이다 ㅡㅡㅁㆍㅇ골어니 거란어를공부해뵈 ㅡㅡ우즈비ㅣㄱ 고어도 중ㅇᆢ하다 우즈비ㅣㄱ 고어어서도낭ㆍㄴ다ㅡㅡㅡ ㅡㅡ우즈비ㅣㄱ은 고구려의 지곗ㆍㄴ이다ㅡㅡ
나라가 망하는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기 마련이다 어리석은..이유가..
저때 을지문덕 말대로 중원을 정복했으면 지금의 역사와 영토가 많이 바꼈을수도있다
입으로 전쟁하는구나
@@구름위를걷는달
무슨말? 고건무 고검무?
@@jco-h1d다른 나라를 침공할려면 통상 세배이상의 군사와 물자가 있어야하는데 고구려가 가능해? 무슨 역사를 국수주의 관점으로만 보냐?
숙청 빠이빠이
성씨 고씨로 바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