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 강연 동영상 공개] “부여, 고구려 역사 왜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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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Опубликовано: 31 янв 2025

Комментарии • 30

  • @무풍-f6w
    @무풍-f6w 2 месяца назад +3

    해방후 80년에 바른역사 입니다. 본 내용을 공영방송 역사스페셜에서 방영되는 그날을 기대합니다. 바른길은 늘 고독합니다. 응원합니다.

  • @dal337
    @dal337 2 месяца назад +1

    응원합니다

  • @보규김-k8w
    @보규김-k8w 2 месяца назад +3

    늘 수고많으십니다
    오랫동안 건강하시어
    저희들에게 올바르게 이끌어
    주시기 바랍니다

  • @긴두깡
    @긴두깡 2 месяца назад +1

    길게 강연하신것도 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 @무풍-f6w
    @무풍-f6w 2 месяца назад

    연 5군 상곡 어양 등은 지금의 산서성 태원시 흔주시 일대의 지명에 공감합니다.

  • @martin.k.conank7172
    @martin.k.conank7172 2 месяца назад +1

    한반도의 동쪽은 대부분이 산지라서 나라가 건국될 수가 없음. 한반도의 서쪽지역이 그나마 평지가 있어서 현재의 서울, 평양이 수도가 될 수 있는 것임. 고구려, 백제, 가야, 신라는 철기병을 운영했던 기마민족임. 기마민족들은 산맥을 넘어서 전쟁하러 가지 않음. 평지나 물길을 이용해 이동할수 밖에 없고 주로 평지에서 싸우는 것임. 철기병들은 그 자체가 무거워서 산을 오르거나 장거리를 빠르게 달릴 수 없음. 성을 나와 전투지까지 이동한 다음. 철갑옷을 입고 말에도 철갑을 씌우고 평지에서 싸우는 것임. 이때는 보병과 장비수송병이 같이 움직임.

  • @성이름-m5v1v
    @성이름-m5v1v 2 месяца назад +2

    저게 사실이라면 .......대체 우리나라 학자들은..

  • @정재문-l2e
    @정재문-l2e 2 месяца назад +1

    강의에서 거의 마지막에 조선시대 삼국사기 편집을 이야기하셨던데.. 제가 어디선가 조선 중종 시기인 1512년에 삼국사기를 재편찬했다고 본 것 같아요. 이때는 중종반정으로 연산군을 몰아내고 사림파들이 등용된 때였으니까요. 당장 조광조가 소격서(도교 관장 사원)를 폐지한 것에서도 알 수 있죠.

    • @ancient-history.youtubecreator
      @ancient-history.youtubecreator  2 месяца назад

      반갑습니다.
      맞습니다.
      1. 삼국사기 판본은
      (1)성암본(1145년(고려 인종) ->13세기말 추정 잔존본 1권만존재)
      (2)(1512년, 중종7년)
      (3)판본인 옥산서원본(1573년, 선조6년)
      (2)/(3) = 정덕본
      (4)일본 궁내청본
      1981년 2월 아키히토 당시 일본 황태자의 지시로 일본 궁내청 서원부(황실도서관)의 장서를 정리하다가 《삼국사기》 정덕본을 수정, 가필한 《삼국사기》가 발견되었다. 50권 9책 완질본이다.
      으로 확인됩니다.
      2. 결론적으로 현재 우리가 보는 즉 역사로 정하는데 근거로 삼는 삼국사기는 사실상 고려 인종 때 김부식이 편찬한 삼국사기
      가 아닌 것이고 조선시대 사대부들에 의한 판본입니다. 그래서 이에 의하여 삼국사기 지리지 등의 한반도 조선시대
      지명으로 된 것은 이 때 내지는 일제 강점기 시대에 이루어진 것으로 보입니다.
      특히, 안동도호부 관련 당나라에 대한 신라의 저항 몰아내기 운동인 나당 전쟁과 관련된 위치 지명은 분명히
      일제 강점기 시기에 조작된 것으로 보입니다.
      즉, 결론적으로 삼국사기 지리지 상의 현재 한반도 지명 기록은 조선시대 판본, 그리고 나당 전쟁과 관련된 위치 지명은
      일제 강점기 시기에 조작된 판본에 의한 것으로 본인은 확인되나, 확실한 증거(판본 교체)가 없기에 공적으로는
      거론 못합니다.
      3. 하지만 삼국시대 위치 관련 기록은 삼국사기를 비롯하여 삼국유사 그리고 각 중국사서와 교차적으로 본인이
      검증하여 확인한 것으로써 분명히 확실한 사항입니다.
      즉, 1)대수, 패수, 한수 사이 활동, 2)백제 동쪽과 신라 서쪽에 최씨 낙랑국, 3)남말갈, 4)육지로 접해진 왜 사항 등은
      확실한 사항입니다.
      감사합니다 ^-^
      역사에 조예가 깊으신 것으로 확인되니. 제가 매주 토요일과 일요일 인터넷 줌강의에 초대하고자 하니
      익명으로도 좋으니, 마이크와 비디오를 끄고 참여하면 누군지 모르니 참여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 역사를 좀 더 조명하여 올바른 역사를 정립하는 한편 정립하는데 힘을 보태주시기 바랍니다.
      【고대사(古代史) 강좌 인터넷 Zoom 강의 실시】
      ■일시 : 오늘 일요일(11월24일) 오후 8시
      (오후 7시40분부터 접속 가능)
      ■강좌 : “신라인의 출처 및 건국“ 제26편
      ■놀랍고도 새로운 신라 역사
      참여하시어 활발한 토론과 검증을 해주시기를 바랍니다.
      이번 시간에는
      ▶‘요서 백제’의 ‘요서 지역 진출 시기‘에 대하여 계속 살펴보고자 합니다.
      ■Zoom 강의 처음 접속 방법 :
      (1)아래 링크를 눌러 접속
      (2)등록 후 접속 -> 성, 이름, 이메일 주소 등록
      (3)등록 후 접속
      (4)안될 때에는 다시 링크 눌러 접속
      ■전우성이(가) 예약된 Zoom 회의에 귀하를 초대합니다.
      참가 Zoom 회의
      us06web.zoom.us/j/87004303571?pwd=KvsmjDJWVsjHnkTK4hasivjIboprmv.1
      회의 ID: 870 0430 3571
      암호: 481825
      감사합니다 ^-^

  • @sl8hf_may
    @sl8hf_may 2 месяца назад +1

    저 당시 요동 요서의 기준은 "요"가 되어야죠. 당시 있지도 않은 후에 불려진 요하를 기준으로 요동 요서라고 하면 역사 연구할 자격이 없습니다.
    그 "요"지역에 요동성이 있었고 그성이 있는 지역에 요주를 설치했고 요지역에 거란이 일어나 요나라라고 했습니다.

    • @ancient-history.youtubecreator
      @ancient-history.youtubecreator  2 месяца назад +2

      좋은 견해이십니다.
      But. 본인의 견해를 피력하고자 합니다
      1. 요동, 요서의 기준은 "요"가 아닙니다. 이러한 기준 설정에 대한 근거를 알려주시면 저에게 공부가 되겠습니다.
      저의 연구 결과에 의하면, 요동, 요서 기준에 대하여는 여러 견해가 상당합니다. 하지만 여러가지로 맞는 견해는
      1)중국계 국가 입장으로 먼 동쪽
      2)요수 인근
      3)요수인근에 세원진 연나라가 설치한 요동군 인근
      이곳이 모두 일치하는 곳은 단 한군데인데, 이곳이 바로 사서 기록상의 소요수와 대요수가 있는 지역입니다.
      말씀하신 '요'나, 요동을 거론하면서 사서 기록상의 소요수와 대요수를 거론하고 이 위치를 제대로 비정하지 못하면
      말씀대로 연구할 자격이 없습니다.
      이 소요수, 대요수 지역에 요동군이 있었고, 이곳을 나중에 산서성 황수하 지역에서 진출한 거란족이
      이곳에서 요나라를 세운 것입니다.
      그런데 이 소요수 대요수를 제대로 확인하려면 바로 말갈(이 동영상에서 설명하는 장성의 북쪽의 부여 동쪽 읍루의 말갈)
      백산에서 발원하는 압록수와 합류하는 소요가가 합류한 대요수 사항을 확인하여야 합니다.
      이곳이 바로 이 동영상에서 다루는 지역입니다.
      2. "그 "요"지역에 요동성이 있었고 그성이 있는 지역에 요주를 설치했고 요지역에 거란이 일어나 요나라라고 했습니다."
      라는 언급에서 1)요지역이 어디인지가 먼저 문제입니다. 이는 위의 "1"사항에 의합니다.
      2)말씀하신 '요주'는 당나라가 고구려를 공격할 때 설치한 것으로써 이는 요동, 요서가 생긴 한참 후의 일입니다.
      따라서 이에 따르면 전후 순서가 바뀐 것입니다.
      3)요지역에 거란이 일어나 요나라라고 한 것은 제가 연구한 바로는 전혀 근거가 없으며, 잘못된 견해입니다.
      많은 견해가 있으나 "흔히 요라는 국호를 요하(遼河)나 요산(遼山)에서 유래했다고 말하지만, 둘 다 사실이 아니며 그 어원은 여러 학설이 분분할 뿐, 불명확하다."라는 판단이 있습니다.
      사서 기록상 원래 거란은 황수하 즉 지금의 산서성 삭주시 산음현 지방에 지금도 존재하는 황수하 지역의 원래 선비지역
      (즉, 장성의 북쪽에 있는 부여의 서쪽에 있는 선비 즉 산서성 태행산맥 인근)애서 발상하여
      세력을 확대하여 요동(요서)지방에 진출한 후 요나라라고 한 것입니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이 바로 "장성의 북쪽에 부여가 있고 그 서쪽에 선비(거란)이 있다"는 사서 기록상의 제대로 된 위치
      설정으로써 먼저 고찰하여야 할 것이 바로 장성 즉 진나라 만리장성의 동쪽 끝 지점인 요동 지방입니다.
      여기서 요동이 나옵니다. 사서 기록상 진나라 만리장성은 분명히 "임조에서 요동"이라고 그 설치장소를 정확히
      표기하였습니다. 여기서 요동은 여러 의미가 있으나 위와 같고, 그 후대 기록상 진장성은 낙랑군 수성현에 있다는 진서
      기록에 의하여 그 위치를 확인하면 바로 산서성 태행산맥 동쪽의 하북성 지역입니다.
      이곳이 요동지방이자 거란의 요나라가 나중에 진출하여 건국한 지역입니다.
      이에는 앞서 설명한, 소요수, 대요수 그리고 요동군이 있었고 이를 설치한 연나라가 그 서쪽에 있었고,
      이곳 바로 동쪽에 위만조선이 있다고 모든 사서가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역사는 쉬운 것이 아니라고 판단됩니다.
      감사합니다

    • @성성봉-t6z
      @성성봉-t6z 2 месяца назад +1

      자세한 설명이해에 많은 도움이됩니다 즉 현재 우리가 알고있는것은 현재기준 수백년수천년 기록을 혼재하여 이해하는데 이것을 시간 순서로 나누어서 판단하여야
      제대로 해석한다고 봅니다
      즉 한나라 수나라 당나라까지는 현재 우리가 말하는 중국의 중심은 한중 시안(장안) 낙양 산서성남쪽 중원이었고 현재북경까지는 진출하지 못하였죠백제가 망한후 산동까지 영향을 미치게되기 시작하였다봅니다@@ancient-history.youtubecreator

  • @황성태-w6m
    @황성태-w6m 2 месяца назад

    고조선,부여 및 고구려의 올바른 위치부정을 1차 문헌사료를 통해 정확히 규명하신 전선생의 노고를 치하 합니다.
    어쨌든 우리 고대사의. 강역은 지금보다 더 북서쪽으로. 만주를. 넘어 크게 확장해야 제대로된 역사강역이. 되겠군요😊

  • @성이름-m5v1v
    @성이름-m5v1v 2 месяца назад +1

    선생님은 역사학사이신가요?

  • @이훈-s2f
    @이훈-s2f 2 месяца назад

    그럼 광개토태왕에 서토정벌 한 곳은 현제 어디입니까요

    • @sl8hf_may
      @sl8hf_may 2 месяца назад +1

      그쪽은 고비지역이겠죠.. 지금의 그 사막지역에 "치"를 가진 고성이 존재합니다.

    • @TV-DOCJON
      @TV-DOCJON 2 месяца назад

      ​@@sl8hf_may광개토 대왕이 사막을 달렸군요!!! 낙타타고???

    • @소민파파-l6p
      @소민파파-l6p 2 месяца назад

      황화 흐르는 전영역이 고구려 강성시기입니다. 위구르랑 맞붙는곳 말입니다. 사서 기록 찾아보세요

    • @TV-DOCJON
      @TV-DOCJON 2 месяца назад

      @소민파파-l6p 사고전서 찾아보니까 없던데요. 진짜 찾으신거 맞으세요? 아니면 후라이 치시는 건가요?

    • @ancient-history.youtubecreator
      @ancient-history.youtubecreator  2 месяца назад

      반갑습니다.
      제가 아둔해서 그런지 몰라도 송구하지만 광개토태왕의 서토정벌 사항은 어느 사서 기록 내지는 어느 기록이나 증거에 의한
      것인지요.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제가 알기로는 그러한 사항이 태왕비문이나 삼국사기 기록에는 없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