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국가 위치를 찾아서
고대국가 위치를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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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졸본성
올해 마무리
[ZOOM 강연 동영상 공개]
“고구려 졸본성”
고대국가 위치를 찾아서
ruclips.net/user/고대국가위치를찾아서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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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서 백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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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 강연 동영상 공개] “요서 백제” 고대국가 위치를 찾아서 ruclips.net/user/고대국가위치를찾아서go
백제 하남 위례성 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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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 강연 동영상 공개] “백제 하남 위례성” 고대국가 위치를 찾아서 ruclips.net/user/고대국가위치를찾아서go
고구려 평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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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 강연 동영상 공개] “고구려 평양성” 고대국가 위치를 찾아서 ruclips.net/user/고대국가위치를찾아서go
[대중 강연 동영상 공개] “발해의 올바른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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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 강연 동영상 공개] “발해의 올바른 역사” 고대국가 위치를 찾아서 ruclips.net/user/고대국가위치를찾아서go
[대중 강연 동영상 공개] “부여, 고구려 역사 왜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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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 강연 동영상 공개] “부여, 고구려 역사 왜곡” 고대국가 위치를 찾아서 ruclips.net/user/고대국가위치를찾아서go
황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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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oom 강의 동영상 공개] “황수하” 거란(요나라) 위치 기준 (고구려, 발해, 고려의 위치 기준) 고대국가 위치를 찾아서 ruclips.net/user/고대국가위치를찾아서go
[Zoom 강의 동영상 공개] “요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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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택"(당 태종이 고구려 공격시 안시성 패배 후 퇴각시 장소) 고대국가 위치를 찾아서 ruclips.net/user/고대국가위치를찾아서go
Verification of distortion of entire ancient history based on the map of a historical YouTub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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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륙 위치 주장에 대한 검증 제8편] 어느 역사 아마추어 유튜버의 지도지명만에 의한 전체 고대사 왜곡에 대한 검증 검증 대상인 이 유튜브의 논리에 의하면, 1)삼국의 위치를 북으로부터 남쪽으로 일렬로 고구려, 백제, 신라를 설정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1)삼국은 삼한에서 건국되었는데, 백제의 마한은 진한의 서쪽에 존재 (2)백제의 동쪽에 최씨 낙랑국과 신라가 존재 (3)백제와 신라 남쪽에 삼한 시기부터 육지로 접한 왜가 존재 (4)신라 북쪽의 남옥저 죽령지방이 고구려와 관계있다. (5)양자강 유역은 오히려 백제 영역 기록 (6)양자강 유역은 당나라가 수군 및 수군선박을 차출한 곳이다. 등에 의하여 고구려 남쪽에 신라와 백제가 동서로 존재한다. 2)고구려 압록강과 고구려 평양성 위치는 (1)고구려 압록...
Verification of a YouTuber's distortion of Goguryeo and ignorance of ancient hi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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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륙 위치 주장에 대한 검증 제7편] 어느 유튜버의 고구려 왜곡 비정 및 전체 고대사 무지에 대한 검증 검증 대상인 이 유튜브의 지도상 위치에 의하면, 1)고구려 영역을 대륙의 북부 지역 전체는 물론 (1)먼저 만주지방 전체를 고구려 지역으로만 설정하는 잘못이 있다. (2)한반도 전체를 고구려 영역으로 설정하는 잘못이 있다. (3)대륙 동쪽에 위치시킨 백제와 신라가 대륙의 최남단 지방까지 존재하는 것으로 잘못 설정하고 있다. 2)삼국사기 상의 모본왕 2년 서기 49년의 고구려의 한 즉 후한의 (1)분명히, 엄연한 중국사서 정사 기록상에 이들 연5군은 연나라가 설치한 것이기 때문에 연나라 위치를 먼저 확인하여야 합니다. 그런데도 이를 전혀 다루지 않은 것은 물론 연나라 위치와 전혀 맞지를 않다. (2)...
Verification of the confusing locations of the entire ancient history including Samha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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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륙 위치 주장에 대한 검증 제6편] 삼한, 삼국, 옥저, 읍루 등 전체 고대사 혼란 위치에 대한 검증 검증 대상인 이 유튜브의 지도상 위치에 의하면, 중국 춘추시대의 나라인 진나라 설정을 비롯하여, 우리 고대사에 있어서 중요한 사실인 갈석, 읍루, 동옥저, 북옥저, 남옥저, 백제와 신라 위치, 진한 및 마한의 위치 등 이 논리의 대부분의 위치는 사서 기록에 전혀 맞지 않는 것은 물론 혼란된 위치 설정이 명백히 확인된다. 이러한 잘못되고도 혼란된 위치설정에 의한 논리를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는 것은 올바른 우리 고대사를 정립하는데 있어 상당한 저해 요인이 됨이 명백하다. #진나라, #갈석, #읍루, #동옥저, #태행산맥, #의무려산, #개마대산, #북진시, #북옥저, #남옥저, #마한, #진한. 00:...
Verification of the logic of the location of our ancient country in southern Shanxi Provi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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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륙 위치 주장에 대한 검증 제5편 산서성 남부 위치의 우리 고대국가 위치 논리 검증 1)이 논리 위치는 원래 이 논리 위치의 바로 남쪽인 낙양으로부터 최소 2000리 이상 떨어진 곳이다. 2)이 논리 위치의 낙랑군, 고구려 위치의 바로 남쪽에는 우리의 삼한과 삼국이 존재하여야 한다. 이 2가지 논리 검증에 의하여 우리 고대국가인 고조선 및 고구려의 산서성 남부 위치 즉 태행산맥 남단, 황하강 바로 북쪽, 현재 중국의 낙양시 바로 북쪽 위치 논리는 수도 없이 많은 역사적 사실에 위배되어 도저히 성립될 수 없는 논리임이 명백하다. #천하지중, #연5군, #한2군, #태행산맥, #유주, #평주, #요동, #삼한, #삼국 00:00 도입 01:35 이 논리 위치는 원래 이 논리 위치의 바로 남쪽인 낙양으로부...
Verification of the logic of historical research that adheres to the hi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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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륙 위치 주장에 대한 검증 제4편 대륙 삼국 및 한반도 낙랑국에 대한 재야의 역사 고수라는 역사연구가 논리 검증 1. 삼국의 대륙에서의 남북으로 나란히 늘어선 위치 논리에 대한 검증 1)고구려, 백제, 신라는 삼수 즉 3개의 강이 흐르는 곳에서 같이 활동 2)고구려 남쪽에 동서로 신라와 백제 위치 활동 3)고구려 남쪽에 있는 남말갈이 그 남쪽에 동서로 있었던 신라와 백제 괴롭힌 사실 4)동서로 있었던 신라와 백제 남쪽에 삼한 시기부터 육지로 접해 있었던 왜 존재 등에 의하여 고구려, 백제, 신라는 같이 있었던 것으로 확인 2. 최씨 낙랑국의 한반도 전체 위치 논리에 대한 검증 1)백제 동쪽이자 신라 서쪽에 최씨 낙랑국 존재 2)최리가 호동왕자와 만났던 고구려 남쪽이자 신라 북쪽의 남옥저 죽령 지방 사...
Verifies the location of the border between Goryeo and the Liao Dynas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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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하대 고조선 연구소 만주 발해.신라 국경 위치 검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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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독립 운동 재개해야 !!! 제83차 역사포럼 강연 실황 공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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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상 초유! 전체 10권 중 제10권 전권 완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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Комментарии

  • @한훈-b9k
    @한훈-b9k День назад

    산성과 성도 구별 못하는 학자라는 사람이 있을까요 못하면...

    • @ancient-history.youtubecreator
      @ancient-history.youtubecreator День назад

      @@한훈-b9k 산성과 성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산성이던 성이던 역사상의 아차(산)성이 현재 서울의 워치의 것이 맞느냐가 중요한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감사합니다 ^-^

  • @최물길
    @최물길 День назад

    이렇게 명확한 역사기록이 있는데도 사학자들은 연구는 제대로 안하고, 비정만 할까요?

  • @sung-weoncho3829
    @sung-weoncho3829 4 дня назад

    동녕부를 현재의 요양이란 전제로 설명한 것인데 원사에 동녕부가 북경 북쪽이라는 기록이 발견되면 명청시대 역사조작이 있었다는 것이 확인됩니다

    • @ancient-history.youtubecreator
      @ancient-history.youtubecreator 4 дня назад

      반갑습니다만, 댓글을 다신 것이 이번까지 네 번째 이신 것 같은데...... 1)■202406월경 흠정만주원류고의 문제는 고구려에 대한 설명이 없고 요동이 요하 동쪽의 요동반도로 간주되는 것입니다. 사서의 오류도 분석해서 바로 잡아야 하니 아무때나 끝장 토론을 시작할수는 없습니다 흥분해서 분석하면 다시 오류가 발생합니다. 등....................... 이 댓글에도 제가 답글을 달아 드렸지만, 댓글에 대하여 자기 의견과 질문만 하시지 마시고 본인 질문에 대한 답변에 의한 질문도 답을 해야 하는 것 아닌지요? 이미 설명도 드렸거니와, 1)저의 다른 관련 동영상을 보시라고 권하였지만, 전혀 안보시고 본인이 기존에 생각하여왔던 바만을 계속 고집하시는 것 같은데, 2)남의 의견에 대하여 비판을 하면서 자기 기존을 계속 고집하려면 확실한 근거가 있어야하는데도 이는 제시하거나 살피지도 않는 관계로 답글을 안달고 설명을 안드리려고 하다가 연초라 시간이 오래간만에 나는 관계로 답변을 드리려고 합니다. 이전에 이미 “5)말씀하신 "요동이 요하 동쪽의 요동반도로 간주"된다는 사실은 제가 연구가 부족해서 그런지 저는 파악하지 못했습니다. 설명을 부탁드려도 될런지요.(어떤 기록이 그런지)” 이에 대한 저의 질문에 대한 답은 있으신지요? 아울러 이번에는 “원사에 동녕부가 북경 북쪽이라는 기록이 발견”된다는 전제를 달으셨는데, 이에 대한 기록이나 증빙자료가 있으신지요? 그러면 제시하시거나 저에게 가르쳐주시기 바랍니다. 제발 이번에는 이에 대해서라도 답을 주시기 바랍니다. 저의 연구가 부족하고 잘못되었을지 몰라도 제가 확인한 바로는 ■『원사(元史)』「지리지(地理志)」 요양등처행중서성 동녕로 상의 1)동녕로(東寧路). 본래 고구려(高句驪) 평양성(平壤城)으로 또한 장안성(長安城)이라고도 하였다. 한(漢)이 조선(朝鮮)을 멸하고 낙랑(樂浪),·현토군(玄菟郡)을 설치하였는데, 이것이 낙랑지역이었다. 상의 동녕로는 고구려 평양성, 낙랑군 낙랑지역이므로 지금의 하북성 보정시 일대인 것으로 파악되었고, 2)서경을 고쳐 동녕부(東寧府)라고 하였다. 상의 동녕부는 지금의 요령성 요양시로 파악됩니다.(원래의 고구려 평양성에서 옮긴 평양의 옛터가 아닌 곳) 입니다. 여기서 1)지역은 삼국지 위서 동이전 부여전 상의 장성의 남쪽에 있다는 고구려 지역으로써 이곳은 장성인 당시 만리장성이 그쳐 있었던 지금의 태행산맥 동쪽의 하북성 보정시 일대입니다. (이에 대하여는 이미 언급하였지만, 본인의 관련 유튜브 동영상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현재 장성이 있는 북경시 북쪽을 지나 하북성 진황도시 산해관에 이르는 장성은 진장성이 아니라 명장성이 확실합니다. 이에 대하여는 “tvn 벌거벗은 세계사(2024.10.16) 174회 바다를 닫아 유럽에게 무너진 세계 패권국가 중국 고려대 역사교육과 조영현 교수“ 강의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이와같이 고구려, 고려 시대를 통틀어 하북성 북경지방은 전혀 역사 기록에 나오지 않는 지역으로써 이곳 북경 지방은 사서 기록에는 나오지 않지만 물론 고구려 및 발해 영역이었다가 이후에는 발해를 멸망시킨 거란의 요나라 및 여진의 금나라가 차지하다가 명나라 영역이 되었던 곳입니다. 반면에 고려는 고구려 남쪽에 있다가 멸망한 백제 지역을 차지한 신라가 이후 이 지역을 고려에게로 그대로 물려주어 북으로는 발해와 요나라, 금나라 그리고 남으로는 소위 통일신라와 고려 시대로 이어지고 원나라 시기에 고려는 대륙의 땅을 완전히 원나라에게 물려주고 요령성 요하 동쪽과 한반도에 이르는 지역으로 후퇴하게 된 것으로 파악됩니다. 도대체 이미 부탁드린 “원사에 동녕부가 북경 북쪽이라는 기록이 발견“ 된다는 그 기록이 있으면 저에게 제시를 해주시지요? 제가 보기에는 어느 역사 비전문가인 어느 유튜버의 북경시 인근 우리 영역 주장을 그대로 신뢰하시는 것 같은데 누누이 강조하지만 이는 전혀 근거가 없습니다. 이곳에 나타나고 있는 고구려나 고려 관련 지명은 이곳을 영역으로 하였던 고구려 관련 유적, 유물에 의한 지명이지 고려 관련은 절대 될 수가 없습니다,(요나라와 금나라 그리고 원나라 지역) 다시한번 말하지만 이 지역(북경시)과 관련하여 확인되는 그 어떤 역사적 기록은 원나라가 이곳 북경에 그들의 도읍인 “대도”를 정하기 이전에는 전혀 없이 역사적 기록의 불모지 였습니다. 만약 있다면 이미 부탁드렸지만 필히 이를 저에게 알려 주시기 바랍니다. 자신의 신뢰는 자유지만 이 신뢰에는 근거가 있어야 옳은 신뢰입니다. 감사합니다.

  • @user-koreaman
    @user-koreaman 7 дней назад

    졸본에서 졸은 쫄병의 바로 그 졸입니다. 적들이 조롱하는 것인데 그걸 인정하고 수용해서는 안됩니다.

    • @ancient-history.youtubecreator
      @ancient-history.youtubecreator 7 дней назад

      반갑습니다. 옳으신 말씀이시기도 합니다. 말씀하신대로 중국측에서 우리를 비하하여 붙인 것을 사대주의에 의하여 편찬된 삼국사기와 삼국유사가 이를 그대로 사용했다고도 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기록상에 수많은 기록이 있고, 졸본부여 등 명칭과 함께 역사학의 기존인 사서에 기록되어 있으므로 고구려의 도읍으로써 흘승골성과 홀본(광개토태왕비문상)과 함께 사용하는 것은 무리가 없는 것으로 판단됩니다. 그리고 이 졸본의 졸본이 말씀대로인지 여부가 명백히 입증되는 것이라면 이를 따라야 하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사용을 할 수 있는 것이고, 제가 언급한 것은 삼국사기를 주로 하여 강의한 것이므로 당연히 사용한 것이고, 또한 통상적인 고구려 찻 도읍으로 알고 있기에 편의상 사용한 것이기도 합니다. 감사합니다.

  • @돌담길-s6h
    @돌담길-s6h 9 дней назад

    물론 여러가지 역사전문 자료로서 호타하를 고구려초부터 고려때까지 압록강으로 보신 것으로 알고있읍니다만 다른 것보다 고려시대에 압록강변에 강동6주가 있을터인데 흥화진 귀주등이 국경지대 주변으로 비교적 산이 많은 지역으로 묘사되어 있읍니다.그런데 호타하 주변은 강과 평야가 많은 곳으로 지형이 전혀 맞지않지 않을까요? 또한 고구려 주몽때 졸본성 근처에 산이 많은 행인국 비류국등을 정벌했다는데 졸본성이 역시 산동성부근 평야지대라면 지형조건이 영 다르지않나 생각이 들어서요. 물론 고구려 중기나 말기때 남평양이 화북성 황하주변에 있었던 것은 역사적 사실인 것같고요.

    • @ancient-history.youtubecreator
      @ancient-history.youtubecreator 7 дней назад

      좋으신 지적이십니다. 물론 현재 지형에 의한 위치 설정도 중요하지만, 1. 흥화진, 귀주 위치 1)지형은 많은 세월동안 침식등에 의한 변화도 있을 수 있는 것이고, 2)역사는 사서 기록에 의한 수많은 관련 사항에 의하여 입증되는 것이 당연한 것으로 사료됩니다. 3)흥화진, 귀주등이 고려사기록상 "흥화진(興化鎭)에 이르러 기병 12,000명을 뽑아 산골짜기에 매복시킨 후에," 등이 있으나. 흥화진의 '진'은 분명히 사서 기록대로 압록강 변의 나루터인 점 그리고 이들이 모두 압록강 인근에 있는 것이 확실한 것이거니와압록강의 수많은 관련 사서 기록등에 의하여 하북성 호타하의 압록수(마자수, 청하) 사항이 맞는 것으로 판단됩니다. 4)압록수와 관련된 본인의 다른 많은 동영상 설명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2. 졸본성 위치와 행인국, 비류국의 위치 설정 1)졸본성은 분명히 남말갈(장성의 북쪽에 있는 북 흑수말갈로부터 동남으로 10일 거리) 인근에 있는 채 이 남말갈이 바로 남쪽의 백제와 신라를 수시로 괴롭힌 사항, 남말갈이 있는 졸본성 가까이에 패수(소해)가 백제와의 경계 등 사항에 의하여 하북성과 산서성 사이 인근(태행산맥)의 진장성 위치에서 동남쪽은 산동성 지방임이 확인됩니다. 2)행인국은 자세한 기록이 없어 그위치가 산이 많거나 하는 것을 확인할 수 없는 채, 태백산 동남쪽에 있다는 기록이 단 하나 있는데, 이 위치가 바로 지금도 실제 존재하는 태백산인 백산인 산서성 대동시 영구현에서 발원한 것이 지금의 하북성 호타하이고, 이곳에서 동남쪽은 바로 지금의 하북성 호타하 남쪽 흐름 지방이 맞습니다. 삼국사기 마저도 그 위치와 실제를 알수 없는 삼국유명미상지분(三國有名未詳地分)조에도 기재된 것입니다. 3)비류국은 당연히 여러 사서 기록에 의하여 당시의 압록수 인근으로써 지금의 하북성 호타하 인근 지역이 확실합니다. 4)이러한 사실을 종합하면 행인국과 비류국은 고구려가 초기에 북쪽의 부여지방에서 탈출하여 남쪽에서 건국한 후 곧바로 북쪽의 이전 선조국인 고조선 및 부여 지방 영역을 탈환 내지는 확대하고자 진출하면서 정벌한 것으로 확인되는 것입니다. 5)이에 대하여도 다른 고구려 관련 동영상을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좋은 지적이십니다. 하지만 부족한 면이 있으나 더욱 신빙성 있는 역사적 사실 정립은 수많은 관련 사서 기록에 많이 내지는 실제로 입증되고 부합되는 위치로 설정하는 것이 올바른 역사로 여겨지는 바입니다. 감사합니다 ^-^

  • @min-sf6fc
    @min-sf6fc 9 дней назад

    근데 결국 이런 부분은 현재 전체 강단 사학계의 악랄함과 어리석음에 비한다면 사소한 문제라고 보입니다. 또한 일식관측지는 명확하게 양자강 유역이 등장하는 것이 사실이고 양자강 유역 일식기록은 다른 중국측 기록에도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독자적인 진실이라고 봐야 합니다. 둘다 만족하는 정답이 분명 있을겁니다. 그것 역시 역사적 실체를 알아가는 주요 요점이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 @ancient-history.youtubecreator
      @ancient-history.youtubecreator 8 дней назад

      1)근데 결국 이런 부분은 현재 전체 강단 사학계의 악랄함과 어리석음에 비한다면 사소한 문제라고 보입니다. -------옳으신 말씀이실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현재 잘못된 교과서상의 역사는 바른 역사에 의한 반론에도 수정할 의도가 전혀 없는데, 더군다나 잘못된 것으로 난립하는 반론에 의하여는 수정하지 않을 명분으로 이용되거니와 절대 수정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본인의 그동안의 역사활동에 의한 결과입니다. 2)(1)또한 일식관측지는 명확하게 양자강 유역이 등장하는 것이 사실이고 양자강 유역 일식기록은 다른 중국측 기록에도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독자적인 진실이라고 봐야 합니다.----------옳으신 말씀 이실 수도 있으나, 양자강 유역 일식기록은 그곳이 초기 신라의 중심이라는 사항은 역사적 사실과 맞지 않으며, 이후 후기 신라는 한반도로 옮긴다는 일식기록 역시 사실과 맞지 않고 계속 대륙에 존재하는 등 일식기록 자체가 신빙성이 없습니다. 그리고 다른 일식기록 위치인 백제와 고구려 위치도 전혀 역사사실과 맞지 않습니다. (2)양자강 유역의 신라 영역 등의 사실은 사실일 수도 있으나, 역사는 엄밀한 문헌학적 자료(사서 기록)에 의한 검증, 입증이 필요한 차원에서 양자강 유역의 신라 위치 사실은 전혀 검증, 입증이 안됩니다., 있다면 저도 당연히 이를 인정해야지요. 감사합니다 ^-^

  • @돌담길-s6h
    @돌담길-s6h 10 дней назад

    압록수는 호타하보단 상건하가 역사적으로 더 맞지않을까요 (고려시대) 그리고 고구려초에는 압록강,구려하는 汾河였고요.

    • @ancient-history.youtubecreator
      @ancient-history.youtubecreator 10 дней назад

      반갑습니다. 역사 특히 사료가 부족하고 그동안 왜곡된 바에 의하여 현재 역사적 위치에 대한 논란이 많고, 이에 대한 역사 전문가들의 논리가 다양합니다. 그러나 제가 연구한 바에 의하면 수많은 관련 사항이 모두 입증되어야 함에도 대부분의 논리는 일부 사항만을 맞춘 채 잘못된 위치 설정을 하는 것으로 명백히 확인됩니다. 물론 이도 일개 논리로써 본인의 개인적인 논리이자 잘못된 것일 수도 있습니다. 이의 진실성 여부는 말씀하신, 질문하신 분들 같은 분들의 판단과 검증에 의합니다. 하지만 여기에는 말씀하신, 질문하신 분들 같은 비전문가분들이 알 수 없는 수많은 역사적 관련사항이 있음에도 이를 모름에도 불구하고 판단하고, 단정함에 현재 역사에 문제점이 있다고 사료됩니다. 그러나 이를 차치하더라도 올바른 역사는 상식적인 역사에도 어긋나지 않고 단순한 사항에도 어긋나지 않은 것이 올바른 역사입니다. 1)본인이 연구한 바에는, 삼국시대 북쪽의 고구려 영역은 이전 시기의 고조선 및 부여 그리고 이후 시기의 발해(남쪽에 통일신라)로 이어져 이후 요나라, 금나라로 이어지고, 남쪽의 백제와 신라 영역은 당연히 발해 남쪽의 통일신라 그리고 고려에게로 이어집니다. (1)그렇다면 여기에서 고구려 영역이자 통일신라 및 고려 영역의 북쪽 영역이자 이전의 고조선 및 부여 영역은 어디였고, (2)반대로 고구려 영역 남쪽이자 이후의 소위 통일신라이자 고려영역이자 이전 시기 삼국시대의 백제와 신라 영역은 어디였는가를 확인하면 됩니다. 그런데도 이러한 기본적인 사항을 무시하고 고구려 영역과 고려 영역을 연계시키지 않고 별도로 설정하는 것은 심히 잘못된 역사입니다. 말씀하신 고구려(초)의 분하, 고려의 상건하 위치가 바로 이 잘못된 인식에 의함입니다. 이는 어떠한 잘못된 연사전문가, 그리고 전혀 역사를 연구하지도 않고 할 능력도 없는 아마추어 사이비 유튜버의 고려 시대 위치(특히 고려 서경의 현재 북경시 위치 주장)를 주장을 그대로 따른 것으로 파악됩니다. 그런데도 현재 많은 역사를 모르는 분들이 이를 그대로 신뢰하고 추종하고 있는 잘못된 현상으로 사료됩니다. (1)고구려는 이전의 부여 및 고조선 영역이자 위치로써 이는 사서 기록상 분명히 연나라 동쪽, 요동이라고 모든 기록이 기록하고 이는 상식입니다. 연나라는 중국 중심부인 지금의 시인, 낙양, 정주 지장에서 특히 낙양(전통적으로 모든 중국계 국가의 중심지)에서 최소한 2000리 동북쪽에 위치한 전국시대 최동북방 국가입니다. 이곳의 동쪽에 고조선이 있었고 부여가 있었다가 이동했는데 이곳에 나중에 고구려가 이곳에 설치했던 요동군, 현토군, 낙랑군을 정벌하고 고구려의 영역이 된 곳입니다. 이러한 사항은 연나라 위치 동쪽, 연장성, 진장성, 갈석산, 압록수 사항 압록수 사항은 소요수, 대요수, 발원지 말갈의 백산, 양평현, 안평현 등 수많은 사실에 의하여 입증됩니다. 이곳은 현재 태행산맥 바로 동쪽의 하북성 보정시와 석가장시 일대 사이가 분명합니다. 여기에 현재의 하북성 호타하 즉 이전 고구려 시대 압록수이자 마자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항은 현재도 존배하는 말갈의 백산, 안평현(존재)에 의하여 입증됩니다. 이 압록수를 현재의 분하라고 하고 이곳 하류인 산서성 태행산먁 남쪽을 고구려 위치라고 주장하는 어느 잘못된 역사연구가의 주장은 중구국가의 중심부 위치와 중복되는 심각한 오류 설정에 의한 것으로 상식적인 면으로도 심히 잘못된 설정인 것입니다. (2)그리고 고려시대 압록수의 상건하 주장은 역사를 전혀 모르는 설정인 현재의 북경시의 고려시대 영역설정 주장에 의한 것으로써 이 북경시는 전혀 역사적 기록에 등장하지 않은 채 오로지 몽골의 원나라가 중국을 정벌한 이후 이곳에 도읍인 대도를 정한 후에야 비로소 역사적 기록에 등장하는 이전시기에는 역사의 불모지였습니다. 또한 역사는 고구려 영역->발해->요나라->금나라로 이어지는 것이 상식적인 맞는 역사입니다. 이곳 북경시는 이에 해당됩니다. 반대로 이 고구려 영역 남쪽이자 발해 남쪽에 통일신라가 있다가 바로 고려에게로 그대로 이어지게 됩니다. 더군다나 압록수는 이를 입증하는 것이 고구려 압록수 사항에서 반드시 확인하여야 할(그럼에도 불구하고 전혀 분하 주장이아 상건수 주장에 따른 논리는 이를 확인하지 못하거나 않음) 소요수가 대요수와 만난 이 대요수가 압록수와 만나는 지역이 안평현(현재도 존재)이자 나중의 박작성이자 통일신라와 고려 시대 흥화진입니다. 이곳이 고구려 시대 이후의 북쪽의 발해와 남쪽의 통일신라의 국경선입니다. 이는 다시 북쪽의 거란의 요나라와 고려의 국경선이자 고려의 서희 강동6주이자 고려 천리관성 시작점입니다. 이곳 북쪽에 요나라(북경시 포함) 영역이고 남쪽에 고려시대 영역입니다. 이외에도 수많은 입증사항이 있으나 생략하고 결론적으로 그러므로 고구려 압록수와 신라시대 안북하 그리고 고려시대 안북도호부의 압록수는 같은 것입니다. 이들이 모두 부합하는 압록수는 공히 지금의 하북성 호타하일 수밖에 없고 고구려의 분하와 고려의 상건하는 전혀 이러한 모든 사항 및 같은 강이라는 사실에 전혀 부합하지도 않고 이를 입증하지도 않고 할 수도 없는 잘못된 논리입니다. 자세한 것은 본인의 많은 관련 유튜브 동영상을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 @김성엽-o2p
    @김성엽-o2p 15 дней назад

    선생님 오래전 영상을 찾아보던중 보는대요 지도상으로 보면 어느정도 납득은 되지만 백제의 위치에 항구가 없는것이 이상합니다. 현대에도 항구를 확보하기 위해 강대국들이 그렇게 싸우는데 대륙백제에 항구가 없어요.... 어떻게 생각해야할까요?

    • @ancient-history.youtubecreator
      @ancient-history.youtubecreator 15 дней назад

      반갑습니다. 좋은 지적과 의견을 주셨습니다. 하지만 이는 전문적이기도 하고 인식의 전환이 필요한 것이기도 합니다. 그동안 백제라는 국호가 백가제해(百家濟海) 즉, “많은 사람들이 바다를 건너왔다”라는 의미에 의하여 정해졌다고 인식하고 알고 왔습니다. 하지만, 1) 이는 많은 사서중에 중국사서 수서 백제전에만 유일하게 기록된 것으로써 “初以百家濟海“(당초에 百家가 바다를 건너 왔다(濟)고 해서 [나라 이름을] 百濟라 불렀다.) 라고 기록된 것이 유일합니다. 그러나 정작 원래 기록이라고 할 수 있는 중국사서 북사 백제전에는 “初以百家濟, 因號百濟.”(당초에 百家가 건너 왔다(濟)고 해서 [나라 이름을] 百濟라고 불렀다.)라고 기록되어 바다여부가 불명확합니다. 더군다나 우리나라 사서인 삼국사기 백제전에는 “後以來時, 百姓樂從, 攺號百濟.”(그 후 올 때 백성(百姓)들이 즐거이 따랐다고 하여 국호를 백제(百濟)로 고쳤다.)라고 하여, 북사 백제전의 무엇을 건너거나, 수서 백제전의 바다를 건너거나 한 것이 아니라 같이 따른 것(濟, 從)으로 한 바가 있습니다. 물론 수서 기록이 맞거나 북사 기록이 맞을 수 있으나, 이때에는 이미 백제가 대륙 및 지금의 한반도 땅에 모두 영역을 가지고 있었기에 이러한 기록이 있는 것이고, 반대로 삼국사기는 단지 한반도에 국한된 인식으로 대륙등에 백제 영역이 없는 것으로 하기 위해 수서 기록이나 북사 기록의 바다나 건넌 것을 일부러 기록안 할 수도 있어 각기 가능성이 있어서 진위 여부를 판단하기 어렵습니다. 2) 하지만, 당시 중국계 국가는 전통적으로 사이 즉 남만, 북저, 동이, 북융 등 사방이 막혀있어 모두 바다가 아닌 내륙에 갇혀 있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동쪽의 바다를 차지한 것은 동이족인 우리 민족국가들입니다. 그래서 당시 중국사서 기록상의 바다 해(海) 지금 개념의 바다가 아닌 내륙의 큰 하천, 강이나 호수임 것이 분명합니다. 그래서 중국사서 기록상의 바다 해(海)는 이에 해당합니다. 따라서 백제와 관련되어 유일한 수서 백제전의 바다 해(海) 즉 백제의 국호는 반드시 지금 개념의 바다가 아닙니다. 3) 더군다나 백제는 북쪽에 고구려와 소해 즉 작은 바다인 소해(小海)를 경계로 하고 있다고 일부 기록은 전하고 다른 일부 기록은 이를 패수 즉 패수라는 강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백제가 고구려를 출발하여 십제 내지는 백제를 건국할 당시에 건넌 것은 지금 개념의 바다가 아닌 대수와 패수(고구려와의 경계 기록한 강)를 건너 건국했다고 하여 바다가 아닌 내륙 하천이자 강으로 건너 건넌 것으로 하고 있습니다. 4) 그리고 백제의 위치는 분명히 나중에는 영역이 확대하여 22담로 등(이에는 한반도와 일본열도 담로 등이 포함됨) 여러 영역이 있었지만 처음 백제라는 국호를 정할 당시 위치는 북쪽의 고구려, 동쪽의 신라가 있는 중국 대륙 내륙 위치가 분명합니다. 단지 초기 영역상 기록인 서쪽의 큰 바다는 이미 위의 “2)”에서 설명하였듯이 내륙 하천이나 내륙 호수가 분명합니다. 이는 백제와 신라가 탄생한 삼한 지역도 동쪽과 서쪽이 모두 바다라고 하였지만 이는 한반도에 해당하는 잘못된 것으로써 사방 4천리되는 넓은 사항에 맞는 것은 일제 식민사학에 의한 한반도는 될 수가 없고, 이는 대륙 위치에서는 동쪽의 바다는 신라의 동쪽인 지금의 바다가 맞지만 서쪽의 바다는 백제의 서쪽인 내륙의 하천이나 호수가 분명합니다. 5) 마지막으로 물론 나중에 백제는 영역을 확대하여 한반도와 일본열도 심지어 대륙의 남쪽인 지금의 浙江省 紹興市 부근인 양자강 인근인 “월주‘에 이르렀다고 신당서에서 기록하고 있어 이곳까지 이르는 등 해양 활동을 활발히 하여 이미 언급한 수서상의 바다와 관련이 있어 해양활동을 한 것이 사실이지만 백제라는 국호를 지을 당시에는 단지 중국 대륙 내륙에 머문 것이 분명한 사실로 확인됩니다. 결론) 따라서 현재 백제 국호와 관련한 인식 내지는 지식에 의한 바다와의 관련성과 수서 백제전 기록만에 의한 것을 나중에 백제가 확대 되었을 때의 사정으로써, 이는 건국 당시의 백제 국호와는 관련이 없는 것으로 인식하는 것이 타당하므로 종래의 인식과 지식은 제고되어야 할 것으로 판단되는 것이 저의 연구 결과 소견입니다. 물론 말씀대로 국가가 지금과 같이 항구가 없으면 제대로 국가 역할을 못한 것에 의하여 백제가 바다에 접하지 않는다는 것을 맞지 않는 것은 사실로써 이미 언급하였듯이 백제가 시기를 지날수록 강대해져서 영역을 확대하여 결국 본국인 중국대륙에서 확장하여 동쪽의 한반도와 일본열도 그리고 남쪽의 지금의 浙江省 紹興市 부근인 양자강 인근인 “월주‘에 이름으로써 말씀과 의견대로 지금 개념의 바다에서 지금 개념의 항구를 갖추고 있었던 것으로 파악됩니다. 이와 같은 의견을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좋은 의견과 중요한 지적에 감사를 드립니다. 앞으로도 우리 고대사의 올바른 정립에 응원과 격려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

  • @min-sf6fc
    @min-sf6fc 16 дней назад

    진짜 작은 한반도에 삼국을 욱여넣으니. 이제 그 작은 한반도마저 갈기갈기 찢겨져 한나라의 낙랑군이 와있었다는 어처구니 없는 거짓역사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 @min-sf6fc
    @min-sf6fc 16 дней назад

    와 백석산 지금 구글 지도로 사진을 살펴보면... 갈석반 백석반으로 돌의 색깔이 검거나 흰색이 많은 것을 생각해보면... 갈석이라 불러도 괜찮을 모습입니다. 중국역사의 갈석산을 옮기기 위해 명대에 기존 갈석산을 백석산으로 이름 바꾸고 갈석산의 위치를 본인들 영토밖인 산해관으로 옮긴 것 같네요. 현재 비정된 산해관 근처 오봉산 지역은 이름부터가 오봉산이고. 돌의 색도 전혀 갈색이 아니고. 역사서에 계속 나올정도로 큰 산도 아닙니다.

    • @ancient-history.youtubecreator
      @ancient-history.youtubecreator 16 дней назад

      반갑습니다. 옳으신 말씀입니다. 더불어 갈석산은 진장성과 연관이 있습니다. 그래서 진장성으로 왜곡한 지금의 산해관 인근의 장성 인근에 말씀대로 갈석산을 아예 옮겨 놓은 것이지요. 진장성은 지금의 진장성으로 하는 북경시 북쪽을 지나 산해관의 한찬 서남쪽에 그쳐 있었습니다. 현재의 산해관에 이르는 진장성은 나중 시기인 명나라 시기의 명장성인 것이 명백합니다. 명나라가 원나라를 멸망시키고 남경(난징시)에서 북경(베이징)으로 3대 황제인 영락제 때 도읍을 옮긴 이후 당시 북쪽에 있었던 몽골계 오이라트족을 대비하여 예전의 진장성을 이어서 지금의 북경시 북쪽을 지나 산해관에 이르는 장성을 쌓은 것이 명백합니다. 이는 TVn 프로그램 '벌거벗은 세계사'(2024.10.16)에서 고려대 역사교육과 조영현 교수가 설명한 바도 있습니다. 계속하여 올바른 고대사 정립에 응원을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

  • @min-sf6fc
    @min-sf6fc 16 дней назад

    소수맥이 선비고 선비가 거란이라면 거란이 고구려와는 친족이네요. 그래서 고려때 서희의 담판이 말이 되는 것이겠죠.

    • @ancient-history.youtubecreator
      @ancient-history.youtubecreator 16 дней назад

      옳으신 말씀입니다. 우리 전통 사서인 박창화 필사본인 '고구려 사략'에서는 분명히 선비족이 고구려의 선조국인 부여국의 소속 연맹체 국가 내지는 족속이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을 떠나더라도 분명히 선비족 그리고 선비족의 한 부류인 우문선비족에서 분파된 거란족은 우리 계열이었다가 나중에 분파되어 우리 전통족인 부여 및 고구려와 전통국 주도권 싸움을 벌인 것으로 판단됩니다. 그래서 결국은 우리 전통국과는 별개로 분파된 역사로 되어 버린 것으로 파악됩니다. 감사합니다 ^-^

  • @황성태-w6m
    @황성태-w6m 18 дней назад

    전선생의 위치비정을 통한 고대사 연구를 강단사학에서도 관심을 가져주길. 바라며 방대한 사료를 연찬 고대사의 영토를 밝히시려는 노고를 거듭 치하 드립니다 오녀산성은 군사요충으로서는 가능하나 수도로써는. 가능한 입지는 아니라고 봅니다 왜냐면 수도란 넓은 들판에 건립 되는 벗이지 산성에는 적합치 않기 때문이지요.,그것은 근세조선의 한양도성과 비상시 군사요충으로 축조한 남한산성을 비교하면 알 수::있지 않습니까?

  • @SangParker
    @SangParker 19 дней назад

    황제국 거란을 무찔러서 요나라가 망했는데 그땅이 무주공산이 되버림 당시 송이 힘도 없음

    • @ancient-history.youtubecreator
      @ancient-history.youtubecreator 18 дней назад

      반갑습니다. 말씀하신 바에 대하여 제가 연구한 바를 잠시 설명 드리겠습니다. 거란의 요나라를 멸망시킨 것이 나중의 여진의 금나라입니다. 금나라를 세운 여진은 나중에 이동된 한반도 동북부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이 당시 여진은 장성의 북쪽에 있었던 "숙신-읍루-물길-말갈"로 이어진 말갈의 여진으로써 장성의 북쪽의 북말갈(북 흑수말갈) 및 이곳에서 동남으로 10일 거리인 그 남쪽에 있었던 남말갈(남 흑수말갈)이 모여서 그 중앙에 위치해 있다가 거란의 요나라를 물리쳐 멸망시키고 금나라를 세운 것입니다. 이 위치가 지금의 하북성 북경시에서 제법 서남쪽 지방인 것으로 확인됩니다. 이 말갈의 거란이 거란의 요나라를 물리치고 금나라를 세웠다가 몽골에게 멸망당해 원나라가 세워진 후 원나라에 의하여 대륙의 고려와 이전의 금나라의 여진족이 모두 대륙에서 쫒겨 만주 지방과 한반도 등지로 옮겨진 것으로 파악됩니다. 이후 고려는 요령성 요하 동쪽 및 한반도 일대 여진은 한반도 동북부 만주 동북 지방에 머물게 된 것으로 파악됩니다. 이것은 단지 상상이나 가정이 아니라 수많은 역사적 사실로 파악된 것에 의합니다. 그런데도 이를 전부 무시한 것이 그동안의 주류 역사이고, 이를 비판하여고 제대로 역사를 정하여야 할 재야 사학에서는 그동안 제대로 이를 밝혀내지 못하였던 것으로 사료됩니다. 감사합니다 ^-^

  • @큰산-f9f
    @큰산-f9f 19 дней назад

    공감합니다 ❤

  • @곰발바닥-h6u
    @곰발바닥-h6u 20 дней назад

    요동이 산동에 도착하기전 출발지의 요동. 대명여지도 전대본(초기본~중중초본)을 참고하였고, 중중기본은 중대본으로 분류되나, 전대본에 포함시켜서 참고함. 吳,齊의 사이에 철령. (중대본류와 후대본류는 도착지를 기준으로 하였음으로 제외함.) 吳,齊의 외곽에 황산. 吳,齊의 사이에 니하(패수). (吳,齊,신라 3개지역의 통합과정과 흔들림 분열의 과정은 연구자마다 다를수 있음.)

  • @곰발바닥-h6u
    @곰발바닥-h6u 20 дней назад

    요서가 산서에 도착하기전 출발지의 요서. 거란~요서의 절반, 요서의 이서북편. 북송~요서의 절반, 요서의 이서남편, 요동의 서쪽. 남송~북송의 절반.

  • @곰발바닥-h6u
    @곰발바닥-h6u 20 дней назад

    3개의 바다가 삭제됨. 皇都의 영지에 다달았음을 삭제. (대명여지도 초중본) (공민왕 중반기까지의 皇都)

  • @곰발바닥-h6u
    @곰발바닥-h6u 20 дней назад

    등주,래주,빈주,제주가 요서가 산서에 도착. 산동에 도착 (대명여지도 초기본,초중본). 요동이 산동에 도착.

  • @Jeesoon_1254
    @Jeesoon_1254 23 дня назад

    감사합니다. 시간 되시면 고려말 이성개가 위화도. 위치 그리고 천도한 한성의 위치가 어디인지 지금의 서울이 맞는지 매우 궁금합니다. 위화도 회군시 지금의 북경이 개경. 그리고 남경 . 이었다는 여러 곳에서 말 하는데 주원장에게 넘겨주고 명나라에 사대를 했는지 궁금합니다.

    • @ancient-history.youtubecreator
      @ancient-history.youtubecreator 23 дня назад

      이미 질문에 답을 해드렸듯이, 그리고 추가 질문에 대한 답을 덧붙이자면, 1)고려에 대한 사서 기록이 많이 왜곡 조작된 채 조선 초 사대부 세력에 의하여 편집된 관계로 파악하기 어려운 관계로 확실히 알 수 없으나, 고려 서경은 원래는 대륙에 위치해 있었으나 몽골의 원나라가 대륙을 지배하고 고려를 거의 속국으로 하기 시작할 때 대륙에서 한반도 및 그 북부 요령성 요하 동쪽까지 영역으로 할 때, 지금의 요령성 요하 동쪽으로 옮긴 것으로 파악됩니다. 2)이후 조선은 이러한 고려를 그대로 이어받아 그대로 유지하다가 점차 만주지방 및 한반도 북부 지방에 대한 실질적 지배가 약화된 것으로 확인됩니다. 3)지금의 북경지방은 이전의 고조선 및 이를 그대로 이어받거나 회복한 고구려가 차지하고 있다가 이를 그대로 발해에게 물려주었지만, 4)이후 발해를 멸망시킨 거란의 요나라가 이를 차지한 후 계속 여진의 금나라, 몽골의 원나라, 명나라, 청나라가 계속 이어 받은 것이 엄연한 역사입니다. 5)우리나라는 고려초기까지 북경지방이 아닌 하북성 남쪽(이곳은 거란의 요나라) 산동성 지방과 요령성 요하 동쪽 지방과 지금의 한반도 지방을 차지하고 있다가, 원나라에게 대륙을 내어주고 완전히 철수하여 지금의 요령성 요하 동쪽과 한반도 지방만을 차지하고 있다가 이를 조선에게 물려주었는데 이후 조선은 점차 만주 지방에서 축소되어 만주 일부 지방과 한반도만을 차지한 것으로 파악됩니다. 6)이것이 엄연한 역사인데, 일부 역사도 연구하지 않은 채 모르는 아마추어 유튜버가 지금의 북경지방이 고구려 그리고 이후 발해 그리고 이후 고려에게까지 이어졌다고 하고 있고, 아무것도 모르는 일반인들이 이를 그대로 신뢰하고 따르는데, 이는 실로 유감입니다. 7)제가 연구한 바에 의하면 어느 사서에도 지금의 북경지방은 명나라가 남경인 지금의 난징시에서 도읍하였다가 북경지방으로 제3대 황제 영락제때 천도한 후부터야 역사서에 북경지방 역사가 전하고 그 이전에는 전혀 지금의 북경지방은 역사서에 기록되거나 전하지 않은 불모지 지방이었습니다. 8)북경지방에서 확인되는 여러 우리나라 관련 지명은 전혀 사실이 아닌 것으로써, 이는 후대에 같은 지명이 사용되거나 중국측의 왜곡 명명된 지명이 확실합니다. 이는 반드시 역사서의 역사적 사실에 의하여 입증이 되어야 함에도 이를 입증한 사례는 단 하나도 없는 것입니다. 9)그 어떤 역사적 사서 기록이나 사실에 북경지방에 대한 기록이 있으면 제시해보라고 하시길 바라고 이를 스스로 확인 해 보기기를 바랍니다. 아울러 나에게도 제시하여 검증을 해보라고 하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

  • @이영민-k2o
    @이영민-k2o 26 дней назад

    그런데 왜 관련 유적이나 유물이 발견되지 않는지요? 하다못해 기왓장 조각이라도 발견 돼야 할텐데.

    • @ancient-history.youtubecreator
      @ancient-history.youtubecreator 25 дней назад

      반갑습니다. 옳으신 말씀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문제가 있습니다. 유물은 연구와 해석여부에 달려 있습니다. (1)식민지 이론인 '낙랑군 평양설'의 주오 근거가 된 평양지방의 유적, 유물이 한동안 일제 식민사학자들의 유적, 유물 조사결과에 의한 것에 따라 이곳이 낙랑군 지역이 되었습니다. 물론 현재도 이를 주류 강단 사학계는 추종하고 있지만, 그동안 많은 재야 사학자들과 시민들의 연구에 의한 반론으로 이제는 고조선 고유의 유적, 유물 등 낙랑군 유적, 유물이 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연구와 해석이 달라졌기 때문입니다. (2)'고조선 이동설'을 아시나요? 현재 주류 강단 사학계가 '낙랑군 평양설'을 유지하고자 모든 사서 기록상의 대륙에서의 낙랑군 기록이 나오는 것에 의하여 이것이 위협을 받자, 원래는 대륙에 있다가 연나라에 쫓겨 드러와 한반도 평양에 자리잡고 여기서 한나라에게 멸망하여 낙랑군이 설치되었다는 이론으로 변명하였던 것입니다. 이에 따라 대륙에서의 이 시기의 요령성 요하 서쪽 유물은 전부 중국 연나라 유물로 조사되었고, 발표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는 잘못으로 유적, 유물은 서로 문화적 교류의 결과로 나타는 것일뿐더러 이러한 결과는 모두 중국측의 조사 결과와 판단 결과이고 우리 학계에서는 이를 그대로 추종하는 것일 뿐입니다. 중국측은 한반도 북부 고구려 유적, 유물도 일제 식민사학자들의 결과와 똑 같은 결과를 내놓고 있습니다. (3)홍산문명을 아시는지요? 중국 요령성 조양시 북부 내몽골자치구 적봉시 인근에서 황하문명보다 앞선 채 우리 고조선 문화가 틀림 없는 문명 유적, 유물이 나와 저를 비롯하여 수많은 재야 시민 학자들이 이것이야말로 고조선의 실체를 밝혀주는 문명이라고 하였지만, 우리 학계에서는 그들의 한반도 논리에 위배되므로 우리것이 아니라고 전혀 연구조차 하지않고 중국것으로 인정해 주었고, 중국측은 이를 그들의 문화와 전혀 다름에도 자기들 것으로 한 채 자기들 문명으로 조사 연구 발표를 하고 있습니다. (4)부여 라마동 문화의 경우에도 정식 중국 학자들은 이를 선비족의 것이라고 조사 연구 발표 하였으나 어떤 학자가 이를 뒤집어 부여 문화로 바꾸자 이로 바뀌게 된 것입니다. (5)만성한묘를 아시는지요? 중국 하북성 보정시 만성구 동굴에서 우리 고대국가 특히 고구려 유적, 유물로 확인되는 찬란한 유적, 유물을 그들은 일방적인 일부 발표에 의하여 이것이 우리 고대국가임에도 그들의 나라로 둔갑시킨 중산국 제후 유승의 묘로 발표하여 이것이 기정사실화 하였습니다 (6)수많은 유적, 유물과 관계없이 그들은 선비족의 나라인 전연, 후연, 북연의 수도인 용성을 지금의 요령성 조양시로 옮겨놓았습니다. 하지만 실제 유적, 유물은 하북성 석가장시 정정현 융흥흥사 뒷편의 비로전에 용성에 있었던 용등원이 있습니다. 이것이 동쪽으로 옮긴 대표적인 케이스이지만 이를 전혀 알리지 않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를 모르고 있는 채 조양시에 용성이 있었고 이곳이 선비족 국가의 중심지라고 알고 있습니다. (7)만리장성의 동쪽 이동도 마찬가지입니다. 원래 진나라 만리장성은 지금의 북경시 서남쪽에 그쳐 있었습니다. 지금의 하북성 북경시 북쪽을 지나 하북성 진황도시 산해관에 이르는 장성은 전국 7웅의 조나라와 연나라 장성을 이어 쌓거나 수선해서 쌓은 토성인 진장성이 아니라 명나라때 3대 황제인 영락제가 1421년 남경인 강소성 난징시에서 하북성 북경시로 도읍을 옮긴 후, 당시 그 북쪽에 있으면서 명나라를 괴롭힌 몽골계 오이라트족을 방어하고자 쌓은 지금의 벽돌성입니다. 그런데도 이를 진장성이라고 하고자 갈석산과 노룡현, 창려현을 아예 옮기고 이곳 진황도시 산해관에 진장성 축성 전설인 맹강녀 전설과 진시황 관련 유적들을 허위로 조성하여 놓고 있습니다. (8)진나라 만리장성은 우리 고조선의 위치(진장성 동쪽)는 물론 나중에 장서으이 북쪽에 부여, 남쪽에 고구려가 있다는 삼국지 위서 동이전 기록에 의하여 이들의 위치 기준이 되는 것입니다. 이에 의하면 왜곡되었다 하더라도 부여는 진황도시 북쪽, 고구려는 그 남쪽에 있어야 함에도 현재 우리 역사는 일제 식민사학자들이 전혀 맞지 않는 한반도 북부에 위치시켜 놓고 있습니다. 이곳 한반도 북부 만주지방에는 진나라 만리장성이 없습니다. 그래서 중국측은 현재 익소 만주지방에 만리장성을 연장하여 그려넣거 종성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9)더군다나 현재 한반도 북부 고구려 성에 대하여 이 성들을 자기들의 것으로 하고자 고구려 형식의 성을 중국식으로 완전히 바꾸어 조성함으로써 현재는 그렇지 않더라도 나중에는 이 중국식으로 바뀐 고구려 성들로 인하여 후손들은 이를 중국 성으로 인식하게 될 것입니다. 이는 대륙의 모든 우리 고대국가 관련 유적, 유물이 그동안 중국식으로 모두 바뀌었음에도 불구하고 현재는 원래부터 이들이 중국의 유적, 유물로 인식하고 있음을 시사하는 것입니다. 이와같이 수많은 유적, 유물의 일방적인 해석과 발표, 실제 지명의 이동 등 수많은 왜곡에 의한 것이 우리의 대륙 역사입니다. 역사학은 1)문헌학, 2)고고학 2축에 의하여 이루어집니다. 먼저 우선시되는 것은 1)입니다. 왜냐하면 2)는 이동사능성이 있고 전파 가능성도 있고, 또한 조작, 해석 여부가 문제가 되기 때문에 역사학에 있어서 1)를 보조하는 것입니다. 물론 1)의 경우에도 왜곡, 해석되는 것이 있지만 이는 판별이 가능합니다. 중국대륙에서의 많은 유적, 유물에 대한 조사, 연구, 해석이 중국인 스스로가 아닌 제3자 내지는 당사자인 우리에 의하여 이루어진다면 그 결과는 다르리라고 판단됩니다. 왜냐하면 1)에 의하여 명백히 입증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올바른 역사 정립에 응원과 격려를 해주시기를 바라며, 앞으로도 좋으신 말씀 해주시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

  • @Jeesoon_1254
    @Jeesoon_1254 26 дней назад

    대단하세요. 노고에 감사합니다. 건강하세요.

  • @Jeesoon_1254
    @Jeesoon_1254 28 дней назад

    22담로. 백제가 통일신라 이전 즉 나당연합. 전쟁당시 초기 도읍 영역과 산동 제나라 주위 밖에 없을까요? 백제의 최고 전성기와 신라의 최고 전성기에 대한 영토 및 주변 국들과의 관계. 그리고 고구려도 동서 6천리 라고 했는데 좀 답답하네요.

  • @Jeesoon_1254
    @Jeesoon_1254 28 дней назад

    그럼 배타고 산동성에서 온건가요? 아니면 갈림(계림)에서 남하한것 일까요? 서울, 강원도. 지역등은 그럼 백제도 아니고 누구 땅일까요? 조문? 다른 종족? 고인돌. 모두 감사한데 의문점은 그렁 한반도는 빈땅이었나요?

  • @Jeesoon_1254
    @Jeesoon_1254 28 дней назад

    감사합니다. 소중하신 분이니 건강하세요.

  • @정재문-l2e
    @정재문-l2e 28 дней назад

    47:38 백제와 북위가 충돌했던 건 백제가 대방군을 회복하려는 과정에서 벌어졌다고 하더라고요. 55:25 남제서 백제전 일부가 지워진 건 북위가 치명적인 대패를 당한걸 시사하는 거죠.

    • @ancient-history.youtubecreator
      @ancient-history.youtubecreator 28 дней назад

      반갑습니다. 1)대방군은 - 중국의 후한 말~삼국시기에 요동 일대에 웅거하였던 공손씨 정권이 건안 9년(204) 경부터 요동 일대에서 할거하였다. 건안 연간(196~219)에 고구려 도성을 격파하였고, 낙랑군의 둔유현(屯有縣) 남쪽 지역을 나누어 대방군을 설치한 이래로 AD238년 위나라 사마선왕(사마의)와 고구려가 연합하여 이를 제거한 후 대방군이 소멸된 것으로 확인됩니다. - 백제의 북위와의 전쟁은 AD488~498년 간에 일어난 것으로써 대방군과는 관련이 없습니다. - 백제의 대방군이 아닌 대방고지와의 관련성은 백제의 건국 위치인 산동성 지역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써 - 대방군은 한사군이 아닌 한2군의 낙랑군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써 이는 하북성 고구려 북쪽지역이고, - 대방군이 아닌 대방 즉 대방고지는 고구려 남쪽 즉 백제 지역 북쪽과 관련이 있ㄴㄴ 것으로써 - 이는 낙랑군이 고구려 북쪽 하북성 지역, 낙랑국(최씨 낙랑국)이 고구려 남쪽이자 백제와 신라 사이 위치인 것과 일맥 상통하는 것임 - 이 대방군과 대방고지, 낙랑군과 (최씨)낙랑국을 이애하지 않고는 사서 기록상에 혼란되게 기록되어져 있는 낙랑과 대방의 역사적 사항을 전혀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2)남제서 백제서 일부 삭제부분 내용은 말씀대로 북위의 패배 사실일 수도 있지만, 그 순서로 보아 이보다 앞선 백제의 요서 진출 시기로 보는 것이 더 합리적입니다. 물론 그 사서 기록이 없어서 단정은 할 수 없지만 말입니다.

  • @Jeesoon_1254
    @Jeesoon_1254 29 дней назад

    책을 어떻게 주문 구매 가능한가요?

    • @ancient-history.youtubecreator
      @ancient-history.youtubecreator 28 дней назад

      @@Jeesoon_1254 교보문고나 영풍문고 등에서 온 라인이나 오프라인으로 모두 가능합니다. 만약 안되면 출판사나 본인에게 연락해주시면 됩니다

    • @Jeesoon_1254
      @Jeesoon_1254 23 дня назад

      @@ancient-history.youtubecreator 감사합니다

  • @Jeesoon_1254
    @Jeesoon_1254 29 дней назад

    질문:고려서경이 고려의 마지막 개성인가요? 이성계가 위화도 회군할 때의 수도가 지금의 북한개성. 일까요? 서경에서 언제 지금의 북한 개성으로 천도했는지도 궁금하고 어디엿는지 궁금하고 그럼 조선은 지금의 서울특벌시가 맞는건가요? 통일신라와 고려의 영토를 그럼 조선은 다 잃었고 한반도에서만 산건가요?

    • @ancient-history.youtubecreator
      @ancient-history.youtubecreator 28 дней назад

      1)고려에 대한 사서 기록이 많이 왜곡 조작된 채 조선 초 사대부 세력에 의하여 편집된 관계로 파악하기 어려운 관계로 확실히 알 수 없으나, 고려 서경은 원래는 대륙에 위치해 있었으나 몽골의 원나라가 대륙을 지배하고 고려를 거의 속국으로 하기 시작할 때 대륙에서 한반도 및 그 북부 요령성 요하 동쪽까지 영역으로 할 때, 지금의 요령성 요하 동쪽으로 옮긴 것으로 파악됩니다. 2)이후 조선은 이러한 고려를 그대로 이어받아 그대로 유지하다가 점차 만주지방 및 한반도 북부 지방에 대한 실질적 지배가 약화된 것으로 확인됩니다.

    • @Jeesoon_1254
      @Jeesoon_1254 23 дня назад

      @@ancient-history.youtubecreator바쁘실텐데 이렇게 답글 주셔서 감사합니다.^^

  • @Jeesoon_1254
    @Jeesoon_1254 29 дней назад

    감사합니다.

  • @곰발바닥-h6u
    @곰발바닥-h6u 29 дней назад

    幽,然,齊,魯,吳,越의 도착. (대명여지도 초기본,초중본,초말본) 출발지가 중요함.

  • @곰발바닥-h6u
    @곰발바닥-h6u 29 дней назад

    吳,齊의 중간에 철령 (대명여지도 초기본,초중본) 출발지 기준.

  • @곰발바닥-h6u
    @곰발바닥-h6u 29 дней назад

    니하의 우측단에 철령. (대명여지도 초기본,초중본) 출발지 기준.

  • @김현석-o7x
    @김현석-o7x Месяц назад

    고구려가 모본왕때 산서나하북 북쪽에서 남쪽인. 태원 어양 북평 상곡을 공격한게 아닐까요? 그래야 요동 태수가 답례해서 물러나는게 자연스러위 보입니다. 반대로 고구려가 북펑어양상곡태원을 치러가는길에 요동이 있다면 요동을 먼저 쳐야하니까 요동 태수가 아닌 탁군태수같은 자가 답례를 해야할 것으로 보입니다.

    • @ancient-history.youtubecreator
      @ancient-history.youtubecreator Месяц назад

      @@김현석-o7x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군요. 그러나 고구려 공격 당시의 고구려 도읍 위치를 생각하여야 한다고 사료됩니다. 이 강의에서는 복잡할것 같아 생략했지만. 고구려 첫 도읍지인 지금의 하북성 남쪽 산동성에서 완전히 요동지방인 하북성으로 북상하기 전에 두번째 도읍지로 제2대 유리왕시기에 천도한 곳이 국내주 위나암성입니다. 이곳은 요동군 남쪽 지역으로써 이곳에서 서쪽과 서북쪽인 북평. 어양. 상곡. 태원을 공격하자 그 동쪽이자 고구려 2번째 도읍 북쪽의 요동태수가 나선 것으로 파악됩니다. 참고로 이 유튜브 동영상중 "고구려 천도사항"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물론 이들은 저의 연구에 의한 것입니다만. 제가 연구한 바로는 맞는 것으로 판단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 @곰발바닥-h6u
    @곰발바닥-h6u Месяц назад

    니하의 우측단에 철령 출발지 기준. (대명여지도 초기본,초중본)

  • @곰발바닥-h6u
    @곰발바닥-h6u Месяц назад

    전주가 광서성 우측단에 도착. 견훤에 의해서 후기신라가 초기신라로 환원됨. (대명여지도 초말본,중중초본) (吳,齊,신라 지역의 통합이 깨어짐)

  • @곰발바닥-h6u
    @곰발바닥-h6u Месяц назад

    나주가 호광성에 도착 (대명여지도 중말본) 출발지가 후기신라 (초중본~중중기본) 고려경계 기준점의 이동.

  • @베트맨-u1r
    @베트맨-u1r Месяц назад

    신기하고 재밌어요~!

  • @곰발바닥-h6u
    @곰발바닥-h6u Месяц назад

    바다를 삭제~ 중요지역 3개의 바다가 삭제됨 皇都의 영지에 다달았음을 삭제. (대명여지도 초중본,초말본)

  • @곰발바닥-h6u
    @곰발바닥-h6u Месяц назад

    등주,래주,빈주,제주가 강화는 출발하지 않음. ( 대명여지도 초기본~ 중중기본) 산동에 도착 (대명여지도 초기본,초중본).

  • @곰발바닥-h6u
    @곰발바닥-h6u Месяц назад

    함양,서안,서안평이 협서에 도착. 서안평은 도착후에 삭제 (대명여지도 중초본,중중기본)

  • @곰발바닥-h6u
    @곰발바닥-h6u Месяц назад

    요서,요주,태원,大同이 산서에 도착. 출발지 부근에 요택 (대명여지도 초중본,중초본) 출발지는 중초본에서 삭제.

  • @happyhan608
    @happyhan608 Месяц назад

    😄👍

  • @큰산-f9f
    @큰산-f9f Месяц назад

    👋👋👋👋👋👋👋👋👋

  • @곰발바닥-h6u
    @곰발바닥-h6u Месяц назад

    도착지를 중심으로, 지난 600년간의 충실한 비정을 정확히 짚어 주셨습니다.

  • @곰발바닥-h6u
    @곰발바닥-h6u Месяц назад

    기록의 의미는 (출발지 기준) 백잔의 지역중 吳,齊를 제외한, 나머지 백잔이 보았을때의 기준. ( 크게 보았을때 신라는 서남방)

    • @ancient-history.youtubecreator
      @ancient-history.youtubecreator Месяц назад

      사서 기록상, 1)고구려 졸본성 가까이에 있는 말갈이 남쪽의 백제와 신라를 무수히 괴롭힘. 2)백제 동쪽에 최씨 낙랑국이 있고, 그 동쪽에 신라가 있어 이 낙랑국이 멸망하는 AD37까지 백제와 신라를 수시로 괴롭힘. 3)대수, 패수, 한수3강이 나란히 흐르는 곳에서 고구려, 백제, 신라가 역사적 활동 같이 한 기록이 무수히 기록 4)백제와 신라 남쪽에 이전 시기인 삼한 시기부터 육지로 접해 있었던 왜 세력이 그 북쪽의 백제와 신라를 무수히 괴롭힘.

    • @곰발바닥-h6u
      @곰발바닥-h6u Месяц назад

      @@ancient-history.youtubecreator 분봉된 지역에서 보았을때와 백잔에서 보았을때, 원래부터 속민인 지역에서 보았을때, 모두가 다릅니다. 당연, 분봉지들 간에도 바라보는 관점이 다르게 됩니다. 중심지를 빼고, 접경지간 의 상황을 크게 놓고 보아야 합니다.

    • @ancient-history.youtubecreator
      @ancient-history.youtubecreator Месяц назад

      분봉지가 어디이고, 중심지가 어디인가요? 이들은 어느 기록, 어디에서 확인하여야 하는지요? 그러한 것들이 있는지요? 내가 그래도 수많은 우리 역사 관련 사서를 전부 연구한 바에 의하면 확인이 안되는데요? 그리고 이미 내가 제시한 사서 기록에 의한 사항 즉, "사서 기록상, 1)고구려 졸본성 가까이에 있는 말갈이 남쪽의 백제와 신라를 무수히 괴롭힘 ~~~~" 등을 확인해 보셨는지요?

    • @곰발바닥-h6u
      @곰발바닥-h6u Месяц назад

      @@ancient-history.youtubecreator 개인적인 댓글을 올렸습니다만, 연구하시는데, 방해가 되었다면 넓은 아량으로 보아주시기 바 랍니다.

  • @수부타이kor
    @수부타이kor Месяц назад

    무령왕때 한반도로 옮깁니다.세력이 너무 약해졌어요.

    • @ancient-history.youtubecreator
      @ancient-history.youtubecreator Месяц назад

      중국사서는 한결같이 개로왕의 아들 문주왕 시기가 아닌 이후 우리가 알고 있던 바의 이미 웅진 즉 웅천인 공주로 천도한 이후의 왕인 동성왕 내지는 무령왕 시기에 웅진 즉 웅천이 아닌 ■『양서(梁書)』 東夷列傳 百濟 天監 원년(A.D.502; 百濟 武寧王 2)에 太의 [將軍]號를 征東將軍으로 올려 주었다. 얼마 뒤 高句驪에게 격파되어 날로 [국력이] 쇠약해지더니, 南韓 지방으로 도읍을 옮겼다. ■『남사(南史)』 東夷列傳 百濟 ■『통전(通典)』 卷一百八十五 邊防 一 東夷 上 百濟 이 남한(南韓)으로의 천도에 대하여 주류 강단 사학계는 당연히 한반도 서울 지방에서 한반도 남쪽 지역인 공주지방으로 천도한 것으로 하고 있지만, 이는 백제를 한반도에 설정한 것에 의한 것입니다. 원래의 백제 위치인 대륙의 산동성 위치에 의하면 이를 일부 재야 사학자들은 이제서야 백제가 대륙에서 한반도로 옮겼다고 해석하기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이는 마한, 진한, 변한의 삼한이 산동성 지역이므로 이 남한 지방은 이 삼한 중 마한의 남쪽인 지역으로 천도한 것이 확실한 것입니다. 즉, 삼국 이전의 삼한은 왜가 육지로 접해져 있었던 왜로써 이는 대륙의 왜입니다.

  • @무풍-f6w
    @무풍-f6w Месяц назад

    반박 불가 사료검정 훌륭합니다. 위례성 서쪽 큰 바다는 동평호(東平湖)가 아닐런지요?

  • @구자빈-s8k
    @구자빈-s8k Месяц назад

    동북공정은 사실이 아닌 정치적 결과이므로 론외하고 우리는 우리역사의 본질을 찾아야한다 그것만이 사학의 진실일 것이다

  • @bog.byeonggil
    @bog.byeonggil Месяц назад

    그쪽에 있으면 동북공정에 기름을 껴엊는 겪인데

  • @푸르른날-s3w
    @푸르른날-s3w Месяц назад

    응원하고 지지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