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품이요.... 중드에도 자주 나오잖아요.. 그 시절 미백 화장품에는 수은.. 진시황의 영생을 위한 단약도 수은... 흔히 말하는 부적을 물에 적셔서 마셨다는 민간 속설까지.. 많습니다. 부적뿐만 아니라 흔히 도장 찍을때 쓰던 빨간 부분도 진사(수은), 과거 유리 온도계도 수은. 수은은 굳이 암계로 투여 안해도 스스로 수은중독으로 들어갈 루트가 너무 많은 위험성에 대해 모르던 중금속이란 것이죠. 실질적으로 현대에서도 수은중독에 대한 위험성은 현대에 와서 밝혀 진것입니다. 흔히 말하는 미나나타병 솔직히 수은의 역사는 너무 오래되었죠. 그 위험성에 비하여.
제목에 탈진. 당시 비싼 약재에 비소, 수은 같은 중금속 쓰는 잘못된 관행이 있었고, 그 후궁은 두터운 총애로 출산이 너무 많아 약을 달고 살아서 몸 속 중금속이 많아 부패가 안 되었을 거라는 상식적 추리가 더 맞습니다. 남편 비위 맞추며 총애 유지하느라 지쳐 일찍 죽는 건 동서양이 마찬가지였습니다.
제목에 탈진할 것까지:: 황실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황제와 황후는 식사 한번 마음놓고 하지 못했을 정도로 독살에 대한 경계가 컸습니다. 눈치채지 못하게 하는 독살 말입니다. 우리 어머니들은 6.25의 난리통에도 아이들을 대여섯 이상씩 낳고 별 탈 없이 살았습니다. 그런데 만주족 지배 계급 속의 한족 여인이 황제의 총애를 받는다는 것은 후계자 문제와 관련해서도 그렇고 엄청난 시기과 질투의 대상이었을 것입니다. 충분히 상상할 수 있는 일인데 별 것 아닌 처럼 말하는 것이 이해가 안되네요.
효의순황후가 가경제가 추증했다는 건 잘못된 사실입니다 당시 건륭 때는 밀건법이라고 황태자를 알려 주지 않고 황자들이 성실하게 공부하게 하고 거기서 가장 뛰어난 사람에게 황위를 물려준다는 형식적인 제도가 있었어요 그런데 건륭 때는 15황자 말고는 딱히 황태자 감도 없었고 건륭 자체가 힘이 막강했기에 그냥 가경제를 황태자로 삼습니다 그때 가경제가 나중에 황위에 올랐을 때 어머니를 추증하고 싶어도 한족이라고 안 된다고 해서 정통성에 문제라도 생길까 봐 건륭이 해 준 거예요 조사가 더 확실하게 이루러진 뒤에 영상을 만드시면 좋겠네요
옛날 한나라 때 주사(수은화합물)가 들어간 금단을 먹으면 신선이 될 수 있다고 해서 한나라 황제들도 수은 중독으로 많이 죽었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뼈에서 황화수은이 발견되었다면 수은 중독으로 사망했을 거라는 얘기는 할 수 있겠지만 아마도 독살은 아니었을 겁니다.^^;;
영비가 궁녀출신이었는지는 기록이 없어 알수 없습니다. 입궁한지 10년이나 지나 귀인이 되어 그럴것이다 라는 추측만 있고, 영비를 황후로 추존한 것은 가경제가 아니라 건륭제입니다. 건륭제가 효현순황후의 올케와의 불륜설은 너무나 야사입니다.. 효현순황후는 기록상 병에 걸려 여행중에 사망했고 단혜황태자가 사망한건 효현순황후가 죽기 10년전의 일입니다
건륭제관 관련 스토리는 많은 것이 다양한 설에 기반하고 있다고 애초에 말씀드렸습니다. 그리고 황후로 추존된 건 가경제가 건륭제 생전에 즉위했기 때문에 왕의 생모 자격으로 추존되었습니다. "청나라의 황귀비는 황후 내정자에게 일시적으로 주어지는 작위이기도 하나 건륭제가 새로이 황후를 책립하기를 거부한 탓에 황후에 오르지 못하고 건륭 40년에 황귀비의 신분으로 사망했으며 '영의황귀비'(令懿皇貴妃)란 시호를 받았다. 건륭 60년(1796년)에 가경제가 황위에 오르자 황제의 생모 자격으로 황후로 추존되었다. " 사실로 따지면 여기에 몇 가지가 사실인지조차 불분명합니다. 그러니 사극에서 상상력을 무한히 발휘하는 것입니다. 불륜설이 야사라고는 하나 상당히 설득력이 있어 보여 언급했습니다. .
@@bonggu-h3f 맞습니다. 한족은 일단 후궁 가능성이 있는 수녀 선발 대상이 될 수 없는 것으로 알고 있어요. 수녀는 만주족 귀족의 일정한 계급의 14살 딸들을 대상으로 했어요. 그리고 건륭제의 어느 글에 영비가 푸차씨에게 이런 저런 교육을 받고 어쩌고 하는 글귀가 있어요. 그래서 많은 이들이 영비가 처음에 푸차씨 밑에 있었던 하녀 혹은 궁녀였다고 추정하는 겁니다.
@@conac1412 제가 그거냐고 물어본건데 같은 대답인거잖습니까? 그리고 우리나라에서 쓰이는 단어가 아니면 사전적 의미를 찾고 싶어서 찾아도 저렇게 밖에 안나오는데 한국어와 한글로 영상제작을 하시는 분이면 자막으로 주석을 달아서 쓰는게 맞는거같습니다. 한자로 南巡으로 검색해야 중국어사전에 나오는 단어면 한자도 같이 명기하던가 설명이라도 있어야한다고 봅니다.
당시 약에는 수은같은 성분이 있었는데 임신만 7번으로 약을 먹어야했던 영황귀비가 약의 수은성분 때문에 시신이 부패하지 않은게 아닐까 추측됩니다. 그리고 영비 사망 한달 전에 하나뿐인 딸이었던 화정공주가 15세의 나이로 요절했는데, 그 충격으로 가뜩이나 안좋던 상태에서 사망한게 아닐지.. 당시 평균 수명도 길지 않았고 영비의 나이도 49세로 그때로 보면 노인이나 다름없는 나이였고요. 노인들에게 배우자나 자식 등 가까운 가족들이 사망하면 그 충격이 크다고 들었어요. 만약 독살이였다면 아무도 의심하지 못했겠네요. 건륭의 첫번째 황후인 효현순황후는 건륭에게 첫사랑이 아닌가 싶어요. 실제로도 건륭이 그정도로 대우해준건 효현황후와 그 자식들이 유일하고요. 어릴때부터 같이 생활한 조강치처에 적장자를 낳았고 집안도 명문가였으니 총애하지 않는게 이상할정도.. 게다가 외모도 예뻤고 사치부리지 않았던 검소한 성격이라고 하더라구요. 저는 효의순황후의 처세술이 궁금하네요. 어릴때부터 같이 지낸것도 아니고 집안이 명문가도 아닌데 입궁한지 4년만에 비가 되는 특급승진에 아들은 황제가 되고 본인은 황귀비가 되어 내명부를 통솔했죠. 화정공주가 요절하긴 했지만 정실출생 공주나 아끼는 딸에게만 주는 고륜이라는 칭호를 받았고 죽을때도 황제가 기거하는 양심전에서 죽었으니 영비가 죽을때 자기 아들이 황제가 될걸 알았을거에요. 그리고 일단 임신만 7번한것만 봐도 얼마나 총애했는지가 보이고 영비가 한족이었는데 건륭이 두번이나 집안의 격을 높여주어 만주족 가문으로 승격됐죠. 보면볼수록 계황후만 불쌍해지는.. 장례도 후궁의 격에 맞추어 치뤘고 아들도 낙동강 오리알 신세에 제대로된 추존도 못한..
기록 남기는 걸 중시하고 족보를 중요시 하던 저 당시 일반 서민도 아닌 황제의 생모와 관련된 기록이 불분명 하다는 건 뭐가 있길래 그런 것인지.. 아마 황비의 자식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후사가 없어서 첩의 자식을 입적한 것과 비슷한 무언가가 아닌가 생각이 되네요 그 전후 황제는 다 기록이 뚜렷한데 실수나 소실로 기록을 안 남겼다고 보긴 힘드니까요.. 황제의 순행길에서 도대체 뭘 봤길레 첫 부인은 자결하고 두 번째 부인은 머리 자르고 유폐까지 당했는지 .. 원래부터 황제는 여러 첩이 있고 단지 불륜을 봐서 그렇다는 건 좀 이상하고 .. 당시 허선이라는 관료와 동성애 관계였다는 의혹이 있는데 황제가 동성애를 한 것을 목격했다고 자살하는 것도 이상합니다. 앞에서 말 한 것처럼 황제는 이미 여러 처첩이 황궁에 있었고 동성애라고 해도 뭐 큰 차이는 없으니까요 자살하고 머리 자를 만큼 시위를 한 걸 보면 .. 허선하고 둘이서 쓰리썸을 강제로 했던지 그런 게 아닐까 생각이 드네요.
건륭제 이놈 .. 한족 세번째 황후 .. 한족 답 다 옴 ㅋ 첫번째황후 두번째 황후 는 아마도. 황제 와 세번째 황후 의 작품이죠 .. 기록조작하면 다 숨길수있으니 .. 그래서 .. 첫번째 황후 의 죽음을 애도하는척 철판깔고 쌩쑈 한거고 .. 세번째.황후가 .. 첫번째 황후를 그리워 한다는것도 .. 쌩쑈 ㅋ 귀신을속여라 ㅋ
아참 우황첨심환에도 진사(수은)이 들어 갑니다..... 그러나 현대에는 수은의 중독성을 제거한것을 쓰지만, 과거라면 아픈 병자에게 그런 약을 먹였다면, 진짜 진사(수은)를 쳐 드셨겠죠. 평균 연령이 30~40대 이던 시절이라, 수은중독에 걸려서 죽으나 자연사 하나 별 차이가 없죠.. 그냥 자연 흡입되어서 자연사 할 나이쯤 중독 현상이 발현하거나, 먼저 죽고 그냥 시체에 남았을 수도 있죠. 물론 죽을병에 걸렸는데 더 빨리 가속시킬수는 있었겠죠. 몸이 피곤하네..... 야 약 한알 가져와봐(수은중독)
세번째 황후가 ... 첫번째 두번째 황후 다 죽였다고 보는게 ㅋㅋㅋㅋㅋ 건륭도 정체모를 놈. 세번째황후가 초고속으로 승진한것은 .. 같은 한족이라 보는게 ... 황제와 세번째 황후가 .. 짜고쳐 두 황후를 죽였을겁니다 ... 청 황조를 한 황조로 만들려고 .. 건륭이놈은 .. 겉.과 속이 다른 ...아주 철저히 가면을 쓴 놈이죠 .. 황제라 .. 기록조작 얼마든지 할수있으니 ㅋ
@@diamolee559 뭔 소리임? 실록이 왕의 개인사만 적은 것도 아니고, 그날그날 돌아가는 나라일을 의논하고 결정하는 왕과 조정의 일을 적은거라 역사적인 사료가치가 높은데 그게 별나다는 사고는 어느나라 사고임? 중국이 실록이 없을 린 없을건데, 우리 마오가 문화대혁명 어쩌구 씨부리면서 싹 태워 버렸으니 없음. 오즉하면 한복을 지네거라 함? 역사적 사료가 없으니 지네거라 우기는 거임. 한푸는 무슨.... 생각의 다양성에서 그렇게 볼 수는 있겠지만, 멍청한 소리라는 절대성은 안 없어짐.
영황귀비는 건륭제가 직접 황후로 추증했어요. 또한 대기를 두번이나 시켜주어 효의순황후 위가씨 가문은 만주족이 됐습니다.
확실한 것은, 건륭제의 여자였던 3사람이 모두 불행한 결말로 비명횡사했다는 거네요. 그렇게 간택을 받아서 황제의 여자가 됐지만 그 누구도 자신이 선택한 결혼은 아니었고, 그녀들이 행복했는지 어땠는지는 아무도 알 수도 없고, 관심도 없었다는 거,,, 참 씁쓸하네요.
위가씨는 49세 수은중독으로 사망했는데 그래도 건륭의 총애를 특히 많이 받아서 .. 첫 황후 부찰씨가 제일 불쌍하져
어느시대든 여성기달고 태어나면 무임승차 개꿀임
화장품이요.... 중드에도 자주 나오잖아요..
그 시절 미백 화장품에는 수은.. 진시황의 영생을 위한 단약도 수은...
흔히 말하는 부적을 물에 적셔서 마셨다는 민간 속설까지.. 많습니다. 부적뿐만 아니라 흔히 도장 찍을때 쓰던 빨간 부분도 진사(수은), 과거 유리 온도계도 수은.
수은은 굳이 암계로 투여 안해도 스스로 수은중독으로 들어갈 루트가 너무 많은 위험성에 대해 모르던 중금속이란 것이죠.
실질적으로 현대에서도 수은중독에 대한 위험성은 현대에 와서 밝혀 진것입니다. 흔히 말하는 미나나타병
솔직히 수은의 역사는 너무 오래되었죠. 그 위험성에 비하여.
제목에 탈진. 당시 비싼 약재에 비소, 수은 같은 중금속 쓰는 잘못된 관행이 있었고, 그 후궁은 두터운 총애로 출산이 너무 많아 약을 달고 살아서 몸 속 중금속이 많아 부패가 안 되었을 거라는 상식적 추리가 더 맞습니다. 남편 비위 맞추며 총애 유지하느라 지쳐 일찍 죽는 건 동서양이 마찬가지였습니다.
제목에 탈진할 것까지:: 황실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황제와 황후는 식사 한번 마음놓고 하지 못했을 정도로 독살에 대한 경계가 컸습니다. 눈치채지 못하게 하는 독살 말입니다. 우리 어머니들은 6.25의 난리통에도 아이들을 대여섯 이상씩 낳고 별 탈 없이 살았습니다. 그런데 만주족 지배 계급 속의 한족 여인이 황제의 총애를 받는다는 것은 후계자 문제와 관련해서도 그렇고 엄청난 시기과 질투의 대상이었을 것입니다. 충분히 상상할 수 있는 일인데 별 것 아닌 처럼 말하는 것이 이해가 안되네요.
@@mika_box 중국산 약제에 중금속 많아서 수입금지된게 수백가지입니다. 90년대 초반에 중공산 약제가 그랬단 것입니다. 그 일을 모르면 그렇게 말하게 됩니다.
@@mika_box 야사와 추측이 대부분이면서 우리 어머니들 어쩌고는 너무 핀트나갔어요. 별 탈 없단 소리는 애 안낳아본 사람이 하는 말같잖은 말입니다. 나이들면서 탈장하는 분도 있고 요실금이며 관절 나가는 분들이 한 둘이 아니였는데 도대체 어딜 봐서 괜찮다는 건지..
효의순황후가 가경제가 추증했다는 건 잘못된 사실입니다 당시 건륭 때는 밀건법이라고 황태자를 알려 주지 않고 황자들이 성실하게 공부하게 하고 거기서 가장 뛰어난 사람에게 황위를 물려준다는 형식적인 제도가 있었어요 그런데 건륭 때는 15황자 말고는 딱히 황태자 감도 없었고 건륭 자체가 힘이 막강했기에 그냥 가경제를 황태자로 삼습니다 그때 가경제가 나중에 황위에 올랐을 때 어머니를 추증하고 싶어도 한족이라고 안 된다고 해서 정통성에 문제라도 생길까 봐 건륭이 해 준 거예요 조사가 더 확실하게 이루러진 뒤에 영상을
만드시면 좋겠네요
드라마 연희공략 재밌게 봤었는데 실제 역사얘기로 다시 황후 얘기들을 들어보니 색다르고 재밌네요
옛날 한나라 때 주사(수은화합물)가 들어간 금단을 먹으면 신선이 될 수 있다고 해서 한나라 황제들도 수은 중독으로 많이 죽었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뼈에서 황화수은이 발견되었다면 수은 중독으로 사망했을 거라는 얘기는 할 수 있겠지만 아마도 독살은
아니었을 겁니다.^^;;
옛날엔 수은이 불로장생을 상징했으니 알아서 복용했을거에요.
화장품으로도 사용되었어요 미백효과가 있는데 끊으면 얼굴이 심히 까매져서 한번 쓰기 시작하면 끊을 수 없겠지요...
@@임스튜브 네 맞아요 진시황제도 수은중독으로
천년 만년살줄알고 한치앞을 모르는게 인생인것을!!!
당시의 동래야류를 보면 마눌이건 뭐건 여자하나 죽는 것은 취급도 못 받았던. 할배가 할망구 패서 죽이면 그냥 낙상으로 죽었다고 하고서는 바로 새마누라 들이던 시절이었음. 여성 인권따위는 전혀 없던. 중국영화 홍등이라는 공리가 나오는 영화에서 잘 묘사됨.
영비가 궁녀출신이었는지는 기록이 없어 알수 없습니다. 입궁한지 10년이나 지나 귀인이 되어 그럴것이다 라는 추측만 있고, 영비를 황후로 추존한 것은 가경제가 아니라 건륭제입니다. 건륭제가 효현순황후의 올케와의 불륜설은 너무나 야사입니다.. 효현순황후는 기록상 병에 걸려 여행중에 사망했고 단혜황태자가 사망한건 효현순황후가 죽기 10년전의 일입니다
건륭제관 관련 스토리는 많은 것이 다양한 설에 기반하고 있다고 애초에 말씀드렸습니다. 그리고 황후로 추존된 건 가경제가 건륭제 생전에 즉위했기 때문에 왕의 생모 자격으로 추존되었습니다.
"청나라의 황귀비는 황후 내정자에게 일시적으로 주어지는 작위이기도 하나 건륭제가 새로이 황후를 책립하기를 거부한 탓에 황후에 오르지 못하고 건륭 40년에 황귀비의 신분으로 사망했으며 '영의황귀비'(令懿皇貴妃)란 시호를 받았다. 건륭 60년(1796년)에 가경제가 황위에 오르자 황제의 생모 자격으로 황후로 추존되었다. "
사실로 따지면 여기에 몇 가지가 사실인지조차 불분명합니다. 그러니 사극에서 상상력을 무한히 발휘하는 것입니다. 불륜설이 야사라고는 하나 상당히 설득력이 있어 보여 언급했습니다. .
@@bonggu-h3f 맞습니다. 한족은 일단 후궁 가능성이 있는 수녀 선발 대상이 될 수 없는 것으로 알고 있어요. 수녀는 만주족 귀족의 일정한 계급의 14살 딸들을 대상으로 했어요.
그리고 건륭제의 어느 글에 영비가 푸차씨에게 이런 저런 교육을 받고 어쩌고 하는 글귀가 있어요. 그래서 많은 이들이 영비가 처음에 푸차씨 밑에 있었던 하녀 혹은 궁녀였다고 추정하는 겁니다.
ㄱ
건륭제가 총애했던 후궁들 대부분이 한족이나 외국출신이죠
황후를 정말 사랑했다는 사람이 황후 죽고나서 총애받는 후궁이 많이 나왔던거보면 그냥 미화인거같아요😂😂😂😂
그...올케라면.. 연희공략에서 역대급 ㄸㄹㅇ로나오는 얼칭의 야사내용이 맞았던건가 ㅋㅋ
근데 여의전에 부찰황후는 너무미웟음ㅋㅋ
진짜 부찰황후에 대한 좋은 인상을 다깨트립ㅋㅋ
옛날 중국에선 관에 수은을 넣어서 시신을 썩지 않게 했다는.
막강 가문의 푸차가 죽었는데 4년간 제사 100번 ,측근이 머리를 깍았다고 처단? 했다면 ..사망음모가 있었고 처가쪽 역성 반란이 일어날까봐 생쇼했다는 걸로 보여지는데..??
아 그래서 .. 드라마에서도 건륭제 출생비빌에 대해서 그렇게 연출했구나…
어미도 그렇고 지가 건륭제 형제라고 난리친놈도 그렇고..흥미롭규만
뼈는 무슨 약물 때문이 아니라 원래 썩지 않지 수천년된 무덤도 뼈가 다 남아있는데
400만 만주인이 4억 중국인을 통치한건 정말 대단하지만
지금은 중국에 다 흡수 되였지요
왕년에 유명한 여배우 관지림이 만주인 후손 입니다
만주인은 민족이고, 중국인은 중국 국적을 가진 사람을 말합니다. 둘 다 구분하세요
관지림은 아버지 관 산이 만주족이죠.
엄마는 한족이라 반만 만주족입니다.
위씨는 건륭제가 책봉해준겁니다...
가경제가 황제가된후에도 건륭제가 국정을 운영했고 실권도 건륭제가 가지고있었죠
더욱이 위씨 책후는 가경제가 올려준게 아니라 건륭제가 올려준거로 알고있습니다
성지를 내린사람이 건륭제란거죠
건륭제가 말하길 위씨가 황후로 추증된 것은 순전히 아들이 제위에 자리에 올랐기 때문이라며 봉선전에 제만 올리고 천지와 사직에 제를 올리지 않았습니다. 보통의 황후라면 천지 사직 태묘에 고하고 황태후에게 존호를 올립니다만 위씨는 생략됬더라구요
건륭제는 황제의 자리에서 내려왔어도 여전히 가경제가 건드릴 수 없는 상왕이었으니
황후 추존의 주체도 맞을수 있어요. 하지만 가경제의 생모 자격이라 아들이 어머니를 올렸다고도 할 수 있어요.
한족출신황제는 없었습니다 애신각라가 정설이죠
3:58 '건륭제는 남순을 했는데'
여기서 말하는 남순이 뭔가요? 검색해봐도 남순강화밖에 안나오는데 1992년에 등소평이 했다는 남쪽지방 순시를 하면서 개혁개방을 말했다던 남순강화에서 따온 말인가요?
순이라는 글자가 차례로 돌아다니다는 뜻이에요. 남순은 남쪽을 돌아다녔다는 거죠. 황제가 직접 시찰나간거라고 보면 됩니다.
@@conac1412 제가 그거냐고 물어본건데 같은 대답인거잖습니까? 그리고 우리나라에서 쓰이는 단어가 아니면 사전적 의미를 찾고 싶어서 찾아도 저렇게 밖에 안나오는데 한국어와 한글로 영상제작을 하시는 분이면 자막으로 주석을 달아서 쓰는게 맞는거같습니다. 한자로 南巡으로 검색해야 중국어사전에 나오는 단어면 한자도 같이 명기하던가 설명이라도 있어야한다고 봅니다.
@@natural4014 역사용어라 찾기가 좀 어렵기는 하죠. 그러시면 정확하게 순행을 찾아보심이. 그건 국어사전에 나오는 단어니까 한자입력없이 바로 찾을 수 있습니다. 임금이 나라 안을 두루 살피며 돌아다니던 일. 여기서 남쪽 순행, 남순이라는 단어가 나오게 됩니다.
@@conac1412 남순은 중국의 역사용어지 한국의 역사용어가 아닙니다. 순행은 저도 아니까 굳이 알려주실 필요없습니다.
@@conac1412 그냥 중국어 사전 찾아보면 나옵니다. 南巡 ㅡ 동사
(천자나 고급 관리가) 남방을 순시하다.
황제의 딸이 건륭제시대를 모티브로 한지라 영비는 자꾸 드라마에서처럼 상냥하고 좋은, 뭔가 반가운 느낌이네요.
하지만 첫번째 황후의 경우 뭔가 사랑하는 사람이 죽어서 슬픈 애도의 느낌보단 원혼을 피하고 달래는 느낌이 더 드니 황제의 순정을 믿지못해서일까요...
비슷한 느낌입니다. 건륭제는 세번째 황후를 제일 좋아한 것같아요. 그리고 그림만으로도 순하고 수더분한 여인이었다는 것이 느껴집니다.
건륭이 가장 사랑한 사람은 아무래도 첫번째 황후인 부찰황후겠죠. 부찰황후가 죽은 후에도 평생을 그리워했습니다.
후궁으로써 즉 첩으로써 총애는 했지만 모의천하 할수있는 중궁의자리로 올릴생각은 없었던같네요
아들덕에 황후가 됬으니까요
@@Laura-f8s5k 그런데 푸차씨 사후에 건륭제의 행동은 사랑이라기보다 왠지 죄책감으로느껴지게 할 정도로 오버스런 부분이 있어요. 그렇다 보니 설득이 되지 않아 별별 설이 많은 겁니다.
연희공략. 에서도
부찰황후의 올케와 불륜이 등장합니다.
그리고 위가씨(영비)는 황후의 궁녀로 등장하죠,
영비가 만주족이 아니라 한족 출신이라니 드라마 황제의 딸에서 영비가 평민공주 측근에 선 이유가 있었군요
한족출신 많아요
건륭제 할아버지인 강희제도 한족 혼혈임
당시 약에는 수은같은 성분이 있었는데 임신만 7번으로 약을 먹어야했던 영황귀비가 약의 수은성분 때문에 시신이 부패하지 않은게 아닐까 추측됩니다.
그리고 영비 사망 한달 전에 하나뿐인 딸이었던 화정공주가 15세의 나이로 요절했는데, 그 충격으로 가뜩이나 안좋던 상태에서 사망한게 아닐지..
당시 평균 수명도 길지 않았고 영비의 나이도 49세로 그때로 보면 노인이나 다름없는 나이였고요. 노인들에게 배우자나 자식 등 가까운 가족들이 사망하면 그 충격이 크다고 들었어요. 만약 독살이였다면 아무도 의심하지 못했겠네요.
건륭의 첫번째 황후인 효현순황후는 건륭에게 첫사랑이 아닌가 싶어요. 실제로도 건륭이 그정도로 대우해준건 효현황후와 그 자식들이 유일하고요. 어릴때부터 같이 생활한 조강치처에 적장자를 낳았고 집안도 명문가였으니 총애하지 않는게 이상할정도.. 게다가 외모도 예뻤고 사치부리지 않았던 검소한 성격이라고 하더라구요.
저는 효의순황후의 처세술이 궁금하네요. 어릴때부터 같이 지낸것도 아니고 집안이 명문가도 아닌데 입궁한지 4년만에 비가 되는 특급승진에 아들은 황제가 되고 본인은 황귀비가 되어 내명부를 통솔했죠. 화정공주가 요절하긴 했지만 정실출생 공주나 아끼는 딸에게만 주는 고륜이라는 칭호를 받았고 죽을때도 황제가 기거하는 양심전에서 죽었으니 영비가 죽을때 자기 아들이 황제가 될걸 알았을거에요.
그리고 일단 임신만 7번한것만 봐도 얼마나 총애했는지가 보이고 영비가 한족이었는데 건륭이 두번이나 집안의 격을 높여주어 만주족 가문으로 승격됐죠.
보면볼수록 계황후만 불쌍해지는.. 장례도 후궁의 격에 맞추어 치뤘고 아들도 낙동강 오리알 신세에 제대로된 추존도 못한..
건륭제가 살아생전 직접 황후로 봉했습니다. 아마 황태자인 가경제를 위해서 그랬곘죠
청나라의 몰락은 아이러니하게도 건륭제 때부터 시작되었다고 봐도 무관하다
중공은 문화대혁명으로 역사를 없앤 나라인데.. 중공 사람들도 모르는 역사 이야기를 ... 제 개인적으로 한글로 듣고 있는 것에 놀랄 일입니다....................한반도 삼국시대부터 이야기 거리가 많은데..
아 연희공략 본 게 기억나네요
So great!!
설마...죽였지만 사랑해?는 아니것쥐...
기록 남기는 걸 중시하고 족보를 중요시 하던 저 당시 일반 서민도 아닌 황제의 생모와 관련된 기록이 불분명 하다는 건 뭐가 있길래 그런 것인지.. 아마 황비의 자식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후사가 없어서 첩의 자식을 입적한 것과 비슷한 무언가가 아닌가 생각이 되네요 그 전후 황제는 다 기록이 뚜렷한데 실수나 소실로 기록을 안 남겼다고 보긴 힘드니까요.. 황제의 순행길에서 도대체 뭘 봤길레 첫 부인은 자결하고 두 번째 부인은 머리 자르고 유폐까지 당했는지 ..
원래부터 황제는 여러 첩이 있고 단지 불륜을 봐서 그렇다는 건 좀 이상하고 .. 당시 허선이라는 관료와 동성애 관계였다는 의혹이 있는데 황제가 동성애를 한 것을 목격했다고 자살하는 것도 이상합니다. 앞에서 말 한 것처럼 황제는 이미 여러 처첩이 황궁에 있었고 동성애라고 해도 뭐 큰 차이는 없으니까요
자살하고 머리 자를 만큼 시위를 한 걸 보면 .. 허선하고 둘이서 쓰리썸을 강제로 했던지 그런 게 아닐까 생각이 드네요.
건륭제 이놈 .. 한족
세번째 황후 .. 한족
답 다 옴 ㅋ
첫번째황후 두번째 황후 는 아마도.
황제 와 세번째 황후 의 작품이죠 ..
기록조작하면 다 숨길수있으니 ..
그래서 .. 첫번째 황후 의 죽음을 애도하는척
철판깔고 쌩쑈 한거고 .. 세번째.황후가 .. 첫번째 황후를 그리워 한다는것도 .. 쌩쑈 ㅋ
귀신을속여라 ㅋ
진지하게 읽다가 결론이😂
영비가 죽은건 그냥 임신출산을 반복해서 몸이 쇠약해진것도 일조한다고 봐요
그런 이유도 어디서 본 것 같은데 우리 어머니 세대도 6명 전후의 아이를 연달아 낳고 오래 사신 분들 매우 많습니다. 설명할 수 있는 요인을 찾다 보니 찾은 가장 납득이 안되는 이유였습니다.
@@mika_box 울 외할머니도 5낳고 하나는 지워서 임신을 6번 했는데도 96살인 지금까지 멀쩡하긴 하내뇨 ^^;ㅋㅋㅋㅋ
@@mika_box 체질이 허약할수도 있구요 적지 않은 나이에 죽기전까지 연달아서 낳으면 .. 망가지긴하죠
@@청담곰 옛날 여자들은5~6명 정도가 아니라 10몇명을 임신 했을수도 있으니 빨리 사망한 이유가 충분히 될수있다고 생각해요. 뭄타즈마할도 17명째 인가 낳다가 죽었으니요.
우리 친정엄니의 할머니는 일제시대때 12명이나 낳고도 오래사셨죠 ㅎㅎ
영비가 한족출신이긴 하나 집안은 좋은 집안이라고 합니다. 계황후 나라씨는 용비와의 갈등으로 총애를 잃었단 이야기도 있죠....
용비=향비
향비가 위구르 옷만 고집하니 강제로 옷을 벗긴 일이 있을지도요.
황제의 딸 드라마에서 황후가 향비의 옷을 망가뜨리는 이야기가 있죠. 웬지 고증을 반영한 게 아닐지요
영비가 좋은 집안인 건 아니죠… 따지고 보면 한군기 포의 출신인데요 ㅠㅠ 그래서 건륭이 대기를 두 번이나 해 줍니다 좋은 집안 출신이라고 하기에는 애매한 감에 많아요 ㅠ
그시절 저얘길 직접 중국가서 건륭제를 알현하고
현지인한테 직접들은 박지원 ㅎㄷㄷ
건륭제..대만에서 드라마만들었는데 울나나나씨~ 그걸 로맨티하게 그리더니..또 결혼 했네?
아참 우황첨심환에도 진사(수은)이 들어 갑니다..... 그러나 현대에는 수은의 중독성을 제거한것을 쓰지만, 과거라면 아픈 병자에게 그런 약을 먹였다면, 진짜 진사(수은)를 쳐 드셨겠죠.
평균 연령이 30~40대 이던 시절이라, 수은중독에 걸려서 죽으나 자연사 하나 별 차이가 없죠.. 그냥 자연 흡입되어서 자연사 할 나이쯤 중독 현상이 발현하거나, 먼저 죽고 그냥 시체에 남았을 수도 있죠. 물론 죽을병에 걸렸는데 더 빨리 가속시킬수는 있었겠죠.
몸이 피곤하네..... 야 약 한알 가져와봐(수은중독)
유희열이 건륭제였구나
세쌍둥인가요?
Ha. Ha. Ha
Three. Lady's. Same. Face.
Still. Lie. Story. Make
The. Stupid brain works. 😆😈
건륭제💞3명의 왕비
오왕자 영기의 모비는 누구인가요…?
유비마마
유비냥냥
유비마마
가경제 모후는 영비
유비 가리엽특씨입니다
엄청난 미인들이네
집안싸움 난장판이여서 기록을 안했나보네
뭔 내용도 없이 추측만 나열했네.
죽음후 지금도 앞으로도 살 저들의 처소는 ᆢ
건륭제가 아니라 손홍민에게 청나라 의상 입힌 줄 ....
ㅎㅎㅎ
ㅋ 눈썰미~^^
가경제부터 나라 망하기 시작 ㅋㅋ
건륭제는 손흥민과 많이 닮았네 ㅎㅎ
황제의 딸에 나오는 자미 어미니는 .,.
누구일까용?
자미 엄마는 걍 일반인이잖어ㅋㅋ 밖에서 여자 임신시키고 그 애가 나중에 궁 찾아온 거지.
지나가는 여자
황제한테 불륜,,
내가 안 그랬슙니다.
중국 청나라 황제* 건륭제
이런걸 가지거 미화 로맨스 궁중 드라마찍은 대만 웃김
세번째 황후가 ... 첫번째 두번째 황후 다 죽였다고 보는게 ㅋㅋㅋㅋㅋ 건륭도 정체모를 놈.
세번째황후가 초고속으로 승진한것은 .. 같은 한족이라 보는게 ... 황제와 세번째 황후가 ..
짜고쳐 두 황후를 죽였을겁니다 ... 청 황조를
한 황조로 만들려고 .. 건륭이놈은 .. 겉.과 속이 다른 ...아주 철저히 가면을 쓴 놈이죠 ..
황제라 .. 기록조작 얼마든지 할수있으니 ㅋ
더 신기한 건 저렇게 못생기게 그리다니. 화공이 살아남았나. 그림이 전부 똑같네. 나 같으면 화공부터 주겼다.
맞춤법좀…..
야만적인 것들, 실록도 안만들었나.
실록에 목숨건 조선이 별난 것임
@@diamolee559
뭔 소리임? 실록이 왕의 개인사만 적은 것도 아니고, 그날그날 돌아가는 나라일을 의논하고 결정하는 왕과 조정의 일을 적은거라 역사적인 사료가치가 높은데 그게 별나다는 사고는 어느나라 사고임?
중국이 실록이 없을 린 없을건데, 우리 마오가 문화대혁명 어쩌구 씨부리면서 싹 태워 버렸으니 없음. 오즉하면 한복을 지네거라 함? 역사적 사료가 없으니 지네거라 우기는 거임. 한푸는 무슨....
생각의 다양성에서 그렇게 볼 수는 있겠지만, 멍청한 소리라는 절대성은 안 없어짐.
조선이 이상한거 ㅋ
청나라 시대인데 1분경의 여자 복장은 명나라 복장 같으네요
Cosplay
황제나 왕은 아내가 많아서 좋았겠다요.
청 고구려 만주국 후손이 세운 나라였다
신라인의 후손이라고 주장합니다.
청나라 황실이요~
청은 신라의 후손입니다. 그들이 현재 쓰는 성도 金입니다
애신각라.
아이신저러우(애신각라) 몰라요?
청황조는 신라후손이예요.
신라후손 아닌거 밝혀진지가 언젠데….
소설이라서 중국사료도 날조 됐다
청나라는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