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선비록] 살아남아 죽음보다 더한 고통을 겪은 윤선거(尹宣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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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Опубликовано: 4 янв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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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선거는 조선 후기의 대유학자로, 대사간 윤황의 아들이었으며 성혼의 외손이었고 어릴 때는 가정의 학문을 기반으로 김집의 문하에서 배웠는데, 지조와 행실이 돈독했습니다.
    인조 11년인 1633년 생원, 진사시에 합격하고 성균관에 들어갔으며 성균관에서 공부할 때는 언론이 강개하여 유생들에게 인정을 받았습니다.
    1636년 청나라에서 사신을 보내 청을 섬길 것을 요구하자 그는 성균관 유생들을 규합해 명나라에 대한 의를 지키기 위해 사신의 목을 벨 것을 임금에게 강경하게 청하기도 했습니다.
    그는 뒤에 송시열, 권시, 윤휴 등과 교유하면서 예학과 역학 등을 연구하는 데 몰두했는데 1651년 이래 천거를 받아 10여 차례 벼슬에 임명되었으나, 한번도 취임하지 않고 평생 재야에서 처사적인 삶으로 일관했습니다.
    그가 죽을 때까지 한번도 조정에 나아가지 않은 것은 병자호란 때 아내를 따라 자결하지 못하고, 친구들과도 함께 자결하지 못한 채 구차스럽게 살아남은 것을 한탄해 일생 죄인으로 자처했기 때문입니다.
    이에 대해서는 효종 대에 올린 그의 사직 상소에 잘 나타나고 있는데 이렇게 말했습니다.
    “지금 신의 본심을 논하는 자들이, ‘벗과 함께 일하기로 하고서 벗은 죽었는데 죽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말하기도 하고, 또는 ‘아내와 죽기로 약속하고서 아내는 죽었는데도 죽지 못했기 때문에 이것을 자책하여 벼슬할 생각이 없는 것이다’고도 하는데, 이것은 모두 신의 실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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