눅 1:26절은 "여섯째 달에"민간력으로 여섯째 달, 아달월일까요? 아니면 종교력으로 엘룰월일까요? 이 두 가지도 성탄절과 맞추기가 어려운 기간이 되네요? 어떻게 보면 엘리사벳이 임신한 후 육개월이 지난 것으로 봐야 하나요? 그런데 헬라어 원문을 보면 여섯 째 달 그 달을 강조하고 있지 후에 라는 전치사가 없거든요!이것에 관한 견해를 나누어 주세요! 개인적으로 주셔도 됩니다. kimms405@hanmail.net
질문 감사합니다....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 답변드리겠습니다. 본문의 '여섯째 달'에 전치사는 εν입니다. 당연히 '후에'라는 뜻이 없습니다. 하지만, 이 '여섯째 달'은 쉽게 표현해서 '6월'이 아니라 '육개월'로 이해해야할듯 합니다. 문법적으로는 둘다 해석이 가능하지만, 전체 본문의 문맥속에 그 해답이 있습니다. 눅1:36절에 '여섯 달이 되었나니'라고 나옵니다. 그렇다면, 이 본문은 그 뜻이 분명해졌다고 봅니다. 굳이 직역하자면, '육개월이 되었을 때에'가 되는 거죠.. 그리고, 이 구절을 통해 예수님의 탄생일을 계산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영상 잘 보았습니다. 그런데 유다 마카비와 예수님 누구를 기대하고 있는가 하는 질문, 그리고 예수님은 우리를 로마로부터가 아니라 죄로부터 구하러 오셨다고 설명하는 부분은 전반적인 한국 신학의 문제를 드러내고 있다고 봅니다. 로마도 죄이고, 예수님은 빌라도를 향해 나를 너에게 넘겨준 자들의 죄가 더 크다고 하셨습니다. 느부갓네살보다 못한 왕으로서 가이사 시대에 메시야이신 예수님께서 오신 것이고,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느부갓네살을 세우시기도 하시고 폐하시기도 하신 것처럼, 예수님은 어느 왕조 하나에 대해 거부하기 위해 오신 것이 아니라, 이런 모든 자들의 죄에 대해 거부하고 그리고 회개하는 자들을 대신해서 십자가의 피로 용서해주시고, 자신의 왕되심을 부활로서 입증하신 것입니다. 목사님이 얘기한 죄가 바로 무엇인지는 세례 요한이 그럼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에 대해 질문하자 답변했던 내용이고, 이를 한국의 기독교가 지키지 않아, 아브라함의 자손이면 그처럼 행하였으리라는 예수님의 말씀에 부합되게 한국 기독교가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지 못하고, 예수님을 잡아죽인 유대인과 같은 신앙인이 된 것입니다. 어느 때에 회복하시느냐는 제자들의 질문에 이는 오직 하나님만 아신다고 대답하신 예수님의 말씀처럼, 그리고 너희는 내 증인이 되라고 하신 것은 성경 전체를 관통하여 예수님의 증인, 하나님의 증인이 되는 것이라고 보아야지, 마틴 루터가 오직 이라는 단어를 넣어서 믿음으로만이 아니라 이웃 교인, 같은 교인들을 사랑하는 형제 사랑이 빠진, 배고픈 형제에게 평안히 가라고 하는 현대 한국 교회의 신앙이 아닙니다. 수전절을 지킨다고 하면서 예수님을 잡아죽인 유대인이나 개별 교회의 성장에 집중하면서 고통에 빠진 그 교회의 교인들, 가난한 교인들을 방치하는 한국 교회나 다를 것이 없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죄로부터 구원하시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죄로부터 구원이라 함은 죄를 지은 댓가로부터의 구원이기도 하고, 죄를 짓는 것으로부터의 구원이기도 합니다. 예수님을 믿은 다음에도 무엇이 죄인지 알지 못하고 계속 죄를 짓고 있다면 이는 큰 문제가 됩니다. 교회는 천국 공동체입니다. 서로 사랑하지 않으면 예수님의 제자들이 아니며, 그 사랑의 핵심은 영적 육적 나눔입니다. 한국 교회는 영적 나눔은 하는데, 육적 나눔, 즉 물질적 나눔은 사도행전 교회의 길을 이미 오래 전에 버렸습니다. 그 친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최고의 사랑이라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유럽 기독교보다 한국 기독교가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면 한국 기독교도 라오디게아 교회가 되어버릴 것입니다. 에스겔서 18자에 나오는 말씀처럼, 죄로부터 떠나야 하고 의를 행해야 합니다. 이는 믿는 자에게 나타나는 표징입니다. 행함으로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라 믿은 사람에게선 행함의 표징, 예수님처럼 살아가는 표징이 나타납니다. 자본주의의 종이 되어버린 한국 교회가 예수님의 친구가 되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예수님이 이스라엘을 로마로부터 구하지 않은 이유는 그들이 느헤미야의 행실을 따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정치적인 메시야가 아니셨기에 이스라엘을 로마로부터 구하지 않으신 것이 아니라, 로마의 치하에 두신 분이 하나님, 즉 예수님이시고, 이스라엘이 회개했을 때 그들을 바벨론에서 구해주신 것처럼 다시 로마로부터 구해주시고자 하셨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이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자신들의 죄, 즉 하나님을 거짓되이 섬기고 그 동족을 사랑하지 않은 죄를 벗어나지 않고, 로마의 압제로부터만 벗어나길 원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한국 신학이 이 말씀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일제 신학에 오염되어 그릇 해석하고 전파했던 것입니다. 이스라엘, 오늘날의 이스라엘도 빈부격차가 큽니다. 정치인들의 부패도 큽니다. 동족간에는 이자를 받지 말라 하셨습니다. 느헤미야는 바로 이 점 때문에 이스라엘이 망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 당시의 부자들도 느헤미야 당시의 부자들과 같았습니다. 예수님의 메시지는 에스겔과 느헤미야의 메시지와 같습니다. 그들을 보내신 분이 예수님이셨기 때문이고, 오리라 한 엘리야인 세례 요한의 메시지도 이와 같았습니다. 예수님은 만왕의 왕이십니다. 정치적인 분이 아닌 것이 아닙니다. 이 세상의 모든 권력의 원천이심을 요한계시록에서 다시 증거하고 계십니다.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에게를 이해하지 못하는 한국 교회의 많은 삯군 목자들이 예수님 당시의 서기관과 바리새인들과 같습니다. 가이사를 세우신 분이 하나님이시고, 가이사를 폐하신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주님께서 원하신 것은 우리가 정의로와지는 것이며, 바로 이것이 주님께서 우리의 죄를 대신해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시고 부활하신 이유입니다. 아브라함을 택하신 이유도 의와 공도를 행하게 하심이라고 창세기 18장 19절에 잘 나와 있습니다.
얼마나많은 믿음의선조들이 하나님의거룩한편에서 싸워서승리햇는가 너믜나감사합니딘 아버지 수전절에 오세요
감사드립니다 ~
마카비의 배경 장소를 안내, 수전절 하누카를 설명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생생한 이스라엘 현지를 잘 보고 있어요.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늘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마카비를 독립운동가로만 생각했는데 더 의미깊은 인물이었군요. 유대역사를 배울수록 예수님의 시대가 더 이해되고 다가오는 것 같습니다.
매번 좋은 영상을 위해 이스라엘 구석구석을 다니시는 목사님의 열정에 감사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정말 열심히 다니며 촬영하고 있답니다
좋은 영상 감사합니다. 구독 좋아요 하고 합니다.^^
감사합니다. 2021년에는 더 큰 감사의 일들이 많아지길 기도합니다.
예수없는 유대인들이여
예수그리스도를 영접하시기를 축복합니다 🎉😂🎉
잘 익혀두려고 여러번 보고있습니다^^
두분께 감사드립니다!
감사합니다...
방금, 아내에게도 댓글 내용 전했습니다.
1당 100 댓글이 너무 좋았습니다.
누구신지 참 궁금해지네요..
오늘 뒷배경들이 유독 합성처럼 보였어요 😆😆😆
뒤에서 움직이는 차와 동물(검정색 양인가요? 뭔가요?)들이 아니었으면 사진으로 착각할만큼 너무 멋졌어요! 어쩜 풀들이 저리 파릇파릇한지요..ㅎ 나무도 잎사귀가 풍성하구요.
맞습니다
검정색 양입니다.
제 모자가 가려서 그런데,
양과 목자들이 골짜기에 있었답니다...
그렇지않아도 거의 합성처럼 보인다고 저와 아내도 생각했었습니다....
전에도 느꼈는데 관찰력이 좋으십니다^^
하누카에 대해 이해 됩니다.
감사합니다
목사님. 종횡무진 중간사 지역을 찾아 보여주시니 고맙습니다.
배경에 초록색 풀들도 보이니 좋습니다.
모딘 지역 답사를 더 해야겠네요. 그 무덤은 모르는 곳이어서요...
몇일동안 촬영했는데,
같은 옷을 입고하려니
비오는 날에는 추워서 감기들뻔 했답니다
초록 초록해서
보기에 아주 좋았답니다
@@mem-israel 그렇죠? 그래야 통일성이 있으니.... 마치 드라마 촬영하는 사람들처럼요?~
지난 주간엔 좀 추었어요. 여러가지 크고 작은 얘깃거리가 생기는군요.
눅 1:26절은 "여섯째 달에"민간력으로 여섯째 달, 아달월일까요? 아니면 종교력으로 엘룰월일까요? 이 두 가지도 성탄절과 맞추기가 어려운 기간이 되네요? 어떻게 보면 엘리사벳이 임신한 후 육개월이 지난 것으로 봐야 하나요? 그런데 헬라어 원문을 보면 여섯 째 달 그 달을 강조하고 있지 후에 라는 전치사가 없거든요!이것에 관한 견해를 나누어 주세요! 개인적으로 주셔도 됩니다. kimms405@hanmail.net
질문 감사합니다....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 답변드리겠습니다.
본문의 '여섯째 달'에 전치사는 εν입니다. 당연히 '후에'라는 뜻이 없습니다.
하지만, 이 '여섯째 달'은 쉽게 표현해서 '6월'이 아니라 '육개월'로 이해해야할듯 합니다. 문법적으로는 둘다 해석이 가능하지만, 전체 본문의 문맥속에 그 해답이 있습니다.
눅1:36절에 '여섯 달이 되었나니'라고 나옵니다.
그렇다면, 이 본문은 그 뜻이 분명해졌다고 봅니다.
굳이 직역하자면, '육개월이 되었을 때에'가 되는 거죠..
그리고, 이 구절을 통해 예수님의 탄생일을 계산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돌을치른버르장머리는
하나님께서 ㅡ가르치셨어요😅
ㅎㅎㅎ
영상 잘 보았습니다. 그런데 유다 마카비와 예수님 누구를 기대하고 있는가 하는 질문, 그리고 예수님은 우리를 로마로부터가 아니라 죄로부터 구하러 오셨다고 설명하는 부분은 전반적인 한국 신학의 문제를 드러내고 있다고 봅니다. 로마도 죄이고, 예수님은 빌라도를 향해 나를 너에게 넘겨준 자들의 죄가 더 크다고 하셨습니다.
느부갓네살보다 못한 왕으로서 가이사 시대에 메시야이신 예수님께서 오신 것이고,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느부갓네살을 세우시기도 하시고 폐하시기도 하신 것처럼, 예수님은 어느 왕조 하나에 대해 거부하기 위해 오신 것이 아니라, 이런 모든 자들의 죄에 대해 거부하고 그리고 회개하는 자들을 대신해서 십자가의 피로 용서해주시고, 자신의 왕되심을 부활로서 입증하신 것입니다.
목사님이 얘기한 죄가 바로 무엇인지는 세례 요한이 그럼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에 대해 질문하자 답변했던 내용이고, 이를 한국의 기독교가 지키지 않아, 아브라함의 자손이면 그처럼 행하였으리라는 예수님의 말씀에 부합되게 한국 기독교가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지 못하고, 예수님을 잡아죽인 유대인과 같은 신앙인이 된 것입니다.
어느 때에 회복하시느냐는 제자들의 질문에 이는 오직 하나님만 아신다고 대답하신 예수님의 말씀처럼, 그리고 너희는 내 증인이 되라고 하신 것은 성경 전체를 관통하여 예수님의 증인, 하나님의 증인이 되는 것이라고 보아야지, 마틴 루터가 오직 이라는 단어를 넣어서 믿음으로만이 아니라 이웃 교인, 같은 교인들을 사랑하는 형제 사랑이 빠진, 배고픈 형제에게 평안히 가라고 하는 현대 한국 교회의 신앙이 아닙니다.
수전절을 지킨다고 하면서 예수님을 잡아죽인 유대인이나 개별 교회의 성장에 집중하면서 고통에 빠진 그 교회의 교인들, 가난한 교인들을 방치하는 한국 교회나 다를 것이 없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죄로부터 구원하시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죄로부터 구원이라 함은 죄를 지은 댓가로부터의 구원이기도 하고, 죄를 짓는 것으로부터의 구원이기도 합니다.
예수님을 믿은 다음에도 무엇이 죄인지 알지 못하고 계속 죄를 짓고 있다면 이는 큰 문제가 됩니다. 교회는 천국 공동체입니다. 서로 사랑하지 않으면 예수님의 제자들이 아니며, 그 사랑의 핵심은 영적 육적 나눔입니다. 한국 교회는 영적 나눔은 하는데, 육적 나눔, 즉 물질적 나눔은 사도행전 교회의 길을 이미 오래 전에 버렸습니다. 그 친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최고의 사랑이라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유럽 기독교보다 한국 기독교가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면 한국 기독교도 라오디게아 교회가 되어버릴 것입니다.
에스겔서 18자에 나오는 말씀처럼, 죄로부터 떠나야 하고 의를 행해야 합니다. 이는 믿는 자에게 나타나는 표징입니다. 행함으로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라 믿은 사람에게선 행함의 표징, 예수님처럼 살아가는 표징이 나타납니다.
자본주의의 종이 되어버린 한국 교회가 예수님의 친구가 되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예수님이 이스라엘을 로마로부터 구하지 않은 이유는 그들이 느헤미야의 행실을 따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정치적인 메시야가 아니셨기에 이스라엘을 로마로부터 구하지 않으신 것이 아니라, 로마의 치하에 두신 분이 하나님, 즉 예수님이시고, 이스라엘이 회개했을 때 그들을 바벨론에서 구해주신 것처럼 다시 로마로부터 구해주시고자 하셨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이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자신들의 죄, 즉 하나님을 거짓되이 섬기고 그 동족을 사랑하지 않은 죄를 벗어나지 않고, 로마의 압제로부터만 벗어나길 원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한국 신학이 이 말씀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일제 신학에 오염되어 그릇 해석하고 전파했던 것입니다.
이스라엘, 오늘날의 이스라엘도 빈부격차가 큽니다. 정치인들의 부패도 큽니다. 동족간에는 이자를 받지 말라 하셨습니다. 느헤미야는 바로 이 점 때문에 이스라엘이 망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 당시의 부자들도 느헤미야 당시의 부자들과 같았습니다. 예수님의 메시지는 에스겔과 느헤미야의 메시지와 같습니다. 그들을 보내신 분이 예수님이셨기 때문이고, 오리라 한 엘리야인 세례 요한의 메시지도 이와 같았습니다.
예수님은 만왕의 왕이십니다. 정치적인 분이 아닌 것이 아닙니다. 이 세상의 모든 권력의 원천이심을 요한계시록에서 다시 증거하고 계십니다.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에게를 이해하지 못하는 한국 교회의 많은 삯군 목자들이 예수님 당시의 서기관과 바리새인들과 같습니다.
가이사를 세우신 분이 하나님이시고, 가이사를 폐하신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주님께서 원하신 것은 우리가 정의로와지는 것이며, 바로 이것이 주님께서 우리의 죄를 대신해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시고 부활하신 이유입니다. 아브라함을 택하신 이유도 의와 공도를 행하게 하심이라고 창세기 18장 19절에 잘 나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