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화도 회군은 한마디로 이성계가 사리분별 잘한것 이성계 나이 당시 53세, 우왕은 23세 쌍성총관부 그쪽 근처에서,오랫동안 터를 잡고 살며 이성계 가족이 원나라 덕을 많이 본 가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 공민왕이 소환하니 이성계 아버지 이자춘과 쌍성총관부(1356년)를 탈환했지요.. 공민왕 어린시절부터.. 시작해서 공민왕 막판에 시해 당하는거, 흥망성쇠 다보고 그 아들 우왕때까지 약 32여년동안 이성계가 묵묵히 조선을 지켜줬지요 1388년 위화도 회군당시 , 당시 최영은 72세로 고령이었구요.. 그당시 70대면 지금으로 치면 90대도 넘은것으로 오늘 내일 하는것이지 역사를 좀 안다는 사람들이 이런 기본적인 것도 모르는 사람도 엄청많음 당시 한나라(고려)에 덕망있는 장수가(이성계) 4가지 이유를 들어 요동정벌을 거부한것은 그 자체가 왕에 어명에도 위험을 무릎쓰고 소신발언 한것으로 출정전까지 , 이성계는 나라를 생각하는 소신있는 "충신"이라고면 됨 산전수전 다 겪은이성계 (당시 53세) 가 목숨걸고 왕에게 조언 해준거랍니다. 제발,,, 잘생각해보세요 고려가 약 98년동안 원나라(몽골)에게 점령당하였던 속국이었는데.. 아무리 원이 막장이라고 하여 그 틈새를 보리고 뎀볐다가 명나라와 서열정리 끝나면 명에 주원장이 가만 둘까요? 그혼란한 틈을 노려 교활하게 ,요동을 정벌한다 한들 그게 무슨 의미가 있나요? 제발 분수파악하길.. 바람. 우왕은 요동을 공격하는게 아니라 지 아비가(공민왕) 그렇게 비참하게 죽었으니 정세가 혼란한 틈을타 , 내부 결속에 박차를 가하며 왕에 입지를 더욱 굳혔어야함 원나라를 잡은 명나라는 아시다시피 화약, 총포까지 개발한 나라입니다. 조공만 받치며 반속국처럼 대국에게 체제를 보장받고 명맥을 유지한 고려가 절대 못이기는 싸움. 그리고 요동을 정벌 할려면 1,2차때 했어야지 몰라도 너무 모르는 우왕이 , 우둔한 명령을 한것 쿠테타고 뭐고 어자피 모든역사를 보면 다먹고 먹히는 싸움 조선왕조 후기가 개판이어서 그렇지 당시 이성계같은 강자가 나라를 잡는것이 오히려 고려에 명맥을 살려준것 어자피 , 여차하면 주원장인 명나라에게 고랴는 또 먹힐수 있었음 세계지도, 아니 중국 지도만 봐도 알수있듯 역사는 그렇게 흐름 후손이랍시고 , 온갖 감정 넣어 비난만 하고, 결과론적 이야기를 하는게 아니라 당시 상황을 검증하며 최대한 객관적으로 살펴보는 것 그것 만으로도 큰의미를 둬야함 글 읽어보면 역사를 모두 다 자기식대로 생각해서 어이없어 글남김
@@의견부탁 그리고 왕의 그릇이 아닌 선조가 왕이 된걸 봐선 막장도 그냥 막장이 아님 오히려 중후기는 거의 고려만도 못한나라가 이씨 왕조 심지어 고려라면 이순신을 대 고려국 수군대총사 로 삼고 문하시중에 봉하여 조정 신료 들 중 최고의 지위에 올려놨음 그러나 선조라는 놈은 그런 그릇조차 되지 못해서 나라를 구한 장수를 그렇게 반죽여 떡을 만들어놓고 그리고 고려가 그토록 요동수복을 중요시한 그 이유조차 망각한 놈들 요동은 본래 고구려의 영토였으며 발해멸망이후 되찾아야 할 우리의 영토인데 명나라의 개가되어 기는놈들이 고려를 욕할 이유는 없죠
@@의견부탁 세종이요? 국민이 굶어 디져도 중국에 보낼 말이랑 소, 금 은 다 긁어모으라고 한 세종이요? 중국에 처녀랑 화자 가장 열심히 갖다바친 세종이요? ㅋㅋㅋㅋ 너무웃깁니다.. [[세종실록9년 - 백성에게 폐해를 끼치는것만 생각하고 진헌(중국에 바침)하는 일을 그만둘 수 있겠는가 전년에도 진헌을 못한데다 지금 또 진헌을 못한다면 이는 될 수 없는 일이다.]]
사불가론 해석하는 꼬라지들 보면 가소롭다. 以小逆大 一不可가 실록에 기록된 원문이다. 작음으로 큼을 치는 것이 첫째 불가이다. 이것이 정확한 번역이다. 그런데 역사학자들마다 이소역대를 작은 나라, 큰 나라로 번역한다. 참으로 기이한 일이다. 이소역대와 같은 문구는 손자병법에 매우 자주 등장하는 어투의 글귀이다. 이성계는 손자병법을 빌어다 불가함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위화도는 압록강 중간에 위치한 섬이 아니다. 1900년대 초반 일본인 학자가 거기를 위화도라고 부르면서 중국도 자기들에게 유리하니까 거기를 덩달아 위화도라고 불렀다. 실제 위화도의 위치는 압록강을 건너 현재 중국 땅 속으로 80Km 들어간 데 위치해 있다(유튜브, 이덕일, 위화도 위치, 로 검색) 따라서 여름철 강물이 불어나 건널 수 없어서 수백명이 죽었다는 것 또한 사실일 수 없다. 이성계는 위화도에 머무르면서 장계에 말하기를, 여름철 장마로 여기저기 시내가 형성되어 적진으로 전진 시 군량을 수송할 수 없으므로 가을철에 다시 출병하게 해 달라고 상소를 올린다.
흔히 요서 혹은 만주지역은 부여땅이였고 이후 문자왕때 고구려에 복속되었다. 이때가 한반도 최고의 영토였고. 나당연합군에게 고구려가 패배함으로써 요서지방은 다시 이민족의 땅으로 돌아갔고 다시 발해를 건국해서 남북국시대가 이어짐. 발해가 거란족에게 멸망당해서 이후 만주지역은 더이상 우리의 영토로 남아있지않게됨.
위화도 회군은 한마디로 이성계가 사리분별 잘한것 이성계 나이 당시 53세, 우왕은 23세 쌍성총관부 그쪽 근처에서,오랫동안 터를 잡고 살며 이성계 가족이 원나라 덕을 많이 본 가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 공민왕이 소환하니 이성계 아버지 이자춘과 쌍성총관부(1356년)를 탈환했지요.. 공민왕 어린시절부터.. 시작해서 공민왕 막판에 시해 당하는거, 흥망성쇠 다보고 그 아들 우왕때까지 약 32여년동안 이성계가 묵묵히 조선을 지켜줬지요 1388년 위화도 회군당시 , 당시 최영은 72세로 고령이었구요.. 그당시 70대면 지금으로 치면 90대도 넘은것으로 인생 말년에 , 오늘 내일 하며 사는것이지 역사를 좀 안다는 사람들이 이런 기본적인 것도 모르는 사람도 엄청많아서 답답하네요 당시 한나라(고려)에 덕망있는 장수가(이성계) "4가지 이유"를 들어 요동정벌을 거부한것은 그 자체가 왕에 어명에도 위험을 무릎쓰고 "소신발언" 한것으로 출정전까지 , 이성계는 나라를 생각하는 소신있는 "충신"이라고면 됨 이성계에 위화도 회군이 만약 그전부터 계획이었다면 굳이 4가지 이유를 왜들어서 반대를 하나..;;;? 상식에 근거하여 발언하길. 산전수전 다 겪은 이성계 (당시 53세) 가 목숨걸고 왕에게 조언 해준거는 맞음 제발,,, 잘생각해보세요 고려가 약 98년동안 원나라(몽골)에게 점령당하였던 속국이었는데.. 아무리 원이 막장이라고 하여 그 틈새를 보고 뎀볐다가 명나라와 서열정리 끝나면 명나라 주원장이 가만 둘까요? 그 혼란한 틈을 노려 교활하게 ,요동을 정벌한다 한들 그게 무슨 의미가 있움? 묻고싶네.. 우왕은 요동을 공격하는게 아니라 지 아비가(공민왕) 그렇게 비참하게 죽었으니 정세가 혼란한 틈을타 , 내부 결속에 박차를 가하며 왕에 입지를 더욱 굳혔어야함 그게 현실감각이 없는것임. 원나라를 잡은 명나라는 아시다시피 화약, 총포까지 개발한 나라입니다. 조공을 바치며 반속국처럼 수백년간 대국에게 체제를 보장받고 명맥을 유지한 고려가 절대로 못이기는 싸움. 그리고 요동을 정벌 할려면 1,2차 때 했어야지 몰라도 너무 모르는 우왕이 , 우둔한 명령을 한것 쿠테타고 뭐고 어자피 모든역사를 보면 다먹고 먹히는 싸움 조선왕조 후기가 개판이어서 그렇지 당시 이성계같은 강자가 나라를 잡는것이 오히려 고려에 명맥을 살려준것 어자피 , 여차하면 주원장인 명나라에게 고랴는 또 먹힐수 있었음 세계지도, 아니 중국 지도만 봐도 알수있듯 역사는 그렇게 흐름 후손이랍시고 , 온갖 감정 넣어 비난만 하고, 결과론적 이야기를 하는게 아니라 당시 상황을 검증하며 최대한 객관적으로 살펴보는 것 그것 만으로도 큰의미를 둬야함 글 읽어보면 역사를 모두 다 자기식대로 생각해서 어이없어 글남김
맞긴함 ㅋㅋㅋ 저때가 가장 시기적으로 맞았고 몇차례 공격까지 했던걸로 알고있음 그런데도 이성계가 계속 시간 끌고 여러가지 안되는 이유를 말하면서 시간만 끌다가 말 돌려서 돌아선거지 애초에 정도전 만나면서 이미 마음에 반역의 마음이 사라잡힌 시점인데 ㅋㅋㅋㅋ 반란이고 역적인건 사실임
너무 이성계의 편에선 강의 인것 같습니다 1) 평양출정식이 4월 3일, 위화도 도착은 5월초라 합니다. 장마철과는 무관한 시기인데, 장마비로 진군을 못했다는 말은 전혀 일리가 없습니다 2) 철령이북토지를 내놓으라는 명의요구에 굴복해서 그 땅을 그대로 내주어야 합니까? 그때는 원 명이 치열하게 싸울때라, 요동은 힘의 공백상태에 있었습니다, 고구려의 후손으로 충분히 해볼만한 전쟁인데, 자신의 사병들을 데리고 회군한 것입니다 3) 마치 이성계 혼자 전쟁에서 나라를 다 구한것 처럼 얘기 하는데, 그 당시 최영장군은 백전불패의 명장이며, 왜구를 물리친 홍산대첩이 있으며, 청렴결백한 충신입니다 마치 권문세족의 부패한 우두머리인 것처럼 묘사되 있습니다 4) 역사가 이긴자의 기록이라 하지만, 4불가지론은 수긍이 가질 않습니다 조선왕조 500년 내내 중국에 조공을 바치는 사대주의를 뿌리 내리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봄에는 농사 시작할때라 않되고, 여름은 장마철이라 않되고, 가을은 추수때라 않되고, 겨울은 추워서 않되고~~)
재치 있으시고 재미 있는 설명 대단하십니다 어느 책에 보니까 최영장군님은 이성계님 반대하시면 연로하셨지만 스스로 직접 군사를 이끄시고 가신다고 하셨는데 우왕 임금님께서 장군님 안계신동안에 반란이나 암살 같은 위협이 두려워서 곁에 남아 달라고 사정하셨다고 합니다 아마 정세가 불안하여 임금님도 믿고 의지 하실곳이 없으셨던것 같습니다 그때쯤 이미 이성계장군님과 신진세력은 어느 정도 반정의 계획을 가지시고 기회를 보고 계셨던것 같고 우왕 임금님이나 최영 장군님도 그러한 분위기를 알고 계셨던것 같고 그것을 외부 전쟁으로 돌리시려는 의도와 실제로 명나라가 아직은 원나라와 대립하여 어수선한 시기라 만약 고려에서 굳이 요동을 차지하려 들면 전력을 다해서 그곳을 차지하려고 들지는 않았을것 같기도 합니다 어쩌면 생각보다 쉽게 요동을 차지 하셨을수도 있었을것 같기도 합니다 최영 장군님께서 직접 가시겠다고 하시면서 확신하신것을 보면 불가능한 상황은 아니었을것 같기도 합니다 전쟁이라기 보다는 일종의 시위 같은 개념이었을것 같기도 합니다 이성계 장군님은 이미 고려나 외부 상황에 관심이 없으시고 반정을 도모하여 정권을 잡으시려고 측근들과 계획하시고 기회를 보시는 가운데 다른것은 하실 생각이 없으셨을것 같기도 합니다 계절 시기가 고려군이 전쟁하기 어렵다면 상대쪽 군사도 마찬가지였을텐데요 누구보다 전쟁을 잘아시는 최영 장군님께서 실행하시려고 하신것은 거의 전쟁 없이 차지하실수 있다 여기셨던듯 하기도 합니다 이성계 장군님 입장에 치우쳐서 기록될수 밖에 없어서 전체적으로 보기는 어려운 면도 있을것 같기도 합니다 어쩌면 이성계 장군님은 고려의 국토 회복이나 외국과의 전쟁에는 관심 없으시고 반정과 새로운 나라의 개국에 집중하셔야 되는 상황이셨던것 같기도 합니다 최영 장군님이야 무조건 고려에 충성하실분이 틀림없으신것 같고요 전쟁은 반다하시고 우선 외교적인 노력으로 해결해보자고 하신 정몽주선생님의 의견이 가장 적절하셨던것 같기도 합니다 최후에 무력 시위를 하셨어야 하는것이 순서상 맞을듯 해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급하기도 하였던것이 시간을 끌수록 이성계 장군님과 신진세력들의 정권 장악은 구체화 될것이 뻔하기에 전쟁 출정을 하시든 안하시고 기다리시든 결국 이성계 장군님 쪽의 반정으로 흘러갔을것만 같습니다 고려라는 나라의 운명은 어느쪽으로 보아도 다한것 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이성계 장군님은 결국 새로운 나라의 임금이 되셨을것 같고요 명나라에 바로 사대하시고 신하의 예로 임금 책봉을 청하시는것 보면 그쪽으로 계획이 다 되어 있으셨던듯 보이기도 합니다 신진 사대부님들은 새나라를 열고 명나라를 섬길 생각이셨는데 그 나라와 싸우시라는 고려 조정의 뜻은 처음부터 불가능한것이었을수도 있을것 같습니다 명나라에서 처음에 이성계장군님을 임금으로 책봉도 안하시고 나라 이름도 안 내려주시고 한것은 그만큼 믿음이 없으시고 인정할수 없었기 때문이었을것입니다
앞뒤 전후사정을 보았을때 미리 계획되었다기보다는 위화도회군을 결정해 가별초로 전갈을 보낸 시점과 위화도회군 결정을 군사들에게 발표한 시점이 차이가 있었을듯. 이 모든게 계획이라면 이성계가 그렇게 몇번씩 요동정벌을 반대할 이유가 없음 자신에게 나라의 주력 군대가 주어지는 좋은 기회이기때문.
공감 되는 글입니다. 말 태워 보내면 위화도에 머문 기간 동안 여러 번 소식 전 할 수 있었을 것이고, 가별초는 이미 백년이상 이성계집안을 섬긴 충성스런 사병이었음. 당연히 지원병력으로 함께 움직일 것임. 가별초도 있는데, 추가적으로 원정군을 손에 넣는데, 왕의 결정에 계속 반대의견을 낸 것을 봐도 출병 전에 쿠데타 의사는 없었을 듯 싶네요. 굳이 있다면 명분쌓기 위해서 위화도까지 갔다는 얘긴데... 그거 아니라도 민심은 이미 기울었던듯.
위화도 회군은 한마디로 이성계가 사리분별 잘한것 이성계 나이 당시 53세, 우왕은 23세 이성계 가족이 쌍성총관부 그쪽 근처에서 터를 잡고 살며 원나라에게 덕을 많이 본 가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민왕이 소환하니 이성계 아버지 이자춘과 쌍성총관부(1356년)를 탈환한 사람입니다. 공민왕 어린시절부터.. 시작해서 공민왕 막판에 시해당하는거 흥망성쇠 다보고 그아들 우왕때까지 약 32여년동안 이성계가 묵묵히 조선을 지켜줬지요 당시 최영은 72세로 고령이었구요.. 역사를 좀 안다는 사람들이 이런 기본적인 것도 모르는 사람도 많음 한나라에 덕망있는 장수가 4가지 이유를 들어 요동정벌을 거부한것은 그 자체가 왕에 어명에 위험을 무릎쓰고 소신발언 한것 출정전까지 , 이성계는 나라를 생각하는 소신있는 "충신"이라고면 됨 산전수전 다겪은이성계 (당시 53세) 노장수가 목숨걸고 조언 해준거랍니다. 잘생각해보세요 고려가 약 98년동안 원나라(몽골)에게 점령당하였던 속국이었는데.. 아무리 원나라가 막장이라고 하여 틈새를 보리고 뎀볐다가 명나라와 서열정리 끝나면 원나라던 명나라던 특히 원나라 주원장이 가만 둘까요? 원나라하고 명나라가 전쟁중이라고 하여 그혼란한 틈을 노려 교활하게 ,요동을 정벌한다 한들 (거란족 칠때부터 고려는 뒷통수 이런거 좋아함) 그게 무슨 의미가 있나요? 우왕은 혼란한 틈을 타 요동을 공격하는게 아니라 지 아비가 그렇게 비참하게 죽었으니 내부 결속에 박차를 가하며 왕에 입지를 굳혔어야함 원나라를 잡은 명나라는 아시다시피 화약, 총포까지 개발한 나라입니다. 할려면 1,2차때 요동을 정벌했어야지 반에서 싸움짱 1등과 2등이 서열정리 끝나면 .. 또 뺏기는 건 당연한것인데.. 몰라도 너무 모르는 우왕이 , 우둔한 명령을 한것 쿠테타고 뭐고 어자피 모든역사를 보면 다먹고 먹히는 싸움 도덕이고 나발이고 강자가 잡는것 조선왕조 후기가 개판이어서 그렇지 어자피 , 먹힐만 하니 먹혔음 세계지도만 봐도 알수있듯이 모든 역사는 그렇게 흐름
사불가론 해석하는 꼬라지들 보면 가소롭다. 以小逆大 一不可가 실록에 기록된 원문이다. 작음으로 큼을 치는 것이 첫째 불가이다. 이것이 정확한 번역이다. 그런데 역사학자들마다 이소역대를 작은 나라, 큰 나라로 번역한다. 참으로 기이한 일이다. 이소역대와 같은 문구는 손자병법에 매우 자주 등장하는 어투의 글귀이다. 이성계는 손자병법을 빌어다 불가함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위화도는 압록강 중간에 위치한 섬이 아니다. 1900년대 초반 일본인 학자가 거기를 위화도라고 부르면서 중국도 자기들에게 유리하니까 거기를 덩달아 위화도라고 불렀다. 실제 위화도의 위치는 압록강을 건너 현재 중국 땅 속으로 80Km 들어간 데 위치해 있다(유튜브, 이덕일, 위화도 위치, 로 검색) 따라서 여름철 강물이 불어나 건널 수 없어서 수백명이 죽었다는 것 또한 사실일 수 없다. 이성계는 위화도에 머무르면서 장계에 말하기를, 여름철 장마로 여기저기 시내가 형성되어 적진으로 전진 시 군량을 수송할 수 없으므로 가을철에 다시 출병하게 해 달라고 상소를 올린다.
최영장군의 붉은 무덤은 1976년까지 풀이 자라지 않았다고 합니다. 조선 초에는 조선 왕실에서 무덤에 풀을 심는 일도 있었고, 후에는 최영장군의 후손들이(보통사람들은 최영장군의 묘에 풀이 없는 것을 더 가치있게 볼 수도 있지만, 후손들의 마음은 그게 아니었던 모양입니다.) 숱하게 풀을 심었지만, 그 때마다 얼마 못가 풀이 죽어 붉은 무덤이 되곤 했다고 합니다. 그러던 도중 1976년에 후손들이 과학자들의 힘을 빌려, 그에 따른 조치를 취했는데, 그 이후로는 풀이 자란다고 합니다.
맞죠. 당장 세종시기 4군6진을 개척할때에도 사민정책 등 엄청난 출혈을 동반하였는데.. 만일 요동을 운좋게 점령하였더라도 영토유지는 물론 백성들을 그곳으로 이주시켜야하는데.. 이에 백성들의 반발역시 해결해야하는 등 과제가 산더미인데.. 차라리 요동정벌 안하길 잘한것같긴하군요...
@@MrQjxjths 그것보다는 조선보다 유능한 만주족들이 한반도 지배하고 한반도에 유화되어서 만주땅까지 한국땅이 되었겠지. 조선은 태어나지 말았어야할 쓰레기 국가지. 유능한 만주족이 삼전도에서 인조놈 모가지를 따고 한반도 접수했어야 했는데 홍타이지는 한반도보다 대륙을 선택했지. 결과적으로 중국땅을 저렇게 넓혀버렸음.
똑같은 역성혁명이지만 왕건과 이성계의 비교가 왕건에게 모욕적인 이유 1. 왕건은 폭군 궁예를 몰아낸거지만 이성계는 멀쩡한 국왕이었던 공양왕을 명분도 없이 폐위시킴 2. 왕건은 폐주하던 궁예를 죽이지 않았음(공식적으로 도망가다 백성에게 맞아죽음)궁예의 후손들도 잡아 죽이지 않았음 하지만 이성계는 고려왕씨를 조직적으로 학살했고 왕위에서 물러난 공양왕과 그 아들들을 모두 참수함(중국왕조는 전왕조의 후손들을 잡아 죽이는게 흔했지만 한반도 왕조중 저렇게 잔인한 학살은 이성계가 유일함 그 신라조차 원수인 백제왕실을 저렇게 학살하진 않았음) 3. 왕건은 반쪽짜리 나라로 후백제와 신라를 멸망시켜 한반도 통일을 완성시켰지만 이성계는 찬탈이후 아무 업적도 없이 아들과 권력싸움하다 아들에게 왕위에서 쫓겨남 4. 왕건은 비교적 자주적인 왕조를 표방했지만 이성계의 조선은 처음부터 중국에 굴종적이고 나라이름조차 중국에서 받아옴 우리가 흔히 아는 조선이라는 국명은 단군조선이 아니라 중국인 기자가 세운 기자조선을 계승한다는 의미임 가끔 이성계가 왜구와 홍건적으로부터 나라를 구했다 미화하는데 이성계가 싸운 대상들은 정규군이 아님 해적(왜구), 산적(홍건적), 망한 원나라 잔당들(나하추군대) 정규군이랑 싸운건 없음
내가 30년전에 배운 위화도 위치가 똑 같아요 대군을 이끌고 강 중간에 진을 치는 장수가 있다고 생각하나요 그냥 교과서 저렇다고 얘기하니 사실인줄 알고있었는데 실저ㅣ 위화도 위치가 어떤지 아시나요 사료에는 압독을 넘어 위화에 진을 쳤다고 조선실록에 쓰여있어요 지금 우리가 배우는 역사는 거짓이 너무 많아요 위화도 위치를 통해서도 조선의 영토는 압록강 위에 우리영토 라는게 화인됩니다 궁금하시면 허영범 인터넷 검색하시면 됩니다
맞음 쿠테타 일으켜 놓고 제일 먼저 한게 전국에 호족들 사병 철폐 ㅋㅋㅋ 진짜 이성계와 정도전은 생양아치임 소박함이 미덕인 유교를 국교로 삼는 바람에 가난한 조선 호족들 사병 철폐로 군사력 약화 외세에 탈탈 털릴 최적의 상태를 스스로 만들어 놈 조선초 군사력이 얼마나 형편 없었음 율곡 이이가 십만 양병설을 주장 했을까
저는 이성계의 판단이 옳았다고 생각합니다. 이성계는 싸움의 명장으로써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요동을 차지해봤자 실익이 없다는 것을요. 고려가 초기에 현 북경을 수도로 가지고 있었고 나중에 심양을 차지하고 있을 때나 요동이 중요했지, 후기 고려는 요동을 지킬 능력이 부족했다고 생각합니다. 요동을 포기하는게 조선을 지키는 방법이었습니다.
비에 젖은 갑옷이 무거워 못 걸었다니 뭔가 이상한 상상력이다. 일반 병사가 뭔 갑옷. 여름이니 가장 얇은 옷을 입고 고작 창 하나 어깨에 걸쳤을 것을. 옷이 젖으면 행군 도중 쉴 틈에 벗어서 쭉 짜면 될 것이고. 승리한 편의 역사 조작에 편승을 넘어서는 자아도취적 아전인수 상상력
혁명을 성공하면 영웅이 되고 혁명을 해서 실패하면 역적이 될뿐~위화도 회군을 않고 요동을 얻었다면~우리땅은 달라지고 남북이 갈라지지도 않았을것임.나중에 정도전과 이성계가 요동을 공격하려고 함.이방원이 일어나 정도전을 죽임.즉,이성계는 싸울 의지가 없었고 핑계가 필요했을뿐~나중에 남한에 군사혁명이 일어날때 이성계 얘기가 나옴~장수가 왕을 죽이고 자기가 왕이된다.고려에 최고 역적은 이성계임
위화도 회군은 한마디로 이성계가 사리분별 잘한것 이성계 나이 당시 53세 우왕은 23세 쌍성총관부 그쪽 근처에서,오랫동안 터를 잡고 살며 이성계 가족이 원나라 덕을 많이 본 가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 공민왕이 소환하니 이성계 아버지 이자춘과 쌍성총관부(1356년)를 탈환했지요.. 공민왕 어린시절부터.. 시작해서 공민왕 막판에 시해 당하는거, 흥망성쇠 다보고 그 아들 우왕때까지 약 32여년동안 이성계가 묵묵히 조선을 지켜줬지요 1388년 위화도 회군당시 , 당시 최영은 72세로 고령이었구요.. 그당시 70대면 지금으로 치면 90대도 넘은것으로 인생 말년에 , 오늘 내일 하며 사는것이지 무슨 일부러 보냈다는둥 어떤 나라가 안되는 싸움을 영혼까지 끌어모아 대군을 지원해 줍니까? 역사를 좀 안다는 사람들이 이런 기본적인 것도 모르는 사람도 엄청많아서 답답하네요 당시 한나라(고려)에 덕망있는 장수가(이성계) "4가지 이유"를 들어 요동정벌을 거부한것은 그 자체가 왕에 어명에도 위험을 무릎쓰고 "소신발언" 한것으로 출정전까지 , 이성계는 나라를 생각하는 소신있는 "충신"이라고면 됨 이성계에 위화도 회군이 만약 그전부터 계획이었다면 굳이 4가지 이유를 들어서 반대를 할이유도 없음. 정확한 댓글이 없어서 너무 어이없음 상식에 근거하여 발언하길. 산전수전 다 겪은 이성계 (당시 53세) 가 목숨걸고 왕에게 조언 해준거는 맞지 고려가 약 98년동안 원나라(몽골)에게 점령당하였던 "속국"이었는데.. 아무리 원이 막장이라고 하여 그 틈새를 보고 뎀볐다가 서열정리 끝나면 , 명나라 주원장이 가만 둘까요? 혼란한 틈을 노려 요동을 정벌한다 한들 그게 무슨 의미가 있움? 어이없어서 묻고싶네.. 우왕은 요동을 공격하는게 아니라 지 아비가(공민왕) 그렇게 비참하게 죽었으니 정세가 혼란한 틈을타 , 권문세족을 견제하고 내부 결속에 박차를 가하며 왕에 입지를 더욱 굳혔어야함 우왕이 , 현실감각 1도 없죠 원나라를 잡은 명나라는 아시다시피 화약, 총포까지 개발한 나라입니다. 조공을 바치며 반속국처럼 수백년간 대국에게 체제를 보장받고 명맥을 유지한 고려가 절대로 못이기는 싸움. 그리고 요동을 정벌 할려면 1,2차 때 했어야지 쿠테타고 뭐고 어자피 모든역사를 보면 다먹고 먹히는 싸움 조선왕조 후기가 개판이어서 그렇지 당시 이성계가 회군해서 잡을만 했음 그가 나라를 잡는것이 오히려 고려에 명맥만을 유지해준것. 어자피 , 여차하면 주원장인 명나라에게 고려는 먹힐수 있었음 세계지도, 아니 중국 지도만 봐도 알수있듯 역사는 그렇게 쉼없이 , 동물의 왕국처럼 흐름 후손 이랍시고 , 온갖 추측과 섞어서 감정까지 실어서 비난만하고, 결과론적 이야기를 하는게 아니라 당시 상황을 객관적으로 검증하며 살펴보는 것 그것 만으로도 큰의미를 둬야함 글 읽어보면 역사를 모두 다 자기식대로 생각해서 애들이 볼까봐 너무 어이없어 보다못해 글남김.
@@노네이 아직 역사학 초보신거 같은데 당시 고려는 최영측 친원파,이성계측은 친명파로 분류되서 명이 선전포고 했어도 고려에서 친명파 군부가 출동하면 당혹스럽지. 그니까 치열한 전투를 쌍방이 예상 안했고, 여말선초 당시는 더더욱 고려하고 원나라 군사들 서로 싸우다가도 나중엔 고량주 한잔씩 하면서 하나의 거대 군벌을 만들어버린 결과가 됐어. 그 기폭제가 된것이 최탄이 평안도를 원나라에 들어 바치면서 평안도 제왕이 되면서 흥청망청 한것 때문인것도 있구그래 (원나라 장수와 술마신 사실 출처: 고 고우영 만화가 만화책 - 이성계 아버지 이자춘이 원나라 장수들과 산속에서 꿩 잡아서 술마시는 장면있음)
본인들이 살고자 하는 욕구가 강했을 것이다. 명분이야 좋지만 군사력 차이가 엄청나고, 요동 건너갈 때 식량 등 병참 지원 제대로 안 될 줄 알고 있었던 것이다. 중국 왕조도 여러 차례 요동을 거쳐 한반도 정벌에 나섰다가 식량 등을 제대로 보급하지 못해 실패했다. 병사들에게 식량을 지고 가게 했지만 무게를 감당하지 못해 땅에 묻었다. 일단 위화도에서 군사를 돌리면 왕명을 거역하여 역적으로 몰리기 때문에 장군 뿐만 아니라 하위 병졸들도 자발적으로 구테타를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 처한 것이다. 요동정벌은 당시 고려의 국력으로는 이룰 수 없는 꿈이었다.
작은 나라가 큰 나라를 치는 것은 도리에 어긋나는 것이다... 조선500년 역사동안 조선이 중국에 굴욕적인 모습을 보인 근간이 되었지... 왕이 그리고 장수가 백성을 생각하고 그들을 위해 뭘 한다는 생각은 매우 시대 착오적 발상이다. 백성은 민초 말그대로 왕과 권력자들의 노예였을 뿐이다. 조선건국이 썩은 고려를 치고 백성을 위한 건국이었을 거라는 착각을 일으키는 강의. 역사이해에 너무 많은 감성을 실은것이 아닐까? 이성계가 진짜 백성을 생각했다면 그땅의 50%가 노예로 살지는 않았겠지요
도리에 어긋나는게 아니라 애초에 고려는 망하기 직전 상태였고 명나라는 패권국가였는데 이성계가 우왕 명령 따라서 명나라 치러 갔으면 지고 끝나는게 아니라 아예 고려라는 나라 자체가 없어져서 그대로 명나라 영토가 됐을지도 모르는 상황이었음. 이성계가 도리 이야기 한건 가냥 명분을 내세웠을뿐이지 상식적으로 봐도 이성계 판단이 옳은거였지
역사는 승자가 쓰는것입니다 병사들이 도망가고 죽고 지쳐있었다고 했지만 .... 위화도 회군때 그 지쳤다는 이성계의 가별초가 개경까지 도착한 시간이 얼마나 걸렸는지 압니까? 병들고 지치고 탈영병이나고 다죽어 간다는 이성계의 가별초가 개경에 도착한게 3일입니다 3일 다 지친 병사들이 어떻게 그먼 거리를 3일만에 주파합니까? 그래서 최영은 군사를 모을틈도 없었습니다 이성계는 회군한 핑계를 만들었고 권력에 탐욕을 가지고 있었다고 봅니다
고려가 아니라 조선이여야 했던건 맞다... 고려로 정치개혁을 하기엔 너무 썩은 나무였긴하다 다만 조선을 개국하면서 꼭 사대를 꼭 정치에 1순위로 삼았서야 했었나 싶다 아직 명나라 초기인지라 후원도 있었고 중국의 힘이 분산된 시기라 충분히 만주를 차지할수도 있었다 보는데.... 저때 요동을 먹어놨으면 지금까지 요동이 우리영토였을수도 있었을텐데... 이나라가 요동을 먹는게 이나라의 부국강병을 위한 것도 있지만 나아가서는 동아시아의 힘의 균형이 맞아져서 동아시아가 평화로울수 있는 길이였을텐데... 역사에 만약을 생각하는게 웃기는 일이지만 사대만큼은 버렸으면 어땟을까 요건 너무 아쉽다
섬 도(島)자는 사면, 삼면이 물인 부분을 칭한답니다. 한반도하면 삼면이 바다로 이루어졌지요. 어느 교수님 강의를 보니 압록강 유역의 위화도는 몇만명이 진지를 구축하기에는 작은 지역이랍니다. 그래서 압록강 건너 삼면이 강으로 휘감은 위화도란 지역이 있더군요. 그 곳은 수만명이 주둔해도 될만한 크기랍니다.
@@SuperWonder애초에 진다고 생각부터 하는것도 문제인듯 저때 최영의 요동정벌은 허황된건 아니었음 이성계 자체가 애초에 반역의 마음을 품었던거지 명도 전쟁중이라 요동은 빈집이었던 상태였음 뭐 나중에 명과 전쟁이 분명 있었겠지만 전쟁이라는건 해봐야 아는거임 그런식으로 따지면 을지문덕은 어떻게 수나라 100만대군을 이겼고 고려는 거란의 3차 침입을 어떻게 막았을까 생각좀 하시길 그쪽 논리면 우리나라는 거란때 끝났어야 했다는거임 전쟁은 원래 지키는 쪽이 조금 더 유리한거 괜히 공격하는쪽 수가 10배이상 많아야 이길수 있다고 하는게 아니기에 이미 벌어진 일을 어떻게 할수야 없지만 이성계의 저 회군은 반란이고 역적이 맞는거임
이 동영상에 나오는 위화도가 얼마나 넓기에 원정군 5만이 주둔할 수 있다는 건지 이해가 안되네요. 더구나 장마에 물이 불어 강 수위가 높아졌다면서 강 한가운데에있는 섬에 주둔 한다는 것이 말이 되는 겁니까? 물이 더 불면 전부 수장되거나 고립되어버리는데요? 지금 북한과 중공의 국경에 있는 위화도가 그당시의 위화도인 것은 확실한가요? 뭔가 말빨에 속는 듯한 느낌이 드는 것은 나만 그런 건가?
병자호란에서 청나라 12만 대군이 압록강을 건너 4~5일만에 개성(개경)에 도착했다는 기록이 있는데, 이성계 장군의 가병들(함주 주둔)이 왜 10여일 만에 개경으로 못온다는 것인지? 압록강변을 타고 파발을 보내도 되는 것이고, 또 단기필마라면 평안도에서 함경도로 왕래 가능한 길이 있습니다. 병력은 황해도 동북쪽의 곡산을 거쳐 개경으로 오면 되구요.
사불가론 해석하는 꼬라지들 보면 가소롭다. 以小逆大 一不可가 실록에 기록된 원문이다. 작음으로 큼을 치는 것이 첫째 불가이다. 이것이 정확한 번역이다. 그런데 역사학자들마다 이소역대를 작은 나라, 큰 나라로 번역한다. 참으로 기이한 일이다. 이소역대와 같은 문구는 손자병법에 매우 자주 등장하는 어투의 글귀이다. 이성계는 손자병법을 빌어다 불가함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위화도는 압록강 중간에 위치한 섬이 아니다. 1900년대 초반 일본인 학자가 거기를 위화도라고 부르면서 중국도 자기들에게 유리하니까 거기를 덩달아 위화도라고 불렀다. 실제 위화도의 위치는 압록강을 건너 현재 중국 땅 속으로 80Km 들어간 데 위치해 있다(유튜브, 이덕일, 위화도 위치, 로 검색) 따라서 여름철 강물이 불어나 건널 수 없어서 수백명이 죽었다는 것 또한 사실일 수 없다. 이성계는 위화도에 머무르면서 장계에 말하기를, 여름철 장마로 여기저기 시내가 형성되어 적진으로 전진 시 군량을 수송할 수 없으므로 가을철에 다시 출병하게 해 달라고 상소를 올린다.
@@아기상어-x9s 예 근데 보병이라 하여도 기한이 5~6일 정도 더 있으니까 논쟁의 소지가 있다는 말씀 입니다. 손자병법 써주신 분 글은 잘 읽었습니다. (그러나 역사학자들이 소국/대국으로 분석하는 것은 나름 이유가 있겠죠. 한자어는 축약형이라 직역을 안하는 때가 많다고 봅니다만...) 그리고 최소 이성계 장군이 위화도에서 가병들을 '미리 준비하라'고 전갈을 넣었을 수는 있다고 생각됩니다. 즉, 개경에서부터 반란을 미리 계획했다고는 보기 어렵지 않을까, 싶음.
청나라도 중원을 먹고 뱉은곳이 만주인데 그 당시 만주를 우리땅 어떻게 만드나. 당시 농업기술 부재로 만주땅이 버려진땅 된거다 고구려도 수도를 평양으로 옮겼다 국내성도 압록강변이지 만주라고 하기 어렵다. 우리나라 사람은 식민사관도 있지만 현대 중심주의가 만연해서 역사 이해가 완전히 잘못되어 있다. 고구려 사람들은 드넓은 만주벌판을 달리지 않았다. 주로 요동성과 한반도 한강 부근에서 말달려 싸웠지... ㅋㅋ
사람들이 계속 모르는게 이성계는 고려라는 나라를 다스리고, 또 조선을 세운 이후로부터 계속 명나라 즉 주원장과 사이가 안좋았습니다... 절대적으로 사대하는 사람이 아니였어요. 일생을 전장에서 보낸 무인이였으니까요. 또 정도전 또한 조선 건국 후 북벌론을 펼쳤습니다. 정도전과 이성계의 20만 양병설이거든요. 다만 주원장이 죽고 이성계가 죽는 바람에 이방원은 친명파 였기 때문에 사이가 좋아진겁니더
그건 김춘추 아니던가요? ㅋㅋㅋ 뭔 개소리임? 고려도 고려라고 지어놓고 주저 앉은게 누구인데 ㅋㅋ 그래서 최영말고 왜구 잡기라도 했음? 그 광활한 영토는 커녕 ㅋㅋ 백성들 외면하고 강화도 쳐박혀서 벌벌 떨면서 몽골놈들 피해서 있던게 누군데요? 그 잘난 고려때 권문세족 문벌귀족 신진사대부 어느 누구도 왜구정벌 안햇음 ㅋㅋㅋ 까놓고 말해서 최영가문 후손들 말고는 이성계를 절대 깔수가 없음 그리고 가두어버린건 이성계 영향력 끊어버린 태종 이방원이지 저 1차 요동정벌도 실제로는 이성계 힘이 만주 동쪽 절반이상에 영향을 주고 있었기에 시도라도 가능했던거 그랬기에 공민왕초기에는 이성계도 신하로써 최대한 할만큼 한거고 나가 뒤지라는데 댁같으면 뒤지겠음? 가만히 있는데 가장 군사력 강한 세력이니까 조지려고 한거임 우왕부터 신진사대부 대부분이 죽으라고 압박 안했으면 어디까지나 신하로 있을수밖에 없음 역성혁명을 할 명분이 없으니까 우왕부터 공양왕까지 명분을 계속 줘버리면서 없는 왕권도 없어지니 당연히 왕이 될수밖에
@@골리앗-p1n 군인이 전멸할것 같으면, 회군해서 아군 수뇌부를 치고, 적에게 사대하는게 정당화된다는거임? =.=; 지금 우리가 중국이랑 한판붙는데, 병력 조금 줬다고 병력 돌려서 국군 수뇌부 치고, 중국에 굴욕적 사대를 하며 정권 잡는다고 생각해보셔. 당신은 그 군인을 국민을 위한 영웅이라고 하겠소? 역사관하고는. 쯧
@@MX_Korea 말섞기 싫다. 이따위 역사관으로 조상 옹호하는 전주이씨와는. ㅋㅋ 근데, 그건 아니? 전주이씨 족보 90%가 가짜야. 너희집것도 그럴것같아. 그러니, 그만 옹호해. 군인의 책무는 나라를 지키는거야. 그건 시대가 변해도 변하지 않는 진리이지. 그리고, 참고로 난 신라가 한짓도 혐오해. 오케이? ^^
이유를 만들려면 무엇이든 못만들까
세상에 전쟁중에 쉬운전쟁이 어디있냐?
역시 역사는 승리자의것
위화도 회군은 한마디로
이성계가 사리분별 잘한것
이성계 나이 당시 53세,
우왕은 23세
쌍성총관부 그쪽 근처에서,오랫동안 터를 잡고 살며
이성계 가족이 원나라 덕을 많이 본 가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 공민왕이 소환하니
이성계 아버지 이자춘과
쌍성총관부(1356년)를 탈환했지요..
공민왕 어린시절부터.. 시작해서
공민왕 막판에 시해 당하는거, 흥망성쇠 다보고
그 아들 우왕때까지
약 32여년동안 이성계가 묵묵히 조선을 지켜줬지요
1388년 위화도 회군당시 , 당시 최영은 72세로 고령이었구요..
그당시 70대면 지금으로 치면 90대도 넘은것으로
오늘 내일 하는것이지
역사를 좀 안다는 사람들이
이런 기본적인 것도 모르는 사람도 엄청많음
당시 한나라(고려)에 덕망있는 장수가(이성계)
4가지 이유를 들어 요동정벌을 거부한것은
그 자체가 왕에 어명에도
위험을 무릎쓰고 소신발언 한것으로
출정전까지 , 이성계는 나라를 생각하는
소신있는 "충신"이라고면 됨
산전수전 다 겪은이성계 (당시 53세) 가 목숨걸고
왕에게 조언 해준거랍니다.
제발,,, 잘생각해보세요
고려가 약 98년동안 원나라(몽골)에게
점령당하였던 속국이었는데..
아무리 원이 막장이라고 하여
그 틈새를 보리고 뎀볐다가
명나라와 서열정리 끝나면
명에 주원장이 가만 둘까요?
그혼란한 틈을 노려 교활하게 ,요동을 정벌한다 한들
그게 무슨 의미가 있나요?
제발 분수파악하길.. 바람.
우왕은 요동을 공격하는게 아니라
지 아비가(공민왕) 그렇게 비참하게 죽었으니
정세가 혼란한 틈을타 , 내부 결속에 박차를 가하며
왕에 입지를 더욱 굳혔어야함
원나라를 잡은 명나라는
아시다시피 화약, 총포까지 개발한 나라입니다.
조공만 받치며 반속국처럼
대국에게 체제를 보장받고 명맥을 유지한 고려가
절대 못이기는 싸움.
그리고 요동을 정벌 할려면
1,2차때 했어야지
몰라도 너무 모르는 우왕이 , 우둔한 명령을 한것
쿠테타고 뭐고
어자피 모든역사를 보면 다먹고 먹히는 싸움
조선왕조 후기가 개판이어서 그렇지
당시 이성계같은 강자가
나라를 잡는것이 오히려 고려에 명맥을 살려준것
어자피 , 여차하면 주원장인 명나라에게
고랴는 또 먹힐수 있었음
세계지도, 아니 중국 지도만 봐도 알수있듯
역사는 그렇게 흐름
후손이랍시고 , 온갖 감정 넣어
비난만 하고, 결과론적 이야기를 하는게 아니라
당시 상황을 검증하며
최대한 객관적으로 살펴보는 것
그것 만으로도 큰의미를 둬야함
글 읽어보면 역사를 모두 다 자기식대로 생각해서
어이없어 글남김
어려운 전쟁을 굳이 만들어서 하는것도 멍청한거지
정말 재미있게 잘 풀어준다
근데 말속도가 너무 개느림 진짜 1.25배속 해야 그나마 볼만함
이성계 영화나왔음.. 요즘같은시기에 이런 지도자가 필요하다. 이성계역 이정재
큰별쌤 스토리텔링최고임 ㅋㅋㅋ역사도 잘 알려주고
역사는 승리한쪽 위주로 쓰여지게 되있어..
고려가 정말 부패 했었는지는 당사자들만 아는거겠죠..
중요한건 이성계가 졌다면 역적이죠..
역적
정도전도 마찬가지
그냥 역적이 맞아요..그밑으로 왕위쟁탈을 위해 형제도 죽인걸 보면 조선왕조 미화 진짜 웃기는일이다 딱 한분 세종대왕빼곤 전부 그냥 이씨놈들
@@의견부탁 그리고 왕의 그릇이 아닌 선조가 왕이 된걸 봐선 막장도 그냥 막장이 아님 오히려 중후기는 거의 고려만도 못한나라가 이씨 왕조
심지어 고려라면 이순신을 대 고려국 수군대총사 로 삼고 문하시중에 봉하여 조정 신료 들 중 최고의 지위에 올려놨음 그러나 선조라는 놈은 그런 그릇조차 되지 못해서
나라를 구한 장수를 그렇게 반죽여 떡을 만들어놓고 그리고 고려가 그토록 요동수복을 중요시한 그 이유조차 망각한 놈들 요동은 본래 고구려의 영토였으며 발해멸망이후 되찾아야 할 우리의 영토인데 명나라의 개가되어 기는놈들이 고려를 욕할 이유는 없죠
@@의견부탁 세종이요? 국민이 굶어 디져도 중국에 보낼 말이랑 소, 금 은 다 긁어모으라고 한 세종이요? 중국에 처녀랑 화자 가장 열심히 갖다바친 세종이요? ㅋㅋㅋㅋ 너무웃깁니다.. [[세종실록9년 - 백성에게 폐해를 끼치는것만 생각하고 진헌(중국에 바침)하는 일을 그만둘 수 있겠는가 전년에도 진헌을 못한데다 지금 또 진헌을 못한다면 이는 될 수 없는 일이다.]]
이프로 잼씀 맨날 세계사보다가 한국사보니 좋아요 ㅎㅎ 굿굿 기다리던 프로그램 매주 금욜에합니다
요동을 먹을 여력이 없었다고 보는게 맞는거죠
피터지게 싸웠던 삼국시대 역사도 꿀잼이고 거란,여진,몽골과 처절한 투쟁을 벌였고 무신집권기까지 있었던 고려사도 꿀잼이지만 한국사 하다보면 레파토리가 많지 않다는 게 문제죠..대신 세계사는 워낙 얘깃거리가 많으니 세계사를 많이 다루는 듯
이성계 위화도 회군했을때 최영 나이든 병졸들로 구성된 군대로 대항하다 붙잡힌건데 숨어있다 붙잡혔다고 그러네
승리자편에서 쓴 역사, 성공한 쿠데타 ^^
ㅂㅅ 망한 고려 후손이냐?
다 아는 내용이라도 선생님들 강의로 들으면 또 새롭고 재밌음
사불가론 해석하는 꼬라지들 보면 가소롭다. 以小逆大 一不可가 실록에 기록된 원문이다. 작음으로 큼을 치는 것이 첫째 불가이다. 이것이 정확한 번역이다. 그런데 역사학자들마다 이소역대를 작은 나라, 큰 나라로 번역한다. 참으로 기이한 일이다. 이소역대와 같은 문구는 손자병법에 매우 자주 등장하는 어투의 글귀이다. 이성계는 손자병법을 빌어다 불가함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위화도는 압록강 중간에 위치한 섬이 아니다. 1900년대 초반 일본인 학자가 거기를 위화도라고 부르면서 중국도 자기들에게 유리하니까 거기를 덩달아 위화도라고 불렀다. 실제 위화도의 위치는 압록강을 건너 현재 중국 땅 속으로 80Km 들어간 데 위치해 있다(유튜브, 이덕일, 위화도 위치, 로 검색) 따라서 여름철 강물이 불어나 건널 수 없어서 수백명이 죽었다는 것 또한 사실일 수 없다. 이성계는 위화도에 머무르면서 장계에 말하기를, 여름철 장마로 여기저기 시내가 형성되어 적진으로 전진 시 군량을 수송할 수 없으므로 가을철에 다시 출병하게 해 달라고 상소를 올린다.
위화도 위치애 대한 역사를 왜곡한 방송이에요. 안타깝게도
@@likeutude 무슨 말임?
@@likeutude 위치애 - 위치에
안타까운 본인 국어 실력부터 돌아보자
@@김진석-o2k4t 타자를 치다보면 오타도 나고 그런ㄱㅓ지 이런걸로 따지는 사람 이해불가
전쟁까지는 어렵다고 판단했다면 요동을 한바퀴돌고 오는 식으로 명나라에게 뭔가 시위를 보여줬드라면 오늘날 우리 조상들의 고향 만주벌판을 완전히 빼앗기지 않았을 것입니다 ~
이성계의 권력의 탐욕으로 나라가 반도가 되었구려~
뭔 개뻘소리? 러시아가 포격기한바퀴돌리면 영토때주던가?
만주지역은 거란족.여진족의땅이고 중국본토의 한족과는 다른 민족이다. 중국도 만주지방의 이민족인 여진족 금나라.청나라에게 나라 뺏건거지 만주는 중국땅이 아니였다.공부좀해라
흔히 요서 혹은 만주지역은 부여땅이였고 이후 문자왕때 고구려에 복속되었다. 이때가 한반도 최고의 영토였고. 나당연합군에게 고구려가 패배함으로써 요서지방은 다시 이민족의 땅으로 돌아갔고 다시 발해를 건국해서 남북국시대가 이어짐. 발해가 거란족에게 멸망당해서 이후 만주지역은 더이상 우리의 영토로 남아있지않게됨.
ㅋㅋㅋ 중국 입장에서 동이놈이 건방지게 감히 천하의 중심인 자기네 되놈들 무력시위 했다고 공격했겠다
조선왕조 500년 동안 성군 세라 하면 다섯 손가락 못 접는다. 백성만 힘든 500년이였다
위화도 회군은 우리 민족 정신을 좁은 한반도 안에 구겨 넣은 최악의 사건...
신라랑 고려는 ㅋㅋㅋ 말같지도 않은 개소리는 ㅋㅋㅋ
남들 좋아하는 기록대로면 인구 100만도 겨우 되던 고려가 30만 끌어당기는게 과연 백성들만 좋은 나라였나 싶다
호적상 나라에 `세금`내는 인구가 100만이니 고려초 인구는 100만이다 하는게 현 사학자들임 ㅋㅋㅋ
정작 신라의 통일 시기의 신라만 해도 300만이 넘어가는데 ㅋㅋㅋㅋ
아니 시부래..당시에 상황이 요동정벌을 할래야 할수가 없었다고...
위화도회군의 정당성은…
아직도 결론이 없다!!!!
회군전에 가별초를 먼저 출발시켰겠죠
이긴자의 기록입니다 위화도는 그냥 쿠데타 입니다
쿠데타든 뭐든 고려 어짜피 멸망할 국가였는데 정당성이니
뭐니 무슨 의미가 있냐..
위화도 회군은 한마디로
이성계가 사리분별 잘한것
이성계 나이 당시 53세,
우왕은 23세
쌍성총관부 그쪽 근처에서,오랫동안 터를 잡고 살며
이성계 가족이 원나라 덕을 많이 본 가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 공민왕이 소환하니
이성계 아버지 이자춘과
쌍성총관부(1356년)를 탈환했지요..
공민왕 어린시절부터.. 시작해서
공민왕 막판에 시해 당하는거, 흥망성쇠 다보고
그 아들 우왕때까지
약 32여년동안 이성계가 묵묵히 조선을 지켜줬지요
1388년 위화도 회군당시 , 당시 최영은 72세로 고령이었구요..
그당시 70대면 지금으로 치면 90대도 넘은것으로
인생 말년에 , 오늘 내일 하며 사는것이지
역사를 좀 안다는 사람들이
이런 기본적인 것도 모르는 사람도 엄청많아서 답답하네요
당시 한나라(고려)에 덕망있는 장수가(이성계)
"4가지 이유"를 들어 요동정벌을 거부한것은
그 자체가 왕에 어명에도
위험을 무릎쓰고 "소신발언" 한것으로
출정전까지 , 이성계는 나라를 생각하는
소신있는 "충신"이라고면 됨
이성계에 위화도 회군이 만약 그전부터
계획이었다면
굳이 4가지 이유를 왜들어서 반대를 하나..;;;?
상식에 근거하여 발언하길.
산전수전 다 겪은 이성계 (당시 53세) 가 목숨걸고
왕에게 조언 해준거는 맞음
제발,,, 잘생각해보세요
고려가 약 98년동안 원나라(몽골)에게
점령당하였던 속국이었는데..
아무리 원이 막장이라고 하여
그 틈새를 보고 뎀볐다가
명나라와 서열정리 끝나면
명나라 주원장이 가만 둘까요?
그 혼란한 틈을 노려 교활하게 ,요동을 정벌한다 한들
그게 무슨 의미가 있움?
묻고싶네..
우왕은 요동을 공격하는게 아니라
지 아비가(공민왕) 그렇게 비참하게 죽었으니
정세가 혼란한 틈을타 , 내부 결속에 박차를 가하며
왕에 입지를 더욱 굳혔어야함
그게 현실감각이 없는것임.
원나라를 잡은 명나라는
아시다시피 화약, 총포까지 개발한 나라입니다.
조공을 바치며 반속국처럼
수백년간 대국에게 체제를 보장받고
명맥을 유지한 고려가 절대로 못이기는 싸움.
그리고 요동을 정벌 할려면
1,2차 때 했어야지
몰라도 너무 모르는 우왕이 , 우둔한 명령을 한것
쿠테타고 뭐고
어자피 모든역사를 보면 다먹고 먹히는 싸움
조선왕조 후기가 개판이어서 그렇지
당시 이성계같은 강자가
나라를 잡는것이 오히려 고려에 명맥을 살려준것
어자피 , 여차하면 주원장인 명나라에게
고랴는 또 먹힐수 있었음
세계지도, 아니 중국 지도만 봐도 알수있듯
역사는 그렇게 흐름
후손이랍시고 , 온갖 감정 넣어
비난만 하고, 결과론적 이야기를 하는게 아니라
당시 상황을 검증하며
최대한 객관적으로 살펴보는 것
그것 만으로도 큰의미를 둬야함
글 읽어보면 역사를 모두 다 자기식대로 생각해서
어이없어 글남김
@@freesia4597 뿌리가 쿠데타니까 그 이후에 조선시대 내내 갈등만 하다가 망한거임 고구려 백제 신라 발해 어느 나라도 조선처럼 싸우기만 하다 망한 나라는 없음. 중간중간 성군이 있으면 뭐함
정말씁쓸한게 정도전과 이성계를 연결해준 사람이 정몽주임… 저 소개가 큰화살이되어 본인한테 꽂힘…
작년에 이맘때 물류센터 알바했는데? 이성계 4불가론 생각남..
포장을 하는데 날씨가 더우니 템핑을 해도 흐물흐물해서 테이프 쉽게 벗거짐 이것을 보고 지금같이 발전된 세상에서도 테이프가 더위에 저런데 산업화이전 중세시대인 1388년에 어떠했을까하는 생각이 들었음..
천연재료로 만든 각궁은 여름 장마철엔 관리하기 정말 어렵습니다.
바로 회군해서 집으로~ㅋㅋ
회군을 5월에 했는데 ㅋㅋㅋㅋ 그게 장마시기임? ㅋㅋㅋㅋ
저 때 요동 정벌 가능 할 시기임..
출연자들이 이성계를 ㅋ 공명 급으로 추앙 하는데.위화도 회군 한게 솔직히 이성계 사심 채울려고 한거니 고려 생각한게 아님.
그리고 무엇보다 저때 요동 정벌이 가능성이.가장 높을 시기였음
koreans are so delusional that it is funny
맞긴함 ㅋㅋㅋ 저때가 가장 시기적으로 맞았고
몇차례 공격까지 했던걸로 알고있음
그런데도 이성계가 계속 시간 끌고 여러가지 안되는 이유를 말하면서 시간만 끌다가 말 돌려서 돌아선거지
애초에 정도전 만나면서 이미 마음에 반역의 마음이 사라잡힌 시점인데 ㅋㅋㅋㅋ 반란이고 역적인건 사실임
유지했을지 의문도 들지만
한족이세운 국가들은 만주나 북방땅에 관심이 별로 없음 일단 점령해놓고 명나라가 뭐라고 하면 원래 고려땅이었고 북원 정벌에 방해안되게 여진족 관리하면서 돕겠다 그러면서 고려가 잘하는 외교하면됨.
이게 바로 왜곡된역사를 배운 인간들의 모습이다. 그 당시 요동에는 명나라 대장군 남옥이 거느리는 25만 대군이 잇엇다.
골목에서 양아치들이랑 싸우던 이성계군대가 중원대륙에서 원 정규군을 몰아낸 명의 남옥이 이끄는 군대랑 싸우면 어떻게 되겟냐
너무 이성계의 편에선 강의 인것 같습니다
1) 평양출정식이 4월 3일, 위화도 도착은 5월초라
합니다. 장마철과는 무관한 시기인데, 장마비로
진군을 못했다는 말은 전혀 일리가 없습니다
2) 철령이북토지를 내놓으라는 명의요구에 굴복해서 그 땅을 그대로 내주어야 합니까?
그때는 원 명이 치열하게 싸울때라, 요동은 힘의
공백상태에 있었습니다, 고구려의 후손으로
충분히 해볼만한 전쟁인데, 자신의 사병들을
데리고 회군한 것입니다
3) 마치 이성계 혼자 전쟁에서 나라를 다 구한것 처럼 얘기 하는데, 그 당시 최영장군은 백전불패의 명장이며, 왜구를 물리친 홍산대첩이 있으며, 청렴결백한 충신입니다
마치 권문세족의 부패한 우두머리인 것처럼 묘사되 있습니다
4) 역사가 이긴자의 기록이라 하지만,
4불가지론은 수긍이 가질 않습니다
조선왕조 500년 내내 중국에 조공을 바치는
사대주의를 뿌리 내리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봄에는 농사 시작할때라 않되고, 여름은 장마철이라 않되고, 가을은 추수때라 않되고,
겨울은 추워서 않되고~~)
재치 있으시고 재미 있는 설명 대단하십니다 어느 책에 보니까 최영장군님은 이성계님 반대하시면 연로하셨지만 스스로 직접 군사를 이끄시고 가신다고 하셨는데 우왕 임금님께서 장군님 안계신동안에 반란이나 암살 같은 위협이 두려워서 곁에 남아 달라고 사정하셨다고 합니다 아마 정세가 불안하여 임금님도 믿고 의지 하실곳이 없으셨던것 같습니다 그때쯤 이미 이성계장군님과 신진세력은 어느 정도 반정의 계획을 가지시고 기회를 보고 계셨던것 같고 우왕 임금님이나 최영 장군님도 그러한 분위기를 알고 계셨던것 같고 그것을 외부 전쟁으로 돌리시려는 의도와 실제로 명나라가 아직은 원나라와 대립하여 어수선한 시기라 만약 고려에서 굳이 요동을 차지하려 들면 전력을 다해서 그곳을 차지하려고 들지는 않았을것 같기도 합니다 어쩌면 생각보다 쉽게 요동을 차지 하셨을수도 있었을것 같기도 합니다 최영 장군님께서 직접 가시겠다고 하시면서 확신하신것을 보면 불가능한 상황은 아니었을것 같기도 합니다 전쟁이라기 보다는 일종의 시위 같은 개념이었을것 같기도 합니다 이성계 장군님은 이미 고려나 외부 상황에 관심이 없으시고 반정을 도모하여 정권을 잡으시려고 측근들과 계획하시고 기회를 보시는 가운데 다른것은 하실 생각이 없으셨을것 같기도 합니다 계절 시기가 고려군이 전쟁하기 어렵다면 상대쪽 군사도 마찬가지였을텐데요 누구보다 전쟁을 잘아시는 최영 장군님께서 실행하시려고 하신것은 거의 전쟁 없이 차지하실수 있다 여기셨던듯 하기도 합니다 이성계 장군님 입장에 치우쳐서 기록될수 밖에 없어서 전체적으로 보기는 어려운 면도 있을것 같기도 합니다 어쩌면 이성계 장군님은 고려의 국토 회복이나 외국과의 전쟁에는 관심 없으시고 반정과 새로운 나라의 개국에 집중하셔야 되는 상황이셨던것 같기도 합니다 최영 장군님이야 무조건 고려에 충성하실분이 틀림없으신것 같고요 전쟁은 반다하시고 우선 외교적인 노력으로 해결해보자고 하신 정몽주선생님의 의견이 가장 적절하셨던것 같기도 합니다 최후에 무력 시위를 하셨어야 하는것이 순서상 맞을듯 해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급하기도 하였던것이 시간을 끌수록 이성계 장군님과 신진세력들의 정권 장악은 구체화 될것이 뻔하기에 전쟁 출정을 하시든 안하시고 기다리시든 결국 이성계 장군님 쪽의 반정으로 흘러갔을것만 같습니다 고려라는 나라의 운명은 어느쪽으로 보아도 다한것 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이성계 장군님은 결국 새로운 나라의 임금이 되셨을것 같고요 명나라에 바로 사대하시고 신하의 예로 임금 책봉을 청하시는것 보면 그쪽으로 계획이 다 되어 있으셨던듯 보이기도 합니다 신진 사대부님들은 새나라를 열고 명나라를 섬길 생각이셨는데 그 나라와 싸우시라는 고려 조정의 뜻은 처음부터 불가능한것이었을수도 있을것 같습니다 명나라에서 처음에 이성계장군님을 임금으로 책봉도 안하시고 나라 이름도 안 내려주시고 한것은 그만큼 믿음이 없으시고 인정할수 없었기 때문이었을것입니다
개소리..
이성개 정도전의 사대주의가
만든 소설.
지들 탐욕이 우릴 한반도에 갇아버렀다.광계토왕의 우리땅을
지들 탐욕이 이렇게 했다.
최영 모함하는 저들도 ..그렇고.
앞뒤 전후사정을 보았을때 미리 계획되었다기보다는 위화도회군을 결정해 가별초로 전갈을 보낸 시점과 위화도회군 결정을 군사들에게 발표한 시점이 차이가 있었을듯.
이 모든게 계획이라면 이성계가 그렇게 몇번씩 요동정벌을 반대할 이유가 없음 자신에게 나라의 주력 군대가 주어지는 좋은 기회이기때문.
공감 되는 글입니다. 말 태워 보내면 위화도에 머문 기간 동안 여러 번 소식 전 할 수 있었을 것이고, 가별초는 이미 백년이상 이성계집안을 섬긴 충성스런 사병이었음. 당연히 지원병력으로 함께 움직일 것임.
가별초도 있는데, 추가적으로 원정군을 손에 넣는데, 왕의 결정에 계속 반대의견을 낸 것을 봐도 출병 전에 쿠데타 의사는 없었을 듯 싶네요. 굳이 있다면 명분쌓기 위해서 위화도까지 갔다는 얘긴데... 그거 아니라도 민심은 이미 기울었던듯.
위화도 회군은 한마디로
이성계가 사리분별 잘한것
이성계 나이 당시 53세,
우왕은 23세
이성계 가족이 쌍성총관부 그쪽 근처에서 터를 잡고 살며
원나라에게 덕을 많이 본 가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민왕이 소환하니
이성계 아버지 이자춘과 쌍성총관부(1356년)를 탈환한 사람입니다.
공민왕 어린시절부터.. 시작해서
공민왕 막판에 시해당하는거 흥망성쇠 다보고
그아들 우왕때까지
약 32여년동안 이성계가 묵묵히 조선을 지켜줬지요
당시 최영은 72세로 고령이었구요..
역사를 좀 안다는 사람들이
이런 기본적인 것도 모르는 사람도 많음
한나라에 덕망있는 장수가
4가지 이유를 들어 요동정벌을 거부한것은
그 자체가 왕에 어명에
위험을 무릎쓰고 소신발언 한것
출정전까지 , 이성계는 나라를 생각하는
소신있는 "충신"이라고면 됨
산전수전 다겪은이성계 (당시 53세) 노장수가 목숨걸고
조언 해준거랍니다.
잘생각해보세요
고려가 약 98년동안 원나라(몽골)에게 점령당하였던 속국이었는데..
아무리 원나라가 막장이라고 하여
틈새를 보리고 뎀볐다가
명나라와 서열정리 끝나면
원나라던 명나라던
특히 원나라 주원장이 가만 둘까요?
원나라하고 명나라가 전쟁중이라고 하여
그혼란한 틈을 노려 교활하게 ,요동을 정벌한다 한들
(거란족 칠때부터 고려는 뒷통수 이런거 좋아함)
그게 무슨 의미가 있나요?
우왕은 혼란한 틈을 타 요동을 공격하는게 아니라
지 아비가 그렇게 비참하게 죽었으니
내부 결속에 박차를 가하며
왕에 입지를 굳혔어야함
원나라를 잡은 명나라는
아시다시피 화약, 총포까지 개발한 나라입니다.
할려면 1,2차때 요동을 정벌했어야지
반에서 싸움짱 1등과 2등이 서열정리 끝나면 ..
또 뺏기는 건 당연한것인데..
몰라도 너무 모르는 우왕이 , 우둔한 명령을 한것
쿠테타고 뭐고
어자피 모든역사를 보면 다먹고 먹히는 싸움
도덕이고 나발이고 강자가 잡는것
조선왕조 후기가 개판이어서 그렇지
어자피 , 먹힐만 하니 먹혔음
세계지도만 봐도 알수있듯이
모든 역사는 그렇게 흐름
민심 선동용이예요!!!! 요동정벌 불가에 민심까지 이용하려는거죠!!! 구테타의 정당성 확보를 위해!!!
역시 역사는 최태성 너무 잘가르치시네요
이분은 진짜 학교 꼭 있는 선생님같음
@@진짜팩트주의 제 모교 역사 선생님이셨는데 인기많았죠 ㅋㅋㅋ 워낙 잘나가니 교사 신분인데 ebs 선생님 겸직까지 학교에서 허락해줬었음
ㅋㅋㅋ결국은 본인 클라스 대비 대우가 짜다 생각했는지 둘다 퇴직하고 1타강사가 됨
위화도회군 저결정으로 압록강 이북땅이 중국의땅이 되버렸다는걸 가르쳐야지. 그이후 역사서도 명에 거역될만한 책은 다모아 태워버린 것하며 알아서 사대한것 등을 비난해야지.우리 역사에서 결코 존경할만한 인물은 못됨.
다떠나서 한글 만든 세종대왕이 이성계 후손이라는 점에서 과오는 다 해결됨 ㅋㅋ
한글은 세종이 만든게 아닙니다 고려때있던걸 편찬한거입니다 세종실록에도 옛것을참고하여 만들었다고 나와있구요
이성계가 역성혁명을 일으켜 조선 600년의 비참한 역사가 시작됐죠. 정말 이성계의 위화도 회군은 있어서는 안되었던 역사의 비극입니다.
한국사로도 나와서 너무 좋아요ㅠㅠㅠㅠㅠ!!!!!
사불가론 해석하는 꼬라지들 보면 가소롭다. 以小逆大 一不可가 실록에 기록된 원문이다. 작음으로 큼을 치는 것이 첫째 불가이다. 이것이 정확한 번역이다. 그런데 역사학자들마다 이소역대를 작은 나라, 큰 나라로 번역한다. 참으로 기이한 일이다. 이소역대와 같은 문구는 손자병법에 매우 자주 등장하는 어투의 글귀이다. 이성계는 손자병법을 빌어다 불가함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위화도는 압록강 중간에 위치한 섬이 아니다. 1900년대 초반 일본인 학자가 거기를 위화도라고 부르면서 중국도 자기들에게 유리하니까 거기를 덩달아 위화도라고 불렀다. 실제 위화도의 위치는 압록강을 건너 현재 중국 땅 속으로 80Km 들어간 데 위치해 있다(유튜브, 이덕일, 위화도 위치, 로 검색) 따라서 여름철 강물이 불어나 건널 수 없어서 수백명이 죽었다는 것 또한 사실일 수 없다. 이성계는 위화도에 머무르면서 장계에 말하기를, 여름철 장마로 여기저기 시내가 형성되어 적진으로 전진 시 군량을 수송할 수 없으므로 가을철에 다시 출병하게 해 달라고 상소를 올린다.
위화도 위치를 엉뚱하게 방송했는데 무엇이 좋은가요?
@@likeutude 네?
공시 공부하다가 국가직, 지방직 100 95 맞고 이런거 보니까 몰입도 극강이네; 국사가 원래 재밌는건데 ㅠ
고려사절요 기준으로 스토리텔링이 이루어지다보니 조선 건국의 정당성을 다지려고 구라가 50%는 섞여있을듯
👍
그것 또한 역사랍니다.😮😅
@@nata199 그런역사를 부정하는건 삶입니다
쿠테타로 집권해서 개성 왕씨를 멸족하고 친명사대국가로 북한처럼 고립되어 500년을 허비한 원흉은 위인이 되고 현대 쿠테타로 집권한 지도만한 비난받는 아이러니
선생님의 견해와 이론을 한번 찍어주시길ᆢ
최영장군의 붉은 무덤은 1976년까지 풀이 자라지 않았다고 합니다. 조선 초에는 조선 왕실에서 무덤에 풀을 심는 일도 있었고, 후에는 최영장군의 후손들이(보통사람들은 최영장군의 묘에 풀이 없는 것을 더 가치있게 볼 수도 있지만, 후손들의 마음은 그게 아니었던 모양입니다.) 숱하게 풀을 심었지만, 그 때마다 얼마 못가 풀이 죽어 붉은 무덤이 되곤 했다고 합니다. 그러던 도중 1976년에 후손들이 과학자들의 힘을 빌려, 그에 따른 조치를 취했는데, 그 이후로는 풀이 자란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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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만 정예로 단순히 요동 정벌해서 승전하는게 문제가 아니라 영토를 유지해야하는데 그게 현실적으로 힘들었을듯. 명이 고려의 적대행위를 절대 좌시하지 않았을거고 당시 명도 전쟁 능력이 상당하던 시기라는게 문제 설사 잠깐 영토를 유지하더라도 조선처럼 평화롭기는 힘들었음
맞죠. 당장 세종시기 4군6진을 개척할때에도 사민정책 등 엄청난 출혈을 동반하였는데.. 만일 요동을 운좋게 점령하였더라도 영토유지는 물론 백성들을 그곳으로 이주시켜야하는데.. 이에 백성들의 반발역시 해결해야하는 등 과제가 산더미인데.. 차라리 요동정벌 안하길 잘한것같긴하군요...
고구려도 강력한 군사력을 바탕으로 여러차례 수.당의 침략을 막아냈지만.. 결국 오랜전쟁으로 인한 국력소모, 고구려 내부의 정치분열 등으로 패망한걸 보면 만약 고려 혹은 조선이 요동을 정벌했더라면 고구려의 전철을 밟을수도 있겠지요..
군사력 최강시기 명나라인데...이길 확율은 거의 없죠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다 한마디로 이성계를 정당화하는 기록이다
꼬우면 이기던가 ㅋㅋ
이성계가 회군 안했으면 님은 지금쯤 없거나 이름이 우위안춘에 어느 공장에서 중국어를 쓰며 한자로 출근부적고 made in china 물건 생산하고 있겠지.
@@MrQjxjths 그것보다는 조선보다 유능한 만주족들이 한반도 지배하고 한반도에 유화되어서 만주땅까지 한국땅이 되었겠지. 조선은 태어나지 말았어야할 쓰레기 국가지. 유능한 만주족이 삼전도에서 인조놈 모가지를 따고 한반도 접수했어야 했는데 홍타이지는 한반도보다 대륙을 선택했지. 결과적으로 중국땅을 저렇게 넓혀버렸음.
이성계는 군을 돌리면 안됐음. 죽을때 죽더라도 요동에서 죽어야 했다.
성공한 쿠데타는 미화된다
목소리 톤까지 큰별이신듯
전달력이 너무 좋은 최태성선생님
선생님 덕분에 한국사시험 도전합니다~~
최영이 원나라의 요청으로 중국내에서 홍건적과 전투를 해보니 도적떼 들이니 별거없다는걸 느꼈죠 그래서 홍건적이 세운 명나라를 우습게 여긴거죠
회군으로 명속국이 되었고 조선초 분서갱유로 조선이전 역사가 사라졌다는 유튜브 책보고 내용대로 라면 조선의 그늘이지요.
몇년 뒤에 이성계도 요동정벌 준비하는거보면 이성계는 찬탈할 명분이 필요한거였던것뿐임
똑같은 역성혁명이지만 왕건과 이성계의 비교가 왕건에게 모욕적인 이유
1. 왕건은 폭군 궁예를 몰아낸거지만 이성계는 멀쩡한 국왕이었던 공양왕을 명분도 없이 폐위시킴
2. 왕건은 폐주하던 궁예를 죽이지 않았음(공식적으로 도망가다 백성에게 맞아죽음)궁예의 후손들도 잡아 죽이지 않았음 하지만 이성계는 고려왕씨를 조직적으로 학살했고 왕위에서 물러난 공양왕과 그 아들들을 모두 참수함(중국왕조는 전왕조의 후손들을 잡아 죽이는게 흔했지만 한반도 왕조중 저렇게 잔인한 학살은 이성계가 유일함 그 신라조차 원수인 백제왕실을 저렇게 학살하진 않았음)
3. 왕건은 반쪽짜리 나라로 후백제와 신라를 멸망시켜 한반도 통일을 완성시켰지만 이성계는 찬탈이후 아무 업적도 없이 아들과 권력싸움하다 아들에게 왕위에서 쫓겨남
4. 왕건은 비교적 자주적인 왕조를 표방했지만 이성계의 조선은 처음부터 중국에 굴종적이고 나라이름조차 중국에서 받아옴 우리가 흔히 아는 조선이라는 국명은 단군조선이 아니라 중국인 기자가 세운 기자조선을 계승한다는 의미임
가끔 이성계가 왜구와 홍건적으로부터 나라를 구했다 미화하는데 이성계가 싸운 대상들은 정규군이 아님
해적(왜구), 산적(홍건적), 망한 원나라 잔당들(나하추군대) 정규군이랑 싸운건 없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뼈가 으스러져서 국물이 나오네 그냥ㅋㅋ 성계탕국
성공한 쿠테타가 새로운 국가를 건설하는데--인간사의 진리 정의는 있을까 그건 현세 사람들이 판단한 잣대겠지
Ioiioii
위하도는 압록강 내에 있는 섬이 아니라
압록강 너머에 있는 3면이 강으로 된 지역입니다
실제로 조선실록에 위하도가 100여차례 등장하고
농사까지 지었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위하도 삼각주라고 알고있어요 낙동강 삼각주처럼 강하류에 퇴적된 지형이요
@@totok3651 이건 국사책 버전이구요
실제
위하도를 애기하는 겁니다
위화도 회군 결정하기 일주일 전에 결정해사 가별초에게 보냈을 수도 있기에 가설은 말이 안 됨
내가 30년전에 배운 위화도 위치가
똑 같아요
대군을 이끌고 강 중간에 진을
치는 장수가 있다고 생각하나요
그냥 교과서 저렇다고 얘기하니
사실인줄 알고있었는데 실저ㅣ
위화도 위치가 어떤지
아시나요
사료에는 압독을 넘어 위화에
진을 쳤다고 조선실록에
쓰여있어요
지금 우리가 배우는 역사는
거짓이 너무 많아요
위화도 위치를 통해서도
조선의 영토는 압록강 위에
우리영토 라는게 화인됩니다
궁금하시면 허영범 인터넷
검색하시면 됩니다
구데타가 성공한거 칼맞을까봐
충효를 강조하는 성리학으로 가스라이팅
이씨왕조가 잴 드러움
맞음 쿠테타 일으켜 놓고 제일 먼저 한게 전국에 호족들 사병 철폐 ㅋㅋㅋ
진짜 이성계와 정도전은 생양아치임
소박함이 미덕인 유교를 국교로 삼는 바람에
가난한 조선
호족들 사병 철폐로 군사력 약화
외세에 탈탈 털릴 최적의 상태를 스스로 만들어 놈
조선초 군사력이 얼마나 형편 없었음 율곡 이이가 십만 양병설을 주장 했을까
저는 이성계의 판단이 옳았다고 생각합니다. 이성계는 싸움의 명장으로써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요동을 차지해봤자 실익이
없다는 것을요. 고려가 초기에 현 북경을 수도로 가지고 있었고 나중에 심양을 차지하고 있을 때나 요동이 중요했지, 후기 고려는
요동을 지킬 능력이 부족했다고 생각합니다. 요동을 포기하는게 조선을 지키는 방법이었습니다.
비에 젖은 갑옷이 무거워 못 걸었다니 뭔가 이상한 상상력이다. 일반 병사가 뭔 갑옷. 여름이니 가장 얇은 옷을 입고 고작 창 하나 어깨에 걸쳤을 것을. 옷이 젖으면 행군 도중 쉴 틈에 벗어서 쭉 짜면 될 것이고. 승리한 편의 역사 조작에 편승을 넘어서는 자아도취적 아전인수 상상력
사피스튜디오 영상은 기본 음량이 너무 낮아서 항상 볼륨조절을 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네요 조금만 볼륨을 올려 만들어줬으면 좋겠습니다
밥차려주니 떠먹여달라하네 ㅋㅋ
이성계는 쿠테타의 시조일뿐 요동정벌했으면 지금 국력에 3배는 될것이다
저정도의 핑계로 전쟁을 못한다고 한다면 전세계에 전쟁이 거의 발발하지 않았겠네요 우리나라의 역사를 공부하다보면 매번 이웃나라에 침략당한 역사 뿐이네요
역사는 승자에 의해 쓰여지는 거니 이렇게 미화 할수밖에 명령을 어겼으니 역적인게 당연 한 거고 요동을 정벌 했다면 우리 영토가 달라졌겠지.
영토가 달라졌겠지만..
한글도 없겠죠..
영토냐 한글이냐인데 ..
달라지긴 뭘 달라져 ㅋㅋ 당시 국력상으로 아예 상대가 안되는 상태고 그냥 지도에서 완전히 사라졌겠지
달라지는건 맞지 지금 영토가 중국대륙이 되었겠지 시진핑을 주석으로 모시고 있을거고ㅋㅋㅋㅋ
단순히 영토 문제가 아니라 이씨 조선으로 인해 우리 민족정신 자체가 개조됐음. 영토vs한글이 아닌 민족정신vs한글임.
저때는 이성계가 옳았을듯 이해도 대고
위화도 회군은 이성계의 철저한 계획하에 정도전등과 짜고서 조선을 건국하기위해 벌인 일이었다~~
이성계는 요동정벌의 마지막 기회를 날려 버렸다. 비겁한놈, 적을 치라고 군사를 주었더니 적을 치기는 커녕 군사를 돌려 반란을 일으키다니... 역사기록은 승자의 기록이라 이성계가 유리하게 적었을 것이다.
혁명을 성공하면 영웅이 되고 혁명을 해서 실패하면 역적이 될뿐~위화도 회군을 않고 요동을 얻었다면~우리땅은 달라지고 남북이 갈라지지도 않았을것임.나중에 정도전과 이성계가 요동을 공격하려고 함.이방원이 일어나 정도전을 죽임.즉,이성계는 싸울 의지가 없었고 핑계가 필요했을뿐~나중에 남한에 군사혁명이 일어날때 이성계 얘기가 나옴~장수가 왕을 죽이고 자기가 왕이된다.고려에 최고 역적은 이성계임
이성계는 왕명을 어긴 반역자다. 그래서 왕위에 올라 자식들끼리 죽고 죽이는 저주를 받았다. 반역자, 왕씨를 몰살시킨 사람이다.
민족의 영웅이지
왕 죽이면 나쁜사람이냐?왕명 어기면 나쁜사람이고?
평생 개돼지로 살수밖에 없는 마인드 굿
반역자로 보긴 어렵지 만약 위에 나라 쳐들어갔었다면 그냥 디지는건데
@@방구석셜록 고려왕에게는 반역자죠. 역사은 승자의 내용만 기록되니까요. 왕 명이 부당하고 하여 회군하고 왕을 바꾸고 후에 조선이 건국되지만... 고려의 입장에서는 반역 이라고 봅니다
굳이 최영은 유언을 탐욕 하지 않았다고 했을까….?? 위화도 회군의 저항에 의한 쿠데타로 인한 처형인데…왜 유언을…
실제는 부정부폐로 몰아서 죽였나..
그리고 최영과 이성계간의 선악 구분이 명확한 것도 이상함
위화도 회군은 한마디로
이성계가 사리분별 잘한것
이성계 나이 당시 53세
우왕은 23세
쌍성총관부 그쪽 근처에서,오랫동안 터를 잡고 살며
이성계 가족이 원나라 덕을 많이 본 가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 공민왕이 소환하니
이성계 아버지 이자춘과
쌍성총관부(1356년)를 탈환했지요..
공민왕 어린시절부터.. 시작해서
공민왕 막판에 시해 당하는거, 흥망성쇠 다보고
그 아들 우왕때까지
약 32여년동안 이성계가 묵묵히 조선을 지켜줬지요
1388년 위화도 회군당시 , 당시 최영은 72세로 고령이었구요..
그당시 70대면 지금으로 치면 90대도 넘은것으로
인생 말년에 , 오늘 내일 하며 사는것이지
무슨 일부러 보냈다는둥
어떤 나라가 안되는 싸움을 영혼까지 끌어모아
대군을 지원해 줍니까?
역사를 좀 안다는 사람들이
이런 기본적인 것도 모르는 사람도 엄청많아서 답답하네요
당시 한나라(고려)에 덕망있는 장수가(이성계)
"4가지 이유"를 들어 요동정벌을 거부한것은
그 자체가 왕에 어명에도
위험을 무릎쓰고 "소신발언" 한것으로
출정전까지 , 이성계는 나라를 생각하는
소신있는 "충신"이라고면 됨
이성계에 위화도 회군이 만약 그전부터
계획이었다면
굳이 4가지 이유를 들어서 반대를 할이유도 없음.
정확한 댓글이 없어서 너무 어이없음
상식에 근거하여 발언하길.
산전수전 다 겪은 이성계 (당시 53세) 가 목숨걸고
왕에게 조언 해준거는 맞지
고려가 약 98년동안 원나라(몽골)에게
점령당하였던 "속국"이었는데..
아무리 원이 막장이라고 하여
그 틈새를 보고 뎀볐다가
서열정리 끝나면 , 명나라 주원장이 가만 둘까요?
혼란한 틈을 노려 요동을 정벌한다 한들
그게 무슨 의미가 있움?
어이없어서 묻고싶네..
우왕은 요동을 공격하는게 아니라
지 아비가(공민왕) 그렇게 비참하게 죽었으니
정세가 혼란한 틈을타 , 권문세족을 견제하고
내부 결속에 박차를 가하며
왕에 입지를 더욱 굳혔어야함
우왕이 , 현실감각 1도 없죠
원나라를 잡은 명나라는
아시다시피 화약, 총포까지 개발한 나라입니다.
조공을 바치며 반속국처럼
수백년간 대국에게 체제를 보장받고
명맥을 유지한 고려가
절대로 못이기는 싸움.
그리고 요동을 정벌 할려면
1,2차 때 했어야지
쿠테타고 뭐고
어자피 모든역사를 보면 다먹고 먹히는 싸움
조선왕조 후기가 개판이어서 그렇지
당시 이성계가 회군해서 잡을만 했음
그가 나라를 잡는것이
오히려 고려에 명맥만을 유지해준것.
어자피 , 여차하면 주원장인 명나라에게
고려는 먹힐수 있었음
세계지도, 아니 중국 지도만 봐도 알수있듯
역사는 그렇게 쉼없이 ,
동물의 왕국처럼 흐름
후손 이랍시고 , 온갖 추측과 섞어서 감정까지 실어서
비난만하고, 결과론적 이야기를 하는게 아니라
당시 상황을 객관적으로 검증하며 살펴보는 것
그것 만으로도 큰의미를 둬야함
글 읽어보면 역사를 모두 다 자기식대로 생각해서
애들이 볼까봐
너무 어이없어 보다못해 글남김.
억울한 죽음이 확실하죠!!!!!! 역사는 이긴 자의 기록이므로!!!
4 가능론 : 6윌 농번기 전투경험 풍부/.당시 만주땅은 무주공산/ 명의 직접적인 선전포고가 아니어서 백성ㆍ장병들 손실과 피해 작다/고토 회복에 대한 백성들 열망 크고 원ㆍ명도 숙응하는 분위기
애초에 불가능한 전쟁보낸이유는 잘풀려서 요동먹으면 그것도 나쁘지않고 안풀려서 다 디져도 최소한 손도못댈만큼 커버린 이성계세력 날릴수잇으니 어느쪽이건 최영은 킹쁘지않다 라고 판단햇을 가능성이 높음
@@노네이 아직 역사학 초보신거 같은데 당시 고려는 최영측 친원파,이성계측은 친명파로 분류되서 명이 선전포고 했어도 고려에서 친명파 군부가 출동하면 당혹스럽지. 그니까 치열한 전투를 쌍방이 예상 안했고, 여말선초 당시는 더더욱 고려하고 원나라 군사들 서로 싸우다가도 나중엔 고량주 한잔씩 하면서 하나의 거대 군벌을 만들어버린 결과가 됐어. 그 기폭제가 된것이 최탄이 평안도를 원나라에 들어 바치면서 평안도 제왕이 되면서 흥청망청 한것 때문인것도 있구그래 (원나라 장수와 술마신 사실 출처: 고 고우영 만화가 만화책 - 이성계 아버지 이자춘이 원나라 장수들과 산속에서 꿩 잡아서 술마시는 장면있음)
만주가 무슨 무주공산 주원장이 보낸 풍승이 20만 군대를 거느리고 몽골군벌 나하추를 토벌하는 중이었는데
본인들이 살고자 하는 욕구가 강했을 것이다. 명분이야 좋지만 군사력 차이가 엄청나고, 요동 건너갈 때 식량 등 병참 지원 제대로 안 될 줄 알고 있었던 것이다. 중국 왕조도 여러 차례 요동을 거쳐 한반도 정벌에 나섰다가 식량 등을 제대로 보급하지 못해 실패했다. 병사들에게 식량을 지고 가게 했지만 무게를 감당하지 못해 땅에 묻었다. 일단 위화도에서 군사를 돌리면 왕명을 거역하여 역적으로 몰리기 때문에 장군 뿐만 아니라 하위 병졸들도 자발적으로 구테타를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 처한 것이다. 요동정벌은 당시 고려의 국력으로는 이룰 수 없는 꿈이었다.
시도조차 못하고 매번 청, 일본한테 탈탈 털려 식민지배 까지당한 조선보다는 요동정벌 고려의 기개가 더 낫다
우왕시기에 전쟁을 할만한 재력이 있을까도 궁금합니다. 식량과 물자를 지원할 여력이 될까도 ... 회군의 원인은 1번이 맞고 그 이후에 2번이 추가되겠지요. 왜냐하면 회군하면 어린이가 집에 가는 것과 같이 바로 하는게 아니지요. 중간의 반항세력과의 싸움도 고려하겠지요
가을에 가겠다는 순 거짓말.. 요동은 9월만 되어도 추워서 전쟁 못함. 그니까 요동을 정벌 안 하겠다는 거지요.
근데 염흥방이 타인의 토지를 빼았았는데, 이인임을 참수하면 그게 오히려 정치적인 모략 아닌가?
안녕하세요 최영장군님 후손 입니다
경주 최씨 가문 이고요 역사에 관심
이 생겨서 한국사 자주 봅니다 😊
최익현.최형배
큰별쌤 좋아용!!
쓰다소키치가 만든 식민사관 위화도 위치가 반도사관 그대로네.
위화도는 강 한가운데 있는 섬이 아니라 압록강 支流 강변에 있는 땅
압록강보다 훨씬 위쪽인 랴오닝성 콴뎬 徐店子 지역이 위화도
작은 나라가 큰 나라를 치는 것은 도리에 어긋나는 것이다... 조선500년 역사동안 조선이 중국에 굴욕적인 모습을 보인 근간이 되었지... 왕이 그리고 장수가 백성을 생각하고 그들을 위해 뭘 한다는 생각은 매우 시대 착오적 발상이다. 백성은 민초 말그대로 왕과 권력자들의 노예였을 뿐이다. 조선건국이 썩은 고려를 치고 백성을 위한 건국이었을 거라는 착각을 일으키는 강의. 역사이해에 너무 많은 감성을 실은것이 아닐까? 이성계가 진짜 백성을 생각했다면 그땅의 50%가 노예로 살지는 않았겠지요
도리에 어긋나는게 아니라 애초에 고려는 망하기 직전 상태였고 명나라는 패권국가였는데 이성계가 우왕 명령 따라서 명나라 치러 갔으면 지고 끝나는게 아니라 아예 고려라는 나라 자체가 없어져서 그대로 명나라 영토가 됐을지도 모르는 상황이었음. 이성계가 도리 이야기 한건 가냥 명분을 내세웠을뿐이지 상식적으로 봐도 이성계 판단이 옳은거였지
어쩔수 없이 진군 했을때도 군대 상황이 너무 안좋아서 답이 없었는데 우왕하고 최영이 계속 회군 거절하니까 이성계 입장에선 진군 해서 죽으나 회군해서 역적으로 몰려서 죽으나 하는 상황이었는데 딱히 선택지가 없었음
당시 시대에 대한 이해가 많이 떨어지는것 같은데 강의를 비판하기전에 공부 좀 하셔야할듯
@@jinyoon7163 훌륭하십니다. ^^
작은 나라가 큰 나라를 치는 것은 도리에 어긋난다..............ㅋㅋㅋ, 징기스칸이나 누르하치, 풍신수길한테도 그 도리를 강의 해 줬으면 얼마나 좋았을까?.........스스로 작은나라를 자처하니 결국, 5백년 내내 굴욕만 당하다 끝남
최태성님 짱 👍
최교수님 강의가 맞네요 이성계 가족들도 전부 미리 자취를 감추고 가별초도 미리 출병시키고
역사는 승자가 쓰는것입니다 병사들이 도망가고 죽고 지쳐있었다고 했지만 ....
위화도 회군때 그 지쳤다는 이성계의 가별초가 개경까지 도착한 시간이 얼마나 걸렸는지 압니까?
병들고 지치고 탈영병이나고 다죽어 간다는 이성계의 가별초가 개경에 도착한게 3일입니다 3일 다 지친 병사들이 어떻게 그먼 거리를 3일만에 주파합니까?
그래서 최영은 군사를 모을틈도 없었습니다
이성계는 회군한 핑계를 만들었고 권력에 탐욕을 가지고 있었다고 봅니다
이때 요동정벌을 했으면 옛고구려 땅을 다시 찾아 중국의 반을 차지하고 지금같이 중국에게 멸시받는 나라가 안돼었을 텐데
대륙 고구려
대륙 신라를 본다면
조선은 그냥 작은나라 일뿐
ㅋㅋ 고구려처럼 지도에서 아예 지워져서 지금쯤이면 시징핑 찬양하고 있겠지
요동정벌을 했어야 함..
말이야 쉽지
했으면 진짜 중국에 일부가 되었을 수도 있음...
중국인되고싶노
ㅈㄹ 밥이나 처 먹어라
정벌에 성공했다고 해도 명이 북원 세력만 몰아내면 요동을 공격했다는 명분으로 10배가 넘는 군사를 이끌고 고려를 침략했을텐데 생각이 좀 짧으시네요
정말 강아지처럼 사랑스럽게 생겼네... 예원씨 ㅋㅋㅋ
작은 나라가 큰 나라를 공격하는 것이 안 되는 게 왜 당연하냐? 화살은 상대 쪽도 마찬가지고. 명나라는 농번기가 없나?
고대 전쟁에대한 이해도가 현격히 떨어지시네요
기마병을 제외한 고대사회일수록 쪽수에 의한 싸움이 승패를 좌우하지요
게다가 침략해야하는 병력은 수비의 2배가 되어야 한다는걸 생각해본다면
가을에 요동정벌을 갔으면 어땠을까?
곧 겨울이라고 또 반대했을듯
이성계 그냥 좌빨같은놈.. 그냥 반대를 위한 반대죠 이유만 다르게 말할뿐
왕조중에 잴 엿같은 왕조가 조선왕조..세종대왕빼면 다 드런놈들뿐 늟어죽을때까지 왕해쳐먹으려고 자식을 죽인왕놈
그놈이 영조 긍데 그런걸 왜 안까는건지
우리땅 요동 회복못하고 우리땅 줄여서 한반도에 국한시키고 중국을 숭상하는 속국으로 전략한게 조선건국이란다 겁쟁이 무인일뿐..' '
최영과 그 수뇌부들은 바보라서 요동정벌 강행했을까? 4불가론 그럼 겨울에 칠거야? 만약 위화도회군만 안했더라면 일단 요동정벌은 했을거라고봄~근데 유지는 못할듯
1. 그래서 이성계는 평양에서 대기하다가 가을 되서 보급 걱정이 줄고, 습기 문제 해결됬을때 가자고 타협안 냈음.
2. 유지할 계획 안세우고 원정을 가면 그냥 꼴받아서 우리 병력도 꼬라박고 오겠다 수준인데?
큰별쌤 안경테 어디 브랜드 인가요? 너무 궁금합니다
그런데 참 아쉬운것은 명나라와 한판붙어볼 기회를 놓친건 아쉬운 것이다
괜히 싸웠다가 명나라한테 개박살날거 뻔한데 안하는게 나은듯
@@Preston-Garvey 해봐야안다
@@숲속의호수-s7d 똥을 먹어봐야 아냐
@@숲속의호수-s7d 당시 최고의 무장이었던 이성계가 안된다고 하는데 님이 뭐 어떻게 하게? ㅋㅋㅋㅋㅋ
@@Preston-Garvey 이성계는 반역자입니다
고려는 거란도 격퇴한 군사강국
조선은 우리 고유언어를 가진것만해도 모든게 용서가된다. 세계 언어중 가장 완변학 문자. 한글이다.
빨갛다란 단어도 다양하게 표현될 수 있는 건 정말 한글만이 보여주죠
하나 더 있음 조선이 경제나 산업은 퇴보했지만 남긴건 하나지. 정치적 센스가 좋았음 지방 토호들 세력을 효과적으로 제거함 ㅋㅋㅋㅋ 세계 여느나라들 처럼 지역간 지방간 감정은 있어도 내전이 일어날정돈 아니니까요 ㅋㅋ
@@AA-hd2bn 선동 독재에 도가 튼 나라
개소리하네 힘없어서 몽골 일본한테 유린당했는데 뭘 용서하고 자시고 ㅋㅋㅋㅋ
모든게 용서된다기엔... 무능한 왕이 너무 많았어요 조선 후기 공부하다보면 화밖에 안난다는...
위화도 회군이 이시대의비극이다
대한민국 역사를 바꾼 3대 회군 위화도회군,
10,26의 김재규의 육본행변경, 12,12의 9공수여단의 인천행유턴
위화도 회군은 동아시아의 역사 아니 세계의 역사에 중요한 대혁명 그 자체였다.
...만약에 그때 위화도를 넘어 명나라와의 전쟁에서 이겨 요동반도와 잃었던 선조들의 만주평원을 탈환했었더라면...영토로 봐서는 아쉬움이 좀 남네요..
0 Chance winning against the Ming Dynasty. Koreans has mental masturbation every day 😂
미치지않고서야 조선이 무조건지죠
운나쁘면 지금쯤 중국인됐을듯
@@shaco12345 중국의 한자가 우리 동이족의 문자입니다.
당시 홍건적을 산동반도에서 고려군과 대적한 경험이 있는 최영장군이 오합지졸로 판단하고 거사를 꿈 꾸었는데 홍건적과 대적한 적 없는 이성계가 통수를 굴려서 빠꾸한 역적직을 한거지요.
@@smw6535 이건 뭔 헛소리지? 환국뽕 맞으셨나?
군사쿠테타의 시초
~~~
만약
요동정벌이 성공했다면 역사는 어땠을까요
도로 빼앗기지..
정벌해도 곧 뺏겨 ㅋㅋㅋㅋㅋㅋㅋ
지도에서 삭제
명에서도 으뜸으로 꼽히는 남옥장군이 백전노장정예25만 거느리고 요동에 잇엇다. 골목에서 양아치들이랑 놀던 이성계군대가
넓은 중원에서 원의 정규군과 싸워서 몰아내버린 명의 최고명장 남옥이 이끄는 군대랑 싸우면 어떻게 될거 같아. 참고로 명군 25만이
만주를 가졌다해도 세종 없어서 한글도 없었겠지
최영이 고려의 장수로써 존경받을 위인이고 그시대에 권문세족이 권문세족 편드는건 당연한거지
하지만 너무 늙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전성기때 최영이라면 사불가론을 거론하기 전에 이미 지는 전쟁이란걸 알았겠지
이때 최영도갔어야했다 우왕의 미련함으로인해 충신을잃엇지
19:29 ~ 19:53 이성계, 최영....
사실은 현재의 우리가 알수없다 너무 이성계를 영웅화
하시고 있네요
용의눈물에서는 최영 장군 부하 들하고 전투 장면 있는데 역사 기록에는 무혈 입성 이라고 나온데요. 성문을 그냥 열어줬다는
드라마로 역사를 배운다고? 소설 삼국지연의로 삼국지 역사 아는체 하는 거랑 같잖아~~
@@undaunted3202 사람들 90퍼가 삼국지를 연의기준으로 알고있는데 정사무새들 소설타령하면서 발작버튼 일으키는거 역하네 ㅋㅋ 그래봐야 삼국지 정사로 아는사람 거의없어 니들만의 세계지
그정도는 아니고 실제로 조민수의 좌군이 개경수비군에 밀리다가 우군의 대라소리가 울리자 좌군을 쫓던 개경 수비군이 모랄빵나서 달아났다는 기록이 있음
고려가 아니라 조선이여야 했던건 맞다...
고려로 정치개혁을 하기엔 너무 썩은 나무였긴하다
다만 조선을 개국하면서 꼭 사대를 꼭 정치에 1순위로 삼았서야 했었나 싶다
아직 명나라 초기인지라 후원도 있었고 중국의 힘이 분산된 시기라 충분히 만주를 차지할수도 있었다 보는데....
저때 요동을 먹어놨으면 지금까지 요동이 우리영토였을수도 있었을텐데... 이나라가 요동을 먹는게 이나라의 부국강병을 위한 것도 있지만 나아가서는 동아시아의 힘의 균형이 맞아져서 동아시아가 평화로울수 있는 길이였을텐데... 역사에 만약을 생각하는게 웃기는 일이지만 사대만큼은 버렸으면 어땟을까 요건 너무 아쉽다
그렇군요.
진정한 위화도의 위치를 먼저 비정해야한다.
섬 도(島)자는 사면, 삼면이 물인 부분을 칭한답니다. 한반도하면 삼면이 바다로 이루어졌지요. 어느 교수님 강의를 보니 압록강 유역의 위화도는 몇만명이 진지를 구축하기에는 작은 지역이랍니다. 그래서 압록강 건너 삼면이 강으로 휘감은 위화도란 지역이 있더군요. 그 곳은 수만명이 주둔해도 될만한 크기랍니다.
@@dlstodgodqhrgos581 네. 저도 보았습니다. 하지만 현 역사학계가 변해야겠죠.
조선이라는 국호도 세계 최초로 중국 한족 명나라 주원장한테서 하사받은 국호 ㅋㅋㅋ
난 우리나라 역사에서 중국의 힘을 빌려 고구려를 멸망시킨 신라와 위화도 회군이 중국을 이길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스스로 발로찬 역사의 기점이라고 생각함
저때 명을 어떻게 이겨요... 지도에서 안사라지면 다행이지
그냥 님 역사관이 잘못된는데. 그 시절 신라와 고구려가 한 민족이라고 생각하는 무리수, 고려가 명을 이길 수 있다는 무리수 좀 어떻게 안되나?
@@SuperWonder애초에 진다고 생각부터 하는것도 문제인듯
저때 최영의 요동정벌은 허황된건 아니었음
이성계 자체가 애초에 반역의 마음을 품었던거지
명도 전쟁중이라 요동은 빈집이었던 상태였음
뭐 나중에 명과 전쟁이 분명 있었겠지만 전쟁이라는건 해봐야 아는거임
그런식으로 따지면 을지문덕은 어떻게 수나라 100만대군을 이겼고
고려는 거란의 3차 침입을 어떻게 막았을까 생각좀 하시길
그쪽 논리면 우리나라는 거란때 끝났어야 했다는거임
전쟁은 원래 지키는 쪽이 조금 더 유리한거 괜히 공격하는쪽 수가 10배이상 많아야 이길수 있다고 하는게 아니기에
이미 벌어진 일을 어떻게 할수야 없지만
이성계의 저 회군은 반란이고 역적이 맞는거임
예나 지금이나 군대에서 명령불복종은 전시상황시 사형입니다.
더군다나 회군이라니...
더이상 무슨말이 필요한가요.
육룡이나르샤 보면 최영, 이성계, 정도전의 이야기가 잘 나와있는거 같아요
역사책을 보면 아주!? 상세히 나와있습니다.
ㅋㅋㅋㅋ 판타지 드라마??
재밌긴해도 정통사극은 아니지
판타지입니다.
그 스토리를 알려면 차라리 용의눈물을 보던가 화질이 안 좋으면 정도전을 봐라
무엇보다 가별초가 저렇게 든든하게 관리 될 수밖에 없었던데 4불가론보면 군대를 정말인간적으로 관리해왔다.
당시 요동정벌은 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일인!
이 동영상에 나오는 위화도가 얼마나 넓기에 원정군 5만이 주둔할 수 있다는 건지 이해가 안되네요. 더구나 장마에 물이 불어 강 수위가 높아졌다면서 강 한가운데에있는 섬에 주둔 한다는 것이 말이 되는 겁니까?
물이 더 불면 전부 수장되거나 고립되어버리는데요?
지금 북한과 중공의 국경에 있는 위화도가 그당시의 위화도인 것은 확실한가요?
뭔가 말빨에 속는 듯한 느낌이 드는 것은 나만 그런 건가?
병자호란에서 청나라 12만 대군이 압록강을 건너 4~5일만에 개성(개경)에 도착했다는 기록이 있는데, 이성계 장군의 가병들(함주 주둔)이 왜 10여일 만에 개경으로 못온다는 것인지? 압록강변을 타고 파발을 보내도 되는 것이고, 또 단기필마라면 평안도에서 함경도로 왕래 가능한 길이 있습니다. 병력은 황해도 동북쪽의 곡산을 거쳐 개경으로 오면 되구요.
정묘호란때 인조가 강화도로 신속히 피신하여 그같은 상황을 방지하고자 병자호란에는 기동력 우월한 일부선봉 기마대를 개경에 보내 인조가 강화도 피신을 못하여 우여곡절끝에 남한산성으로 피신한걸로 아는데, 12만대군이 어떻게 4~5일안에 개경에 진입하였다는것인지
병자호란 당시 겨울이라 강도 얼어서 도강하기 쉬웠고 무엇보다 청나라는 기마부대가 주력이라 기동력이 압도적이였음
사불가론 해석하는 꼬라지들 보면 가소롭다. 以小逆大 一不可가 실록에 기록된 원문이다. 작음으로 큼을 치는 것이 첫째 불가이다. 이것이 정확한 번역이다. 그런데 역사학자들마다 이소역대를 작은 나라, 큰 나라로 번역한다. 참으로 기이한 일이다. 이소역대와 같은 문구는 손자병법에 매우 자주 등장하는 어투의 글귀이다. 이성계는 손자병법을 빌어다 불가함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위화도는 압록강 중간에 위치한 섬이 아니다. 1900년대 초반 일본인 학자가 거기를 위화도라고 부르면서 중국도 자기들에게 유리하니까 거기를 덩달아 위화도라고 불렀다. 실제 위화도의 위치는 압록강을 건너 현재 중국 땅 속으로 80Km 들어간 데 위치해 있다(유튜브, 이덕일, 위화도 위치, 로 검색) 따라서 여름철 강물이 불어나 건널 수 없어서 수백명이 죽었다는 것 또한 사실일 수 없다. 이성계는 위화도에 머무르면서 장계에 말하기를, 여름철 장마로 여기저기 시내가 형성되어 적진으로 전진 시 군량을 수송할 수 없으므로 가을철에 다시 출병하게 해 달라고 상소를 올린다.
청나라는 기마병만 수만기라서 보급도 말 몇마리씩 끌면서 전 병력이 말 타고 오니까요.
그런데 조선군은 수레로 끌고 다니니 기동력이 차이가 나죠.
@@아기상어-x9s 예 근데 보병이라 하여도 기한이 5~6일 정도 더 있으니까 논쟁의 소지가 있다는 말씀 입니다. 손자병법 써주신 분 글은 잘 읽었습니다. (그러나 역사학자들이 소국/대국으로 분석하는 것은 나름 이유가 있겠죠. 한자어는 축약형이라 직역을 안하는 때가 많다고 봅니다만...)
그리고 최소 이성계 장군이 위화도에서 가병들을 '미리 준비하라'고 전갈을 넣었을 수는 있다고 생각됩니다. 즉, 개경에서부터 반란을 미리 계획했다고는 보기 어렵지 않을까, 싶음.
이성계가 명과 결사항전 했다면
만주는 지금 우리나라 일 수도 있는데
이미 뜻을 품었으니...
준비된 회군이라고 본다.
청나라도 중원을 먹고 뱉은곳이 만주인데 그 당시 만주를 우리땅 어떻게 만드나. 당시 농업기술 부재로 만주땅이 버려진땅 된거다 고구려도 수도를 평양으로 옮겼다 국내성도 압록강변이지 만주라고 하기 어렵다. 우리나라 사람은 식민사관도 있지만 현대 중심주의가 만연해서 역사 이해가 완전히 잘못되어 있다. 고구려 사람들은 드넓은 만주벌판을 달리지 않았다. 주로 요동성과 한반도 한강 부근에서 말달려 싸웠지... ㅋㅋ
사람들이 계속 모르는게
이성계는 고려라는 나라를 다스리고, 또
조선을 세운 이후로부터 계속 명나라 즉 주원장과 사이가 안좋았습니다...
절대적으로 사대하는 사람이 아니였어요.
일생을 전장에서 보낸 무인이였으니까요.
또 정도전 또한 조선 건국 후 북벌론을 펼쳤습니다.
정도전과 이성계의 20만 양병설이거든요.
다만 주원장이 죽고 이성계가 죽는
바람에 이방원은 친명파 였기 때문에 사이가 좋아진겁니더
Koreans thinking they could win against the Ming dynasty 😅🤣😂
한민족의 특성 - 왕의 명령을 어겨서 죽더라도 절대 다른 민족을 공격 할 수 없다 그러나 우리 민족끼리는 죽기 살기로 싸워서 왕위를 쟁탈해야 한다
엥 다른 민족 잘만 공격하고 살았는데? 여진족은 그럼 같은 민족이라 정벌하고 대마도는 같은 민족이라 정벌함?
이성계는 한마디로 말하면 기회주의간적이죠 우리의 광활한 영토를 이 좁은 한반도안으로 가두어버리는 천추의 한을 남기고 맙니다 애통하고 애통하도다 참으로 애통하도다
그건 김춘추 아니던가요? ㅋㅋㅋ 뭔 개소리임?
고려도 고려라고 지어놓고 주저 앉은게 누구인데 ㅋㅋ
그래서 최영말고 왜구 잡기라도 했음? 그 광활한 영토는 커녕 ㅋㅋ 백성들 외면하고 강화도 쳐박혀서 벌벌 떨면서 몽골놈들 피해서 있던게 누군데요?
그 잘난 고려때 권문세족 문벌귀족 신진사대부
어느 누구도 왜구정벌 안햇음 ㅋㅋㅋ 까놓고 말해서 최영가문 후손들 말고는 이성계를 절대 깔수가 없음 그리고 가두어버린건 이성계 영향력 끊어버린 태종 이방원이지
저 1차 요동정벌도 실제로는 이성계 힘이 만주 동쪽 절반이상에 영향을 주고 있었기에
시도라도 가능했던거 그랬기에 공민왕초기에는 이성계도 신하로써 최대한 할만큼 한거고
나가 뒤지라는데 댁같으면 뒤지겠음? 가만히 있는데 가장 군사력 강한 세력이니까 조지려고 한거임 우왕부터 신진사대부 대부분이 죽으라고 압박 안했으면 어디까지나 신하로 있을수밖에 없음 역성혁명을 할 명분이 없으니까 우왕부터 공양왕까지 명분을 계속 줘버리면서
없는 왕권도 없어지니 당연히 왕이 될수밖에
저때 꼴아박았으면 정벌 나간 애들은 다 죽고 고려는 명한테 먹혔을텐데
@@user-be1dy6id4f 참 대단하신 역사인식이세요 그당시 명의 상태를보세요 다시한번 명수립초기정세를 확인하시고 다시글올ㅇ리세요
그러시군요
@@홍진헌-v8j 저기 아재요...명상태보기전에 고려상태나보고 헛소릴해요 스스로도 못보는데 뭔 명을보고앉았엉
위화도 회군을 긍정적으로 보는 것 자체가 역사왜곡 아닐까? 이성계 즉 전주 이씨들이 역사 왜곡한다고 생각한다. 대부분의 쿠데타는 굉장히 부정적이면 역사속에 이성계와 정도전에 대해서는 굉장히 긍정적이다. 누가 뒤에 있는 건가??
그런가요?
싸려
동의합니다. 이성계는 적을 치라는 왕명을 거절하고, 도리어 그 군대로 쿠데타를 일으킨 자입니다. 그야말로 악한 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역사를 왜곡하는 자들로 인해 미화되었지만, 이제라도 바른 평가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가설적 얘기는 노노.
그때 상황이 어찌하던 이성계는 역적맞음..
조선이 개국할 당시의 조선은 당시의 기준에서 혁신적인 국가였죠
하지만 완벽한 시스템이 없듯
호족 권문세족이 나라를 좀 먹었듯
조선은 양반들이 조선을 좀 먹었다고 봐야죠
원래 조선민족은 미래가 없었던거야 지들끼리 지금도 물어 뜯고 하는거 변함이 없어 똥개 똥 먹는 버릇 못 고친다구 조선민족이가 그래 지금 한국 죽정도 그렇고 젤 대표 적인게가 한국 국회야 그냥 아주 가관이야
결국 기득권이 썩는 것은 인간사회에서 변치 않는 진리인지라...
@아나룬탈라 코리안 잡종이 일본의 왜왕이되어 일본을 다스린것에 비하면 무난한 편인것 같습니다.
기득권을 비판하고 몰아낸 존재는 항상 기득권이 되는게 당연한거라..
조선은 철저한 신분제 국가라,,그냥 양반들의 세상이고, 양반들의 문화였죠,,,
뭣도 모르는 국뽕에 환장한 ㅄ들이,,,
한복,한옥,예의범절 이런것이 일반백성들의 역사라고 자랑하는데,,,그건 20%양반들의 문화지,, 서민들의 문화는 아님
또 부여시대부터 온돌을 썻다고 자랑하는데,, 온돌은 옥저에서 발명했고,, 옥저가 고구려에 정복 당하고는 안쓰이다가,,,고구려가 망하고 발해에서 잠깐쓰엿다가 안쓰고
조선 중기지나서 1700년경 소빙하기,경신대기근때 굶어죽고,얼어죽고해서,,온돌이 쓰여지기 시작함,,
그전까지 서민들은 초가집도 아니고 그냥 신석기,청동기 시대처럼 대부분 땅을 파내어 움막짓고 살앗죠(오래전 군대에서 야전 텐트칠때 한30~50cm땅을 파고 야전텐트 쳣듯이 움막 지음)
koya-culture.com/mobile/article.html?no=109328
한국 사극 드라마의 주거문화는 역사 왜곡이 엄청 심함
프리고진땜에 온 사람 거수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청천강까지 고려국경이라며
압록강 넘어 요동정벌은 왜 갔을까?
고려 국경부터 다시 공부해라
이성계는 희대의 역적이지. 회군하지 않고, 요동 정벌했다면 역사가 바뀌어 있을것.
에라 이~요동 정벌이 가능 했을거라 믿나요? 당시 모든 상황을 고려해 볼때 정벌은 커녕 몰살 당했을 것입니다.그러면 고려도 명나라에 멸망하고 명나라에 귀속되어 대한민국도 없었을 것입니다.뇌가 빈 사람이구먼요.
당시병력으로 요동행에 나서는게 자살행위..
@@황갑준 네네. 그럼 낙동강에서 국군이 인민군에게 결사항전한것도 결국 자살행위겠네요. 질것 같으면 회군하여 아군 수뇌부 치고, 적에게 굴욕적으로 사대하는게 맞는거쥬? ^^
전멸했으면?
@@골리앗-p1n 군인이 전멸할것 같으면, 회군해서 아군 수뇌부를 치고, 적에게 사대하는게 정당화된다는거임? =.=; 지금 우리가 중국이랑 한판붙는데, 병력 조금 줬다고 병력 돌려서 국군 수뇌부 치고, 중국에 굴욕적 사대를 하며 정권 잡는다고 생각해보셔. 당신은 그 군인을 국민을 위한 영웅이라고 하겠소? 역사관하고는. 쯧
현대 전쟁에서도 가장 중요한 건 지휘부의 지휘가 아니라 현장 지휘관의 판단.
이성계가 영웅이기도 하고 이성계의 시점에서 역사가 써지기도 했겠지만
현장 지휘관들도 모두 동의해서 회군했을 정도면.. 위화도 상황은...
그러니까 뒤집어질 수밖에...
회군해 아군 수뇌부를 치는 현장 지휘관의 판단? ㅋㅋㅋ 개가 웃겠소~
@@MX_Korea 뭔소리야? 장군이 지휘관이고, 그밑 따까리들은 지휘부인거지. 그리고 몇명이 됐든, 회군해 아군 수뇌부를 치고 적에게 사대하는 것들이 군인이냐?
@@MX_Korea 말섞기 싫다. 이따위 역사관으로 조상 옹호하는 전주이씨와는. ㅋㅋ 근데, 그건 아니? 전주이씨 족보 90%가 가짜야. 너희집것도 그럴것같아. 그러니, 그만 옹호해. 군인의 책무는 나라를 지키는거야. 그건 시대가 변해도 변하지 않는 진리이지. 그리고, 참고로 난 신라가 한짓도 혐오해. 오케이? ^^
@@MX_Korea 지 답글도 자신없어서 지우는 인간이. 논리적으로는 힘든가보지? 앵앵거리는건 너임. 전주이씨 종친회장님. ^^ 방구석에서 모니터 보면서 총이나 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