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약용이 설계한 녹로에 움직 도르레를 사용하지 않은 이유는 여러 요인으로 설명할 수 있어요. 우선, 당시 기술로는 움직 도르레를 정교하게 제작하고 유지하기 어려웠고, 더 많은 자원과 비용이 필요했기 때문에 성을 쌓는 작업에서는 고정 도르레가 더 효율적이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또한 움직 도르레는 부하를 받을 때 균형을 잃거나 마찰이 커져 위험할 수 있어요. 고정 도르레를 선택함으로써 불필요한 복잡성을 줄여 고장이 날 확률을 낮추고, 신뢰도를 높여 현장 작업자의 안전을 배려한 설계라고 볼 수 있습니다. 또한, 고정 도르레에 실을 감는 크랭크(얼래)를 활용하면 지렛대 원리로 토크가 증가해 적은 힘으로도 무거운 자재를 들어 올릴 수 있어요. 이 덕분에 복잡한 움직 도르레 없이도 작업을 효과적으로 수행할 수 있었을 거예요.
거중기는 이미 알고 있었으나 녹로의 존재를 알게 되면서 궁금증이 생겼는데 설명해 주실분? 거중기는 움직 도르레를 사용하여 필요한 힘의 크기를 획기적으로 줄였으나 녹로는 고정 도르레만 사용하여 힘의 작용 방향만 바꾸었어요. 왜 그랬을까요? 당시 기록에 문제가 있었던 건가요 아님 움직 도르레의 원리를 이해 못한 상태로 복붙만 이루어진 대참사인가요. 복원해 놓은 녹로의 예시 바위도 장난없는거 같은데.. 왜 움직 도르레를 녹로에는 안썼을까..
과학 기술의 발전을 단순히 “서양보다 늦었다”라는 시각에서 바라보는 것은 과학의 정신과 역사적 발전의 본질을 놓치는 편협한 시각입니다. 정약용이 거중기와 녹로를 만들며 성을 축조한 사례는, 당시 조선이라는 환경에서 창의적으로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던 과학적 사고와 응용 능력의 발현입니다. 과학에서 중요한 것은 새로운 발견뿐 아니라 기존 지식을 어떻게 활용하고, 현장의 필요를 충족시킬 방법을 찾는지입니다. 과학의 정신은 항상 “먼저” 개발한 것을 우위로 두지 않습니다. 오히려 문제 해결 능력과 창의성, 그리고 현장에 맞춘 적절한 응용이 중요한 가치로 평가됩니다. 과학사 관점에서 보더라도, 각 문화권은 그들의 환경과 필요에 맞는 독자적 기술 발전 경로를 가졌습니다. 조선의 경우, 당시 서양과는 다른 문화적, 정치적 환경 속에서 문제를 해결할 필요가 있었고, 그 과정에서 중국 문헌을 참고하여 독자적인 기술을 응용하고 발전시킨 것은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특히 동아시아 문명권에서는 서양처럼 “새로운 발명”을 통해서가 아니라 전통적인 지식과 기술을 참고해 발전시키는 방식이 흔했습니다. 이를 두고 무조건 “서양보다 늦었다”고 폄하하기보다는, 해당 시대와 문화적 배경에서 기술의 발전이 이루어진 맥락을 이해하는 것이 과학사에서 중요한 평가 방법입니다. 과학 기술의 우위를 판단하는 데 있어 “누가 먼저 개발했는가”는 중요한 기준이 될 수 있지만, 그것이 유일한 기준이 될 수는 없습니다. 과학 기술의 발전은 어느 한 문명에 국한되지 않고,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이루어졌습니다. 조선의 거중기와 녹로는 당대 조선의 실질적인 문제, 즉 성을 축조하는 데 있어 필요한 기술적 요구를 충족하는 효율적인 장비였고, 이는 조선의 기술이 현장의 요구에 맞춰 실용적 성과를 거두었다는 점에서 충분히 자랑할 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이러한 서양과의 단순 비교와 우열을 매기려는 사고는 사실 우리나라 교육 시스템이 낳은 결과일 수 있습니다. 현재 우리나라의 주입식 교육은 비판적 사고보다는 단순한 지식 축적에 중점을 둔 경향이 강하며, 학생들은 질문하고 비판하기보다는 주어진 정보를 단순히 외우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하게 됩니다. 이는 과학적 성과를 평가할 때 “누가 먼저 했는가”와 같은 단순한 순위에 의존하는 경향으로 이어질 수 있으며, 본질적이고 맥락적인 이해보다는 표면적인 지표에만 집중하게 만드는 한계가 있습니다. 이러한 점에서 과학적 사고는 타국과의 경쟁보다는 창의적 응용과 문제 해결 능력에 초점을 맞춰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과학의 본질을 이해하는 관점에서는 단순히 서양보다 늦게 개발되었다는 이유만으로 과소평가하는 것은 부적절합니다. 과학과 기술의 발전은 반드시 그 시기와 문화적 배경을 함께 고려하여 평가해야 하며, 정약용의 성과는 그러한 측면에서 오히려 높게 평가될 필요가 있습니다. 누가 먼저, 누가 더 빨리라는 등수로 가치를 결정짓기보다는, 보편적으로 중요한 가치를 이해하고 존중하는 사고가 더 필요합니다.(경남에서 아이들 지도하는 강사)
과연 실지로 썼을까? 힘으로 해결했지. 아무리 봐도 저걸 설치하는게 불가능한데 4명이 들어올리면 충분히 들수 있는데 번거롭게 왜 쓸까? 나무로 만들면 쉽게 박살나고 사람이 죽었을땐데 저거 왜 씀? 바보임. 무쇠로 개조했으면 몰라도 딱 봐도 상상속에서나 가능한거지. 저거 실지로 썼으면 사람들 죽어나갔을땐데 시연은 왜 못함? 나무가 바위를 들어올릴거 같냐. 나무 하나 박살나면 차라리 힘으로 하는게 낫지.
기원전 35세기 문명이 막 발돋움하던시기. 메소포타미아에서 크레인 발명. 거중기는 돌을 수레에 위에 올리는게 끝. 크레인은 현장에서 돌을 들어서 올릴 수 있음. 부끄러운 역사현장. 고려시대 세계최초의 금속활자 글라이더 미사일 만들면 뭐합니까. 조선시대와서 더 낙후됬는데. 유일하게 농업기술만 발달
조선시대보다 과학기술력과 수준이 하락하고 춤추고 노래 부르는데에만 열중하다보니 한국의 수준이 급격히 하락하는 안타까운 현상이 발생한것이다 그러니 제대로 된 거북선을 만들지 못하는 이유이다 양반과 상놈의 구분을 명확하게 하여 양반은 공부와 유흥(그래야 기생이 먹고산다) 에 집중하고 상놈들은 생산에 집중한다면 가장 효율적인 사회체제로 전환되게 될것이다 뽕꾸루들이 뽕꾸루를 채용하고 인재가 많은 국가라며 자평하고 다니는 멍청한 국가가 되었다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한다
정약용이 설계한 녹로에 움직 도르레를 사용하지 않은 이유는 여러 요인으로 설명할 수 있어요. 우선, 당시 기술로는 움직 도르레를 정교하게 제작하고 유지하기 어려웠고, 더 많은 자원과 비용이 필요했기 때문에 성을 쌓는 작업에서는 고정 도르레가 더 효율적이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또한 움직 도르레는 부하를 받을 때 균형을 잃거나 마찰이 커져 위험할 수 있어요. 고정 도르레를 선택함으로써 불필요한 복잡성을 줄여 고장이 날 확률을 낮추고, 신뢰도를 높여 현장 작업자의 안전을 배려한 설계라고 볼 수 있습니다.
또한, 고정 도르레에 실을 감는 크랭크(얼래)를 활용하면 지렛대 원리로 토크가 증가해 적은 힘으로도 무거운 자재를 들어 올릴 수 있어요. 이 덕분에 복잡한 움직 도르레 없이도 작업을 효과적으로 수행할 수 있었을 거예요.
수원사람으로서는 정약용은 위대한 사람입니다
?????
감사합니다
거중기는 이미 알고 있었으나 녹로의 존재를 알게 되면서 궁금증이 생겼는데 설명해 주실분?
거중기는 움직 도르레를 사용하여 필요한 힘의 크기를 획기적으로 줄였으나 녹로는 고정 도르레만 사용하여 힘의 작용 방향만 바꾸었어요.
왜 그랬을까요? 당시 기록에 문제가 있었던 건가요 아님 움직 도르레의 원리를 이해 못한 상태로 복붙만 이루어진 대참사인가요.
복원해 놓은 녹로의 예시 바위도 장난없는거 같은데.. 왜 움직 도르레를 녹로에는 안썼을까..
거중기 만든 시기에
서양은 이미 증기기관 쓰고 있었음
서양이 거중기 만들었던때는 기원전이였음.
@@2jaemyungE 고대 이집트 피라미드를 기중기로 만듬 ㅋㅋ ㅆㅂ
가장 오래된 기록은 메소포타미아 문명에서 기원전 35세기에 만들었어.
조선과 서구의 문명차이가 43세기쯤 나는 듯
@@AF-qk8ty고대 이집트는 거중기란게 없었음 그리고 기중기와 거중기는 의미가 다르다 ㅃ대가리야
@@AF-qk8ty참고로 우리도 기중기는 기원전부터 있었다
@@no-bs3km ????
오호라
감사하네
최송킿힠
감사함니다
거중기의 쓰임이 아직도 이해가 안되는 부분…거중기는 짧은 범위의 수직이동만 가능한데, 바닥에 있는돌을 위로 올리고 그 밑에 수레를 받치는것 까지는 오케이 근데 다음 돌은 거중기 밑으로 어떻게 가져옴?
조립식이여서 분리 했다가 돌 있는 곳으로 옮기고 사용했다 하네요. 돌하나당 240kg 정도 되는데 사람이 직접 수레에 올리는 것보단 수월 했다 합니다. 실제론 많이 사용 하지 않고 오히려 녹로를 더 많이 이용 했다고 하네요.
@@Cnlwwh-ekq 너처럼 말하는 애들 수두룩빽빽한데 그들 모두 설명을 못함 너 포함
@@Cnlwwh-ekq 저때당시 저정도면.... 나름 머라쓴거임.. 미개하다고 할수는 없음...그때당시 조선사람들이 생각하는 미개함의 기준이 지금이랑 다름...
@@Cnlwwh-ekq 그때당시 미개함의 기준이 지금이랑 달라서 현재의 기준으로 미개하다고 하는게 올바른 역사적 해석이라고 할수는 없음
@@Cnlwwh-ekq 그때당시 미개함의 기준이 어떻게 되는지 모르시는듯... 조선사회는 지금이랑 다름..
과학 기술의 발전을 단순히 “서양보다 늦었다”라는 시각에서 바라보는 것은 과학의 정신과 역사적 발전의 본질을 놓치는 편협한 시각입니다. 정약용이 거중기와 녹로를 만들며 성을 축조한 사례는, 당시 조선이라는 환경에서 창의적으로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던 과학적 사고와 응용 능력의 발현입니다. 과학에서 중요한 것은 새로운 발견뿐 아니라 기존 지식을 어떻게 활용하고, 현장의 필요를 충족시킬 방법을 찾는지입니다. 과학의 정신은 항상 “먼저” 개발한 것을 우위로 두지 않습니다. 오히려 문제 해결 능력과 창의성, 그리고 현장에 맞춘 적절한 응용이 중요한 가치로 평가됩니다.
과학사 관점에서 보더라도, 각 문화권은 그들의 환경과 필요에 맞는 독자적 기술 발전 경로를 가졌습니다. 조선의 경우, 당시 서양과는 다른 문화적, 정치적 환경 속에서 문제를 해결할 필요가 있었고, 그 과정에서 중국 문헌을 참고하여 독자적인 기술을 응용하고 발전시킨 것은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특히 동아시아 문명권에서는 서양처럼 “새로운 발명”을 통해서가 아니라 전통적인 지식과 기술을 참고해 발전시키는 방식이 흔했습니다. 이를 두고 무조건 “서양보다 늦었다”고 폄하하기보다는, 해당 시대와 문화적 배경에서 기술의 발전이 이루어진 맥락을 이해하는 것이 과학사에서 중요한 평가 방법입니다.
과학 기술의 우위를 판단하는 데 있어 “누가 먼저 개발했는가”는 중요한 기준이 될 수 있지만, 그것이 유일한 기준이 될 수는 없습니다. 과학 기술의 발전은 어느 한 문명에 국한되지 않고,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이루어졌습니다. 조선의 거중기와 녹로는 당대 조선의 실질적인 문제, 즉 성을 축조하는 데 있어 필요한 기술적 요구를 충족하는 효율적인 장비였고, 이는 조선의 기술이 현장의 요구에 맞춰 실용적 성과를 거두었다는 점에서 충분히 자랑할 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이러한 서양과의 단순 비교와 우열을 매기려는 사고는 사실 우리나라 교육 시스템이 낳은 결과일 수 있습니다. 현재 우리나라의 주입식 교육은 비판적 사고보다는 단순한 지식 축적에 중점을 둔 경향이 강하며, 학생들은 질문하고 비판하기보다는 주어진 정보를 단순히 외우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하게 됩니다. 이는 과학적 성과를 평가할 때 “누가 먼저 했는가”와 같은 단순한 순위에 의존하는 경향으로 이어질 수 있으며, 본질적이고 맥락적인 이해보다는 표면적인 지표에만 집중하게 만드는 한계가 있습니다. 이러한 점에서 과학적 사고는 타국과의 경쟁보다는 창의적 응용과 문제 해결 능력에 초점을 맞춰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과학의 본질을 이해하는 관점에서는 단순히 서양보다 늦게 개발되었다는 이유만으로 과소평가하는 것은 부적절합니다. 과학과 기술의 발전은 반드시 그 시기와 문화적 배경을 함께 고려하여 평가해야 하며, 정약용의 성과는 그러한 측면에서 오히려 높게 평가될 필요가 있습니다. 누가 먼저, 누가 더 빨리라는 등수로 가치를 결정짓기보다는, 보편적으로 중요한 가치를 이해하고 존중하는 사고가 더 필요합니다.(경남에서 아이들 지도하는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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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타까운게.. 이미 로마시대때 로마인들은 기중기로 건물지엇답니다.. 우리는 조선후기에 만든거죠.. 그전에는 죄다 인력으로만 했구요.. 참고로.. 대동여지도 만든시기에 영국은 최초의 지하철 개통했답니다.. 조선 순조때이지요..
기중기는 우리도 기원전부터 있었음
그리고 기중기와 거중기는 다른거다
웰메이드 포크레인이네..
거중기를 든다음엔 뭘 하는건가요??
돌밑을 올려다 볼듯? 아니면 사형수를 압사시킬때 쓰거나? 그외엔 그닥 쓸모없을듯
저게 용도가 뭐임 대체??
제자리에서 올렸다 내렸다 하는게 끝이지않나
덜떨어진소리좀 안했으면 좋겠음
어휴시발 진짜ㅋㅋㅋㅋㅋ
@@ifeelthat5879 ?? 설명을 해보시지
@@임은석-l4m 무조건 기여했다고 믿는것이 덜떨어진것임 짧은구간의 상하운동 만으로는 축조에 기여가 미비함
@@masonnam7121 짧은구간의 상하운동이 수만번이 된다면? 그 수만번을 저거없이 맨손으로 사람인력으로 했다면? 단순 한가지생각말고 전체적 과정을 보셈
지식은 발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을 활용해 발명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애초에 성리학이 중국인들의 패배의식에서 태어난 자급자족 안빈낙도 정신승리학문이기에 그 사회풍조에서 저정도 지식의 활용을 한다는 것은 가히 선재라 해도 과함이 없는 것입니다.
안내직원: 화성은 거중기로 만들었어요^^
외국인: 석기시대때 만든 성인가요?? 피라미드랑 같은시대???
안내직원:조선중기요 ㅜㅜ
외국인:... sorry.
동양의 건축기술이 서구보다 발전하지못했는데 그걸보고 어쩌라는거
@@no-bs3km 그니까 무슨 찬란한 조상의 지혜 이딴얘기 하지말라곸ㅋㅋ 쪽팔리니까
거중기가 만들어진 1972년도에는 서양에서 프랑스 대혁명이 일어났던 시기다.
과연 실지로 썼을까? 힘으로 해결했지. 아무리 봐도 저걸 설치하는게 불가능한데 4명이 들어올리면 충분히 들수 있는데 번거롭게 왜 쓸까?
나무로 만들면 쉽게 박살나고 사람이 죽었을땐데 저거 왜 씀? 바보임.
무쇠로 개조했으면 몰라도 딱 봐도 상상속에서나 가능한거지. 저거 실지로 썼으면 사람들 죽어나갔을땐데
시연은 왜 못함? 나무가 바위를 들어올릴거 같냐. 나무 하나 박살나면 차라리 힘으로 하는게 낫지.
기원전 35세기 문명이 막 발돋움하던시기. 메소포타미아에서 크레인 발명. 거중기는 돌을 수레에 위에 올리는게 끝. 크레인은 현장에서 돌을 들어서 올릴 수 있음. 부끄러운 역사현장.
고려시대 세계최초의 금속활자 글라이더 미사일 만들면 뭐합니까. 조선시대와서 더 낙후됬는데. 유일하게 농업기술만 발달
그 당시 동양 건축기술이 그만큼 열등했다는거
그러고 보니깐 아시아 건축기술이 서양에 많이 딸리긴하네.... 서양은 이미 옛날에 다한거 배우는 학생들은 저런거 그냥 대충 흘려듣고 서양건축역사에 대해서 자세히 공부하는게 더 이득입니다. 현실은 인정 하자구요
확실히 과학적인 기술분야는 유럽앞선 부분도 많네요
ㅋㅋㅋ대충흘려들으래ㅋㅋㅋ어휴 니가 그러고도 배움을 원하는 학생이냐?
@@TV-er5jl 유럽이 모든부분에서 앞섰지 ㅋㅋㅋㅋ 조선이 유럽보다 앞선게 있긴 함?
?
근데 밧줄이 어떻게 버티지?
뭔...
헬조선. 조상들 직무유기 거중기도 서양거 중국책보고 만듬.ㅋㅋㅋ
ㄹㅇ ㅋㅋ 다산 정약용이 정조가 중국에서 들여온《기기도설(奇器圖說)》 을 참고하여 고안한 기계이다
조선시대보다 과학기술력과 수준이 하락하고 춤추고 노래 부르는데에만 열중하다보니 한국의 수준이 급격히 하락하는 안타까운 현상이 발생한것이다 그러니 제대로 된 거북선을 만들지 못하는 이유이다
양반과 상놈의 구분을 명확하게 하여 양반은 공부와 유흥(그래야 기생이 먹고산다) 에 집중하고 상놈들은 생산에 집중한다면 가장 효율적인 사회체제로 전환되게 될것이다
뽕꾸루들이 뽕꾸루를 채용하고 인재가 많은 국가라며 자평하고 다니는 멍청한 국가가 되었다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한다
머리 좋은 사람들이 의대로 가서 의술은 많이 발전 한듯요 ㅎㅎ 기초과학은 대접을 안해주니 발전이 늦겟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