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로 :전라북도 전주시 덕진구 잊혀져가는 역사와 추억 그때, 그 시절 그대로 '그대로'는 옛것의 있는 그대로를 녹여서 만들었다는 의미의 브랜드 네임 획을 하나 추가해 '그때로'로 표현하여 옛날 그 시절 그때로 돌아가본다는 의미를 가지고 브랜딩 과거의 금암동의 모습과 현재의 금암동의 모습을 담고 현재의 문제점을 다뤄보았습니다.
영상 감사합니다. 어렸을적 '육지구'라고 해서 전주에서 큰 동네 였는데.... 금암아파트 살면서 금암초(저는 마지막 국졸) 전라중(야구장 담벼락 옆 구건물) 전주고 졸업하고 타지에서 오래 살다보니 고향에 대한 생각이 잊혀져 가고 있는데 영상을 보니 추억에 잠기게 되면서도 달라진 지역 모습을 보니 먼가 섭섭함도 느껴지네요.
금암국민학교(당시)로 전학 와서 대학 졸업후 서울로 취업하기 까지 20년 동안 금암동에서 살았습니다. 부모님은 지금도 거기 사시고요. 예전에는 공터와 밭이 참 많았죠. 금암국민학교 앞은 아이들이 많아서 언제나 시끌벅적 했는데 지금은 너무 조용하고 쓸쓸한 느낌이 들어서 아쉽습니다. 금암2동의 염약국은 40년도 넘은 지금도 여전히 그 자리에 있네요. 제가 꼬마였을때 피부병 때문에 연고를 샀던 기억이 있습니다.
금암동에서 태어나 20년 살았었는데 지금은 전부 원룸으로 바뀌고 옛 흔적은 조금밖에 안 남아있네요..금암초 정문,후문에 문구점만 10개 넘게 있어서 점심시간,하교시간에 친구들과 간식사먹느라 왁자지껄했던 모습도 떠오릅니다.
맞습니다! 문구점 수가 그 학교의 규모를 보여주던...
맞아요 문구점 많았었는데 다 사라지고 퀵서비스 사무실만 많더군요. 안타까워요.
금암초 졸업생인데 학교정문 바로앞 정문노트사 생각나네요.
와 익숙한동네 나오니 반갑네요 좋은 영상 감사합니다
영상 감사합니다. 어렸을적 '육지구'라고 해서 전주에서 큰 동네 였는데.... 금암아파트 살면서 금암초(저는 마지막 국졸) 전라중(야구장 담벼락 옆 구건물) 전주고 졸업하고 타지에서 오래 살다보니 고향에 대한 생각이 잊혀져 가고 있는데 영상을 보니 추억에 잠기게 되면서도 달라진 지역 모습을 보니 먼가 섭섭함도 느껴지네요.
헐 저도 금암아파트 13동에 살았고 금암국민학교 다녔는데..저희땐 12반까지 있었어요.그때가 그립네요..
안녕하세요 전주시 시민인데 정말 잘봤습니다 영상많이 올려주세요
저기서 유치원 초등학교 다녔죠. 다른 건 다 잊어도 금암동 시절만은 못잊습니다.
금암국민학교(금암 초등학교) 전교어린이회장 출신입니다 진짜 어린시절 보내던 동네로 추억이 있는 동네인데 요즘 가보면 많이 바껴서 어리둥절 하더라고요 ㅋㅋ
우리 다닐 때 금암초등학교는 급식시범학교이기도 하고 엄청 큰 규모의 학교였었는데 격세지감이네요
금암국민학교(당시)로 전학 와서 대학 졸업후 서울로 취업하기 까지 20년 동안 금암동에서 살았습니다. 부모님은 지금도 거기 사시고요.
예전에는 공터와 밭이 참 많았죠.
금암국민학교 앞은 아이들이 많아서 언제나 시끌벅적 했는데 지금은 너무 조용하고 쓸쓸한 느낌이 들어서 아쉽습니다.
금암2동의 염약국은 40년도 넘은 지금도 여전히 그 자리에 있네요. 제가 꼬마였을때 피부병 때문에 연고를 샀던 기억이 있습니다.
금암초 86~91년까지 다녔네요. 6학년때는 한반에 50명씩 13반까지 있을정도로 활기가 넘쳤는데 이젠 추억이 되었군요. 그래도 초등학교 모임은 종종한답니다 ㅎㅎㅎ
78? 동갑이라 반갑네요. 저는 인후동, 동초-동중.. 나왔네요. 구도심 낙후되어서 전주 한번 씩 내려가면 참 마음이 안좋습니다.
@@super0319 저는 빠른80입니다. 저 동중나왔는데.. 선배님이시네요 ㅎㅎ
@@haejun_2 제 동생이랑 동기동창에 동갑(빠른 80)이군요. 수소문하면 서로 아는 사이일지도 모르겠네요.
저는 인후동과 우아동에서 살았습니다 전주MBC 뒤에 도서관 자주 갔었고 로타리 생각나네요 시외버스터미널도 금암동에 있었던거 같애요 아버지가 전주법원에서 근무해서 그 쪽도 많이 갔었고 야구경기장과 전북대 쪽도 많이 갔었죠 많이 그립네요
반가워요 전 금암2동 진밭다리 근처에서 25년 살았네요 지금은 경남에 살지만 항상 그리워요 우리동네ㅎ
구독하고 갑니다
전주토박이로써 안할수가 없더군요 감솨
정말 그립네요
전주는 시외버스 터미널부터 어떻게 해야암.... 전주 놀러온 사람들이 터미널보고 깜짝놀람...
금암국민학교 반갑네요.저는 6학년 13반!!그 당시에는 15반까지 한반에 60명정도씩 있어서 정말 큰 학교 였어요.육지구 슈퍼~지하에 있었는데 소풍때마다 과자사고 금암아파트 놀이터와 골목 사이사이..급 친구들 보고 싶네요 ㅠㅠㅠ
안타깝지만 전주는 시간이 흘러도 발전 어렵습니다
여기서 태어나 42년 살고있지만
가장 큰 문제는 젊은사람들이
먹고 살게 없습니다
기업유치가 되면 모를까
사실 이젠 기대도 안하게됩니다
먹고살게되야 살기도 편한 동네이고 지역입니다
참 먹고살기엔 팍팍한 지역이죠
그러네요 어쩌다 금암동이 원룸촌이 되버렸을까요 문구점도 많고 학원도 많고 그랬던 곳인데
아중리 우아동 평화동 효자동 삼천동 송천동 쪽만 지금 그나마 알아주니 금암동은 좀 늦혀지죠..
금암초 나오네요. 너무 반갑습니다. 제가 다닐 때만 해도 보통 한 학년에 보통 10반까지 있었는데 말이죠. 일기장도 7반.. ruclips.net/video/_Qb4mqZVCnI/видео.html 전주 금암동을 이렇게 담아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전주시 더 발전되야 해요..
우리때 금암국민 학년마다 16반 18반 반은 60명 70명 이랬는데? 인구. 그 당시가 가장 많은듯.
1990년 대성상가 미용학원
거북바위도 보이고....옛날 생각 나네요
대성상회 꼬마 생각나네 금암상가
여전히 있는 염약국…
젊은이들살기에는 노
금암국민학교 졸업했습니다.
전주의 민낯이지. 정말 시골이다.
난금암초학생인데
옛날 금암고가 아직 철거가 안되서 흉물 그 자체임
금암고가 양아치 집합소였지
사건도 많았고
옆에 대성학원 다녔는데, 금암고 처음보고 소년원인줄 알았어요
@@날아라거북선-t6e 그게 몇년도 입니까?
@@dotori302 90년대 후반이었는데 뭐하는데인지 궁금해서 앞에서 기웃거리니까 직원이 부르시더니 학생여기서 뭐하냐면서 여기도 똑같은 학교라고 약간 불쾌해하더군요.
응 종합경기장은 공원안생겨
직행 시외 터미널이사가야 한다. 전주처럼 낡고 구린 터미널 없다. 변화가 없는 전주. 이 말은 발전이 안되있다는 것.
금암국민학교 졸업했습니다.
금암국민학교 졸업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