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이토 히로부미가 사망하지 않았다면 일본은 태평양전쟁을 일으키지 않았을까?(사운드 수정 후 재업로드) 태평양전쟁#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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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Опубликовано: 25 ноя 2024

Комментарии • 299

  • @양승준-q4o
    @양승준-q4o 2 месяца назад +4

    다음 편 언제나와요 ㅠㅠ 영상이 너무 유익하고, 최고에요 ㅠㅠ 얼른 보고싶네요.

  • @성이름-m5p1b
    @성이름-m5p1b 23 дня назад +1

    혹시 스파르타쿠스 마지막편 안만드시는이유가 있나요?? ㅠ

    • @생생역사
      @생생역사  23 дня назад +1

      미안해유~ 사람들이 안봐서ㅠㅠ

  • @jayann.
    @jayann. 2 месяца назад +1

    언제나 흥미로운 영상 감사합니다!

  • @무명-c8w
    @무명-c8w 2 месяца назад +1

    늘 재밌게 봅니다.
    다루시는 주제와 해석이 늘 흥미롭네요~

  • @비비행탱크
    @비비행탱크 Месяц назад +2

    넘 유익한 정보를 이제서야 보다니,,,,

  • @nowbird
    @nowbird 2 месяца назад +41

    영화나 드라마에서는 하얼빈에서 이토 히로부미가 죽을때 안중근을 일본군들이 체포했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러시아군에게 체포됨. 안중근은 러시아에서 재판을 받게 해달라고 요구 하지만 러일전쟁후 러시아와 일본은 관계가 개선이 되어 가던 시기라 러시아는 안중근을 일본으로 넘겨버림.

    • @생생역사
      @생생역사  2 месяца назад +3

      이건 몰랐네요 감사합니다

    • @chriskim2958
      @chriskim2958 2 месяца назад +2

      아무래도 당시 하얼빈은 중국이 아닌 러시아 영토였으니 러시아군이 체포했겠죠

    • @박용택-z9j
      @박용택-z9j 2 месяца назад +4

      @@nowbird 누굴 죽이든 해당 영토를 갖고 있는 나라의 군대가 나서는게 맞죠 팩트대로 러시아군이 체포하는걸 보여주면 미디어의 의도인 반일선동효과가 떨어져서 그런겁니다

    • @몸살앙
      @몸살앙 2 месяца назад

      러시아가 러일 져서그래요 그리고 양국이 화해분위기데

    • @ignisilluminati
      @ignisilluminati 2 месяца назад

      화해를 떠나서 애초에 교전도 아니고 요인 암살이라 러시아 입장에선 안 돌려주면 자기들까지 야만국가로 찍힐 판이었음. 원래 유럽은 전쟁해도 귀족, 지휘관급은 서로 안 죽였잖어

  • @scra9602
    @scra9602 2 месяца назад +1

    혹시 이토사진을 미소를 띠게 편집은 어떤프로그램 쓰셨는지 좀 알려주실수 있으세요?

  • @skyjacket10
    @skyjacket10 Месяц назад

    좋은 영상, 잘 보고 있습니다^^. 정성들인 영상에 제가 감히 건의하고 싶은 옥의 티라고 할 수 있는 자막 오류 등이 있는데요, 야마가타 아리토모의 출생-사망일은 1838년~1922년으로 이토보다 3살 위입니다. 그리고 그의 출신지는 '쵸슈'라는 발음보다 '죠-슈'라고 발음하는 것이 정확합니다. 항상 흥미있는 영상을 올려주셔서 감사드립니다.

    • @생생역사
      @생생역사  Месяц назад +1

      좋은 의견 너무 감사드립니다. 죄대한 반영하겠습니다. 다만 '초슈'의 경우 여러영상에서 같은 발음으로 제작되어온바, 향후 영상도 같은 발음을 유지할 수밖에 없음을 말씀드립니다. 앞으로도 지적사항이 발견되면 허심탄회하게 말씀해주시면 감사드리겠습니다.^^

  • @박용택-z9j
    @박용택-z9j 2 месяца назад +40

    이토는 가급적이면 세계열강은 자극하지 않는 방향으로 가려했죠 우리나라가 독립하는데는 이토가 죽고 일본군부가 더 개막장 행보를 보인게 더 도움이 됐음은 분명합니다

    • @쇳치
      @쇳치 2 месяца назад +4

      예전 어느 일본 교수도 비슷한 말 한적잇어음 오히려 조선말살 극단주의자는 따로 잇어다고

    • @user-ri2vp7qt7f
      @user-ri2vp7qt7f 2 месяца назад +2

      맞아요 안중근의사는 죽일 놈이 따로 있았던 겁니다. 오히려 이토오 히로부미가 죽지 않았다면 오히려 합병이 안 되었을 지도 모릅니다. 그게 조선을 더 발전 시키지는 못했을지도 모르지만요.

    • @쇳치
      @쇳치 2 месяца назад

      @@user-ri2vp7qt7f 어느 일본인 이토 보단 야마가타 아리토모나 가쓰라 다로를 죽엿음 더 효과적 이엇을거. ㅋ ㅋ

    • @혁신-s5y
      @혁신-s5y 2 месяца назад

      이토가 그러던 말던 일본의 진정한 힘은 군에서 나왔음
      다만 군이라는 존재가 시민들 입장에서는 덜 친숙하니 얼굴 마담겸 육군과 해군의 갈등 상황에서 중재자가 천왕이였고
      이토의 실질적인 권력 서열은 상당히 낮았음
      중일 전쟁이 일어난 이유도 몇몇 꼴통 장군들이(무다구치랜냐, 그의 상관 마 뭐시기 있음) 러일 전쟁에서 육군은 힘을 못 쓴걸 의식 했는지 육군이 전투를 하길 원했음 결국 루거우 차우 사건으로 중일 전쟁이 시작 되었고
      미국의 금수 조치로 석유가 막히자 일본 해군 입장에서는 기름이 가장 필요한 해군의 입지 축소 등등을 생각해 진주만 공습을 한거지.

    • @혁신-s5y
      @혁신-s5y 2 месяца назад

      당시 일본 ㄹㅇ 천왕도 실질적으로 시민들 얼굴 마담겸 육군과 해군의 중재자 위치였고 일본 의회나 일본 내각은 힘이 없었음 군에 반하는 생각을 지닌 인물은 군부가 의회를 총칼로 물갈이 해버려서
      이토는 권력 서열이 높지 았았고
      실질적 권력이 높은 장군들중에 무다구치랜냐, 그이상관 마 뭐시기 있음 이둘은 루구오차오 사건 벌리고
      육군은 이사건이 자신들의 실수 인게 알려지면 해군의 한테 쪽팔리니깐 그냥 중일 전쟁을 벌림 미국의 금수조치로 기름이 부족하자 기름이 가장 필요한 해군은 미국을 치기로 마음 먹은거고.

  • @준탕-q8s
    @준탕-q8s 2 месяца назад +7

    그냥 우리와 일본은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 같은 관계가 되었을듯요.

  • @Smile_loop
    @Smile_loop 2 месяца назад +5

    이토가 살아 태평양 전쟁이 없었다면 한국의 독립 가능성도 낮았을 거고, 아마 세계사의 흐름을 따라서 일본, 중국, 한국을 엮은 미국같은 연방제가 되지 않았을까 싶음.
    아마 60년대 까진 이등시민으로 살다 점점 권리가 보장되고, 연방 시민으로 살아갔을 듯.

  • @바람돌이-e9d
    @바람돌이-e9d 2 месяца назад +3

    유익하고 재밌는 영상 기다렸다구요~

  • @whiteheadalfrednorth276
    @whiteheadalfrednorth276 2 месяца назад

    정말 알고 싶었던 내용을 다뤄주시네 ㄷㄷ

  • @csyun8694
    @csyun8694 2 месяца назад +5

    이토는 내각총 책임자이면서 외교적으로도 중요한 인물이었음 우리나라에서 제거대상 1호였다는건 그만큼 중요한 인물이었다는거지 이토가 있어서 무혈로 조선을 먹을수있었던거지 군부세력들만 있었으면 조선을 외교적으로 고립시킬머리도 친일파들 앞세워 내부에서부터 무너지게할 머리도 없었다. 결론적으로 이토가 살아있었다면 2차대전에서 독일과 동맹을 맺을 바보짓은 안했겠지

  • @정장군-s1q
    @정장군-s1q 2 месяца назад

    이토 히로부미랑 도조 히데키랑 누가더높은지위였나여?

    • @홍정주-l3d
      @홍정주-l3d 2 месяца назад

      근대 일본은 오쿠보 도시미치에서 이토로 이어지면서 확립된거라 도조는 이토랑 비교꺼리가 안됩니다 이토는 야마가타보다도 더 높은 순위에요

    • @정장군-s1q
      @정장군-s1q 2 месяца назад

      @@홍정주-l3d 그러면 저당시 천황바로아래가 이토라고생각하면되는건가여?

  • @youthpoem27
    @youthpoem27 2 месяца назад +22

    이토가 수양딸(배정자)도 그렇고 한반도에 일종의 애착을 둔 것은 사실이지만 결국 목적은 일본의 이웃국이 아닌 하위 복속관계를 목적으로 한 것은 군부와 별다르지 않았다고 봅니다. 부드럽게 삼키느냐 강하게 씹느냐의 차이일 뿐 한반도를 복속화 하려는 마음은 똑같았다고 봅니다.

    • @성이름-c4e9x
      @성이름-c4e9x 2 месяца назад

      이토가 살아있었다면 한국은 만주국 같은 괴뢰국가 되었겠지요. 한반도를 직접 삼키지는 않았을것입니다. 군사권과 외교권은 박탈당하여 자주성은 침해했었겠지만, 내정은 한국인이 통치했었을것입니다. 1920년대 문화통치기보다는 더 유리한 상황에서 간접 지배당했을것이고, 태평양전쟁때 참전댓가로 보장받았을 자치령을 1910년대부터 받았을것입니다. 안중근의 이토 사살은 안중근의 애국심을 보여주는것이기도 하지만, 그만큼 안중근의 국제감각이 떨어지는 것을 방증하기도 합니다.

    • @테스트-y3q
      @테스트-y3q 2 месяца назад

      결국 우리가 먹히는건 동일한거죠.
      하지만 그것에 대해 아무런 대응책이 없었던 것도 현실이고요.
      이ㅅ만 대통령은 카쓰라-테프트 밀약(1905.07.29)을 알게 된 것도
      밀약의 당사자인 미국 27대 대통령(1909.03.04 ~ 1913.03.04) 윌리엄 하워드 테프트가
      임기가 끝나가고 시어도어와 테프트가 알력다툼을 하던 1912년 즈음에 눈치채게 됩니다.

    • @홍정주-l3d
      @홍정주-l3d 2 месяца назад

      하위복속인데 창시개명 허가와 내선동조론은 왜 주장했을까요 !

    • @tubenoonting
      @tubenoonting 29 дней назад

      @@홍정주-l3d 태평양 전쟁에서 미국한테 처맞으면서 잔뜩 죽어나가니 인력 필요해서 시작된 거지, 처음부터 내선일체였으면 왜 일제 말에서야 그걸 추진했을까요? 그리고 언제부터 우리가 창씨개명과 조선어 금지를 혜택으로 여겨왔죠? 참 나.

  • @성이름-m6t4j
    @성이름-m6t4j 2 месяца назад +5

    이토가 살았다면 육군부세력를 어느 정도 견제는 하고.
    해군부는 이토파라서 아예 대미개전을 안했겠고 . 조선은 오헝이중제국모델이 유력했고. 만주는 오헝제국 발칸령비슷하고.. 군부하고 타협해서 대미개전은 불허하고 석유자원 보르네오한정 대영국 제한특수군사작전 정도로 절충 했겠지 .

    • @혁신-s5y
      @혁신-s5y 2 месяца назад

      중일 전쟁 전부터 gdp에 15프로 이상을 군비에 사용하고 실질적인 지휘부가 군부이다 보니
      일본 시민들의 의견을 묵살했음
      거기다가 일본 해군은 이미 러일 전쟁으로 엄청난 승리를 해서 엄청난 예산을 얻었고
      미국해군에 주력함 톤수 60프로 까지 보유가 가능해서 미친듯한 거함들을 뽑는데 육군은 해군에 입지가 밀리는 것을 우려해서 무다구치 랜냐가 노구교 사건을 이르키는등 중일전쟁 확산
      미국의 일본 금수조치 해군이 굴러갈 기름이 없으니 해군은 나름대로 미국을 칠 계획을 했을거임
      즉 서로 경쟁시키니 한쪽이 잘나가는걸 못보니 공을 세우려고 팽창하면 미국이 견제를 하니 미국과의 전면전은 피할수 없었음.

  • @RabbitInsane-mb1xg
    @RabbitInsane-mb1xg 2 месяца назад +6

    가장큰 변수는 과연 이토가 조선,대만만 확보하는선에서 끝냈을까인데.
    당시 나날이 발전하는 일본의 산업력으로 볼때 동남아자원은 필수 불가결
    이었기에 이토도 어떤식으로 동남아에 욕심을 냈을거고, 이는 앞에서 활동
    하는 군부에 힘이 실릴수밖에 업기에 이토도 군부를 제대로 통제할거라
    보기는 힘듦.

    • @혁신-s5y
      @혁신-s5y 2 месяца назад

      어차피 멍청한 장군들은 전쟁을 이르키려 했음 gdp에 30프로 이상을 군비에 쓰면서 전쟁을 안 이르키면 국민들로 부터 반발이 있음

    • @혁신-s5y
      @혁신-s5y 2 месяца назад +5

      애초에 gdp에 20프로를 쓰면서 육군과 해군이 예상 쟁취 신경전을 벌이면서 민간 경제는 망가젔음
      애초에 민강 경제로는 서방과 비비지를 못 하니 점점 위기를 고조 시키며 국방력이라도 서방을 뛰어 넘으려고 주변국에 대한 확장을 이어나감
      문제는 여기에 있음

    • @ignisilluminati
      @ignisilluminati 2 месяца назад +1

      일본이 중국이랑 전쟁만 안 했으면 동남아 자원은 무역으로 충분히 확보할 수 있었음. 그 중국과의 전쟁은 사실 할 필요가 없는 전쟁이었고. 일본 중앙 정계에 정상적인 실력자가 있었다면 만주사변 때 책임자들 싹 다 소환해서 처벌했을 거고 그 상태에서 물러나는 제스쳐 보였으면 미국 금수조치도 없었을 테니..

    • @koreajapangood0000
      @koreajapangood0000 2 месяца назад +1

      @@혁신-s5y약간 저거 1960년대의 한국느낌인듯

    • @테스트-y3q
      @테스트-y3q 2 месяца назад

      @@koreajapangood0000 1960년대에는 아무것도 없는 상황에서...
      부녀자들 머리카락 까지 잘라서 가발 만들어 팔던 대한민국이 무슨 의미로 60년대를??
      오히려 1971년 키신저/닉슨이 핑퐁외교로 시작한 미중밀월 정책과 일중수교 때문에
      외교적 고립 상태에서 지정학적으로 살아남으려고 유신선포한 것이 비슷할 수는 있지만
      일본의 경우에는 자국의 군사력을 제어 못해서 생긴거고 한국의 70년대는 외교적 고립 상태에서
      국가 존립 문제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선포된 유신인데? 이게 같을 수가 있음?

  • @마우저
    @마우저 2 месяца назад +4

    오늘 영상도 재밌음

  • @drafj6412
    @drafj6412 2 месяца назад +2

    이토가 죽을때가 1909년이고 이미 70살 가까이 됐었으니 총살이 아니더라도 당시 수명으론 죽을나이 였음
    태평양전쟁은 1941년이니까 정치적 영향력으로 그때까지 전쟁의 유무가 결정되진 않았을듯 함

  • @모카빵좋아
    @모카빵좋아 2 месяца назад +5

    이토가 기병대 출신 관료라는 타이틀 때문에 군부를 누를수 있는 유일한 인물이였음. 10년만 더 살았으면 이토 후임 관료들도 힘 가지고 외교.행정적으로 통치했을거임. 그럼 독립은 영원히 못하는거

    • @테스트-y3q
      @테스트-y3q 2 месяца назад +2

      인정.... 이토 였다면 상황이 많이 달라졌을 테니까요.

    • @홍정주-l3d
      @홍정주-l3d 2 месяца назад +1

      맞습니다 일본육군의 교황이라는 야마가타 아리토모도 이토 앞에서는 기를 못폈지요 다카스기 신사쿠가 기헤이타이를 이끌고 반란을.일으키려고 할때 이토는 바로 동참했고 야마가타는 거부하다 후에 합류했으니까요.이토가 살아있는한 죠수번이 잡고있었던 일본육군은 함부로 날뛰지 못했을 겁니다

  • @djkim8531
    @djkim8531 2 месяца назад +3

    오키나와가 현실판 2009로스트 메모리즈인가?

  • @jonsnow459
    @jonsnow459 2 месяца назад +1

    여기 나오는 영화이름좀 알려주실 잘생긴분?

  • @레몬맛있다-j3r
    @레몬맛있다-j3r 2 месяца назад +2

    1841년 생 이라 1920~30년 사이 자연사 했겠죠.

    • @테스트-y3q
      @테스트-y3q 2 месяца назад +1

      그정도면 자연사 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토가 길러놓은 행정 관료들이 정착하면서 일본이 안정화 되었을 것입니다.
      불행하게도 이토가 제거되고 난 이후에 일본 제국군은 툭하면 행정관료를 없애 버렸죠.

    • @홍정주-l3d
      @홍정주-l3d 2 месяца назад

      ⁠@@테스트-y3q같은 생각입니다 유신에서 야마가타보다 더 높은 순위였던 이토가 없어진 이상 행정관료들이 조슈 중심의 일본육군을 제어할 동력은 영영 사라진 것으로 봐야겠죠

  • @joshuakim5505
    @joshuakim5505 2 месяца назад

    로스트 메머리즈 초딩때 봤지만 흥미로웠음

  • @드릴말-b5m
    @드릴말-b5m 2 месяца назад

    늦춰졌을 수도는 있다고보는데. 모든 식민지. 모든 전쟁은 파고들면 돈때문이라 일어는 났을듯합니다. 그때는 무조건 싼 노동력, 물건을 팔아제낄 식민지가 필요하기때문에 ...다만 온건파인 이토 때문에 미국을 건들지 않았을꺼고 우리나라도 해방되지못한채 세대가 거치면서 흡수되었을듯합니다. 독립운동가들의 희생은 있었지만 결국 독립은 일본의 진주만공습>>핵두>>항복+이승만의 꾸준한어필이 컸으니까요.

  • @유건희-d4q
    @유건희-d4q 2 месяца назад +2

    이토 히로부미가 살았어도 세계대전을 벌어졌을 거라고 봄 어차피 당시 수명이 60대를 넘기가 힘들었던 시절이기도 하고 일본이 세계대전을 일으킨건 총리에게 군통수권을 확실히 주지 않고 군대가 지멋대로 논게 가장 근본적인 원인이라고 봄 그렇다고 군대가 천황의 말을 듣는거도 아니었음 분명히 천황과 총리는 태평양전쟁에 반대했음 어차피 달라지는건 없었을거임

    • @유건희-d4q
      @유건희-d4q 2 месяца назад

      @@테스트-l4s 한국에게는 행운이었죠

  • @잭팟-l3v
    @잭팟-l3v 2 месяца назад +1

    확실한건 당시 조선이라는 나라는 일본이 아니더라도 어떤식으로든 외세의 식민지로 전락하고도 남았음... 청나라,러시아든 당시 조선을 도와주겠다고 했던 나라들 대부분 최종목표는 조선의 식민지화 였음 거기서 승리한게 일본 이었을뿐이고.. 만약 청일전쟁,러일전쟁에서 청나라와 러시아가 승리했다고 과정하면 그 두국가가 순순히 한반도에서 물러났을까??

    • @생생역사
      @생생역사  2 месяца назад

      내용 잘못 이해하신것 같은데?

    • @tubenoonting
      @tubenoonting Месяц назад

      그랬다 해도 우리가 식민통치에 정당성 부여할 이유는 1도 없음. 그런식으로 식민지가 자주성 없이 그저 제국에 굴종할 뿐이라면 제국주의 식민무역이 끝날 일도 없지. 식민무역이 종말을 맞는 건 결국 제국들의 체급이 식민지를 유지하기엔 날이 갈수록 가성비가 나빠지기 때문. 식민지인들도 같은 인간이기에 제국의 선진 근대화를 받아들이며 배우다가, 차별을 자각하면서는 거의 다 독립/저항운동을 벌이기 시작해 가성비가 나빠짐. 일본이 우리보다 체급이 좋다고 해 봤자, 일본 제국 경영 면에서도 조선은 열강 티켓용, 만주로 가는 길목의 의미였지, 식민경제적 가치로서는 매우 가성비가 나쁜 식민지였음. 식민지가 문명수준 격차가 커서 풍부한 원료를 헐값에 뜯기고, 제국의 공산품을 비싸게 사줘야 하는데, 조선은 문명수준 차이가 유럽 대 아프리카 남미 원주민, 태평양 제도의 석기문명에 비하면 일본과는 큰 차이가 안나서, 금새 토착자본들이 산업을 따라하기 시작하는 데다, 삥 뜯을 자원도 그닥인 이래저래 가성비 나쁜 식민지임. 일본이 식민경제로 꿀을 빨기 시작하는 건 만주를 얻으면서 부터임. 러시아에게 나라를 뺏겼다? 그럼 러시아에게 저항하는 거지.

  • @하라가헷타
    @하라가헷타 2 месяца назад

    5:15 무로마치 막부는 아시카가 가문에 의해 세워진 걸로 아는데 제가 잘못 아는 건가요

    • @생생역사
      @생생역사  2 месяца назад +1

      놓쳤습니다 용서해주십시요

    • @하라가헷타
      @하라가헷타 2 месяца назад +1

      ​@@생생역사???: 안돼 안 바꿔줘 돌아가

  • @안강현-u2e
    @안강현-u2e 2 месяца назад

    6:15 야마가타 아리토모가 죽은 연월일이 이상하네요. 야마가타 아리토모는 1922년 2월 1일에 죽은 걸로 알고 있습니다. 확인 부탁드립니다.

    • @생생역사
      @생생역사  2 месяца назад

      실수가 있었습니다 블러처리하겠습니다

  • @David-v6z8e
    @David-v6z8e 2 месяца назад +5

    이토가 쓴 대일본제국 헌법에 덴노가 정치 군사 경제의 국가 통수권을 갖는다. 는 내용 대한제국 헌법에
    대한제국 황제가 국가 전 통수권을
    갖는다는 내용하고 비슷하네요..

    • @테스트-y3q
      @테스트-y3q 2 месяца назад +1

      그렇게 해 주어도 여흥민씨 세도정치를 막지 못했죠.
      역시나 조선은 망했어야 할 국가였습니다.
      그때 우리 민족이 스스로 일어나서 조선을 멸망시키고 국민국가를 건설했다면 오늘날 이런 혼란은 없었을 터인데....
      우리 민족은 그럴만한 세력과 힘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 @tubenoonting
      @tubenoonting Месяц назад

      @@테스트-y3q 조선왕조가 유교 중앙집권 하나는 기막히게 다져놔서 체제전복의 가장 큰 에너지였던 동학운동 조차도 왕조를 바로세운다는 이념에서 벗어나질 못했죠. 중세식 봉건제에 사병들이 건재했던 일본이 체제전복이 가능했구요. 문제는 엘리트 혁명의 한계 탓에 정치 근대화는 못 이뤄 낸 것이 지금의 정치후진으로 이어지지만요.

  • @nowbird
    @nowbird 2 месяца назад +2

    항상 유익하고 재밌네요.

  • @eowhdry1
    @eowhdry1 2 месяца назад

    1909년 시점에서 이미 일흔이였는데 글쎄요 또 모르겠네요

  • @timothycheon
    @timothycheon 2 месяца назад +10

    이토히로부미는 정한론 반대론자였고, 조선의 직접통치보다는 명나라나 청나라처럼 조선의 간접통치 만으로 일본의 안보를 지키는 측면에서 조선을 통치하자고 했던 것으로 압니다. 왜냐하면 직접통치는 일본이 부담해야 할 비용이 너무 크다고 이토는 판단했다고 들었습니다. 그런데 정한론자들의 직접통치 주장이 너무 거쎄다 보니 이토도 어쩔수가 없었다고 들었습니다. 정설인지는 알수없지만 그래서 안중근이 이토를 죽이자 일본내 정한론자들이 좋아했다는 이야기를 들은적이 있습니다.

    • @테스트-y3q
      @테스트-y3q 2 месяца назад +2

      일본 정한론자들이 절대 다수를 차지한 상황에서 이토는 그럴 필요가 없다며
      자신이 조선의 내정개혁을 통하여 조선이 변화되는 것을 입증하겠다고 통감을 자처하였습니다.
      실제로 이토가 조선 통감으로 재직 시절(1906.03.31 ~ 1909.07.06) 조선에 많은 내정 개혁이 이뤄 졌습니다.

    • @테스트-y3q
      @테스트-y3q 2 месяца назад

      하지만 통감정치로는 조선의 병폐인 여흥민씨 세도정치를 폐지시키지 못했으며
      무엇보다도 주자학자들이 국민 ㅅㅔ노l를 통해 구축해 놓은 양반 사대부 기득권 체제를 개혁하지 못하였습니다.
      이는 일본 정한론자들이 대한제국 흡수/병합하려는 것에 대해 더이상 반박하지 못할 정도로
      통감정치의 실패를 자인했기 때문에 진행된 결과입니다.

    • @테스트-y3q
      @테스트-y3q 2 месяца назад +1

      조선의 양반 사대부 체제를 너무 과소평가 했기 때문에 그렇게 당할 수 밖에 없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518년간 튼튼한 체제로 운영되던 양반 사대부 체제를 겨우 통감정치로 바꿀 수 있었을까요?
      오늘날에도 한국 사람들은 만나면 가문이 어디고? 군파/공파는 무엇이며? 몇대손이냐? 를 따지고
      양반이네? 아니네? 를 따지는데? 하물며 대한제국 시기에야 더이상 말할 이유가 없지요.

  • @pp-kx6vr
    @pp-kx6vr 2 месяца назад +10

    이토가 그날 죽지 않았더라도 군부에 의해 알아서 죽었을 겁니다.
    그당시 일본이 군부에 반대하면 대낮에 청년장교의 총에 유력 정치인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암살 당하고 하던 시절이라... 이토도 결국 군부의 손을 들어주어 은퇴하거나 암살 당하거나 했을듯...

    • @테스트-y3q
      @테스트-y3q 2 месяца назад

      글쎄요? 이토 역시도 권력이 막강했던 걸로 보입니다.
      정한론자들이 이토에게 찾아와서 제발 대한제국 병합을 허락해 달라고 매달릴 정도였으니까요.
      님의 논리 대로라면은 그냥 제거해 버리면 그만인 이토 였는데요?
      조슈 5인이라는 이름이 당시 일본인들에게는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하고 있어서 쉽게 제거할 상황은 아니었습니다.

    • @jayann.
      @jayann. 2 месяца назад +1

      @@테스트-y3q그때 당시는 이토의 힘이 막강했죠. 근데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군부가 내각의 통제를 받지 않았으니까요. 결국에는 암살당하거나 은퇴했을거라고 저도 생각합니다.

  • @1Masterpiece
    @1Masterpiece 2 месяца назад +7

    이토 히로부미는 조슈번 출신의 하급무사였고, 일본 육군의 근간은 조슈번이었음…일본군의 개삽질은 대부분 육군에서 벌였기 때문에, 이토 히로부미가 통제했다면 사쓰마번의 해군과 사이가 조금 더 원만했을 수도 있겠죠…
    하지만, 탈아입구를 외칠 정도로 공업력과 산업화된 일본이 어딘가 터뜨릴 분출구는 분명히 필요했을 겁니다.
    일본은 분명 한반도를 침략하고 만주로 진출했을 것이며, 해군은 필리핀을 거쳐 인도네시아로 향했을 겁니다.

    • @테스트-y3q
      @테스트-y3q 2 месяца назад

      그게.... 자본주의를 정착시키고 한반도/만주/열도를 잇는 무역체제를 구축했다면 이야기가 달라 졌을 것입니다.
      물론 님의 말대로 조슈번 출신이라 일본 육군을 만든 사람들 중에 하나 였다는 걸 사람들이 망각하는 거 같지만...
      어쨌든 일본이 평화적으로 경제 발전을 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한 것도 사실입니다.

  • @jinshiksung
    @jinshiksung 2 месяца назад +2

    전쟁은 어쩔수 없는 필요에 의해 일어나는거임

    • @jinshiksung
      @jinshiksung 2 месяца назад

      @@테스트-l4s 말로 해서 않될때 전쟁을함

    • @tubenoonting
      @tubenoonting Месяц назад

      하지만 러일전쟁에서 근자감과 정신력이라는 잘못된 교훈을 얻은 일본은 중일전쟁부터 미쳐돌아간게 맞음.

  • @Jefferson-tl2oo
    @Jefferson-tl2oo 2 месяца назад +54

    살아났어도 군부세력이 제꼈을듯.

    • @GrowStoneOnline
      @GrowStoneOnline 2 месяца назад +5

      군부가 어떻게 이토를 제낌

    • @robertsaint6495
      @robertsaint6495 2 месяца назад +5

      이토히로부미는 여색에 환장하는 난봉꾼이였을지언정 국부급 지식인이였음 150년도 전에 영국유학을 다녀온 초엘리트임

    • @hongikhwang2629
      @hongikhwang2629 2 месяца назад

      저당시 일본은 국내물건은 죄다 서구문물 구입으로 국민은 굶어 죽을판이라 주변국 약탈과 자원탈취로 살아난거라서 누가 있던 영토확장과 약탈이 탄력받은 상태임

    • @jaeyunji728
      @jaeyunji728 2 месяца назад +4

      도중에 몇몇 또라이들이 이토를 암살했을지도 모르죠. 실제 2.26 등 대신들 암살당한 게 워낙 빈번해서리......

    • @Jefferson-tl2oo
      @Jefferson-tl2oo 2 месяца назад +6

      ​@@GrowStoneOnline이미 이토 선임들도 다 암살로 제껴졌었어요. 초반부 보시면 수두룩하게 암살된 리스트 나옵니다.

  • @jspenzer1004
    @jspenzer1004 2 месяца назад

    이토는 엄청 세련된 사람이었음, 정치도 여자다루듯이 함, 절대 폭주하지 않고 끝까지 합리적인 결정을 하려고함
    계속 일본 총리를 했다면, 2차대전에서 최소 무승부를 냈을 거임
    ㅡㅡㅡㅡㅡㅡㅡㅡㅡ
    그래서 저런 일본의 영웅유닛을 제거한
    안중근 장군님께 영원히 감사드립니다.

  • @조광래-w1i
    @조광래-w1i 2 месяца назад +1

    그때 이또가 기차에서 어느쪽으로 내릴지 몰라서
    건너편에도 독립군 저격수가 있었는데
    안중근이 있는 쪽으로 내렸다네요

  • @장진우-m2l
    @장진우-m2l 2 месяца назад +1

    어이없는 if 어차피 명령 불복종이나 항명 허위보고의 개념도 없는 당나라군대가 일본군인데 전쟁 안난다가 더 신기 하죠. ㅋㅋ

  • @gimjeonglyul3456
    @gimjeonglyul3456 2 месяца назад

    일본 출신의 색욕마인 겸 사생아를 계속 싸지른 악질 호색한인 이토 히로부미(이등박문)의 경우는꽤 아주 많이 정의롭고 개념찬 독립운동가 겸 의인인물인 도마 안중근의 총탄에 총격격살처단이 되어서 죽은 것이 오히려 다행이다.
    내가 발언한 인물:김정률(1987년도6월28일 생)

  • @둘기닭-k3o
    @둘기닭-k3o 2 месяца назад

    아마 일본인으로서 2등국민이 되어 살고 있을 것입니다. 또는 필리핀처럼 어설프게 종속되어 후진국민으로서

  • @wwl8803
    @wwl8803 2 месяца назад

    잘은 모르지만, 일본 군부가 폭주한 계기가 대공황이였다는걸 가만하면, 아무리 이토가 천재적인 정치 감각을 가진 권력자였다 해도, 쉽게 막기는 힘들었을거 같네요.

  • @dlsrksguadhX
    @dlsrksguadhX 2 месяца назад +3

    역사 환타지 소설 소재로 좋은듯

  • @백운-i7z
    @백운-i7z 2 месяца назад +1

    보는 도중에 갑자기 영상 사라짐ㅋㅋㅋ

  • @nitokensi
    @nitokensi 2 месяца назад +2

    군부가 암살했겠죠

  • @shp6804
    @shp6804 2 месяца назад

    역사에 if는 없다

    • @생생역사
      @생생역사  2 месяца назад +1

      역사 컨텐츠에는 있습니다

  • @뒷골목을어슬렁거리는
    @뒷골목을어슬렁거리는 2 месяца назад

    독일식과 영국식헌법을고려 안했군요

  • @강대국-j6w
    @강대국-j6w 2 месяца назад +1

    2009 로스트 메모리즈를 봤는데 스토리가 너무 재미없더라...
    감독이 애국심만 믿고 영화를 대충 만들었나봐...

  • @appleseed4884
    @appleseed4884 2 месяца назад +4

    다른놈이 죽임

  • @johnoh9722
    @johnoh9722 2 месяца назад +4

    일본이 승전국이 되었어도 가성비없는 식민지를 유지할 필요가 있었을까?

    • @송송송-j4d
      @송송송-j4d 2 месяца назад

      그쵸 2차 대전이후 영국이 눈물을 머금고 최애식민지 인도도 포기했는데

    • @tubenoonting
      @tubenoonting Месяц назад

      분명 가성비 나쁜 식민지긴 한데, 일제도 상당한 꼴통이라 상상이 안됨. 사실 중국과 만주의 패권은 미국도 매우 신경 쓰던 문제라... 과연 미국과의 충돌이 없이 일제의 동북아 패권이 유지가 됐을지는 의문. 러일전쟁 끝나자 마자 영미와는 갈등이 예고됐다고 봐야 됨.

  • @쇳치
    @쇳치 2 месяца назад +3

    방금 조선 금 수탈 249톤 보고 이거 보니 참 ...

  • @outhm8928
    @outhm8928 27 дней назад

    과두제

  • @카에리미하세지
    @카에리미하세지 2 месяца назад +1

    메이지 유신과 근대화의 선각자 위대한 리더 이토 히로부미

  • @대한민국-q1v
    @대한민국-q1v 2 месяца назад +14

    이토 히로부미. 합리적이고 이성적인.외교관 그리고 조선인임. 일본은 절대로 조선을 먹어서는 안되고 중립지역으로 둬야된다고 주장했고 그분이 암살당하고 나서.조선은 6개월만에 한일합방된다. 조선이 일본이랑 하나가 되는날에는 그당시 조선인들은 아무도 슬퍼하지도 화내지도 않았다.

    • @llillllii
      @llillllii 2 месяца назад +1

      어떤 사이비 역사학자 렉카영상을 보았길래 이토가 조선을 절대 합병하면 안된다는 주장을 했다고 헛소리 나불거리는거냐 ㅋㅋㅋㅋㅋㅋㅋㅋㅋㄱㅋㅋㅋㅋㅋ 진짜 요새 이런 무지랭이들이 자신있게 똥글 싸는거 보면 참 천박한 상놈들도 나대는 세상 다 되어서 감회가 새롭다니까

    • @홍정주-l3d
      @홍정주-l3d 2 месяца назад +2

      500년간 억눌린 삶을 살았던 노비들과 중인계급들은 만세를 불렀겠죠.특히 일제에 의해 해방된 노비들은 만만세를 불렀을테고

    • @12coom
      @12coom Месяц назад

      이토 히로부미가 조선인이라는건 뭔 헛소리냐? 애초에 이토 히로부미는 명백한 일본출신의 일본인이고 실제로 이토 히로부미가 죽기 이전에도 조선은 1909년에 7월에 맺은 기유각서로 일본에게 외교권, 사법권,군사권까지 전부다 빼았긴 사실상 일본의 식민지나 마찬가지였다.

    • @llillllii
      @llillllii Месяц назад

      @@12coom 이런 이야기를 듣고 이해할 정도면 저런 개 뻘소리를 애초에 안함 ㅋㅋㅋ 쟤네들은 이런 내용 자체를 그냥 거부하는 새키들임

    • @tubenoonting
      @tubenoonting Месяц назад

      @@홍정주-l3d 그래봐야 노비나 백정출신은 해방정국까지도 차별 받음. 일제때도 대지주의 토지겸병과 소작농화는 더 심해지는데? 뭐가 해방임? 제도적 신분제 철폐는 일제가 해 준게 아니라 대한제국때 광무개혁으로 단행됨.

  • @역사잼
    @역사잼 2 месяца назад

    해방은 없었을거임
    승전국이라
    북조선애들은 그 엔딩이
    더 나았을거다
    반면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일제보다는 지금이 더 낫고
    일제 소속이였다면
    차별이 분명 있었을거니까

  • @kelsen1975
    @kelsen1975 2 месяца назад +3

    2차대전이 일어날 수 밖에 없었던 원인은 대공황입니다. 영국과 프랑스 중심의 블록경제를 시작합니다. 시작 당시, 영국과 프랑스는 식민지의 생산물을 50%정도 수탈했기에 여력이 됐습니다. 하지만, 일본은 조선에 수탈을 80%이상을 합니다. 짜내고 짜내서 한계에 이르렀고, 그래서, 대공황 때는 여력이 없어서 다른 식민지가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무다구치 렌야가 노부교사건으로 중일전쟁을 일으키지 않았더라도 일어날 수 밖에 없었던 상황입니다.
    그러는 와중에 중국 남부까지 관동군이 내려갔으나, 그 당시에 미국이 중국을 지원하기 시작하며, 일본은 흔들리기 시작합니다. 계속된 미국의 지원에 대해서 원한을 갖기 시작하고, 한계까지 와서 중일전쟁을 포기할 상황이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프랑스가 독일에게 6주만에 항복하고, 프랑스랑 네덜란드가 점령하던 인도차이나 등이 무주공산이 됩니다.
    식민지가 하나라도 더 필요했던 일본은 그걸 차지하려다가 미국에게 경고를 받습니다. 미국은 인도차이나를 일본이 무혈 입성하는 걸 원치 않았습니다. 그래서 갈등을 하던 차에, 결국 인도차이나를 점령하자, 미국은 2차에 걸친 무역 제재를 합니다. 하필 대부분의 석유를 미국에 수입에 의존했던 일본은 결국 이번 금수조치로 더 이상 미국을 가만두면 안된다는 생각에 벌어진 것이 바로 진주만사건이고, 그것이 태평양 전쟁의 시작입니다.
    이토 히로부미가 살아 있었다고 달라질 것은 없습니다. 그것은 개인의 역략이기 보단, 결국 국제 관계와 대공황이라는 엄청난 경제 충격, 그리고 조선에 대한 수탈의 정도 등이 문제였습니다. 그리고, 이토히로부미는 온건파가 아니라, 그냥 다른 사람들과 방향성이 다를 뿐, 정한론자로 침략전쟁에 대한 태도가 일본의 주류와 다르지 않았습니다.

    • @kelsen1975
      @kelsen1975 2 месяца назад

      @@user-pu7ey2xl6o 미치겠다. 몇번을 말해도 왜 뻘소릴하니? 조선 인프라 투자가 조선인을 위한 거냐?
      철도 놨다고, 그게 조선인 잘되라고 논거냐? 그냥 수탈 편하게 하는건데...
      중국의 일대일로 보고, 그 나라 돕겠다고 선의로 했다고 할 인간이네. 너 혹시 책 한권 갖고 이러는거냐?

    • @user-pu7ey2xl6o
      @user-pu7ey2xl6o 2 месяца назад

      @@kelsen1975 야야 참 순진하다 일본이 무슨 자선사업가냐... 인간아 막말하는 수준하고 수탈설 끝난지가 언제인데... 넌 고종이 일본에게 뇌물먹은거 하고 해방후 김구가 친일파에게 정치 자금 받은것도 모르지 ㅋㅋ

    • @mkim7684
      @mkim7684 2 месяца назад

      @@user-pu7ey2xl6o 아직도 식민근대화론 빠는 병신이 있네 넌 대가리의심좀해봐라

    • @kelsen1975
      @kelsen1975 2 месяца назад

      @@user-pu7ey2xl6o이제 시작인가? 정신승리타임. 논리가 바닥나면 왜 하나 같이 이 지랄인지...누굴 탓하리? 니 무식을 탓해야지.

    • @kelsen1975
      @kelsen1975 2 месяца назад

      @@user-pu7ey2xl6o 어...미안...책 한권 읽고 헛소리 한다는 말이 너무 핵심을 찔렀나?
      중국도 일대일로로 엄청난 부채 떠 안았다더라. 그게 후진국 발전을 위한 봉사였다더냐?
      아프리카는 자원 수탈 목적이고, 동남아는 군사적 요충지 때문에 했던거지, 후진국 사람들 복지를 위해서 했더냐?
      중국이 하는 일대일로가 왜 제국주의라고 부르는지 모르나보네. 그렇게 이익없는 손실이면, 대체 조선 국권침탈 왜 했는데?
      마지막에 논리 안되고 하는 짓이 황현필이나 왜 이리 똑같은지. 무식한 널 탓해야지. 누굴탓하리?

  • @황룡교주
    @황룡교주 2 месяца назад

    그냥 일본이 진주만 침공만 안했으면 미국이 2차 세계대전에 참전하지 않을 겁니다.

    • @송송송-j4d
      @송송송-j4d 2 месяца назад

      아뇨 참전했을거에요
      이미 미국은 일본의 진주만 공습전 부터 처칠과 2차 대전 참여에대해 논의했고
      루스벨트가 미국 참전 약속했어요
      2차 대전후 세계질서 개편에 미국의 목소리 높이기위해선 미국의 승전국 지위가 필요했죠
      일본의 진주만 공습 소식듣고
      처칠이 미국이 혹시 유럽전쟁보다
      태평양전쟁에 더 많이 군대파견하고
      지원하지 않을까해서
      탄식했다고 하니깐요

  • @intotheSKY67
    @intotheSKY67 2 месяца назад

    제국의 식민지는 독립함.

  • @kisadootwo
    @kisadootwo 2 месяца назад

    그래도 흐름을 막지는 못하지.. 전쟁을 어떤 미치광이 선택으로 일어나는거라 생각하면 그럴지 몰라도 전쟁은 흐름으로 선택이 아니라 필수로 하는겅우가 많다고 셍각함

  • @생생역사
    @생생역사  2 месяца назад +10

    사운드가 문제가 있어서 다시 올렸습니다. 문제를 알려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감사합니다!

    • @퀸비틀즈
      @퀸비틀즈 2 месяца назад +2

      찌직거린거 내가 순간 핸드폰 잘못건들여서 물들어간줄

    • @생생역사
      @생생역사  2 месяца назад +1

      @@퀸비틀즈 제가 핸드폰 바꿀 기회를 빼앗았네요. 심심한 위로의 말씀을 드립니다ㅠㅠ

  • @ehdgkrdldu4764
    @ehdgkrdldu4764 2 месяца назад

    이토 정도야 데지던지 말던지 광복은 했다

    • @ehdgkrdldu4764
      @ehdgkrdldu4764 2 месяца назад

      @@테스트-l4s 우리나라에 동요아닌 동요가 있습니다. 반달 가사 뜻이 처절하지요.
      조선인은 죽어도 끝까지 갑니다 .
      서쪽으로 가 샛별 ㅋㅋㅋㅋㅋ

  • @박병태-f4z
    @박병태-f4z 2 месяца назад +2

    이토가 있든 없든 전쟁은 숙명이었지.
    사라예보 오스트리아 황태자 부부 암살로 2차 세계대전이 일어났다고
    생각하면 역사를 아주 모르는 새끼지.
    역사의 IF 논리는 정말 한심한 시간 낭비지.

  • @David-v6z8e
    @David-v6z8e 2 месяца назад +1

    이걸 보면서 느낀건
    동아시아 국가의 진짜 근대화는
    메이지 유신보다 1911년 중화 민국을 세운 신해혁명이 진정한 서구화 답네요..

  • @루카치-u3m
    @루카치-u3m 2 месяца назад +1

    어떤 일본인 만화 작가인가 그 사람이 안중근은 이토 히로부미를 죽이지 말았어야 했다더군요.. 차라리 야마가타 아리토모를 죽였어야 했다고 ㄷㄷ

    • @이녹-u4b
      @이녹-u4b 2 месяца назад

      이토 히로부미는 조선이 자체적으로 스스로 개혁하는걸 지지했던 인물임. 그걸 분탕질 친게 고종이고, 조선을 일본식으로 발전시킬려고 했던 내각제들을 숙청시키거나 번번히 갈아치운것도 고종이었음. 거기다가 자기네 집안에 비자금 조성해서 러시아에 원군을 판견까지 시킬려고 했던 정신나간 인물이 바로 고종이었음. 조선반도가 통째로 러시아에게 넘어가고 거기다가 일본의 영토까지 위협받을 지경에 이르니 일본이 고종을 갈아치우는게 당연한 수순이었음.

  • @lomica
    @lomica 2 месяца назад

    인종다른 흑인들 미국에서 잘만사는데 중간에 흑인운동잇엇지만 민주화운동대신이라 생각하면 한국일본 gdp합치면 중국50년은 더 이길듯 인구도 2억

  • @ggul4567
    @ggul4567 2 месяца назад

    응 살았어도 뉴클리어 엔딩은 같아

  • @부엉이-e2q
    @부엉이-e2q 2 месяца назад +1

    이토는 온건파였다 안죽었으면 조선이 조금더 나았을수있었다

    • @tubenoonting
      @tubenoonting Месяц назад

      일본은 어차피 군국주의로 치닫게 되어있음.

  • @frieden520
    @frieden520 2 месяца назад

    일본치하나 지금 대한민국이나 한국젊은남성은 2등시민이다

  • @이녹-u4b
    @이녹-u4b 2 месяца назад +5

    안중근의 개삽질..

    • @유수윤-m4o
      @유수윤-m4o 2 месяца назад +2

      헛소리하네 러일전쟁 이후로 한반도는 이미 육군의 전리품으로 여겨질 정도로 육군의 입김이 막강해짐

    • @이녹-u4b
      @이녹-u4b 2 месяца назад

      @@유수윤-m4o 조선 국왕 고종은 막대한 비자금을 조성해서 서구 제국주의 러시아에게 원군을 청하려고 개삽질하려다가 일본한태 발각당하는게 정설이다. 그리고 고종이 조선을 변혁시킬려고 했던 내각 인물들을 여러번 갈아치운것도 고종이고. 고종이 일본이 제시했던 개혁안은 쌍그리 무시하고 온전히 이씨만을 위한 국가 비자금을 조성했다는게 이야기의 본질의 시작이다. 고종때문에 한반도 전체가 러시아한태 넘어가서 조선인들이 집단으로 시베리야로 유배갈뻔한 사실을 모르냐?? 그때 한참 러시아가 부동항을 찾던찰나에 최적의 영토를 발견한게 바로 조선반도다. 이씨들이 다스리던 조선이 오랫동안 한반도를 통치하는 이상엔 그것은 조선인들에겐 더더욱 지옥이었다고 확신한다. 최소한 온건파 이토 히로부미 만큼은 조선을 자발적으로 조선민의 힘으로 변화해 나가는걸 도와줄려는 역할을 했던거지. 그런 인물을 쏴죽인게 바로 카톨릭신자 안중근이라는거다. 안중근에 대해서도 연구해봐라. 동학운동에 학살에 동참한 인물이다.

  • @토마디-h6u
    @토마디-h6u 2 месяца назад

    1등 국민을 갈망하면서 더 열심히 살아 오히려 일본을 먹지 않았을까요?ㅎㅎㅎ 유태인들 처럼

    • @12coom
      @12coom Месяц назад

      조선인들은 그럴 능력이 없다. 애초에 당시 일본은 조선인들이 아무리 능력이 있다고 해도 그저 하인으로 삼을 생각만 했고.

  • @OOC-yl7jn
    @OOC-yl7jn 2 месяца назад +1

    안중근 의사가 쏜 총알의 속도처럼 달려왔습니다

  • @parkjh1677
    @parkjh1677 2 месяца назад

    영국, 프랑스는 2차대전 승전국이었음에도 대부분의 식민지는 독립시켜야 했음. 식민지를 통해 경제적 이득을 얻을 수 있다고 하는데 그건 무난하게 통치될 때 이야기이고 식민지에서 반발이 거세지면 국제정치적 위신의 타격은 물론이오 이것을 진압하기 위한 군비가 막대해서 오히려 손해임. 영국, 프랑스, 포르투갈 등이 그들 식민지에서 일어난 분쟁(독립투쟁)을 진압하기 위해 막대한 인력, 비용을 투입했으나 국내외 비판 및 전비로 인한 압박이 극심했음. 이토가 생존해서 일본이 현실보다 현명하게 대처해서 2차 대전 승전국이었다... 이토가 2차대전까지 살려면 백살이 넘어야 하는데 가능할지 모르겠고 설사 이토의 후계자들이 이어받아서 현명하게 일본을 이끌었다 해도 과연 우리가 일본으로 남았을지...
    강압적으로 지배했다면 계속해서 반발했을 것이고 유화적으로 했다고 해도 한일간의 차이는 어쩔 수 없기 때문에 45년은 아니어도 60년 대 영프의 수많은 식민지가 독립하는 상황에서 우리의
    자존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는 이들이 자체적으로 생겨났을 것이고 이들이 이미 존재했던 독립운동 단체(상해임시정부 등)을 통해 독립의식, 의지를 갖게 되어서 어떤 형태로건 일본을 난처하게 만드는 사태가 있었을 것임.

    • @tubenoonting
      @tubenoonting Месяц назад

      역사에 if란 없어서 일본이 얌전하게 제국운영을 하는 것이 상상도 안되지만, 그리 되었다면 영연방 같은 느슨한 체제를 거치든 할것 같습니다. 특히 미국의 자유무역 질서에 편입되면 식민지 인프라 유지가 오히려 자신들에게 손해로 여겨지겠죠. 이제 니들 알아서 하라고.

  • @안종배-h7h
    @안종배-h7h 2 месяца назад

    도조한테할복명렁받앗을것

    • @생생역사
      @생생역사  2 месяца назад

      이토: 1841년생
      도조: 1884년생, 1941년 총리 임명
      흠...

  • @유현-w1d
    @유현-w1d 2 месяца назад +2

    좋은 영상 감사합니다 그 당시 일본은 근대화로 인구가 폭팔적으로 증가했으며 그로 인해 거리에서 아사한 아이들 시체를 심심찮게 볼 수 있었습니다 군내부적으로도 불만이 많았고요 결국 우리 나라 침략했을 거고요
    임진왜란이 일본 통일후에 내부불만 해소를 위해,그리고 지방군벌을 앞장 왜 세웠는지 생각해보면 답나옴
    개인적으로 식민사관이 아직도 많다고 느낀게 안중근 의사가 뻘짓 했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는데
    미국이 우리나러 해방시켜준게 안중근 의사, 윤봉길 의사, 유관순 누나 때문이라걸 아셔야 합니다
    윌슨 민족자결주의라는 이론을 가지고 미국이 해방 시켜준거임 아니었음 팔레스타인꼴 났을거임
    총리 죽이고 폭탄으로 항거하고 3.1운동하니깐 애넨 독립국인데 점령 당했구나 한거임 미국은 그 당시 우리나라에 관심도 없던걸로 암 다행히 우리의 의지를 알고 독립시켜줌

    • @쇳치
      @쇳치 2 месяца назад

      미국에 핵 맞기 전에도 전쟁에 몰빵 해서 정작 일본 일반인 삶은 그닥 이라던 ..가뜩이나 이오지마 땜 미군 읽은거에 이빨 갈던 미국이 핵전 공습에 소이탄 개량형을 실험도 할 겸 도쿄에 폭격 하가로 햇는데 (그래서 핵 떨구는데 빠져다고)이유가 목재로 만든 집들이 수두룩해서 잘타서 라고 .갠적 오바마 역겨운게 지들 깝치다 핵 맞은거 말고 일반 탄도 아니고 불 잘 붙는 그런거에 사상자나 애기로 들어도 끔직 햇을지 상상이될텐데 그건 사과ㅈ애기를 못 들음

    • @mkim7684
      @mkim7684 2 месяца назад

      팔레스타인하고는 상황 자체가 달라요 대한민국은 좋든 싫든 일본 패전한 이상 무조건 독립이었습니다. 그게 중국의 입장이든 미국의 입장이든 러시아의 입장이든 결국 하나로 수렴하게 되어 있어요
      까놓고 미국, 소련 둘 다 조선을 일본 속국으로 유지하는게 이득이라고 판단했으면 그렇게 했을겁니다. 아니니까 안한겁니다.

    • @tubenoonting
      @tubenoonting Месяц назад

      미국은 일본에 이를 갈아서 아주 농경국가로 눌러놓을 심산이었습니다. 식민지를 남겨줄 리가 없죠. 문제는 중국이 공산화 되버려서 별수 없이 일본이 성장하는 걸 허용하게 됐고. 국가가 국익을 우선으로 움직인다지만, 프랭클린 루즈벨트는 우드로의 민족자결주의에 이어 나름의 이상으로 세계대전후 국제질서의 큰 그림을 그렸습니다. 거기엔 자유무역과 제국주의의 종말이 있죠.

  • @gimjeonglyul3456
    @gimjeonglyul3456 2 месяца назад

    내가 여기서 이런 옳은 말을 해야겠어요.
    일본에서는 이토 히로부미(이등박문)의 경우는 독립운동가이자 의인인물인 도마 안중근님이 총격격살로 죽인 것에 이미 성공한 것 덕분에 일본측 입장에서 보고 하였을 때 근대화에 성공한 1등공신이자 메이지 유신(명치유신)을 성공시킨 1등공신으로 거듭났구요.
    저는 안중근을 비하하거나 폄하하려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저는 안중근이라는 의인에 대한 평가는 한편으로는 안중근의 정의로운 행보에 대해서는 연민감을 상당히 강하게 품고 있구요.
    안중근이 가장 잘한 것은 이토 히로부미(이등박문)을 성공적으로 죽인 것이라고 저는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싶습니다.
    안중근의 이런 행보는 물론 정의롭고 개념차고 좋았겠죠~
    그래서 저는 안중근의 이런 행보를 긍정적으로 평가하였고 나쁘게 보고 하지는 않았습니다.
    저는 2020년대 일본사회의 시점에서 본 이토 히로부미(이등박문)(는)은 능력과 인간성이 별개인 인물로 재평가되고 있구요.
    최근의 21세기 일본사회의 경우는 이토 히로부미(즉 이등박문)(은)는 메이지 유신(명치유신)과 일본의 정치를 더욱 좋은 쪽으로 만들어나간 인물이라는 평가와 별개로 성적으로 보았을 때는 여자관계와 사생활이 완전 문란하고 철저하지 못할 정도로 최악인 인물이 맞구요.
    저는 일뽕도 국뽕도 중뽕도 러뽕도 미뽕도 아니에요.
    저는 이토 히로부미(이등박문)(이)라는 인물을 내가 보았을 때 도마 안중근이라는 독립운동가가 총격격살로 죽인 게 오히려 내 입장에서는 다행이더군요.
    그래서 이토 히로부미(이등박문)의 경우는 일본 내에서는 메이지 유신(명치유신)과 일본 정치의 중요한 기틀체제라는 뼈대를 설계하고 만든 최강의 일등공신이 명백하게 맞을 지언정 예전만큼은 좋은 이미지는 또한 아니구요.
    저의 입장에서 본 이토 히로부미(이등박문)의 경우는 색욕마인이 맞고 여자관계가 완전 문란하고 난잡했다고도 해요.
    일본 입장에서는 이토 히로부미(이등박문)(은)는 완전 유능하고 합리적이고 존나 똑똑한 인물이었지만 우리나라 입장에서 보았을 때 독립운동가 겸 의인인 도마 안중근의 총탄에 맞아죽은 것이 오히려 다행일 정도에요.일본 입장에서는 이토 히로부미(이등박문)(은)는 정치적 능력자체는 완전 존나게 똑똑했겠지요.
    저의 여담이자 이야기도 들어주어야 합니다.
    예를 들면 일본 만화 겸 애니메이션 작품 스쿨데이즈의 등장캐릭터이자 피해자로 전락된 가해자인 이토 마코토 짱 캐릭터가 이 인물에서 따와서 만들어졌을 가능성도 있어요.
    그래서 스쿨데이즈의 대표 캐릭터이자 피해자로 전락된 가해자인 이토 마코토의 이토라는 성은 바로 이토 히로부미(이등박문)(이)라는 인물의 성을 따와서 만든 캐릭터가 맞구요.
    그래서 일본에서는 당시의 나쁜의미로 유명한 인물이자 무장강도 흉악범죄자인 사카모토 케이지로 상의 경우도 우리나라의 독립운동가이자 의인인 도마 안중근의 총탄에 이미 총격격살되어 사망해서 죽은 인물인 이토 히로부미(이등박문)의 사생아를 자칭하고 다녔다고도 하죠~당시 일본의 이토 히로부미(이등박문)의 사생아를 스스로 자칭하는 무장강도 흉악범죄자인 사카모토 케이지로 상 입장에서 보았을 때 얼마나 이토 히로부미(이등박문)그 색욕마인 개새끼가 얼마나 여자 여러명하고 문란하면서도 난잡하고 불량한 관계를 가져서 사생아를 계속 싸질러 퍼뜨렸으면 저랬겠나 싶을 정도로요.
    내 말 거짓 아닙니다.악질 개소리도 아닙니다.저는 맞는 소리만 하였습니다.
    옳은 소리만 하는 내 의견과 말에 이야기도 들어주셔야 합니다.
    옳은 내 의견과 말,이야기도 들어주면 나는 악플같은 말썽행위를 안피우고 너그럽게 인정~

  • @그사람-h7y
    @그사람-h7y 2 месяца назад

    이토가 살았다면 한국은 식민지가 되지 않았으며 4대 강대국이 되었을 거에요.
    ===
    라는 내용이 있는데 사실인지 정확한 내용인지 잘 모르겠네요.

  • @장정호-s3i
    @장정호-s3i 2 месяца назад +2

    최근에 일본의 식민지 근대화에 대해 높게 평가하는 유투버들을 많이 보게 됩니다. 일제 강점기 시대의 한반도는 조선보다 훨씬 발전을 했다고 말입니다. 아마도 맞을 겁니다. 일본이 본국의 신식문물을 한반도에 이식을 했으니까요. 발전한 것은 사실이니까 인정할 것은 인정하자라는 건데.. 그런데 참정권이 없던 조선인이 2등국민이었다는 말은 하지 않더군요.. 이게 참 기분나쁜게 한반도의 발전이 진정한 조선인의 이익을 위한 것이 아니라 결국에는 일본인을 위한 것이라는 결론을 도출 할 수밖에 없거든요. 그걸 인정하면 조선인은 일본이 키우는 외양간의 소다라고 인정하는 꼴이 되어 버리거든요.참 이해할 수없는것이 한국인이 그것을 인정하자고 하니.. 참 아이러나 할 뿐입니다. 만약에 일본인 그런 주장을 한다면 그게 조선인을 위한 거였니?? 라고 반문 하면 되지만 말입니다.
    그리고 그 발전은 6.25 전쟁으로 철저하게 파괴되고 그 폐허 속에 한국인이 주최가 되어 미국의 도움으로 지금의 대한민국으로 발전할 수 있었는데 그때의 발전이 과연 지금의 대한민국과 무슨 상관이 있을지도 의문이고요.
    그리고 무작정 반일 하는 일부 한국인도 문제이긴 하죠. 미국은 자국의 이익을 위해서 얼마든지 적국과도 손을 잡을 수 있는 나라이거든요 그럼으로 우리가 국제 정세상 일본과 손을 잡아야 한다면 잡아야하는 것이든요.. 미중이 대립하는 가운데 한국은 당연히 미국과 손을 잡아야 하고 그리고 일본과도 손을 잡아야 하는 것이 맞는 것이든요.

    • @이창현-x6r
      @이창현-x6r 2 месяца назад

      팩트를 팩트로 받아 들이면 되는데, 감정을 섞으니, 역사가 이상한 방향으로 꼬이죠. 조선반도에서 일본이 뽑아 먹을려고 해도, 개발을 해야 됩니다. 그리고, 조선반도인은 당연히, 일본 입장에서는 2등 국민이 맞고요. 정책결정자가 아무리 동등하게 대우할려고 한다손 치더라도, 그게 하루 이틀에 바뀌지는 않고, 최소 3대, 100년은 지나야 융합이 가능하죠. 우리가 북한을 통일하면, 우린 북한 개발 안할껀가요? 그리고, 북한인들을 똑같이 대우하리라 생각하나요? 아무리, 법상으로는 한다고 해도, 사회적으로 그게 안됩니다. 그건, 베트남을 봐도, 다른 나라의 사례를 봐도 마찬가지죠. 그런데, 조선에 있던, 노비나 일반 백성이 일본의 2등 국민, 조선반도인에 비해서, 더 나은 삶을 가졌느냐도 생각해 봐야 됩니다. 근데, 일제시대 조선인의 국적은 어디냐와 같은 이야기를 한다는 자체가 국민들을 얕잡아 본다는 거죠? 나라를 빼앗겼던 가져다 받쳤던, 국가가 없는데, 국적이 어디였을까요? 당연히, 일본이죠. 단, 2등국민.

    • @장정호-s3i
      @장정호-s3i 2 месяца назад

      @@이창현-x6r 더 나은 삶은 정말 중요하죠. 분명히 나은 삶을 살았을텐데 당시 한반도의 조선인은 3.1 독립 운동을 통해 독립의 의지를 일본과 세계에 알렸죠. 그렇다면 일본의 통치는 조선의 통치와 비교 했을 때 나을 바가 없다는 것이 아닐까요?

    • @이창현-x6r
      @이창현-x6r 2 месяца назад

      @@장정호-s3i 꺼꾸로 생각하면, 3.1운동을 할수 있을 정도로 인권의식이 발달했다고는 못할까요? 그리고, 조선때도 민중봉기는 있었고, 아예 죽여버렸죠. 그냥 3족을 전부, 북한에 민중봉기 없쟎아요. 그 방식을 쓰는거죠. 근데, 우리가 북한 보다 못해서, 맨날 파업하고, 시위 하나요? 인간이라는 존재는 아무리 상황이 좋아져도, 더 나은 삶을 원합니다. 중요한 것은 일본에 전쟁한번 못하고, 나라를 가져다 받칠만큼 조선은 개판이었다는 겁니다.

    • @양건호-l5p
      @양건호-l5p 2 месяца назад

      반일타령 좋아하시네

    • @tubenoonting
      @tubenoonting Месяц назад

      @@이창현-x6r 아뇨 당시에 내지인 외지인 구별 있었구요, 식민지인은 일본 국민으로 안쳐줬습니다. 식민 통치는 식민지의 행정력 외교력을 뺏어서 통치하는 법제이지 조선은 그냥 조선입니다. 뭐가 같은 국적이었단 겁니까? 북한을 통일 하면요? 제도적으로 같은 국민으로 헌법에 박아야 민족국가 통일이죠. 실질적으로 사회적 문화적 차별이 없어지는 건 다른 이야기지만, 그 이전에 헌법과 제도에 명시되는 것도 큰 차이입니다. 일제가 진지하게 조선인을 같은 일본 국적을 부여할 생각을 한 것이 태평양 전쟁 말에 전쟁수행력이 박살나자 필요에 의해서 고려된 겁니다. 그 전에는 일제 부역한 조선 왕족 정도 안되면 군대에도 안 받아줫어요. 어딜 조센징이 위대한 황군에 복무하냐구요. 처음부터 같은 일본국적이면 일제 말에 내선일체라는 단어는 왜 나오나요? 식민지 근대화론과 수혜자론을 헷갈리면 안됩니다. 식민지 근대화라는 건 기존 전근대 체제를 식민제국이 혁파해 주고, 무역과 유통을 위한 인프라를 설치해주면서 일어나는 과정이죠. 정말로 일제가 우리를 다 근대화 시켜 준 거면, 해방정국 직후 왜 그리 가난하고 박정희때 근대화와 산업화를 새로 해야 했나요? 식민지 근대화론은 일리 있는 말이지만 식민지 수혜자론은 헛소립니다.

  • @lovepl7787
    @lovepl7787 2 месяца назад +2

    이토 히로부미를 죽인 총알처럼 날아왔습니다

  • @wnb7276
    @wnb7276 2 месяца назад +2

    이토가 살앗다면..조선 용인에 수도를 건설하고..4대 궁궐은 천왕들 거처나 별궁으로 바꿧겟죠..
    조선백성은 소수민족으로 인권이 상당히 제한되고...조선의 역사는 만주족처럼 끊어졋죠.

    • @해도리-b2x
      @해도리-b2x 2 месяца назад +3

      ㅈ도 모르시네 이토는 군부 세력과 반대로 한일 합병 반대 세력 중 대표 인물이였음. 조선을 식민지 해봤자 우리 국고만 털리지 얻을게 없는 나라가 조선이라 차라리 조선 스스로 근대화 할수있게 도와주자 주장한게 이토임 그와중에 조선인 일본 관계를 허,벌,창 내놓은게 안중근인거고

    • @wnb7276
      @wnb7276 2 месяца назад

      @@해도리-b2x ㅋ...그래서 조선반도 수도 옮긴다고 용인땅 알아보러 다녓나요?..다 잡은 먹인감 울타리 안에 넣어놓고 살려두자고 씨부리는거지.

    • @user-bz9og4wx9j
      @user-bz9og4wx9j 2 месяца назад

      ​@@해도리-b2x합병 자체를 반대한게 아니라 합병 방식을 역사와 같이 군대로 밀어 붙이는걸 반대한거 이토는 조선인들을 일본인과 동화시키는 방식으로 한반도를 집어 삼키길 원했음

    • @user-pu7ey2xl6o
      @user-pu7ey2xl6o 2 месяца назад

      이토는 조선과 일본을 영연방 모델로 생각했음.. 조선은 너무 먹을게 없어 흡수 신민지는 일본에게 상당히 부담이기 때문임..

    • @모카빵좋아
      @모카빵좋아 2 месяца назад

      이토히로부미가 벤치마킹했던 영국 예를 보면 대충 각나옴. 이토는 조선 스스로 합병하길 원할때까지 경제력으로 종속시킬 예정이였음.만약 고종이 통치를 잘했으면 조선 간판은 지킬수 있었을 수도 있었다고 본다. 스코틀랜드 화 시키려고했었음.

  • @공짜왕-i5r
    @공짜왕-i5r 2 месяца назад +4

    이토 히로부미가 죽는 바람에 일본의 강경파들한테 힘이 실리면서 한국이 일본한테 합방된거. 온건파인 이토 히로부미가 죽지않았으면 한일합병까지는 가지않았을거임. 이토 히로부미가 죽는바람에 당시 정세가 꼬인거임. 당시 조선 입장에서는 이토 히로부미가 오히려 죽지않는 것이 더 나았을런지도...

    • @유현-w1d
      @유현-w1d 2 месяца назад +2

      그게 일본측 주장입니다만 일본 군부가 그 당시 막장이었습니다 아마 이토는 암살되었을 겁니다 총리 암살은 가끔 일어나는 이벤트입니다 일본은 아베 암살때 굉장히 놀랐지만 일본 근대화 역사를 보면 총리 암살은 주기적으로 일어났습니다
      일본이 만주국을 세울때 정치권이나 일왕이 허가한게 아니라 그냥 군부가 무지성으로 침략한거입니다 일본 본토에서는 무척 당황해했습니다만 나중에 일왕이 허가하고 좋은 그림으로 갔지만 사실 만주국은 군부가 독립할려고 했습니다

    • @ernieelseungsu
      @ernieelseungsu 2 месяца назад +2

      개소리~ 이토가 정한론과 한일강제병합의 브레인이고 주범임
      이토가 살았으면 태평양전쟁은 없었을꺼고 우리는 여전히 일본의 식민지였을 가능성이 아주 큼

    • @솔레미오네
      @솔레미오네 2 месяца назад +1

      사실 조선이 보호국이 되어도 일단은 살아남는 전개인데, 이것도 식민지의 한 유형임(영국 식민지 이집트)
      그래서 원간섭기 고려/명 조공국 조선을 식민지로 판단하는게 그래서 그럼

    • @유다이-h4g
      @유다이-h4g 2 месяца назад

      @@유현-w1d그래도 이토가살아있을때까진 강제합병은안죗을득

    • @유현-w1d
      @유현-w1d 2 месяца назад

      @@테스트-l4s 그게 식민사관입니다 안중근의사가 뻘짓했다 의미없다 오직 이승만이 답이었다

  • @토미버세티-q4d
    @토미버세티-q4d 2 месяца назад

    하얼빈때는 이미 권력에서 물러났을 때 아님?

  • @kevinsuh1535
    @kevinsuh1535 2 месяца назад +1

    이토가 살아있었으면 조선은 일본의 연방국가이지만 2등 국민대우를 받으며 살고 있었겠지. 관동군의 폭주가 없어서 일본패망도 없었을 것이고. 지금에는 오키나와처럼 일본화 되어서 대한민국은 독립하지 못하고 있을 거야

  • @nowbird
    @nowbird 2 месяца назад +1

    이토 히로부미가 죽었을때 일본군부에서는 호색한의 최후라고 오히려 좋아 했다는. 죽기 전에는 조선 통감 자리에서도 1909년 6월에 사임한 상태 .결국 1909년10월 러시아와 회담을 하러가다가 죽음. 이토 히로부미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2만원을 받고 을사조약을 최종 승인한 이재황 고종은 매우 화를 냈다고 함.

  • @oceangypsy9541
    @oceangypsy9541 2 месяца назад +4

    살아있어도 결과는 같았다. 대공황의 여파로 산업전반에 타격을 입었을테고 돌파구는 전쟁밖에 없었으니.. 서방의 경제제재자체가 중일전쟁의 여파로 석유수입를 비롯한 원자재 수입에 어려움이 있자 동남아로 진출하고 그러다 보니 하와이까지 갔잖아.. 뭐 이토가 살았다고 그 영향력이 이런 문제에는 크게 해결책을 내놓지 못했을듯..

    • @chriskim2958
      @chriskim2958 2 месяца назад +2

      동의함. 이토는 온건주의자답게 영미의 관계가 깨지는걸 꺼려했겠지만 계속 그렇게 했다가는 군부세력에게 밀려나거나 최악의 경우 암살 당했을거임. 경제공항 시기부터 총리들이 꽤 암살 당함.

    • @user-pu7ey2xl6o
      @user-pu7ey2xl6o 2 месяца назад

      이토는 당시 실각한 상태라.. 힘도 없었음.. 독립을 생각 했다면 안중근은 당시 통감을 데라우치를 죽여서야 했음...엄한 사람 죽임거임..

    • @junyounglee5262
      @junyounglee5262 2 месяца назад

      그냥 연합국쪽으로 참여했을수도

  • @김대현-d9v
    @김대현-d9v 2 месяца назад

    이토가 디질땐 정계에서 힘 빠질때 였음..